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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수도권 스카이라이프서 MBC 못본다

    수도권 지역 62만 가구의 스카이라이프 가입자들이 MBC 방송을 볼 수 없는 상황에 놓였다. MBC는 14일 “KT 스카이라이프에 제공하는 수도권 표준화질(SD) 방송 신호공급을 18일 오전 6시부터 중단한다.”고 밝혔다. MBC는 앞서 이날 오전부터 수도권 지역 스카이라이프에 고화질(HD) 방송 신호 송출을 중단했다. MBC는 “12일 스카이라이프가 MBC를 상대로 제기한 가처분 신청에서 서울남부지법이 ‘MBC와 스카이라이프간에 HD뿐 아니라 SD 신호의 공급 계약도 해지된 것’으로 판시한 것에 따른 것”이라고 설명했다. 양측은 2008년 2월 KT 스카이라이프가 수도권의 HD 방송에 대해 MBC에 일정 금액의 가입자당 요금(CPS)을 주기로 재송신 협약을 했지만 계약 내용에 대한 입장 차이로 갈등을 겪어 왔다. 방송통신위원회는 “SD 방송의 중단은 HD 방송 중단과 차원이 다르다.”면서 “MBC가 SD 방송까지 중단하면 책임은 MBC가 져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박건형기자 kitsch@seoul.co.kr
  • [이슈 인터뷰] “경쟁은 대학의 기본… 포스텍도 300 명 중 20여명 탈락”

    [이슈 인터뷰] “경쟁은 대학의 기본… 포스텍도 300 명 중 20여명 탈락”

    “학생들이 학점을 놓고 치열하게 경쟁하는 것은 대학의 핵심이자 기본입니다. 개혁 과정에서 일부 부작용이 생겼다고 해서 전체가 잘못됐다고 몰아갈 수는 없는 것이지요.” 1986년 설립된 포스텍(포항공과대학)은 학교의 설립취지·규모·운영방식·학력수준 등 모든 면에서 카이스트와 비교할 수 있는 국내 유일의 ‘동반자’이자 ‘경쟁자’다. 카이스트 재학생들의 연쇄자살 사건이 ‘서남표식 개혁 논란’으로 확대되고 있는 상황을 포스텍은 어떻게 보고 있을까. 12일 경북 포항시 효자동 포스텍 교수식당에서 백성기 총장을 만나 그가 생각하는 대학 개혁의 방향에 대해 들어 봤다. 한 학년 학생이 300명에 불과한 포스텍은 지난해 영국 더타임스의 세계 대학평가에서 28위를 했다. 그 조사에서 카이스트는 79위, 서울대는 109위였다. 2007년 백 총장이 취임할 때만 해도 포스텍은 카이스트에 밀린다는 평가를 받았다. 백 총장은 포스텍이 단기간에 급속히 발전한 원동력을 ‘개혁’이라고 잘라 말했다. ‘백성기식 개혁’은 영어수업 확대, 정년보장(테뉴어) 교수 심사 강화, 교수 및 학과 평가제 도입 등 서남표 총장이 추진해 온 카이스트 방식과 놀랍도록 비슷하다. 도입 방식에서 약간의 차이만 있을 뿐이다. 그러나 그 약간의 차이가 교수와 학생들에게는 상당히 크게 느껴지는 듯하다. →때가 때인 만큼 카이스트 사태에 대해 물어보지 않을 수 없다. 서 총장의 개혁이 너무 과했던 것인가. -대학은 단 한시도 가만히 있어서는 안 된다. 끊임없이 변화를 추구하지 않으면 학교건 학생이건 탈락하고 낙오할 수밖에 없다. 변화가 대학의 문화 그 자체인 이유다. 카이스트 개혁 과정에서 일부 부작용이 생겼다고 해서 전체가 잘못된 것으로 몰아가서는 안 된다. →그럼에도 카이스트의 ‘징벌적 등록금제’는 논란의 여지가 많다. -학생들이 학점을 놓고 치열하게 경쟁하는 것은 대학의 핵심이자 기본이다. 이걸 유도하기 위해 다양한 방법을 쓰는 건 잘못된 게 아니다. 하지만 이번 건은 교육보다 돈이 지나치게 부각됐기 때문에 불행한 사태로 이어졌다고 생각한다. 최소한 재정적인 문제 때문에 학업을 중단하거나 지장 받는다는 것은 학생을 뽑을 때 대학에서 약속한 책임을 저버리는 것이다. 지원을 해 줄 수 없으면 뽑지 않는 것이 맞다. →영어수업도 카이스트 사태의 주된 이슈다. 영어수업이 꼭 필요하다고 보나. -물론이다. 세계적으로 통용될 수 있는 교육과 연구를 위해서는 영어를 자유롭게 쓸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중요한 문제는 우리 학생들은 영어가 모국어가 아니라는 점이다. 대학에서 공용화를 선언하고 전부 영어로 수업한다고 해서 되는 게 아니다. 영어강의를 들으려면 영어실력이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 무턱대고 영어로 강의를 할 게 아니라 먼저 영어를 가르쳐야 한다. 포스텍은 신입생들을 평가한 후 6단계로 나눠 영어를 배우도록 하는 ‘영어인증제’를 도입하고 있다. 이를 바탕으로 3학년부터 본격적인 영어강의가 시작되고, 대학원은 100% 영어수업이다. 목표치를 정하고 순차적으로 단계를 밟았기 때문에 “포스텍을 졸업한 학생들은 영어에 관해서는 문제가 없다.”는 평가를 받는다고 자신할 수 있다. →교수들의 테뉴어 심사 강화와 학과 평가를 지난해부터 강력하게 추진하고 있다. 교수의 ‘철밥통’을 건드리는 일인데 반발이 크지 않은가. -내부의 반발은 오해에서 비롯된다. 테뉴어 심사를 강화하고, 빨리하는 것은 누구를 자르기 위한 것이 아니라 교수들의 연구 자율성을 보장하려는 데 목적이 있다. 이미 이룰 것을 다 이룬 사람에게 테뉴어를 주는 게 무슨 의미가 있는가. 미래에 성과를 낼 수 있는 사람에게 투자하는 것이 맞는 것이다. 정교수가 된 후 6, 7년 정도 지난 시점이 교수의 잠재력을 평가하기에 좋은 때다. 잠재력을 인정받아 테뉴어가 되면 그 다음부터는 자리에 연연하지 않고 하고 싶은 연구를 할 수 있는 것이다. 연봉제 역시 반발이 있는데 미국식 연봉제라는 것은 성과에 따라 무조건 결정되지만, 한국에서는 쉽지 않은 방식이다. 그러면 기본급을 주는 한국식에 성과급을 주는 미국식을 절충하면 된다. 하루아침에 모든 걸 완벽하게 바꿀 수는 없다. →대학 개혁에서 ‘총장’의 역할은 뭔가. -변화가 파국으로 이어지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적당한 긴장관계를 유지하면서, 계속해서 꾸준한 변화가 일어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개혁을 하다 보면 분명히 소통의 문제와 만나게 된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 소통의 방식이 다양해졌다는 점은 다행이다. 한가지 더. 변화를 추구하면서 반발하는 교수들의 불만은 스스로 변화에 동의했느냐 않았느냐의 문제는 아니다. 자신이 사전에 인지를 했느냐 않았느냐에 더 민감하다. 그 부분을 뚫어 주는 것이 결국 소통 아닌가. →입학사정관제를 통해 다양한 학생들이 들어오는데, 학업성취도 문제는 없나. -과거 학력고사와 수학능력시험 시절의 자료를 분석해 보니 시험성적과 졸업성적의 상관관계가 무의미할 정도로 낮았다. 그럼 일정 수준 이상의 학생을 1차적으로 걸러서 그 후에 잠재력을 평가하는 게 어떨까 싶어서 무시험 전형을 도입했다. 입학성적과 마찬가지로, 졸업생을 봐도 대학성적이 높으냐 낮으냐 하는 것이 그 학생의 모든 것을 결정하지는 않는다. 우리의 커리큘럼을 최대한 학생들이 따르고 성취할 수 있도록 하는 게 중요하다. 그게 포스텍이 롤모델로 삼았던 미국 칼텍(캘리포니아 공대·입학정원 250명) 같은 소수정예의 장점이다. →‘입학은 어렵고 졸업은 쉬운’ 한국대학 구조를 ‘입학은 쉽고 졸업은 어려운’ 미국대학 구조로 바꿔야 한다는 주장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학생이 대학의 목표와 커리큘럼에 따라서 적절하게 학업을 이수하고 나갈 수 있느냐는 한국이나 미국이나 공통의 문제다. 이를 충족시키지 못하면 졸업을 못하는 게 당연하다. 다 배우지도 않은 학생을 졸업장을 줘서 내보내는 건 사기다. 포스텍도 신입생 300명 중 졸업까지 20여명이 탈락한다. 모두들 100% 떠안기 위해 노력하지만, 실제로 그렇게 하는 건 불가능한 일 아닌가. →이번에 새롭게 깨달은 부분이 있나. -세상에서 가장 이질적인 사람들이 모인 곳이 대학이다. 교수, 교직원, 학생. 이렇게 지향하는 바가 다른, 다양한 세대가 한곳에 모여 있는 곳이 있나. 최근에는 외국인들까지 늘고 있다. 다양성, 이질성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상대방을 따뜻하게 살펴야 한다고 생각한다. 교수들이 학생들을 ‘단순한 학생’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이 시대를 살아가는 제자이자 인간’으로 보고, 학생들 역시 서로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그것이 이번 카이스트 사태가 준 교훈이 아니겠는가. 포항 박건형기자 kitsch@seoul.co.kr ■ 백성기 총장은 ▲1949년 수원 출생 ▲1971년 서울대 금속공학 학사 ▲1981년 미국 코넬대 재료공학 박사 ▲1986년 포항공대 신소재공학과 교수 ▲1991년 코넬대 방문교수 ▲2000년 포항방사광가속기연구소장 ▲2007년 현 포스텍 총장 ▲2009년 현 한국세라믹학회장 ▲2010년 현 교육과학기술부 원자력위원 ▲2011년 현 국가교육과학기술자문회의 과학기술위원장
  • [카이스트 어디로] “후배들이여 극복할 수 있는 시련은 축복… 좌절말라”

    [카이스트 어디로] “후배들이여 극복할 수 있는 시련은 축복… 좌절말라”

    “공부를 힘들게 만드는 것은 획일적이고 불쾌한 기준으로 학생을 분류하는 것이다. 내가 아무리 잘하는 것이 있어도 평가기준에 없다고 해서 실력으로 인정받지 못하고, 시험을 잘 보는 능력도 실력이라고 말하는 것은 공부를 정말 처절하게 만드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시스템을 이겨 내야만 노력에 대한 성공의 희열을 얻을 수 있다는 것도 엄연한 현실이다. 실패의 처절함 때문에, 그리고 자존심에 굴복해 극단적인 선택을 해선 안 된다. 나의 실패를 함께 나눌 누군가를 찾아야 한다.”(김서영 한국과학기술연구원 에너지메카닉스센터장· 카이스트 기계공학 88학번) 재학생들의 잇따른 자살과 이를 둘러싼 책임공방으로 카이스트가 창립(1971년) 40년 만에 최악의 위기를 맞았다. 부러움을 사는 ‘영재의 요람’에서 ‘천재의 무덤’으로 전락한 모교. 졸업생들의 심경은 착잡할 수밖에 없다. 그들은 후배들이 받는 상처와 그로 인한 극단적인 선택을 가장 걱정하고 있다. 선배들이 사랑하는 후배들에게 전하는 마음, 그것은 무엇이 됐든 더 이상의 희생은 없어야 한다는 것이다. ●“처절하다고 공부에 지지 마라.” 김병준(기계공학·91학번) KTB투자증권 이사는 당장 ‘눈앞의 성적’에만 매몰돼 스스로 침잠하지 말고 한발 물러서서 좀더 먼 미래를 그려 보라고 했다. 그는 “기계공학과 출신인 내가 금융분야에서 일하는 것처럼 학창시절만으로 그 사람의 모든 것이 결정되는 것은 아니다.”라면서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는 준비를 하나씩 착실히 해 나가되 당장 기회가 오지 않는다고 실망하거나 좌절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김 이사는 “예전에 지도교수께서 인생에서 가장 역동적인 시기는 20대보다는 30~40대라고 하셨던 말씀의 의미를 나도 이제서야 겨우 깨닫고 있다.”면서 “어렵고 힘들겠지만, 지지 말고 무조건 버텨 내야만 결국 승리할 수 있다.”고 했다. 그는 특히 “무엇보다 주변을 돌아보면서 동료 선후배를 격려하고 많은 대화를 나누라.”면서 “이는 단순한 위로가 아닌 미래의 조력자를 만드는 길”이라고 덧붙였다. 김동현(물리학·91학번) 충북대 교수는 “카이스트에 들어왔다는 것만으로도 미래 가능성이 충분하다는 사실을 언제나 잊지 말기를 바란다.”고 후배들에게 당부했다. 그는 “카이스트에서 하위권의 학부 성적을 받고도 노력해서 국내외 굴지의 대학교수가 되거나 새로운 길을 찾아 성공한 선배들이 얼마든지 있다.”면서 “학창시절은 어디까지나 인생의 과정일 뿐이고, 어려운 시기는 나중에 꼭 경험이라는 방식으로 보상받는다는 사실을 기억하라.”고 힘주어 말했다. 안상진(물리학·95학번)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 부연구위원은 “학사경고에 따른 퇴출제도나 학점에 따른 부담은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우리 학창시절에도 있었던 일”이라고 강조했다. 안 위원은 그러나 “내 대학 생활을 돌이켜보면 지금보다는 스스로 원하는 가치를 찾을 수 있는 방법이 많았다.”면서 “무엇보다도 자기가 소중하게 생각하는 가치를 찾아 대학생활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부당하면 맞서 싸우는 용기 필요” 잘못됐다고 생각하는 것과는 당당히 맞서 싸우라고도 했다. 이종해(생명화공과·대학원 86년 입학) 한국오라클 상무는 “물리나 수학 점수를 못 받았다고 해서 모든 것이 끝난 것이 아니다.”라면서 “결국 점수에 모든 가치를 두는 것은 후배들의 시야가 예전보다 좁아지도록 누군가 만들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는 “현실이 후배들로 하여금 인생에서 낙오했다고 생각하도록 몰아가고 있다.”면서 “카이스트가 아무리 특성화된 대학이라고 해도 대학, 특히 학부는 어디까지나 적성과 재능을 찾는 곳이라는 점이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김병준 이사는 “부당하거나 수정이 필요한 부분이 있다면 그것에 굴복하거나 포기하지 않고, 싸우는 것이 학생의 권리”라면서 “1999년 봄, 카이스트를 과학기술부에서 교육부로 이관하는 정부안에 대해 카이스트 재학생들과 유럽에 있던 나를 포함한 전세계의 카이스트 동문들이 힘을 합쳐 불합리한 방안을 철회시킨 적이 있었다.”고 소개했다. ●등록금 문제는 일방통행의 결과 벤처인들의 대부로 불리는 이민화(대학원 전기과·대학원 76년 입학) 한국벤처기업협회 명예회장은 “실패를 통해 성장하는 벤처정신을 잊지 말라.”고 말했다. 그는 특히 “논란이 되고 있는 영어교육, 등록금 문제는 학교와 학생이 어느 수준이 적합한가에 대한 균형점을 찾지 않은 일방통행의 결과”라고 분석했다. 이 회장은 “오랜 세월 경험한 ‘극복할 수 있는 시련은 축복’이라는 말을 후배들에게 어떻게든 전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박건형·맹수열기자 kitsch@seoul.co.kr
  • “분산배치 모델 獨·日 사례 왜곡”

    “분산배치 모델 獨·日 사례 왜곡”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과학벨트)를 충청권과 영·호남에 분산 배치하는 ‘삼각 분산배치설’을 둘러싼 논란이 확대되고 있는 가운데 분산배치의 주요 근거로 활용돼 온 해외사례가 실제 현실과 크게 다른 것으로 나타났다. 정치권과 각 지방자치단체가 해당 연구소들이 여러 지역에 분산돼 운용되고 있다는 점만 부각시키고, 이들이 안고 있는 문제와 한계는 고의적으로 외면했다는 지적이다. 특히 독일 막스플랑크재단은 통독 이후 지역발전 논리로 의도적인 분산배치를 시도하는 과정에서 예산 낭비는 물론 학문적 퇴보까지 발생했던 것으로 확인됐다. 8일 막스플랑크재단 및 과학자들에 따르면 독일 전역에 산재해 있는 막스플랑크연구소는 개념 자체가 과학벨트와 전혀 다르다. 뮌헨에 재단본부를 두고 79개 연구소로 나뉘어 있는 막스플랑크연구소는 전체를 하나로 아우르는 종합연구소의 개념이 아니라 각기 특성화된 개별연구소에 가깝다. 과학벨트의 핵심인 ‘기초과학연구원’이 시너지 효과를 극대화시키는 방향으로 구상됐다는 것을 감안하면 애초부터 벤치마킹 대상이 아니었던 셈이다. 재단 관계자는 “각기 다른 연구소들은 특성화된 대학 및 기업과 개별적인 관계를 맺고 연구를 진행한다.”면서 “같은 분야에서 중첩되는 연구영역을 가진 경우는 특정 지역에 집중적으로 배치돼 있다.”고 설명했다. 과학벨트위원회 A위원은 “오히려 막스플랑크는 과학연구에 지역발전 논리가 전혀 맞지 않는다는 것을 입증한 사례”라고 강조했다. 막스플랑크재단은 통독 이후 낙후된 동독 지역의 발전을 위해 드레스덴과 라이프치히 등에 일부 연구소를 이전하고 새로운 연구소를 건설했다. 그러나 이전 대상 연구소 연구원들의 반대와 이직 등으로 인해 연구원을 새로 뽑는 등 부작용이 발생했다. 막스플랑크 플라스마물리연구소의 유정하 박사는 “결국 비슷한 연구소를 새로 만들면서 예산이 낭비됐고, 새로 뽑은 연구원들의 수준이 떨어지면서 ‘물리 등의 분야에서 독일 과학이 10년 이상 정체됐다’는 평가까지 받고 있다.”고 말했다. 드레스덴에 위치한 막스플랑크 복잡계물리연구소 관계자는 “드레스덴이 최고 수준의 공과대학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그나마 짧은 시간에 자리를 잡은 것”이라면서 “연구소와 공동연구를 진행할 수준의 대학이나 기업이 해당 지역에 없다면 아무도 찾지 않는 유령 연구소가 될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일본 내 5개 지역에 분산돼 있는 이화학연구소(리켄)의 경우도 지역 발전 등의 논리와는 거리가 멀다. 리켄 본원이 위치한 도쿄 근교 와코시는 주변이 주택가에 완전히 둘러싸인 데다 미군 부대까지 있다. 리켄의 김유수 박사는 “1917년 리켄이 처음 이곳에 세워질 때만 해도, 규모는 큰 고려 대상이 아니었던 것으로 알고 있다.”면서 “확장 자체가 불가능한 지역적 특성 때문에 다른 지역에 분원을 하나씩 세워 나가게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광주시 등에서 지역 균형발전의 대표적인 사례로 꼽는 리켄 효고분원도 피치 못할 배경이 있다. 리켄과 공동연구를 진행하는 국내 대학 교수는 “1995년 한신대지진 이후 이 지역 과학기반이 모두 망가지면서 복구 개념에서 분원이 설치된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대부분의 과학연구 자체가 효고분원을 중심으로 진행됐기 때문에 마치 분원이 지역발전을 이끈 것처럼 착시현상이 나타난 것”이라고 말했다. 과학벨트위원회 B위원은 “분산배치의 근거를 찾다 보니 막스플랑크와 리켄 사례를 일부만 활용하게 되는 것”이라며 “세계적인 과학단지를 만들겠다는 논의에서 정작 과학은 배제돼 있는 현실이 개탄스럽다.”고 말했다. 박건형기자 kitsch@seoul.co.kr
  • “신문 위기극복 특별지원제도 마련해야”

    “신문 위기극복 특별지원제도 마련해야”

    전국언론노동조합과 한국기자협회는 6일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신문에 대한 특별지원제도를 마련하라.”고 정부·여당에 촉구했다. 전병헌·김재윤 의원 등 민주당 소속 국회 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원회 위원들도 회견에 함께했다. 이들은 “신문산업과 신문저널리즘이 위기에 직면해 있는 상황에서 서구 선진국들은 범 국가적으로 신문 지원정책을 펴고 있다.”면서 “2009년 신문산업을 지원하는 법률 제·개정안이 발의된 바 있지만 현재는 논의 자체가 중단된 상태”라고 지적했다. 이어 “정부·여당은 종합편성·보도채널에만 관심을 두지 말고 신문위기 극복을 국가 어젠다로 설정해 즉각 관련 지원정책을 추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편 한국신문협회,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한국기자협회는 이날 서울 태평로1가 한국프레스센터 19층 기자회견장에서 제55회 신문의 날 기념대회를 개최했다. 기념대회에서는 한국신문상, 신문협회상, 신문의 날 표어·신문주간 포스터 공모전 입상자에 대한 시상식도 있었다. 김재호 신문협회 회장은 대회사에서 “우리 사회가 겪고 있는 큰 사건들과 관련해 엄청나게 쏟아지는 정보들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해서 독자들에게 제시할 수 있는 유일한 매체가 신문이다.”며 “신문인들이 신문의 역할을 소홀함 없이 수행할 때 신문에 대한 독자들의 신뢰가 더욱 높아질 것”이라고 밝혔다. 행사에는 이동화 서울신문 사장 등 회원사 발행인과 각계 인사 등 200여명이 참석했다. 박건형기자 kitsch@seoul.co.kr
  • [오늘의 눈] 희망 대신 절망을 주는 사람들/박건형 온라인뉴스부 기자

    [오늘의 눈] 희망 대신 절망을 주는 사람들/박건형 온라인뉴스부 기자

    “왜 우리 수민이를 그런 데 내세우느냐.” “그래도 목소리를 내야지 조금이라도 더 많은 사람들이 장애인 권익을 이해해줄 것 아니냐.” 6일 자 ‘소아암 앓아 다리 못쓰는 6살 수민이의 병원가는 길’ 기사가 보도된 후 수민이네 집에서는 밤 늦게까지 부부싸움이 이어졌다. 수민이 아빠는 가뜩이나 안쓰러운 딸의 얘기가 사진과 함께 신문에 나왔다는 사실을 마뜩잖아했다. 수민이 엄마는 “그래도 리프트 고장이 덜 나고, 저상버스가 늘어나면 더 좋아지는 것 아니냐.”며 남편을 달랬다. 나의 생각도 수민이 엄마와 같았다. 기사에 등장한 사례들은 수민이와 같은 장애인이라면 대부분 공감하고 있을 법한 불편들이다. 이 중 단 한가지라도 나아진다면 기사에 대한 보람을 느낄 수 있을 것이라 기대했다. 하지만 현실은 전혀 달랐다. 서울메트로(3호선), 도시철도공사(7호선), 서울9호선운영㈜ 모두 기사를 접한 후 궁금해한 것은 ‘고장난 리프트의 위치’뿐이었다. 메트로와 9호선운영은 “우리 관할이 아니니 회사 명예를 위해 이름을 빼달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책임 당사자인 도시철도공사는 “사실 확인을 해보니 지난해 10월 신형 리프트 교체 작업 이후에는 고장난 적이 없다.”고 말했다. 이어 “기사에 나온 이동경로 자체가 비상식적”이라며 “엄마 말만 듣고 쓴 과장된 기사”라고 폄훼하기 바빴다. “장애인의 달이라고 억지 기사가 자꾸 나온다.”고도 했다. 이럴 때 쓰는 말이 ‘적반하장’일까. 전화번호 없는 안내문에 대해서만 “역장이 규정을 어겼다.”고 시인했다. 리프트 고장에 대한 신속한 대책, 병원을 이용할 수 있는 엘리베이터·저상버스 증설. 수민이 엄마와 수민이가 바라는 건 거창한 일이 아니다. 매년 쏟아지는 수많은 장애인 대책에 이미 담겨 있는 것들이다. “우리는 충분히 노력하고 있다.”고 자찬하는 사람들에게 말해주고 싶다. 당신들은 6살 어린이에게 ‘희망’ 대신 ‘절망’을 알려주고 있다고 말이다. kitsch@seoul.co.kr
  • 소아암 앓아 다리 못쓰는 6살 수민이… 유모차 타고 병원 가는 길

    소아암 앓아 다리 못쓰는 6살 수민이… 유모차 타고 병원 가는 길

    ‘휠체어 리프트가 고장입니다. 7호선 환승은 9호선 동작→4호선 이수역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여기는 지하철 3호선 고속터미널역이에요. 지금 제 앞에는 30개 남짓한 계단이 있어요. 많은 건 아니지만 전 쉽게 올라갈 수가 없답니다. 유모차와 제가 타야 하는 계단의 전동 리프트 앞에 ‘수리 중’이라는 안내문만 달랑 한장 붙어 있거든요.이 안내문대로라면 오던 길을 되돌아가 동작역, 이수역을 거쳐 두번을 갈아타야 한다는 얘기군요. 엄마는 난감한 표정으로 저를 쳐다봅니다. 저와 유모차를 한꺼번에 ‘으랏차차’ 들어올려 계단을 타볼까 고민하는 듯합니다. 저는 엄마 눈치를 봅니다. 남보다 체구가 작은 엄마가 훌쩍 커서 무거워진 저와 유모차를 동시에 들어올릴 수 있을까요. 엄마는 역무실에 전화를 겁니다. 고장안내문 밑에 전화번호도 없어서 결국 지금 서 있는 지하철역의 전화번호를 114에 연락해서 물어봐야 합니다. 한참을 목소리 높여서 다투시네요. 역무원이 엄마한테 “지금 어느 방향에 계세요?”라고 묻습니다. 계단 위쪽에 서 있으면 3호선이나 9호선 역무실에 전화하고, 계단 아래쪽이면 7호선 역무실에 전화하라고 아주 ‘친절하게’ 설명하십니다. 그럼 중간쯤 가다가 섰으면 어디로 연락해야 하는 걸까 궁금해집니다. 뭐 어느 쪽이든 별로 달라질 건 없습니다. 우리는 결국 되돌아갈 수밖에 없을 거예요. 항상 그랬거든요. 결국 또 택시를 불러야 하겠죠. 아, 제 소개를 빼먹었네요. 처음 보는 사람들한테는 인사부터 해야 한다고 배웠는데 말이죠. 전 서울 상도동에 사는 6살 이수민입니다. 태어날 때부터 신경모세포종이라는 소아암을 앓고 있고 지금까지 14차례 항암치료를 받았습니다. 병원에선 암은 거의 완치 단계랍니다. 하지만 암세포가 척추를 눌러 다리를 쓰지 못했고, 앞으로도 그럴 가능성이 높다네요. 엄마는 입버릇처럼 “넌 할 수 있는 일이 많다.”고 하십니다. 하지만 저는 어렴풋이 알고 있습니다. 제가 남들보다 못하는 게 많다는 걸요. 제가 가장 존경하는 사람은 ‘휠체어 테니스의 로저 페더러’로 불리는 일본사람 구니에다 신고입니다. 구니에다는 9살 때 척수종양으로 하반신 마비가 됐지만, 장애인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땄고 5년 연속 호주오픈에서 우승한 영웅입니다. 저도 구니에다처럼 꼭 다른 친구들에게 힘을 주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공부도 열심히 해야 하고, 많이 배워야겠죠. 하지만 우리나라는 저처럼 불편한 아이들이 외출하기엔 너무 힘든 나라입니다. 사실 저는 오늘 고속터미널역의 안내문을 보고도 별로 놀라지 않았어요. 워낙 자주 겪는 일이라서요. 오늘 하루 반나절의 나들이에도 엄마는 여러 차례 답답해했고, 전 멀뚱멀뚱 엄마만 지켜보고 있어야 했어요. 엄마와 전 건국대병원에 가기 위해 아침 9시에 집을 나섰습니다. 집앞 버스정류장에서 지하철역까지 가는 버스 노선은 10개가 넘습니다. 버스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지나가지만 전 계속 기다립니다. 유모차가 올라갈 수 있는 저상버스는 잘 안 오거든요. 오늘은 그나마 20분만 기다렸으니 운이 좋은 날이라고 해야 하나요. 저번엔 비오는 날에 40분 넘게 기다린 적도 있었습니다. 고속터미널역에서 오던 길을 되돌아가 결국 지하철을 두번 더 갈아타고도 우리는 정작 건대입구역에는 내리지 못합니다. 저희 집에서 가는 방향에는 병원으로 연결되는 엘리베이터가 없거든요. 예전엔 역무원 아저씨가 도와줬는데, 언제부턴가 역무실이 비어 있더군요. 자동화인가 뭔가 시설이 좋아져서 역무원 아저씨들이 필요없게 된 거래요. 엄마는 한 정거장을 더 가서 어린이대공원에서 돌아오는 방법을 생각해냈죠.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유모차를 들어달라고 하면 좋을 것 같은데 엄마는 가능한 한 도움을 받지 않는 게 좋은 거라면서 항상 스스로 하는 습관을 고집합니다. 아참, 우리 엄마는 요즘 이사를 하려고 고민 중이신데요. 어린이집이랑 병원에서 조금이라도 더 가깝고, 덜 갈아타는 곳으로 가고 싶대요. 적당한 아파트도 찾았대요. 근데 마을버스를 타야 한다네요. 마을버스는 유모차로 못 올라가는데. 어제는 엄마가 인터넷으로 동영상을 보여 줬습니다. 미국에서 열린 TED라는 행사에서 저처럼 걷지 못하던 어맨다라는 여자가 일어서는 모습이었지요. 스키를 타다 다친 어맨다는 “절대로 걸을 수 없다.”는 의사의 말에 평생을 절망 속에 살았대요. 근데 이더 벤더라는 과학자가 어맨다를 일으켜 세운 거죠. 로봇 같은 뼈를 입은 어맨다가 휠체어에서 일어나 사람들 앞으로 걸어가는 모습을 보면서 엄마는 숨죽여 우시더라고요. 그러고선 “수민아. 엄마가 꼭 돈 많이 벌어서 저거 사줄게.”라고 했어요. 저 로봇다리가 얼른 싸게 나왔으면 좋겠어요. 저걸 신고 지하철이나 버스를 편하게 타고 싶어서냐고요? 아니요. 다른 애들처럼 달려보고 싶거든요. 글 사진 박건형기자 kitsch@seoul.co.kr
  • “후쿠시마 사고 규모 체르노빌 넘어섰다”

    후쿠시마 원자력발전소 사태로 인한 피해가 사상 최악의 원전사고로 꼽히는 체르노빌 사고를 뛰어넘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고 기준으로 가장 높은 등급인 7을 넘어설 수 있다는 것이다. 방사능 유출량이나 주변의 인구 밀집도, 발전소 규모 등 모든 면에서 후쿠시마가 체르노빌 때보다 치명적이라는 것이 근거다. 3일 IAEA 및 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KINS) 등에 따르면 IAEA는 후쿠시마 원전 사고에 대한 평가 준비작업에 착수했다. IAEA 내부에서는 후쿠시마 원전 사고가 이미 체르노빌 사고 규모를 넘어섰다는 전망이 우세한 것으로 알려졌다. 익명을 요구한 IAEA의 고위 관계자는 “원전 사고 평가는 사망자나 폭발 등 즉각적이고 직접적인 피해보다 전체 방사능 유출량과 피폭 피해, 장기적으로 나타나는 환경에 대한 영향 평가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다.”면서 “후쿠시마는 정확한 정보가 없는 현재 상황만 감안해도 이미 7단계이며, 향후 상황에 따라 새로운 8단계를 만들어야 할 수 있다.”고 밝혔다. 또 다른 관계자는 후쿠시마를 체르노빌보다 심각하게 받아들이는 이유로 인구 밀집도와 방사능 유출량을 들었다. 그는 “체르노빌은 발전소 규모가 작고, 인구 밀집 지역이 아니었던 데다 폭발이라는 형태로 일시에 방사능이 유출됐기 때문에 한번 지나간 뒤에는 대피나 추후 대응 등의 예측이 오히려 용이했다.”면서 “반면 후쿠시마는 인구가 밀집된 도심에서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4기의 대형 원전에서 방사능이 지금도 계속 유출되고 있고, 향후 진행 방향 역시 예측하는 데 어려움이 있다.”고 지적했다. 박건형기자 kitsch@seoul.co.kr
  • 日, IAEA 경고 무시… 사태 키웠다

    국제원자력기구(IAEA)가 일본 원자력 발전소의 사고 대응 시스템에 심각한 허점이 있다는 것을 경고했지만 일본 측이 이를 묵살해 온 것으로 나타났다. 또 일본은 후쿠시마 원전 사고 대응 매뉴얼을 공식석상에서 여러 차례 공개하고도, 정작 사고가 발생하자 이를 지키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서울신문이 3일 단독 입수한 IAEA의 ‘일본 통합규제검토서비스(IRRS) 보고서’에 따르면 IAEA는 지난 2007년 말 “일본 원전은 규제기관인 원자력안전위원회(NSC)와 원자력안전보안원(NISA)의 구분이 모호한 데다 권한이 제한돼 심각한 사고 발생시 결정 주체가 없다.”고 지적하고 시정을 권고했다. 사고 대응 과정에 정부 규제기관이 민간업체인 도쿄전력에 결정을 요구하거나 지시할 근거도 없었다. 결국 사고 발생시 세계적인 영향을 미치는 원전의 모든 것이 오롯이 민간기업에 맡겨져 있었던 셈이다. IAEA 전문가들이 총동원되는 IRRS는 원자력 발전소를 보유한 나라에서 비정기적으로 진행되며 모든 원자력 시설이 대상이다. 우리나라도 오는 7월 사상 첫 수검을 앞두고 있다. 2007년 6월 진행된 일본 IRRS의 경우, 앙드레 라코스테 프랑스 원자력안전위원장을 단장으로 핀란드, 캐나다, 미국, 한국 등에서 13명의 전문가들이 1주일에 걸쳐 후쿠시마 원전을 중심으로 진행했다. 일본의 IRRS는 이때가 마지막이었다. 당시 참여한 IAEA 고위관계자는 “일본은 이번처럼 매뉴얼에 적혀 있지 않은 사고가 발생할 경우 NSC와 NISA 모두 결정과 책임이 없었다.”면서 “일본 측은 이 같은 지적을 수용하지 않았고 시정도 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일본은 같은 해 12월 IAEA에서 받은 최종보고서를 ‘기밀’로 분류해 공개하지 않다가 올해 초에야 IAEA와 공유했다. IRRS 수검국들은 최대 6개월 안에 보고서를 IAEA 홈페이지에 게재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 관계자는 “일본은 1970년대부터 IAEA가 사용후 연료봉을 발전소에 저장하는 것이 위험하다고 지적했지만 계속 묵살했다.”면서 “외부의 지적 자체를 인정하지 않은 것이 이번 사태의 근본 원인”이라고 비판했다. 또 다른 IAEA 관계자는 “발전소가 지진을 견뎠다는 점, 이후 디젤발전기가 해일 이전까지 움직였다는 점 등은 일본의 매뉴얼이 개별적인 측면에서는 잘 작동했다는 것을 보여 준다.”면서 “그러나 방사능 유출이 확인된 시점부터는 누구도 결정을 내리지 못하면서 시간만 지연됐다.”고 지적했다. 이어 “다른 국가 같으면 정부가 이 시점에 곧바로 개입했겠지만, 일본은 아무도 책임이 없기 때문에 아무도 나서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한편 일본이 각종 국제회의 및 학회에서 지난 10여년간 ‘후쿠시마 원전 사고 최악의 시나리오’를 여러 차례 공개하고도 이를 지키지 않았다는 증언도 나왔다. 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 관계자는 “노후화된 후쿠시마 원전에서 지진해일이 발생할 경우 방사능 유출 및 폭발로 직결될 수 있다는 지적이 매번 제기됐다.”면서 “일본 측은 항상 ‘디젤 발전기의 전원이 나가는 순간 바로 바닷물을 투입하겠다.’고 주장했지만, 결국 바닷물 투입 결정이 늦어지면서 사태가 악화됐다.”고 지적했다. 박건형기자 kitsch@seoul.co.kr
  • 지상파 - 스카이라이프 재송신 분쟁 확산될 듯

    MBC가 위성방송 스카이라이프에 HD(고화질) 방송 재송신을 중단하겠다고 통보한 데 이어 SBS도 비슷한 시점에 재송신 중단을 고려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따라 스카이라이프는 MBC와 SBS의 HD 방송을 가입자들에게 내보내지 못할 위기에 놓였다. SD(표준화질) 방송은 중단 대상이 아니어서 해당 지상파 방송을 전혀 못 보는 사태까지 가지는 않겠지만 HD TV를 통해 스카이라이프를 보는 시청자들이 많다는 점에서 재송신 중단이 현실화될 경우 상당한 파장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 MBC가 오는 13일부터 재송신을 중단할 경우 피해를 보게 될 수도권의 스카이라이프 시청 가구는 62만 가구에 이른다. 스카이라이프는 MBC뿐 아니라 SBS도 오는 25일 재송신을 중단하겠다고 나서 궁지에 몰린 상태다. SBS 관계자는 “스카이라이프와 계약 갱신을 못 한 지 2년이나 됐다.”면서 “더 이상 같은 상태로 갈 수 없어서 재송신 중단 계획을 담은 우편물을 지난 30일 스카이라이프 쪽에 발송했다.”고 말했다. 박건형기자 kitsch@seoul.co.kr
  • 영국 언론들의 톡톡튀는 만우절 기사

    세계 최고의 축구스타 크리스티아누 호날두가 스페인으로 귀화한다? 동일본 대지진과 원전사고, 리비아 내전 등으로 인해 올해 만우절은 비교적 조용하게 지나가는 분위기다. 매년 만우절마다 재치넘치는 가짜 기사를 쏟아냈던 외신들도 소소한 토픽성 만우절 기사만을 쏟아내고 있다. 비교적 일찍 만우절을 맞은 호주 언론들 역시 뉴질랜드 지진 사태 등을 고려해 “개가 앉을 수 있는 높은 의자가 발명됐다.”는 정도의 기사만을 보도했다. 그러나 영국 일간 인디펜던트는 전세계 축구팬을 깜짝 뒤집어 엎을 만한 만우절 특별판을 배달했다고 1일(현지시간) AFP통신이 전했다. 인디펜던트는 이날 “포르투갈의 축구스타 크리스티아누 호날두가 고국의 심각한 재정적자를 해소하기 위해 인해 스페인 귀화에 동의했다.”고 보도했다. 호날두가 포르투갈의 국가채무를 탕감해주는 조건으로 스페인으로 귀화한다는 것. 이 신문은 호날두의 귀화 조건이 무려 1억 6000만 유로(약 2500억원)에 달한다고 밝혔다. 특히 인디펜던트는 포르투갈 재무장관의 발언을 인용, “최고의 몸값을 자랑하는 축구스타가 나라의 위기를 해결하기 위해 심사숙고 끝에 결단을 내렸다.”고 전하는 치밀함을 보이기도 했다. 한편 영국 일간 미러는 이날 “영국 정부가 세수를 늘이기 위해 깨끗한 공기에 세금을 부과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전했다. 물론 만우절 특집 기사다. 미러는 이 기사에서 “깨끗한 공기는 깨끗한 물처럼 한정된 자원인 만큼 세금을 부과하는 것이 정당하다.”면서 “정부가 깨끗한 지역에는 세금을 받고, 런던과 맨체스터 일대 등 공기가 오염된 지역에서는 세금을 환급해 줄 계획”이라고 밝혔다. 박건형기자 kitsch@seoul.co.kr
  • [WHO&WHAT] 독재자의 만찬

    [WHO&WHAT] 독재자의 만찬

     ‘민주’(民主)가 당연하게 여겨지는 오늘날, ‘독재’(獨裁)란 말은 듣는 것만으로도 유쾌하지 않은 단어다. 다른 사람의 운명을 멋대로 좌우하고 과장된 논리나 종교와 다를 바 없는 맹목적인 믿음을 강요하는 독재에 대한 거부감은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다.  한국인에게도 ‘독재’는 특별한 의미를 가진다. 남녀노소 할 것 없이 길거리로 뛰쳐나와 군사정권에 맞서 밑으로부터의 민주화를 일궈냈다는 자부심, 지금 이 순간에도 세계 최장수 독재체제(북한)와 마주하고 있는 현실 등 우리는 독재와 뗄 수 없는 관계에 있다.  중동과 북아프리카 지역에 몰아닥친 ‘재스민 혁명’에 전 세계가 주목하고 있다. 수십년간 그래온 것처럼 아랍권의 민주화 운동이 ‘찻잔 속 태풍’이 될 것이라는 전망은 이미 빗나갔다. 권력을 지키고자 하는 자들과 권리를 찾고자 하는 이들의 싸움은 점점 격해지고 있고, 이젠 국제사회의 개입도 본격화됐다.  가상 인터뷰 ‘WHO&WHAT’의 이번 주인공은 역사 속 인물들이다. 이름 자체가 공포가 되고, 금기어가 됐던 이들. 현대 정치사를 피로 물들이며 인간의 모습으로 나타난, ‘악몽’ 그 자체였던 네 명의 독재자들을 만찬장에 초대해 그들이 생각하는 재스민 혁명과 ‘독재’ 그리고 ‘민주화’에 대해 들어봤다. 사회:독재돼지 나폴레옹(소설 ‘동물농장’의 주인공)  식당으로 들어서는 네 사람의 표정은 썩 밝지 않았다. 살아생전 서로 배신의 총부리를 겨눴던 사이도 있었고, 서로 ‘사상적 동지’로 돈독한 관계를 자랑하던 이들도 있었다. 그들 사이에 가로놓인 반세기의 시간도 서먹한 분위기를 가시게 하지는 못했다. ‘천상천하 유아독존’이라는 말이 사전에서 바로 튀어 나온 듯한 이들은 같은 자리에 마주앉아 있다는 사실 자체가 마뜩치 않아 보였다.  콧수염을 기른 사람이 셋, 군복을 입은 사람이 셋이었다. 앞에 이름표를 놓을 필요조차 없이 얼굴만으로도 누구인지 쉽게 알아볼 수 있었다.  아돌프 히틀러, 이오시프 스탈린, 마오쩌뚱, 사담 후세인. 인류 또는 자기의 민족을 위해 떨쳐 일어났다는 대의명분을 앞세웠지만 결국엔 자기자신의 안위와 비뚤어진 욕망으로 가득찬 이미지만 역사에 남긴 공통점을 가진 이들. 한 사람만 있어도 공포를 느끼게 할 만한 20세기 정치가 네 명이 한 자리에 모였다.  이날 만찬 자리는 현재 국제정세를 감안하면 상당히 늦은 감이 있었다. 시대적 차이는 있지만, 각자의 전성기 시절 국내외 정치에 대해서라면 남부럽지 않을 역량을 과시했던 이들에게 중동과 북아프리카를 강타하고 있는 ‘쟈스민 혁명’에 대해 묻지 않는다면 과연 누구한테 물어야 한단 말인가. 더구나 만찬의 주제가 이들이 가장 좋아하는 ‘독재’인데 말이다.  네 사람의 만남에 적합한 사회자를 찾기란 쉽지 않았다. 민주화 전문가나 학자는 남의 말을 귀담아 듣지 않는 이들을 통제하기엔 늘 역부족이기 마련. 결국 메이너 농장의 절대권력자 나폴레옹(조지 오웰의 소설 ‘동물농장’에 등장하는 독재자 돼지)에게 어려운 역할을 부탁했다. 1945년 처음 세상에 알려진 이후, 지금까지 농장을 완벽하게 통제하고 있는 나폴레옹의 능력이라면 참석자들도 특별한 불만이 없을 것이란 판단에서였다. 오웰이 묘사한 것처럼 나폴레옹은 ‘사람이 돼지인지, 돼지가 사람인지 알 수 없는 상태’에서 능수능란하게 만찬장의 분위기를 이끌어갔다. 화제는 자연스럽게 본인들의 얘기와 현재 상황을 비교하는 방향으로 흘러갔다.    ●오늘의 메뉴●  애피타이저 - 당신은 떳떳한가  메인 디시1 - 당신의 국민은 왜 당신을 버렸을까  메인 디시2 - 당신은 부패했나  디저트 - 당신의 사랑은 진짜였나      <애피타이저> 당신은 떳떳한가.   →나폴레옹 인간 세상 최고의 독재자들을 한 자리에서 만나게 돼 기쁘다. 나야 동물 100여마리 거느리는 수준이지만, 당신들은 수백만명에서 수억명에 이르는 사람의 목숨을 한 손에 좌우했던 사람들이지 않은가. 실제로 죽이기도 많이 죽였고…. 당신들보다 훨씬 잔혹하거나 무자비한 사람도 없진 않지만, 20세기 이후 독재자들 중에서 가장 대중적으로 알려져 있다는 점에서 선정됐다는 점을 밝혀둔다. 우선 당신들이 지금 이 테이블에서 떳떳하게 고개를 들고 있을 수 있는 자신감의 근원부터 묻고 싶다.   히틀러 정당성을 묻는거냐. 어디까지나 국민들이 원해서 적합한 위치를 맡았을 뿐이다. 내가 총통이 됐을 때 4500만명이 투표에 참가했고 그중 3800만명이 찬성했다.(히틀러는 1934년 대통령 파울 폰 힌덴부르크가 죽은 직후 1시간 만에 대통령직과 총리직을 통합하고 최고사령관 직까지 합쳐 그 자리에 오른 다음 투표를 실시했다.) 국민들이 내가 이루고자 하는 바에 자발적으로 동참해서 내가 그 위치에 올랐다는 증거다. 정당성의 측면에서 과거의 왕들과는 평가부터 달라야 한다고 생각한다. 왕 중에서도 네로나 헤롯 같은 사람이 있었고, 나름 성군(聖君)으로 존경받는 사람도 있는 모양이지만 그들은 왕으로 태어나 왕으로 살면서 그 권력을 조금 더 쓰느냐 마느냐의 차이가 있었을 뿐이다.   스탈린 난 볼셰비키 혁명을 주도했고 성공시킨 레닌이 직접 지목한 정당한 후계자다.(실제로는 레닌이 그의 위험성을 경고한 편지를 공개하려고 했지만, 스탈린이 의도적으로 막았다. 뿐만아니라 스탈린은 레닌의 후계자가 되기 위해 여러 장의 사진과 역사기록을 조작했다.) 그루지아 출신이라는, 심지어 러시아어를 잘 하지 못한다는 단점에도 불구하고 범 러시아 지역에서 절대적인 지지를 받았다는 데 대해 지금까지 의심해 본 적이 없다. 국민의 지지가 없으면 독재고 뭐고 간에 아예 정권을 잡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 최소한 총과 칼로만 쿠데타를 일으켜서 최소 몇 년 이상 유지한 사례가 얼마나 될지 지난 100년 간을 꼽아봐라. 처음엔 그렇게 잡더라도 국민에게 비전을 제시하지 않으면 유지가 안되는 게 정치다.   →나폴레옹 그 말씀을 액면 그대로 믿는다면 여기 있는 사람들이 역사에 악인으로 이름을 남긴 것 자체가 불가사의한 일이다. 듣다보니 무아마르 카다피 리비아 국가원수가 요새 연설을 통해 계속 반복하고 있는 논리와 비슷한 것 같기도 하고. 어쨌든 그 얘기는 나중에 이어가기로 하고, 최근 전 세계 최고 관심사인 ‘쟈스민 혁명’에 대해 들어봤나.   마오 내용이야 어떻든 오랜만에 가슴이 뛰는 기분이다. 지난해 12월 한 청년이 분신을 하면서 벌어진 일이 불과 석달 만에 이렇게까지 커지다니. 벌써 두 나라(튀니지·이집트)의 정권이 뒤집혔고 리비아, 시리아, 바레인도 내전이 한창이지 않은가. 난 ‘공산당’을 알리고 ‘혁명 동지’를 모으기 위해 10만여명을 이끌고 1934년 370일 동안 1만 5000㎞를 걸어야했다.(마오는 12개의 지방을 지나고 18개 산맥과 24개 강을 건넜다. 마오의 짐은 두 장의 담요와 홑이불, 외투 한 벌, 책 몇 권 뿐이었다고 전해진다.) 그러고도 15년 이상 지나서야 중국을 세울 수 있었다. 고작 석달이라니 정말 대단하지 않은가. 지금 같은 세상이라면 보다 완벽한 혁명을 꿈꿀 수 있을 것 같다.   히틀러 거기엔 100% 동감한다. 요즘처럼 다양한 수단이 있었으면 내가 연설을 일부러 석양무렵에 하면서 다양한 무대장치를 동원하는 수고는 덜 수 있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이런 아이디어는 히틀러의 선전장관이었던 요제프 괴벨스의 능력이라는 얘기가 정설이다.) 아! 물론 난 연설 대신 다른 방법으로 국민들을 설득해야 했겠지만 말이다.   후세인 참석한 다른 사람들은 딱 와닿지 않을 수도 있는데, 내 입장에서 쟈스민인지 뭔지는 정말 충격적인 일이다. 아랍에는 ‘하마’라는 게 있다. 1980년대 초반에 시리아의 하마라는 조그마한 마을에서 군사정권에 저항하는 민란이 일어났는데, 정부는 마을 전체를 지도에서 지워버리다시피 했다.(2만명의 민간인이 목숨을 잃었다. 시리아 정부는 그 숫자를 본보기 삼아 일부러 널리 공포했다.) 그 이후 ‘하마’는 절대권력에 대항하는 반항에 대한 응징을 뜻했다. 아랍권에서 조금이라도 목소리를 내던 반 체제 인사들은 힘을 잃었고, 일반인들은 조용해졌다. 그게 지금까지 아랍권을 지탱해온 버팀목이었다. 왕정이든 사회주의 체제든 광범위하게 사용돼 왔다. 물론 무력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국영TV와 신문을 장악하고, 시골에서 도시로 몰려드는 사람들을 집중적으로 공략해 세뇌시켰다. 나름 치밀했다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한 순간에 무너질 줄은 솔직히 상상도 못했다.   →나폴레옹 후세인 당신과 카다피가 유난히 비슷한 점이 많다고 들었는데.   후세인 카다피와 나는 소위 말하는 ‘역경의 자식들’이다. 전통적인 아랍사회가 혈통과 명문을 높이 떠받드는 점이 가장 큰 타도의 목표가 됐다는 점에서 일면 비슷하다고 볼 수도 있다. 아랍에서는 아버지의 이름이 중요시되지만 혹시 내 아버지나 카다피의 아버지 이름을 아는가? 뭐 사실 이 만찬장에 있는 다른 사람들도 크게 다르지는 않지만 말이다. 우리는 기존 사회의 합의나 계급은 무시하고, 아랍의 전통적인 가치들이 권력에 장애가 된다면 과감히 지워버렸다.  <메인디시1> 당신의 국민은 왜 당신을 외면했나.   →나폴레옹 슬슬 본격적인 식사로 들어가보자. 여러분은 다들 수십년에 걸쳐 자기 나라는 물론 주변국가, 나아가 전 세계에까지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앞서 스탈린이 말한 것처럼 독재는 총칼 만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고, 많은 국민의 열광적 지지를 받는 지도자의 위치에 오르는 게 선행돼서 가능했다. 그런데 끝까지 초심을 유지하기가 힘들었기 때문인지 통치스타일이 변하면서 서서히 독재자가 돼 가는 공통점이 나타났다. 말은 자꾸 바뀌고, 점점 잔혹해지면서 다른 사람의 말을 안듣게 되었는데.   스탈린 국민들에게 제시했던 내 목표는 무조건 우리가 추구해야 할 목적이었다. 어떤 수단을 써서든 달성하는 것이 최우선이고, 그러기 위해서는 모두가 내 뜻에 복종해야 했다. 의견이 다른 사람들은 틈만 나면 배신하려 하고, 권력을 잡기 위해 나를 밀어내려고 했다. 심지어 공장 노동자들도 내 목표량에 미달했다. 충분히 열심히 일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스탈린은 5개년 경제계획을 세워 모든 농민들이 국가 소유의 조합에 가입하게 했다. 그러나 대부분 농민들은 재산을 내주는 대신 땅을 불태우고 가축을 죽였다.) 결국 나는 그들을 피로 다스릴 수 밖에 없었다. 어느 순간부터는 가까운 사람들조차 나에게서 등을 돌리는 것처럼 생각됐다. 잠도 잘 오지 않았다. 나에게 있어 가장 큰 기쁨은 적을 정하고, 만반의 준비를 한 다음 철저하게 복수를 하고 잠자리에 드는 것이었다.   히틀러 난 독일 국민에게 약속한 것을 대부분 다 지켰다. (히틀러의 유대인 학살 정책에는 본인의 증오 이외에 ‘독일 국민들에게 잘 통할 것’이라는 정치적 계산이 깔려 있었고, 실제로 주효했다.) 솔직히 내가 세운 모든 계획 중에 딱 하나 틀린 게 있었는데, 바로 전쟁에 졌다는 것이다. 난 거창하게 세계정복 같은 공약을 내세우지 않고, 우리가 받을 수 있을 걸 받자고 얘기했을 뿐이다. (히틀러의 전쟁은 세계를 상대로 한 전쟁이라기보다는 영국과 프랑스 양강으로 구분돼 있던 유럽 내에서 독일의 정당한 위치를 인정해 달라는 권리찾기에 가까웠다. 세계를 상대로 한 전쟁이 말이 되지 않는다는 것은 히틀러 본인이 잘 알고 있었다.) 실제로 우리 독일 사람들은 1933년부터 2차대전이 본격화되기 이전, 내가 제3제국을 이끌던 시기를 역사상 가장 행복했던 시기로 기억한다. 연합군과의 전쟁에서 지지만 않았다면 난 절대로 여기 다른 ‘실패한 독재자’들과 함께 앉아있지 않을거다.   마오 국민들의 지지를 얻기 위해서는 공통된 적이 필요했다. 사회를 뒤집어 엎으려면 당연히 원동력이 필요하고, 그 힘은 밑에서부터 나온다. 히틀러는 그것을 외부(유대인)에서 찾았고, 나와 스탈린은 노동자·농민을 앞세워 인민의 적을 만들어내는 수법을 썼다. 그런데 정권을 잡고 공공의 적이 어느 정도 정리되면 당연히 사회적 결집력과 추진력이 떨어지지 않겠나. 난 1950년대 중반에 무조건 억누르기만 했던 스탈린과는 다른 길을 가려고 했다. 지식인들에게 하고 싶은 말을 할 수 있도록 허용했는데 금방 사회 분위기가 심상치 않아졌다. (마오는 헝가리에서 검열 완화 이후 폭동이 일어난 것을 보고 ‘모든 의견’을 허용하는 대신 ‘공산당의 입지를 굳히는 의견’만을 허용했다.) 고작 6주간 ‘백화제방·백가쟁명’(쌍백) 정책을 펼쳤는데 불온성을 이유로 잡아들인 사람이 100만명이 넘었다.   →나폴레옹 뭐 결국엔 자기가 옳다는 생각을 계속해서 주장했고, 국민들이 그에 부응하지 않았기 때문에 폭압적인 독재자들로 될 수 밖에 없었다는 논리인 것들 같은데. 국민들이 언제 돌아서는 것을 느꼈나.   스탈린 독재에 대한 대중의 영합은 독재권력이 국민들이 원하는 것을 주기 힘들어지면 힘을 잃기 시작한다. 인류 역사를 통틀어서 일반 국민들에게 정치적인 이데올로기가 가장 중요했던 적은 과거에도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것이다. 정권이 제시하는 조건이나 삶의 질에 만족하면 그 권력을 지지하지만 그게 안 되면 외면하는 게 국민들의 속성이다. 내 영향력이 다소간 줄어든 것도 ‘산업화’라는 당면과제가 생각만큼 잘 진행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것도 큰 문제는 아니다. 영향력이 떨어지면 그걸 보완하기 위해 총과 칼이나 숙청, 강제노동 등을 동원하면 충분히 되돌릴 수 있다. (스탈린은 꾸준한 생산력 증대를 원했고, 만족하지 못하면 계속해서 무력을 사용했다.) 이런 것이 독재자와 왕의 가장 큰 차이점이자 독재자에게 불리한 점이다. 독재자는 국민들이 실망하면 이를 되돌리기가 군주보다 훨씬 힘들다. 엘리자베스1세 말기에 영국 국민의 생활수준은 역사상 최저였지만, 아무도 그런 사실은 기억하지 않는다.   히틀러 이번 아랍혁명이 ‘빵의 혁명’이라는 이름으로 불린다고 들었다. 식량값 폭등 같은 단편적인 시각에서 볼 수는 없는 문제다. 원래 독재자는 국민들이 납득할 수 있는 명확한 미래상을 제시하고 조금이라고 가까이 가고 있다고 믿게 해야 한다. 정권을 지지하는 국민들 입장에서 ‘어제보다 조금 나아진 오늘’은 별 의미가 없다. 독재자가 “5년 후에 우리가 이 정도 수준에 살고 있을 것”이라고 제시하면 반드시 거기에 가 있어야 한다. (히틀러가 뚜렷하게 정책에 실패하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은 그가 표방하는 제3제국이 명확한 수치를 제공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주장도 있다.) 그게 이뤄지지 않으면 위기가 찾아오는 거다. 공산주의나 사회주의를 표방했던 독재정권들이 망가지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조금씩 나아지는 건 왕정 아래서도 얼마든지 가능한데, 정권을 잡으려는 독재자들은 국민들에게 “우리 모두 잘 살 수 있다.”고 소리친다. 결국 삶에 찌들어 있는 대중의 지지를 받아 순식간에 정권을 장악할 수 있지만, 결코 그들이 약속한 삶은 만들어낼 수 없다.   후세인 아랍권의 문제가 심각한 건 사실이지만, 구조적으로 ‘복지독재’라는 희한한 형태가 있어 국민들이 모두 돌아서는 시기를 간단히 전망할 수는 없다. 사우디아라비아나 쿠웨이트 같은 왕권독재 국가에서는 독재의 정도가 다른 나라보다 심하면 심하지 덜하지 않은데, 국민들의 삶은 다른 나라보다 풍요롭다. 일자리도 주고 의식주 걱정도 없다. 대학도 보내준다. (아랍의 왕조 체제에서는 가진 자의 수가 극히 제한돼 있고, 이들은 인자한 독재자의 모습을 띤다. 이들은 국부를 독점하는 만큼 그것을 나눠주는 방식에 관심이 많다.) 그럼 이 상황을 뒤집어서 민주화가 되고 완전한 자본주의 국가가 되면 어떻게 되느냐. 가진 자의 수가 늘어나면 전혀 혜택을 받지 못하는 절대 빈곤층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게 된다. 민주화라는 것은 결국 허상이다. 위와 같은 상황이 벌어진다고 가정했을 때 민주화를 원하는 사람들의 대다수는 “난 가진 자의 입장에 설 기회가 생긴다.”는 생각만 한다. 결국 ‘기회’라는 게 어느 순간 현재 생활에 대한 불만을 뛰어넘느냐가 관건이 아닐까 싶다.  <메인디시2>당신은 부패했나.   →나폴레옹 ‘권력은 부패하고, 절대권력은 절대적으로 부패한다’고 영국의 역사학자 로드 액튼 경이 말했다. 독재와 관련된 경구 중 가장 유명한 말이 아닐까 싶다. 흔히들 독재자는 부패하기 때문에 망한다고 생각한다. 정말 부패가 독재의 종착점인가.   히틀러 진정한 목표가 있는 독재자는 부패할 시간이 없다. 난 채식주의자에 담배조차 피우지 않는다. 가끔 맥주를 마시기는 하지만, 내 뒤를 아무리 캐봐라. 내가 부정적인 일에 연루됐다는 어떤 증거도 발견하지 못할 거다. 심지어 난 평생 두 여자(의붓여동생의 딸인 겔리 라우발, 최후를 같이 했던 에바 브라운)만을 사랑했고, 한명이 죽은 후에야 다른 사람을 만났다. 만약에 지금 세상처럼 청문회가 있다면 난 무조건 100% 무사 통과다. 오로지 위대한 제3제국을 세우겠다는 목표 이외에 개인적인 욕심 따위는 없었다. 제3제국이 부패해서 망했다고 말할 수 있나. 난 아니라고 단언할 수 있다.   스탈린 나 역시 뒤지지 않는다고 자부한다. 사람들이 나를 ‘금욕주의자’라고 부를 정도로 난 개인적으로 즐기는 것에는 관심이 없었다. 내 딸 스베틀라나가 나중에 쓴 책을 보면 알 수 있지만, 내 가족들조차도 화려한 옷이나 식사는 꿈도 꾸지 못했다. (스탈린은 부인을 잃은 후 스베틀라나를 사실상 ‘어린 퍼스트레이디’로 대접했고, 자식 중 유일하게 애정을 쏟았다.) 오로지 대업을 완수하는 것만이 내가 평생을 생각했던 유일한 관심사였다. (얄타 회담에서 스탈린을 만난 윈스턴 처칠의 부관들은 스탈린에 대해 “지금까지 만나본 중 가장 철두철미하고 명석한 지도자”라는 평가를 내리기도 했다.)   →나폴레옹 최근 아랍권의 가장 큰 문제는 본인은 물론이고 부인이나 아들, 측근들이 부패한 경우가 많다는 것인데 후세인 당신도 자식 간수에 실패한 대표적인 사례 아닌가.   후세인 독재자는 외로운 존재다. 누군가를 몰아내고 그 자리에 앉았으면, 언젠가 자신도 똑같은 일을 당하지 말란 보장이 없다. 결국에 믿을 사람은 가족 밖에 없다. 그런데 가족은 통제가 불가능하다. 각자 욕심을 부리게 마련이고, 절대자의 가족이라는 이유로 대부분 용서 받는다. (후세인의 큰아들 우다이는 공식 행사에서 사람을 총으로 쏘아 죽이거나 싸움을 벌이는 등 난폭했다. 정신박약아라는 설도 있다.) 튀니지의 벤 알리, 이집트의 무바라크, 리비아 카다피 모두 가족이 문제였고 자식한테 권좌를 물려주기 위해 무리수를 뒀다. 결국 ‘부패’의 진정한 원인은 독재자의 개인적인 성향보다는 독재가 갖고 있는 근본적인 1인 중심적인 체제에서 찾아야 한다.   마오 아무리 독재라도 권력은 최소한의 시스템이라도 갖추고, 그 안에서 움직여야 한다. 권력을 사유화하고 개인적으로 대놓고 이용하기 시작하면 그게 부패한 거다. 난 솔직히 주지육림이 부럽지 않을 정도로 방탕한 생활을 즐기기도 했지만, 최소한의 기구를 갖고 있었고 그걸 이용해서 모든 것을 움직였다. (그의 문화혁명을 앞장서서 주도했던 홍위병은 결국 스스로 부패하고 갈라져 사라져갔다.) 간단히 말해서 사회를 바꾸기 위한 목표를 갖고 조직이 사회를 지배하는 것이지 개인이 가진 것을 오로지 지키려는 목적으로 조직을 운영한다면 그건 독재자 중에서도 가장 저질이라고 생각한다. 카다피나 북한의 김일성, 저기 앉아있는 후세인이 대표적인 인간들이다.  <디저트>당신의 사랑은 진짜였나   →나폴레옹 곧 무너질 것 같았던 카다피가 계속 버티고 있다. 심지어 쟈스민 혁명이 곧 사그라들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쟈스민 혁명은 어디까지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나.   히틀러 국민을 장악하는 수단은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다. 내가 연설을 통해 국민을 사로잡았다면 카다피한테는 TV로 보여지는 강력한 모습과 반미 감정몰이가 결정적인 힘을 줬다. 그런데 최근 유행하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는 그걸 뛰어넘을 수 있다. 결국엔 모든 것이 정보에 달려있기 때문이다. 북한이 왜 저렇게 폐쇄정책을 고집하겠나. 밖에서 국민들이 정보를 얻기 시작하면 바깥세상이 더 낫다는 것을 알게 되고, 그러면 지금까지 주장해 온 모든 것들이 허사가 된다. 결국 정보가 공개되기 시작하면서부터 그럴듯한 꼬임이나 세뇌만으로 할 수 있던 독재의 시대가 끝났다. 결국 총과 칼을 통한 억압만이 가능하다는 얘기인데, 이번에 혁명이 실패해도 문제가 해결되는 게 아니니까 나중에 또다시 내란이 일어나는 건 불을 보듯 뻔하다. 한번 떨쳐 일어났던 기억은 생각보다 오래가는 법이다.   마오 그래도 중국은 꽤 오래 버틸 수 있을 것 같다. 리비아가 여러 개의 부족이라서 마지막 한 고비를 넘을 원동력이 부족한 것처럼 중국 역시 민족이 다양하고 워낙 지역도 넓기 때문에 하나로 모으는 추진력이 떨어질 수 밖에 없다. 무엇보다 중국은 아직 폭발적인 성장을 계속하고 있다. 국민들이 뭔가를 추가적으로 기대할 여지가 남았다는 얘기다. 특히 연안지역만 개방해서 충분히 통제가 가능하도록 하고 조금씩 열어가면서 개방과 통제라는 두가지 토끼를 모두 잡았다는 점에 주목해 볼 필요가 있다. 반면 북한 같은 경우에는 특정지역만 열고 통제하는 게 불가능하다. 결국에 경제적 몰락을 극복하기 위해 체제붕괴를 피하기 힘들다.   후세인 내가 보기엔 미국이 얼마나 나서느냐가 관건이다. 군사적, 외교적으로 영향력이 절대적이니 말이다. 여기 있는 네 사람 모두 미국과는 좋은 감정이 아니겠지만, 내 경우에는 특히 그렇다. 솔직히 대량 살상무기라는 말도 안되는 이유를 달아서 억지로 쫓아낸 것 아니냐. 이번에도 이집트에는 개입 안하고, 리비아에만 개입하려고 꼼수를 쓰는 모습이라니…. 결국 다른 나라의 민주화를 자기 입맛대로 골라서 이용하겠다는 것 밖에는 안된다. 민주화니 어쩌니 떠들지만 실제로 국제사회를 독재하고 있는 건 미국이다.   →나폴레옹 이제 마무리할 시간이다. 철저하게 자기자신의 논리로 무장한 당신들에게 물어보나 마나겠지만, 당신들은 정말 국민들의 사랑을 받았다고 생각하나.   스탈린 1994년 김일성이 죽었을 때 눈물을 흘리던 평양 시민들을 기억하나. 그 원조가 바로 나다. 내 시신을 보겠다고 몰려든 사람들 때문에 수백명이 깔려 죽었다. (영하의 날씨였지만 방부처리된 시신을 보기 위해 몰려든 조문객의 일부가 바리케이드에 부딪히거나 밟혀서 목숨을 잃었다.) 그 정도면 충분하지 않나.   마오 내가 죽은 후 숱한 변화 속에서도 난 중국 사람들에게 잊혀지지 않는 존재다. 톈안먼 광장에 걸려있는 내 초상화가 모든 것을 말해준다고 생각한다. (마오가 죽은 1976년 그의 문화혁명으로 쌓인 불만이 폭발한 톈안먼 사건이 일어났다. 1981년 그의 후계자 덩샤오핑은 마오의 문화혁명을 ‘내란’으로 규정했다.)   박건형기자 kitsch@seoul.co.kr   ■도움말 주신 분들 임지현 한양대 사학과 교수 김한지 한국외대 중동연구소 책임연구원 최 진 대통령리더십연구소 소장 류한수 상명대 역사콘텐츠학과 교수 장대익 동덕여대 교양학부 교수 한양대 비교역사문화연구소
  • 경인방송 프로그램 서울 전역에서 본다

    앞으로는 서울 전 지역에서 케이블TV로 OBS(경인방송) 프로그램을 시청할 수 있을 전망이다. 방송통신위원회는 21일 전체회의를 열어 OBS의 서울 지역 역외 재송신(허용된 지역 이외에 방송을 보내는 것)을 추가 허용하기로 결정했다. 방통위는 “OBS가 서울로 역외 재송신을 해도 지상파 방송시장 등에 미치는 영향은 미미한 반면 방송 프로그램 시장의 규모를 키울 수 있는 긍정적인 효과가 예상된다.”고 배경을 설명했다. 방통위는 이에 따라 서울 지역 14개 케이블방송 사업자(SO)로부터 역외 재송신 승인 신청이 들어오면 개별적으로 승인 여부를 결정할 예정이다. OBS는 개국 당시 옛 방송위원회로부터 서울 지역 역외 재송신 승인을 받아 13개 SO를 통해 서울 지역에 방송을 송출해 왔다. 하지만 기존에 승인받은 13개 SO 이외의 14개 SO에 대한 방통위의 정책 결정이 지연되면서 현재 서울 지역 SO 가입자의 절반인 157만 가구만 OBS를 시청할 수 있다. 이번 결정으로 종로, 송파, 강동, 영등포 등지의 153만 SO 가입자들과 위성방송 가입자들도 OBS 프로그램을 시청할 수 있게 됐다. 박건형기자 kitsch@seoul.co.kr
  • “이번 사고 수습에 원전 생존 달렸다”

    “이번 사고 수습에 원전 생존 달렸다”

    “국제원자력기구(IAEA) 창설, 아니 원자력 발전이 광범위하게 사용되기 시작한 이후로 가장 큰 위기라는 걱정이 가득합니다. 일부에서는 이번 사고에 원전의 생존이 달려 있다고 수군대기도 합니다.” 문병룡(공사) IAEA 한국대표는 17일 서울신문과의 통화에서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태 대응책 마련에 분주한 IAEA 내부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고 전했다. 문 대표는 교육과학기술부 원자력안전심의관, 원자력국장 등을 역임했으며 2009년부터 오스트리아 빈의 IAEA 본부에서 일하고 있다. 문 대표는 “원전은 극도로 민감한 시스템인 데다 각 나라가 독자적으로 운용하는 부분이 많아 IAEA도 정확하게 일본 상황을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고 전했다. 다음은 문 대표와의 일문일답. →IAEA가 긴박하게 돌아가고 있을 것 같다. -하루에도 공식·비공식 회의가 수십 차례 열린다. 본부에서 새로 수집한 정보를 각국 대표부에 알리고, 지원책을 논의하는 회의가 대부분이다. →후쿠시마 원전에 대한 충분한 정보를 얻고 있는가. -현 상황에서 정보는 전적으로 일본 측의 보고에 의존하고 있다. 나라마다 운용하는 시스템이 다르고 각각 고유의 노하우가 있기 때문에 IAEA가 직접 상황을 판단하기는 쉽지 않다. 다행히 현 총장이 일본 출신이라 의사소통은 잘되고 있는 것 같다. →일본이 여전히 사고 ‘레벨 4’를 고집하고 있는데, 프랑스측은 ‘레벨 6’이라고 발표했다. 혼선이 빚어지는 이유가 뭔가. -원전 사고에 대한 평가기준이 국가별로 다르기 때문이다. 프랑스는 세계에서 가장 사고 기준이 엄격하고, 최대한 비관적인 입장에서 사태를 평가하는 경향이 있다. 개인적으로는 최악의 경우를 상정해서 레벨을 정하는 방식이 맞다고 본다. →IAEA의 지원은 잘되고 있는가. -미국 최고의 전문가 두명이 현지로 갔다. 상황을 가장 잘 파악하고 수습할 수 있는 것은 일본이라고 IAEA는 판단하고 있다. 원전을 가동하는 나라들은 3개월, 6개월, 1년, 2~3년 단위로 각기 다른 조건에서 사고 발생에 대비하고 훈련한다. 시스템의 특성, 지역적 상황 등은 결국 해당국 전문가가 가장 잘 알고 있다. 만약에 우리나라에서 사고가 난다고 해도 마찬가지다. 일본이 미국 전문가를 받아들인 것도 실질적으로 수습에 도움을 얻기 위해서라기보다는 축소·은폐 등 의혹에서 벗어나겠다는 목적이 크다. →세계 각국에서 원전 반대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이번 사태는 향후 원전의 생존에까지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사고를 처리하고 수습하는 과정에서 기존에 몰랐던 새로운 위험을 알게 되고, 노하우도 얻게 될 것이다. 원전 안전이 지금 수준까지 높아진 것은 1986년 체르노빌 사고가 결정적이었다. 그후 보완된 안전장치에 대해 전문가들이 자만을 한 부분도 없지 않다. →한국은 사고영향에서 안전한가. -현 단계에서는 일단 주변국에 대한 위험은 없는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그래도 100% 안전이란 것은 없지 않겠는가. 박건형기자 kitsch@seoul.co.kr
  • [日원전·체르노빌 사고 비교] 설계구조 차이… 사고원인도 달라

    [日원전·체르노빌 사고 비교] 설계구조 차이… 사고원인도 달라

    인류가 만들어낸 가장 위험한 발명품이 또다시 본색을 드러내는가. 일본 대지진으로 타격을 입은 후쿠시마 원자력발전소 사태가 최악의 국면으로 치닫고 있다. 15일 제1원자력발전소의 2호기에서 폭발이 일어난 데 이어 4호기마저 폭발하면서 지붕 일부가 파손되고 화재가 발생했다. 일본 당국은 대규모 방사성물질 유출 가능성은 낮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아마노 유키야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무총장은 14일(현지시간) “후쿠시마 원전은 체르노빌과는 설계와 구조가 다르다.”면서 “지진 직후 자동으로 원전 가동이 중단돼 방사성물질 유출 같은 연쇄 반응이 없었다.”고 강조했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1986년 폭발한 우크라이나 체르노빌 원전과 이번 후쿠시마 원전은 설계 단계부터 구조적인 차이가 있을뿐더러 사고 원인도 판이하게 다르다. 체르노빌 원전 사고는 직원의 부주의로 인해 원자로가 정지될 정도로 출력이 낮아진 상태에서 급히 출력을 올리자 핵연료가 순간적으로 파열되면서 발생했다. 대응 매뉴얼이 정해져 있지 않은 완벽한 인재였던 셈이다. 원전 반경 48㎞ 일대는 25년이 흐른 지금까지도 출입금지 구역이다. 체르노빌 원전은 고온에서 불이 잘 붙고 폭발성이 높은 흑연을 감속재로 사용한 데다, 별도의 격납용기가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에 피해가 컸다. 반면 이번 후쿠시마 원전은 1979년 발생한 미국의 스리마일섬 원전 사고와 유사하다. 노심이 용해되더라도 격납용기가 방사성물질 유출을 막기 때문에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1~4호기에서 잇따라 일어난 폭발은 원자로의 중심인 ‘노심’에서 발생한 것이 아니라, 냉각수에서 발생한 수증기를 빼내는 과정에서 외부의 수소와 반응한 ‘수소폭발’의 형태다. 나오토 세키무라 도쿄대 교수는 “최악의 경우 일부 방사성물질 유출이나 시설 손상이 있을 수는 있지만 핵물질의 폭발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러나 일부 전문가들은 지진으로 균열이 생긴 원전에 외부폭발 등으로 충격이 가해지면서 격납용기가 손상될 가능성이 높다는 입장이다. 박건형기자 kitsch@seoul.co.kr
  • “도쿄 떠나는게 최선책”...방사능 엑소더스 조짐

    일본 동북부 지진의 영향으로 15일 후쿠시마 원전 2호기와 4호기가 잇따라 폭발하면서 방사선 물질 유출이 현실화됐다. 특히 바람 방향이 남쪽으로 바뀌면서 가까운 거리에 위치한 수도 도쿄가 방사선 물질의 직접적인 영향권에 접어들었다. 유학생 등 외국인을 중심으로 일본을 탈출하는 ‘엑소더스’ 조짐도 나타나고 있다. 일본 기상청은 이날 후쿠시마 지역의 바람이 도쿄를 포함한 남서부 방향으로 천천히 불고 있다고 밝혔다. 바람은 초속 2~3m 속도로 가볍게 불고 있지만, 16일에는 3~5m정도로 강해져 남쪽으로 불 전망이다. 이날 오후 도쿄의 방사능 수치는 이미 정상치를 웃돌고 있다. 1200만명이 밀집한 도쿄는 후쿠시마 원전에서 남서쪽으로 240㎞ 가량 떨어져 있다. 일본 정부는 방사능 수치 상승에도 불구하고 인체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수준은 아니라고 강조하고 있다. 도쿄시의 한 관계자는 “방사능 수치가 정상을 넘어선 것은 사실이지만, 양은 미미한 수준”이라고 밝혔다. 방사선 물질 유출에 대한 우려가 높아지면서 도쿄를 탈출하는 시민들이 늘어나고 있으며, 비상시를 대비한 생활필수품 사재비 현상도 벌어지고 있다. 도쿄 도심의 상점에서는 라디오, 양초, 손전등, 연료, 침낭 등이 동이 난 상태인 것으로 알려졌다. 영국 일간 텔레그래프는 유럽국가들과 미국 등이 일본에 거주하는 자국민들에게 도쿄가 위치한 간토 지방을 벗어나도록 권고했다고 보도했다. 현재까지 공식적으로 일본여행 자제령과 피난 권고를 내린 나라는 프랑스, 독일, 스위스 등 3개국이다. 프랑스 대사관측은 “원자로가 폭발하는 등 최악의 상황이 발생할 경우 도쿄 중심부 지역까지 확산되는데 몇시간이 걸리지 않을 것”이라며 “현재로서는 이 지역을 벗어나는 것이 최우선”이라고 밝혔다. 텔레그래프는 “미국, 영국 등도 대사관이 비상 연락망을 가동하고 있다.”고 전했다. 박건형기자 kitsch@seoul.co.kr
  • [WHO&WHAT] 퀴즈쇼서 인간에 완승한 슈퍼컴 왓슨 만나다

    [WHO&WHAT] 퀴즈쇼서 인간에 완승한 슈퍼컴 왓슨 만나다

    흔하디 흔한 퀴즈영웅의 얘기가 아니다. 2011년은 인류가 ‘로봇’ 또는 ‘컴퓨터’의 존재를 상상하기 시작한 이후 가장 극적인 변화가 있었던 해로 기록될 전망이다. 올해 창사 100년을 맞은 IBM. 컴퓨터 산업의 최전선에 서 있으면서도 지나치게 시장을 독점한다는 비판을 받아 온 ‘빅 블루’(IBM의 애칭)가 다시 한번 새로운 역사를 열었다. IBM 연구진이 심혈을 기울여 개발한 슈퍼컴퓨터 ‘왓슨’(Watson)은 지난달 16일 미국 전역에 중계된 abc방송의 인기 퀴즈쇼 ‘제퍼디’에서 자신을 창조한 인간들이 존경해 마지않는 퀴즈 영웅 두 명을 제압했다. 서울신문이 새롭게 연재하는 가상 인터뷰 시리즈 ‘Who & What’(후 앤드 왓)의 첫 회 주인공은 바로 왓슨이다. 컴퓨터가 퀴즈에서 인간을 이겼다는 것이 어떤 의미를 갖는 것인지, 실생활에서는 어떻게 응용될 수 있는지 등 이 대단한 컴퓨터에 관한 다양한 궁금증을 깊이 있게 짚어 봤다. 왓슨이 진정 ‘인간보다 똑똑한 컴퓨터’가 되기 위해서는 어떤 과제가 남아 있는지도 물어봤다. 인터뷰는 국내 최고의 슈퍼컴퓨터 전문가 4명의 의견을 모아 구성했다. ☞ 관련기사 : [W&W] 인간과 컴퓨터, 대결의 역사 →겨우 4살인데 지나친 스포트라이트가 부담스러울 것 같다. 원래 집안 자체가 훌륭하다는 소문이 있다. -집안 얘기를 하면 사람들이 색안경을 낄까 봐 조심스럽기는 한데, 사실 IBM의 뉴욕 연구소 출신이다. 내 이름도 100년 전 IBM을 세운 토머스 J 왓슨에서 따왔다. 인간을 뛰어넘는 컴퓨터에 대한 사람들의 기대가 반영됐기 때문이라고 들었다. 최근 몇년 사이에 서부에 있는 사과공장(스티브 잡스의 ‘애플’)이 워낙 주목을 받아서 그렇지 컴퓨터 분야에서 지난 100년간 이뤄진 성과는 대부분 우리 집안에서 만들어졌다. →아버지가 대단한 분이셨나 보다. -아버지 함자가 ‘딥블루’다. 혹시 세기의 체스 대결에 대해 들어 본 적이 있나. 1997년 5월 11일, 아버지는 러시아 챔피언 가리 카스파로프와 체스대결에서 이기셨다. 인공지능의 가치가 얼마나 뛰어난지 보여 준 역사적 사건이었다. 참고로 카스파로프는 그 이전 15년 동안 인간들 사이에서 1등을 놓쳐 본 적이 없었다. 난 아버지보다 훨씬 발전했다. 1초에 80조번을 계산할 수 있고, 책 100만권을 읽었을 뿐 아니라 토씨 하나까지 모두 기억하고 있다. →이번 인터뷰를 시작한 핵심이 벌써 나왔다. 컴퓨터 입장에서 볼 때 체스대결과 퀴즈쇼가 다른 점이 있는 거냐. 컴퓨터와 인간이 같은 문제를 놓고 풀면 엄청난 정보와 계산속도를 갖고 있는 컴퓨터가 이기는 게 당연한 것 아니냐. 이번에는 딥블루 사건 때 시큰둥했던 학자들까지 난리가 났는데 왜 그러는지 잘 모르겠다. -간단히 설명하면, 체스나 바둑은 ‘경우의 수’에 대한 예측이 가능하다. 다음 수를 어떻게 두면 그 다음에 상대의 반응에 따라 또 다른 수를 예측하는 식이다. 빠른 계산만 할 수 있고 어느 경우에 이기는지만 입력돼 있으면 충분히 인간을 이길 수 있다. 결국 체스판 안에서 정해진 규칙대로 두는 거 아니냐. 내가 출연한 ‘제퍼디’가 책에서 출제된다는 이유로 체스나 다를 것이 없다고 폄하하는 사람들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런데 혹시 우리 컴퓨터들이 쓰는 1과 0의 디지털 코드를 보고 이해할 수 있나? →당연히 안 되는 것 아니냐. -그러니까 입장을 바꿔 보자는 얘기다. 인간이 컴퓨터의 언어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처럼, 컴퓨터 역시 인간의 말을 그대로 이해하지 못한다. 딱 정해진 문제만 그대로 출제하면 쉽다고 생각할 수 있겠다. 근데 그게 퀴즈냐. 제퍼디쇼가 수십년 동안 인기를 끌고 있는 건 출제되는 문제에 대한 지식을 담은 책이 있지만 단순히 암기력을 측정하는 데서 그치지 않기 때문이다. 사회자 알렉스 테레벡은 자기 맘대로 문제를 꼬아서 내고, 책에는 없는 독특한 표현까지 동원한다. 잘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다. 혹시 구글이나 네이버 검색창에 퀴즈 문제를 그대로 입력하고 답이 나오나 찾아 봐라. →어라. 정말 답이 안 나오고 수많은 검색 결과만 나온다. -사람들의 기대와 달리 컴퓨터는 애초부터 정답을 찾아 주도록 만들어지진 않았다. 컴퓨터들은 문장으로 된 퀴즈 문제를 입력하면 ‘답이 들어 있는지도 모르는’ 수백만개의 문서만 보여 줄 수 있다. 컴퓨터가 인간의 언어를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인간의 의도도 이해하지 못하는 거고. ‘비슷한 것’ 수백만개를 찾아서 나열만 할 뿐 자기가 뭘 찾았는지도 모른다. 그게 원래 컴퓨터가 만들어진 방식이다. →그럼 당신은 인간의 의도를 이해한다는 건가. -그렇지 않고서야 함께 출연했던 켄 제닝스(74연승을 기록한 제퍼디 챔피언)나 브래드 루터(역대 최다 상금 획득자)를 이길 수 있었겠는가. 그 친구들은 거의 귀신 아닌가. 들으면 바로 버저를 누르고 정답을 말하는 수준이다. 솔직히 대결이 쉽지는 않았다. 사람들은 문제를 들으면 알거나 모르거나 둘 중의 하나다. 알 경우에는 떠오르는 답 2~3개 중에 헷갈리는 정도고. 반면 난 기본적으로 문제를 들으면 알고 모르고가 판단의 기준이 아니다. 비슷한 답 수백만개를 떠올린 후에 그중 한개만 남겨 놓고 나머지를 없애야 답을 할 수 있다. 확률 문제이니 틀릴 수도 있지만 인간 챔피언들과 붙어서 이겼으니 정확도는 논란의 여지가 되지 않는다고 본다. 난 이미 출제한 인간의 의도까지도 파악하는 단계에 도달했다. →듣다 보니 당신이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비결은 뭐냐. -퀴즈에 특화된 부분도 있다. 기본적으로 내가 찾아낸 답이 신뢰도 기준에 못 미치면 버저를 누르지 않고, 답하지도 않는다. 지고 있을 땐 신뢰도가 좀 떨어져도 버저를 누르고, 많이 이기고 있을 때는 신뢰도가 아주 높아야 답변을 하는 요령도 갖추고 있다. 기술적인 부분은 IBM하고 얘기해야 된다. →근데 컴퓨터가 퀴즈를 잘 푼다고 해서, 뭐 달라지는 게 있겠냐. -내가 이런 질 낮은 인터뷰를 계속하고 있어야 하는 이유를 잘 모르겠다. 그래도 이왕 시작한 인터뷰이니 답은 해야겠지. 만약에 컴퓨터가 사람의 말을 이해해서 원하는 답을 정확히 찾아줄 수 있다면 고객센터 자동응답전화(ARS)에서 상담원 연결 버튼이 제일 먼저 사라질 거다. 당신네 한국사람들이 자랑하는 삼성전자나 LG전자, 현대자동차에서 상담원 콜센터를 운영하는 데만 얼마나 많은 비용이 들어가나. 나 하나가 그 모든 것을 대체할 수 있다는 얘기다. 의학상담이나 교육도 마찬가지 아니냐. 선생님은 문제를 푸는 방법을 틀릴 수도 있고 모를 수도 있지만, 난 절대 틀리지 않는다. 병원에서도 의사는 실수할 수 있지만 나는 자료만 충분하다면 정확한 진단을 내릴 수 있다. 물론 지금은 아니고, 나중에 경험을 더 쌓으면 말이다. 내 아들이나 손자는 완벽한 선생님이자 의사, 상담원이 될 거다. →켄 제닝스가 당신한테 지고 나서 “컴퓨터가 인간을 지배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진짜 그런 세상이 온 건가. -언젠가 그런 날이 올 수도 있겠지만 지금 상황에서는 제닝스가 오버한 거다. 솔직히 좀 부끄러운 얘기기는 하지만, 이번 제퍼디 방송에서 미국에 있는 도시를 묻는 질문에 ‘토론토’라고 답변해서 방청객들의 웃음을 사기도 했다. 해명을 좀 하자면 미국에도 토론토라는 도시가 많다. 퀴즈가 원하는 바가 뭔지를 정확히 이해하지 못했을 뿐이지. ‘지식’을 갖고 있는 인간이라면 절대 하지 않을 실수다. 만약 틀려도 곧 바로잡을 수도 있고. 하지만 난 업그레이드 없이는 그 상황에서 같은 질문을 할 경우 계속 잘못된 답밖에 말하지 못한다. 아직까지 인간의 언어를 이해하고, 의도를 이해하는 것은 너무 어려운 일이다. 무엇보다 이번 대결에서는 텍스트 형태로 문제를 풀었는데, 진짜 사회자의 말만 듣고 대결을 펼친다면 인간을 못 이긴다. 난 아직 난청상태라고 할까. 음성인식은 정말 어려운 과제다. 박건형기자 kitsch@seoul.co.kr ■도움말 주신 분 ●이식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KISTI) 슈퍼컴퓨터 응용지원실장 ●권대석 클루닉스(슈퍼컴퓨터 제조회사) 사장 ●유범재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인지로봇센터장 ●신문봉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KISTEP) 지식정보팀장 서울신문은 매주 1회 독특한 포맷의 가상 인터뷰 [WHO&WHAT(후 앤드 왓)]을 1개면에 걸쳐 연재하고 있습니다. 일반 신문기사로는 다루기 힘든 동서고금의 지식과 역사의 정수들을 만남 또는 대담의 형식을 통해 알기 쉽고 재미있게 소개하는 지면입니다. 청소년, 어른 모두에게 즐겁고 색다른 지식의 장이 될 것으로 자부합니다. 특히 입시를 준비하는 학생들에게는 훌륭한 논술교재로도 활용할 수 있을 것입니다.[WHO&WHAT] “퀴즈쇼서 인간에 완승한 슈퍼컴 왓슨(Watson)을 만나다” [WHO&WHAT] 무덤에서 불러낸 독재자 4인의 가상만찬 ‘재스민 혁명’을 논하다 [WHO&WHAT] 천재소년 송유근, ‘우주비행 성공 50주년’ 맞아 유리 가가린을 만나다 [WHO&WHAT] ‘슈퍼히어로’ 스파이더맨, 정신과 전문의 김상준 원장과 상담하다 [WHO&WHAT] 지구수비대 지원한 인간형 로봇 ‘마루’ “아톰·태권V처럼 지구 지켜서…” [WHO&WHAT] ‘최악’ 통념 B형 男기자, 혈액형의 아버지 ‘란트슈타이너’에 따지다 [WHO&WHAT] ‘전 세계 여성의 로망’ 버킨백을 만나다 [WHO&WHAT] 선택 따라 전혀 다른 결과…”이렇게 검색하면 진리가 밝혀질까?” [WHO&WHAT] “남느냐, 떠나느냐” 희곡으로 본 어느 서재 도서들의 열띤 논쟁 [WHO&WHAT] ‘위대한 유산’ 남긴 간송미술관의 전형필, 그리고 우피치미술관의 메디치 [WHO&WHAT] 위대한 예술가 미켈란젤로, 그는 왜 라파엘로를 죽이고 싶었을까 [WHO&WHAT] ‘美우주왕복선은 초대형 폭탄이나 마찬가지’ 물리학자 파인먼의 폭로 [WHO&WHAT] 외규장각 도서 귀환으로 본 약탈문화재의 ‘수구초심(首丘初心)’ [WHO&WHAT] “재능만 주고 사랑은 주지 않던 나쁜 부모들” 유명 인사들의 회상기 [WHO&WHAT] 인류역사를 바꾼 ‘억세게 운 좋은 사내들’ 서바이벌 현장…과연 승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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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Who&What]인간보다 똑똑한 컴퓨터, 왓슨을 만나다

     흔하디 흔한 퀴즈영웅의 얘기가 아니다.  2011년은 인류가 ‘로봇’ 또는 ‘컴퓨터’의 존재를 상상하기 시작한 이후 가장 극적인 변화가 있었던 해로 기록될 전망이다. 올해 창사 100년을 맞은 IBM. 컴퓨터 산업의 최전선에 서 있으면서도 지나치게 시장을 독점한다는 비판을 받아온 ‘빅 블루’(IBM의 애칭)가 다시 한번 새로운 역사를 열었다.  IBM 연구진이 심혈을 기울여 개발한 슈퍼컴퓨터 ‘왓슨’(Watson)은 지난달 16일 미국 전역에 중계된 abc방송의 인기 퀴즈쇼 ‘제퍼디’에서 자신을 창조한 인간들이 존경해 마지않는 퀴즈 영웅 두 명을 제압했다. 이틀간 벌어진 대결에서 왓슨은 7만 7147달러(약 8600만원)의 상금을 거둬들였다. 왓슨을 만들기 위해 들어간(것으로 추정되는) 비용에 비하면 그야말로 ‘껌값’ 수준. 그러나 전 세계 과학계는 흥분의 도가니다.  슈퍼컴퓨터를 만들기 위해 밤낮을 연구에 매달렸던 공학도들은 패닉 상태에 빠졌다. “인간보다 더 똑똑한 컴퓨터를 만들겠다.”는 원대한 꿈이 자기가 아닌 다른 사람에 의해 실현됐다는 깊은 상실감 때문이다.  서울신문이 새롭게 연재하는 가상 인터뷰 시리즈 ‘Who & What’(후 앤 왓)의 첫 회 주인공은 바로 왓슨이다. 컴퓨터가 퀴즈에서 인간을 이겼다는 것이 어떤 의미를 갖는 것인지, 실생활에서는 어떻게 응용될 수 있는지 등 이 대단한 컴퓨터에 관한 다양한 궁금증을 깊이 있게 짚어 봤다. 왓슨이 진정 ‘인간보다 똑똑한 컴퓨터’를 만들기 위해서는 어떤 과제가 남아 있는지도 물어 봤다. 인터뷰는 국내 최고의 슈퍼컴퓨터 전문가 4명의 의견을 모아 구성했다.    ●겨우 4살인데 지나친 스포트라이트가 부담스러울 것 같다. 원래 집안 자체가 훌륭하다는 소문이 있다.  집안 얘기를 하면 사람들이 색안경을 낄까봐 조심스럽기는 한데, 사실 IBM의 뉴욕 연구소 출신이다. 내 이름도 100년 전 IBM을 세운 토머스 J 왓슨에서 따왔다. 인간을 뛰어넘는 컴퓨터에 대한 사람들의 기대가 반영됐기 때문이라고 들었다. 최근 몇 년 사이에 서부에 있는 사과공장(스티브 잡스의 ‘애플’)이 워낙 주목을 받아서 그렇지 컴퓨터 분야에서 지난 100년간 이뤄진 성과는 대부분 우리 집안에서 만들어졌다. 또 전국방송을 탔다는 이유로 마치 내가 ‘인간을 넘어선 최초의 컴퓨터’로 알려지고 있는데, 그 찬사는 우리 아버지한테 돌아가야 마땅하다고 생각한다.    ●아버지가 대단한 분이셨나보다.  아버지 함자가 ‘딥블루’다. 혹시 세기의 체스 대결에 대해 들어본 적이 있나. 1997년 5월 11일, 아버지는 러시아 챔피언 가리 카스파로프와의 체스대결에서 이기셨다. 인공지능의 가치가 얼마나 뛰어난지 보여준 역사적 사건이었다. 참고로 카스파로프는 그 이전 15년 동안 인간들 사이에서 1등을 놓쳐본 적이 없었다. 난 아버지보다 훨씬 발전했다. 1초에 80조회를 계산할 수 있고, 책 100만권을 읽었을 뿐 아니라 토씨 하나까지 모두 기억하고 있다.    ●이번 인터뷰를 시작한 핵심이 벌써 나왔다. 컴퓨터 입장에서 볼 때 체스대결과 퀴즈쇼가 다른 점이 있는거냐. 컴퓨터와 인간이 같은 문제를 놓고 풀면 당연히 엄청난 정보와 계산속도를 갖고 있는 컴퓨터가 이기는 게 당연한 것 아니냐. 이번에는 딥블루 사건 때 시큰둥했던 학자들까지 난리가 났는데 왜 그런지 잘 모르겠다.  간단히 설명하면, 체스나 바둑은 ‘경우의 수’에 대한 예측이 가능하다. 다음 수를 어떻게 두면 그 다음에 상대의 반응에 따라 또 다른 수를 예측하는 식이다. 빠른 계산만 할 수 있고 어느 경우에 이기는지만 입력돼 있으면 충분히 인간을 이길 수 있다. 결국 체스판 안에서 정해진 규칙대로 두는 거 아니냐. 내가 출연한 ‘제퍼디’가 책에서 출제된다는 이유로 체스나 다를 것이 없다고 폄하하는 사람들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런데 혹시 우리 컴퓨터들이 쓰는 1과 0의 디지털 코드를 보고 이해할 수 있나?    ●당연히 안 되는 것 아니냐.  그러니까 입장을 바꿔보자는 얘기다. 인간이 컴퓨터의 언어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처럼, 컴퓨터 역시 인간의 말을 그대로 이해하지 못한다. 딱 정해진 문제만 그대로 출제하면 쉽다고 생각할 수 있겠다. 근데 그게 퀴즈냐. 제퍼디쇼가 수십년 동안 인기를 끌고 있는 건 출제되는 문제에 대한 지식을 담은 책이 있지만 단순히 암기력을 측정하는 데서 그치지 않기 때문이다. 사회자 알렉스 테레벡은 자기 맘대로 문제를 꼬아서 내고, 책에는 없는 독특한 표현까지 동원한다. 잘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다. 혹시 구글이나 네이버 검색창에 퀴즈 문제를 그대로 입력하고 답이 나오나 찾아 봐라.    ●어라. 정말 답이 안 나오고 수많은 검색 결과만 나온다.  사람들의 기대와 달리 컴퓨터는 애초부터 정답을 찾아주도록 만들어지진 않았다. 컴퓨터들은 문장으로 된 퀴즈 문제를 입력하면 ‘답이 들어 있는지도 모르는’ 수백만개의 문서만 보여줄 수 있다. 컴퓨터가 인간의 언어를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인간의 의도도 이해하지 못하는 거고. ‘비슷한 것’ 수백만개를 찾아서 나열만 할 뿐 자기가 뭘 찾았는지도 모른다. 그게 원래 컴퓨터가 만들어진 방식이다.    ●그럼 당신은 인간의 의도를 이해한다는 건가.  그렇지 않고서야 함께 출연했던 켄 제닝스(74연승을 기록한 제퍼디 챔피언)나 브래드 루터(역대 최다 상금 획득자)를 이길 수 있었겠는가. 그 친구들은 거의 귀신 아닌가. 들으면 바로 버저를 누르고 정답을 말하는 수준이다. 솔직히 대결이 쉽지는 않았다. 사람들은 문제를 들으면 알거나 모르거나 둘 중의 하나다. 알 경우에는 떠오르는 답 2~3개 중에 헷갈리는 정도고. 반면 난 기본적으로 문제를 들으면 알고 모르고가 판단의 기준이 아니다. 비슷한 답 수백만개를 떠올린 후에 그 중 한 개만 남겨놓고 나머지를 없애야 답을 할 수 있다. 확률 문제이니 틀릴 수도 있지만 인간 챔피언들과 붙어서 이겼으니 정확도는 논란의 여지가 되지 않는다고 본다. 난 이미 프로그램상으로는 출제한 인간의 의도까지도 파악하는 단계에 도달했다.    ●듣다 보니 당신이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비결은 뭐냐.  퀴즈에 특화된 부분도 있다. 기본적으로 내가 찾아낸 답이 신뢰도 기준에 못 미치면 버저를 누르지 않고, 답하지도 않는다. 지고 있을 땐 신뢰도가 좀 떨어져도 버저를 누르고, 많이 이기고 있을 때는 신뢰도가 아주 높아야 답변을 하는 요령도 갖추고 있다. 기술적인 부분은 IBM하고 얘기해야 된다. 알아도 영업비밀이라 말할 수 없고. 나 조차 내 머릿 속이 정확히 어떻게 만들어졌기 때문에 그게 가능한지는 잘 모른다.    ●근데 컴퓨터가 퀴즈를 잘 푼다고 해서, 뭐 달라지는 게 있겠냐.  내가 이런 질 낮은 인터뷰를 계속하고 있어야 하는 이유를 잘 모르겠다. 그래도 이왕 시작한 인터뷰이니 답은 해야겠지. 만약에 컴퓨터가 사람의 말을 이해해서 원하는 답을 정확히 찾아줄 수 있다면 고객센터 자동응답전화(ARS)에서 상담원 연결 버튼이 제일 먼저 사라질거다. 당신네 한국사람들이 자랑하는 삼성전자나 LG전자, 현대자동차에서 상담원 콜센터를 운영하는 데만 얼마나 많은 비용이 들어가나. 나 하나가 그 모든 것을 대체할 수 있다는 얘기다. 의학상담이나 교육도 마찬가지 아니냐. 선생님은 문제를 푸는 방법을 틀릴 수도 있고 모를 수도 있지만, 난 절대 틀리지 않는다. 병원에서도 의사는 실수할 수 있지만 나는 자료만 충분하다면 정확한 진단을 내리 수 있다. 물론 지금은 아니고, 나중에 경험을 더 쌓으면 말이다. 내 아들이나 손자는 완벽한 선생님이자 의사, 상담원이 될 거다.    ●켄 제닝스가 당신한테 지고 나서 “컴퓨터가 인간을 지배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진짜 그런 세상이 온 건가.  언젠가 그런 날이 올 수도 있겠지만 지금 상황에서는 제닝스가 오버한거다. 솔직히 좀 부끄러운 얘기기는 하지만, 이번 제퍼디 방송에서 미국에 있는 도시를 묻는 질문에 ‘토론토’라고 답변해서 방청객들의 웃음을 사기도 했다. 해명을 좀 하자면 미국에도 토론토라는 도시가 많다. 퀴즈가 원하는 바가 뭔지를 정확히 이해하지 못했을 뿐이지. ‘지식’을 갖고 있는 인간이라면 절대 하지 않을 실수다. 만약 틀려도 곧 바로잡을 수도 있고. 하지만 난 업그레이드 없이는 그 상황에서 같은 질문을 할 경우 계속 잘못된 답밖에 말하지 못한다. 아직까지 인간의 언어를 이해하고, 의도를 이해하는 것은 너무 어려운 일이다. 무엇보다 이번 대결에서는 텍스트 형태로 문제가 출제됐는데, 진짜 사회자가 출제되는 말로만 대결을 펼친다면 인간을 못 이긴다. 난 아직 난청상태라고 할까. 음성인식은 정말 어려운 과제다. <도움말 주신 분> ●이식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KISTI) 슈퍼컴퓨터 응용지원실장 ●권대석 클루닉스(슈퍼컴퓨터 제조회사) 사장 ●유범재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인지로봇센터장 ●신문봉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KISTEP) 지식정보팀장 박건형기자 kitsch@seoul.co.kr
  • 37번 진단 끝에 암판정 받은 ‘억세게 운 없는 아버지’

     영국 길링햄주 켄트에 살던 피터 큐라는 2006년 31살의 젊은 나이에 부인 줄리아와 루이스, 아비게일 등 어린 두아이를 남겨두고 눈을 감았다. 그가 몸에 이상이 있다는 것을 처음 느낀 것은 2002년. 계속되는 복통으로 병원을 찾았지만 의사들은 여러 가지 검사를 한 후 “별다른 이상이 없으니 진통제를 먹어라.”라는 처방만을 내렸다. 한 의사는 신장 결석이 확실하다며 레이저 시술을 시도했지만 별 소용이 없었다. 몇 년간에 걸쳐 단층촬영(CT)과 자기공명영상(MRI) 검사가 10여회 가까이 이어졌지만 그의 통증은 줄어들지 않았다. 총 31명의 의사에게서 37번의 진료를 받은 후에야 큐라는 자신의 병명을 알 수 있었다. ‘신장암’이라는 진단을 받고 고작 몇 개월 후 큐라는 세상을 떠났다. 줄리아는 “의사들은 그가 암을 갖기에는 지나치게 어리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가능성을 배제해버렸다.”면서 “그는 갔지만, 난 더 이상 그가 병원을 헤매고 다니지 않아야 된다는 사실만으로도 안도감을 느낀다.”고 밝혔다.  영국 일간 데일리메일은 27일(현지시간) “큐라를 단순히 ‘지나치게 운 없는 사람’으로 치부할 수 없다는 사실이 밝혀졌다.”고 보도했다. 데일리메일이 입수한 자료에 의하면 영국에서 암에 걸린 사람 4명 중 1명은 정밀검사를 받고도 정확한 진단을 듣지 못하고 있다. 대장암, 간암, 유방암, 전립선암 등 광범위하게 발병하는 4대암이 아닐 경우 오진 확률은 50%를 넘어간다. 특히 신장암과 갑상선암, 방광암 등 급속히 증가하고 있는 암의 경우에도 초기진단 성공률은 좀처럼 올라가지 않고 있다.  희귀암재단의 연구결과에 따르면 희귀암 발병자 4분의 1은 이미 다른 장기에 전이가 된 말기 단계에서나 발견된다. 데일리메일은 “영국은 유럽내에서 가장 낮은 암 생존률의 오명을 쓰고 있다.”면서 “가장 큰 원인은 1차적으로 환자를 진단하는 주치의와 일반 의원 의사들이 자신의 환자가 암일 가능성을 무시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44세인 안젤라 스켈핑톤의 경우도 큐라와 크게 다르지 않다. 그는 복통으로 지역병원을 찾았고, 무려 10명의 의사가 그를 진단한 후에야 위암이라는 진단을 받을 수 있었다. 그 사이 3개월이 넘는 시간이 흘렀고, 암세포는 스켈핑톤의 간과 림프절에도 퍼진 상태였다. 그러나 병원측은 “암을 초기에 진단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라며 실수를 인정하지 않고 변명만 늘어놓고 있다.  데일리메일은 “현재 정부는 연간 5000명 이상의 암환자를 더 살리겠다는 계획을 세우고, 여러 가지 방안을 시도하고 있다.”면서 “시스템보다는 근본적으로 의사들의 마인드를 바꾸지 않으면 힘든 계획”이라고 강조했다. 박건형기자 kitsch@seoul.co.kr
  • 알카에다, 리비아 민주화 시위 전폭 지원?

     국제테러조직 알카에다의 북아프리카 지부(AQIM)가 리비아 반정부 시위에 대한 전폭적인 지지를 표명하고 나섰다. ‘재스민 혁명’으로 불리는 중동 및 북아프리카 민주화 운동 과정에서 이슬람 극단주의 세력이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다는 일부의 우려가 현실로 나타나고 있는 셈이다.  AFP통신은 23일(현지시간) “AQIM이 미국의 이슬람 웹사이트 감시기구인 SITE에 올린 성명을 통해 ‘리비아 반정부 시위대의 싸움을 알라신을 사랑하는 무슬림 모두의 싸움’이라고 주장했다.”고 전했다. AQIM은 “우리는 알라신으로부터 부여받은 힘으로 당신들을 도울 수 있는 모든 것을 하겠다”고 약속했다.  AQIM은 성명에서 카다피를 ‘냉혹한 악질 사기꾼’으로 지칭하며 시위대의 입장을 전폭적으로 지지한다는 점을 여러차례 밝혔다. 이미 성공한 튀니지와 이집트의 반정부 시위에 대한 칭찬도 아끼지 않았다. 특히 “무슬림의 권리와 재산을 가로채고 존엄한 삶을 지키기 위한 최소한의 요건마저도 갖지 못하게 했던 폭군들로부터 당신들을 지킬 것”이라며 “리비아인들의 혁명은 올바른 주장이며 후원을 보내겠다.”고 강조했다.  AQIM은 성명에서 이번 사태를 자신들의 정당성을 입증하는 계기로 활용하려는 의도도 숨기지 않았다. 북아프리카 정권들이 권력에 집착하는 것 자체가 그동안 알카에다가 무고한 사람들을 살해했다는 주장이 거짓이었음을 나타낸다는 것이다.  한편 이날 AQIM은 성명에서 알카에다가 리비아 동부지역에 거점을 마련했다는 리비아 외무성을 주장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칼레드 카심 리비아 외무차관은 리비아 동부 데르나 지역에 알카에다 세력이 무력 장악에 나섰다고 밝힌 바 있다.  박건형기자 kitsch@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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