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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8분의 소통 TED 2011] “태양광 초가집, 신재생에너지 첫 걸음”

    [18분의 소통 TED 2011] “태양광 초가집, 신재생에너지 첫 걸음”

    11일 아침 9시 30분(현지시간) 영국 스코틀랜드 에든버러의 국제콘퍼런스센터(EICC). 큰 덩치에 사람 좋아보이는 인상의 톰 리엘리가 만면에 웃음을 띠고 무대에 올랐다. 장내를 메운 70여개국 900여명의 청중들은 ‘테드(TED) 펠로’ 큐레이터인 그에게 우레와 같은 박수를 보냈다. 연중 2차례 열리는 최고의 지식페스티벌 ‘테드 글로벌 콘퍼런스 2011’이 닷새간의 여정에 닻을 올리는 순간이었다. 10대 소녀부터 70대 백발노인에 이르기까지 나이와 성별, 피부색은 달랐지만 감동은 한결같았다. 매년 8월 공연 페스티벌 ‘프린지’와 군악경연 ‘밀리터리 타투’로 세계인의 이목을 모으는 축제의 도시 에든버러. 올해에는 각국에서 모여든 지식 순례자들로 예년보다 한달 앞서 축제의 기운이 달아올랐다. 장내가 조용해지자 리엘리가 유머를 섞어 가며 테드 펠로를 한명씩 호명하기 시작했다. 테드 펠로는 테드가 매년 선정하는 신(新)지식인들. 26명의 테드 펠로들은 ‘아이디어로 세상을 바꾼 사람들’이란 별칭답게 독특하면서도, 메시지 강한 기술과 성과들을 풀어놓았다. 첫번째로 ‘18분간의 소통’을 시작한 사람은 중미 과테말라의 신재생 에너지기업 ‘케솔’(QUETSOL)의 창업자 마누엘 아구일라. 자기 나라 농촌 초가집 앞에 설치된 첨단 태양광 패널의 모습을 대형 화면에 띄웠다. 태양광 패널에서 나온 한 가닥의 전깃줄이 초가집에 전기를 공급하는 장면에 참석자들이 탄성을 질렀다. 아구일라는 “이렇게 초라한 시도가 궁극적으로 각국의 에너지 부족을 해결하는 밑바탕이 될 수 있다.”고 소리 높여 말했다. 중국계 미국인인 조디 우는 탄자니아에서 농업혁명으로까지 불리는 자신의 발명품 얘기를 꺼냈다. 우는 “막대기로 옥수수 낟알을 떠는 그들의 모습이 안타까워 자전거 바퀴로 작동하는 탈곡기를 만들었다.”면서 “그들은 이제 자전거를 타고 다니며 훨씬 적은 노력으로 훨씬 더 많이 탈곡할 수 있다.”고 말했다. 요르단 출신의 슐레이만 바히트는 아픈 경험에서 길어 올린 밝은 희망을 담담하게 풀어 갔다. 그는 “2001년 미국 미네소타대 재학 당시 9·11 테러가 터지자 4명의 미국인 학생들이 나를, 단지 아랍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캠퍼스에서 공격했다.”면서 “그러나 난 고국으로 돌아가는 대신 미국 내 초등학교를 찾아다니며 아랍 문화를 가르치고, 미래 세대에는 관계가 변할 수 있다는 사실을 호소했다.”고 말했다. 그는 졸업 후 요르단을 비롯한 아랍 전역에서 이런 노력을 기울이기로 결심했다. 그 수단은 애니메이션이었다. “저의 이런 생각을 주변 사람들한테 처음 털어놓았을 때 ‘중동에선 지나친 모험’이라는 우려가 많았습니다. 하지만 저는 중단하지 않았습니다. 지금 중동에는 저의 이상을 담은 만화와 애니메이션, 게임이 확산되고 있습니다.” 이들 외에 티베트와 몽골의 사막지대를 누비며 사람의 뼈를 통해 10년 가까이 아시아인의 생태적 연결고리를 찾고 있는 중국인 고고생물학자 크리스틴 리, 세계에서 가장 저렴한 수질 진단기를 만들고 있는 미국인 소나 루스라도 큰 호응을 얻었다. 이 무대에는 15일까지 50여명의 연사들이 올라 ‘삶의 재료’(The Stuff of Life)를 주제로 18분 동안 자신의 지식을 나누고, 인류를 향한 메시지를 외치게 된다. 테드 프로듀서 준 코언은 “우리 몸에서 일어나는 비밀스러운 생물학적 반응에서부터 우리 사회를 이루는 문화적 성취에 이르기까지, 우리의 삶과 관련된 모든 것들을 다루는 놀라운 강연들이 기다리고 있다.”고 소개했다. 한국인 행위예술가 이재림씨가 연단에 오르는 13일 행사는 우리나라에도 생중계된다. 테드x 경원대(경원대 영상문화관), 테드x 이태원(명동 해치홀), 테드x 카이스트(카이 라운지)에서 볼 수 있다. 이날 EICC 앞에는 행사 시작 2시간 전부터 길게 줄이 늘어서기 시작했다. 다들 사전에 등록을 하고 왔지만 연단이 잘 보이는 곳에 자리를 잡기 위해 치열한 경쟁을 벌였다. 독일 막스플랑크 연구소에서 근무하는 노라 랭은 “올초 미국 롱비치에서 열린 테드 2011 콘퍼런스에 가고 싶었지만 일찍 마감돼서 이번에는 아주 서둘렀다.”고 말했다. 미국에서 대기업에 다니다 최근 벤처회사를 차렸다는 일본인 다키오는 “등록비 6000달러(약 700만원)는 분명히 큰 금액”이라며 “그러나 빌 게이츠(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나 마크 저커버그(페이스북 창업자) 같은 내 마음속 영웅들과 나란히 앉을 수도 있다는 기대감에 차 있다.”고 전했다. 글 사진 에든버러 박건형기자 kitsch@seoul.co.kr
  • [WHO&WHAT] 소설 속 영국인 주인공 폴 웨스트 “파리서 1년 살아보니”

    [WHO&WHAT] 소설 속 영국인 주인공 폴 웨스트 “파리서 1년 살아보니”

    “한국인은 일본이나 중국 사람과 어떻게 다른가요? 겉보기엔 다들 비슷한데….” 파란 눈의 친구가 있는 사람이라면 한두 번쯤 이런 질문을 받아 봤을 것이다. 사실 유럽이나 미국 사람들은 동양인의 얼굴을 쉽게 구분하지 못한다. 나이도 잘 가늠하지 못한다. 하지만 누군가 나한테 중국 사람처럼 생겼다거나 일본인처럼 행동한다고 말하면 그걸 썩 달갑게 받아들이긴 어렵다. 약간의 차이는 있겠지만 한국과 중국, 일본은 분명히 다른 역사를 가진 다른 나라이고 말도 다르며 국민성도 다르다고 생각하기 때문일 것이다. 한·중·일만큼이나 다른 배경을 가진 나라들이 하나로 묶여진 동네가 있다. 지역은 유럽, 이름은 유럽연합(EU)이다. 1957년 유럽경제공동체 출범 기준으로 반세기 이상 시간이 지났다. 그들은 같은 화폐를 쓰고 자유롭게 국경을 넘나든다. 그렇다면 오래전부터 내려온 그들 각각의 민족 감정이나 국민 의식 같은 것들도 빠르게 옅어지고 얇아지고 있는 것일까. 서울신문 가상 인터뷰 ‘후 앤드 왓’(Who&What)은 한·중·일 국민 사이의 미묘한 경쟁의식이나 차이점이 EU 내에서도 비슷한 방식으로 일어나는지 궁금증을 풀어 보기로 했다. 이를 위해 영국 최고의 프랑스 전문가인 ‘폴 웨스트’를 만나 직격 인터뷰를 했다. 웨스트는 영국인 스티븐 클라크가 2005년 출간한 소설 ‘똥 속에서의 1년’(A Year in the Merde)의 주인공으로, 프랑스인에 대한 궁금증을 풀기 위해 ‘프렌치맨’ 속으로 뛰어든 열혈 ‘잉글리시맨’이다. 파리 샹젤리제 거리 뒤편의 한적한 거리에서 웨스트를 만났다. 인터뷰 내내 웨스트는 ‘정말 어이없다’는 표현을 습관처럼 사용했다. 1년이라는 시간을 프랑스인들 틈바구니에서 보낸 27세 청년은 여전히 파리지앵을 이해하지 못했다. →영국과 프랑스를 강타한 소설의 주인공을 만나게 돼서 영광이다. 벌써 6년째 베스트셀러 목록에서 내려오지 않고 있다. 간단한 자기소개를 부탁한다. -내 이름은 폴 웨스트. 27세다. 영국 런던 출신이다. 프랑스의 레스토랑 체인에서 영국 홍차 프랜차이즈 사업부를 맡아 1년간 일했다. →당신의 이야기는 9월에 시작해 5월에 끝난다. 제목엔 ‘1년’이라고 써 있는데 나머지 3개월은 어디 갔나. -프랑스에서의 1년이지 않은가. 프랑스어를 쓰는 사람들의 1년은 9월에 시작한다. 다른 나라는 전부 1월에 시작하지만. 9월 첫째 주 월요일이면 샹젤리제 거리에서 마치 신년 축하 키스를 나누는 듯한 광경을 볼 수 있다. 수백 쌍이 늘어서서 말이다. 그런데 그 키스의 이유가 “이제 휴가가 끝났으니 아쉽다.”는 것이란다. 정말 어이없지 않나. 소설을 5월에 끝낼 수밖에 없었던 것은 그때가 휴가가 시작되는 때라서다. 뭐 한 3개월간은 나라 전체가 멈춘다고 보면 된다. 아! 여름에 파리가 붐비는 이유? 그 사람들 중에 프랑스 사람은 거의 없다. 다 관광객이지. 휴가가 끝나자마자 “내년 휴가에는 뭘 하지?”라는 생각만 하고 사는 사람들을 데리고 책임자로 일하면서 고생 엄청나게 했다. →책 제목이 비위생적이다. 그냥은 ‘똥’이고, 고상하게 말해 봐야 ‘대변’ 정도인데, 굳이 제목에 그걸 넣은 이유가 무엇인가(불어 ‘Merde’는 ‘제기랄!”, ‘빌어먹을!’ 정도의 의미를 갖는 가벼운 욕설로도 프랑스에서 널리 사용된다.). -처음 파리에 도착하고, 회사 면접을 보고 인사를 나누고 하나하나 적응해 가는 과정이 정말 힘들었다. 그런데 그 와중에 어디에선가 애완견들이 나타나 내 가방에 실례를 하고 도망갔다. 주인도 같이 있었는데. 내가 파리에서 낯설고 어이없는 일들을 겪을 때마다 그때 기억이 나를 떠나지 않았다. 결국 난 그 기억 속에서 1년을 산 거다. →한국에서는 프랑스 사람들이 영어를 잘 못한다고 알려져 있다. 영어가 모국어인 입장에서 실제로 들어 보니 어떻던가. -아, 프랑스 사람들도 영어를 잘한다. 확실하게 말할 수 있다. 다만 내가 알아들을 수 없다는 것이 문제다. 정말 웃기는 건 자기들끼리는 그걸 알아듣는다는 것이다. 특유의 악센트는 둘째치고 자기네 알파벳 읽듯이 영어 단어를 읽을 거면 그냥 프랑스어로 얘기하는 게 낫지 않겠나 싶다. 부하 직원 중에 하나는 분명히 자기가 영어를 한다고 주장하는데, 아무리 봐도 걘 헝가리어를 하고 있었다. →책에서 보면 당신은 부하 직원들이 꽤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것 같다. -전혀, 100%, 결코, 한 톨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날 책임자로 스카우트하면서 나한테 직원을 뽑을 권리를 안 줬다. 참고 봐주려고 했더니 내는 아이디어마다 나 참…, 어이가 없어서. 첫날 회의에서 밑에 직원들이 카페 이름을 ‘내 차는 부자다’(My tea is rich)라고 짓자고 주장하는데, 확 다 부숴 버리고 싶었다. 내가 며칠 동안 저건 문법상으로 영어가 아니라고 아무리 가르쳐도 이해를 못 하더라. 그래서 보스한테 팀을 바꿔 달라고 요구했다. →그래서 원하는 팀을 꾸렸나. -웬걸. 팀원을 바꿔 달라고 했더니 갑자기 보스가 말도 안 되는 소리하지 말라고 펄쩍 뛰더라. 팀원을 자르면 회사 직원 전체가 파업을 하고, 그게 비슷한 업종 종사자들의 파업을 유도하면서 사회문제화되고 프랑스 전체가 마비될 수 있다고 했다. →에이, 말도 안 된다. 지나친 비약 아닌가. -그땐 나도 정말 말도 안 되는 어이없는 주장이라고 생각했는데, 지금 돌이켜보면 충분히 가능한 시나리오다. 프랑스인들은 파업을 거의 스포츠로 생각한다. 당연히 누구나 해야 하고, 재미도 있는 일이라고 느낀다. 아마 프랑스인들을 대상으로 ‘좋아하는 스포츠’ 설문조사를 한다면 1위는 ‘페탕크’(금속과 나무공을 던져서 가깝게 만드는 게임)가 분명하다. 영국에선 노인들이나 하는 스포츠인데 이걸 그렇게 좋아한다. 그 다음이 아마 파업일 것이다. 시도 때도 없이 파업을 하는 건 물론이고, 심지어 지하철이랑 버스 파업을 하는데 승객들한테 알려 주지도 않는다. 아무리 기다려도 오지 않는 버스를 기다리다 좌절한 기분, 당신도 아는지 모르겠다. →영국도 가끔 지하철 파업을 하지 않나. 그리고 프랑스 국민들은 파업에 대해 별다른 불만을 제기하지 않는다고 알고 있다. -하하. 정도가 있는 법이지. 프랑스인들이 파업을 참는 건 자기도 다음에 이 즐거운 스포츠를 즐겨야겠다고 생각하기 때문인 게 분명하다. 어느 정도냐 하면 식당에서 서빙을 하던 웨이터가 갑자기 디저트 차례를 남겨 놓고는 “파리의 웨이터들이 오후 1시부터 파업을 하기로 했다.”면서 가버린 적도 있었다. 그 이유가 뭐였는 줄 아나. 유로화가 통합된 이후에 사람들이 팁을 1유로 동전으로 주면서 예전에 프랑 동전을 받을 때보다 수입이 줄었기 때문이란다. 그래 갖고 파업을 하면 과연 손님들이 2유로 동전을 주겠는가. 완전히 파업을 위한 파업이다. 게다가 불친절하기 짝이 없는 프랑스의 웨이터들은 이미 계산서에 15%의 봉사료를 받고 있다. →달팽이(에스카르고) 음식에 도전하는 얘기도 인상적이었다. -그게 인상적이라는 건 당신도 끔찍하게 여겼다는 얘기지? 살아 있는 채 찜통에 집어넣고, 소금을 치고. 거참 그걸 왜 먹는지 아직도 이해를 못 하겠다. →책을 몇 권 써도 할 얘기가 끝도 없이 나오던데, 실제 만나 보니 정말 맺힌 게 많나 보다. -이왕 인터뷰를 하는데 한 가지만 더 얘기하자. 혹시 ‘사데팡’(Ça dépend·그때그때 다르다는 뜻)이라는 말을 아는가. 아시아 친구들은 그게 프랑스에서 제일 싫은 거라고 하던데. 프랑스 애들은 무엇을 하든 처음에는 안 된다고 고개를 가로젓지만, 몇 번 조르면 오히려 안 되는 경우가 드물다. 유학생들, 특히 아시아인들 사이에서는 “체류증 연장 신청을 하러 갈 때 아침에 부부싸움 한 공무원 앞에 서면 안 된다.”는 우스갯소리가 있을 정도다. 과장이 섞이긴 했지만 나이와 성별, 학력까지 모두 같아도 담당자의 기분에 따라 허가가 날 수도 있고 거절당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 망할 놈의 사데팡 때문에 얼마나 많은 사람이 상처를 받아야 하나. →영국과 프랑스가 예전부터 견원지간이라고 하지 않나. 당신이 자꾸 이렇게 말하는 건 기본적으로 프랑스인을 싫어하기 때문 아닌가. -뭐 충분히 그럴 수 있다. 사실 EU라는 게 말이 안 된다. 우리 식민지에 불과했던 미국이 세계의 맹주 노릇을 하고 있고, 아시아까지 치고 올라오니까 함께 뭉쳐서라도 잘살아 보자고 만든 건데, 이게 달라도 너무 다르다. 우선 프랑스랑 이탈리아를 보자고. 우리가 보기에 둘은 너무 비슷해. 자기들 음식이 세계 최고라고 하고, 와인이랑 커피라면 환장하고, 휴가 긴 것도 비슷해. 슈퍼마켓에서 줄이 절대 줄어들지 않는 것까지 똑같단 말이지. 근데 프랑스 친구들은 이탈리아인들이 어디에나 출몰하고 시끄럽고, 친한 척하면서 엉겨붙는다고 욕하기 일쑤거든. 반대로 이탈리아 친구들은 프랑스인들이 쓸데없이 딱딱하게 굴고, 음흉하다고 욕하는 게 일상이지. 프랑스 친구는 남한테 얻어먹는 걸 치욕스럽게 여기지만, 이탈리아인들은 집에 초대를 못해서 난리를 치거든. 심지어 잘난 조상 덕에 먹고사는 것까지 똑같은데 말이지. 아마 둘이는 서로 너무 닮아서 참지를 못하는 것 같아. 이렇게 다들 다른데 똑같은 화폐 쓰고 국경 없애면 다같이 뭉쳐서 밝은 미래를 열어 나갈 수 있을 거란 안이한 발상 자체가 문제였던 거지. →영국 얘기는 전혀 안 하고 있는 것 아는가. 사실 영국도 프랑스나 이탈리아보다는 부지런한 편이지만 독일 사람들이 보기에는 게으른 나라 아닌가. -독일 애들은 지나치게 꽉 막혀 있는 거고. 간단한 서류 하나 잘못됐다고 사람을 붙잡아 두거나 일을 중단시키는 걸 당연하게 여기는 사람들하고 어떻게 같이 일을 하나. 뭐 이러고 저러고 다 떠들어 봐야 소용없다. 어차피 이미 EU로 뭉친 거 다시 돌리기도 쉽지 않을 거 같은데, 빨리 해결책을 찾아야지. 근데 도청 범죄자나 키우는 우리 정치인이나, 스캔들에 시달리는 이 나라 대통령이나, 어린 여자애 돈 주고 사서 문제 생긴 옆동네나 다 한심하기 짝이 없다. 그러니 답이 없는 거다. 정치인이 바로 서야 나라가 서는데. →사실 그건 우리나라도 크게 다르지 않은 편이다. 그러고 보니 지금까지 누구랑 누구랑 다르다는 얘기만 했는데, 전 세계가 같은 부분도 있는 것 같다. -사실 내가 1년 동안 파리지앵으로 살면서 느낀 게 바로 그거다. 당신이 나의 독설을 원하는 것 같아서 안 좋은 경험만 추려 얘기하긴 했지만, 그렇게 생각하기 시작하면 끝이 없다. 결국엔 다 맞춰 살아야 하는 것 아니겠나. 다만 나를 만든 스티븐 클라크도 돈은 벌어야 하니까, 심지어 책도 잘 팔리는 상황이니까 당분간은 그러려니 하고 읽으면서 마음껏 웃어 줬으면 좋겠다. (이 책은 과장과 풍자로 채워진 책이고 실제 지은이의 직업도 방송 코미디 작가다. 프랑스의 실제 모습이 이와 일치한다는 뜻은 아니니 절대로 오해하지 말기 바란다.-편집자 주) 파리 박건형기자 kitsch@seoul.co.kr   ●스티븐 클라크 영국의 언론인. 10년 가까이 프랑스 파리의 언론사에서 일하며 얻은 경험을 바탕으로 2005년 쓴 소설 ‘똥 속에서의 1년’(A year in the merde)을 출간했다. 소설 속에 등장하는 폴 웨스트는 그가 경험한 내용을 보여 주는 실존 인물에 가깝다. 당초 친구들에게 주기 위해 200부만 찍었던 책인데 출판사의 제안으로 공식 출간됐다. 영국과 프랑스에서 6년째 베스트셀러에 올라 있다. 클라크는 현재 라디오 방송의 코미디 작가로 활동 중이다. ●참고문헌 똥 속에서의 1년/ A year in the Merde (스티븐 클라크/ 블랙스완) 프랑스인을 혐오한 1000년/ 1000 Years of Annoying the French (스티븐 클라크/ 블랙스완) 달팽이에게 말하기/ Talk to the Snail (스티븐 클라크/ 블랙스완) 서울신문은 매주 1회 독특한 포맷의 가상 인터뷰 [WHO&WHAT(후 앤드 왓)]을 1개면에 걸쳐 연재하고 있습니다. 일반 신문기사로는 다루기 힘든 동서고금의 지식과 역사의 정수들을 만남 또는 대담의 형식을 통해 알기 쉽고 재미있게 소개하는 지면입니다. 청소년, 어른 모두에게 즐겁고 색다른 지식의 장이 될 것으로 자부합니다. 특히 입시를 준비하는 학생들에게는 훌륭한 논술교재로도 활용할 수 있을 것입니다.[WHO&WHAT] “퀴즈쇼서 인간에 완승한 슈퍼컴 왓슨(Watson)을 만나다” [WHO&WHAT] 무덤에서 불러낸 독재자 4인의 가상만찬 ‘재스민 혁명’을 논하다 [WHO&WHAT] 천재소년 송유근, ‘우주비행 성공 50주년’ 맞아 유리 가가린을 만나다 [WHO&WHAT] ‘슈퍼히어로’ 스파이더맨, 정신과 전문의 김상준 원장과 상담하다 [WHO&WHAT] 지구수비대 지원한 인간형 로봇 ‘마루’ “아톰·태권V처럼 지구 지켜서…” [WHO&WHAT] ‘최악’ 통념 B형 男기자, 혈액형의 아버지 ‘란트슈타이너’에 따지다 [WHO&WHAT] ‘전 세계 여성의 로망’ 버킨백을 만나다 [WHO&WHAT] 선택 따라 전혀 다른 결과…”이렇게 검색하면 진리가 밝혀질까?” [WHO&WHAT] “남느냐, 떠나느냐” 희곡으로 본 어느 서재 도서들의 열띤 논쟁 [WHO&WHAT] ‘위대한 유산’ 남긴 간송미술관의 전형필, 그리고 우피치미술관의 메디치 [WHO&WHAT] 위대한 예술가 미켈란젤로, 그는 왜 라파엘로를 죽이고 싶었을까 [WHO&WHAT] ‘美우주왕복선은 초대형 폭탄이나 마찬가지’ 물리학자 파인먼의 폭로 [WHO&WHAT] 외규장각 도서 귀환으로 본 약탈문화재의 ‘수구초심(首丘初心)’ [WHO&WHAT] “재능만 주고 사랑은 주지 않던 나쁜 부모들” 유명 인사들의 회상기 [WHO&WHAT] 인류역사를 바꾼 ‘억세게 운 좋은 사내들’ 서바이벌 현장…과연 승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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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8분의 소통 TED2011] “강연 18분 제한… 흥행요소 극대화”

    TED를 관통하는 가장 큰 원칙은 ‘비영리’다. TED의 이름을 걸고 공개되는 콘텐츠에는 딱 두 가지의 단서만 붙는다. 첫째가 ‘편집하지 말 것’, 두 번째가 ‘돈 받고 팔지 말 것’이다. TED는 이 원칙에만 동조한다면 사실상 무제한에 가까운 자유를 제공한다. 직접적으로 영리를 추구하지 않는다는 판단이 들면 전 세계 누구나 ‘TED’의 이름을 걸고 행사를 열 수 있다. 실사 등 까다로운 절차 없이 오로지 이메일로만 라이선스를 취득하는 것이 가능한 이유다. 그러나 TED에 관여했던 사람들은 공통적으로 ‘헐렁해 보이는 TED의 모든 요소들이 사실은 치밀한 전략의 결과물’이라고 입을 모은다. 우선 18분이라는 강의시간 제한이다. 대부분 콘퍼런스들이 최소 50분의 강연시간을 보장하는 것에 비하면 지나치게 짧은 시간이다. TED 측은 이를 “18분이 사람들의 주목을 유지할 수 있는 마지노선”이라고 밝히고 있지만 실제로 과학적 근거가 있는 것은 아니다. 국내 TEDx 관계자는 “18분이라는 시간 때문에 강연자들은 더욱 콤팩트하고 효과적으로 자기 지식을 나타내기 위해 노력하게 된다.”면서 “이는 결국 시각적인 효과와 극적인 연출로 이어지게 마련”이라고 밝혔다. 결국 시간 제한이 TED 강연의 흥행 요소를 부추기고, 이것이 TED 동영상의 확산 효과를 높인다는 것이다. TED가 전 세계적인 호응을 얻고 있는 비결로 ‘동영상’이라는 전파수단을 적극 활용하고 있다는 점도 꼽을 수 있다. 동영상을 이용하면 강연을 글로 읽거나 듣는 것과 달리 강연자의 숨결과 표정, 미묘한 손동작까지 전달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TED 콘퍼런스가 끝나자마자 공개되는 동영상에는 전세계 70여개 언어의 자막이 붙는다. 번역 자원 봉사자들은 대가로 TED 콘퍼런스 실황중계를 볼 수 있는 시청권만을 얻을 뿐이다. TED에 따르면 매월 TED 동영상을 시청한 사람들은 전 세계적으로 3억명 수준이며, 인기 동영상은 10억회 이상의 조회 수를 기록하기도 한다. TED 콘퍼런스의 주제는 철학적인 의미를 함축한 모호한 경우가 일반적이다. ‘세상을 바꾸는 기술’이라든지 ‘기술의 소원’ 같은 식이다. 이 때문에 콘퍼런스마다 하나의 소재로 얼마나 다양한 시각을 보여줄 수 있는지, ‘삶의 재료’를 소재로 영국 에든버러에서 열리는 이번 ‘TED글로벌 2011’의 경우도 생명공학자는 물론 뇌과학자, 미술가, 행위예술가, 코미디언, 가수, 건축가, 철학자, 소설가 등 수많은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 연사로 등장할 예정이다. TED는 완결된 틀을 갖고 있지 않다. 젊은 지식인들을 선정해 별도의 세션을 만들어 내는 ‘TED 펠로(Fellow)’ 등 매년 새로운 형태의 TED가 등장하고 있다. 일각에서 TED에 대해 비판적인 시각도 제기된다. 무대에 오르는 사람에게 쇼를 강요한다는 이유로 TED 참가를 거부하는 사람도 적지 않고, 유행이라며 TED를 폄하하는 학자들도 있다. 에든버러 박건형기자 kitsch@seoul.co.kr
  • [서울신문 107주년-TED2011을 만나다] ‘18분의 소통’ 지식이 진화한다

    [서울신문 107주년-TED2011을 만나다] ‘18분의 소통’ 지식이 진화한다

    서울신문은 창간 107주년(7월 18일)을 맞아 영국 에든버러에서 열리는 ‘TED 글로벌 콘퍼런스 2011’ 대회를 생생한 현지 취재를 통해 독자 여러분께 전달합니다. 11일(현지시간)부터 닷새 동안 열리는 이번 행사의 주제는 ‘삶의 재료’(The Stuff of Life)입니다. 50여 명의 연사들이 자신의 전문 분야 지식을 바탕으로 새로운 시각에서 ‘생명’의 패러다임을 조명하게 됩니다. 셋째 날에는 한국인으로는 유일하게 행위예술가 이재림씨가 단상에 오릅니다. 세기의 석학과 최고경영자(CEO), 예술가 등이 18분(1080초) 동안 숨 가쁘게 펼쳐 내는 지식의 향연을 서울신문 지면에서 만나 보시기 바랍니다. 21세기 최고의 ‘지식 페스티벌’로 부상한 ‘테드’(TED)의 글로벌 콘퍼런스 2011 여름대회가 오는 11일(현지시간)부터 15일까지 영국 스코틀랜드 에든버러에서 열린다. 역사, 철학에서부터 음악, 미술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분야의 연사 50여 명이 나와 ‘삶의 재료’(The Stuff of Life)란 이번 대회 주제에 맞춰 자기 지식과 경험을 풀어놓을 예정이다. ‘경제학 콘서트’의 저자 팀 하포드, 미 PBS 방송 최고경영자 팻 미첼, 소설가 알랭 드 보통, 대영박물관장 닐 맥그리거, ‘아웃라이어’의 저자 말콤 글래드웰, ‘중국의 오프라 윈프리’ 양란 등이 전 세계 수억 명의 온라인 시청자 앞에 선다. TED는 기술(Technology)·엔터테인먼트(Enter­tainment)·디자인(Design)의 머리글자를 딴 것으로, 1984년 미국의 그래픽 디자이너인 리처드 솔워먼과 방송 디자이너 해리 마크스가 “캘리포니아에 유명한 사람들을 불러 강연을 듣는 행사를 만들자.”고 뜻을 모은 데서 출발했다. 엘리트들이 갖고 있는 경험적 지식과 아이디어를 함께 나눠보자는 취지였다. 이질적인 요소들의 융합으로 혁신을 창출하기 위해 당시로선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던 기술·엔터테인먼트·디자인을 3대 요소로 묶었다. 특이한 강연회 정도로 여겨지던 테드는 2001년 매거진 ‘비즈니스 2.0’ 등에 몸 담았던 언론인 출신 크리스 앤더슨을 만나면서 180도 탈바꿈했다. 앤더슨은 테드의 모토를 ‘퍼뜨릴 만한 가치가 있는 지식’으로 정의한 후 실제로 행동에 옮기기 시작했다. 테드는 기존 콘퍼런스의 형식을 거부한다. ‘소통’과 ‘개방’을 위해 ‘권위’나 ‘이익’은 배제된다. 미국 대통령이나 영국 총리도 12세 어린이와 같은 시간 동안만 말할 수 있다. 기조연설 같은 것도 없다. 모든 강연자가 동등한 대우를 받는다. 그런데도 다들 못 나와서 안달이다. 시간 제한은 18분. 이 때문에 ‘18분의 감동’으로 불린다. 테드는 두 얼굴이다. 우선 엘리트의 모임이다. 매년 봄, 여름 두 차례 열리는 글로벌 콘퍼런스에 참석하기 위해서는 최소 6개월 이전에 참가 신청을 해야 한다. 내년 봄 ‘테드 콘퍼런스 2012’는 이미 참가 신청이 마감됐다. 참가 비용은 무려 6000달러(약 700만원)에 이른다. 참가 신청서 작성조차 귀찮은 일의 연속이다. “왜 이 콘퍼런스에 참석하고 싶은지, 무엇을 나눌 수 있는지를 논리적으로 설명하시오.”라는 글은 마치 입사 지원서를 연상케 한다. 이런 과정을 거친 1000여명만이 간신히 행사장에 들어설 수 있다. 테드의 진정한 힘은 콘퍼런스 이후에 시작된다. 5일간의 콘퍼런스에서 공개된 50여명의 강연은 편집 없이 동영상으로 만들어져 전 세계 누구에게나 공개된다. ‘테드 에어(air)’로 불리는 이 동영상 클립은 인터넷만 연결돼 있으면 공짜로 볼 수 있다. 각국에 퍼져 있는 수천명의 자원봉사자들은 전 세계 70개국의 언어로 동영상을 완벽하게 번역해 전파한다. 테드는 한국 사회가 목말라하는 ‘소통’의 아이콘에 가깝다. 최웅식 테드x 한국 대사는 “테드는 만남과 소통이라는 콘퍼런스의 지향점을 독특한 방식으로 디지털 시대에 담아내는 지식의 향연”이라면서 “특히 한국에서는 소통 부재와 정보기술 강국이라는 2가지 요소가 절묘하게 맞물리면서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고 말했다.  에든버러 박건형기자 kitsch@seoul.co.kr
  • [18분의 소통 TED2011] ‘스티브 잡스’를 꿈꾸는 젊은 지성… ‘소통의 갈증’ 풀다

    [18분의 소통 TED2011] ‘스티브 잡스’를 꿈꾸는 젊은 지성… ‘소통의 갈증’ 풀다

    “커뮤니케이션은 원래 구술(口述), 곧 말로 이뤄지는 것입니다. 그리고 구술문화에서는 말 자체뿐 아니라 시각, 청각, 후각 등 대면하고 있는 사람의 모든 것이 함께 사용됐지요. 그러나 활자 시대가 시작되면서 커뮤니케이션의 형태는 오감(五感)을 사용하지 않는 지식 전달이 본격화됐습니다. 지금 TED가 각광받고 있는 것은 바로 디지털 시대에 커뮤니케이션의 원류가 접목됐기 때문이지요.” (이준환 서울대 언론학부 교수/ 올초 ‘TEDx SNU(서울대)’ 강연에서) 2000년대 초반부터 전 세계에 폭넓게 확산되고 있는 TED가 한국에서 본격적인 관심을 끈 것은 3~4년에 불과하다. 애플이 아이폰을 출시하면서 콘텐츠 마켓인 ‘아이튠스’를 통해 TED 동영상을 접하는 사람들이 급격히 늘기 시작했다. 동영상 사이트 ‘유튜브’(www.youtube.com)도 중요한 매개체로 작용했다. TEDx SEOUL을 시작으로 한국에서 TEDx를 시연하려는 사람도 등장하기 시작했다. 정보기술(IT) 강국답게 국내 TED의 확산속도는 유례를 찾기 힘들 정도로 빠르다. 현재 한국에는 70여개의 TEDx가 TED의 공식 라이선스를 보유하고 있다. 인도에 이어 세계 2위로, TED의 원조인 미국보다 많다. ‘TEDx 강남’ 운영자인 대학생 김홍석씨는 “TEDx 카이스트, TEDx 성균관, TEDx 숙명, TEDx 건국, TEDx 연세 등 웬만한 대학에는 이미 다 자리잡고 있다.”면서 “광화문, 대학로, 명동, 한강 등 지명을 딴 TEDx가 늘어나면서 새로운 이름을 구하는 데 애를 먹을 정도”라고 밝혔다. 열기가 워낙 뜨겁다 보니 TED 본부는 난립을 우려해 최근 한국에 2명의 전담 대사를 임명하고 교육시스템을 만들어 관리에 들어갔다. 전문가들은 한국 내 TED 열풍의 이유로 ‘젊은층의 주도’, ‘프레젠테이션에 대한 갈망’, ‘새로운 소통방식에 대한 호기심’ 등을 꼽고 있다. ●20대 젊은층이 주도한다 한국의 TEDx 운영자들은 전 세계에서 가장 연령대가 낮다. 20대가 주를 이루고 10대도 있다. 40대 이상은 거의 없다. 다른 나라의 TEDx가 어느 정도 사회적 기반을 쌓은 사람들이 주도하고 있는 것과는 전혀 다른 현상이다. ‘TEDx 숙명’ 창립 멤버인 신하영 숙명여대 연구원은 “한국의 젊은층이 새로운 현상을 받아들이는 것은 물론 직접 주도하고 싶은 욕망이 강하기 때문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프레젠테이션 기술에 목마르다 스티브 잡스로 대표되는 ‘프레젠테이션 기술’에 대한 욕구도 크다. TED에서는 해외의 대기업 최고경영자나 유명인들의 화려한 강연을 얼마든지 볼 수 있다. ‘자기 표현’의 시대에 가장 적합한 교재인 셈이다. TED는 유명인뿐 아니라 일반인을 강연자로 초청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본인만의 특별한 경험’이 유명인들과 같은 시간을 배정받고, 똑같이 동영상으로 제작돼 공유된다는 것만으로 동기부여가 된다는 얘기다. ‘TEDx 광화문’을 만든 안효철 국가인권위원회 주무관은 “내가 저 자리에 설 수 있고, 모두에게 말할 수 있다는 것이 참석자 누구에게나 특별한 느낌을 준다는 인상을 받았다.”면서 “실제로 평범한 강연자들의 얘기에 참석자들은 더 쉽게 감동받고 함께 눈물을 흘렸다.”고 밝혔다. ●새로운 소통의 창구를 찾다 TED를 ‘새로운 소통방식’으로 인식하는 사회적 조류도 한국 내 열풍의 비결이다. 최근 몇 년간 사회적 화두로 ‘소통’이 떠올랐지만, 정작 구체적인 실천방안에 대해서는 뚜렷한 해답이 없었다. 그러나 ‘진실, 다양성, 호기심, 비영리, 비정치’라는 컨셉트를 가진 TED를 접하면서 젊은층을 중심으로 새로운 대안이 마련되기 시작했다. 지난해 ‘TEDx SEOUL’ 강단에 섰던 황상민 연세대 심리학과 교수는 “자신의 삶에서 무엇인가 답을 찾고 싶은 사람, 삶을 변화시킬 수 있는 지식을 찾는 사람들에게 TED는 지식과 함께 긍정적인 동기를 부여한다.”면서 “누구나 저 자리에 설 수 있다는 인식이 공유되기 때문에 참석자 누구나 발표자에게 서슴없이 다가설 수 있는데, 이는 한국에서 일반적인 대중강연이나 콘퍼런스에서는 찾기 힘들었던 요소”라고 했다. ●‘한국형 TED’ 나올 수 있을까 이 같은 TED의 장점만을 취해 ‘한국적 TED’를 만들려는 시도도 있다. 지식경제부는 ‘한국판 TED’를 표방한 ‘테크플러스포럼’을 개최하고 있고, 일부 대학이나 시민단체들도 자체적인 브랜드로 행사를 속속 열고 있다. 일각에서는 TED가 2000년대 초반 한국 학계를 강타했던 ‘통섭’(지식의 대통합)의 구체적인 현실화 방안이라는 주장도 나온다. 서로 다른 분야에 대해 서슴없이 말하고, 거기에서 나오는 아이디어를 현실화시키는 데 주력하는 부분이 단순히 개념적인 주장만 넘쳤던 통섭에 비해 한단계 발전한 구조라는 것이다. 물론 보완하고 발전시켜야 할 과제도 있다. 한국 TEDx 행사장에 섰던 연사들 중 일부는 “청중과 여전한 거리감을 느꼈다.”고 말하고 있고, 참석자들 중에서는 “전문적이지 못하다.”고 불만을 토로하기도 한다. 기관이 아닌 개인들의 모임을 중심으로 소규모 행사가 난립하고 있어 지속적인 행사추진이 쉽지 않고, 행사 비용을 ‘직접적인 광고’를 하지 않는 스폰서에게 의존해야 하는 점도 쉽지 않은 부분이다. 박건형기자 kitsch@seoul.co.kr
  • [18분의 소통 TED2011] 빌 게이츠, 손님들 향해 모기떼 풀어놓고서…

    [18분의 소통 TED2011] 빌 게이츠, 손님들 향해 모기떼 풀어놓고서…

    2009년 3월 미국 롱비치에서 열린 TED 글로벌 콘퍼런스. 연사로 나선 빌 게이츠 전 마이크로소프트 회장이 ‘말라리아’에 대한 얘기를 하고 있었다. 정보기술(IT)이나 정보화 시대에 대한 그의 박학한 지식과 미래전망을 듣고 싶어하던 관객들은 다소 의아해했다. 게이츠는 말라리아가 가난한 아프리카 국민들에게 얼마나 치명적인 위협인지 설명하면서 이들을 적극적으로 돕자고 호소했다. #1 빌 게이츠 ‘모기쇼’의 충격효과 강연이 절정으로 치닫고 있을 때, 갑자기 게이츠가 동그란 유리병을 꺼내들었다. 뚜껑을 열자 병 안에서 모기들이 튀어 나왔다. 조금 전까지 말라리아 모기의 위험에 대해 말하던 게이츠의 돌발 행동에 행사장은 아수라장이 됐다. 뉴욕타임스(NYT), 가디언 등 유력 언론들은 “가장 효과적인 쇼이자 행동이었다.”고 평가했다. #2 바람 길들인 아프리카 풍차소년 2001년 아프리카 말라위의 한 소년이 망가진 자전거와 폐차에서 구한 철판 네 장으로 풍력 발전기를 만들었다. 조악하기 짝이 없었지만, 이 발전기는 전구 네 개와 라디오 두 대를 작동시킬 수 있는 완벽한 발명품이었다. 얘기를 전해들은 TED 주관사 새플링 재단은 이 소년을 2007년 TED 콘퍼런스 연사로 초청했다. 진심어린 소년의 목소리는 TED 행사장을 가득 메운 참석자들의 숨을 죽이게 하고, 강연 동영상은 전세계로 퍼져 나갔다. 윌리엄 캄쾀바라는 이름을 가진 이 소년의 이야기는 ‘바람을 길들인 풍차 소년’이라는 제목으로 출간됐고, 아마존 베스트셀러 1위에 올랐다. ●‘소원’ 말하며 세상 바꾸려는 이들 TED 행사장에 서는 사람들은 원하든 원하지 않든 최소 1억명 이상 사람들을 대상으로 강연하게 된다. 행사장에 선보인 모든 내용이 TED 토크스(talks)로 불리는 동영상으로 공개되기 때문이다. 지난 10년간 빌 게이츠, 빌 클린턴, 제임스 캐머런, 인드라 누이, 빌 포드, 제이미 올리버, 제인 구달, 앨 고어, 보노, 프랭크 게리, 필리프 스타르크, 폴 사이먼 등 이름만 대면 알 만한 연사들이 18분간 자신의 지식을 아낌없이 나눴다. TED의 가장 큰 특징은 전문가들이 자기 전문분야에 대해서만 말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제이미의 키친’으로 유명한 세계적 요리 전문가 제이미 올리버는 ‘요리법’이 아닌 ‘음식을 가르치는 법’을 통해 비만 퇴치를 역설해 지난해 최고의 TED 강연자로 선정됐다. 저명한 교육가 켄 로빈슨은 ‘학교가 (오히려)창의력을 죽인다.’고 주장했다. 연사들은 ‘TED 위시(wish)’로 불리는 ‘자신의 소원’을 강연 중에 말함으로써 세상에 메시지를 던지고, 변화를 꿈꾼다. 혁신적인 기술들도 수없이 등장했다. 지난해 컴퓨터 전문가 존 언더코플러는 특수한 센서가 부착된 장갑을 양손에 끼고 나와 스크린에 3차원으로 배열된 사진 수천장을 마음대로 조작하는 모습을 TED 콘퍼런스 단상에서 보여줬다. 영화 ‘마이너리티 리포트’(2002)에 등장했던 톰 크루즈의 모습 그대로였다. 언더코플러는 ‘지-스피크’라고 명명된 이 기술에 대해 “5년 후 일반인이 구입하는 컴퓨터에 장착될 것”이라고 단언했고 이 강연을 담은 동영상은 TED 사상 최고 조회수를 기록하고 있다. 올초 미국 롱비치 TED에서는 하반신 마비 장애인 아만다가 연단에 올랐다. 스키를 타다 영원히 걸을 수 없게 됐다는 얘기를 진솔하게 털어놓는 그녀에게 로봇공학자 이더 벤더는 ‘로보틱 강화골격’이라는 신기술을 선물했다. 로보틱 강화골격을 입고 휠체어에서 일어나 사람들 앞으로 걸어나오는 아만다의 모습은 당시 강연장에 있던 사람은 물론 동영상을 본 전세계인들에게 TED가 꿈을 실현시키는 강력힌 힘을 가졌다는 사실을 입증했다. 앞서 캄쾀바의 사례에서도 볼 수 있듯이 유명인과 첨단과학을 아는 사람만이 TED를 통해 기회를 얻는 것은 아니다. 12살 어린이 아도라 스비탁은 “세상이 아이 같은 생각을 요구한다. 어린이는 아무것도 잘못하지 않는다. 세상을 망치는 것은 어른들”이라고 주장해 기립박수를 받았다. 아프리카 회색앵무새 ‘아인슈타인’은 조련사 스테파니 화이트와 함께 무대에 올라 관객들에게 놀라운 동물의 능력을 몸소 보여줬다. ●메인 무대에 오르는 한국인들 한국인들도 TED에서 이름을 떨치고 있다. 2006년 TED 글로벌 콘퍼런스에는 컬럼비아대 대학원생인 재미교포 2세 제프 한이 등장했다. 그는 화면 위에 엄지와 검지 손가락을 올리고 확대와 축소를 반복했고, 두 명의 진행자가 동시에 손을 얹고 화면을 조작했다. 누르고 당기는 것이 전부였던 ‘터치’ 기술의 획기적인 변신에 참석자들은 기립박수를 보냈다. 현재 우리는 이 기술을 스마트폰과 태블릿PC를 통해 직접 체험하고 있다. 세계적인 로봇공학자 데니스 홍 버지니아공대 교수도 올 3월 TED 무대에 섰다. 그는 운전대를 잡은 손바닥과 조끼로 진동을, 발바닥으로 압력을, 손으로 공기신호를 받는 시스템을 선보였다. 다름아닌 시각장애인이 운전을 할 수 있는 시스템이었다. 그는 무대에서 시각장애인이 실제 도로를 달리는 장면을 완벽하게 시연했다. 이 아이디어는 좀 더 안전한 자동차를 만들고 싶어하는 대형 자동차 업체들의 관심을 한 몸에 받고 있다. 같은 무대에서 한국인 최초의 TED 펠로(TED가 선정한 신지식인)인 민세희씨가 전력소비량에 따라 집 크기가 달라지는 것을 직접적으로 체감할 수 있는 ‘데이터 시각화’ 기술을 선보이기도 했다. 에든버러 박건형기자 kitsch@seoul.co.kr
  • [WHO&WHAT] 인류 역사를 바꾼 ‘억세게 운 좋은 사내들’ 서바이벌 현장… 승자는?

    [WHO&WHAT] 인류 역사를 바꾼 ‘억세게 운 좋은 사내들’ 서바이벌 현장… 승자는?

    “당신이 상상하는 최고의 행운은 무엇입니까?” 이 질문을 사람들에게 던지면 상당수가 ‘로또 당첨’을 얘기할 것이다. 1등 대박을 꿈꾸며 그렸던 수많은 ‘불가능’이 실제 눈앞에서 현실화하는 것. 그걸 보는 기분은 정말이지 어떤 것일까. 여기 로또보다 더 기막힌 행운의 주인공들이 있다. 무슨 일을 하려고 해도 불운이 겹치는 ‘머피의 법칙’에 가장 어울리지 않는 사람들이다. 이들이 경험한 우연과 행운은 ‘돈’뿐 아니라 역사에 이름을 남기는 ‘명예’까지 함께 가져다 주었다. 그러나 역사는 이들을 행운아로 기록하지 않는다. 인류 역사를 바꾼 ‘위대한 발명가’ 또는 ‘과학자’, ‘고고학자’로만 기억할 뿐이다. 이번 주 서울신문 가상 인터뷰 ‘후 앤드 왓’(Who&What)은 인류 역사상 최고의 행운아를 뽑는 오디션을 개최했다. 심사위원은 샐리 앨브라이트가 맡았다. 어떤 상황에서도 자기에게는 유리한 일만 생긴다고 자신하는 그녀, 영화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의 주인공(멕 라이언 분)이자 ‘샐리의 법칙’을 탄생시킨 룰세터다.  무대에 오른 참가자들은 자기들이 경험한, 그러면서 그들 스스로 믿기 힘들었던 행운에 대해 털어놓기 시작했다. ‘세렌디피티’(우연한 행운)의 대명사가 된 그들의 얘기와 ‘아메리칸 아이돌’의 사이먼 코엘이나 ‘위대한 탄생’의 방시혁에 버금가는 샐리의 독설이 이어졌다. 샐리 : 무려 22년 만에(영화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는 1989년에 개봉), 그것도 이렇게 화려한 무대에 심사위원으로 초대돼 정말 영광입니다. 도대체 어떤 행운을 경험한 분들이 등장하실지 벌써부터 기대가 되는데요, 첫번째 참가자 모시겠습니다.  (객석의 우레와 같은 박수소리) 샐리 : 으악! 할아버지. 이렇게 발가벗고 나오시면 어떡해요. 아르키메데스 : 허허. 설정이 좀 과했나. 나름대로 그 시절 분위기를 살려본 건데…. 난 인류 최초의 스트리킹 기록 보유자. 아니 물리학자이자 수학자이자 화학자이자… 뭐 암튼 과학자이자 철학가인 아르키메데스라고 하네만. ‘유레카’(Eureka)라는 신조어도 내가 만들었는데. 샐리 : 아. 역사책인지 과학책인지 들은 것 같긴 하네요. 근데 설마 스트리킹이 할아버지의 행운은 아니겠죠? 아르키메데스 : 뭐, 다들 아는 얘기라고 생각해서 스트리킹을 콘셉트로 잡아봤는데 아가씨 좀 무식한 거 아닌가. 실망인걸. 입 아픈 얘기를 또 하자면, 난 기원전 3세기 시라큐스의 목욕탕에서 인류사를 바꿀 발견을 했지. 친구이자 친척인 히에로 왕이 순금 왕관을 만들도록 세공사한테 시켰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딴 걸 섞었을 것 같았단 말이지. 그래서 나한테 그걸 조사해 달라고 하는데, 무게가 같으니까 알아낼 방법이 없었거든. 나라고 별 수 있나. 머리만 싸매고 있다가 목욕탕에 갔는데, 욕조에 몸을 담그는 만큼 물이 넘치는 걸 발견했지. 그 순간 난 벌거벗은 채로 미친 듯이 집으로 뛰어가면서 ‘유레카’를 외쳤지. 어라. 그게 무슨 발견인지 이해를 못하는 것 같은데. 금, 은, 동은 밀도가 다 다르잖아? 그럼 같은 무게가 됐을 경우에 부피가 달라지거든. 결국 금에 다른 걸 섞으면 무게가 같아도 넘치는 물의 부피는 달라지지. 이게 바로 ‘아르키메데스의 법칙’이라고 불리는 위대한 인류의 성과야. 샐리 : 아. 말씀하시는 동안 뒷조사를 좀 했는데요. 이 오디션의 가장 큰 평가요소가 ‘행운’과 ‘우연’인 건 알고 계시죠? 그런데 할아버지는 모래 위에 기하학 문제를 풀다가 로마 병사가 그걸 밟았다고 화내다가 세상을 뜨셨다면서요? 죄송하지만, ‘가장 어이없는 죽음’ 오디션에 나가시면 더 좋은 성적을 받을 것 같네요. 다음 참가자 나오세요. 단체 참가자군요. 양취위안 : 저희는 중국 시안(西安)에서 온 농부들입니다. 이름은 양씨인데, 별로 중요한 건 아니고. 음…. 샐리 : 오디션 무대가 낯설다는 건 이해합니다. 그래도 뒷 참가자들을 위해서 좀 더 간략하고, 빠르게 설명을 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양취위안 : 예. 1974년의 일인데요, 우리는 시안의 리산(驪山)에서 우물을 파고 있었습니다. 아주 가뭄이 심한 해였거든요. 알다시피 농사꾼이 제일 무서운 게 가뭄이잖아요. 그래서 수도 베이징(北京)에서 관리까지 와서 우리더러 우물을 파라고 막노동을 시키고 있었어요. 밑으로 4m쯤까지 바닥을 팠는데 갑자기 흙으로 만든 사람이 나오더라고요. 솔직히 벌 받을까봐 무서워서 도망치려고 했는데, 감독관이 계속 파라 그래서 파다보니 사람이 자꾸 나오고 길도 나오고 그랬죠. 샐리 : 그게 뭐였죠? 양취위안 : 그게 진시황제의 병마용이었어요. 한 2000년쯤 됐다고 하대요. 아직도 다 못 팠어요. 어림짐작으로 넓이가 55㎢쯤 된다더라고요. 샐리 : (짝짝짝) 참 대단한 발견들을 하셨습니다. 그래서 돈은 좀 버셨나요? 양취위안 : 아뇨. 우리나라가 공산주의 국가이다보니 별다른 보상은 받지 못했어요. 다시 농부로 돌아갔죠. 다만 시안이 관광지로 각광받으면서 후손들이 지금은 덕을 좀 보고 있어요. 샐리 : 아, 안타깝습니다. 돈과 명예를 얻고 끝이 좋아야한다는 오디션의 취지에는 적합하지 않네요. 그리고 사실 고고학적인 발견에서 ‘농부’나 ‘우물파기’는 너무 식상한 감이 있습니다. 이탈리아 폼페이 유적도 농부가 우물을 파다가 나왔고, 성경해석의 열쇠였던 ‘사해(死海)문서’도 양치기 소년들이 동굴찾기를 하다 발견했거든요. 조심해서 돌아가시길 바랍니다. 다음 참가자는… 커플, 아니 파트너시군요. 아르노 펜지어스 : 안녕하세요. 전 아르노 펜지어스이고 이 친구는 로버트 윌슨입니다. 저희는 과학자이긴 한데, 사실 하는 일은 거의 안테나 개발자에 가까웠죠. 통신위성을 쏘고 나면 거기에서 나오는 전파를 잡는 전파 안테나를 만들었거든요. 1964년에 미국 뉴저지의 벨연구소에 있을 때 자꾸 잡음이 잡히더라구요. 그래서 안테나 위에 비둘기도 쫓아내고, 새똥도 치우고 별짓을 다했는데도 해결이 안 됐어요. 둘이서 계속 머리를 맞댄 끝에 그게 뭔지 알아냈습니다. 샐리 : 뭐였는데요? 펜지어스 : 그게 바로 150억년 전에 우주대폭발 ‘빅뱅’의 흔적인 우주배경복사였습니다. 안테나를 고치다가 우주 탄생의 증거를 찾은 거죠. 그 덕에 노벨상도 받았습니다. 한마디로 인생이 활짝 핀 거죠. 그 일이 없었으면 아직까지 어느 동네에서 안테나나 만들고 있었을 텐데 말이죠. 샐리 : 흥미롭긴 한데, 개념이 너무 어려워서 솔직히 마음에 와 닿지는 않네요. 거기다 빅뱅은 아직도 우리가 모르는 게 너무 많잖아요. 오늘 참가자 중 유일하게 두 분만 생존해 계신 분들이니, 다음 기회에 다시 오시면 더 좋은 결과가 있을 것 같습니다. 다음 분 나오세요. 알프레드 노벨 : 난 앞에 나온 친구들이 받은 그 상을 만든 사람이오. 그 상 받는 게 평생의 소원인 사람들이 전 세계에 몇 억명은 될 걸. 샐리 : 아. 폭탄 제조의 1인자시군요. 근데 ‘우연’이나 ‘행운’과 어떤 관계가. 노벨 : 먼저 1800년대 중반에 제일 많이 연구됐던 폭탄이 니트로글리세린이었다는 사실부터 말해야겠군. 근데 이게 너무 불안정해서 활용이 쉽지 않았지. 맨날 터지고 사고 나고. 한번은 내 공장이 폭발하면서 동생도 죽고, 그 충격으로 아버지도 돌아가셨어. 그래서 난 결심했지. 원활한 철도공사를 위해 더 안전하고 강력한 폭탄을 만들겠다고. 그러던 중에 실험실에서 유리조각에 손가락을 베였고, 당시 치료약으로 쓰이던 콜로디온을 발랐어. 근데 그 끈적끈적한 콜로디온을 활용하면 폭약 제조가 좀 쉬워질 것 같다는 생각이 퍼뜩 들더라고. 그 결과 ‘폭발성 젤라틴’을 만들어냈지. 또 니트로글리세린 용기가 부식돼 새어나와 흙에 스며든 것을 보고는 다이너마이트를 만들었지. 샐리 : 둘 다 우연이자 행운이다, 이 얘기이신 것 같은데요. 살아계실 땐 항상 발명품들이 ‘우연’이라는 것을 부인하셨죠? 오디션 욕심은 알겠지만, 좀 모순이네요. 노벨상을 만들어서 인류 발전에 이바지하신 점은 참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그런데 평생 고독하게 사셨고 수학자를 싫어해서 노벨상에 수학을 빼셨다는 얘기도 있던데. 노벨 : (묵묵부답) 샐리 : 암튼 만나봬서 영광이었습니다. 다음 분 나오시죠. 찰스 굿이어 : 전 미국의 발명가이자 사업가인 굿이어입니다. 저 때만 해도 고무는 계륵이었어요. 매력적인 재료이기는 한데 모양 변형이 쉽지 않았고 온도가 높아지면 굳어버리거나 부서져 버렸죠. 전 평생 이 일에 매달리면서 여러가지 물질을 섞어봤어요. 그러다가. 샐리 : 잠깐만요, 굿이어씨. 혹시 어디에 실수로 뭘 떨어뜨렸는데 그게 고무를 유용하게 만들어줬다. 뭐 그런 류의 얘기는 아니겠죠? 그러면 좀 전에 노벨씨 얘기와 너무 비슷해서 실망할 것 같은데요. 굿이어 : 그… 그게, 실은 유황을 실수로 고무랑 섞었는데, 녹지 않는 성질을 발견해서. 샐리 : 아. 됐습니다. 별로 창의적인 얘기는 아니군요. 여기까지만 듣겠습니다. (들어가는 굿이어 뒤에 대고) 근데 방금 그 굿이어씨 이름이 ‘굿이어 타이어’의 굿이어랑 같은 건가요? 흠~ 자 그럼 마지막 참가자 나오세요. 요한 볼프강 폰 괴테 : 왜 내가 여기 나왔는지 잘 모르겠데. 난 평생 철저한 철학 속에서 살아왔다고 자부하는데, 이런 내가 우연을 논하는 자리에 서다니 영문을 알 수 없군. 샐리 : 아. 특별초대 손님 괴테님이시군요. 물론 파우스트 같은 문학적 성과나 철학적 성과를 우연이나 행운으로 폄훼하려는 의도는 아닙니다. 저희가 오늘 모신 것은 비교해부학의 선구자로서인데요. 괴테 : 아. 그거? 그렇지, 거기엔 좀 우연이 있지. 난 포유류와 사람이 같은 계보라는 증거를 찾기 위해 부단히 노력한 과학자이기도 했거든. 당시 학자들은 포유류 위턱의 앞부분에 있는 ‘간악골’이 사람에겐 없다는 이유로 포유류와 사람이 다르다고 주장했어. 그런데 내가 베니스의 한 공동묘지에서 태아의 유골을 보고, 사람의 간악골은 자라면서 점차 유착이 돼서 사라진다는 것을 처음으로 밝혀냈지. 뭐 내가 직접 해부를 하지 않고도 찾아낼 수 있었다는 점에서 인류에겐 큰 축복이자 행운이지. 샐리 : 잠깐만요. 그 공동묘지에서 간악골을 찾아낸 게 사실은 괴테 당신이 아니라 하인이고, 당신은 그 공을 빼았았다는 얘기가 있던데요. 전후 사정을 설명하기가 애매하니까, ‘우연’으로 포장한 거 아닌가요? 괴테 : 아니 아니, 그럴 리가 있나. 다 나를 음해하는 주변 사람들과 말 옮기기 좋아하는 후세인들이 만들어낸 얘기라고. 난 불쾌해서 더 이상 이 자리에 못 있겠구만. 들어가겠네. 샐리 : 자~ 그럼 오늘 오디션을 정리하도록 하죠. 시대와 분야에 상관없이 내로라하는 사람들을 한 자리에 모아봤지만, 그 누구도 온전한 ‘행운’과 ‘우연’만으로 역사를 바꿀 수는 없다는 것을 뼈저리게 깨닫게 됐네요. 특히 많은 사람들이 우연이라고 믿고 있는 것이 실제로는 그들의 노력에 의한 필연적 산물이라는 것도 확인됐습니다. 우승자는 없다고 해야겠죠? 박건형기자 kitsch@seoul.co.kr ●참고문헌 우연과 행운의 과학적 발견 이야기(로이스톤 로버츠·안병태/도서出판국제) 역사를 다시 쓴 10가지 발견(패트릭 헌트·김형근/오늘의책) 우연한 발견을 위대한 발명으로(최달수/김영사) 우연의 법칙(슈테판 클라인·유영미/웅진지식하우스) 세계사를 바꾼 위대한 발명들(헬레인 베커·하정임/다른) 세계사를 뒤흔든 16가지 발견(구드룬 슈리·김미선/다산초당) 서울신문은 매주 1회 독특한 포맷의 가상 인터뷰 [WHO&WHAT(후 앤드 왓)]을 1개면에 걸쳐 연재하고 있습니다. 일반 신문기사로는 다루기 힘든 동서고금의 지식과 역사의 정수들을 만남 또는 대담의 형식을 통해 알기 쉽고 재미있게 소개하는 지면입니다. 청소년, 어른 모두에게 즐겁고 색다른 지식의 장이 될 것으로 자부합니다. 특히 입시를 준비하는 학생들에게는 훌륭한 논술교재로도 활용할 수 있을 것입니다.[WHO&WHAT] “퀴즈쇼서 인간에 완승한 슈퍼컴 왓슨(Watson)을 만나다” [WHO&WHAT] 무덤에서 불러낸 독재자 4인의 가상만찬 ‘재스민 혁명’을 논하다 [WHO&WHAT] 천재소년 송유근, ‘우주비행 성공 50주년’ 맞아 유리 가가린을 만나다 [WHO&WHAT] ‘슈퍼히어로’ 스파이더맨, 정신과 전문의 김상준 원장과 상담하다 [WHO&WHAT] 지구수비대 지원한 인간형 로봇 ‘마루’ “아톰·태권V처럼 지구 지켜서…” [WHO&WHAT] ‘최악’ 통념 B형 男기자, 혈액형의 아버지 ‘란트슈타이너’에 따지다 [WHO&WHAT] ‘전 세계 여성의 로망’ 버킨백을 만나다 [WHO&WHAT] 선택 따라 전혀 다른 결과…”이렇게 검색하면 진리가 밝혀질까?” [WHO&WHAT] “남느냐, 떠나느냐” 희곡으로 본 어느 서재 도서들의 열띤 논쟁 [WHO&WHAT] ‘위대한 유산’ 남긴 간송미술관의 전형필, 그리고 우피치미술관의 메디치 [WHO&WHAT] 위대한 예술가 미켈란젤로, 그는 왜 라파엘로를 죽이고 싶었을까 [WHO&WHAT] ‘美우주왕복선은 초대형 폭탄이나 마찬가지’ 물리학자 파인먼의 폭로 [WHO&WHAT] 외규장각 도서 귀환으로 본 약탈문화재의 ‘수구초심(首丘初心)’ [WHO&WHAT] “재능만 주고 사랑은 주지 않던 나쁜 부모들” 유명 인사들의 회상기 [WHO&WHAT] 인류역사를 바꾼 ‘억세게 운 좋은 사내들’ 서바이벌 현장…과연 승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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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티브로드, 새 CI 발표

    티브로드, 새 CI 발표

    복수종합유선방송사업자(MSO) 티브로드는 4일 서울 종로구 신문로 씨네큐브에서 기업이미지(CI) 개편 선포식을 갖고 ‘소통과 즐거움을 주는 세상을 여는 창’을 주제로 한 새 CI를 발표했다. 카메라 창 이미지를 담은 새 CI는 티브로드를 통해 새로운 세상을 만날 수 있다는 사실을 강조했으며, 숫자 1은 최고를 지향하는 기업 가치를 표현했다. 티브로드는 CI 개편을 기념해 21개 방송 권역에 있는 다문화가정지원센터에 결혼이민자 및 자녀를 위한 한국 생활 가이드 책자와 학습 교재 등을 전달할 계획이다. 이상윤 티브로드 대표는 “국내 1위 케이블TV 방송사에 안주하지 않고 차별화되고 성숙한 방송 통신 서비스를 제공할 것”이라면서 “올해 8000억원, 내년 1조원 매출을 달성하겠다.”고 밝혔다. 박건형기자 kitsch@seoul.co.kr
  • 청계광장에 ‘칠석 행사’ 재현된다

    일제강점기 문화말살정책으로 인해 잊혀진 우리 고유의 축제 ‘칠석제’가 서울의 중심 청계광장에서 재현된다. 한국여성향토문화연구원은 ‘제8회 7·7 칠석 연인의 날’ 행사를 5일부터 7일까지 3일간 서울 청계광장일대에서 개최한다고 4일 밝혔다. 올해로 8회째를 맞은 이번 행사는 우리 고유의 축제인 칠석을 계승하자는 의미로 시작됐다. ‘견우와 직녀’의 눈물겨운 사랑이야기로 널리 알려져 있는 칠석은 원래 직녀에게 제를 올리던 날을 뜻하며 대표적인 우리 민족 고유의 행사다. 한국여성향토문화연구원은 행사기간동안 ‘칠석’의 의미를 알리는 한편 다양한 전통행사를 시민들이 직접 체험할 수 있게 할 계획이다. 매일 저녁에는 무형문화재가 ‘칠석굿판’을 선보이고 ‘물청소’(물속 쓰레기 줍기), ‘책말리기’, ‘연인식’(곶감은행알 나누기)도 열린다. 이와 함께 칠석제 삼행시 짓기, 소원 풍선 날리기, 풍물놀이, 판소리 공연 등의 다채로운 행사들도 진행될 예정이다. 이번 ‘칠석 연인의 날’ 행사는 칠석을 세계유네스코문화유산에 등록하기 위해 여성향토문화연구원이 추진하고 있는 프로젝트의 일환이다. 민족 고유의 행사인 ‘칠석’에 대한 정부와 시민들의 관심과 참여를 이끌어 내는 것이 목표다. 여성향토문화연구원의 한 관계자는 “최근 중국이 우리의 문화유산인 ‘농악’을 먼저 유네스코에 등록하고 ‘아리랑’은 중국국가중요무형문화재로 등록하는 등 우리 문화재 보존의 필요성이 커지고 있다.”면서 “중국과 일본의 역사왜곡에 대해서 국민들의 관심과 함께 정부 차원의 적극적인 지원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번 행사를 주관하고 있는 한국여성향토문화연구원 차옥덕 원장은 “고등학생들이 한국사 교육도 제대로 못 받고 대학생이 되는 것이 지금 한국의 현실”이라며 “이번 행사를 통해 특히 젊은 사람들, 특히 학생들이 우리 전통 문화에 관심을 가지게 되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박건형기자 kitsch@seoul.co.kr
  • 김상기 전 동아일보 회장 별세

    김상기 전 동아일보 회장 별세

     김상기 전 동아일보 회장이 3일 새벽 숙환으로 별세했다. 94세. 1918년 전북 고창에서 출생한 고인은 동아방송 국장, 동아일보 회장 등을 지냈다. 유족으로는 부인 원종숙 여사와 아들 병국(한국국제교류재단 이사장·고려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병표(㈜주원 대표이사)씨, 딸 창원·영원·효신씨, 며느리 주영아·신준희씨, 사위 이종훈·이민교씨가 있다. 빈소는 서울 아산병원 장례식장 30호실이며 발인은 6일 오전 8시. (02)3010-2000 박건형기자 kitsch@seoul.co.kr   
  • 이제는 당당하게 즐감하세요

    이제는 당당하게 즐감하세요

     텔코웨어(대표 금한태)는 28일 영화전문잡지 씨네21과 손잡고 미디어 콘텐츠를 제공하는 ‘즐감’ 서비스를 출시했다고 밝혔다. ‘즐감’은 즐거운의 ‘즐’과 감상/감성의 ‘감’을 더해 만들어진 브랜드다.  스트리밍 형태로 영화 • 드라마 • 애니 등의 콘텐츠를 제공하고 있으며 씨네21 홈페이지(http://www.cine21.com)에서 이용이 가능하다. 씨네21은 ‘즐감’서비스를 중심으로 홈페이지를 새롭게 개편했다.  ‘즐감’에서 한번 구매한 영상 콘텐츠는 PC와 스마트폰, 태블릿PC 등 각종 기기에서 별도의 파일변환 작업 없이 바로 감상할 수 있다. 특히 모바일용 웹(http://m.cine21.com)으로도 서비스 되고 있어, 스마트폰 사용자는 더욱 편리한 사용자환경(UI)에서 이용이 가능하다.  텔코웨어 정은진 과장은 “범정부 차원의 콘텐츠 산업 육성에 힘이 실리고 있어, 합법적인 미디어 콘텐츠 서비스 시장이 확대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면서 “조만간 스마트TV에도 ‘즐감’과 같은 서비스를 탑재해 영화, 드라마 등 다양한 콘텐츠를 제공할 것”이라고 말했다.  텔코웨어와 씨네21은 이번 사업을 위해 지난해 10월 양해각서(MOU)를 체결한 바 있다.   박건형기자 kitsch@seoul.co.kr
  • [WHO&WHAT] 재능만 주고 사랑은 주지 않던 부모에 대한 유명인사들의 회상기

    [WHO&WHAT] 재능만 주고 사랑은 주지 않던 부모에 대한 유명인사들의 회상기

    “어머니께서 불을 끄고 떡을 썰지 않았다면 나는 나의 미숙함을 깨닫지 못했을 것이다. 눈물을 감추고 나를 다시 암자로 돌려보낼 때 어머니는 분명 피눈물을 흘리셨을 테지.” 우리가 알고 있는 상식으로 석봉 한호(1543~1605)에게 그의 어머니 백씨 부인에 대해 묻는다면 아마도 이런 대답이 돌아올 것이다. 율곡 이이(1536~1584)가 조선의 대유학자가 된 배경에는 현모양처의 대명사인 어머니 사임당 신씨(1504~1551)가 큰 영향을 미쳤을 것이 분명하다. 흔히 역사에 천재로 이름을 남긴 위인들의 뒤에는 훌륭한 부모가 있다고들 한다. 학교에 적응하지 못했던 발명왕 토머스 에디슨(1847~1931)은 어머니와 ‘홈스쿨링’을 통해 창의력을 키웠고, 미국 초대 대통령 조지 워싱턴(1732~1799)은 자기 업적보다 벚나무를 벤 실수를 고백하자 용서하고 격려한 아버지와의 일화(실제로는 꾸며낸 일이라는 설이 유력)로 더 유명하다. 부모의 영향력은 오늘날에도 여전하다. 한국축구의 대들보 박지성의 아버지 박성종씨, 피겨여왕 김연아의 어머니 박미희씨의 교육법과 열정은 제2의 박지성·김연아를 키우려는 부모들의 롤모델이자 벤치마킹 모델로 주목받고 있다. 그러나 모든 일에는 예외가 있는 법. 여기 자녀들에게 재능만 물려줬을 뿐 사랑이나 진정한 교육은 주지 않았던 부모들이 있다. 가상인터뷰 ‘후 앤드 왓’(Who&What) 이번 주의 주인공은 올리버 트위스트처럼 삐뚤어진 어린 시절을 보내야만 했던 불행한 천재들이다. 무자비한 폭력에 시달리고, 일거수일투족을 감시받았던 우울한 그들의 내면을 가상의 일기장을 통해 들여다봤다. 어린 시절의 불행이 이들이 남긴 업적의 원동력은 아니었을까. 그렇다면 우리는 인성과 성공, 행복을 얻을 수 있는 모든 부모의 꿈, ‘완벽한 교육법’을 어디에서 찾아야 할까. ■프로이센 계몽군주 프리드리히 2세 “내 친구도 죽인 매정한 부왕 왕실생활이 동냥보다 비참” ●왕자 시절인 18세(17 32년) 때의 일기 왕가의 숙명을 거부하고 도망치려다 결국 내 손으로 친구를 죽인 꼴이 됐구나. 궁궐 탈출을 끝까지 말렸던 한스(한스 헤르만 폰 카테 소위)는 결국 내 고집 때문에 오늘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지고 말았다. 나라를 부강하게 만드는 것 이외에 아무런 관심이 없는 아버지(프리드리히 빌헬름 1세). 무기징역을 선고받은 한스를 황제의 직권으로 사형시킨 것은 결국 나를 겨냥한 것일 테지. 자식에게 이렇게 잔인할 수 있단 말인가. 지난 18년은 나에게 혼란의 연속이었다. 아버지는 날 프로이센 사람으로 만들려고 하고, 어머니(조피 도로테아·하노버 왕조를 창시한 조지 1세의 딸)는 프랑스 왕족이 최고라고 하니 난 규율과 자유 어느 쪽도 제대로 배우지 못했다. 아버지는 아예 내 수업을 감시하는 대령을 뒀고, 내 스승은 문학을 가르쳤다는 이유로 아버지에게 발길질을 당한 후 쫓겨났다. 아버지는 플루트 연주도, 시도 허용하지 않는다. 내가 원하는 건 권력이 아니라 예술인데 말이다. 왕실에서 사느니 차라리 동냥을 해서 빌어먹고 싶을 정도로 비참하다. 난 결심했다. 다시는 내 속내를 아버지에게 드러내지 않을 테다. 아버지보다는 내가 오래 살 테니 그때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하면 되는 것 아니겠는가. ●아버지에 대한 미움이 이중인격으로 ‘탈주사건’으로 친구 카테 소위가 처형당한 후 프리드리히 2세는 다시는 반항하지 않았다. 철저히 자신을 숨겼고, 아버지에게 복종하는 모습만 보여 신임을 얻었다. 1740년 왕좌에 오른 프리드리히 2세는 금욕적이고 냉철한 정치를 했던 아버지와 전혀 다른 길을 걸었다. 정치적·종교적 소수자를 위한 정책을 폈고 노예제 폐지에 앞장섰다. 그러나 그의 마음속에는 불신이 가득했다. 이는 어린 시절 부모에게서 받은 폭력과 강압 때문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자기와 뜻이 다른 사람을 잔인하게 처단했고, 다른 사람의 의견은 철저하게 무시했다. 역사학자들은 그를 ‘어떤 왕보다 더 차가운 내면을 지닌 야누스적인 왕’으로 평가한다. ■美 35대 대통령 존 F 케네디 “불륜 즐기고 떳떳한 아버지 어엿한 보스턴상류층 일원” ●하버드대에 다니던 2 0세(1937년) 때 이젠 언제 어디서나 여자들과 즐길 수 있게 됐다. 병원에서도 간호사들과 사랑을 나눌 수 있으니. 아버지가 옳았던 것 같다. 여자는 어디까지나 남자들의 성공에 대한 자만심을 충족시켜 주는 트로피에 불과하다. 위대한 남자라면 두 개의 삶 정도는 가져도 무방한 것 같다. 아버지는 출신(케네디 가문은 본인들이 아일랜드 출신이라는 사실을 밝히길 꺼렸다)을 완벽하게 바꿔놓을 정도로 열심히 일했고, 결국 보스턴 상류사회에 진입할 수 있었다. 어머니(로즈 케네디)는 지나치게 엄격하지만, 뭐 내가 미래에 이 나라를 이끌어 가려면 예의범절과 자기규율은 엄하게 배울수록 좋겠지. 겉으로 드러나는 모습은 포장에 불과한 것 아니겠는가. 다만 최근 들어 상인 출신인 아버지와 나는 좀 다르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여배우와 불륜을 즐기면서도 떳떳한 아버지처럼 행동했다간 분명 내 발목을 잡는 일이 생길 것 같다. 언제나 포장은 필요한 법이지. 나처럼 외견상으로는 완벽한 여성을 만나 결혼하고, 내 생활은 최대한 조용히 만끽하면 된다. 우리 부모님들조차 5년 전부터 각방을 쓰고 있지만, 여전히 우리 가문은 존경받는 신흥 명문가이지 않은가. ●바람기는 대를 이었다. 케네디의 아버지 조지프는 영화계에 투자하면서 여배우 글로리아 스완슨이라는 여배우와 염문을 뿌렸고 케네디가는 겉모습과는 달리 완벽하게 흩어지기 시작했다. 이는 추후 메릴린 먼로와 케네디의 스캔들로 대를 이었다. 누구에게나 선망받던 케네디와 재클린 오나시스의 결혼생활 역시 남편의 바람과 아내의 낭비벽으로 점철됐다. 케네디는 아버지처럼 여성에 집착했고 수많은 여성과 스캔들을 일으켰지만 재클린은 자기 시어머니처럼 이를 내색하지 않았다. 어린 시절 엄격했던 어머니 로즈 때문에 케네디는 평생 압박감에 시달렸고, 각성제 암페타민과 진통제에 의존했다. ■佛국민가수 에디트 피아프 “사창가서 자란 내 어린시절 어머니가 여덟명이나 생겨” ●집을 떠나던 15세(19 34년) 때 내 인생을 철저히 다시 써야 한다. 어떻게 하면 좋을까. 내가 서커스단의 난쟁이 곡예사와 사탕을 팔던 여인 사이에서 태어났다는 진실을 얘기하면 사람들이 나한테 관심을 가질까. 그래 차라리 빈민촌의 가로등 아래에 버려진 것으로 하자. 경찰관들이 나를 발견했다고 얘기하면 더 극적이겠지. 난 이곳을 벗어나야 한다. 다락방에서 어린 내 음식에 술을 타던 외할머니. 쥐떼가 우글거려서 면역력을 키우려 그랬다지. 어머니를 버렸던 아버지는 날 그곳에서 구한답시고 친할머니에게 버렸고, 난 사창가에서 자라야만 했다. 무려 여덟명의 어머니가 생긴 그 시절은 돌이켜보면 내 인생에서 가장 행복했던 순간이다. 하지만 제대로 된 남자가 날 지켜주고 있다는 느낌을 받지는 못했다. 여자는 무조건 남자의 요구에 따라야 한다. 내가 커온 사창가의 법칙이 그랬으니까. 그러나 아버지의 무지막지한 따귀는 더 이상 참기가 힘들다. 내 부모는 나에게 목소리를 줬다. 그 덕분에 난 이제 집을 나가도 살 수 있을 테지. 언젠가 성공한다면 난 엄마보다 훌륭한 어머니가 될 것이고, 아버지보다 훌륭한 남편을 만날 것이다. 어쨌든 난 평범한 여자처럼 살고 싶다. ●과거의 그림자에서 벗어나지 못하다. 집을 나간 피아프는 독특한 목소리를 무기로 역사상 가장 유명하고, 전 세계인이 가장 사랑하는 샹송 가수가 됐다. 하지만 사창가에서 자란 피아프는 평생 남자관계에 어려움을 겪었다. 자신을 지배하거나 때리는 남자들에게 매력을 느꼈고, 실제로 “사랑이란 커다란 소동이나 엄청난 거짓말, 번갈아가며 양쪽 뺨에 따귀를 맞는 것과 같다.”는 고백을 하기도 했다. 남자친구에게 따귀를 맞아 벌겋게 달아오른 얼굴로 공연에 오르는 일도 흔했다. 암흑 같은 과거의 그림자는 피아프를 평생 괴롭혔다. ■스페인 초현실주의 화가 살바도르 달리 “어릴적부터 맘대로 하던 나 ‘최고’ 소리 안들으면 못참아” ●산 페르난도대 신입생 시절인 18세(1922년) 때 예술이 생계수단이 될 수 없다고? 아무것도 모르는 식인종 같으니라고. 아버지(돈 살바도르)에게 굽히는 건 오로지 내가 학업을 이어갈 돈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내가 미술교사의 길을 걷도록 하려는 아버지의 계획에는 추호도 관심이 없다. 난 장학금을 받아 로마에 갈 것이고, 거기에서 돌아오면 난 천재가 되어 세상이 우러러볼 것이다. 입학식에 무슨 옷을 입을까. 망토? 금박 지팡이? 너무나 파격적인 내 옷차림에 교수들은 당황하겠지. 난 여섯살에는 요리사가, 일곱살에는 나폴레옹이 되고 싶었고, 그 이후 점점 더 내 야망은 뻗어갔다. 여동생의 머리를 축구공처럼 차버리든, 친구가 타고 있는 자전거를 낭떠러지로 밀어버리든 부모는 내가 최고라고 치켜세웠다. 그렇다. 난 천재다. 1등이었던 형을 대신하는 2등 아들이 아니라는 것을 세상에 알리기 위해 난 무슨 일이든 할 것이다. 어릴 때부터 뭐든 내 맘대로 해 왔는데, 이제 와서 꿈을 포기하라니 꼭 후회하게 해 줄 것이다. ●과보호 속에 커버린 최고의 이기주의자로 달리의 형을 잃은 부모는 어린 달리를 완벽한 독재자로 키웠다. 무한한 인내심과 자유방임이 유일한 교육철학이었다. 어떤 끔찍한 행동을 하고 버릇없이 굴어도 결코 야단치지 않았다. 부모가 자신을 형의 대신으로 여긴다고 생각한 달리는 오로지 유명해지는 것을 인생의 목표로 삼았다. 달리는 그림으로 인정받은 후에도 기행을 멈추지 않았다. 1940년부터 1965년까지 달리의 이름은 거의 단 하루도 빠지지 않고 신문, 라디오, TV에 언급됐다. 박건형기자 kitsch@seoul.co.kr >> 참 고 서 적 << ▲18인의 천재와 끔찍한 부모들(외르크 치틀라우·강희진/ 미래의 창) ▲살바도르 달리(살바도르 달리·이은진/ 이마고) ▲결코 사라지지 않는 로마 신성로마제국(기쿠치 요시오·이경덕/ 다른세상) ▲죽기전에 꼭 알아야 할 세계역사 1001 DAYS(마이클 우드·박누리/ 마로니에북스) ▲에디트 피아프(실뱅 레네·신이현/ 이마고) ▲케네디 평전(로버트 댈럭·정초능/ 푸른숲) ▲케네디가의 형제들(에드워드 케네디·구계원/ 현암사) 서울신문은 매주 1회 독특한 포맷의 가상 인터뷰 [WHO&WHAT(후 앤드 왓)]을 1개면에 걸쳐 연재하고 있습니다. 일반 신문기사로는 다루기 힘든 동서고금의 지식과 역사의 정수들을 만남 또는 대담의 형식을 통해 알기 쉽고 재미있게 소개하는 지면입니다. 청소년, 어른 모두에게 즐겁고 색다른 지식의 장이 될 것으로 자부합니다. 특히 입시를 준비하는 학생들에게는 훌륭한 논술교재로도 활용할 수 있을 것입니다.[WHO&WHAT] “퀴즈쇼서 인간에 완승한 슈퍼컴 왓슨(Watson)을 만나다” [WHO&WHAT] 무덤에서 불러낸 독재자 4인의 가상만찬 ‘재스민 혁명’을 논하다 [WHO&WHAT] 천재소년 송유근, ‘우주비행 성공 50주년’ 맞아 유리 가가린을 만나다 [WHO&WHAT] ‘슈퍼히어로’ 스파이더맨, 정신과 전문의 김상준 원장과 상담하다 [WHO&WHAT] 지구수비대 지원한 인간형 로봇 ‘마루’ “아톰·태권V처럼 지구 지켜서…” [WHO&WHAT] ‘최악’ 통념 B형 男기자, 혈액형의 아버지 ‘란트슈타이너’에 따지다 [WHO&WHAT] ‘전 세계 여성의 로망’ 버킨백을 만나다 [WHO&WHAT] 선택 따라 전혀 다른 결과…”이렇게 검색하면 진리가 밝혀질까?” [WHO&WHAT] “남느냐, 떠나느냐” 희곡으로 본 어느 서재 도서들의 열띤 논쟁 [WHO&WHAT] ‘위대한 유산’ 남긴 간송미술관의 전형필, 그리고 우피치미술관의 메디치 [WHO&WHAT] 위대한 예술가 미켈란젤로, 그는 왜 라파엘로를 죽이고 싶었을까 [WHO&WHAT] ‘美우주왕복선은 초대형 폭탄이나 마찬가지’ 물리학자 파인먼의 폭로 [WHO&WHAT] 외규장각 도서 귀환으로 본 약탈문화재의 ‘수구초심(首丘初心)’ [WHO&WHAT] “재능만 주고 사랑은 주지 않던 나쁜 부모들” 유명 인사들의 회상기 [WHO&WHAT] 인류역사를 바꾼 ‘억세게 운 좋은 사내들’ 서바이벌 현장…과연 승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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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코바코, 한번 비리도 즉시 퇴출

    한국방송광고공사(코바코)가 비리 직원을 적발하는 즉시 퇴출시키는 ‘원 스트라이크 아웃제’를 도입하기로 했다. 코바코는 “청렴문화 확산을 위해 금품이나 향응 수수 등 비위 행위가 적발된 직원에 대해 인사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즉시 퇴출시킬 수 있도록 했다.”고 27일 밝혔다. 세 차례의 기회를 주는 ‘삼진 아웃제’ 등과 달리 곧바로 최고 수준의 조치를 내림으로써 비위 소지를 원천적으로 차단하겠다는 뜻이라고 코바코는 설명했다. 코바코는 또 인사규정에 인사청탁 금지조항을 신설해 인사청탁을 한 사람에게 불리한 처우가 가능하도록 명문화했다. 필요한 경우에는 청탁자의 명단을 공개하기로 했다. 특히 비위로 면직된 사람은 다른 공공기관 등에 5년간 취업을 제한하는 규정도 신설했다. 법인카드의 부적절한 사용을 막는 방안도 도입했다. 법인카드의 편법 및 부적절한 사용이 적발될 경우 사용분에 대해 금액회수 조치를 하는 것은 물론이고 1개월에서 6개월까지 카드 사용을 금지하기로 했다. 박건형기자 kitsch@seoul.co.kr
  • 기행과 악행, 그가 25년 하루도 빠짐없이 신문에 이름 올린 이유…

    기행과 악행, 그가 25년 하루도 빠짐없이 신문에 이름 올린 이유…

    “어머니께서 불을 끄고 떡을 썰지 않았다면 나는 나의 미숙함을 깨닫지 못했을 것이다. 눈물을 감추고 나를 다시 암자로 돌려보낼 때 어머니는 분명 피눈물을 흘리셨을 테지.” 우리가 알고 있는 상식으로 석봉 한호(1543~1605)에게 그의 어머니 백씨 부인에 대해 묻는다면 아마도 이런 대답이 돌아올 것이다. 율곡 이이(1536~1584)가 조선의 대유학자가 된 배경에는 현모양처의 대명사인 어머니 사임당 신씨(1504~1551)가 큰 영향을 미쳤을 것이 분명하다. 흔히 역사에 천재로 이름을 남긴 위인들의 뒤에는 훌륭한 부모가 있다고들 한다. 학교에 적응하지 못했던 발명왕 토머스 에디슨(1847~1931)은 어머니와 ‘홈스쿨링’을 통해 창의력을 키웠고, 미국 초대 대통령 조지 워싱턴(1732~1799)은 자기 업적보다 벚나무를 벤 실수를 고백하자 용서하고 격려한 아버지와의 일화(실제로는 꾸며낸 일이라는 설이 유력)로 더 유명하다. 부모의 영향력은 오늘날에도 여전하다. 한국축구의 대들보 박지성의 아버지 박성종씨, 피겨여왕 김연아의 어머니 박미희씨의 교육법과 열정은 제2의 박지성·김연아를 키우려는 부모들의 롤모델이자 벤치마킹 모델로 각광받고 있다. 그러나 모든 일에는 예외가 있는 법. 여기 자녀들에게 재능만 물려줬을 뿐 사랑이나 진정한 교육은 주지 않았던 부모들이 있다. 가상인터뷰 ‘후 앤드 왓’(Who&What) 이번주의 주인공은 올리버 트위스트처럼 삐뚤어진 어린시절을 보내야만 했던 불행한 천재들이다. 무자비한 폭력에 시달리고, 일거수일투족을 감시받았던 우울한 그들의 내면을 가상의 일기장을 통해 들여다봤다. 어린시절의 불행이 이들이 남긴 업적의 원동력은 아니었을까. 그렇다면 우리는 인성과 성공, 행복을 얻을 수 있는 모든 부모의 꿈, ‘완벽한 교육법’을 어디에서 찾아야할까. ●프리드리히 2세 (1712~1786/ 프로이센의 계몽전제군주) 왕자 시절인 18세(1732년) 때의 일기 왕가의 숙명을 거부하고 도망치려다 결국 내 손으로 친구를 죽인 꼴이 됐구나. 궁궐 탈출을 끝까지 말렸던 한스(한스 헤르만 폰 카테 소위)는 결국 내 고집 때문에 오늘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지고 말았다. 나라를 부강하게 만드는 것 이외에 아무런 관심이 없는 아버지(프리드리히 빌헬름 1세). 무기징역을 선고받은 한스를 황제의 직권으로 사형시킨 것은 결국 나를 겨냥한 것일 테지. 자식에게 이렇게 잔인할 수 있단 말인가. 지난 18년은 나에게 혼란의 연속이었다. 아버지는 날 프로이센 사람으로 만들려고 하고, 어머니(조피 도로테아·하노버 왕조를 창시한 조지 1세의 딸)는 프랑스 왕족이 최고라고 하니 난 규율과 자유 어느 쪽도 제대로 배우지 못했다. 아버지는 아예 내 수업을 감시하는 대령을 뒀고, 내 스승은 문학을 가르쳤다는 이유로 아버지에게 발길질을 당한 후 쫓겨났다. 아버지는 플룻 연주도, 시도 허용하지 않는다. 내가 원하는 건 권력이 아니라 예술인데 말이다. 왕실에서 사느니 차라리 동냥을 해서 빌어먹고 싶을 정도로 비참하다. 난 결심했다. 다시는 내 속내를 아버지에게 드러내지 않을 테다. 아버지보다는 내가 오래 살 테니 그때 내가 하고싶은대로 하면 되는 것 아니겠는가. [그 후] 아버지에 대한 미움은 이중인격 왕을 낳았다 ‘탈주사건’으로 친구 카테 소위가 처형당한 후 프리드리히 2세는 다시는 반항하지 않았다. 철저히 자신을 숨겼고, 아버지에게 복종하는 모습만 보여 신임을 얻었다. 1740년 왕좌에 오른 프리드리히 2세는 금욕적이고 냉철한 정치를 했던 아버지와 전혀 다른 길을 걸었다. 정치적, 종교적 소수자를 위한 정책을 폈고 노예제 폐지에 앞장섰다. 그러나 그의 마음 속에는 불신이 가득했다. 이는 어린시절 부모에게서 받은 폭력과 강압 때문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자기와 뜻이 다른 사람을 잔인하게 처단했고, 다른 사람의 의견은 철저하게 무시했다. 역사학자들은 그를 ‘어떤 왕보다 더 차가운 내면을 지닌 야누스적인 왕’으로 평가한다.   ●존 F. 케네디 (1917~163/ 미국의 35대 대통령) 하버드대에 다니던 20세(1937년) 때의 일기 이젠 언제 어디서나 여자들과 즐길 수 있게 됐다. 병원에서도 간호사들과 사랑을 나눌 수 있으니. 아버지가 옳았던 것 같다. 여자는 어디까지나 남자들의 성공에 대한 자만심을 충족시켜 주는 트로피에 불과하다. 위대한 남자라면 두 개의 삶 정도는 가져도 무방한 것 같다. 아버지는 출신(케네디 가문은 본인들이 아일랜드 출신이라는 사실을 밝히길 꺼려했다.)을 완벽하게 바꿔놓을 정도로 열심히 일했고, 결국 보스턴 상류사회에 자리잡을 수 있었다. 어머니(로즈 케네디)는 지나치게 엄격하지만, 뭐 내가 미래에 이 나라를 이끌어가려면 예의범절과 자기규율은 엄하게 배울수록 좋겠지. 겉으로 드러나는 모습은 포장에 불과한 것 아니겠는가. 다만 최근 들어 상인 출신인 아버지와 나는 좀 다르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여배우와 불륜을 즐기면서도 떳떳한 아버지처럼 했다간 분명 내 발목을 잡는 일이 생길 것 같다. 언제나 포장은 필요한 법이지. 나처럼 외양상으로는 완벽한 여성을 만나 결혼하고, 내 생활은 최대한 조용히 만끽하면 된다. 우리 부모님들조차 5년 전부터 각방을 쓰고 있지만, 여전히 우리 가문은 존경받는 신흥 명문가이지 않은가. [그 후] 바람기는 대를 물렸다 케네디의 아버지 조셉은 영화계에 투자하면서 여배우 글로리아 스완슨이라는 여배우와 염문을 뿌렸고 케네디가는 겉모습과는 달리 완벽하게 흩어지기 시작했다. 이는 추후 마릴린 먼로와 케네디의 스캔들로 대를 이었다. 누구에게나 선망받던 케네디와 재클린 오나시스의 결혼생활 역시 남편의 바람과 아내의 낭비벽으로 점철됐다. 케네디는 아버지처럼 여성에 집착했고 수많은 여성과 스캔들을 일으켰지만 재클린은 자기 시어머니처럼 이를 내색하지 않았다. 어린 시절 엄격했던 어머니 로즈 때문에 케네디는 평생 압박감에 시달렸고, 각성제 암페타민과 진통제에 의존했다.   ●에디트 피아프(1915~1963/ 프랑스의 국민가수) 집을 떠나던 15세(1934년) 때의 일기 내 인생을 철저히 다시 써야 한다. 어떻게 하면 좋을까. 내가 서커스의 난쟁이 곡예사와 사탕을 팔던 여인 사이에서 태어났다는 진실을 얘기하면 사람들이 나한테 관심을 가질까. 그래 차라리 빈민촌의 가로등 아래에 버려진 것으로 하자. 경찰관들이 나를 발견했다고 얘기하면 더 극적이겠지. 난 이곳을 벗어나야 한다. 다락방에서 어린 내 음식에 술을 타던 외할머니. 쥐떼가 우글거려서 면역력을 키우려 그랬다지. 어머니를 버렸던 아버지는 날 그곳에서 구한답시고, 친할머니에게 버렸고, 난 사창가에서 자라야만 했다. 무려 여덟명의 어머니가 생긴 그 시절은 돌이켜보면 내 인생에서 가장 행복했던 순간이다. 하지만 제대로 된 남자가 날 지켜주고 있다는 느낌을 받지는 못했다. 여자는 무조건 남자의 요구에 따라야 한다. 내가 커온 사창가의 법칙이 그랬으니까. 그러나 아버지의 무지막지한 따귀는 더 이상 참기가 힘들다. 내 부모는 나에게 목소리를 줬다. 그 덕분에 난 이제 집을 나가도 살 수 있을 테지. 언젠가 성공한다면 난 엄마보다 훌륭한 어머니가 될 것이고, 아버지보다 훌륭한 남편을 만날 것이다. 어쨌든 난 평범한 여자처럼 살고 싶다. [그 후] 과거의 그림자에서 벗어나지 못하다 집을 나간 피아프는 독특한 목소리를 무기로 역사상 가장 유명하고, 전 세계인이 가장 사랑하는 샹송 가수가 됐다. 성공한 피아프는 늙고 병든 아버지를 다시 찾아 죽을 때까지 생활비를 부담하기도 했다. 하지만 사창가에서 자란 피아프는 평생 남자관계에 어려움을 겪었다. 자신을 지배하거나 때리는 남자들에게 매력을 느꼈고, 실제로 “사랑이란 커다란 소동이나 엄청난 거짓말, 번갈아가며 양쪽 뺨에 따귀를 맞는 것과 같다.”는 고백을 하기도 했다. 남자친구에게 따귀를 맞아 벌겋게 달아오른 얼굴로 공연에 오르는 일도 흔했다. 암흑 같은 과거의 그림자는 피아프를 평생 괴롭혔고, 1933년 낳은 딸은 어린시절 피아프가 그랬듯 순회공연에 데리고 다녔다. 딸 마르셀은 2살도 되기전 뇌막염으로 숨졌다. ●살바도르 달리(1904~1989/ 스페인의 초현실주의 화가) 산 페르난도대 신입생 시절인 18세(1922년) 때의 일기 예술이 생계수단이 될 수 없다고? 아무것도 모르는 식인종 같으니라고. 아버지(돈 살바도르)에게 굽히는 건 오로지 내가 학업을 이어갈 돈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내가 미술교사의 길을 걷도록 하려는 아버지의 계획에는 추호도 관심이 없다. 난 장학금을 받아 로마에 갈 것이고, 거기에서 돌아오면 난 천재가 되어 세상이 우러러볼 것이다. 입학식에 무슨 옷을 입을까. 망토? 금박 지팡이? 너무나 파격적인 내 옷차림에 교수들은 당황하겠지. 난 여섯살에는 요리사가, 일곱살에는 나폴레옹이 되고 싶었고, 그 이후 점점 더 내 야망은 뻗어갔다. 여동생의 머리를 축구공처럼 차버리든, 친구가 타고 있는 자전거를 낭떠러지로 밀어버리든 부모는 내가 최고라고 치켜세웠다. 그렇다. 난 천재다. 1등이었던 형을 대신하는 2등 아들이 아니라는 것을 세상에 알리기 위해 난 무슨 일이든 할 것이다. 어릴 때부터 뭐든 내 맘대로 해 왔는데, 이제 와서 꿈을 포기하라니 꼭 후회하게 해 줄 것이다. [그 후] 과보호 속에 커버린 최고의 이기주의자가 되다 달리의 형을 잃은 부모는 어린 달리를 완벽한 독재자로 키웠다. 무한한 인내심과 자유방임이 유일한 교육철학었다. 어떤 끔찍한 행동을 하고 버릇 없이 굴어도 결코 야단치지 않았다. 부모가 자신을 형의 대신으로 여긴다고 생각한 달리는 오로지 유명해지는 것을 인생의 목표로 삼았다. 달리는 그림으로 인정받은 후에도 기행을 멈추지 않았다. 1940년부터 1965년까지 달리의 이름은 거의 단 하루도 빠지지 않고 신문, 라디오, TV에 언급됐다. [참고문헌]  18인의 천재와 끔찍한 부모들(외르크 치틀라우·강희진/ 미래의 창)  살바도르 달리(살바도르 달리·이은진/ 이마고)  결코 사라지지 않는 로마 신성로마제국(기쿠치 요시오·이경덕/ 다른세상)  죽기전에 꼭 알아야 할 세계역사 1001 DAYS(마이클 우드·박누리/ 마로니에북스)  에디트 피아프(실뱅 레네·신이현/ 이마고)  케네디 평전(로버트 댈럭·정초능/ 푸른숲)  케네디가의 형제들(에드워드 케네디·구계원/ 현암사)   박건형기자 kitsch@seoul.co.kr
  • [WHO&WHAT] 외규장각 도서 귀환으로 본 약탈문화재의 ‘수구초심’

    [WHO&WHAT] 외규장각 도서 귀환으로 본 약탈문화재의 ‘수구초심’

    누군가에게 그들은 알록달록 그림이 가득한 옛날 책에 불과했다. 그래서 오랜 시간 그냥 도서관 한편에 놓인 채 잊혀져 있었다. 하지만 다른 누군가에게 그들은 민족문화의 정수였다. 수백년의 세월을 건너뛰어 조상들의 삶과 생활을 알 수 있는 역사의 기록이었다. 그들이 145년의 세월을 건너 원래 있던 자리로 돌아왔다. 프랑스 파리국립도서관에 있던 외규장각 도서들이다.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던 그들은 이제 옛 사람의 후손들에 의해 다시금 숨결을 되찾고 가치를 인정받게 될 것이다. 30여년에 걸친 우리의 노력이 비로소 결실을 맺었지만 이제 시작에 불과하다. 세지도 못할 만큼 많은 우리의 유산들이 외국에서 이 땅을 그리워하고 있다. 서울신문 가상인터뷰 ‘후 앤드 왓’(Who&What)은 외규장각 도서의 귀환을 축하하는 연회장으로 달려갔다. 그 자리에는 전 세계의 유명한 ‘약탈(掠奪) 문화재’도 모습을 나타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그들과 같은 신세였던 외규장각 도서를 부러워하면서…. 그들이 저마다 고향을 향한 ‘수구초심’(首丘初心)을 얘기했다.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오늘 제가 이 자리에 서 있을 수 있는 것은 대한민국 국민 모두의 덕분입니다. 물론 아직까지 ‘대여’(貸與)라는 딱지를 붙이고 있는 게 아쉽지만, 저와 제 가족은 다시는 이 땅을 떠나지 않을 겁니다.” 휘경원(徽慶園) 원소도감의궤(園所都鑑儀軌)가 건배사를 시작하자, 참석자들의 눈시울이 붉어지기 시작했다. 1993년 휘경원 의궤가 홀로 파리 국립도서관을 떠나 한국으로 갈 때 다들 그 뒷모습을 보며 얼마나 부러워했던가. 그후로 18년. 휘경원 의궤의 뒤를 이어 자신들도 금의환향한 것이 스스로 믿기지 않는 그들이었다. 1866년 강화도를 떠난 지 무려 145년 만이다. 휘경원 의궤가 파티장을 둘러본 후 다시 말을 이으려는 찰나, 문 밖이 소란스러워졌다. 문이 열리자 일단의 무리들이 들어왔다. 어디선가 떨어져 나온 듯한 조각 뭉치부터 미라 머리까지 괴기스럽기 그지없었다. 표정에는 부러움이 가득했다. 조각상이 대표로 말을 꺼냈다. ●엘긴 마블 축하드립니다. 한국 국민들의 승리라고 말해야 할 것 같습니다. 저희는 조선왕실의궤처럼 다른 나라에 무참히 끌려간 인류의 유산들입니다. 세계 최고의 박물관과 미술관에서 매일 얼굴을 팔면서 살고 있지만, 한순간도 고향을 잊어본 적이 없죠. 있어야 할 자리에 있지 못하는 설움을 너무나 잘 알기에 의궤가 너무 부럽고 해서 함께 찾아왔습니다. ●휘경원 의궤 감사합니다. 우선 이쪽으로 앉으시죠. 여기 계신 손님들이 잘 모르실 수도 있어 간략하게들 자리 소개 좀 부탁드립니다. ●엘긴 마블 안녕하세요. 전 그리스 아테네 파르테논 신전 장식입니다. 기원전 440년 무렵에 만들어졌고, 인물 360여명과 말 219마리로 구성돼 있어요. 제 치욕스러운 이름은 영국 외교관인 엘긴 브루스에서 비롯됐습니다. 19세기 초 터키의 그리스 지배 당시에 저희를 몽땅 긁어모아서 영국으로 옮겨왔죠. 대수집가로 추앙받는 경우도 있던데, 정말 어이없는 일이죠. 저희 가족은 ‘파르테논 마블스’로 불려야 마땅합니다. 성스러운 신전의 장식물을 떼어 와 감상하려 한 약탈자의 이름을 붙이다니요. 아마 가능하기만 했다면 파르테논 신전을 통째로 가져오고도 남았을 테죠. 현재 저희 가족은 대부분 대영박물관에 있고, 일부는 루브르박물관에도 있습니다. ●휘경원 의궤 파르테논 마블님은 문화재 반환운동의 대부로 유명하시죠. ●파르테논 마블 가만있자…, 그게 1960년대였을 거예요. 런던을 무대로 영화를 촬영하던 여배우 멜리나 메르쿠리가 저희가 대영박물관에 있는 걸 보고 통곡을 했다고 전해집니다. 메르쿠리는 1981년 문화부 장관이 되면서 정부와 전 국민을 상대로 반환운동을 벌였고, 1994년 세상을 뜰 때까지 한시도 운동을 쉬지 않았어요. 지금도 파르테논 신전이 있는 아크로폴리스를 방문하는 모든 사람은 메르쿠리 이름으로 된 호소문을 받게 됩니다. ●휘경원 의궤 그리스에도 우리나라 박병선 박사 같은 분이 계셨군요. 그 얘기는 조금 있다가 더 듣기로 하고, 그 옆에 계신 분도 역시 영국에서 오셨죠? ●로제타스톤 안녕하세요. 전 기원전 196년에 만들어진 프톨레마이오스왕의 공덕비입니다. 1799년 나폴레옹 원정군이 로제타(현재의 라시드) 마을에서 요새를 쌓다가 발견했죠. 뭐 신기한 돌이다 싶어 슬쩍 프랑스로 가져오려고 했는데, 2년 뒤 영국군과의 전투에서 프랑스가 패하면서 영국 소유가 됐죠. 이 전투에서 프랑스가 이겼으면 아마 지금 제 거처는 대영박물관이 아니라 루브르박물관이 됐을 겁니다. 전 세계 교과서에 제 이름이 나오지 않는 곳이 없을 테지만, 전 이집트 상형문자를 해독하는 데 결정적인 공헌을 했어요. 수천년의 시간을 뛰어넘은 존재라고 할까요. 이집트 상형문자, 민용(民用)문자, 그리스어 등 세 가지로 쓰여 있어 상형문자 읽는 방법을 현대에 전달했죠. 물론 제 고향인 이집트에서는 절 돌려 달라고 끊임없이 요구하고 있습니다. ●오벨리스크 여기서 오랜 친구 로제타스톤을 만나니 눈물이 앞을 가리네요. 전 고대 이집트 왕조 때 태양신의 상징으로 세워진 기념비입니다. 보통 신전 앞에 쌍으로 있고 수십개가 만들어졌는데, 지금 고향에 있는 애들은 6개에 불과하고 외국에 더 많아요. 뉴욕, 파리, 런던에 하나씩 있고 이탈리아에는 무려 16개나 있습니다. 오벨리스크를 무슨 열강의 상징쯤으로 여긴 때문이겠죠. 심지어 뉴욕과 런던의 오벨리스크는 원래 ‘클레오파트라의 바늘’이라는 이름으로 투트모세 3세가 만든 한 쌍입니다. 파리 콩코드 광장의 오벨리스크는 이집트 룩소르에 있는 람세스 2세 오벨리스크의 나머지 한쪽이고요. 게다가 더 놀라운 건 하나의 돌로 만들어진 우리가 운반을 위해 다 쪼개졌다는 거죠. 상처 입고 신음하는데 보기만 좋으면 다인가요. ●휘경원 의궤 뒤쪽에 계신 아리따운 여자분과 용맹한 전사님은 누구시죠? ●네페르티티 흉상 저 역시 고대 이집트 출신이에요. 이집트 최고의 미녀로 클레오파트라와 어깨를 나란히 한 것으로 알려진 네페르티티 왕비의 모습을 하고 있죠. 1912년 독일오리엔트협회 조사단이 공방터에서 발견해 지금은 베를린 국립미술관에 있습니다. 말이 조사단이지 마구잡이로 파헤쳐서 가지고 오면 그만인 시절이었죠. 이집트 최고 미녀의 조각이자 최고의 조각상으로 평가받는 저를 정작 이집트의 후손들은 볼 수 없는 셈이죠. ●토이 모코 전 집으로 돌아갈 날을 받아놓고 기다리고 있는 뉴질랜드의 토이 모코입니다. 마오리족 전사가 전투에서 사망하면 정신을 기리기 위해 문신을 새겨 머리를 보관하던 전통에서 비롯된 일종의 미라라고 할 수 있습니다. 19세기 중반에 유럽에서 소장품으로 인기를 끌면서 아예 마오리 전사에게 문신을 새긴 후 목을 자르는 일까지 벌어졌죠. 그 당시 500여개가 해외로 유출된 것으로 알려져 있었는데, 1992년부터 뉴질랜드 정부가 저희를 찾기 위해 노력한 결과 지금까지 300여개가 돌아갔습니다. 그나마 고향에 돌아가기 쉬운 건 아마 저희는 문화재라기보다는 개인의 수집에서 비롯된 기념물적인 성격이 강하기 때문이겠죠. ●휘경원 의궤 저희가 돌아오기까지 수많은 사람들의 노력이 있었죠. 누구보다 재불 사학자인 박병선 박사의 역할이 컸습니다. 1979년 파리국립도서관에서 저희들을 찾아냈고, 이를 고국에 알렸죠. 프랑스 내 지식인층에 약탈문화재의 고국 반환을 주장하면서 30년 넘게 외롭게 싸워오고 계십니다. 여러분들 역시 고국에서 수많은 노력이 진행되고 있는데, 돌아가지 못하는 이유가 뭐죠? ●오벨리스크 자랑스러운 그들의 박물관이 약탈문화재로 가득차 있다는 점 때문이겠죠. 그들은 조상들의 유산을 돌려 달라는 정당한 요구를 묵살하고 있습니다. 루브르의 이집트 천궁도를 비롯한 이집트 유물들도 대부분 도굴된 물건이지요. 마치 장물(贓物)을 자기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는 꼴입니다. 우리 오벨리스크를 가장 많이 소유한 이탈리아는 정작 우리 요구는 무시하면서 자기네 로마 유적은 돌려달라고 떠들고 있어요. 역지사지라는 말도 모르나봐요. 심지어 약탈국 정치인들은 대놓고 “하나둘씩 돌려주다 보면 루브르나 대영박물관은 텅 비게 될 것”이라고 떠들기까지 합니다. 남의 나라 문화재를 강제로 뺏거나 훔쳐다 놓고 그게 할 소리입니까. ●로제타스톤 맞습니다. 관람객들은 마땅히 우리의 단순한 역사적 가치 이외에 언제 어떻게 훔쳐서 이 나라에 왔고, 그 나라에서 돌려 달라는 운동을 치열하게 벌이고 있다는 사실, 또 전 국민들의 소망이라는 사실에 대해서도 알 권리가 있습니다. 제가 이집트에서 만들어졌고 이집트 상형문자의 역사를 담고 있다는 것이 중요한 사실이지, 대영박물관에 있다는 것이 역사적으로 중요하지는 않잖아요. ●휘경원 의궤 뭐 사실 그렇습니다. 유명하면 포기하기 더 힘들겠죠. 만약 저희 의궤들이 프랑스인들이 보기에 로제타스톤이나 오벨리스크처럼 중요하고 자랑스럽게 여겼다면 돌아오지 못했을 수도 있겠네요. ●네페르티티 흉상 프랑스나 영국 정부가 항상 말하죠. 우리가 문화재 보존에 대해 최고의 노하우를 갖고 있고, 돌려받을 국가를 믿기 힘들다고 말입니다. ●파르테논 마블 그건 새빨간 거짓말이자 핑계일 뿐입니다. 반환운동이 시작된 후 그리스 정부는 아테네에 영국 박물관 분관을 지어 저희를 전시하자고 영국에 제안했고, 그 전시실은 실제로 대영박물관에 견줘 손색 없이 지어졌죠. 하지만 영국 정부는 아직까지 외면하고 있습니다. 하나둘씩 돌려주는 선례를 만들다 보면, 아직 먹고사느라 조상의 문화에 관심이 적은 동남아시아 국가, 중남미 국가들이 나중에 떼로 달려들 것이 겁나기 때문이겠죠. ●휘경원 의궤 박 박사가 저희를 찾아냈을 때 저희는 폐지 더미 속에 묻혀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였죠. 보관과 연구능력은 정말 말도 안 되는 소리예요. 한문을 읽고 조선의 문화를 이해조차 못하는 사람들이 저희의 가치를 어떻게 평가하겠습니까. 실제로 145년 동안 프랑스 사람들은 저희의 0.1%조차도 파악하지 못했고, 분류조차 못했으니까요. 오늘 이 자리에 걸음해 주신 각국의 약탈 문화재 여러분. 우리 의궤의 반환 축하 역시 이른 감이 있습니다. 한국 역시 아직까지 18개국에 7만여점에 가까운 조상의 문화재가 외국을 떠돌고 있습니다. 문화재가 마땅히 있어야 할 곳에 있는 소망이 실현되는 날. 다시 한번 진정한 축하의 자리를 마련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박건형기자 kitsch@seoul.co.kr ●참고문헌 약탈 그 역사와 진실(샤론 왁스먼·오성환/ 까치) 위대한 유산 74434(위대한유산 제작팀/ 지식의숲) 조선을 죽이다(혜문/ 동국대출판부) 오벨리스크(권염흠/ 스틸로그라프) 미학 오디세이 (진중권/ 휴머니스트) 클레오파트라의 바늘 (김경임/ 홍익출판사) 서울신문은 매주 1회 독특한 포맷의 가상 인터뷰 [WHO&WHAT(후 앤드 왓)]을 1개면에 걸쳐 연재하고 있습니다. 일반 신문기사로는 다루기 힘든 동서고금의 지식과 역사의 정수들을 만남 또는 대담의 형식을 통해 알기 쉽고 재미있게 소개하는 지면입니다. 청소년, 어른 모두에게 즐겁고 색다른 지식의 장이 될 것으로 자부합니다. 특히 입시를 준비하는 학생들에게는 훌륭한 논술교재로도 활용할 수 있을 것입니다.[WHO&WHAT] “퀴즈쇼서 인간에 완승한 슈퍼컴 왓슨(Watson)을 만나다” [WHO&WHAT] 무덤에서 불러낸 독재자 4인의 가상만찬 ‘재스민 혁명’을 논하다 [WHO&WHAT] 천재소년 송유근, ‘우주비행 성공 50주년’ 맞아 유리 가가린을 만나다 [WHO&WHAT] ‘슈퍼히어로’ 스파이더맨, 정신과 전문의 김상준 원장과 상담하다 [WHO&WHAT] 지구수비대 지원한 인간형 로봇 ‘마루’ “아톰·태권V처럼 지구 지켜서…” [WHO&WHAT] ‘최악’ 통념 B형 男기자, 혈액형의 아버지 ‘란트슈타이너’에 따지다 [WHO&WHAT] ‘전 세계 여성의 로망’ 버킨백을 만나다 [WHO&WHAT] 선택 따라 전혀 다른 결과…”이렇게 검색하면 진리가 밝혀질까?” [WHO&WHAT] “남느냐, 떠나느냐” 희곡으로 본 어느 서재 도서들의 열띤 논쟁 [WHO&WHAT] ‘위대한 유산’ 남긴 간송미술관의 전형필, 그리고 우피치미술관의 메디치 [WHO&WHAT] 위대한 예술가 미켈란젤로, 그는 왜 라파엘로를 죽이고 싶었을까 [WHO&WHAT] ‘美우주왕복선은 초대형 폭탄이나 마찬가지’ 물리학자 파인먼의 폭로 [WHO&WHAT] 외규장각 도서 귀환으로 본 약탈문화재의 ‘수구초심(首丘初心)’ [WHO&WHAT] “재능만 주고 사랑은 주지 않던 나쁜 부모들” 유명 인사들의 회상기 [WHO&WHAT] 인류역사를 바꾼 ‘억세게 운 좋은 사내들’ 서바이벌 현장…과연 승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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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구촌은 사이버 전쟁중] “전력망 1차 타깃 가능성… 내부자 보안의식 강화해야”

    [지구촌은 사이버 전쟁중] “전력망 1차 타깃 가능성… 내부자 보안의식 강화해야”

    교통시스템이 마비돼 순식간에 도심 사거리가 주차장으로 변하고 교통사고가 이어진다. 금융·통신·전기·가스·수도·원자력 등 기간시설 시스템 전체가 순차적으로 마비된 후 통제불능의 상태에서 누군가의 의도에 따라 폭주한다. 지난 2007년 개봉한 헐리우드 영화 ‘다이하드 4.0’에서 테러리스트인 토마스 가브리엘은 컴퓨터만으로 역대 그 어떤 무기보다 더 강력한 미국의 위협이 된다. 사이버보안 전문가 8인을 대상으로 영화 속 상황이 오늘날 대한민국에서 재연될 가능성에 대해 물었다. 7명이 ‘충분히 가능한 시나리오이며 실재적인 위협’이라는 대답을 내놓았다. 우선적인 공격타깃으로는 전력망을 꼽는 사람이 많았고, 대비책으로는 내부자 의식 강화가 중점적으로 지목됐다. 이들이 말하는 문제점과 해결책을 일문일답으로 정리했다.  ●1.국가기간시설 장악 가능한가?/2.어느 기간망이 우선적인 공격대상이 되는가?/3.정부와 군은 안전한가?/4.사이버전 피해 최악 시나리오는?/5.사이버망 강화 방안은?    ▲원동호 성균관대 정보통신학과 교수  1.충분히 가능한 시나리오다. 2.전력망이 가장 우선적인 목표가 될 것이다. 피해가 막대한 반면 발전소 침입 자체가 어렵지 않다. 3.집중적인 타깃이 되는 만큼 안전하지 않다. 4.전력망과 교통시설이 마비되면 피해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날 수 있다. 5.안전하다고 생각하고 시스템을 만드는 것이 문제다. 이중삼중으로 만들면 이용하는 사람들이 불편하다고 생각한다.    ▲이종락 서울호서전문학교 사이버해킹보안과 교수   1.스카다 시스템 진입만으로도 영화 속 일이 현실화될 수 있다. 2.발전소가 우선적인 타깃이 될 것이다. 컴퓨터로 원격조종을 하는 모든 것들이 목표가 될 것이다. 3.국가망은 물리적으로 내부망과 외부망을 분리하도록 돼 있지만 지켜지지 않는 경우가 많다. 하위기관으로 갈수록 어떤 부분이 밖으로 노출되는지 알기 힘들다. 반면 국방부는 관리체계 자체가 외부로 알려지지 않아 비교적 안전하다. 4.대형 댐의 수문을 열면 서울이 물바다되는 일도 가능하다. 5.스카다 시스템을 개별적으로 운영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백업을 철저히해 만약의 사태에 대비하고, 시스템 관리자들의 처우개선을 통해 보안의식을 강화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임종인 고려대 정보보호대학원 교수  1.지난해 이란 핵시설 사건에서 보듯이 가능성이 충분하다. 2.스카다 시스템과 지멘스 소프트웨어를 사용하는 모든 시설이 동일하게 타깃이 될 수 있다. 3.국가망과 기간시설의 보안장치가 더 위험하다. 고인물이 썩는다고 폐쇄망으로 운영될 뿐 아니라 점검도 자체적으로 진행해 외부침입에 대한 대비책이 부족하다. 4.공항과 원전이 위험하다. 곧바로 대형참사로 이어진다. 5.해킹에 대응할 컨트롤타워가 필요하다. 국정원과 청와대가 정부공조를 중심으로 한 대응책을 마련하는 것이 좋다.    ▲정완 사이버범죄연구회장(경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1.인터넷 대란을 비롯해 모든 것이 가능하다. 2.인터넷 마비가 우선적으로 이뤄질 것이다. 개별 조직들의 연결고리를 모두 끊으면 혼란을 유발하기에 가장 용이하다. 3.정부망 역시 외부와 어떤 형태로든 연결돼 있는 만큼 위험하다. 4.기간전산망, 금융, 국방, 통신망이 마비되면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5.해킹범죄에 대한 통합 대응기관이 필요하고, 전문가들의 데이터베이스도 마련해야 한다. 중국 등 정부규제가 약한 나라에 대한 스크린도 강화해야 한다.    ▲나중찬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 보안관제기술연구팀장  1.충분히 가능하다. 2.전력이 우선적이다. 전력망이 마비되면 인터넷은 물론 생활 자체가 불가능하다. 3.정부망 설계가 아무리 탄탄해도 개별 부처들과 산하기관이 그 만큼 수준을 갖추지 못하면 어느 곳에서건 구멍이 뚫릴 수 있다. 군도 마찬가지다. 4.어떤 기간시설이든 1시간만 중단되면 도시와 국가 전체가 마비된다는 연구결과가 있다. 5.내부 경계를 강화해야 한다. 대문을 단단하게 해도 창문을 열어두면 문제가 생긴다.    ▲원유재 한국인터넷진흥원 인터넷침해예방단장  1.가능하다. 해킹에 제약은 없다. 2.인터넷이 타깃이다. 여러사람들이 사용하기 때문에 침입 자체가 쉽다. 3.정부망은 동작환경이 민간과 다른 경우가 많아 뚫기 어렵다. 그러나 특정 소프트웨어를 노린 새로운 악성 코드를 만들어낸다면 위험해진다. 4.인터넷이 마비되는 순간 상상하는 어떤 시나리오도 가능하다. 5.스카다 시스템 네트워크를 개별적으로 관리해야 한다. 수자원공사의 댐관리와 화력발전소, 원전 등은 개별적으로 관리해야 만약의 사태에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다.    ▲이정현 숭실대 컴퓨터학과 교수  1.가능하다. 2.다양한 사용자가 있는 이메일이나 USB 등을 통해 원격조종이 가능한 코드를 최대한 많은 곳에 심어두는 것이 첫 단계가 될 것이다. 3.마이크로소프트의 윈도를 사용하는 정부망과 기간시설은 어느 곳이든 타깃이 될 수 있고 뚫릴 수 있다. 4.이동통신망과 금융서비스가 마비되면 사회적 혼란이 야기돼 통제불능의 상태가 될 것이다. 5.내부자의 인식전환이 중요하다. 무심코 한 행위가 시스템 자체를 마비시킬 수 있다는 의식을 심어야 한다.    ▲서의성 울산과기대 전기전자컴퓨터공학부 교수  1.불가능하다. 실제 해킹과 사이버테러의 효과가 전국가적으로 확산되기는 쉽지 않다. 2.디도스처럼 인터넷 사용을 막는 방안이 가장 현실적이다. 3.정부망과 군 모두 내부자가 공모한다면 시스템을 통째로 날릴 수 있다. 4.민간기관모두 국가와 기간산업에서 데이터와 백업데이터가 모두 삭제된다면 걷잡을 수 없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 5.국내외 모니터링을 강화하고 내부자들의 잘 관리해야 한다. 박건형·맹수열기자 kitsch@seoul.co.kr
  • 대한민국 3시간만에 마비된다

    대한민국 3시간만에 마비된다

    일부 핵심 시설 침투·교란하면 같은 시스템 사용 전체 시설 점검으로 중단 불가피 ## 2013년 어느 날. 오전 6시 무렵 경북 울진 원자력발전소와 고리 원전 3, 4호기에서 잇따라 경보음이 울렸다. 시스템 냉각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는 것을 발견한 담당자는 급하게 책임자를 호출했다. 그러나 책임자가 채 도착하기도 전에 발전기 부하는 한계치를 넘어섰다. 결국 담당자들은 기계식 비상 버튼을 눌러 붕소를 직접 투하했고 발전기는 가동을 멈췄다. 한반도 남부 일대는 일순간 암흑으로 변했다. ## 같은 시간 경북 포항의 포스코와 광양제철, 대전 코레일, 서울지하철 시스템이 통제불능 상태로 빠져들었다. 그 어떤 통제 장치도 작동하지 않았다. 공조 시스템이 마비되면서 직원들은 가동 중인 공장을 버리고 밖으로 피한 채 발만 동동 굴렀다. 급히 전국의 철도와 지하철에 운행 중단 조치가 내려졌다. 청와대에서는 전 각료와 국가정보원, 한국인터넷진흥원 등의 관계자들이 참석한 비상회의가 소집됐고 전군은 전시에 준하는 비상태세에 돌입했다. 막연히 영화 속에서나 가능한 일로 치부되던 상황이 현실화되자 완벽한 보안을 자신하던 관계 부처 관계자들은 허둥대기 시작했다. 전문가들의 점검 결과 문제를 일으킨 곳은 모두 ‘스카다 시스템’(컴퓨터의 정보수집·처리·분석·제어기술과 통신기술이 결합한 통합 제어 시스템)을 사용하고 있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곧바로 사전에 철저히 계획된 외부 공격이란 결론을 냈다. 금융 시스템, 증권거래 시스템, 공항과 도로 등 교통통제 시스템 등 스카다 시스템과 관련된 국가기반 시설이 일제히 가동을 중단했다. 점검을 시작하면서 불과 3시간여 만에 대한민국은 완전히 마비됐다. 유일하게 직접적인 피해를 입지 않은 군 시스템은 외부와의 연결고리가 전면 차단돼 고립된 상태다. 이상은 12일 서울신문이 국내 보안전문가 8명에게 자문해 구성한 한국을 타깃으로 한 사이버테러 가상 시나리오다. 이런 상황에서 북한군이 물리적 공격을 가하면 한국은 두뇌조차 없는 상태에서 전쟁에 나서야 한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상황이 이론상으로도 가능하고 실제로 발생할 위험이 높다고 입을 모았다. 국내 대부분의 기간 시설이 상용 소프트웨어에 가까운 독일 지멘스사의 스카다 시스템을 사용하고 있고, 스턱스넷 등 악성 코드에 극도로 취약하기 때문이다. 스턱스넷은 시스템에 침입하기만 하면 공유 프린터, 공유 네트워크 등을 통해 제어 프로그램을 파괴하며 최고 수준의 암호도 제약 없이 뚫을 수 있다. 지멘스사의 스카다 시스템이 스턱스넷으로 파괴되는 과정은 지난해 원심분리기 1000여기가 순식간에 오작동하면서 파괴된 이란 핵시설 사건을 통해 입증된 바 있다. 임종인 고려대 정보보호대학원 교수는 “제일 유명하고 사용하기 쉽다고 도입한 소프트웨어가 해커와 테러리스트, 적군의 먹잇감으로는 가장 좋은 법”이라며 “실제 국가 기간시설 보안장치는 생각보다 강하지 않으며, 자체 점검 위주로 운영하기 때문에 위험성이 높다.”고 진단했다. 이어 “일부 기관은 행정안전부의 자체 점검에서조차 C등급을 받고 있는 실정”이라고 덧붙였다. 사이버범죄연구회장을 맡고 있는 정완 경희대 교수는 “대규모 사이버 공격은 수개월~수년에 걸쳐 치밀하게 작은 소프트웨어부터 뚫고 들어가는데, 덩치가 큰 기간시설은 사소한 문제 발생에 둔감한 경우가 많다.”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아무리 강화된 시스템이라도 내부자 공모가 있을 경우 100% 뚫릴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종락 서울호서전문학교 교수는 “인터넷에서 분리해 외부 침입이 힘들게 설계하더라도 내부에서 이메일을 받거나 이동식저장장치(USB)를 사용하는 과정에서 구멍이 뚫릴 수 있다.”면서 “시스템과 인적 인프라 모두를 완벽히 통제하지 않으면 사이버테러와 사이버전에 무방비나 마찬가지라고 봐야 한다.”고 밝혔다. 박건형·맹수열기자 kitsch@seoul.co.kr
  • “사람에게 곧바로 신약실험 머지않아”

    “사람에게 곧바로 신약실험 머지않아”

    1987년 일본 도쿄의 히타치(日立)연구소 회의실. 서른한 살의 스위스인 박사가 화학물질 분석에 마이크로 반도체칩을 이용하자는 뜬금없는 제안을 했다. 경영진은 일제히 “그게 말이 되느냐.”고 일축했다. 회의가 끝난 뒤 실망한 박사에게 일본인 연구원 3명이 다가왔다. 당시만 해도 전혀 다른 영역으로 여겨졌던 화학과 정보기술(IT)의 융합이라는 신개념이 젊은 연구자들의 마음을 움직인 것이었다. 의기투합한 네 사람은 회사의 지원 없이 1년여 만에 각종 화학물질을 분리·반응·배양할 수 있는 마이크로칩을 만들어냈다. 개념은 간단했지만, 칩의 활용도는 개발자들 스스로 놀랄 정도였다. 칩 위의 회로를 어떻게 그리느냐에 따라 자유자재로 극미량의 화학물질을 분석할 수 있었고, 전기성질을 조정하면 칩 위에 얹어진 생체세포와도 반응했다. 가로·세로 몇㎝에 불과한 칩 위에서 모든 실험이 가능하다는 의미에서 ‘랩온어칩’(lab-on-a-chip·칩 위의 실험실)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현재 랩온어칩은 화학, 생물, 물리, 공학 등 실험과 관련된 모든 분야에서 가장 각광받는 차세대 기술로 인정받고 있다. 세계 유수의 대학과 연구소의 나노기술(NT) 분야 연구실에서 랩온어칩 연구자들은 핵심인력으로 분류된다. 한국도 마찬가지다. 24년 전 아이디어를 처음 냈던 스위스 사람 안드레아스 만츠(55)는 이후 영국 런던 임페리얼칼리지 분석과학센터장과 독일 분석과학연구소장을 지내며 승승장구했다. 그를 따랐던 일본인 연구원들은 도쿄대와 교토대 교수가 됐다. 아무도 관심 갖지 않았던 분야에 처음 도전한 대가는 그들에게 세계적인 명성을 안겨 줬다. ●의료·바이오분야 랩온어칩 이용 활발 10일 서울 하월곡동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에서 만츠 박사를 단독으로 만났다. 그는 “불편함을 해결하려고 낸 아이디어가 구체적으로 어떤 결과를 낳게 될지는 나 스스로 상상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스위스 취리히 연방공대 박사과정 때 3㎛(0.003㎜) 에 불과한 공간 위에서 각종 화학 관련 작업을 하는 것이 너무나 귀찮고 불편하더군요. 마이크로칩 위에 회로를 그려서 반응하는 면적을 좀더 넓히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갖게 됐지요.” 그는 “반도체 회사인 히타치에서 일할 기회를 우연히 얻었고, 그 결과 상상이 현실로 나타난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 랩온어칩이 가장 활발하게 쓰이는 분야는 의료·바이오 분야다. 랩온어칩의 일종인 ‘휴먼온어칩’(칩 위의 사람) 때문이다. 칩 위에 사람의 각 장기에서 추출한 세포와 치료약을 올린 뒤 회로로 연결하면 실제 어떤 반응을 나타낼지 미리 알 수 있다. 진단시약을 이용하면 피 한 방울로 각종 암을 밝혀낼 수도 있다. 지금은 신약 개발을 위해 생쥐와 토끼, 원숭이 등을 활용한 후에야 사람에게 투약하지만 휴먼온어칩이 본격화되면 사람에게 곧바로 신약을 실험하거나 환자 맞춤형 신약을 개발하는 것도 가능해지는 셈이다. 그러나 정작 만츠 박사의 관심은 다른 쪽에 있다. “랩온어칩이 널리 보급된 만큼 이제 나는 새로운 분야을 개척하려고 합니다. 칩 위에 생성된 물질이 스스로 자가증식을 해 레고(블록완구) 조각 같은 특정한 모양으로 변화하는 연구를 구상하고 있습니다.” 손오공의 귀에서 나온 면봉같이 생긴 막대기가 스스로 점점 커져 여의봉으로 변하는 것처럼 작은 물질이 특정한 형태의 물건으로 저절로 바뀌도록 하는 기술을 개발하고 있다는 얘기다. 만츠 박사는 “지금으로서는 꿈같이 들리겠지만 아주 머지않은 장래에 충분히 가능한 얘기”라고 강조했다. 물질이 결합하는 원리와 DNA 나선 구조의 발생 원리 등을 활용하면 분자가 스스로 커진다는 사실이 이미 입증돼 있다는 것이다. 그는 “10~20년 후에는 플라스틱 의자 같은 기본적인 소재의 제품은 형틀로 찍어내는 게 아니라 원재료에서 자가 증식을 통해 스스로 생성되도록 하는 게 가능할 것”이라고 자신했다. ●“원재료서 자가 증식으로 생산 연구” 만츠 박사는 2009년부터 독일에 있는 KIST 유럽연구소 부소장으로 기술개발(R&D)을 총괄하고 있다. 세계적인 학자가 굳이 한국연구소를 택한 이유를 묻자 명함을 내밀었다. 명함에는 ‘안드레아스 철수 만츠’라는 이름이 적혀 있었다. 2009년 가을 KIST 직원들이 지어준 이름이다. 만츠 박사는 “랩온어칩은 전통적인 과학 영역이 아닌 만큼 끊임없이 새로운 아이디어가 필요하다.”면서 “IT분야에서 보여준 한국 연구진들의 창의성과 우수성에 기대를 걸었고, 만족하고 있다.”고 했다. 박건형기자 kitsch@seoul.co.kr
  • [WHO & WHAT] ‘위험천만 美우주왕복선의 비행’ 물리학자 파인먼의 폭로

    [WHO & WHAT] ‘위험천만 美우주왕복선의 비행’ 물리학자 파인먼의 폭로

    이달 28일 인류과학의 큰 별들이 역사 속으로 사라진다. 미국의 우주왕복선 애틀랜티스호가 플로리다 케네디 우주센터를 박차고 올라 마지막 비행을 하고 나면 파란 하늘이 아닌 까만 우주를 날아다녔던 ‘스페이스 셔틀’은 박물관에서 관람객들과 여생을 보내게 된다. 1981년 4월 12일 컬럼비아호가 처음으로 하늘을 난 이후 챌린저, 디스커버리, 애틀랜티스, 엔데버 등 대항해시대 유명 탐험선들에서 이름을 따온 5형제가 비행한 횟수는 총 135회. 거리는 8억 5000만㎞에 이른다. 그러나 우주왕복선의 탄생이 사기극에 가까웠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1969년 대통령에 오른 리처드 닉슨은 막대한 예산이 투자되는 우주개발 계획을 탐탁지 않아 하며 항공우주국(나사)을 축소하겠다고 밝혔다. 그러자 나사는 한번 쏘면 재사용할 수 없는 로켓 대신 얼마든 재활용이 가능한 우주왕복선을 제작하겠다고 제안했고, 이에 솔깃한 닉슨은 이를 받아들였다. 심지어 나사는 1주일에 1회, 연간 50회씩 비행이 가능하다고 닉슨을 속였다. 우주왕복선은 ‘돈 먹는 괴물’이었다. 한번 사용한 부품은 대부분 교체해야 했다. 지금까지 미국이 우주왕복선 프로그램에 투입한 돈은 1500억 달러(약 162조원)가 넘는다. 1986년에는 챌린저호가 발사 73초 만에 폭발하는 장면이 전 세계로 생중계됐고, 2003년에는 컬럼비아호가 귀환 중에 역시 폭발하면서 미국과 과학의 자존심에 상처를 입히기도 했다. 가상 인터뷰 ‘후 앤드 왓’(Who&What) 이번 호 주인공은 퇴역하는 우주왕복선 3대와 노벨물리학상 수상자 리처드 파인먼(1918~1988)이다. 아인슈타인과 함께 20세기 최고의 물리학자로 꼽히는 파인먼은 ‘파인먼씨 농담도 잘하시네’ 등 저서를 통해 대중과 호흡하는 학자로 이름을 떨쳤다. 특히 1986년 챌린저호 폭발 사건의 조사위원회에 참여, 원인을 규명하기도 했다. 우주왕복선을 만난 파인먼은 그들이 얼마나 위험한 비행을 했는지 그 비밀을 털어놓기 시작했다. 파인먼:이렇게 무사히 만나게 돼 반갑다고 해야 하나. 아무튼 애틀랜티스를 제외하고는 이제 편히 쉴 일들만 남았네. 엔데버 자네는 내가 세상을 떠난 후에 만들어졌는데, 나 같은 물리학자가 왜 우주왕복선의 모임에 나타났는지 궁금하지 않나? 엔데버:제가 1992년에 태어났으니까 1988년에 돌아가신 선생님을 뵐 기회가 없었죠. 그래도 그 명성만큼은 익히 들었습니다. 1986년 챌린저 형님이 세상을 떠났을 때 그 조사위원회인 로저스위원회(국무장관을 지낸 윌리엄 로저스가 당시 위원장을 맡았다. 미국에서는 일반적으로 위원장의 이름을 따 위원회 이름을 부른다. 부위원장은 인류 최초로 달에 착륙한 닐 암스트롱이었다)에 참여하셨죠? 그때 얘기를 좀 듣고 싶은데요. 파인먼:사실 나한테도 우주왕복선은 TV로나 보던 존재였지. 그래서 처음에 나사에서 전화를 받았을 때는 거부할 생각이었어. 그런데 집사람(기네스 파인먼)이 “모두가 몰려다니면서 정치를 할 게 뻔한데, 제대로 조사를 할 사람이 한 명쯤은 있어야 하지 않겠냐.”고 했고, 난 멍청하게 우쭐해서 그 말을 받아들였지. 디스커버리:그래도 사고 원인을 찾아내셨잖아요. 파인먼:글쎄. 세상에는 내가 챌린저가 발사되던 날의 기온이 크게 낮았고, 그 때문에 연료통의 틈새를 메우는 고무 O링이 제대로 역할을 하지 못해 연료가 유출됐다는 사실을 밝혀낸 것으로 알려져 있지. 하지만 그 문제를 처음 알아낸 것은 국방부의 커티나 장군이었어. 난 단지 그 문제를 과학적으로 입증하기 위해 애썼을 뿐이지. 애틀랜티스:선생님이 다른 사람들이 회의를 하는 동안 얼음물을 달라고 해서 실제로 O링을 넣어 뒀다가 보여 줬던 그 장면은 잊을 수가 없습니다. 공개회의였는데,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일부러 그러신 건가요? 파인먼:아무도 나한테 O링을 주지 않았는데, 회의장의 모형에 O링이 있었고 그걸 실험할 수 있는 곳이 거기뿐이었거든. 사실 조사 과정에서 나사와 관련 회사들이 얼마나 일을 엉망으로 하고 있는지를 뼈저리게 느꼈고, 수많은 부분을 감추려 하고 있다는 걸 확신할 수 있었어. 챌린저 폭발의 원인이 단순히 O링 때문이라고만은 할 수 없지. 디스커버리:이제 뭐 다 지난 일이고 정권도 여러 차례 바뀌었으니 구체적으로 좀 얘기를 해주시죠. 파인먼:120일이 조금 넘는 조사기간 동안 내가 가장 많이 들은 얘기는 “거기에 가서는 안 됩니다. 우리랑 함께 움직여야 합니다.”라는 말이었지. 누군가 자기들을 파헤치고 다니는 게 불편했던 것이지. 무엇보다 우주왕복선은 사람이 만들고 탄 물건 중에 가장 위험했거든. 너희들은 실제로는 폭탄이나 다름없지. 우주왕복선의 설계상 사고 확률은 100~450회 비행당 1건으로 돼 있어. 군용기가 2만 2000회 비행당 1회, 민간 여객기가 100만건당 1회로 계산되는 것을 감안하면 정말 말도 안 되게 높은 위험도지. 그런데 나사는 이걸 민간 여객기와 같은 100만분의1이라고 발표했거든. 엔데버:어떻게 그런 계산이 나왔죠? 파인먼:“우주왕복선에는 사람이 타기 때문에 더 안전하다.”는 말도 안 되는 논리 때문이야. 숫자 조작을 한 거지. 실제로 우주공간에서의 임무를 제외하고, 비행과정에서 사람이 할 수 있는 건 착륙할 때 바퀴를 꺼내는 버튼 하나를 누르는 것밖에 없거든. 그 밖에도 부품들에 생기는 문제를 규정 변경을 통해 허용치로 바꾸거나 엔진 터빈에 생긴 균열도 ‘파괴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사용 가능으로 판정하기도 했어. 조사 과정에서 보니까 엔진, 부품, 연료 등 많은 부분에서 현장 기술자들이 발사를 반대했는데 윗선에서 묵살했더라고. 디스커버리:그런데 왜 무리해서 발사를 한 거죠? 파인먼:챌린저가 폭발한 1986년 1월 28일은 당시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의 연두교서 발표가 예정돼 있었지. 영화배우 출신답게 쇼를 좋아했던 레이건이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챌린저호의 우주인과 교신을 하려고 했던 게 무리한 발사의 원인이었다고 봐야지. 특히 챌린저에는 일반인이었던 과학교사 매컬리프 부인이 타고 있었는데 극적 효과로는 최고였겠지. 챌린저가 얼마나 무리한 발사를 하는지 알고도 탔을 만큼 매컬리프 부인이 용감했는지는 별개로 쳐야겠지만 말야. 애틀랜티스:결국 그때 나사와 관련된 여러 가지 제안을 하셨고, 실제로도 많은 개선이 이뤄졌잖아요. 그런데 2003년에 큰형님인 컬럼비아호가 또 불행한 사고를 당했어요. 왜 그런 일이 일어난 거죠? 파인먼:그건 내가 세상을 떠난 후여서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우주왕복선이 워낙 위험한 존재이기 때문이라고 해야 할 것 같군. 외부적으로는 발사 단계에 타일이 떨어져 나가면서 돌아올 때 열을 견디지 못해 폭발했다고 하던데. 일각에서는 나사가 1990년대 후반에 구조조정을 심하게 하면서 관리와 정비 인력이 부족했기 때문이라는 얘기도 하더구먼. 자, 사고 얘기는 이쯤에서 마치고, 이제 30년간의 우주비행을 마치고 각자의 안식처(디스커버리는 워싱턴의 스미스소니언 국립항공우주박물관, 엔데버는 캘리포니아과학센터, 애틀랜티스는 플로리다 케네디우주센터)로 옮겨지게 됐는데 마지막으로 각자 일생에서 가장 보람찼던 순간을 되돌아볼까? 디스커버리:전 ‘지구의 눈’으로 불리는 허블 우주망원경을 1990년 4월에 우주로 올려놨죠. 사람들이 총천연색 우주의 모습을 자주 보게 된 것은 제 덕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죠. 지금까지 우주왕복선 5대가 기록한 우주비행 135회 중 39회가 제 차지였습니다. 애틀랜티스:저 역시 허블망원경의 수리 작업이 가장 기억에 남네요. 2003년 2월 컬럼비아 형님이 허블망원경을 수리하고 돌아오다가 사라진 이후 나사는 “국제우주정거장(ISS) 이외에는 우주왕복선을 보내지 않겠다.”고 선언했죠. 하지만 미국 과학자들은 물론 전 세계에서 허블망원경을 계속 보게 해 달라는 운동이 벌어졌고, 그 결과 제가 다시 허블망원경으로 향할 수 있었죠. 그리고 전 가장 마지막으로 하늘을 난 우주왕복선으로 역사에 남을 겁니다. 이달 말 비행으로 말이죠. 엔데버:하늘에 떠 있는 가장 큰 인공구조물인 ISS는 제가 주도한 작품입니다. ISS 내 우주인 투입이나 우주인들이 체류하는 데 필요한 물품 공급, 배터리 교체, 로봇 팔 설치 등이 모두 저를 통해 이뤄졌죠. 2007년에는 저를 타고 우주로 간 우주인들이 선생님이 돼 지구의 아이들에게 과학교실을 열기도 했죠. 이젠 모두 지나간 추억이 됐지만 말이에요. 언젠가 제 후배들이 태어난다면 이런 얘기들은 기술이 발달하지 않았던 시절의 에피소드가 될 수도 있겠지만 저희 형제들과 수백명의 우주인들이 만들어낸 도전의 역사는 영원할 것이라고 자신합니다. 파인먼:우주를 날아서 비행기처럼 자유롭게 활주로에 착륙한다. 정말 공상과학 소설 같은 얘기를 현실에서 보여준 자네와 나사의 과학자들에게 경의를 표하네. 물론 보이저(1977년 발사된 나사의 행성 탐사선. 목성과 토성을 찍었고 현재 태양계 끝에 도달해 있다)처럼 사람들의 기대를 뛰어넘어 태양계 밖 미지의 세상을 탐험하지는 못했지만 말이야. 하지만 난 여전히 자네들이 여기에서 나와 대화를 나누는 것이 기적이라고 생각한다네. 위험한 비행을 하며 형님 둘(컬럼비아·챌린저)을 먼저 보내고 자네들은 살아남지 않았는가 말일세. 우주왕복선이 이뤄낸 수많은 업적보다 내가 더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그들의 죽음이, 세상에 홍보용으로 전락한 과학이 얼마나 비참한 결과를 낳는지 보여 줬다는 점이라고 말하겠네. 아직도 지구 어딘가에서는 그런 일이 계속적으로 이뤄지고 있어 안타까운 마음일세. 오늘 즐거웠어. 각자의 자리에서 미래의 과학자들에게 더 많은 교훈을 주기 바라네. 박건형기자 kitsch@seoul.co.kr ●리처드 파인먼(1918.5.11~1988.2.15) 프린스턴대를 졸업한 미국의 이론물리학자로 양자전기역학을 재정립한 공로로 1965년 노벨물리학상을 수상. 20세기의 거시 물리학이 아인슈타인으로 대표된다면, 미시 물리학은 파인먼의 영역. 금고털이와 드럼 연주, 그림에 재능이 있었고 형식과 권위를 거부했던 것으로 유명. ●도움말 주신 분 이주희 한국항공우주연구원 우주과학팀장 정홍철 스페이스스쿨 대표 이학명 과학칼럼니스트 ●참고문헌 파인만씨, 농담도 잘하시네(리처드 파인먼·김희봉/ 사이언스북스) 남이야 뭐라 하건!(리처드 파인먼·홍승우/ 사이언스북스) 우리는 이제 우주로 간다(채연석/ 해나무) 서울신문은 매주 1회 독특한 포맷의 가상 인터뷰 [WHO&WHAT(후 앤드 왓)]을 1개면에 걸쳐 연재하고 있습니다. 일반 신문기사로는 다루기 힘든 동서고금의 지식과 역사의 정수들을 만남 또는 대담의 형식을 통해 알기 쉽고 재미있게 소개하는 지면입니다. 청소년, 어른 모두에게 즐겁고 색다른 지식의 장이 될 것으로 자부합니다. 특히 입시를 준비하는 학생들에게는 훌륭한 논술교재로도 활용할 수 있을 것입니다.[WHO&WHAT] “퀴즈쇼서 인간에 완승한 슈퍼컴 왓슨(Watson)을 만나다” [WHO&WHAT] 무덤에서 불러낸 독재자 4인의 가상만찬 ‘재스민 혁명’을 논하다 [WHO&WHAT] 천재소년 송유근, ‘우주비행 성공 50주년’ 맞아 유리 가가린을 만나다 [WHO&WHAT] ‘슈퍼히어로’ 스파이더맨, 정신과 전문의 김상준 원장과 상담하다 [WHO&WHAT] 지구수비대 지원한 인간형 로봇 ‘마루’ “아톰·태권V처럼 지구 지켜서…” [WHO&WHAT] ‘최악’ 통념 B형 男기자, 혈액형의 아버지 ‘란트슈타이너’에 따지다 [WHO&WHAT] ‘전 세계 여성의 로망’ 버킨백을 만나다 [WHO&WHAT] 선택 따라 전혀 다른 결과…”이렇게 검색하면 진리가 밝혀질까?” [WHO&WHAT] “남느냐, 떠나느냐” 희곡으로 본 어느 서재 도서들의 열띤 논쟁 [WHO&WHAT] ‘위대한 유산’ 남긴 간송미술관의 전형필, 그리고 우피치미술관의 메디치 [WHO&WHAT] 위대한 예술가 미켈란젤로, 그는 왜 라파엘로를 죽이고 싶었을까 [WHO&WHAT] ‘美우주왕복선은 초대형 폭탄이나 마찬가지’ 물리학자 파인먼의 폭로 [WHO&WHAT] 외규장각 도서 귀환으로 본 약탈문화재의 ‘수구초심(首丘初心)’ [WHO&WHAT] “재능만 주고 사랑은 주지 않던 나쁜 부모들” 유명 인사들의 회상기 [WHO&WHAT] 인류역사를 바꾼 ‘억세게 운 좋은 사내들’ 서바이벌 현장…과연 승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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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베트남 상위1% 주방용품’ 락앤락 김준일회장

    ‘베트남 상위1% 주방용품’ 락앤락 김준일회장

    “매년 인건비가 30%씩 오르는 중국은 더 이상 생산기지로서 메리트가 없습니다. 처음에 진출했을 때 한국의 20분의1 수준이었는데, 지금은 4분의1이 넘습니다. 베트남은 아직 인건비가 낮은 데다 외국기업 유치를 위한 세제 혜택까지 있습니다.” 김준일(61) 락앤락 회장은 지난 2일 베트남 호찌민에서 가진 기자간담회에서 베트남을 차세대 생산 및 수출 거점으로 삼겠다는 전략을 밝혔다. 김 회장은 “현재 호찌민 인근 연짝에 생산공장을 가동 중이고, 붕따우에 용기 제조를 위한 내열유리 공장을 세우고 있다.”면서 “물류 기지까지 완성되면 수출 전진기지로서 완벽한 구성을 갖추게 된다.”고 구상을 펴보였다. 락앤락은 베트남 내수시장에서도 선전하고 있다. 주요 백화점과 대형 마트에 직영점을 운영하고 있고, TV 광고를 통해 ‘상위 1%의 주방용품’으로 브랜드 가치를 높였다. 회사 측은 2013년에는 베트남에서만 6000만 달러의 매출이 가능할 것으로 보고 있다. ●“다음 타깃은 남미다” 블록화 경영을 강조하는 김 회장은 현지화 전략의 신봉자다. 각 블록의 특성에 맞춰 생산은 물론 자금과 기술개발(R&D), 수급까지 모두 해결하겠다는 원칙을 지금껏 지켜오고 있다. 관심이 있는 국가를 묻자 “이머징 마켓”이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김 회장은 “이미 완성된 시장에 들어가면 막대한 광고를 투자해도 효과가 미미할 수 있지만, 중국이나 동남아처럼 미성숙한 시장에서는 적은 투자로도 시장을 선점할 수 있다.”면서 “다음 타깃으로는 남미를 생각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현재 김 회장은 밀폐용기로 대표되는 락앤락을 종합 주방용품 기업으로 키우기 위해 애쓰고 있다. 롤 모델로는 생산과 유통을 함께하는 다국적기업 피앤지(P&G)를 꼽았다. 그는 “제조사가 다른 회사에 유통을 맡길 경우 아무리 독려해도 연간 30~40%의 성장률을 넘기기 힘들다.”면서 “자기가 생산한 제품에 애정을 갖고 판매까지 맡는다면 최대 300% 이상의 성장도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이어 “현재 세계 100여개 국가에서 성과를 내고 있고, 추후 프랜차이즈 매장도 적극 확대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매출 목표로는 올해 5500억원, 2020년 10조원을 제시했다. ●생산·유통 함께하는 P&G가 롤모델 김 회장은 최근 국내에서 논란을 빚고 있는 ‘대기업·중소기업 상생’에 대해서는 “결국 대기업의 의지가 중요하다.”면서 ‘사과’를 예로 들었다. 그는 “사과를 자르면 꼭 절반씩 나뉘지 않는다.”면서 “대기업은 이럴 때 상대편에 큰 것을 선택하라고 할 수 있는 용기가 있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중견기업으로 성장한 오너로서 중소기업에 대해 조언을 해달라고 하자 ‘응집력’과 ‘제품에 대한 자신감’을 꼽았다. 대기업이 중소기업의 영역을 침범하기 위해서 가장 많이 쓰는 방법이 ‘인력 빼가기’인 만큼 우수 인력을 지킬 수 있는 응집력을 강화해야 한다는 주문이다. 김 회장은 “몸매가 좋은 사람은 청바지에 흰 티만 입어도 멋지다.”면서 “결국 가장 중요한 것은 제품이 성공의 비결이라는 점을 잊지 않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호찌민 박건형기자 kitsch@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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