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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소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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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美역사를 바꾼 오바마 신화 탄생기

    2004년 여름 보스턴에서 열린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버락 오바마 상원의원은 전당대회 기조연설자로 발탁됐다. 무명의 연설자가 발탁된 이유는 민주당 대선 본부에 흑인이 너무 없다는 비난을 상쇄하기 위한 흑인 표심 무마용이었다. 당시 184㎝의 훤칠하고 잘생긴 흑인 상원의원 오바마는 ‘인종에 관계없이 미국인은 하나’라는 연설을 통해 전국적인 정치인으로 발돋움했다. 그의 연설 스타일을 떠올린다면 너무나 당연한 워싱턴 정계의 ‘벼락 스타’ 탄생이다. 4년이 지난 2008년, 47살의 오바마는 미국 역사 최초의 흑인 대통령이 됐다. 흑인이 미국땅에 노예로 끌려온 지 232년 만의 혁명이었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방한을 앞두고 ‘오바마 신화’ 탄생의 과정을 생생하게 전하는 ‘오바마의 신화는 눈물이었다’(열린책들 펴냄)가 나왔다. 저자는 김성수 연합뉴스 편집상무로, 2007년 12월부터 올 3월까지 연합뉴스 미주총국장을 지내며 역사의 현장을 생생히 지켜봤다. 케냐출신의 아버지와 인도네시아 출신의 양아버지를 두고 성장기 정체성의 혼란을 겪던 흑인 혼혈 청년이 변화와 희망의 전도사가 돼가는 미국 대선 과정을 생중계한다. 집권 여당의 프리미엄을 고려해 야당 전당대회를 일주일 정도 앞서 개최하도록 배려하는 미국식 대선과정에 대한 이해도 높아진다. 1만 2000원. 문소영기자 symun@seoul.co.kr
  • 다윈 ‘종의 기원’ 출간 1859년 세계문명 대혁신의 해

    인생을 회고하다 보면 사람들은 환골탈태라고 할 만한 시기가 있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어찌 된 일인지 이전과 달리 사물의 이치가 머릿속으로 속속 들어오고, 날밤을 새며 활동해도 육체적으로 끄떡없다. 우연하게도 주변 환경도 대단히 우호적이라 의도하는 바를 다 이룰 수 있는 상황 말이다. 사람에 따라서 그 시기가 초등학교나 중고등학교, 대학교 때, 또는 직장 초년병 시절 등에도 나타날 수 있다. 그 시기를 통과한 사람들은 이전의 자신과 비교할 수가 없다. 점진적 발전이 아닌 도약과 비약이 이뤄졌기 때문이다. 인생의 한 시점에서도 그렇듯 인류의 역사에는 환골탈태라고 부를 만한 비약적인 발전의 시점들이 있다. 고대 그리스·로마시대의 철학과 과학의 발전과 15세기 이탈리아를 중심으로 한 르네상스, 16세기 초 대항해의 시대, 18세기 프랑스 혁명과 영국의 산업혁명 그리고 19세기 중반 찰스 다윈의 ‘종의 기원(On the Origin of Species)’ 출간 등을 손꼽을 수 있겠다. 이러한 발전들은 지구를 점점 공동의 가치와 방법, 개념들로 하나로 묶으면서 동떨어져 있던 세계를 점점 가깝게 하나로 묶어나갔다는 것이다. ●과학기술 발전이 서양정치·사회·경제 등에 미친 영향 ‘다윈은 세상에서 무엇을 보았을까’(피터 매시니스 지음, 석기용 옮김, 부키 펴냄)는 1859년이란 시점을 고정해놓고, 서양 과학기술의 발전 수준과 그러한 과학기술의 발전이 정치·사회·경제·문화에 끼친 영향을 시시콜콜 다룬 책이다. 동양에서 종의 기원은 생물학적으로 인류가 진화됐다는 과학적 의미로 한정되지만, 서양에서 종의 기원은 기독교 사회의 붕괴를 가져오는 것으로 그 파장은 과학에 한정되지 않았다. 유럽에서 경제학이 급속히 확산되고 발전했던 이유로 다윈의 종의 기원으로 믿음의 체계를 잃어버린 서양인들이 이를 대체할 학문과 철학, 윤리의식으로서 경제학을 받아들였다고 설명하기도 한다. 종의 기원이 나오기 전까지 서양에서는 인류의 역사가 6000년에 불과하다고 알고 있었다. 구약성서에 나와 있는 선지자들의 나이를 다 합쳐서 만들어낸, 비교적 과학적(?)인 가공의 역사다. 그러나 종의 기원이 나올 무렵 공룡의 뼈 등 화석을 발굴해내던 지질학자들은 지구의 역사를 46억년 전으로 끌고 올라간다. 지질학은 진화론과 맞물려 지구와 인간, 신에 대한 이해를 완전히 바꾸어놓았다. 호주 시드니에서 활동하는 과학 저술가인 저자 피터 매시니스는 종의 기원 발간을, 자리표는 있지만 자리 배치도를 마련해 놓지 않은 엉성한 결혼피로연에서 몇몇 하객이 먼저 자리를 차지함에 따라 나머지 하객들이 쉽게 자신의 자리를 찾는 것에 비유하고 있다. 뒤에 피로연장을 찾는 하객들은 미리 자리 잡은 배우자나 동료, 친구들의 손짓을 따라가면 쉽게 자리를 찾고, 자리를 채우는 속도는 점차 빨라진다는 것이다. 즉 종의 기원의 발간은 지금까지 자리를 못 찾고 우왕좌왕하던 각종 과학기술의 발전을 촉진하고, 통신과 교통, 무역, 지성, 언론 등 여러 분야에서 중요한 발전을 폭포처럼 연쇄적으로 이끌어낸 해라고 말한다. 물론 종의 기원이 그 일을 이끌어내기도 했지만, 그 책의 발간 역시 시대적 산물이자 변화의 증상이라는 지적을 저자는 잊지 않는다. ●교통·통신·무역·언론 등 연쇄발전 그럼 1859년에는 또는 1859년을 전후로 무슨 일들이 있었을까. 1859년 4월에 수에즈 운하가 착공됐고, 그 해 한해 동안 많은 전신선이 부설됐다. 속도를 추구하게 된 것이다. 미국에서는 존 브라운이 노예제 폐지운동을 벌이며 무력행동을 하다가 교수대에서 처형을 당했다. 그해 에이브러햄 링컨은 대통령 캠페인에 들어갔고, 1861년 미국의 대통령이 된 링컨은 노예제 폐지를 두고 전쟁을 벌인다. 루이 파스퇴르는 정밀한 실험을 통해 생명체는 자연 발생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보여줌으로써 ‘세균설’이 등장할 무대를 만들어줬다. 1854년에는 영국 존 스노가 콜레라 창궐지역을 지도로 찍어내 ‘물속의 무언가’가 질병의 원인이라는 전염병 확산의 명확한 패턴을 밝혀주었다. 이제 과학은 분화돼 과학자들도 전공이 아니면 모르게 됐다. 도시에는 가스등을 흔히 볼 수 있었고, 최초의 전등이 실험됐다. 미국 에드윈 드레이크는 최초의 유정을 시추하기도 했다. 이산화탄소의 증가에 따른 지구온난화를 예측한 스반테 아레니우스가 태어난 해이기도 하다. 그해 영국 빅토리아 여왕은 독일로 시집간 딸이 베를린에서 아들을 낳았다는 소식을 몇 분 만에 전보로 전해들었고, 1859년에 태어난 그 손자는 빌헬름 2세로 1차 세계대전 때 독일을 통치했다. 빌헬름 2세는 당대의 기술발전을 통해 가공할 만한 군비개량을 이뤄나가기도 했다. 동인도에서 구타페르카라는 고무와 비슷한 형질의 신물질이 1859년에 엄청난 주목을 받으며, 해저케이블의 피복으로, 충치치료제로, 소방호스의 피복 등으로 널리 이용됐다. 알루미늄은 당시 금보다 더 비싼 신물질이었다. 급속한 도시화가 진행됐다. 또 노동계급들의 열악한 노동여건의 개선과 여가의 확보 등은 인쇄매체 등 읽을거리에 대한 관심을 증폭시키면서 면직물 넝마가 아니라 목재 펄프로 종이를 만들기도 한다. 미국과 호주에서는 골드러시가 있고, 영국 런던에서 발행된 신문은 해저케이블 등의 발달로 미국 워싱턴과 뉴욕에서도 2주 만에 받아볼 수 있게 됐다. 세계는 좁아져 가고 있었던 것이다. 아 참! 1857년에서 1859년 사이에 인플루엔자가 크게 유행해 태평양 지역을 강타한 것도 잊지 말자. 1859년은 그저 150년 전의 어느 한 해가 아니었다. 그리고 1859년과 닮은꼴처럼 보이는 2009년도 그저 그렇게 평범한 한 해가 아니었다고 나중에 술회할지도 모르겠다. 1만 6000원. 문소영기자 symun@seoul.co.kr
  • 흑백사진… 그 신비한 매력속으로

    흑백사진… 그 신비한 매력속으로

    “오히려 지금이 ‘흑백의 전성시대’ 아닐까요? 극소수의 마니아가 있는 상태 말이에요.” 11일부터 30일까지 서울 송현동 이화익갤러리에서 개인전을 여는 흑백 사진작가 민병헌(54)은 “앞으로도 재료가 허락하는 한 흑백사진을 찍을 것”이라며 흑백사진에 대한 애착을 드러냈다. 그는 디지털 사진이 시대의 대세가 된 21세기에 필름 사진을 고집하는 몇 안 되는 사진가로, 인화에서 현상까지 아날로그 방식으로, 조수도 없이 직접 자신이 하는 작가이다. 젤라틴 실버프린트에서는 세계적으로 최고 수준이라는 평가다. 눈부신 햇살에 다 날아가 버린 듯 하얀 화면 위로 어렴풋하게 물체가 보이는 흑백 풍경 사진을 찍어온 민 작가가 ‘나무’(tree) 연작과 ‘폭포’(waterfall) 연작 등 20여점을 선보인다. 이번 전시는 피사체가 훨씬 구체적으로 드러난다. 그 이유에 대해 민 작가는 “과거에는 감정에 더 무게를 뒀다면 나이가 들면서 좀 더 솔직한 톤으로, 본질적으로 가야 할 것 같아서 변화를 줬다.”고 말했다. 이번엔 작품크기도 가로 127㎝에 세로도 130㎝ 정도로 커졌다. 아날로그 방식으로 할 수 있는 가로의 최고 길이가 127㎝이다. 민 작가는 “디지털 시대에는 대형 필름사들이 인화지나 필름 현상액 등 사업을 포기하고 있어 필요한 물품을 구하기가 쉽지 않지만, 소규모로 물품을 공급하는 회사들이 생기고 있어 마니아들 사이에서는 더 열광하기 때문에 좋기도 하다.”라고 말한다. 아날로그를 고집하지만, 디지털의 유혹이 없지 않다. 길이 4m 정도 되는 벽을 가득 채울 수 있는 대형 사진을 만들어달라는 주문이 있었다. 거액을 약속하면서 말이다. 그런 사진은 디지털로 인화해야 하기 때문에 작가로서는 힘들 것도 없었다. 잠시 흔들렸다. 하지만 그는 끝내 ‘안됩니다.’라고 말할 수밖에 없었다. 작가로서의 고집이었다. 그때 만약 ‘그럽시다.’라고 대답하면 두 번 다시 수작업의 고통스러운 작가의 길로 돌아올 수 없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또한 말한다. “그렇다고 디지털을 거부하는 작가라고 쓰지는 말아달라. 오늘은 이렇지만, 또 체력이 떨어지고 해서 어떻게 바뀔지 모르는 것 아니냐.”라고. 보통 사진가는 사진을 잘 찍어야 한다고 착각하기 쉽지만, 그에게 사진 찍는 일은 아주 작은 부분이다. 또한 사진기를 메고 다니며 작업하는 시간보다 여행을 하면서 마음이 머무는 장소를 발견해내는 일이 먼저다. 화창한 날에는 거의 작업하지 않고 새벽이나 안개 낀 날, 눈이나 비가 오는 날처럼 육안으로 봐도 명암 대비가 뚜렷하지 않은 날, 소주를 마시면서 사진을 찍고, 현상을 하고 인화를 한다고 한다. 요즘 그가 하는 작업은 누드 초상 작업이다. 누드로 찍은 풍경화 정도가 되겠다. 앞으로 2~3년 안에 신작을 발표할 예정이다. (02)730-7817. 문소영기자 symun@seoul.co.kr
  • 벗기고 겹치고… 충격과 파격

    벗기고 겹치고… 충격과 파격

    서울시립미술관의 신진 작가 발굴·지원 프로그램인 ‘2009 SeMA 신진작가 전시지원 프로그램’에 선정된 이단(38)이 서울 관훈동 갤러리 더 케이에서 ‘벗겨진 전통’이란 제목으로 11일부터 21일까지 개인전을 연다. 서울시립미술관이 전시장 임대료와 인쇄료, 홍보료, 작품 재료비 및 전시컨설팅, 도록 서문, 외부 평론가 워크숍까지 전시 전반을 지원했다. 그의 작업은 짙은 화장을 한 나체의 여성 이미지를 불교 탱화나 피에타상, 불상 등과 수없이 겹치고 복제한 디지털 사진과 드로잉으로 표현했다. 다소 충격적이고 파격적인 이 나체의 여인은 작가 자신이다. 작가는 “믿음과 가치, 신앙, 이데올로기 등이 뒤엉켜 있는 사회에서 인간들이 어떤 형태로 사회와 관계를 맺어야 잘 살아가는 걸까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자 작업했다.”면서 “시간이 지나도 변하지 않은 인격과 인성을 중심으로 예술의 문제를 풀어보고자 한다.”고 말했다. 그 때문에 스스로의 나체를 활용하는 것은 “자신의 능력을 나타내 줄 수 있는 도구이자 예술의 오브제일 뿐”이라며 불편해하는 시선에 대해 당당하게 대꾸한다. 조주현 서울시립미술관 큐레이터는 이 작가의 작품에 대해 “우리 시대 진정한 가치를 찾고자 고군분투하는 예술가의 혼이 느껴지며, 잃어버린 전통과 정신의 소중함을 일깨우고 있다.”고 소개했다. 서울예고와 이화여대에서 서양화를 전공하고 연세대 대학원 건축공학과를 졸업했다. 이번이 4번째 개인전이다. (02)764-1389. 문소영기자 symun@seoul.co.kr
  • 양식화된 그림을 거부하는 두 작가를 만나다

    양식화된 그림을 거부하는 두 작가를 만나다

    프랑스 출신의 세계적인 작가 베르나르 뷔페(1928~1999)의 그림은 1950년대의 작품이 1980년대의 후기 작품보다 높이 평가받는다. 당연히 미술시장에서 가격도 초기 작품이 높다. 이런 차이는 어디서 나올까. 미술가들은 뷔페가 말년에 양식화된 기술로 작품을 기계적으로 그린 탓이 아니겠느냐고 한다. 사람들은 작품에 익숙해지면 금방 혼이 담긴 그림과 그렇지 않은 그림을 골라낼 수 있다고 한다. 작품을 평가하는 기준이 되고, 가격에도 영향을 미치는 것이다. 작가들은 작품활동을 할 때 관람객들은 대부분 작품이 비슷하게 보일 수도 있지만, 작가들은 그 비슷해 보이는 작품 안에서도 끊임없이 변화를 추구한다고 한다. 그러지 않으면 그것은 죽은 그림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양식화를 피하고자 노력하면서 일필휘지의 느낌을 강조한 작품들이지만, 그 크기에서는 서로 다른 두 명의 전시가 열린다. ●설원기 초대전 - 새달 6일까지 금호미술관 “양식화된 그림은 싫다.”는 설원기(58) 한국예술종합대 교수는 서울 소격동 금호미술관 전관에서 12월6일까지 초대전을 갖는다. 드로잉과 회화의 경계를 넘나들며 즉흥적이고 자연스러운 그림을 그려온 설 교수의 특징이 이번 전시에도 잘 나타나 있다. 1970년대 작품부터 근작까지 페인팅 60점, 드로잉 200점을 걸었다. 드로잉도 페인팅도 대체로 20호 안팎이다. 드로잉은 복사지 A4용지 크기의 작품들을 하나로 묶어서 대형 작품을 만들어놓기도 했다. 여자의 누드와 꽃 정물, 얼굴 초상화 등이 소재다. 설 교수가 지난해 교환교수로 미국에 있을 때 그린 드로잉을 하나로 묶은 것이다. 설 교수는 이번 전시에서 캔버스 대신 종이와 마일러 필름(Mylar Film)이라는 미끈거리는 폴리에스테르 필름을 사용해 드로잉과 페인팅을 선보였다. 그는 “붓질의 예민함과 물감의 물성을 보여주고 싶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한지에 먹으로 그림을 그리면서 덧칠을 할 경우 그림의 맛과 멋이 사라지기 마련이다. 마일러 필름에 그린 그림도 그러했다. 이를테면 얼굴 선을 몇 번 이어 그렸는지 보이게 되는데, 설 교수는 대체로 일필휘지로 한 번에 인물을 그려냈다. 그림이 그리 크지 않은 이유에 대해 설 교수는 “나는 내 그림이 커다란 빌딩의 로비에 걸리기를 원하지 않는다. 순간적으로 사람의 눈을 매혹하는 작품에 매력이 없다.”라면서 “서재에 걸리는 그림, 보고 난 다음 생각나서 또 들여다보고 싶은 그림을 그리는 것이 좋다.”고 말했다. 계산하는 성격에 따지기도 좋아하고 술· 담배도 하지 않아 예술가적 기질과 거리가 있다는 설 교수는 원래 법학대학원을 갈 생각이었다. 그러나 미국 위스콘신주의 벨로이트 대학교에서 우연하게 미술분야를 한두 과목 수강한 뒤 3학년 때 화가의 길로 들어섰다. 20살 무렵이다. 뉴욕의 프랫 인스티튜트에서 미술 석사를 했다. 어려서부터 화가수업을 받지 않고도 화가가 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미국에서 살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미국으로 발령받은 아버지를 따라나선 덕분이다. 미술은 그에게 “삶의 의미를 찾아가는 하나의 수단이자 목적”이었다고 한다. 전시장은 마치 고등학교 미술반처럼 다양한 종류의 그림과 드로잉이 걸려 있고, 열정과 실험정신이 가득한 것 같아 부담이 없다. (02)720-5114. ●김종학 초대전 - 13일부터 가나아트 설악산을 그린 서울대 김종학 전 교수와 구별하도록 ‘젊은 김종학’으로 불린다는 세종대 김종학(56) 교수가 서울 평창동 가나아트에서 13일부터 12월6일까지 초대전을 연다. 가나아트 1~3관까지 전관에서 열리는 이번 전시에서 김 교수는 4년 전 토탈미술관에서 보여줬던 극사실주의적 꽃 작업과 다른, 거칠고 힘찬 드로잉을 커다란 화면에서 보여준다. 전시 제목은 ‘이미지와 기억’. 이번 전시에서 변신을 시도한 김 교수의 캔버스는 흰색 아크릴판. 그 위에 김 교수는 번쩍번쩍하고 화려한 색깔이 더 도드라지는 자동차 도료로 드로잉하듯이 일필휘지로 그림을 그려냈다. 붓의 움직임을 동적으로 표현한 이번 작품은 아날로그와 디지털이 함께 공존하는 세계를 한 화면에 담아낸 것이라고 했다. 김 교수는 “자동차 도료를 페인팅용으로 사용하는 사람은 내가 처음일 것”이라며 “아날로그에서 디지털 세계로 넘어가는 사이에 끼인 세대들의 복합적인 감정을 보여주고 싶다.”라고 말했다. 그림의 소재는 꽃이나 사과, 배, 포도 등 ‘별것 아닌 것들’이다. 이 별것 아닌 사물들은 김 교수의 손에서 대형 이미지로 재현돼 관객들을 압도하거나 매혹할 것이다. 이 그림의 원형은 1989년 파리 유학길에서 찾아낸 것이다. 서울대 서양화학과를 졸업한 그는 서양식 그림을 제대로 배워보겠다며 파리로 유학을 떠났다. 서양에 가자 동양인인 자신이 더 잘 보이고, 동양을 더 잘 이해하게 됐다. 서양과 동양의 차이에 대한 고민이 더 깊어질 수 없을 무렵 어느 날 저녁 디저트로 나온 포도를 보면서 그는 ‘득도’를 한다. 그 포도가 수박만 한 크기의 검은색 알맹이로 보인 것이다. 다음날 그는 가로 4m, 세로 3m 크기의 캔버스에 수박 크기의 검은 색 포도 알갱이를 그리고 몹시 흡족해했다. 삶의 열정과 에너지를 포도의 형태에서 발견했다고나 할까. 그 후로 서양 배나, 욕망의 상징 같은 붉은 사과, 한국적 이미지가 숨어 있는 마른오징어 등 별것 아닌 소재를 뻥튀기해서 그리기 시작했다. 그는 관객들이 작품의 이미지를 통해 서양과 동양, 세대와 세대의 차이를 찾고, ‘나는 어디에 있을까.’를 생각해보길 바란다. 그의 작품은 주로 빌딩의 로비에서 보게 되는데, 워낙 작품 크기가 커서 개인이 소장하기에는 쉽지 않기 때문이다. 크기에서 오는 압도적인 힘, 매력을 그의 작품에서 찾아볼 수 있다.(02)720-1020. 문소영기자 symun@seoul.co.kr
  • 요즘 유행하는 놀랍고 멋진 그림이란…

    요즘 유행하는 놀랍고 멋진 그림이란…

    서울 세종로 일민미술관에서 내년 2월28일까지 열리는 ‘원더풀 픽처스(Wonderful Pictures)’는 문자 그대로 깜짝 놀랄 정도로 멋진 그림들을 전시한 것이다. 그것도 작가 174명의 작품 174 점. 일민미술관 측은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현실의 다양한 차원들, 비속적이거나 즉물적이거나 혹은 일상적이거나 비물질적인 차원들에 대한 ‘경이로움’을 봤다.”면서 “그 경이로움의 정체를 그림으로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한다. 작가 선정은 다양한 배경지식을 가진 미술관 직원 8명이 작가에 대한 별다른 정보 없이 미술관에서 보관하고 있는 오래된 도록들과 미술전문 잡지, 웹사이트 등 다양한 경로를 통해 자신이 ‘원더풀’하다고 생각하는 그림들을 각각 100여점 골랐다. 선정된 800여점 중 겹치는 작가들을 추려내고, 350명으로 압축한 뒤 직접 작가들과 접촉해 작품을 모으기 시작했다. 공성훈과 김덕기, 정경심, 송필용, 정재호, 서유라, 박영균, 김성진, 센정, 이종구,서지선, 윤병운 등 이미 잘 알려진 작가부터 아직은 낯선 작가들, 대학원생인 아마추어까지 다 모였다. 미술관측은 의도한 것은 아니었지만, 선정 작가의 70~80% 정도가 20~30대의 젊은 작가들이라고 밝혔다. 미술관 측은 “1층 전시가 교통수단으로 시작해 주거공간· 먹을거리· 볼거리로, 2층 공간은 꽃으로 시작해 장난감 등으로 이어진다.”면서 “작가들이 같은 소재를 얼마나 다른 상상력과 표현방식을 구사하는지 비교해볼 수 있다.”고 말했다. 작품 전시방식도 파격적이다. 한 작품을 밀도있게 볼 수 있도록 넓은 벽에 작품 1점이 아니라, 벽 가득하게 다닥다닥 붙여놓았다. 그래서 그림을 잘 감상하려면 관람객들의 노력이 필요하다. 작품들이 서로 섞이지 않도록 구별하고 개별화시키기 위해서다. 전시장 조명은 그리 밝지 않지만, 화사한 색깔의 작품들 덕분에 즐겁고 유쾌하다. 돌다보면 벌써 다 봤나 싶다. (02)2020-2055. 문소영기자 symun@seoul.co.kr
  • “청소년들이 스스로 삶의 주인공 됐으면”

    “청소년들이 스스로 삶의 주인공 됐으면”

    “‘네 삶의 주인공은 너야, 정해진 시스템에 따라 움직여진다고 해도, 문제의식을 가지고 삶의 주인공으로 살아봐. 그래야 행복하니까. 또 멋지게 놀아봐. 연극이나 춤, 패션, 음악이든 자기를 표현하고 실현하는 방법을 찾아봐.’라고 청소년들에게 이야기하고 싶었어요.” ‘파랑치타가 달려간다’는 작품으로 비룡소의 청소년문학상인 제3회 블루픽션상 수상작가 박선희( 46)는 지난 3일 기자간담회에서 자신의 작품이 의도한 바를 소개했다. 파랑치타는 소설의 주인공인 주강호가 50만원에 인수한 중고 오토바이의 애칭. 폭력 아버지와 세 번째 어머니를 피해 가출해, 주유소에서 아르바이트하는 일반고교 1학년 강호는 밤이면 파랑치타를 타고 도로를 질주해 자신을 옭아매는 현실을 잊어버리려 애쓴다. 또 다른 주인공 이도윤은 외고에서 적응에 실패해 일반 고등학교로 전학온 모범생. 도윤의 어머니는 자식 교육을 위해 직장생활을 포기하고 큰아들을 외고를 거쳐 S대 법대에 합격시키는 데 성공했고, 둘째 도윤을 통해서도 자신의 목표달성을 꾀하지만 벌써 도윤은 외고에서 낙오했다. 강호와 도윤은 초등학교 6학년 2학기까지 친구. 그러나 어느 날 강호는 ‘끼리끼리 놀아야 한다.’라는 도윤 어머니의 가르침을 받고, 도윤을 ‘왕따’시킨 아픈 기억을 간직하고 있다. 이 둘은 다시 만나, 밴드부 활동을 통해 4년간의 세월 간격을 메우고, 강호는 도윤을 통해, 도윤을 강호를 통해 자신들이 부모와 사회, 가족들과 타협하는 방법을 찾아나간다. 총평을 하자면 파랑치타는 ‘착한 소설’이다. 기왕에 모범생인 도윤이는 그렇다고 해도 불량해 보이는 강호나 주요소의 아르바이트 동료로 고교를 자퇴한 건우 형이나, 새 아빠를 들인 엄마에게 반항하며 가출을 밥 먹듯 하는 아미, 어려서 보육시설에 버려진 효진 누나도 모두 착하고 순수하다. 마치 우리의 가정환경은 나를 가출하게 하지만, 나는 삐뚤어지거나 뒤틀린 인생을 살지 않겠다고 집단맹세라도 한 듯하다. 청소년 소설이라고 미리 한계 지어놓고 쉽게 ‘올바른 길’을 제시한 것이 아닌가 싶다. 이에 대해 박 작가는 “평소 단편소설은 차갑게 쓰지만, 장편소설은 따뜻한 소설이 된다. 그러나 따뜻한 소설이 교훈적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교훈을 줄 생각도 없었다.”라고 부인했다. 소설은 쉽게 훌훌 읽히지만, 다 읽고 나면 인물을 통한 대리만족이나 카타르시스보다, 현실에 적응하며 살아남으려는 청소년들이 남게 돼 윤리 교과서를 읽은 느낌이 생긴다. 박 작가는 숙명여대 교육학과와 서울예대 문창과를 졸업하고 나서 작가의 길에 들어섰고, 현재 안양예고 문창과에서 강의하고 있다. 문소영기자 symun@seoul.co.kr
  • 휴대전화·인터넷 등 이동통신 어떻게 사회를 뒤흔들까

    2004년 3월11일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3개의 교외열차가 폭발해서 192명이 죽고 1000명 이상의 부상자가 발생했다. 그 폭발은 원격조종으로 작동하는 이동전화에 의해 이뤄졌다. 스페인 국회의원 선거 나흘 전이라는 정치적으로 미묘한 시기에 발생한 폭탄테러였다. 당시 선거의 주요 쟁점은 스페인의 이라크 전쟁 참가 여부였다. 집권여당인 국민당 정부는 마드리드 폭탄 테러에 대해 어떤 증거가 드러나지 않았는데 ETA라는 바스크 과격주의 단체가 폭발의 배후라고 발표했다. 시간이 흐르면서 알 카에다의 소행일 가능성이 커지자, 스페인 국민의 67%는 정부가 정치적 이익을 얻고자 테러 공격에 관한 정보를 조작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스페인 국민은 파병을 반대했기 때문이다. 스페인 의회 조사위원회도 정부 측 편향을 보였다. 수천명의 시민은 3월12일과 13일 정보조작 실체를 확신했고, 이동전화의 문자메시지와 인터넷을 통해 전 국민에게 퍼뜨렸다. 선거를 이틀 앞둔 토요일 이동통신의 문자메시지 전송량은 평시보다 20% 증가했고, 하루 앞둔 일요일에는 평소보다 40%가 증가했다. 당시 국민은 정부의 직간접적인 통제하에 있던 주요 방송사와 신문·라디오를 신뢰하지 않고, 대안통신 채널을 이용했다. 선거 결과는 사회당이 77% 득표율로 압도적인 승리를 거뒀고, 사회당 정부는 즉각적으로 이라크에서 철군했다. ●이동통신이 정치·경제에 미친 영향 분석 스페인의 이 경험은 2001년 임기를 3분의1도 채우지 못한 필리핀 에스트라다 대통령의 사임을 이끌어낸 것과 마찬가지로 정치커뮤니케니션 역사의 전환점으로 분석되고 있다. 이동전화를 갖고 인터넷 접속이 가능한 개인과 민중활동가들은 강력하고 광범위하며, 개인화된 즉각적인 통신망을 구축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다. 과거 강력한 통신망을 확보하고 정보를 통제하는 것은 정부나 국가만이 할 수 있는 일이었는데, 휴대전화가 세상을 바꾼 것이다. ‘이동통신과 사회’(마누엘 카스텔·미레야 페르난데스-아르데볼 등 4인 지음, 김원용·성혜령 옮김, 커뮤니케이션북스 펴냄)는 이처럼 휴대전화와 무선 인터넷 등 이동통신이 현대 사회의 청년문화와 정치, 경제에 미친 영향을 분석한 흥미로운 책이다. 분석대상을 유럽이나 미국으로 국한하지 않고 아프리카와 오세아니아, 라틴아메리카 등으로 확장시켰다. 때문에 아프리카 최빈국에서 이동통신이 어떻게 유선 전화의 대체재로서 존재하는가를 통계와 함께 접할 수 있다. 4명의 저자들 중 마누엘 카스텔은 미국 서든캘리포리아 대학의 커뮤니케이션 학부 교수이자 바르셀로나 카탈루냐 개방대의 연구 교수이고, 잭 린추안 추는 홍콩 중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등으로 최첨단 정보통신(IT)이 어떻게 사회를 뒤흔들 수 있는 지를 살펴보고자 한 것 같다. ●문자메시지로 ‘청년문화’ 발전 스페인이나 필리핀, 2002년 한국 노무현 대통령 후보의 당선사례만 보면 이동통신과 문자메시지가 마치 정치사회적 변혁을 쉽게 이끌어내는 도구처럼 보이지만, 그 활용에는 본질적으로 제한적 성격이 있다는 것도 이 책은 함께 보여준다. 2003년 중국 광둥성 병원에서 사스가 출몰하자, 병원관계자와 희생된 가족, 친구들은 이런 이질적이고 낯설고 치명적인 질병에 대해 주위에 문자메시지를 보내기 시작했다. 그 문자메시지는 광둥성 도시 주민들은 물론 성 밖으로도 퍼져 나갔는데, 이때 중국 베이징 공공 위생 당국자들은 대중매체를 통해 역정보를 보내며 공식 캠페인에 들어갔다. 결국 휴대전화의 문자메시지를 통한 정보는 신뢰도가 낮은 정보로 인식돼 소문은 잦아들고, 국민은 정부를 신뢰했다. 그러나 몇 주가 지나고 나서 국민은 사스가 창궐하는 것을 그저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무선통신과 정치권력 간의 관계를 사례로 소개했지만, 이 책은 문자메시지를 통한 각국의 청년문화현상이 대체로 비슷한 양상으로 발전하는 것도 보여준다. 모국어의 맞춤법 파괴 사례라든지, 젊은이들이 문자메시지를 통해 개인 네트워크를 확장시켜나간다든지, 세대 간 격차를 뛰어넘는다든지 하는 문화적 현상 말이다. 휴대전화로 시간과 공간적인 격차를 뛰어넘기 때문에 세계가 젊은이들 사이에서는 평평해지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이동통신의 보급과 확대는 또한 가난한 나라가 ‘건너뛰기식’ 경제발전을 할 가능성도 보여준다. 이동전화는 선진국과 개발도상국 사이의 디지털 격차를 줄이고, 개발도상국의 발전을 촉진하는 해법이 될 수 있다는 기대다. 저소득 국가에서 인구 100명당 평균 10명 이상이 이동전화가 있으면 1인당 국내총생산이 0.59% 더 높아질 수 있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선진국은 유선전화가 네트워크 효과를 수행하지만, 개발도상국은 이동전화를 통한 네트워크 효과가 훨씬 높게 나타나기 때문이다. 한 국가 내에서도 이동전화가 유선전화보다 가난한 사람들에게 훨씬 유용하다는 분석이 나타난다. 때문에 중국 이주노동자들 사이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얻는 ‘리틀 스마트폰’ 시스템이나, 인도 저소득층을 위한 ‘코텍’, 우간다의 ‘모바일 공중전화 시스템’과 ‘빌리지폰’, 남아프리카공화국의 ‘모바일 공중전화 대리점’ 등은 선불카드와 저렴한 통신요금 등을 통해 가난한 사람들이 소외되지 않고 일자리에 접근하는 방안을 제시하고 있다. 8장으로 구성된 책은 각 장이 끝날 때마다 요약본이 달려 있다. 어지럽게 읽고 요점정리를 읽으면 머릿속이 더 개운해진다. 2만 5000원. 이 책과 함께 강준만 전북대 교수가 쓴 한국사회에서 전화의 정치사회적 역할을 다룬 ‘전화의 역사’(인물과 사상사 펴냄)를 읽는다면 최근 한국 사회에서 일어나는 보이스피싱, 전화매춘, 휴대전화 만능시대 등 각종 사회문제가 일목요연하게 정리될 것이다. 문소영기자 symun@seoul.co.kr 그래픽 강미란기자 mrkang@seoul.co.kr
  • “박수근 ‘빨래터’ 진품 추정”

    “박수근 ‘빨래터’ 진품 추정”

    위작 논란에 휩싸였던 박수근(1914~1965) 화백의 유화 ‘빨래터’가 진품으로 추정된다는 법원의 판단이 나왔다. 하지만 표현기법 등이 박 화백의 기존 작품과는 크게 달라 보이는 등 위작으로 볼 소지도 있었기 때문에, 위작 의혹을 제기한 언론사에 손해배상 책임을 물을 수는 없다고 판결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25부(부장 조원철)는 4일 빨래터의 경매업체인 서울옥션이 위작 의혹을 보도한 미술잡지 ‘아트레이드’ 발행인 등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원고 패소 판결했다. 재판부는 “작품의 원 소장자인 존 릭스는 1954~56년 한국에 근무하며 박 화백에게 그림재료 등을 사다 줬고 박 화백에게서 감사의 표시로 빨래터를 비롯해 그림 5점을 선물받았다고 진술하고 있다.”면서 “존 릭스가 박 화백에게 그림을 잘 보고 있다는 내용의 카드를 보낸 점, 존 릭스의 사무실과 집 사진에 함께 선물받은 박 화백의 다른 작품들이 걸려있는 점 등을 볼 때 이 진술은 사실인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또 “2008년 한국미술품감정연구소 감정인단 20명 중 19명이 빨래터가 진품이라는 의견을 내놨다.”면서 “감정인단이 두 차례에 걸쳐 감정위원과 조사방법을 보강하고 박 화백의 화풍 변천에 따라 여러 작품을 폭넓게 비교한 점 등으로 미뤄 진품 판정이 특별히 불합리한 것으로 보이지 않기 때문에 이 의견은 존중되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재판부는 “작품의 표현기법이 박 화백의 전형적인 스타일에 비해 생경하게 느껴지는 데다 보존상태가 너무 완벽해 오히려 의심을 불러일으킬 정도인데도 서울옥션은 전문감정인이 아닌 박 화백의 아들 의견만 듣고 진품 소견서를 작성했다.”면서 “따라서 이런 문제점들에 대해 구체적으로 설명한 다음 진위 감정의 필요성을 주장한 기사는 정당한 언론활동의 범위를 벗어난 것으로 볼 수 없다.”고 피고쪽 손을 들어줬다. 50여년 동안 빨래터를 보관해온 존 릭스에게서 작품을 넘겨받은 서울옥션은 지난 2007년 5월 근현대 미술품 경매에 박 화백의 미공개 작품이라며 이를 출품했고, 작품은 국내 경매사상 최고가인 45억 2000만원에 낙찰됐다. 하지만 아트레이드가 2008년 1월호에서 선의 모양과 색채 표현 방법 등이 박 화백의 기존 작품들과 다르다는 점 등을 근거로 위작 의혹 및 감정 필요성을 제기하자 서울옥션은 “신용과 명예를 훼손당했다.”면서 소송을 제기했다. 2년여를 끌어왔던 박수근 화백의 ‘빨래터’ 위작 논란이 법정공방을 거쳐 진품으로 결론이 나자 미술계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있다. 미술계는 2007년 이중섭의 작품이 위작으로 판명돼 거래가 크게 위축되는 등 뼈아픈 경험을 했었다. 미술계는 이번 일을 계기로 위작 시비들이 끊이지 않는 상황을 개선하기 위한 시스템 개선을 요구했다. 공주형 미술평론가는 “작품 거래시 감정서를 꼭 요구하고, 작품의 이동경로를 추적하고 파악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마련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미진 홍익대 미술대 교수도 “프랑스처럼 국가적 차원에서 미술품에 대한 공적 검증 시스템을 마련할 시점이 왔다.”고 말했다. 한편 이학준 서울옥션 대표는 “이번 소송의 목적이 작품의 진위 판정이었기 때문에 더 이상 항소 계획은 없다.”고 밝혔다. ‘아트레이드’ 측과 더불어 위작이라고 주장해온 최명윤 명지대 교수는 4일 “과학감정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며 아쉬움을 나타냈다. 문소영 유지혜기자 symun@seoul.co.kr
  • [데스크 시각] 헌재와 민주주의를 생각한다/문소영 문화부 차장

    [데스크 시각] 헌재와 민주주의를 생각한다/문소영 문화부 차장

    이완용, 나라와 민족을 팔아먹은 매국노라는 그에 대해 4~5년간 생각이 많았다. 미술관 갤러리를 다니면서 이완용에 대해 생각할 기회가 더 많았다. 가까이는 올 초 상업화랑에서 근대 서화전이 몇 차례 열려 이완용의 글씨가 등장하면 꼼꼼히 살펴보게 됐다. 중국 북송의 시인 소동파가 ‘서당대유가서후’에서 “무릇 글씨는 그 사람을 닮는다. 옛적에 글씨를 논하는 사람들은 작가의 평생도 아울러 논하였다.”고 말했기 때문이다. 이완용의 유려하고 맺히는 데 없는 글씨체와 항일독립운동의 군자금을 댔다는 김진우의 단정하고 깐깐한 글씨체, 거칠 것 없이 호방한 안중근의 글씨체를 비교해 보기도 했다. 이완용을 생각할 때 문득 머릿속으로 더듬어지는 부분이 있었다. ‘이완용은 외교권을 헌납한 을사늑약과, 국권을 고스란히 갖다바친 경술국치를 체결했을 때 나라를 팔아먹는다는 스스로의 자각이 과연 있었을까?’ 하는 것이다. 이완용은 당시 최고의 지식인이자 예술인, 고위 공무원, 노회한 정치인이었다. 일본·중국 등에서 들어오는 최신 저서를 직접 읽었을 것이고, 국제 정세에 대한 고급 정보도 이런저런 통로를 통해 들었을 것이다. 그래서 그는 국호를 조선에서 대한제국으로 바꾼 조국의 운명이, 사실은 풍전등화라고 직감했을 것이다. 그는 메이지 유신을 통해 나라를 일신하고, 청나라와의 전쟁은 물론 서양인 러시아와의 전쟁에서 승리한 뒤로 서양과 대등하게 올라선 일본과 손을 잡는 것이 최선이라고 판단하지 않았을까 싶다. 다만 그의 불행은 일본이 1945년에 그렇게 빨리 패권을 잃어버릴 줄 몰랐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았더라면 우리는 2009년 11월에 광화문에서 안중근 의사의 얼굴이나, 약지를 단지한 그의 손바닥 도장 대신 이완용의 얼굴이나 글씨를 마주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이런 가정과 상상도 해본다. 정치인이자 고위 공무원인 이완용의 오판을 1905년, 1910년에 막아줄 제도적 장치가 있었다면 어땠을까. 행정부의 잘못된 결정을 평가해 뒤집을 수 있는, 이를테면 의회라든지, 법적으로 효력을 다투는 사법부 말이다. 그랬더라면 이완용의 판단은 국회나 사법부를 통해 바로잡힐 수 있지 않았을까. 이완용의 처지에서 100여년 전에 절차로서의 민주주의나, 제도로서의 민주주의도 없었던 것이 안타까울 수 있겠다. 요즘 헌법재판소(헌재)를 자주 생각해본다. 헌재는 최근 미디어법과 관련해 국회 본회의에서 대리투표 등 위법행위가 있었지만, 미디어법의 국회 통과는 유효하다는 결론을 내놓았다. ‘과정이 결과보다 중요하다.’라는 민주주의적 의사 결정 방식에 대해 배우고 자라온 상식선에서 볼 때 의외의 판결이다. 대리시험을 봤지만, 합격은 유효하다, 도둑질은 위법이지만 장물취득은 유효하다, 커닝해도 좋은 성적은 유효하다, 간통을 했지만 기존 결혼은 유효하다는 식의 인터넷 유머가 나돌아다니는 까닭 또한 그렇다고 생각한다. 헌재는 1987년 학생·직장인 등 대부분의 한국인들이 거리에서 목이 터져라 ‘호헌철폐, 직선쟁취’를 외치고, 꽃 같은 목숨을 여럿 잃어가며 만든 제6공화국 헌법으로 탄생한 기구이다. 그간 사법부가 워낙 행정부(검찰)의 시녀처럼 굴었던 탓에 사법부를 불신하며, 헌법정신을 지켜보자고 대법원 위에 옥상옥으로 만들어졌다. 헌재는 집권당의 통치행위를 옹호하고 국민의 법 감정과 법질서를 교란하는 정치적 판단을 내리라고 만들어진 기구가 아니다. 이번 미디어법 결정을 볼 때 절차로서의 민주주의를 수호하지 못하는 헌재가 존재할 이유를 통 모르겠다. 헌재는 구제받을 수 있는 제도나 수단이 없었던 이완용처럼 핑계도 없으면서 말이다. 문소영 문화부 차장 symun@seoul.co.kr
  • “마술·연극·영화 융합작품 완성도 높이겠다”

    “마술·연극·영화 융합작품 완성도 높이겠다”

    “‘어떻게’ 표현할 것인가보다 ‘무엇을’ 표현할지를 고민하다 보니 조각에서 시작해 사진, 비디오, 무대연출, 영화로 장르가 확장됐습니다. 잘 모르는 장르를 시도하려면 다른 장르에서 활동하는 분들의 협조가 필요한데, ‘현대미술을 한다.’고 하면 다들 너그럽게 이해하고 받아들여 주었지요.” 국내보다 해외에서 더 사랑받는 현대미술작가 정연두(40)는 자신이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게 된 상황을 이렇게 설명했다. 그는 2007년 최연소이자 사진-영상부문에서 최초로 국립현대미술관의 ‘올해의 작가’로 선정됐고, 2008년에는 뉴욕 현대미술관(MOMA)에서 자신의 첫 비디오 작업인 ‘다큐멘터리 노스탤지어’를 구입하면서 주목받는 젊은 한국의 아티스트로 평가됐다. 올해는 지난 9월 ‘플랫폼 2009’에서 선보인 신작 ‘공중정원’이 영국 프리즈아트페어에 출품돼 영국 출판사 스타크만(Starkmann)에서 구입해 화제를 모았다. 정 작가는 최근 전속화랑인 국제갤러리에서 열린 해외활동 보고회에서 “마술사 이은결씨의 공연을 다룬 ‘시네매지션’으로 일본 요코하마페스티벌에 이어 11월 뉴욕 아시아소사이어티극장의 퍼포마비엔날레에 참가한다.”고 발표했다. 관객 앞에서 절대로 실수를 해서는 안 되는 마술과 연극, 그리고 그 마술이 진행되는 무대를 찍는 영화를 통해 정 작가는 관객들에게 눈에 실제로 보이는 것과 영상 사이의 미묘한 차이들이 어떤 수준으로까지 확대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고자 한다. 그가 늘 다루는 소재이자 주제인 실제와 허상의 문제에 관객들이 시각적으로 더욱 접근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댄스 교습소에서 춤을 배우는 중년남성이 등장하는 2001년작 ‘보라매 댄스홀’, 어린이 그림을 현실처럼 재현해 사진으로 담아낸 2004년작 ‘원더랜드’, 영화장면 같은 연출사진을 내놓은 2005년작 ‘로케이션’, 미술관에 소를 동원해 촬영한 2008년작 ‘다큐멘타리 노스탤지어’, “낙타 타고 사막을 여행하고 싶었다.”는 등 노인 6명의 꿈을 실제처럼 연출해 사진 영상 설치작품으로 재현한 ‘수공기억’ 등에서 정 작가는 꿈과 현실의 문제에 천착해왔다. “영국 골드 스미스 대학에서 유학할 때 너무 힘들어서 성공하지 않으면 다시는 영국에 가지 않으리라 생각했는데, 영국에서 열린 아트페어에서 내 작품이 팔리다니 너무 기분이 좋았다.”며 “미술이라는 이름으로 마술, 연극, 영화 등 3개의 장르를 한데 묶은 작품들이 더 완성도를 가질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정 작가는 각오를 밝혔다. 문소영기자 symun@seoul.co.kr
  • 살 것인가 죽을 것인가…예술가의 비장한 고뇌

    살 것인가 죽을 것인가…예술가의 비장한 고뇌

    예술가가 누워 있는 침대 밑에는 소총이 놓여 있다. 사람이 다가가면 센서가 부착된 소총은 서서히 일어서며 안전장치를 풀고 방아쇠를 스스로 당긴다. ‘피웅’하는 소리가 날까, ‘빵’하는 소리가 날까. ‘예술가의 침대’라는 제목의 이 작품에서 조각가 안수진(47)은 총소리로 ‘벨소리’를 차용했다. ‘차랑’하는 소리는 새로운 손님이 방문했다는 듯이 경쾌하고 즐겁기도 하다. 이 작품의 주제는 ‘예술가의 자살을 통해 본 예술의 죽음’에 관한 것이었다. 매일 아침 창의적 아이디어의 고갈로 고통받는 예술가의 고뇌를 표현하고자 했던 안 작가는 무척 고민했다고 한다. 끝내 예술가를 살릴 것이냐 죽일 것이냐? 죽인다면 관객들은 예술가의 비장한 고뇌에 깊은 공감을 느낄 것이고, 살린다면 시장과 야합하는 예술가의 비굴한 삶을 보게 될 것 같았다. 안 작가는 예술가의 자살을 유예하기로 했다. 죽음에 직면했지만 새로운 아이디어를 통해 또다른 작업에 들어감으로써 계속 구차하게 목숨을 연명해가는 예술을 풍자한 것이다. ●김종영 미술관 ‘오늘의 작가’… 새달 3일까지 초대전 서울 평창동 조각전문 미술관인 김종영미술관은 봄과 가을에 각각 한 명을 선정하는 ‘오늘의 작가’로 안수진씨를 선정해 12월3일까지 초대전을 연다. 전시제목은 ‘프레임’. 김종영미술관이 선정하는 오늘의 작가는 전업작가로서, 미술시장에는 덜 알려졌지만 수준 높은 작업을 하는 비교적 젊은 조각가들을 선정해왔다. 2004년 정현과 이기칠, 2005년 김주현과 박선기, 2006년 최태훈과 이상길, 2007년 박소영과 민균홍, 2008년 신옥주와 고명근, 올 봄엔 박원주 등이다. 안 작가도 이런 기준에 딱 맞는 작가라고 할 수 있겠다. 안 작가는 서울대 조각과와 대학원을 졸업하고 전업작가로 일해왔다. 그는 30대 이후로 키네틱 조각을 해왔는데, 키네틱 조각이란 기계를 활용해 작품 그 자체가 움직이거나 움직이는 부분을 넣은 조각을 말한다. 주로 센서들이 달려 있어 관객들의 움직임에 따라 반응하기 때문에 상호작용하거나 교감한다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1990년대 중반 이후로 미술시장이 상업갤러리에 의해 재편된 탓에 안 작가의 작품은 주로 미술관에서 사랑받았다. 첫 개인전을 연 1994년 이래로 약 5년에 한 번꼴로 개인전을 연 안 작가의 작품은 주로 일민미술관, 토탈미술관 등에서 소개됐다. “미술관이 사랑하는 조각가라고 불러주니, 만감이 교차한다. 나도 상업화랑으로부터 사랑받는 조각가이고 싶다. ”고 안 작가는 웃으며 이야기한다. 평론가와 미술관이 ‘사랑한다.’는 것은, 작품 수준은 인정받지만 예술가 이전에 가장이자 생활인으로서 삶이 보장되지 않는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즐겁기도 하고 버겁기도 한 이유다. 그의 작품은 크기에서도 압도적인 느낌을 준다.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비트루비우스의 인간’(나체의 남성이 원과 정사각형 안에 사지를 벌리고 있는 모습)을 형상화한 3개의 대형 스테인리스 스틸 원과 그 안에서 회전하는 남성들, 해변을 보여주는 3개의 LCD모니터가 결합한 ‘평면의 시간’이 그렇다. 이들 남성의 가슴에는 도시 이름이 새겨져 있는데, 서울과 서울의 대척점인 부에노스아이레스, 서울과 부에노스아이레스를 이은 정중앙에서 직각점에 있는 도시 나이로비 등이다. ●사회비판… 그러나 작품 저변엔 긍정의 힘 안 작가는 “우리는 똑바로 서 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지구와의 관계를 생각하면 기울어져 있는 것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 이 조각들은 이런 상황을 인지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보여주는 작품”이라고 말했다. LCD에 나타나는 수평선의 모습은 자전하는 지구에 따라서 기울어지는 상황을, 비트루비우스의 인간 역시 이에 맞춰서 10분에 한 번씩 자신들이 서 있는 위치를 변경해 보여준다. 작품 ‘다이빙대’도 재밌다. 사람은 없지만 다이빙대로 올라가는 계단에는 붉은 전등이 달려 있어 센서로 그들의 움직임을 연상해볼 수 있게 된다. 계단의 붉은 점을 다 통과해 다이빙대까지 올라간 투명인간은 발판을 몇 차례 구른 뒤 물로 뛰어든다. 다이빙대가 흔들거리며 그 족적을 보여준다. 안 작가는 또한 현대 한국사회를 살아가는 지식인으로서의 성찰도 잊지 않는다. 좌익과 우익 등의 이념논쟁이 여전히 격렬한 한국 사회를 보여주는 흰 날개와 검은 날개로 구성된 ‘어느 무정부주의자의 날개’나, 강박적으로 평균과 수평을 유지하려는 한국사회를 건축용 수평기계로 만든 평균대로 표현한 ‘관성의 평균대’, 골프로 사회적 문제를 일으키는 한국사회를 한반도 지도를 네 번 접어 만든 골프 코스를 통해 풍자한 ‘라데팡스’ 등이다. 전시 전체를 관통하는 힘은 ‘비판정신’이지만, 안 작가는 ‘긍정의 힘’을 버리지 않았다. 전시실 맨 끝에 가면 관객들은 ‘역사를 핥아라’는 작품을 만나게 된다. 고서를 연상시키는 나무판 안팎으로 작은 혀와 커다란 발이 왔다갔다 하는데, 혀로는 역사를 구석구석 핥고, 발로는 천천히 역사를 음미하라는 의미다. 그는 “역시 사회를 움직이는 힘과 에너지는 역사를 이해하는 과정을 통해 얻을 수 있지 않을까 싶다.”고 말한다. 이 작품은 뒤샹의 조각작품들에 나타나는 미학을 보여주는 것으로, 스펙터클한 미디어아트에 대한 반성이 들어 있다. (02)3217-6484. 문소영기자 symun@seoul.co.kr
  • “백남준 풍자하는게 내 중요한 음악활동”

    “백남준 풍자하는게 내 중요한 음악활동”

    “1960년대에 플럭서스에서 위대한 음악가 베토벤을 풍자하는 음악 활동은 중요하고 새로운 이벤트였습니다. 50년이 지나 백남준은 역사가 된 지금, 나, 필립 코너는 이제 백남준을 풍자하는 것이 중요한 음악 활동이 됐습니다.” ● 오늘 ‘백남준에게 경의를’ 콘서트 경기도 용인의 백남준아트센터가 매월 말 여는 ‘오버 뮤직 페스티벌’에 참여하기 위해 방한한 플럭서스의 멤버이자 작곡가인 필립 코너(76)는 이렇게 말하고 껄껄 웃었다. 그는 백남준아트센터에서 31일 오후 5~7시에 ‘백남준에게 경의를’이란 이름의 콘서트를 연다. 플럭서스란 라틴어로 ‘흐름’이란 뜻으로, 1960~70년대에 걸쳐 일어난 국제적인 전위예술운동이자 예술그룹이다. 코너는 “무대 위에서 물리적 움직임이 중요하다.”면서 “백남준식으로 연주하고 공연할 것”이라고 밝혔다. 코너는 1962년 백남준과 ‘세컨드 피날레’라는 퍼포먼스를 함께 했다. 당시 백남준과 그는 피아노가 가운데 놓여 있는 무대 끝에서 반대편 끝까지 뛰어갔다 온 뒤 피아노를 들어올리려고 애를 쓰다가, 다시 무대 끝에서 끝으로 뛰어갔다 돌아와 피아노를 연주하거나 들어올리는 식의 행동을 반복하며, 지쳐 쓰러질 때까지 공연했다고 한다. 백남준을 평가해달라는 요구에 대해 그는 “아주 높아요(Very high).”라고 단답형으로 말한다. 그런 짧고 앞뒤 없는 답변 방식은 플럭서스들의 방식이라고 통역자가 부연설명했다. ● “예술작품에서 중요한 건 개념” 코너는 “예술 작품에서 중요한 것은 개념”이라며 “이를테면 백남준의 작품 ‘촛불 텔레비전’과 같은 것은 누구나 만들 수 있고 누구나 즐길 수 있는 아이디어로, 삶의 방식에서 그런 아이디어를 가져오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촛불 텔레비전이란 브라운관을 뜯어낸 망가진 텔레비전의 텅 빈 공간에 실제 촛불을 켜놓은 작품이다. 코너는 언젠가 백남준에게 ‘촛불 텔레비전을 하나 갖고 싶다.’고 말해 선물을 받았는데, 사인만 백남준이 끌로 세겨줬을 뿐 망가진 브라운관을 고르는 일도, 촛불을 켜놓을 위치를 선택한 것도 코너 자신이었다고 설명했다. 한국이름이 ‘관폭’인 코너의 이번 한국 방문은 네 번째. 플럭서스 멤버 중 백남준을 제외하고 가장 한국을 잘 알고 있다. 1960년 미군으로 한국에 파병돼 근무했다. 미군의 신분으로 1961년 YWCA에서 피아노 연주회를 열고 현대음악가인 올리비에 메시앙의 작품 ‘모드와 음가의 강도’를 처음으로 한국에 소개했던 음악가로 평가받는다. 1969년에는 예술의 전당에서 공연해 백남준과 플럭서스의 음악을 처음으로 한국에 소개한 주인공이기도 하다. (031)201-8554. 글 사진 문소영기자 symun@seoul.co.kr
  • 영화·동화 등 이야기속에 숨겨진 철학의 구조

    영화·동화 등 이야기속에 숨겨진 철학의 구조

    ‘옛날 옛날 호랑이가 담배 피우던 시절에~’로 시작되는 이야기는 이미 호랑이가 담배를 피운다는 것으로 이야기를 지어내고 있다. 역사적 사실에 따르면 담배가 한반도에 소개된 때가 17세기라는 점을 고려하면, 400여년 전이라고 해야 마땅하겠지만, ‘옛날 옛날에’라는 서두로 시작하면 아이들은 조선을 넘어, 고려를 넘어, 삼국시대를 넘어 아마도 선사시대 어딘가를 헤매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서사 철학’(휴머니스트 펴냄)은 저자인 김용석 영산대 교수가 인간에게 이야기하는 취향은 본능이라며, 스토리텔링이 대세인 시대에 맞춰 철학을 이야기 구조에서 파악하는 방법을 제시하고 있다. 원래 이야기와 철학은 한몸이었는데, 어느 날부터 철학과 이야기가 서로 멀리하게 됐다는 것이다. 저자는 철학 그 자체를 어려운 언어와 구조로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영화, 만화, 애니메이션, 신화, 동화, 진화 등을 통해 설명하고, 멀어졌던 두 세계를 다시 통합시킨다. 순수함의 결정체로, 익숙한 동화의 경우를 보자. 인류 역사는 신화화와 탈 신화화를 지속적으로 이어왔는데, 탈 신화화의 역풍에도 끊임없이 생명력을 이어온 것이 아이의 신화다. 그러기 때문에 동화는 순수, 천진난만 등의 수식어가 붙어 있는 아이들을 통해 오히려 신비스러움과 비밀스러움을 강화시키지만, 실제로는 신기루가 사라졌을 때 현실의 환멸을 더욱 부각시킨다는 것이다. 일테면, 말하는 흰토끼가 나오는 루이스 캐럴의 ‘신기한 나라의 앨리스’나, 웬디와 그의 형제들이 봄맞이 대청소 때마다 네버랜드로 떠나는 제임스 배리의 ‘피터 팬’을 예를 들 수 있겠다. 때론 주인공이 조화와 안정, 질서를 추구하며 나아가 독자를 닫힌 사회에 붙잡아 두는 구조를 재생하기도 한다. 안데르센의 ‘미운 오리 새끼’에서 오리 세계에 적응하지 못한 미운 오리 새끼는 그 스스로 오리가 아니라 백조임을 자각하고 백조의 사회로 들어간다. 이런 ‘해피엔딩’은 닫힌 사회에 안주하는 것에 불과하다고 지적한다. 낮은 신분이었지만 동화작가로 성공해 상류층에 진입한 안데르센 자신의 만족감이 들어 있는 작품이라는 분석이다. 저자는 그냥 이야기로 이해할 것이 아니라, 이야기가 숨기고자하는 구조를 파악하게 될 경우, 그것이 비록 동화라고 할지라도 재미나고 각별한 철학의 구조를 발견하게 된다고 말한다. 2만 5000원. 문소영기자 symun@seoul.co.kr
  • 낭만적인 사랑의 원형 찾아가기

    동화 ‘잠자는 숲속의 공주’에서 용감한 왕자들은 공주의 입술에 키스를 하기 위해 불을 뿜어대는 무서운 용을 물리치려고 애쓴다. 이 동화를 잠자리에 들기 전에 거듭 읽은 어린 소녀들은 어떤 난관도 돌파하고 자신에게 돌진해올 낭만적인 ‘백마 탄 왕자님’을 기다리며 성장한다. 왕자의 열정에 자신마저도 활활 타오를 각오와 준비를 하는 그런 낭만적이고, 열정적인 사랑을 꿈꾸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사랑은 서양에서도 17세기 후반에 창조돼 확산된 사회적 체계라는 점을 아시는지. ●봉건제 붕괴로 미모·순결 등 가치 강조 ‘열정으로서의 사랑’(정성훈 외 2인 옮김, 새물결 펴냄)은 21세기 현대인들이 품고 있는 남녀 간의 환상적인 사랑의 원형을 찾아 17~18세기로 여행을 떠난 니클라스 루만 독일 빌레펠트 대학 사회학과 교수의 대단히 난해하고 복잡한 사랑에 관한 탐구이다. 사회학자답게 루만 교수는 사랑은 감정이 아니라 일종의 커뮤니케이션이자 소통도구, 사회적 체계라고 주장한다. 현대인이 사랑이라고 알고 있는 사랑의 의미와 형식은, 17세기부터 ‘사랑이란 이런 것’이라고 소설 등 문학을 통해 소개된 방식을 개개인들이 서로 익히고 비공식적으로 사회가 용인해 왔다는 것이다. 사랑이야말로 가장 개인적이고 사적이고 비밀스런 감정이라고 알아온 사람들로선 매우 어이없는 주장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그가 서술한 난해한 체계를 견디고 참으며 한장 한장 책을 정복해 나가다보면 ‘유레카’가 느껴질 것이다. 저자에 따르면 봉건제가 붕괴되고 계층분화가 일어나는 등 사회가 복잡해지자, 혼인 체계도 바뀌어야 했다. 봉건제에서야 귀족 아버지가 딸과 아들의 결혼상대를 결정하고, 자신이 소속된 신분계층 사이에서만 결혼이 허락됐다. 중세의 결혼이란 사회적 연대이자 체제유지적 성격을 띤 것이다. 그러나 사회가 더이상 봉건주의적 결혼을 고집할 수 없게 됐다. 그리하여 문학은 사랑으로서 사랑을 찾고, 사랑받는 자의 미덕을 강조하며 사랑하는 법을 대중들에게 전파하기 시작한다. 사랑받는 자의 미덕이란 부와 젊음, 미모와 순결 등 희소한 가치다. 16세기 말에 나온 희곡 ‘로미오와 줄리엣’을 연상하면 되겠다. 사랑이 영원한 것이고, 치유되지 않는 열병과 같은 열정에 시달려야 하며, 난관을 극복해 어렵게 얻어야 가치 있다는 식의 프레임이 형성되고, 사람들에게 각인된다. 그러나 자원의 배분이라는 측면에서 부와 젊음, 미모와 순결, 권력을 가진 신사와 숙녀가 드물었다. 문학은 18세기에 다시 한번 사랑의 모습을 탈바꿈시킨다. 사랑받거나 사랑하기 위해 필요한 미덕을 사소한 것으로 전환하고, 가치중립적으로 만들어버린 것이다. 1774년 발표된 괴테의 서간체 소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에서 베르테르는 편지에서 로테는 ‘춤추지 않고 흑빵을 잘랐다.’고 썼다. 로테가 아름답거나 돈이 많고 젊다고 쓴 것이 아니라 흑빵을 잘랐는데 이것이 베르테르의 민감한 영혼을 충족시켰다고 쓴 것이다. 이런 경험은 적지 않을 것이다. 사랑했던 연인의 아주 사소한 행동이나 버릇을 눈여겨보면서 온 가슴이 찌르르하는 전율을 느꼈던 아주 특별한 경험들 말이다. 18세기 말에 접어들면 연애결혼과 부부 간의 사랑이 통일되는 원리로 받아들여진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18세기 후반부터 프랑스 소설을 중심으로 섹슈얼리티와 사랑이 일체를 이루면서 사회적으로 혼전 관계를 허용하는 단초가 마련된다. ●18세기 후반부터 섹슈얼리티 부각 저자는 이런 사랑의 코드가 사회적으로 재생산돼 현대에 이르는데 이것은 17세기 이후 활성화된 서적 인쇄의 직접적인 결과라고 지적한다. 17~18세기에는 유혹의 기술에 속하는 상투어나 제스처에 관한 책들도 현대의 처세술책만큼이나 많이 출판되고 인쇄된 모양이다. 자유연애라고 말해야 할 사랑은 17세기 사회제도로서의 결혼과 맞서기 위해 탄생해, 21세기 청춘남녀들에게도 열정에 몸을 맡기라고 권해 왔다. 아니 사회가 복잡해져 점차 비인격적으로 진화해 감에 따라 더 친밀하고 인격적인 관계를 권하는 사회로 변해, 사랑타령이 늘어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1982년에 출간된 루만 교수의 책은 앤서니 기든슨의 ‘현대사회의 성·사랑·에로티시즘’과 크리스티안 슐트의 ‘낭만적이고 전략적인 사라의 코드’ 등 현대인의 사랑과 관련한 서적에 주요하게 인용되는 책이라고 한다. 이 책은 연예전략서가 아니므로, 쉽게 읽기 시작하면 큰코 다칠 수 있다. 3명이나 참여했는데도 번역은 매끄럽지 못한 것 같다. 2만 2000원. 문소영기자 symun@seoul.co.kr
  • 상인들 애환 담긴 추억의 장터

    지방의 5일장은 국립민속박물관을 방문하지 않아도 30~40년대, 멀게는 80년 전까지 세월을 훌쩍 뛰어넘을 수 있는 공간이다. 쇠전(우전)과 삼베장은 사라졌고 미곡전은 축소됐지만, 어물전은 크게 확대돼 사람들을 끌어모으고 있다. 장돌뱅이의 꽁꽁 언 몸을 녹여주는 펄펄 끓는 국밥과 잔치국수도 먹어볼 수 있다. 장터 한편에서는 뻥튀기 장사의 ‘뻥’ 소리에 깜짝 놀란 가슴을 쓸어내려야 하는 이벤트도 기대된다. ‘북평장터 이야기’(홍구보 글, 북평동주민자치위원회 펴냄)는 3·8일에 열리는 강원도의 북평장터를 다뤘다. 평생을 회사원으로 살면서 펜을 놓지 않고 강원도 지역에서 소설가로 활동해온 저자는 고향의 사라져가는 풍경과 사람들의 일상을 마치 카메라가 피사체를 포획하듯 찰깍찰깍 잡아냈다. 문패를 만들며 평생을 살아온 심재림 할아버지나 ‘애들은 가라!’고 소리를 질러대는 약장수, 장작 석단을 지게에 지고 새벽길을 걸어오는 나무꾼들, 중학교를 가거나 장가를 갈 때 의식처럼 양복을 맞춰 입었던 양복점 주인의 흥정, 등짐으로 지고 날라주는 항아리 장수 등등. 저자는 또한 기록했다. 북평장터에서 가장 오래된 집은 1930년대에 개업해 대를 이어 영업하는 중화요리점 ‘덕취원’이고, 두 번째로 오래된 집은 ‘별표국수집’이고, ‘동해목공소’, ‘천일철물상사’, 국밥집인 ‘대성집’과 ‘두꺼비집’, ‘3000리호 자전거’, ‘삼송사진관’ 등 순이라고. 30년 이상 장터를 지키는 터줏대감들도 많다. ‘샘방앗간’을 비롯해 ‘제일기름집’, ‘창영이발관’, ‘이주이발소’, 북평 최초의 양복점 ‘유일라사’, ‘흥농종묘사’, ‘경북그릇마트’ 등등. 이제 미용실에, 기성복에, 대형할인마트에 자신들의 역할을 내주고 있는 사라져가는 흔적이기도 하다. 북평장터에서는 쇠머리국밥과 묵사발(묵 냉채)을 꼭 먹어야 한다고 저자는 말한다. 특히 묵사발은 ‘북평장에 가서 메밀묵 안 먹고 그냥 가면 자식새끼가 묵사발 난다.’는 말도 있다니 꼭 먹어볼 일이다. 구속이 싫어서 자기 점포 갖기를 싫어하는 장돌뱅이의 삶을 진득한 애정을 가지고 되짚어보고, 그들의 삶이 장터의 활성화를 통해 복원되길 바라는 저자의 바람이 강원도 사투리, 오래된 흑백 사진과 잘 버무려져 40~50대 독자들을 꼼짝없이 어린 시절로 되돌려 놓을 것이다. 문소영기자 symun@seoul.co.kr
  • 앙겔라 랑프 퐁피두센터 학예실장-한국 루오전을 말한다

    앙겔라 랑프 퐁피두센터 학예실장-한국 루오전을 말한다

    │파리 문소영특파원│“오는 12월 한국에서 열리는 전시의 의미는 세계 최초로 루오 말년에 다량으로 존재했던 미발표작들이 해외에서 공개된다는 것입니다.” 앙겔라 랑프 퐁피두센터 학예실장은 서울신문과 퐁피두센터가 주최해 오는 12월 예술의전당에서 열리는 ‘색채의 연금술사 루오’전에 대해 이렇게 의미를 부여했다. 랑프는 “이 미공개작들은 루오 사망시 화실에 있었던 작품들로, 1953년 국가에 기증됐고 10년 뒤 퐁피두센터로 왔는데, 그 후로 프랑스를 떠난 적이 없다.”고 덧붙여 설명했다. 이들 미공개 작품은 루오 사후 10년 기념전이 루브르박물관에서 열렸을 때 말년 작품을 다 보여줄 수 없어 일부만 전시하고 퐁피두가 보관해 왔던 것이다. 인터뷰는 지난 19일(현지 시간) 퐁피두센터 학예실에서 이뤄졌고, 2명의 프랑스어 통역이 인터뷰 내용을 교차 체크해 정확성을 확보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12월 한국에서 열리는 루오전의 구성은 어떻게 되나. -풍경화, 종교화 등 4개의 주제로 연대기 식으로 보여줄 것이다. 어두운 화면을 그린 초기부터 색채가 폭발적으로 나타나는 말년까지, 진화되는 루오의 작품세계를 확인할 수 있다. 전시작품은 모두 168점이고, 이 가운데 미공개작이 80여점 정도로, 프랑스인 관객들조차 보지 못한 작품도 있다. 전세계에 처음으로 발표하는 미발표 작품이 14점이나 나온다. 프랑스에서만 공개된 작품도 69점이고, 스테인드 글라스 작품인 ‘비트라이어’는 1975년 뮌헨에서 전시된 후 처음 공개되는 작품이다. 판화도 58점이다. 전시장 구성과 관람객 동선은 중요한 작품을 집중해서 볼 수 있도록 하고, 많은 작품을 볼 수 있게 구성할 예정이다. 특히 미제레레(Miserere)와 같은 판화는 방 하나에 여러 줄로 걸어놓고 관객이 볼 수 있도록 전시 방식도 다양하게 준비하고 있다. →2006년 대전에서 열린 루오전과는 어떤 차이가 있나. -그때는 단순한 회고전이었다. 이번에는 루오의 아틀리에에 들어가서 루오의 머릿속을 보는 것처럼, 왜 이런 그림을 그리게 됐는지를 전혀 다른 앵글에서 심화해서 보는 것이다. 당시에는 작품 구성이 일본 미술관들과 프랑스 루오 재단 측, 퐁피두센터가 소장한 몇 작품 등으로 구성됐다. 이번에는 170여 점 모두 퐁피두 소장 작품1000점 중에서 골랐다. →루오를 흔히 20세기 최고의 종교화가로 생각하는데. -종교화가라는 좁은 의미로 그의 작품세계를 이해하는 것은 충분하지 않다. 그는 종교적 소재를 그린 화가인데, 평생을 강박관념을 가지고 형태와 색채, 하모니에 집착해서 같은 주제를 그리며, 경지에 이른 작가다. 루오의 작품은 예수 등 종교적인 신성과 창녀, 광대 등 세속적인 소재가 어떻게 결합되어 있는지, 또한 세속적인 주제를 종교적으로 어떻게 다뤘는지, 종교적인 소재를 어떻게 세속적으로 그렸는지를 모두 봐야 한다. 예수의 모습을 봐도 모두 인간이 된 모습이다. 이번 전시는 20세기 최고의 종교화가 이상의 것을 보여줄 것이다. 퐁피두에서 이번 전시의 가제를 ‘신성과 세속(가제)’이라고 잡은 이유다. →루오가 영향을 미친 작가군들이 후세에 있나. -루오는 특정한 화풍으로 분류하기 어려운 독특한 화가다. 시류를 따르지 않고, 제자를 가르치지 않았으며, 주제가 있는 구상화를 그렸기 때문이다. 당시 유럽은 2차 세계대전 전후로 추상화로 옮겨갔다. 다만 기이하게 일본과 한국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 2차 세계대전에서 패망한 탓인지 일본인들이 열광했다. 루오의 80세 한국인 제자가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퐁피두센터가 이번에 서울신문과 루오전을 열게된 이유가 뭐냐. -한국에 인상파 등이 많이 소개됐고, 한국의 관람객들이 이제 현대적인 작품을 보고 싶어하는 단계에 이르렀다고 본다. 20세기 현대미술은 미국의 국립현대미술관(모마)과 프랑스의 퐁피두센터가 50대50으로 양분돼 있는데, 퐁피두센터의 정책이자 사명은 우리 수장고의 작품들을 대여하는 등으로 전세계에 작품을 널리 알리는 것이다. 수년 전부터 일본· 중국과는 많은 문화교류가 있었는데, 한국과는 그렇지 않아서 더 신경을 쓰고 있다. →왜 이 시기에 루오 전시가 필요한가. -세계적인 경제위기로 생활이 어려워지고 가치가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루오에 대한 르네상스가 있다. 2006년 프랑스 스트라스부르그, 2008년 프랑스 생트로페(프랑스 최고의 휴양지) 등에서 전시를 했고, 루오 풍경화로 전세계 순회전이 진행되고 있다. 최근 미국 보스톤에서도 루오 전시를 했다. 한국은 1997년 외환위기와 2008년부터 시작된 세계경제위기, 급속한 경제성장으로 인한 가치의 상실 등으로 혼란스런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이 적지 않을 것이다. 관람객은 이번 루오전에서 루오가 그림을 그리면서 느꼈던 평화와 조화, 안정, 숭고한 경지를 얻을 수 있다고 본다. 글 사진 symun@seoul.co.kr
  • 조르주 루오는

    조르주 루오는

    │파리 문소영특파원│“조르주 루오(George Rouault·1871~1958년) 하면, 검고 굵은 선으로 외곽선을 그리는 작가를 연상하지만, 아주 특이한 화가이자 분류가 불가능한 작가입니다.” 앙겔라 랑프 퐁피두센터 학예실장은 루오를 한마디로 이렇게 정의했다. 야수파니 상징주의니 하는 분류가 불가능한 독자적인 화풍을 유지한 탓에 그는 현대에 와서는 점차 잊혀지고 있기도 하다. 그러나 루오는 생존에는 인상파 화가보다 더 유명했고 대접을 받았다. 1925년 레지옹도네르 훈장을 받았고, 1945년에 미국 뉴욕 현대미술관(모마)에서 전시회를 하면서 전세계적으로 명성을 얻었다. 1948년에 베니스 비엔날레에 참여하고, 1953년에 미국, 도쿄 등에서 전시를 했다. 1958년에 사망했을 때 프랑스 정부는 그의 장례를 국장으로 치를 정도로 프랑스 국민의 사랑을 받았다. 랑프는 “유럽사람들이 2차 세계대전 직후에 원자폭탄의 등장, 대량학살, 모든 가치가 붕괴된 상황에 빠졌을 때 루오의 작품은 사람들에게 가치, 연민, 신성, 숭고함을 다시 찾을 수 있는 역할을 했다.”고 평가했다. 루오는 가구 제조공의 아들로 1871년에 태어났다. 할아버지가 미술에 관심이 많아 오노레 도미에의 석판화 작품을 여러 개 가지고 있었는데, 루오는 “도미에에게 최초의 교육을 받았다.”고 술회했다고 한다. 14살 무렵부터 유리 제조공의 작업장에서 5년간 견습을 받는다. 유리 제조공으로서의 화려한 색깔과 검은 테두리가 인상적인 스테인드 글라스를 제작해본 경험 등이 그의 화풍에 큰 영향을 주었을 것이라고 일반적으로 분석된다. 12월 한국 전시에도 루오의 스테인드 글라스 작품 1점이 전시될 예정이다. 1891년에 루오는 국립미술학교인 에콜 데 보자르에 입학해 정식 미술교육을 받는다. 그때 그는 야수파인 젊은 앙리 마티스와 알베르 마스케 등을 만나고, 상징주의 화가인 귀스타브 모로의 총애를 받는다. 랑프는 “ 루오의 화풍은 전통적인 기법에서 출발했으나 귀스타프 모로와의 만남으로 결정적으로 바뀌었다.”면서 “당시 학교에서 만난 마티스, 마르케 등도 루오 자신만의 길을 갈 수 있도록 보장해 주는 역할을 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당시 에콜 데 보자르에서 램브란트 등의 영향이 워낙 강해서, 일부 학생들이 거장의 화풍을 흉내내 그리는 것에 만족했는데, 루오는 자신만의 길을 갔다는 설명이다. 루오의 특이한 점은 초기작품부터 나타난다는 것이 랑프의 설명이다. 1905년에 모로가 죽은 뒤 루오는 야수파 화가들과 함께 전시를 열었는데, 루오가 다룬 주제를 보면, 창부, 서커스에 나오는 광대들이고, 색상은 야수파에 일부 동조했으나 어두운 측면이 남아 있었다. 반면 마티스 등 다른 작가들은 화려한 색채를 찾아서 떠났다는 것. 소외된 자에 대한 연민과 그들의 고난 즉, 남을 웃겨야 하지만 자신들의 삶은 고통스러운 창부나 광대 등에 대한 연민의 시선이 있다는 것이다. 루오는 중기에 이르러 미제레레 판화연작(58개)이 주류를 이룬다. 1차대전 직후에 나타난 인간의 고난, 성경에서 나오는 것 등 성스러움과 세속의 주제를 뒤섞는다. 이 주제는 중기 이후에 반복적으로 나타난다. 60세를 전후로 한 후기(1920~30년)에 루오 그림의 주제나 톤은 어둡지만, 색채가 폭발한다. 미술평론가 R 맥뮬렌(McMullen)의 글에 따르면 ‘죽기 10년 전까지 루오는 색조의 범위를 노란 색과 초록색 계통의 색까지 넓혔고, 초자연적인 분위기의 풍경화도 그렸다.’고 한다. 특히 풍경화, 성자, 광대에서 색깔이 폭발한다. 루오가 추구해온 숭고함의 경지에 도달했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연민의 주제가 살아있으면서, 숭고함의 경지에서 구도나 색채, 하모니를 중요하게 생각한 경향이 두드러지게 나타난다는 것이다. 루오의 일생에서 한 차례의 굴곡이 있었다. 다음은 앙겔라 랑프의 설명이다. 루오에게는 앙부르와즈 볼라르라는 후원자 겸 화상이 있었다. 볼라르는 고흐, 르느와르 등 인상파, 세잔, 피카소 등의 후원자로도 유명하다. 볼라르는 루오에게 아틀리에도 빌려주고 거기서 제작된 모든 작품은 구입하기로 했다. 그런데 1939년에 볼라르가 갑작스레 죽었다. 그의 상속인들은 이미 비싼 가격에 거래되던 루오의 작품을 모두 차지하기 위해 루오가 자신의 아틀리에에 들어가지 못하게 막고, 아틀리에에 있는 작품들을 사인도 없는 미완성 상태에서 팔려고 했다. 그래서 루오가 재판을 벌였고, 1944년에 승소했다. 루오는 자신이 너무 나이가 들어서 반환된 작품을 다 완성시킬 수 없다고 생각하고, 공증인이 보는 데서 자신의 작품 315점을 불태웠다. 그리고 1958년 죽기 직전까지 그린 그림을 미망인이 1963년 국가에 기증했고, 10년 뒤 퐁피두의 수장고로 들어갔다. 소각되지 않고 루오의 손에서 살아남은 그 걸작들이 한국에서 12월 세계 최초로 공개되는 셈이다. 당시 그림을 불태우던 루오의 모습은 예술의전당 전시장에서 흑백 기록영화 형태로 상영될 예정이다. symun@seoul.co.kr
  • ‘색채 연금술사’ 조르주 루오 미발표 14점 세계 첫 공개

    ‘색채 연금술사’ 조르주 루오 미발표 14점 세계 첫 공개

    │파리 문소영특파원│이중섭 등 한국과 일본의 화가들에게 큰 영향을 미치며 20세기를 뒤흔들었던 프랑스 출신의 세계적인 거장 조르주 루오(1871~1958)의 미발표 작품들이 세계 최초로 한국에서 공개된다. 서울신문사와 프랑스 국립현대미술관인 퐁피두센터의 공동주최로 오는 12월15일부터 예술의전당 한가람 미술관 3층에서 ‘색채의 연금술사 루오전’이 열린다. 여기에서 루오의 조국인 프랑스는 물론 전세계적으로 단 한 차례도 공개되지 않은 ‘서커스소녀’를 비롯해 ‘퍼레이드’, ‘가을 야경’, ‘가을’, ‘어린 피에로’, ‘두 도둑 사이의 그리스도’, ‘십자가의 그리스도1’, ‘십자가의 그리스도2’, ‘그리스도와 제자들’, ‘수난’ 등 루오가 말년에 그린 걸작 14점을 처음으로 보여 준다. 이외에 ‘퍼레이드’와 ‘견습생’’, ‘그리스도의 얼굴’ 등 대표작들도 포함해 170여점이 전시되는 이번 색채의 연금술사 루오전에서 10%가량이 세계 최초로 공개되는 작품이라는 점은 국내 전시 사상 유례가 없는 일이다. 앙겔라 랑프 퐁피두센터 학예실장은 지난 19일(현지시간) 퐁피두센터 학예실에서 기자와 만나 “이번에 한국에서 공개하는 루오의 미공개작 14점은 루오가 사망한 후 1963년 미망인 마르트 루오가 국가에 기증했고, 그 후 10년 뒤 퐁피두가 소장한 이래 프랑스를 단 한 차례도 떠난 적이 없고, 프랑스를 포함해 한번도 발표되지 않은 귀중한 작품”이라고 밝혔다. 이 미발표작들에는 드라마틱한 일화도 있다. 루오의 후원자인 앙브루아즈 볼라르가 1939년 갑작스럽게 죽자, 볼라르의 상속자들은 루오가 사인하지 않은 작품들도 모두 팔려고 했다. 루오는 5년간의 법정투쟁을 통해 이를 막았다. 그러나 73세인 1944년에 승소한 루오는 돌려받은 미완성 작품을 모두 완성시키기 어렵다고 판단해 미완성작 315점을 공증인이 보는 앞에서 불태워버렸다. 이번 미발표작은 그 과정에서 살아남은 걸작인 셈이다. symun@seoul.co.kr
  • 시간과 공간, 경계를 허물다

    시간과 공간, 경계를 허물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산하 아르코미술관이 ‘2009 대표작가전’에 서양화가 김홍주(64)를 초대했다. 아르코의 대표작가 초대전은 1997년 서양화가 이승택을 1회로 시작해 2006년 제외하고 매년 전시를 열어왔고, 올해로 12회다. 우리나라 현대미술사에서 중요한 지점에 위치하면서도 연구가 부족했거나 혹은 이해의 관점이 일방으로 쏠린 작가들의 작업세계를 심도 있게 살펴보기 위해 마련된 전시로 이건용(1999년), 김구림(2000), 신학철(2003), 민정기(2004) 등도 아르코의 대표작가 초대전을 거쳤다. 대전 목원대 교수인 김홍주의 작품하면, 대형 분홍색 꽃을 연상하기 십상이다. 아주 가느다란 세필로 캔버스를 간지럽히듯이 수 백만개의 아지랑이같이 보일듯말듯한 선으로 하나하나를 그려낸 분홍 꽃은 색깔도 그렇지만, 왠지 섹시한 감정이 봇물터지듯 해 보고 또보고 해도 질리지 않는다. 분홍색만 아니라 하늘색, 연두색 등 파스텔톤으로 그러낸 아메바나 짚신벌레 같은 원생동물을 닮은 무정형의 둥둥 떠다니는 다른 화면도 마찬가지다. 이처럼 섹시한 꽃그림의 화가로 김홍주를 알린 그림들은 그러나 2000년대부터 그린 것일 뿐. 화가로서 그의 정체성을 보여주는 실험적인 그림은 1970~80년대에서 나타난다. 아르코미술관 김형미 큐레이터는 “당시는 추상과 구상이 공존하고 사회적 모순이 극대화되는 시기였다.”면서 “당시 김홍주는 액자나 거울 테두리, 창문살 등을 오브제로 이용해 극사실화 풍의 평면회화를 구성하는 독특한 화풍을 보여줬다.”고 설명한다. 개념미술의 영향을 받은 것이다. 김 작가는 “당시 오브제였던 틀과 이미지를 맞춰보기 위해 노력했는데, 일종의 눈속임 효과를 노렸던 것”이라며 “초기작부터 후기작까지 모두 갖춰놓고 보니 화풍이 많이 달라졌는데, 처음부터 어떤 계획을 가지고 그렸다기보다는 마음이 이끄는대로 끌려다니다보니 여기까지 왔다.”고 말했다. 전시는 모두 90점이 선보이는데, 1970~80년대 초기작은 대부분 김 작가 소장품이고, 미술관 등에서 20점을 대여했다. 기존에 많이 소개됐다는 이유로 주요 미술관들이 소장한 김 작가의 작품을 빌려오지 않아 이번 전시에서 화가의 작품 세계 전체를 제대로 보여주지 않은 것은 몹시 아쉽다. 다만 서울 소격동 옛 기무사터에서 열리는 국립현대미술관의 ‘신호탄’전 1층에서도 김 작가의 섹시한 대형 분홍 연꽃 등을 아쉬운 대로 관람할 수 있겠다. 10월31일부터 12월2일까지. (02)760-4605. 문소영기자 symun@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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