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두산이 지뢰밭”
“우승한 감독들 얘기 들어 보면, 운이 안 따르면 절대 (우승) 못한다고 하던데요.” 질문마다 짧게 답변하던 과묵한 KIA 조범현(50) 감독은 2009년 통합우승의 비결에 대해 이렇게 말하고는 비로소 살짝 웃음을 보였다. 조 감독은 최근 “시즌 시작할 때는 4강 진출이 목표였고, 우승할 전력도 아니었다.”면서 “그런데 KIA는 자체적으로 고비를 넘겼지만 다른 팀들은 선수 부상 등이 나오면서 스스로 무너졌다.”고 말했다. “선수들이 잘해줬다.”는 말도 덧붙였다.
●신인 감독 LG·한화 팀컬러가 문제
스웨터에다 제법 캐주얼하게 차려입은 조 감독은 질문에 요점 정리하듯이 답변하기를 즐겼다. 올해 3루수 김상현의 활약이 KIA의 정규시즌 우승의 견인차였지만, 그 견인차를 잘 몰고 간 것은 조 감독이다.
그는 “정성훈이 자유계약선수로 LG에 갔기 때문에 3루를 맡을 선수는 김상현밖에 없었고, 당시엔 공격력이 하위급이었기 때문에 수비는 떨어져도 힘 좋은 김상현을 던져 놓고 기다려야 했다.”고 뒤돌아보면서 “다만 김상현이 수비에서 결정적 실수를 해도, ‘공격력으로 커버하라.’고 조언하고 심리적으로 안정감을 줬다. 2군으로 떨어질까 봐 조바심하며 위축되는 것을 막아줬다.”고 설명했다.
내년 프로야구의 관전 포인트는 뭘까. 조 감독은 “신인 감독을 맞은 LG와 한화의 플레이와 팀컬러가 변화하는지 봐야 한다.”면서 “이를테면 박종훈 LG감독이 수석코치할 때는 무리하지 않고 선수들을 잘 관리했지만, 감독으로서도 중심을 잘 잡아갈 수 있는지는 막상 닥쳐 봐야 한다.”고 말했다. 성적이 나빠지고 경기에서 급해지면 옆에서 흔들기 마련. 자신의 철학을 꼿꼿하게 지키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결국 경기 중에는 마인드 컨트롤을, 경기장 밖에서는 프런트와 협상하는 것도 감독 몫”이라고 그는 단언했다.
●지완·희섭·상현 클린업 트리오로
그의 내년 목표는 당연히 우승이다. 조 감독은 “올해 우승으로 선수들이 자신감과 같은 심리적 성장뿐 아니라 기량, 경기 운영, 상황판단 등에서 넓은 시각을 갖게 됐기 때문에 지난 시즌과는 실력이 다르다.”고 자신했다. 우승의 걸림돌로 조 감독은 SK와 두산을 꼽는다. 선수층이 두껍고 경기운영 방식이 다채롭기 때문이다. 다크호스로는 양질의 젊은 선수들이 많은 히어로즈를 꼽았다.
선수 기용에서는 “신인 선수로 힘 있는 나지완과 최희섭, 김상현을 클린업 트리오로 짤 것”이라면서 “ 투수들도 올해 제대해 내년 시즌부터 합류하는 신용훈, 김희걸, 차정민, 이상화 등이 불펜 전력을 보강할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 좌완 불펜으로는 신인 정용운, 임기준, 박경태, 문현정 등을 장기적으로 키워나갈 계획이다. 히어로즈로부터 트레이드 받을 생각은 없을까. 그는 “맨 처음에 선수를 빼왔다면 모를까 지금은 생각이 없다.”고 잘라 말한다. 김시진 히어로즈 감독은 그와 대구에서 같이 운동을 한 동료다.
내년 광저우아시안게임 국가대표 선발과 관련해서는 “무조건 실력우선으로 뽑고, 동급이면 군 미필자를 뽑을 예정”이라고 말했다. 박찬호와 이승엽, 추신수 등 해외진출 선수들에게도 문호를 개방할 작정이다. 안방마님으로는 SK 박경완이 ‘0순위’다.
우승한 뒤로 광주에서조차 밥값이 더 든다는 조 감독은 인터뷰를 마친 뒤 서둘러 자리에서 일어섰다. 아직까지 남아 있는 우승 사례 술자리를 위해서다.
글 사진 문소영기자 symun@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