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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5·18 기획’ ‘20대 국회 법안 분석’ 돋보여… 소외계층 기사 적어 아쉬움

    ‘5·18 기획’ ‘20대 국회 법안 분석’ 돋보여… 소외계층 기사 적어 아쉬움

    서울신문은 5월 주요 현안과 이슈에 대한 보도를 주제로 26일 서울 중구 서울신문 본사 9층 회의실에서 제127차 독자권익위원회를 개최했다. 코로나19 영향으로 오프라인 회의는 지난 1월 이후 처음 열렸다. 김만흠(한국정치아카데미 원장) 위원장을 비롯해 심훈(한림대 미디어스쿨 교수), 김숙현(국가안보전략연구원 대외전략연구실장), 박준영(변호사), 이동규(김앤장 법률사무소 고문), 김준일(뉴스톱 대표), 유승혁(경희대 언론정보학과 4학년) 독자권익위원이 참여했다. ‘5·18 소년이 40년 후 소년에게’ 기획 보도, ‘20대 국회 분석’ 등 총선 이후 보도들이 좋은 평가를 받은 반면 윤미향 정의기억연대 전 이사장 인터뷰 등은 다소 아쉽다는 지적도 있었다. 아래는 위원들의 주요 의견이다.심훈 편집이 상당히 좋아졌다. 제목과 사진이 어긋나는 경우가 있었는데 많이 줄어들었다. 여성을 주제로 한 기사들이 예전에 비해 좀더 등장하는 듯 보인다. 하지만 여전히 지면에서 여성과 노인을 찾아보기가 쉽지 않다. 경제면은 서민 생활과 경제를 강조하면 좋겠다. 13일자 엔씨소프트의 매출 신기록 기사보다는 소상공인 2차 대출 신청 기사에 더 큰 비중을 뒀으면 했다. 오피니언면에선 1일자 ‘네 발의 천사 안내견을 아시나요’를 인상 깊게 봤다. 안내견의 날이 있는 줄 처음 알았다. 정치, 경제, 사회 외에 다양한 분야의 내용을 발굴해 다뤘으면 한다. 18일자 1면에 ‘5·18 소년이 40년 후 소년에게’ 기사 편집은 소년들의 사진을 나열하며 울림을 줬다. 이 외에 방사광가속기 유치를 비중 있게 다뤘는데 이게 왜 과학적으로 중요하고 우리 실생활과 어떤 관련이 있는지 내용이 없어 아쉬웠다. 박준영 민감한 얘기 좀 해 보려고 한다. 지난 12일 정준영, 최종훈씨 성폭력 사건과 관련해 2심에서 감형이 이뤄졌다. 법원에 대한 비판과 문제 제기가 많았다. 그런데 사실 성폭력 사건은 약물을 사용한 증거가 없으면 판단이 어렵다. 정씨가 강간이 아니라 준강간으로 기소된 이유다. 이런 고민 속에서 재판부가 감형을 한 것 같다. 여성의 성을 착취하는 것에 대해 엄중히 처단하는 일은 필요하다. 다만 무차별적으로 비판만 할 문제는 아니라고 본다. 연장선상에서 14일자 씨줄날줄 칼럼을 비판적으로 본다. 피해자와 합의한 부분은 양형에서 반영 안 할 수 없고, 법원이 선고일을 연기한 것을 (봐주기와 연관시킨 것은) 지나친 감이 있다. 한명숙 전 총리 사건과 관련해서는 누구나 억울하다는 주장은 할 수 있다. 저는 당시 검찰 수사가 위법한 부분이 있다고 본다. 문제는 이런 억울한 사례는 서민들에게 너무나 많다. (국회의원들은) 이런 부분은 관심도 없이 유력 정치인만 부각시키는데 비판을 받아야 한다. 유승혁 n번방, 정의연 등 큼지막한 이슈들이 많다 보니 소외계층 기사가 상대적으로 적어 아쉽다고 느꼈다. 그럼에도 8일자 사회면에 ‘아빠의 아빠가 된 후에야 사랑의 기억을 찍습니다’ 기사는 읽으면서 짠함을 느꼈다. 정의연 사건은 전반적으로 정리는 잘했지만 11일자에 더불어시민당과 미래한국당이 대립하는 기사는 진영 논리에 방점을 찍었다는 느낌을 받았다. 21일자 문소영 논설실장의 진영 논리를 지적한 칼럼은 좋았다. 하지만 좀더 일찍 지적해 줬으면 좋지 않았을까. 5·18 관련 기획은 (언론사 중) 유일한 기획기사가 아니었나 싶다. 평소 매주 월요일자로 나오는 ‘채움’ 기사를 잘 챙겨 보는데 더 분석적으로 이슈를 다뤄 주면 좋겠다. ‘인포데믹’(거짓 정보가 유행하는 현상)이 일어나지 않게 분석을 해줄 수 있는 것은 결국 지면이라고 생각한다. 김숙현 1일자 오피니언면에 K방역의 국제표준화를 다룬 기사를 보면 보건·의료 패러다임의 변화가 전면적으로 나온다. 다만 국제표준화를 언급하면서 이를 위해 어떤 부분이 필요한지 언급돼 있지 않아 아쉬웠다. 유럽이나 일본만 봐도 개인정보가 유출되는 것에 대해 거부감을 상당히 많이 갖고 있는데 자가격리앱 등의 국제표준화를 어떻게 현실화시킬지 고민이 필요하다. 국제면은 내용이 사실상 유사한 기사가 하루 건너 나와 아쉬웠다. ‘中 때려서 표 모으는 트럼프’(4일자) 기사와 ‘미중, 코로나 팬데믹 원인 공방 격화’(5일자) 기사가 그렇다. 8~9일자 생방송 ‘아베 망신쇼’ 기사 등 일본 관련 기사는 제목이 자극적인 면이 있다. 반일 감정을 갖고 있는 독자들은 통쾌할 수 있지만 제목 하나로 기사가 객관성을 잃을 수 있다. 정의연 기사는 많이 다뤄지고 있는데 윤미향 전 이사장 인터뷰는 의혹에 대해 좀더 공세적으로 대답을 이끌어 냈으면 좋았을 것 같다. 11일자 대통령의 ‘포스트 코로나’ 구상에 실행계획이 뒷받침돼야 한다고 강조한 사설이 좋았다. 대통령이 언급한 ‘인간안보’는 모호한 개념이니 지침이나 길라잡이가 필요하다. 김준일 5·18 관련 보도가 눈에 띄었다. 그럼에도 온라인과 지면의 유기적 연결은 아쉬웠다. 과연 누가 지면을 보고 서울신문 홈페이지 URL을 일일이 쳐서 인터랙티브를 볼까 의문이 들었다. 차라리 QR코드를 만들어 스캔 한 번으로 간편하게 접근하도록 했으면 좋았겠다. 인터랙티브 사이트도 들어가서 좀 실망했다. 사진이 나열돼 있고 사진을 누르면 설명이 나오는 방식이 밋밋하게 느껴졌다. 서울신문은 독자들이 기사를 공유하거나 저장을 하는 행위까지 끌어내지는 못하는 것 같다. 25일자의 민선 7기 중간평가 기사도 몇 년에 한 번씩 공약을 평가하는 방식인데 장단점이 있지만 그 시점만 보여 주는 ‘횡단연구’ 방식은 한 번 읽으면 잊혀지는 감이 있다. 광역지자체 17개만 정해 단체장 공약을 다 적어 놓고 어디까지 진행됐는지 지속적으로 변화를 보여 주는 ‘종단연구’ 방식의 사이트를 만들어 보는 건 어떨까. 또 저널리즘의 신뢰도가 낮은 현실에서 장기적으로 언론사가 어떤 전략을 갖고 갈지 고민이 필요하다. 이동규 20대 국회 활동을 분석한 기사들을 흥미롭게 봤다. 22~23일자 1면에 20대 국회 법안을 분석했는데 발의 건수가 아니라 법안의 중요도 등 다면적 요소로 평가하는 게 필요하다는 부분에 공감했다. 언론은 어떠한 이슈를 사회운동으로 연결 짓는 역할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최근 화제가 되는 이슈인 민식이법 논란, 전 국민 고용보험, 원격의료 등에 대해 심층 기획이 필요해 보인다. 코로나19와 관련해 사설 등을 통해 자주 내용을 접할 수 있어서 좋았고, 시의 적절하게 대응했다고 본다. 14일자 ‘거리두기 늘자 숙박·음식업 직격탄’ 기사는 통계 분석이나 전문가 제언을 통해 고용 충격을 잘 보여 줬다. 다만 25일자 경제면의 산업연구원 보고서 기사는 독자들이 보기에 헷갈리는 부분들이 있었다. ‘이중차분법’이라는 용어가 나왔는데 개념에 대한 설명이 필요하지 않았나 생각한다. 김만흠 12일자에 통합당 초재선들의 개혁 모임을 기사로 다뤘는데 현재 상황만 다뤄서 좀 아쉬웠다. 과거에 새로운 개혁파들이 들어와서 성공한 모델이 있는지 함께 다뤄 줬으면 독자들에게 더 좋은 기사가 됐을 것이다. 윤미향 전 이사장과 관련해서는 김 위원도 말했지만, 상황에 따라 불가피한 경우도 있겠으나 인터뷰를 좀더 공세적으로 했으면 좋았을 거 같다. ‘리셋 21대-구태를 끊으면 국민이 보인다’ 5회 시리즈 첫 번째로 다룬 법안 베끼기는 잘 지적했다. 사회적 운동으로 이어지면 좋겠다. 국회의원들의 입법 활동에 대한 기준을 만들 필요가 있다. 국회, 시민단체, 서울신문 등이 나서서 기준을 만들기 위한 토론을 하면 좋겠다. 정리 이범수 기자 bulse46@seoul.co.kr
  • [문소영 칼럼] 윤미향 의혹, 진영 논리로 돌파해선 안 된다

    [문소영 칼럼] 윤미향 의혹, 진영 논리로 돌파해선 안 된다

    윤미향 더불어민주당 비례대표 당선자를 둘러싼 의혹이 4급 태풍 수준으로 몰아친다. 사건이 시작되면서 ‘주변인들과 또 불화하겠구나’ 하고 예감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친일·반인권·반평화 세력의 공세”라며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윤미향 구하기’에 나섰다. 시비를 가리기보다 “우리가 남이가”라는 진영의 정서가 여전히 만연한 탓이다. 일제 위안부 피해자인 이용수(92) 인권 운동가가 지난 7일 대구에서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 전 이사장이었던 윤 당선자에게 “국회의원 하면 안 된다”면서 “성금을 할머니들에게 쓰지 않았다”고 비판했을 때 다들 혼란스러워했다. 순간 ‘치매인가’ 우려를 속으로 삭였는데, 놀랍게도 이 우려를 입 밖으로 낸 사람은 윤 당선자였다. 그는 “할머니의 기억이 달라져 있다”며 발언의 신뢰도를 떨어뜨렸다. 정대협의 후신 정의기억연대(정의연)의 해명은 구체적 서류로 증명하기를 원하는 이에게는 늘 하나 마나 한 것이었다. 초기 의혹은 단순한 회계의 부적절성이나 윤 당선자 딸의 미국 유학자금 수준이었으나 이제는 횡령과 배임, 불법적 행위 의혹으로 확대됐다. 특히 국고보조금 13억원 중 8억원이 공시에서 누락됐고 사회적기업 마리몬드가 위안부 배지를 팔아 기부한 6억여원 중 약 5억원이 공시에서 누락됐으니, 정의연은 모두 13억원 이상의 행방을 밝혀야 한다. 쉼터들도 논란이다. 현대중공업이 지난 2012년 8월 위안부 할머니들을 위해 쉼터를 만들자며 10억원을 지정기탁해 ‘안성쉼터’가 마련됐다. 문제는 ‘안성쉼터’의 매입가격이 당시 시세보다 2~3배 비쌌고 팔 때는 더 싸게 팔았다는 것이다. 윤 당선자는 “고급으로 지어져 비싸게 산 건 아니다”라고 주장했지만, 높은 가격에 거래한 것처럼 ‘업계약서’를 썼을 것이라는 해석들이 나온다. 무엇보다 ‘안성쉼터’의 주인인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이 이 시설을 사용한 적이 없다는 것이 문제다. 게다가 윤 당선자의 아버지를 관리인으로 앉혔다니 ‘NGO 족벌경영’이라는 비아냥이 나오는 것이다. ‘왜 안성쉼터였을까’ 하는 의문은 명성교회가 2012년 1월 15억원의 기부약정을 했다는 사실로 일부 해소된다. 현대중공업보다 7개월 앞서 서울에 세우기로 한 것이다. 정대협이 2011년 개관한 ‘전쟁과여성인권박물관’과 얼마 떨어지지 않은 서울 마포구 연남동에 있으니 할머니들의 접근성도 좋은 안성맞춤인 곳이었다. 최근 이용수 활동가는 ‘안성쉼터’를 알지 못한다고 했다. 쉼터의 건립과 운영·관리에서 정의연이 할머니들을 아예 소외시켰나 싶다. 윤 당선자는 1990년부터 실무자로 정신대 인권 회복에 천착한 활동가이지만, 이용수를 포함해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 역시 정대협의 열렬한 활동가다. ‘할머니’라 부르며 그들이 인권 운동가라는 사실을 잊었던 것은 아닌가. 1991년 김학순 할머니가 위안부 피해자라고 고발하지 않았다면, 매주 열리는 수요집회에 그들이 없었더라면, 정대협의 세 확산은 어려웠을 것이다. 그러니 민주당 일각에서 일제의 반인권적인 전쟁범죄를 단죄하기 위한 정대협의 30년 활동을 마치 윤 당선자만의 공로인 양 부각한다면 부적절하다. 대구발 고발로 16년 전인 2004년 1월 심미자 등 위안부 피해자 33명이 제기한 “위안부 두 번 울린 정대협, 문 닫아라”라는 성명이 재조명되고 있다. 당시 성명은 “정대협이 성금을 거두지만 혜택을 받은 적이 없다. 할머니를 앵벌이로 배를 불려온 악당”이라고 했다. 그때 주목했더라면, 2020년 5월 윤 당선자를 둘러싼 수십억원대의 횡령·배임 의혹 사건은 발생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의혹의 증폭 속에 이용수 할머니와 윤 당선자가 지난 19일 대구서 만났다고 한다. 이들의 만남이 현재 불거진 의혹을 어설프게 봉합하는 계기가 돼서는 곤란하다. 밝힐 건 밝혀야 재발을 막을 수 있다. 이용수는 인권 운동가에, 용기 있는 내부고발자이다. 그러니 “기억이 달라졌다”며 메신저를 공격함으로써 고발을 무력화하려는 시도를 해서는 안 된다. 지금까지 시민단체 등은 정부지원금을 받으면서, 감사를 받지 않았다. 감사를 빌미로 한 탄압이라고 주장해 온 탓이다. 시대가 바뀌어 진보진영의 시민단체 활동가들이 정부여당의 장차관이나 국회의원으로 발탁되는 시대다. 탄압 운운은 어불성설이다. 앞으로 깔끔하게 감사를 받고, 대의적 활동을 하길 바란다. 개인계좌로 기부금을 받는 관행도 이제는 사라져야 한다. symun@seoul.co.kr
  • [길섶에서] ‘임계장’과 무심한 입주자/문소영 논설실장

    조정진씨가 쓴 ‘임계장 이야기’를 읽었다. ‘63세, 임시 계약직 노인장의 노동일지´가 부제다. ‘임계장’은 임시 계약직 노인장을 일컫는 신조어다. 책은 공기업 정규직으로 38년 일한 뒤 60세에 은퇴했으나 국민연금은 2년 뒤에나 지급되는 탓에 생계를 위해 ‘시급의 일터’, 즉 비정규직 노동자로 돌아온 조씨의 핍진한 노동의 세계를 다룬다. 때는 2016년, 조씨는 임계장이라 불리던 첫 직장 버스터미널 배차원으로 3명이 할 일을 혼자서 할 수밖에 없다. 과도한 업무 중 부상을 입었지만, 치료도 못 받고 쫓겨났다. 버스회사는 산업재해가 분명한데도, 업무 부적응이라는 핑계를 대고 해고해 버린다. 7개월의 두 번째 직장인 광역시 아파트단지 경비원은 또 어떤가. 입주민의 갑질과 폭력에 항의하며 자살한 70대 경비원 최희석씨의 삶이 재현되는 듯했다. 악덕 입주민은 겨우 5%에 불과하지만, 이 극소수가 경비원의 몸과 마음을 무자비하게 짓밟는다. 아파트관리소장이나 경비대장 역시 하루살이라 경비원만 잡을 뿐, 부당노동에서 경비원을 구제하지 못한다. 필수인원이 최소화한 탓에 경비원들은 피와 살을 갈아 넣는 살인적 강도의 노동에 노출되지만, 다수 입주민은 무심하다. 아파트 생활 35년째, 무심한 입주민으로서 낯부끄럽다. symun@seoul.co.kr
  • [길섶에서] 왕가위와 동사서독/문소영 논설실장

    옛날엔 왕가위라고 불렀다. 30년쯤 지난 지금은 ‘왕자웨이’라고 표기된다. 모택동을 ‘마오쩌둥’이라 부르는 시대인지라 그러려니 한다. 그래도 젊은 날을 떠올리려면 당시의 표기가 좋다. 한 달여 전쯤 지인이 소셜미디어에서 왕가위 감독의 ‘동사서독’(東邪西毒)을 극찬하였기에, 홍콩누아르를 기대하며 아마존에서 구매해 황금연휴 첫날 봤다. 동사서독은 1994년 판과 2008년에 나온 동사서독 리덕션이 있다. 구매한 것은 동사서독 리덕션이다. 장국영이 자살한 뒤 왕가위 감독이 그를 생각하며 재편집했단다. 홍콩 무협소설가 김용(진용)의 ‘영웅문’이 원작인데, 원작 속 구양봉이나 황약사는 흔적이 없다. 젊은 날 사랑에 실패한 두 남자가 쓸쓸하게 늙어 가는 연애물이었다. ‘왜 소녀들의 고무줄을 끊고 말썽을 부리나, 이 사람들아! 이제라도 좋다고 고백해’라고 코치하고 싶을 지경. 왕가위 감독의 작품으로 2000년 개봉한 ‘화양연화’도 유명하다. 극찬하는 이가 많았지만, 주인공들을 이해하기 어려웠다. 1994년 개봉한 ‘중경삼림’은 그나마 좀 수월한 영화였다고나 할까. 왕가위 감독은 이뤄지지 않는 사랑을 다양하게 변주하는 영화를 만들었는데, 나같이 수준이 떨어지는 관객이 늘 의문을 제기한다. 대체 이 영화 뭐냐!? symun@seoul.co.kr
  • [길섶에서] 긴급재난수당 기부/문소영 논설실장

    이재명 경기지사는 4월 중에 경기도민이라면 ‘누구나’ 긴급재난수당을 받을 수 있도록 했다. 영주권자와 결혼이주자들에게도 차별 없이 지급한단다. 지방정부 공무원들과 대화하다 보면 왜인지는 모르지만, 생활보조금 등을 지원하기 위해 차상위계층을 골라내는 데 시간과 돈이 많이 든다고 한다. 그러므로 코로나19 같은 미증유의 재난이 찾아왔을 때는 ‘신속하게’ 지원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말한다. 지난 15일부터 ‘자본주의의 최고봉’ 미국에서도 1인당 1200달러가 통장에 들어왔다는 소식을 미국 영주권자가 소셜미디어를 통해 전하고 있다. 자본주의자이자 대자산가인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조차 이런 재난지원금을 거의 전 국민에게 지급하면서 ‘사회주의’라고 주장하지 않는다. 선별로 지원하려면 ‘신속하게’는 물 건너간다. ‘꼼꼼하게’와 ‘신속하게’는 양립하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경기도에서 긴급재난수당 10만원을 신용카드로 받아 놓았다. 우리 같은 직장인들보다 더 필요한 사람을 찾아 기부하려고 보니 수당은 수당대로 쓰고 기부는 기부대로 따로 해야만 한다. “긴급재난수당을 받자마자 기부로 연결할 방법은 없을까”하고 생각해 본다. 공공 배달앱 대신 기부앱 좀 만들어 보면 어떤가. symun@seoul.co.kr
  • [문소영 칼럼] K방역과 ‘퍼스트 무버’의 기회

    [문소영 칼럼] K방역과 ‘퍼스트 무버’의 기회

    “건국신화에 자가격리가 나오는 나라”라며 ‘국뽕’을 들이켜는 사람들에게 자극받아, 지난 주말 쑥을 캐러 갔다가 ‘콧물 찔찔이’가 됐다. 쑥과 마늘로 100일 동굴 자가격리를 완성한 곰녀가 될 것도 아니었는데, 미련맞았다. 한국인이 자부하는 ‘한강의 기적’은 선진국의 성공을 빠르게 뒤따라가는 캐치업(catch-up) 전략 덕분이었다. 보호무역으로 내핍하고 국가가 산업화를 주도하고 수출 드라이브 정책으로 압축성장을 이뤘다. 그 시기 한국은 어느 나라보다도 빠른 ‘패스트 팔로어’(fast follower)였다. 1997년 외환위기 때는 ‘금 모으기 운동’까지 한 국민의 전폭적 협조에 힘입어 재벌의 지배구조 개선과 산업구조 재편에 성공했다. 2008년 서브프라임모기지발 글로벌 금융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제안된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의 2010년 개최·의장국으로서 아시아 변방이 아니라 세계 중심국가로 국제적 위상도 높였다. 최근 문재인 대통령의 제안으로 코로나19 극복을 위한 G20 정상들의 첫 화상회의가 열렸다. 지난해에는 1인당 국민소득 3만 달러 이상, 인구 5000만명 이상의 조건을 만족하는 ‘3050클럽’의 일곱 번째 국가가 됐다. 문득 한국이 뛰어넘어야 할 나라를 따져 보았다. 우리 앞에 일본(1992)을 시작으로 미국(1996), 영국(2004), 독일(2004), 프랑스(2004), 이탈리아(2005)뿐이었다. 이들 나라는 최근 코로나19 방역 실패로 주목받는다. 일본을 제외하고 코로나19로 누적 확진자가 가장 많은 나라 8위 안에 들어 있다. 8일 현재 누적 확진자 압도적 1위인 미국 40만 412명(누적 사망자 1만 2853명, 사망률 3.2%), 3위 이탈리아 13만 5586명(1만 7127명, 12.6%), 4위 프랑스 10만 9069명(1만 328명, 9.5%), 5위 독일 10만 7663명(2014명, 1.9%), 8위 영국 5만 5242명(6159명, 11.1%) 등이다. 1월 말 첫 번째 확진자가 나오자마자 중국발 입국을 봉쇄한 이탈리아, 국민 60~70%는 감염돼야 한다며 집단면역을 시도했던 영국, 한국과 같은 날 확진자가 나왔으나 1월 말에 중국발 입국을 봉쇄했을 뿐 ‘차이나병’이라며 방역을 한 달 넘게 소홀히 했던 미국 등은 3월 중반에야 ‘한국식 방역모델’을 따라왔다. 한국은 1월 20일 첫 확진자가 나오자 방역 교과서처럼 대응했다. 그 결과 현재 한국의 누적 확진자는 1만 384명으로 제한됐고 사망자도 200명에 그쳐 사망률은 2.0%에서 관리되고 있다. 한국의 발 빠른 방역과 미국 등의 한 달 이상 늦은 방역의 차이는 누적 확진자 수와 누적 사망자, 사망률로 확인된다. 중국은 코로나19 확산을 막고자 국경봉쇄, 도시봉쇄를 강행했다. 뒤늦게 방역에 뛰어든 미국·유럽과 아시아 국가 대부분도 ‘봉쇄’를 선택했다. 반면 한국은 국경과 도시를 봉쇄하지 않고 발병과 동시에 광범위한 진단을 시도했고, 역학 추적한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해 성숙한 시민의 협조를 유도하면서 확산을 저지했다. 의료진의 헌신을 포함해 이것이 한국식 방역이다. 한국식 방역모델은 최소한의 수준이지만 경제적 활동도 가능하다는 것이 장점이다. 한국식 방역으로 전 세계가 대응했더라면, ‘국경 봉쇄’로 글로벌 수급체제가 붕괴돼 세계 경제가 절벽으로 떨어지고 있는 지금, 마이너스 성장의 기울기를 다소 완화할 수 있었을 것이다. 애프터 코로나(AC) 세상을 상상하는 지식인 중에는 방역에서 성공한 중국이 미국을 빠르게 넘어설 것이라고 한다. 그것은 섣부른 판단이다. 전염병조차도 시민의 권리를 전면 제한하는 전체주의가 아니라 민주주의 사회에서 더 잘 관리할 수 있다는 사실을 한국이 증명했기 때문이다. 2010년 이후 한국에서는 패스트 팔로어가 아닌 ‘퍼스트 무버’(first mover)가 돼야 한다는 주장이 많았다. 그런데 아무도 퍼스트 무버가 되는 경로를 제시하지는 못해 그 주장은 당위로만 존재했다. 기회의 문은 인류의 불행이자 비극인 코로나19 팬데믹 시기에 열렸다.한국은 그 문이 열렸는지도 모르고, 그저 성실하게 교과서에서 배운 대로 열심히 했을 뿐인데 ‘바이오테크놀로지(BT) 강국’이 되었다. 외신이 앞다퉈 한국의 방역모델을 소개하고, 한국 진단키트가 120여개국에 팔려나가는 배경이다. 개인의 성공은 실력보다 행운이라고 하듯, 한 국가의 성장과 성공에도 실력보다 행운이 작용해야 한다. 중국과 차별화된 한국형 방역, 즉 ‘K방역’이 민주주의 세계의 성과가 되길 바란다. 그러려면 백신과 치료제가 개발돼 코로나가 종식될 때까지, 물리적 거리두기는 완화하더라도 지속돼야 한다. 논설실장 symun@seoul.co.kr
  • [길섶에서] 취미활동이 국난극복/문소영 논설실장

    처음에 ‘국뽕’이란 단어를 이해하지 못했다. 국가와 필로폰의 ‘뽕’을 합성한 단어다. 국뽕이란 극심한 민족주의로 자국만이 최고라고 여기는 행위나 사람을 말한다. 그래서 국뽕의 최고봉은 유사역사학으로 친다. 무조건 한국을 찬양하니, 포스트모던 시절에 국뽕은 비웃을 때 썼다. “또 국뽕이냐”며. 최근 국뽕은 찬양용이다. 국뽕의 용례는 이렇다. ‘영화 기생충의 아시아 최초의 오스카 작품상 수상으로 국뽕에서 헤어날 수가 없다’거나 ‘방탄소년단(BTS)이 미국 빌보드차트를 석권해 영국 비틀스 이후 최고의 그룹으로 평가받아 국뽕에 흠뻑 젖었다’ 등등. 코로나19 시대에 최고의 국뽕은 이렇다. “한국인의 취미활동은 국난극복이다.” 외환위기 때 금 모으기 운동으로 세계 금값을 떨어뜨린 나라가 한국이고, 코로나19 확산에도 사재기가 없고, 모범적인 감염병 방역의 모델국가로 지목되니 ‘국난극복이 취미활동’이란 국뽕에 어이가 없다가도 뭔가 으쓱한 마음이다. “한국인에게는 국난극복의 DNA가 있다”는 낯간지러운 공익광고도 나온다. 그러나 24일 오전 10시 현재 세계의 누적 확진자가 약 38만명이고 누적 사망자는 약 1만 7000명이다. 전쟁도 아닌데 감염병 앞에 속수무책인 인류이니, 국뽕보다 미래의 향방에 더 주목해야 한다. symun@seoul.co.kr
  • [길섶에서] 권력과 자율성/문소영 논설실장

    사람들은 잘못된 선택에 대해 비판받으면 “어쩔 수 없었다”고 변명한다. 타인의 강압 탓에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는 것이다. 지진과 태풍으로 집이 무너지고 다친다면 불가피한 일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사람의 일이라면 늘 선택의 여지가 있다고 본다. 특히 권력의 문제라면 더 그렇다. 사람들은 자신의 권력이 약할 때는 선택권이 없었다고 주장하지만, 권력이 생기면 자신에게 주어진 권력을 행사하는 데 조금도 주저함이 없다. 그러니 더 큰 힘 앞에 굴복했다고 해명해야지 불가피했다고 변명하는 것은 진실한 주장이 아닐 수 있다. 미래한국당에서 그제 비례대표 명단을 발표했는데, 그 명단을 보고 이 위성정당을 창당하라고 권유하고 당대표까지 점지해 준 것으로 알려진 황교안 미래통합당 대표가 격노했단다. 황 대표가 영입한 체육계 미투 1호 김은희씨는 아예 명단에 포함되지 않았고, 윤봉길 의사의 손녀딸인 윤주경 전 독립기념관장은 당선권 밖인 21번에, 탈북 북한인권운동가 지성호씨는 예비명단 4번에 올려놓았단다. 통합당이 명단의 전면 수정을 주장했는데 한선교 한국당 대표가 재의하겠다고 어제 밝혔단다. 부자(父子)간에도 권력은 나누기 어렵다는데, 대놓고 두 정당이 모자(母子) 관계라 가능한가. symun@seoul.co.kr
  • [씨줄날줄] 116년 서울신문과 조선일보/문소영 논설실장

    [씨줄날줄] 116년 서울신문과 조선일보/문소영 논설실장

    “100년이 넘은 기업은 두산과 조흥은행, 그리고 서울신문뿐입니다.” 대한상의 박용성 회장은 2004년 7월 18일 서울신문 창간 100주년 행사에서 이렇게 축하했다. 당시 한국신문협회장인 홍석현 중앙일보 회장도 “현존 언론사 가운데 100년의 전통을 기념하는 신문사가 출현한 그 하나만으로 우리 언론계 전체의 큰 경사”라고 했다. 서울신문은 그 자체로 영욕의 한국 근현대사다. 1904년 7월 18일 창간한 ‘대한매일신보’(大韓每日申報)가 전신이다. 첫 발행인·편집인은 영국 언론인 어니스트 베델(E T Bethell)이었다. 창간에 참여한 애국지사 양기탁과 신채호, 박은식 등은 “일본의 검열망을 뚫을 수 있는 길은 당시 일본과 군사동맹을 맺은 영국인 명의로 신문을 발행하는 길뿐”이라고 인식했다. 독립운동 등을 알리려 국문·영문판을 발행했고, 발행부수도 1만 부로 파격적이었다. 이토 히로부미 통감은 대한매일신보를 두고 “…확증이 있는 일본의 제반 악정을 반대하여 한인을 선동함이 연속부절하니”라며 눈엣가시로 여겼다. 회유와 매수로도 논조를 꺾지 못한 일제는 뒤에 영국과 외교적 마찰을 감수해 가며 베델을 쫓아냈고, 경술국치가 있던 1910년 강제 매수했다. 이후 ‘대한’을 떼어낸 ‘매일신보’(每日申報)는 조선총독부 기관지로 활용됐다. 공기(公器)로서의 역할은 수행했다. 1915년 처음으로 신춘문예를 시행했고 1920년 한국 언론 최초로 여기자 채용을 공고해 ‘한국 언론 1호 여기자’ 이각경 기자도 탄생시켰다. 해방 후 1945년 11월 10일 미군정으로부터 매일신보는 정간처분을 받았다. 이에 ‘민족대표 33인’이던 오세창 등은 새 경영진을 구성해 ‘서울신문’을 창간하는데 이때 서울신문의 지령(紙齡ㆍ신문의 나이)을 신생 신문처럼 1호가 아니라 ‘대한매일신보’부터 ‘매일신보’로 내려온 지령을 계승한 1만 3738호로 시작한다. 이 출발선으로 서울신문은 1904년에 창간해 116년이 된, 한국에서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신문이라 할 수 있다. 언론학 전공인 정진석 한국외국어대 명예교수가 이를 확인해 한국 언론사에도 기록해놓았다. 1920년 3월 5일 창간한 조선일보가 ‘한국 언론 역사상 첫 창간 100년’이라며 선전한다. 팩트체크를 하자면, 1904년 7월 18일 창간한 서울신문(대한매일신보의 후신)보다 16년 4개월 13일이나 늦은 창간이다. ‘장수기업’이 드문 한국에서 조선일보의 100번째 생일맞이는 기념할 만하지만, 자신을 돋보이고자 역사적 사실을 왜곡해서야 되겠나. 이는 조선일보가 지난 4일 ‘1986년 김일성 사망보도’, ‘2013년 현송월 총살보도’ 등의 오보를 시인하고 사과하면서 “사실보도만 하겠다”고 한 약속의 위반이다. symun@seoul.co.kr
  • [길섶에서] 나만 잘하면 된다/문소영 논설실장

    청결한 여성이란 신화의 그늘에서 깨끗한 척하고 살았지만, 사실은 ‘명예 남성’이란 지칭에 걸맞게 살아왔다. 한 지인은 코로나19 덕분에 결혼 20년 만에 남편이 퇴근하자마자 샤워하는 꼴을 처음 보았다고 증언했다. 나 역시 그분의 남편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고 고백한다. 코로나19 감염증으로 개인위생이 철저해지고 있다. 매일 마스크를 쓰고, 수시로 손을 닦는다. 마스크 없이 기침을 할 때는 옷소매에 입을 묻고 침방울이 널리 퍼지지 않도록 예절을 지킨다. 그 덕분에 2월 인플루엔자 환자가 1000명당 16.4명으로 집계됐다고 질병관리본부가 밝혔다. 1월 초에는 49.1명이었다고 하니 70%가 급감한 것이다. 인터넷의 발달로 초연결 사회에 살고 있다고 하지만 코로나19 누적 확진환자가 하루가 다르게 늘어나고, 전국 각지에서 확진환자가 나오는 상황을 지켜보자면 ‘데카메론의 시간’의 초연결을 새삼 깨닫게 된다. 중세에는 괴질이 생기면 원인이라고 생각되는 대상이나 이방인을 찾아내 죽이거나 마을에서 쫓아냈다. 공포가 불신으로 확장된 탓이다. 그러나 초연결 사회에서는 중세처럼 행동할 수 없다. 문명은 질병과 동행해 왔다. 개인위생을 철저히 하면서 ‘나만 잘하면 된다’를 되뇐다.
  • [문소영 칼럼] 역발상과 K방역

    [문소영 칼럼] 역발상과 K방역

    기관지가 약해 수시로 잔기침을 하는 데다 이유를 알 수 없는 미열에 시달리는 사람들은 요즘처럼 곤혹스러운 시절이 없다. 마스크를 착용했어도 어쩌다 기침을 하면 사람들의 시선이 몰린다. 혹시 코로나19(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의 숙주가 돼 ‘○○번’으로 불리면 어떡하나 하는 공포에도 시달린다. 코로나19 누진 확진자가 26일 1000명을 넘어섰다. 지난 18일 31번 확진자가 나타난 뒤 19일 신규 확진자가 무더기로 20명이 발생하더니 주말을 거치면서 하루 100~200명의 확진자가 추가된 탓이다. 이에 시민들의 공포는 증폭됐다. 방역 당국에서 “마스크를 사용하라”고 권고해도 콧방귀를 뀌던 나이 든 사람들조차 이제는 맨얼굴로 돌아다니지 않는다. 마스크를 쓰지 않고는 엘리베이터를 타지 말라는 권고와 함께 회사에 열감지 카메라가 설치되고 사무직에겐 자택근무를 권장하며 출근시간도 유연하게 적용하고 있다. 31번 확진자 이후의 확진자 특징은 지역적으로는 대구·경북(TK)이고 ‘신천지’라는 특정종교 단체와 연결돼 있다는 것이다. 즉 확진자의 80% 가까이가 TK 지역에 몰려 있고 전국적 확산의 표지조차도 신천지 교인들과 관련이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TK와 신천지 교인을 중심으로 방역을 집중할 경우 지역감염 확산을 봉쇄할 수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그러나 언론은 관련 데이터가 말하는 의미를 파악하기보다는 매일 100~200명의 확진자 증가에 대해 공포를 부추기는 보도를 하고 있다. 확진자 신규 발생지역에 대해 선정적으로 “○○이 뚫렸다”고 표현하거나, 확진자와 야당 원내대표가 접촉해 방역 차원에서 국회 본관을 폐쇄하고 법원도 휴정을 권고하자 “대한민국이 멈춰 섰다”와 같이 제목을 뽑았다. 과연 그럴 일이었나. 오히려 확진자 급증의 다른 측면을 바라봐야 한다. 정은경 질병관리본부장은 최근 하루 3000개로 시작했던 코로나19 검사키트를 하루 7600여개까지 공급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 결과 25일 오후 4시 기준으로 확진자와 의심환자 등에 2만 6424건의 검사를 완료하고 1만 3000여건의 검사를 진행하는 등 총 4만 304건의 검사가 진행됐다. 반면 미국의 누적검사 건수는 440여건, 일본은 1500여건에 불과하다. 미국이나 일본의 확진자가 각각 53명과 164명에 불과한 현상은 검사의 모수가 다른 탓에 나타난 왜곡일 수도 있다. 한국이 코로나19에 위험한 것이 아니라 다른 나라에서 제대로 진단과 치료가 이루어지는지 의심해야 할 상황이다. 방역정책이 잘못됐다며 대통령을 탄핵하자는 청와대 청원이 있지만, 해외 언론의 평가는 사뭇 다르다. 미국의 시사주간지 ‘타임’은 25일 인터넷판에서 한국에서 유독 코로나19 확진자 숫자가 급증한 것은 역설적으로 한국사회의 개방성과 투명성 덕분이라고 보도했다. 한국이 높은 진단능력, 자유로운 언론환경, 민주적인 책임 시스템 등을 거론하면서 동북아에서 한국과 같은 조건을 모두 갖춘 나라는 드물다고 평가했다. 뉴욕타임스도 25일(현지시간) 보도에서 중국 정부가 1100만명이 사는 우한 지역에 이동제한조치를 하고 자택에 바리케이드까지 쳤지만, 240만명이 사는 대구는 정상적인 도시 기능을 유지하면서 감염을 적극적으로 감시하는 전략을 짜고 있다면서, 민주주의 사회의 본보기가 될 수 있다고 평가했다. 현재의 위기를 관민의 협조로 잘 극복한다면 ‘K방역’이 세계의 모범이 될 수도 있다. 코로나19를 막기 위해 중국 후베이성뿐만 아니라 중국 전역을 봉쇄해야 했다고 한 달 내내 주장하던 야당 관계자들은 ‘대구 봉쇄’와 같은 혐오를 조장하는 발언을 하지 않는다. 제대로 된 정치집단이라면 자신들이 집권여당이 됐을 때도 똑같이 주장할 수 있을 만한 책임 있는 발언을 해야 한다. 총선에서 이길 목적으로 정부 여당에 책임을 떠넘기는 발언들을 마구잡이로 해서는 안 된다. 언론들도 이들 발언의 잘잘못을 따져야 한다. 특히 공포가 창궐하는 시절에는. 워런 버핏은 “썰물이 돼야 누가 벌거벗고 수영하는지 알 수 있다”고 말했다. 위기가 닥쳐야만 누가 잘하고 있었는지 실체가 드러난다는 의미다. 코로나19의 위기에서 누가 무엇을 어떻게 잘하고 잘못했는지는 점차 드러날 것이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정치권과 언론은 공동체에 대한 배려와 관용, 책임을 다해야 한다. symun@seoul.co.kr
  • [씨줄날줄] 작전명 ‘루비콘’/문소영 논설실장

    [씨줄날줄] 작전명 ‘루비콘’/문소영 논설실장

    ‘제이슨 본’이 미국 중앙정보국(CIA) 내 트레드스톤의 존재를 세상에 폭로하자, 국방부의 최정예 요원으로 육성된 ‘애런 크로스’는 제거될 위기에 처한다. 관련 책임자 ‘바이어’가 모든 요원을 제거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근육과 인지능력 강화 약물에 중독된 크로스는 제약사가 있는 필리핀에 잠입해 위기를 모면하려 하지만 암살자들에게 쫓긴다. 영화 ‘본 시리즈’에 합류한 ‘본 레거시’ 이야기다. 바이어는 필리핀의 이런 상황을 미국 워싱턴에서 대형 화면으로 실시간 지켜보면서 지시를 내리는데, 잠깐! 바이어는 어떻게 현장을 지켜보게 된 것일까. 군사용 인공위성을 활용했겠지 하는 생각은 어제자로 폭로된 CIA가 운영하는 암호장비 회사 ‘크립토 AG사’ 덕분인가 하고 재고해 봐야 할지도 모르겠다. 미국 워싱턴포스트와 독일 ZDF방송은 11일(현지시간) 미국과 서독의 정보기관인 CIA와 BND가 스위스의 암호장비업체 크립토AG를 극비리에 공동 운영해 왔다고 보도했다. CIA와 BND는 크립토AG가 세계 각국에 판매한 암호장비를 활용해 중요한 외교안보적 비밀 정보를 무려 2018년까지 들여다봤다는 것이다. 1978년 미국 캠프 데이비드 중동 평화협상 때도, 1979년 이란 주재 미국대사관 인질사건 때도, 1982년 영국의 포클랜드 전쟁 때도 이 장비가 활용됐단다. 이 장비는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 소속 국가와 사우디아라비아, 일본, 한국, 이란, 이탈리아, 인도네시아, 이라크, 리비아, 요르단 등 120개 국가에 판매됐다. 미국은 이 장비를 활용해 기밀정보를 불법수집했는데, 작전명은 ‘루비콘’이다. 미국은 지난해 중국의 통신장비업체 화웨이에 스파이 혐의를 씌우고 독일·일본 등 우방국가에 화웨이를 사용하지 말라고 압박했다. 2019년 기준으로 세계 통신장비 시장의 27%를 점유한 화웨이는 그 이후 상당한 어려움을 겪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당시 미국의 화웨이 공격은 미중 무역전쟁의 전초전 같았다. 그런 측면에서 1986년 체결된 ‘미일 반도체 협정’을 연상시켰다. 1980년대 미국 미사일은 소련 미사일보다 정확도가 높았는데 이는 일본산 반도체를 장착한 덕분이었다. 하지만 미국은 이 기술력을 근거로 일본산 반도체가 미국 안보에 위협이 된다는 여론을 확산시킨 뒤 일본 반도체에 반덤핑 관세 100%를 때리는 등 공격을 했다. 미일의 이 협정은 1996년 종료하지만 일본 반도체 산업은 이후 경쟁력을 잃어버렸다. 암호장비를 활용해 120개국에서 70년간 불법으로 정보를 수집해온 미국 정부로서는, 중국 정부가 화웨이 통신장비를 활용해 각국에서 불법정보를 수집할 것이라고 판단할 만했다. symun@seoul.co.kr
  • [길섶에서] 단백질 먹기/문소영 논설실장

    전생에 초식동물이었나, 하고 생각했다. 붉은 고기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어릴 때부터 고기만 먹으면 소화불량으로 고생해 기피해 왔다. 의학 정보를 취합해 보면, 기름기를 잘 소화하지도 단백질을 잘 소화하지도 못하니, 췌장 기능이 크게 좋지 않은 채로 나이를 먹어 온 것이다. 그래도 채식주의자라고 하기에는 고기를 너무 자주 먹으니 잡식이다. ‘혼밥’은 달가워하지 않는 음식들을 기피할 수 있으니 환영하는 편인데, 한국의 사회생활이라는 것이 남들과 함께 밥 먹는 것이 그 기본이다 보니 내 몸을 오래 괴롭히면서 살아왔다. 그런데 요즘은 그 달갑지 않은 붉은 고기를 기회를 만들어 먹으려고 노력하고 있다. 나이가 들면 체내 단백질이 쉽게 소실된다는 이야기 때문이다. 지난해부터 가볍게 운동을 시작했는데 역시 고기를 먹어야 근육량을 유지할 수 있다고도 했다. 그 보기 좋다는 ‘애플 엉덩이’는 꿈도 꾸지 않지만, 종아리와 허벅지의 근육이 탄탄해야 무릎이 뚱뚱한 상체를 버티지 않겠느냐 하는 생각으로 운동한다. 멀리 사는 동생은 전화로 “하루에 한 번 담뱃갑 크기만큼은 단백질을 먹어야 해”라며 잔소리를 해댔다. 오늘은 점심에 닭가슴살을 먹었다. 담뱃갑 크기만큼인 거 같다. 오늘은 무척 건강해진 느낌이다. symun@seoul.co.kr
  • [길섶에서] 30년 만의 만남/문소영 논설실장

    대학 시절과는 선을 긋고 살고 있다. 4년을 함께 활동하던 선배와 동료가 나의 사상을 문제 삼아 나 모르게 뒤에서 배제했다는 사실을 졸업할 무렵 전해 들은 탓이다. 대면해 화를 내지 못한 탓인지 뒤끝은 유통기간도 없이 작렬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게 29년을 넘기는 중 지난겨울 소셜미디어를 통해 상하이에 사는 한 친구가 반갑게 인사를 해 왔다. 처음엔 누군지 못 알아보았는데, 탈반에서 활동하던 우리 대학 ‘상쇠’였다. 그와 나는 소속이 달랐는데, 내가 발행을 책임지고 있던 16쪽 격주간지에 대해 그는 “무슨 내용은 좋았는데 오탈자가 좀 있었다”는 말을 웃음기 없는 얼굴로 운동장을 지나가는 길에 건네던 친구였다. 그땐 다들 그랬지만 도도하고 쌀쌀맞았다. 설을 맞아 상하이에서 귀국한 그와 만나니 30년 세월을 뛰어넘어 20살 언저리로 돌아간 듯했다. 얼굴과 손에는 주름이 가득한데, 마음은 청춘이 돼 버린 것이다. 무려 30년이 된 상처들도 어제 막 입은 상처인 양 날뛰려고 했다. 그는 잘 웃고 상냥한 사람이었다. 500㎖ 연태고량주를 3분의2정도 마신 뒤, 나머지는 재회해 마저 마시기로 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잠복기 2주를 고려할 때 귀국한 지 1주일밖에 안 된 너는 위험한 거 아니냐며 깔깔댔다. 어려운 시기다. symun@seoul.co.kr
  • [문소영 칼럼] 격세지감

    [문소영 칼럼] 격세지감

    “와! 진짜 통과된단 말이지!” 지난달 30일 국회에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법안이 국회를 통과하는 장면을 TV 생중계로 보면서 남다른 감정이 일었다. 아마도 지난해 4월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으로 지정됐을 때 자유한국당의 강력한 반대에 부딪혀 좌초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이런 감정은 자연발생적이라기보다는 2004년 참여정부 시절 집권여당이었던 열린우리당의 무기력한 입법 실패에 기인한 것이기도 했다. 당시 국회출입 기자로 정부·여당이 추진했던 4대 개혁입법이 때로는 여당 내부의 갈등으로, 때로는 야당의 전략에 판판이 깨지는 것을 100일 가까이 매일 밤 지켜보며 얻은 트라우마 같은 게 존재하고 있던 것이다. 노무현 정부는 출범 당시 4대 권력기관 개혁을 선언했었다. 국가정보원과 검찰, 국세청, 감사원이 그 대상으로 정치적 중립화가 목표였다. 다들 아다시피 실패했는데, 실패의 배경에 무전략의 여당이 있었다. 당시 천정배 열린우리당 초대 원내대표는 취임 직후 4대 개혁입법을 선언했는데, 그 1호가 악법 중의 악법인 국가보안법 폐지였다. 그러나 국보법 폐지냐 개정이냐를 두고 여당 내부에서 격렬하게 갈등하다가 지리멸렬하게 없던 일로 처리되는 것을 지켜보았으니, 그 무능과 무기력에 대해 진저리가 났던 것이다. 결국 2004년에 4대 권력기관 개혁도, 4대 개혁입법도 흐지부지됐다. 천 원내대표가 개혁법안 처리의 실패에 대해 책임을 진다면서 사퇴하는 바람에, 새해부터 여당 원내대표 공석이라는 초유의 사태를 맞기도 했다. 대통령이 당총재로 군림하며 여당을 좌지우지하지 않는 정당 민주화 시대가 됐다며 환호했건만, 정당 민주화는 유례없던 과도기를 겪은 것이다. 문재인 정부에서도 개혁이 화두였지만, 집권 첫해부터 추진하던 개헌은 국회에서 열어 보지도 않고 폐기됐다. 혁신경제는 규제개혁에 진전이 없었다. 국회에서 관련 법안들이 제정 또는 개정되지 않고 있던 탓이었다. 개혁이 제도화되지 않는다면 지속가능할 수 없다는 점에서 심각했다. 집권 반환점을 돈 문재인 정부로서는 제도화된 개혁이 무엇보다 필요하고 시급했다. 그 역할은 여당의 몫이었다. ‘전대협 1기 의장’이란 꼬리표를 달고 이인영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가 지난해 5월 등장했을 때 시선은 그리 곱지 않았다. 무능한 386세대가 권력을 다 쥐고 내려놓지 않는다는 비판이 비등하던 중이었고, 이 원내대표는 그 세대의 맏형 격이었기 때문이다. 또한 당선 직후 이 대표는 스스로 “부드럽고 말 잘 듣는 원내대표가 되겠다”고 약속했을 정도로 강골의 이미지가 강했다. 카운터파트인 나경원 한국당 원내대표와의 협상에도 불안불안해하는 동료 의원들이 없지 않았다. 어쩌다 나 원내대표와의 토론이라도 TV에서 진행되면 현 정부 지지자들은 ‘고구마 100개 먹은 답답한 기분’이라고 하기도 했다. ‘고구마 100개’의 이 원내대표는 그러나 여소야대 국면에서 ‘4+1 협의체’를 유지하며 지난해 12월 30일에 공수처법을, 지난 13일 검경 수사권 조정을 위한 형사소송법과 검찰청법 개정안까지 국회에서 통과시켜 ‘검찰개혁 입법’을 완료했다. 문 대통령의 공약 1호이자, 노무현 정부 시절부터 애태우던 숙원을 해결한 것이다. 그 덕분에 평가가 확 달라졌다. “운동권 출신 정치인에 대한 편견이 사라졌다”거나 “친문이냐 비문이냐보다 능력이 중요하다”, “덜 알려졌다고 무능한 의원은 아니다”, “한때 의심한 거 미안하다” 등등의 평가들도 쏟아진다. 개혁입법뿐 아니라 민생경제와 관련 있는 ‘유치원3법’과 ‘데이터3법’도 입법에 성공했으니 완승이다. 그러나 이 완승이 진짜 완승이 되려면,이 원내대표는 검경 수사권 조정안과 관련한 추가적인 입법과 후속 조치에 힘을 더 쏟아야 한다. 검찰개혁 입법을 우선 통과시키고 개정하자는 의도였다면 20대 국회가 끝나기 전에 책임지고 추가 입법을 하길 바란다. 경찰개혁법안이 이번에 함께 처리되지 않아 ‘검찰 공화국’에서 ‘경찰 공화국’으로 이동하는 것이 아니냐는 시민들의 우려가 적지 않다. 국민이 호랑이를 피했는데, 늑대를 만나서는 안 되는 것 아닌가. ‘검사내전’의 저자 김웅 검사는 실효적 자치경찰제, 사법경찰 분리, 정보경찰 폐지 등이 검경 수사권 조정의 선결조건이라는 점을 지적했다. 권력의 확대와 집권 연장을 위해 경찰을 도구로 쓰는 것이 아니냐는 비판도 진정성을 가지고 잠재워야 한다. symun@seoul.co.kr
  • [길섶에서] 83세의 제인 폰다/문소영 논설실장

    지난 주말에 넷플릭스에서 ‘그레이스 & 프랭키’ 시리즈를 봤다. 오늘 시즌 6이 공개된다. 이 미드에서 제인 폰다는 나이를 서너 살 어리게 속이고 80세에 창업하는 여성으로 나온다. 무엇보다 1937년생인 제인 폰다가 자신과 비슷한 나이의 여성을 연기하고 있어서 놀라웠다. 할리우드에는 배우이자 감독인 클린트 이스트우드(90)만이 아니라 제인 폰다가 있었던 것이다. 그가 맡은 그레이스는 엄청나게 부자인 남자친구나 변호사인 전남편, 잘나가는 자식에게 눈곱만큼도 경제적·육체적으로 기대지 않고 독립적인 삶을 살려고 끊임없이 노력한다. 제인 폰다는 1970년대 미국의 베트남전쟁 개입을 맹렬히 비난해 ‘하노이 제인’으로도 불리는 급진주의자로 지난해 연말에는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기후변화대책을 비판하는 금요시위에 참석해 하루 동안 구치소에 구금돼 화제가 되기도 했다. 제인 폰다는 ‘그레이스 & 프랭키’에서는 중산층 보수주의자를 연기한다. 제인 폰다의 ‘그레이스’를 보고 있자니 여자 노인을 투명인간 취급하는 사회에서 노년의 삶은 어떠해야 하는지, 직장인의 오래된 꿈이 은퇴하면 국내외 휴양지를 전전하며 안락하게 사는 것이겠으나, 이 역시 얼마나 부질없는지를 깨닫는다. 일할 때가 좋을 때다. symun@seoul.co.kr
  • [길섶에서] 사랑 없는 진실/문소영 논설실장

    12월 31일과 1월 1일은 서로 다른 날이 아닌데, 아주 다르다. 한 해의 마지막 날에는 춥고 외롭고 섭섭한 마음도 한이 없지만, 새해 첫날에는 괜히 희망을 품는다. 영화 ‘두 교황’을 봤다. 연말이 다가와 나 혼자 외로웠던 탓이다. 나치 출신이라고 욕을 먹는 럭셔리한 보수주의자이자 독일 출신의 베네딕토 16세와 그의 사임으로 교황직에 오른 ‘빈자들의 아버지’인 아르헨티나 출신 프란치스코 교황이 주인공이었다. 1976년 쿠데타로 군사정권이 들어선 아르헨티나에서 박정희 정권과 전두환 정권을 떠올리기도 했다. 대학 때는 ‘해방신학’으로 남미를 이해했으니 군사정부에 저항하는 시민들의 고단한 삶은 한국이나 아르헨티나나 비슷해 보였다. 50년 넘게 진리를 찾았던 두 교황이 세속적 문제에서 품었던 질투와 선망, 미움과 배제의 마음을 고해성사 하는 것을 보면서 나의 어리석움을 용서해 주기로 했다. 50대 초반에 여전히 망설이고 갈등하는 이유는 사람이 모자라서 그런 것은 아닌 것이다. 무엇보다 “진실은 중요하지만, 사랑 없는 진실은 견딜 수 없다. 그걸 기억해야 한다”는 발언에 따라 새해에는 너그럽게 살기로 했다. 나와 다른 사람을 20대부터 이미 충분히 미워했다. symun@seoul.co.kr
  • [문소영 칼럼] 검찰과 경찰의 압수수색은 다른가

    [문소영 칼럼] 검찰과 경찰의 압수수색은 다른가

    타이밍이 나쁜데…. 지난해 3월 21일 당시 김기현 울산시장의 비서실을 울산경찰청이 압수수색한다는 기사가 떴을 때 떠오른 생각이었다. 게다가 이날은 자유한국당이 6월 지방선거에 출마할 울산시장 후보를 발표하는 날이었다. 김 시장의 비서실장이 비리에 연루됐다는 의혹을 수사하더라도 정치적으로 오해받기 딱 좋은 시점이었다. 현재 언론은 ‘김기현 울산시장 수사´라고 쓰고 있지만, 정확한 표현은 ‘김기현 울산시장 측근 수사’다. 2018년 3월 경찰은 건설비리 의혹으로 김 시장의 비서실장과 건설국장, 김 시장의 동생에 대해 압수수색을 했다. 이것이 1년 8개월 뒤에 ‘청와대 하명수사 의혹´ 사건이 돼 돌아왔다. 현직인 김 시장을 날리고 대통령의 친구를 울산시장에 당선시키기 위해 당시 백원우 청와대 민정비서관이 황운하 울산경찰청장을 내세워 선거 개입 음모를 짰다는 것이다. 백 전 민정비서관은 첩보를 반부패비서관에게 넘겼을 뿐이라고 설명했다. 당연한 일처리이지만, 검찰수사로 밝힐 부분이다. 다만 이 첩보가 현직 울산시장의 비서실을 압색하는 근거가 됐으니 청와대가 음모에 개입한 것이라고 직선으로 연결짓는다면 지나치게 성급한 결론이 아닌가 싶다. 일부 언론은 반부패비서관이 아니라 민정비서관에게 갔으니 문제가 있다는 식의 해석도 하던데 동의할 수 없다. 정보는 원래 힘 있는 쪽에 몰리게 돼 있다. 대표적인 것이 각 부처의 민원들이 ‘청와대 청원’에 쏠리는 것과 비슷하다. 다만 ‘노무현 논두렁 시계 사건’을 통해 권력이 끝나면 무슨 일이 일어날지 학습했을 재선의원인 백 전 비서관이 무리수를 두었을지는 생각해 볼 문제다. 타이밍이 최악인데…라고 생각한 일도 있다. 지난 8월 29일 검찰이 조국 관련 의혹 수사를 위해 20여곳에 대해 전격 압수수색을 벌였을 때다. 여야가 조국 후보자에 대한 국회 인사청문회를 9월 2일과 3일 이틀에 걸쳐 열기로 합의한 다음날이었다. 검찰은 법무부 산하의 외청이므로, 민의의 대표기관인 국회의 결정을 손상시켜서는 안 된다는 것이 정치적 상식이다. 최악의 정치적 개입을 했다고 판단했다. 초유의 일이 벌어진 만큼 검찰의 행동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언론도 우왕좌왕했다. 마침 시중에서 ‘조국과 청와대에 면죄부를 주려는 검찰수사’라는 음모론이 힘을 얻으면서, 검찰의 유례없는 이상행동은 묵과됐고, ‘살아 있는 권력에 대한 공정한 수사’를 주문하기에 이르렀다. 검찰의 배짱을 무한대로 키워 준 착오다. 정치사에 나중에 어떻게 기록될지는 모르겠으나, 2019년 8월 29일 검찰의 압색은 선출되지 않은 권력인 ‘검찰의 쿠데타’라고 인식할만하다. 검찰의 이상행동은 9월 6일 국회 인사청문회가 끝나자마자 조국 법무장관 후보자 부인 기소로 재현됐다. 새로운 권력의 등장을 재차 과시한 셈이다. 조국 법무장관의 임명을 반대하던 진영은 검찰이 정의를 세우고 있다며 환호했다. 여론이 이런 ‘삐딱선을 타게’ 된 배경에는 대통령이 다수의 반대에도 ‘불법이 확인되지 않았다’며 조 장관을 임명하고 장관에 취임한 조 장관은 가족들의 검찰 소환을 앞두고 피의사실공표 금지나 포토라인 폐지 등을 강행하려고 시도한 탓이다. 인권보호를 적폐수사 때는 놔두고 왜 조 장관 가족부터 시작하느냐며 역풍이 불었다. 아이러니한 일은 ‘유재수 비리 수사’와 ‘하명수사 의혹 수사’ 등으로 검찰이 문재인 정부를 겨냥한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는데도 ‘윤석열이 청와대를 돕고 있다’는 인식이 여전히 존재한다는 점이다. 검찰 스스로 최고권력임을 과시한 8월의 압수수색에서조차, 우리 사회는 ‘검찰의 정의 구현’으로 인식해 검찰에게 박수를 보냈다. 그렇다면 같은 논리로, 2018년 3월 울산경찰청의 압수수색을 보지 않을 이유가 있나. 검찰수사는 정의이고, 경찰수사는 비정의라고 규정하지 않는다면 말이다. 울산경찰청이 지방선거에 영향을 미친 것이 아닌가 의심한다면 검찰이 ‘청와대 하명수사 논란’을 수사하는 현재 내년 4월 총선에 영향을 미치려는 것이 아닌가 의심해야 마땅하다. 1991년 ‘강기훈 유서대필 조작 사건’이나 2013년 ‘서울시 공무원 간첩조작 사건’ 등을 생산하던 검찰이, 2019년 현재는 정의를 담당하는 행정부의 외청이라고 굳게 믿는 시민이 적지 않다. 검찰은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법안의 국회 통과를 막기 위해 고의로 정부에 흠집을 내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수사 결과로 보여 주길 바란다.
  • [길섶에서] 좋은 기사가 필요하다/문소영 논설실장

    언제부터인가 일간지들은 이른바 좋은 기사, ‘칭찬합시다’류의 ‘미담 기사’를 보도하기를 꺼린다. 초등학교 시절에는 읽을거리가 부족해 휘발유 냄새가 물씬한 신문을 기웃거렸는데, 그때는 사회면에 미담 박스기사들이 있었다. 아무개가 무슨 선행을 베풀었다는 기사를 읽으면 어린 마음에도 내가 마치 좋은 일을 한 듯 마음에 온기를 품게 됐다. 신문사에 와 보니, 한가하게 무슨 칭찬합시다냐는 비아냥을 받았다. 정치나 사회에 온갖 부정부패가 판을 치고 있으니, 언론은 권력의 감시자로서 문제를 파헤치고 비판하고 현실을 개선하는 일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것이다. ‘까는 기사’와 ‘빨아주는 기사’로 나누고 우리는 까는 기사만 열심히 쓰고 있었다. 돌아보면 칭찬합시다류의 훈훈한 기사는 최근 장기 휴간에 들어갈 뻔한 ‘샘터’와 같은 월간지를 통해서만 읽을 수 있었다. 신문사밥을 30년 가까이 먹은 요즘처럼 신문 읽기가 괴로운 시절이 없다. 신문에서 마음을 환하게 밝혀줄 기사 한 줄이 없다고 느껴질 때가 있다. 인디언 전설에 인간의 마음에서 좋은 늑대와 나쁜 늑대가 싸우는데, 좋은 늑대가 이기려면 희망과 겸손, 인내, 친절, 아량 등을 먹이로 줘야 한다고 했다. 언론이 우리 사회의 좋은 늑대가 돼야 하는데, 생각한다. symun@seoul.co.kr
  • [길섶에서] 용정(龍井)과 룽징/문소영 논설실장

    용정(龍井)은 용의 우물, 보통명사 같은 지명이다. 박경리의 대하소설 ‘토지’에 나오는 간도의 마을로만 알고 있었다. 중국 녹차 중에 항저우의 ‘룽징’이 유명하던데, 용정의 중국식 발음이 그 룽징이었다. 지난주 가족여행으로 남송의 수도였던 고도시 항저우에 갔다가 룽징에도 가 봤다. 택시에서 막 내리자마자 소란스럽게 사람들이 두레박으로 우물물을 긷는 것이 보였다. 가까이 가 보니 길가에 대리석으로 울타리를 친 낮은 우물이다. 송나라 때부터 유래한 용정이란다. 우물 입구는 좁았고 2~3미터는 너끈한 깊이에 우물이 찰랑거렸다. 우물쭈물하는데, 회색 후드티를 입은 여자분이 홀연히 나타나 우리에게 두레박을 내밀었다. 택시 기사의 전언이 떠올랐다. 용정에서 남의 두레박을 빌려 물을 길으면, 그 두레박의 주인집으로 따라가 차 대접을 받고, 그 주인에게 작은 사례를 하고 돌아오는 ‘관례’가 있다고 했다. 그러면 장수하고 복도 받는다는 것이다. 김이 올라오는 두레박 우물물로 손을 닦았다. 그리고 회색 후드티 여성을 따라 좁은 골목을 거쳐 언덕배기 집으로 올라갔다. 올해 새로 거둔 룽징 찻잎으로 만든 차는 향기로웠다. 호텔로 돌아오는 길에 뭔가에 홀린 듯해 룽징 차통을 쓰다듬어 보았다. symun@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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