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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소영
    2025-0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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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구려 벽화 속 사행상철기 출토

    고구려 벽화 속 사행상철기 출토

    문화재청은 고구려 고분벽화에서만 볼 수 있었던 말 안장 뒷부분에 고정해 장식했던 ‘사행상철기’(蛇行狀鐵器)로 추정되는 철기가 경기 연천군 왕징면 무등리 2보루에서 출토됐다고 31일 밝혔다. 고구려 쌍영총 고분벽화에는 사행상철기 말단에 휘날리는 깃발을 단 모습이 표현돼 있다. 이 철기는 중국 지안 환도산성 궁전지에서 용도 미상의 철기로 일부분이 보고된 적은 있으나 지금까지 중국이나 북한에서도 이처럼 완전한 유물이 발견된 적은 없었다. 이 지역을 3차 발굴하고 있는 서울대 박물관은 “유물을 수습한 결과 철기의 일부분에 붉은 안료를 입힌 것이 확인돼 고구려 철기 연구에 중요한 자료가 될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지난해 4월 4일부터 7월 4일까지 연천 무등리 2보루 2차 발굴조사 때는 고구려 장수의 갑옷이 출토됐고, 현재 국립문화재연구소에서 보존처리 중이다. 문소영기자 symun@seoul.co.kr
  • 창덕궁 주합루·연경당 보물 된다

    문화재청은 30일 서울 창덕궁(昌德宮)의 주합루(宙合樓)와 연경당(演慶堂)을 보물로 지정 예고했다. 주합루는 어제(御製·임금이 손수 지은 글)와 어필(御筆·임금의 글씨)을 보관할 목적으로 정조 즉위년(1776년) 창덕궁 후원에 세운 정면 5칸, 측면 4칸의 2층 누각이다. 열람실 구실을 한 위층에는 정조가 세손 시절 사용하던 경희궁(慶熙宮) 주합루의 이름을 그대로 쓴 어필이 걸려 있다. 왕실 도서관 격인 아래층 규장각(奎章閣)의 현판은 숙종의 어필이다. 연경당은 효명세자(훗날 익종으로 추존)가 아버지 순조와 순원왕후를 위해 잔치를 베풀려고 순조 27~28년(1827~1828년)에 민간의 사대부가를 모방해 건립한 집이다. 민가 형태를 띠면서도 궁궐의 조영법식과 기술력을 바탕으로 세련되고 품격 있게 지었다. 문소영기자 symun@seoul.co.kr
  • 국립중앙박물관 ‘대한제국과 근대’전

    국립중앙박물관 ‘대한제국과 근대’전

    국립중앙박물관이 상설전시관인 조선실을 ‘대한제국과 근대’라는 주제로 새롭게 단장했다. 조선실 개편의 백미는 올해 2월 등록문화재로 지정된 안중식의 ‘백악춘효’(1915)와 채용신의 ‘운낭자상’(1914), 그리고 서울대 국문학과 이상억 교수가 최근 기증한 ‘이규상 초상화’이다. 전통화법을 유지하면서 서양화의 원근법이나 입체적 묘사법 등 개화의 입김들이 묻어 있다. 우선 백악춘효(白岳春曉)는 여름날의 백악산과 경복궁의 풍경을 그린 대표적인 작품이다. 안중식은 장승업으로부터 전통화법을 계승했지만, 21살이던 1881년 중국에 가 서양화법의 기초를 접했을 것으로 추측된다. 백악춘효는 쌀알 모양의 점을 찍는 전통화법인 ‘미점준법’으로 그렸으니, 이 미점으로 입체감을 나타내려고 했다. 여름 풍경을 그리면서 ‘봄날 새벽’이라고 제목을 붙인 것에 대해 서윤희 학예연구사는 “일제 강점기를 얼른 떨쳐내고 대한제국의 독립을 기원하는 마음을 드러내는 것 아니겠느냐.”고 해석했다. 안중식은 겨울 풍경을 그려 놓고도 역시 ‘백악춘효’라는 제목을 붙여놓아, 학예연구사의 추정을 뒷받침하고 있다. 채용신이 그린 ‘운낭자상’은 최연홍 초상화다. 아기를 안은 여성의 모습이 기독교의 성모자 상을 연상시키고, 아이가 들고 있는 것이 선악과가 아니냐는 분석이 있다. 치마 주름을 선이 아니라 채색 면으로 처리해 서양화처럼 입체감을 강조했다. 그러나 치마 밖으로 살짝 드러낸 버선발 등은 신윤복의 미인도를 연상시키는 전통성을 드러냈다고 평가한다. 운낭자(최연홍)는 평안남도 가산의 관기(官妓)였으나 1811년 홍경래의 난이 일어나자 군수 부자의 시신을 수습해 장사지내고 부상한 군수의 동생을 치료한 공으로 기적(妓籍)에서 빠져나왔다. 이규상(1837~1917)의 초상화는 처음으로 공개된다. 조선의 전통 무관 복장을 한 이규상 초상화의 특이점은 왼쪽 가슴에 고종황제 망육순기념장(1902)과 황태자 가례기념장(1907) 등 기념장을 달고 있다는 것이다. 최소한 이 초상화의 제작시기가 1907년 이후라는 의미다. 또한 전통 초상화와 다르게 얼굴을 묘사할 때 왼쪽보다 오른쪽을 더 밝게 그려 서양화의 명암법을 수용한 것으로 보인다. 다만 좌우 균형을 중시하는 동양초상화의 관례에 따라 명도 차이를 최소화했다. 화문석 문양을 뒤로 갈수록 작게 처리한 것도 서양화의 투시법을 채택한 것이다. 작가 미상이지만, 이당 김은호의 작품으로 추정되고 있다. 전시는 3부로 구성됐다. 1부에선 척화비와 대한제국선포에 따라 거북이 조각된 인장에서 용이 조각된 황제의 인장으로의 변화, 대한제국의 훈장, 세로로 쓴 근대 교과서, 축음기, 사진기, 전화기 등의 신식 문물이 전시된다. 2부는 전통회화가 어떻게 근대회화로 진행하는가를 보여 준다. 3부에선 자유연애 등 도덕관념의 변모와 새로운 세계에 대한 탐구가 가져온 당시 사회의 변화상을 ‘요지경’ 등 딱지본 소설의 표지나 근대사진 등을 통해 살펴볼 수 있다. 59건 61점의 근대 유물이 소개된다. 문소영기자 symun@seoul.co.kr
  • 한국미디어경영학회 ‘스마트 미디어, 스마트 경영’ 세미나

     김도연 한국미디어경영학회장은 25일 서울 중구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스마트 미디어, 스마트 경영’이란 주제로 급변하고 있는 미디어 환경에서 미디어 관련 기업의 효과적인 경영방식을 모색하는 학술세미나를 연다. 세미나에는 주철환 JTBC 상무, 서장원 CJ오쇼핑 상무, 최병환 CJ헬로비전 상무, 정광렬 삼성전자 상무, 문경호 미디컴 본부장, 송민정 KT 경제경영연구소 박사 등 업계 전문가들과 위정현 중앙대, 이문행 수원대, 최용서·신민수·전범수 한양대, 안대용 중앙대, 최혜긍·김성철 고려대 교수 등이 참가해 발제 및 지정토론을 한다. 문소영기자 symun@seoul.co.kr
  • 韓·中 수교 20년… 점점 커지는 외교·안보 갈등 해법은

    중국이 미국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G2로 떠오른 상황에서 한국과 중국은 외교·안보 면에서 어떻게 협력하고 관계를 맺어나가면 좋은가. 한국과 중국은 1992년 수교한 이래 62억 달러에 불과했던 교역규모를 2011년 2409억 달러로 37배나 키웠다. 중국은 한국의 최대 경제 파트너가 됐다. 한국도 비화교권을 제외하면 일본·미국에 이어 중국의 제3의 교역국가가 됐다. 인적교류도 1992년 13만명에서 2011년 641만명으로 49배 성장했다. 이렇게 한·중은 경제적으론 밀접해졌다. 하지만 동아시아지역에서 중국과 미국과의 전략적인 경쟁이 치열해지자 외교·안보 쪽에서 서로 심각한 갈등을 빚고 있다. 이정남 고려대 아세아문제연구소 교수는 지난 25, 26일 동북아역사재단과 고려대 아세아문제연구소가 주최한 ‘한중일 관계의 역사적 성찰과 새로운 지역 협력 질서의 모색’에서 ‘G2시대의 등장과 한·중관계의 딜레마’란 논문을 발표했다. 이 교수는 이날 한국과 중국이 외교·안보상의 인식 차가 양국 갈등의 원인이 되고 있다는 여론조사(2011년 가을 조사)를 발표하고, 해소방안을 소개했다. 2012년은 한중 수교 20년을 기념하는 해이고, 한국·미국·중국의 정권교체기이자 북한의 ‘사회주의 강성대국’ 원년에 해당한다. ●한·중 국민, 상대방 불신 심각 한국인들은 북·중 동맹의 한 축인 중국이 북핵문제, 북한의 무력도발 등에 대해 북한을 지지해 한국의 안보를 위협한다고 평가했다. 중국인들은 미국이 한·미동맹과 미·일동맹 등을 지렛대로 중국을 봉쇄한다고 인식하고 있다. 특히 중국이 G2로 떠오른 2008년 이래로 한·중 사이에 전략적 불신이 강화되고 있다고 평가했다. 구체적 여론조사를 보면 한반도 통일문제에 대하여 한국인들은 중국인이 반대할 것이라는 인식을 비교적 폭넓게 가지고 있다. 한국인들은 44.6%가 ‘미국이 한반도 통일을 지지한다’고 답했지만, ‘중국이 통일을 지지한다’는 응답 비율은 15.5%로 낮았다. 한국인의 59.1%는 ‘중국이 통일을 반대할 것’이라고 답변했다. 하지만 중국인들 스스로는 36.7%가 ‘한반도 통일을 지지한다’고 답했고, 반대한다는 비율은 단지 10.9%였다. 이 교수는 “이런 답변에도 불구하고 한국인들은 중국이 자국의 전략적인 이익을 위하여 한반도 현상유지를 선호하고 통일을 반대한다는 인식을 지니고 있다.”고 분석했다. 남북이 군사적으로 충돌했을 때 한국인은 69.2%가 중국이 북한을 지지할 것으로 인식했다. 하지만 같은 질문에 중국인은 66.4%가 중립을 지킬 것이라고 응답했다. 이와 비슷한 답변으로 ‘중국과 미국에 심각한 갈등이 발생했을 때 누구를 지지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한국인의 62.1%가 중립을 지켜야 한다고 답했다. 문제는 이런 중립적인 답변에도 불구하고 “중국인도 한국인도 모두 상대방을 신뢰하지 않는 반응을 보인다.”고 이 교수는 우려했다. ●동아시아 다자협의체 활성화해야 이 교수는 한·중이 갈등을 해소하고 전략적 신뢰를 강화하기 위해 필요한 몇 가지를 제안했다. 첫째, 중국은 한·미동맹의 강화가 중국의 부상을 억제하고 견제하려는 것이라는 생각을 버려야 하고, 한국도 중국의 이러한 불신을 불식시키고자 적극적으로 노력해야 한다. 둘째, 중국은 통일한국이 동북아의 평화와 번영에 더 적극적으로 기여해 중국에 이로울 수 있다는 인식의 전환을 해야 한다. 셋째, 한국은 중국의 부상이 반드시 한국에 위협이 아니라 기회가 될 수 있다는 점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또한 중·미관계를 안정적으로 관리해 미국이나 중국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상황을 줄여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어 남북협력관계를 강화해 한반도에서의 미국과 중국의 영향력을 상쇄시켜야 한다고 조언했다. 남북갈등이 북·중 동맹의 강화로 이어질 경우 한·미동맹과 대립·갈등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더불어 동아시아 지역에서 3자 형태의 작은 규모의 다자주의 협의체를 활성화할 것을 제안했다. 문소영기자 symun@seoul.co.kr
  • [제20회 공초문학상] “정계에 발 담근 채 상 받으려니 황송하다”

    [제20회 공초문학상] “정계에 발 담근 채 상 받으려니 황송하다”

    “공초처럼 구도자적인 자세로 세속에 물들지 않고 초월적으로 살아가려고 했는데 정치계에 발을 들여놓았다. 그런 상태에서 상을 받으려니까 죄송스럽고 황송하다.” 제20회 공초문학상을 수상하게 된 시인 도종환(58)은 24일 거듭 “기쁘고 송구스럽다.”는 말을 되뇌었다. 19대 국회의원 당선자 신분인 그는 10번째 시집 ‘세시에서 다섯시 사이’에 수록된 ‘나무에 기대어’로 영광의 수상자가 됐다. 등단 20년 이상 된 시인에게 주는 공초문학상은 자본주의의 잣대로 재단하면 소박한 상이다. 그러나 이근배 공초문학상 심사위원이 “작품의 수준뿐만 아니라 문학상 중 유일하게 작가의 인품을 평가한다.”고 했을 만큼 권위 있는 상이다. ●신동엽·정지용·윤동주·백석문학상 등 받아 ‘접시꽃 당신’으로 잘 알려져 있는 도종환은 어지간한 문학상은 거의 받았다. 1990년 신동엽창작상, 2009년 정지용문학상, 2010년 윤동주문학상, 2011년 백석문학상 등이다. 그는 자신의 작품이 한 시대 문학을 맨 앞에서 개척해 나가는 모습을 보여준 것도 아니고 근대문학의 문을 연 문학적 업적이 있는 것도 아니라서 미안하다고 했다. 도종환에게 시는 삶의 길이고 나침반이고 희망이고 살아가는 이유다. 살아가면서 가장 고마운 일은 시를 만났다는 것이고 시를 만나서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시가 있어서 20대 논산훈련소도 견뎠고 교육 민주화 운동으로 교도소에 갔던 30대도 버틸 수 있었다. 40대에 자율신경 실조증에 걸려 산속에서 10년간 두문불출하고 요양할 때도 시 덕분에 삶의 끈을 놓지 않았다고 한다. 어렵고 고통스러운 기간을 헤쳐 나갈 때마다 용기를 준 것은 시였다. 애초 미술가가 꿈이었는데 미대에 갈 수 없게 된 좌절을 시작(詩作)으로 풀어냈단다. 이제 그에게 미술은 ‘10대 때 좋아했던 사람과의 아름답지만 돌아갈 수 없는 사랑’이다. 시와 문학은 도종환 내면의 광기를 분출시키거나 순화시키는 일을 자연스럽게 해왔다. 청년기의 광기가 시를 통해 분출됐고 아내와의 사별을 거치면서 순화됐고 해직 교사가 되면서 다시 분출됐지만 산속에서 요양하던 10년 동안 다시 광기가 가라앉으면서 문학이 익어갔다는 것이다. 4·11 총선을 앞두고 민주통합당의 지역구 공천심사위원이 됐을 때도 정치를 한다는 생각을 못 해 봤다. 흔히 ‘자기가 심사하면서 자기를 끼워 넣느냐.’고 오해할 수 있지만 비례대표 공천심사위원회는 따로 꾸려져 있었으니 파렴치한 일을 한 것은 아니다. 비례대표 공천심사가 끝나갈 무렵 19대 국회에 문화 예술계를 대표할 사람이 없어 영입하고 싶다는 제안이 왔다. 시인이 정치권에 들어가면 ‘최소한 중상이거나 사망’이라 백낙청 서울대 명예교수 등과 상의했다. 황지우 시인이 한국예술종합학교 총장직에서 쫓겨난 일, 2008년 촛불 집회 이후 문화예술위원회가 문인들에게 ‘집회에 참석하지 않겠다.’는 각서를 쓰라고 요구한 일 등 지난 5년간 문화 예술인의 자존심이 구겨질 대로 구겨졌다는 인식이 그가 영입 제안을 받아들인 배경이었다. 국회에 들어가 문화계의 파행을 바로잡아야겠다고 생각한 것이다. 또한 시나리오 작가가 굶어 죽는 등 창작 예술인들의 생계가 어렵고 보험 혜택도 받지 못하는 복지의 사각지대도 없애고 싶었다. 정치에 참여했던 시인은 유정회 국회의원을 한 김춘수와 양성우 한국간행물윤리위원장에 이어 세 번째다. 도종환은 “험난한 판에 들어가도 품격을 잃지 않는 국회의원, 사유의 품격과 언어의 품격, 글의 품격을 잃지 않는 국회의원이 되겠다.”고 강조했다. “멕시코 시인 옥타비오 파스는 ‘시인은 언어에 봉사하는 자’라고 했다. 언어의 존재를 확연하게 드러내 주고 언어의 기능을 회복시켜 주는 사람이 시인이다. 국회의원은 국민에게 봉사하는 자라고 생각한다. 국민의 존재를 확연하게 드러내 주고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정치를 하는 사람이다. 시인으로서 언어에 봉사하듯 국회의원으로서 국민에게 봉사하겠다. 퇴행했던 민주주의를 제자리에 돌려놓고 임기가 끝나면 시인으로 돌아오겠다. 공초처럼 인생의 후반기를 초연하게 살겠다.”고 다짐했다. ●수상일과 상임위 구성일 겹쳐… 그의 선택은? 이근배 공초문학상 심사위원은 “도종환 시인이 정치에 참여함으로써 행여 창작 활동을 소홀히 하게 되는 것 아닌가 하고 수상을 걱정했지만 임헌영 선생 등이 도종환 시인의 성품으로 보건대 그럴 리 없다고 단호하게 말했다.”고 밝혔다. 이런 평가처럼 도종환은 “올여름에 산문집과 월북 시인 오장환의 시 해설서 등 2권을 내놓는다.”면서 “국회의원이 돼도 시인으로서 역할을 계속하겠다.”고 약속했다. 시인과 국회의원을 병행하려는 그에게 첫 시련은 6월 7일 공초문학상 수상식이다. 국회가 첫 상임위 구성을 하는 날로 반드시 참석해야 하는데 공초문학상은 수상식, 성묘 등 종일 행사가 이어져 국회에 갈 수 없다. 6월 7일 그는 어떤 선택을 할까? 문소영기자 symun@seoul.co.kr ■ 도종환 시인은… ▲1954년 충북 청주 출생 ▲충북대학교 국어교육학과 ▲1984년 동인지 분단시대 ‘고두미 마을에서’로 등단 ▲한국작가회의 사무총장을 지냄 ▲주요 수상:신동엽창작상(1990), 정지용문학상(2009), 윤동주상 (2010), 백석문학상(2011) 등 ▲주요 시집:‘고두미 마을에서’ ‘접시꽃 당신’ ‘슬픔의 뿌리’ ‘해인으로 가는 길’ 등 ▲수상작:‘세시에서 다섯시 사이’ 중 ‘나무에 기대어’
  • [데스크 시각] 아길라와 빅뱅의 역전/문소영 문화부 차장

    [데스크 시각] 아길라와 빅뱅의 역전/문소영 문화부 차장

    2012년 5월에 찾은 필리핀 마닐라에도 여느 동남아 국가들처럼 한류가 도도하게 흐르고 있었다. 10대 후반과 20대 초반의 젊은 여성들이 아이돌 스타 ‘빅뱅’과 ‘샤이니’ 등의 K팝에 열광하는 모습이었고, 50~60대들은 한국 드라마에 빠져 있었다. 이민호 팬클럽뿐만 아니라 고현정 팬클럽도 있었다. 필리핀의 대졸 초임이 한국 돈으로 30만원 수준인데, K팝 콘서트 좌석 중 최고가인 25만원짜리 티켓이 가장 빨리 매진된다고 한다. 황성운 마닐라 한국문화원장은 지난해 신인급의 어느 아이돌 그룹이 마닐라에서 공연했는데 국내에서는 생각도 못할 ‘빅뱅’급의 환호를 받고는 잔뜩 고무돼 귀국했다고 귀띔해 줬다. 태풍이 몰아쳐 휴교령이 내린 날, 공교롭게 한국어 수강신청을 받았는데 그 악천후에도 새벽부터 사람들이 줄을 서서 기다렸다고 한다. 최근 온라인으로 수강신청을 바꾸고 수강생을 200명에서 400명으로 늘렸는데도 2분 만에 신청이 끝난단다. 그들은 K팝을 따라 부르려고 한글을 배운다. 한류 열풍이 상대적으로 덜하다는 필리핀이 이렇단다. 베트남과 태국의 열풍은 더 놀랍다고 했다. 태국의 한 기업 주재원은 최근 원전과 물관리 등 태국의 국책사업 수주를 놓고 한국기업과 유럽의 기업들이 경쟁하고 있는데 ‘한류 프리미엄’을 누리고 있다고 했다. 태국의 한류 열기 덕분에 우리가 가진 기술 이상의 경쟁력을 확보하고 있다는 것이다. 필리핀의 한류를 보면서, 문득 30여년 전 한국에서 유행했던 필리핀 노래가 생각난다. 필리핀의 국민가수 프레디 아길라의 ‘아낙’(Anak)이다. 올해 59세인 아길라가 당시 애절하게 불렀던 아낙은 1978년 한국·일본 등 아시아를 강타했고, 미국에선 빌보드 차트 5위까지 올랐다. 당시 24살에 불과했던 아길라는 통기타 반주에 영어도 아닌 필리핀 공용어 타갈로그어로 노래했다. 한국에서는 이 노래를 시각장애인 가수 이용복이 ‘아들’로 번안해 더 인기를 끌었다. 1960년대 말까지 필리핀은 한국보다 잘살았다. 세계은행 자료를 보면 1960년 필리핀의 국내총생산(GDP)은 67억 달러로 39억 달러였던 한국의 1.8배였다. 그해 1인당 GDP는 필리핀이 257달러, 한국은 155달러였다. 심지어 1961년에는 필리핀이 270달러로 92달러였던 한국의 3배가 됐다. 그 시절에 필리핀 건축기술도 들어왔다. 대표적인 게 미국이 발주하고 필리핀 기술로 지은 광화문의 쌍둥이 건물인 미국 대사관과 전 문화체육관광부 건물이다. 1963년에 지은 장충체육관도 설계는 한국인이 했지만, 시공·감리를 필리핀 건설회사에서 했다. 필리핀은 미국에 앞서 1975년 중국과 수교를 맺었고, 1976년 아세안독트린을 발표해 독자적인 노선을 걸었다. 아무튼, 1960~70년대의 필리핀은 영향력이 있었다. 마닐라의 밤하늘을 보면서 30여년 전 ‘아길라’를 배출했던 필리핀과 ‘빅뱅’을 낳은 한국의 역전에 대해 생각해 본다. 역전의 이유가 무엇일까.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경제와 정치의 상관관계가 먼저 떠오른다. 경제가 몸이라면 정치는 머리다. 몸이 커지는 속도에 맞춰 두뇌 시스템이 커지고 적절하게 기능하지 않으면, 몸은 문제를 일으킬 수밖에 없다. 필리핀의 경제와 문화에 낙후된 정치가 질곡으로 작용한 것은 아니었을까. 존경받는 독립운동가에서 독재자로 전락해 1986년 국외 추방된 마르코스 전 대통령의 가족들을 보면 더욱 그렇게 느껴진다. 독재자 마르코스는 1989년 사망했지만, ‘3000켤레의 구두’로 사치와 허영의 퍼스트레이디로 찍혔던 이멜다 마르코스는 2010년 하원의원에 당선됐고, 그의 아들은 상원의원, 그의 딸은 주지사가 됐다. 한국인들은 ‘어떻게 그럴 수가’하고 경악하겠지만, 그들을 당선시킨 지역은 마르코스 가족의 17세기적 봉건 영지 같다. 지속 가능한 한류를 만들기 위해 정부와 민간에서 갖가지 계책을 내놓고 있다. 중요한 것은 지속 가능한 한류란 선진화된 정치시스템, 정치의식 등이 수반돼야 하지 않을까, 필리핀의 한류를 보며 그렇게 느꼈다. symun@seoul.co.kr
  • ‘스마트 미디어·스마트 경영’ 학술세미나

    김도연 한국미디어경영학회장은 25일 서울 중구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스마트 미디어, 스마트 경영’이란 주제로 급변하고 있는 미디어 환경에서 미디어 관련 기업의 효과적인 경영방식을 모색하는 학술세미나를 연다. 세미나에는 주철환 JTBC 상무, 서장원 CJ오쇼핑 상무, 최병환 CJ헬로비전 상무, 정광렬 삼성전자 상무, 문경호 미디컴 본부장, 송민정 KT 경제경영연구소 박사 등 업계 전문가들과 위정현·안대용 중앙대, 이문행 수원대, 최용서·신민수·전범수 한양대, 최혜긍·김성철 고려대 교수 등이 참가해 발제 및 지정토론을 한다. 문소영기자 symun@seoul.co.kr
  • 삼국시대 ‘배 모양 토기’ 출토

    삼국시대 ‘배 모양 토기’ 출토

    경남 김해 진영 2지구 택지개발사업 부지에서 삼국시대에 제작된 ‘배 모양 토기’(舟形土器:주형토기) 1점이 출토됐다고 문화재청이 23일 밝혔다. 출토 상태가 양호하고 완형에 가깝다. 이 토기는 말 형상(馬形:마형)과 오리 형상(鴨形:압형) 토기 등과 함께 고분에 부장되는, 삼국시대에 만들어진 특이한 모양의 이형토기(異形土器)로 죽은 사람의 영혼을 저승으로 운반하는 신앙의 표현물이다. 또한 무덤 속에 부장했던 의식용 명기(明器:장사 지낼 때 죽은 사람과 함께 묻는 기물)의 하나로 이해되고 있다. 한국문화재보호재단 문화재조사연구단은 “출토된 주형토기는 가야 지역 고분에서 확인된 예가 없는 중요한 유물로 고분 조성 시기인 5세기경 가야의 선박을 연구하는 데 귀중한 자료가 될 것”으로 평가했다. 현재 출토지가 확인된 주형토기는 금령총에서 출토된 2점과 달성 평촌리 유적에서 출토된 1점 등이 있다. 이 외에 명확한 출토지는 알 수 없으나 보물 제555호 도기 배 모양 명기가 잘 알려져 있다. 앞서 김해 진영 2지구에서는 청동기 시대부터 조선 시대까지의 유구 250여 기와 1500여 점의 유물이 출토됐다. 문소영기자 symun@seoul.co.kr
  • “숭례문 지붕 설계 부적절… 화재 진화에 취약”

    숭례문 복원과정에서 기와지붕 공사가 전통방식으로 설계되지 않아 화재에 취약하고 원형이 훼손될 우려가 있는 것으로 지적됐다. 감사원은 문화재청과 문화재 보수 국고보조금을 많이 받는 기관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문화재 보수 및 정비사업 집행 실태’ 결과를 22일 공개했다. 감사원은 문화재청이 숭례문의 기와지붕을 전통방식대로 설계하지 않아 화재 재발 시 진화가 어려울 것으로 지적했다. 감사원은 “숭례문 기와지붕 아래 두께 15㎝로 시공하는 강회다짐층 때문에 통풍과 공기순환이 안 돼 화재 시 불길을 잡기가 힘들 것”이라고 우려했다. 강회다짐층은 기와를 얹기 전 목조 지붕에 보토를 하고 그 위에 누수를 막기 위해 강회를 발라 넣는 것. 전통 한옥지붕은 강회다짐층을 두지 않고 서까래 위에 보토를 30㎝ 이상 두껍게 말려 시공한 뒤 기와을 잇는다. 문화재청은 설계과정에서 강회다짐층이 숭례문의 목부재 부식을 심화시킬 수 있다는 자문 의견이 있었는데도 이를 무시했다. 이에 감사원은 통풍과 수분 배출이 원활한 전통 보토방식으로 지붕 시공을 재검토할 것을 문화재청에 권고했다. 또 문화재청이 뒷짐만 지고 있는 탓에 전통기와 생산도 머지않아 맥이 끊길 위기에 놓였다. 1980년 이후 보수공사를 했던 숭례문(1997년), 경복궁 근정전(2003년), 광화문(2011년) 등이 모두 공장제 기와로 대체됨으로써 전통기와는 단 한 사람의 기능보유자로 명맥만 유지되고 있다. 문화재청은 전통기와가 자연스럽고 고풍스럽지만 품질이 균일하지 않다는 이유로 문화재 보수 공사에 전통기와보다 2배 정도 무거운 공장제 기와를 쓰고 있다. 감사원은 “현재 숭례문 복원 공사에는 전통기와를 쓰고 있으나, 문화재청이 이후 중요 국가지정문화재 수리·복원 시 전통기와를 사용하기 위한 검토는 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한편 강회다짐층 시공과 관련, 문화재청은 “강회다짐층 시공은 1960년대부터 있어 왔고 1994년 개정된 문화재수리 표준시방서에도 규정된 것”이라면서 “지붕공사는 다음 달 중순 착수할 예정으로, 숭례문복구자문단의 결정에 따라 보토에 강회를 섞어 다진 후 기와를 올리는 방법으로 공사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황수정·문소영기자 sjh@seoul.co.kr
  • 해외유출 문화재 15만점 민간 환수재단 7월 설립

    문화재청은 해외에 흩어져 있는 문화재 15만여점을 환수·활용하기 위한 민간 전담기구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을 올해 7월 중으로 설립한다고 22일 밝혔다. 이 기구는 민간 분야의 자율성을 극대화해 도난·불법 거래가 아닌 문화재에 대해 정부 차원에서 수행하기 어려운 환수 활동을 적극적으로 펼칠 예정이다. 현재 해외에 산재한 우리 문화재를 나라별로 보면 일본이 가장 많은 6만 6295건, 미국 4만 2293건, 독일 1만 792건, 중국 8225건 순으로 통틀어 15만점이다. 국립문화재연구소의 국외문화재 목록조사 결과 확인된 수치로 전년도 14만 560점보다 8000여점 늘어났다. 주로 개화기와 일제강점기, 한국전쟁, 그리고 문화재의 해외반출을 금한 문화재보호법이 제정된 1962년 이전에 빠져나간 유물이다. 러시아는 4172점, 덴마크도 1278점의 우리 문화재를 가지고 있다. 문제는 해외에 있는 문화재 중 환수·반환을 요구하기 어려운 사례도 적지 않다는 것이다. 이를테면 국내에 열몇 점밖에 없는 고려 불화는 대체로 숭유억불 정책을 쓴 조선시대에 일본으로 건너간 것이 많아 불법유출에 따른 환수대상이라고 보기 어렵다. 최근 세계적인 흐름은 각국들이 우호적인 관계 형성을 위해 대표적인 문화재 등을 돌려주고 있다. 문소영기자 symun@seoul.co.kr
  • 제23회 김달진문학상 수상자 2인 인터뷰

    제23회 김달진문학상 수상자 2인 인터뷰

    23회를 맞은 2012년 김달진문학상은 40대 시인과 평론가에게 돌아갔다. ‘김달진문학상 운영위원회’와 서울신문이 공동 주최하는 김달진 문학상 시 부문에 장석남(47·한양여대 교수)의 시집 ‘고요는 도망가지 말아라’가, 평론 부문에는 이경수(44· 중앙대 교수)의 ‘춤추는 그림자’가 각각 수상작으로 뽑혔다. 100세를 살아간다는 21세기에 청춘의 나이인 40대에 가볍지 않고 묵직한 걸음으로 작품 활동을 해온 작가들을 만나봤다. 김달진 문학상은 시인이며 한학자였던 월하(月下) 김달진(1907~1989)을 기리고자 1990년 제정된 문학상으로, 시사랑문화인협의회(회장 최동호 고려대 교수)가 주최하고, 창원시와 서울신문사가 후원한다. 인간의 고유한 얼에 대한 믿음에 바탕을 둔 정신주의를 성공적으로 구현한 시인과 평론가를 선정해 매년 시상하고 있다. 김달진문학상 수상 축하 시낭송회는 역대 수상자들이 함께 모여 6월 5일 오후 6시 고려대 백주년 기념관 국제회의실에서 열린다. 시 부문 수상 장석남 교수 어려운 시대 서정시 더 필요 균형 이루는 삶 자세로 詩 써 “시인은 끊임없이 자신과 자기 마음을 들여다보고, 반성하는 사람이다.” 제23회 김달진문학상 시 부문 수상자인 장석남(47) 한양여대 교수는 22일 자신에 대해 그렇게 소개했다. 이어 “사회적 위치에서, 우주적 위치에서, 자연의 위치에서도 과연 잘살고 있는지 스스로에게 의문을 갖는 사람이고, 그 의문을 한시도 놓지 않고 지켜보면서 의문의 풍경을 시로 만드는 사람이다.”라고 덧붙였다. 마치 화두를 들고 평생을 정진하는 승려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은 듯하다. 시인 오세영이 심사평에서 “다수의 시류가 아니라 소수의 개성 혹은 정체성이 중요하다.”고 평가할 만했다. 장석남은 김달진문학상 수상 이전에 김수영문학상(1992)과 현대문학상(1999), 미당문학상(2010)을 수상했다. 이번 수상이 그에게는 무슨 의미가 있을까? 그는 “앞의 문학상들은 어둠침침한 회랑에 있는데 밝고 화창한 날이 찾아온 것처럼 시인으로서 고비를 넘길 수 있게 하는 힘이 됐다.”면서 “그러나 김달진문학상은 조용히 다가와서 어깨를 툭 치며 눈을 끔쩍끔쩍하는 듯한 격려로 이전과 아주 다르게 그윽하고 편안한 기분이다.”고 했다. 그는 “만나 뵌 적은 없지만 일생을 숨어살면서 자족하고, 부귀나 명예 등 욕망을 좇지 않았던 월하 선생의 치열했을 삶을 동경해왔다.”고 했다. 특히 김달진의 ‘산거일기’는 머리맡의 솔바람소리 같았다. ‘산거’라는 연작시가 나온 배경이다. 자신이 쓰는 시와 선생의 삶과 문학이 비슷해서 이번 수상이 아주 편안하고 기분 좋다는 것이다. 그는 “시가 세속적 욕망을 표출하는 것은 어불성설이고, 욕망을 이길 수는 없지만 욕망을 들여다보면서 균형을 이루면서 살아가려는 마음가짐으로 쓰는 것”이라고 했다. 전업작가에서 교수가 된 지는 7년이 됐다. 모순덩어리 교육은 대학교라고 해서 없지 않아 갈등이 존재한단다. 그는 연간 10편의 마음에 드는 시를 쓴다고 했다. 시 관련 잡지도 많고 덕분에 청탁이 많은데, 계속 거절하면 잘난 척한다고 하니 작품을 안 쓸 수도 없단다. 연간 10편이면 50~60편의 시가 들어가는 시집은 5~6년만에 나오게 된다. 장석남의 생각으론 그런 간격이 정직한 시집들이 나오는 주기다. 서정시를 쓰기 어려운 시대에 살면서 서정시를 쓰는 힘은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서정적이지 않은, 어려운 시대일수록 서정시가 더 필요하다. 속도 때문에 치어서 죽고, 병 걸려서 죽고 하는데, 왜 그런지? 왜 이렇게 살아야 하는지 더 절실하게 알아야 하지 않겠느냐?” 문소영기자 symun@seoul.co.kr 평론 부문 수상 이경수 교수 비평적 거리·균형감각 유지 덜 말하며 효과적 쓰기 모색 “2~3년 전에 나왔어야 할 평론집 ‘춤추는 그림자’가 올해 나와서, 제때 이별하지 못한 연인을 보듯 불편하고 부담스러운 마음이었는데, 수상까지 하고 나니 마음이 더 복잡하다.” 제23회 김달진문학상 평론부문 수상자 이경수(44) 중앙대 교수는 21일 수상소감으로 기쁨을 표현하지 않았다. 시원하지도, 즐겁지도 않다. 시종 차분하고 망설이는 어투가 그를 싸고돌았다. 문학평론은 ‘문학을 위한 이타적인 글쓰기’인데, 문학이 힘을 잃고 영향력이 축소되고 있고, 그에 따라 문학과 독자의 매개자인 평론의 역할과 자리도 축소되고 있기 때문이다. 요즘은 작가들이 ‘콘서트’란 형식으로 독자들과 직접 만나고 있기 때문에, 더욱 문학평론가는 할 일이 사라지고 있다고 느낀다. 이 교수는 “문학비평을 통해 세상하고 소통해나갔던 나로서는 이 시대 문학비평의 역할이 무엇인지, 어떻게 글쓰기를 해가야 할지 더욱 고민하게 된다.”고 했다. 그는 미혼의 여성으로, 대한민국에서 버티고 살기 쉽지 않다고 했다. 그래서 그간 그의 평론은 여성으로서의 내 자리는 어디인지, 비평가로서 내 자리는 어디인지, 문학의 자리인가 어디인지를 찾아가면서 써내려간 평론들이라고 했다. 문흥술 서울여대 교수는 심사평에서 “이경수의 비평은 무겁고 둔중하다. 수사적 현란함을 펼치는 최근의 비평 경향과 거리가 있고, 문학과 삶과 사회라는 세 꼭짓점이 갖는 긴장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고 했는데, 그런 평가가 꼭 맞는 것 같다. 그는 “권력의 자장에 포섭되는 순간 개개의 목소리는 힘을 잃어버린다는 생각에 비평적 거리와 균형적 감각을 놓치지 않으려고 애썼다.”면서 “어디에도 매이거나 포섭되지 않는 외로움의 자리를 지키고 견디며 글을 쓰고 싶다.”고 했다. 2008년 암수술을 하고 투병을 하면서 연간 최대 34편까지 쓰던 평론을 뚝 끊었었다. 1999년 등단한 이후로 10여 년 열정적으로, 의욕적으로 써내려갔던 평론이었다. 문단에서 성실하다고 평가받은 것은 세상과 소통하겠다는 열망 탓이었다. 그래서 병이 나았나 하는 생각도 한단다. 지난해부터 몸을 추스르며 다시 평론가로 돌아온 그는, 덜 말하면서 효과적인 글쓰기의 방안을 찾고 있다고 했다. 그는 그래서 평론에 ‘가난하고 외롭고 낮고 쓸쓸한’이라고 붙였다. 이것은 백석의 시 ‘가난하고 외롭고 높고 쓸쓸한’에서 따온 것으로, 시는 ‘높은 자리’이지만, 평론은 소외된 ‘낮은 자리’에 있기를 희망하며 붙인 것이다. “전 지구적 자본주의 시대에 문학이 힘을 잃고 있지만, 문학과 문학비평이 자본주의적 폐해를 일부 씻어줄 것으로 믿는다.”고 했다. 문소영기자 symun@seoul.co.kr
  • 신라 지배층 금동관식 등 유물 출토

    신라 지배층 금동관식 등 유물 출토

    경주 쪽샘지구 신라고분에서 금동관식(金銅冠飾) 등 유물이 다량 출토됐다고 문화재청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가 21일 밝혔다. 이 고분은 봉분의 지름이 23m에 이르는 중형분으로 삼국시대 신라 지배계층이 사용한 돌무지덧널무덤(積石木槨墳·시신과 부장품을 넣어둔 나무곽 외부에 돌을 쌓아올린 후 흙으로 덮어 만든 무덤)이다. 무덤의 주인공은 안치된 관과 부장품을 담은 궤(櫃)를 넣어둔 주곽(主槨·주인공이 안치된 관을 넣어둔 중심 곽), 각종 부장품을 넣어둔 부곽(副槨)과 함께 일렬로 배치됐다. 주곽에서는 순금제 귀걸이, 유리구슬로 된 가슴장식, 은제 허리띠 장식, 삼엽(三葉)·삼루(三累·좌우와 상부에 상호 연결된 세 개의 고리)가 붙은 장식대도(裝飾大刀) 등이 출토됐다. 특히 주목할 만한 것은 지금까지 신라고분에서 백화수피제관모(白樺樹皮製冠帽·자작나무 껍질로 만들어 지배계층의 위계를 상징하는 모자)가 출토된 적은 있지만 백화수피제관모에 금동장식이 부착되고 여기에 새날개모양의 금동제·은제의 관식과 정수리 부분의 입식(立飾·높이 세워 꽂는 장식), 뒤꽂이와 같은 후입식(後立飾)이 모두 갖추어진 모자 형태의 관이 확인되기는 처음이다. 경주 쪽샘지구 신라고분은 구조와 출토유물에서 황남대총(皇南大塚), 천마총(天馬塚), 금관총(金冠塚)과 같은 대형무덤들과 비교할 수 있어 5세기 후반부터 6세기 초 무렵의 신라사 연구에 중요한 자료를 제공해 줄 것으로 기대된다고 연구소 측은 밝혔다. 22일 오후 2시 경북 경주시 황오동 삼국시대 고분에서 현장설명회가 있다. 문소영기자 symun@seoul.co.kr
  • 청년이여, 고래처럼 꿈꾸시게 죽도록 사랑하시게

    청년이여, 고래처럼 꿈꾸시게 죽도록 사랑하시게

    시는 물론 소설, 수필, 평론 등 60편의 책을 내 ‘전방위 작가’로 손꼽히는 시인 장석주(58)가 어른을 위한 동화책을 처음으로 펴냈다. 독도 주변에 사는 토종 고래인 상괭이 ‘외뿔이’를 주인공으로 내세워 상실의 아픔과 성장의 다양한 고통을 견디며 꿈을 찾아가는 이야기를 담은 ‘독도 고래’(문학의문학 펴냄). ‘외뿔이’는 부모를 잃고 부당하게 학교에서 쫓겨나는 고통을 겪지만 ‘꿈’을 마음에 새기고 먼바다로 나아간다. 장석주는 “독자층을 우리 아들 세대인 20대로 봤다.”면서 “꿈을 잃어버린 아들 세대를 바라보기 안쓰러워서 꿈의 소중함이라는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었다.”고 했다. 책 속에서 그는 ‘네 꿈이 무엇인지 알고 그 꿈이 아니면 죽을 것처럼 그것을 사랑하라.’고 강력하게 말하고 있다. 장석주는 “20대에게 현실은 뛰어넘지 못할 ‘벽’처럼 느껴지겠지만 대기업 취직이나 안정된 직장만 고집하지 않고 눈을 돌리면 길이 아주 많다.”면서 “실용적인 조언이 아닌 원로들의 경륜에서 우러나오는 지혜가 필요한 때”라고 말했다. 동화의 시작은 6~7년 전 독도를 방문했을 때다. 장석주는 “독도는 생각한 것보다는 좀 작고 초라해 보였다. 그 위로 괭이갈매기 수천 마리가 손에 잡힐 듯이 떠 있었는데 그 풍경이 마치 극사실주의 그림처럼 보이면서 마음이 울컥했다. ‘독도를 배경으로 한 아름다운 이야기를 써 보자’는 마음을 가졌다.”고 말했다. 상괭이가 고래 중에서는 몸집이 작은 편에 속하는 고래라는 점을 상기하면 독도와 고래가 마치 같은 이미지로 다가올 수도 있겠다. 대강의 줄거리는 이렇다. 외뿔이의 아빠는 ‘바다의 바다’라는 전설의 나라로 떠났다. 엄마와 둘이 살던 외뿔이는 상어 떼에 엄마마저 잃는다. 외뿔이는 대왕고래의 자식으로 안하무인 격인 친구를 혼내줬다는 죄로 고래학교에서도 퇴교당한다. 늙은 갈매기를 친구 삼아 공중 도약을 연습하며 지내던 외뿔이는 ‘꿈 스승’ 흑범고래에게 가르침을 받는다. 흑범고래가 일러준 ‘꿈 법칙의 6단계’를 새기고는 먼 바다로 나간다. 상어 떼의 습격에서 살아남고 고래 세계의 현자들을 만나고 아빠로 짐작되는 전설의 외뿔고래를 대면하기도 한다. 장석주는 “중·고등학교 다닐 때 나는 외톨이에 왕따였는데 그런 경험이 동화 안에 스며들었다.”고 했다. 당시에는 친구들과 어울리지 않고 혼자 지내는 것을 상처로 느끼지 못했는데 무의식 세계에서는 트라우마로 작용한 것 같다고 했다. 외로움을 인간의 본질로 받아들였기 때문이었는데, 최근 만난 고등학교 동창들이 “너는 우리랑 달랐다. 외계인 같았다.”고 해서 다시 한번 외톨이임을 자각했다고 했다. 삽화는 유명 추상화가인 이두식(65)이 그렸는데 “두 번 다시 삽화 작업을 하지 않겠다.”고 할 정도로 작업이 힘들었다고 한다. 화가의 이름값에 맞추려면 원작료 5000만원으로도 해줄까 말까지만 젊은 시절의 인연으로 저렴하게 그려줬다고 한다. 문소영기자 symun@seoul.co.kr
  • “지옥 따로 없어… 오만했던 내가 먼저 변하겠다” [단독]

    “지옥 따로 없어… 오만했던 내가 먼저 변하겠다” [단독]

    “‘우리 스님은 과격하고 무식하게 말하지만, 정직하고 청렴하고 한 점 티끌도 없을 것이라고 믿었던’ 신실한 신도들이 느낄 상처와 절망을 생각하면 지옥이 따로 없다.” 명진(62) 스님은 17일 서울 한남동 남산맨션의 사무실에서 칩거하며 “승복을 입고 세상에 나갈 엄두가 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최근 ‘승려 도박 동영상’ 사건과 연계돼 명진 스님과 총무원장 자승 스님 등 승려 4명의 2001년 룸살롱 출입 사건이 재차 주목 받게 되자 큰 고통을 받고 있다는 명진 스님. 당시 사건으로 종회 부의장을 사퇴했고, 법회나 언론 등을 통해 여러 차례 밝히고 반성했지만, 그를 따르는 신도 중 30~40%는 이번에 사건을 알게 돼 충격을 받고 있다는 것이다. 명진 스님은 “페이스북의 19살 친구가 스님을 존경했는데, 기대가 무너졌다고 써놓은 글을 보고, 기대와 희망을 무너뜨린 것은 죄”라고 했다. 승려 도박을 검찰에 고발한 성호 스님과 ‘한편’이라는 시각에 대해 “일면식이 없다.”면서 “성호 스님이 지난 3월 룸살롱 문제와 관련해 참회록을 보내와 다 끝난 줄 알았다.”고 했다. 스님들의 도박·음주·성매매와 같은 파계에 대해 명진 스님은 “일부 스님들의 문제일 뿐”이라면서도 “한국 불교가 선종으로 가면서 일반적으로 계율을 무시하는 경향이 있었고, 한국사회가 자본주의화되면서 스님들도 자본에 물들었다.”고 지적했다. 부처님 시대의 계율에 따르면 음악을 들어서도 안 되고, 여자와 단독으로 만나서도 안 되고, 돈을 수중에 지녀서도 안 된다고 했다. 9세기경 중국 화엄종의 청량 국사가 계율을 지키려고 늙은 어머니가 찾아와도 병풍을 치고 만난 사례를 들었다. 이런 형식적 계율의 엄수는 당대에 계율을 잘 지키지 않는 풍토를 개선하려는 것이었다고 한다. 명진 스님은 “다만, 복잡해진 현대사회에 맞는 새로운 계율이 필요하지 않은지 불교계가 고민할 시점에도 왔다.”고 제안했다. 자승 총무원장을 둘러싼 권력투쟁의 양상처럼 보이는 현 사태에 대해 명진 스님은 “나에게도 책임이 있다.”고 말했다. 총무원장에 집중된 권력을 분산해, 현재의 ‘총무원-종회 권력분립형’ 체제는 1994년 한국 불교계의 진보·개혁적 사람들이 승려대회를 통해 종헌·종법을 고쳐서 나온 것이다. 당시 명진 스님은 “개혁에 실패하면, 내가 중노릇을 그만하겠다.”라고 선언한 뒤 밀어붙여 당시 ‘서의현 총무원장 3선 저지’에 성공했다. 차기 총무원장은 명진 스님의 은사인 탄성 스님이었다. 그러나 그 개혁으로 “서의현 총무원장은 사라졌지만, 계파 보스를 중심으로 한 ‘150명의 작은 서의현’들이 등장해 현재에 이르고 있다”고 지적했다. 과거에는 총무원장과 몇몇 비리스님을 쫓아내면 됐지만, 이제는 종무행정에 발을 딛는 스님들이 대부분 비리와 부패에 모두 엮이게 돼 문제의 해결이 더 어려워졌다. 다시 종헌·종법의 개정을 통한 개혁이 필요하다고 했다. 명진 스님은 “28일 초파일을 월악산 보광사에서 쇤 뒤 문경 봉암사에서 하안거를 하며 잘난 척하고 깝죽대고 오만했던 나를 다스리겠다.”면서 “이제 MB 정권 바꾸는 것보다 나를 변화시키는 것이 더 시급하고, 변하지 않으면 돌아오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문소영기자 symun@seoul.co.kr
  • [도박 이어 성매수 의혹까지…불교계 진실게임] “추문 자료 있어… 양심선언하라”

    [도박 이어 성매수 의혹까지…불교계 진실게임] “추문 자료 있어… 양심선언하라”

    “룸살롱을 출입하고 도박을 한 고위직 스님들에 대한 자료를 가지고 있지만, 의혹을 받는 분들이 직접 나서서 양심선언할 것으로 믿고 기다리고 있다.” 김영국(53) 전 지관 총무원장 종책특보는 16일 “‘스님 도박 동영상’과 같은 시각적 증거는 없지만 상당한 수준의 자료를 확보하고 있다.”며 이렇게 말했다. 조만간 해당 자료를 언론에 공개할 것이냐는 질문에 그는 “고백할 일이 있는 분들은 고백해 달라.”며 확답을 회피했다. 김 전 종책특보는 “자승 총무원장이 룸살롱에 출입했다는 소문이 오래전부터 있었는데, 직접 해명을 하지 않으니 온갖 추문으로 확대되고 있다.”면서 “더 이상 침묵하지 말고 자신의 목소리로 ‘룸살롱에 갔다, 또는 가지 않았다’고 답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 전 종책특보는 “명진 스님은 2001년 룸살롱에 갔던 사실을 인정했고, 당시 종회부의장에서도 사퇴했다.”고 상황을 환기시켰다. 11년 전의 해묵은 사건을 꺼내 들고 총무원을 압박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에 “총리·장관 후보자 등이 20~30년 전에 저지른 부동산 투기나 위장전입, 탈세 등이 문제가 돼 임명에서 탈락하기도 하지 않느냐.”면서 “성직자로서 잘못을 저질렀다면 그에 대해 책임을 지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반박했다. 김 전 종책특보는 “자승 총무원장과 지도부를 공격하고자 성호 스님, 명진 스님과 내가 연합해 ‘기획폭로’한 것처럼 알려졌는데 이는 사실이 아니다.”면서 “성호 스님과는 일면식도 없다.”고 했다. 문소영기자 symun@seoul.co.kr
  • 도박 몰카 배경 싸고 설 분분

    조계종 승려 도박 사태를 둘러싼 고소·고발전이 확대 양상을 띠면서 현장을 촬영한 ‘몰래카메라’의 배후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그런 가운데 ‘몰래카메라는 원래 도박 현장을 폭로하기 위한 게 아니었다.’는 당사자의 주장이 제기돼 의혹이 증폭되고 있다. ‘도박 몰카’가 유포되고 일반에 알려진 건 전 총무원장 지관 스님 종책특보를 지낸 김영국씨와 전 금당사 주지 성호 스님을 통해서다. 두 사람은 동영상을 찍은 주체에 대해선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다. “누군가로부터 전달받았다.”(김 전 특보), “사찰 대웅전에서 우연히 발견했다.”(성호 스님). ●동영상 전달 2인 모르쇠 일관 두 사람의 주장과는 달리 불교계에선 온갖 추측이 무성하다. 그런 가운데 몰카에 찍힌 전 조계사 부주지 의연 스님이 15일 페이스북에 “도박이 벌어진 호텔 방은 전 백양사 방장 수산 스님의 49재 전날 원로 스님들이 투숙하려던 방인데 중진 스님들이 대신 들었다.”는 글을 올려 주목된다. 의연 스님은 “어떤 스님과 일반인 세 명이 방을 예약했고 투숙객을 가장해 몰카를 설치했다.”면서도 정작 그들이 누구인지는 모른다고 주장하고 있다. 정황을 종합해 보면 몰카의 배경은 크게 세 가지로 압축된다. ▲수산 스님 입적 후 새 방장·주지 옹립을 둘러싼 백양사 내분과 ▲백양사 사태에 편승한 조계종 다툼 ▲일부에서 조심스럽게 점치는 진보·보수 이념 갈등이다. 이 가운데 백양사 내분이 직접적 배경이라는 사실은 분명해 보인다. ‘몰카의 목적이 백양사 후임 방장·주지와 관련한 원로들 대화 녹취’라는 의연 스님의 주장이 뒷받침한다. ●집행부 인사비리 폭로 소문도 이념 갈등설도 전혀 무관해 보이진 않는다. 도박 현장을 세상에 알린 성호 스님은 ‘조계종단을 지배해 온 진보좌파 실천불교전국승가회를 척결해야 한다.’는 입장을 굽히지 않고 있다. 공교롭게도 도박 당사자인 전 조계사 주지(토진)·부주지(의연)는 모두 실천승가회 소속이다. 가장 관심이 쏠리는 부분은 집행부를 포함한 조계종단 내 권력 다툼이다. 여기에는 명진 스님과 김 전 특보가 끊임없이 거론된다. 명진 스님은 자승 총무원장 당선에 큰 역할을 했으면서도 봉은사 주지 사퇴 등 현 집행부와 대척점에 섰다. 명진 스님과 가까운 것으로 알려진 김 전 특보의 현 집행부에 얽힌 구연도 끼어든다. 몰카를 촬영한 사람은 철저히 베일에 가려져 있다. 그런 가운데 불교계엔 자승 총무원장과 종단 집행부 인사들의 비리가 담긴 메가톤급 폭로가 곧 터질 것이란 소문이 무성하다. 일각에선 그로 인한 총무원장 사퇴와 중앙종회 해산 등 최악의 사태까지 들먹거린다. 김성호 선임기자·문소영기자 kimus@seoul.co.kr
  • “한류의 생명력은 저작권보호에 달렸죠”

    “한류의 생명력은 저작권보호에 달렸죠”

    “해외 한류를 활성화하려면 국내외 저작권 보호가 필수적이다.” 유병한(55) 한국저작권위원회 위원장은 지난 10일 필리핀 마닐라에서 개원한 마닐라저작권센터에서 “저작권을 보호하면 나의 일자리와 남의 일자리를 지키고, 더 나아가 새로운 일자리도 창출할 수 있다.”면서 이렇게 말했다. 유 위원장은 최근 필리핀의 지적재산권 청장에게 들었던 필리핀의 영화산업을 사례로 거론했다. 필리핀은 3~4년 전 영화제작 편수가 한해 200여편에서 최근 절반으로 떨어졌고, 영화제작사도 200여개에서 50여개로 줄었다고 한다. 저작권이 보호되지 못하자 영화제작사가 망하고, 유능한 직원들이 떨어져 나가고, 영화 관련 일자리도 사라져 갔다. 악순환의 고리에 들어가면서 필리핀 영화의 해외 수출은 꿈도 꾸지 못하게 됐다는 것이다. 어지간한 한국 영화가 국내 관객 200만명 정도는 거뜬히 동원하고, 해외로 수출돼 한류를 형성하는 것과 상당한 차이가 있다. 지난해 7월 1일 저작권위원장에 임명된 유 위원장은 “스마트폰과 유튜브 등 스마트 환경이 활성화되면서 저작권 환경이 급격히 변하고 어려워지고 있다.”고 했다. 한 나라에서 생산된 콘텐츠의 이용이 세계화·대중화하고 있기 때문에 한 국가가 단독으로 저작권을 보호할 수 없고, 국가 간 협력이 필요해진 것이다. 이번에 마닐라저작권센터를 여는 것도 스마트 환경에 대응하는 차원이다. 동남아 국가 중 한류가 강한 나라의 특성은 초고속 인터넷, 스마트폰 등이 활성화되거나, 확산의 속도가 빠른 나라다. 필리핀도 초고속 인터넷인 광대역의 연간 성장률이 12%를 웃돈다. 유튜브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가 활성화돼 있는 만큼 온라인상의 저작권 침해를 찾아내 처벌하기가 쉽지 않다. 그는 “지식과 문화에 대한 접근성이 혁신적으로 변화하고 있는 만큼, 배타적인 소유보다는 창조적인 공유에 방점을 두고 저작권을 보호해야 한다.”고 말했다. 창조적 공유는 창조적인 문화생산활동의 영역을 넓히고, 관련 시장을 확대시키기 때문이다. “그래서 권리 보호도 중요하지만, 이용 활성화와 균형을 맞추는 것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어떤 전자제품보다 기술격차가 훨씬 큰 것이 문화상품이라고 했다. 미키마우스의 연봉이 6조원에 달하다 보니 자유무역협정(FTA)에서 저작권보호 기간이 사후 50년에서 70년(2013년 7월 1일 발효)으로 늘었다는 것이다. 이른바 ‘미키마우스법’이다. 해외에서는 한류 상품의 가치를 지켜 나가고 있을까. 불과 4년 전인 2008년만 해도 미국의 저작권 감시대상국이었던 한국의 경험을 잘 살려나가고 있다. 저작권법은 1957년에 제정됐지만, 1989년에 전면 개정하고 저작권위원회를 조직했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타결을 앞둔 2009년에 법을 정비하고 저작권위원회의 조직을 보완했다. 유 위원장은 “불법적인 저작권 침해에 일일이 대응하면 해당국의 불만과 저항이 커지고, 혐한류로 변질될 수 있기 때문에 대규모 침해사례에만 대응하고 있다.”면서 “해외사무소를 통해 해당국에서 합법시장을 늘릴 수 있는 법률적·기술적 자문을 하고, 행정적 노하우를 전수하고 있다.”고 했다. 유 위원장은 중국 시장을 예로 들었다. 저작권위원회 최초의 해외저작권 센터는 2006년 설립된 베이징센터로 이를 통해 한국 TV드라마의 유통을 합법적으로 유도해 2008년 13억원이었던 국내 3개 방송사의 중국 매출을 2011년 250억원으로 대폭 늘렸다. 유 위원장은 외국영화에 대해 1개국당 연간 3편 이상 상영을 금지하는 중국의 스크린쿼터 정책 탓에 한국 영화가 유통되기는 쉽지 않다고 했다. 세계적인 석학 기 소르망에 따르면 상품과 문화를 동시에 수출한 나라는 미국, 프랑스, 독일, 일본, 한국 등 5개 나라밖에 없다고 한다. 유 위원장은 “저작권 보호를 통해 문화상품을 국부(國富)로 전환하려는 노력을 기울일 때다. 또 한류를 좋아하지만, 막상 한국인을 만나면 호감도가 30% 뚝 떨어진다는 조사결과도 있다. 한국인들은 이제 스스로, ‘현빈’이 되고, ‘이효리’가 돼서 문화외교의 사절로 활동하면 좋겠다.”고 강조했다. 마닐라 문소영기자 symun@seoul.co.kr
  • “스타작가 15명 추려 美서 ‘제2의 신경숙’ 만들겠다”

    “스타작가 15명 추려 美서 ‘제2의 신경숙’ 만들겠다”

    “한국문학을 세계에 알리려고 30여 년 노력했는데, K팝과 한류 덕분에 아주 좋은 기회를 만났다.” 지난 2월 취임한 김성곤(63) 한국문학번역원장은 15일 올해 사업계획을 설명하는 기자간담회에서 이렇게 감회를 털어놓았다. 아시아와 미국, 유럽 등에서 K팝이 인기를 끌면서 현지 젊은이들이 유창한 한국어로 노랫말을 따라하고, 한국어를 배우겠다고 나서고, 한국을 방문하려고 안달이 난 상태야말로 순수 한국문학이 세계에 진출하는 적절한 시기가 아니겠느냐는 것이다. 현지의 장년층들도 현대차와 삼성·LG로고가 들어간 상품을 사용하며 한국에 대한 관심을 키우고 있다고 덧붙였다. 김 원장은 “미국 출판시장에서 성공할 수 있는 스타작가 15명을 추려서 ‘제2의 신경숙’, ‘제2의 김영하’를 만들어보겠다.”고 했다. 이를 위해 김 원장은 이들 작가의 대표작을 샘플 번역해 해외의 주요 출판사에 보내 출판가능성을 타진하겠다고 했다. 이 작업을 위해 번역원은 기획재정부로부터 3억원의 예산을 확보해놓은 상태다. 또한, 번역원이 직접 해외 출판사와 교섭하기보다는 해외 에이전트를 활용, 현지의 대형출판사에서 한국작품들이 출판될 수 있도록 할 예정이다. 해외 출판사와 장기 계약도 맺는다. 미국 달키 아카이브 출판사(Dalkey Archive Press)에서는 2014년까지 25권의 문학전집이, 미국 화이트 파인 출판사에서는 ‘한국의 목소리 시리즈’로 16명 시인의 시집과 소설들이 출간된다. 작가에 대한 정보를 위키피디아에 영문으로 올리고, 유튜브도 활용할 생각이다. K팝의 유통경로가 유튜브-트위터-콘서트로 연결되듯, 문학도 이런 루트를 활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장르 문학 작가를 발굴해 번역지원도 할 예정이다. 김 원장은 “매력적인 원작이 많이 나와야 하고, 세계인들이 공감할 수 있는 보편적인 소재를 중심으로 한국이란 공간적 한계를 뛰어넘는 좋은 작품들이 많이 나오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글 사진 문소영기자 symun@seoul.co.kr
  • 한글문화연대 ‘한글날 공휴일 지정 경제효과’ 논의

    한글문화연대 ‘한글날 공휴일 지정 경제효과’ 논의

    한글날을 공휴일로 다시 지정해야 한다는 국민의 목소리가 점차 커지고 있다. 국민 10명 중 8명꼴이다. 문화체육관광부가 최근 실시한 여론 조사 결과를 보면 국민의 83.6%가 한글날의 공휴일 지정을 찬성한다. 이는 지난해 같은 조사의 찬성률 76.3%와 비교해 7.3% 포인트, 2009년 68.8%와 비교하면 14.8% 포인트 높아진 것이다. 그저 하루라도 더 쉬고 싶다는 심리일까. 아니면 K팝 등 한류 열풍에 힘입어 세계적으로 한글의 위상이 높아지고 있기 때문일까. 한글날은 훈민정음 반포 500주년이던 1946년 공휴일로 지정됐다. 그러다가 1990년 경제발전에 지장이 있다는 재계의 지적을 정부가 받아들이면서 공휴일에서 제외됐다. 2005년 국경일로 격상됐지만, 공휴일에는 포함되지 않았다. 경제논리가 여전히 한글날의 발목을 잡는 탓이다. 세종대왕 탄신 615돌을 맞아 한글문화연대는 14일 서울 중구 태평로1가 한국프레스센터 19층에서 ‘한글문화 가치 확산을 통한 한글의 세계화 전략’이라는 제목의 세미나를 열고, ‘한글날을 공휴일로 지정하면 나타날 경제적 문제’ 등에 대해 논의했다. 이강욱 한국관광연구원 선임연구원은 발표문에서 “한글날을 공휴일로 지정하면 생산유발 효과가 1조 8010억~4조 3224억원이고, 일자리 창출 효과가 1만 7919~4만 3005명에 이른다.”면서 “쉬는 날이 늘어나면 여행·문화 활동을 증가시키기 때문에 소비 지출이 늘어나 내수활성화 등에 도움이 된다.”고 설명했다. 이 선임연구원은 “세계적으로 경제가 위축되고 있는 상황에서, 한글날 공휴일 제정은 민간소비 증가를 통한 경제활성화에 도움이 되고, 이는 재정지출을 통한 의도적인 경기부양책보다 부작용이 적다는 점이 확인됐다.”면서 “그 때문에 프랑스와 미국 등에서 경제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휴일 확대 정책을 실시해 실효를 거뒀고, 일본도 2003년 민간소비촉진을 위해 ‘해피먼데이’라는 공휴일 제도를 도입한 사례를 돌아볼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한글날을 공휴일로 지정하면 14일인 법정공휴일은 15일로 늘어난다. 주 5일제 근무가 도입됐고, 한국에서 연·월차 유급휴가가 최장 25일인 점을 들어 재계에서는 ‘한국 기업의 경쟁력이 떨어진다.”고 주장할 수 있다. 그러나 한국 근로자들은 유급휴가의 61.3%, 즉 25일 중 15일만 사용하고 있다. 이유는 업무과다(26.9%)와 직장 내 분위기(23.7%) 등 때문이다. 세계 최고 수준의 노동시간을 자랑하는 한국에서 법정공휴일이 하루 더 늘어난다고 문제될 것이 없다고 이 선임연구원은 설명했다. 생산력이 한국보다 좋은 유럽은 최장 33일까지, 미국은 최장 25일까지 연·월차 유급휴가를 떠난다는 것과 비교해 볼 만하다. 한글날의 공휴일 지정이 필요한 또 다른 이유는 한글날이 언제인지 아는 국민의 수가 점차 줄어든다는 것이다. 이 선임연구원의 발제에 따르면 한글날을 알고 있다는 답변은 63%다. 2009년 88.1%보다 25.1% 포인트 감소한 수치이다. 이날 지정토론에 나선 조형근 한림대 연구교수는 “근대 국민국가 형성 이후 만들어진 기념일들은 국민통합을 목적으로 하는 것으로, 한글날의 미래적 가치를 강조한다면 공휴일로 재지정할 수 있을 것”이라며 “과거 공휴일이었다가 폐지된 기념일 중 다시 공휴일로 지정해야 할 기념일 가운데 한글날이 57.5%로 압도적인 점을 감안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 뒤로 제헌절 15.4%, 식목일 12.2%, 국군의 날 8.1% 등 순이다. 한편 2009년부터 한글날을 법정공휴일로 재지정하기 위해 노력하는 문화부는 최광식 장관 취임 이후 더 강한 의지를 보이고 있다. 갈상돈 문화부 정책보좌관은 “모든 한류는 한글을 배우려는 노력으로 귀결되고, 한류의 꽃은 한글이다.”라며 “19대 국회가 개원하면 관련 법안을 제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문소영기자 symun@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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