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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소영
    2025-0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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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길섶에서] 정신적 피해/문소영 논설위원

    자잘한 일을 처리하려면 성가시고 정신적인 피로가 쌓인다. 남자들은 그걸 잘 모르는데 어릴 때는 엄마가, 결혼하면 아내가 해주기 때문이다. 개인정보 유출로 멘털 붕괴에 빠진 국민을 향해 현오석 경제부총리가 “어리석은 사람은 책임만 따진다”고 비난한 원인을 두고 본인이 직접 카드나 계좌발급을 한 적도 없기 때문이 아니냐는 분석이 그래서 나온다. 주민번호는 물론 몇 평의 아파트에 사는지, 결혼을 했는지, 연봉이 얼마인지 지극히 사사로운 정보를 공개하고 싶은 사람이 얼마나 되겠나. 2차 피해를 막고자 카드 재발급 및 신규 은행계좌를 확보하고 싶지만 쉽지 않다. 주거래은행 계좌는 각종 공과금과 휴대전화요금, 아파트 관리요금 등 자동이체 항목마다 일일이 전화해 옮겨야 한다. 다음 달에 해외여행을 하는 한 친구는 비행기 예약티켓과 해외 호텔예약 등에 영향을 미칠까봐 ‘불량’한 현행카드를 유지해야 한다. 2000만여명의 국민이 ‘1초도 아까운’ 시간과 노력을 비생산적으로 쓰고 있다. 하지만 정부와 카드사는 이런 정도는 정신적 피해가 아니라고 주장하겠지? 문소영 논설위원 symun@seoul.co.kr
  • [길섶에서] ‘혀를 내두르다’는 관용구/문소영 논설위원

    ‘혀를 내두르다’란 표현을 흔히 쓴다. ‘무릎을 탁 쳤다’와 마찬가지로 감탄을 하거나 예상 밖의 상황을 만났을 때에 쓰는 관용구다. 그런데 무릎을 치는 행위와 달리, 혀를 내두르다는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사람의 혀를 좌우로 또는 위아래로 흔들기에는 그것이 개구리나 소의 혀처럼 길지 않기 때문이다. 혀를 내민 뒤 고개를 도리도리로 흔들어야만 ‘혀를 내두르다’는 표현에 가깝게 접근할 수 있다. 그렇다면 그 유래는 어딜까. 낯이 두꺼워 몹시 뻔뻔하다는 의미의 후안(厚顔)처럼 한자의 근원을 찾아보았다. ‘토설’(吐舌)이 가장 가깝다고 고전번역학자가 알려왔다. ‘토설’은 한국문집이나 왕조실록 등의 고전자료에 많이 보인다. ‘선조실록’에 나오는 ‘견지자실색 문지자토설’(見之者失色 聞之者吐舌)이 ‘보는 자는 안색이 변하고 듣는 자는 혀를 내두른다’로 번역된다. 8세기 당나라 한유의 ‘송궁문’(送窮文)에도 ‘토설’이 나온다. ‘혀를 내두르다’의 근원을 찾아 겨울철 짧은 하루 해를 다 보냈지만, 유장한 역사를 알게 된 보람찬 하루다. 문소영 논설위원 symun@seoul.co.kr
  • [문소영의 시시콜콜] “공정보도는 근로조건”

    [문소영의 시시콜콜] “공정보도는 근로조건”

    올해 시즌3에 들어가는 미국 드라마 ‘뉴스룸’은 ‘과연 좋은 뉴스는 무엇을 전달하는 것인가’를 깊게 성찰할 수 있는 드라마다. 케이블TV 9시 ‘뉴스 나이트’ 진행자 윌 매커보이는 시청자 150만명을 거느린 스타 앵커다. 시청률에 민감한 그에게 새 PD는 “100만의 시청자 앞에서 거짓뉴스를 하느니, 100명만 보는 좋은 뉴스를 하겠다”고 선언했다. 보도국장인 찰리 스키너는 선정적인 가십성 기사를 취급하지 않아 시청자가 150만명에서 80만명으로 떨어져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이는 경영진의 압력을 막아내며, 매커보이에게 더 좋은 뉴스에 매진하라고 등을 떠밀고 격려한다. 결국 매커보이는 보도의 원칙을 수정한다. 뉴스가 제공하는 정보가 투표할 때 도움이 되는가, 올바른 토론의 방식으로 제작됐나. 역사적으로 의미가 있는가, 정보의 양면성을 모두 검토해 제시했는가 등이다. 그는 공화당원이면서도 공화당 시민단체 ‘티파티’의 비이성적인 정치 개입과, 이에 영합하는 공화당 의원들에게 직격탄을 쏜다. 티파티가 건전한 여론을 왜곡하고 민주주의 발전에 이바지하지 못한다는 비판이다. ‘티파티 사례’는 지난해 말 방송통신위원회가 통합진보당 해산 심판청구 뉴스와 김재연 진보당 대변인을 출연시킨 JTBC ‘NEWS9’을 편향됐다며 중징계한 사례와 비교해 볼만한 사안이다. 언론계에 지난 17일 기쁜 소식이 있었다. 서울남부지법이 MBC 노조원 44명에게 “MBC가 노조원에 대한 해고와 정직 처분을 모두 무효”라고 판결했다. 재판부는 “방송사 등 언론매체는 공정성 유지의 의무가 있고, 공정방송은 노사 양측의 의무이자 근로조건에 해당한다”고 했다. 또한 “인사권이나 경영권을 남용하는 방식으로 방송의 공정성을 훼손하는 경우에는 근로조건 저해행위이자 위법행위에도 해당한다”고 적시했다. ‘경영진 퇴진’은 흔히 불법파업으로 간주되는데 법원이 “공정방송이 근로조건”이라며 방송사 등 언론을 예외적으로 취급한 것이다. 1심이지만 의미 있는 결정이다. 법원은 또한 MBC의 불공정 보도 사례로 2010년 국무총리실 민간인 불법사찰 의혹을 다른 언론사보다 10여일 늦게 보도한 것 등도 지적했다. 전 세계의 신문과 방송이 올드미디어로 찬밥 신세가 됐지만, 유독 한국에서 외면하는 속도나 그 강도가 유난하다. 정보기술(IT)강국답게 뉴미디어인 트위터나 페이스북, 카카오톡, 라인의 급속한 성장도 한 원인이겠지만, 핵심적 원인은 올드미디어가 한국사회가 요구하는 좋은 뉴스를 생산해내지 못하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좋은 뉴스란 권력을 감시하고 민주적 기본질서를 위해 건전한 여론을 형성하며, 표현의 자유와 국민의 알권리를 충족시켜야 한다. 시청률조사기관인 TNmS에 따르면 공영방송인 MBC의 간판뉴스인 ‘뉴스데스크’의 20일 시청률은 5.8%이지만, SBS의 ‘8시 뉴스’의 시청률은 11.9%인 이유를 제대로 파악해야 한다. 논설위원 symun@seoul.co.kr
  • [길섶에서] 설마 이런 경고가?/문소영 논설위원

    가정용 다리미 사용 주의사항 중에 ‘옷을 입은 채 다림질을 하지 마시오’라는 구절이 있다고 한다. 어떻게 그런 경고가 있을 수 있느냐며 사람들이 웃는다. 그런데 맞장구를 치지 못하고 애매한 표정으로 슬쩍 웃기만 하는 사람들도 있다. 왜냐고? 저런 경고는 나사 하나쯤을 풀어놓은 듯하거나 게으른 사람들에게 적절한 경고이기 때문이다. 제조업체의 배려 같지만, 정확하게는 소송을 회피하려는 노력이다. 외출하기 전에 양말이 떨어진 것을 발견하면 귀찮아서 신은 채로 바느질하다가 날카로운 바늘에 찔렸던 경험이 있는 사람으로서 그 경고에 약간 뜨끔했다. 옷을 다 차려입었는데 구김살을 발견한다면 스팀 다리미를 들이대지 않을 것으로 확신할 수가 없었다. 부엌칼의 소비자 경고문에는 ‘떨어지는 칼을 절대로 잡으려고 시도하지 마시오’가, 세탁기에는 ‘고양이를 세탁하지 말라’는 경고도 있다고 한다. 한국 군대용 세탁기에는 ‘총을 세탁하지 말라’는 경고문이 붙을지도 모른다. 자신의 말과 행동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모르는 사람이 세상에는 의외로 많다. 문소영 논설위원 symun@seoul.co.kr
  • [씨줄날줄] 맥도날드의 한인 노인/문소영 논설위원

    미국 뉴욕의 한 맥도날드 매장에서 자리를 오래 차지한 재미교포 노인들을 경찰을 동원해 내쫓은 사건이 지난 15일 뉴욕타임스에 보도된 뒤 후폭풍이 일고 있다. 뉴욕의 한인단체에서는 즉각 “인종차별과 노인차별을 한 맥도날드 불매 운동을 2월 한 달간 전개하겠다”고 선언했다. 국내에서도 미국에 이민 가 세탁소와 청과물 판매 등 3D 업종에 종사하며 기반을 잡은 미국 이민 1세대가 늙고 병들자 이국 땅에서 설움을 받는 것이 아닐까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뉴욕타임스는 지난 1월 초에 발생한 사건을 뒤늦게 다뤘다. 맥도날드와 한인 노인들의 갈등은 훨씬 이전부터 있었다. 맥도날드는 지난해 11월에도 4차례나 911에 전화를 해 이들을 내쫓아 줄 것을 요청했다. 맥도날드 측은 한인 노인들이 개점하는 새벽 5시부터 자리를 차지하고 앉아 있어 다른 고객들이 자리가 없어 환불을 요청한다고 하소연한다. 매장 내에는 “주문한 음식료는 20분 안에 다 먹어 달라”는 안내판도 설치돼 있다고 했다. 그러나 나이 든 재미교포들은 “큰 사이즈의 커피를 20분 안에 어떻게 마실 수 있느냐”고 반박한다. 기사에는 뉴욕에 온 지 2년밖에 안 된 81세의 홀로 된 노인도 나온다. 이런 상황까지 내몰린 뒤에야 한인 커뮤니티 서비스센터에서는 최근 지하의 한 방을 25센트에 커피를 마실 수 있는 공간으로 변경했다고 했다. 그런데 문제는 아무도 그곳에 가지 않는다는 것이다. 편안한 분위기에서 친구와 만나 대화할 만한 장소가 맥도날드밖에 없었구나 싶다. 이 사건은 생각거리를 던져 준다. 1.39달러인 작은 프랜치프라이나 1달러 커피를 시켜 놓고 여럿이 자리를 차지하는 행위는 이윤을 추구하는 맥도날드로서는 과연 견딜 수 없는 일인가. 한인타운에서 적잖은 이윤을 내면서 갈 데 없는 노인을 공권력을 이용해 쫓아내는 것은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가 결여된 것은 아닌가. 재미 한인 커뮤니티는 점점 늘어나는 노인들을 위해 좀 더 분발해야 하는 것 아닐까. 사실 미국의 맥도날드가 처한 상황은 수년 전부터 한국 노인들이 몰리는 서울 종로3가 탑골공원 주변이나 지하철 2호선 시청역 주변 등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광경이다. 자식들 눈치 보여 집에 있을 수 없고, 잘 차려입고 밖에 나왔으나 갈 곳은 마땅치 않고 주머니 사정도 여의치 않은 노인들이 커피점에 넘쳐나고 있으니 말이다. 지방자치단체들이 ‘콜라텍’을 없애지 못하는 이유다. 지난해 세상을 떠난 ‘맥도날드 할머니’가 생각난다. 그는 친인척과도 단절된 현대사회 노인 소외의 상징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문소영 논설위원 symun@seoul.co.kr
  • [길섶에서] 하이힐/문소영 논설위원

    굽이 높은 하이힐은 프랑스 왕 루이 14세 베르사유 궁에서 시작됐다. 루이 14세는 귀족과 차별된 왕의 권위를 최대화, 최적화하고자 왕궁에 화장실을 짓지 않았고, 그 탓에 베르사유 정원에는 인간의 배설물이 쌓였는데 귀족들이 이들을 피하고자 하이힐을 신었다는 것이다. 루이 14세의 초상화나 17~18세기 프랑스 남자 귀족의 초상화를 보면 통굽으로 보이는 힐을 신었다. 퐁피두 부인과 같은 여자 귀족들은 드레스 때문에 구두 코만 보이니 굽을 확인할 수가 없다. 현대에 와서 남성들은 굽이 없는 평평한 구두를 신고, 여성들은 점점 더 굽이 높아지는 하이힐에 도전하고 있다. 섹시 여배우인 메릴린 먼로의 뒤뚱거리는 오리걸음은 하이힐 덕분이라는 평가도 있다. ‘하이힐=섹시’라는 등식이 성립돼 노소를 불문하고 유행이다. 지난 12일 미국서 열린 골든글로브 시상식에서 엠마 톰슨이 굽 높이 10㎝쯤 보이는 하이힐을 집어던지며, “건강을 위해 더 이상 신지 말자”고 했단다. 몸으로 먹고사는 직업군은 섹시보다 건강이 최고라는 지론 탓에 톰슨의 언행에 박수를 보낸다. 문소영 논설위원 symun@seoul.co.kr
  • [씨줄날줄] 고액 경조사 부조금/문소영 논설위원

    부조(扶助)의 사전적 정의는 남의 큰일에 돈이나 물건 등을 도와주거나 거들어주는 것을 말한다. ‘남의 큰일’은 전통적 농경사회에는 모내기나 추수 등이 있고, 개인 행사로는 결혼식이나 장례식과 같은 일이다. 당연히 필요한 경비를 서로 갹출했고, 음식을 장만한다든지 운구를 한다든지 육체적인 힘도 보탰다. 근대화와 산업화로 씨족 형태의 농경사회가 붕괴한 뒤에도 부조의 ‘아름다운’ 관행은 살아남았다. 결혼식이나 초상이 나면 사람들이 찾아와 축의금이나 부의금을 낸다. 문제는 경조사 부조금이 뇌물로 판단되는 경우가 잦아지고 있다는 것이다. 최근 법원은 ‘직무 대가성’에 대해 한층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고 있는 추세다. 예를 들어보자. 서울지방국세청 정모 과장이 토마토저축은행의 세무조사를 마친 수개월 뒤 부친상을 당했다. 토마토저축은행의 회장 등이 조의금 1100만원을 냈다. 정씨는 조의금 1100만원이 문제가 돼 해임됐다. 정씨는 억울하다며 복직소송을 냈는데 1심에 이어 지난 1월에 열린 2심에서도 패소했다. 지난해 12월의 사례도 있다. 서울고용노동청 소속 5급 근로감독관은 자녀 결혼식에서 자신이 지도·점검한 기업들로부터 1인당 5만~30만원짜리 축의금 530만원을 받았고, 이 축의금의 성격을 뇌물로 볼 것인가를 두고 법정 다툼 끝에 대법원에서 유죄 확정을 선고받았다. 2심 재판부가 10만원 넘는 축의금만 뇌물죄를 적용했지만, 대법원은 더 엄격하게 5만원 축의금도 유죄로 판단했다. 최근 평균적인 축의금이 5만~10만원인 점을 감안하면 의아하다고 느끼는 사람도 많을 텐데, “자신의 업무와 관련된 사람으로부터 받았다는 사실이 유죄로 인정된다”고 했다. 국회에 계류 중인 ‘부정청탁 금지 및 공직자의 이해충돌 방지법안’(일명 김영란법)에는 금품수수를 금지해 놓았는데, 경조사 부조금도 금품에 속한다. 다만 제8조에 9개의 예외를 두어 금품을 받을 수 있게 했다. 부조금의 경우는 ‘직장, 동호인회, 동창회, 향우회, 친목회, 종교·사회 단체의 구성원으로 공직자와 특별히 장기적·지속적인 친분 관계를 맺고 있는 자’로 한정해 두었다. 남자들이 술자리에서 의기투합해 수십만원짜리 해외브랜드의 넥타이나 목도리를 교환하거나, 수천만원짜리 손목시계를 선물로 받는 경우를 간혹 봤다. 남자들 사이의 의리라고 주장하고 싶겠지만 검찰의 한 관계자는 “10원도 이론적으로 뇌물이 될 수 있으니 모두 뇌물성 선물”이라고 했다. 상식이 엄격해지고 있다. 흔한 부조금이나 평범한 선물이라도 찜찜하면 돌려줘야 하는 시대다. 문소영 논설위원 symun@seoul.co.kr
  • [씨줄날줄] 내부 고발자/문소영 논설위원

    2013년 말 영국 일간지 가디언이 올해의 인물로 선정한 에드워드 스노든은 미국국가안보국(NSA)과 중앙정보국(CIA)에서 일하던 컴퓨터 프로그래머요원이었다. 그는 2013년 6월 미국이 프리즘 감시 프로그램을 통해 전 세계적으로 무차별적인 전화도청과 이메일 해킹을 했다고 폭로했다. 미국이 앙겔라 메르켈 독일총리의 휴대전화를 10년 이상 도청했던 것도 그때 밝혀졌다. 미국의 불법적인 정보 수집과 도청의 대상에 한국 정부도 예외가 아니다. 미국 국방성은 11일 스노든이 170만건에 달하는 미국의 기밀 정보를 누출한 ‘역사상 가장 대범한 도둑’이라며 비난했다. 이쯤에서 한 번 따져보자. 스노든을 어찌 평가할까. 미국 정부 측에서는 현행법을 위반한 범법자일 것이다. 그러나 그가 없었다면 전 세계는 미국의 불법적인 도청행위를 새까맣게 모른 채 지냈을 것이다. 이런 상황을 잘 포착해 뉴욕타임스는 지난 2일 사설을 통해 “정부 당국자들이 일상적, 의도적으로 법을 어기고 있다는 사실을 폭로한 사람이 같은 정부에 의해 종신형의 위기에 처해져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스노든의 행위는 미국 내부 고발의 전통을 따른 것 같기도 하다. 1972년 닉슨 대통령의 재선을 위해 워싱턴 워터게이트 빌딩의 민주당 전국위원회 본부에 침입해 도청장치를 설치하려다가 발각된 ‘워터게이트 사건’은 마크 펠트 전 FBI 부국장의 내부고발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그는 ‘딥 스로트’로 33년 침묵하다가 지난 2005년 5월에 자신을 밝혔다. 1971년에는 존 에드거 후버 FBI 국장의 불법적인 시민사찰 행위를 폭로한 ‘FBI 시민감시단’의 활동이 있었다. 대학교수 등이 FBI 펜실베이니아 지부의 사무실에서 문서를 확보해 언론에 고발한 것이다. 한국에도 민주화 시대에 주요 내부 고발자들이 등장했다. 1990년 보안사의 민간인 불법 사찰 기록을 공개했던 윤석양 이병과 같은 해 감사원과 재벌의 유착을 고발한 이문옥 감사관, 1992년 군 부재자 투표의 부정을 고발한 이지문 중위, 같은 해 총선에서 민자당의 관권선거 의혹을 제기한 한준수 연기군수, 2008년 4대강 사업 연구 용역에 대한 압력을 고발한 김이태 박사, 2009년 군 납품 비리를 고발한 김영수 소령 등이다. 공익을 위한 고발이었으나, 언론의 관심이 사라진 뒤 개인적인 불이익을 당했고 ‘배신자’라는 낙인이 찍혔다. 신상에 위협을 느끼기도 했다. 사회는 점차 투명해지고 있지만 뒤로 숨어 더 교묘하게 불법적 행위를 하는 권력과 정부, 재벌은 여전하다. 내부 고발 활성화를 위해 보호제도가 더 보완돼야 할 때다. 문소영 논설위원 symun@seoul.co.kr
  • [씨줄날줄] 효도와 요양원/문소영 논설위원

    슈퍼주니어 이특의 아버지가 치매에 걸린 자신의 노부모를 살해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 참담한 사건에 한국이 발칵 뒤집혔다. 이 참담한 사례는 이특 가족만의 특수성에 기인한 것이 아니다. 고령화사회로 빠르게 진행하는 한국에서 치매노인이 급증하고 있고, 이를 해결할 수 있는 시스템이 취약하다는 것은 보편적인 문제로 인식된다. 특히 연로한 부모를 돌보지 않으면 불효자와 같다는 죄의식이 사회안전망 이용을 막고 있어 안타깝다. 맞벌이가 일상화된 현대사회에서 치매 환자나 뇌졸중 환자 등 만성질환자를 핵가족화된 가정에서 돌볼 수 없다는 사실을 인식해 노무현 정부는 2007년 4월 ‘장기요양보험제도’를 도입했고, 2008년 7월부터 시행해왔다. 스스로 일상생활이 곤란한 65세 이상의 노인이나 65세 이전이라도 치매 환자, 뇌졸중 등 뇌혈관성 환자, 파킨슨병 환자 등이 그 대상자다. 장기요양보험의 대상이 되면 월 비용 150만~180만원인 요양원을 이용해도 정부가 120만원을, 개인은 30만~60만원만 내기 때문에 경제적 부담도 적다. 문제는 장기요양보험을 신청한다고 모두가 혜택을 받지 않는다는 것. 등급 산정을 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지난해 말 현재 치매 환자는 57만 6000명.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이 중 18만 7000명만이 장기요양보험 적용대상자다. 정부가 올 7월 특별등급을 신설해 5만명에게 추가로 서비스를 제공할 예정이지만 여전히 절반 이상이 혜택을 받을 수 없다. 특히 노인의 5.8% 정도밖에 보장하지 못해 사각지대가 발생한다. 박사학위를 가진 여성이 경증 치매인 어머니를 돌보기 위해 결혼도 포기하고 비정규직으로 10여년을 고생한 경우도 봤다. 전병헌 민주당 원내대표가 “2월 국회에서 치매관리법을 개정해 치매 판정 기준을 완화하는 등 국가가 책임지고 돌보겠다”고 약속하는 이유다. 전문가들은 정서적인 장벽을 깨야 한다고 말한다. 치매환자가 된 부모를 돌보지 않으면 불효를 했다는 자괴감 때문에, 부모들도 자식에게 버림받았다는 두려움 때문에 요양시설 이용을 꺼린다. 대안으로 보건복지부는 방문요양이나 방문간호과 같이 집에서 관리를 받는 방안도 고려하길 요망하고 있다. 현재 건강보험의 적용을 받는 요양병원이 앞으로 장기요양보험에 편입될 필요가 있다. 치매 환자나 뇌졸중 환자 중에는 다른 질병 때문에 요양병원에 입원해야 하는 경우도 상당하다. 요양병원을 이용하면 환자 가족들의 부담이 월 150만원 이상으로 크고, 환자에 대한 관리·감독도 요양원보다 부실하기 때문이다. 문소영 논설위원 symun@seoul.co.kr
  • [문소영의 시시콜콜] ‘정상화로 가는 길’은 왜 이리 어려운가!

    [문소영의 시시콜콜] ‘정상화로 가는 길’은 왜 이리 어려운가!

    박근혜 대통령의 취임 2년 만의 첫 기자회견을 지켜본 뒤 ‘474비전’과 ‘경제혁신 3개년 계획’,‘대박 통일’ 등의 약속에 가슴이 뜨거워지는 국민도 있겠으나 기대했던 만큼 실망하고 착잡했다. 잠재성장률 4%, 고용률 70%, 국민소득 4만 달러시대를 준비한다고 제시한 ‘474비전’은 이명박 정부의 ‘747공약’처럼 들렸다. 경제성장 7%와 4만 달러 시대, 7대 강국 도약과 같은 ‘747공약’은 5년 뒤 공허했음을 입증했다. 연평균 경제성장률은 노무현 정부의 4.3%에 못 미친 2.9%였고, 국민소득은 2만 달러에 그쳤다. 오히려 국가채무를 노무현 정부의 299조원에서 433조원으로 44.8%나 늘려 현 정부에 부담을 떠넘겼다. 그래도 ‘474비전’은 달성 가능한 목표라는 반박이 있겠다. 그러나 근로자의 절반가량이 연봉 2000만원 미만인 나라에서 1인당 국민소득 4만 달러가 된다고 국민의 살림살이가 나아질까에 대해 의문이다. 재벌기업들이 사고를 쳤던 외환위기를 극복하고자 세금으로 조성한 공적자금을 밀어 넣는 등 국가와 국민이 고통을 분담한 지 16년 만에 관계가 역전됐다. 500조원대의 국가채무와 1000조원대의 가계부채로 국가와 국민은 부실해졌고, 재벌 등 대기업은 1만%대의 유보율을 자랑하며 현금을 쟁여 놓았다. 기업은 국내 일자리 창출을 위해 투자해 달라는 정부와 국민의 간곡한 부탁을 외면하고 있다. 16년간 아랫목만 반짝 따뜻했고 윗목은 내내 냉골이었던 결과다. 2008년 이명박 정부 출범 때 “진정한 부자가 탄생할 것”이라고 예언했는데, 부자 감세와 원화 약세 등 당시의 경제정책이 부의 양극화를 가속한 탓이다. 1970년대 새마을운동의 “잘살아보세”는 ‘우리’라는 공동체의 성공과 발전을 전제했지만 지금의 “부자되세요”에는 공동체가 빠져 있다. 그렇다고 40년 전 국가주도 개발경제로 되돌아간다고 양극화를 극복할 수는 없다. 북한과의 관계개선을 위한 노력을 거의 기울이지 않으면서 내세운 ‘대박 통일’도 혼란스러웠다. 통일은 영토, 인구, 경제성장 등 모든 부문에서 한 단계 상승할 수 있는 출구다. 그러나 통일 어젠다를 특정인이나 조직이 독점해서는 대박 통일이 될 수 없다. 또한, 대통령이 관저에서 홀로 보고서를 들추며 저녁을 지낸다는 사실도 걱정스럽다. 대통령에게 ‘마리 안통하네트’와 같은 시중의 별명이나 듣기 싫은 이야기를 직언하는 가족, 친구, 장차관들과 보내는 사생활이 필요하다. 진돗개들이 그 역할을 대신할 수는 없다. ‘비정상의 정상화’나 원칙을 강조하면서도 미국 오바마 대통령처럼 공약이 줄줄이 무산된 것에 대해 대국민 사과를 하지 않았고, 현 정부 수반으로서 과거 정부에서 국정원 등 국가기관들이 선거에 부정하게 개입한 의혹에 대해 사과하지도 않았다. 대체 대통령의 ‘정상’은 무엇일까. 그 기준이 1970년대 ‘한국적 민주주의’라면 시대착오적일 수밖에 없다는 점을 지적하고 싶다. 논설위원 symun@seoul.co.kr
  • [문소영의 시시콜콜] ‘정상화로 가는 길’은 왜 이리 어려운가!

    [문소영의 시시콜콜] ‘정상화로 가는 길’은 왜 이리 어려운가!

    박근혜 대통령의 취임 2년 만의 첫 기자회견을 지켜본 뒤 ‘474비전’, ‘경제혁신 3개년 계획’ 등의 약속에 가슴이 뜨거워지는 국민도 있겠으나 내심 기대했던 만큼 착잡했다. 잠재성장률 4%, 고용률 70%, 국민소득 4만 달러시대를 준비한다고 제시한 ‘474비전’은 이명박 정부의 ‘747공약’처럼 들렸다. 경제성장 7%와 4만 달러 시대, 7대 강국 도약과 같은 ‘747공약’은 5년 뒤 공허했음을 입증했다. 연평균 경제성장률은 노무현 정부의 4.3%에 못 미친 2.9%였고, 국민소득은 2만 달러에 그쳤다. 오히려 국가채무를 노무현 정부의 299조원에서 433조원으로 44.8%나 늘려 현 정부에 부담을 떠넘겼다. 그래도 ‘474비전’은 달성 가능한 목표라는 반박이 있겠다. 그러나 근로자의 절반가량이 연봉 2000만원 미만인 나라에서 1인당 국민소득 4만 달러가 된다고 국민의 살림살이가 나아질까에 대해 의문이다. 재벌기업들이 사고를 쳤던 외환위기를 극복하고자 세금으로 조성한 공적자금을 밀어 넣는 등 국가와 국민이 고통을 분담한 지 16년 만에 관계가 역전됐다. 500조원대의 국가채무와 1000조원대의 가계부채로 국가와 국민은 부실해졌고, 재벌 등 대기업은 1만%대의 유보율을 자랑하며 현금을 쟁여 놓았다. 기업은 국내 일자리 창출을 위해 투자해 달라는 정부와 국민의 간곡한 부탁을 외면하고 있다. 16년간 아랫목만 반짝 따뜻했고 윗목은 내내 냉골이었던 결과다. 2008년 이명박 정부 출범 때 “진정한 부자가 탄생할 것”이라고 예언했는데, 부자 감세와 원화 약세 등 당시의 경제정책이 부의 양극화를 가속한 탓이다. 1970년대 새마을운동의 “잘살아보세”는 ‘우리’라는 공동체의 성공과 발전을 전제했지만 지금의 “부자되세요”에는 공동체가 빠져 있다. 그렇다고 40년 전 국가주도 개발경제로 되돌아간다고 양극화를 극복할 수는 없다. 북한과의 관계개선을 위한 노력을 거의 기울이지 않으면서 내세운 ‘대박 통일’도 혼란스러웠다. 통일은 영토, 인구, 경제성장 등 모든 부문에서 한 단계 상승할 수 있는 출구다. 그러나 통일 어젠다를 특정인이나 조직이 독점해서는 대박 통일이 될 수 없다. 또한, 대통령이 관저에서 홀로 보고서를 들추며 저녁을 지낸다는 사실도 걱정스럽다. 대통령에게 ‘마리 안통하네트’와 같은 시중의 별명이나 듣기 싫은 이야기를 직언하는 가족, 친구, 장차관들과 보내는 사생활이 필요하다. 진돗개들이 그 역할을 대신할 수는 없다. ‘비정상의 정상화’나 원칙을 강조하면서도 미국 오바마 대통령처럼 공약이 줄줄이 무산된 것에 대해 대국민 사과를 하지 않았고, 현 정부 수반으로서 과거 정부에서 국정원 등 국가기관들이 선거에 부정하게 개입한 의혹에 대해 사과하지도 않았다. 대체 대통령의 ‘정상’은 무엇일까. 그 기준이 1970년대 ‘한국적 민주주의’라면 시대착오적일 수밖에 없다는 점을 지적하고 싶다. 논설위원 symun@seoul.co.kr
  • [길섶에서] 어슷썰기/문소영 논설위원

    음력 설날에 해먹을 요량이었던 떡국을 신년 초에 느닷없이 준비해야 했다. 구이용 가래떡을 또각또각 썰었다. 흔히 떡국 떡이나 대파, 오이, 생선 등은 어슷썰기를 한다. 어슷썰기는 음식 재료를 비스듬하게 써는 것이다. 어슷하게 썰면 재료가 더 많아 보이는 효과가 있고, 단면이 넓어져 양념이 잘 밴다고도 한다. 문제는 칼질에 익숙지 않은 사람들이 가래떡을 어슷하게 썰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한석봉 어머니가 깜깜한 밤에 썰었을 것만 같은 어슷썰기 한 떡은 어른스러운 반면, 동그랗게 썬 떡은 어린이용 떡처럼 보였다. 고심하고 있던 차에 안동과 충주 등에선 동그랗게 썰어서 떡국을 끓인다는 이야기를 듣게 됐다. 어슷썰기는 동그랗게 썰던 떡에 멋부리기를 한 유행이 굳어진 것이고, ‘전통’은 동그란 떡이라는 것. 떡국 떡은 ‘태양’이나 엽전을 의미하기 때문에 원형이라야 한다는 해석도 곁들였다. 방앗간에서 기원을 모른 채 어슷썰기를 해놓아 떡국이 통일됐다고 하소연도 했다. 어떤 전통이 진짜인지 헷갈리지만, 동그랗게 썰었다고 잘못은 아니라니 안심이다. 문소영 논설위원 symun@seoul.co.kr
  • [씨줄날줄] 법정상속 비율의 사회학/문소영 논설위원

    흥부전에서 제비가 물어다 준 박씨로 대박을 맞은 흥부는 차남이다. 아버지가 죽자 유산을 장남인 놀부가 독차지하고, 흥부는 알거지가 된 채 식솔을 이끌고 분가해야 했다. 욕심 많은 놀부가 밉기는 하지만, 비난받을 일은 아니었다. 조선 후기의 관습법에 따르면 장남이 유산을 고스란히 받게 돼 있었기 때문이다. 1960년 1월 1일 발효된 민법에서 비로소 호주가 사망한 후의 법적 상속분의 비율을 제시했는데, 호주를 상속한 장남 1.5, 차남 1, 미혼 딸 0.5, 출가한 딸은 0.25이었다. 호주의 처는 0.5로 차남의 절반이고 미혼 딸과 같은 비율로 상속했다. 장남은 어머니를 부양한다는 전제로 유산을 좀 더 많이 차지한 것이다. 민법의 법정상속 조항은 이후 두 번 개정됐다. 1979년 1월부터는 호주의 처가 상속하는 재산 비율이 1.5로 올랐다. 장남과 처의 비율이 같아졌다. 미혼 딸도 1로 올라갔다. 그러나 차남과 딸들의 불만이 계속돼 1991년 1월 개정법이 발효됐다. 이번엔 호주의 처는 1.5를 갖도록 하고 장남과 차남, 아들과 딸을 구별하지 않고 같은 비율(1)로 상속하게 했다. 평등하게 보이지만 이번엔 장남과 맏며느리의 불만이 터져 나왔다. 상속분이 모두 똑같아진 마당에 관행대로 장남이 부모를 모시고 제사를 받들 이유가 없다는 것이었다. 조선 후기 출가한 딸에 대한 상속분을 줄이고 장남의 지분을 늘린 이유는 딸을 포함해 자식들이 돌아가며 제사를 지내던 고려시대의 풍습이 사라져 부모 부양과 제사 봉양에서 장남의 부담이 늘어난 것을 반영했다고 보는 것이 옳다. 그런데 1991년 개정된 민법은 장남에게 부담은 그대로 두고 혜택은 줄였으니 논란이 될 수밖에 없었다. 또한 자녀가 많으면 생존한 배우자는 상속분이 적어 문제가 됐다. 20여년이 지나 민법의 상속 조항 개정이 재차 논의되고 있다. 생존한 배우자의 상속분을 대폭 늘리는 방향이다. 상속 재산의 50%를 생존 배우자에게 먼저 배분하고 남은 재산을 현행대로 1.5대 1대1로 나누는 것이다. 개정안에 따르면 유족이 아내(남편)와 두 자녀가 되면 재산은 아내가 71.4%를, 자녀가 14.3%씩 나누게 된다. 현행은 배우자 43%, 두 자녀는 28.5%씩이다. 이런 변화는 평균수명이 80세를 훌쩍 넘어가는 고령화 시대에 홀로 남은 배우자가 자녀가 부양하지 않더라도 경제적으로 자립할 수 있도록 하자는 취지다. 자식이 부양하는 시대가 지나가고 있다. 혹자는 상속 재산을 많이 받은 노인들을 노리는 범죄가 늘 것이라는 농담 섞인 말을 하지만 세태의 변화를 반영한 당연한 법 개정이라고 하겠다. 문소영 논설위원 symun@seoul.co.kr
  • [서울광장] 갑오년 새해, 어떤 원칙과 신뢰를 지킬 것인가/문소영 논설위원

    [서울광장] 갑오년 새해, 어떤 원칙과 신뢰를 지킬 것인가/문소영 논설위원

    갑오(甲午)년이 밝았다. ‘갑오’에서 사람들은 120년 전 한반도를 떠들썩하게 했던 1894년 2월 갑오농민운동을 떠올리기도 하고, 같은 해 7월 시작된 갑오경장을 떠올리기도 한다. 그해에 일어난 중요한 사건이 하나가 더 있다. 6월에 발발한 청일전쟁이다. 세 개의 역사적 사건은 개별적으로 보이지만, 한 타래의 실처럼 연결되어 있다. 갑오년에 긴장하는 사람이 있는 연유는 2주갑을 맞는 120년 전 갑오년이 이후 조선의 운명을 뒤흔든 중요한 계기였기 때문일 것이다. 1894년 2월 전라도 고부군수 조병갑의 가렴주구에 지친 농민들은 분노해 1차 민란을 일으켰다. 고종은 민란의 원인을 해소하겠다고 약속했지만 해결하지 못했다. 농민들은 4월 2차 봉기했다. 외세배격과 탐관오리 응징, 대원군 복귀, 잡세 철회 등 12개의 폐정개혁안을 요구했으나 조정은 토벌하기로 마음 먹고 청나라에 파병을 요청했다. 조선왕조실록에 고종은 영의정 심순택 등의 반대에도 청군을 요청하는 것이 무슨 대수냐는 태도를 취한 것으로 나온다. 당시 고종은 갑신정변 이후 청과 일본이 서로 충돌을 막고자 1885년 톈진(天津)조약을 맺어 어느 한 나라에서 조선에 파병하면 다른 한 나라도 자동으로 파병할 빌미를 준다는 점을 간과했다. 청일전쟁으로 한반도는 전쟁터가 되고, 일본이 압승했다. 이에 일본은 1차 김홍집 내각을 세우고 과거제 폐지, 단발령 등 개혁을 강요했다. 그것이 갑오경장이다. 같은 시기에 첨단 무기로 무장한 일본군은 죽창을 든 농민들을 섬멸했다. 당시 삼남지역의 선비와 양반도 수성대, 민포군 등을 구성해 농민 토벌에 힘을 합쳤다. 120년 전 갑오년이 주는 첫째 교훈은 정부의 결정이 항상 옳지도, 전지전능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근대 국가가 정부의 오류 가능성을 직시하고 국회와 법원을 두어 시스템으로 삼권 분립을 해놓은 이유다. 둘째 정부가 백성의 삶의 질과 부정부패를 개선하지 못하면 민심 이반이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셋째 스스로 해결해야 할 내부의 갈등을 외세의 개입을 통해 해결하려고 할 때 심각한 부작용에 직면하게 된다. 넷째 자국을 둘러싼 국제 정세를 정확하게 읽고 예민하게 반응하지 못하면 국가적 위기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최근 “120년 전의 경장은 성공하지 못했다. 이번에는 꼭 대한민국의 미래를 여는, 성공하는 경장의 미래가 될 수 있도록 해달라”고 했다. 120년 전 왜 실패했을까. 당시 개혁 드라이브는 단발령에 걸려 민심을 얻지 못한 탓이다. 박근혜 정부는 ‘국민행복시대’와 ‘100% 대한민국’을 약속했다. 지난 대선에서 박 대통령을 선택하지 않은 사람들도 그 진정성을 믿고자 했다. 그러나 ‘내가 대통령이 돼 다 해결하려는 것 아니냐’며 후보시절 약속했던 주요 공약들이 1년 만에 벽에 부딪히거나 무산됐다. 국가재정이 감당할 수 없는 공약을 강행하라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경제적 불평등이 심화돼 지니계수가 커지고 있고, 1997년 외환위기 이후 15년째 양극화가 진행돼 근로자의 48.8%가 연간 2000만원 미만의 소득을 올리고 있다는 점을 직시해 해결책을 제시해 달라는 것이다. 대기업을 키워도 낙수 효과(trickle down effect)가 사라졌다. 삼성전자가 연간 40조원의 영업이익을 내지만, 그 혜택은 5만여명이 나누고 끝난다. 철도원의 연봉 7000만원이 질시와 분노의 대상이 되지 않도록 좋은 일자리가 늘어야 한다. 또한, 국정운영에서 헌법 1조 1항과 2항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와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라는 원칙이 지켜져야 한다. 여론형성의 메커니즘을 설명한 ‘침묵의 나선이론’에 따르면 표현의 자유가 억압되면 사람들은 침묵하겠지만, 그 침묵이 정부에 찬성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이런 사람들까지 다 헤아려 정책을 펴는 100% 대한민국이 되었으면 한다. symun@seoul.co.kr
  • [길섶에서] 겨울잠/문소영 논설위원

    인간에게 왜 겨울잠이 없을까. 겨울에 안전한 동굴을 찾아 동면에 들어갔다가 봄에 개구리처럼 폴짝 뛰어나오면 될 것을. 왜 원시인들은 추위에 위험한 매머드 사냥을 하는 등으로 고단하게 살았을까 안타까웠다. 그런데 최근 사람을 포함한 포유류들은 원래 겨울잠을 잤다는 주장이 나왔다. 개구리나 곤충, 박쥐와 다람쥐류, 반달가슴곰 등처럼 인간도 겨울잠을 잤는데, 이제는 유전자에 흔적으로만 남아 있다고 한다. 다만, 이 유전적 흔적은 아데노신 같은 물질이 투입되면 방아쇠가 당겨진 것과 같은 효과를 내 겨울잠에 빠져든다는 것이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의 한 대학에서 겨울잠이 없는 쥐를 실험해 이런 결과를 얻었다. 꼬리뼈처럼 진화의 흔적으로 남아야 할 겨울잠이 최근 찾아온 것 같다. 동면한 반달가슴곰처럼 졸음이 쏟아진다. 혈압이 낮은 탓에 흐리고 눈 오는 날에는 더욱 그렇다. 진화가 덜 됐나? 아주 먼 미래에 생산력과 효율성이 좋아져 서너 달씩 휴가를 떠날 수 있게 된다면 인간도 한두 달씩 겨울잠을 자면 어떨까 하는 엉뚱한 망상을 해봤다. 병원에 가 보는 것이 좋을까? 문소영 논설위원 symun@seoul.co.kr
  • [길섶에서] 부부대화/문소영 논설위원

    부부의 대화 시간이 30분도 안 된다는 한탄이 쏟아졌다. 기혼자 992명에게 물어보니 약 40%가 30분 미만이라는 것. 주요한 이유로 늦은 귀가(34.4%)와 TV, 컴퓨터, 스마트폰 이용(29.8%), 자녀양육(19.2%) 등이 제시됐다. 대화 내용도 자녀교육과 건강, 집안의 대소사가 약 70% 가까이 된다. 2000년대 초쯤 무뚝뚝한 경상도 남자가 퇴근해 돌아오면 부인과 딱 세 마디를 한다는 이야기가 유행했다. “아는(애는?)”, “밥도(밥 주라)”, “자자”가 그것. 비록 30분 미만이지만 남편의 일방적인 세 마디로 끝나는 과거의 부부에 비해서 얼마나 다행이냐는 생각이 문득 든다. 대화 부재는 시간 탓이 아니다. 해외 연수나 교수 안식년을 함께하는 한가한 부부들은 오붓한 대화 대신 부부 싸움이 잦아지기 십상이다. 하숙생 같던 배우자의 장단점을 몰랐다가 남는 시간에 흠결을 보는 탓이다. 그래서 의도적인 대화단절로 되돌아가게 된다. 그러니 없는 시간을 쪼개 대화하고 애정표현을 하는 노력이 중요하다. 닭살이 돋는 듯하겠지만, 습관의 동물인 우리는 의외로 잘해낼지도 모른다. 문소영 논설위원 symun@seoul.co.kr
  • [씨줄날줄] 첫 여성은행장/문소영 논설위원

    한국 최초의 여성은행장이 탄생했다. 그저께다. 금융위원회는 기업은행의 제24대 은행장에 권선주 부행장을 23일 내정했다. 한국 최초의 근대은행으로 1896년 설립된 조선은행이나, 최초의 민족자본으로 1897년 세운 한성은행에서도 여성은행장이 있었을 리 만무하니 다소 과장해서 단군 이래 최초다. 1958년 세워진 농업은행은 1961년에 중소기업은행과 농협으로 갈라지게 되는데, 그 중소기업은행이 기업은행의 전신이다. 그 뒤로 대졸 여성 은행원을 뽑은 것은 17년 뒤인 1978년이었다. 이때 권 행장 내정자는 대졸 여성공채 1기로 입사했다. 이후 ‘첫 여성 1급’, ‘첫 여성 지역본부장’, ‘첫 여성 부행장’은 그의 차지였다. 입행 남자 동기와 비교해 승진은 늦었고 지점 근무도 길었지만 그는 절대 포기하지 않는 자세로 35년간 열심히 일한 덕분에 마침내 최초의 여성은행장 타이틀도 손에 넣었다. 그의 성공은 유리천장을 깼고, 23대 조준희 기업은행장에 이어 2대 연속으로 내부 승진의 사례를 만들었다는 점에서 상징적이다. 특히 19~21대까지 약 10년간 경제부처 관료들이 ‘낙하산’으로 내려왔던 점을 감안하면 ‘관치금융’에서 멀어질 신호탄으로 볼 수도 있겠다. 권 행장 내정자의 인터뷰 기사를 읽으면서 내심 ‘미혼이겠군’하고 짐작했다. 57세인 그가 직장생활을 하던 1970~80년대 사회적 분위기는 여성의 경우 결혼과 동시에 사표 제출이 관행이었기 때문이다. “일과 결혼했다”는 전문직 미혼 여성을 적잖이 봐왔던 탓이기도 하다. 그런데 그는 외조하는 훌륭한 남편과 두 자녀의 성실한 엄마였다. 2013년 정부가 결혼과 출산으로 경력이 단절된 여성을 노동시장에 유입하기 위해 각종 정책을 시행하는 것을 감안할 때 직장과 결혼 양립이라는 그의 선택은 옳았다. 남성 중심적 사회의 나쁜 관행에 저항한 것이다. 정부가 소유한 은행이었던 만큼 시중은행보다 근무 여건이 더 나았을 수도 있다. 일각에서는 여성 대통령 덕분에 프리미엄을 얻는 것이 아니냐는 지적도 한다. 그러나 한국은 정부 쪽뿐만 아니라 공공기관, 대기업 등에서 고위직에 진출한 여성의 비율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서 거의 최하위에 속한다는 점을 지적하고 싶다. 선진 대한민국과 국격을 논하면서 여성 고위직의 낮은 비중을 내버려두는 것은 후진적인 관행이 아닐 수 없다. 능력 있는 여성 한 명만 용으로 승천시킨 뒤 나머지는 이무기로 살라고 해서도 안 된다. 더불어 성공한 여성들이 청소와 같은 궂은 일을 하는 저임금의 여성노동자들의 삶을 개선하는 데도 손을 내밀면 좋겠다. 문소영 논설위원 symun@seoul.co.kr
  • [길섶에서] ‘미리’ 크리스마스/문소영 논설위원

    일요 근무차 나온 오후 간식을 찾아 외국계 패스트푸드점에 들렀다. 역시 간식을 찾아온 사람들로 붐비는 가운데 매장에는 캐럴이 간간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평화롭고 기분도 살짝 흥겨워지는 것 같았다. 1997년 겨울 외환위기가 한국을 강타한 뒤로 연말 거리에서 캐럴이 사라졌다는 것이 다수설인데, 또 다른 이야기는 늘 듣던 외국의 캐럴을 사용하면 음원 사용권 등 저작권료를 내야 하는 탓이라고도 했다. 경기가 나빠서 캐럴이 사라진 것인지, 아니면 캐럴이 사라져서 경기가 나빠진 것인지 잘 모르겠다. “경제는 심리”라는 말도 있으니 말이다. 비슷한 시간대에 5000여명의 경찰이 민주노총에 있는 철도노조 지도부를 잡겠다고 체포영장만 가지고 서울 중구 정동의 한 신문사에 불법으로 난입해 큰 충돌이 벌어졌다. 법원은 건물 수색영장을 기각했다. 인류를 구원할 예수가 태어난 성탄절이 내일로 다가왔다. 최소한 내일은 유리창을 깨는 소리와 위압적인 고함과 공포에 찬 비명이 아니라 평화롭고 즐거운 캐럴이 가득하길 바란다. 하루쯤 앞당기면 더 좋겠다. 문소영 논설위원 symun@seoul.co.kr
  • [길섶에서] 혈통/문소영 논설위원

    순수혈통을 자랑하는 불도그, 셰퍼드, 세인트 버나드 등 애완견의 모습을 약 100년 전 사진과 비교한 글을 최근 읽었다. 순수혈통 애완견들의 모습은 힐끗 봐도 100년 전과는 너무 다른 모습으로 ‘개량’되었다. 불도그의 얼굴은 과도한 주름에 피부병 등 각종 질병에 시달린 모습이다. 불도그는 스스로 교미를 못하며 6살이면 죽는다. 개의 평균 수명은 12~15년이다. 한때 2.5m 높이의 벽을 뛰어넘고 25㎏ 정도로 날씬하고 민첩했던 셰퍼드는 지금은 운동실조증에 시달리는 40㎏ 가까운 뚱보가 되고 말았다. 만화영화 ‘하이디’에서 양치기 개로 나오는 세인트 버나드는 불필요한 피부를 갖도록 개량돼 양치기 개로 부적절해졌다. 왜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인간이 자신들이 선호하는 애완견 종의 특징을 극대화하기 위해 품종 개량에 개입한 탓이다. 최근 ‘혈통’ 문제가 입길에 오르내리고 있다. ‘왕후장상의 씨가 따로 없다’는 노비 만적이 살던 고려시대도 아니고 너무 전근대적이지 않은가. 혈통 논란은 실패한 애완견 품종개량 만큼이나 하품 나오는 일이다. 문소영 논설위원 symun@seoul.co.kr
  • [길섶에서] SNS 신선놀음/문소영 논설위원

    신선놀음에 도끼 자루 썩는 줄 모른다는 속담이 있다. 나무꾼이 깊은 산에 들어갔다가 복숭아 꽃이 만개한 무릉도원의 꽃그늘 아래 바둑을 두는 영감님들에게 훈수를 몇 수 두고 돌아왔다. 그랬더니 도끼 자루는 썩었고 돌아간 고향에는 나무꾼을 아는 사람이 없더라는 이야기 말이다. 요즘엔 소셜네트워킹서비스(SNS)에서 노는 것이 신선놀음과 비슷하다. 페이스북에서 ‘좋아요’ 몇 차례 누르고 좋은 글 밑에 댓글을 몇 차례 달았을 뿐인데 시간이 광속으로 지나갔다. 카카오톡이나 밴드에서 수다를 떨다 보면 역시 서너 시간이 훌쩍 지나간다. 연말 답안지를 채점해야 할 교사들, 학회 발제문을 준비하는 학자들, 1차 마감을 놓친 번역 또는 집필원고에 대한 독촉 전화에 시달리는 작가들이 시간 낭비의 원인으로 SNS를 지목하며, 마감에 시달리는 고통을 SNS에 또 호소하고 있다. 마치 게임에 중독된 청소년들 같다. 담배 끊은 사람과는 상종하지 말라고 하듯이 SNS를 끊은 사람과는 상종하지 말라는 속담이 나올지도 모르겠다. 21세기 신선놀음 끊기는 참으로 어렵겠구나. 문소영 논설위원 symun@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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