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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울광장] 2014년 6월 지방선거와 노란 리본/문소영 논설위원

    [서울광장] 2014년 6월 지방선거와 노란 리본/문소영 논설위원

    1987년 6월, 서울 광화문 일대의 20, 30대 직장인은 퇴근하면 “최루탄이 싫어요”라고 쓴 노란 리본을 가슴에 달고 서울 명동성당을 향했단다. 얼마 전 점심을 먹다가 50대 선배의 그 말에 순간 울컥했다. 연대생 이한열이 직격탄에 맞아 죽은 뒤 시민과 정부가 치열하게 공방해 6·29선언에 도달했던 그 시기가 떠올랐다. 미개한 탓인지 사회적 우울에 쉽게 오염된다. 요즘 공감능력이라 좋게 불러준다. 대학 입학 이듬해인 1987년은 참으로 지랄 같은 해였다. 1979년 12·12 군사반란으로 권력을 장악한 전두환 소장은 1980년 ‘서울의 봄’을 억눌렀고 5월 18일 광주민주화운동도 무력으로 짓밟았는데, 이후 ‘체육관 선거’로 대통령이 된 그가 국론분열 운운하며 1987년 ‘4·13 호헌’을 선언한 탓이다. 직선제 개헌을 요구하던 시민들은 부글부글 끓었다. 대학생이 먼저 수업과 중간·기말시험 거부로 호헌철폐를 요구했다. 사립대 수험료가 아까웠지만 함께할 수밖에 없었다. 1987년 1월 ‘박종철 물고문 사건’과 6월 이한열의 죽음은 ‘호헌철폐, 직선 쟁취’로 폭발해 정치지형을 바꿨다. 젊은 ‘넥타이·하이힐 부대’가 합류한 덕분이다. 그 시절의 수많은 대학생처럼 한여름 뜨거운 아스팔트 위에서 최루탄과 지랄탄에 시달리면서 이한열처럼 직격탄에 죽지는 않아도 폐병으로 일찍 죽을지도 모르겠다고 자조했었다. 6공화국 헌법으로 국민이 직접 대통령을 뽑게 됐고, 낮은 수준이지만 민주주의 국가가 됐다는 생각에 세상은 더디지만 올바른 방향으로 전진한다는 믿음을 갖게 됐다. 직장인이 된 뒤 부정한 세력과 타협하지 않고 양심적으로 보도하면 그 나름대로 사회에 이바지한다고 믿었다. 그 후로 사회적 운동과 담을 쌓고 살았다. 돌아보면 ‘죽 쑤어 개 준’ 것 같았던 1988년 노태우 정부에서도 ‘5공 청문회’가 진행됐고 중국·소련 등 수교한 북방외교가 이뤄졌다. 1993년 문민정부, 1998년 국민의 정부, 2003년 참여정부로 진행되는 20년 동안 사회는 의미 있는 첫걸음을 내디뎠다. 전두환 재산환수의 밑거름이 된 전두환·노태우 구속 수사, 하나회 척결, 금융실명제 시행, 정부수립 50년 만의 수평적 정권교체, 남북화해시대 개막, 권위주의 해체 등이다. 그런데 그 믿음에 균열이 시작됐다. ‘부패했지만 유능한 정권’이라던 이명박 정권 때다. 규제완화라며 ‘전봇대’를 뽑기 시작하더니 KBS·MBC 등 공영방송에 재갈을 물렸다. ‘용산 재개발 참사’와 ‘청와대 민간인 사찰 사건’이 일어났다. 그래도 정부를 믿고 ‘어떻게 쌓아 온 민주주의인데 무너지겠나’ 하며 낙관했다. 특히 독재 시절처럼 정보기관이 개입된 정치조작은 불가능할 것으로 믿었다. 그러나 박근혜 대통령이 당선된 직후 국정원의 18대 대선 개입이 드러나 충격이었다. 남북정상회담 회의록 공개와 서울시 공무원 간첩 의혹 증거조작 사건도 국정원 작품이었다. 법과 정의가 제때 구현되지 않는 중에 4월 16일 세월호 참사가 일어났다. 20여년 만에 공감능력이 되살아났다. 함께 울고 분노했다. 세월호 진상규명 및 책임자 처벌을 요구한 시위에도 참여했다. 이런 ‘앵그리 맘(분노한 엄마)’을 정부는 불순세력이라고 불렀고, 일부에서는 미개하다, 백정이라고 했다. “국가안보실은 재난 컨트롤타워가 아니다”는 청와대 측의 발표를 묵인하던 여당 의원들이 박 대통령의 대형 사진을 들고 “도와주세요”라며 동정표를 구하고 있다. 제왕적 대통령제라는 한국의 대통령은 거대 여당에 국정원, 검찰, 군인, 경찰까지 공권력을 다 틀어쥐었다. 어떻게 더 도와준단 말인가. 또한 여당은 지방선거 압승으로 안정적 국정운영을 도모하겠다는 의도겠지만, 지역선거에 대통령을 개입시키는 것은 ‘사실상’ 불공정 선거 논란을 낳을 수도 있다. ‘최루탄이 싫어요’라던 1987년의 노란 리본은 6·29선언으로 완성됐다. 세월호 참사를 ‘잊지 않겠다’는 노란 리본이 완성되려면 그 첫 걸음은 국회의 철저한 진상 규명과 책임자 처벌안에서 시작해야 한다. 세월호 같은 참사를 재발방지하기 위해서 이번 6·4지방선거에서 유권자의 현명한 선택이 필요하다. symun@seoul.co.kr
  • [씨줄날줄] 가정사와 공직/문소영 논설위원

    고시 3관왕이던 판사가 세도가의 사위로 ‘영입’되었다. 그는 장인이 소속한 정당과 다른 당으로 국회의원 출마도 시도했으나 장인의 반대로 좌절했다. 가족 내 존재감이 희미했다던 그는 마침내 아내에게 이혼당하고 양육권도 박탈당했다. 이혼 2년 뒤 그는 재혼하고 국회의원도 됐다. 교육감 후보로 나선 뒤 여론조사 1위를 달렸다. 그러나 미국에 거주하는 딸이 페이스북에 ‘아버지가 우리를 버렸다’는 식의 폭로를 하자 큰 위기가 왔다. 고승덕 서울시 교육감 후보의 이야기다. 고 후보는 사퇴발표인가 싶었던 지난 1일 기자회견에서, 딸의 폭로를 ‘정치공작’이라 주장하는 대응방식으로, 고시 3관왕의 정신세계가 4차원적임을 보여줬다. 심지어 ‘자수성가’형 인재의 이미지가 강했던 고 후보는 그 나름대로 명문가 출신임도 밝혀졌다. 아버지는 서울대 의대를 나와 서울 종로에서 개업의로 일했고, 외가의 한 삼촌은 대법관을 지냈다. 윤색된 이미지가 고착됐거나 의도적으로 ‘개천의 용’으로 코스프레한 거다. 평범한 삶을 원하는 부인을 포함해 가족들은 아버지(남편)가 선출직 공직에 나가면 반대하곤 한다. 선거기간에 폭로전으로 가족의 ‘흑역사’가 시시콜콜하게 다 드러나기도 하고, 잘못 입을 놀렸다가 세간의 뭇매를 맞기 때문이다. 정몽준 새누리당 서울시장 후보의 막내아들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미개한 국민’ 운운한 사례가 그것이다. 또 공직에 나서면 유명한 아버지 탓에 ‘아무개의 아들’로 사는 것도 걱정거리다. 조희연 서울시 교육감 후보의 아들은 그런 걱정을 SNS에 올려 30만회 이상 조회 수를 올렸다. 선출직 공직이 아니더라도 표적수사를 하면 숨기고 싶은 사생활이 우수수 쏟아지기도 한다. 최근 채동욱 전 검찰총장의 혼외자식과 같은 사례다. 인터넷과 SNS가 발달하기 전에는 혼외자식 등과 같은 사생활은 용케 폭로전에서 비켜갔지만, 요즘은 가족이 SNS에 의견을 피력하기 때문에 의도적·비의도적으로 해를 끼친다. 공직 출마를 꿈꾼다면 깔끔한 사생활 유지와 가족 관리가 필요한 상황이다. 조선시대에 양반이 계집종에게 자식을 얻으면 ‘종모법’(從母法)에 따라 그 자식도 노비가 됐다. 어머니가 여종인 홍길동이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한 이유다. 하지만 미암 유희춘과 같은 일부 양반은 얼자이자 노비인 딸 4명을 면천하려고 거금을 쓴 과정을 ‘미암일기’에 꼼꼼히 남겼다. 그것이 21세기에도 한국인이 상식적으로 생각하는 부자(녀)의 관계다. 선거 결과와 상관없이 이번 기회에 고씨 부녀가 묵은 원한들을 정리하는 등 가정사가 잘 해결됐으면 좋겠다. 문소영 논설위원 symun@seoul.co.kr
  • [씨줄날줄] 유기농 식품과 유병언/문소영 논설위원

    ‘녹색혁명’(Green Revolution)은 2차 세계대전 이후 폭발적 인구증가로 대규모 식량부족에 직면했던 개발도상국들이 1950~60년대 급격한 농업 증산을 이룬 각종 개혁을 표현하는 단어다. 미국 농학자 노먼 볼로그는 녹색혁명의 선도자였던 덕분에 1970년 노벨평화상을 받았다. 다수확 품종인 멕시코 밀을 육성해 개발도상국의 식량문제를 해결한 것이다. 그 여러 가지 개혁은 일단 다수확 신품종을 개발해 심고, 대량의 화학비료를 뿌리고, 병충해를 막고자 다량의 비싼 농약을 살포하며, 대규모 관개설비(灌漑設備)를 갖추는 등 ‘효율성’에 초점을 맞춘 근대적 농업기술의 도입이다. 미국 록펠러재단과 포드재단은 1962년에 필리핀에 국제벼연구소(IRRI)를 설립하고, 1966년에 IR-8을 개발했는데 이른바 ‘기적의 볍씨’로 불렸다. 한국 정부는 이 품종을 도입해 ‘통일벼’란 이름의 신품종을 개발, 1974년부터 주력보급 품종으로 지정했다. 60대 이후의 노인들은 ‘통일벼’라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데, 미곡 증산에는 크게 기여했지만, 밥맛이 떨어지고 병충해에 취약해 농약을 대량으로 살포해야만 했기 때문이다. 그 탓에 1970년대 사회문제 중 하나가 ‘농약 잔류 쌀’이었다. 또 대량으로 투입하는 화학비료라는 것은 나트륨, 칼륨, 칼슘, 질소, 인산 등 무기화학물질을 말하는데, 이 역시 지구의 유한한 광물자원 등에서 추출해 자원고갈의 우려가 있다. 다시 말해 ‘녹색혁명’이란 당초의 생명력의 이미지와 달리 자원고갈이나 환경오염 등을 걱정하게 하는 농법이다. 1830년쯤 독일 화학자 유스투스 리비히가 밝힌, 식물 성장은 부족한 영양소가 성장을 제한한다는 ‘최소량의 법칙’을 고려하면 대량 투입된 화학비료 역시 환경오염의 원인이 된다. 최근 화학비료와 농약을 쓰지 않고 퇴비로 키운 농산물이 인기다. 이 유기농작물이 청해진해운의 실질적 소유주로 알려진 유병언씨를 추적하는 단서가 됐다. 유씨의 순천 은신처에 생수와 유기농 마른 과일을 배달하던 사람을 미행한 덕분이다. 그가 검찰의 추적이라는 위험에도 유기농 식습관을 못 바꾼 것이다. 도망치는 유씨와 검거하려는 검찰과의 숨바꼭질은 마치 영화 ‘캐치 미 이프 유 캔’(Catch me, if you can)을 보는 것 같다. 유씨를 비호하고 있는 구원파 측은 금수원에 붙어 있던 “김기춘, 갈 데까지 가보자”와 같은 현수막을 검찰에서 떼어달라고 요청했다고 폭로해 뭔가 말 못할 사정이 있는 듯한 의혹을 자아내려 했다. 현상금 5억원의 세금도 절약할 겸 유씨는 어서 자수해 세월호 침몰의 진상을 소명하고, 책임질 일은 책임지길 바란다. 문소영 논설위원 symun@seoul.co.kr
  • [길섶에서] 공짜 버스/문소영 논설위원

    경기 고양시 일산에서 서울 광화문으로 향한 출근버스에 얼룩무늬 군복을 입은 육군 장병 열두어 명이 우르르 탔다. 외박이나 휴가를 나온 모양이다. 관용적으로 ‘군인 아저씨’라 부르지만, 얼굴에 솜털이 보송보송하다. 그중 한 사람이 1만원을 들고 거슬러줄 돈이 부족하다는 버스 운전사와 옥신각신했다. 동료가 100원 동전을 모았지만, 역부족이었다. 지갑을 꺼낼까 말까 망설이는데, 맨 앞 좌석에 타서 그 광경을 지켜보던 60대 여성 승객이 부스럭거리며 핸드백을 열어 1000원권을 먼저 내밀었다. 20대 군인 아저씨가 예의 바르게 머뭇거리자, 그녀는 어머니의 표정으로 “괜찮다”고 거듭 권유했다. 겨우 1000원 한 장이 만들어낸 가치는 컸다. 모두 환하게 웃었고, 우리가 생판 남은 아니라는 신뢰도 생겼다. 불교에서 유래했을 적선(積善)은 남을 돕는다는 의미로 굳어졌지만, 한자 그대로 해석하면 착한 일을 쌓는 것이다. 정월 대보름 개울에 돌다리를 놓거나 길에 돈을 놓아두고 낯선 누군가의 노자를 보태는 일도 적선이라 불렀다. 적선은 대가가 없어도 ‘우리’의 즐거움과 평안을 위한 것임을 또 깨닫는다. 문소영 논설위원 symun@seoul.co.kr
  • [씨줄날줄] 간척과 철새/문소영 논설위원

    우리나라는 국토의 70%가 산림지대다.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나라에서 좁은 땅덩이를 늘리겠다는 야심적 정책이 간척사업이다. 1910년 일제시대부터 시작됐는데, 개펄을 땅으로 만드는 일이 중요하다는 국민적 각인은 박정희 대통령 때 강화된 것 같다. 다도해인 서해안과 남해안을 이어 만든 간척지 개간 현황을 국토지리에서 배우면서 흐뭇해했던 기억들을 40~60대들은 떠올릴 것이다. 대표적인 간척사업으로 계화도 간척사업(1963~1968)과 시화지구 간척사업(1987~1997), 서산·대호 간척사업(1980~1996), 새만금 간척사업(1991~2004)이 있다. 간척지를 조성한 뒤 농경지나 공장 부지 등으로 사용하면 경제적 가치가 크다고 알려졌다. 서산 등 간척지에서 재배한 쌀이 더 맛있다는 주장도 있다. 하지만 시화지구 간척사업 이후 공해문제가 제기됐고, 새만금의 활용도를 두고 대통령 선거가 있을 때마다 논란을 빚었던 탓에 간척사업의 결과가 꼭 긍정적이지만은 않다. 특히 1990년대 중엽 이후 간척사업이 자연 생태계를 파괴하고 어민의 생존권을 침해한다는 등의 문제제기가 잇따르면서 갈등과 대립이 더 커졌다. 조수가 드나드는 개펄에는 게나 낙지, 꼬막 등 다양한 종류의 생물들이 서식하고, 연안 해양 생물의 66%가 갯벌 생태계와 직접 관련이 있다. 어업도 물고기를 잡는 것만큼이나 개펄 채취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육지에서 내려온 오염물질의 정화와 아름다운 해변, 홍수방지, 태풍과 해일의 완충지 등이 개펄의 추가된 역할이다. 즉 개펄은 육지로 전환할 때보다 더 가치와 생산성이 높다는 것이다. 그래서 최근엔 충청남도 서산 천수만에서 역간척사업도 진행된다. 개펄 보존과 간척사업 사이에는 말 못하는 이해 당사자가 하나 더 있었다. 철새다. 세계 조류학자들은 지구의 남반구와 북반구를 오가는 철새 이동경로를 9개로 나누는데, 한국·중국·일본은 동아시아·대양주 하늘길에 속해 있다. 도요새류와 물떼새류를 비롯해 155종의 새들이 여기를 지나가는데, 땅덩이가 큰 중국조차 개펄 개발사업에 뛰어들어 서해안과 발해만의 개펄이 빠른 속도로 사라지고, 때문에 철새들이 멸종 등의 위기에 처했단다. 서해안과 발해만 개펄은 남쪽 철새가 3~5월에 북쪽으로 더 올라가기 위한 중간 기착지로 체력을 보충하는 곳이다. 1992년 이래 7종의 도요물새떼 숫자가 43~79%까지 감소했다. 붉은어깨도요새는 2020년이면 1990년대 숫자의 30%만 남게 될 것이라고 한다. 큰뒷부리도요새나 넓적부리도요새의 운명도 마찬가지다. 지구를 독점할 자격이 없는 인간들이 다른 생명체의 생존을 위협하다니 뻔뻔했다. 문소영 논설위원 symun@seoul.co.kr
  • [길섶에서] 이상 더위/문소영 논설위원

    5월인데 푹푹 찐다. 올해는 봄도, 더위도 빨리 왔다. 산과 들에서 야생화를 계절마다 찍는 사람들은 그래서 올해 혼비백산했다. 봄꽃과 여름꽃 등은 꽃피는 시기와 순서들이 따로 있는데, 올해 뒤죽박죽 된 탓에 기대한 꽃을 찍지도 못한 때문이다. 이를테면 경기도 북부 축령산에서 나도바람꽃이나 홀아비바람꽃은 5월에 피는 꽃인데 날이 더워지자 4월 중순에 얼른 피었다가 흔적도 없이 져버렸다. 남쪽에선 3월 목련, 4월 벚꽃이란 등식도 사라지고 3월 중순 무렵 함께 피었다 함께 사라졌다. 6월에 필 찔레꽃과 아카시아꽃도 보름이나 일찍 피어 진한 향기를 날리고 있다. 한여름에 피는 큰뱀무와 기린초 같은 꽃도 벌써 등장했다. 어제오늘 서울은 섭씨 27~29도다. 대구, 경남 합천 등은 30도를 넘기도 했다. 느닷없이 작동시킨 에어컨도 더위에 허덕허덕한다. 기온이상은 저온현상도 가져왔다. 지난 5월 5일 전후로 소백산 쪽에는 서리가 내리기도 했다. 갑작스러운 더위에 업무 능률이 떨어진다. 대청에 누워 책을 읽다가 솔솔 잠들던 여름방학이면 좋겠다. 문소영 논설위원 symun@seoul.co.kr
  • [길섶에서] 그리기와 쓰기/문소영 논설위원

    그림을 그리거나 글을 쓰는 행위는 희한하게도 치유의 효과가 있다. 묘사력이나 문장력이 좋지 않아도 상관없다. 구석기 인류인 크로마뇽인이 그린 스페인 알타미라 동굴의 벽화나 프랑스 라스코동굴 벽화에는 살이 통통하게 찌고 건강한 매머드, 들소, 사슴 등이 그려져 있다. 전문적 화가가 존재하지는 않았을 시대니 눈이 밝고 손재주가 있는 인류가 그렸을 것이다. 동굴의 굴곡을 활용해 넓은 어깨 등을 표현했다니 과학자 같은 기질도 있었을 것 같다. 구석기 벽화는 그림이지만 글이기도 했다. 들소나 사슴, 매머드와 같이 아름답고 건강하길 바랐거나, 추위나 맹수를 피해 들어가 배고픔에 굶주리면서 살고 싶은 욕망과 배부르게 먹고 싶다는 기대를 표현했을 듯싶다. 그림의 수준을 볼 때 종교의식에 사용됐다는 추정도 있다. 서울신문 신춘문예 소설부문 당선자인 김가경씨는 특정인에 대한 복수를 위해 소설을 썼는데, 글을 쓰면서 어느덧 분노와 갈등이 사라졌다고 밝혔다. 우리는 어릴 적에는 화가, 청년기에는 문학청년이었다. 그때로 돌아가 글 쓰고 그림 그리며 자신을 위로하고 마음의 평화를 얻었으면 좋겠다. 문소영 논설위원 symun@seoul.co.kr
  • [문소영의 시시콜콜] “박근혜를 왜 욕해”라는 호통은 이제 그만!

    [문소영의 시시콜콜] “박근혜를 왜 욕해”라는 호통은 이제 그만!

    “박근혜가 뭘 잘못했다고 욕을 해”라는 버럭 소리에 깜짝 놀라 돌아보면 70~80대 할아버지들이 있었다. 마치 친여동생을 감싸듯이 옹호했다. 엘리베이터나 지하철 경로석과 같은 공공장소도 가리지 않고 목청을 높였다. 지난해 김용준 총리 내정자의 부정축재와 이동흡 헌법재판소장 후보자의 개인비리 등으로 인사 파동이 났을 때, 윤창중 전 청와대 대변인이 미국 국빈방문 길에 인턴 여직원을 성추행하는 사건을 저질렀을 때다. 박 대통령이 그때는 그나마 사표도 받고 경질도 했다. “박 대통령이 왜 책임을 져야 하느냐”는 반문이 세월호 참사 이후 자주 들린다. 침몰하는 배에서 승객을 구조하지 못한 것은 해경이고, 300명이 넘는 승객에게 “가만히 있어라”라고 방송하고서 줄행랑친 것은 세월호 선장과 선원들이라는 것이다. 팽목항에서 서남수 교육부 장관이 계란 없는 컵라면을 먹은 것도, ‘청와대는 재난컨트롤 타워가 아니다’는 김장수 청와대 국가안보실장 발언도 대통령의 잘못은 아니라는 것이다. 정말 그런가? 정부의 실패는 행정부를 총괄하는 대통령이 무한 책임을 져야 한다. 그러니 대통령은 해경의 무능과 공직자의 부적절한 언행, 무너진 기강에 엄중히 경고했어야 했다. 그러지 않았다. 그런 탓에 행정부와 청와대의 얼빠진 언행은 계속됐다. ‘조문 사진 파동’도 그 하나다. 유가족이 아닌 할머니와 찍은 사진이 유가족을 위로하는 사진으로 둔갑해 방송과 신문에 보도됐다. 청와대 홍보수석실에서는 유가족들이 문제제기하기 이전에 오해가 없도록 언론에 설명했어야 했다. 그러지 않았기에 김기춘 청와대비서실장이 ‘조문 할머니’ 연출 의혹을 제기한 언론에 낸 소송은 적반하장으로 비치는 것이다. KBS가 공정방송과 재난보도에 실패한 원인이 청와대 탓이라는 내부고발에는 침묵하면서, 방송통신심의위원장에 대통령 선거캠프와 인수위에 참여했던 박효종 교수를 내정한 것도 문제다. 관피아 해체를 선언하면서 공공기관에 낙하산 인사를 진행한 것이다. 게다가 청와대 언론장악 논란이 벌어지는 시점이 아닌가. 심지어 대통령이 대국민 담화문을 발표하고 눈물로 사과하던 19일 유가족은 사복경찰의 사찰을 받았고, 경찰은 세월호 진상 규명을 요구하는 시위에 나선 시민을 붙잡아 그중 200여명을 사법 처리하겠다고 했다. 정부와 손발이 맞지 않으니 대통령의 선의가 의심받는다. 그러니 대통령에게 책임을 묻지 말라는 호통은 이제 그만 해야 한다. 대통령이 인사로 문책하고 책임질 때 정부 내 온갖 부조리가 해결된다. symun@seoul.co.kr
  • [길섶에서] 광장시장 ‘마약김밥’/문소영 논설위원

    서울 종로구 예지동 광장시장은 야시장도 유명하다. 예전에는 결혼을 앞둔 예비 신혼부부들이 원앙금침과 새 한복도 맞추는 곳이었는데, 요즘은 저녁약속을 광장시장에서 한다. 타이완의 야시장 같은 분위기다. 돼지머리 고기와 순대, 솥뚜껑만 한 녹두 빈대떡 등이 싼 가격에 푸짐하게 나온다. 시장통에서 왁자지껄하게 대화하다 보면 사람 냄새를 진하게 맡을 수 있고, 막걸리도 괜히 더 감칠맛이 난다. 최근에 먹어본 색다른 음식이 ‘마약김밥’이다. ‘광장시장 마약김밥’은 반드시 먹어봐야 한다고 성화를 부려 맛본 그 김밥은 간단했다. 충무김밥처럼 한입에 먹을 수 있도록 어른 검지만 하게 말아놓은 김밥 속에 가느다란 단무지와 홍당무가 서너 가닥 들어 있다. 일에 바쁜 시장일꾼들이 싼 가격에 정신없이 주워 먹는 맛이라고 해서 ‘마약김밥’이라 부른다고도 했다. 너도나도 재미 삼아 먹어보니 상한가를 치는 인기 탓에 마약김밥의 몸값은 제법 세다. 김밥 속 재료가 잔뜩 들어간 여느 김밥보다 싸지 않다. 서민들 인기에 부응해 변하지 않는 싼 가격과 맛으로 승부해 주면 어떨까 한다. 문소영 논설위원 symun@seoul.co.kr
  • [길섶에서] 진공관 앰프/문소영 논설위원

    7~8년 전 사용하던 앰프는 진공관이었다. ‘매킨토시 275’. 어둑어둑할 때 켜놓으면 백열전구같이 따뜻한 빛을 내며 반짝반짝하는 모양이 예뻤다. 오디오 마니아들은 진공관 앰프로 음악을 들어야 제대로 된 음악을 듣는다고 주장한다. 주변에서 구리 케이블을 은이나 금케이블로 바꾸거나, 고음·저음이 제대로 발현되지 않는다며 스피커를 두어 달에 한 번씩 바꾸는 광경을 봤다. 기계의 교체에 들어가는 엄청난 액수를 보며 ‘진짜 음악이 좋으면 공연장에서 직접 들으면 될 텐데’ 싶었다. 다 잊고 있다가 취미로 진공관 앰프를 제작하는 사람을 알게 됐다. 10W 또는 15W의 소출력 앰프인데 구경하다 보니 탐심이 불쑥 올라온다. 최근 ‘쿠르베’ 브랜드로 스피커를 제작하는 친구도 알게 됐다. 원래 오디오 마니아로 용돈을 모아 아내 몰래 기계교체를 취미로 삼다가 해직기자가 되자 생업으로 돌린 것이다. 그 스피커는 멋진 디자인과 사운드 덕분에 김희애와 유아인이 출연하는 드라마 ‘밀회’에서도 소개됐다. 견물생심이라고 진공관 앰프와 스피커까지 탐심이 들끓고 있다. 문소영 논설위원 symun@seoul.co.kr
  • [씨줄날줄] 유언비어 세상/문소영 논설위원

    윤상현 새누리당 의원이 지난 8일 원내수석부대표 이임 자리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은 서해 북방한계선(NLL) 포기라는 말씀을 한 번도 하지 않았다”면서 “일국의 대통령이 NLL을 포기할 수 있었겠느냐. 그것은 아니라고 본다”고 밝혔다. 1년 전과 180도로 입장을 바꾼 것이다. 그는 지난해 6월 28일 원내대표단회의에서 “노 전 대통령은 극히 비정상적인 저자세로 회담을 했다. NLL을 상납하고…”라며 적극적으로 노 전 대통령을 비난했다. ‘노무현 NLL 포기’ 주장은 2012년 새누리당이 이 의혹을 적극적으로 대선 홍보에 활용하면서 시작됐다. 당시 김무성 총괄선대본부장은 부산 유세에서 ‘노무현 NLL 포기’ 내용을 담은 정체불명의 문서를 줄줄 읽어 내려갔는데 지난해 6월 남재준 국가정보원장이 ‘2007년 남북 정상회담 회의록’을 전격 공개한 뒤에 보니 거의 똑같았다. 기밀문서의 사전 유출 의혹이라든지 국제적 관례의 훼손 논란, 정치 개입이 금지된 정보기관에서 국가기밀을 정쟁의 도구로 악용한 문제 등은 거의 부각되지 않았다. 국정원 대선 개입 사건을 덮기 위한 물타기 공세라는 지적 속에 야당은 수세적 방어에 급급했다. 당시 공개된 회의록을 읽어 보면 노 전 대통령이 NLL을 포기한다고 발언한 사실이 없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대다수 국민은 읽지 않은 채 여당의 주장을 반신반의하며 믿었고 특히 ‘노무현과 노빠’라면 질색하는 사람들은 책임 있는 자리에 있는 정부와 여당의 실세 정치인이 말할 때는 근거가 있을 것이라며 맹신했다. 그러니 윤 의원의 느닷없는 발언은 우리 국민이 무려 2년 가까이 정부, 여당의 ‘노무현 NLL 포기’ 유언비어에 놀아난 것은 아닌지 당혹스럽게 한다. 이에 같은 당 하태경 의원은 “뒤늦게나마 솔직하게 인정한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라고 평가하며 “정상회담 비밀문서를 공개한 국정원장 사퇴와 국정원장에게 놀아난 새누리당 지도부의 대국민 사과”를 요구했다. 남 원장은 지난해 6월 “노 전 대통령이 김정일 앞에서 NLL을 포기했기 때문에 그 반역을 알리려고 공개”한다고 주장했다. 사실관계가 달라진 만큼 국론을 분열시키고 국익을 훼손한 데 대해 응분의 책임을 물어야 하지 않을까. 경질도 고려해야 한다. 숙종도 장희빈이 유포한 유언비어와 감언이설에 속아 인현왕후 민씨를 폐서인했다가 나중에 잘못을 깨닫고 희빈에게 사약을 내리고 인현왕후를 다시 불러들이지 않았는가. 세월호 참사와 관련해 발 빠르게 유언비어 단속에 나선 정부의 신속한 행정력을 기대한다. 한편 윤 의원은 자신의 발언이 화제가 되자 11일 “입장이 바뀐 것은 없다”고 해명했다. 문소영 논설위원 symun@seoul.co.kr
  • [길섶에서] 기념일/문소영 논설위원

    1일 노동자의 날, 5일 어린이날, 8일 어버이의 날, 15일 스승의 날 등 5월은 기념일이 많다. 그래서 5월에는 은행 잔고가 빨리 바닥을 드러낸다는 앓는 소리에 익숙해진다. 문득 ‘어른의 날’은 왜 없을까 생각해봤다. 선거권을 가진 사람들을 ‘어른’으로 정하고서 꽃과 선물을 주고, 축하하는 것이다. 상상해보니 내수진작에도 좋을 것 같다. 이런 날도 제정하면 어떨까. 대통령의 날, 국무총리의 날, 장관의 날, 재벌의 날 등등. 사방에서 돌이 날아들어 오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지만, ‘평생 엉뚱한 상상을 해보지 않은 분들’만 돌을 던지시라. 기념일은 365일 중에서 단 하루 특정인의 노고를 고마워하고, 그를 소중하게 여기라는 뜻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손꼽히는 긴 노동시간을 가진 한국의 노동자나, 국가 유공자, 어른의 부속품쯤으로 취급되던 어린이를 보호하는 식으로 말이다. 그러니 기념일의 대상이 된다는 것은 현실적 지위가 낮거나 열악한 것을 증명하는 거다. 365일 ‘뻔뻔하게 잘사는’ 어른의 날 제정 건의는 상상 속에서만 해야겠다. 문소영 논설위원 symun@seoul.co.kr
  • [씨줄날줄] 출판사 구조조정/문소영 논설위원

    세계인이 열광하는 월드컵이 열리는 해는 출판계에는 지옥 같은 해다. 그러잖아도 가뭄에 콩 나듯 듬성듬성한 매출은 오는 6월 중순 예선전과 함께 뚝 떨어져 ‘절벽매출’이 될 것이다. 출판사는 인터넷 서점의 등장으로 동네 출판사가 몰락해 책을 만들어도 보낼 곳을 잃었고, 독서보다 훨씬 재미있는 유흥거리가 손바닥의 스마트폰에 집중된 탓에 매년 독서인구가 줄어들고 있지만, 돌파구를 찾지 못하고 있다. 그나마 지난달 29일 도서정가제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했지만, 이 개정법이 ‘숨통’이 될지 또 다른 ‘목눌림’이 될지는 알 수 없다. 올 들어 좀 팔린 책이 있다는 이야기를 출판계에서 들어보지 못했다. 출판사 매출을 제로로 만드는 블랙홀은 사실 월드컵뿐이 아니다. 동계·하계 올림픽, 대통령·국회의원·지방자치단체 및 의원 선거, 대형 사건·사고 등이다. 이 기준을 적용하면 영세한 출판사와 직원들이 어떻게 올해를 날까 걱정된다. 지난 2월 소치 동계올림픽이 열렸다. 3월은 야권의 합당이 관심사였다. 4월 세월호 침몰 참사가 발생해 그 여파가 가라앉지 않고 있다. 오는 6월 4일 지방선거는 세월호 참사에서 보여준 여야의 무능함에 분노해 어느 쪽도 지지하지 않는 무당파가 증가해 선거결과가 오리무중이지만 선거가 임박하면 점차 관심이 증대될 것이다. 한국 기준으로 오는 6월 13일~7월 14일까지 열릴 브라질 월드컵은 출판 초토화의 가장 강력한 토네이도가 될 것이다. 7월 초 한국팀의 16강진출 여부와 상관없이 FIFA컵의 주인공이 브라질의 삼바 축구냐, 스페인의 무적함대냐, 프랑스의 예술축구냐, 독일의 전차군단이냐를 두고 날밤을 새울 것이니, 언제 책을 읽을 것인가. 가을에는 인천에서 아시안게임도 열린다. 이런 불리한 상황에서 출판사들이 최근 시작한 일은 인적 구조조정이다. 출판사 맏형 같은 M사가 3월 말에 진행했다가 직원들의 반발과 외부에 알려지자 철회했다. 또 다른 대형 출판사 K사도 구조조정을 단행했다. 그래서 다들 우려하는 시선으로 출판계를 바라보고 있다. 건강하고 활발한 출판문화가 형성돼야 지식산업에 종사하는 창백한 지식인들이 가늘게나마 호흡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 경제의 돌파구는 수년 전부터 내수 활성화였다. 내수를 활성화하려면 일자리가 유지돼야 하고, 일자리가 유지돼야 내수가 활성화되는 선순환 구조로 들어갈 수 있다. 독일은 통일의 여파로 1990년대 경기침체가 오자 근무시간 단축과 일자리 나누기로 경기침체를 돌파했고 현재 유럽 최강국이다. 불황이지만 문화창조와 융성의 토대인 출판계가 일자리를 없애지 말고 다른 대책을 마련할 수는 없을까. 문소영 논설위원 symun@seoul.co.kr
  • [길섶에서] 부레병/문소영 논설위원

    금붕어가 노환(老患)이다. 마트 어항에서 집 어항으로 옮겨온 지 3년째인데, 5개월 전부터 배영을 하면서 유유자적 하루해를 보낸다. ‘부레병’을 앓고 있다. 부레는 물고기가 내부 가스양을 조절해서 위아래로 헤엄치기 좋게 하는 기관인데, 부레병에 걸리면 균형을 잡지 못하고 뒤집히게 된다. 흔히 오염된 물에 살면 걸린다는데 억울하다. 녹조가 조금이라도 끼면 여지없이 갈아주고 수돗물 대신 생수를 채워주기도 했는데 말이다. 집에서 금붕어를 키운 것은 7~8년 전 ‘찬물에서 금붕어의 활동 성향’이란 초등학교 과학실험을 마친 뒤에도 힘 좋게 펄떡거리는 금붕어를 아이가 싸들고 왔기 때문이었다. 머리에 검은 점을 가진 그 금붕어 이름은 ‘블랙’이었고 그 뒤로 ‘화이트’, ‘골드’, ‘오렌지’, ‘탠저린’ 등으로 부르던 금붕어들을 키웠다. 블랙이 배영을 시작했을 때 인터넷을 찾아보니 비관적으로 설명해 놓았지만, 그 후 3개월을 너끈하게 살았다. 여기저기 비늘이 떨어져 나간 이 ‘무명씨’ 금붕어는 더 잘 버티고 있다. 어항 물관리에 더 심혈을 기울여 더 오래 살도록 돌봐줘야겠다. 문소영 논설위원 symun@seoul.co.kr
  • [문소영의 시시콜콜] 국가 개조가 아니라 리더십 개조다

    [문소영의 시시콜콜] 국가 개조가 아니라 리더십 개조다

    옛날에는 자녀가 많아도 “저 먹을 것은 타고 난다”며 태평했다. 1960년대에도 5~8남매를 어렵지 않게 봤다. 서울 중구 장교동의 50대 중반 치과의사는 “형제만 다섯인 집안의 막내로 태어나 경쟁하느라 힘들었다. 반찬이라고는 총각김치 하나 올라왔는데, 밥상에 앉자마자 총각 무 하나를 밥그릇 속에 묻어둔 뒤에야 밥을 먹기 시작했다”고 하며 낄낄댔다. 한창 자랄 나이에 먹을 게 충분하지 못해 밥상 앞에서 다투는 자식들을 보면서 주린 배를 하고도 부모들은 행복했던 게 아닌가 싶다. 옛 어른들의 낙관주의를 ‘못 배우고 무능한 사람들의 무책임한 행동’이라고 치부했던 정부는 “아들·딸 구별 말고 둘만 낳아 잘 기르자”에서 더 나아가 “하나만 낳아도 지구는 만원”이란 산아제한 표어를 남발했다. 정관수술자에게는 예비군 훈련을 면제해 주기도 했다. 이런 표어를 청소년기에 각인한 세대들이 30~50대들이다. 정부의 확신에 찬 캠페인 덕분에 그 세대들은 무자녀거나 한두 명만 겨우 낳았고, 한국은 세계 최저출생률을 자랑(?)하는 나라로 ‘개조’됐다. 그러나 이제 정부는 저출산 때문에 산업생산력이 저하되고 고령화가 사회적 문제라고 또 난리다. 저출산은 어찌 보면 20~30년 앞도 내다보지 못하는 국가정책을 신뢰하고 국민이 열심히 따라온 덕분이다. 그러니 대통령이나 정부가 또다시 어설픈 국가개조를 선언하고, ‘나만을 따르라’고 국민을 윽박지르는 것은 이제 그만했으면 한다. 오히려 ‘리더십 개조’가 필요한 시점이다. 터무니없는 낙관이라며 비웃던 “저 먹을 것은 타고난다”는 표현을 되돌아본다. 아기가 쌀 짐을 짊어지고 태어날 리는 만무하지만, 그 아기의 탄생과 성장을 한 가족뿐만 아니라 주변의 일가친척과 이웃, 온 마을 사람들이 모두 축복하고 보살펴 주었다는 이야기가 아닐까 싶다. 심봉사의 딸 심청이도 마을 아주머니의 동냥젖 덕분에 효심이 가득한 소녀로 자라지 않았는가 말이다. 가난했던 시절에는 ‘내 새끼’만 잘 자라고 성공하는 것이 아니라, 남의 자식도 잘 자라고 성장하도록 격려하고 힘을 주는 공동체 의식이 살아있었던 것이 아니었을까. ‘네 자식이었으면 그렇게 구조했겠느냐’는 반문은 그래서 뼈아프다. 단원고 학생을 자녀로 둔 팽목항의 유가족 중 한 분이 “가난했지만 행복했던 가정에 이제 가난만 남았다”고 탄식했다고 한다. 아이 하나를 키우는 데도 한 마을이, 더 나아가 제대로 된 국가가 필요하다는 사실이 요즘처럼 절실할 때가 없다. symun@seoul.co.kr
  • [씨줄날줄] 공개채용의 함정/문소영 논설위원

    “적선이 오지 않았다. 여러 장수를 불러 대책을 논의했다. 우수사 김억추(億秋)는 겨우 만호깜냥이나 될까 대장으로 쓰일 재목은 못되는데도 좌의정 김응남(應南)이 서로 친밀한 사이라고 해서 억지로 임명하여 보냈다. 이러고서야 조정에 사람이 있다고 할 수 있는가. 다만 때를 못 만난 것을 한탄할 뿐이다.” 정유재란 중인 1598년 9월 8일(음력) 삼도수군통제사 이순신은 ‘난중일기’에 이렇게 써놓았다. “신에게는 아직 12척의 배가 남아 있다”면서 선조와 조정을 안심시키던 이순신이었지만 명랑해전을 일주일 앞둔 상황에서 중앙 정부에서 대장감이 아닌 인사를 전라우수사로 발령하자, 신세 한탄을 하지 않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김억추가 대장감이 아니라는 평가는 8일 뒤 작성한 난중일기에서 적나라하게 확인된다. “여러 장수가 적은 군사로써 많은 적을 맞아 싸우는 형세임을 알고 돌아서 피할 궁리만 했다. 우수사 김억추가 탄 배는 물러나 아득히 먼 곳에 있었다. 나는 노를 바삐 저어 돌진하여 지자총통, 현자총통 등 각 총통을 어지러이 쏘아대니….” 이순신은 배와 빈약한 병력뿐만 아니라 능력이 모자라는 정실로 발탁된 장수들을 껴안은 채 130여척의 왜군과 싸워 30여척을 격침하는 전과를 냈다. 이순신을 보면 유능한 지도자는 무능하고 부족한 부하들을 데리고도 혁혁한 전과를 올리는 것이지, 그들의 무능을 탓하며 자신의 무능을 덮지는 않는 것이라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이용욱 해양경찰청 정보수사국장이 지난 1일 본청의 국제협력관으로 보직 이동됐다. 우선 세모 조선사업부에서 1991~97년까지 일한 이 국장은 청해진 해운의 실소유주로 주목받는 유병언 전 세모 회장의 지원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만큼 세월호 구조작업 총괄자로 부적절하다고 지적됐다. 또 1997년 해경의 경정 특채가 특혜라는 의혹도 나왔다. 이 국장은 부산대 조선공학 박사학위 소지자로 조함 분야에 채용됐지만, 당시 응시자격은 ‘해군 소령 이상, 정부부처 5급 이상, 정부관리업체 차·과장으로 3년 이상 근무한 자’였다. 즉 채용기준에 맞지 않았다. 게다가 경비함 건조와 관리담당인 조함직으로 들어와 막강한 권한의 정보수사국장직에 오른 것도 논란거리다. 채용부터 승진까지 ‘보이지 않는 힘’이 개입했을 개연성이 제기되는 이유다. 민간인 전문가를 영입해 관료 조직을 자극하고 전문성을 강화하겠다던 공개채용에 공무원 출신이 내정되거나, 정실이 개입한 지 오래다. ‘무늬만 공개채용’으로 변질됐다. 권력과 줄 닿은 정실 인사는 조선시대부터 내려오는 오래된 관행이자 적폐들인데, 어떻게 개혁해 나갈지 걱정이다. 문소영 논설위원 symun@seoul.co.kr [반론보도문] 유병언 전 회장 측은 유 전 회장이 청해진해운의 주식을 소유하지 않았기 때문에 회사의 실소유주가 아니라고 밝혀왔습니다.
  • [길섶에서] 소화불량/문소영 논설위원

    2주 전부터 심해졌지만, 4월 내내 먹고 체하고를 반복하고 있다. 평소 건전한 상식으로 세상을 살아온 사람들은 대체로 이런 증상에 시달리고 있다고 했다. 경기도에 사는 한 동화작가는 지난 29일 오전 서울광장에 설치된 ‘세월호 희생자 합동 분향소’에서 4차례나 분향하고, 노란 리본에 “잘 가라”는 인사를 하며 스스로를 위로했다. 그는 “습관적으로 끼니가 되면 밥을 먹지만 체기가 있어서 괴로워하는 사람들이 많다”면서 “어서 마음을 수습해야 할 텐데…” 하고 걱정했다. 시간이 흐르면서 슬픔이 잦아들기는커녕 눈덩이처럼 커지고 있다는 것이 이번 참사의 고통스러운 특징이다. 그 역시 책을 읽을 수도, 글을 쓸 수도, 모임에 참여할 수도 없어 최근에 시간 날 때마다 장자의 책 한 권을 세로쓰기로 베껴 쓰면서 마음을 다스렸다고 했다. 그는 “50 초반까지 살면서 온갖 불행을 내 탓이라며 수용해 왔는데 이번만은 슈퍼맨처럼 지구를 거꾸로 돌려 시간을 되돌리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다”고 말했다. 눈물 젖은 눈으로 누가 어떻게 책임져야 할 것인가를 따지다 보니, 슬픈 중에 분노가 힘이 된다. 문소영 논설위원 symun@seoul.co.kr
  • [길섶에서] 봄 가뭄/문소영 논설위원

    한반도의 봄 가뭄은 유명하다. 조선왕조실록에서 기우제를 검색하면 세종 때 199건으로 가장 많고, 고종 186건, 숙종 177건, 영조 174건, 순조 128건 등 순으로 나온다. 조선의 논은 대개 천수답이었다. 관개시설도 변변찮았고 낮은 지대에서 높은 지대로 물을 끌어오는 수차도 없었으니 하늘만 바라봤다. ‘무식한 농부’는 그렇다 치고, 농본주의를 내세운 국가에서 왕과 신하가 수차제작과 같은 대책도 없이 기우제만 지낸 것이 의아하다. 벼농사가 잘못되면 한 해 내내 가족이 굶주리곤 했으니, 봄 가뭄이 닥치면 농민의 마음은 쩍쩍 갈라지는 논바닥과 같았을 것이다. 조선시대에 모내기를 하면 이모작으로 수확이 많아지지만, 이 이앙법 대신 마른 논에 볍씨를 뿌리는 직파법을 선호했던 이유는 게으름이 아니라 봄 가뭄 탓이었다. 그래서 한반도의 봄비는 생명의 비이고, 기쁨의 비였다. 농부는 비가 오면 “나락이 떨어진다”며 반겼다. 연 이틀 비가 오고 있다. 파종한 씨앗들이 새싹을 올리지 못하는 지독한 가뭄을 끝내고, 풍요롭고 안심할 수 있는 시절로의 복귀를 예고하는 비였으면 좋겠다. 문소영 논설위원 symun@seoul.co.kr
  • [길섶에서] 눈물/문소영 논설위원

    ‘악어의 눈물’이 있다. 이집트 나일강의 악어는 홍수로 떠내려오는 사람을 잡아먹고 난 뒤 눈물을 흘린다는 전설에서 유래했다. 영국의 문호 셰익스피어가 ‘햄릿’이나 ‘오셀로’ 등의 작품에 인용해 유명해졌고, 위선적인 행위를 일컫는 관용어가 됐다. 그러나 악어의 눈물은 눈물샘의 신경과 입의 신경이 같아서 악어가 먹이를 먹으면 저절로 눈물이 나와서 수분을 보충해주는 자연스러운 반응이다. 지난날 잘못에 책임을 지고 사퇴하는 정치인이나 고위 공직자들의 눈물을 자주 본 탓에 국민의 동정을 사려는 ‘악어의 눈물’에 손가락질을 많이 했다. 하지만 요즘엔 위선적이라는 비난 탓인지 참회의 눈물조차 흘리지 않는다. ‘세월호 침몰 참사’를 보도하다가 JTBC의 앵커 손석희와 시사평론가 정관용이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누군가는 ‘감성 눈물쇼’라고 비난했다. ‘질서 있게’ 죄 없는 300여명이 수장됐는데 어찌 울지 않을 것인가. 지금 울지 않으면 대체 언제 울고 치유할 것인가. 삭막한 ‘얼음공주’보다 눈물 흘리고 슬픔에 공감하는 기자나 TV 진행자에게 더 큰 신뢰를 보내고 싶다. 문소영 논설위원 symun@seoul.co.kr
  • [길섶에서] 잡초적 자율성/문소영 논설위원

    이른 봄엔 잡초라도 파란 싹을 올리면 기분이 좋다. 특히 시멘트 틈을 뚫고 올라오는 모습은 경이롭다. 장미나 목련 등과 같이 정원에서 대접받고 자라지 못해 ‘이름 모를 잡초야’라고 노래하지만, 도시인들이 눈여겨보지 않고 변변치 않게 바라봐서 그렇지 다들 버젓하게 이름도 있다. 잘 알려진 민들레나 꽃다지, 질경이, 제비꽃 말고도 꽃말이, 쇠비름, 쇠뜨기, 큰개불알풀, 애기똥풀, 개망초, 개미자리 등도 도시에서 흔히 볼 수 있다. 이들이 3월 초부터 노란, 하얀, 보라, 파란 꽃을 피어 올리면 잡초라고 부르기 민망하고, 예뻐서 마음이 환해진다. 지난해 늦가을, 사는 지역의 공원 관리자들이 추운 겨울에 국화를 보호한다며 화단에 볏짚을 엮어 덮어놓았다. 3월에 그 덮개를 벗겨 냈지만, 4월 말에도 아무런 싹을 보지 못하고 있다. 인간이 식물과 흙, 환경의 관계를 잘못 이해해서 한참 생명이 넘쳐나야 할 화단이 텅 빈 것은 쓸쓸하다. 아무런 보호 없이 잡초는 겨울을 뚫고 자신의 꽃을 피운다. 잡초처럼 자율적·합리적으로 생각하고 행동하며 마음이 시린 이 시기를 잘 견뎌내려고 한다. 문소영 논설위원 symun@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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