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경부-금감원 ‘한 정부 두 목소리’
재정경제부와 금융감독원이 인수·합병(M&A)에 관해 의견충돌을 빚고 있다. 권오규 경제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은 24일 “M&A 규제가 지금보다 강화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으며, 외국자본에 대한 부정적 인식도 하루빨리 바뀌어야 한다.”고 말했다.
●권부총리,“M&A규제 바람직하지 않다.”
권 부총리는 이날 제주 신라호텔에서 전국경제인연합회 주최로 열린 하계포럼에서 ‘자유무역협정(FTA) 시대의 경제정책방향’이라는 강연을 통해 “최근 일부 기업이 여러 M&A 방어책을 도입하고 있지만 바람직하지 않다.”면서 “자본의 원활한 이동이 가능하도록 보다 우수한 경영진, 경영혁신을 가져올 수 있는 자극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M&A 규제도 현재보다 강화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면서 “만약 현 시점에서 이(M&A)를 가로막는 새로운 정책이 생긴다면 글로벌 스탠더드에 어긋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또 “국내 자본가가 인수 안목이 없고 모험정신이 없어 인수하지 않은 기업을 외국자본이 인수한 뒤 수익을 내는 것을 배아파하면 경제의 선진화는 어렵다.”면서 “기업유지, 고용, 납세 등 긍정적인 측면을 무시해서는 안 된다.”고 외자 도입에 대한 인식의 전환을 촉구했다.
●금감원,“M&A 방어책 필요”
그러나 금감원은 이날 정반대의 목소리를 냈다.
금융감독원 전홍렬 부원장은 최근 제기된 삼성전자의 M&A 설과 관련,“우리와 유사한 법체계를 가진 일본에서 이미 ‘포이즌 필(Poison Pill:독소 조항)’ 제도를 도입했다.”면서 “관련 법 개정 등에 대비해 연구를 하고 정부에 건의도 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포이즌 필이란 적대적 매수자가 일정 지분 이상의 지분을 취득할 경우 적대적 매수자 외의 주주에게 낮은 가격으로 주식을 취득할 수 있도록 하는 장치를 말한다.
또한 적대적 방법으로 기업이 매수되더라도 기존 경영진의 신분을 보장할 수 있도록 사전에 필요한 장치를 해놓는 황금낙하산(Golden Parachute)의 의미로도 사용된다.
주로 M&A 대상기업의 경영진이 적대적 M&A로 임기 전에 물러날 경우 거액의 퇴직금을 지급하기로 한다는 조항을 회사 정관에 삽입, 인수비용을 늘리는 방법이 이용된다.
전 부원장은 “우리 상장기업들은 42조원에 이르는 자사주를 스와핑하는 방식으로 경영권 방어에 나서고 있다.”면서 “이는 상당한 고비용이 발생하는 전략”이라고 문제점을 지적했다. 경영권 방어장치가 도입될 경우 자사주 매입에 들어가는 막대한 비용을 설비투자 등으로 돌릴 수 있어 기업 경쟁력이 한층 강화된다는 설명이다.
전 부원장은 “일본은 이미 350여개 기업이 포이즌 필을 도입했다.”면서 “최근 일본 법원은 포이즌 필 제도에 대해 주주 평등의 원칙도 중요하지만 다수결의 원칙에 의한 주주 총이익이 더 중요하다고 해서 적법 판정을 내린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강조했다.
●재경부,“한마디로 월권”
재정경제부는 이에 대해 한마디로 ‘월권’이라는 반응을 보였다. 무엇보다도 권 부총리가 기업들이 M&A 방어책을 도입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한 뒤라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재경부 관계자는 “금감원이 밝힌 ‘포이즌 필’ 등의 방어책은 감독 차원이 아니라 법의 제·개정 문제”라면서 “누구든 검토할 수는 있지만 정례브리핑에서 감독당국의 공식 입장으로 발표할 성질은 아니다.”고 말했다.
특히 전홍렬 부원장을 가리키며 “상황 판단을 잘못하고 있는 것 같다.”면서 “사적 의견과 당국의 견해는 다르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고 밝혔다. 설령 사적인 의견을 개진할 경우에도 주무 부처와 사전에 조율, 혼선이 생기지 않도록 해야 했다고 질책했다. 금감원이 일본의 포이즌 필 도입 사례를 참고했는지 모르지만 우리와는 사정이 전혀 다르며 앞으로 M&A 문제는 글로벌 스탠더드 기준에서 봐야지 우물안 개구리식 시각을 가져서는 곤란하다고 덧붙였다.
서귀포 최용규·서울 백문일 문소영기자 ykchoi@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