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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물관 14개… 영월 와보셨나요?

    박물관 14개… 영월 와보셨나요?

    워싱턴DC는 미국의 수도지만, 미술관, 자연사박물관, 우주항공관 등 10여개의 박물관으로도 유명한 도시다. 그래서 주말이나 연휴에는 미국 전역에서 많은 사람이 박물관을 찾아 3박4일씩 여행오는 도시다. 그런데 국내에도 박물관만 14개가 몰려 있는 고을이 있으니, 강원도 영월이다. 영월은 조카를 내쫓고 왕위에 오른 세조가 단종을 유배보낸 곳으로 유명하다. 요즘은 2006년 상영된 박중훈·안성기 주연의 ‘라디오 스타’의 촬영지와 한반도 지형과 닮은 하구가 있는 곳으로 더 알려졌다. 영월에 들어서면 세조가 왜 단종을 이곳에 유배보냈는지 한 눈에 알 수 있을 만큼 산이 높고 험하다. 그래서 영월에 가면 우선 17세에 목숨을 잃은 단종의 기록을 남겨 놓은 역사관을 둘러 보는 것은 기본이다. 한국화가 김기창이 그린 ‘꽃남’ 단종도 있다. 역사관 위로 산꼭대기에 단종이 묻힌 장릉이 있으니, 운동화가 필요하다. 어른 1000원, 청소년 500원.(033)370-370-26 19 영월군청에서 자신있게 추천하는 볼거리는 별마로천문대와 동강사진박물관이다. 별마로천문대와 과학관은 봉래산 꼭대기에 자리잡고 있어 멀리서도 한 눈에 알아 볼 수 있다. 영월은 1년 중 맑은 날이 190일로 국내에서 가장 별이 잘 보이는 고장의 하나다. 최근엔 산행이나 스키를 타고 돌아오는 길에 별마로천문대에 들르는 여행객이 많아 주말에는 오후 7시에서 11시 사이에 600여명이 다녀간다고 귀띔한다. 천체 투영실에 누워서 가상별자리로 별을 감상하고, 쌩하는 바람을 맞으며 8억원짜리 망원경으로 엄지손가락만한 토성과 둥근 고리를 보고 나면, 잘 왔다는 뿌듯한 느낌이 와락 몰려온다. 어른 5000원, 초등학생 4000원. (033)374-7460 ●동강사진박물관선 김한용작가 전시회 동강사진박물관은 새로 지은 영월군청 바로 옆에 있다. 건축물로도 아주 볼 만하다. 현재는 ‘사진기록으로 본 영월’과 김한용 작가의 ‘희망의 연대기’가 전시 중이다. 한강 상류의 동강과 서강을 끼고 있는 영월은 험준한 산에 갇힌 분지라서 여름엔 범람으로 고통을 받아 왔다. 사진에서 박정희 대통령, 전두환 대통령, 노태우 대통령, 최규하 국무총리(당시) 등의 얼굴을 볼 수 있는데 그 해가 대형 물난리가 난 해라고 보면 된다. 김한용 작가의 전시에서는 1950~1960년대의 정겹기도 하고 향수가 묻어나는 서울 풍경, 즉 서울역, 남대문로, 서울 시청앞, 이화여대 앞 등을 볼 수 있다. 또한 1960~1980년대의 광고사진도 전시되는데, 당대 최고의 여배우와 가수인 홍세미, 문희, 유지인, 패티김, 윤정희 등의 풋풋한 얼굴을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어른 1000원, 청소년 500원.(033)375-4554 난고 김삿갓문학관도 둘러볼 만하다. 홍경래의 난 때 목숨을 부지한 할아버지를 욕되게 한 글로 장원급제한 죄책감으로 22세부터 방랑을 한 김삿갓의 묘가 근처에 있다. 친필 시와 장원급제 시를 볼 수 있다. 어른 1000원, 청소년 500원.(033)370-2361 5억년 전 영월이 바다였다는 것을 보여 주는 삼엽충과 암모나이트 등을 볼 수 있는 화석박물관(033-375-0088)과 지리를 주제로 한 호야지리박물관(033-372-8872), 차문화 전문 호안다구박물관(010-7689-5779), 국내 곤충이 총망라된 영월곤충박물관(033-374-5888)도 볼 만하다. ●청전전각박물관·조선민화박물관도 세계 조각가의 작품이 있는 국제현대미술관(033-375-2752), 감상용으로 만든 도장을 전시하는 청전전각박물관(033-375-5950), 깜찍한 호랑이와 거만한 까치가 있는 조선민화박물관(033-375-6100), 영월서강미술관(01 6-236-3000), 묵산미술박물관(033-374-72 49), 쾌연재미술관(033-374-8436)도 있다. 영월은 승용차를 이용한 가족여행이 편하지만, 수도권에선 청량리역에서 출발하는 기차여행 패키지를 활용하는 방법도 있다. 영월 문소영기자 symun@seoul.co.kr
  • 토종 설화 주인공 다 만나볼까

    토종 설화 주인공 다 만나볼까

    ●구전 민간신화 동화로 재구성 바리공주라고도 하고, 바리데기라고도 한다. 무속 신화에 나오는 오구대왕의 일곱번째 공주로 황석영, 김별아 등 작가가 소설로 써냈다. 오구대왕의 딸로 태어나 아버지에게 버림받지만, 아버지의 병을 고치기 위해 온갖 고행을 견디고 불사약을 구해내고야 만다는 정성어린 효녀다. 그 결과 바리공주는 영혼을 위로하고 저승으로 인도하는 수호자인 신이 된다. 서양에 제우스와 헤라가 나오는 그리스·로마 신화와 오딘 등이 나오는 북유럽 신화가 있다면, 우리에겐 구전 민간 신화가 있다. 제주도 ‘세경본풀이’라는 구비문학에는 창조의 신 ‘소별왕 대별왕’이나 농사와 사랑의 여신 ‘자청비’, 4계절의 신 ‘오늘이’, 염라국 저승사자 ‘강림도령’ 등이 등장한다. 한국판 그리스·로마신화인 셈이다. 교과과정에서 거의 이름을 들어보지 못했지만, 사람들의 입과 입을 통해 구전으로 전해오는 신화의 인물들이다. 원래 굿의 사설로 전해지던 이야기들이었지만, 한겨레 어린이 출판사에서 어린이 동화로 재구성해 펴냈다. 소별왕 대별왕은 한국판 제우스 신화가 들어 있다. 한국의 창세 신화에서 거인의 신에 의해 하늘과 땅이 분리돼 혼돈에서 질서로 나가는 대변혁, 땅을 지배하던 악당과 하늘의 신 천지왕의 한판 승부, 사람들을 괴롭히던 해와 달을 쏘아 없애기 등등 흥미로운 이야기가 들어 있다. 주년국 김대감의 딸 자청비가 농사의 신이 되는 과정이 하늘옥황 문도령과의 사랑을 찾아가는 길이다. 자청비는 사랑을 위해 남장을 하고, 거짓으로 결혼도 하고, 힘든 고행도 마다하지 않지만, 미련맞고 변덕스러운 문도령은 진정한 사랑을 뒤로하고 엉뚱한 길로 찾간다. 그 바람에 자청비는 거무선생 서당, 굴미굴산, 서천꽃밭, 마고할미집, 하늘옥황의 집까지 찾아가 고행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자청비가 문도령을 포기하자 하늘옥황은 콩 팥 녹두 동부 메밀 등 오곡씨를 주고 인간세상에서 농사를 다스리며 살도록 한다. 자청비는 인심 고약한 부자에게는 흉년을, 맘씨 착한 늙은 부부에겐 풍년을 기원하고 뜻대로 이룬다. 농부들은 자청비를 농경신으로 모신다. 뒤늦게 정신차린 문도령은 자청비를 돕는 기우신이 된다. 자청비를 사랑한 머슴 정수남은 뭐가 됐을까? 여자들의 달거리가 시작된 내력 등도 신화 식으로 풀어냈다. 강림도령은 원래 똑똑하고 씩씩한 신하였다. 어느날 광양 땅에 사는 과양각시가 미혼모로 낳은 아들 3형제가 과거급제하여 집에 돌아왔는데 한날한시에 이유도 없이 죽어버린다. 과양각시는 원통해 그 이유를 알아보고자 임금에게 호소한다. ●강림도령은 원래 똑똑한 신하 왕은 강림도령에게 “염라대왕을 잡아오라.”고 명령한다. 과양각시에게는 무시무시한 숨겨둔 과거가 있었으니, 그는 동경국 보물왕의 세 아들을 몰래 죽인 것이다. 살아있는 강림도령은 과연 염라대왕을 임금 앞에 대령할 수 있을까? 남자들 목울대가 어떻게 생겨났는지에 대한 한국적인 해석이 나온다. 이 책을 읽고 나면 더이상 ‘아담의 애플’이 아니다. 책들은 10년 전인 1999년 펴낸 초판과 완전히 다른 개정판이다. 저자와 삽화가 대부분 바뀌었다. 우리 옛이야기의 입맛을 한껏 살렸다는 것도 특징이다. 전 5권 각권 8500원. 문소영기자 symun@seoul.co.kr
  • 질병은 왜 가난한 사람들에게 먼저 찾아오나

    질병은 왜 가난한 사람들에게 먼저 찾아오나

    ‘모든 사람은 의식주, 의료 및 필요한 사회복지를 포함하여 자신과 가족의 건강과 안녕에 적합한 생활수준을 누릴 권리와 실업, 질병, 장애, 배우자 사망, 노령 또는 기타 불가항력의 상황으로 인한 생계 결핍의 경우에 보장 받을 권리를 가진다.’ 세계인권선언문 제25조에는 이렇게 명시돼 있다. 또한 제27조에는 ‘과학의 발전과 그 혜택을 공유할 권리를 가진다.’고 했다. 그런데 인류는 자신의 ‘동료’에게 과연 과학의 혜택이 공유되도록 하고 있는가. ‘권력의 병리학’(폴 파머 지음, 김주연·리병도 옮김, 후마니타스 펴냄)은 세계인권선언문에 나오는 권리를 누리는 사람은 전 세계적으로 극소수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그 결과 요람에서 무덤까지 불평등이 지속되고, 선진국의 정책결정자는 자신의 ‘동료’인 인류가 고통받도록 방조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이 책은 유아사망률은 물론 암발병률, 흡연율, 우울증, 자살률, 사실상 무작위적일 것이라고 생각하는 교통사고 사망률까지 사회·경제적 약자에게 높게 나타난다는 사실에 주목한다. 왜 질병은 가난한 사람들에게 먼저 찾아오는 것인가? 파머는 이 질문에 “질병과 가난, 인권의 침해는 우연히 일어나지 않으며, 그 분포와 영향력 역시 무작위로 나타나지 않는다. 즉 권력에 의한 병리증상으로, 누가 고통받고 누가 보호받을지를 결정하는 사회적 조건과 밀접하게 연관돼 있다.”고 답했다. 의사이자 인류학자인 저자는 아이티, 페루, 러시아, 르완다, 멕시코 등 가난한 나라에서 가난한 사람들의 치료 기준을 높이기 위해 애써 왔다. 그런 경험을 바탕으로 불평등한 사회가 질병의 확산에 악영향을 주고 있음을 체감한 것이다. 즉 에이즈나 폐렴은 이미 현대 의료기술로 치료할 수 있고, 심지어 예방할 수 있는 단계까지 이르렀지만 시장의 효율성, 이윤의 극대화를 추구하는 과정에서 돈 없는 사람들에게 고통과 죽음을 선사한다는 것이다. 그 과정이 구조적인 폭력이라는 것이다. 이를테면 중미 카리브해의 아이티에서 교통사고로 분쇄골절을 당한 청년 마노는 부러진 뼈를 제대로 고정하는 등의 치료를 받을 수 없기 때문에 다리를 잃을 수 있다. 파머는 이것은 범죄라고 주장한다. 파머는 이런 식으로 가난한 사람에 대한 구조적 폭력의 ‘사례’를 보여 준다. 파머는 사회·경제적 권리인 의료, 주택, 깨끗한 물, 교육 등과 같은 권리를 인권운동 진영에서조차 의붓자식처럼 홀대하고 있다고 지적하며 가난한 나라, 가난한 사람의 의료문제에 관심을 갖자고 말한다. 그렇지 않다면 권력의 공범이라는 것이다. 파머가 후기에서 밝힌 산디니스타 출신의 시인 레오넬 루가마의 시는 한 지구 안에서 사는 서로 다른 인류의 삶을 극명하게 보여 준다. 루가마는 ‘지구는 달의 위성이다’라는 시에서 ‘아폴로 8호에는 엄청난 돈이 들었지만 아무도 개의치 않았다. 개신교 신자인 우주인들은 달에서 성경을 읽었다. 그리하여 모든 기독교인들은 놀라고 기뻐했다. …아카왈린카 사람의 자녀는 배고픔으로 인해 태어나지 못한다. 그들은 태어나기에는 너무나 굶주리고, 태어나더라도 굶주림 속에 죽어간다. 가난한 자들에게 복이 있나니 그들은 달을 얻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같은 일은 진짜 아프리카나 중남미, 아시아 등에서만 일어나는 일일까? 이 책에 추천사를 쓴 1998년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아미티아 센 하버드대 교수는 제1세계의 빈곤층은 사실상 제3세계에 살고 있다고 지적한다. 미국의 가장 큰 도시인 뉴욕, 워싱턴, 샌프란시스코 등에 사는 흑인의 평균수명은 훨씬 가난한 중국이나 인도에 사는 대부분의 사람보다도 짧다는 것이다. 전 세계적인 경제위기로 지난 연말부터 국내에도 신빈곤층이 형성되고 있다. 경제위기는 곧 88만원 세대, 비정규 노동자, 생계형 자영업자들에게 심각한 타격이다. 건강보험 자격이 상실되면 그들의 부양가족까지 의료의 사각지대에 떨어진다. 최근 2~3년 사이에 정부와 재계가 영리병원 도입과 민간의료보험의 확대 등 국내에서도 의료의 상업화를 추진하는 상황에서 ‘권력의 병리학’이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1970년대 이후로 국가가 운영하는 건강보험의 확대로 ‘약 한번 못 써보고, 병원 한번 못가보고’ 식의 탄식은 사라졌지만, 의료의 미래가 불안하기 때문이다. “진정한 경제성장을 이루기 위해서는 교육·의료·공공정책 등 가장 기초적인 사회안전망 확충이 경제개혁에 선행해야 한다.”는 아미티아 센 교수의 주장이 가슴에 와 닿는다. 1만 8000원. 문소영기자 symun@seoul.co.kr
  • 臨政 법통논란 홍보책자 수정키로

    정부는 임시정부 법통 논란을 일으킨 홍보 책자 ‘건국 60년 위대한 국민-새로운 꿈’의 관련 내용을 수정키로 했다고 4일 밝혔다. 문화체육관광부 관계자는 “지난해 11월 초 전국 학교와 군부대 등에 배포한 건국 60주년 홍보책자가 3·1운동의 독립정신과 대한민국 임시정부 법통을 무시했다는 광복회 등의 지적에 따라 책자의 관련 부분을 고치기로 했다.”면서 “이러한 내용을 담은 공문을 지난달 20일 국회, 공공기관, 중·고교, 군부대 등 책자를 배포한 기관에 보냈다.”고 말했다. 홍보책자는 회수·폐기의 방식이 아닌, 논란이 됐던 부분을 도려내고 수정된 내용을 붙이는 방식으로 진행될 예정이다. 문소영기자 symun@seoul.co.kr
  • 伊 볼로냐 아동도서전 한국 주빈국으로 참여

    伊 볼로냐 아동도서전 한국 주빈국으로 참여

    “이탈리아의 작고 오래된 도시 볼로냐가 시끌시끌할 것이다.” 대한출판문화협회의 2009년 볼로냐아동도서전 주빈국조직위원회 임요병 행정분과위원장은 3일 제46회 볼로냐아동도서전에 주빈국으로 참여하는 소감을 이렇게 표현했다. 도서전이 볼로냐 중심가인 시청 근처에서 열리는 데다 주빈국관 운영의 부대행사로 전시·음악·무용 등 ‘한국 문화행사의 향연’이 펼쳐지기 때문이다. 매년 봄 이탈리아 볼로냐에서 열리는 아동도서전은 70여개국 5000여명의 출판인과 일러스트레이터, 아동·교육 관련 단체 관계자가 참석하는 세계 최대의 아동도서 전문 도서전. 또한 저작권을 상담·거래하는 비즈니스의 공간이기도 하다. 이번 주빈국 행사의 표어는 ‘둥글게 둥글게’(Round and Round in a Circle). 현지시간으로 23일 오전 11시 주빈국관 개막식을 시작으로 한국과 관련한 각종 행사가 열린다. 일러스트레이터스 카페(Illustrators Cafe)에 설치되는 300㎡ 규모의 주빈국관에는 한국 일러스트레이터 31명의 원화 64편과 관련 그림책 200여종이 전시된다. 한국 일러스트레이터 98명의 작품 300여점을 담은 카탈로그도 판매된다. 출협은 부대행사에도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임요병 행정분과위원장은 “유럽 사람들이 소니가 일본 제품이라는 것은 잘 알지만, 삼성의 휴대전화나 현대차의 출산지가 한국이라는 점을 잘 모르고, 특히 한국이 중국·일본과 다른 문화와 문자를 사용한다는 것도 잘 알지 못한다.”면서 “한국문화를 널리 알리는 것도 이번 행사의 주요한 목적”이라고 말했다. 볼로냐 시청사에서 열리는 ‘한국의 문자, 한글전’, 살라보르사 도서관의 한국 우수 그림책 260여권 전시, 유럽 최초의 대학인 볼로냐대학과의 ‘한국 예술에 대한 세미나’, 중세박물관의 도자기·초상화·금속활자와 목판활자 인쇄본 전시 등은 그래서 중요하다. 또한 아레나 델 솔레 극장에서 한국 전통음악과 무용을 소개하고,태권도 시범도 열린다. 볼로냐에서는 일종의 한국 페스티벌이 열리는 셈이다. 문소영기자 symun@seoul.co.kr
  • 빨간 양동이·핫 핑크 샌들… 낯익은듯 낯선 사물

    빨간 양동이·핫 핑크 샌들… 낯익은듯 낯선 사물

    물이 담긴 유리잔을 선반에 올려 놓고 작품이름을 ‘참나무’라고 짓던 작가가 이제 주황 물이 담겨있는 산뜻한 빨간 양동이나, 초록 밑창이 상큼한 핫 핑크 샌들, 토키석 블루의 이탈리아의 커피메이커를 그려 놓고는 ‘무제’라고 부르고 있다. 1970년대 영국의 개념미술의 1세대 대표 작가인 마이클 클레이그 마틴(68)의 작업은 지난 30~40년 사이 이렇게 변화했다. 1970년대 그의 작품은 흑백 작업이 위주였는데, 1990년대 초반 우연한 기회에 컬러를 쓰기 시작해 이제는 아주 만족스럽게 컬러 작업을 하고 있다. 컬러 작품에 대한 관객들의 반응이 적극적이고 긍정적이기 때문에 더욱 만족스럽단다. 15년 정도 됐다. 한 물체의 물성을 색깔로 끌어 낸 뒤 가장 적합한 환경의 색깔과 배치해 ‘색깔군(Family of Color)’으로 표현해 낸 그의 작품은 소재가 일상적인 것들, 전구, 신발, 의자, 커피메이커, 샌들 등이다. 언뜻 마오쩌둥이나 마릴린 먼로 등을 화려한 색깔의 판화로 찍어 낸 앤디 워홀의 작업을 연상시킨다. 그러나 마틴의 현재의 작업은 물 한 잔을 ‘참나무’라고 부르던 때와 마찬가지로 개념미술의 연장선상에 있다고 했다. 그는 지난 25일 서울 청담동 PKM갤러리에서 열린 기자 간담회에서 이렇게 설명했다. “팝아트는 광고나 만화 등 기존의 이미지를 차용하는 것이고, 나의 관심은 물체 그 자체이다. 물체의 이미지를 차용하는 것이 아니라, 그 물체의 이미지를 인간의 인지적 능력으로 찾아 가는 것이다. 앤디 워홀을 예로 들어 보자. 마릴린 먼로나 코카콜라가 생각날 거다. 물론 나도 학생시절인 1960년대 팝아트를 접하면서 많은 사람들이 쉽게 다가 갈 수 있는 팝아트의 장점에 흥미를 느꼈다. 하지만 나는 코카콜라나 먼로보다 더 유명한 의자, 신발, 테이블 등을 아주 단순하고 보편적인 선으로 그려 내고, 전세계인들이 의자의 이미지를 연상시키지만, 사실 의자가 아닌 것을 표현하려고 했다.” 말 장난 같지만, 그의 말을 꼭꼭 씹어서 생각해 보면 꼭 그렇지 않다. 그는 의자를 표현하기 위해 최적의 형태와 최적의 색깔과 배경색을 찾아 낸다. 그러나 그런 색깔과 환경 속의 물체가 과연 당신이 의자라고 느끼는 의자일까?라고 다시 관객에게 질문하고 있는 셈이다. 보라색 전구나, 주황색 의자가 존재하는가 말이다. 작업은 컴퓨터의 출현으로 수월해졌다. 완벽한 드로잉과 색깔 구성이 나올 때까지 컴퓨터와 일한다. 대량생산이 가능할 것 같지만, 작업은 작은 롤러로 색칠하는 등 완전 수공업적이다. 물체의 검은 색 테두리는 밑바탕이다. 그 위에 테이프를 붙이고 색깔을 칠한 뒤 테이프를 제거한다. 때문에 색깔의 경계에는 3㎜의 요철이 있다. 이런 과정으로 나온 그의 작업은 아마존 강에서나 존재할 법한 색채의 구성으로 관객을 몹시 즐겁게 한다. 늘 접하던 물건이 새삼스러워 되돌아 보게 되니 말이다. 마틴은 1994년부터 2002년까지 골드스미스 대학에서 데미안 허스트를 비롯한 ‘yBa(young British artists)’그룹 작가를 길러낸 경력으로도 유명하다. 데미안 허스트는 현대미술의 악동 아닌가. 그는 “‘프리즈(Freeze)’전이 열렸던 1980년대 후반부터 허스트가 신작을 모아 경매에 올렸던 지난해 9월까지를 미술사의 한 시기로 규정지을 수 있다.”면서 “ 한 작가가 한 시대를 대표한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라고 말했다. 최근 PKM트리니티갤러리와 전속작가 계약을 맺은 마틴은 국내에서 처음 개인전을 갖는다. 3월31일까지. (02)515-9496. 문소영기자 symun@seoul.co.kr
  • 농촌의 몰락…그러나 좁쌀만한 희망, 캔버스에 털어내다

    농촌의 몰락…그러나 좁쌀만한 희망, 캔버스에 털어내다

    냉방이 잘된 KTX를 타고 코카콜라라도 한 모금 넘기면서 창 밖으로 논에서 모내기를 하거나 밭에서 김을 매는 모습을 보면 ‘참으로 평화롭군.’하고 느낄 수밖에 없다. 등허리로 내리 쪼이는 오뉴월의 따가운 햇살이며, 구부린 허리를 펴지 못해 끊어질 것 같은 통증을 경험해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상처입은 농민들의 이런 마음을 보듬어 싸안는 ‘농민작가’ 이종구(55) 화백이 4월12일까지 서울 사간동 학고재갤러리에서 개인전을 연다. 2008년 작품을 중심으로 13점이 출품됐다. 특히 지난해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추진과 미국 쇠고기 수입, 부도덕한 쌀 직불금 논란 등으로 농민들의 마음이 새까맣게 타들어간 것을 형상화했다. 쌀이 생명이 아니라, 돈으로 환산되는 가치를 비판하고, 생명을 기르고 싶다는 농민들의 소망에 귀 귀울였다. ●2008년 작품 13점 전시 소를 그리는 작가로 잘 알려진 이 화백에 대해 김윤수 전 국립현대미술관장은 “농민들이 어떻게 거덜나고 희망없는 삶을 이어가고 있는가를 그려온 거의 유일한 화가가 아닌가 생각한다.”고 평가했다. 이 화백의 작품에는 불편한 진실과 향수가 고스란히 들어 있다. 땅과 더불어 살아가는 농촌의 현실에 대한 의식의 지평을 넓히고, 민족의 존립위기까지 가져오는 농촌의 몰락을 절실하게 인식해 캔버스에 털어 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이 화백은 절망을 절망적으로 이야기하는 화가가 아니다. 푸르고 둥근 보름달을 뒤로 앉아있는 누렁이와 경주의 남산 암자의 좁쌀만한 불빛을 통해 희망과 기원을 노래한다. 특히 이번 전시에는 과거처럼 농촌문제에 대해 서슬 퍼렇게 질문하지 않고, 우회적이고 절제된 언어로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하고 묻고 있는 것 같다. 추상 같은 질문이 아니라고 해서 관객이 폐부로 느끼는 질문의 수준이 낮은 것이 아니다. 감성적으로 접근한 작품은 훨씬 혹독하게 가슴을 후벼 파는 고통을 준다. 지난 50년간 농경 문화에 뿌리를 둔 우리 삶의 토대가 ‘한강의 신화’ 속으로 사라져 갔고, 앞으로 전 세계 국가들과의 자유무역협정으로 또한 사라져 갈 것이기 때문이다. 특히 늙은 어머니의 머리 위로 헬리콥터가 지나가는 ‘내 땅에서 농사짓고 싶다-대추리의 기억’과 같은 작품이나 낡은 플라스틱 슬리퍼 위로 꽃무늬 나일론 몸뻬바지가 널려 있는 ‘빨래1’ 등의 그림에서, 사람에 따라서 가슴 한 쪽이 무너지는 느낌을 받을 것 같다. 참고로 경기도 평택의 대추리는 주한미군의 기지 이전이 추진되고 있는 지역이다. 순하디 순한 눈을 한 소 위를 날아가는 미국 국적의 비행기는 ‘검은 대지-무자년 여름’ 으로, 미국 쇠고기 수입 파동은 소의 생애 추적이 가능한 숫자를 달고 있는 황소를 통해 ‘검은대지-2123’으로 탄생했다. 무자년은 2008년을 말한다. ●농민 내면의 절망·희망 절제된 표현 이런 그림의 특징은 작가의 고향과 상당한 상관 관계가 있어 보인다. 그는 충남 서산시 대산면 오지리 출신이다. 모더니즘 열풍이 불던 1970년대 화단의 경향과 달리 구상화가 강세인 중앙대에서 미술공부를 했다. 그후 동문수학한 친구들끼리 ‘임술년’ 그룹을 결성해 활동했다. 이 그룹은 비판적 리얼리즘의 경향성을 띠었고, 가족과 고향에 대한 깊은 애정을 사실주의적이고 논리적으로 그려 냈다. 특히 1984년 농민인 아버지의 초상을 ‘정부양곡’ 마크가 선명한 쌀부대 위에 그려낸 것은 당시에도 상당한 화제였다. 2004년 국립현대미술관의 ‘2005년 올해의 작가’로 선정됐고, 현재 중앙대 예술대학 서양화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02)720-1524 문소영기자 symun@seoul.co.kr
  • 한국 애니 1600만달러 계약

    한국 애니 1600만달러 계약

    국내 애니메이션 제작사들이 지난달 미국 뉴욕에서 공격적인 ‘외화벌이’로 1600만달러(약 240억원) 계약에 성공했다. 질높은 콘텐츠만 개발하면 ‘문화’가 달러를 벌어들이는 ‘산업’으로 충분히 발돋움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제시한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하지만 최근 경기침체의 여파가 애니메이션 업계에도 악영향을 미치는 바람에 올해 상담 실적은 전년(6840만달러)에 비해 5610만달러로 뚝 떨어져 내년도 국내 제작 애니메이션 수출에 비상이 걸렸다. ‘킬러 콘텐츠’ 육성에 어려움이 예상된다. 한국문화콘텐츠진흥원은 2월11~13일 미국 뉴욕에서 열린 ‘제10회 키드 스크린 서밋(Kidscreen Summ it)에서 퍼니플럭스의 ‘똑딱하우스’와 ‘치로와 친구들’ 등 국내에서 제작된 애니메이션으로 사상 최고치의 계약액을 기록했다고 2일 밝혔다. 키드 스크린 서밋은 아동용 TV 프로그램 및 영화와 관련된 제작, 배급, 라이선싱 관계자들이 총집결하는 미주지역 최대 콘퍼런스 행사다. 2007~2008년 진흥원이 제작을 지원한 ‘똑딱하우스’는 영국 메이저 프로덕션의 제작·보급사인 RDF사와 350만달러의 공동제작 및 라이선스 계약을 맺었다. TV용 3D 애니메이션 ‘치로와 친구들’(아이코닉스)은 덴마크 국영 방송사 DR에 방영권이 판매됐다. ‘치로와 친구들’은 3∼5세 유아를 대상으로 한 애니매이션이다. 진흥원 관계자는 “이 대회에 처음 참가한 2006년에는 계약금액이 60만달러에 불과했으나 2007년 1338만달러로 대폭 확대됐고, 2008년에는 1494만달러로 늘었다.”면서 “그러나 최근 세계 경기침체의 영향으로 2010년에는 계약액이 크게 떨어질 것으로 우려된다.”고 말했다. 문소영기자 symun@seoul.co.kr
  • 수채화같이 담백한 유화의 향기

    수채화같이 담백한 유화의 향기

    서양화가 윤장열(56)의 그림은 ‘캔버스 위에 유채(Oil on canvas)’ 이지만, 기름기로 표면이 반짝거리는 유화가 아니다. 수채화(Ink and color on paper)같다. 캔버스 위에 유화물감으로 그렸다는데 반짝거림도 거의 없고 종이 위에 수채 물감을 살짝 올린 듯하다. 편안하고 순수한 느낌이다. 작품들에서 한국 채색화 같은 느낌이 팍팍 살아나는 것은 윤 작가가 캔버스 위에 막바로 그림을 그리는 것이 아니라 펄프를 깔고 그 위에 그림을 그리기 때문이다. 펄프는 물감을 무지막지하게 먹어 치우지만 기름기는 싹 사라지게 된다. 게다가 바탕 색 작업을 할 때 종이로 기름기를 걸러내면서 체로 치듯이 물감을 흩뿌리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농담이 형성된다. 윤 작가는 그 위에 반야심경을 적고, 다시 물감을 흩뿌려 애써 쓴 반야심경을 지워 내고 그 위에 새와 탑과 부처들을 들어앉혔다. 그렇게 그리고 지우고를 반복하면서 현실은 이미지로 남고, 이미지는 현실로 남게 돼 동양적인 냄새를 물씬 풍기는 것이다. 윤장열 개인전이 5일부터 13일까지 서울 청담동 갤러리 서림에서 열린다. 16번째 개인전인 이번 전시의 주제가 ‘향(香)’이다. 작품에는 불교의 냄새가 짙게 배어 있는데, 둥글둥글하고 자연적인 한국적 선을 차용해 왔을 뿐이란다. 윤 작가의 얼굴은 수행을 오래한 사람들처럼 맑고 투명한데 지난 1년 반 동안 이런 그림을 그린 덕분이 아닐까 싶다. 충청도 사람인데 직선적인 성격이지만 그림은 상당히 우회하는 방식으로 말하고 있는 것도 특징이다. 문소영기자 symun@seoul.co.kr
  • 신재민 “언론노조 파업은 정치파업”

    신재민 문화체육관광부 2차관은 27일 한나라당의 미디어법 직권 상정에 대해 “국회법 절차에 따른 것으로, 이를 근거로 언론노조가 파업하는 것은 정치적 파업”이라고 비난했다. 신 차관은 이날 문화부 기자실에서 열린 정례브리핑에서 “언론단체·시민단체가 참여한 사회적 합의기구를 통해 문제를 해결하자는 주장은 대의민주주의를 부정하는 것이며 이는 인민 민주주의적 주장”이라고 강도 높게 비판했다. 신 차관은 “언론단체는 이익단체들이고, 시민단체들도 시민들이 대표성을 부여한 것이 아닌 비정부단체에 불과하다.”면서 “사회적 합의기구를 통한 문제해결에 동의할 수 없다.”고 말했다. 문소영기자 symun@seoul.co.kr
  • 필적으로 본 항일과 친일

    필적으로 본 항일과 친일

    어떤 사람은 목숨을 바치며 불의에 맞서고, 또 어떤 사람은 자신의 안위와 이익만을 좇는가? 평소 의문이 있었다면, 흰 종이를 꺼내 놓고, 친구들에게 보낼 편지를 적어보자. 적어도 한 열 줄 정도는 죽 써 내려가야 할 것 같다. 그런 후에 ‘필적은 말한다’(구본진 지음, 중앙북스 펴냄)를 읽어보자. 그 열 줄의 편지를 통해 35년의 일제 강점기 동안 자신이 과연 항일 투사가 되었을 것인지, 아니면 친일파가 되었을 것인지 실마리를 보여줄 것이기 때문이다이 책은 ‘글씨는 뇌의 지문’이라는 필적학의 주장을 전제로, 항일 운동가와 친일파의 글씨를 비교분석한 보기 드문 책이다. 필적학에서 글씨는 사람의 인격과 기질, 성격을 모두 반영하는 총체적인 인격으로 본다. 현직 검사인 저자(현재 법무연수원 교수)는 조직폭력, 마약, 살인 등 강력범죄 수사를 20여년 해오던 중 10여년 전부터 간찰을 모으기 시작해 범죄 수사하듯 글씨와 인격과의 관계를 탐색해 나갔다. 간찰이란 선인들이 주고받았던 편지이다. 일반적으로 공들여 쓰는 서예 작품에 비해 솔직하게 심성을 드러냈기에 쓴 사람의 정서를 파악하기 쉽다는 장점이 있다. 무엇보다도 값이 쌌다. 그가 수집을 시작하던 10여년 전만 해도 이같은 간찰은 2만~3만원, 구한말 역사적 인물인 곽종석, 기우만 등의 글씨도 10만~20만원이면 구할 수 있었단다. 그 결과 김구, 안중근 등 항일 운동가 400여명이 남긴 600여점, 이완용 등 친일파 150여명이 쓴 300여점의 친필을 수집했다. 그 결과 ‘시체는 말을 한다.’는 법의학의 격언과 똑같은 알레고리로 ‘유묵이 말을 한다.’고 느끼기 시작했다. 저자는 거실 바닥에 간찰과 서예 작품 200여점을 섞어 놓고 항일 운동가인지 친일파인지를 직감에 따라 분류도 해봤는데, 놀랍게도 직감은 90% 적중했다고 했다. 글씨 크기, 자간, 행간, 글씨가 주는 카리스마에서 확연한 차이를 드러냈기 때문이다. 항일운동가의 필체는 안진경체와 흡사하다고 한다. 안진경은 안녹산의 난을 평정하기 위해 의병을 지휘한 강인한 인물이다. 불의에 타협하지 않는 강직함과 기개가 배어 글씨체가 반듯하고 각이 져 있다는 것이다. 대표적으로 안중근 의사, 김구 선생 등의 글씨다. 항일 운동가는 작은 글씨를 느리게 쓴다고 한다. 글씨는 작게 쓰면서 행간은 넓게 벌려 놓아 조심스럽고 타인에 대한 배려를 드러낸다. 반면 친일파는 글씨를 빠르고 크게 쓰면서 행간이 넓지 않고 다른 글자를 침범하곤 한다. 저자는 ‘적극적인 친일파는 일제의 탄압과 수탈에 민족이 고통받는데 아랑곳하지 않았는데, 이런 배려심 없는 성향이 글씨에서 특징적으로 드러난 것이 아니겠느냐.’고 반문하고 있다. 항일 운동가는 행간이 넓은 반면 자간은 좁다. 글자 사이가 좁은 사람은 문제를 스스로 판단하고 자의식이 강한 사람들이다. 결국 항일 운동가는 일본의 무력에 복속되는 것을 쉽게 받아들일 수 없던 자의식을 드러냈다는 것이다. 반면 친일파의 글씨는 자간이 넓다. 넓은 자간은 자신에게 관대하고 외향적이며 새로운 환경에 대한 적응력이 강한 것을 보여준다. 저자는 ‘친일파는 국가와 민족을 배반하는 일을 스스로 수용했을 것이라는 해석이 가능하고, ‘일본의 지배’라는 새로운 환경에도 무리없이 잘 적응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극단적인 친일파의 경우는 글씨가 들쭉날쭉하며, 도저히 읽기가 어려운 수준인데 이는 일제시대의 사회지도자나 지식인들의 극단적인 정신분열상태를 반영한다고 설명한다. 당대의 명필로 평가되는 이완용을 두고 저자는 그가 중국의 미불이나 동기창과 같은 명인의 서법을 깊이 연구했고 실제로 달필이지만 획의 운용이나 글씨의 구성에서 보이는 세련된 기교에 비해 전체 글씨의 격은 떨어진다고 평가한다. 반면 김구의 글씨는 큰 기교는 오히려 서툰 것처럼 보인다는 대교약졸(大巧若拙)로 달빛에 매화 향기가 떠다니는 것처럼 은은한 맛을 느낄 수 있다고 말한다. 인자하고 후덕한 인품이 엿보인다는 것이다. 그 결과 미술시장에서 두 사람의 글씨에 매기는 가치는 130×30㎝ 반절지를 기준으로 백범의 글씨는 1000만~1500만원이고, 이완용의 글씨는 30만~50만원이다. 책의 앞부분은 친일파와 항일 운동가의 필적을 비교 분석하는 데 공을 들이지만, 책 중반 이후부터는 수집한 개별 간찰의 내용을 소상히 소개한다. 의병장 양한규의 쌀 한 섬을 빌려 달라는 편지나, 의거를 앞두고 가족을 부탁하는 김지섭의 편지, 일제 침략을 규탄하는 곽종석의 포고문, 정경태의 ‘창의통문’, 의병장 유인석이 최익현에게 보낸 간찰로 유배 소식에 눈물로 걱정하는 내용 등등을 읽을 수 있다. 국내 최초 공개되는 서찰들로 역사적 자료로서의 의미도 크다. 1만 7000원. 문소영기자 symun@seoul.co.kr
  • ‘중세’의 다양한 신분계층 어린이들을 엿보다

    옛날 옛적에 왕·여왕이나 공주·왕자가 살던 시절에 태어났기를 공상하는 어린이들이 적지 않다. 화려한 드레스를 입고 신하를 부리는 공주나 왕자로 자신들이 태어날 것이라고 조금도 의심하지 않기 때문이다. ‘존경하는 신사 숙녀 여러분!’(로라 에이미 슐리츠 글, 로버트 버드 그림, 김민석 옮김, 시공주니어 펴냄)을 읽는다면 아이들은 자신의 착각을 깨달을 것이다. 희곡 형식으로 쓰여진 이 동화책은 1255년 영국 장원을 중심으로 ‘중세’를 살아가는 다양한 신분계층의 어린이를 등장시켜 당시의 삶을 재현했다. 양치기 소녀 앨리스, 쟁기 소년 윌, 종자의 딸 로우디, 똥 던지는 아이 바버리, 왕따 유대소년 살로몬 등의 고단한 인생이 생생한 중세풍 그림과 함께 살아났다. 농노의 딸 모그는 아버지가 열병에 죽자 기뻐했다. 아버지가 더 이상 엄마와 어린 동생 잭, 모그를 때릴 수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기쁨도 잠시, 농노가 죽으면 농노가 가지고 있는 가장 좋은 가축을 가질 영주의 권리 즉 ‘상속 상납’이 기다리고 있다. 모그네 집의 가장 큰 재산인 암소 ‘파라다이스’를 잃게 생긴 것이다. 모그는 어떻게 이 어려움을 헤쳐 나갈까. 양치기 소녀 앨리스는 태어나자마자 엄마를 잃고 양젖을 먹고 자랐다. 의료시설이 형편없던 중세에는 아이를 낳다가 산모가 죽은 일이 허다했다. 양과 같이 살면서 양을 씻기고 돌보는 앨리스는 어느 날 가장 좋아하는 양이 사경을 헤매자 해가 지고 새벽 별이 뜰 때까지, 목이 쉬고 지칠 때까지 노래를 부르고 또 부른다. 양이 어서 낫길 바라면서. “사람은 쉬지 않는데 어째서 밭은 쉴 권리가 있는지 모르겠다.”고 불평하는 쟁기소년 윌. 중세 농장 경영방식인 ‘삼포제’를 비판한다. 소작농의 아들 윌은 휴경을 거쳐 기름진 땅으로 바뀌는 경작지를 영주가 독차지한다는 현실을 깨달은 것 같다. 기사의 아들 사이먼은 늠름하고 멋진 말을 타고 전쟁터로 나가는 꿈을 꾸지만, 1년 전 집으로 돌아온 아버지는 굶어죽을 지경이고 말과 한쪽 다리도 잃었다. 사이먼은 돈이 없어 기사 대신 수도사가 돼야 할 형편이다. 자유인이 되기 위해 도시로 도망쳐 ‘1년+하루’를 살아야 하는 도망자 파스크는 봉건시대가 본질적으로 영주가 농노계층을 착취하는 구조임을 보여준다. 도서관의 사서인 작가는 15세기 르네상스로 가는 길목에 위치한 유럽의 중세의 역사와 제도를 통해 21세기 사회를 되돌아보게 했다. ‘중세 시대로 떠나는 여행’이란 코너로 도시와 자유, 중세시대의 유대인, 매사냥, 십자군 전쟁 등 중요한 제도와 현상을 설명한 것도 유익하다. 9500원. 문소영기자 symun@seoul.co.kr
  • 문화부 산하 기관장 싹 갈렸네

    문화부 산하 기관장 싹 갈렸네

    이명박 정부 출범 1년 만에 문화체육관광부 산하의 문화 관련 주요 기관장들이 대부분 물갈이 된 것으로 24일 파악됐다. 서울신문이 주요 산하단체장 교체 현황을 살펴본 결과 문화 관련 33개 단체 가운데 31개 단체장이 교체됐거나 공석이었다. 교체율은 94%에 이른다. 교체된 기관장은 사퇴했거나 해임됐다. 그렇게 확보된 자리 대부분은 이명박 대통령이 한나라당 대통령 후보 시절의 언론특보나 뉴라이트 계열의 시민단체 관계자, 유인촌 장관과 친분관계가 있는 인사들로 채워졌다. 특히 지난해 3월 유인촌 문화부 장관이 “이전 정부의 정치색을 가진 문화예술계 단체장은 스스로 물러나는 것이 자연스럽다.”고 발언한 뒤 지목된 인사들은 모두 사퇴하거나 해임됐다. 즉 1년여 만에 ‘노무현 코드’가 ‘이명박 코드’로 바뀌는 또 다른 편향이 나타난 셈이다. 유 장관의 발언으로 사퇴 대상으로 지목된 인사는 당시 김정헌 한국예술위원장, 김윤수 국립현대미술관장, 김철호 국립국악원장, 고석만 문화콘텐츠진흥원장, 박래부 한국언론재단 이사장, 정순균 한국방송광고공사 사장, 김정길 대한체육회장, 안정숙 영화진흥위원장 등이었다. 끝까지 자진 사퇴하지 않은 김윤수 국립현대미술관장과 김정헌 예술위원장은 지난해 11월과 12월 각각 해임됐다. 이후 한국방송광고공사에는 양휘부 사장, 국제방송교류재단(아리랑TV)에는 정국록 사장, 뉴스통신진흥회에는 최규철 이사장, 신문유통원에는 임은순 원장이 임명되는 등 MB 특보들이 대거 자리잡았다. 또 MB 대통령직 인수위 자문위원 출신인 정갑영씨가 한국문화관광연구원장, 이강두 전 한나라당 국회의원이 국민생활체육협회 회장에 임명됐다. 뉴라이트 계열의 인사로는 영상물등급위원회 지명혁 위원장과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의 이대영 원장이 있다. 파격적인 인사로 평가되는 최광식 국립중앙박물관장은 고려대 사학과 출신으로 고려대 박물관장을 지냈다. 고고미술사 전공자가 아니면서 관장이 된 첫 사례였다. 이명박 대통령과 고려대 최고위 과정에서 만났다고 한다.한국언론재단에는 고학용 이사장은 이 대통령과 고려대 동기동창이다. 국립중앙박물관 문화재단 강성만 이사장은 지난해 4월 총선에서 호남지역에서 한나라당 후보자로 출마한 경력이 있다. 동아일보 출신의 임연철 국립중앙극장장은 유인촌 장관과 친분이 있다는 평가다. 친기업 정부답게 기업인들도 파격적으로 발탁됐다. 23일 국립현대미술관장에 배순훈 전 대우전자 최고경영자가 임명됐다. 문화계 한 인사는 “정치와 큰 관련이 없는 문화 관련 기관장의 교체율이 91%에 이른다면 정치·경제·복지분야의 관련 기관장 교체율은 거의 100%에 이를 것”이라고 분석했다. 문소영기자 symun@seoul.co.kr [다른 기사 보러가기] “쌀 때 사두자” 한국기업 세계 유전 쇼핑 중 “대통령님 저희 서민들 말 꼭 들어주세요” 李 국방, 괜히 ‘조크’ 한마디 했다가 혼쭐 北 미사일 발사 공식 예고…靑 “구체징후 없어” 3g병뚜껑의 비밀 다국적 도박회사 국내 침투
  • 감각적인 드로잉 속으로

    감각적인 드로잉 속으로

    드로잉(drawing)은 무엇인가. 페인팅의 전단계인 밑그림일까? 아니면 그것 자체로서 그림으로서의 지위를 확보하고 있는 것일까. 드로잉 작가 김소연은 “그림보다 더 감각적이고 상상력이 발휘되는 공간이 드로잉”이라고 설명했다. 김 작가는 “드로잉과 페인팅을 나누는 행위가 다소 무의미하다.”며 드로잉 자체가 완벽한 그림으로서 충분히 평가받아야 한다고 말한 것이다. 독일 유학을 마치고 최근 열정적으로 작업을 하고 있는 그의 드로잉은 그래서 색칠까지 깔끔하고 마무리된 그 자체로서 일반적으로 말하는 페인팅(그림)이다. ●日서 기획… 韓·日 순회전 김 작가의 드로잉을 비롯해 일본, 필리핀, 인도, 파키스탄, 타이완 등 아시아 작가 16명이 참가한 ‘이모셔널 드로잉(Emotional Drawing)’ 전이 올림픽 공원 소마미술관에서 4월19일까지 열린다. 소마미술관을 운영하는 국민체육진흥공단의 창립 20주년을 기념하는 전시로, 도쿄국립근대미술관을 거쳐 소마미술관으로 온 순회전이다. 일본국제교류기금과 주한일본대사관이 후원했다. 전시회는 개최되는 지역의 국민성이 고려되기 마련이다. 원래 일본에서 기획한 전시이니 만큼 일본작가의 참여가 두드러진다. 사카가미 칭키와 이케무라 레이코, 쓰지 나오유키, 고니시 도시유키 등 네명이 참가했다. 당초 기획전시에 한국 작가는 김정욱만 참가했지만, 한국 순회전이 확정되면서 김소연, 이영빈 등 두명이 추가됐다. 예술적 표현에는 국경이 없다고 하지만, 전시장을 둘러보고 나면 작가의 개성이라는 것이 국민성과 잘 버무려져서 나타난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김정욱 작가의 작품을 보면 일본 사람들이 좋아할 만한 먹이 스며든 것 같은 커다란 검은 눈이 인상적인 여인의 초상들이다. 반면 김소연 작가의 경우 한국과 독일 문화가 이종교배된 듯한 유니크한 작품이, 이영빈 작가는 섬세한 삼베를 전자 현미경으로 확대한 뒤 그 위에 인간의 빈약한 나체를 그려낸 형식에서 한국적인 냄새가 물씬하다. 이번 전시에서도 한국인의 정서도 상당히 고려된 셈이다. ●4월19일까지… 김정욱 등 한국작가 3명 참여 특히 인도의 미투 센이 손해를 봤다. 그의 작품은 일본의 선정적인 만화의 캐릭터를 활용한 에로틱한 작품이 많았으나, 풍만한 가슴을 드러낸 반라의 만화 캐릭터를 어린이들도 관람하는 미술관에서는 곤란하다는 판단에 따라 비교적 덜 에로틱한 작품 두점만 출품됐다. 두점의 작품을 위해 일본에서 특별 주문했다는 대형 종이에 대해 생각해 볼 만하다. 소마미술관의 소마드로잉센터에서는 허윤희 작가의 ‘한 잎의 생각’전도 감상할 수 있다. 2008년에 작가 공모를 통해 선정된 작가 4인의 기획전시 중 첫번째로 3월15일까지 열린다. 길다란 막대기에 목탄을 묶어 흰 벽면에 그려낸 허 작가의 드로잉은 수묵화 같은 필력과 농담이 느껴진다. 작은 설치 작품들도 검은 먹의 거침없는 움직임이 느껴지면서 시원한 바람이 흐르는 분위기다. 대학생 포함 성인 3000원, 중고생 2000원, 어린이 1000원. (02)425-1077 문소영기자 symun@seoul.co.kr
  • 찰나의 순간, 거장들이 살아 숨쉰다

    찰나의 순간, 거장들이 살아 숨쉰다

    “쉬! 지금 내가 음악을 듣고 있는 것이 안 보이는가?” 미국 보스턴미술관에서 세계적인 인물 사진 작가 유섭 카시(Yousuf Karsh·1908~2002)가 찍은 세계적인 첼리스트인 파블로 카잘스의 사진을 전시할 때의 일화다. 카잘스가 첼로를 켜는 뒷모습을 찍은 사진을 한 노신사가 매일 매일 오래오래 지켜 보고 있었다. 결국 호기심에 가득 찬 큐레이터가 어느날 참지 못하고 “선생님, 왜 이 사진 앞에 매일 서 계시는 건가요?”라고 묻었다. 노신사의 대답이 이처럼 걸작이었다. 카시는 카잘스를 만나 그의 바흐 연주에 감동해 사진 찍는 일도 잊었다고 하니, 아마도 보스턴 미술관에서 흐르던 연주는 바흐의 무반주 첼로곡이 아니었을까 상상해 본다. 캐나다 출신의 사진작가 유섭 카시의 전시회가 다음달 4일부터 5월8일까지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열린다. 카시란 이름은 들어 보지 못했어도 윈스턴 처칠이 지팡이를 집은 채 왼손을 허리춤에 얹어 놓고 살짝 찌푸린 채 노려 보는 위엄있는 모습, 스웨터 차림의 덥수룩한 턱수염의 소박한 헤밍웨이 등의 흑백 사진을 떠올릴 수 있다면 이미 카시의 사진을 만나본 것이다. 조금 과장하면, 인터넷에 떠돌아 다니는 유명인사들의 흑백사진은 대부분 카시의 작품이기 때문이다. 이번 전시는 카시가 1930년부터 1990년까지 찍은 4000여장의 사진에서 70점을 엄선한 것으로, 오드리 헵번, 윈스턴 처칠, 헬렌 켈러, 파블로 피카소, 마더 데레사 등 20세기 역사적인 인물의 다양한 초상 사진이 준비됐다. 1950년대 산업화하는 캐나다의 모습을 담은 다큐멘터리도 공개된다. 이 전시는 카시 탄생 100주년을 기념해 2008년 미국 보스턴 미술관에서의 시작한 순회전이다. 특히 공개되는 사진은 디지털 프린팅이 아닌 오리지널 빈티지 필름이다. 카시가 인물 작가로 세계적인 유명세를 타게 된 것은 1941년 제2차 세계대전의 영웅인 윈스턴 처칠 영국 총리를 찍은 사진이 사진전문지인 ‘라이프’에 발표되면서부터다. 제목은 ‘으르렁거리는 사자’였다고. 카시는 당시 후원자였던 매킨지 킹의 주선으로 캐나다를 방문한 처칠을 찍을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됐다. 그러나 조명을 다 준비해 놓은 국회의 대기실에서 처칠은 우호적이지 않았다. 시가를 내려 놓지 않은 것이다. 카시는 처칠의 입에서 시가를 뽑아냈다. 처질의 살짝 찌푸린 얼굴 표정에도 불구하고 셔터는 눌려졌다. 그 후 1943년 캐나다 정부의 요청으로 영국으로 건너가 조지 6세를 비롯해 정치가, 과학자, 군인, 예술가, 성직자 등 42명의 초상을 찍었고, 1945년부터는 ‘라이프’지의 요청으로 세계 명사들의 초상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카시는 2002년 작고할 때까지 카메라를 손에서 놓지 않았다고 한다. 카시는 당시의 유행이었던 스튜디오가 아닌 그 인물이 존재하는 공간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었다는 특징이 있다. 따라서 사진을 감상할 때 인물의 표정 자체만 감상할 것이 아니라, 인물이 입은 의상이나 사진 찍힌 장소, 몸짓과 손짓, 조명이 비춰진 상태 등도 고려해야 한다. 카시는 한 사람의 내면이 아주 짧은 찰나의 순간, 치켜 뜬 눈썹이나 놀란 표정과 같은 무의식적 행동에서 드러난다고 믿었고, 사진에 고스란히 반영했기 때문이다. 카시는 또한 인물의 머리 뒤에서 비추는 태양광과 같은 효과를 낼 수 있도록 백라이트 조명을 사용했다. 후광효과로 인물이 더욱 도드라지게 보인다. 한국 인물 사진작가 임응식, 육명심, 박상훈, 임영균, 김동욱의 작품 20여점도 함께 볼 수 있다. 안익태, 장욱진, 서정주, 안성기, 김희애, 전도연, 코넬 카파, 백남준, 피천득 등의 초상이다. 특히 임영균이 찍은 유섭 카시의 초상이 흥미롭다. 성인 8000원, 청소년 7000원, 초등학생 6000원. (02)1544-1681 문소영기자 symun@seoul.co.kr
  • 국립현대미술관장에 배순훈 전 정통부 장관

    배순훈(66) 전 정보통신부 장관이 임기 3년의 국립현대미술관장에 21일 임명됐다. 서울대 공대를 나와 미국 매사추세츠 공대(MIT)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한국과학기술원 교수를 거쳐 대우전자 회장을 역임한 그가 국립현대미술관장이 된 것은 이례적이다. 게다가 공무원 직급으로는 옛 1급에 해당하는 실장급 자리의 공모에 응했다는 것도 파격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문화부 관계자는 22일 “국립현대미술관도 CEO형 관장을 영입해 운영을 활성화할 필요가 있었다.”고 임명 배경을 설명하고 “국군 기무사령부 부지에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을 조성한다는 계획이 발표된 터여서 배 신임 관장의 임명은 사업 추진에 큰 힘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배 신임 관장은 국립현대미술관장에 응모할 때 지금껏 받고 누려온 것을 환원하겠다는 뜻을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배 신임 관장은 대우전자 사장 시절인 1993년 당시 인기 탤런트였던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과 대우 ‘탱크주의’ 광고 시리즈에 함께 출연한 인연을 갖고 있다. 배 신임 관장의 부인 신수희씨는 서양화가, 아들 정완씨는 건축가 겸 설치미술가로 활동하고 있다. 임명장 수여식은 23일 문화부 장관실에서 열린다. 문소영기자 symun@seoul.co.kr
  • [‘우리들의 바보’ 잠들다] ‘수환 스테파노’ 한국의 104번째 성인 될까

    가톨릭교회에서 ‘성인’은 신자들에게 가장 존경받고, 닮고 싶어하는 인물이다. 삶과 인품이 귀감이 됐기 때문에 오래 기억하려고 하고, 세례를 받을 때 자신이 좋아하는 성인의 이름을 세례명으로 택할 수도 있다. 국내 가톨릭 신자의 세례명으로 ‘대건 안드레아’가 많은 것은 한국의 대표적인 성인 김대건 신부의 세례명을 따라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김수환 추기경이 성인이 되면 ‘수환 스테파노 성인’의 이름을 딴 ‘수환 스테파노’의 세례명이 생겨나게 된다. 문제는 성인으로 가는 길이 까다롭고 험난하다는 것이다. 통상적으로 ‘시복시성’(복자에 올리고, 성인에 올림)은 사후 5년이 지난 뒤에 추진한다. 일단 성인 반열에 오르기 전에 ‘복자’가 돼야 한다. 복자는 성인으로 가는 전 단계로 상당한 수준의 자기희생 등이 입증돼야 한다. 우선 지역(한국) 교구에서 각종 자료와 증거를 찾아서 로마 교황청에 ‘시복시성’을 요구해야 한다. 로마 교황청의 시성성에서는 자료를 검토한 뒤 직접 현장에 와서 실사를 한다. 이때는 증인들이 참석한 가운데 1~2년씩 걸릴 수도 있다. 자료가 사실임이 확인되면 복자 반열에 오르게 된다. 성인은 그 뒤에 성경에 나타나 있는 예수의 다양한 기적들을 추가로 수집해서 추진해야 한다.한국 가톨릭 교회에서 김 추기경의 시복시성 추진을 공식화하지 않는 것은 절차의 복잡성과 엄격함 등으로 일이 더디게 진행될 경우 김 추기경의 명예에 누가 될지 모른다는 우려 때문이다. 여기에 생전에 김 추기경의 자기희생적인 모습은 많지만, 기적이 없다는 것이 문제다. 순교자의 경우 기적 여부가 면제되지만, 선종한 경우에는 기적 여부를 따진다는 것이다. 문소영기자 symun@seoul.co.kr
  • 김 추기경 聖人 추진

    가톨릭계가 김수환 추기경을 성인(聖人)으로 올리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가톨릭의 한 관계자는 20일 “성인의 반열에 오르려면 생전이나 사후에 기적이 입증돼야 하기 때문에 쉽지 않은 과정”이라면서 “하지만 명동성당을 찾은 40만명의 조문객이 상징하듯 분열과 갈등의 한국 사회가 자성의 기회를 되찾고, ‘통합과 화합의 신드롬’을 만들어냈다는 것 자체가 ‘21세기의 사회적 기적’이라고 해석하는 데 모자람이 없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가톨릭 교회가 아직 이 문제에 공식적인 입장을 밝히고 있지는 않다.”면서 “하지만 김 추기경의 성인을 추진하는 것은 그의 삶과 업적, 사후 전국민에게 미친 영향을 감안할 때 불가피하다는 데 가톨릭 내부에서는 모두가 공감하고 있다.”고 전했다. 나아가 가톨릭계는 1970~80년대 군사정권 아래서 한국의 민주화를 위해 노력하던 자기희생뿐만 아니라, 1969년 추기경이 된 이후 80만명이던 신자를 520만명으로 6배가량 급속히 교세를 늘린 것 등도 기적에 준하는 중요한 업적으로 평가하고 있다. 다른 관계자는 “교황청에서 공식적으로 인정하는 성인 추진은 통상적으로 사후 5년이 지나야 한다.”고 성인 추진에 일단 조심스러운 태도를 취한 뒤 “그러나 ‘살아 있는 성인’으로 추앙받던 종교인이 사후에 무덤 참배객들에게 기적을 일으키는 사례가 외국에서 종종 보고되고 있어 완전히 어려운 일은 아니라고 본다.”고 말했다. 현재 한국의 가톨릭 성인은 김대건 신부를 비롯해 조선 후기의 순교자 103명이 있다. 문소영기자 symun@seoul.co.kr
  • 왜 케인스 경제학인가

    왜 케인스 경제학인가

    전 세계 금융위기의 ‘메시아’로서 케인스가 부활하고 있다20세기 전반 제1·2차 세계대전과 대공항 속에서 수정자본주의를 내놓은 케인스는 최근 30~40년간 인플레이션의 주범, 공공분야의 확대로 인한 효율성 저하, 노동조합의 권력 팽창, 정부정책의 실패, 좌파 경제학자 등과 동일시되면서 조소와 경멸의 대상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시장 친화력을 강조하는 관료는 물론 시장주의자· 신자유주의의 첨병이던 월가의 투자은행조차 케인스를 운운하고 있다. 어찌된 일인가.‘존 메이너드 케인스 1·2권’(로버트 스키델스키 지음, 고세훈 옮김, 후마니타스 펴냄)은 그같은 질문에 대한 적절한 답변을 준비하고 있다. 1970년대 이후로 전 세계에 정부의 규제완화와 시장의 효율을 강조하던 밀턴 프리드먼류의 신자유주의가 지난해 9월 리먼브러더스의 파산 선언으로 결정타를 맞고 타이타닉처럼 침몰하고 있기 때문이다. 더 이상 ‘워싱턴 컨센서스’가 유용하지 않게 됐다. 워싱턴 컨센서스란 1990년 전후로 경제위기를 겪는 남미와 개발도상국, 제3세계에 구조조정을 전제로 삼아 미국식 시장 경제체제(신자유주의)의 대외 확산 전략을 꾀하는 것. 미 행정부와 국제통화기금, 세계은행이 모여 있는 워싱턴에서 이뤄진 합의라고 해서 이름 붙여진 것이다. 그렇다면, 케인스가 살아 있다면 현재의 금융위기 속 경제위기에서 어떤 처방을 내릴까. 그는 우선 정부가 경기부양책으로 유효소비를 증대시키려고 할 것이다. 잘 알려진 ‘소비가 미덕’인 셈이다. 구매력 있는 고소득층의 자금이 은행으로 몰려가지 않도록 이자율을 낮추는 것도 필요하다. 이렇게 될 경우 낮은 이자에도 불구하고 자금이 기업의 투자로 흘러가지 않고 초단기 자금으로 시장을 떠도는 유동성의 함정에 갇힐 수도 있지만, 정부가 적극적으로 재정 정책을 폄으로써 경기불황을 타개해나갈 수 있다고 주장할 것이다. 그렇다면 케인스는 정부 정책으로 경제를 성공적으로 조절할 수 있다고 봤을까? 아니다. 불확실성이 자유방임적 시장경제의 성과를 위축시키듯이 정부의 정책도 마찬가지라고 보았다. 다만 케인스는 정부가 시장에 개입해야 하느냐 마느냐의 논란이 아니라 어떤 개입을 할 것이냐로 초점을 맞췄다. 후대의 경제학자들이 그 철학과 사상을 이해하지 못했지만…. 책에서 케인스는 결국 20세기 초반을 살아나가면서 자유주의자에서 정부 개입과 보호무역을 외치는 수정자본주의자로, 화폐수량설의 개량자에서 비판자로, 인플레이션에서 디플레이션 현상으로, 시장에서 국가로 관심사를 이동시켜나간 현실주의자의 모습으로 살아난다. 영국 재무부 관료로 1차 대전에서 패한 독일에 영국 등 승전국이 요구한 천문학적인 전쟁 배상금에 반대한 비범한 경제학자의 초상이 나온다고나 할까. 그렇다면 케인스가 한국경제에는 뭐라고 조언할까. 저자인 스키델스키는 “대대적인 경제구조의 변화를 동반한 경제발전의 문제와는 사실상 큰 관련이 없으므로, 전후 한국 정부가 거시적 수요 창출뿐만 아니라 미시적 결정과 관련해서도 일일이 개입하는 경제발전 모델에서 케인스가 언급할 대목은 없을 것”이라면서 “다만 최근 한국 경제는 서방의 정책결정자와 언론의 갈채 속에서 곧바로 ‘워싱턴 컨센서스‘의 품으로 뛰어들었다가 금융위기에 노출된 것”이라고 지적한다. 때문에 “케인스 사후 63년만에 마침내 케인스가 한국을 방문하게 됐다.”고 평가했다. 저자는 케인스의 ‘고용, 이자 및 화폐에 관한 일반이론’(이하 일반이론) 등 대표적인 이론을 사회·경제·정치적 맥락에서 분석함으로써 케인스가 추구했던 복지국가의 모델로서 경제적 해법을 밝히고, 현재적 상황에서 맹종하지 않도록 경계하고 있다. 케인스의 경제이론은 1·2차 세계대전과 그 사이에 발생한 대공항, 러시아의 볼셰비키 혁명, 파시즘 대두 등 파괴적인 사회혼란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나왔다는 것이다. 영국 워릭 대학 정치경제학과 교수인 저자는 원래 역사학자로 케인스 전기를 쓰면서 경제학을 공부해나간 특이한 경력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경제학자들에게는 교양 역사서처럼 보이고, 비경제학자에게는 경제학 서적처럼 보인다. 저자는 1970년초 출판사와 계약할 때는 케인스를 다룬 단행본을 낼 생각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그후 30여년이 지난 2000년에야 케인스 3부작으로 태어났다. 이 책을 읽고 감동한 번역자가 한국어 번역의사를 밝혔을 때, 저자는 3부작을 40% 줄인 1000쪽짜리 축약 단행본(2003년판)을 번역하라고 권고했단다. 단행본에 대한 저자의 애착 때문이다. 그러나 번역 과정에서 책은 1700쪽으로 늘어나 불가피하게 두 권으로 나누어졌다. 책을 쓰는 데 30년, 번역하는 데 4년이 걸렸다. 이 책이 집필되던 1970년대는 케인스는 용도 폐기되면서 신자유주의가 대두되던 시점이었고, 번역이 시작된 2004년은 신자유주의가 전세계적으로 기승을 부리고 있었다. 세상을 내다보는 혜안과 철학이 느껴지는 대목이다. 1권 3만 5000원, 2권 3만원. 문소영기자 symun@seoul.co.kr
  • “엄마, 엄마 함지박이 뭐야?”

    “엄마, 엄마 함지박이 뭐야?”

    “옛날 옛날에 아주 옛날 고리짝에 엄마가 어린 남매만 집에 남겨 놓고 떡 장사를 나갔단다. 엄마가 함지박에 담긴 떡을 다 팔고 돌아오는데, 무서운 호랑이가 ‘떡 하나 주면 안 잡아먹지~.’ 하는 거야.” “엄마, 그런데 함지박은 어떻게 생겼어? ” “…….” “그럼 다른 이야기 해줄게. ‘풀 방구리에 쥐 드나들 듯한다.’는 속담이 있어. ” “엄마, 그런데 풀 방구리가 뭐야?” “…….” “안 되겠다. 콩쥐팥쥐 이야기 책 읽어줄게. 콩쥐는 어머니가 돌아가셔서 아버지가 새엄마와 결혼했어. 새언니 팥쥐도 생겼지. 그런데 새엄마는 친딸인 팥쥐만 예뻐하고 날마다 콩쥐를 구박했어. 하루는 마을 잔치에 가면서 콩쥐한테 물두멍에 물을 가득 담아 놓으라고 시켰지. ” “엄마, 물두멍은 또 뭐야? ” “…….” 습관처럼 쓰는 단어인데, 막상 설명하려고 하면 머릿속이 멍해지는 단어들이 있다. 실제 모습을 본 적이 없거나 그냥 느낌으로 알고 있는 일상용품들이 그렇다. 그렇게 물건의 정확한 이름이나 용도를 설명하기 어렵다고 느껴진다면 ‘살림살이’(윤혜 글, 김근희·이담 그림, 보리 펴냄)를 아이와 함께 읽어보는 것이 어떨까 싶다. ‘겨레 전통 도감’ 시리즈 1권으로 봄·여름·가을·겨울로 나눠서 24절기로 다시 나누고 그때마다 의 행사와 그 행사에 사용되는 물건들을 세밀화(극사실화)로 보여주고 있다. ‘살림’은 과거에서 현재까지 우리가 먹고 자고 입는 데에 필요한 모든 것을 보살피는 일을 말한다. 때문에 살림살이는 아이들한테 겨레 전통 문화를 알려주고 학원공부에 찌든 아이들의 머리와 가슴에 숨결을 불어 넣는 책이다. 조상들이 쓰던 장독, 소쿠리, 가마솥, 두레박, 장목비, 싸리비 등 살림살이 128가지가 소개된다. 이를테면 봄에 하는 장 담그기와 화전놀이, 여름에 열심히 농사 짓고 더위 식히기, 가을에 곡식 거두어 차례 지내기, 겨울에 김장하고 메주 빚기, 미리미리 준비해서 계절마다 야무지게 해냈던 한 해 살림 모습과 풍경을 인상적인 그림으로 담았다. 방금 짚으로 닦은 듯 환한 놋그릇, 생김새가 소박해서 부담 없이 쓰기 좋은 막사발은 시골 부엌 살강이나 찬탁 위에 놓여 있던 모습 그대로이다.박물관이 책속으로 들어왔다고 생각하면 된다. 한복을 정갈하게 차려입은 할머니의 할머니가 보고 싶을 만큼 정겨운 그림으로 태어났다. 1965년 서울에서 태어난 저자는 최근 시골에서 밥집을 운영하면서 살림살이에 필요한 도구에 대한 관심을 키웠다고 한다. 아이와 더불어 읽으면서 엄마도 우리의 문화에 대한 정보도 늘리고, 감수성을 키울 수 있겠다. 3만 5000원. 문소영기자 symun@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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