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팝아트 진수를 만나다
완벽하게 둥근 공 모양의 얼굴은 표정이 없지만, 새틴 드레스나 블루 진, 데님 스커트에 웨지힐을 신고 즐겁게 춤을 추고 있다. 굵은 테두리의 인체 라인은 아주 인상적이라 어디선가 한번이라도 봤더라면, 두 번째부터는 당장에 알아볼 수 있다. 영국 출신 팝아트 작가 줄리안 오피(51)의 작품으로, 모델은 스페인 현대무용가인 카트리나와 영국 로열발레단의 앤이다.
서울 종로구 소격동 국제갤러리 신관 1, 2층에서 29일부터 5월31일까지 한 달가량 오피의 개인전이 열린다. 국제갤러리에 따르면 국내에서 공식적인 개인전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한다. 오피의 작품은 이미 국내 아트페어나 각종 전시, 잡지나 인터넷을 통해 자주 소개돼 있어 공식적인 첫 개인전이라는 것이 이상할 지경이다.
● “내 작품엔 日·벨기에 등 타 문화 반영”
1958년 런던에서 태어난 오피는 1960년대 앤디 워홀 이후 21세기의 팝아트를 대표하는 작가들 중 하나로 평가받고 있다. 둥근 머리와 단순한 선으로 이뤄진 전신상, 여기에 친밀하고 섬세한 색채들이 특징이다. 오피는 영국 골드스미스 칼리지에서 수학했는데 지난 3월 서울 청담동 PKM갤러리에서 국내 첫 전시회를 가진 마이클 크레이그 마틴(68)의 영향도 많이 받았다고 한다. 마틴은 의자, 커피포트, 샌들, 전구 등 일상적인 물건들을 아주 화려한 색채감으로 표현해 존재감을 드러내는 개념미술의 1세대다. 오피는 1982년에 학교를 졸업했고, 마틴은 1994~2002년 그곳의 교수를 지냈으니 서로 직접적으로 사제의 연을 맺지는 않았다.
개인전을 앞두고 방한한 오피는 27일 기자 간담회에서 “나의 인물 초상 작품은 개별성과 보편성의 중간 지점에 위치하고 있다.”면서 “인물 초상화의 경우는 18세기 일본의 판화작가인 우타 마로와 17세기 반 다이크의 초상화, 어린시절 읽은 벨기에 작가의 세계적인 만화 틴틴(우리 식으로는 ‘땡땡’)과 20세기 일본의 망가(만화)와 애니메(애니메이션) 등에서 영향을 받았다.”고 설명했다. 오피는 이를 두고 “다른 문화를 적극적으로 수용한 것”이라며 보편성을 강조했다.
오피는 초기에는 입체작품을 주로 했고, 1980년대 후반까지 후기 미니멀리즘 혹은 네오 미니멀리즘의 형태 작업을 했다. 특히 1991년까지 그의 그림의 주된 주제는 고요한 풍경으로 인물은 나타나지도 않았다. 특정 인물이 나타나게 된 시점은 1998년으로 미술행정가인 엘렌과 교사인 폴 등 주변 인물을 그리면서다. 그 후로 작가의 화가 피오나, 학생 마르코, 주부인 버지니아, 무용수인 브루스, 미술품 수집가, 화랑대표, 일본 판화의 딜러 켄과 그의 부인 등을 그렸다. 개별성에 보편성을 입히는 오피는 인물의 얼굴과 신체적 특징 같은 생략하고 단순화했다. 오피 자신이 직접 촬영한 사진을 컴퓨터로 수정한 이미지들이다. 그 결과 그의 작품은 마치 표지판(사인보드·Sign Board)같이 느껴진다.
●LCD동영상 작품 등 30점 전시
현대 산업화의 상징인 LCD 위에 그린 초상화는 영화 ‘해리 포터’에서 본 인물사진이나 현상수배 전단지를 연상하면 된다. 꼼짝도 하지 않는 몸과 달리 눈동자가 살짝 움직이거나 인물화의 배경인 풍경속 구름이 흘러가거나 귀고리가 딸랑거린다. “21세기가 아니면 해 볼 수 없는 작업이었다.”고 오피는 말했다. 그의 작품은 현재 영국 테이트 모던, 뉴욕 현대미술관, 도쿄 국립현대미술관 등 주요 미술관에서 소장하고 있다.
이번 전시는 최신작들로 라이트 박스를 이용한 평면작품과 LED 동영상 작품, LCD 동영상 작품, 조각 등 총 30점으로 구성됐다. (02)733-8449.
문소영기자 symun@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