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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길섶에서] 인감도장의 퇴장/문소영 논설실장

    은행 통장을 개설할 때 인감도장을 안 찍고 사인하는 것으로 대체한 지 오래다. 회사 결재에서도 도장을 찍는 일은 드물다. 그래도 법인 대표가 교체되면 대표 인감을 바꿔 등록하는 등의 다소 복잡한 과정을 거친다. 부동산을 매매할 때도 인감도장이 필수다. 그러나 그런 특별한 때는 많지 않으므로 우리 대부분은 인감도장의 존재를 잊고 산다. 나도 언제인지 모르겠으나 동주민센터에 인감을 등록해 놓았다. 수년 전 인감을 사인으로 바꾸라는 안내문도 있었다. 하지만 중환자실에 입원해 옴짝달싹하지 못하거나 할 때 가족이 내 인감을 쓸 일이 생기면 어쩌느냐는 쓸데없는 걱정으로, 인감을 사인으로 바꾸지 않았다. 그런데 그 중요하다는 인감을 막도장으로 등록해 놓고, 그것도 자주 잃어버려 인감을 다시 등록하곤 했다. 얼마 전에도 인감증명서를 떼려고 가져간 나무도장을 살펴보니 다른 도장이다. 또 한 번의 낭패였다. 인감도 일제의 잔재라고 한다. 일본에서도 구시대의 유물이라며 인감도장을 없애고 있다고 한다. 우리만 여전히 인감이 매우 강력한 본인 인증 수단이다. 도장의 시대는 언제쯤 완전히 끝날까. symun@seoul.co.kr
  • [길섶에서] 냉이와 지칭개/문소영 논설실장

    10년차 ‘도시농부’로 지난주에 텃밭에 나가 감자를 심고, 호기롭게 냉이도 캤다. 시골 출신이라 어린 시절 냉이를 자주 캤다고 자랑하는 동갑내기랑 동행했는데, 소도시 출신으로 냉이와 유사 풀을 구별하지 못하기 때문에 그의 ‘감별’ 능력을 기대했다. “이거 냉이냐”고 묻고, “냉이네”, “냉이 아니네”를 반복하며 한 소쿠리를 캤다. 집에 돌아와 소셜미디어를 봤더니 경기도 하남 사는 들꽃 전문가가 그날 마침 냉이를 캤다며 사진을 올려놓았다. 냉이 유사 풀인 ‘지칭개’ 사진도 함께. 낭패! 친구나 나나 흔한 봄나물 하나 구별할 줄 모르다니! 냉이는 뿌리 전체가 미색으로 길고 곧다. 유사 풀인 지칭개는 잎사귀와 뿌리의 경계 부분이 붉다. 지칭개의 잎사귀는 뒤집어보면 흰빛이 난다. 냉이나 지칭개의 뿌리는 모두 냉이 냄새가 난다. 잘 몰라서 뿌리 냄새까지 맡아가며 수확한 냉이 한 소쿠리 모두 지칭개였다. 제대로 사물을 인지하지 못하면 ‘유사품’에 속을 수밖에 없는 세상사에 빗댈 수 있을까. 지칭개가 냉이보다 못할지는 모르나 겨울을 난 봄나물들이기에 쓴맛이 강하지만 영양분이 많으니 국을 끓이거나 나물로 먹어도 좋단다. 그래도 냉잇국을 먹고 싶다는 가족의 하소연이 들리는 듯해 다시 봄들에 나가봐야겠다. symun@seoul.co.kr
  • [길섶에서] 입문(入門)/문소영 논설실장

    운동과는 담을 쌓아 ‘숨쉬기 운동’이 전부였다. 그러다 30대 중반 빠르게 걷기 운동을 시작했다. 번지점프에 도전하겠다는 꿈 때문이었다. 그냥 뛰어내리면 되는 거 아닌가 싶었는데, 번지점프를 하다 심장마비로 죽었다는 외신 보도가 ‘두둥’ 하고 떠올랐다. 심장 상태가 좋은지 나쁜지는 알 수 없으나 일단 운동으로 심장을 다져놓아야 번지점프를 하다가 신문에 나는 흉한 일을 피할 듯 싶었다. 그렇게 시작한 빠르게 걷기 운동도 20년 동안 하다가 말다가 했다. 후회도 자주 했다. 어떤 운동이든 마찬가지지만 중간에 그만둘 때 발생하는 부작용 때문이었다. 섭식은 줄지 않으면서 운동량이 줄면 알게 모르게 살이 쪘다. 생애 최고치의 몸무게를 매년 경신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말로만 읊조리는 다이어트는 그만두기로 굳게 마음 먹었다. 그래서 입문한 것이 요가 또는 보디라인 만들기라는 운동이다. 주워들은 말로 요가가 몸무게를 줄여주지는 않지만, 몸매를 좋게 만들어준단다. 언감생심이다. 다만, 다른 효능에 충분히 만족하고 있다. 오른쪽 날갯죽지의 통증이 심했는데, 완화된 것이다. 두 번 만에 벌써 중독된 듯하다. 번지점프의 꿈은 아직 이루지 못한 채. symun@seoul.co.kr
  • [길섶에서] 특수성의 오판/문소영 논설실장

    정치사회학자 시모어 마틴 립셋은 ‘한 나라만 알고 있는 연구자는 하나의 나라도 모르는 것’이라고 했다. 보수적인 정치학자 프랜시스 후쿠야마는 고대·중세·현대를 국가 단위로 나눠 비교·분석한 ‘정치 질서의 기원’이란 책에서 립셋의 이 발언을 소개하면서, 최소 두 나라를 비교하지 않으면, 한 사회의 정치사회적 양상이 그 사회 특유의 것인지 아니면 일반화된 어떤 것인지 알 도리가 없다고 했다. 지리나 기후, 기술, 종교, 사회적 갈등 등을 비교하면서 정치 특수성을 찾아낸다는 것이다. 쉬운 예로 한국은 4계절이 ‘뚜렷한’ 온대지방이라고 배우지만, 온후한 온대지방을 경험하고 나면 한국의 ‘뚜렷한 4계절’ 중 여름은 열대, 겨울은 툰드라처럼 가혹하고 혹독하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 것과 비슷하다. 인류의 보편성을 한국만의 특수성으로 흔히 오판한다. 한국인의 ‘민족 대이동’은 중국의 춘제나 서양의 명절인 크리스마스나 부활절에도 나타난다. 한국의 ‘세대 간 갈등’도 보편성이 있다. 의료의 발전으로 동서양 모두 100세 시대가 된 탓이다. 인류의 보편성에 기초해 한국의 문제를 발견한다면 문제 해결 방식도 보편적이어야 한다. 퍼스트 무버로의 전환은 경제성장뿐 아니라 문제 해결에서도 마찬가지 과제다. symun@seoul.co.kr symun@seoul.co.kr
  • [문소영 칼럼] 김 위원장의 서울 답방과 세계 평화

    [문소영 칼럼] 김 위원장의 서울 답방과 세계 평화

    김여정 북한 노동당 부부장이 지난해 2월 평창동계올림픽 개막식에 참석하자 언론은 ‘6·25전쟁 이후 백두혈통의 첫 남한 방문’이라고 자주 표현했다. 전쟁 중이었으니 남한에 온 사람은 김일성이겠지, 남한 땅 어디어디를 밟았을까 궁금했다. 외교안보담당 기자들에게 출처를 물었더니 이런 보도자료를 낸 부처도 출처는 모른다고 했단다. 직접 출처를 찾고자 한국전쟁을 다룬 책들을 읽기로 했다. 미국 탐사보도 기자 출신인 데이비트 핼버스탬이 쓴 1082쪽의 ‘콜디스트 윈터’(The Coldest Winter)를 지난해 봄 샅샅이 읽은 이유다. 부제가 ‘한국전쟁의 감추어진 역사´였는데, ‘남침에 의한 골육상잔’이라는 상투적 이해를 훌쩍 뛰어넘는 외교안보 교재였다. 루스벨트 대통령의 갑작스런 사망으로 대통령직을 맡은 트루먼 대통령과 애치슨 국무장관이 ‘전쟁영웅’ 맥아더 유엔군 최고사령관과 벌이는 파워게임, 매카시 의원의 선동으로 시작된 반공의 광기 속에서 장제스의 중국 본토 수복을 도와야 한다는 친중 언론과 미국 국무부의 갈등 격화, 한국전쟁이 미국의 대중 관계에 미친 악영향 등 미국 정계와 외교 문제 전반이 수록돼 있다. 기대했던 북한군의 전투 동선은 거의 나오지 않았고, 전장은 미군이 많이 전사한 운산·장전호 전투가 중심이었다. 9월 인천상륙작전에 고무돼 오만해진 맥아더 전쟁지휘부는 겨우 2주 훈련으로 한국에 파견된 솜털 보송보송한 20대의 미군들을 여름 군복 차림으로 평안북도까지 내몰았다가 10월 말 추위와 공포 속에서 중공군의 인해전술에 속절없이 전사하도록 노출시켰다. 이 20대 젊은이들은 크리스마스는 고향에서 지낼 기대에 잔뜩 부풀었는데 말이다. 제2차 세계대전 종전으로 국방비와 해외 파병을 10분의1 수준으로 가파르게 축소하던 트루먼 대통령은 한국전쟁 발발로 그 정책을 포기해야 했으니, 미국 의회의 동의도 없이 참전을 단독으로 결정한 그에게도 한국전쟁은 뼈아픈 전쟁이었고, 대만을 도울 기회를 잃었다는 격렬한 언론의 비판에도 직면했다. 그 책에 지난해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뿐 아니라 하노이에서도 미군 유해 송환에 미국 정부가 그렇게 적극적일 수밖에 없는 이유를 충분히 이해할 만한 대목이 있다. 한국전쟁에서 전사한 미군은 3만 4000명 정도다. 한국전쟁은 당사자인 우리로서는 잊을 수도, 잊어도 안 되는 전쟁이지만, 미군이나 유엔군의 이름으로 참전한 군인이나 북한을 도운 중공군조차도 영광도 명예도 없는 ‘잊힌 전쟁’에 불과했다. 남한 측의 피해가 막대하다고 해서 책을 읽는 동안 내내 미국, 프랑스, 터키, 독일 등에서 참전한 젊은 군인들의 희생에 대한 부담이 줄어들지 않았다. 김일성의 남한에서의 행보 추적은 결국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가 2008년 펴낸 6·25전쟁사 4권 223쪽에서 발견할 수 있었다. ‘김일성은 1950년 7월에 충주 수안보 인근까지 내려와 낙동강 전선을 어서 돌파하라고 독려했다’는 요지였다. 그 출처는 전쟁기념사업회의 ‘한국전쟁사´(1992) 3권 250쪽이었다. 공식 문서가 출처인 셈이다. 이것 외에도 백선엽 전 육군참모총장이 쓴 회고록에도 ‘서울을 거쳐 충북 수안보까지 내려왔다’고 돼 있다고 했다. 북한군 사령관이던 김책은 항일 동지로, 백두혈통은 아니었다. 지난해 9월 19일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서울 답방’ 발표가 있었을 때 평양공동취재단 등에서 ‘북측 최고지도자의 서울 방문은 역사상 처음´이라고 표현을 바꾸었다. 살짝 달라진 것이지만, ‘6·25전쟁 이후 백두혈통의 첫 방문’과 같은 표현이 무의식적으로 유발하는 적개심과 분노, 경계심과 근심 등은 완화된 듯했다. 올봄 김 위원장이 서울 답방을 한다면 북미 정상회담과 같은 역사적 발걸음은 시작되는 것이다. 2017년 내내 한반도는 ‘제2의 한국전쟁’을 우려하며 불안에 시달렸다. 1년 2개월 뒤인 현재 하노이의 제2차 북미 정상회담을 실시간으로 느긋하게 지켜보고 있다. 평양과 워싱턴에 북미가 각각 연락사무소를 설치하고, 두 나라가 종전을 선언하면 한반도뿐만 아니라 세계에도 더 안전한 미래가 보장되는 것이다. ‘완전한 비핵화가 아니면 노딜’이라는 주장이나 ‘한국이 빠진 종전선언은 동의할 수 없다’는 발언은 비상식적이다. 더는 반공으로 세력을 키우고 생존할 수 없다. 그런 관성으로 버텨 온 진영이 한반도 냉전이 해체되는 새로운 시대를 직시하지 못한다면 미래는 없다.
  • [길섶에서] 곤마리 정리법/문소영 논설실장

    ‘곤마리’는 일본 여성 곤도 마리에의 약칭으로 그녀가 ‘곤마리 현상’의 주인공이다. 곤마리는 ‘정리의 여왕’이다. 그녀는 불필요한 물건들을 버리는 방법을 알려주는 콘텐츠를 넷플릭스를 통해 전 세계로 송출하고 있다. 이런 식이다. 옷을 장롱에서 다 꺼내 쌓아 놓고서 그 옷을 만졌는데 더이상 설렘이 느껴지지 않는다면 가차없이 버리는 것이다. 설렘이라, 그런 감정이 사라진 지가 언제인데 하는 마음이지만, 장롱을 가득 채운 나의 옷들을 떠올려보았다. 겨울옷이 겹겹이 쌓여 있지만 올겨울을 나는 데는 사실 몇 벌 필요하지 않았다. 외출용 겉옷으로 오리털 검은색 패딩을 입고, 회사 내 근무복으로는 베이지색 오리털 패딩으로 버틴 것이다. 그러니 옷장 속의 비싼 옷들은 모두 버려도 상관없다. 지난해에 이어 올 목표 중 하나가 물건을 사지 않겠다는 것이다. 활용하지 않는 옷과 액세서리, 도자기가 차고 넘친다. 소파 교체가 관건인데 할머니 주름살처럼 낡은 가죽을 사랑하며 견디기로 했다. 돌아보니 내 주변에 간소한 삶을 꾸리는 이가 한둘이 아니다. ‘미니멀 라이프’를 시전하려는 것인데, 이런 태도가 자영업자들의 불황에도 영향을 미치니 살짝 망설여지기는 한다. 그래도 인생의 반환점에서 욕망을 덜고 담백하게 살고 싶다. symun@seoul.co.kr
  • 대검, 檢개혁 위한 ‘검찰미래위원회’ 발족

    대검, 檢개혁 위한 ‘검찰미래위원회’ 발족

    검찰 개혁을 위한 외부 전문가위원회가 닻을 올렸다. 위원장은 국회 공직자윤리위원장을 지낸 윤성식 고려대 명예교수가 맡았다. 대검찰청은 검찰 개혁 방안과 추진 계획 등을 마련할 ‘검찰미래위원회’ 발족식과 함께 외부위원 위촉식을 열었다고 14일 밝혔다. 위원회에는 윤 위원장과 함께 이국종 아주대병원 권역외상센터장, 문소영 서울신문 논설실장, 박준영 변호사(재심 전문), 이인아 서울대 뇌인지과학과 교수 등 15명이 참여한다. 앞으로 1년간 위원들은 검찰 제도, 업무, 문화 등과 관련된 다양한 의견을 문무일 검찰총장에게 직접 제안한다. 앞서 검찰개혁위원회도 2017년 9월부터 1년 동안 활동하면서 각종 개혁안을 마련해 문 총장에게 권고했다. 윤 위원장은 인사말을 통해 “국민과 공감할 수 있는 (검찰의) 혁신과 변화는 더이상 거스를 수 없는 시대의 흐름”이라면서 “혁신과 변화를 지향하는 위원회를 설계하겠다”는 각오를 내비쳤다. 문 총장은 “열린 마음으로 위원들과 소통하겠다”면서 “즉시 시행할 수 있는 사항은 바로 이행하고, 법과 제도가 필요한 사항은 신속히 실효성 있는 추진 방안을 만들겠다”고 말했다. 김헌주 기자 dream@seoul.co.kr
  • [문소영 칼럼] ‘자명한 진리’로 불평등을 개선하는 사회

    [문소영 칼럼] ‘자명한 진리’로 불평등을 개선하는 사회

    프랑스가 수출한 최고의 상품은 와인이나 테제베, 에어버스가 아닌 ‘자유·평등·박애’라고 생각했다. 1789년 프랑스혁명의 산물로 현대 민주주의 국가 탄생에 지대하게 공헌했고, 현대인의 정신적 지주들이 아닌가. 프랑스에서는 ‘자유와 평등’은 천부적인 권리로서 혁명이 있던 그해인 1789년에 제정된 ‘인간과 시민의 권리선언’에, ‘박애’는 사회공동체에 대한 의무로서 1795년 제정된 ‘인간과 시민의 권리와 의무선언’에 각각 수록됐다. 우리의 헌법에도 이 정신들이 들어 있다. 그런데 설 연휴에 서독 총리를 지낸 헬무트 슈미트가 쓴 ‘구십 평생 내가 배운 것들’을 읽다 보니 ‘아니, 신생국가 미국에서 프랑스로 수출한 것인가’ 하는 의문이 생겼다. 미국은 프랑스혁명보다 10여년 전인 1776년 독립을 선언했는데, 이때 독립선언문의 초안을 쓴 이는 나중에 3대 미국 대통령을 역임한 토머스 제퍼슨으로 선언문에는 이런 대목이 있다. “우리는 다음과 같은 것을 ‘자명한 진리’라고 생각한다. 즉 모든 사람은 평등하게 태어났으며, 조물주는 몇 개의 양도할 수 없는 권리를 부여했으며, 그 권리 중에는 생명과 자유와 행복의 추구가 있다. 이 권리를 확보하기 위해 인류는 정부를 조직했으며, 그 정부의 정당한 권력은 인민의 동의로부터 유래하는 것이다.” 이 제퍼슨은 프랑스혁명이 진행될 때 파리 주재 미국대사였는데 인권과 시민권 선포에 기여했다고 슈미트 총리가 설명했다(120~121쪽). 세계사 책에서 읽은 한 문장인 ‘미국 독립전쟁이 프랑스혁명에 영향을 미쳤다’는 구절이 갑작스레 훨씬 풍부해졌다. 제퍼슨이 독립선언문에 담은 ‘자명한 진리’로서의 천부인권론은 사실 18세기 중엽 유럽에서 가장 핫한 이론 가운데 하나였다. 제네바 출신의 장 자크 루소가 쓴 논문 ‘인간 불평등 기원론’(1755년)과 ‘사회계약론’(1762년)이 당시 유럽 지성계를 강타한 것이다. 루소는 두 논문에서 ‘인간 조건의 모든 불쾌한 특성이 자연에서 생긴 것이 아니라 사회발전 과정에서 파행해 불평등을 도덕적으로 정당화함으로써 불평등을 제도화했다’면서 “인민이 좋아하면 수임자를 지정할 수가 있고, 또한 그만두게 할 수도 있다”며 체제 전복도 옹호했다. 특히 ‘인간 불평등 기원론’은 프랑스 디종 아카데미가 1753년 ‘인간 불평등의 기원은 무엇이며, 불평등은 자연법에 의해 허용되는가’라는 주제로 한 논문 현상 공모에 루소가 응모했다가 낙선한 논문이란 점에서 흥미롭다. 그는 앞서 1749년 디종 아카데미의 논문 현상 공모에서는 최고상을 받았다. ‘불평등의 창조’를 쓴 인류고고학자인 켄트 플레너리와 조이스 마커스는 루소의 인간 불평등 기원론에 대해 ‘찰스 다윈과 허버트 스펜서의 진화론보다 100년이 앞서고, 하인리히 슐리만의 고고학보다 120년이나 앞선 탓에 어떤 자료의 도움도 받지 못한 상태에서 통찰만으로 인류의 불평등을 진단했다’며 감탄한다. 이 자유·평등·박애와 같은 자명한 진리는 유럽과 미국을 오가면서 서로에게 깊이 영향을 주고 현대 민주주의 시대를 열었다. 인류의 불평등은 언제 시작됐을까. 인류학자들은 기원전(BC) 2500년부터 어느 문화권이든 나타난다고 한다. 1만 2000년 전 신석기혁명이 일어났으니, 농사를 지은 뒤 1만년쯤 지난 무렵이다. 불평등은 약 5000년도 안 된 셈이다. 500만년 전 오스트랄로피테쿠스 대신 5만년 전에 나타난 현생 인류 호모사피엔스를 기준으로 해도 인류는 아주 오랫동안 평등하게 살았다. 즉 인류는 경쟁해서 살아남은 것이 아니라 협동하고 겸손하고 이타적으로 살아 3만년 전 빙하기도 뛰어넘고 대륙을 뛰어넘는 사상적 연대로 연결돼 발전해 온 것이 아닐까. 미국 시카코에 살인적인 한파가 닥치자 지난달 30일 모텔방 30개를 빌려 노숙자에게 제공한 30대 평범한 여성의 충동적인 용기는 지역의 이웃들에게도 영향을 줘 100여명의 노숙자들이 한파를 피하는 모텔에 있다고 한다. 두 달도 안 돼 새해가 또 시작됐고 새 각오를 하고 있다. 집안을 어슬렁거리는 고양이를 바라보다가 저 작은 고양이조차 빅뱅 이후 지구의 생성과 진화 과정을 품은 생명체이거니 생각하니 문득 경외심이 솟고 팔뚝에 소름도 오스스 돋는다. 인류가 공존의 힘으로 수십만년을 진화해 왔다는 많은 연구들을 접하면서 자유·평등·박애가 다시 자명한 진리인 세상을 떠올린다. symun@seoul.co.kr
  • [길섶에서] 흰머리 발굴/문소영 논설실장

    최근 가르마를 왼쪽으로 바꿨다. 오른쪽 앞이마에 제비초리가 있어서 그쪽으로 가르마를 타는데, 머리 형태가 너무 납작해지는 듯해서 그랬다. 머리를 한 갈래로 땋거나 쪽 찐 머리를 할 때는 푸르스름하게 흰빛이 인상적인 반듯한 가르마가 정석이었지만, 현대에는 지그재그 가르마 등이 인기다. 미용실에서 들은 바로는 가르마를 수십 년 똑같은 방향으로 하면 그 부분이 햇볕과 공기오염, 스트레스에 노출되는 탓에 머리숱이 적어진다고 했다. 그러면서 지그재그 가르마를 추천했다. 젊은이들도 과도한 스트레스에 숱이 적어져서인지, 미용실의 추천 덕분인지, 무심한 듯 자연스런 가르마를 하고 다닌다. 그런데 가르마를 바꾸고 예상치 못한 물질의 출현에 충격을 받았다. 흰머리가 한꺼번에 무더기로 나타난 것이다. 한두 개도 아니고 수십 개나 노출됐다. 용케 머리숱에 가려서 지금까지 발견되지 않던 것이다. 정수리 기준으로 왼쪽은 흰머리 유전자가, 오른쪽엔 검은 머리 유전자가 몰려 있었단 말인가. 상식적으로 모낭의 노화는 유비쿼터스 아닌가. 느닷없는 흰머리의 출현에 마음이 상하지만, 새치라며 뽑는 40대의 만용을 부릴 수 없었다. 듬성 머리보다는 흰 머리카락 한 올도 소중하니까.
  • [길섶에서] 과거의 나를 이기는 삶/문소영 논설실장

    대학을 졸업한 23살에 백수였다. 졸업을 했으나 백수답게 교정을 배회하던 시절이라 점심을 먹고 돌아오던 길에 후문 고가 밑에 자리잡은 한 할아버지가 수상을 본다고 해서 재미삼아 손바닥을 내민 적이 있었다. 5000원이었다. 당시 할아버지 왈, “사시를 보면 붙겠어”라고 했다. “몇 살에요?” “35살에.” “네?” 그 당시부터 12년이나 공부를 해서 사시에 붙는다면 무슨 의미가 있나 싶어서 뒤도 안 돌아보았다. 목표를 정해놓고 달성할 때까지 인생의 즐거움을 유예하고 사는 고시생들의 삶을 살아낼 자신도 의욕도 없었다. 잠깐 학원 강사로 시간을 보내기도 했는데, 중고생에게 학원서 선행학습을 시키는 것에 죄의식 같은 것이 올라와 그만두었다. 취업 재수생 시절에 신문을 읽으면서 “되기만 하면 좋은 기자가 될 수 있을 텐데”라고 했는데, 얼마만큼 그 각오를 지키며 살아왔나 생각해 본다. 과거의 나는 어땠는가를 돌아보고, 현재는 어떠하며, 미래에는 어떨 것인가를 생각한다. 아마도 연말연시인 탓이리라. 헤밍웨이는 나이가 많아진다고 현명해지는 것은 아니라고 했다. 또한 과거의 자신을 이기는 때만이 진정 승리하는 것이라고 했다. 나이만큼 현명해지고 과거의 나를 이기는 새해를 기대해 본다. symun@seoul.co.kr
  • [길섶에서] 땅 보며 잘 걷기/문소영 논설실장

    발은 작아도 잘 넘어지지 않는 동생은 그 비결을 땅을 주시하며 걷는 습관 덕분이라고 했다. 대신 동생은 험한 걸 많이 봤다. 이를테면 로드킬 당한 동물의 사체같은 것이다. 내 걷는 습관이자 버릇은 시선을 허공에 걸어둔다. 그래서 길을 걸어도 땅바닥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거의 모른다. 싱크홀이나 맨홀 뚜껑이 열려 있거나 하지 않았으니 허공에 시선을 두어도 큰 문제가 없었다. 문제는 계단이다. 내려가는 계단에서 늘 참사가 일어난다. 마지막 남은 계단 한 칸을 미쳐 보지 못하고 발을 신나게 내딛다가 발목이 돌아가는 일이 수십년째다. 수습기자 때 마포경찰서 계단을 내려가다가 발목을 또 다쳐 새벽 5시부터 다음날 새벽 1시까지, 일주일 넘게 고생했다. “수습은 사람도 아니다”라던 시절이니까 발목을 다쳤다고 말을 못해 병원에도 못 가고 압박붕대에 의지해 길고 긴 하루를 보냈다.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지만, 이제 허공에 시선을 두는 버릇을 고칠 나이가 되었다. 연초에 넘어져 오른발 골절로, 연말에 왼발 인대를 또 다쳐 깁스를 각각 했다. 나이 탓인지 잘 낫지 않는다. 목발에 기대 아둔하게 걸으니 두뇌도 아둔해지는 듯하다. 직립보행으로 뇌가 커졌다는 가설이 맞는 건가 싶다. symun@seoul.co.kr
  • [길섶에서] 에어프라이어/문소영 논설실장

    지난해 이사를 하면서 가스 오븐을 버렸다. 10년 쓴 낡은 오븐이지만, 자발적이지는 않았다. 생선 그릴이 따로 있어 고구마와 군밤을 굽기도 하고 휴일에 케이크믹스를 사다가 스펀지 케이크 정도는 만들어 먹는 재미가 있었기 때문에 들고 가겠다고 버텼는데, 당시에 감언이설은 이러했다. “크기가 더 작고 효율이 더 좋은 광파 오븐을 사게 해주겠다.” 가스 오븐에 빵을 굽다 시간 조절에 실패하면 가스가 올라오는 빵바닥이 새까맣게 타기도 해서 전기로 균일하게 열 배분을 한다는 광파 오븐을 학수고대했다. 결론은 1년이 넘었지만 아직도 집에 오븐을 들이지 못했다. 지금에 와서는 “광파 오븐 없이 1년이 넘었는데 아쉬운 게 없지 않았느냐”는 엉뚱한 설득을 한다. 화장실 갈 때와 나왔을 때 심사가 다르다고 하더니, 군고구마와 군밤을 먹지 못하는 사람만 아쉬울 따름이다. 여러 말에도 굴하지 않고 지속해 오븐 타령을 해댔더니, 마침내 응답이 왔다. “에어프라이어는 어떠냐”는 것이다. 에어프라이어는 최근 저가의 제품이 쏟아지고 있다. 생각해 보니 최근 2년간 에어프라이어 노래도 4절까지 불렀는데, 이제야 광파 오븐의 대체 가전으로 에어프라이어를 내놓은 것이다. 꿩 대신 닭을 받아들여야 할 것인가. symun@seoul.co.kr
  • [문소영 칼럼] 경제, 디테일 강화하고 고정관념 파괴해야

    [문소영 칼럼] 경제, 디테일 강화하고 고정관념 파괴해야

    미국의 서브프라임모기지(비우량주택담보대출)로 촉발된 세계 금융위기가 발생한 2008년은 부동산 경기가 폭삭 주저앉아 2006~2007년 노무현 정부의 활황 때와는 경기가 완연히 달랐다. 그 무렵 한국은행의 한 국장은 “부동산 경기가 죽어서 주택 매매도 없고, 성장률이 하락하고 있다”고 했다. 부동산 폭등으로 집 없는 사람들이 아우성치던 시기가 1년도 지나지 않았을 때라 무슨 이야기냐고 되물었다. 그는 “주택 매매가 활발해야 부동산업자뿐 아니라 이사업체, 인테리어업자나 벽지, 타일, 가구 등의 소규모 자영업자들의 후방사업들이 활발하게 돌아가고 성장률이 올라간다”고 답했다.당시 이명박 대통령이 연간 7% 성장, 국민소득 4만 달러, 7대 경제 대국이라는 ‘747’ 공약을 내걸고 당선된 첫해이니 성장률이 중요했겠으나, ‘성장률 높이자고 가계가 이사비용과 벽지·마루 교체비용 수백만원을 치르며 이사까지 가야겠나’라며 혀를 찼던 것 같다. 다만, 그날 부동산 경기의 후방효과는 매매만이 아니라는 점을 확실히 알게 되었다. 즉 ‘간판´이 걸리면 그 간판을 유지하고 지지하는 다양한 연관 사업들이 뒤따르는 것이다. 올 1분기에 1% 성장을 한 뒤 2·3분기에 연속으로 전기 대비 0.6% 성장에 그쳐 경기둔화를 우려하고 있다. 이 둔화의 주범으로 ‘최저임금 인상’과 ‘52시간 근로제’를 지목한다. 일자리 창출과 소득주도성장을 한다더니, 기술 없는 젊은이와 저소득층의 일자리는 사라져 역대 최대의 소득불평등이 진행되는 현상 등이 정부 통계로 드러난 탓이다. 그런데 물어보고 싶다. 최저임금은 계속 낮게 유지하고, 구로 테크노밸리 IT노동자들이 야근에 뼈와 살을 갈아 넣을 뿐만 아니라 판검사들도 과로사하는 장기노동의 현실을 외면한 채 주당 60시간제를 유지해야 한다는 것인가. 가족이 모여 저녁을 먹고 여가를 즐기는 ‘저녁이 있는 삶’은 선진국 국민만 누릴 수 있는 호사여야 할까. ‘저임금·노동집약적 산업’ 구조를 유지해, 가격 경쟁력으로 세계시장에 상품을 파는 시기는 지나가고 있다는 사실은 대다수가 인정한다. 한국은 교역물량만으로는 8위권 안팎의 나라로 성장했다. 그러니 ‘최저임금 인상’과 ‘52시간 근로제’의 도입은 시대정신인 게 맞다. ‘서울의 야경이 아름다운 것은 노동자들의 야근 덕분’이라는 레토릭은 이제 우스갯소리로 끝나야 한다. 그렇다면, 시대정신에 맞는 제도는 왜 경기둔화의 주범으로 지목받는가. 문재인 정부가 ‘최저임금 인상’과 ‘52시간 근로제’의 도입이라는 ‘간판’을 내걸면서, 그 간판의 지지와 유지에 필요한 디테일을 마련하지 못한 것이 아닐까 하고 생각한다. 시대정신이라는 ‘당위’에 근거한 선언만 있을 뿐 어떻게 실행할 것인지의 매뉴얼이 빠져 있었다. 최저임금을 2년에 걸쳐 30% 가까이 인상한다면, 인력시장에서는 인건비 부담을 고려해 해고하고, 고용할 때도 생산성이 높은 경험자만을 우대하는 게 당연하다. 이런 인력시장의 성격이 변화할 것을 사전에 예상하고 단계별로 대응책을 내놓았어야 했다. 무방비로 있다가 신규 고용 5000명까지 하락한 뒤에야 재정을 투입해 ‘초단기 알바’를 늘리니, 생산성을 고려하는 애국적 시민들은 나라 걱정에 밤잠을 설치는 것이다. 52시간 노동제도 생산성 혁신방안과 함께 발표했어야 했다. 노동자의 임금이 줄고, 사업자는 생산시간이 부족한 문제를 해결하는 방안도 같이 마련했어야 했다. 양자의 문제를 해결할 방안이 필요했다. 무엇보다 장기노동에 익숙한 산업화 세대들이 “이래도 나라가 돌아가느냐”고 우려할 때 생산성 증대 방안 등을 제시해 안심시켰어야 했다. 변화는 프레임이 바뀌고 바뀐 프레임들이 모여 패러다임을 교체해야 가능하다. 과거의 생활습관과 고정관념으로는 ‘파괴적 혁신’이 진행되는 미래의 산업구조를 만들어 나갈 수 없다. 바꾸고 바뀌어야 한다. 이런 차원에서 이번 정부에서는 ‘토건족’에 반대한다면 사회간접자본(SOC) 투자를 줄이겠다는 고정관념의 변화가 필요하다. 서울 부동산 가격을 잡겠다며 수도권에 아파트를 짓겠다고 결정했다면, 수도권 GTX사업 등의 속도를 내야 한다. 쪽지예산으로 시골에 신작로 닦는 SOC는 그만둬야 마땅하지만, 직장과 주거가 근접해야 한다는 원칙에도 불구하고 비싼 집값에 밀려나 서울로 출퇴근하는 수도권 직장인을 위해서라도 수도권 GTX를 민자가 아닌 재정으로 편성하는 문제를 고려해야 한다.
  • [길섶에서] 마취와 흰머리/문소영 논설실장

    또 수술을 했다. 생애 네 번째 수술이다. 두 번은 전신마취, 두 번은 하반신 마취이다. 경험해 보니 전신마취 수술이 더 심각한 수술이지만, 환자 처지에서는 고생이 덜하다. 하반신 마취는 마취에서 못 깨어날 수도 있다는 두려움은 없지만, 마취 후 사후관리를 6시간씩 해야 한다. 척수에 마취제를 넣었기 때문에 부작용이 발생할 가능성을 막기 위해서라는 설명이다. 정신이 멀쩡한데 침대에 베개도 없이 꼼짝하지 않고 누워서 6시간은 심각하게 곤란하다. 12시간 금식으로 입술이 바싹바싹 타들어 가도 물 한 모금 못 마신다. 그러니 사후관리 시간에 수액을 많이 투여해 화장실이라도 가고 싶어지면 낭패다. 이번엔 발의 골절 부위에 박은 나사를 뽑는 수술이었다. 담당 의사가 너무 쉽다고 하고, 주위에서도 간단한 수술이라고 격려해서, 화살 맞은 관우처럼 생수술은 아니더라도 발만 마취하고 나사를 뽑아낼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그건 정말 나의 착각. 수술은 역시 아무리 간단해도 수술이었다. 다만 지난 2월에 한 수술은 회복까지 석 달이 걸렸다면, 이번 수술은 늦어도 2주 후면 회복된다는 것이다. 당분간 엄지발가락에 힘을 실어 절름절름 걷고 흰머리는 늘겠으나 곧 좋아지리라는 희망으로, 으쌰! 문소영 논설실장 symun@seoul.co.kr
  • [길섶에서] 스스로 이발/문소영 논설실장

    짧은 머리이지만, 석 달에 한 번 정도 미장원에 간다. 다들 알다시피 짧은 머리는 자주 다듬어야 단정하다. 흔히 짧은 남자머리는 2주에 한 번 정도 다듬으라고 조언하기도 한다. 아무튼 더는 견딜 수 없는 지경이 될 때까지 버틴다. 앞머리가 길어지면 두어 번은 목욕탕 거울 앞에서 가위를 들고 앞머리를 스스로 자른다. 삐뚤빼뚤해도, 1960년대 간난이 같은 얼굴처럼 촌스러워져도 할 수 없다. 그래도 다행은 숱이 많지 않아 자르는데 큰 어려움이 없다는 것이다. ‘셀프 이발’은 미국 연수 길에 시작됐다. 한국서 머리를 짧게 자르고 가 8개월쯤 머리를 길렀지만, 짧은 머리 애착자라기보다는 긴 머리를 샴푸하고 말리고 하는 수고를 견딜 수 없었기 때문에 누군가의 버킷리스트를 떠올리고는 ‘셀프 이발’을 해 본 것이다. 그때는 뒷머리의 길이도 잘라야 했으니 감당하기 어려운 실패와 마주했다. 그 실패를 복구하려고 보자기를 쓰고 한국인 미용실을 찾아간 아픈 기억도 있다. 일 년에 겨우 네 번 미장원 가는 일에도 갈 때마다 주리를 틀게 된다. ‘나의 원장님’이 멀리서 영업한다는 것이 문제다. 그래도 1998년 이래 머리를 맡겨 왔기 때문에 다른 선택지를 찾을 수가 없다. 아! 이런 생활형 보수하고는! symun@seoul.co.kr
  • [길섶에서] 출근버스의 커튼/문소영 논설실장

    일산서 광화문으로 가는 출근 광역버스의 오른쪽 창문으로 요즘 햇빛이 찬란하게 부서진다. 가을이라도 그 햇빛이 들어오면 덥기도 하고, 또 일부는 얼굴의 잡티를 걱정하는 터라 차광커튼을 차지하려고 신경전을 벌이곤 한다. 대형 버스 유리 양쪽으로 커튼이 달렸으니, 앞뒤 중에서 자신과 가까운 쪽의 커튼을 당겨서 치면 모든 일이 간단하다. 그런데 왜 신경전을 벌인단 말인가. 관찰한 바로는, 사람들은 이미 펼쳐져 있는 커튼을 자기 쪽으로 당기는 것을 더 선호한다. 즉 접힌 커튼을 펼치는 수고를 하지 않는다. 그래서 뒤쪽 커튼을 쳐야 하는 승객인데도 자기 앞쪽에 커튼이 쳐져 있으면, 그냥 그 커튼을 잡아당겨 햇볕을 가리려고 한다. 그렇게 되면 커튼의 그늘서 꾸벅꾸벅 평화롭게 졸던 앞쪽의 승객은 느닷없이 침범한 찬란한 햇빛에 눈살을 찌푸리고 뒤로 넘어간 커튼을 신경질적으로 끌어당기게 되는 것이다. 그럼 뒷자리 승객이 다시 당기고, 앞자리 승객은 다시 당기는 실랑이가 벌어진다. 앞쪽에 커튼이 있다면, 뒤쪽의 접힌 채 대기하는 커튼의 존재도 떠올릴 만한데 말이다. 무의식적인 행동을 잠깐만 멈추고, 상식적으로 행동하면 넉넉한 일이 얼마나 많은지, 오늘 아침 출근길에도 목격한다.
  • [문소영 칼럼] 진보든 보수든 정부는 언론의 자유 싫어한다

    [문소영 칼럼] 진보든 보수든 정부는 언론의 자유 싫어한다

    “만약 나에게 ‘신문 없는 정부’와 ‘정부 없는 신문’의 양자택일을 하라면 나는 조금도 서슴지 않고 후자를 택하겠다.”1776년 미국 독립선언문을 기초하고 제3·4대 대통령을 지낸 토머스 제퍼슨(1801~1809 재임)이 1787년에 한 발언이다. 언론 자유를 강조할 때마다 등장한다. 그러나 제퍼슨이 미국 최초의 연임 대통령을 지내면서 전혀 다른 취지의 발언도 했는데 언론은 잘 인용하지 않는다. 그는 “신문을 하나도 읽지 않는 사람이 신문을 읽는 사람보다 소식을 더 잘 알고 있다”는 언론을 폄하하는 편지를 노벨 미시건 상원의원에게 보냈다. 언론에 얼마나 시달렸으면 신념이 바뀌었을까 싶지만, 언론 종사자로서 나중에 뒤집힌 철학이 아쉽다. 또 언론의 자유를 거론할 때 미국 수정헌법 제1조가 자주 거론된다. “언론, 출판의 자유를 제한하는 법률을 제정할 수 없다”고 해 절대적인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는 덕분이다. 미국 정부는 신문 검열제를 하는 전통을 가진 영국 정부와 달리 정부의 검열이나 입법부의 통제를 모두 부인한 것이다. 건국의 아버지들은 더 나아가 언론의 정부 감시를 택했는데, 제퍼슨은 1792년 워싱턴 대통령에게 “감시자 없이는 정부가 존재할 수 없으며, 신문의 자유가 보장되는 한 정부에서는 아무도 자유로울 수 없다”고 조언했다. 제임스 레스턴 뉴욕타임스 전 부사장이 쓴 ‘신문과 정부의 갈등’(The Artillery of the press·1967)에 나온다. 한국도 헌법 21조 1항과 2항에서 언론의 자유를 보장한다. “모든 국민은 언론·출판의 자유와 집회·결사의 자유를 가진다”와 “언론·출판에 대한 허가나 검열과 집회·결사에 대한 허가는 인정되지 아니한다”가 그것이다. 다툼의 여지는 있지만, 우리 헌법에는 언론의 자유 유보 조항이 존재한다. 제37조 2항에 “국민의 모든 자유와 권리는 국가안전보장·질서유지 또는 공공복리를 위하여 필요한 경우에 한하여 법률로써 제한할 수 있으며”라고 했기 때문이다. 기본권 유보 조항의 시작은 1948년 제정된 제헌헌법을 탓해야 한다. 제헌헌법이 ‘법률에 의해 국민의 기본권을 제한할 수 있다’는 일본제국헌법을 답습했다는 것이 헌법학자 김철수 전 서울대 명예교수의 해석이다. 이런 탓에 언론기본법이나 ‘언론중재 및 피해구제 등에 관한 법률’(일명 언론중재법) 등 언론규제법이 만들어지는 게 아닌가 싶다. 언론의 자유는 사실 ‘진보 정부’가 들어서면 크게 개선된다. 그래도 권력의 속성 탓인지 전두환 정권의 ‘보도지침’은 없어도 유무형의 압력과 규제를 만든다. 김주언 전 한국일보 기자는 2016년 8월 ‘보도지침 폭로 30주년 기념 세미나’에서 “보도지침이 유령처럼 떠돌고 있다”고 말했다. 박근혜 정부의 이정현 청와대 홍보수석이 세월호 참사 때 KBS 보도국장에게 협조를 요청한 녹취록이 공개된 때다. 그는 김대중·노무현 정부에서 언론에 우호적이지 않았던 세무조사나 취재선진화 조치 등의 사례도 담았다. 박근혜 정부에서 청와대 민정수석을 지낸 곽상도 의원은 2016년 일명 ‘기사삭제 청구권’을 도입한 언론중재법 개정안을 냈다. 이 개정안은 유튜브나 구글, 팟캐스트, 트위터 등등 소셜미디어를 ‘유사 뉴스 서비스’로 규정하고 허위 정보들이 이들 매체로 유통된다면 이를 통제하려고 했다. 이런 점에서 최근 정부 여당이 추진한다는 ‘가짜뉴스 규제법’과 ‘곽상도 언론중재법 개정안’이 닮은 면이 있지 않은가. 언론중재위원회의 존재도 아니러니다. 전두환 정부 때 ‘언론 3대 악법’으로 비판받은 언론기본법에 기초해 구성됐으나 1987년 언기법이 폐기된 후에도 ‘한국적 중재 모델’로 살아남았다. 근거법 없이 곁방살이를 하다가 참여정부이던 2005년 ‘언론중재 및 피해구제 등에 관한 법률’(일명 언론중재법)이란 모법을 제정했다. 이명박·박근혜 정부 때 포털 대관업무 담당자들은 당시 정부 여당 관계자가 자신들에게 불리한 실시간 검색어를 내려 달라고 닦달하고 단톡방에서 확산되는 루머를 왜 금지시키지 않느냐며 처벌법을 만들겠다고 겁박하는 통에 몹시 괴로워했다. 허위조작 정보를 찾아내 처벌하겠다는 현재와 교집합이 보이지 않는가. 권력은 감시당하지 않으면 부패한다. 가짜뉴스는 공론장에서 스스로 퇴출되도록 뉴스 리터러시 교육을 강화하고 건전한 공론장과 언론에 더 힘을 실어 줘야 한다. 가짜뉴스를 법과 규제로 해결할 수 없다. 논설실장 symun@seoul.co.kr
  • [길섶에서] 어떤 만남/문소영 논설실장

    최근 지인이 조촐하게 마련한 ‘여백을 번역하라’라는 출판기념회에 참석했다. 그날따라 부산서 상경한 젊은이의 ‘벙개’ 요청이 있었던 터라 예정보다 2시간이나 늦었다. 참석자들은 ‘번역을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강의를 홍대 근처에서 10여년 한 지인의 제자들로, 대성(大成)까지는 아니어도 번역책을 최소 한 권 이상 낸 멋지고 자랑스러운 남녀 번역가들이었다. 수년 전 이 지인의 번역강의를 들었으니 엄격히 말하자면 나도 같은 제자이지만, 함께 스터디 모임을 한 적이 없는 데다 이날따라 뒤늦게 자리에 합류한 늙수그레한 이방인이라 너의 존재를 밝혀 보라는 식의 질문을 간신히 무마하며 말석에서 맥주로 목을 축이고 있었다. 그런데 백열전구 아래 자리 중간 저쪽, 옆모습이 단아한 흰 얼굴은 아는 사람이 아닌가, 하는 촉이 확 오는 것이었다. 계속 주시하니 이상한 기운을 느낄 만도 한데 이쪽으로는 고개를 돌리지 않았다. 한참만에 마침내 그가 몸을 틀었다. 하나도 늙지 않고 옛날 그 느낌 그 분위기로 말갛게 웃었던가, 아니면 샐쭉한 표정이었던가. 15년, 20년 만인가. 또 만나자며 야간 택시에서 새끼손가락까지 걸었건만, 재회는 늦어지고 속절없이 시간이 흐르고 있다. symun@seoul.co.kr
  • [길섶에서] 목화꽃/문소영 논설실장

    화분에 목화를 심은 건 지난해 봄이었다. 터키 사는 지인이 항공우편으로 부쳐 온 씨앗이었다. 그 봄에는 기다려도 싹이 나지 않았다. 조선의 농서에는 솜에 싸인 새끼손톱만 한 검은 씨앗을 오줌통에 하루이틀 넣어 두었다가 심으라고 되어 있는데, 그 과정을 못 거쳐 그런가 하면서 아쉬워했다. 파종을 잊어버릴 만한 시점인 그해 늦여름 목화는 싹을 내더니, 이파리를 몇 개 달지도 않은 채 기운을 짜내듯 꽃을 4개나 피워 냈다. 그중 3개는 열매가 됐는데 그 속이 솜으로 바뀌면서 껍질을 확 깨고 흰 별꽃처럼 변해 볼만했다. 내년에 씨를 뿌릴 생각으로 목화솜을 수확하고, 목화 하나당 6~9개 씨를 발라냈다. 많다. 문씨 가문의 중시조인 문익점 할아버지는 목화씨 3개를 밀수했다는데, 아마도 목화 한 덩어리도 확보하지 못했나 싶다. 목화는 다년생이라 아파트 거실에서 겨울을 나고 올봄 다시 이파리를 올렸다. 섭씨 40도에 가까운 혹독한 올여름을 견디고 백제 무령왕릉에서 발견되는 듯한 꽃받침 위로 미색 꽃을 피웠는데 그 꽃은 하루만 지나면 분홍색이 되고 질 때는 짙은 와인색 꽃이 된다. 도시 촌놈에게는 꽃의 변신이 마술처럼 놀랍기만 하다. 올해도 목화씨를 얻으면 농부와 서로 나눠 심기로 한다. symun@seoul.co.kr
  • [문소영 칼럼] ‘똘똘한 1채’도 적정한 보유세 물려야 한다

    [문소영 칼럼] ‘똘똘한 1채’도 적정한 보유세 물려야 한다

    “집을 사야 할까?” 지난해 12월 미국 뉴저지에서 텍사스 포트워스로 이사한 동생이 이렇게 물었다. 동생은 지금 정원이 딸린 조그만 집에서 2300달러 월세로 산다. 보증금은 2300달러다. 의무적인 보험까지 포함해 연간 거주비가 2만 8000달러다. 뉴욕 맨해튼도 아닌데 거주비가 엄청나 “집을 사라”고 하고 싶지만, 미국의 부동산 조세 체계가 한국과 달라 조언하기 어려웠다.미국 부동산 관련 조세를 동생의 뉴저지의 집 매매로 설명해 보겠다. 2007년 세계적 금융위기가 오기 직전 동생은 직장 근처에 43만 달러(약 4억 8000만원)로 지어진 지 20년 된 단독주택을 샀다. 마당이 넓고 꽃나무가 많은 방 4개, 욕실 2개인 집이다. 그전에는 그 동네에서 월세 1700달러로 살았다. 구매 첫해부터 매년 1만 달러(약 1100만원) 안팎의 재산세를 냈지만, 연간 약 2만 달러의 비싼 월세보다는 낫다는 판단이었다. 한국은 공시지가 20억원 아파트의 보유세가 연간 1000만원 수준이니 비교된다. 11년 동안 11만 달러의 보유세를 낸 이 집을 올 6월에 44만 달러에 팔았다. 시세차익은커녕 집 수리비 10만 달러를 포함해 ‘매몰비용´이 21만 달러가 된다. ‘집은 사 놓으면 오른다’는 한국적 상식에 대입하면 동생은 큰 손해를 본 것 같았다. 포트워스의 보유세는 2.3%로, 뉴저지와 같은 43만 달러의 집을 사면 매년 1만 달러의 세금을 내야 한다. 다행히 1주택자에게 보유세 25%를 감해 준단다. 동생은 텍사스에 집을 사야 할까? 이제 서울 강북의 중위 아파트 가격조차 7억원이라고 하는 시대의 한국적 상황을 살펴보자. 정부가 서울과 과천 등 일부 수도권의 부동산 폭등 광풍에 보유세와 종부세를 만지작거리고 있다. 이에 당장 “강남 25억 아파트에 사는 샐러리맨인데 보유세를 올리면 나더러 아파트를 팔란 말이냐?”는 항의가 나오고, 은퇴한 1주택자에게 가혹한 처사라며 동조한다. 그러나 1년 만에 수억원이 오른 ‘똘똘한 1채’의 보유세 인상을 견딜 수 없다며 억울해하는 한국적 정서가 마땅한가, 다시 돌아볼 시점이다. 오히려, 보유세 인상뿐 아니라 1가구 1주택에 대한 양도소득세 면제도 재고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요즘 부동산 시장은 정부가 지난해 8·2 부동산 종합대책으로 투기지역에 대한 총부채상환비율(DTI)이나 주택담보대출비율(LTV)을 규제하지 않았더라면, 전국의 무주택자들이 은행서 주택담보대출로 돈을 빌려 서울의 아파트를 사서 1년 만에 3억~8억원까지도 시세차익을 낼 수 있는 장세다. 최근 강북 아파트도 최근 1개월에 1억원 호가가 오르고, 강남은 하룻밤 자고 나면 1억원이 오른다고 한다. 그러니 지난해 여름 서울 송파구의 아파트를 10억원에 팔았는데 1년 만에 6억~8억원이 올랐다며, 잠을 못 자는 친인척이 주변에 생겨나고, 서울 집을 팔고 일산 등으로 거주지를 옮긴 사람들이나 지방 사람들은 ‘부동산 우울증’에 시달리는 것이다. 매도자 우위의 시장으로 돌아서서 위약금을 주고 매매 계약을 무르자는 집주인들이 적지 않을 만큼 매물이 마르고 있다. 남들의 행운에 배가 아파서 그러느냐고 의심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서울 아파트 폭등이 심각한 이유는 시간 차를 두고 수도권 아파트 가격에 영향을 주고, 또 수도권 주변 상가의 가격 상승으로 연결되며, 상가가 오르면 다시 임대료 상승 등으로 자영업자의 고통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사회 전체에 과도한 비용이 발생할 수 있다. 걱정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다. 그러니 더는 똘똘한 1채에 대한 보유세 인상을 주저하지 말아야 한다. 텍사스와 비슷하게 ‘시세의 2.3%’로 보유세를 한 방에 올릴 수는 없겠지만, 부동산 광풍을 잠재울 수 있는 수준까지는 높여야 한다. 또 박봉의 회사원이라 현재로서는 매년 보유세를 내기 어렵다면 해당 주택을 매매하거나 상속, 증여하는 시점까지 과세를 이연하는 방법이 있다. 과세이연에는 물론 적정 이자를 붙여야 한다. 부동산 거래세 인하 등 부동산 관련 세금을 전체적으로 손본다는 것을 전제로 똘똘한 1채에 대한 양도소득세 과세도 고려해야 한다. 더불어 서울시는 도심 건물의 용적률 등을 높여 고밀도 주상복합건물을 허용하고, 재건축·재개발 등도 허용해 공급을 획기적으로 늘려야 한다. 가격 폭등 부작용이 우려된다고? 이미 서울 부동산 시장은 어떤 정책을 써도 부작용이 불가피한 시장으로 변질됐다. 논설실장 symun@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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