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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소영
    2025-0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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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길섶에서] 단백질 먹기/문소영 논설실장

    전생에 초식동물이었나, 하고 생각했다. 붉은 고기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어릴 때부터 고기만 먹으면 소화불량으로 고생해 기피해 왔다. 의학 정보를 취합해 보면, 기름기를 잘 소화하지도 단백질을 잘 소화하지도 못하니, 췌장 기능이 크게 좋지 않은 채로 나이를 먹어 온 것이다. 그래도 채식주의자라고 하기에는 고기를 너무 자주 먹으니 잡식이다. ‘혼밥’은 달가워하지 않는 음식들을 기피할 수 있으니 환영하는 편인데, 한국의 사회생활이라는 것이 남들과 함께 밥 먹는 것이 그 기본이다 보니 내 몸을 오래 괴롭히면서 살아왔다. 그런데 요즘은 그 달갑지 않은 붉은 고기를 기회를 만들어 먹으려고 노력하고 있다. 나이가 들면 체내 단백질이 쉽게 소실된다는 이야기 때문이다. 지난해부터 가볍게 운동을 시작했는데 역시 고기를 먹어야 근육량을 유지할 수 있다고도 했다. 그 보기 좋다는 ‘애플 엉덩이’는 꿈도 꾸지 않지만, 종아리와 허벅지의 근육이 탄탄해야 무릎이 뚱뚱한 상체를 버티지 않겠느냐 하는 생각으로 운동한다. 멀리 사는 동생은 전화로 “하루에 한 번 담뱃갑 크기만큼은 단백질을 먹어야 해”라며 잔소리를 해댔다. 오늘은 점심에 닭가슴살을 먹었다. 담뱃갑 크기만큼인 거 같다. 오늘은 무척 건강해진 느낌이다. symun@seoul.co.kr
  • [길섶에서] 30년 만의 만남/문소영 논설실장

    대학 시절과는 선을 긋고 살고 있다. 4년을 함께 활동하던 선배와 동료가 나의 사상을 문제 삼아 나 모르게 뒤에서 배제했다는 사실을 졸업할 무렵 전해 들은 탓이다. 대면해 화를 내지 못한 탓인지 뒤끝은 유통기간도 없이 작렬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게 29년을 넘기는 중 지난겨울 소셜미디어를 통해 상하이에 사는 한 친구가 반갑게 인사를 해 왔다. 처음엔 누군지 못 알아보았는데, 탈반에서 활동하던 우리 대학 ‘상쇠’였다. 그와 나는 소속이 달랐는데, 내가 발행을 책임지고 있던 16쪽 격주간지에 대해 그는 “무슨 내용은 좋았는데 오탈자가 좀 있었다”는 말을 웃음기 없는 얼굴로 운동장을 지나가는 길에 건네던 친구였다. 그땐 다들 그랬지만 도도하고 쌀쌀맞았다. 설을 맞아 상하이에서 귀국한 그와 만나니 30년 세월을 뛰어넘어 20살 언저리로 돌아간 듯했다. 얼굴과 손에는 주름이 가득한데, 마음은 청춘이 돼 버린 것이다. 무려 30년이 된 상처들도 어제 막 입은 상처인 양 날뛰려고 했다. 그는 잘 웃고 상냥한 사람이었다. 500㎖ 연태고량주를 3분의2정도 마신 뒤, 나머지는 재회해 마저 마시기로 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잠복기 2주를 고려할 때 귀국한 지 1주일밖에 안 된 너는 위험한 거 아니냐며 깔깔댔다. 어려운 시기다. symun@seoul.co.kr
  • [문소영 칼럼] 격세지감

    [문소영 칼럼] 격세지감

    “와! 진짜 통과된단 말이지!” 지난달 30일 국회에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법안이 국회를 통과하는 장면을 TV 생중계로 보면서 남다른 감정이 일었다. 아마도 지난해 4월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으로 지정됐을 때 자유한국당의 강력한 반대에 부딪혀 좌초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이런 감정은 자연발생적이라기보다는 2004년 참여정부 시절 집권여당이었던 열린우리당의 무기력한 입법 실패에 기인한 것이기도 했다. 당시 국회출입 기자로 정부·여당이 추진했던 4대 개혁입법이 때로는 여당 내부의 갈등으로, 때로는 야당의 전략에 판판이 깨지는 것을 100일 가까이 매일 밤 지켜보며 얻은 트라우마 같은 게 존재하고 있던 것이다. 노무현 정부는 출범 당시 4대 권력기관 개혁을 선언했었다. 국가정보원과 검찰, 국세청, 감사원이 그 대상으로 정치적 중립화가 목표였다. 다들 아다시피 실패했는데, 실패의 배경에 무전략의 여당이 있었다. 당시 천정배 열린우리당 초대 원내대표는 취임 직후 4대 개혁입법을 선언했는데, 그 1호가 악법 중의 악법인 국가보안법 폐지였다. 그러나 국보법 폐지냐 개정이냐를 두고 여당 내부에서 격렬하게 갈등하다가 지리멸렬하게 없던 일로 처리되는 것을 지켜보았으니, 그 무능과 무기력에 대해 진저리가 났던 것이다. 결국 2004년에 4대 권력기관 개혁도, 4대 개혁입법도 흐지부지됐다. 천 원내대표가 개혁법안 처리의 실패에 대해 책임을 진다면서 사퇴하는 바람에, 새해부터 여당 원내대표 공석이라는 초유의 사태를 맞기도 했다. 대통령이 당총재로 군림하며 여당을 좌지우지하지 않는 정당 민주화 시대가 됐다며 환호했건만, 정당 민주화는 유례없던 과도기를 겪은 것이다. 문재인 정부에서도 개혁이 화두였지만, 집권 첫해부터 추진하던 개헌은 국회에서 열어 보지도 않고 폐기됐다. 혁신경제는 규제개혁에 진전이 없었다. 국회에서 관련 법안들이 제정 또는 개정되지 않고 있던 탓이었다. 개혁이 제도화되지 않는다면 지속가능할 수 없다는 점에서 심각했다. 집권 반환점을 돈 문재인 정부로서는 제도화된 개혁이 무엇보다 필요하고 시급했다. 그 역할은 여당의 몫이었다. ‘전대협 1기 의장’이란 꼬리표를 달고 이인영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가 지난해 5월 등장했을 때 시선은 그리 곱지 않았다. 무능한 386세대가 권력을 다 쥐고 내려놓지 않는다는 비판이 비등하던 중이었고, 이 원내대표는 그 세대의 맏형 격이었기 때문이다. 또한 당선 직후 이 대표는 스스로 “부드럽고 말 잘 듣는 원내대표가 되겠다”고 약속했을 정도로 강골의 이미지가 강했다. 카운터파트인 나경원 한국당 원내대표와의 협상에도 불안불안해하는 동료 의원들이 없지 않았다. 어쩌다 나 원내대표와의 토론이라도 TV에서 진행되면 현 정부 지지자들은 ‘고구마 100개 먹은 답답한 기분’이라고 하기도 했다. ‘고구마 100개’의 이 원내대표는 그러나 여소야대 국면에서 ‘4+1 협의체’를 유지하며 지난해 12월 30일에 공수처법을, 지난 13일 검경 수사권 조정을 위한 형사소송법과 검찰청법 개정안까지 국회에서 통과시켜 ‘검찰개혁 입법’을 완료했다. 문 대통령의 공약 1호이자, 노무현 정부 시절부터 애태우던 숙원을 해결한 것이다. 그 덕분에 평가가 확 달라졌다. “운동권 출신 정치인에 대한 편견이 사라졌다”거나 “친문이냐 비문이냐보다 능력이 중요하다”, “덜 알려졌다고 무능한 의원은 아니다”, “한때 의심한 거 미안하다” 등등의 평가들도 쏟아진다. 개혁입법뿐 아니라 민생경제와 관련 있는 ‘유치원3법’과 ‘데이터3법’도 입법에 성공했으니 완승이다. 그러나 이 완승이 진짜 완승이 되려면,이 원내대표는 검경 수사권 조정안과 관련한 추가적인 입법과 후속 조치에 힘을 더 쏟아야 한다. 검찰개혁 입법을 우선 통과시키고 개정하자는 의도였다면 20대 국회가 끝나기 전에 책임지고 추가 입법을 하길 바란다. 경찰개혁법안이 이번에 함께 처리되지 않아 ‘검찰 공화국’에서 ‘경찰 공화국’으로 이동하는 것이 아니냐는 시민들의 우려가 적지 않다. 국민이 호랑이를 피했는데, 늑대를 만나서는 안 되는 것 아닌가. ‘검사내전’의 저자 김웅 검사는 실효적 자치경찰제, 사법경찰 분리, 정보경찰 폐지 등이 검경 수사권 조정의 선결조건이라는 점을 지적했다. 권력의 확대와 집권 연장을 위해 경찰을 도구로 쓰는 것이 아니냐는 비판도 진정성을 가지고 잠재워야 한다. symun@seoul.co.kr
  • [길섶에서] 83세의 제인 폰다/문소영 논설실장

    지난 주말에 넷플릭스에서 ‘그레이스 & 프랭키’ 시리즈를 봤다. 오늘 시즌 6이 공개된다. 이 미드에서 제인 폰다는 나이를 서너 살 어리게 속이고 80세에 창업하는 여성으로 나온다. 무엇보다 1937년생인 제인 폰다가 자신과 비슷한 나이의 여성을 연기하고 있어서 놀라웠다. 할리우드에는 배우이자 감독인 클린트 이스트우드(90)만이 아니라 제인 폰다가 있었던 것이다. 그가 맡은 그레이스는 엄청나게 부자인 남자친구나 변호사인 전남편, 잘나가는 자식에게 눈곱만큼도 경제적·육체적으로 기대지 않고 독립적인 삶을 살려고 끊임없이 노력한다. 제인 폰다는 1970년대 미국의 베트남전쟁 개입을 맹렬히 비난해 ‘하노이 제인’으로도 불리는 급진주의자로 지난해 연말에는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기후변화대책을 비판하는 금요시위에 참석해 하루 동안 구치소에 구금돼 화제가 되기도 했다. 제인 폰다는 ‘그레이스 & 프랭키’에서는 중산층 보수주의자를 연기한다. 제인 폰다의 ‘그레이스’를 보고 있자니 여자 노인을 투명인간 취급하는 사회에서 노년의 삶은 어떠해야 하는지, 직장인의 오래된 꿈이 은퇴하면 국내외 휴양지를 전전하며 안락하게 사는 것이겠으나, 이 역시 얼마나 부질없는지를 깨닫는다. 일할 때가 좋을 때다. symun@seoul.co.kr
  • [길섶에서] 사랑 없는 진실/문소영 논설실장

    12월 31일과 1월 1일은 서로 다른 날이 아닌데, 아주 다르다. 한 해의 마지막 날에는 춥고 외롭고 섭섭한 마음도 한이 없지만, 새해 첫날에는 괜히 희망을 품는다. 영화 ‘두 교황’을 봤다. 연말이 다가와 나 혼자 외로웠던 탓이다. 나치 출신이라고 욕을 먹는 럭셔리한 보수주의자이자 독일 출신의 베네딕토 16세와 그의 사임으로 교황직에 오른 ‘빈자들의 아버지’인 아르헨티나 출신 프란치스코 교황이 주인공이었다. 1976년 쿠데타로 군사정권이 들어선 아르헨티나에서 박정희 정권과 전두환 정권을 떠올리기도 했다. 대학 때는 ‘해방신학’으로 남미를 이해했으니 군사정부에 저항하는 시민들의 고단한 삶은 한국이나 아르헨티나나 비슷해 보였다. 50년 넘게 진리를 찾았던 두 교황이 세속적 문제에서 품었던 질투와 선망, 미움과 배제의 마음을 고해성사 하는 것을 보면서 나의 어리석움을 용서해 주기로 했다. 50대 초반에 여전히 망설이고 갈등하는 이유는 사람이 모자라서 그런 것은 아닌 것이다. 무엇보다 “진실은 중요하지만, 사랑 없는 진실은 견딜 수 없다. 그걸 기억해야 한다”는 발언에 따라 새해에는 너그럽게 살기로 했다. 나와 다른 사람을 20대부터 이미 충분히 미워했다. symun@seoul.co.kr
  • [문소영 칼럼] 검찰과 경찰의 압수수색은 다른가

    [문소영 칼럼] 검찰과 경찰의 압수수색은 다른가

    타이밍이 나쁜데…. 지난해 3월 21일 당시 김기현 울산시장의 비서실을 울산경찰청이 압수수색한다는 기사가 떴을 때 떠오른 생각이었다. 게다가 이날은 자유한국당이 6월 지방선거에 출마할 울산시장 후보를 발표하는 날이었다. 김 시장의 비서실장이 비리에 연루됐다는 의혹을 수사하더라도 정치적으로 오해받기 딱 좋은 시점이었다. 현재 언론은 ‘김기현 울산시장 수사´라고 쓰고 있지만, 정확한 표현은 ‘김기현 울산시장 측근 수사’다. 2018년 3월 경찰은 건설비리 의혹으로 김 시장의 비서실장과 건설국장, 김 시장의 동생에 대해 압수수색을 했다. 이것이 1년 8개월 뒤에 ‘청와대 하명수사 의혹´ 사건이 돼 돌아왔다. 현직인 김 시장을 날리고 대통령의 친구를 울산시장에 당선시키기 위해 당시 백원우 청와대 민정비서관이 황운하 울산경찰청장을 내세워 선거 개입 음모를 짰다는 것이다. 백 전 민정비서관은 첩보를 반부패비서관에게 넘겼을 뿐이라고 설명했다. 당연한 일처리이지만, 검찰수사로 밝힐 부분이다. 다만 이 첩보가 현직 울산시장의 비서실을 압색하는 근거가 됐으니 청와대가 음모에 개입한 것이라고 직선으로 연결짓는다면 지나치게 성급한 결론이 아닌가 싶다. 일부 언론은 반부패비서관이 아니라 민정비서관에게 갔으니 문제가 있다는 식의 해석도 하던데 동의할 수 없다. 정보는 원래 힘 있는 쪽에 몰리게 돼 있다. 대표적인 것이 각 부처의 민원들이 ‘청와대 청원’에 쏠리는 것과 비슷하다. 다만 ‘노무현 논두렁 시계 사건’을 통해 권력이 끝나면 무슨 일이 일어날지 학습했을 재선의원인 백 전 비서관이 무리수를 두었을지는 생각해 볼 문제다. 타이밍이 최악인데…라고 생각한 일도 있다. 지난 8월 29일 검찰이 조국 관련 의혹 수사를 위해 20여곳에 대해 전격 압수수색을 벌였을 때다. 여야가 조국 후보자에 대한 국회 인사청문회를 9월 2일과 3일 이틀에 걸쳐 열기로 합의한 다음날이었다. 검찰은 법무부 산하의 외청이므로, 민의의 대표기관인 국회의 결정을 손상시켜서는 안 된다는 것이 정치적 상식이다. 최악의 정치적 개입을 했다고 판단했다. 초유의 일이 벌어진 만큼 검찰의 행동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언론도 우왕좌왕했다. 마침 시중에서 ‘조국과 청와대에 면죄부를 주려는 검찰수사’라는 음모론이 힘을 얻으면서, 검찰의 유례없는 이상행동은 묵과됐고, ‘살아 있는 권력에 대한 공정한 수사’를 주문하기에 이르렀다. 검찰의 배짱을 무한대로 키워 준 착오다. 정치사에 나중에 어떻게 기록될지는 모르겠으나, 2019년 8월 29일 검찰의 압색은 선출되지 않은 권력인 ‘검찰의 쿠데타’라고 인식할만하다. 검찰의 이상행동은 9월 6일 국회 인사청문회가 끝나자마자 조국 법무장관 후보자 부인 기소로 재현됐다. 새로운 권력의 등장을 재차 과시한 셈이다. 조국 법무장관의 임명을 반대하던 진영은 검찰이 정의를 세우고 있다며 환호했다. 여론이 이런 ‘삐딱선을 타게’ 된 배경에는 대통령이 다수의 반대에도 ‘불법이 확인되지 않았다’며 조 장관을 임명하고 장관에 취임한 조 장관은 가족들의 검찰 소환을 앞두고 피의사실공표 금지나 포토라인 폐지 등을 강행하려고 시도한 탓이다. 인권보호를 적폐수사 때는 놔두고 왜 조 장관 가족부터 시작하느냐며 역풍이 불었다. 아이러니한 일은 ‘유재수 비리 수사’와 ‘하명수사 의혹 수사’ 등으로 검찰이 문재인 정부를 겨냥한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는데도 ‘윤석열이 청와대를 돕고 있다’는 인식이 여전히 존재한다는 점이다. 검찰 스스로 최고권력임을 과시한 8월의 압수수색에서조차, 우리 사회는 ‘검찰의 정의 구현’으로 인식해 검찰에게 박수를 보냈다. 그렇다면 같은 논리로, 2018년 3월 울산경찰청의 압수수색을 보지 않을 이유가 있나. 검찰수사는 정의이고, 경찰수사는 비정의라고 규정하지 않는다면 말이다. 울산경찰청이 지방선거에 영향을 미친 것이 아닌가 의심한다면 검찰이 ‘청와대 하명수사 논란’을 수사하는 현재 내년 4월 총선에 영향을 미치려는 것이 아닌가 의심해야 마땅하다. 1991년 ‘강기훈 유서대필 조작 사건’이나 2013년 ‘서울시 공무원 간첩조작 사건’ 등을 생산하던 검찰이, 2019년 현재는 정의를 담당하는 행정부의 외청이라고 굳게 믿는 시민이 적지 않다. 검찰은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법안의 국회 통과를 막기 위해 고의로 정부에 흠집을 내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수사 결과로 보여 주길 바란다.
  • [길섶에서] 좋은 기사가 필요하다/문소영 논설실장

    언제부터인가 일간지들은 이른바 좋은 기사, ‘칭찬합시다’류의 ‘미담 기사’를 보도하기를 꺼린다. 초등학교 시절에는 읽을거리가 부족해 휘발유 냄새가 물씬한 신문을 기웃거렸는데, 그때는 사회면에 미담 박스기사들이 있었다. 아무개가 무슨 선행을 베풀었다는 기사를 읽으면 어린 마음에도 내가 마치 좋은 일을 한 듯 마음에 온기를 품게 됐다. 신문사에 와 보니, 한가하게 무슨 칭찬합시다냐는 비아냥을 받았다. 정치나 사회에 온갖 부정부패가 판을 치고 있으니, 언론은 권력의 감시자로서 문제를 파헤치고 비판하고 현실을 개선하는 일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것이다. ‘까는 기사’와 ‘빨아주는 기사’로 나누고 우리는 까는 기사만 열심히 쓰고 있었다. 돌아보면 칭찬합시다류의 훈훈한 기사는 최근 장기 휴간에 들어갈 뻔한 ‘샘터’와 같은 월간지를 통해서만 읽을 수 있었다. 신문사밥을 30년 가까이 먹은 요즘처럼 신문 읽기가 괴로운 시절이 없다. 신문에서 마음을 환하게 밝혀줄 기사 한 줄이 없다고 느껴질 때가 있다. 인디언 전설에 인간의 마음에서 좋은 늑대와 나쁜 늑대가 싸우는데, 좋은 늑대가 이기려면 희망과 겸손, 인내, 친절, 아량 등을 먹이로 줘야 한다고 했다. 언론이 우리 사회의 좋은 늑대가 돼야 하는데, 생각한다. symun@seoul.co.kr
  • [길섶에서] 용정(龍井)과 룽징/문소영 논설실장

    용정(龍井)은 용의 우물, 보통명사 같은 지명이다. 박경리의 대하소설 ‘토지’에 나오는 간도의 마을로만 알고 있었다. 중국 녹차 중에 항저우의 ‘룽징’이 유명하던데, 용정의 중국식 발음이 그 룽징이었다. 지난주 가족여행으로 남송의 수도였던 고도시 항저우에 갔다가 룽징에도 가 봤다. 택시에서 막 내리자마자 소란스럽게 사람들이 두레박으로 우물물을 긷는 것이 보였다. 가까이 가 보니 길가에 대리석으로 울타리를 친 낮은 우물이다. 송나라 때부터 유래한 용정이란다. 우물 입구는 좁았고 2~3미터는 너끈한 깊이에 우물이 찰랑거렸다. 우물쭈물하는데, 회색 후드티를 입은 여자분이 홀연히 나타나 우리에게 두레박을 내밀었다. 택시 기사의 전언이 떠올랐다. 용정에서 남의 두레박을 빌려 물을 길으면, 그 두레박의 주인집으로 따라가 차 대접을 받고, 그 주인에게 작은 사례를 하고 돌아오는 ‘관례’가 있다고 했다. 그러면 장수하고 복도 받는다는 것이다. 김이 올라오는 두레박 우물물로 손을 닦았다. 그리고 회색 후드티 여성을 따라 좁은 골목을 거쳐 언덕배기 집으로 올라갔다. 올해 새로 거둔 룽징 찻잎으로 만든 차는 향기로웠다. 호텔로 돌아오는 길에 뭔가에 홀린 듯해 룽징 차통을 쓰다듬어 보았다. symun@seoul.co.kr
  • “자주 바뀌는 정책, 노인 등 알기 어려워” “2022년부터 알림 서비스”

    “자주 바뀌는 정책, 노인 등 알기 어려워” “2022년부터 알림 서비스”

    90년대생들은 ‘정부혁신’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갖고 있을까. 22~24일 개최된 ‘제1회 정부혁신박람회’의 개막식 행사인 ‘응답하라 1990’에서 90년대생 3명은 ‘비효율적인 업무처리의 변화’, ‘서류 간소화’, ‘복지사각지대 공백 해소’ 등을 개선 과제로 제시했다. 이날 행사는 ‘디지털 전환의 시대, 정부는 어디로 나가야 하며, 무엇을 혁신해야 할까?’라는 주제로 미래의 주역인 90년대생이 일상생활에서 느끼는 공공서비스의 불합리한 점들을 솔직하게 말하고 멘토단의 해결 방안을 듣기 위해 마련됐다. 행정안전부 공무원 문소영(94년생·여)씨, 직장인 강보성(90년생)씨, 대학생 서효진(99년생·여)씨의 문제 제기와 멘토단의 답변을 재구성했다. 멘토단으로는 정부혁신컨설팅 단장인 오철호 숭실대 행정학과 교수, 최두옥 스마트워크 연구개발 그룹 ‘베타랩’ 대표, 90년대생인 탤런트 김시은씨가 참여했다.●새내기 공무원 “매주 업무보고 작성에만 이틀” 문소영: 한 달 된 새내기 공무원이다. 매주 주간 업무보고를 작성하는데 팀마다 별도의 내용을 작성하다 보니 이것들을 취합하는데만 시간이 이틀 정도 소요된다. 오래 걸릴 때는 사흘이 걸린다. 팀마다 공유 문서 프로그램을 사용하면 동시에 확인이 가능하고 수정까지 할 수 있다. 취합하는 시간을 줄일 수 있지 않을까. 공무원 메신저도 있지만 잘 활용하지는 않는다. 대학교 때 팀 프로젝트를 하면 공유 문서 프로그램을 항상 사용했는데 부처에도 적용하면 어떨까 싶다. 그리고 보고서 작성자부터 팀장, 과장, 국장, 실장, 차관, 장관까지 보고 단계가 너무 길어서 비효율적이다. 멘토단: 우선 전자결재로 하면 보고 대기 시간은 줄일 수 있다. 공유 문서 프로그램을 사용하는 건 보안 측면에서 고려할 점이 있지만 사실 모든 문서들의 보안이 중요한 건 아니다. 그런 부분은 잘 조정해서 자료 취합하는 데 걸리는 시간을 줄일 수 있다. 공무원들이 남은 시간을 활용해 일에 더 집중할 수 있고, 일하는 방식이 바뀜에 따라 조직에 협업 문화 정착이 가능하다(최 대표). 역시 민감한 것은 중요한 문서가 노출됐을 때 어떻게 할 것인가 하는 문제다. 역설적인 것은 조직 운영성 제고를 위해 투명성을 높이면 오히려 생산성이 낮아진다. 협업의 가치는 높이되 제도적으로 보완 절차가 반드시 필요하다(오 교수).●새내기 직장인 “대출 문서 70장… 간소화 절실” 강보성: 90년생 새내기 직장인이다. 주택담보대출을 받으려고 은행에 갔다. 그런데 대출에 필요한 서류가 너무나 많더라. 은행 측에서 설명 의무를 제대로 했다는 것을 증명하는 문서들도 적지 않고, 내가 서명한 문서가 70장이 넘더라. 팔이 떨어지는 줄 알았다. 은행에서 정확히 이름도 모르는 문서들을 이해도 하지 못한 채 서명을 하며 3시간을 보냈다. ‘여기서 내가 뭐하나’ 싶더라. 복잡한 서류들을 간소화시킬 수는 없을까. 멘토단: 현재 행정정보 공동이용 서비스가 있다. 정부 부처나 지자체 간에 정보 공유를 하는 것인데 아직 모든 기관들이 다 연결되지 않았다. 그렇다보니 본인이 동의를 해야 부처 간에 정보 공유가 가능하다. 그리고 앞으로는 본인이 필요한 민원서류를 스마트폰에 저장하는 등 전자지갑화해서 갖고 다닐 수 있게 된다. 연말부터 주민등록 등·초본을 전자증명서로 시범 발급하고 2021년까지 증명서·확인서 300종까지 확대할 계획이다. 정부에서 운영하는 온라인 서비스인 ‘정부24’ 애플리케이션(앱)뿐 아니라 은행, 보험사 등 금융기관 앱에서도 각종 증명서를 전자증명서 형태로 내려받을 수 있게 된다(오 교수).●99년생 대학생 “복지 사각지대 공백 해소해야” 서효진: 고등학교 1학년 때부터 많은 곳에서 봉사활동을 했다. 내가 만나는 국가 복지혜택의 대상자들이 구체적으로 어떤 정책이 있는지 모르더라. 초등학생 대상으로 봉사활동 중인데 한 초등학생이 방과후 서비스 대상자임에도 오후 시간 내내 혼자 시간을 보낸다. 기초생활수급자인 한 어르신도 복지 급여를 스스로 신청하지 않아서 더 힘들게 살고 있다. 사실 이런 분들은 시시각각 바뀌는 정책, 복지혜택을 제대로 알기 어렵다. 인터넷도 익숙지 않고 말이다. 디지털 정부로서 복지혜택의 사각지대를 없애기 위해 정보를 더 편리하게 제공할 필요가 있다. 멘토단: 드라마 ‘나의 아저씨’를 보면 주인공의 할머니가 요양원을 갈 수 있는데 못 가고, 그의 손자 역시 복지 혜택을 받지 못하는 장면이 나온다. 제가 사는 곳에도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많이 거주하는데 대부분 혜택을 잘 모른다(김씨). 사실 정부는 큰 틀에서 맞춤형 서비스 제공을 위한 노력을 하고 있으나 본인이 자격이 됨에도 못받는 분들이 있다. 2022년까지 정부가 혜택 대상자 본인이 스스로 이를 증명하지 않아도 알려주는 서비스를 구축한다고 하니까 이후에는 개선될 것이라 본다(오 교수). 복지 정책이 360여개라고 한다. 부정수급자를 막는 것도 중요하지만 정말 받아야 할 사람이 혜택을 못 받고 있다면 이를 개선해야 한다(최 대표). 이범수 기자 bulse46@seoul.co.kr
  • ‘이것 좀 바꿨으면...’ 90년대생이 바라는 정부혁신은?

    ‘이것 좀 바꿨으면...’ 90년대생이 바라는 정부혁신은?

    90년대생들은 ‘정부혁신’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갖고 있을까. 22일 ‘제1회 정부혁신박람회’의 개막식 행사인 ‘응답하라 1990’에서 90년대생 3명은 ‘비효율적인 업무처리의 변화’, ‘서류 간소화’, ‘사각지대 공백 해소’ 등을 개선 과제로 제시했다. 이날 행사는 ‘디지털 전환의 시대, 정부는 어디로 나아가야 하며, 무엇을 혁신해야 할까?’라는 주제로 미래의 주역인 90년대생이 일상생활에서 느끼는 공공서비스의 개선점들을 솔직하게 말하고 멘토단인 청춘 고민 해결사들의 해결방안을 듣기 위해 마련됐다. 행정안전부 공무원 문소영(94년생·여)씨, 직장인 강보성(90년생)씨, 대학생 서효진(99년생·여)씨의 말과 멘토단의 답변을 재구성했다. 멘토단으로는 정부혁신컨설팅 단장인 오철호 숭실대 행정학과 교수, 최두옥 스마트워크 연구개발 그룹 ‘베타랩’ 대표, 90년대생인 탤런트 김시은씨가 참여했다.“매주 업무보고만 꼬박 이틀 걸려요!” 문소영씨: 한달 된 새내기 공무원 문소영이다. 우리 부처에서 매주 주간업무보고를 작성하는데 팀마다 별도의 내용을 작성하다보니 이것들을 취합하는데만 시간이 이틀 정도 소요된다. 오래 걸릴 때는 사흘이 걸린다. 팀마다 구글 프로그램을 이용해 문서를 작성하면 동시에 확인이 가능하고 수정까지 된다. 취합하는 시간을 줄일 수 있지 않을까. (공무원들이 사용하는) 메신저 기능도 있지만 잘 활용하지는 않는다. 공무원 되기 전 대학교 때 팀 프로젝트를 하다보면 공유문서를 항상 사용했는데 부처에도 적용하면 좋을 것 같다. 그리고 보고서 작성자부터 팀장, 과장, 국장, 실장, 차관, 장관까지 보고 단계가 너무 길어서 비효율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멘토단: 우선 전자 결제로 하면 보고에 따른 대기시간은 줄일 수 있을 거 같다. 보안 측면에서 정부 문서를 다룰 때 공유 문서 프로그램으로 사용하는 건 고려할 점이 있지만 사실 모든 문서들의 보안이 중요한 건 아니다. 그런 부분은 잘 조정해서 자료 취합하는데 걸리는 시간을 줄일 필요가 있다. 공무원들이 남은 시간을 활용해 일에 더 집중할 수 있고, 일하는 방식이 바뀜에 따라 조직에 협업 문화 정착이 가능하다.(최 대표) 역시 민감한 것은 중요한 문서가 노출됐을 때, 미리 생각하지 못한 문제가 발생했을 때 어떻게 할 것인가 하는 문제다. 역설적인 것은 조직 운영성 제고를 위해 투명성을 높이면 오히려 생산성이 낮아지는 부분이 있다. 협업의 가치는 높이되 제도적으로 보완 절차가 반드시 필요하다.(오 교수)“대출한 번 받는데 문서만 70장” 강보성씨: 90년생 새내기 직장인 강보성이다. 지방에서 올라와 연고가 아닌 곳에 직장을 갖다 보니 집을 구하기 위해 은행에 가게 됐다. 그런데 대출에 필요한 서류가 너무나 많아 놀랐다. 은행 측에서 설명 의무를 제대로 이행했다는 것을 증명하는 문서들도 적지 않았다. 이런 것들 하나하나 서명을 하다보니까 70장이 넘는 곳에 내가 서명을 했더라. 팔이 떨어지는 줄 알았다. 은행에서 정확한 명칭도 모르는 문서들을 이해도 하지 못한 채 서명을 하며 3시간을 보냈다. ‘여기서 뭘하나’, ‘빨리 끝나면 좋겠다’ 같은 생각이 들더라. 디지털 기술을 활용해 대출절차 상에 필요한 복잡한 서류들을 좀더 간소화 시킬 수는 없을까. 멘토단: 혁신하는 이유 중 하나는 국민의 불편함을 제거하는 것이다. 현재 행정정보 공동이용 서비스가 있다. 정부 부처나 지자체 간에 정보공유를 하는 것인데 아직 모든 기관들이 다 연결되지 않은 한계가 있다. 그렇다보니 본인이 동의를 해야 부처 간에 정보 공유가 가능하다. 이런 부분을 개선해 나가야 한다. 그리고 앞으로는 본인이 필요한 민원서류를 전자지갑화 해서 갖고 다닐 수 있게 된다. 연말부터 주민등록 등·초본을 전자증명서로 시범 발급하고 2021년까지 증명서·확인서 300종까지 확대할 계획인데 정부에서 운영하는 온라인 서비스인 ‘정부24’ 애플리케이션(앱)뿐 아니라 은행, 보험사 등 금융기관 앱에서도 각종 증명서를 전자증명서 형태로 내려받을 수 있게 한다.(오 교수)“그 복지서비스, 내 것 맞나요?” 서효진씨: 고등학교 1학년 때부터 많은 곳에서 봉사활동을 했다. 지금까지 꾸준히 하고 있는데 국가 복지혜택의 대상자들이 구체적으로 어떤 정책이 있는지 모르더라. 구체적인 사례로 초등학생에게 봉사활동을 하는 중인데 어느 한 초등학생이 방과후 서비스 대상임에도 오후 시간 내내 혼자 시간을 보낸다. 기초생활수급자인 한 어르신도 복지 급여를 스스로 신청하지 않아서 더 힘들게 살고 있다. 사실 이런 분들은 사회적 흐름에 따라 바뀌는 정책, 복지혜택을 제대로 알기 어렵다. 인터넷도 익숙지 않고 말이다. 디지털 정부로서 복지혜택의 사각지대를 없애기 위해 정보를 더 편리하게 제공할 필요가 있다. 멘토단: 드라마 ‘나의 아저씨’를 보면 한 할머니가 요양원을 갈수 있는데 못 가고, 그의 손자 역시 복지 혜택을 받지 못하는 장면이 나온다. 제가 사는 곳에도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많이 거주하는데 대부분 혜택에 대해 잘 모른다.(김씨) 사실 정부는 큰 틀에서 보면 맞춤형 서비스를 제공하려고 노력 중이나 본인이 자격이 됨에도 못받는 분들이 있다. 2022년까지 정부가 혜택 대상자 본인이 스스로 이를 증명하지 않아도 알려주는 서비스를 구축한다고 하니까 이후에는 개선될 것이라 본다.(오 교수) 복지 정책이 360여개라고 한다. 부정수급자를 막는 것도 중요하지만 정말 받을 사람이 못 받는다면 이를 개선해 더 많은 사람이 혜택 받을 수 있도록 하면 좋겠다.(최 대표) 이범수 기자 bulse46@seoul.co.kr
  • [길섶에서] 착한 여자/문소영 논설실장

    ‘착한 여자는 천국에 가지만 나쁜 여자는 어디든 갈 수 있다’라는 문장을 들고 살짝 웃었다. 그 ‘어디든’을 여성들이 좋아하기를! 이 문장의 출처를 찾아보았다. 해당 문장을 검색창에 걸기만 하면 척척 답을 토해낸다. 미국의 여성 월간지 코즈모폴리턴의 헬렌 걸리 브라운 전 편집장이라고 알려 준다. 10대부터 70대까지 한국 남자들은 여자들과 관련해서는 “예쁘냐?”만 연신 묻는다며 비아냥하는데도, 한국 문화 곳곳에서는 마음이 예쁜 여자의 신화, 즉 착한 여자들에 대한 신화를 쌓아 나간다. ‘신데렐라’의 영향을 받은 듯한 콩쥐도 그렇고, 효녀 심청도 착하기가 그지없다. 남자 형제에 치인 TV 드라마 속 ‘후남이’가 너무나 많다. 실력도 인간성도 더 좋은데 여자라는 이유로 뒷전에 서는 것을 당연시하는 착한 여자들. 답답한 차에 최근 개봉한 영화 ‘터미네이터: 다크 페이트’는 신선했다. 인류의 새 희망 ‘대니’와 그녀를 지키려고 미래에서 온 슈퍼 솔저 ‘그레이스’, 그리고 원조 인류의 희망 ‘사라 코너’까지. 힘세고 지혜롭고 연대에 강한 천하무적 같은 여성들이다. 여성이 하지 못할 일이 무엇이며, 가지 못할 곳이 어디메냐.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살아도 인생이 짧다. symun@seoul.co.kr
  • [길섶에서] 내사랑/문소영 논설실장

    영화 ‘내사랑’을 최근 봤다. 그림을 배우지 않았으나 미국인에게 사랑받는 화가가 된 모드와 생선 장수 에버렛의 잔잔한 사랑 이야기로만 알았는데, 영화는 그보다 한층 깊게 내려갔다. 행복은 어떻게 나의 것이 되는가 정도가 되겠다. 몸이 다소 불편한 20대의 모드는 얹혀살고 있던 이모와 갈등하고, 가정부를 찾는 생선 장수의 집으로 가 이른바 경제적 독립을 한다. 겨우 숙식만 제공받을 예정이었지만 모드는 주당 25센트를 지불하라고 뻔뻔하게 요구하고, 관철시킨다. 둘의 동거는 사실 기괴한데, 작은 집엔 침대가 하나밖에 없기에 연인도 아니고 결혼도 하지 않은 이들이 그 침대를 사용하는 것이다. 고아원에서는 침대 하나에 여덟명이나 잤다는 에버렛의 주장이 수용됐다. 다 큰 성인들의 한 침대 생활엔 곧 위기가 찾아오는데, 이때 모드는 똑 떨어지는 요구를 한다. 함께 잘 생각이면 결혼을 해야 한다고. 에버렛은 그날은 망설이지만 결국 모드와 결혼한다. 모드가 방충망을 달아 달라고 요구하자 에버렛은 무시했지만, 오후에 방충망을 말없이 달아 주고 일터로 간다. 그림에 열중하는 모드를 위해 에버렛은 점차 집안일을 떠맡는다. 모드는 “사랑받았다”고 고백하지만, ‘내사랑’은 모드의 에버렛이 아니었을까.
  • [문소영 칼럼] 공정, 세대교체가 최선이다

    [문소영 칼럼] 공정, 세대교체가 최선이다

    “성적순으로 뽑으니 공무원시험이 가장 공정해요.” 이른바 ‘인서울 대학’ 의 중상위권 대학을 나와 9급 지방자치단체 공무원이 된 20대는 이렇게 답했다. 10년 전 일이다. 중국 대학생 100명 중 1등부터 70등까지 창업을 하는데, 한국 대학생은 세상에 도전하지 않고 안정된 길을 찾는다며 ‘공시족’에 대한 비판이 비등하던 때였다. 그러나 ‘부모 찬스’를 쓸 수 없는 젊은이가 스스로 취업할 유일한 길이 공무원이라는 담담한 설명에 할 말을 잃었다. 지금 돌아보면 오래 기자 생활을 하고도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변화의 방향이 어떤지 몰라도 아주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2016년 터진 자유한국당 국회의원들이 연루됐던 ‘강원랜드 채용비리’ 사건이나, 2017년 터진 ‘큰손 고객’을 고려한 은행권의 채용비리, 2018년 터진 김성태 한국당 의원 딸의 KT 채용비리 의혹 등은 ‘부모 찬스’가 없는 흙수저 젊은이들에게 성적 결과만 따진다는 ‘공시’야말로 최선의 출구라는 사실을 재확인했다. “재벌2세(장관 딸)가 꿈인데 아빠가 노력을 안 한다”는 웃지 못할 농담은 그래서 나왔나 보다. 최근 대입 ‘정시 강화’에 대한 여론조사에서 찬성이 70%로 높게 나오는 것도 ‘공정’이 원인이다. 최근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의 딸은 물론 나경원 한국당 원내대표의 아들, 황교안 한국당 당대표의 아들과 딸의 진학과 관련해 다양한 특혜 논란이 불거졌다. 교수나 국회의원, 정부 고위 공무원들이 자신들의 네트워크를 활용해 자식들에게 튼튼한 특혜의 동아줄을 마련해 주고, 이 때문에 흙수저 자녀들의 이익이 침범받았다고 인식하게 된 것이다. 수시는 특혜가 개입할 개연성이 높으니 학력고사처럼 시험 성적순으로 쭉 줄세우던 그 시절이 더 낫다는 것이다. 20·30대의 공정의 기준에 따라 분류하자면 조국 사태로 한쪽에 나쁜 놈들이 있고, 다른 한쪽에는 위선자들이 있는 사회가 한국이다. 1980년대에는 공정보다 더 시급한 문제가 있었다. 군부독재 타도니, 직선제 개헌이니, 광주 학살자 처단이니 하는 것들이었다. 하지만 그때도 사립대에는 ‘정원외 입학’이란 특례입학이 있었다. 언론계에는 ‘국회의원 빽이 없으면 떨어진다’는 방송사 면접 논란이 있었고, 장관급 고위공직자의 자녀들이 유난히 많아 눈총을 받는 언론사, ‘국사과입니다’, ‘정치학과입니다’라고 하는데, 나 홀로 ‘아무개대 정외과입니다’라고 밝혀 난감했다던 면접 후기들이 루머처럼 나돌았던 시대였다. 당시는 세상은 불공정하다는 전제 속에서 사회에 적응해 나간 것 같다. ‘그래서 공정하지 않은 것이 한국의 사회적 특성이니 참아라라고 주장하는 것이냐’고 묻는다면 오히려 그 반대다. 50대 이상은 불의와 부정·불공정을 당연하다고 인식하고, 일부는 순응하고, 또 일부는 그 불공정에 협조하기까지 했다. 때문에 이들은 공정의 가치에 무감하거나 덜 예민한 만큼 젊은 세대의 대리자로서 부적절하다. 한국 사회 최대의 과제가 된 공정을 제대로 수용해 해결하려면 이들의 요구를 잘 반영할 인재들이 우리 사회에 필요하다. 그들은 산업화 세대도 아니고, 민주화 세대인 386도 아니다. ‘가난한 한국’과 ‘군부독재의 한국’을 극복하려고 너무 애를 쓰다가 공정에서 너무 멀어졌다. 지난 6월 20일자 서울신문에 “열심히 일한 산업화·민주화 세대, 떠나라”라는 칼럼을 쓰고 ‘당신도 386 같은데, 빨리 떠나라’는 비아냥과 ‘목구멍이 포도청이다’라는 탄식을 함께 받았다. 그 칼럼은 일터를 떠나라는 압박이라기보다는 정년이 늘었지만, 50대 이상은 고직위를 내려놓고 30·40대에게 리더십을 발휘할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는 의도였다. 정치권은 내년 총선이 세대교체할 최적의 시간이다. 2004년 17대 국회는 세대교체에서 최대의 성과를 냈다. 299명 중 187명이 초선 의원으로, 62.5%의 물갈이를 이뤄 냈다. 30·40대 초선이 대거 국회에 진출했다. 나경원 한국당 원내대표는 최근 국회선진화법을 위반해 검찰 수사를 받아야 할 의원들에 대해 공천 가산점을 주자고 제안했는데, 만약 제1야당에서 공천이 그렇게 진행된다면 미래가 없다고 장담할 수 있다. J M 케인스는 “사실관계가 변하면 저는 생각을 바꿉니다”라고 했다. 세상이 변화했고, 잣대가 바뀌었다. 이제 공정이다. 우리 편이라서 옳은 것이 아니라, 옳은 일을 하니까 우리 편이어야 한다. 그 변화를 내년 총선에서 세대교체로부터 시작할 수 있다. symun@seoul.co.kr
  • [길섶에서] 전원주택/문소영 논설실장

    주말 도시농부로 16년쯤 지낸 선배가 ‘퇴직 후 내 땅에 농사를 짓고 싶다’는 이야기를 한 것이 4년 전쯤. 그 후로 2년 뒤쯤 선배가 땅을 샀다는 이야기를 지나가듯이 들었는데, 지난해 말에 집을 다 짓고 1월에 인테리어에 들어갔다고 했다. 도시농부들은 쬐깐한 땅 쪼가리를 땅 주인에게 빌려 10만~20만원대의 도조를 내고 1년 농사를 짓는데, 그 선배는 지난 3년간 2차례 땅 주인의 변덕에 연작을 못 하고 쫓겨났다. 그래서 5년 전에 심어 놓았던 더덕은 수확도 못 했다고 했다. 그 선배와 같은 해에 파종했던 내 더덕은 올 늦가을에 수확할 것인데 말이다. 아무튼 유기농법에 적합하게 만든 땅에서 자주 쫓겨나면, 농부는 빚을 내서라도 땅을 마련하겠다고 각오를 하게 되는데, 그게 그 선배였다. 경기도 서쪽의 집에서 지난 주말 2시간 40분이 걸려 경기도 동쪽의 전원주택 집들이에 갔다. 언덕 위의 하얀 집은 정남향으로 햇볕이 쏟아지고 전망이 훤한 데다, ‘폭풍의 언덕’ 같은 바람이 흐느끼듯이 쏟아지다가도 그 집 앞에서는 잦아들었다. 소위 명당인 거다. 경기도 서부의 아파트를 팔고 내 옆으로 이사 오라는 선배의 감언이설을 뒤로하며 돌아오는 길에, 머릿속으로 ‘병아리셈’을 하느라고 머리가 복잡했다.
  • [길섶에서] 인디언 서머/문소영 논설실장

    추석이 지나고 귀 따가운 매미 울음을 견디며 열어 놓은 창문으로 서늘한 바람이 들어와 가을인가 싶었다. 잘 싸놓았던 온수 매트를 꺼내 등짝을 지진 지 2주가 넘었는데, 어제오늘 덥기가 한여름 같다. 일요일 출근해 사무실에 앉아 있자니 에어컨도 작동을 안 해 땀이 송골송골 맺힌다. 가을에 되돌아온 늦더위인지라 ‘인디언 서머’인가 싶었다. 사전을 찾아보니 인디언 서머가 되려면 가을이 더 깊은 뒤에 찾아오는 더위여야 한다. 북아메리카에서 한가을부터 늦가을 사이에 비정상적으로 따뜻한 날이 계속되는 기후 현상을 말하니 말이다. 100일을 기른다는 김장 배추를 10년째 키우다 보니 여름처럼 더운 날씨가 채소에게 얼마나 좋은지 금방 알게 된다. 올해는 지난해보다 배추 모종을 겨우 1주일 앞서서 심었을 뿐인데, 그 1주일 차이에 배추 크기가 두 배는 되는 것 같다. 지난해 찍어 놓은 사진과 비교하니 그렇다. 다들 적기라는 것이 있다. 생일이 늦은 친구들에게 ‘여름날 하루 땡볕이 어딘데´라며 나이를 벼슬처럼 자랑할 만한 수준의 날씨다. 더위에 짜증이 날 뻔하다가 뒤늦게 온 땡볕을 받으며 무럭무럭 자랄 텃밭의 장미꽃 같은 김장 배추를 떠올리니 짜증이 노글노글해진다. symun@seoul.co.kr
  • [문소영 칼럼] 도덕적 우위 없이 사회개혁 어렵다

    [문소영 칼럼] 도덕적 우위 없이 사회개혁 어렵다

    ‘조국 대전’이 블랙홀이 되고 있다. 사람들은 지치지도 않고 조국 법무부 장관과 윤석열 검찰총장 사퇴 문제로 열을 올린다. 한쪽에서는 익명의 교수들이 시국선언을 하고, 다른 한쪽에서는 실명을 공개한 교수들이 시국선언에 참여한다. 서울 광화문에서는 ‘조국 퇴진’ 집회가 거의 매일 열리고, 서울 서초동 대검찰청 앞에서는 오는 토요일에 7회째 ‘윤석열 사퇴’ 집회가 열린다. 2016년 겨울, 촛불정국에서 ‘동지’였던 사람들끼리도 이제 격렬히 총질한다. 진중권 동양대 교수가 정의당에 당원 사퇴서를 내자, 소설가 공지영은 “좋은 머리도 아닌지 박사 학위도 못 땄다”고 저격했다.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은 조 장관의 부인 정경심 교수의 PC 반출을 “증거보존”이라며 ‘어용 지식인’의 면모를 뽐냈다. 증거인멸 우려가 합리적인 의심이라 법원에서 자꾸 검찰의 압수수색 영장을 받아 주건만 대체 무슨 망언이란 말인가. ‘사노맹 출신의 강남 좌파’로 알려진 조 장관의 가족이 ‘그들만의 리그’ 소속이었음이 만천하에 드러난 탓에, 386세대는 파렴치한으로 전락했다. 비극이다. 그런 상황을 만든 그가 지난 6일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자신을 “사회주의자”라고 주장했을 때 공감하기 어려웠다. 영국 극작가 버나드 쇼는 “합리적인 사람은 자신을 세상에 맞추지만, 비합리적인 사람은 세상을 자신에게 맞추려고 애쓴다. 따라서 진보는 전적으로 비합리적인 사람에게 달려 있다”고 했다. 조 장관은 자신을 사회주의자로, ‘비합리적인 사람’으로 진단한 모양이지만, 버나드 쇼의 기준에 따르면 그는 그 누구보다도 ‘합리적’이었던 터라 시민은 분노하고, 씁쓸해했다. 특권과 반칙 없는, 상식 있는 사회를 만들려고 ‘아버지 찬스’를 자식에게 쓰지 않은 사람들은 주변에 적지 않다. 386의 윗세대지만, 미국 스탠퍼드대 MBA에 진학하겠다며 ‘아버지 추천서’를 써 달라는 아들의 요청을 재직 중에 거절한 전 한국은행 총재는 그 이후에 아들과 불화하며 살고 있다. 84학번인 한 원내대표는 ‘아버지 지역구 밖의 공립학교에 진학하면 안 되겠느냐’는 아들의 간곡한 요청을 거절해, 그 아들은 견디기 힘든 10대를 보내며 간신히 고교를 졸업했다. 85학번인 한 언론사의 논설위원은 한영외고 재학 중인 딸의 소논문 작성을 도와줄 테니 50만원을 내라는 학부모 그룹의 제안을 거절한 뒤 입시정보 공유에서 배제됐다. 87학번의 전 청와대 비서관 아들은 최종학력이 고졸로 최근 군복무를 마쳤다. 무엇보다 여론이 양분돼 양자선택을 강요하는 현 상황은 바람직하지 않다. 표현의 자유야말로 민주주의 사회의 가장 기본적인 권리인데, 요즘 조 장관이 사퇴해야 한다고 발언을 하면 적폐로 내몰리고, 윤 총장이 사퇴해야 한다고 발언하면 어용으로 내몰리는 탓에 입을 다문 사람이 많아졌다. 언론이 검찰에 붙어 국정농단 때보다도 많은 120만건의 기사를 생산했다는 가짜뉴스를 뿌리면서, 조 장관만이 검찰개혁을 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것은 과연 옳은 것인가. 검찰은 여야가 국회 인사청문회에 합의한 직후인 8월 27일 전격 압수수색에 나섰고, 인사청문회가 끝나는 날 피의자 소환도 없이 조 장관의 부인을 기소한 것이 ‘검찰 쿠데타’가 아니라고 할 수 있는가. 고민들이 깊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9일 “의혹만으로 임명하지 않는다면 나쁜 선례가 될 것”이라며 조 장관을 임명했다. 그 판단에 나는 유감이었다. 정치행위나 국정운영의 원칙은 법보다 도덕이 우선한다고 믿고 있다. 지금까지 한국 사회는 재벌 2세나 총리나 장관 후보자들이 꼭 위법했기에 비판한 것은 아니다. 사회가 요구하는 도덕적 책무에 부합하지 않았기에 비판하고 개선을 요구해 왔다. 한 예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에버랜드 전환사채(CB) 저가 인수는 편법이었기에 비난받았다. 현 정부는 진영을 뛰어넘어선 정의로 탄생한 정부다. 나라다운 나라를 만들어 달라고 합심한 것이었다. 그 요구는 이제 ‘공정’을 요구하는 20대와 30대가 추구하는 미래로 수렴돼야 한다. 조 장관만이 검찰개혁이라는 역사적 과업을 이룰 것이라며 진영으로 뭉치는 386꼰대들의 바람으로 수렴돼서는 절대 안 된다. 더 높은 도덕적 우월성에 기초해야만 검찰개혁뿐만 아니라 노동개혁, 재벌개혁, 젠더갈등도 극복하고 성공할 수 있다. 조 장관은 문재인 정부의 성공을 위해서라도 결단해야 한다. ‘비합리적인’ 사고를 잃어버렸거나 잊어버린 386이라면 더는 역사의 전면에 서 있을 필요가 없다. symun@seoul.co.kr
  • [길섶에서] 개미가 물었어/문소영 논설실장

    텃밭을 경운하지 않고 필요한 곳만 삽질해서 퇴비를 넣고 씨를 뿌리거나 모종을 심는다. 붉은색인 맨땅은 거의 드러나지 않을 만큼 잡초와 민트, 쑥, 민들레, 고들빼기 등이 가득하다. 초봄에는 다 뜯어서 새싹 비빔밥을 해먹을 수 있을 정도로 풍요로운 땅이다. 삽으로 땅을 뒤집으면 지렁이가 반드시 따라 올라온다. 건강한 땅이다. 농약을 치지 않는다. 먹거리도, 달팽이도, 농부도 안전하다. 이 뿌듯한 땅에 문제가 생겼다. 언제부터인가 삽질을 하면 개미집이 파괴되기 시작한 것이다. 내 텃밭에 세상의 모든 개미들이 집을 지은 듯이, 삽질하는 곳마다 개미집이 파괴된다. 들깨 사이즈 개미들이 우왕좌왕하고 정신없이 움직이고, 때로는 하얀 개미알들이 검은 흙에 흩어지는 모습을 보면 죄의식이 생긴다. 이 심리적인 위축에 육체적인 고통이 추가된다. 크고 작은 개미들이 목장갑과 장화로 기어올라와 팔목이나 발목을 깨물기 때문이다. 큰 개미가 물면 눈물나게 아프고, 작은 개미가 물면 따끔따끔하다. 이렇게 물리고 12시간쯤 지나면 빨간 두드러기가 올라오고 가려움에 사나흘을 고생한다. 이 과정을 예닐곱 번 거치고 나면 겨울이 온다. 김장배추 모종을 끝내고 개미에 수십 번 물린 팔목이 가려워 긁적댄다. symun@seoul.co.kr
  • [길섶에서] ‘기레기’/문소영 논설실장

    기자와 쓰레기의 합성어가 ‘기레기’다. 언론이 정론직필하지 않고, 진실 추구보다 정파성에 치우치다 보니 비난할 때 사용하는 단어다. 기레기와 좋은 언론 감별법이 뭐냐고 하더라. 곰곰이 생각하고 ‘일관성’을 따져보라고 했다. 느닷없이 ‘통일대박’을 정부와 함께 외치다가 정권이 바뀌자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를 반대한다면 기레기 언론이라고 했다. 자신이 지지하던 정부라도 잘못하면 비판하는 게 옳다. 정파성이 워낙 강화하다 보니, 자신이 지지하는 정부를 비판하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처럼 ‘가짜뉴스’를 외쳐대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 그러나 대통령 무오류설, 내 편은 항상 옳아, 이런 건 없다. 사례를 들자면, 박근혜 정부에서 안대희 총리 후보자를 비판하던 잣대로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를 비판하는 언론은 좋은 언론이다. 안 후보자는 어떻게든 옹호하더니 조국 후보자 때는 험악하게 비판한다면 좋은 언론은 아니지 않나. 다만 지지하니까 좀 덜 쓰거나 덜 비판하기도 하는데, 이 역시 마땅히 비판받아야 하지만, 팔은 안쪽으로 굽는다 정도로 이해할 수 있다. 언론사에 몸담고 구업을 쌓는 터라 만화 ‘신과 함께’처럼 지옥에서 누군가 내 혀에 밭 갈고 씨 뿌리고 하지 않을까, 걱정한다. symun@seoul.co.kr
  • [길섶에서] 건망증과 알람/문소영 논설실장

    생일과 결혼기념일, 제삿날 등등 집안의 대소사를 잘 기억하지 못한다. 한동안 남들처럼 새 달력이 나오면 빨간펜으로 표시해 놓지만, 별 효과가 없었다. 잘 기억하고 있다가 당일엔 까먹기 일쑤다. ‘오늘’이라는 날짜 감각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온 편법은 생각났을 때 얼른 선물을 앞당겨 준다든지, 가족모임을 일찌감치 진행한다. 최근 딸의 생일날도 그랬다. 더운 날 태어난 탓에 미역국을 끓이지는 않는데, 저녁을 함께 먹기로 한 당일 아침에 “오늘 저녁은 어디서 먹는 거지” 하는 질문을 받고 “왜?”라고 무심코 물었다가 돌멩이가 날아올 뻔했다. 처지가 이런지라 100일 기념일이나 결혼기념일을 챙기지 못해 여자친구나 부인의 화풀이를 받은 남성들의 안쓰러운 사연들을 보면, “나 같은 사람도 있어요”라며 연대감을 표현하고 싶기도 하지만 무슨 소용이 있단 말인가. 건망증이 심하거나 기념일을 잘 망각하는 사람을 분리수거해 버릴 수 없는 처지라면, 알람시계처럼 때가 되면 반복해 기념일을 상기해 주면 어떨까. ‘사랑한다면 기념일을 챙겨 달라’고 하지 말고, 상대의 특성을 수긍하고 배려해 끊임없이 채근하는 것이다. 건망증은 심해도 고마운 줄은 우리도 안다. symun@seoul.co.kr
  • [길섶에서] 태풍과 텃밭/문소영 논설실장

    올해 텃밭 관리는 차분하게 열심히 한 편이다. 매주 한 번은 꼭 텃밭에 들러 바랭이나 잡초 등을 뽑고 모종도 심었다. 올해는 봄 가뭄이 7월 초까지 확장한 탓에 감자농사는 망쳤다. 6월 말에서 7월 초에 오는 장마도 실종돼 온실 속의 화초 같은 고추, 가지, 토마토, 울타리콩 등도 잎사귀가 비들비들하고 키도 작은 것이 곧 소멸할 것 같았다. 잡초들조차 이파리가 누렇게 떴는데, 흙먼지 속에서 간신히 버티는 느낌이었다. 그 잡초를 뽑지는 않는다. 가뭄이 심할 때는 작물 옆의 잡초를 뽑으면 안 된다. 작물과 잡초가 서로 의지해 땅속 깊은 곳에서 물기를 빨아올리고 나누기 때문이다. 평소 햇빛을 두고 경쟁해도 가뭄에는 상부상조해야만 그 혹독함을 견딜 수 있다. 지난주 태풍과 함께 비가 서너 번이나 듬뿍 내린 뒤 텃밭에 갔다가 기함했다. 가뭄을 견딘 잡초는 살판이 난 터라 키를 허리 높이까지 훌쩍 키웠다. 그렇잖아도 버려둔 밭처럼 보여서 주변 농작물 쓰레기들이 몰리는 진짜 풀밭이 되었다. 누군가가 “뱀 나오겠어요”라며 고개를 젓는다. 그나마 다행은 고추, 가지, 토마토, 울타리콩도 조리로 몇 번씩 물을 줄 때와 달리 1주일 만에 잡초처럼 몰라볼 정도로 훌쩍 자랐다. 편애로 해결할 수 없는 자연의 고마움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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