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책을 말한다] 35억년 진화의 비밀
나는 지금 시카고에 와 있다. 시카고 대학에 다니는 친구가 초대를 해주어서 큰 맘 먹고 멀리 여행을 왔다. 이 도시는 건축, 블루스, 미술관, 경제학 등 워낙 유명한 것들이 많아서 그런 방면에서 흥미로운 체험을 할 수 있을 것으로 잔뜩 기대하고 있었다. 그런 가운데 10일 필드 자연사 박물관에 갔다가 틱타알릭 화석 모형을 보고 깜짝 놀랐다.
틱타알릭은 3억 7500만년 전 데본기에 살았던 물고기다. 악어를 너무 닮아서 흡사 파충류 같다. 두 눈이 위에 달렸고, 지느러미는 몸통을 받칠 만큼 튼튼하여 거의 발과 같다. 틱타알릭은 어류와 최초 육상동물 사이의 전이 형태 화석인 것이다. 녀석은 손목과 팔을 가진, 팔굽혀펴기를 할 줄 아는 물고기였다. 몸길이가 1m도 채 안 되는 작은 화석이지만, 틱타알릭은 고생물학계를 발칵 뒤집어 놓은 중요한 발견이었다. 진화의 역사에서 동물이 물에서 뭍으로 올라온 사건은 굉장히 중요하기 때문이다. 또 인간의 정체성을 구성하는 핵심인 손과 팔다리가 어떻게 진화했는지 알아보는 데도 많은 것을 알려줄 수 있었다.
틱타알릭을 발견해 2006년 과학계 10대 뉴스의 첫 머리에 오른 사람이 바로 ‘내 안의 물고기’를 쓴 고생물학자 닐 슈빈이다. 그가 시카고 대학 교수이자 필드 자연사 박물관의 자문위원이라는 사실을 내가 깜빡 잊었다. ‘내 안의 물고기’를 번역하면서 숱하게 머릿속에 그려 보던 틱타알릭의 납작한 주둥이를 방심한 상태에서 마주치다니! 몇억 년 전에 살았던 물고기 한 마리가 진화에 관해 얼마나 많은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는지 번역을 하면서 사무치게 느꼈던지라 유리장 속의 틱타알릭이 무척 특별하게 느껴졌다.
‘내 안의 물고기’는 여러 증거를 들어 인간과 물고기를 비롯한 다른 동물들의 해부 구조가 놀라울 정도로 비슷하다는 점을 밝힌다. 저자는 심지어 “인간은 업그레이드된 물고기”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우리 몸속에 동물들이 숨어 있고, 동물들의 몸속에 인간이 숨어 있으므로 동물을 연구함으로써 인간을 이해할 수 있다는 게 그가 말하고 싶은 내용이다. 그러니 이 책의 제목은 ‘내 안의 파리’, ‘내 안의 생쥐’, ‘내 안의 효모’가 될 수도 있다. 그리고 그 동물은 화석처럼 이미 죽은 것일 수도 있고, 살아 있는 것일 수도 있다. 전자의 경우에는 고생물학이고, 후자의 연구에는 발생유전학이다.
과거에 서로 거리가 멀었던 생물학의 두 분야는 최근 들어서 점차 통섭을 통한 시너지 효과를 내고 있다. 화석을 보관하는 캐비닛 옆에 DNA 시료를 보관하는 냉장고가 있다는 요즘 생물학자들의 실험실은 ‘우리는 어째서 이런 형태의 몸으로 진화했는가?’ 하는 질문에 자신감 있게 도전하고 있다.
이 책의 최고 미덕은 많은 과학적 지식을 흥미진진하게 전달한다는 점이다. 가령 북극에서 6년간의 탐사 끝에 기적적으로 틱타알릭을 발견해낸 현장 고생물학의 이야기는 거의 모험담이다.
김명남 번역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