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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현대사 길목마다 인간방패 役… 날마다 두렵다, 그러나 ‘나는 없다’

    현대사 길목마다 인간방패 役… 날마다 두렵다, 그러나 ‘나는 없다’

    1963년 12월 17일 제3공화국 출범과 함께 태동한 대통령 경호실이 17일로 창설 50주년을 맞는다. 지난 2월 박근혜 정부의 조직 개편에 따라 경호실은 5년 만에 장관급 대통령 직속 기관으로 복귀했다. 경호실은 육영수 여사 저격 사건을 비롯해 박정희 대통령 서거, 버마 아웅산 묘소 폭탄 테러, 노무현 대통령 서거 등 요동치는 한국 현대사의 주요 길목에서 때로는 논란의 중심에, 때로는 국가 원수의 살아 있는 ‘인간 방패’로 존재해 왔다. ‘VIP’(대통령)를 지키기 위해 기꺼이 죽음을 껴안는다는 대통령 경호관, 그들의 세계를 들여다봤다. 최근 군 특수부대 훈련장에서 진행된 ‘모형동체 수중 탈출’ 훈련. 헬기 모형을 본뜬 소형 컨테이너가 공중에서 수십 미터 아래의 풀장으로 곤두박질친다. 컨테이너가 수중에서 몇 바퀴를 뱅글뱅글 돌 정도로 충격파가 셌다. 잠시 후 컨테이너에서 최소한의 보호 장비만 찬 사람들이 나온다. 헬기 추락 사고를 재현한 이 훈련은 대통령 경호실 경호관이라면 누구나 거치는 통과 의례 중 하나다. 실전을 방불케 하는 위험한 상황이지만, 훈련에 임하는 경호관들의 눈에는 두려움이 없다. “사실 매일 두렵죠. 그러니까 날마다 훈련합니다. 제가 살기 위해서가 아니라 팀이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본능을 억누르는 노력을 하죠.” 19년 경력의 김민수(44·가명) 경호관은 “매일 하는 훈련이 죽는 연습”이라며 이렇게 설명했다. 대통령을 위해 몸을 먼저 움직이고, 때로는 죽을 수도 있는 게 숙명이라는 뜻이다. 훈련은 신임 경호관뿐 아니라 10년 차, 15년 차, 20년 차 베테랑 경호관에게도 필수다. 연차가 쌓이면서 얻는 경륜도 있지만, 체력은 경호의 기본으로 꼽힌다. 김 경호관은 “아직도 경호라는 것을 잘 모르겠다. 많은 변화에 적절하게 대응해야 하니 경호가 이것이라고 콕 집어 말하기 어려운 것 같다”며 “다만 체력을 유지하기 위해 매일 아침 5시에 일어나 청와대 연무관에서 운동을 한다”고 말했다. 대통령 경호 20년 경력의 강성일(47·가명) 경호관은 무도 20단의 실력자다. 태권도 7단에 특공무술 7단, 합기도 4단, 유도 2단인 그도 체력 관리만큼은 철저하다. 매일 체력단련장인 연무관에서 땀을 흘린다. 강 경호관은 “현장에서 항상 총을 차는 경호관인 데다 생명을 다루는 일이어서 주 1~2회 사격 훈련도 빼먹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국가 원수를 경호하는 일이다 보니 신임 경호관을 뽑는 일도 간단하지 않다. 1차부터 3차 시험까지 이어지는 선발 과정에서 필기시험과 인성검사, 체력검정, 무도검정, 면접과 논술 등 다양한 평가를 거친다. 선발 이후에도 혹독한 훈련 과정이 남아 있다. 신임 경호관들은 36주 동안 강도 높은 훈련을 통과해야만 비로소 경호실의 정예 요원으로 거듭난다. 이들은 1박2일 동안 100㎏에 육박하는 고무보트를 머리에 이고 밤샘 행군을 하는가 하면, 장비 없이 바다 수영을 하기도 한다. 군 특수부대와 경찰, 국가정보원, 소방방재청 등에서 외부 교육도 받는다. 이 가운데 가장 힘든 것이 사격과 무도, 체력 증진, 수영 등으로 이뤄진 내부 교육이다. 지난해 6월 들어와 거친 훈련을 받았던 15기 막내 경호관들은 “공포감 때문에 쉽지 않다는 공수 훈련이 가장 쉽게 느껴질 정도였다”고 입을 모았다. 최근엔 해외 순방과 외빈 경호를 위해 중국어와 일본어, 러시아어 등 외국어 교육도 필수 항목이 됐다. 대테러 훈련이나 진압, 전술 등의 경호 전략을 공부하는 것도 주요 업무다. 또 유기적인 팀워크로 경호가 이뤄지다 보니 팀 호흡을 맞추는 것도 주요 훈련 가운데 하나다. 한 신임 경호관은 “국민은 드라마나 영화를 통해 검은 정장에 선글라스를 착용한 경호관에게 익숙하겠지만, 사실 극도의 긴장감과 자기 관리가 필요한 직업”이라며 “(우리가) 자기와의 혹독한 싸움에서 이길 수 있는 것은 투철한 애국심과 소명 의식 때문”이라고 말했다. 명희진 기자 mhj46@seoul.co.kr
  • 매일 ‘죽음’을 훈련한다…나는 대통령 경호관이다

    매일 ‘죽음’을 훈련한다…나는 대통령 경호관이다

    ‘국가원수를 위해 죽을 수 있습니까’라는 질문에 그의 대답은 짧고 명확했다. “죽을 수 있습니다. 그게 제 임무라고 생각합니다.” 20년 전 ‘정직한 무관’을 목표로 대통령 경호의 첫발을 내디딘 김수형(46·가명) 경호관은 “매일 아침 집을 나설 때마다 이게 마지막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대통령 경호실 창설 50주년을 이틀 앞둔 15일 서울 김포공항 인근 경호종합훈련장에서 만난 그는 “초심을 지키기 위해 매일 ‘죽음’을 훈련한다”고 밝혔다. 대통령 경호실은 제5대 박정희 대통령이 취임한 1963년 12월 17일 처음 만들어졌다. 이전에는 이른바 ‘경무대 경찰서’가 경호 업무를 맡았다. 김 경호관은 경력 20년차의 베테랑이지만 여전히 매일 오전 5시에 일어나 운동을 한다. 그는 “현장에서 올바르게 보고 명확하게 판단할 수 있게 도와달라고 항상 기도한다”고 말했다. 새롭게 변하는 경호 환경에 대처해야 하기 때문에 꾸준한 훈련은 경호의 기본이라는 게 그의 지론이다. 그는 “경호란 몸이 마음을 지배하는 상태로, 충성이 행동으로 나타나는 것”이라고 정의했다. 두려움이 생기기 전에 몸을 먼저 움직이는 게 경호관의 숙명이란 얘기다. 시종일관 단단하고 묵직했던 김 경호관의 눈빛은 가족 이야기가 나오자 다소 누그러졌다. 그는 “아이들에게 좀 무심한 편”이라고 털어놨다. “무서우면서도 때로는 부드러운 아버지가 되려고 노력했지만 잘 안 된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1년에 보통 100~110일을 집에 들어가지 못하다 보니 가족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적지 않다고도 했다. 그는 “부족한 남편이고, 아버지인데…”라면서도 “경호관으로서, 공직자로서 맡은 바 임무를 다해 부끄럽지 않은 남편이자 아버지가 되고 싶다”고 밝혔다. 3년차 경호관 이서현(30·여·가명)씨는 “경호 수식 중 ‘100 빼기 1은 0이다’라는 말이 있다”면서 “한 번 실수는 전체의 실패를 뜻하며, 그 한 번의 실수를 하지 않기 위해 완벽에 가까운 훈련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쉬는 날에도 훈련을 멈추지 않는다고 했다. 최고의 몸 상태로 경호에 임하기 위해서다. 친구들을 만나도 일절 술을 마시지 않는다. 이 경호관은 “대학원에서 전자공학을 전공했지만 ‘내가 왜 이것을 하고 있는가’에 대한 해답을 찾지 못했다”며 경호관 입문의 계기를 에둘러 소개했다. 그는 두 차례 도전 끝에 경호관이 됐다. 비(非)체육 전공자로서 ‘맨땅에 헤딩한다’는 자세로 훈련에 임하고 있다는 그는 “(경호관은) 드러나지는 않지만 항상 역사와 함께한다는 사명감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명희진 기자 mhj46@seoul.co.kr
  • ‘자살 女대위’ 성추행한 소령 다른 여군 6명도 모욕·폭행

    지난 10월 강원 화천군 육군 모부대 인근에서 자살한 A(28·여) 대위를 성추행한 혐의로 기소된 B소령이 추가로 여군 6명에게 성적 모욕을 주고 폭행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12일 시민단체 군인권센터가 입수한 자료에 따르면 B소령은 A대위를 성추행한 혐의에 더해 대위 1명과 중위 2명, 하사 3명 등 6명의 여군에게 성적 수치심을 유발하는 폭언을 하거나 폭행한 사실이 군 내부 조사에서 드러난 것으로 전해졌다. B소령은 지난 6∼9월 부대에서 이 피해자들에게 외모를 비하하거나 성적 수치심을 유발하는 발언을 일삼은 것으로 알려졌다. 또 하사 1명에게는 지난해 7월 당직 근무가 서투르다며 서류 결재판으로 머리를 때리는 등 폭행했다고 군인권센터는 주장했다. 군 검찰은 A대위 자살 사건을 수사하는 과정에서 B소령의 추가 혐의를 확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B소령은 모욕과 강제추행 혐의로 지난달 기소돼 오는 19일 첫 공판을 앞두고 있다. 이에 대해 육군 관계자는 “B소령이 숨진 여군 대위를 추행하고 모욕한 혐의로 기소된 것만 알 뿐 그 이외의 사항은 피의자 신분 보호 차원에서 재판이 열릴 때까지 확인할 수 없다”고 말했다. A대위는 지난 10월 16일 자신이 근무하는 부대 인근 승용차에서 번개탄을 피우고 숨진 채 발견됐다. 당시 차량 안에는 A대위가 B소령을 비난한 내용의 유서가 발견된 것으로 전해졌다. A대위는 약혼자도 있었다. 군인권센터 관계자는 “군 당국이 추가 피해자의 진술을 확보하고도 조치를 취하지 않고 사건을 축소하려는 것 아니냐는 의혹을 떨칠 수 없다”면서 “B소령의 추가 범죄에 대한 처벌이 이뤄져야 하고, 재발 방지를 위한 대책이 마련돼야 한다”고 말했다. 명희진 기자 mhj46@seoul.co.kr
  • [단독] 8시간 근무에 18분 휴식 건보공단 콜센터의 ‘착취’

    [단독] 8시간 근무에 18분 휴식 건보공단 콜센터의 ‘착취’

    서울 마포구 염리동의 국민건강보험공단 콜센터가 직원 400여명에게 사실상 ‘착취’에 가까운 근로조건을 강요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직원들은 하루 8시간을 근무하는 동안 18분만 쉴 수 있다. 이를 어기면 초과 근무를 해야 했다. 해당 콜센터에는 K, H, M사 등 하청업체 3개가 입주해 있으며, 한국표준협회가 주관한 콜센터 품질지수에서 2년 연속 ‘공공기관 우수 콜센터’로 선정됐다. 12일 콜센터와 전·현직 직원 등에 따르면 직원들은 입사 전 서류 형태로 ‘이속시간(쉬는 시간) 18분을 초과하면 추가 근무를 해야 한다’는 조항에 동의해야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18분을 넘기면 초과분만큼 점심시간 등에 추가 근무를 해야 한다. 이속시간에는 화장실을 다녀오는 시간뿐만 아니라 고객에게 다시 전화 거는 시간, 지사 담당자에게 전화로 문의하는 시간 등이 모두 포함돼 사실상 쉬지 않고 장시간 근로를 해야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공단 정직원에게 전화를 연결하면 문책 대상이 되는 등 불이익을 주는 조항도 있다. 콜센터 직원들은 공단 본사나 지사에 하루 100건 기준으로 3건(3%) 이상 전화를 연결하면 감점을 받거나 문책당한다. 인권 침해성 발언도 상당하다. 관리자들은 직원들에게 “들어올 때는 쉬웠는지 몰라도 나갈 땐 쉽게 못 나간다”는 식의 협박성 발언과 욕설을 서슴지 않는 것으로 전해졌다. 또 직원들은 업무와 관련해 공단 정직원에게 고객을 연결하면 “왜 함부로 전화를 돌렸느냐, 교육을 안 받았느냐”는 말투로 말한다고 전했다. 콜센터는 매달 문의가 집중되는 마감일 등에 김밥과 컵라면, 우유 등을 나눠 주며 사실상 점심시간에도 일하도록 독려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상당수가 수습 기간인 3개월을 못넘기고 그만둔다. 콜센터의 한 직원은 “본사 직원들에게 전화를 돌리면 ‘신입이냐’, ‘바쁜데 알아서 처리를 못하고 왜 전화를 돌리느냐’는 식의 답변을 받는다”면서 “(문의 전화를 받다 보면) 우리가 실질적으로 처리해 줄 수 없는데도 심하게 무시를 당한다”고 말했다. 또 다른 직원은 “점심시간이 1시간 주어져도 초과 근무를 해야 하기 때문에 30분도 못 쓴다”면서 “생업이라 그만두지 못해 어쩔 수 없이 참고 다닌다”고 토로했다. 이에 대해 건보공단 관계자는 “1일 8시간 근무 중 직원들의 평균상담시간은 4시간 40분으로 조사 됐다”면서 “18분 초과하면 추가근무해야 한다는 조항은 현장 확인 결과 운영되지 않고 있다”고 해명했다. 또 “납부 마감일 등에는 점심시간 상담을 원하는 사람에게만 운영하고 있고 그 시간만큼 조기 퇴근을 실시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하도급업체 관계자는 “온 국민이 고객이다 보니 밀리지 않고 전화를 받는 일이 중요하다”면서 “원활한 업무를 위해 인력 운용을 그렇게 할 수밖에 없는 부분이 있다”고 해명했다. 명희진 기자 mhj46@seoul.co.kr
  • [단독] 8시간 근무에 18분 휴식…건보공단 콜센터의 ‘착취’

    [단독] 8시간 근무에 18분 휴식…건보공단 콜센터의 ‘착취’

    서울 마포구 염리동의 국민건강보험공단 콜센터가 비정규직 직원 400여명에게 사실상 ‘착취’에 가까운 근로조건을 강요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직원들은 하루 8시간을 근무하는 동안 18분만 쉴 수 있다. 이를 어기면 초과 근무를 해야 했다. 해당 콜센터에는 K, H, M사 등 3개의 하청업체가 입주해 있으며, 한국표준협회가 주관한 콜센터 품질지수에서 2년 연속 ‘공공기관 우수 콜센터’로 선정됐다.  12일 콜센터에 따르면 직원들은 입사 전 서류 형태로 ‘이속시간(쉬는 시간) 18분을 초과하면 추가 근무를 해야 한다’는 조항에 동의해야 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18분을 초과하면 초과 분만큼 점심시간 등에 추가 근무를 해야 한다. 18분에는 화장실을 다녀오는 시간뿐만 아니라 고객에게 다시 전화를 거는 시간, 지사 담당자에게 전화해 문의하는 시간 등이 모두 포함돼 사실상 쉬는 시간 없이 장시간 근로를 해야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공단 정직원에게 전화를 연결하면 문책 대상이 되는 등 불이익을 주는 조항도 있다. 콜센터 직원들은 공단 본사나 지사에 하루 100건 기준으로 3건(3%) 이상 전화를 연결하면 감점을 받거나 문책을 당한다.  인권 침해성 발언도 상당하다. 관리자들은 직원들에게 “들어올 때는 쉽게 들어왔을지 몰라도 나갈 땐 쉽게 못 나간다”는 식의 협박성 발언과 욕설을 서슴지 않는 것으로 전해졌다. 또 직원들은 업무와 관련해 공단 정직원에게 고객을 연결하면 “왜 함부로 전화를 돌렸느냐, 교육을 안 받았느냐”는 식의 발언을 듣는다고 전했다.  콜센터는 매달 문의가 집중되는 마감일 등에 김밥과 컵라면, 우유 등을 나눠 주며 사실상 점심시간에도 일하도록 독려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3개월에 한 차례씩 20명이 넘는 직원을 뽑지만 대부분 수습기간인 3개월을 못 넘기고 직장을 그만둔다. 콜센터의 한 직원은 “본사 직원들에게 전화를 돌리면 ‘신입이냐’, ‘바쁜데 알아서 처리를 못 하고 왜 전화를 돌리느냐’는 식의 답변을 받는다”면서 “(문의 전화를 받다 보면) 우리가 실질적으로 처리해 줄 수 없는데도 심하게 무시를 당한다”고 말했다. 또 다른 직원은 “점심시간이 한 시간 주어져도 초과 근무를 해야 하기 때문에 30분도 못 쓴다”면서 “생업이라 그만두지 못해 어쩔 수 없이 참고 다닌다”고 토로했다.  이에 대해 건보공단 관계자는 “공단에서 직접 관리를 하는 게 아니라 콜센터와 도급 계약을 하다 보니 전혀 관여를 하지 못한다”면서 “도급 업체가 직원들을 어떻게 관리하고 운용하는지를 알 수 없다”고 밝혔다. 하도급업체 관계자는 “온 국민이 고객이다 보니 밀리지 않고 전화를 받는 일이 중요하다”면서 “원활한 업무를 위해 인력 운용을 그렇게 할 수밖에 없는 부분이 있다”고 해명했다.  명희진 기자 mhj46@seoul.co.kr
  • ‘제품 기술적 결함’ 소비자가 입증하라는 법

    지난 7월 9일 서울 강서구의 한 임대아파트에서 원인을 알 수 없는 불이 났다. 소아마비 1급 장애인 노모(53·여)씨가 가족과 함께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였다. 불이 날 만한 요인이 없었기 때문에 노씨는 영문도 모른 채 놀란 가슴만 붙잡아야 했다. 방 한 칸을 완전히 태운 이 화재는 ‘원인 미상’으로 일단락되는 듯했다. 그러나 소방대원이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선풍기 모터의 연결 배선이 수상하다는 것이었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화재 감정을 요청한 결과 선풍기 연결 배선의 불량이 화재의 원인으로 밝혀졌다. 노씨는 ‘제조물책임법’(PL법)에 따라 해당 선풍기를 판매한 A사로부터 1000만원 안팎의 보상금을 받았다. 강서소방서의 적극적인 도움이 없었다면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었다. PL법상 제품 하자로 인한 피해 보상을 받기 위해서는 입증 책임이 제조사가 아닌 소비자에게 있기 때문이다. 반면 지난 6월 급발진 피해를 주장하며 기아자동차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던 김모씨는 사고 원인이 제품에 있다는 점을 입증하지 못해 패소 판결을 받았다. 김씨는 당시 급발진으로 추정되는 사고를 당해 부상을 입었다. 동승했던 일행 가운데 1명은 사망했다. 법원은 사고 직후 운전자의 신발이 가속페달 위에 있었다는 이유 등으로 제조사의 손을 들어줬다. PL법이 2002년 국내에 도입된 지 11년이 됐지만 소비자 보호에는 여전히 미흡하다는 지적이 많다. 이에 공정거래위원회와 법무부 등 관련 기관이 소비자의 입증 책임 완화를 내용으로 하는 개정안을 추진하고 있어 주목된다. PL법은 제조물 결함으로 인한 피해로부터 소비자를 보호하겠다는 게 기본 취지다. 문제는 소비자가 보호를 받기 위해서는 사고 책임을 직접 입증해야 한다는 점이다. 하지만 소비자가 제품의 결함 여부와 그 결함이 사고로 이어지는 인과관계를 입증한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거의 불가능하다. 제조물 대부분이 고도의 기술과 복잡한 공정을 거치는 데다 이에 관한 정보를 제조업자가 갖고 있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소비자가 제조물을 정상적인 방법으로 사용해서 사고가 발생했다면 제조물에 이미 결함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해야 한다는 대법원 판례가 있다”면서 “현실적이고 상식적인 수준으로 법을 개정할 필요가 있다”고 입을 모은다. 그러나 이런 견해는 기업에 입증 책임을 묻거나 막대한 부담을 지울 수밖에 없어 그동안 번번이 무산됐다. 현재 소비자의 입증 책임 완화를 내용으로 하는 PL법 일부 개정안이 김관영 민주당 의원 대표 발의로 국회 정무위원회에 계류 중이다. 공정거래위원회도 개정 작업을 추진하고 있다. 공정위 관계자는 “소비자의 입증 책임을 완화하는 개정안 초안이 완료된 상태”라면서 “내년 초 개정 작업이 이뤄질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고 말했다. 명희진 기자 mhj46@seoul.co.kr
  • ‘신호무시’ 스쿠터에 치인 경찰관 결국 순직

    신호를 무시하고 달리던 오토바이에 치여 의식을 잃었던 경찰관이 사고 23일 만에 순직했다. 8일 서울 은평경찰서에 따르면 교통법규 위반 차량을 단속하다 이륜차에 치여 입원 중이던 이 경찰서 교통안전계 소속 박경균(51) 경위가 7일 오후 4시 16분쯤 순직했다. 박 경위는 지난달 15일 오후 4시 10분쯤 은평구 녹번동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앞 도로에서 대학생 박모(24)씨가 몰던 125㏄ 스쿠터와 충돌하면서 땅에 머리를 부딪혀 크게 다쳤다. 이후 박 경위는 강북삼성병원 중환자실로 옮겨져 치료를 받았지만 깨어나지 못했다. 경찰조사 결과 사고 당시 오토바이에는 박씨와 친구 최모(23)씨가 타고 있었고, 박씨는 헬멧 미착용 상태에 오토바이 번호판도 달지 않았던 것으로 드러났다. 해당 오토바이는 무등록, 무보험 상태였다. 박 경위는 두 자녀를 두고 있으며, 장남은 의무경찰을 제대해 경찰시험을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빈소는 은평구 은평장례식장에 마련됐다. 발인은 10일 오전 7시, 영결식은 같은 날 은평경찰서에서 열린다. 고인에게는 1계급 특진에 옥조근정훈장과 경찰공로장이 추서된다. 명희진 기자 mhj46@seoul.co.kr
  • 동물 보호 못하는 ‘동물보호법’

    동물 보호 못하는 ‘동물보호법’

    ‘길고양이들을 구해 주세요.’ 최근 인터넷에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의 한 아파트에서 길고양이들이 다니는 지하실 통로를 막는 바람에 길고양이들이 굶어 죽을 위기에 빠졌다는 글이 올라와 논란이 되고 있다. 지난 7일에는 주민들과 동물사랑실천협회 회원 등 60여명이 이 아파트 앞에 모여 “길고양이는 국제적으로 법적 보호 대상”이라면서 “명백한 동물 학대”라고 주장했다. 지난 10월 30일 충남 아산시의 한 아파트 14층에서 여자 친구의 고양이를 아래로 내던진 남성이 재물손괴 혐의로 입건됐다. 여자 친구와 다투고 화가 났다는 게 이유였다. 여자 친구는 가족처럼 여기던 고양이의 죽음으로 심각한 불안 증세를 겪고 있다. 그는 최근 한국고양이보호협회의 도움으로 이 남성을 동물학대 혐의로 고발하고 민사소송도 제기했다. 반려동물 1000만 마리 시대를 맞고 있지만 동물 보호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여전히 바닥 수준에 머물고 있다. 현행 동물보호법은 처벌 규정을 명확히 두지 않은 데다 동물을 ‘물권’으로 보고 있어 동물 학대 행위를 솜방망이 처벌하는 데 그치고 있다. 이에 대해 시민단체와 전문가들은 “동물 학대가 생명 경시로 이어질 수 있는데도 법적으로 물건으로만 취급하고 있다”면서 “동물 학대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고 동물보호법을 새로 정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배의철 생명권네트워크변호인단 변호사는 8일 “반려동물이 학대를 받아 죽었음에도 불구하고 동물보호법 적용이 배제돼 법의 존재가 무의미해지는 문제가 있다”면서 “법이 실효성을 갖기 위해서는 처벌 규정을 구체화하고 양형 기준을 조절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동물보호법상 동물 학대범은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00만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해진다. 그러나 동물 학대는 ‘법조 경합’(2개 이상의 형벌 규정에 저촉돼 1개만 적용)으로 형량이 더 높은 재물손괴죄가 주로 적용된다. 재물손괴죄는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700만원 이하의 벌금형이 내려진다. 문제는 이마저도 가벼운 처벌로 이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지난 6년간 동물보호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건수(231건)는 입건된 수(499건)의 절반도 안 된다. 실형을 선고받은 사례는 단 한 건도 없다. 일각에서는 관습적으로 동물보호법보다 재물손괴죄를 적용하는 것도 문제라고 지적한다. 이기순 동물자유연대 정책국장은 “국제적으로 동물보호법이 강화되고 있는데도 우리나라는 재물손괴죄로 처리하려고 한다”면서 “동물보호에 대한 인식이 강한 유럽 국가들은 동물 학대가 생명 경시로 인한 범죄로 이어질 수 있다고 보고 엄격하게 처벌한다”고 말했다. 독일과 오스트리아, 스위스는 1990년 이후 민법 등에 ‘동물은 물건이 아니다’라는 조항을 추가해 동물의 법적 지위를 보장하고 있다. 명희진 기자 mhj46@seoul.co.kr 신융아 기자 yashin@seoul.co.kr
  • 서울대 수시 일반고 합격자 9%P 줄어… 학력저하 현실로

    2014학년도 서울대 수시모집 선발 결과 일반고 출신의 일반전형 합격자 비율이 줄어든 것으로 집계됐다. 상대적으로 외국어고와 과학고 등 특목고 출신 합격자는 늘었다. 고교 유형이 다양화되고 있는 가운데 일반고의 학력 저하가 현실화된 것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서울대는 6일 지역균형선발전형과 일반전형을 통해 2532명, 정원 외 기회균형선발특별전형Ⅰ을 통해 152명을 선발하는 등 모두 2684명을 수시모집으로 선발했다고 밝혔다. 올해는 특히 모집인원이 1838명(최종 합격자 1833명)으로 가장 많았던 일반전형(검정고시 제외)에서 일반고 출신 518명이 합격해 전체의 28.3%를 차지했다. 지난해 662명(37.5%)이 합격한 데 비해 9.2% 포인트 줄었다. 반면 과학고와 영재고 출신의 합격자 비율은 지난해 21.8%에서 올해 25.1%로 3.3% 포인트 늘었다. 외국어고 합격자 비율도 지난해 9.5%에서 올해 13.3%로 3.8% 포인트 증가했다. 전체적으로 특목고 출신 합격자가 7.1% 포인트 늘어난 셈이다. 서울대 입학본부 관계자는 “일반고의 학력 저하 현상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많았는데 이것이 현실화된 것은 아닌지 깊이 우려하고 있다”면서 “어떤 대책을 세울 수 있을지 심사숙고하고 있다”고 말했다. 모든 수시전형을 종합하면 일반고 합격자는 1243명(46.3%), 자사고 405명(15.1%), 자공고 80명(3.0%), 외국어고 250명(9.3%), 과학고 233명(8.7%)이었다. 지역별(외국 소재고 등 제외)로는 서울이 981명(37.0%)으로 가장 많은 합격자를 배출했다. 시는 895명(33.8%), 광역시 596명(22.5%), 군은 177명(6.7%)이었다. 서울대 관계자는 “군 지역 합격자가 지난해(215명)에 비해 소폭 줄었다”면서 “특히 기회균형선발특별전형Ⅰ에서 지역 학교장이 추천한 학생들이 예년과 달리 서울대가 생각하는 인재와 일치하지 않은 케이스가 많았던 것 같다”고 설명했다. 한편 최근 3년간 합격자가 없었던 8개 군 가운데 강원 정선군(정선고)과 전북 완주군(전주예고) 2곳이 새롭게 합격자를 배출했다. 성별로는 남학생이 1527명(56.9%), 여학생이 1157명(43.1%)으로 지난해보다 여학생 합격자가 2.8% 포인트 늘었고, 남학생 합격자는 줄었다. 합격자 등록은 오는 9~11일이며, 미등록 인원이 생기면 12일부터 추가 합격자를 개별 통지한다. 명희진 기자 mhj46@seoul.co.kr
  • 설계도 무시하고 시공… 역시 ‘인재’

    지난 7월 30일 인부 2명이 사망하고 1명이 크게 다친 서울 강서구 방화대교 남단 접속도로의 교량 붕괴 사고는 안전관리 소홀에 따른 인재(人災)로 결론이 났다. 설계도를 무시한 시공이 대형 참사를 불렀다. 강서경찰서는 5일 설계도를 무시해 교량의 무게 중심이 한쪽으로 치우치면서 사고가 발생했다는 최종 수사결과를 발표하고 감리원 김모(46)씨 등 공사 관계자 7명을 업무상과실치사,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등의 혐의로 입건했다. 경찰 관계자는 “설계도와 다르게 교량 상부의 콘크리트 슬래브가 밖으로 55㎜ 정도 밀려서 설치됐다”면서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이 시뮬레이션을 해 보니 기존 설계도의 데이터값을 입력했을 때 교량이 전도될 위험은 없었던 것으로 나타났다”고 말했다. 조사 결과 해당 교량은 콘크리트 슬래브가 설계도보다 얇게 시공돼 무너질 위험이 컸던 것으로 드러났다. 경찰은 또 콘크리트 타설 공사에 반드시 참여해야 할 감리원들이 공사 현장을 비우고, 장비 면허가 없는 피해자들이 장비를 돌린 사실도 추가로 밝혀냈다. 피해자들은 건설기초 안전보건 교육도 이수하지 않았던 것으로 조사됐다. 경찰 관계자는 “설계도와 다르게 시공한 것은 예산 감축 등의 특별한 이유 때문이 아니라 단순 실수로 보인다”면서 “서울시 관계자는 이번 사고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다고 판단해 입건하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경찰은 사고 직후 감리사와 시공사 등을 두 차례 압수수색하고 관련자들을 소환 조사하는 한편 국과수 등과 함께 모두 네 차례에 걸쳐 정밀 감식을 실시했다. 명희진 기자 mhj46@seoul.co.kr
  • [단독] 음주측정 거부 체코 대사車… ‘예우’ 승강이하다 교통사고

    주한 체코 대사가 경찰의 음주 단속에 ‘대사관 관용차량이니 편의를 봐 달라’는 취지로 버티다가 교통사고를 냈다. 서울 마포경찰서는 2일 연말연시 특별 음주 단속 과정에서 교통사고를 낸 주한 체코 대사관 관계자를 도로교통법 위반 혐의로 조사하고 있다고 밝혔다. 경찰에 따르면 지난달 29일 오후 11시쯤 마포구 합정동의 도로 1차선에서 음주 단속 중이던 순찰팀이 주한 체코 대사가 타고 있던 벤츠 차량에 몇 차례 음주 측정을 요구했고 차량 운전자가 이를 거부했다. 외교관이 탑승한 만큼 면책특권을 적용해 달라고 요구한 것으로 보인다. 몇 분간의 승강이 끝에 경찰은 이 벤츠 차량을 갓길에 주차하도록 유도했다. 이 과정에서 체코 대사가 갑자기 뒷좌석 차량 문을 열었고, 당시 2차선으로 주행 중이던 차량이 갑자기 열린 벤츠 문에 부딪혀 파손되는 사고가 발생했다. 경찰 관계자는 “사고 직후 체코 대사로 보이는 남성이 차량 보닛 모퉁이로 다가가 깃봉의 커버를 벗겼다”면서 “깃봉 아래에 체코 국기가 있었다”고 말했다. 이어 “가해 차량은 현장에서 귀가 조치했고 외교부와 체코 대사관을 통해 조사를 진행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명희진 기자 mhj46@seoul.co.kr
  • “죽을병·더러운 병… 오해의 시선에 더 아픕니다”

    “죽을병·더러운 병… 오해의 시선에 더 아픕니다”

    “몸이 힘든 것보다 사람들의 시선, 그 시선이 아파요.” 2009년 온몸에 가려움증을 느껴 서울의료원을 찾은 김민규(40·가명)씨는 “그해부터 세상이 달라졌다”고 돌아봤다. 그의 병명은 ‘인간면역결핍바이러스’(HIV)에 감염돼 면역세포가 파괴되면서 발생하는 ‘후천성면역결핍증후군’(AIDS)이었다. 병은 김씨의 삶을 바꿨다. 그는 회사를 그만둬야 했고 종종 병원을 찾아야 했다. 살은 빠졌고 얼굴은 점점 검게 변했다. 김씨는 1일 “치료가 괴롭긴 하지만 나도 다른 사람들처럼 똑같이 운동하고 목욕탕도 간다”면서 “약보다 괴로운 건 죽을병, 더러운 전염병이라는 시선”이라고 토로했다. 김씨는 “죽는 줄만 알았던 병이 최근엔 치료 가능한 만성질환으로 분류되고 있다”면서 “그럼에도 (에이즈 감염인에 대한) 뿌리 깊은 두려움과 오해의 눈빛은 어쩔 수 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 에이즈는 땀이나 침으로 전염되지 않는다. 비감염인이 감염인과 어울려 생활해도 문제가 없다는 얘기다. 그러나 에이즈를 향한 시선은 여전히 차갑다. 정부는 세계 에이즈의 날(12월 1일)을 이틀 앞둔 지난달 29일 에이즈 예방 콘서트를 돌연 취소했다. ‘관련 단체의 시위가 시민 안전에 문제가 된다’는 것이 행사 취소의 이유였다. 에이즈 예방 콘서트에서는 한국HIV와 AIDS감염인연합회 KNP플러스가 감염인에 대한 편견과 차별을 해소하기 위한 ‘캠페인 진행, 팸플릿 나눔’ 행사를 진행할 예정이었다. 김씨를 비롯한 감염인과 감염인 인권단체 등은 실망감을 감추지 못했다. 김씨는 “차별 해소에 앞장서야 할 정부마저 단체의 활동을 ‘시민 안전에 위협’이 된다고 규정하는데…”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그는 담담한 표정으로 “에이즈도 다르지 않다. 그저 아플 뿐이다”라고 덧붙였다. 권미란 ‘HIV·AIDS인권연대 나누리’ 활동가는 “이번 행사 취소는 정부도 HIV 감염인에게 폭도라는 낙인을 씌우고 차별을 자행한 것”이라면서 “우리 사회가 아직까지 HIV 감염인의 목소리와 참여를 배제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명희진 기자 mhj46@seoul.co.kr
  • ‘불꽃 착화 방지’ 용접포 없었다

    사상자 11명을 낸 서울 구로디지털단지 내 공사 현장 화재가 전형적인 ‘인재’(人災)였던 것으로 조사됐다. 경찰은 27일 국립과학수사연구원, 구로소방서와 함께 한 정밀 감식을 통해 전날 화재 원인이 실화에 의한 것이라고 잠정 결론 내리고 현장 관리소장 A씨와 용접공 B씨를 업무상 과실치사상 혐의로 입건해 처벌할 방침이다. 서울 구로경찰서는 이날 감식을 한 뒤 “공사가 진행 중이라 스프링클러 등의 방재 시설이 없었고 화재 현장에는 불꽃 착화를 방지하는 ‘용접포’(불받이포)도 깔려 있지 않았다”고 밝혔다. 산업안전보건법상 용접포 설치는 의무 사항이다. 경찰은 화재 원인과 관련, “외부 소화전 용접 작업 중 생긴 불똥이 인화성 강한 지하 1층 천장 단열재에 튀면서 불길이 시작돼 2층까지 번진 것 같다”면서 “소화기가 있었더라도 두께 13㎝의 가연성 우레탄 단열재가 붙어 있어 불을 끌 수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현장소장 등을 통해 사고 경위를 전해 들은 박종국 전국건설노동조합 노동안전국장은 “공사 기한을 맞추려고 무리하게 공사를 벌이는 분위기였다”면서 “값싼 가연성 자재가 화를 키웠다”고 주장했다. 박 국장은 또 “사고 장소는 출입문 하나에 작은 미닫이 창문밖에 없고 비상 통로도 없었다”고 설명했다. 한편 이번 화재로 숨진 현장 근로자 장모(48)씨와 허모(60)씨는 유독성 가스를 내뿜는 우레탄 폼으로 이뤄진 건물 2층 ‘안전교육실’에서 변을 당했다. 경찰은 해당 안전교육실에서 탈출해 화를 면한 근로자 3명을 불러 당시 상황을 조사하고 있다. 경찰 관계자는 “시공사 현장소장 등 윗선의 책임에 대해서도 수사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명희진 기자 mhj46@seoul.co.kr
  • 유아용 모바일 게임앱 ‘묻지마 결제’

    유아용 모바일 게임앱 ‘묻지마 결제’

    경기 성남시에 사는 주부 김모(27)씨는 최근 휴대전화 요금 고지서를 받아 보고 ‘악’ 소리를 냈다. 평소 3만원대 요금을 냈다는 김씨에게 20만원짜리 요금 폭탄이 날아왔기 때문이다. 7살배기 아들이 즐겨 하는 스마트폰 게임의 아이템 소액결제가 ‘범인’이었다. 아들에게 평소 유료 아이템 결제를 못 하게 해 왔다는 김씨는 26일 “결제 창이 뜨면 아이도 꼭 물어봤던 터라 더 놀랐다”면서 “아니나 다를까 직접 살펴보니 클릭 두 번에 아무 인증 절차 없이 결제가 됐다”고 황당해했다. 어린이용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앱) 게임의 허술한 결제 방식으로 피해를 호소하는 부모가 끊이지 않고 있다. 모바일 게임은 개인정보 입력이 의무가 아닌 데다 안전장치를 사전에 해 두지 않으면 소액결제에 대한 인증 절차도 없다. 수년 전부터 제기된 문제지만 업계와 정부 모두 이를 외면하고 있다. 실제로 어린이용 앱 게임을 살펴본 결과 버튼만 2~3차례 누르면 인증 절차 없이 결제가 가능했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캐릭터를 이용한 A게임은 ‘상점 가기’와 ‘결제하기’ 버튼만 누르면 아이템을 구매할 수 있었다. 환불 문의를 하기 위해 회사 전화번호로 문의를 시도했지만 사용이 정지된 번호였다. 업계 관계자는 “앱 게임은 중소기업이 개발하다 보니 대응과 관리 등에 어려운 부분이 있다”고 인정했다. 이어 “아이폰과 다르게 안드로이드는 구매 버튼만 누르면 쉽게 결제되는 단점이 있다”면서 “보호자가 비밀번호를 입력하도록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밝혔다. 5살짜리 아들이 게임을 하다가 30만원에 가까운 아이템을 구매해 환불 절차를 알아봤다는 회사원 한모(40)씨는 복잡한 절차에 환불받기를 포기했다. 게임 업체는 한씨에게 기기 명의자 증명 서류와 가족관계증명서, 명의자 신분증 등 여러 서류를 요구했다. 한씨는 “한두번도 아니고 여러번 결제가 된다면 분명 방식에 문제가 있는 게 아니냐”면서 “일부러 환불 절차를 까다롭게 해 놓은 것은 아닌지 의심이 들 정도”라고 불만을 토해 냈다. 콘텐츠분쟁조정위원회에 따르면 2011년부터 올 8월까지 접수된 전체 분쟁 건수 8087건 가운데 미성년자 결제와 관련한 분쟁은 2994건(전체 37.0%)이었지만 이 가운데 환불 사례는 1765건(59.0%)에 그쳤다. 한국소비자원 관계자는 “유아 대상 게임에서 비싼 아이템을 팔고 있는 것은 문제가 있다”면서 “모바일 게임에 인증 절차 등을 도입하는 규제 방안을 고민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명희진 기자 mhj46@seoul.co.kr
  • 김한길 대표, ‘박근혜씨’ 합성사진 유포 누리꾼 고소

    김한길 민주당 대표가 자신이 박근혜 대통령을 ‘박근혜씨’로 부른 것처럼 꾸민 합성사진을 만들어 유포한 네티즌을 고소했다. 서울 영등포경찰서는 26일 김 대표가 자신의 이름과 사진을 도용해 가짜 카카오스토리 게시물을 만든 네티즌에 대한 고소장을 최근 접수했다고 밝혔다. 김 대표는 고소장에서 한 네티즌이 카카오스토리 계정에 ‘박근혜, 이제는 대통령이 아니라 박근혜씨입니다. 책임 반드시 묻겠습니다’라는 게시물을 올린 것처럼 꾸민 사진을 만들고 인터넷에 유포했다고 주장했다. 경찰 관계자는 “피고소인의 신원을 파악하는 대로 소환해 조사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앞서 이정희 통합진보당 대표가 9일 서울역 광장에서 “시키는 대로 하지 않으면 검찰총장까지 잘라내는 박근혜씨가 바로 독재자 아닌가”라고해 ‘호칭 논란’이 일었다. 명희진 기자 mhj46@seoul.co.kr
  • 구로디지털단지 공사장 화재 2명 사망… 경보장치도 없었다

    서울 구로디지털단지 내 공사 현장에서 화재가 발생해 인부 2명이 숨지고 9명이 다쳤다. 소방당국에 따르면 26일 오후 1시 37분쯤 구로동 구로디지털단지 지밸리비즈플라자 상가동 신축 공사 현장에서 불이 나 30여분 만인 2시 8분쯤 꺼졌다. 이 불로 건물 2층에서 작업 중이던 인부 허모(60)씨와 장모(48)씨가 숨지고 권모(46)씨 등 9명이 연기를 마셔 인근 병원으로 옮겨졌다. 또 공사 관계자 등 270여명이 긴급 대피했다. 소방 관계자는 “사망자 2명의 시신은 상가동 2층에서 발견됐다”면서 “연기에 질식한 뒤 불에 타 숨진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불이 난 건물은 코오롱글로벌이 시공사로, 지밸리비즈플라자의 발주를 받아 지난해 2월부터 공사를 진행해 내년 7월 완공할 예정이었다. 화재 현장 주변엔 짙은 연기가 솟아오르고 교통이 한때 마비돼 혼잡이 빚어졌다. 현장 관계자 안모(53)씨는 “지하 4층 벽에서 불꽃이 튀면서 연기가 자욱했다”면서 “옥상에 있던 인부 20명에게 전화로 대피하라고 했다”고 전했다. 소방 관계자는 “공사 중인 건물 지하 2층에서 인부들이 용접 작업을 벌이던 중 불이 난 것으로 추정된다”면서 “정확한 화재 원인을 조사하고 있다”고 말했다. 소방당국은 불이 난 건물 내부에 소화기만 비치됐을 뿐 소화전, 스프링클러, 경보 설비 등 소방 안전시설이 갖춰지지 않은 것으로 파악했다. 경찰과 고용노동부 등은 현장 관리 등에 위법 사실이 없는지 조사할 계획이다. 명희진 기자 mhj46@seoul.co.kr
  • [오늘의 눈] ‘김학의 봐주기’ 의혹? 검찰유감/명희진 사회부 기자

    [오늘의 눈] ‘김학의 봐주기’ 의혹? 검찰유감/명희진 사회부 기자

    “어쨌든 우리는 (성접대 의혹) 동영상 속의 인물이 명확하게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이라고 봤어요.” 온 나라를 들썩였던 ‘건설업자 성접대 의혹’ 사건을 수사했던 경찰청 특수수사과의 한 경찰은 김학의(57) 전 법무부 차관의 성접대 의혹에 대해 검찰이 무혐의 처분을 내리자 이처럼 불편한 속내를 내비쳤다. 반면 검찰은 ‘동영상 속의 인물이 김 전 차관이 맞느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범죄 입증과 관련이 없기 때문에 확인해 주기 어렵다”고 말했다. 긍정도 부정도 아닌 책임 회피용 답변이었다. 진실은 검찰도 경찰도 아닌 당사자들만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 사건을 한 달 가까이 취재했던 기자로서는 검찰 수사에 몇 가지 의문이 든다. 검찰은 경찰의 기소의견 송치 이후 4개월 동안 장기 수사를 진행했다. 하지만 결과를 들여다 보면 검찰은 이 사건이 ‘고위층 성접대 의혹 사건’이라는 특수성을 간과한 듯 보인다. 검찰은 우선 김 전 차관의 ‘특수강간 혐의’에 대한 무혐의 처분 근거로 “피해 여성들의 진술이 번복되는 등 일관성이 없고, 신빙성을 인정하기 어렵다”면서 “진술 외에 다른 증거가 없는 점” 등을 제시했다. 또 동영상에 대해서는 “피해 여성을 특정하기 어렵고, 그 당시 행위가 강간이 아니라 합의하에 이뤄진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위계에 의한 강간은 피해 여성이 사건 자체를 떠올리는 것을 싫어하고, 향후 돌아올 더 큰 후폭풍에 두려움을 갖는다는 점을 검찰은 애써 외면했다. 수사라인의 한 경찰은 24일 “피해 여성이 자발적으로 접대에 나섰다고 보는 검찰의 견해를 이해할 수 없다”고 반박했다. 그 자리가 평범한 접대 자리가 아니었다는 얘기다. 수사 과정에서 피해 여성에 대한 배려가 충분히 이뤄졌을지도 의문이다. 이처럼 성범죄 수사의 기본을 간과해 놓고 검찰이 피해 여성의 명확한 진술을 바라는 것은 어불성설로 볼 수밖에 없다. ‘신빙성을 인정하기 어렵다’고 밝힌 검찰은 심지어 서로의 진술이 다를 때 기본적으로 실시하는 대질 심문도 하지 않았다. 게다가 검찰은 성접대의 대가성을 입증하기 위한 김 전 차관의 계좌추적이나 압수수색을 시도조차 하지 않았다. 계좌에서 수상한 돈의 흐름을 잡아 낸다면 진실에 한발 짝 더 다가갈 수 있었는 데도 말이다. 검찰의 이번 수사가 전형적인 ‘봐주기’ 혹은 ‘제 식구 감싸기’로밖에 보이지 않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피해 여성의 재정신청에 대한 법원의 판단을 기다려야겠지만, 입에 담기조차 민망한 고위층의 별장 성접대 파티, 그곳에 김 전 차관이 있었다는 사실만은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검찰은 선배 검사가, 그것도 검찰 조직을 대표하는 차관 인사가 성접대 의혹에 연루됐다는 사실조차 눈을 감고 싶었을 수도 있겠다. 그러나 진실을 있는 그대로 밝혀내는 것이 그나마 실추된 검찰의 명예를 회복할 수 있는 유일한 길임을 명심해야 한다. 앞으로 검찰 조직에서 ‘제2의 김학의’가 나오지 않는다고 누가 장담할 수 있겠는가. mhj46@seoul.co.kr
  • [커버스토리] 정부 가정위탁제 10년…위탁모와 아이들이 써내려간 기적

    [커버스토리] 정부 가정위탁제 10년…위탁모와 아이들이 써내려간 기적

    지난해 8월 입양특례법이 통과되면서 민간 입양기관의 위탁가정 보호사업에 불똥이 튀었다. 까다로워진 입양 절차 때문에 위탁 기간이 늘어나면서 위탁모의 부담이 더욱 커진 탓이다. 가뜩이나 아이를 키울 위탁모가 부족한 상황에서 엎친 데 덮친 격이 된 셈이다. 22일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국내 대표 입양기관인 대한사회복지회와 동방사회복지회, 홀트아동복지회의 지난해 입양아동 대기 기간은 평균 20개월으로 조사됐다. 2006년보다 8개월이 늘었다. 월 50만원 수준의 기관 지원금과 정부 지원금이 있지만 젖먹이는 월평균 50만원, 20개월 이상 아이는 70만원 정도가 육아 경비로 들어간다. 부족한 금액은 위탁모들이 자비로 충당한다. 이처럼 열악한 위탁 환경 속에서도 위탁모와 아이들이 써내려간 기적은 아름답게 빛난다. 1998년 대한사회복지회에서 위탁모를 시작한 주부 김명화(63)씨는 수없이 돌봤던 아이들 가운데 14년 전에 만났던 경민(15·여·가명)이를 잊을 수 없다고 소개했다. 당시 6개월이었던 경민이는 바람에 문이 쾅 소리를 내며 닫혀도 놀라지 않을 정도로 소리에 반응하지 않았다. 김씨는 아이 청력에 이상이 있는 건 아닌지 대학병원을 찾았다. 의사의 진단은 충격적이었다. 의사는 당시 “청력에는 이상이 없다”고 했다. 하지만 “어른뿐 아니라 아이에게도 생각이 있다”면서 “아마 아이 스스로가 자신을 포기하려고 했던 것 같다”고 진단했다. 당시 김씨는 경민이를 안고 몇날 며칠을 울었다고 했다. 김씨는 경민이를 친딸 못지 않게 키우겠다고 다짐했다. 그렇게 6개월이 흘렀고 유난히 눈동자가 검고 깊었던 경민이는 첫 번째 생일을 며칠 남기지 않고 해외로 입양됐다. 그리고 지난해 김씨는 양부모와 함께 새로운 동생을 입양하기 위해 한국을 찾은 경민이를 보고 눈물을 쏟았다. 김씨는 “또래의 아이와 다를 바 없이 장난꾸러기가 된 녀석을 보면서 말할 수 없는 행복을 느꼈다”며 밝게 웃었다. 지난해 5월 위탁모 한신자(56)씨의 품에 안긴 현진이(당시 6개월·여·가명)는 말 대신 동물처럼 ‘으르렁’ 소리를 냈다. 어디가 입인지 코인지 알 수 없이 일그러진 얼굴이었고, 앞뇌도 손상됐다. 게다가 앞니로 아무거나 물어뜯는 고약스러운 버릇까지 있었다. 한씨는 아이의 모습을 보고 솔직히 위탁을 포기하고 싶었다고 털어놨다. 그러나 웃는지 우는지 모를 표정으로 자신을 빤히 쳐다보는 현진이의 눈빛을 마지막까지 외면할 수 없었다. 한씨는 병원을 제 집 드나들 듯하며 아이를 치료했고, 틈만 나면 아이와 함께 한강 잔디밭과 백화점, 시장 구경을 다녔다. 그러길 18개월, 기적이 찾아왔다. 옹알이도 제대로 못했던 현진이가 한씨를 ‘엄마’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나타날 기미가 안 보였던 현진이의 양부모도 등장했다. 한씨는 “미국 양부모 곁으로 현진이를 떠나보내려니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면서도 “양부모 밑에서 예쁘게 자랄 아이를 생각하면 앞으로도 계속 사랑으로 아이를 양육하는 ‘엄마’가 되고 싶다”고 밝혔다. 정부도 2003년부터 민간 입양기관과 별도로 가정위탁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그동안 민간에만 오롯이 맡겼던 가정위탁사업에 나선 지 올해로 10주년을 맞았다. 민간 입양기관과 달리 미혼모 자녀뿐 아니라 이혼과 학대, 경제적 어려움 등으로 보호가 필요한 18세 미만 아이들을 모두 챙기다 보니 위탁모들이 갖는 부담이 만만찮다. 그러나 위탁모들은 “힘들 때가 없었다면 거짓말이겠지만 위탁 기간 동안 아이로부터 되레 사랑을 배운다”고 입을 모은다. 2010년 당시 네살이었던 성민(가명)이와 처음 만난 오주성(58)씨는 “지금도 그때 성민이를 생각하면 뭉클하고 눈물이 날 것 같다”고 했다. 반응성 애착장애를 가졌던 성민이는 네살이었지만 말도 잘 못하고 대소변도 가리지 못하는 상태였다. 오씨는 ‘좋은 가정에서 지내면 많이 좋아질 것’이라는 의사의 말에 반드시 성민이를 낫게 하겠다고 다짐했다. 하지만 집에 온 날부터 집안은 전쟁터였다. 성민이는 괴성을 지르며 뛰어다녔고 옷가지나 집안 물건들을 꺼내 뒤집어놓기 일쑤였다. 식당에 가면 운동장처럼 뛰어다니는 성민이 때문에 오씨의 가족은 다른 손님들에게 사과하느라 식사조차 제대로 할 수 없었다. 가족도 서서히 지쳐가던 어느 날, 의사 표현조차 서툴렀던 성민이가 김치를 집으며 “짐~치, 먹어”라고 했을 때 오씨 부부는 환호성을 질렀다. 인지 능력과 행동 제어를 서서히 회복하면서 성민이는 장애어린이집을 중단하고 정상 유치원으로 옮겼다. 지난 3월에는 일반 초등학교에 입학했다. 오씨는 “성민이가 조금씩 치유되는 것을 보며 가족들이 성민이에게서 오히려 사랑을 받고 있다는 걸 느낀다”고 미소 지었다. 지난 8일 서울시 홈페이지의 ‘칭찬합시다’ 게시판에는 자신을 키워준 위탁가정 부모에게 감사드린다는 내용의 글이 실명으로 올랐다. 글쓴이는 올해 연세대 원주캠퍼스에 4년 장학생으로 입학한 배지현(19)양. 초등학교 2학년 때부터 지금의 위탁가정에서 자란 배양은 “10년 동안 키워준 어머니가 없었더라면 지금의 나도 없었을 것”이라며 감사의 뜻을 전했다. 2003년 친부모의 이혼으로 혼자가 된 배양은 서울가정위탁지원센터의 도움으로 지금의 가족과 함께 생활했다. 처음부터 모든 것이 순탄하고 행복한 것은 아니었다. 어린 배양은 ‘진짜 가족’이 아니라는 생각에 점점 위축되고 소심해졌다. 그는 “그럴 때마다 어머니가 꼭 안아주며 용기를 북돋아줘 힘을 낼 수 있었다”고 털어놨다. 어머니는 넉넉하지 않은 형편에도 배양의 재능과 취미를 찾아주기 위해 미술학원과 음악학원을 보냈다. 새로운 가정에 적응하면서 성적도 훨씬 나아졌다. 학교가 멀어 기숙사 생활을 하는 배양은 “평소 표현을 잘 하지 않던 아버지도 제가 기숙사에 있으니 보고 싶다는 말씀을 하신다”면서 “지금의 어머니와 가족이 있어 가족의 참뜻을 알게 됐다”고 눈시울을 붉혔다. 명희진 기자 mhj46@seoul.co.kr 신융아 기자 yashin@seoul.co.kr
  • [커버스토리] 낳은 情보다 더 큰 기른 情

    [커버스토리] 낳은 情보다 더 큰 기른 情

    “마마마(엄마).” 22일 오전 7시 30분 서울 노원구에 위치한 작은 아파트 거실이 북적대기 시작한다. 아빠는 출근을 하느라, 고등학생인 두 누나와 중학생 형은 등교 준비를 하느라 바쁘다. 그 가운데 기저귀를 차 볼록 튀어나온 엉덩이를 연신 흔들어 대는 ‘막내아들’ 김민호(12개월·가명)가 애타게 엄마를 찾는다. 엄마는 식사 준비하랴, 민호에게 먹일 이유식 만들랴 정신이 없다. 여느 가정과 다름없는 평범한 아침 일상 같지만 이 가족에게 민호는 조금 특별한 존재다. 민호는 지난 6월 엄마 박옥희(41)씨의 품에 처음 안겼다. 민호를 낳은 사람은 미혼모다. 박씨는 민호가 새로운 부모를 만날 때까지 위탁해 돌보는 ‘임시 엄마’다. 2011년부터 사회복지법인 대한사회복지회에서 위탁모 봉사를 해 온 박씨는 “떠나 보낼 땐 마음 아프지만 이 일만큼 따뜻하고 보람찬 일이 없는 것 같다”면서 “아이가 오면서 집안에 웃음꽃이 피었다”며 환하게 웃었다. 양부모가 나타나면 언제든지 민호를 떠나 보내야 하지만 박씨는 민호를 마음으로 품어 기른다. 혹여 아이가 다칠까 뾰족한 물건들을 모두 치우고 가구 높이도 낮췄다. 위탁 첫날 거실에 놓인 종이를 씹어 먹는 민호를 보곤 화들짝 놀라 종이책들을 모두 방으로 옮겼다. 최근엔 분유를 잘 먹지 않는 민호를 위해 요구르트 제조 기계도 샀다. ‘플레인 요구르트’는 민호가 유일하게 좋아하는 간식이다. 박씨는 “처음 민호가 왔을 때 잘 먹지도 않고 손가락에 상처가 날 때까지 입으로 빨아 ‘혹시 많이 못 안아 줬나’, ‘먹을 게 부족했나’ 하고 걱정을 많이 했다”면서 “다행히 웃기도 잘 웃어 그저 고맙다”고 털어놨다. 찬바람이 불면서 천식이 있는 민호가 혹시 감기에 걸리지는 않을까 걱정이라는 박씨의 목소리에는 진짜 엄마 못지않은 애정이 담겨 있었다. 박씨는 “여름엔 뭐에 물리기라도 하면 약한 피부가 찐빵처럼 부풀어 오르는 민호 때문에 온 가족이 모기 잡기에 나서기도 했다”면서 “아프지 말고 그저 건강하게 잘 자라 줬으면 한다”고 말했다. 뽀로로 색연필과 TV 광고 보기를 가장 좋아하는 민호는 오는 27일 박씨 가족과 함께 첫돌을 맞는다. 박씨는 “가족끼리 외식이라도 하러 나가면 사람들이 큰아이와 민호를 번갈아 보며 남편을 향해 엄지손가락을 추켜세운다”면서 “재롱둥이 민호를 보면 위탁모 하기를 정말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며 미소 지었다. 명희진 기자 mhj46@seoul.co.kr
  • “4시간만 일하는 선생님, 아이 잘 돌볼까”

    학부모들이 최근 ‘국공립학교에 시간선택제 교사를 배치하겠다’는 정부 발표에 술렁이고 있다. 일부 학부모들은 “하루 4시간 근무하는 교사가 과연 우리 아이를 제대로 돌볼 수 있을지 의문”이라면서 “교육마저 정치 논리로 이용하는 것 아니냐”며 다소 격앙된 반응을 보이고 있다. 교원단체도 “(시간선택제 교사 채용은) 교직의 전문성을 무시하는 행위”라며 반발하고 있다. 예비 학부모 허모(45·여)씨는 20일 “아이가 내년에 초등학교에 입학해 더 신경이 쓰인다”면서 “수업이 끝나고 상담이라도 하고 싶으면 어떻게 해야 할지 벌써 걱정”이라고 불만을 내비쳤다. 허씨는 “4시간 근무하고 퇴근하면 잠깐 학교에서 일하고 학원 등에서 겸직도 가능한 것 아니냐”며 “시간제 교사 비율을 보면서 학군을 선택하게 생겼다”고 지적했다. 교육부는 이달 말 시간선택제 교사 채용 근거를 마련한 ‘교육공무원 임용령 개정안’을 입법예고하고 내년 2학기부터 하루 4시간 근무하는 교사 600명을 채용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박근혜 정부의 일자리 창출 계획에 따른 것으로, 2015년 800명, 2016년 1000명, 2017년 1200명 등 앞으로 4년간 3600명을 뽑는다. 그러나 일부 학부모와 교원단체 등은 시간선택제 교사가 공교육의 근간을 뒤흔들 수 있다며 반대하고 있다. ‘교육부 항의 방문을 계획 중’이라는 학부모 김모(36·여)씨는 “아무리 일자리가 중요하다고 해도 시간선택제 교사 채용은 교육 현장에 무자격자를 양산할 수 있다”며 “최소한 교육은 해당 과목 전공자에 임용 자격증을 가진 사람들로 자격을 제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무성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 대변인은 “교직은 단순히 수업을 하는 게 아니라 학생과 소통하며 생활을 지도하는 총체적 행위”라면서 “시간선택제 교사는 이런 교사의 책무를 포기하고 약화시키는 것”이라고 밝혔다. 또 “정부의 일자리 창출확대 정책에는 이견이 없지만 교육 분야에 시간 선택제를 적용하는 것은 교직의 전문성을 붕괴시키고 수업을 단순한 노무 개념으로 바라보는 것”이라면서 “21일 성명서를 발표하고 (교육공무원 임용령 개정안) 입법예고 전에 이를 저지하겠다”고 덧붙였다. 이에 대해 서울지역 고등학교에서 기간제 강사로 일하는 이모(28·여) 교사는 “수업 준비를 제대로 하지 않는 정규직 교사들도 존재한다”면서 “시간제 교사라고 책임감이 없고 실력이 없을 것이라는 편견을 거둬줬으면 좋겠다”고 꼬집었다. 명희진 기자 mhj46@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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