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동지
    2025-11-15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16,827
  • “강택민 확실한등 후계자”/인민일보/강 총서기 주도 당업적 부각

    중국 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는 등소평의 장례절차가 끝난지 하룻만인 26일 강택민 총서기를 중심으로 한 당중앙의 업적을 부각시킴으로써 강총서기가 등소평의 확실한 후계자임을 분명히 했다. 인민일보는 이날 「업적회고,유지계승,위업의 공동완수」라는 제목의 등소평 추모사설을 통해 『중국인민은 강택민 동지를 핵심으로 한 당중앙의 영도하에 등소평 동지가 처음 개척한 「중국 특색의 사회주의 건설」의 길을 따라 전진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 사설은 『강택민 동지를 핵심으로 한 당중앙은 국민들의 커다란 신임과 여망을 저버리지 않았으며 「중국 특색의 사회주의 건설」이라는 위대한 사업의 충성스럽고 믿음직하며 진취적이고 강력한 계승자임이 실천을 통해 입증됐다』고 주장했다.
  • 공시지가/내린곳보다 오른곳 많다/개발지역 등 급등

    ◎14만필지 상승… 하락한 곳은 1만여필지 그쳐/상은 명동지점 평당 1억3천223만원 최고 일부 개발지역과 대도시 주변 녹지지역의 땅값 상승으로 전국 표준지의 공시지가도 내린 곳 보다는 오른 곳이 더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건설교통부가 26일 발표한 전국 표준지 공시지가(97년 1월1일 기준)에 따르면 44만9천875필지의 표준지 가운데 29만5천646필지(65.7%)의 공시지가는 지난해와 같았고 14만1천811필지(31.5%)는 지난해보다 상향 조정됐다. 공시지가가 내린 땅은 1만2천418필지로 전체 표준지의 2.8%에 불과했다. 전국에서 공시지가가 가장 비싼 땅은 서울 중구 명동2가의 상업은행 명동지점터(대지)로 지난해와 같은 평당 1억3천2백23만2천원이다.이 땅은 8년째 전국에서 가장 비쌌다.가장 싼 땅은 전남 여천군 삼산면 손죽리 산64(임야)로 역시 지난해와 같은 평당 132원으로 조사됐다. 주거용지(단독주택부지 기준) 가운데 가장 비싼 곳은 서울 서초동 1363의3과 1571의5번지로 평당 1천90만9천원이며 가장 싼 곳은 경남 하동군 화개면 대성리 123번지로 평당 661원이다. 시·도별로 보면 경부고속철도 역세권 개발과 탄광지구 개발,준농림지 및 개발제한구역에 대한 규제완화 등으로 경북(41.7%),강원(41.2%),경기(40.2%) 등 3개 도에서는 지난해에 비해 공시지가가 오른 표준지가 전체의 40% 이상을 차지했다.반면에 부산은 공시지가가 오른 표준지가 전체의 8%에 불과,땅값 상승세가 가장 미미한 지역으로 분석됐다. 공시지가는 각종 조세와 부담금의 부과기준이 된다.또 2천670만필지에 이르는 전국 개별토지의 공시지가는 표준지 공시지가를 기준으로 결정된다.개별필지에 대한 공시지가는 오는 6월30일까지 결정,고시될 예정이다.
  • 등소평 추도대회 엄수/1만여명 참석

    ◎강 주석,개혁·개방 고수 천명 중국을 개혁·개방과 사회주의 시장경제건설의 길로 인도한 최고지도자 등소평에 대한 추도대회가 사망 6일만인 25일 상오10시(한국시간 상오11시)부터 1시간동안 북경 인민대회당에서 거행됐다.〈관련기사 8면〉 강택민 중국공산당 총서기겸 국가주석은 이날 추도사를 통해 『등소평동지가 주창한 마르크스·레닌주의와 실용주의를 결합시킨 중국식 사회주의 이론을 계승·발전시키자』고 강조함으로써 앞으로도 개혁개방정책기조가 변치 않을 것임을 대내외에 천명했다. 한편 전날 화장된 등소평의 유해는 곧 홍콩앞바다와 대만인근 해역에 뿌려질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중국공산당기에 덮인 초록색 고회함이 연단 위해 안치되고 그 위에 초대형 컬러영정이 걸린 가운데 거행된 이날 추도대회에는 미망인 탁림을 비롯한 자녀 등 유족과 장의위원회 주임인 강택민 국가주석,이붕 총리,교석 전인대상무위원장 등 장의위원 459명을 비롯해 당·정·군·군중단체의 각 부문 및 북경의 각계 대표,생전의 친우,고향대표 등 1만여명이참석했다.
  • 인민대회당 오성홍기 “애도 물결”/등소평 추도식 스케치

    ◎강택민 추도사 내내 감정받쳐 울먹여/등 차남 등질방 모습 안보여 추측만발 ○…25일 북경 인민대회당에서 거행된 등소평 추도식은 등의 대형사진과 오성홍기로 감싸여진 유골함이 단상에 꽃으로 둘러싸인채 배치되고 그밑에 정치국원 등 핵심지도자들과 유족들이 도열한 가운데 진행.2시간전부터 입장한 1만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시작된 추도식장의 2층 난간에는 『강택민 동지를 중심으로 한 당의 영도하에 등소평 동지의 유지를 계승하자』는 내용의 대형 플래카드가 내걸렸다. ○…3분간의 애도묵념에 이어 50여분 동안 계속된 강택민 국가주석의 추도사는 등소평 지도노선의 방향 등과 관련,기존의 대내외정책을 재확인하는 내용들이 주류를 이뤘다.강주석은 추도사를 낭독하기 시작한지 1분도 안돼 『등소평동지의 서거에 무한한 슬픔과 고통을 느낀다』는 구절에서 눈에 물기가 돌기 시작,『등소평이 문화대혁명후 복권돼서도 아무런 사심없이 국가에 어떻게 헌신할 것인가만 생각했다』는 대목에 가서는 감동에 복받쳐 울먹이기도. ○…천안문 광장에는상오 7시30분부터 일반인의 출입이 엄격히 통제돼 삼엄한 분위기.상오 10시 추도대회에서의 3분간 묵념시간에 중국 방방곡곡을 달리는 기차 선박 군함 공장 등에서는 경적이 일제히 울려 추도분위기를 고조시켰다. ○…홍콩에서도 이 시간에 맞춰 지하철등에선 장송곡조의 경건한 음악이 울려퍼졌고 거의 모든 차량들이 1∼10분간 경적을 울리며 등 사망에 애도를 표시. ○…등의 생가가 있는 사천성 광안현 패방에는 10만여명의 조문객들이 몰려 등을 추도.조문객들은 생가앞에 설치된 대형 TV 스크린을 통해 눈물을 흘리면서 추도대회 진행을 시청. ○…24일은 중국 대학생들이 춘절방학을 끝내고 학교로 돌아온 날이어서 당국은 각 대학에 대해 학생들을 등소평 추도집회에 참석하거나 자체적으로 추도회를 열지 못하도록 지시,혹시 있을지도 모르는 소요사태에 대비. ○…여러 차례 수뢰혐의 연루설이 나돈 뒤 지난해 공직에서 물러난 등의 차남 등질방이 이날 추도식에 모습을 보이지 않아 여러 억측을 낳고있다.일부에서는 이를 등사후 예상되는 등가족들에대한 처벌의 신호탄과 관련지어 해석하기도.
  • 토공 택지공급물량 쏟아진다

    ◎분양계획­올 단독 35만평·근린생활시설 6만여평/분양방법­원칙적으로 추첨제… 매각 안되면 선착순/공급절차­공급일 2∼3주전에 공고… 신청금 등 갖춰야 ▷분양계획◁ 한국토지공사는 올해 35만2천여평의 단독주택지와 6만2천여평의 근린생활시설용지를 분양한다.단독주택지와 근린생활용지 분양계획은 최근 발표한 바 있다. 토공은 단독주택지와 근린생활용지 외에도 1천77필지,25만4천여평의 상업용지를 일반 분양한다.분양물량중에는 개발이 한창 진행중인 신도시 지역의 상업용지도 다수 들어있어 일반인들의 관심을 모으고 있다. 경기도 일산의 2천200여평을 오는 3월 분양하고 의정부 송산지구에서 4천300여평을 6월중 분양할 예정이다.고양 화정지구와 하남 신장 지구에서도 소량 분양한다. 1만평 이상의 대규모 물량은 아산공단·청주하복대·광주첨단·광주풍암·대구칠곡·김해장유·경산사동·제주연동지구 등에서 연중 쏟아져 나온다.이밖에도 업무·주차장·유치원·종교·사회체육시설·자동차관련시설 용지 등을 총 27만여평 분양할 계획이다. ▷택지용도◁ 토지공사에서 개발한 택지는 보통 단독주택지·공동주택지·상업용지 등으로 나누어진다.단독주택지는 일반주거용지와 전용주거용지로 구분 공급된다.전용주거용지는 고양일산 지구 정발산 근처에 900여필지가 공급돼 다양한 건축형태를 선보이고 있다.토지공사는 앞으로 수도권 및 광역시 인근에서 지속적으로 전용주거용지를 공급할 계획이다.필지당 면적도 크게 해 분양할 것으로 보인다.전용주거용지는 2층까지만 건축이 가능하고 건폐율은 50%,용적율은 100% 이내이고 1세대만 거주하도록 제한돼 있어 일반주거용지보다 주거환경이 쾌적하다. 일반주거용지는 보통 점포주택지로 불리며 연면적의 40%까지 근린생활시설을 설치할 수 있다.건축은 보통 3층까지 가능하고 건폐율도 60%.신도시는 건폐율이 50%로 제한돼 있다.3가구 이상 지을 수 없다.소규모 택지개발지구에서 일반주거용지가 다가구 위주의 건축이 이루어져 단독주택지가 슬럼화하는 경향이 있어 가구수를 제한한 것.따라서 다가구주택이나 원룸주택을 지어 많은 임대수익을 올릴것을 기대할 수는 없으나 생활환경은 기존의 택지개발지구보다 낫다. 공동주택지는 건설업체에 공급하고 업체가 아파트나 연립주택을 지어 일반 실수요자에게 분양한다. 상업용지는 근린생활시설용지·준주거용지·상업업무용지로 구분된다.근린생활 시설이란 슈퍼마켓·일용품점·휴게음식점·이용원·미용원·목욕탕·세탁소·의원·탁구장·체육도장·일반음식점·기원·당구장·노래연습장 등으로 건축법시행령에 종류와 허용면적이 규정돼 있다. 준주거용지는 단독주택·공동주택·종교시설·근린생활시설 등의 용도와 건축조례에서 허용하는 경우 의료·교육연구·운동·판매·관람집회시설 등으로 사용할 수 있다. 상업·업무용지는 용도가 가장 광범위하지만 최근 토지공사에서 공급하는 상업업무용지는 상세한 계획이나 도시설계가 수립돼 토지용도를 구체적으로 규제하고 있다.상세계획이나 도시설계는 각 필지마다 용도 및 건축에 관한 세부사항까지 규제하고 있어 상업업무용지를 매입할 때는 이를 구체적으로 검토할 필요가 있으며 건축법이나 건축조례에도 부합돼야 한다.이밖에도 유치원·주차장·종교용지 등은 용도를 지정해 분양하는 토지이다. ▷분양방법◁ 토공이 개발한 택지는 원칙적으로 추첨제로 분양한다.그러나 수익용토지는 경쟁입찰에 의해 공급하고 추첨제 분양이나 경쟁입찰에서 매각되지 않을 경우 수의계약으로 전환,선착순 분양한다.단독주택지는 우선순위에 따라 추첨으로 분양한다.1순위는 무주택 세대자로서 공급공고일 기준 과거 1년동안 해당 지역에 거주하고 부양가족있는 사람으로서 과거 3년동안 공사로부터 실수요자 택지를 경합분양 또는 입찰의 방식으로 공급받은 사실이 없어야 한다.2순위는 부양가족이 있는 무주택세대주이며 3순위는 일반 실수요자 또는 주택을 건축,공급하려는 주택건설사업자이다. 근린생활시설용지·준주거용지·상업업무용지 등 수익성토지는 일반 실수요자에게 경쟁입찰을 통해 공급하고 예정가격을 미리 공개한다.유치원·종교·주차장용지 등은 추첨제로 공급한다. ▷공급절차◁ 토공은 공급일 2∼3주전에 중앙일간지와 지역신문에 공급공고를 한다.토공고객지원센터에서는 분양관련정보를 제공하기 때문에 일반 실수요자는 원하는 지역의 토지를 분양받을수 있다.분양신청을 할 때는 주민등록등본 1통과 인감증명서 1통,입찰신청금(공급액의 5%)과 주민등록증·인감도장을 지참하고 분양신청장소에서 신청서류를 내면된다.입찰의 경우에는 입찰금액은 입찰신청금의 20배를 초과할 수 없고 예정금액 이상이어야한다.대리인이 신청할 경우 대리인임을 증명할 수 있는 위임용 인감증명서 및 위임장을 준비해야 한다. 계약은 공급금액의 10%인 계약금과 인감증명서·인감도장·신분증을 갖고 계약장소에서 내면된다.대리인이 할 수도 있다.대금납부는 일시불과 분할납부가 있다.일시불은 계약금 10%·1차중도금 30%·2차중도금 30%·잔금 30%를 5개월안에 낸다.분할 납부는 계약체결일부터 3개월 또는 6개월마다 균등 분할납부하며 이자는 연 10%.분할납부기간은 보통 2년이며 기타용지는 금액에 따라 1년부터 최장 5년까지이다.토지공사가 공급하는 토지의 장점은 대규모 택지개발사업을 통해 도로·상하수도·전기·통신·공원·녹지 등 기반시설과 편의시설이 완비돼 있다는 것이다.또 거래가 안전하고 분할납부가 가능하고 대금 완납전에 토지를 사용할 수 있는 것도 좋은 점이다.
  • 중 대홍콩정책 유지해야(해외사설)

    등소평 동지의 사망이 중국 전역의 인민들을 비통함으로 몰아넣고 있다.그러나 중국의 밝은 전도에 대한 믿음을 갖고 있는 인민들은 평온하다.강택민 국가주석을 중심으로 한 중국 제3세대 지도자들이 등이 생전에 입안한 중국의 특색을 지닌 사회주의 이론과 개혁개방정책,정치·외교·군사·문화·교육 등 각 방면에 대한 방침을 반드시 견지할 것으로 보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 공산당 11기 3중전회가 열린 이후의 18년동안의 세월은 중국이 거대한 변화의 물결을 체험한 시기였다.이 시기에 추진된 개혁·개방정책과 현대화건설사업은 매년 10%대의 고도 경제성장을 이룬 데다 외국자본의 유입이 급증하며 아·태경제 발전의 견인차 역할을 하고 있다.이같은 경제성장의 혜택을 인민들에게 골고루 분배됨으로써 중국의 모습을 완전히 뒤바꿔놓았다.때문에 등사망이후에도 등의 이같은 사업은 더욱 번성할 전망이다. 등이 건설한 중국의 특색을 지닌 사회주의의 주요 내용은 일국양제의 구상에 따라 중국을 통일하는 것이다.등은 비록 오는 7월1일 홍콩의 중국반환을 보지 못했지만 홍콩이 등의 구상에 따라 반환준비 작업을 착착 진행하고 있어 별어려움없이 중국의 영토로 회복될 수 있다.특히 강택민 등 중국 지도자들의 동건화 홍콩 행정장관에 대한 특별한 신임과 지지는 중국 3세대 지도자들이 홍콩에 대한 방침과 정책의 집행에 있어서 변화가 없음을 반영하고 있는 셈이다. 따라서 홍콩인들은 중국정부가 지난 13년동안 등이 건설한 홍콩에 대한 방침과 정책을 견지해오고 있다는 것을 분명하게 봐 왔다.등은 사망했지만 중국의 홍콩에 대한 방침과 정책에는 어떤 변화도 있을수 없다.홍콩이 일국양제를 솔선수범하는 현대화건설를 위해 자금을 조달하고 과학기술을 끌어들이며 국제시장 개척을 위해 수출을 증가시키는 특별한 작용을 해야 하는 탓이다. 이는 중국의 개혁개방과 현대화 건설부문에 모두 유리하다.등의 홍콩에 대한 방침과 정책을 견지하는 것은 중국을 발전시키는데 유리할 뿐 아니라 홍콩인들에게도 복이 될 수 있는 것이다.
  • 주체사상 지도적 이념 재천명/황장엽 망명후 사상동요 막기 안간힘

    북한은 최근 당비서 황장엽의 망명에도 불구하고 주체사상을 사회주의 혁명과 건설을 위한 「확고한 지도적 지침」으로 계속 삼아 나가겠다고 재차 천명했다. 북한은 19일 김일성이 창시했다는 「노동당의 혁명전통 계승발전」에 관한 장문의 중앙방송 논설을 통해 주체사상은 『우리시대 혁명과 건설의 올바른 지도사상이며 혁명학설』이라고 전제하고 『주체사상을 확고한 지도적 지침으로 삼아야 주체적 입장에 튼튼히 서서 인민대중을 투쟁과 승리의 한길로 곧 바로 이끌어 나가며 조국 건설위업을 힘있게 나갈수 있다』고 말했다.논설은 이어 주체사상이 사회주의 승리의 길을 개척하는데 뿌리가 되었다면서 『주체사상은 노동계급의 혁명위업 수행에서 나서는 가장 올바른 투쟁목표와 방향,가장 과학적인 투쟁원칙과 전략 및 전술을 밝혀주는 것으로서 자주적인 조국을 건설하기 위한 투쟁에서 확고한 지도적 지침이 된다』고 주장했다.이 방송은 또 「당의 혁명전통」은 항일 혁명투사들의 혁명적 수령관에 의해 형성되었다면서 『김일성과 함께 김정일동지를위대한 영도자로 높이 받들어 나가는 고귀한 전통을 계승 발전시켜 나가야 우리 조국을 영원히 빛내어 나갈수 있다』고 강조했다.〈내외〉
  • 중국식 사회주의경제 전망(등 이후 중국대륙:4)

    ◎모든 지표 낙관적 “장미빛 미래”/거시정책 자리잡아 인플레 한자리수 안정/기업개혁·지방발전 차이·인프라부족 “복병” 중국경제와 관련한 등소평의 업적은 개혁·개방정책으로 국가현대화를 달성하는데 중추적 역할을 했을뿐아니라 소련·동구 몰락후 90년대초에는 사회주의시장경제체제를 도입함으로써 중국이 공산국 붕괴 도미노를 피할수 있게 했었다는 점을 꼽을 수 있다. 어쨌든 등의 개혁·개방정책은 세계 최빈국중 하나이던 중국을 세계11위의 무역대국으로,세계 두번째의 외환보유국(1천억달러)이자 미국에 이은 세계 두번째의 투자대상국으로 변모시켰다.78년 개방이래 연평균 9.3%의 고속성장을 거듭하면서 국민소득(GNP)은 12배,외국자본의 직접투자는 38배나 증가하는 급성장을 이뤄냈다. 20년전 국민 절대다수를 먹이고 입히는 「온포의 실현」이 불가능했던 중국정부는 이제 물질적 풍요를 초보적으로 구가하는 소강상태에 도달했다고 자부하고 있다.2억5천만명이던 절대빈곤인구도 6천5백만명으로 줄었으며 물가수준을 고려한 실제구매력에선 GNP보다 4∼5배가량 더 높은 경제실력을 갖추고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80년대말부터 고질화됐던 인플레이션도 한자리수로 안정되는등 정부의 거시조절정책이 효과를 보고 있다. 이같은 발전추세속에서 중국공산당과 정부는 2000년의 국민소득(GNP)을 80년 수준의 4배로 삼았다.2010년에는 2000년기준의 두배의 GNP수준의 달성을 목표로 삼고 있고 96년부터 9차5개년 경제개발계획 및 2010년까지의 사회·경제발전계획을 실천해 가고 있다.현재 속도라면 목표달성은 가능할 것이란게 중국 관계자들의 낙관이다.2000년엔 1인당 GNP 1천2백달러로 1천달러대 돌파와 무역액 4천억달러 달성도 낙관되고 있다.2010년에는 3조2천억달러의 GNP규모로 미국,일본에 이어 세계 3대 경제대국으로의 부상이 중국정부의 단순한 바람만은 아니다. 연초 대외경제무역부의 오의부장은 97년도의 무역규모는 3천억달러선을 넘어설 것이라고 장담했다.사회과학원 투자연구센터도 경제전망보고서를 통해 금년도 중국의 GDP성장을 9.5%로 전망하는 등 중국경제의 계속적인 안정성장을 자신하고 있다. 중국공산당이 등의 지시에 따라 지난 92년 공식채택한 중국특색의 사회주의시장경제가 더욱 심화되고 세계경제로의 편입이 가속화되는 중이다.또 시장경제로의 구조변화를 더욱 가속화시키고 있다.경제성장방식을 효율화,집약화로 변화시키고 경제체제의 근본적인 변혁시도를 통한 산업구조고도화를 시도가 중국정부의 확고한 목표다.성장중의 중국경제에도 걸림돌은 있다.국유기업의 개혁,잘 사는 연해지역과 중서부지역의 경제차이,8억 농촌인구의 소득하락과 식량자급문제,에너지 및 사회간접자본의 부족 등이 중국경제의 발목을 잡는 복병이다. 그러나 강력한 중앙집권을 통한 균형있는 경제정책과 풍부한 노동력및 자원,축척된 기초과학기술들은 중국 경제의 미래를 낙관케 한다.2000년까지 복선철도 1천200㎞,전기화철도 4천300㎞등 6천100㎞의 철도를 신설하고 상해 포동지구개발,삼협댐 등 일련의 건설과 홍콩 귀속으로 인한 경제활성화 기대 및 개방화,세계경제로의 편입가속화 등은 중국이 21세기 아시아태평양시대의 주역이 될수 있는 가능성마저 보여주고 있다.
  • 북한 인민무력부장 최광 사망

    북한의 인민무력부장 최광이 21일 심장마비로 사망했다고 북한 중앙방송이 22일 보도했다. 중앙방송은 최광 동지가 급병 심장마비로 2월21일 8시30분 78살을 일기로 애석하게도 서거하였다는 것을 전체 당원들과 인민군장병들 인민들에게 알린다』고 보도했다.〈관련기사 2면〉 북한은 부고에서 최광의 장례를 국장으로 하고 김정일을 장의위원장으로 하는 85명의 국가장의위원회를 구성,25일 장례식을 진행한다고 밝혔다.
  • 대우↔GM/해외격돌 2라운드

    ◎FSO 이어 우크라 국영 차회사 인수 대결/세계경영 경쟁… 「20년 동지」서 라이벌로 20년동안 동반자관계였던 대우자동차와 세계 최대의 자동차회사인 미국 제너럴모터스(GM)가 92년 결별한 뒤 세계 곳곳에서 치열하게 경쟁하고 있다.해외생산 1백50만대에 세계 10대자동차회사를 향해 글로벌 경영체제를 구축하고 있는 대우자동차에게 한때 동지였던 GM은 이젠 최대의 적이다. GM과 대우는 다같이 세계경영을 강력히 추진하고 있다.세계 자동차판매 1위사로 최근 몇년 사이에 미국 내수판매가 크게 늘어난 GM은 여세를 몰아 세계 각국에 현지 생산과 판매체제 구축에 힘을 기울이고 있다.세계경영을 그룹 이념으로 걸고 5대양 6대주로 나가고 있는 대우와 맞부딪칠수 밖에 없다. 최근 대우와 GM이 부딪치고 있는 곳은 우크라이나.연산 10만대 능력의 우크라이나 국영자동차회사인 오토자즈의 인수협상에 GM이 강력한 경쟁자로 등장,대우의 인수가 불투명해지고 있다.우크라이나는 대우가 우즈베키스탄에 이어 구 소련권 진출의 교두보로 삼고 있는 지역.이 공장인수건이 성사되느냐가 러시아 진출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폴란드의 국영자동차공장인 FSO를 인수할 때도 대우와 GM은 한치의 양보도 없이 인수 경쟁에 나섰다.대우자동차가 승리했지만 GM은 폴란드 남부 글리비체시에 대규모 공장을 짓는 등 중유럽 최대의 시장인 폴란드에서 대우와 한판 승부를 준비하고 있다.인도 브라질 영국 등 세계 각국에서도 대우와 GM은 판매시장을 선점하기 위해 양보없는 경쟁을 벌이고 있다. 대우자동차는 신진자동차 시절인 72년부터 GM과 협력체제를 유지해 왔다.대우는 새한자동차때인 78년 경영에 참여,83년부터 대우자동차로 이름을 바꾸고 GM과 기술제휴로 르망을 비롯한 많은 차종을 합작 생산했었다.외형에서 GM에 크게 못미치는 것이 사실이다.그러나 92년 10월 GM과 결별한 뒤 2백50만대 생산체제를 목표로 놀라운 성장세를 보이고 있는 대우자동차는 세계시장에서 GM과 당당히 어깨를 겨루고 있다.
  • 등 추모 각계인사 조문행렬

    ◎중 대사관 24일까지 1일 두차례만 허용 중국의 최고실력자 등소평의 분향소가 마련된 서울 중구 명동 중국대사관에는 21일에도 각계 인사와 화교들의 조문이 이어졌다. 상오 9시부터 문을 연 분향소에는 김수한 국회의장,김대중 국민회의총재,김종필 자민련 총재,이만섭 신한국당고문,조순 서울시장,손주환 서울신문사장,박웅서 삼성경제연구소 국제담당사장 등 각계 인사들이 조문했다.이들은 등소평 영정 앞에서 추도한 뒤 장정연 대사 등 중국 대사관 관계자에게 위로의 말을 전했다. 가족 단위로 분향소를 찾은 화교들도 많았다. 부산 영사관의 분향소에도 조문객들의 행렬이 줄을 이었다. 대사관 본관 2층 강당에 마련된 분향소에는 가로 80㎝,세로 100㎝ 크기의 영정과 함께 벽에는 「등소평동지령수불후」라고 적힌 글귀가 걸려 있다. 하지만 사회주의 추도 예법에 따라 향과 향로,헌화대는 없었다. 김영삼 대통령 등 각계 인사들이 보내온 조화들이 분향소를 가득 메웠다. 중국대사관 서문길 1등 서기관은 『조문객은 24일까지 매일 상오 10시∼12시와 하오 2시∼4시 등 하루 2차례만 받으며 추모대회는 25일 치른다』고 밝혔다.
  • 등소평의 유언(외언내언)

    중국공산당이 대륙을 지배한 이후 중국인민이 가장 사랑했던 정치지도자로는 주은래가 첫손에 꼽힌다.세계최대국가의 총리로서 30년간 가난한 나라살림을 꾸려왔던 주은래에겐 자신의 유체를 남긴 무덤이 없다.그의 유언에 따라 사후에 시신을 화장하고 유골가루는 비행기에 실어 그가 평생 혁명의 정열을 바쳤던 중국의 하늘에 뿌렸기 때문이다. 1976년 1월8일 주은래가 78세를 일기로 파란만장의 생애를 마친뒤 서방에 전해진 그의 유언장은 추도식을 크게 벌이지 말 것과 미망인 등영초는 아내로서 보다 전우로서 추도식에 참석할 것을 당부하고 있다. 또 책과 문서들을 포함한 자신의 모든 재산을 당에 기증한다고 밝히고 있다. 주은래와 함께 중국혁명에 젊음을 바쳤고 평생을 검소한 생활로 일관해 존경을 받은 등영초는 「그늘진 곳」에 있던 중국공산당 지도자들을 남몰래 도운 것으로도 유명하다.지난 92년 88세를 일기로 타계한 등영초는 문서로 당중앙에 남긴 유언에서 화장을 당부하며 『유골도 보관하지 말고 뿌려주십시오.이것은 먼저 간 주은래 동지와의 약속입니다.고별식 추도식 같은 것도 삼가주십시오』라고 부연하고 있다. 등영초는 또 자신의 친인척에게 특혜를 주지말라고 신신당부한 것으로 알려졌다.정치국원에 전국인민정치협상회의 주석을 지낸 등영초는 아무런 유산도 남기지 않았다. 93세를 일기로 19일 타계한 「작은 거인」 등소평은 자신의 각막을 기증하고 시신은 의학연구를 위한 해부용으로 제공했다.상사도 그의 유언에 따라 간소하게 치러진다.6일간의 애도기간중 과거처럼 유해를 당기로 덮고 각계의 조문을 받는 공식적인 고별의식은 거행하지 않으며 유체는 화장해 유골가루를 바다에 뿌린다. 생전에는 물론이고 사후에도 조국과 인민에게 남김없이 주고 가는 이런 덕목이 중국지도자들에게 있었기 때문에 오늘의 중국이 있는 것이다.
  • 팽진·만리·박일파·송평/등 혁명동지들

    □팽진 ·북경시장 역임 터줏대감 ·정책부작용 쉼없이 충고 □만리 ·지방 자율허용 등 자유파 ·개혁확대 터닦아온 인물 □박일파 ·포스트모시대 청사진 설계 ·두 아들도 차세대 지도자 □송평 ·규율 엄격적용 당재건파 ·장정 후반기 좌장격 위치 중국건국의 주도자인 마지막 남은 혁명1세대들이 황혼속에서도 건재를 과시하고 있다.이들은 80∼90대의 고령에도 건강과 영향력을 유지한 채 하루하루 수명싸움속에 「노인세(노인방)」의 존재를 과시하고 있다. 현재 정치국 상무위원상당의 최고위 원로들은 6명.팽진(96),양상곤(91),만리(82),송평(81),박일파(90),송임궁(91)이다.광동서 휴양중인 송임궁을 제외하곤 모두 북경에 머물고 있다.이들은 비서와 차량을 제공받고 각종 당의 내부문서와 주요 결정에 대한 사전 통지를 받는 「이휴」상태다.이들은 공식 직무서 떠난 지 오래고 지난 92년 중앙고문위원회의 해산으로 공식적으로 정치과정에 간여치 않는다.그러나 공산당 및 인민해방군의 창립 일원으로서의 인적 고리는 발언권을 유지케 한다.이들은 원로간 비공식 모임을 통해 공동의 목소리를 모으기도 하지만 각각 당조직,자신들이 선발한 정부및 당지도부의 후계자들을 통로로 의견을 당지도부에 전달하며 압력을 가하기도 한다.각자의 색채가 뚜렷하기 때문이다.지도부가 결속할 경우 간여의 틀이 없지만 권력투쟁으로 분열이 심화될 때 이들의 입김은 높아진다. 보수와 핵심인 팽진은 등소평으로 최고 원로가 됐다.이붕의 지지세력으로 오랜기간동안 북경시 시장 등을 역임,북경의 터줏대감격인 그는 개혁개방의 부작용에 대한 경고를 쉬지 않고 있다. 이에 대해 안징성에서 지난 77년 농촌개혁을 실험적으로 도입,중국전역의 개혁개방 확대의 기초를 닦은 만이는 유연한 자세와 지방의 자율권확대 등 자유주의적 태도를 견지,관심을 끌고 있다.그는 조자양의 자유주의적 경향에 동조적이란 평이다.학생운동지도자로 시작,부총리 등 중국의 재정금융 및 공업방면의 기초를 세운 박일파는 「몇몇 중대결정과 사건에 관한 회고」란 베스트셀러를 저술,모택동시대의 반성과 개혁개방의 타당성을 강조했다.그의 아들인 박희성과 박희래 등은 차세대 지도자로 대를 잇고 있다.그는 젊은 태자당성원들을 자주 만난다.당조직부 부장,정치국 상무위원 등을 지낸 보수적 색채의 송평도 80나이에도 최근까지 가벼운 수영과 산보,독서를 즐기며 소일하고 있다.연안 장정 후반기세대로 청화대출신의 좌장격인 송평은 당의 약화를 걱정하며 당조직 재건 및 엄격한 규율집행 등을 강조하고 있다.이밖에도 장애평,초극 등 31명의 노간부들은 중국지도부로부터 원로대우를 받고 있다.
  • 등소평 사망­중 정부의 치적 평가

    ◎대륙 통일·중국적 사회주의 이론 확립/「모 절대무오류」 비판… 실사구시사상 체계화/일국양제 제시… 홍콩주권반환 결정적 기여 【북경 연합】 중국당국은 당·전국인민대표대회(전대회)·전국인민정치협상회의(정협) 등이 공동으로 발표한 등소평 사망발표에 관한 서한에서 등소평의 일대기를 다음과 같이 소개했다. 등소평 동지는 초기 중국공산당 당원으로 1차 국·공내전기간중 처음으로 북서 중국에서 혁명군의 정치공작임무를 맡았다. 등은 이어 국민당과의 무장투쟁을 결정한 1927년8월9일의 무한긴급회의에 참석한 후 홍군의 제7군과 제8군을 조직,무장봉기에 본격돌입했다. ○모택동과 대장정 참가 그는 이후 중앙혁명기지에서 당시의 좌파로부터 모택동노선을 지지했다는 이유로 직위해제됐으나 홍군 총정치부에 복직한 후 장정에 참가했다.등은 장정기간중 중국공산당사에 중대한 전환점을 맞은 존의회의에 참석했다. 그는 항일투쟁에서 주로 북중국에서 홍군의 여러 요직을 거친후 당 제7차 전국대표대회(7전대회)에서 중앙위원에 선출됐다.중·일전쟁기간중 그는 야전군의 정치위원 등을 맡으면서 전투를 내부지역에서 외부로 전환하는 모택동의 전략적 결정을 혁명적으로 수행했다. 그는 이어 총전선위원회의 서기겸 당 동부지부 제1서기로 양자강 도강작전 등에서 승리,남경·상해 등 남중국의 여러 지역을 해방시켜 국민당정권을 붕괴시키는데 결정적으로 기여했고 이어 남서중국으로 진출,티베트 등을 평화적인 방법으로 해방,중국대륙통일과 새 중국건설에 주도적 역할을 했다.등소평은 대륙통일이후 공산당 중앙위 남서지부 제1서기를 맡아 이 지역의 정치권력·사회개혁과 경제회복을 주도했다. ○56년 당총서기에 선출 곧 이어 북경의 중앙지도부에 진출한 그는 1954년 당 중앙위 제1서기를 거쳐 1년후인 1955년 중앙위 정치국원으로 승진했다. 그는 1956년 8전대회에서 당헌 개정보고를 하고 공산당의 통치능력을 강화하는 작업을 선도했다. 8중전회 1차회의에서 당 정치국 상임위원 겸 중앙위 총서기에 선출된 등소평은 모택동과 함께 중국 집단지도체제의 핵심멤버대열에 합류했다. 등소평은 10여년동안 당 총서기로 재직하면서 서기처를 관장,▲사회주의체제 확립과 사회주의건설 ▲중국실정에 맞는 사회주의자의 길을 증명하고 ▲경험을 종합,정책을 조정하고 난관을 극복하는데 탁월한 업적을 남겼다. 그는 이어 소련 공산당과의 협상을 위해 수차례 대표단을 이끌고 모스크바를 방문,중국 공산당의 자주원칙을 확고히 지키면서 당과 당관계에서 일체의 불공평에 반대했다. ○문혁중 실각·73년 복권 문화혁명기간중 그는 부당하게 비판을 받아 모든 공직에서 축출되는 박해를 받았다. 지난 73년 복권된 등은 2년후인 75년 당 중앙위 부주석,국무원 부총리,중앙군사위 부주석,인민해방군 총참모장을 겸직,당·정·군의 일상업무를 관장했다. 등소평은 당시 중국이 처한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정력적인 조정노력을 기울이면서 4인방과 투쟁을 벌였다. 등의 이같은 조정노력과 투쟁은 당간부와 일반인민의 열망을 반영하는 것으로 당의 올바른 지도력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이에 따라 등의 노력은 전국적으로 지지를 받아 단기간에 성공적인 결과를 낳았다.그는 다시 부당하게 모든 공직을 박탈당하는 수난을 당했으나 당내에 광범위한 지지기반을 굳혀 4인방을 타도하는 계기를 마련했다. 등소평은 4인방을 타도하고 문화혁명이 끝난 후 당원과 인민의 긴박한 요구에 따라 모든 공직을 다시 맡았다.당시 중국은 문화혁명의 후유증으로 심각한 위기에 빠졌고 이같은 대재앙을 극복하기 위해 엄청난 노력이 요구됐고 역사적인 경험과 교훈의 집대성이 필요했다.중국은 국제정세의 진전에 따라 사회주의 발전전략을 재검토하고 미래발전전략의 새로운 청사진이 필요한 시점이었다. 등소평은 당과 인민의 기대에 어긋나지 않았다.그는 무엇보다도 당 사상과 노선을 바른 궤도위에 올려놓음으로써 키를 제대로 잡았다. ○4인방 타도계기 마련 그는 실사구시가 모택동사상의 핵심이라고 강조하면서 『모택동이 내린 결정은 무엇이든지 옳고 모가 시달한 지침은 반드시 고수한다』는 이른바 2개의 절대무오류이론에 반대했다.등은 진리를 판단하는 기준에 대한 토론을 지지하고 마음을 해방시키고 실사구시의 사상과 정치노선을 재확인했다.잘못된 사상과 정치노선의 수정은 11기 3중전회의 지도적인 지침이 됐다. 이 회의는 새로운 중국건국이후 중대한 역사적 전환점을 이루면서 개혁·개방과 사회주의 현대화건설의 새시대 도래를 가져왔다. 등소평이 제2기 중앙집단지도체제의 핵심이 된 것은 바로 이 회의이후였다. 이 새로운 시대에 등소평동지는 다른 집단지도부 멤버와 함께 당과 국가의 장래와 운명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두가지 역사적인 기여를 했다. 그 하나는 중국건국이후 모든 역사적 경험을 종합,당을 이끌면서 문화혁명의 과오를 시정하고 모택동사상을 과학적으로 이해,체계화시킨 점이다. 둘째는 중국적 특색을 가진 사회주의건설이론을 제시,발전시킨 점이다.사회주의 초기단계에 「1개 중심,2개 기본축」이란 노선을 당의 방침으로 공식화하고 경제·정치·외교·교육·고학기술·문화·군사·통일문제·당건설 등 전반적인 분야에 대한 당의 원칙과 정책을 확정,개혁과 개방을 통해 사회주의 현대화발전의 성공을 위한 새로운 방안을 발전시켰다. 등소평은 통일을 위해 일국양제 이론을 제시,영국과의 협상을 통해 오는 7월 홍콩주권을 반환받는데 결정적인 기여를 했다. 대만과의 통일문제도 이 원칙에 따라 결국 해결돼 완전한 조국통일이 완성될 것이다. 중국적 특색을 가진 사회주의이론은 국제정세변화를 냉정하고 객관적으로 분석한데서 비롯됐고 이는 미국과 일본·옛소련과의 관계를 개선하고 인접국 및 제3세계와의 우호관계를 발전시켜 중국이 현대화에 주력할 수 있는 국제적인 여건을 조성했다. ○종신제 반대·공직 은퇴 등소평은 또 13전대회에서 은퇴를 선언하고 종신제폐지를 주창함으로써 중국의 집단지도체제를 제2세대에서 3세대로 세대교체의 길을 열었다. 등은 생애 마지막 공식활동으로 지난 92년 심천을 포함한 남부지방을 방문,남순강화를 통해 당의 새로운 기본노선을 총정리했다.
  • 등소평 어록/검든 희든 쥐 잘잡는 고양이 최고

    ◎생산 늘리지 않는 혁명이 큰 잘못/지식·인재 없이 현대화는 불가능/실천은 유일한 진리검증의 기준/부자될 수 있으면 먼저 부자돼라/사상 해방시켜 낡은틀 깨뜨려야 『현재 가장 시급한 문제는 식량증산이다.증산만 되면 좋은 것이다.개인경영이라도 좋다.흰 고양이든 검은 고양이든 쥐를 잡는 고양이가 좋은 고양이이다』―62년1월 중앙서기처 회의에서.이른바 「흑묘백묘론」 『남쪽 기슭이든 북쪽 기슭이든 꼭대기에 오르기만 하면 된다』―75년 이른바 「남파북파론」 『모택동 주석은 혁명을 성공시키려면 생산을 늘리고 전비를 잘 갖추어야 한다고 말했다.요즘 일부 동지들 중에는 혁명만을 생각하고 생산은 염두에 두지 않는 동지들이 있는데 그것은 크게 잘못된 생각이다』―75년3월 전국공업서기회의에서. 『공허한 말 만으로는 결코 현대화를 이룰수 없다.지식이 있어야 하고 인재가 있어야 한다.지식도 인재도 없이 과연 무엇을 할 수 있을 것인가』―77년5월 당 중앙위원들과의 대화중에서. 『10년간 계속된 문화혁명은 우리 모두에게 고통을 안겨주었고,그 자체가 하나의 커다란 재난이었다』―80년1월 당중앙위간부회의 담화 「목전의 형세와 임무」중에서. 『우리가 모주석에 대한 평가를 내릴때 매우 객관적으로 하지 않으면 안된다.우선은 그가 공이 있다고 해야 할 것이고 과오는 2차적인 문제이다.모주석이 말한 많은 사상을 우리는 마땅히 계승해야 한다.그리고 그의 과오 역시 명확하게 말해야 한다』―80년8월 이탈리아 기자 올리아나 팔라치와의 인터뷰에서. 『실천은 진리를 검증하는 유일한 기준이다.실천은 노선,방침,정책이 정확한가의 여부를 검증하는 유일한 기준인 것이다』―83년4월29일 인도공산당 중앙대표단 접견중 담화에서. 『사회주의는 가난을 해결하는 것이다.가난이 사회주의는 아니다.물론 공산주의는 더더욱 아니다』―84년6월30일 제2차 중·일 민간인 교류협회 일본측 위원회대표단을 접견하면서. 『농촌과 도시에서 일부 사람들이 먼저 부유해지는 것을 허락해야 한다.부지런히 일해서 부유해지는 것은 정당한 것이다』―83년1월12일 국가계획위원회와 국가경제위원회 그리고농업부문의 책임자들과의 담화 가운데.이 담화를 시작으로 「(부자가 될 수 있는 사람은)먼저 부자가 되어라」는 말이 유행하게 됐고 정부와 공산당조직에서도 「선부사상」을 개혁·개방의 캐치프레이즈로 내걸게 됐다. 『(경제)특구는 (외부와의)창구이다.기술의 창구이고 지식의 창구이며 (경영)관리의 창구이고 대외경제정책의 창구이다』―84년2월24일 북경에서 경제책임자 등에 대해 광동지방 등 남부지방순방결과를 설명하면서. 『우리 당의 제11기 3중전회의 기본정신은 사상을 해방시켜 독립적인 사고를 갖게 하는 것이며 현실에서 비롯된 정책을 제정하라는 것이다.한 나라를 건설하면서 자신들을 폐쇄되고 고립된 상태로 놓아선 안될 것이다.광범위한 국제교류를 중시하고 변화없는 낡은 틀을 깨뜨려야 한다.지난날 우리들의 머리 속에는 낡은 틀로 꽉 차있었다』―88년5월18일 모잠비크 대통령 시사로를 접견하면서.
  • 중 공산당 “강 주석 중심 단결”/등소평 사망

    ◎당·정·군 장의위 구성… 위원장 강택민/19일밤 파킨스씨병·간질환 합병증 92세로/각막 등 기증… 24일 화장한 후 25일에 추도식 중국 사회주의 개혁·개방과 현대화 추진의 총설계사로 추앙받던 등소평이 19일 밤 9시8분(한국시간 밤 10시8분)92세를 일기로 파란만장한 일생을 마쳤다. 공산당 중앙위원회와 전국인민대표대회 상무위원회,국무원,전국인민정치협상회의,중앙군사위원회 등 중국 최고 영도기관은 20일 새벽 2시50분(한국시간 새벽 3시50분)당과 군대,전국인민들에게 보내는 공동서한을 통해 등소평의 사망을 공식발표했다. 이 서한은 『말기 파킨슨씨병과 간질환 합병증을 앓아온 친애하는 등소평동지가 응급처치에도 불구하고 호흡순환기 기능의 정지로 1997년2월19일 북경에서 92세를 일기로 서거했음을 모든 당과 군대,전국의 모든 민족 인민에게 비통한 마음으로 알린다』고 밝혔다. 중국 공산당은 이와 함께 20일 강택민 국가주석의 중심적 역할을 강조하면서 등소평의 사망 이후 국가적 단결을 호소했다. 중국 공산당 중앙위원회는 이날관영 신화통신을 통해 발표한 성명에서 『우리는 당의 단합을 유지하고 보호해야 한다』면서 『강택민 국가주석을 중심에 두는 것과 함께 당중앙위 주변으로 모여들어 더욱 성실하게 단결하자』고 역설했다. 등소평 사망 직후 강택민 국가주석을 위원장으로 해 모두 459명의 전·현직 고위 당·정·군 간부들로 구성된 장의위원회가 구성됐다.이들은 등의 시체 가운데 눈과 각막은 의료사업에 쓰고 나머지는 24일 화장키로 하고 25일 인민대회당에서 1만명이 참석한 가운데 꽃과 사진만 놓고 추도식을 갖기로 결정했다. 한편 중국 인민해방군은 20일 최고지도자 등소평의 사망에 따라 최고 경계태세에 돌입했다고 군 소식통들이 밝혔다.
  • 충격의 북경… TV앞 시민들 눈물/중국 표정

    ○…등소평의 사망소식이 전해진 20일 이른 아침 북경시민들은 라디오,TV앞에 둘러앉아 눈물을 글썽이면서도 큰 충격에 잠긴 모습들.공식사망발표는 신화통신을 통해 이날 새벽 2시50분 전해졌으나 대부분의 시민들은 아침 기상 뒤 사망소식을 들었다.신화통신은 공식발표문에서 등의 사망사실을 전한뒤「전체 당과 군,모든 민족,국민이 슬픔을 힘으로 승화시키자」고 당부.신화통신은 이어서 「당중앙위를 중심으로 강택민동지를 정점으로 굳게 뭉치자」고 강조. ○…북경 천안문광장에서는 20일 아침 7시1분 중국 국기인 오성홍기를 일단 깃봉 끝까지 게양했다가 곧 반기로 내려 달아 조의를 표시.이날 아침 북경시내 택시 운전사들은 「효」라는 검은 글씨의 테두리를 흰 실로 두른 검은색 완장을 일제히 오른 팔에 차고 운전,눈길을 끌었으나 이른 아침 시간이어서인지 많은 시민들은 등의 사망사실을 모르는 눈치. ○사망소식 신속히 보도 ○…천안문광장 한켠에 마련된 전광판에는 홍콩의 주권반환일 카운트다운을 알리는 131이란 숫자가 선명히 나타나 일부시민들은 홍콩의 평화적 반환을 성사시킨 등의 업적에 세삼 감회어린 표정들. ○…중국당국은 등의 사망소식을 이례적으로 빠른 사망 6시간만에 신화통신을 통해 신속히 발표해 눈길.지난 76년 9월 모택동 사망때는 당내 권력투쟁으로 발표가 지연돼 사망 16시간만에 발표된 바있어 대조적.이곳 전문과들은 증권시장을 비롯,북경의 정치,경제가 이미 상당부분 국제화돼있어 등의 사망을 오래 숨기기가 불가능하게 돼있는 것도 조기발표를 한 한 요인이라고 지적. ○…중국 외교부는 20일부터 오는 25일까지의 장의기간중 북경주재 외국기자들의 추도대회 및 기타 조문활동에 대한 현지취재 편의를 제공하지 않을 방침.외교부는 외국과 대만 및 홍콩,마카오 기자들의 북경 방문취재 역시 접수하지 않으며 장의기간중 외교부의 정례 뉴스 브리핑도 일시 중지한 후 오는 27일 재개할 예정이라고 통보. ○신생TV방송국서 특종 ○…등사망을 처음으로 알린 세계적 특종은 홍콩의 신생 TV방송국인 CTN.등의 사망뉴스를 둘러싸고 불꽃튀는 치열한 경쟁이 펼쳐지던 19일밤 CTN측은 등의 사망시간인 이날 하오 9시8분에서 몇분 지난뒤 사망소식을 취재.CTN측은 이후 북경에 있는 여러 소식통과 북경특파원을 통해 최종 확인과정을 거친뒤 20일 상오 1시 18분 첫 방송.CTN측은 방송직후 이 소식을 팩스등을 통해 다른 언론사에도 알렸다고 밝혔다. ○…중국의 반체제인사들은 등이 경제개혁을 추진한 인물이기는 하나 민주인사들을 억압한 탄압정치를 펴온 인물임도 잊어서는 안될 것이라고 강조.인권감시단체인 아시아인권워치와 엠네스티 인터내셔널은 20일 등이 89년 천안문 사태의 유혈진압을 지시한 장본인이라는 사실에 주의를 환기. ○신문 동나자 값올려 팔아 ○…이날 사우스차이나 모닝포스트를 비롯한 홍콩의 주요 조간신문들은 등 사망소식을 밤새 제작해 일제히 1면 머리기사로 보도. 한편 등이 생전에 경제특구로 지정해 자본주의의 전시장처럼 키운 심천의 신문들은 그동안 익힌 자본주의 언론의 생리를 발휘해 등의 사망소식을 넣은 조간신문을 제작해 20일 아침 배포.이른 아침 일부 상인들은 신문이 동이 나자 값을 더 얹어파는 얌체상혼을 발휘하기도.
  • 하루 1시간 국회/이경형 정치부장(데스크 시각)

    나라전체가 총체적 난국에 직면한 가운데 제183회 임시국회가 30일간의 회기로 열리고 있다.이번 국회는 노동법파동에 이은 한보사태와 황장엽 북한노동당비서의 망명과 이한영씨의 피격 그리고 19일 밤 중국의 최고지도자 등소평의 사망 등으로 나라 안팎이 어수선한 상황이어서 그 어느때보다도 국민의 시선을 받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즘의 국회운영을 보면 지나치게 한가하다.하루 1시간 남짓한 국회본회의 운영으로 일과를 마치고 있다. ○총론보다 각론 중요 임시국회 첫날인 지난 17일 하오엔 회기결정 등 사실상 개회에 따른 절차를 처리하는 것으로 하루를 끝냈다.둘째 날인 18일에는 국무총리의 국정보고를 듣고 이어 지난해 정기국회에서 여야간의 정치의안 타협실패의 「유탄」을 맞아 처리가 되지 못했던 도로교통법개정안등 민생법안 11건을 일괄 처리했을 뿐이다.3일째인 19일부터는 교섭단체별 대표연설에 들어가 21일까지 3일간에 걸쳐 하루에 1개 교섭단체대표의 연설 1시간을 듣고 하루일정을 마친다.토요일은 휴회하고 일요일은 휴일로쉰다.다음주는 전부 본회의 대정부질문 일정으로 짜여져 있다.이같은 9일간에 걸친 대표연설 및 대정부질문의 이번 임시국회의사일정은 회기 1백일간인 작년 정기국회때와 기간이 동일하다. 불과 한달간의 임시국회가 이같이 대표연설·대정부질문일정을 회기가 3배가 넘는 정기국회 그때와 같도록 한 것은 아무래도 납득이 가지 않는다.이번 임시국회가 과연 밀도있게 효율적으로 운영되고 있는가하는 의구심을 낳게 하고 있다.각당 대표연설을 교섭단체별로 꼭 하루씩 잡아 해야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의아스럽다. 국무총리와 전국무위원을 출석시킨 가운데 기껏 잡아놓은 교섭단체별 대표연설도 자기 당의 입맛에 안 맞는다고 야유를 퍼붓는 수준에 머물고 있다.더욱이 문제는 이같은 본회의에서의 운영일정이 「총론」으로 일관하고 있고 정견발표식의 정치연설 범주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또 대표연설을 하루에 한 정당씩 함으로써 상대적으로 민생과 경제,치안 등 국민의 화급한 문제를 구체적으로 다룰수 있는 상임위원회의 활동기간을 잠식하고 있는 것이다. ○고비용 저효율의 표본 각 당의 총론적인 정치연설은 평소에도 귀가 아프도록 들어왔다.지금 국민에게 필요한 것은 총론이 아니라 「각론」이다.노동관계법의 재심의,안기부법 논의 등은 물론 「고개숙인 아버지」「명퇴·조퇴」「잇단 부도와 도산」「귀가 길 부녀납치」「현금자동지급기를 송두리째 훔쳐가는 절도」「악화되는 무역수지」「공동화되는 국내산업」「마이너스로 가는 국내설비투자」………등 이루 말할수 없는 「각론」에 따른 진단과 처방이 절실하다.이같은 「각론」들을 해당 상위별로 해당부처 정책입안자들을 불러 따지고 함께 해결책을 모색하며 국회차원에서 제도적 개선이나 법적 뒷받침 등을 강구해야 한다. 30일간의 회기에서 실질활동을 펼수 있는 상임위일정이 불과 10일로 짜여져 있는 것은 당면 현안에 비추어 아무래도 태부족이다.본회의 기간중에라도 관련 상위활동을 펴야 한다.앞으로 주요현안별로 소위원회를 만들어 활성화시키고 예결위를 상설화하는 등 365일 「일하는 국회」의 모습으로 정립해 나가야 한다. 총리이하 전국무위원을 한자리에 불러모아 놓고 정치연설을 하고는 「총리,장관」하면서 「내각은 총사퇴할 용의는 없는가」고 반복한다면 우리 국회는 영원히 「고비용 저효율」의 표본이라는 오명을 면할 수 없을 것이다.지구촌이 무한경쟁시대에 돌입한 상황에서 여의도 의사당이 우물안 개구리식으로 정치판 놀음으로 일관한다면 유권자들로부터 외면받는 것은 물론 자칫 정치권 전체가 공멸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국회는 변해야 한다.지금이라도 변하지 않으면 영원히 국민들의 「애물단지」로 전락할 것이다.시간이 없다.우리에게 문제를 풀도록 주어진 한계시간은 시한폭탄의 초침처럼 돌아가고 있다.
  • 한보수사 발표­검찰 발표문 요약

    ◎제철소 건설비 부풀려 비자금 조성/은행 대출·사채발행 통해 5조559억 조성/시설자금 등 정상 경비로 4조8,423억 사용 Ⅰ.수사경위 〈수사착수 배경〉97년 1월23일 한보그룹의 주력기업인 한보철강공업이 발행한 어음과 수표가 부도처리돼 22개 계열사와 850여개 협력업체 등의 연쇄부도가 예상됐다.한보철강공업이 자본금 9백억원이 60배가 넘는 5조7천억원을 당진제철소의 건설에 투자하고 있었다.인·허가과정에서의 특혜의혹이 제기됐다. ○자본금 60배 넘는 투자 또 91년 세칭 「수서사건」의 여파로 한보그룹의 재무구조가 취약해졌는데도 한보철강에 92년 9월부터 97년 1월까지 무려 3조원이 넘는 거액의 대출이 이루어졌다.이는 외부의 압력이나 청탁에 의한 것으로서,한보의 실질적 최고 경영책임자인 정태수가 거액의 비자금을 조성,정치권 인사·관련부처 공직자 및 은행 임직원 등에게 집중 로비를 했을 것이라는 등의 각종 의혹이 제기됐다. 〈수사경과〉대검 중앙수사부는 1월23일 한보철강공업의 부도사실이 언론에 보도돼 각종 의혹이 제기됨에따라 내사에 들어갔다.27일 한보그룹 관계자 등 총 36명을 출국금지,한보그룹본부와 한보철강공업 등 16개 계열사 및 정태수 일가 5명의 주거지 등에 대해 압수 수색을 실시하는 등 전면 수사에 착수했다. 30일 정태수를 소환,정이 한보철강공업 대표이사의 직인을 보관,직접 수표를 발행했고 그룹의 계열사인 한보상호신용금고로부터 불법으로 거액을 대출을 받았으며 자금 악화로 결제 가능성이 없는 어음을 남발한 사실이 드러나 31일 구속했다. 또 2월1일부터 6일까지 정태수로부터 자금대출 및 사업 인·허가과정에서 청탁과 함께 거액의 금품을 받은 것으로 드러난 신한국당 홍인길,정재철,황병태·국민회의 권노갑 의원,김우석 전 내무부장관 등 5명을 구속했다. 한보철강공업 등 한보그룹의 회계장부 및 전산자료를 분석,제일은행 등에 개설된 42개 예금계좌를 압수해 자금추적 조사를 병행했다.정태수의 대출금 유용 및 사용,은닉에 대해서도 수사를 벌였다.박재윤 전 통상산업부장관,한이헌 전 대통령경제수석비서관,이석채 대통령경제수석비서관,윤진식대통령경제비서관,재경원·통산부·해양부·은행감독원 실무담당자 등을 상대로 한보철강공업의 인·허가 및 자금지원,압력 행사 여부 등에 대해 조사했다.검찰은 수사인력 108명을 투입해 300여명의 피의자와 참고인을 조사했다. 〈처리 내용〉검찰은 2월19일 정태수 등 한보그룹 관계자 2명,제일은행장 신광식 등 은행관계자 2명,국회의원 홍인길을 비롯한 공직자 5명 등 9명을 구속기소했다.별건으로 구속수감중인 전 제일은행장 이철수를 불구속기소,한보철강공업 대표이사 홍태선 등 한보 관계자 4명은 기소유예했다. ○모두 3백여명을 조사 Ⅱ.정태수 등 한보그룹 관계자의 범죄사실 1.정태수(73·한보그룹 총회장)=실질적으로 한보그룹의 운영을 총괄한자로서,당진제철소는 대부분 외부차입금에 의존하여 건설하던 중 무리한 계열사 확장,철강경기 부진,과다한 금융비용 지출 등으로 96년 11월말 극도로자금사정이 악화돼 어음을 발행해도 만기에 결제할 수 없는데도 96년 12월3일부터 97년 1월18일까지 86회에 걸쳐 액면 합계금 1천1백15억8천4백31만원의융통어음이 마치 지급기일에 결제될 것처럼 피해자를 속여 할인을 하는 수법으로 1천77억5천5백36만원 상당을 교부받아 편취했다. 94년 1월부터 95년 9월까지 「한보상사 단기대여금」 계정으로 분식한 뒤 현금을 인출,개인명의의 부동산을 구입하는 방법으로 24회에 걸쳐 9백37억5천1백90만원을 횡령했다. 제일은행장 신광식,조흥은행장 우찬목,전 제일은행장 이철수,신한국당 정재철·홍인길·황병태,국민회의 권노갑 의원 등에게 뇌물을 건냈다. ○1천77억여원 편취 2.김종국(52·여광개발 대표이사)=93년 11월1일부터 97년 1월12일까지 한보그룹 재정본부장으로 근무한 자로,정태수와 공모하여 94년 1월부터 96년 12월까지 109회에 걸쳐 합계금 1백51억2천5백60만원 상당의 회사자금을 횡령했다. Ⅲ.은행관계자의 범죄사실 1.신광식(59·제일은행장)=96년 6월부터 제일은행장으로 재직하는 자로,96년 7월 정태수로부터 당진제철소 건설과정에서 자금지원 대가로 2억원을 교부받는 등 같은해 9월까지 4억원을 수수했다. 2.우찬목(60·조흥은행장)=95년 2월부터 조흥은행장으로 재직하는 자로서,96년 7월 정태수로부터 당진제철소 건설과정에서 자금지원 대가로 4억원을 받았다. 3.이철수(60·전 제일은행장)=93년 5월부터 96월 4월까지 제일은행장으로 재직하던 자로서,94년 8월 정태수로부터 당진제철소 건설과정에서의 자금지원 대가로 모두 3억원을 받았다.또 96년 2월 유원건설을 인수하는 과정에서 제일은행이 2천98억원을 지급보증의 형식으로 지원해주고 2억원을,같은해 4월 2억원을 챙겼다. Ⅳ.대출 등 관련 공직자의 범죄사실 1.홍인길(54·국회의원)=93년 2월부터 95년 12월까지 대통령 총무수석비서관으로 재직하다가 96년 5월부터 신한국당 의원으로 있는 자로,95년 1월 정태수로부터 산업은행 총재,제일은행장,외환은행장 등에게 부탁해 당진제철소에 대한 시설자금 대출이 원활하게 이루어지도록 해달라는 청탁을 받고 2억원을 받는 등 96년 12월까지 모두 10억원을 수수했다. 2.황병태(61·국회의원)=신한국당 의원으로 96년 8월부터 국회 재정경제위원회 위원장으로 재직하는 자로,96년 10월 정태수로부터 당진제철소 자금지원 부탁을 받고 산업은행 총재에게 청탁,5백억원의 지급보증을 받게 하고 2억원을 챙겼다. 3.정재철(68·국회의원)=92년 5월부터 민주자유당,신한국당 의원으로 있는 자로,95년 10월 정태수로부터 국민회의 의원들이 국정감사에서 한보그룹의 여신현황 및 담보현황에 대한 질의를 하지 말도록 무마해 줄 것을 국민회의 권노갑의원에게 청탁하여 달라는 부탁과 함께 권의원에게 전달하라는 1억원을 교부받았다.또 96년 10월 정태수로부터 권의원에게 같은 취지로 청탁하여 달라는 부탁과 함께 권의원에게 전달하라는 현금 1억원을 교부받아 전달했다. ○대출대가 4억원 수수 4.권노갑(67·국회의원)=평민당·민주당·국민회의의 제13·14·15대 국회의원을 지내고 있는 자로,93년 3월 정태수로부터 국정감사 등에서 한보그룹과 관련 질의를 잘 무마해 달라는 부탁과 함께 5천만원을 교부받는 등 모두 2억5천만원의 뇌물을 수수했다. 5.김우석(60·전 내무부장관)=93년 12월부터 94년 12월까지 건설부장관으로 재직하다가 95년 12월부터 내무부장관으로 재직하던 자로,94년 9월 정태수로부터 당진제철소와 34번 국도를 연결하는 해안도로에 대한 예산을 조속히 배정함과 아울러 건설부가 발주하는 각종 공사를 한보건설이 수주할 수 있도록 지원하여 달라는 청탁과 함께 1억원을 받는 등 2억원의 뇌물을 수수했다. Ⅴ.의혹사항에 대한 수사결과 〈부도 경위〉=한보철강공업이 당진제철소 건설비의 부담 가중 등으로 96년 6월 이후 자금사정이 악화되자 제2금융권에서 일제히 여신회수에 나섰다.같은해 말부터 채권금융기관들은 정태수 등 경영주가 스스로 자금을 조달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판단,한보철강공업을 제3자에게 인수시켜 공장을 완성케하는 것이 국민경제 및 채권보전에 유리하다는 결론에 따라 정태수에게 경영권 포기를 종용하였으나 거절,1월23일 부도처리했다. 부도처리는 제일은행장 신광식의 주도로 31개 금융기관장이 참석한 채권금융기관 대표자회의에서 결정됐다. 일부 은행들이 부도발생 사실을 1∼4일씩 지연신고한 바 있는데 96년 12월 이래 한보철강공업의 자금사정 악화로 은행마감시간 이후에 결제가 된 전례가 있었던 점으로 인정된 만큼 위법행위는 발견되지 않았다. 〈거액 대출배경〉=97년 1월31일현재 제1금융권의 한보철강공업에 대한 여신총액은 3조2천6백48억원이며 이 가운데 산업·제일·외환·조흥·서울 등 5개 은행의 한보철강공업에 대한 여신총액은 2조9천9백9백1억원이며 거의 대부분 94년부터 96년까지 사이에 집중적으로 지원된 것으로 나타났다. 95년 11월 당시 은행측에 제시한 총소요자금 4조1천억원 중 9천5백억원 가량을 한보 소유 부동산 매각 등으로 지체 조달하겠다는 자구계획이 이행되지 않은 상황에서 한보철강공업에 자금지원이 이루어진 것은 정태수의 부탁을 받은 홍인길 등의 대출청탁도 일부 원인이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당진제철소 부지조성 및 코렉스 기술도입 과정〉 89년 6월 건설교통부가 한보철강공업이 부산공장 이전부지로 신청한 아산만내 매립대상지가 포함된 공유수면매립 기본계획을 고시했다. 한보철강공업은 89년 1천2백76만8천평에 대한 매립면허를 받아 매립공사를 시행했다.같은해 5월3일 준공인가를 받은 뒤 한국전력에서 인근에 발전소 건설부지로 확보해 두었다가 발전소 건설계획이 취소된 14만9천평에 대해 같은해 9월 추가로 매립신청,매립면허를 받았다.매립 부지위에 제1단계로 연산 3백만톤 규모의 전기로 공장을 건설하고 제2단계 설비확장때 코렉스 공법으로 알려진 용융환원제철기술을 도입하기로 한 뒤 94년 8월 이후 연산 75만톤규모의 코렉스로 2기를 건설하고 있었다. ○김 전 내무 2억원 수뢰 통산부는 제조원가가 저렴하고 공해물질 배출량이 적어 기존의 고로방식보다 유리한 새로운 제철기술인 코렉스 공법을 인증해 주었다. 〈자금유용 및 사용처〉=한보철강공업은 금융기관 대출금 4조8백81억원,회사채 및 사채발행 등 5조5백59억원을 조성하여 이 중 시설자금으로 3조5천9백12억원을 투입,운영자금으로 1조2천5백11억원을 사용했다.나머지 2천1백36억원은 유용한 것으로 드러났다. 유용자금의 사용처는 ▲계열사 및 위장계열사 신설과 인수 4백37억원 ▲해외진출경비 55억원 ▲계열사 임직원 영업활동지원비 2백74억원 ▲정태수 일가 전환사채 인수 8백20억원 ▲개인 세금납부 1백51억원 ▲정태수 전처 이혼위자료 400억원 ▲부동산구입 78억원 등이라고 정태수는 진술하고 있다.현재 사용처가 확인되지 않은 자금은 약 250억원에 이른다.
  • 은행 현금지급기 털려/보안선로 끊고 침입…3천여만원 도난/충북은

    18일 상오3시40분쯤 충북 청주시 상당구 우암동 237 충북은행 우암동지점에 도둑이 들어 은행 안에 있던 현금자동지급기 3대에서 3천5백여만원을 훔쳐 달아났다. 이 은행경비를 맡고 있는 한국보안공사에 따르면 이날 새벽 3시쯤 청주시내 1천500여 가입자와 연결된 보안시스템이 한꺼번에 마비돼 점검결과 흥덕구 가경동 가경터미널 앞 맨홀에 있는 선로가 모두 끊긴 것을 확인했다는 것이다. 보안공사측은 경찰에 신고하고 3시40쯤 충북은행 우암동지점에 도둑이 침입한 것을 확인했다. 발견당시 은행 뒤편 알루미늄창틀이 뜯긴 채 열려 있었고,현금자동지급기로 통하는 철문도 부서졌으며 현급자동지급기내 현금박스 6개가 모두 없어진 상태였다.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