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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요르단國王 새달4일 방한

    요르단의 압둘라 2세 빈 알 후세인 국왕 내외가 김대중(金大中)대통령 초청으로 다음달 4일부터 6일까지 우리나라를 국빈방문한다고 박준영(朴晙瑩) 청와대대변인이 8일 발표했다. 김 대통령과 압둘라 2세 국왕은 4일 정상회담을 갖고 두 나라 사이의 실질협력 증진 방안과 한반도 및 중동지역 정세 등 공동관심사에 관해 협의할 예정이다. 두 나라는 정상회담을 계기로 상대국 진출 기업들의 자유로운 기업활동과이익보호를 위한 이중과세 방지협정 체결을 방침이다. 특히 지난 83년 후세인 전 국왕의 방한에 이어 요르단 국왕으로서 2번째인압둘라 2세 국왕의 이번 방한으로 우리의 대 중동외교가 한 차원 높게 발전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박 대변인은 설명했다. 압둘라 2세 국왕의 방한 일정은 12월4일 경제 4단체장 주최 오찬,공식환영식,정상회담,국무총리 면담,김 대통령 주최 국빈만찬에 이어 5일에는 전방시찰,대우자동차 공장 방문,요르단 주최 관광설명회 참석 등이다. 양승현기자 yangbak@
  • [제19회 농어촌청소년 공로상] 이성구·황인호씨

    [농업] 이성구씨 전북 농업기술원 인력육성담당 계장으로 근무하면서 농업기초인력 및 농업인후계자를 지역 농업의 핵심요원으로 양성,농업의 인적기반을 다졌다.4H회조직을 육성하고 1만5,000명을 각종 교육에 참여시켜 이중 2,700여명이 농촌에 남아 영농에 종사하고 있다.농촌청소년 390명을 선발,학생 4H회원 장학금을 지원함으로써 영농의 저변을 넓히는 한편 세계화·개방화 추세에 대응하기 위해 영농 4H회원,농민후계자 전업농가 농촌지도자 등을 대상으로 선진농업 해외연수를 지원했다. 또 새천년 우리 농업을 이끌어갈 작목별 전업농가를 육성했다.개방화에 대비,기업형 전업농가 340가구를 육성,연간 1억원 이상의 소득을 향상시켰다. [수산] 황인호씨 여수지방해양수산청 고흥수산기술관리소 지도사로 일하면서 어촌 후계인력과 고소득품종 보급으로 어가의 소득향상에 기여했다.95년부터 5년간 어업인후계자 532명을 육성, 관리하고 어업인 후계자 육성사업의 제도상 미비점을세번 개선했다. 김 신품종을 보급,양식어가가 40억원의 소득을 올릴 수 있도록 했으며 김의이모작 양식법을 소개, 10억원의 추가소득을 올릴수 있도록 했다. 고소득 품종인 남방산 전복의 고흥지역에서의 적응시험을 성공시켜 소득확대의 기반을마련했다. 어업인에게 한발 다가서는 이동지도소를 운영하는 등 새어촌 육성을 위한서비스 행정에 앞장섰다.어업인들로부터 감사패를 5회나 받았다.
  • 美,北 미사일공격 대응 NMD체제 2005년까지 구축

    [워싱턴 교도 연합] 미국은 주로 북한의 미사일 공격에 대응하기 위한 전역미사일방어(NMD) 체제를 오는 2005년부터 2단계에 걸쳐 구축할 것이라고 월터 슬로우컴 미 국방부 정책차관이 5일 밝혔다. 슬로우컴 차관은 이날 국제전략연구소(CSIS)가 후원한 한 연설에서 이같은내용의 NMD 계획을 발표했다. 그는 미 국방부는 향후 15년동안 북한의 대륙간 탄도미사일(ICBM) 위협에직면할 가능성이 가장 높은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면서 이에 대응하기 위해 1단계로 2005년까지 알래스카에 NMD 체제를 구축할 것이라고 말했다.이어 1단계 NMD 체제는 “기초적 침투장비에 의해 운반되는 북한의 ICBM 탄두 수십개가 발사되는 것에 대응,미 50개주 전역을 방어할 능력을 갖추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1단계 체제는 주로 100개의 지상운영 요격미사일과 이들을 유도하는 레이더로 구성되며 현 시스템은 조기경보 레이더 5대로 구성돼 있다고 그는 설명했다. 슬로우컴 차관은 빌 클린턴 대통령 역시 2010년이나 2011년까지 “북한이나 중동지역 국가들이 정교한 침투장비에 의해 운반되는 수십개의 ICBM 탄두를 발사하는 ‘더욱 진전된 위협’에 대처하기 위한 제한적 NMD 체제를 구축하는 더 장기적인 목표를 구상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그는 2단계 NMD 체제에는 요격미사일과 기지,유도 레이더 등의 추가 배치및 SBIRS저궤도 인공위성 배열 등이 포함된다고 말했다.
  • [외언내언] 遺家協 천막농성 1년

    그대 떠나간 후 나의 가을은 조금만 건드려도 우수수 몸을 떨었다. 못 다한 말 못 다한 노래 까아만 씨앗으로 가슴에 담고 우리의 사랑이 지고 있었으므로. 문정희(文貞姬)의 ‘가을노트’는 시인의 ‘속내’와는 상관없이 민족민주전선에서 떠나간 이들을 그리기에 충분하다. 그들의 못 다한 말, 못 다한 노래가 ‘까아만 씨앗’으로 가슴에 남아 저문 계절에 ‘우수수 몸을 떤’사람들이 있다. 계절보다도 세상의 무정함에, 역사의 야속함에 몸을 떠는 사람들이 있다. 오늘(4일)로써 만 1년째,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건너편 한강수 찬 바람차디찬 노천에서 기약없는 ‘천막농성’에 들어간 지 1년. 금쪽같은 자식,기둥같은 부모를 국가폭력에 여의고 한맺힌 삶을 살아온 전국민족민주유가족협의회(유가협)회원들. 민주화운동을 하다 숨진 혈육의 명예를 회복하고 의문사의 진상을 규명할특별법을 국회에서 제정해 줄 것을 요구하며 농성에 들어간 지 1년이 되었건만 국회는 정쟁으로 법안을 ‘선반’에 올려놓은채 까맣게 허송하고 있다. 이 법률제정이 어찌유가협의 농성을 필요로 하는 사안인가. 군사독재 퇴진과 함께 가장 먼저 제정되어 민주화과정에서 희생된 영령들을 진혼하고 기념관을 짓고 유가족을 돌보아야 하는 것이 생자(生者)들의 도리이고 책무가 아닌가. 그런데 지금까지 방치해온 것도 부끄러운데 여야 정쟁으로 이번 정기국회도 넘겨 자동폐기될까 두렵다. 군사정권출신들은 그렇다치자. 아니다. 그들에게 면죄부를 줄 수는 없다. 그들이야말로 참회하고 사죄하는 의미에서라도 이 일에 앞장서야 한다. 다음은 민주화운동 출신의원들의 무책임이다. 동지들의 희생을 담보로 금배지를 달았으면 그들의 몫까지 일을 해야 하지않을까. 선거때만 화려하게 민주화운동경력을 써먹고 선량이 되고서는 잊어버린다면 민주영령들이 용서치 않을 것이다. 여야에 포진한 민주화운동출신 선량들이여! 유가협의 한숨소리, 먼저간 동지들의 질책, 낱낱이 지켜보는 역사의 기록이 두렵지 않는가. 국회의 반민주 세력이 이 법률안 제정에 끝까지 발목을 잡는다면 여야 민주세력이 연대해서라도 회기 안에 통과시켜야 한다. 그리하여 차디찬 강바람에 노천에서 고생하는 유가협회원들이 가정으로 돌아가고 구천에 떠도는 민주 영령들이 귀천하고 역사가 바르게 쓰이도록 해야 한다. 김삼웅 주필
  • 道의회 교육청감사 ‘논란’

    지난 91년 지방의회 부활 이후 줄곧 도교육위원회가 맡아온 도교육청에 대한 행정사무감사를 충북도의회(의장 金俊錫)가 이례적으로 실시하기로 해 논란이 일고 있다. 충북도의회 교육사회위원회(위원장 尹炳泰)는 2일 의원 간담회를 갖고 오는 20일부터 10일동안 실시되는 행정사무감사 때 도교육청을 감사 대상에 포함시키기로 결정했다. 도의회가 효율적인 감사를 위해 지난달 28일 마련한 시민·사회단체 대표들과의 간담회에서 결식아동지원금 내역과 교육과학원 운영실태 등에 대한 감사 요구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 윤위원장은 “시민·사회단체들이 교육행정과 관련된 문제점을제기하며 도의회에 감사를 요구해 도민들의 궁금증을 해소하고 교육 행정의투명성 확보를 위해 행정사무감사가 불가피하다는 결론을 내렸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조일환(趙日煥) 도교육위 의장은 “도교육청에 대한 행정사무감사는 도교육위에 일임해 왔던만큼 문제가 있다면 우선 도교육위에 감사를 요청하거나 협의하는 것이 순리”라며 “만일 국회의원들이 도의회대신 사무감사를 하려 한다면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지 되묻고 싶다”고 반발했다. 지방자치법 시행령 17조는 교육·과학 및 체육에 관한 기관의 감사는 교육위원회가 실시,지방의회에 보고하는 것으로 대신하되 본회의 의결이 있을 경우 지방의회가 특정 사안에 대해 감사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청주 김동진기자 kdj@
  • [대한광장] 노근리와 보상

    진주만에 대한 일본의 기습공격에 따른 미·일전쟁이 발발한 뒤 2개월여 재미 일본인 사회를 주시하고 있던 루스벨트 대통령은 1942년 2월19일 미 본토 서해안 일대의 일본계 이민들의 수용소행을 명령했다.일본 이민들은 피땀흘려 일구어놓은 가옥 재산을 버리고 수용소에 들어가야 하는 비운을 맞았다. 그리고 50여년 후 청문회를 거치고 미 정부의 사과와 보상을 받았다. 일본계 이민의 수용소행은 재미 한인정치가 한길수가 오랫동안 주장해온 것이기 때문에 나도 한길수에 관한 논문에서 이 문제를 조금 다룬 일이 있었다.미국 정부의 보상은 만시지탄이 없지는 않았지만 썩 잘한 것이었다.그런데보상을 받은 사람 중에 매우 머쓱한 사람도 많았을 것이라는 느낌도 들었다. 수용소로 들어가 자치에 맡겨진 일본인들은 미국파와 모국파로 갈라지고 유혈 살인사건까지 발전하기 일쑤였다.모국파들은 몰래 들여간 라디오를 들으면서 일본의 승리와 패전에 일희일비(一喜一悲)하곤 하였다.또 목창과 빗자루를 어깨에 짊어지고 군사교련에 열중하였다.자기들끼리 지역감정으로 서로 다투었는데 북쪽에 수용된 사람은 남쪽을 ‘카리니가’(캘리포니아에서 온시컴한 흑노)라고 욕했고 또‘티비리리’(폐병앓이처럼 흰 놈들)로 욕을 먹기도 했다.어떤 의미에서 거제도 포로수용소의 축소판이었다.전쟁 개시 전의 모든 일본어 신문들,특히 하와이의‘닛푸지지’나 LA의‘라후신포’는 일본 국내의 군국주의 옹호 신문논조와 다를 바가 없었고 재미 한인 독립운동을야유하고 경멸했다. 이런 현상에 대해 청문회는 아무 지적도 없이 일본 이민들의 고통에만 초점을 맞춘 느낌이 있다.한국의 ‘노근리학살사건’ 사후책에서도 그렇기를 바라는 것이 솔직한 나의 심정이다.즉 사건발생 이후 일부 유가족 성원의 언행이 바람직하지 않은 방향으로 나갔었다 해도 피해자 등록을 막는다든가 차별하지 말고 모두 보상을 받을 수 있도록 관련 공무원들에게 지시를 내려야 한다는 것이다.너무 분격하여 적을 지원한 사람이 있었을 수도 있고 이를 사찰당국이 알고 있다고 가정해 노파심으로 말하는 것이다.보상 추진은 노근리에만 국한하지 말고영동군 일대로 확대하여야 될 것으로 믿는다. 당시 북쪽 신문에 보도된 노근리를 포함한 영동지방의 학살 희생자수는 8월10일자에 영동 일대의 2,000여명과 19일자 노근리 400여명으로 되어 있지만노근리 굴다리에 국한하면 희생자수는 100명 안팎이고,당시 영동군에서 더많은 희생자가 있었을 개연성이 있다고 본다.즉 대전 해방과 영동 공격을 지휘한 제1군단의 김재욱 군사위원과 최종학 정치(문화)위원의 이름으로 8월2일 이 사건을 휘하 부대에 시달한 문서가 있기 때문이다. 문서는 노근리를 의미하는 철도 밑 굴다리에서 미군이 양민 100명 가량 학살했고 또다른 굴다리에서 ‘많은’ 민간인을 학살했다고 선포했다.죽은 어머니의 가슴에 매달린 아기도 보았고 시체 밑에서 3∼4일 동안 숨을 죽이고있다가 살아난 양민 10명 중 몇몇은 도착한 인민군에게 복수해줄 것을 애원했다고 적었다.또 8월8일자의 명령 시달에는 (영동의) 미군이 인민군의 식량조달을 방해할 목적으로 민간인들을 강제 피란시키고 식량을 운반시키고 있으며 빈집에 남긴 식량과 된장,간장,일대 우물 개천 등에 독극물을 살포했다고 했다.특히 7월30일 황간에서 하천의 물을 마신 제3연대 군인이 피해를 받았다고 주의를 환기시켰다.강제 피란행은 생존자의 증언과도 부합된다. 한·미조사단은 당연히 당시의 인민군 주장도 샅샅이 조사하여야 될 것이다.증언 채집에 있어서도 세심한 객관적인 사실을 채취해줄 것을 당부한다.가능하면 북한의 영동작전 관련자들을 초청해보는 것도 한 방법이 아닐까 생각한다.자기들도 저지르고 영상물에까지 담은 학살사건이 한 두가지가 아닌,즉자기 선전에만 급급하지 않고 건설적인 자료를 제공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나는 미국의 조사 시작에 전폭적인 신뢰를 두고 싶다.그리고 한국의 조사활동도 뼈 있는 기개와 어른다운 공평성으로 사건의 진상에 접근해줄 것으로믿는다.언론도 달아오른 쟁개비처럼 한때의 보도로 끝내지 말고 인내성 있게꾸준히,그리고 신중하게 보도해주기를 기대한다. [方善柱 한림대 객원교수 재미사학자]
  • 경기도 정무부지사 金成洙씨 내정

    경기도는 오는 6일쯤 퇴임할 김덕배(金德培) 정무부지사의 후임으로 김성수(金成洙·54) 전 민주연합청년동지회(연청) 중앙회장 대행을 내정했다고 1일발표했다. 김 신임 정무부지사 내정자는 고려대 정치외교학과와 연세대 행정대학원을졸업한 뒤 평민·신민·민주당 시절 김대중 총재 보좌역과 국민회의 경제대책위원회 부위원장 등을 지냈다. 수원 김병철기자 kbchul@
  • 겨울철 실업대책 요지

    정부가 29일 발표한 겨울철 실업자 구제를 위한 대책의 주요 내용을 요약한다. [99년 4·4분기 지자체 시행 공공근로사업] 총 인원은 26만명으로 이중 19만명은 이미 선발됐고 추가로 7만명을 뽑는다.호적전산화사업 국토공원화사업철도변화경정화사업 하천정비사업 간병 등 복지도우미사업 수해복구사업 등에 투입된다.이와는 별도로 일일취업센터(안내소) 취업정보센터에서 추천한건설 일용직 근로자 1만5,000명을 선발,영세민 주거환경 개선,재해위험지구정비,도시 소공원 정비 및 조경사업 등에 투입한다. [99년 4·4분기 중앙부처 시행 공공근로사업] 총 21만5,000명으로 이중 15만2,000명은 이미 결정됐고 6만3,000명을 추가로 선발한다.대학도서관·박물관 지원,구직세일즈공공근로,집단급식소 영양개선,산업단지 기동지원 사업,정보화근로사업 등에 투입된다. [2000년 1·4분기 지자체 및 중앙부처 시행 공공근로사업] 지자체 1단계 사업에 24만7,000명이 투입된다.중앙부처는 내년으로 예정된 26만8,000명중 85%인 22만7,000명을 1·4분기에 집중 투입하며 내년도 공공근로사업비의 77%인 4,064억원을 앞당겨 집행한다. [대졸·고졸자 인턴제 확대] 대졸 및 고졸 취업대상자 57만5,000명 중에서당초 계획보다 2만명 많은 4만8,000명을 인턴으로 선발해 기업등에서 임시로일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연수기간은 3개월로 한달에 50만원씩 지급한다.연수후 기업이 정규직으로 채용되면 3개월동안 추가로 지원한다. [건설일용직 능력개발훈련 지원] 1,100명을 선발,오는 12월부터 내년 2월까지 3개월동안 훈련비 및 훈련수당을 지원한다.직종은 배관 보일러 쇠붙이기벽돌쌓기 도배 미장 도장 타일 등이다. 김균미기자 kmkim@
  • 신종통계 내년 줄줄이 나온다

    국민들은 하룻동안 어떻게 생활하나.지역별 경기는 어떤가.현재 서비스업종은 호황인가. 내년부터 이런 궁금증을 해소해줄 신종 통계들이 줄줄이 선보일 전망이다. 통계청은 29일 변화하는 경제추세에 맞춰 이같은 통계를 개발해 내년부터잇따라 공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생활시간 조사 국민들이 하루 24시간동안 활동하는 형태를 시간대별로 조사해 작성한다.생활방식과 삶의 질을 파악하기 위한 것이다.주부의 가사노동시간,쇼핑시간도 알 수 있게 된다.노동,복지,문화와 교통정책 수립에 유용하다. 올 9월 전국 1만7,000여가구의 만 10세 이상 가구원을 대상으로 처음 조사를 실시했다.내년 9월부터 발표된다. ?서비스업통계 국내총생산의 절반을 넘어선 서비스업지수를 별도로 만들 예정이다.산업활동지수가 광공업통계 위주로 만들어져 서비스업과 동떨어지게움직여온 결점이 있기 때문이다. 현재 산업동향지수에 도소매 판매액만 포함되고 있으나 앞으로는 금융·관광·지식기반산업 등 모든 서비스업을 포괄하는 서비스업지수를 작성할 방침이다.내년초공표된다. ?지역통계 강화 지역경기지수를 작성해 지역별 경기변동,경기국면과 예측에 사용될 예정이다. 올해 충북·대구·충남·부산과 대전 등 5개 시범지역을 시작으로 시·도가 공동개발해 2000년부터 지수를 작성한다. 지역별 주요제품의 생산능력,실적,설비상황 등을 바탕으로 지역별 가동률지수도 2002년부터 만들 계획이다. 또 지역내 총생산액에 대한 지출계정을 개발할 예정이다.예컨대 충남에서생산된 제품이 전북에서 얼마나 사용되는지 등을 파악하려는 것이다. 이상일기자 bruce@
  • [의열 독립투쟁] (9)장진홍 의사

    1927년 10월18일 11시20분경 대구시 중앙통에 위치한 조선은행 대구지점에허름한 옷차림의 한 청년이 나타났다.청년은 곧바로 창구 앞으로 다가가 들고온 보자기를 풀어 네개의 상자 가운데 한 개를 창구로 내밀면서 창구의 직원에게 “이것은 벌꿀인데 우리 여관에 든 손님이 지점장님께 전해달라고 한선물입니다”고 디밀었다. 군대에서 포병대 근무경력이 있는 창구직원 요시무라(吉村)는 상자에서 화약냄새가 나는 것을 느끼고 급히 상자를 열었다.아니나 다를까!상자 안에는도화선에 불이 붙은 폭탄이 들어있었다.깜짝놀란 요시무라는 도화선을 끊고청년으로부터 보자기를 빼앗아 다급하게 나머지 상자를 열었다. 연락을 받고 황급히 달려온 10여명의 순사들이 도화선을 끊으려고 하였으나이미 때는 늦었다. 곧이어 폭탄 하나가 터짐과 동시에 뒤이어 두개의 폭탄이 연속적으로 굉음을 내면서 폭발하며 천지를 뒤흔들었다.이것이 저 유명한장진홍(張鎭弘)의사의 조선은행 대구지점 폭탄사건이다.폭탄을 전한 청년은장의사가 심부름을 보낸 덕흥여관 종업원 박노선(朴魯宣)으로 이 사건과 별다른 관련은 없다. 장의사는 1895년 6월6일 경상북도 칠곡군 인동면 문림리에서 아버지 장성욱(張聖旭)과 어머니 순천(順天) 김씨 사이에서 첫째 아들로 태어났다.본관은인동(仁同),호는 창려(滄旅).장의사는 어려서부터 담력이 크고 의협심이 강했다.칠곡소재 인명학교(仁明學校)를 졸업하고 1914년 조선보병대에 입대해군사지식을 배운 장의사는 1916년 고향에서 대한광복회에 가입했으나 일경의감시가 심해 1918년 만주로 망명했다. 동지인 이국필(李國弼)과 함께 러시아의 하바로프스크로 건너가 조선인 청년 100여명을 규합해 군사훈련을 실시했으나 1917년 러시아혁명의 여파와 일본군의 시베리아출병으로 뜻을 이루지 못한 채 귀국하였다.1919년 3·1 의거가 일어나자 장의사는 일제의 만행을 세계 여론에 호소하기 위하여 동생 진환(鎭煥)으로부터 600원을 받아 전국 각지를 돌며 일제의 만행사실들을 조사,수집하였다.이 해 7월 미국 군함이 인천항에 입항하자 장의사는 경북출신조선인 하사관 김상철(金相哲)에게 이를 영문으로 번역,세계 각국에 배포해줄 것을 부탁했다. 한편 장의사는 일제 통치기관에 폭탄을 투척,일제의 만행을 응징키로 결심하고 대한광복회에서 함께 활동했던 동지 이내성에게서 일본인 무정부주의자이자 폭탄제조 전문가인 호리키리 시게미쯔로(堀切茂三郞)를 소개받아 폭탄제조법을 배웠다. 1927년 8월에 직접 제조한 폭탄의 성능실험을 마친 장의사는 동지들과 경북도청·경북 경찰부·조선은행 대구지점·식산은행 등에 폭탄을 투척하기로하고 10월16일 폭탄 여섯개를 제조했다.이튿날 6개의 폭탄 가운데 5개를 가지고 대구로 향한 장의사는 조선은행에서 가까운 덕흥여관에 숙소를 정하였다.18일 오전 10시40분 장의사는 여관의 사환을 불러 “이것은 조선꿀인데조선은행·도청·식산은행·경찰부 순서로 배달해달라”고 부탁하였던 것이다. 이어 11시40분경 조선은행 대구지점에서 굉음과 함께 폭탄이 터져 일본인순사 4명과 은행원 1명,행인 1명 등 모두 6명이 부상을 입고 조선은행 대구지점 유리창 60여장이 깨졌다.그 순간 두루마기 차림에 파나마모자를쓰고네 대의 금니를 한 모습으로 변장하고 있던 장의사는 말쑥한 양복 차림에 흰 운동화로 갈아신고 상주에서 안동으로 가는 갈림길이 있는 다부원고개를 넘고 있었다. 사건 직후 일본경찰은 철저한 보도통제 속에 범인색출에 나섰으나 단서조차 잡지 못하였다.일본경찰의 포위망이 좁혀지자 장의사는 일본으로 건너가 막내동생 의환(義煥)에게 몸을 의탁하고 도쿄(東京) 오사카(大阪) 히로시마(廣島)등을 왕래하며 1년반 동안을 지냈다. 한편 이 사건의 수사가 미궁으로 빠져들 무렵 엿장수로 변장,장의사 고향집 부근에서 탐문수사를 벌이던 한 형사가 장의사가 오사카에서 안경공장을 경영하는 동생집에 숨어있다는 정보를 입수했다.일본경찰은 조선인 여자첩자를 오사카로 파견,장의사 동생부부에게 접근하여 마침내 장의사가 2층에 숨어있다는 것을 확인하였다. 1929년 2월14일 밤 동생 장의환의 안경공장에서는 술자리가 벌어졌다.일본경찰에 매수된 한 조선인 첩자가 안경 1만5,000개를 산다며 계약금조로 30원을 내놓은 것이었다.오랜만에 목돈이 생긴 장의환이 벌인 술자리에는 조선인첩자를 포함해 김해중으로 이름을 바꾸고 활동하던 장의사도 참석하였다. 술이 몇 순배 돌면서 취기가 무르익자 갑자기 일본경찰이 들이닥쳤다.장의사는 순간적으로 일어나면서 전등을 손으로 쳐서 깨뜨리고 창문으로 뛰어내렸으나 아래층에서 대기하고 있던 형사들마저 피할 수는 없었다. 현장에서 체포돼 대구형무소에 수감된 장의사는 단독범행을 주장하며 심문하는 일경에게 “일본이 조선을 해방시켜주지 않으면,너희 일본도 망할 날이멀지 않을 것”이라고 경고하고 취조하던 조선인경찰에게는 “나의 죽은 혼이라도 용서치 않을 것이다”라고 호통을 쳤다. 대구고등법원에서 사형언도가 확정된 장의사는 사형이 집행되기 전날인 1930년 7월31일 옥중에서 자결 순국하였다.장의사의 순국소식이 옥중에 퍼지자재소자들은 ‘조선독립만세’,‘장진홍만세’를 외쳤고 이에 당황한 교도소측은 서둘러 장 의사의 사인이 뇌일혈이라고 발표하였다. [김순석 독립기념관 전시부 연구원] *장진홍 의사 후손들 근황 장진홍 의사는 후손으로아들,딸 각각 3형제를 두었는데 아들은 모두 어려운 형편 속에 살고 있다.세아들 가운데 장남만 보통학교 4년 중퇴를 했을 뿐나머지 두 아들은 모두 무학자이다. 96년 83세로 작고한 장남 형옥(衡玉)씨는 생전에 부친 장의사의 기념사업에 깊은 관심을 가졌으나 경제사정이 허락하지 않아 별다른 성과는 남기지 못했다고 한다.차남 형술(衡述·81)씨는 구미시 옥계동에 살고 있는데 연로해서 현재 거동이 불편한 상황이다.또 대구에 살고 있는 3남 형태(衡泰·73)씨는 가정 형편이 어려워서 행상 이발소를 하며 생계를 꾸려가고 있다. 장남 형옥씨는 7남3녀를 두었는데 현재 8명이 생존해 있다.장손 상규(相圭·63)씨는 칠곡에서 전자제품 하청업체를 운영하고 있는데 IMF 사태 후 모기업이 부도가 나는 바람에 연쇄부도를 맞아서 살고 있는 집마저 근저당이 설정된 상태. 장의사의 후손 가운데 그나마 그럭저럭 살고 있는 사람은 세 딸이 고작이다.세 딸 가운데 위로 두 딸은 모두 작고하였고 현재 막내딸 형필(衡必·70)씨만 구미에서 살고 있다. 현재 장의사 추모단체나 기념사업회는 특별히 구성된 것이 없고 낙동강 기슭에 서있는 추모비 하나가 고작이다.장의사는 62년 건국훈장 독립장(3등급)을 추서받았으며 묘소는 서울 동작동 국립묘지 애국지사 묘역(128번)에 마련돼 있다. 정운현기자 jwh59@
  • 자민련 ‘朴正熙 전대통령 받들기’

    자민련이 박정희(朴正熙) 전 대통령으로 통칭되는 ‘근대화세력’의 본류를 자임하고 나섰다. 박 전대통령과 깊은 인간적 관계를 맺었던 인사들이 수뇌부에 포진하고 있는 현실 때문이기도 하겠지만,내년 총선을 앞두고 TK 민심 사로잡기 차원의정치적인 뜻이 배어 있는 것도 부인할 수 없다. 또 최근 당이 중심없이 표류하고 있는 만큼 박 전대통령 서거 20주기를 계기로 당의 정체성을 확립하는데 주력하자는 의미도 있어 보인다. 박태준(朴泰俊)총재가 지난 21일 국회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6·25를 비롯한 수많은 시련 속에서도 자유민주주의를 안전하게 수호하면서 근대화와산업화에 매진해왔다”면서 “자민련 동지들은 피땀어린 고난의 발걸음에 참여했던 ‘시대의 증언자’로서 역사 수호의 막중한 책무가 두 어깨에 걸려있음을 절감하고 있다”고 밝힌 것도 같은 맥락이다. 우선 김종필(金鍾泌)총리와 박총재,박준규(朴浚圭)국회의장 등 당 수뇌부는 박전대통령 관련 행사에 빠짐없이 참석할 예정이다.오는 25일 세종문화회관 세종홀에서 열리는 박전대통령 어록 출판기념회에는 당 지도부와 함께 현역의원 및 원외 지구당위원장들이 대거 참석한다.또 26일 국립현충원에서 열리는 서거 20주기 추도식에도 거당적인 지원을 할 방침이다. 박총재는 이에 앞서 23일 호암아트홀에서 공연되는 ‘인간 박정희’ 연극을 관람한다.22일에도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박전대통령 20주기 추모 특별사진전에 참석,테이프커팅을 할 계획이었으나 박지원(朴智元)문화관광부장관해임건의안 표결처리로 부득이 불참했다. 한종태기자 jthan@
  • [의열 독립투쟁](8)김익상 의사

    1921년 9월12일 오전 10시10분경.일제의 조선 통치의 거점인 서울 남산 왜성대(倭城臺·현 중구 예장동 일대)의 조선총독부 청사(구 한국통감부 청사)2층에서 굉음소리와 함께 폭탄이 터졌다. 일제 식민통치의 심장부에 폭탄이터진 이 사건으로 일제가 초긴장함은 물론 경성(서울) 시내가 떠들썩했다.일제는 범인을 잡기 위해 헌병과 경찰을 총동원하였으나 범인은 좀처럼 잡히지않았다. 일제로서도 이 사건은 좀처럼 이해하기 힘든 일이었다.총독부 정문에는 항상 무장한 헌병들이 경계를 서고 있었고 총독부 관리나 고용원이 아니면 임의로 출입을 못하게 돼 있었기 때문이었다.폭탄을 휴대한 수상한 인물이,그것도 벌건 대낮에 총독부 청사에 들어간다는 것은 상상하기조차 어려웠다.사건의 진상은 해가 바뀌고 그 해 겨울이 다 지나도록 오리무중이었다. 사건이 있은 후 6개월이 지난 1922년 3월28일 오후 3시30분 육중한 몸체의배 한 척이 상하이 부두에 입항하였다.상하이는 국제도시인 만큼 평소에도중국인·조선인·서양인·인도인·일본인 등 여러나라 사람들이 들끓었다.특히 이 날은 필리핀을 방문하고 상하이에 들르기로 한 일본 육군대장 다나카(田中義一·후에 수상 역임)를 맞기 위해 중국의 고관,상하이 일본 총영사관직원,각국 신문기자,일본거류민이 부둣가로 몰려나와 더욱 혼잡한 상황이었다. 배에서 내린 다나카는 출영나온 인사들의 환영을 받는 바로 그때 군중 속에서 중국인 옷을 입은 한 청년이 다나카를 향해 권총을 발사하였다.세 발의총성이 울리자 총을 든 청년은 그곳에서 ‘독립만세’를 크게 외쳤다.그러나불행하게도 총탄은 다나카에게 맞지 않았다.총탄은 방아쇠를 당기는 순간 다나카 앞을 급히 지나던 젊은 서양 여자의 가슴에 박혔다. 청년은 다나카가 맞은 줄 알고 독립만세를 외쳤던 것이다.놀란 다나카일행은 황급히 달아났다.그런데 이번엔 양복을 입은 또 다른 한 청년이 달아나는 다나카를 권총을 쏘고 이어서 폭탄을 던졌다.그러나 이 총탄도 역시 다나카에 명중되지 않았고 폭탄도 불발되고 말았다.다나카는 두번의 피습을 용케피했고 두 청년은 현장에서 체포되었다.중국 옷을 입은청년은 오성륜(吳成崙·본명 李正龍)이었고,양복을 입은 청년은 김익상(金益相)이었다.6개월전에 일어난 ‘조선총독부 투탄사건’은 김익상 의사가 체포된 후 심문과정에서 김 의사의 의거임이 비로소 밝혀졌다. 조선총독부 청사에 폭탄을 던지고 상하이에서 다나카에게 폭탄을 던졌던 김의사는 당시 28세로 아내와 딸 하나를 조국에 두고 온 몸이었다. 서울 태생인 김의사는 15세때부터 서울 용산역 철도노동자,용산전기회사,황해도 수안의 광업회사 등에서 노동자로 일하였다.일본인 밑에서 일한 까닭에일본어에 능통했고 일본인들의 습관까지도 몸에 익히고 있어 거사에 나섰을때 능숙하게 일본인 행세를 해 곳곳의 일경들의 경계망을 돌파할 수 있었다. 김익상 의사는 노동자 생활을 하면서도 큰 꿈을 지니고 있었다.장차 비행사가 돼 폭탄을 싣고 일본을 향해 투하하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유년시절아버지가 일본인에게 멸시·학대당하는 것을 보고 분개한 김 의사도 일본인밑에서 냉대와 학대를 뼈저리게 경험하였다. 김 의사는 이 고통이 자신만의 고통이 아니라 민족 전체의 고통이란 사실을자각하였다. 그리고 독립운동에 투신하겠다는 꿈을 실현하기 위해 1920년 5월 조국을 떠나,1921년 5월에는 베이징으로 가 의열단장 김원봉(金元鳳)을만난 뒤 의열단에 가담하였다. ‘조선총독부 투탄사건’의 전말은 다음과 같다.조국독립을 위해 일제 통치거점에 폭탄을 안기자는 의열단장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김 의사는 거사를 자청했다.1921년 9월10일 김원봉으로부터 폭탄 3개와 권총 1정,탄환 100발 및 현금 200원을 받아 베이징을 출발했다.김원봉 이하 동지들이 베이징역두에 나와 장도에 오르는 김 의사를 전송하였다.동지 가운데 한 사람이 “壯士一去兮 不復還일세(壯士가 한번 가면,돌아오지 못하는구나)”하고 격려의 말을 건네자 김 의사는 “쓸데없는 소리 말게.이제 1주일이면 내 넉넉히성공하고 돌아올 것이니 술상이나 잘 차려놓고 기다리게”하고 껄껄 웃으면서 화답하였다. 그처럼 담대했던 김 의사는 일본인으로 위장하여 경계망을 돌파한 뒤 서울로 들어와,전기수리공으로 변장하고 총독부 구내로들어가는데 성공하였다. 총독부 청사에 폭탄을 던진 후 경비병들이 우왕좌왕하는 사이에 홀연히 김의사는 청사를 빠져 나왔다. 다나카 저격직후 체포된 김의사는 일본 나가사키로 이송됐고 1923년 11월 6일 항소심에서 사형을 선고받았다.사형이 집행되기 전 일본 황태자(후에 昭和천황이 됨)의 결혼식으로 일제로부터 은사(恩赦)를 받아 무기징역으로 감형되었고,또 1932년 2월에는 만주국 독립기념 명목으로 다시 20년으로 감형됐다.1942년 김 의사는 30대의 몸으로 감옥에 들어간 이래 20년만에 50대 중노인이 돼 규슈 구마모토 감옥을 나왔다.서울로 돌아온 김의사는 해방직전한 일본인 형사에 의해 연행되었는데 그후 행방불명이 되고 말았다. 현재 조선총독부의 청사가 있었던 자리 인근(현 예장동 숭의여자대학 입구)에는 의열단원 김익상이 이곳에서 폭탄을 던졌다는 내용이 적힌 비석 하나만외롭게 서 있다. [염인호 서울시립대 교수] -金의사 투탄 조선총독부는… 김익상 의사가 폭탄을 던진 조선총독부 청사는 지난 95년 ‘광복 50주년’을 맞아 철거된광화문 청사가 아니라 남산에 있던 초기 청사였다. 1905년 강제로 ‘을사조약’을 체결한 뒤 대한제국 정부의 외교권을 박탈한일제는 한국통치기관으로 한국통감부를 만들었다. 청사는 남산 중턱에 있던구 일본공사관 건물을 사용했다.1910년 8월 한일병합으로 대한제국의 국권을찬탈한 일제는 남산 통감부 청사에 ‘조선총독부’ 간판을 내걸고 이 건물을조선총독부 청사로 사용하였다.1926년 경복궁 앞마당에 조선총독부 신청사가 건립되기까지 16년동안 이곳은 일제 조선통치의 본거지였다. 김익상 의사는 바로 이곳에 전기수리공으로 변장,잠입해 폭탄을 던진 것이다. 경복궁의 조선총독부 신청사는 1916년 6월 25일 기공식을 갖고 공사가 시작되어 10년만인 1926년 10월 1일 ‘시정(始政)기념일’을 맞아 준공하였다.일제는 당시로서는 거액인 670여만엔을 들여 10여년에 걸쳐 조선총독부 신청사를 건립하면서 이곳을 조선의 영구통치의 본거지로 삼고자 했다.그러나 신청사 준공 19년만에 패퇴하여 이 땅에서 물러갔다. 정운현기자 jwh59@
  • 오붓한 가족문화공간 없나요-20일 문화의 날 / 문화현실 진단

    그동안 우리 문화예술은 크게 성장했다.많은 분야에서 세계적인 문화예술인들이 배출됐고,매일같이 세계무대에 내놓아도 손색이 없는 각종 공연이 줄을 잇는다.그러나 이같은 ‘문화예술의 르네상스’가 아직은 서울같은 일부지역만의 이야기인 것도 사실이다.또 서울에 사는 사람이라도 가족들과 좋은공연을 즐기기는 아직도 쉽지 않다.20일은 28번째 맞는 문화의 날이다. 이를 계기로 ‘가족중심의 공연문화’로 가는 길을 다시 생각해본다. 서울에는 세종문화회관과 예술의 전당이라는 두 개의 국제적인 규모의 공연장이 있다.이에 대해 서울의 인구와 우리나라의 소득수준을 감안하면 대형공연장이 결코 부족하지 않다는 주장도 있다.행정구역상의 서울특별시만 떼어놓고 보면 옳은 이야기일 수도 있다. 그러나 이제는 전제부터가 달라져야한다는 지적이 우세하다.기존의 위성도시들이 고밀도화하고 있을 뿐 아니라 신도시들이 속속 개발되고 있어 서울과 주변도시 사이의 ‘심리적 경계’는 없어졌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신도시에 살면서 자신이 ‘지방사람’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따라서 앞으로는 문화공간 문제는 인구 1,200만명인 서울에 한정할 것이 아니라,2,000만명이 넘는 ‘수도권’이라는 초거대도시를 상정하고 접근해야한다는 것이다. 이같은 초거대도시의 문화공간의 문제는 사실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공연장까지의 이동시간을 물은 한국문화정책개발원의 조사 결과는 문제의 핵심을잘 보여준다. 조사는 지난 8월 한달 동안 서울시내 공연장을 찾은 1,000명의관람객을 대상으로 실시했다. 조사 결과 30분 이내에 도착했다는 사람이 14.0%,30분 이상 1시간 안에 도착했다는 사람은 47.0%였다.반면 1시간 이상 2시간 안에 도착했다는 사람이33.3%나 됐고,2시간 이상 걸렸다는 사람도 5.8%였다.40%에 가까운 사람들이공연을 보기위해 공연시간의 2배 이상을 길거리에 투자했다는 얘기다.그러나 이 수치도 공연장까지의 거리가 너무 멀어 관람을 아예 포기한 사람의 비율이 얼마나 되는지는 보여주지 못한다. 이처럼 공연장까지의 거리가 멀어지면 필연적으로 가족단위의 관람객은 찾아가기 힘들다.앞의 조사에서 공연장을 찾은 사람들을 보아도 10대가 20.4%,20대가 50.4% 등 10∼20대가 대다수를 차지한 반면 30대는 14.1%,40∼50대는 15%에 불과했다.실제 30∼50대,특히 주부들은 가족단위의 공연관람을 매우절실히 원하고 있다.그럼에도 공연예술은 현실적으로 학생층이나 일부 전문직 젊은이들의 전유물에 가깝다는 현실을 이 조사는 보여준다. 문화정책개발원의 장미진연구원은 “많은 사람들은 저녁식사 시간 이후에가족과 함께 공연을 보고 싶어한다”면서 “지역민이 가족과 함께 즐길 수있는 문화거점을 이제 시·군·구의 문화회관으로 옮겨야 한다”고 말했다. 조사 결과 각 지역축제에 참여한 사람은 전체주민의 28.6%에 이르렀고,참여만족도도 5점 만점에 평균 3.17을 기록하는 등 높게 나타났다는 것이다.게다가 문화예술의 활동공간을 지역단위로 넓혀가는 것은 주민의 문화향수를 높이는 결과를 낳을 뿐 아니라,예술인들의 창작의식을 높이는 데도 한몫을 한다는 설명이다. 음악평론가 탁계석씨는 “지방자치제가 본격적으로 실시된 이후 각시·도와 시·군·구가 경쟁적으로 공연장을 확보하여 이제 문화거점을 지역으로옮기는 데 따른 공간의 문제는 크지 않다”고 말하고 “이제 가장 중요한 문제는 누구로 하여금 그 공간을 운영하도록 하느냐”라고 단언했다. 지역민의 욕구를 파악하여,지역 특성에 맞는 공연을,그것도 중앙에 크게 뒤지지 않는 수준으로 유지하기 위해서는 전문인력의 손을 빌지 않고는 어렵다.특히 전문인력이 공연장을 운영하게 되면 예술의전당이나 세종문화회관에서 보듯 재정자립도도 높여 자치단체 재정에 부담을 덜어줄 수도 있다는 것이다.지역문화공간을 가족공간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이제 공간마련과 함께 인력양성의 문제도 적극적으로 검토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지적이다. 서동철기자 dcsuh@ * KBS교향악단·서울시향 연주회 KBS교향악단과 서울시교향악단의 이른바 ‘원 프로그램,투 콘서트’는 공연장 거리가 멀어 연주를 즐기기 힘든 관객들에게 조금이라도 가까이 가는 시도라는 점에서 바람직스럽다. KBS가 한 프로그램으로 두 차례 연주회를 갖는 것은지난 91년 KBS홀 개관이 계기가 됐다.KBS교향악단은 이후 모든 정기연주회를 목요일에는 여의도 KBS홀,금요일에는 서초동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갖는다. 서울시향은 지난 7월 처음 그 뒤를 따랐다.8월에 이어 11월에도 광화문 세종문화회관과 예술의 전당에서 같은 프로그램으로 각각 연주회를 가질 예정이다.서울시향은 내년에는 6차례의 정기연주회를 이같은 방식으로 갖기로 했다.KBS와 서울시향은 이같은 시도로 고정 팬을 두배 가까이 늘리는 효과도보고 있다. 사실 미국이나 유럽의 교향악단은 대부분 한 프로그램으로 2∼4차례씩 연주한다.그러나 그들은 대부분 한 연주장에서 모두 소화하는 것이 보통이다. 반면 KBS교향악단이나 서울시향은 청중에 대한 서비스라는 측면이 강하다.공연장의 거리가 멀어 어려운 가족관람도 가능케한다. 그런 점에서는 서구의 교향악단 보다 더욱 적극적인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고 평가할 수 있다. KBS교향악단의 관계자는 “한 프로그램으로 두차례 연주하게 된 데는 많은비용을 들여 좋은 지휘자와 협연자를 데려오는정기연주회를 한차례 연주로끝내는 것이 아까운데다,조금이나마 보완하여 두번째는 더 좋은 연주를 들려주겠다는 뜻도 있었다”면서 “그러나 무엇보다 공연장이 너무 멀다는 청중들의 요구를 수용했다는 측면이 강하다”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KBS홀 연주가 강서·영등포·은평·마포·서대문 등 강북지역,나아가 부천·인천·김포지역 주민들을 위한 것이라면,예술의전당은 강남·강동지역은 물론 성남·과천·안양·수원 등지의 주민들을 위한 서비스”라면서 “앞으로 강북지역 중심부에 좋은 연주장이 들어선다면 한 프로그램으로 세차례 연주하는 방안도 적극 검토할 것”이라고 밝혔다. 서동철기자
  • [김삼웅 칼럼]‘양金’ 화해협력 약속지켜라

    “이제 우리 두 사람은 국민에게 말씀드리고자 합니다.지금 권력자들에 의하여 우리를 서로 이간 분열시키려 하는 의도가 곳곳에서 전개되고 있음을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그러나 우리는 유신체제 아래서 서로 협력하여 18년의 박정희정권을 종식시켰듯이 지금도 그리고 앞으로도 상호협력하여 나라의 민주화를 마침내 이룩하는 데 헌신할 것입니다.우리는 언젠가‘두 사람은 조국의 민주화를 위하여 헌신적으로 협력하였다’는 국민과 역사의 평가를듣는 것을 최대의 영광으로 삼고,더불어 함께 싸워나가고자 합니다.따라서우리는 이 시간부터 우리에 대한 분열적 표현과 구별을 거부합니다.”1985년 3월1일 김대중·김영삼 공동의장(민추협)은‘3·1절메시지’를 통해 3·1정신으로 군사독재와 싸우자는 궐기의 내용을 담으면서 상호협력을 다짐했다. 두 사람은 민주화투쟁 과정에서 기회있을 때마다‘민주화 이후’까지도 합심협력하겠다고 국민과 역사 앞에 약속하고 다짐했었다. 프랑스‘르 몽시(Le Moncie)’는 양김이 분열하여 각각 대통령후보에 나섰을 때인 1987년 12월16일자에 이를 비판 풍자하는 만화를 실었다.거대한 강물 위에 놓인 다리가 두 쪽으로 동강난 사이에 한 쪽은 DEMO라 쓰인 피켓을들고 다른 한 쪽은 CRATIE라 쓰인 피켓을 든 체 추종자들과 끊어진 교각을향해 걷고 있는 내용이었다. 약속,헌신짝 버리듯해서야“남북통일 등 한민족 화합의 시대로 들어가는 마당에 지역차별 의식이 아직도 온존하는 것은 시대착오적 현상이다.망국적 지역색 타파를 위해 함께 노력하겠다”(김대중),“언제부터인가 우리들 의식 속에는 배타적 지역감정이심화돼 분열과 대립이라는 우려할 만한 상황에까지 이르렀다.지역갈등을 과거사로 돌리고 번영과 화합의 발길을 내딛기 위해 함께 협력하겠다.”(김영삼) 91년 4월1일 양김은 대구의‘나라를 위한 기도회’에 참석,지역갈등 해소를 위해 함께 노력할 것을 약속했던 것이다.여기서‘함께’란 양김 스스로를말한다. 양김은 협력하여 군정을 종식시키고 앞서거니 뒤서거니 대통령에 당선되어한 분은‘현직’,한 분은‘전직’에 있다.그러나‘민주화 이후’까지도 협력하겠다던 약속은 깨진 지 오래이고 지금은 분열과 갈등이 심화된 상태이다. 지난 16일 김대중 대통령과 김영삼 전 대통령은 부마민주항쟁 20돌을 맞아부산 민주공원 개막식에 나란히 참석하여 치사와 축사를 했다.외형적으로는지극히 정상적인 이 행사가 실제로는 양김의 갈등과 적대라는 일그러진 모습으로 비쳐 많은 국민을 속상하게 만들었다. YS는 행사에 앞서 삼성자동차 공장과 모교 방문 등 지지들에게‘역적’‘유신 망령’ 등 극한 용어를 사용하며 DJ를 공격했다.얼마 전에는‘독재자’란 표현도 서슴지 않는 등 적대감을 보여왔다.DJ의 계속되는 화해 제스처에도YS는 공격을 멈추지 않고 있다. 양김의‘사랑과 미움’의 관계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그렇지만‘민주화’공로의 상당 부분을 양김에게 돌리는 데 인색할 이유는 없을 것이다.그런데 지금 왜 저런 관계가 되었을까.YS의 최근 언행은 신중하지 못하다는 것이 많은 국민의 생각이다.자신의 정부가 망쳐놓은 국가경제를 살리는‘동지’에 대한 지원과 격려는커녕 삼성자동차문제를 지역감정으로연계시키려 한점 그리고 민주주의와 인권신장에 기여한 공로로‘자유메달’을 받는 DJ에게‘독재자’란 표현,지역갈등을 자극하는 발언 등은 양김관계 이전에‘전직’으로서 어른답지 못한 언행이란 평가다. 지역갈등 해소에 협력을정부 또한 YS정부의 하나회 청산과 쿠데타세력 단죄 등 업적을 평가하면서화해협력을 모색해야 한다.무엇보다 양김은 지역갈등 해소의 약속을 지켜야한다.영·호남 지역주의는 박정희정권의 산물이지만 양김 또한 피해자인 동시에 수혜자인 것도 사실이다.그렇다면 현직과 전직이 힘을 모아 지역갈등을 해결하는 노력을 보여야 하지 않겠는가.‘정치적 국경선’처럼 깊어가는 동서갈등을 풀어야 하지 않겠는가. 또한 양김의 협력이 중요한 것은‘민간정부’의 실패는 과거 군사정부에 명분을 주게 된다는 점이다.그리되면 민주화운동의 명분을 잃게 된다.양김이역사와 국민을 의식하면서 화해와 협력의 대국민 약속을 지켜야 할 소이연이기도 하다. 김삼웅 주필
  • 해커와 전쟁나선 백신팀 ‘소설 엠 더블유 지’

    ‘가공할 컴퓨터 바이러스로 은행 전산망이 마비되고,급기야 국방 전산망까지 혼란에 휩싸이는데…. ‘소설 엠 더블유 지’(창조문화 펴냄)는 국제 범죄세력인 컴퓨터 바이러스의 침입으로 파생되는 엄청난 사회적 파장과 이의 퇴치에 나선 젊은 백신팀이 벌이는 싸움을 긴장감 넘치게 그려내고 있다. 작품의 무대는 2000년 가을.컴퓨터 프로그래머인 석윤은 친구 준환과 함께인터넷에서 환경운동을 가장한 국제 컴퓨터 범죄세력인 ‘가이아의 동지들’이란 해커를 발견한다. 이후 신종 바이러스가 방송국,은행,군 컴퓨터로 침입해 전국이 아수라장을이루자 석윤 등은 컴퓨터 백신회사 등과 함께 이 바이러스 퇴치에 나선다는내용.이 작품은 컴퓨터 오·작동과 정보전쟁이 얼마나 무서운가를 경고하며‘10만 해커 양병론’을 주창한다.영화기획자 남정욱,컴퓨터 애니메이터 조성호,시나리오 작가 김범수씨 등 신세대들이 ‘digital@105’란 공동 창작그룹을 만들어 펴낸 첫작품이다.각권 7,200원. 정기홍기자
  • “黨복귀후 朴총재 밑으로 갈것”

    김종필(金鍾泌)국무총리는 16일 “내년초 당에 복귀해도 박태준(朴泰俊)총재 밑으로 들어갈 것”이라고 말해 당 복귀후 총재직을 맡지 않을 것임을 시사했다. 김총리는 이날 대전 유성관광호텔에서 대전·충청지역 기관장 및 국회의원,사회·종교단체 대표 등 각계인사 4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만찬에서“나는 오는 12월18일 정기국회가 끝나면 뒷정리를 하고 내년초쯤 당으로 돌아갈 것”이라면서 이같이 말했다고 이덕주(李德周) 총리공보수석비서관이 17일 전했다. 자민련 관계자들은 김총리 발언에 대해 “김총리가 백의종군하겠다는 뜻은아닐 것”이라면서 “고문이나 명예총재 등 명예직을 맡을 것이라는 뜻이 아니겠느냐”고 해석하고 있다. 김총리는 만찬에 앞서 가진 현지 언론인과의 회동에서 내년 총선 출마문제에 언급,“부여는 김학원(金學元)의원에게 분명히 내줬고,나의 대전출마설은 낭설이며 대전,충남북은 아니다”고 말하고 “나는 동지들이 당선될 수 있도록 신발이 닳도록 도울 것”이라고 밝혀 비례대표후보로 선거지원에 주력할 생각임을 시사했다. 한종태기자 jthan@
  • [NGO서울대회] 서울대회 폐막 결산

    15일 폐막된 99서울NGO세계대회는 지구촌이 당면한 문제점을 광범위하게 짚어냈다는 점에서 일단 ‘성공’이란 평을 얻고 있다.특히 세계NGO들이 서로연대할 수 있는 가능성을 확인해 향후 NGO들의 활동에 큰 변화가 초래될 전망이다. 이번 대회는 종전의 다른 국제 NGO대회가 UN이나 정부의 주관아래 단일 주제행사로 열린 것과는 달리 NGO의 주최로 열렸고 여러 주제를 종합적으로 다룬 첫 세계대회란 점에서 개막 전부터 세계의 관심을 모았었다.역대 노벨평화상 수상자나 세계적으로 이름난 인권운동가,UN NGO대표들이 대거 참여한점이 이를 뒷받침한다.대회는 5차례에 걸친 전체회의와 4차례의 주제별 종합회의,그리고 종결회의,195개의 분과토론으로 진행됐는데 이가운데 분과회의10개가 준비부족과 참여인원 저조로 무산된 것을 빼놓곤 비교적 순탄하게 진행됐다. 이번 대회에서 가장 관심을 모은 부분은 평화안보,인권,경제사회개발,NGO활성화 등이었다.남북간 대치상황이라는 특수성에 따른 지뢰문제,탈북자를 포함한 난민 문제,미국의 세계질서 전략,국제경제질서 개편,여성차별 및 어린이 학대 문제 등은 논의의 중심이 됐다. 특히 ‘탈북난민UN청원운동본부’가 탈북자 실태 등을 UN 관계자들에게 전달하고 한국의 인권단체 ‘좋은 벗들’이 미얀마 등 아시아 난민문제를 조사발표하는 자리는 각국 NGO들로 대성황을 이뤘다.이집트의 ‘아프로아시안피플스’와 ‘일본 아프리카 아시아 라틴아메리카연대’‘주한미군범죄근절운동본부’ 등은 공동으로 외국군,특히 해외 미군의 범죄를 집중적으로 다뤄눈길을 모았다.한국의 ‘글로벌케어’와 ‘국경없는 의사회’가 전쟁 재난등에서 여성이 겪는 피해에 대한 공동투쟁을 환기시킨 분과회의와,필리핀 대만 네덜란드의 정신대 피해사례 발표장 역시 참석자들이 대거 몰려 여성의피해 문제가 세계적인 관심사임을 알게 해줬다. 대회는 마지막날 서울선언문을 발표했는데 이 선언문은 UN에서 공식 논의된 다음 각국 NGO들의 21세기 활동지침으로 채택된다. 이번 대회는 국내에서 처음 치르는 NGO국제대회였지만 행사 진행이 비교적원활했다.통역 안내 등을 맡은 자원봉사자의 활약이 돋보였다.그러나 외국인들에게 한국을 알리는 근접 프로그램이 부족했고 한국예술단체총연합회나 민족예술단체총연합회 등 예술단체의 참여가 전혀 없었던 점은 눈에 거슬렸다. 아울러 준비기간이 짧은 탓에 그린피스나 동티모르·코소보측 NGO 등 현안의 주체들이 빠져 아쉬움을 남겼다. 김성호기자 kimus@ * 인터뷰/ NGO 주요단체 공동회견 99서울NGO세계대회에 참석한 전세계 주요 단체 관계자 4명은 대회 마지막날인 15일 대회장인 서울 올림픽공원 올림픽파크텔에서 NGO활동의 과거,현재를 소개하고 향후 계획을 밝히는 공동회견을 가졌다. 지난 5월 네덜란드에서 헤이그 평화회의를 개최한 이후 활발한 NGO활동을벌여온 헤이그 평화청원재단의 애드머럴 람다스 운영위원은 “21세기를 앞두고 전쟁근절,인권존중,폭력예방 등 평화와 정의를 위한 헤이그 규약을 만들어 지속적으로 활동하고 있다”고 말했다. 같은달 마닐라에서 시비커스 국제회의를 열었던 시비커스재단의 쿠미 나이두 사무총장은 “시민단체의 발전은 물론,빈민층을 돕는 제도와 여성단체의사회참여를 유도하는 활동 등에 초점을 맞춰왔다”면서 “오는 2001년 캐나다 뱅쿠버에서 제4회 세계대회를 개최,세계 시민들을 위한 공동규약을 만들예정”이라고 밝혔다. 오는 12월 캐나다 몬트리올에서 시민단체회의를 개최하는 시릴 리치 몬트리올 시민단체회의장은 “NGO활동의 강화를 위해 유엔과의 구체적인 연대가 필요하다”면서 “양성평등과 경제적 평등,환경활동 이외에 시민활동을 위한윤리강령 등을 채택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오는 2000년 5월 유엔본부에서 전세계 7,000여명을 초청,밀레니엄 포럼을준비하고 있는 테체스테 아데롬 공동의장은 “밀레니엄 포럼은 새천년을 앞두고 NGO들의 활동을 정리하는 한편,그동안 이론적으로만 논의돼온 결의문이 얼마나 잘 이행되고 있는지 평가하는 자리가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이번공동회견의 사회를 맡은 유재현(兪在賢) 대회 공동사무총장은 “서울대회를시작으로 세계시민운동센터 등을 개설,전세계 다양한 시민단체들의 활동을지원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김미경기자 chaplin7@ * 탈북난민 보호 국제기구 탄생 99서울NGO세계대회에 참가중인 각국 NGO들은 대회 마지막날인 15일 탈북 난민을 보호하기 위한 국제연대기구를 결성,탈북난민의 인권보호를 위해 적극적으로 나서기로 했다. 탈북난민보호UN청원운동본부(본부장 김상철)는 이날 오후1시쯤 서울 올림픽공원 펜싱경기장 회의실에서 메이리드 맥과이어 노벨평화상 수상자와 세계 NGO대표들이 참석한 가운데 탈북난민보호UN청원서 공동서명식을 갖고 탈북난민보호국제협의회(ICNKR)를 결성했다. 이날 협의회 결성은 대회중 열린 ‘탈북난민의 인권’ 주제의 분과토의 결의와 메리 로빈슨 UN인권고등판무관의 권고에 따른 것으로 맥과이어씨와 일레인 발도프 UN공보처 NGO 집행위의장이 공동의장,김상철 변호사가 사무총장,조안 리 스타커뮤니케이션 사장이 집행이사를 맡았다. 협의회는 앞으로 중국내 탈북자의 실태와 강제송환시 받게될 불이익에 관해 현지조사를 실시,국제사회에 공표할 예정이다.또 UN난민고등판무실과 UN인권고등판무관실및 중국·한국 정부를 상대로 탈북자에게 국제법상 난민지위를 부여하는데 필요한 각종 자료제공과 여론조성·정책건의를 하게 된다. 김성호기자
  • 서울선언문 채택 NGO 대회 폐막

    지난 11일 서울 올림픽공원에서 개막된 ‘99서울NGO(비정부기구)세계대회’가 5일간의 일정을 마치고 15일 폐막됐다. 대회 참가자들은 ‘미래의 진로’를 주제로 마지막 전체회의를 가진뒤 이날 오후 4시30분쯤 체조경기장에서 열린 폐회식에 참가,NGO의 향후 활동지침을 담은 ‘서울NGO밀레니엄선언문’을 채택했다. 김성호기자 kimus@
  • ‘무소불위’ 외국계 은행

    씨티은행 명동지점장이 최근 과중한 업무에 시달리다 스스로 목숨을 끊은사건이 발생하면서 외국계 은행의 노동력 착취와 불법고용 관행이 문제가 되고 있다. 씨티은행 노조(위원장 엄진수·32)는 14일 명동지점장 안모씨(38)가 한강에 투신 자살한 것과 관련,“씨티은행은 불법을 일삼으며 한국정부를 철저히무시하고 있다”면서 “IMF 이후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는 파렴치한 외국자본가들에 의해 한국인 종업원들은 비참하게 죽어가고 있다”고 주장했다. 국민회의 방용석(方鏞錫)의원도 이날 중앙노동위원회와 한국산업인력공단에 대한 국회 환경노동위 국감에서 “씨티은행이 지난 6년간 정규직 고용을 회피한 채 불법 근로자공급업체로부터 파견근로자를 채용해 왔다”면서 대책마련을 촉구했다.씨티은행은 지난해 근로자 파견업이 합법화된 후에도 150여명 정도의 근로자를 파견받아 관련 법규에서 허용하고 있는 직종을 벗어나일반 행원의 업무를 담당토록 하는 등 근로자 파견법을 위반하고 있는 것으로 지적됐다. 김인철기자 ickim@
  • [매체비평] 조선·동아의 표정읽기

    중앙일보 사태가 주초를 고비로 수습국면으로 접어들면서 그동안 이번 사태를 보는 조선·동아·중앙의 표정이 새삼 화제가 되고 있다.결론부터 말하자면,중앙일보는 당국과의 전면전에 ‘정신이 없었고’,조선은 당국과 라이벌(중앙)간의 격전을 ‘즐기면서’ 줄타기를 했고,동아는 그 와중에 ‘2등 굳히기’를 위해 또다른 측면에서 총력전을 편 것이 ‘허둥대는’ 모습으로 비쳐지기도 했다. 이번 사태는 중앙일보가 당국에 ‘판정패’(혹자는 KO패)를 당했다는 것이언론계 안팎의 평가인듯 하다.중앙으로서는 전력투구,힘겨운 싸움을 벌였으나 결과적으로 무리였던 셈이다.중앙이 유례없는 내부단합을 과시했지만 패한 것은 아무리 둘러봐도 주변에 ‘지원군’이 하나도 없었다는 사실이다.과거의 ‘카르텔동지’는 간 곳이 없고 대신 경쟁사회의 ‘비정함’이 자리를차지한 셈이다.8일자 중앙의 시사만화 ‘왈순아지매’에서 ‘정글의 법칙엔우군이 없고 대다수 구경꾼과 함께 ‘하이에나의 웃음’이 있다’고 한 것이 그 한 증표라 하겠다.‘우군이 없다’고 한것은 그렇다치더라도 동업타사를 ‘비열한 동물’의 상징인 ‘하이에나’에 비유한 것은 주목되는 대목이자 만평자의 자가당착이 아닌가 생각된다. 지난 1일부터 9일까지 지면을 살펴보면,중앙은 1면을 비롯,2∼5면(종합·해설),6면(사설·오피니언),사회면을 연일 이번 사태 관련기사로 채웠다.사설의 경우 2건을 게재하면서 이번 사태 관련 사설을 머릿기사로 올렸다.또 개인칼럼,공동칼럼,외부기고,취재일기는 물론 시사만화·만평에서도 예외가 아니었다.한마디로 중앙은 ‘옥쇄’의 자세로 총공세를 폈다.특히 특별취재팀을 구성,홍사장이 구속수감된 2일자부터 ‘국민의 정부 언론탄압 실상을 밝힌다’ 제하의 시리즈를 총 5회에 걸쳐 연재하면서 당국과 ‘전면전’을 폈다.관점은 다르지만 보도량에 있어 조선·동아 역시 중앙에 버금갈 정도다. 동아는 1∼9일 연일 1면에서 이를 다루었고 조선도 9일에 이르러서야 1면에서 이 기사가 사라졌다.두 신문 모두 약속이라도 한듯이 4일자 사설에서 ‘중앙일보사태’를 짚었는데 관점은 판이하다. 조선은 전형적인 ‘줄타기’를 보여줬다.‘언론사주라고 해서 탈세로부터자유로울수 있는가’라고 묻고는 홍 사장의 불이익(구속)이 정권에 밉보인‘α’때문이라고 보고 있다.한마디로 중앙과 당국에 대해 양비론 펴며 빠져나갈 ‘구멍’을 교묘히 만들고 있다.특히 ‘대기업이 언론을 부수적으로 운영해서도 안된다’며 차별성을 부각시키면서도 중앙일보측에서 나오는 해명서 전문을 꼬박꼬박 실어줘 중앙측의 할 말을 다 들어주는 양 선심을 썼다.6일자에서 홍 사장이 포승줄에 묶여 검찰에 소환되는 사진을 단독취재하고도포승줄이 보이지않게 상반신만 게재한 것도 중앙일보에 대한 ‘선심’으로보인다.조선은 선심은 선심대로 쓰면서 ‘재미’는 혼자 다 보고 ‘표정관리’에도 철저했다.반면 동아는 ‘중앙사태’를 이용하였다.4일자 사설에서 유신시절 동아가 받은 ‘광고탄압사태’를 자찬하고는 언론자유는 책임과 의무가 수반돼야 한다며 이번 사태와 관련,‘중앙책임론’을 강조했다.6일자에서는 자사 기자가 찍지도 않은 홍사장의 ‘포승줄사진’을 초판 1면에 게재했다가 45판에서는 뺐다.아마 ‘오버’했다고 판단했던 모양이다.그러나 동아는 이번 ‘중앙사태’를 계기로 ‘2등 굳히기’를 도모했던 것으로 보인다.9일자에서 자사 지국장이 공정위에 중앙의 ‘무가지살포’ 고발 사실을 집중거론하고 다음날 사설에서 다시 이 문제를 다뤘다. 또 한나라당 내에서 ‘중앙일보지원’을 놓고 불협화음을 빚고 있다는 기사도 동아만 다뤘는데 취재원이 모두 익명처리된 것이 눈길을 끈다.동아는 여러군데서 표정관리를 제대로 하지 못한채 ‘허둥댄’ 구석이 역력하다.‘중앙사태’와 비슷한 시기에 터진 ‘노근리학살사건’에 대해 ‘빅3’는 겨우체면치레 보도만 했을 뿐이다.중앙이 1일자 ‘왈순아지매’에서 미국 AP통신이 보도한 것을 두고 ‘우리가 할 일인데 쥐여 살다보니’라고 한 것은 명백한 ‘진실왜곡’이 아닐 수 없다. 정운현 특집기획팀 차장 jwh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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