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단계 규제개혁 어떻게/ 대상과 방향
국민의 정부가 집권 후반기에 추진중인 2단계 규제개혁은 한마디로‘체감되는 규제개혁’이라 할 수 있다.그동안 상당한 규제개혁의 성과에도 불구하고 국민이 느끼는 것과는 거리가 있었다는 판단에서다.
개혁의 대상은 하위규정과 유사행정규제.법적 근거가 희박하고 자의적으로 운용되면서 실질적으로 국민을 옭아매고 있는 것들이다.그동안 워낙 광범위하게 생활 주변에 산재해 있어 현황 파악도 어려운 실정이다.
[하위규정] ‘국유철도내에서 구내영업을 충실히 수행할 능력이 없다고 인정되는 자나 병역미필자는 영업을 할 수 없다’ 구내영업 자격을 규정한 철도청의 고시 내용이다.우선 영업을 제한하는 기준이 자의적이기도 하지만 병역미필자까지 제한하는 것은 분명 지나친 규정이다.이처럼 정부 부처의 고시,공고 등은 규제내용이 지나칠 정도다.
불합리한 경우도 많다.
그나마 행정규제기본법상 정해진 훈령·예규·고시·공고는 좀 나은편이다. 부처 자체적으로 운용하는 내규와 지침,요강,요령은 훨씬 심하다.
고시나 공고 등은 발표와 함께 순번이매겨져 관보에 게재돼 관리가가능하다. 그러나 내규 등은 아예 내용을 알 수도 없고 언제 어떻게제정됐는지 해당 내규에 제한을 받는 사람들조차 파악하기 어렵다.부처 멋대로 규정을 양산하더라도 이를 거르거나 심사할 수 있는 장치도 없다.법령근거가 희박해 ‘규제 법정주의’에 위반되는 것은 대표적인 문제점이다.
지난 5월 36개 중앙행정기관이 규제개혁위원회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소관 하위규정은 8,408개다.하지만 규제개혁위는 이 수치를 믿지 않는다.각 부처가 적극적으로 발굴했다고 보지 않기 때문이다.
규제개혁위는 법령 형태를 갖추지 않은 내규·지침 등에 대해서는‘상향 규정화’를 추진하고 있다.상위법령과의 합치여부 등을 명확히 따져 관리하겠다는 뜻이다.법령 형태를 갖춘 고시·공고라도 불합리한 것들은 폐지하거나 개선토록 하고 있다.
[유사행정규제] 행정기관의 업무가 아니면서도 국민으로서는 실질적인 규제로 여겨지는 업무이다.중앙부처의 산하 기관이나 단체들이 자체 규정으로 운용하는 것들이다.산하 기관·단체들의 자체규정은 해당 부처의 규제보다 많게는 10배가 넘기도 한다.‘배보다 배꼽이 더큰’ 현상이다.국민들을 과도하게 규제하는 주범인 셈이다.이 가운데 상당수는 아예 법령근거도 없다.
이런 유사행정규제를 양산하는 기관은 각종 공단이나 공사에서부터협회,박물관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보건복지부 산하 국민연금관리공단은 가입자내역 등을 변경할 때 반드시 주민등록등·초본을 첨부토록 하고 있다.재정경제부 산하 기술신용보증기금은 신용조사자료 접수때 보증관련 서류를 지나치게 많이요구하고 있다.이런 단체들은 행정관청도 이미 없앤 불필요한 서류를특정기간내에 반드시 제출할 것 등을 규정한다.
여러 박물관들이 열람품목을 근거없이 제한하거나 관람료 환불을 금지하는 것도 관람자의 권리를 제한하는 규제로 꼽힌다.
산하단체들의 각종 규정을 파악,불합리하거나 법적근거가 없는 것들을 폐지·개선토록 하는 것이 규제개혁위의 방침이다.
이지운기자 jj@.
*규제완화 수범기관 노동부.
노동부는 올해 규제완화 수범기관으로 선정됐다.노동부 및 산하단체가 각종 규정을 통해 국민의 권리와 의무를 제약해온 규제 2,702건가운데 55.6%에 이르는 1,502건을 폐지 또는 정비하기로 한 ‘실적’때문만은 아니다.
규제완화 지침이 시달되면 각 국·실이 공급자 입장에서 취합해 올린 안을 적당히 얼버무려 보고하던 방식에서 탈피해 순수 민간인으로‘규제정비 특별위원회’를 구성, 수요자 입장에서 모든 규제의 타당성 여부를 걸러냈기 때문이다.
노동부의 특별위원회 구성,운영방식은 수범사례로 채택돼 지난 3월20일 국무총리 지시로 전 부처에 확산토록 공문이 시달되기도 했다.또지난 5월22일 국무조정실 주관으로 열린 ‘하위규정 및 유사행정규제정비 규제개혁담당관회의’에서 이채필(李埰弼) 노동부 행정관리 담당관이 노동부의 수범사례를 발표하기도 했다.
노동부는 지난 3월 특위에 참여할 민간인 검토위원 18명을 선정,위촉한 뒤 고용정책,능력개발,노정·근로기준·근로여성,산업안전,산업보건 등 5개 분과로 나눠 3개월간의 검토작업을 거친 끝에 ▲단순폐지 595건 ▲산하단체 규정을 정부규정으로 변경 408건 ▲상위법령에위임근거 마련 또는 규제의 품질 개선 443건 등 총 1,502건의 규제를1년내 정비하기로 의결했다.
주요 개선사례를 들면 여성가장실업자 취업훈련 예규는 직업능력개발훈련 실시상황을 ‘매분기 다음달 10일까지 보고’토록 돼 있는 상위법령인 근로자직업훈련촉진법 시행령의 위임범위를 벗어나 자신들의 편의에 따라 ‘훈련과정 종료후 5일 이내’보고토록 했으나 이를상위법령과 일치시켰다.
또 일하는 여성의 집 사업주체의 자격,운영관련 각종 보고,운영실적이 극히 저조한 경우 운영비 차등지원 및 삭감 또는 취소 등을 규정한 ‘일하는 여성의 집 설립운영지침’은 상위법령의 법적 근거없이운영된 것으로 드러나 상위법령에 근거를 마련하기로 했다.법적 근거도 없이 연예인 공급사업자들로 구성된 협의체가 국외취업 희망 연예인들에게 소양교육을 시키도록 규정한 ‘연예인 국외공급업무 처리지침’은 폐지키로 했다.
이밖에 상위법령의 위임범위를 벗어나 근로복지공단이 임의로 의무를 부과한 ‘산업재해보상보험 요양처리규정’과 비제조업 근로자의성수기 콘도 이용을 제한한 ‘중소기업 여가활동지원 운영규정’ 등은 삭제키로 했다.
우득정기자 djwootk@.
*현황과 문제점.
2단계 규제개혁은 97년 8월부터 준비됐다.행정규제기본법이 제정돼법적 근거가 생긴 뒤부터다.
그후 98년 2월 시행령이 만들어졌고 부칙은 1년의 유예기간을 두었다.따라서 지난해 2월까지는 하위규정과 유사행정규제에 대한 정비는마무리됐어야 했다.
하지만 시한이 1년도 훨씬 지난 지금까지 2단계 규제개혁은 별 진전이 없다.정부 각 부처는 올 초 규제개혁위원회에 정비가 마무리됐다고 보고했지만 규제개혁위의 조사결과 형식적인 정비였음이 드러났다.
우선 많은 기관이 정비대상 규정과 규제를 누락했다.하위규정은 철저한 전면 재검토를 거쳐야만 발굴이 가능하다.체계적이고 심도있는점검을 거치려면 별도의 정비작업단을 구성해야만 한다.하지만 상당수의 부처가 최근에서야 작업단을 구성했다.그나마 규제개혁위로부터수차례에 걸친 독촉이 나온 뒤의 일이다.
경찰청 같은 기관은지금까지 단 1차례만 회의를 열었다.
이러다 보니 유사행정규제를 갖고 있는 산하단체마저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상태다.당연히 유사행정규제의 정확한 수도 알 수 없다.
정비작업이 지지부진한 데는 부처 기관장들의 의욕 부족이 큰 몫을차지한다.규제개혁위의 한 관계자는 “제대로 된 정비를 위해서는 기관장의 열의가 필수적”이라고 지적했다.하위규정과 산하단체의 규제는 해당 부처가 아니면 파악할 수 없기 때문에 해당 부처가 비협조적이면 정비는 불가능하다는 설명이다.
더구나 유사행정규제는 각 부처가 지도감독권을 적극적으로 행사하지 않으면 정비할 수 없다.특히 부처의 지원을 받지 않는 각종 협회가 부처의 권고사항을 받아들이지 않고 버티기로 나온다면 별 도리가없는 상황이다.
이런 상황이 계속된다면 하위규정 등에 대한 정비는 연내에도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이다.
이지운기자.
*산하단체 규제 사례.
유사행정규제의 대표적인 예가 각종 협회,협동조합들의 규제다.
회원들이 반드시 협회를 경유하거나,거쳐야 하는 절차를 두고 회원들을 통제하고 불필요한 부담금을 물리는 내용등이다. 지방의 한 법무사회는 합동사무소 가입을 강제하고,사무원을 채용할 때는 지부 소속 전원의 동의서를 첨부토록 하거나 특정지역에서만 사건을 수임하게 하고 있다. 대한의사협회,병원협회의 휴업 및 휴진 요구권은 개별의사·병원의 영업활동을 제한하는 불합리한 규제로 꼽힌다. 정관을어겼을 때에는 3년 이하의 회원권리를 정지시키는 등 ‘왕따’시키기도 한다.
산업자원부 산하 한국섬유산업연합회는 특별회원과 일반·정회원을분리,일반회원 등의 협회 탈퇴를 제한하고 있다.사업자 수를 제한,비회원의 승단심사를 거부하는 서울시태권도협회,가격경쟁을 제한해 연회비의 하한선을 준수토록 요구하는 한국등산중앙회 등 사례는 일일이 열거하기 어려울 정도로 많다. 협회는 생산·출고·거래를 비롯,사업활동·사업자수·사업내용 등을 제한해 경쟁을 가로막고 가격을결정·유지하며 판매조건을 결정해 불공정거래를 강요한다.
중앙부처의 산하기관을 모두 합치면 632개다.이 모든 기관이 저마다규제를 가지고 있지는 않다. 여기에는 순수한 연구기관이 포함됐고,국민들에게 서비스를 하는 기관이나 단순히 예산만을 집행하는 기관도 있다. 법무부 산하 법률상담소나 재정경제부 산하 한국소비자보호원 등은 봉사기관이다.
대체적으로 규제성 규정이나 지침을 갖고 있는 기관은 부처로부터업무를 위임받은 공사나 협회,중앙회 등을 꼽을 수 있다.각종 사업단이나 재단 등도 규제를 갖고 있을 수 있다.아직 파악이 안됐을 뿐이다.
2단계 규제개혁의 애로점은 바로 여기에 있다.어떤 단체가 어떤 식으로 규제를 하는지 파악하기가 쉽지 않다는 점이다.
이지운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