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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두환, 연희동 자택 나와 광주로 이동

    전두환, 연희동 자택 나와 광주로 이동

    전씨, 오전 8시 32분 자택에서 나와부축 없이 혼자 걸어 승용차 탑승일부 보수단체, “30년 전 일로 광주 법정에 세우느냐”5·18 광주민주화운동과 관련해 사자(死者)명예훼손 혐의로 기소된 전두환(88) 전 대통령이 11일 재판 출석차 광주로 출발했다. 이날 오전 8시 32분, 전씨는 부인 이순자(80)씨와 함께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 자택을 나섰다. 검은색 정장에 연한 노란색 넥타이 차림의 전씨는 아무 말 없이 에쿠스 승용차에 탑승했다. 다른 사람의 부축을 받지 않고 혼자 걸어나왔으며, 거동에는 큰 이상이 없어 보였다. 전씨 일행이 탄 에쿠스 승용차가 출발하자 경호요원과 형사들이 탑승한 것으로 보이는 승용차와 승합차가 뒤따랐다. 앞서 광주지법 재판부는 전씨가 알츠하이머와 독감 증세를 호소하며 재판에 2차례 불출석하자 구인장을 발부한 바 있다. 전씨는 2017년 4월 펴낸 회고록에서 고(故) 조비오 신부를 ‘거짓말쟁이’로 비난한 혐의로 불구속 기소됐다. 조비오 신부는 5·18 당시 헬기 사격을 목격했다고 증언했다. 이날 전씨 자택 앞에는 보수 단체 회원 수십명이 집회를 벌이기도 했다. 전국구국동지회와 자유연대, 특전사5·18진상규명위원회 등의 회원들은 군복이나 패딩 차림으로 고성능 확성기를 들고 “30년이나 지난 일을 가지고 왜 하필 광주의 법정에 (전씨를) 세우느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일부는 전씨의 이웃집 담장에 올라가다가 경찰의 제지를 받았다. 보수단체 회원들이 취재진들에게 항의하는 등 전씨가 광주로 떠나고 나서도 자택 인근은 소란스러웠다. 경찰은 전씨의 자택 주변에 평소보다 많은 경비 인력을 배치해 충돌 등 만약의 상황에 대비했다. 광주지법까지는 서대문경찰서 소속 2개 형사팀 10여명이 전씨와 동행한다. 피고인 호송 차원이다. 또 전씨 경호를 담당하고 있는 경찰 경호대도 광주로 향한다. 경찰은 전씨의 동선에 따라 교통을 통제할 계획은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전씨는 이르면 오후 1시 30분쯤 광주지법에 도착할 전망이다. 전씨가 도착하면 경찰은 법원이 발부한 구인장(피고인 강제 소환을 위한 영장)을 집행한다. 자진 출석과 고령임을 이유로 수갑을 채우지 않는다. 재판은 오후 2시 30분 201호 법정에서 시작된다. 김정화 기자 clean@seoul.co.kr
  • 극우단체로 둘러싸인 전두환 자택…싸늘한 민심과는 ‘괴리’

    극우단체로 둘러싸인 전두환 자택…싸늘한 민심과는 ‘괴리’

    “왜 30년 전 일로 광주 법정에 세우느냐” 항의경찰, 충돌 대비해 평소보다 경비 인력 늘려전씨, 오늘 광주행…2시 30분부터 재판 시작“5·18 유공자 명단 공개하라!” 11일 오전 7시 30분,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 전두환(88) 전 대통령 자택 인근에는 보수 단체 회원 수십명이 몰려왔다. 전국구국동지회와 자유연대, 특전사5·18진상규명위원회 등의 회원들로 사자명예훼손 혐의 재판정에 서기 위해 광주로 떠날 예정인 전씨의 법정 출석을 반대하는 세력이다. 군복이나 패딩 차림의 이들은 고성능 확성기를 들고 전씨 집 앞에 있던 취재진을 향해 “가짜 (5·18) 유공자나 취재하라”고 소리쳤다. 광주 법원 출석을 앞둔 이날 아침 전씨 자택 앞 분위기는 전씨를 싸늘하게 보는 민심과는 괴리가 컸다. 집회에 참가자들은 “30년이나 지난 일을 가지고 왜 하필 광주의 법정에 (전씨를) 세우느냐”고 항의조로 말하기도 했다. 일부는 전씨의 이웃집 담장에 올라가다가 경찰의 제지를 받았다. 경찰은 전씨의 자택 주변에 평소보다 많은 경비 인력을 배치해 충돌 등 만약의 상황에 대비했다. 전씨는 이날 오전 8시 30분쯤 자택을 나설 예정이다. 미리 준비한 승용차를 이용하게 될 전씨의 광주행에는 부인 이순자 여사와 변호사가 동행한다. 평소 전씨 자택에는 의경 1개 중대(60명)가 배치돼 있었다. 전씨가 광주로 이동하는 동안 서대문경찰서 소속 2개 형사팀 10여명이 전씨와 동행한다. 피고인인 전씨를 호송하기 위해서다. 또, 전씨 경호를 맡은 경찰 경호대도 경호차를 타고 함께 광주로 떠난다. 경찰은 전씨의 동선에 따라 교통을 통제할 계획은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경찰 관계자는 “재판 시간에 맞출 수 없는 경우가 발생하면 조처할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전씨 일행은 광주에 도착하기 전 모처에서 점심을 먹을 것으로 보인다. 전씨는 오후 1시 30분쯤 광주지법에 도착할 전망이다. 전씨가 도착하면 경찰은 법원이 발부한 구인장(피고인 강제 소환을 위한 영장)을 집행한다. 다만, 자진 출석과 고령임을 이유로 수갑을 채우지 않는다. 재판은 오후 2시 30분 201호에서 개시된다. 재판장인 장동혁 부장판사가 피고인의 이름과 나이, 직업, 주민등록번호, 주소 등을 물어보면 전씨가 대답해야 한다. 이후 검사가 공소 사실(공소장에 적힌 범죄 사실)의 요지를 낭독한 뒤 변호인이 이에 대한 의견을 밝힌다. 이때 피고인이 한마디 정도 의견을 피력하기도 하는데 전씨가 입장을 내놓을지 주목된다. 첫 공판이 언제 끝날지 가늠하기 어렵다. 하지만 늦어도 오후 6시 전에는 끝날 가능성이 높다. 재판이 끝나면 전씨는 다시 승용차에 올라와 경호팀 등과 함께 다시 상경길에 오를 예정이다. 김정화 기자 clean@seoul.co.kr
  • 김정은 “수령 신비화하면 진실 가려”…‘신격화 배제’ 이례적 언급

    김정은 “수령 신비화하면 진실 가려”…‘신격화 배제’ 이례적 언급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수령의 혁명 활동과 풍모를 신비화화면 진실을 가리우게(가리게) 된다”라고 말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9일 보도했다. 김정은 위원장은 지난 6~7일 평양에서 열린 제2차 전국 당 초급선전일꾼대회에 보낸 서한에서 “수령은 인민과 동떨어져 있는 존재가 아니라 인민과 생사고락을 같이 하며 인민의 행복을 위하여 헌신하는 인민의 영도자”라면서 이같이 강조했다. 이어 “수령에게 인간적으로, 동지적으로 매혹될 때 절대적인 충실성이 우러나오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김정은 위원장의 ‘신비화’ 언급은 그 동안 최고지도자를 미화하는 것을 넘어서 신비화하는 데 애쓴 기존 북한의 선전·선동 방식의 변화를 시사한 것으로 보인다. 2017년 신년사에서 “능력이 따라서지 못하는 안타까움과 자책 속에 지난 한 해를 보냈다”고 말하는 등 김정은 위원장이 보여준 특유의 솔직한 화법의 연장선으로 보이는 대목이다. 김정은 위원장은 이어 “현 시기 우리 당 사상사업에서 중요한 과업의 하나는 사회주의 경제 건설을 다그치는 데 선전·선동의 화력을 집중하는 것”이라면서 “오늘 우리 당에 있어서 경제 발전과 인민 생활 향상보다 더 절박한 혁명 임무는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앞으로 나라의 대외적 환경과 대외경제 활동이 개선된다고 하여도 자립적 발전 능력이 강해야 인민 경제의 주체성을 견지할 수 있다”면서 “이것은 먼 장래의 일이 아니라 당면하고도 절박한 문제이며 또한 우리나라의 항구적인 경제발전전략”이라고 역설했다. 현재 북한이 처한 현실에서 경제 발전이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한 것이다. 특히 올해가 북한의 국가경제발전 5개년 전략의 4년차에 해당하는 만큼 경제 발전에 총력을 기울이도록 선전·선동 활동을 벌일 것을 촉구한 것으로도 풀이된다. 한편으로는 2차 북미정상회담 결렬로 경제 제재 완화 관련 성과를 이루지 못하면서 민심이 다소 어수선해질 것을 우려, 경제 발전을 위한 대내적인 노력을 강조한 측면도 있다. 다만 김정은 위원장은 2차 북미정상회담과 관련해서 직접적인 언급을 하지는 않았다. 이번 2차 당 초급선전일꾼대회는 18년 만에 개최된 것으로, 김정은 체제 들어 처음 열리는 것이다. 당 초급선전 일꾼이란 각 기관, 단체, 공장, 기업, 협동농장 등에서 일반 주민들을 대상으로 사상교양·선전선동 사업을 하는 간부들을 통칭한다. 이들은 노동당이 추진하는 정책과 방향성을 말단에서 주민들에게 설파한다는 점에서 ‘모세혈관’과 같은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행사의 보고는 리영식 선전선동부 제1부부장이 맡았다. 한편, 일선에서 물러난 뒤 최근 복귀한 김기남 전 선동선전부장의 직함은 ‘노동당 중앙위원회 고문’으로 확인됐다. 그는 이날 대회 참가자들에게 김정은 위원장의 서한을 전달했다. 신진호 기자 sayho@seoul.co.kr
  • “매각계약 저지” 대우조선·현대중 노조 동시 집회

    “매각계약 저지” 대우조선·현대중 노조 동시 집회

    산업은행과 현대중공업이 대우조선해양 매각 본계약을 한 8일 상경 투쟁에 나선 대우조선해양 노동조합이 경찰과 충돌을 빚었다. 금속노조 현대중공업지부 간부 100여명도 동시에 집회를 벌였다. 금속노조 대우조선지회 노조원 500여명은 이날 오후 1시 서울 여의도 산업은행 앞에서 집회를 연 뒤 “산업은행과 대우조선해양의 매각 본계약 체결을 저지해야 한다”며 본관 진입을 시도했다. 노조원들은 앞서 오전 버스 20여대에 나눠 타고 거제 옥포조선소를 출발해 정오쯤 여의도에 도착했다. 당초 서울 종로구 계동 현대 사옥 앞에서 집회한 뒤 청와대로 행진할 예정이었으나 매각 계약 체결 장소가 산업은행으로 확인되자 장소를 변경했다. 경찰은 혹시 모를 충돌에 대비해 16개 중대 1200여명을 종로에 배치했다가 경력을 모두 긴급히 여의도로 옮겼다. 대우조선 노조는 여의도 산업은행 본관 앞에서 “매각 반대” 목소리를 높였고, 신상기 금속노조 대우조선 지회장이 삭발한 뒤 전격 본관 진입을 하려다가 이를 막아선 경찰과 충돌했다. 신 지회장은 “이명박·박근혜 정권 당시 부실에 빠진 대우조선을 노동조합 동지들의 피땀으로 정상화했는데, 촛불 정부를 표방하는 문재인 정부가 현대 자본에 회사를 헐값에 갖다 바치는 것은 동의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그는 “오후 3시면 산업은행에서 대우조선해양 매각 본계약을 체결한다”며 “산업은행 철문을 넘고 본계약 장소까지 들어가 오늘 결사의 각오로 막아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오후 2시 30분쯤에는 울산에서 상경한 금속노조 현대중공업지부 집행부와 대의원 등 간부 100여명이 산업은행 앞 집회에 합류했다. 박근태 현대중공업지부장은 “경영진은 ‘대우조선이 인수되면 현대중공업이 나아진다’고 주장하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며 “합병으로 몸집이 커진 상황에서 일감이 떨어지면 또다시 대규모 구조조정이 찾아올 테고, 한국 노동자가 모두 몰락할 것”이라고 말했다.경찰에 따르면 이날 집회에 참여한 노조원 5명이 현장에서 경찰 측에 폭력을 행사해 공무집행방해 혐의로 연행됐다. 주최측은 “연행된 조합원 5명이 풀려날 때까지 이 자리에서 기다리겠다”며 산업은행 앞 농성을 이어가겠다고 밝혔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금요일의 서재]만화 ‘드래곤볼’ 속에 ‘경영’, ‘제국주의’ 숨어 있다고?

    [금요일의 서재]만화 ‘드래곤볼’ 속에 ‘경영’, ‘제국주의’ 숨어 있다고?

    토리야마 아키라의 만화 ‘드래곤볼’에 등장하는 손오공의 맞수 ‘프리더’를 다른 시각으로 본다면 어떨까. 자신의 종족을 이끄는 실력 있는 뛰어난 경영인으로 볼 수 있겠다. 그러나 미국 제국주의를 상징하는 캐릭터로도 분석할 수 있다면? 완결 이후 20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인기 있는 ‘드래곤볼’을 나름의 시각으로 분석한 신간 2권이 눈에 띈다. 한 권은 드래곤볼에서 ‘경영’을 배울 수 있다 주장하고, 다른 책은 드래곤볼이 ‘일본 제국주의’를 상징한다고 말한다. 그저 재미로만 읽었던 만화책을 이런 식으로 분석한 게 놀라울 따름. 이번 주 금요일의 서재에서는 드래곤볼을 다른 시각으로 살펴본 신간 두 권을 묶었다. ●손오공→손오반, CEO 세대교체 실패사례=‘드래곤볼에서 경영을 배우다’(더봄)는 드래곤볼을 경영으로 풀어낸다. ‘초베스트셀러 만화로 즐기는 난생처음 경영학’이란 부제답게, 만화 장면에 관련 이론을 적용한다. 조직개발 전문가인 저자는 어린 시절 즐겨보던 만화 드래곤볼을 성인이 된 후 다시 읽어보고 재밌는 점을 발견한다. 만화 주인공들이 강한 적을 상대하고자 머리를 맞대는 모습을 보니 기업 간 경쟁에서 승리하기 위한 경영 전략이 보인 것이다. 예컨대 주인공 손오공을 기업의 CEO라고 해보자. 드래곤볼 연재가 길어지면서 토리야마 아키라는 지속적인 어린 독자 유입을 위해 주인공의 2세를 등장시키기로 한다. 손오공보다 훨씬 강하고 가능성도 큰 손오반이 등장한다. 손오공은 죽고, 손오반이 전체 극을 이끈다. 그러나 독자들의 항의 전화가 빗발쳤다. 드래곤볼 7개를 모아도 죽어버린 손오공을 살릴 수 없도록 했지만, 하루만 이승으로 올 수 있도록 설정이 바뀐다. 저자는 이를 ‘세대교체’로 설명한다. 갑작스런 리더의 부재는 조직을 위기에 몰아넣을 수도 있다. 이를 극복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체계적인 승계 프로그램을 구축해야 하며, 충분한 경험 시간의 확보가 필요하다. 저자는 적을 쓰러뜨리면 더욱 강한 적이 계속 등장하고, 치열하게 수련을 쌓지 않으면 도태되는 드래곤볼의 배경이 끊임없이 등장하는 경쟁 기업과 지속적인 혁신 없이는 살아남을 수 없는 지금의 비즈니스 환경과 매우 비슷하다고 말한다. 어제의 동지가 오늘의 적이 되거나, 어제의 적과도 이익에 따라 과감하게 손을 잡는 글로벌 경쟁시대의 역학 관계는 강한 적을 상대하고자 적군과 아군이 손을 잡는 드래곤볼 캐릭터들의 선택과 유사하다. ●드래곤볼 배경 2차대전, 손오공 일본 상징=드래곤볼이 단순한 만화의 수준을 뛰어넘어 비즈니스와 조직에 주는 영감과 통찰력 있는 메시지를 던진다고 앞선 책이 주장하지만, ‘드래곤볼, 일본 제국주의를 말하다’(아이네아스)는 드래곤볼이 일본 제국주의 요소를 아주 많이 담고 있다고 반박한다. 드래곤볼은 지금까지 16세기 중국 소설인 ‘서유기’에서 모티프를 가져온 판타지로 여겨졌다. 그러나 저자는 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의 역사를 소환하고, 전후 일본인의 자기정체성, 그리고 범아시아주의에 대한 일본인의 욕망을 여러모로 분석했다. 저자는 드래곤볼의 주인공인 손오공이 일본 제국주의를 상징한다고 설정했다. 베지터, 라데츠, 네퍼, 버독 같은 사이어인도 마찬가지다. 서구 제국주의로 프리더, 도도리아, 자봉을 각각 미국, 영국 프랑스로 놨다. 예컨대 프리더의 경우 초반에 캐리어를 타고 다니는데, 이는 휠체어를 탄 미국의 루스벨트 대통령을 연상케 한다. 프리더가 행성 베지터를 에너지 볼로 파괴하는 장면은 어떤가. 미국이 히로시마에 원자폭탄을 투하한 모습과 아주 흡사하다. 이렇게 보면 손오공의 맞수이자 같은 종족인 베지터는 일본사회의 엘리트주의를 대표하는 인물이다. 자신감으로 가득 찬 그는 미국을 상징하는 프리더에게 무참히 패배한 이후 분노하고 두려워하는 2차 세계대전 당시의 일본 엘리트로 풀이된다. 특히 이 과정에서 사이어인은 위기를 넘어 초사이어인이 되는데, 그 모습은 백인과 흡사하다. 일종의 백인을 지향하는 ‘클리셰’인 셈인데, 금발의 파란 눈은 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가 내세우던 이상적인 모습의 독일 아리아인을 상징하는 게 과연 우연이냐고 저자는 묻는다. 저자는 독자들이 만화 속에 일본 제국주의와 태평양 전쟁의 피해자인 그들 국가의 시각이 담겼다고 경고한다. 우리는 이에 반해 일본이 과거 세대의 죄를 지워가며 어떻게 과거를 기억했고, 또 기억하려 하는지를 주목해야 한다고 말한다. 저자의 주장이 반박하기 어려울 정도로 딱딱 들어맞으니 묘한 기분이 들 정도다. 다른 시각으로 본다는 일은 이처럼 재밌지만, 우리에게 고민거리를 던지기도 한다. 김기중 기자 gjkim@seoul.co.kr
  • [김대영의 무기 인사이드] 새롭고 강력해진 파이팅 팰콘 ‘F-16V’

    [김대영의 무기 인사이드] 새롭고 강력해진 파이팅 팰콘 ‘F-16V’

    미 록히드 마틴 에어로사가 생산중인 F-16은 현존하는 4세대 전투기 가운데 가장 많은 대수를 자랑한다. 4500여 대 이상이 생산되었으며, 우리 공군을 포함해 20여 개국에서 운용 중이다. 1만여 대가 생산된 소련의 미그 21과 5000여 대가 생산된 F-4 팬텀에 이어 3번째로 많이 생산된 제트 전투기이다.F-16 전투기는 1974년 2월 미국의 에드워드 공군기지에서 첫 비행에 성공했다. 이후 1978년 8월 미 공군에 본격적으로 배치되기 시작했다. 초창기 F-16 전투기는 F-15 전투기를 보조하는, 경전투기로 운용되었다. 그러나 이후 미 공군과 수출국의 요구사항이 더해지며, 다목적 중형 전투기로 진화했다. F-16 전투기의 다목적성은, 수출시장에서 성공을 거둔 핵심적인 이유였다. 지난 40여 년 동안 F-16 전투기는 다양한 파생형 기체가 만들어졌다. F-16 전투기의 최초 생산형인 A/B형을 시작으로, E/F형까지 발전했다. 여기에 더해 지난 2015년 10월 21일에는 AN/APG-83 능동전자주사식 위상배열 레이더와 신형 컴퓨터를 탑재한 F-16V 전투기가 첫 비행에 성공했다. 애초 F-16V 프로그램은 미 공군 F-16 전투기의 업그레이드 계획으로 시작되었다.핵심은 기존 F-16C/D 전투기의 기계식 레이더를 능동전자주사식 위상배열 레이더로 교체하는 것. 이와 관련된 컨설팅은 미 공군의 의뢰로 록히드 마틴 에어로사가 담당했다. 그러나 F-35 전투기의 개발과 양산비용이 기아급수적으로 늘어나면서 예산문제로 업그레이드 계획은 흐지부지 되었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발등에 불이 떨어진 건 동맹국들이었다. 특히 대만이 심각했는데 대만공군이 운용중인 F-16A/B 전투기들은 첨단화되는 중국공군 전투기에 맞서기 위해 업그레이드가 절실히 필요한 상황이었다. 결국 FMS 즉 미 대외군사판매로 진행되지만 대만공군이 주도가 되어 F-16V 프로그램이 본격화 되었고 뒤이어 우리나라도 참여하게 된다. 이 때문에 우리나라는 개발비용 일부를 대만에 보전해주게 된다. 대만공군은 지난 2017년 1월부터 대만의 항공기제작회사인 한샹(漢翔/AIDC)에서 F-16A/B 전투기 144대를 F-16V로 업그레이드하기 시작했으며 2023년까지 사업을 완료할 예정이다.F-16V 전투기는 AN/APG-83 레이더와 최신형 임무컴퓨터 그리고 중앙하단디스플레이가 추가된새로 설계된 디지털 조종석과 자동지상추락방지장치 등을 채용하여, 현존하는 F-16 계열 전투기 가운데 가장 진화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또한 기존 F-16 전투기의 업그레이드 뿐만 아니라 신규 생산되는 F-16 전투기에도 이러한 사양을 적용하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F-16 블록 70/72 전투기인데 F-16V 사양을 갖고 있으면서, 기존 F-16 전투기 보다 기체수명이 50% 가량 늘어났고 기골보강으로 인해 더 많은 무장을 탑재할 수 있다. F-16 블록 70/72 전투기는 최근 바레인과 슬로바키아에 판매되었다. 또한 대만공군은 F-16V 개조 외에 66대의 F-16 블록 70/72 전투기를 구매할 예정이다. 우리 공군의 KF-16 성능개량은 KF-16 전투기 134대를 F-16V로 업그레이드하는 사업이다. 일명 ‘KF-16V’로 알려진 KF-16 성능개량형은 1호기가 미국에서 테스트를 진행 중이며 연내에 국내로 들어올 예정이다. 김대영 군사평론가 kodefkim@naver.com
  • 유엔 “대기오염 연간 조기 사망자 전 세계 700만명…220만명 중국 등 서태평양 거주”

    유엔 “대기오염 연간 조기 사망자 전 세계 700만명…220만명 중국 등 서태평양 거주”

    유엔이 중국과 인도 등 아시아 지역의 대기오염 수준이 매우 심각하다며 경고했다. 데이비드 보이드 유엔 인권·환경특별보고관은 5일(현지시간) 유엔 인권이사회 상호 대화 세션에서 대기오염으로 인한 연간 조기 사망자가 세계적으로 700만명이고 이중 220만명이 중국을 포함한 서태평양 지역에 거주한다고 밝혔다. 보이드 보고관은 세계보건기구(WHO)가 2018년 5월 내놓은 통계을 인용해 이같이 밝히고, 특히 중국을 포함한 동아시아가 해당하는 서태평양 지역과 인도가 포함된 동남아시아 지역의 대기오염 문제를 거론했다. 그는 이날 인권이사회에 제출한 20쪽 보고서에서 ‘중국’을 11차례나 언급했다. 동남아 지역은 대기오염에 따른 연간 조기 사망자 수가 240만명에 이른다. 서태평양과 동남아 지역을 합치면사망자 수는 460만명으로 전체 조기 사망자 수의 65%를 차지한다. 아프리카(100만명), 유럽(50만명), 동지중해(50만명), 미주(30만명) 등 다른 지역과 비교하면 대기오염의 심각함이 그대로 드러난다. 보이드 보고관은 “고체 연료, 석유를 사용하고 실내에서 불을 피워 조리하는 것으로 인한 공기오염은 말라리아나 결핵, 후천성면역결핍증(AIDS)보다 더 큰 조기 사망 원인이 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전체 조기 사망자의 22%는 국제 교역과 관련이 있다며 “서유럽과 미국 등으로 수출되는 상품의 제조 과정에서 중국에서는 매년 10만명이 대기오염으로 사망하고 있다”고 말했다. 중국과 인도처럼 대기오염이 심각한 국가들이 최근 몇 년간 공기 질 관측소를 수백, 수천 곳 설치했지만 저렴한 센서의 신뢰성·지속성 문제는 여전히 의문으로 남아 있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보이드 보고관은 두 나라를 포함해 많은 선진국이 오염원 측정 방법을 설계해왔으나 비공식적인 영역에서 배출되는 오염원에 대해서는 측정의 불확실성이 남아 있다고 우려했다. 그는 중국이 공기 질 개선을 위해 많은 노력을 했지만 노르웨이의 경우 판매되는 신차의 60%가 전기차인 반면 중국은 2%에 불과하다며 전기차 보급 확대를 위한 정책적 노력도 병행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김규환 선임기자 khkim@seoul.co.kr
  • 계명대 대학일자리센터, 3년 연속 우수(최고등급) 대학에 선정

    계명대가 고용노동부와 한국고용정보원에서 주관하는 대학일자리센터 운영 평가에서 3년 연속 우수(최고등급) 대학으로 선정됐다. 이번 평가 결과로 계명대 대학일자리센터는 당초 2021년 2월까지였던 사업기간에 이어 1년 추가 지원을 받을 수 있게 되었다. 대학일자리센터는 대학 내 진로 및 취?창업 지원기능을 통합?연계해 대학생과 지역 청년들에게 특화된 고용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한 고용노동부 사업이다. 계명대학교 대학일자리센터는 2015년에 대학일자리센터 시범사업 대학으로 선정된 이후 대학 내 진로 및 취업의 컨트롤타워 기능을 수행하며 진로 및 취?창업 지원 서비스를 체계화하고 재학생, 졸업생, 타 대학생뿐만 아니라 지역의 청년들을 대상으로 진로?취업 상담 지원, 취?창업 역량 강화 프로그램 운영, 취업 지원 시스템 구축 및 가이드북 제공 등 다양한 사업을 전개해 오고 있다. 또한, 청년구직활동지원금, 청년내일채움공제 등 정부지원 청년고용정책 참여 안내 등을 통해 지역 청년들이 실질적 도움을 받을 수 있는 다양한 정보를 제공해 오고 있다. 특히 대구지역의 거점 센터 역할을 수행하여 지역의 다양한 유관기관, 기업체 및 대학과의 청년 고용 거버넌스 구축을 통해 잡매칭(Job Matching) 한마당, 대학리크루트 투어, 고용센터와 함께하는 청년고용정책 축제, 특성화고 지원 프로그램, 지역 대학 연합 취업캠프, 청년고용정책 홍보 치맥 페스티벌 등 지역 실업률 해소를 위해 노력해 오고 있다. 이성용 계명대 대학일자리센터장은 “기존 사업의 지속적인 운영과 함께 대구지역 취업유관기관과 연계프로그램을 확대 운영해 재학생, 졸업생 및 지역 청년층의 성공 취업을 위한 가교 역할을 더욱 충실히 수행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대구 한찬규 기자 cghan@seoul.co.kr
  • 전직 경찰관 ‘안전자문관’ 채용…안심 1번지로 거듭나는 종로구

    전직 경찰관 ‘안전자문관’ 채용…안심 1번지로 거듭나는 종로구

    서울 종로구는 주민들이 안심하고 살 수 있는 지역사회 조성을 위해 ‘2019 안전자문관 제도’를 운영한다고 6일 밝혔다. 구는 각종 사건 사고에 효율적으로 대비하기 위해 전문가로부터 주민 생활안전 조언을 받아 2014년부터 서울시 25개 자치구 중 최초로 안전자문관 제도를 도입한 바 있다. 구는 안전자문관 제도 운영을 위해 지난 1월 공개채용을 진행했으며, 종로경찰서 및 혜화경찰서 등에서 근무한 전직 경찰을 안전자문관으로 채용했다. 이들은 합동지도, 단속 등 경찰관서 연계사무, 어린이 보호구역 및 여성안전 등 권역별 취약지역 순찰, 식품위생 및 교통안전 분야에서 역할을 한다. 특별사법경찰관 수사관련 자문, 기타 쟁점사항 등에 대한 관련 법령 해석 및 법적 절차 진행 등의 업무도 수행한다. 김영종 종로구청장은 “안전자문관제는 행정의 전문성과 안전관리 역량을 높임으로써 각종 사고 예방에 도움을 준다”면서 “빈틈없는 안전 관리로 주민 모두가 안심하고 살 수 있는 종로를 만들겠다”고 말했다. 구는 구민 안전을 위해 올해 초 조직개편 때 지속가능국 내 재난안전과 및 건강도시과를 신설한 바 있다. 주현진 기자 jhj@seoul.co.kr
  • 머문 곳마다, 주위 사람들과 함께… 유관순 열사는 일상이 독립운동이었다

    머문 곳마다, 주위 사람들과 함께… 유관순 열사는 일상이 독립운동이었다

    3월 1일 교문 닫자 담 넘어 만세현장에 휴교령 땐 ‘고향서 운동’ 친구들과 결의 안성·진천·청주·연기·목천지역과 연락 거사 전날 밤엔 직접 봉화 올려 신호 공주형무소에서 함께 옥살이한 김현경 柳열사 수의 짓고 시신 수습·장례 치러판결문은 유관순 열사를 다 담지 못했다. 유관순이 판결문의 출발선이자 그를 아우내 장터 만세운동을 ‘계획’한 주동자로 구분짓긴 했지만 판결문 속 공소사실은 유관순의 일부일 뿐이었다. 유관순은 자신이 머무는 곳에서, 자신과 함께 하는 사람들과, 일상에서 독립운동을 했다. 1919년 3월 1일 독립선언서 낭독과 함께 만세운동이 벌어지자 유관순은 친구 4명과 이화학당 뒷담을 넘어 종로로 향했다. 교장이 학교 문을 잠궜기 때문이다. 이어진 3월 5일 학생단 만세운동에도 학교 몰래 참여했다 경찰에 붙잡혔지만 외국인 선교사들의 요구로 겨우 빠져나왔다. 유관순은 멈추지 않았고 3월 10일 휴교령이 내려지자 아예 고향에서 각자 만세운동을 벌이자고 친구들과 결의했다. 13일 충남 천안으로 돌아가던 유관순은 사촌언니 유예도, 친구 이정수·김복희와 함께 기차 안에서도 “대한독립! 대한독립!”을 외쳤다. 기독교 감리교 신자였던 유관순은 3월 16일 밤 예배가 끝난 뒤 아버지 유중권과 숙부 유중무, 조인원을 비롯해 지역 교인 20여명에게 서울에서 일어난 3·1운동을 설명했고 “우리 마을이 죽은듯이 가만히 있을 순 없다”며 만세운동을 벌이자고 했다. 장날인 4월 1일을 거사일로 정한 뒤 안성·진천·청주·연기·목천 지역에 연락기관을 두고 각 지역 감리교인과 유림들에게 만세운동 동참을 촉구했다. 연락원을 자처한 유관순은 아주머니처럼 보이기 위해 머리에 수건을 쓰고 혼자 곳곳을 다니며 참여를 독려했다. 거사 전날인 3월 31일 밤 매봉산 봉화대에 만세운동의 시작을 알리는 횃불을 올린 것도 유관순이었다. 3월 중순 이후 충남 지역에서는 목천보통학교(14일), 입장 광명공립보통학교(20일) 학생들의 만세운동을 비롯해 금광회사 광부 200명의 만세운동(28일), 천안 읍내 3000명 군중의 시가지 행진(29일), 입장면 주민 300여명의 만세운동(30일) 등이 산발적으로 일어났다. 아우내 장터와 같은 날 공주 장터에서 공주 영명학교 교사와 학생들의 주도로 일어난 만세운동은 특히 유관순과 깊은 의미가 있다. 이화학당으로 편입하기 전 유관순이 다녔던 공주 영명학교 교사와 학생 등은 독립선언서 1000장을 복사하고 태극기를 제작하는 등 장날 만세운동을 주도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1919년 8월 29일 공주지방법원의 ‘현석칠 외 17인’ 판결문에 등장하는 유준석(본명 유우석·당시 20세)은 유관순의 오빠로, 남매가 각각 만세운동을 하다 체포돼 공주형무소에서 조우했다. 유우석은 형무소에서 유관순에게 부모가 아우내 장터에서 일제의 총검에 살해됐다는 비보를 접하고 오열했다. 영명학교 출신으로 당시 경천소학교 교사였던 김현경(22)은 유우석과 함께 공주 만세운동에 참여했다. 자신도 칼에 머리를 맞아 다쳤지만 더 심하게 다친 유우석을 유치장에서 간호했고 유관순과는 공주형무소에서 함께 생활했다. 징역 5년을 선고받은 유관순에게 항소를 설득한 것도 김현경이었다고 한다. 김현경은 징역 4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고 풀려났지만 학교로 돌아가지 못해 이화학당 보육과로 편입했다. 2심 재판 뒤 이감된 서대문형무소에서도 끊임없이 만세를 불러 갖은 폭행과 고문을 당했던 유관순은 1920년 3·1운동 1주년을 맞이해 형무소 내 만세운동을 주도해 또다시 모진 고문에 시달렸다. 결국 유관순이 그해 9월 28일 형무소에서 생을 마감하자 김현경은 이화학당 교장과 목사 등과 함께 유관순의 시신을 수습하고 손수 수의를 짓고 장례를 치러주었다. 충남 공주시는 3·1운동 100주년을 맞아 3월의 역사 인물로 유관순과 김현경을 선정했다. 허백윤 기자 baikyoon@seoul.co.kr
  • 신고받고 출항까지 7분…물 위 화재 진압하는 ‘바다의 소방관’

    신고받고 출항까지 7분…물 위 화재 진압하는 ‘바다의 소방관’

    사방이 물뿐인 바다라고 해서 화재가 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대형 선박에서 화재가 발생하면 탈출할 길이 없어 큰 인명 사고로 이어지기도 한다. 지난해 5월 21일 인천항에 정박하던 파나마 자동차 운반선 오토배너호 화재가 대표적이다. 차량 2500대를 실은 무게가 5만t에 달하는 대형 선박에 불이 나자 67시간이 지난 24일에야 진화를 마무리할 수 있었다. 이때 가장 먼저 출동해 화재 진압에 나선 건 인천 중부소방서 소방정대였다. 서울신문은 5일 이곳에서 근무하는 이윤상(38) 지방소방교와 박영신(36) 지방소방교를 만나 경력직으로만 뽑는 소방정대의 모든 것을 살펴봤다.●최악을 위해 존재하는 소방정대 이들은 육상에서만큼 자주 일어나지는 않지만 한 번 발생하면 대형 참사로 번지는 해상 화재에 대비해 늘 대기한다. 소방정대에서 각각 항해사와 기관사로 일하는 이 소방교와 박 소방교도 마찬가지다. 출동 사이렌이 울리자 곧바로 출동 지령서를 뽑아들고 바다로 나설 준비를 한다. 화재가 발생한 장소를 확인하고 무전기가 들어 있는 출동 가방을 다급히 챙겨 배로 뛰어간다. 항해사인 이 소방교는 조타실로 향한다. 박 소방교는 기관실로 내려가 엔진을 켜고 배를 움직일 준비를 한다. 소방정 한 척에 탑승하는 대원은 모두 5명. 각자의 역할에 따라 발빠르게 움직인다. 해상교통관제시스템(VTS)에 출항보고를 마치고 화재 진압을 위해 떠날 때까지 걸린 시간은 채 7분이 되지 않는다. 수년간 발을 맞춰 ‘시간누수’를 최소화한 덕분이다. 이들에게 부담감이 없는 것은 아니다. 이 소방교는 “기계 오작동이 날 수도 있어 그 부분에 특히 신경을 쓴다”며 “이 때문에 늘 신경이 곤두서 있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박 소방교는 “배를 운항하면서 인원이 부족하다고 느낀다”며 “항해사와 기관사가 방수포를 조작하면서 항해도 해야 한다“고 아쉬움을 토로했다.●체력은 필수… 바다 화재는 우리에게 맡겨라 행정안전부령 제2호 ‘소방력 기준에 관한 규칙’에 따르면 정부는 소방기관을 소방서와 119안전센터, 119구조대, 119구급대, 119구조구급센터, 항공구조구급대, 소방정대, 119지역대로 구분한다. 이 가운데 소방정대는 선박의 화재, 해상에서 구급·구조를 하는 소방의 공식 기관이다. 일반인에게는 생소하지만 소방정대 역시 일반 소방서처럼 화재 구조와 구급 등 소방의 주요 임무를 똑같이 수행한다. 선박 화재가 발생했을 때 바다로 나가 화재를 진압하고 해양경찰이 출동 요청을 하면 오염 방제, 해상 대테러 훈련 등을 지원한다. 소방정대는 기관사와 항해사로 이뤄져 있다. 이 직렬은 경력 채용으로 모집한다. 소방 항해사와 기관사는 각각 항해사·기관사(1급~5급) 자격증을 취득한 뒤 승무 경력이 2년 이상이어야 지원할 수 있다. 시험은 필기와 체력, 신체검사, 면접시험 등 4단계로 돼 있다. 필기시험은 국어, 영어, 소방학개론 세 과목을 치른다. 경력 채용만 하는 이 직렬의 특성상 이 소방교와 박 소방교도 다른 직종에서 근무한 이력이 있다. 이 소방교는 해운회사에서 항해사로 4년, 선박 검사원으로 6년을 근무했다. 박 소방교는 한 수출회사에서 8년간 기관사로 일했다. 이 소방교는 국어 과목이 시험의 가장 큰 걸림돌이었다고 털어놨다. 그는 “공무원 시험을 준비한 적이 없다 보니 국어 과목이 많이 어려웠다”며 “아내가 인터넷 강의를 들어보라고 권유해 결과적으로 큰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시간과의 싸움’도 이 소방교가 견뎌야 할 적이었다. 그는 “수험생활 당시 선박 검사원 일을 하고 있었다. 늘 밤 9시가 넘어 업무가 끝나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기 어려웠다”고 덧붙였다. 박 소방교는 체력시험이 가장 큰 고비였다고 한다. 그는 “민간기업에서 기관사로 일했는데 직업 특성상 배에서 내리면 휴가 기간이 보장돼 공부할 시간은 충분했다. 하지만 배를 타면 운동을 거의 할 수 없어 고생이 심했다”고 토로했다. 그는 부족한 체력을 사설학원을 통해 보완해 합격의 기쁨을 맛볼 수 있었다고 웃었다.●항해사·기관사지만 민간과 업무 차이 커 소방의 항해사와 기관사는 일반적인 항해사·기관사와 비교해 업무에 큰 차이가 있다. 항해사인 이 소방교는 “일반적으로 배를 부두에서 떼어내는 접안·이양 작업을 도선사가 하는데, 소방정대에서는 항해사가 그런 업무까지 다 해야 한다”고 말했다. 기관사인 박 소방교는 “화재와 구급은 인명과 관련이 있기 때문에 시동이 걸리지 않을 때 부담이 훨씬 크다. 발전기가 가동이 안 되면 애타게 기다리는 사람들의 기대를 저버릴 수도 있다”고 밝혔다. 민간기업 기관사와 항해사는 대체로 고액 연봉을 받지만 전 세계를 돌아다녀야 해 집에 자주 들르기 어렵다. 하지만 소방에서 항해사는 상대적으로 급여가 적은 대신 가족과 함께할 시간이 많다. 이 소방교는 “선박 검사원으로 일하다가 지방으로 발령이 났다. 아기가 갓 돌이 지났는데 갑자기 주말 부부를 하게 돼 아내가 무척 힘들어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공무원이 돼 소방정대에서 일하면서 가족과 늘 함께할 수 있어 만족스럽다”고 덧붙였다. 화재·구급 사고가 발생했을 때 1분 1초가 급하기는 바다에서도 마찬가지다. 지난해 5월 발생한 오토배너호 화재 진압에 참가한 박 소방교는 “5일간 진압 작전에 참여했다. 당시 대형 사고여서 해경과 육상 소방이 함께 출동했는데, 워낙 배가 커 두려움이 컸다”며 “배의 길이가 300m나 됐지만 소방정은 100t 규모에 불과했다. 불을 끄는 데 어려움이 많았다”고 아쉬워했다. 이 소방교는 익수자(물에 빠진 사람)가 발생했을 때 안타까움이 크다고 전했다. 그는 “지난해 인천대교에서 물에 빠진 이를 구하라는 출동지령을 받고 나섰다. 서치라이트로 바다를 조사한 끝에 어렵게 발견했다”며 “조금 더 일찍 출동했더라면 생명을 구할 수도 있었다는 생각이 들어 가슴이 아팠다”고 말했다. 열악한 장비와 인력에 대한 아쉬움도 토로했다. 이 소방교는 “지난해 긴급구조 통제 훈련을 하던 중 기관실 바닥에 구멍이 생겨 물이 새는 일이 있었다”며 “대원 한 명이 내려가 손가락으로 막은 뒤 임시방편으로 잠수부를 긴급 수배해 수중 접착제로 막았다”고 말했다. 박 소방교는 “인원 보충이 필요하다. 소방정대가 단독 출동이다보니 지원해줄 수 있는 자원이 적어 어려움이 많다”고 설명했다. 이들은 민간 항해사와 기관사를 그만두고 다른 사람을 위해 봉사할 수 있는 소방관이 된 것을 후회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박 소방교는 “함께하는 대원이 가장 큰 자산”이라며 “아내도 모르는 사실을 대원이 알 수 있을 정도여서 또 다른 가족을 만난 것처럼 좋다”고 미소를 지었다. 이 소방교는 “배를 내려서 이직을 고민하는 사람에게 소방 항해사, 기관사를 추천한다”며 “아주 좋은 직업이고 도전해볼 만한 일이라고 생각한다”며 엄지를 치켜세웠다. 신형철 기자 hsdori@seoul.co.kr
  • [곽병찬의 역사앞에서 묻다] 박순부·허은·이은숙 여사…그들은 ‘독립군의 어머니’였다

    [곽병찬의 역사앞에서 묻다] 박순부·허은·이은숙 여사…그들은 ‘독립군의 어머니’였다

    “네 어머니와 아내를 무겁게 대하라.” 지난달 8일 시인 이윤옥씨의 ‘서간도에 들꽃 피다’ 10권 완간 기념 ‘책 잔치’가 열렸다. 권마다 20명의 여성 독립운동가의 삶을 시와 산문으로 담은 책이다. 속표지에는 이런 짧은 헌사가 실려 있다. “이 책을 이 땅의 모든 남성에게 바칩니다.” 이유는 굳이 묻지 않아도 알 만하다. 다음은 지은이의 머리말 일부. “원고 뭉치를 들고 백방으로 뛰어다녀봤지만 선뜻 이 책을 찍어 준다는 곳은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독립운동이 남성의 전유물이 돼 버린 풍토에서 여성독립운동가만의 책을 출간하는 것은, 독립운동처럼 십시일반의 정성을 모아야 가능했다.3·1운동 100주년을 맞는 올해 여성 독립운동가 이야기가 홍수를 이뤘다. 그동안 여성의 역할을 액세서리 정도로 평가절하했던 것에 대한 반성의 결과라고 믿고 싶다. 하지만 반성치고는 너무 피상적이었다. 양적으로만 늘었지 질적으로는 달라지지 않았다. 선택 기준은 언제나 ‘남성 못지않은 활동상’이었다. 삼종지도의 억압구조 속에서 수행했던 여성 혹은 어머니의 희생과 헌신은 외면당했다. 건국훈장 서훈자 1만 5537명 가운데 여성 독립지사가 전체의 2.3%(357명)에 불과한 현실이나, 5등급의 건국훈장 가운데 대부분 마지막 등급인 애족장을 서훈했거나, 훈장이 아닌 건국포장이나 대통령 표창을 받은 것은 이런 기준 때문이었다. 일송 김동삼 선생의 며느리 이해동 여사는 1987년 독립운동기념관 개관식 때 보훈처 초청으로 중국에서 잠시 귀국했다. 개관식 치사에선 온통 일송 이야기뿐이었다. 행사가 끝난 뒤 이 여사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 시아버지께 공이 있다면 반 이상은 시어머니(박순부 여사) 몫이었다. 독립운동도 의식주가 있어야 가능한데, 의식주 문제를 해결하는 건 온전히 여자의 몫이었다. 여자들은 하루 스무 시간씩 일하며 밥해 먹이고 옷 지어 입히고 땔감 마련해 추위를 피하게 했다. 공산주의 나라에서도 남녀를 동등하게 대하는데, 왜 한국에서는 여성의 역할을 하찮게 보는지 모르겠다.” 박순부 여사는 만주 벌판을 호랑이처럼 떠돌며 항일투쟁에 나섰다가 옥사한 남편 일송과 그 동지들의 후방을 말없이 지키다가 만주에서 쓸쓸하게 돌아갔다. 이 여사 역시 1989년 영구귀국할 때까지 77년간 여러 남매를 낳아 키웠지만, 둘째 중생을 제외하고는 모두 먼저 떠나보내야 했다. 상하이 임시정부 초대 국무령 석주 이상룡 선생의 맏아들 이준형은 출소한 뒤 “일본 놈들 밑에서 하루라도 더 사는 것은 치욕”이라며 자결했다. 다음은 그가 남긴 네 가지 유언 가운데 하나. “독립운동을 하면서 여자들의 고생이 심했다. 여성을 대할 때 보통으로 대하지 말고 무겁게 대하라.” 허은 여사는 조부 허형, 재종조부 허위 등 집안이 모두 독립지사였다. 어른들을 따라 1915년 만주로 망명한 허 여사는 1922년 석주의 손자 이병화와 결혼한 뒤 끝없이 찾아오는 독립군을 수발하는 ‘독립군의 어머니’ 역할을 했다. 시집온 첫해 집에서는 서로군정서 회의가 서너 달 계속됐다. 만주의 독립지사치고 그의 집을 드나들지 않은 사람은 없었으며, 따듯한 밥 한 그릇 먹지 않은 이가 없었다. “집에는 항상 손님이 많았는데 땟거리가 부족해 삼시세끼가 녹록지 않았다. 양식이 없을 때는 좁쌀 쭉정이로 죽을 끓였다.” “의복도 단체로 만들어서 조직원들에게 배급했다. 부녀자들이 동원되어 흑광목과 솜뭉치를 산더미처럼 쌓아놓고 대량생산을 했다. (중략) …김동삼, 김형식 어른들께 손수 옷을 지어드린 것은 지금도 감개무량하다.” 고생이 얼마나 심했던지 밥 짓다가 기절해 가마솥 안으로 고꾸라질 뻔하기도 했다. “시집온 이듬해, 한번은 감기에 걸렸으나 누워서 쉴 수가 없었다. 무리했던지 부뚜막에서 죽 솥 안으로 쓰러지는 걸 마침 시고모부가 보시고는 잡아 떠메고 방에 눕혔는데 꼬박 24시간을 혼절했다.” (‘아직도 내 귀엔 서간도 바람소리가’에서) 시조부, 시부에 이어 남편도 7년간의 옥고 탓에 일찌감치 세상을 떴다. 남겨진 5남2녀를 키우고 가문을 지키는 것은 온전히 허 여사의 몫이었다. 형제들이 때론 고아원에도 가고, 보육원에도 보내진 것은 그 때문이었다. 4남1녀는 허 여사보다 먼저 세상을 떴다. ‘혁명 가족의 안주인’ 이은숙 여사의 간난신고는 ‘고초당초’보다 매웠다. 결혼 당시 지금 시세로 수천억 혹은 수조 원에 달한다는 남편 우당 이회영 여섯 형제의 재산은 신흥무관학교를 세우고 경학사 등을 경영하는 데 모두 썼다. 불과 몇 해가 지나지 않아 “하루 잘해야 일중식이요, 한겨울에도 절화하기(불피우지 못하기)를 한 달이면 반이 넘”었다. ‘매일 사는 것이 죽는 것만 못’했다. “언젠가 이을규 형제분과 백정기, 정화암 네 분이 오셨다. 그날부터 먹으며 굶으며 함께 고생하는데 짜도미라고 하층민들이 먹는 곡식조차 살 수 없었다. 강냉이로 멀건 죽을 쑤어 연명했다. 내 식구는 오히려 걱정이 안 되나, 노인과 사랑에 계신 선생님들에게 너무도 미안하여, 죽을 쑤는 날은 얼굴이 화끈 달아올라 상을 가지고 나갈 수가 없었다.”(‘서간도 시종기’에서) 이 여사는 가족을 지키기 위해 닥치는 대로 일해야 했다. 고무공장 직공으로, 부잣집 침모로, 심지어 유곽 여인네의 옷을 수선하는 삯바느질까지 했고, 몇 푼 벌면 송금했다. 이 사실이 드러나 경찰서로 불려가곤 했다. 이 과정에서 두 손녀와 아들 규오가 성홍열로 차례로 죽어가는 것을 지켜봐야 했다. 규숙, 현숙 자매는 천진 부녀구제원에 보내야 했고, 외손녀 현덕은 늑막염으로, 딸 현숙은 폐렴으로 그리고 외손자는 영양실조로 사망했다. 둘째 아들 규학은 친일파 암살 과정에서 체포돼 고문으로 청력을 잃었고, 셋째 아들 규창 역시 13년형을 받았다. 이 여사 자신은 마적떼의 총격으로 어깨에 관통상을 입어 사경을 헤매기도 했다. 우당은 1932년 일제의 감옥에서 고문당한 끝에 세상을 떴고 첫째 시숙 이건영은 질병으로, 조선 10대 갑부로 꼽히던 둘째 시숙 이석영은 영양실조로, 셋째 시숙 이철영은 풍토병으로, 여섯째 시숙 이호영은 일본군에 의해 가족 전체가 몰살당했다. 함께 망명했던 식솔 60여명 가운데 살아서 귀국한 이는 다섯째 시숙 이시영 선생 포함 20여명뿐이었다. 단재 신채호 선생의 부인 박자혜 여사는 살아서는 일제의 핍박에 시달리고, 죽어서는 단재의 호적에도 오르지 못했다. 망명 전 박 여사는 조선총독부 의원에서 간호부로 일하던 엘리트였다. 파업 태업 등을 주도해 불령선인으로 낙인찍힌 터였기에 1922년 귀국한 뒤 온갖 생활고에 시달려야 했다. 그럼에도 나석규 의사 등 국내로 잠입한 독립운동가들의 거사를 뒤에서 도왔다. 단재는 1936년 뤼순 감옥에서 순국하고 둘째 아들은 1942년 영양실조로 사망했으며, 그 자신은 잦은 체포와 고문 후유증으로 1944년 단칸방에서 홀로 세상을 떠났다. 단재는 일제의 호적을 거부한 탓에 2009년 가족관계등록부가 생기기까지 무국적자였다. 가족관계부가 생기고도 혼인관계를 확인할 수 없다 하여, 단재의 가족관계부에는 지금도 아들과 손주 이름만 달랑 올라 있다. 종로경찰서에 폭탄을 투척하고, 일경 15명을 사살한 김상옥 의사의 어머니 김점순 여사도 세 아들을 조국의 독립에 바쳤다. 김 여사는 평소에도 잠입한 독립지사들을 숨겨 주고, 먹여 주고, 입혀 줬다. 백범의 부인 곽낙원 여사는 시장에 버려진 배추 겉껍질을 모아 김치를 담갔고, 그것은 임시정부 요인들의 둘도 없는 반찬이 되었다. 베트남에는 ‘어머니 영웅’이란 칭호가 있다. 항불, 항일, 항미 독립전쟁에 자식을 바친 어머니들에게 주어지는 ‘서훈’이다. 세상에 어머니를 배반할 자식은 없다. 베트남이 물질적으로는 풍부하지 않아도 정신적으로는 여전히 견고한 것은 그 덕분일 것이다. 2018년 허 여사에게 건국훈장이 추서되자 아들 이항증씨는 이렇게 말했다. “이것은 가사노동에 대한 첫 서훈이며 음지에서 피와 땀과 눈물을 쏟은 여성 독립지사에 대한 첫 훈장입니다.” 이제 우리에게도 ‘어머니 영웅’, ‘아내 영웅’이 있어야 한다. 어머니와 아내가 없었다면 안중근도 이회영도 이상룡도 김동삼도 김구도 여운형도 신채호도 없었다. 논설고문 kbc@seoul.co.kr
  • 北 최선희 “영변 핵시설 다 내놓겠다” 재차 강조

    北 최선희 “영변 핵시설 다 내놓겠다” 재차 강조

    최선희 북한 외무성 부상이 2일 2차 북미 정상회담 기간 미국 측에 영변 핵시설의 일부가 아니라 전부를 내놓겠다고 전했다고 재차 강조했다. 북미가 정상회담 결렬 이후 서로 다른 주장을 이어가며 ‘진실공방’ 양상이 더욱 커질 것으로 보인다. 최 부상은 북측 대표단 숙소인 멜리아 호텔에서 영변 핵시설 관련 북측 입장을 ‘시원하게 밝혀달라’는 남측 기자들의 질문에 “우리는 입장을 다 밝혔다. (리용호) 외무상 동지가 밝힌 그대로이다”고 밝혔다. 그는 ‘미국이 왜 영변의 일부만 이야기하느냐’는 질문에 “그걸 모르겠다. 그렇게 얘기한 거 없다. 영변은 다 내놓는다고 했다”고 재차 강조했다. 최 부상은 ‘영변을 다 내놓으신 건 확실한 거냐’는 취재진의 수 차례 질문에 “예. 명백히 한 것이다”고 답했다, 특히 그는 ‘협상 과정에서 의견이 어느 정도 접근이 이루어졌던 것 같은데 정상 간에는 왜 의견이 틀어졌다고 보는 것이냐’는 질문에 “글쎄, 그게 지금 이해가 안되냐”라며 미국을 겨냥해 비꼬듯 반문했다. 최 부상은 지난 1일 숙소에서 이뤄진 회견에서도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미국식 계산법에 대해서 좀 이해하기 힘들어하시지 않는가”라며 미국을 압박하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이에 따라 북한과 미국 간의 진실게임 공방이 더욱 커질 전망이다. 특히 최 부상은 북미 정상회담이 결렬된 직후부터 이 같은 주장을 펼쳐가며 양측이 다른 주장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 더욱 명백히 나타나고 있다. 앞서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은 1일 북한의 영변 핵시설 폐기 제안과 관련, “그들이 내놓으려고 준비한 것의 전체 범위에 관해 여전히 전적으로 명확하지는 않다”고 말했다. 지난 27∼28일 베트남 하노이에서 열린 2차 북미 정상회담에 참석한 뒤 필리핀을 방문 중인 폼페이오 장관은 이날 테오도로 록신 필리핀 외무장관과 공동으로 가진 기자회견에서 일문일답을 통해 “북한이 영변에 대해 꽤 광범위하게 하려고 했다”고 밝혔다. 이주원 기자 starjuwon@seoul.co.kr
  • 김정은, 부은 눈으로 “베트남에 감사”…주석궁 방문

    김정은, 부은 눈으로 “베트남에 감사”…주석궁 방문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1일 응우옌푸쫑 베트남 공산당 서기장 겸 국가주석을 만나 전날 결렬된 2차 북미 정상회담 개최를 지원한 데에 대한 고마움을 표했다. 그러나 전날의 충격이 가시지 않은 듯, 김 위원장은 쉽게 웃지 않았다. 눈두덩이 부어 간밤에 잠을 설친 것을 짐작할 수 있었다. 그는 전날 회담 종료 이후 25시간 동안 숙소인 하노이 멜리아 호텔에서 두문불출했다. 후속 대책 마련에 고심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김 위원장은 이날 오후 3시 30분(현지시간) 베트남 측이 주석궁에서 연 성대한 환영행사를 거치고 오후 3시 50분부터 쫑 주석과 양자 정상회담을 했다. 김 위원장은 “조미(북미) 수뇌회담 기간에 베트남 동지들이 우리의 활동을 위해서, 우리의 편의를 위해서 성심성의로 모든 것을 다 해서 보장해주신 데 대해서 정말로 감사하게 생각한다”면서 “우리 조선(북한)·베트남 사이의 친선의 역사는 가리울 수도, 지울 수도 없는 그런 친선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가슴으로 느꼈다”고 말했다. 그는 또 “베트남에 들어서는 국경에서부터 전 기간에 걸쳐서 이렇게 따뜻하게 환대해주시고 뜨겁게 맞아주신 것에 대해 베트남 인민의 진심 어린 마음을 접할 수 있었다”며 양국의 유대를 강조했다. 쫑 주석도 김 위원장의 공식친선방문을 “열렬히 환영한다”며 내년이 양국 수교 70주년이라는 점 등을 언급했다. 쫑 주석은 이어 김 위원장의 방문이 양국관계 역사에 중요한 ‘새 이정표’가 될 것이라고 강조하고, 이번 방문은 양 정상이 자국의 상황을 서로 알려주고 관계발전 방안과 역내 및 국제적 공통 관심사에 대해 의견을 교환할 좋은 기회가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북측에서는 김영철 노동당 부위원장 겸 통일전선부장, 리수용 노동당 부위원장 겸 국제부장, 리용호 외무상, 대외 군사교류를 담당하는 노광철 인민무력상이 이날 회담에 참석했으며, 베트남 측에서는 팜빈민 베트남 부총리 겸 외교장관, 쩐꾸억브엉 공산당 중앙집행위원회 사무국 상임위원 등 고위 인사들이 배석했다. 김 위원장은 쫑 주석과의 양자회동이 끝난 후 응우옌쑤언푹 베트남 총리, 응우옌티낌응언 베트남 국회의장과 연이어 면담하고 국제컨벤션센터(ICC)로 이동해 환영만찬을 했다. 김 위원정의 이번 방문 전까지 북한 최고 지도자는 55년간 베트남 땅을 밟지 않았다. 하노이 강신 기자 xin@seoul.co.kr
  • 북미 진실 공방 2라운드… 최선희 “영변 깨끗이 포기하려고 했다”

    북미 진실 공방 2라운드… 최선희 “영변 깨끗이 포기하려고 했다”

    최선희 북한 외무성 부상이 1일 “영변 (핵시설)에 대해서 정말 깨끗하게 포기하고 깨끗하게 내놓을 입장을 내놨지만, 이게 지금 (미국으로부터) 잘못 화답이 됐기 때문에 ‘이게 아니다’, ‘뭔가 잘못됐다’고 생각했다”고 했다. 최 부상은 이날 김 위원장의 숙소인 베트남 하노이 멜리아 호텔에서 남측 기자들과 만나 진행한 질의응답에서 27~28일 2차 북미정상회담의 결렬은 북한이 영변 핵시설 폐기를 제안한 데 대해 미국이 적절한 상응 조치를 내놓지 않은 탓이라고 강조했다. 이날 새벽 리용호 외무상도 이례적으로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전날 기자회견에서 ‘북한이 완전한 대북 제재 해제를 요구해 회담이 결렬됐다’고 언급한 데 대해 ‘북한은 유엔 안보리 대북 제재의 일부 해제만 요구했다’고 반박했다. 이후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이 리 부상의 주장을 다시 한 번 반박하자 최 부상도 깜짝 질의응답을 통해 북한의 입장을 다시 한 번 설명하며 미국과 2차 회담 결렬에 대한 진실 공방 2라운드를 이어가는 모습이다. 최 부상은 폼페이오 장관이 이날 ‘북한이 기본적으로 전면적인 제재 해제를 요구했다’고 주장한 데 대해 “그게 왜 광범위한지 (모르겠다)”고 했다. 리 외무상은 전날 북한이 2016~2017년 유엔 안보리가 채택한 대북 제재 결의 5건 중 민수경제와 인민생활에 지장을 주는 항목들만 먼저 해제하라고 요구했다고 밝힌 바 있다. 최 부상도 이런 주장을 이어가며 “그게(대북 제재 결의 5건) 원래는 핵실험하고 미사일 발사 시험에 관한 제재였다”며 “그런 제재들은 매 제재마다 그런 행동이 행해지지 않는 경우에는 해제하게끔 결의돼 있는데 트럼프 대통령이 얘기한 거처럼 15개월 동안 계속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 시험을) 중단하고 있지 않나”고 했다. 이어 “그런데 거기에 대해서 유엔이 전혀 (제제를) 해제할 조짐을 보이지 않고 오히려 지금 그걸 넘어서 미사일 시험과 핵실험 넘어서 (핵시설을) 폐기까지 해야 된다고 억지 주장으로 너무 나가기 때문에 이렇게 왜 회담이 되나 이런 생각이 든다”고 했다. 폼페이오 장관이 ‘북한은 영변 핵시설과 관련해 무엇을 내놓을 준비가 됐는지 분명하지 않았다’고 한 데 대해서도 최 부상은 ‘영변 핵시설을 깨끗하게 포기할 입장을 내놨다’며 강하게 반박했다. 최 부상은 “우리가 제시한 영변 핵시설이라는 게 만만찮은 것”이라며 “아직까지 핵시설 전체를 폐기 대상으로 내놔본 역사가 없는데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시험발사 15개월 중지, 핵실험 중지 이외에 두 사안들 가지고도 응당 프로세스가 돼야 할 유엔 제재 결의들이 영변 핵 폐기를 해도 안된다 얘기니까 이 회담 계산법이나 자체도 혼돈이 오고 어디에 기초한 회담 계산법인지 (모르겠다)”고 했다. 이어 “그래서 우리가 지금 이런 회담에는 정말 의미를 둬야 되는지 좀 다시 신중하게 생각하고 있다”고 했다. 최 부상은 전날 리 외무상이 언급한 ‘영변 핵시설 폐기 시 전문가 입회’에 대해서도 부연 설명을 했다. 그는 “그건(전문가 입회) 앞으로 구체적으로 실무접촉을 통해서 확정해야겠지만, 우리가 한다는 폐기라고 할 때는 미국 측 전문가들, 핵 전문가들을 초청해서 명백하게 투명하게 한다는 뜻이다”라며 “모든 성의 가지고 우리 딴에는 최상의 안을 내놨다고 생각했는데 잘 안 됐다”고 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전날 기자회견에서 ‘영변 핵시설 외 추가 우라늄 농축 시설을 알고 있다’고 언급한 데 대해서 최 부상은 “그거는 누가 했는지 모르겠다”며 “이것저것 여러 가지 시설을 짚을 수도 있고 한데 하룻밤 자고 이 소리(영변 핵시설 외 추가 핵시설 신고·폐기) 한다고 되는 게 아니다”라고 했다. 이어 “처음부터 얘기됐던 게 영변인 거고, 입장을 우리가 처음에 밝힌 것”이라고 했다. 최 부상은 김 위원장이 실망한 것 같다고 말하며 미국과 대화를 지속할 필요성에 대해 의구심을 드러냈다. 최 부상은 ‘미국과 계속 대화할 생각인가’에 대한 질문에 “지금으로선 해야 하나 싶다”며 “우리가 했던 그 요구 사항들이 해결된다면야 상황이 달라질 것이다. 이번에 회담하면서 보니까 이런 회담을 계속해야 될 필요가 있을 것 같지 않나 그런 생각이 든다”고 답했다. 최 부상은 “(김 위원장이) 실망보다는 우리 국무위원장 동지께서 왜 미국이 이런 거래 방식을 취하는지, 이런 거래 계산법에 대해서 굉장히 의아함 느끼고 계신다”며 “생각이 좀 달라지시는 그런 느낌을 (받는다). 잘 모르겠다. 제 느낌이다”라고 했다. 남한 정부의 중재 역할을 묻는 질문에 최 부상은 “역할이 어느 정돈인지 모르겠지만, 그것은 미국의 역할에 따라 달라질 것”이라며 “우리가 설명을 충분히 못 해서 이렇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고 했다. 이어 “아무래도 최종적인 미국의 입장이 아닌가 이런 생각이 들기 때문에 우리도 지금 다시 입장을 좀 더 (고민)해보고 회담 자체에 대해 다시 생각해봐야 된다”고 했다. 결국 북한은 영변 핵시설 폐기와 대북 제재 일부 완화의 교환이라는 기존의 요구는 고수할 것임을 분명히 하면서 미국이 입장을 바꾸어야만 대화를 지속할 수 있다는 뜻을 강조한 것으로 해석된다. 하노이 박기석 기자 kisukpark@seoul.co.kr
  • 北매체, 2차 북미정상회담 결렬 언급 없이 “새로운 상봉 약속“

    北매체, 2차 북미정상회담 결렬 언급 없이 “새로운 상봉 약속“

    북한 매체들이 1일 2차 북미정상회담 결렬은 언급하지 않은 채 두 정상이 3차 회담을 약속했다고 보도했다. 이날 새벽 리용호 외무상이 기자회견을 열고 회담 결렬은 미국이 영변 핵시설 폐기 외 플러스 알파 조치를 요구한 탓이라고 비판한 것과는 대조적이다. 북한이 회담 결렬에 대한 진실 공방과는 별개로 미국과의 협상을 이어나가겠다는 의지를 비친 것으로 풀이된다. 조선중앙통신 등은 1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8일 오전 9시부터 하노이 소피텔 레전드 메트로폴 호텔에서 상봉하고 단독회담과 확대회담을 진행했다고 보도했다. 통신은 두 정상이 단독회담과 확대회담에서 “싱가포르 공동성명을 이행하기 위한 역사적인 노정에서 괄목할 만한 전진이 이루어졌다는 데 대하여 높이 평가하고 이에 토대하여 북미 관계 개선의 새로운 시대를 열어나가는 데서 나서는 실천적인 문제들에 대하여 건설적이고 허심탄회한 의견 교환을 했다”고 전했다. 이어 “조선반도의 긴장상태를 완화하고 평화를 추동하며 완전한 비핵화를 위하여 쌍방이 기울인 노력과 주동적인 조치들이 서로의 신뢰를 도모하고 북미 두 나라 사이에 수십여 년간 지속되여온 불신과 적대의 관계를 근본적으로 전환해나가는 데서 중대한 의의를 가진다는 데 대하여 인식을 같이 했다”고 했다. 통신은 하노이 공동성명 도출 실패와 회담 결렬을 직접적으로 보도하지는 않았지만, 2차 정상회담에서 구체적인 결과를 내지 못했음을 암시했다. 통신은 두 정상이 “싱가포르 공동성명에서 제시한 공동의 목표들을 실행해나가기 위하여 현 단계에서 반드시 해결하여야 할 문제들에 대한 서로의 견해를 청취하시고 그 방도를 진지하게 논의했다”고 했다. 두 정상은 영변 핵시설 외 우라늄 농축 시설 폐기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대북 제재의 일부 해제를 두고 담판을 벌였으나 최종 합의에 실패했다. 하지만 통신은 두 정상의 신뢰가 여전히 굳건함을 강조했다. 통신은 두 정상이 “두 번째로 되는 하노이에서의 상봉이 서로에 대한 존중과 신뢰를 더욱 두터이하고 두 나라 관계를 새로운 단계로 도약시킬 수 있는 중요한 계기로 되였다고 평가했다”고 했다. 아울러 3차 북미정상회담과 북미 비핵화 협상을 지속할 의지를 표명했다. 이는 트럼프 대통령이 전날 기자회견에서 회담 결렬을 공식화하면서도 북한과 대화는 계속할 것이라고 밝힌 데 대해 북한이 호응한 것으로 해석된다. 통신은 두 정상은 “조선반도 비핵화와 북미 관계의 획기적 발전을 위하여 앞으로도 긴밀히 연계해나가며 하노이 수뇌회담에서 논의된 문제해결을 위한 생산적인 대화들을 계속 이어나가기로 했다”고 했다. 이어 “먼 길을 오고 가며 이번 상봉과 회담의 성과를 위하여 적극적인 노력을 기울인 데 대하여 사의를 표하시고 새로운 상봉을 약속하시며 작별인사를 나누었다”고 덧붙였다.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도 통신과 동일한 내용의 기사를 13장의 사진과 함께 1∼2면에 실었다. 사진 속 김 위원장은 트럼프 대통령과 악수하거나 대화하며 활짝 웃는 모습이 다수였다. 앞서 통신은 전날 김 위원장과 트럼프 대통령의 단독 회담과 친교 만찬도 보도하며 “경애하는 최고영도자 동지께서 체류하시는 멜리아 호텔 앞에는 이 세기적인 만남을 취재하고 지켜보기 위해 모여든 기자들과 하노이시민들, 관광객들로 북적이며 인파를 이루었다”며 2차 북미정상회담에 쏠린 전 세계의 관심을 전하기도 했다. 통신은 만찬 보도에서도 “지난해 싱가포르 수뇌회담 과정과 그 이후 여러 차례의 친서교환을 비롯한 계기들을 통하여 친분이 두터워지신 북미 최고 수뇌분들께서는 반갑게 인사하시며 덕담을 나누었다”며 두 정상의 신뢰와 친분을 강조했다. 하노이 박기석 기자 kisukpark@seoul.co.kr
  • 학생들이 직접 항일운동지 탐방팀 구성 ‘청소년 역사·문화탐구단’ 모집합니다

    학생들이 직접 항일운동지 탐방팀 구성 ‘청소년 역사·문화탐구단’ 모집합니다

    경기도 김포교육지원청이 학생들이 직접 해외 항일독립운동지 탐방팀을 구성하는 ‘청소년 역사·문화탐구단’을모집한다. 김포교육지원청은 초·중·고·특수학교 학생을 대상으로 ‘함께 걷고 성장하는 2019 김포 청소년 역사·문화탐구단’을 모집한다고 1일 밝혔다. 오는 22일까지 공모마감하고, 학생 10∼12명에 인솔교사 1∼2명로 구성된 팀 단위별로 모집한다. 최종 선정된 팀에는 2500만원이 지원된다. 파견기간은 4박5일 일정으로 오는 6∼10월 중이다. 자세한 모집요강은 김포교육지원청 홈페이지에서 확인하면 된다. 이번 역사·문화탐구단은 3·1운동 및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이해 추진하는 프로젝트다. 주목할 점은 학생들이 직접 주도해 임시정부 역사현장에서 지난 100년 여정을 성찰하고 애국선열의 자주 독립정신을 계승한다는 데 있다. 이러한 항일유적지 탐방으로 대한민국 미래 100년의 희망을 생각해 보고 비전을 제시하는 것을 목표로 마련됐다. 학생들 스스로 구성한 역사문화탐구단을 중국으로 탐방하며 대한민국 항일 독립투쟁과 우리민족의 국난극복 역사와 관련 있는 지역을 직접 방문하고 조사·연구할 기회를 부여한다. 김정덕 김포시교육지원청 교육장은 “3·1운동 및 임시정부수립 100주년을 맞이해 우리 학생들이 학교에서만 배운 선열들의 항일투쟁운동의 발자취를 직접 현장에서 눈으로 보고 재조명해 역사인식을 높이는 소중한 기회가 될 것으로 기대해 이번 청소년 역사문화탐구단을 준비했다”고 밝혔다. 이명선 기자 mslee@seoul.co.kr
  • 김한솔 도운 ‘천리마민방위’, ‘자유조선’으로 이름 바꾸고 선언문 올려

    김한솔 도운 ‘천리마민방위’, ‘자유조선’으로 이름 바꾸고 선언문 올려

    2017년 말레이시아에서 피살된 김정남의 아들 김한솔과 가족을 안전한 곳으로 이동시켰다고 주장해 온 단체 ‘천리마민방위’가 1일부터 이름을 ‘자유조선’(FREE JOSEON)으로 바꿨다. 이날 이 단체 웹사이트 주소(http://www.cheollimacivildefense.org/)로 들어가면 전날까지와는 다르게 엠블럼에 새겨진 단체명이 ‘천리마민방위’에서 ‘자유조선’으로 바뀌었다. 엠블럼 디자인도 모양은 그대로지만 색상 등 일부 달라졌다. 아울러 이 단체는 이날 사이트에 ‘자유 조선을 위한 선언문-2019년 3월 1일’이란느 제목의 한글·영문 글과 함께, 얼굴이 모자이크 처리된 한 여성이 흰색 저고리와 검은 치마를 입고 한국의 고궁으로 보이는 곳에서 선언문을 낭독하는 7분 35초 분량의 영상을 올렸다. 선언문은 “100년 전 오늘, 선조들은 무자비한 박해와 견딜 수 없는 치욕의 구조를 전복하고자, 독립과 자유를 외쳤다”면서 ‘북한을 대표하는 단일하고 정당한 임시정부 건립’을 선언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과거 독재와 억압의 상처를 지닌 국가들’, ‘이상을 함께하는 전 세계 동지들’, ‘노예가 되기 싫은 사람들’ 등에게 연대와 동참을 요청했다. 지난 25일 이 단체는 ‘통지해드립니다’라는 글을 통해 “이번 주에 중대한 발표가 있겠다”라고 예고한 바 있다. 신진호 기자 sayho@seoul.co.kr
  • [시흥 3·1만세운동] 수암면 비석거리 성별·연령·계급 뛰어넘은 시흥 최대 만세운동지

    [시흥 3·1만세운동] 수암면 비석거리 성별·연령·계급 뛰어넘은 시흥 최대 만세운동지

    온 국민이 대한의 독립을 외쳤던 3·1운동이 올해로 100주년을 맞았다. 비폭력·평화를 표방한 전국적인 항일운동은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으로 이어지며 민족 독립의 초석을 놓았다. 경기도 시흥은 3·1운동이 발생한 서울과 가까이 있어 시위 초기부터 열기가 고조됐다. 마을 곳곳에서 펼쳐진 단발적 만세 시위였지만, 철저한 사전 준비로 15일간 지속하며 주변 지역에도 영향을 미쳤다. 시흥시가 그 역사적 가치와 의미를 되새기고 독립지사의 숭고함을 기리기 위한 노력을 이어가고 있다. ●수암면 비석거리에서 펼쳐진 시흥지역 최대 만세운동 1919년 3월 30일, 통문을 전해 들은 수암면 주민들이 수암리 비석거리로 모여들었다. 당시 스물여섯 청년이었던 윤병소(1893~미상) 지사는 이 소식을 듣고 수암리로 갔다. 그는 각 리에서 모인 2000여명 군중의 선두에서 만세를 부르며 행진했다. 일본 경찰이 해산을 요구했지만 계속해서 면사무소 근처까지 진출하며 만세 시위를 벌였다. 이날 수암면 비석거리에 울려 퍼진 ‘만세’는 시흥일대 최대 만세운동이었다. 이 지역은 현재 안산시 수암동이지만 군면통폐합 이전에는 시흥군 수암면이었다. 1914년 부·군·면 통폐합으로 시흥시 북부지역은 부천군 소래면, 중남부는 시흥군 수암면, 서남부는 군자면이 각각 설치됐다. 1919년 3월 1일 서울 탑골공원에서 촉발된 3·1운동이 전국으로 확산하던 시기에 시흥도 만세 운동에 동참했다. 3월 24일 소래면 주민들의 만세 시위를 시작으로 수암면 비석거리와 군자면 장곡·선부·죽율리, 군자면 구장터 등 곳곳에서 독립의 열망이 피어올랐다. 윤병소 지사와 더불어 수암면 비석거리에서 투쟁 시위를 이끈 또 한 명의 위인은 바로 윤동욱(1891~1968) 지사다. 흥분한 군중들이 주재소와 면사무소를 습격하려 했지만 “독립하면 관공서는 국가의 재산이 되니, 국유재산을 털끝만큼이라도 상하게 하지 말라”며 평화적인 만세운동을 독려했다. 그는 시위를 진압하러 온 순사 임건호에게 오히려 시위 동참을 촉구했으나 임건호는 이에 응하지 않았다. 태형 90대의 가혹한 형벌을 받은 윤동욱 지사는 경찰 신문 과정에서 “만세를 부른 것은 조선독립을 꾀하기 위함이었다”고 말하며 민족 자긍심을 높였다. ●일제에 맞선 군자면 김천복 지사 징역 1년형 선고로 옥고 해마다 시흥시 군자초등학교에서는 3·1절 기념행사가 열린다. 지금의 군자초등학교와 군자파출소 인근은 시흥의 3·1운동이 활발히 이뤄진 중심지이기 때문이다. 3월 29일 군자면 장곡리와 월곡리, 31일 군자면 선부리에서 시작된 만세운동은 4월 4일 거모리에 수백명이 운집하면서 확대됐다. 특히, 군자면 죽율리(현 죽율동)에 거주했던 김천복(1897~1968) 지사는 당시 군자면사무소 앞에서 만세 시위에 합류해 대한 독립 만세를 외쳤다. 이를 이유로 5월 2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징역 1년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군자면 구장터(서안산나들목 부근, 석곡산대장)도 기억해야 할 역사적 현장이다. 장현리에 거주하던 스무 살 서당 생도 권희(1900~1955) 지사는 그해 4월 7일 구장터에서의 만세운동 동참을 촉구하는 비밀통고를 작성했다. 장수산(1900~1981) 지사가 이를 마을 구장의 집 앞에 두고 주민들이 서로 돌려보게 하는 등 비밀리에 만세운동을 계획했지만, 일본 경찰에 체포되면서 모의는 무산됐다. 가슴에 품은 태극기를 펼치지는 못했으나 숭고한 그들의 정신은 영원히 남아 우리의 가슴을 울리고 있다. ●내년까지 장수산·윤동욱·권희·윤병소 지사 기념비 건립 시흥시는 시흥의 3·1운동을 돌아보고 그 정신을 계승하기 위해 3·1운동 기념비를 건립했다. 1995년 8월 15일 군자초등학교에 ‘독립운동 유적지’ 비를 건립한 이래로 광복 70주년을 맞은 2015년에는 ‘시흥시 삼일독립운동 기념비’를 세워 시흥지역 만세운동 참여자들의 고귀한 독립정신을 알리고 있다. 그날의 함성을 주도했던 독립유공자의 고귀한 희생도 기린다. 시는 지난해 7월 17일 시흥시 죽율동에 김천복 독립지사 기념비를 건립했다. 이를 시작으로 2020년까지 장수산·윤동욱·권희·윤병소 지사의 기념비가 역사적 현장에 들어설 예정이다. 기념비에는 무력 진압에도 굴하지 않고 목숨을 내던졌던 항일 열사 다섯 분의 애국정신을 기록한다. 2012년 윤동욱 지사 묘에서 처음 시작된 시흥시 3·1절 기념행사는 2013년부터 군자초등학교에서 진행 중이다. 3·1운동 및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 원년인 올해는 3·1절 기념식과 더불어 주민이 일상 속에서 참여할 수 있는 다양한 프로그램이 열린다. 시흥지역 3·1운동 소책자 발간, 유적지 탐방, 독립유공자 힐링캠프 등 3·1정신을 이어가는 행사가 준비돼 있다. 시흥지역 3·1운동의 역사적 가치와 의의를 찾는 여정은 이후에도 계속될 전망이다. 시흥시는 독립유공자 유족들로 구성된 광복회 단체를 설립해 지원체계를 구축하고, 미래 세대를 위해 정기적인 교육을 진행한다. 또 시흥지역 3·1운동 기초조사를 통해 3·1운동 관련 문화 콘텐츠 개발에도 힘쓴다는 계획이다. 시 관계자는 “성별과 나이·계급을 뛰어넘어 모두가 한마음으로 외쳤던 100년 전 그날의 함성이 오늘의 시흥을 만든 초석이 됐다”며 “시흥시는 역사를 기억하고 독립지사를 예우하기 위한 노력을 지속하겠다”고 말했다. 이명선 기자 mslee@seoul.co.kr
  • 조선중앙통신 “생산적 대화 이어가기로”…북미회담 결렬 언급 안해

    조선중앙통신 “생산적 대화 이어가기로”…북미회담 결렬 언급 안해

    북한이 베트남 하노이에서 열린 제2차 북미정상회담이 합의문에 서명도 못 한 채 결렬된 점은 언급하지 않고 북미 양측이 새 정상회담을 약속하고 생산적인 대화를 이어나가기로 했다고 1일 보도했다. 북한이 이번 회담 무산에도 불구하고 미국과 계속 대화를 이어나갈 의지를 보인 가운데 별다른 성과 없이 회담이 끝났다는 점을 북한 주민들에게 상기시키지 않고자 하는 것으로 풀이된다. 조선중앙통신은 1일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전날 메트로폴 호텔에서 단독회담, 확대회담을 했다는 소식을 전하며 양국 정상이 “두 나라 사이에 수십여년간 지속된 불신과 적대의 관계를 근본적으로 전환해나가는 데서 중대한 의의를 가진다는 데 인식을 같이했다”고 밝혔다. 통신은 양측이 이번 정상회담에서 “싱가포르 공동성명을 이행하기 위한 역사적인 노정에서 괄목할만한 전진이 이루어졌다는 데 대하여 높이 평가했다”며 “이를 토대로 북미 관계개선의 새로운 시대를 열어나가는 데서 나서는 실천적인 문제들에 대하여 건설적이고 허심탄회한 의견교환을 했다”고 소개했다. 구체적으로는 지난해 6·12 제1차 북미정상회담에서 양측이 도출한 목표를 실행하기 위해 현재 단계에서 ‘반드시 해결해야 할 문제’를 놓고 서로의 입장을 듣고, 실천방안을 진지하게 논의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양국 정상이 “북미 관계의 새로운 역사를 열어나가는 여정에서 피치 못할 난관과 곡절이 있지만 서로 손을 굳게 잡고 지혜와 인내를 발휘하여 함께 헤쳐나간다면 북미 관계를 획기적으로 발전시켜나갈 수 있다는 확신을 표명했다”고 전했다.통신은 두 나라 정상이 이번 회담을 “서로에 대한 존중과 신뢰를 더욱 두터이 하고 두 나라 관계를 새로운 단계로 도약시킬 수 있는 중요한 계기가 됐다고 평가했다”며 “한반도 비핵화와 북미 관계의 획기적 발전을 위하여 생산적인 대화들을 계속 이어나가기로 했다”고 덧붙였다. 아울러 통신은 김 위원장이 트럼프 대통령에게 “먼 길을 오가며 이번 상봉과 회담의 성과를 위해 적극적인 노력을 기울인 데 대하여 사의를 표했다”며 “새로운 상봉을 약속하며 작별인사를 나눴다”고 밝혔다. 북한 매체가 전한 북미 정상이 추후 만남을 약속했다는 점과 생산적 대화를 이어가기로 했다는 대목은 트럼프 대통령의 “계속 노력해 나가겠다”는 언급,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부 장관의 “합의를 앞으로 몇 주간 내로 이룰 수 있기를 바란다”는 언급에 북한 역시 가능성을 열어둔 것으로 보인다. 이날 오전 6시 10분쯤 나온 북한의 이러한 보도는 리용호 외무상과 최선희 외무성 부상이 약 4시간 전 하노이에서 자청한 기자회견과 달리 대미 비난 목소리가 아예 담겨 있지 않았다. 이 역시 미국과 대화를 지속해 나갈 의향이 있다는 점을 강조한 것으로 풀이된다. 앞서 리용호 외무상은 트럼프 대통령의 설명과 달리 북측이 전면적인 제재 해제가 아니라 민생용 일부 해제를 요구했다며 “현 단계에서 우리가 제안한 것보다 더 좋은 합의가 이뤄질 수 있는 것인지는 이 자리에서 말하기 힘들다. 이런 기회마저 다시 오기 힘들 수 있다”고 말했다. 최선희 부상도 “우리 국무위원장 동지께서 앞으로의 이런 조미 거래에 대해서 좀 의욕을 잃지 않으시지 않았는가 하는 이런 느낌을 제가 받았다”면서 “다음번 회담이 정해진 것은 없다”고 밝혀 북미 간 대화가 당분간 중단될 수도 있음을 내비쳤다.한편 이러한 보도가 북한 외부뿐만 아니라 내부도 향하고 있기 때문에 이번 회담의 결렬을 북한 내부에 알리지 않으려 애쓴 것으로도 볼 수 있다. 통신은 김정은 위원장이 전용열차로 평양을 출발할 때부터 대대적으로 보도했으며, 김정은 위원장이 하노이에 도착했을 때에도 협상 실무진들과 회의를 하는 모습을 사진으로 보도하기도 했다. 이번 회담에 임하는 김정은 위원장의 일거수일투족을 이미 보도했는데 북미정상회담이 결렬되면서 아무런 합의가 도출되지 못한 것이 알려지면 김정은 위원장의 위상에 타격이 갈 수도 있다. 이 때문에 북한은 향후 미국과의 대화를 이어가겠다는 가능성을 남겨 놓으면서도 회담 결렬에 대한 북한 주민들의 동요를 최소화하기 위한 선택을 한 것으로 보인다. 신진호 기자 sayh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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