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일의 북한 어떻게 다룰 것인가/김학준(대북 정책 새 접근)
◎평양의 체제안정 도와주라/정정불안 계속땐 강경과 도발 위험
김일성이 마침내 죽음으로써 북한은 변화의 결정적 전기를 맞이하게 됐다.지난 49년동안 북한을 자신의 유일독재체제아래 묶어놓고 강압과 세뇌의 통치를 유지했던 절대권자의 사망은 북한이 옛 노선을 그대로 끌고 나가느냐 아니면 새로운 길을 걸어가느냐의 심각한 선택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현재로서는 김일성이 20년이상 심혈을 기울여 길러놓은 후계자 김정일에게 모든 권력이 승계되고 있음이 확실하다.김정일 후계체제의 공식적 등장은 이제 시간문제가 된 것이다.
물론 김정일 후계체제가 잠정체제로 끝날 것이냐 또는 뜻밖에도 장기화할 것이냐에 대해서는 좀더 두고 보아야 할것이다.필자로서는 앞으로 2년정도안에 김정일 후계체제의 운명이 결판나리라고 본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중요하게 생각해야할 점은 북한의 앞날은,특히 김정일 후계체제의 운명은 우리 대한민국에 대해 직접적이면서도 즉각적인 영향을 주리라는 사실이다.바로 이 연계성때문에 우리는 북한의 움직임에 대해 단순한 호기심이상의 깊은 관심을 갖게 되는 것이다.
그 관심은 물론 대한민국 정부의 북한에 대한 정책,특히 김정일 후계체제에 대한 정책으로 이어지게 된다.바꿔 말해,대한민국 정부가 김일성 사후의 북한을 어떻게 대하고 어떻게 다루느냐에 따라 김정일 후계체제는 큰 영향을 받게 된다는 뜻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필자는 우선 대한민국 정부가 북한을 안정시키는 쪽으로 도와주라고 권고하고자 한다.북한 독재체제,김일성김정일 세습체제를 지지해서가 아니다.독재체제와 세습체제는 역겨운 대상이지만,북한이 안정되는 것이 좁게는 대한민국에 대해,넓게는 동아시아에 대해 유리하기 때문이다.
왜 그렇게 생각하는가? 필자의 의견을 제시하기로 한다.
만일 김일성이후의 북한이 안정을 찾지 못하고 끊임없는 정치적 격변속에 빠져든다고 치자.그 정치적 격변에 혹시 파벌과 파벌사이의 무력충돌이 포함된다고 치자.그렇다면 북한은 내전상태에 들어가게 된다.이경우,오늘날 북한이 지니고 있는 엄청난 무기들과 파괴력을 고려할때 남북한의 관계는 반드시 긴장으로 치닫게 될것이다.북한 내부에서의 무력충돌이나 내전의 파열음은 분명히 대한민국에 큰 부담을 줄 것이다.
북한에서 주민들의 집단적인 저항운동이 일어났다고 가정해 보자.이때 북한의 통치세력은 틀림없이 무력으로 누를 것이며,그리하여 불쌍한 우리 동포들만이 죽어가는 참극으로 끝날 것이다.
이 과정에서 북한의 통치세력은 대한민국에 대해 비록 국부적이고 제한적이나마 무력도발을 모험할 개연성이 있다.그렇게 되면 한반도 상황은 새로운 불행속으로 빠져들게 되며,한반도 상황이 어지러워진다면 동아시아의 정세 역시 불안해질 것이다.
물론 북한 주민 대다수가 의롭게 봉기해서 북한의 독재체제 자체를 붕괴시킨다면 대한민국 정부로서는 별도의 대책을 세우며 민주통일의 새로운 계기를 열어야 할 것이다.그러나 북한 내부에서의 유혈참극으로만 끝날 정치적 변동은 앞에서 지적했듯 남북관계의 긴장으로 이어질 개연성이 크리라고 짐작된다.
시각을 달리해 북한 독재체제의 급속한 붕괴와 거기에 따른 큰 혼란에 대해 생각해 보자.예컨대,김정일체제가 북한이 오늘날 직면한 안팎의 문제들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하는 상태에서 내전에 빠져드는 가운데 망해버린다고 하자.북한의 이 존폐 위기를 대한민국정부가 슬기롭게 활용함으로써 대한민국 정부의 주도아래 북한을 흡수,통합시키는 계기를 찾을 수도 있을 것이다.그러나 자칫 잘못하면 바로 그 시점에 북한 극렬강경파들의 맹동주의와 허무주의에 따라 남북한 사이에 전쟁이 일어날 수 있다는 점도 기억함이 좋겠다.
전반적으로 이렇게 보기 때문에 필자는 앞에서 지적했듯이 김정일체제의 안정성 확보가 현실적으로 대한민국에 대해 유리하다고 보는 것이다.
또 그렇게 보기 때문에 대한민국정부는 김정일체제가 체제붕괴의 위기감에서 벗어나도록 돕는 것이 현명하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김정일체제를 돕는다고 해서 공개적으로 선언할 필요는 없다.묵시적인 의사표시로 충분하다.간접적으로 그러한 뜻을 전달할 수 있는 방법은 많다고 생각한다.
이렇게 볼때 대한민국 정부가 『우리는 북한에 대해 종전처럼 화해정책을 취하려고 한다.오늘날 한반도에 중요한 것은 평화이다』라고 선언한 것은 적절했다.북한의 권력당국은 이 선언을 호의적으로 받아들였을 것이다.
대한민국 정부가 남북대화를 계속하겠다는 뜻을 밝힌 것도 적절했다.앞의 선언과 함께 이 의사표시는 대한민국 정부가 김정일체제를 사실상 받아들인다는 것으로 풀이될 것이며 김정일체제는 안도감을 가졌을 것이다.
그 안도감은 정치적 격변기의 북한권력당국으로 하여금 대한민국에 대해 과격한 조처를 취해 긴장을 조성함으로써 북한 내부의 결속을 다지자는 소수의 극렬강경세력으로부터 나올 수 있는 건의를 자신있게 거부하게 만들 것이다.
여기서 우리가 깊이 고려할 대상은 한반도 주변 열강의 북한정책이다.
미국을 비롯해 일본과 중국및 러시아는 모두 북한이 안정을 되찾기를 바랄 것이다.북한에서 정치적 격변이 벌어져 거기에 대한민국도,주변 국가들도 개입되게 되는 것을 결코 바라지 않을 것이다.
이렇게 볼때 대한민국 정부가 북한을 안정시키는 쪽으로 정책을 구사하는 것은 주변 열강이취하는 정책과도 일치한다고 하겠다.그것은 열강과의 공동보조라는 점에서 바람직하다.
북한은 결국 단계적인 개혁과 개방을 통해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원리를 2개의 기둥으로 삼는 현대 국가로 전환해야 한다.그래야 대한민국과의 평화통일을 위한 접점이 생기게 된다.북한이 종국적으로 이렇게 전환하도록 유도하는 것이 대한민국 정부의 북한정책과 통일정책의 핵심이 될 것이다.김학준(단국대 이사장·정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