돼지콜레라와의 전쟁...방역체계 ‘구멍’… 전국 44곳 발생
돼지콜레라가 온 나라를 휩쓸고 있다.지난 18일 전북 익산시에서 올들어 처음 발생한 돼지콜레라는 경기·충남·경북·경남·전남 등 전국으로 확산되는 추세다.농림부와 자치단체,양돈농가들이 돼지콜레라 확산을 막기 위해 ‘전쟁’을 벌이다시피 하고 있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피해 농가는 늘고 농민들의 시름은 점점 깊어지고 있다.
●“하늘도 무심” 농가 깊은 시름
“하늘도 무심하네요.우리는 어떻게 살아가라고…….”
‘한센병’으로 외부와 단절된 생활을 하고 있는 전북 익산시 왕궁면 온수리,구덕리 주민들은 요즘 깊은 시름에 잠겨있다.140여 농가가 집단으로 11만마리의 돼지를 기르고 있는 이곳에서 올들어 처음 돼지콜레라가 발생했기 때문이다.애지중지 기르던 어미돼지와 씨돼지,갓 태어난 새끼돼지 등 5000여마리를 모두 전기차에 태워 살처분하고,중장비를 동원해 땅에 묻어야 했던 송모(37)씨 등 이 지역 6개 양돈농가들은 삶의 의욕을 잃고 절망속에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다.아직 돼지콜레라가 발생하지 않은 인근 농장 주민들도 언제 병마가 덮칠지 몰라 전전긍긍하고 있다.돼지콜레라 확산을 막기 위해 돼지이동이 완전히 금지되면서 판로도 막혔다.불어나는 사료값과 과잉사육에 따른 비규격돈 생산 등 어려움이 겹쳤다.돼지콜레라가 발생한 지역은 물론,전국의 모든 양돈농가들은 심리적 불안감이 가중되고 있다.
돼지 940마리를 살처분한 경북 경주시 서면 천촌리 정모(44)씨는 “자식 같은 돼지를 땅에 묻고 나니 죽고 싶은 심정”이라며 “돼지 하나만 바라보고 살아왔는데 이게 왠 날벼락이냐.”고 탄식했다.
3600여마리를 살처분한 박모(48·경북 상주시 화개동)씨도 “돼지를 살처분할 때 같이 죽고 싶은 심정이었다.”면서 “7억원의 빚을 청산할 길이 막막하다.”고 허탈해 했다.충남 보령시 천북면 신죽리 강모(45)씨도 “3400마리를 살처분했으나 정부에서 보상에 대한 명확한 얘기가 없어 걱정이 태산같다.”고 말했다.
●좀처럼 수그러들 기미없어
30일 현재 돼지콜레라가 발생한 농가는 전국적으로 44곳.경기 10곳,충남 6곳,전북 8곳,경북 9곳, 경남 10곳,전남 1곳에서 돼지콜레라 발생으로 6만 6000마리가 살처분됐다.하지만 한번 확산되기 시작한 돼지콜레라의 기세는 좀처럼 꺾일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봄철 기후도 바이러스가 활동하기 좋은 조건이어서 쉽게 수그러들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정부는 2001년 12월1일부터 우리나라 전역을 돼지콜레라 청정지역으로 선언했다.그러나 청정지역을 선언한 지 5개월여만에 강원도 철원에서 돼지콜레라가 발생했다.지난해 11월과 12월에는 경기도 강화,김포,이천 등지에서 잇따라 돼지콜레라가 발생했다.특히 감염경로 추적결과 경기도 김포시 S농장에서 전국으로 나간 씨돼지들이 모두 돼지콜레라를 퍼뜨린 주요인으로 확인되고 있다.방역체계가 엉터리였다는 방증이다.전국에서 발생한 44농가의 돼지콜레라 가운데 33곳이 모두 S농장에서 분양받은 돼지 때문에 감염된 것으로 밝혀졌다.
돼지콜레라가 전국으로 번지면서 국내 양돈기반이 무너질지 모른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100㎏짜리 돼지는 적어도 15만 6000원을 받아야 최소한의 사육비를 건질 수 있다.하지만 수출이 막히고 소비가 급감할것으로 예상돼 돼지값 폭락은 불을 보듯 뻔한 상황이다.돼지콜레라 발생지역은 돼지이동도 금지되기 때문에 값이 더 떨어질 것을 우려하는 농가들이 홍수출하를 할 경우 심각한 돼지파동이 일어날 수도 있다.
●문제점 및 대책
돼지콜레라가 전국을 강타하고 있는 것은 허술한 방역체계가 가장 큰 원인이다.일선 자치단체들이 전문인력 부족으로 중앙의 방역방침과 시책을 모두 수행할 수 없는 것도 문제다.1998년 이후 자치단체들의 구조조정 여파로 시·군에는 행정수의사가 없는 곳도 많다.전북의 경우 14개 시·군 가운데 5곳에 수의사가 없다.예방백신 비축량이 충분하지 못해 전국적으로 일사불란하게 예방접종을 할 수 없었다.
전북도 차용복 농림수산국장은 “시·군마다 수의사를 배치해 질병 예찰을 강화하고 신속한 대책을 수립하는 것이 가축질병으로 인한 농가피해를 줄이는 지름길”이라고 강조했다.피해 농가 농업인들은 “양돈기반이 붕괴되지 않도록 정부가 수매비축사업을 실시,홍수출하로 인한 가격 폭락을 막아줘야 한다.”고 말했다.
전주 임송학·대전 이천열·대구 김상화기자 shlim@
◈김영진 농림부 장관
김영진 농림부 장관은 30일 돼지콜레라 확산과 관련,“씨돼지 분양 전 혈청검사를 의무화하는 등 종축장에 대한 관리를 강화하겠다.”면서 “이번 사태를 가축질병에 대한 항구적 대책을 마련하는 계기로 삼겠다.”고 강조했다.
●피해 농가를 직접 둘러보셨는데
지난 해에 이어 돼지콜레라가 재발해 송구스럽기 짝이 없다.상심한 농민들이 차단 방역에 적극 동참하는 것을 보고 감동받았다.농민들이 원하는 것은 조속한 원상복구다.
●왜 재발했나
지난해 12월 경기도 김포의 한 종돈장에서 돼지콜레라가 발생했다.이곳에서 올해 분양한 씨돼지가 원인인 것 같다.피해 농가 44곳중 33곳이 이곳에서 씨돼지를 분양받았다.우선 4월15일까지 전국 방역을 마친 뒤,5월10일까지 예방접종을 끝내겠다.
●방역에 허점이 많다는 지적인데
구제역이나 돼지콜레라는 소독만 철저히하면 얼마든지 막을 수 있다.축산업·종축업을 신고제에서 등록제로 전환하고,종축장에 대해선 정기검진과 분양 전 혈청검사를 의무화하겠다.
●돼지고기 값 폭락 우려는 없나
산지 돼지가격은 현재 100㎏당 15만 8000원선으로 폭락 조짐은 전혀 없다.가축이동 제한조치로 결국 출하물량이 부족해지겠지만 행락철 돼지고기 소비가 늘더라도 홍수출하나 투매는 없을 것이다.
●보상 대책은
시가를 기준으로 살처분 보상금을 곧 지급한다.생계곤란을 겪는 농가에는 6개월동안 가구당 100만∼1000만원의 생활안정자금을 지원하겠다.입식비 저리 융자,정책자금 상환연기,중고생 학자금,건강보험료 감면 등을 관계 부처와 협의중이다.
●살처분 돼지 매몰지역엔 환경문제도 있을 텐데
발생농장 현장에 살처분한 돼지를 분산해 묻고 있다.구덩이 바닥에 비닐과 생석회를 깔고,매몰지에 괸 침출수는 간이집수조에 모아 주기적으로 수거,처리하고 있다.소독약을 뿌리고 발굴금지 경고판도 세웠다.악취나 환경파괴를 최소화하려고 애쓰고 있다.
김경운기자 kkwoon@
◈진원지 경기 김포 S축산
씨돼지 공급으로 돼지콜레라의 전국적인 확산의 ‘진원지’가 된 경기도 김포시 고촌면 S축산은 지난 24일사육중인 922마리를 모두 살처분한 뒤 폐업 위기에 몰렸다.김포시가 가축전염병예방법 위반 혐의로 경찰에 고발까지 한 상태여서 재기 의욕마저 완전히 잃었다.농민들에 대한 보상후 정부가 구상권 행사에 나설 경우 어려움이 예상되고 있다.
사태가 여기까지 번진 것은 관계당국의 허술한 방역망과 농장의 안일한 대처가 불러온 ‘합작품’이란 지적이다.
지난해 10월 김포시 관내 4곳의 축산농가에서 돼지콜레라가 발생했을 때다.이 농장은 콜레라 발생농가에서 20㎞ 이상 떨어졌다는 이유로 위험지역(3㎞ 이내) 및 경계지역(10㎞ 이내)에 포함되지 않았다.
이에 따라 예방조치가 전혀 없었다.또 같은해 12월 김포 전역의 돼지콜레라 백신접종시 이 농장에선 일부 돼지만 예방주사를 맞았다.돼지청정화에 지장을 초래한다는 게 이유였다.
농림부 지침에는 종돈장의 경우,백신접종이 ‘의무’가 아니라 ‘농장주의 판단’에 따르도록 돼 있다.강제 사항이 아니었던 것이다.
더욱이 이 농장은 일부 돼지들이 유사 콜레라 증상을 보였는 데도 관계당국에 신고조차 하지 않았다.
돼지콜레라가 전국에서 발생한 뒤에야 국립수의과학검역원의 이동경로 추적과 역학조사 과정에서 비로소 이 농장의 돼지들이 콜레라에 감염된 사실이 밝혀졌다.
김포 김학준기자 kimhj@