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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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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혼탁한 세상과 종교… 평신도가 나서야죠”

    “혼탁한 세상과 종교… 평신도가 나서야죠”

    오는 22일 오후 6시 30분 서울 중구 정동 프란치스코 교육회관 220호에서는 독특한 모임이 열린다. 3·1운동백주년종교개혁연대(종교개혁연대·공동대표 박광서, 김항섭, 이정배)가 내년 3·1운동 100주년을 앞두고 3·1운동의 정신을 되새기고 종교의 역할을 성찰해 보자는 취지로 마련한 연속 세미나의 세 번째 행사다.불교, 유교에 이어 천도교의 3·1운동과 이후 100년을 놓고 주제 발표와 토론이 이어질 전망이다. 성직자가 아닌 평신도의 성찰과 역할을 다루는 만큼 종교계 안팎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출가자와 성직자들이 할 수 없다면 평신도가 나서야지요.” 박광서(69) 공동대표는 토론회에 앞서 기자와 만나 “혼탁한 세상과 종교에서 평신도의 역할이 절실하다”고 거듭 강조했다. 종교개혁연대는 5년 전부터 대학교수와 연구자 등 지식인들이 사회 속 종교의 역할을 놓고 가져오던 소모임을 모태로 태동했다. 지난해 종교개혁 500주년과 원효 탄생 1400주년을 계기로 발족했으며 지난 9월부터 3·1운동의 성찰과 과제에 초점을 맞춰 매달 한 차례씩 연속 세미나를 열어 오고 있다. 기성 종교의 일탈을 비판하면서 3·1운동 정신을 평신도부터 되새기자는 주장과 목소리를 수렴하고 있으며 다음달 20일 개신교 측 모임을 한 차례 더 가진 뒤 내년 3·1절을 즈음해 ‘범종교계 대국민 선언문’을 발표할 예정이다. “100년 전엔 이 땅의 종교들이 독립을 위해 평화의 몸짓으로 똘똘 뭉쳤습니다. 하지만 100년이 지난 지금은 종교가 사람을 잃고 세상과 단절됐지요.” 3·1운동은 당시 민족대표 33인 대부분이 종교인이었던 만큼 종교계의 역할이 절대적이었다. 그리고 모두가 하나로 뭉쳤다. 하지만 지금 종교계는 병약하고 무능하고 썩어 있다고 한다. 그래서 이제 건강한 종교 회복을 위해 재가신도들이 깨어나야 한단다. 박 대표는 서울대 물리학과와 미국 유학을 거쳐 서강대 교수로 재직하다 5년 전 은퇴한 지식인이다. 젊은 시절부터 불교에 각별한 관심을 가져 한때 출가를 생각했지만 더 큰 사회적 역할을 찾기 위해 불교사상과 맥이 닿는다는 물리학 교수를 택했다. 특히 종교계에선 평신도 역할을 일관되게 강조하는 지식인으로 유명하다. 교수불자연합회와 참여불교재가연대, 사단법인 ‘우리는 선우’를 창설한 주인공이고 2005년부터 2016년까지 종교자유정책연구원 대표도 지냈다. 1994년, 1998년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두 차례의 조계종 분규 때 불교·조계종 개혁을 외치며 대학교수와 정치인, 법조인, 교사 등 수백명이 이름을 올린 ‘불교지성인선언’을 주도한 인물이다. “많은 지식인과 재가 신도들이 종교개혁을 외쳐 왔지만 개선은커녕 더 악화돼 왔어요.” 그 슬픈 뒷걸음질의 핵심은 역시 성직자, 출가자 중심의 교단 운영에서 비롯되는 반사회적 적폐다. 사회 일반에서 늘 손가락질하는 거짓된 권위와 탐욕스런 권력이다. “종교 부패는 교단과 성직자의 탓이 크지만 큰 틀에서 보자면 일반 신도들의 책임도 적지 않아요.” 그 뼈를 깎는 성찰은 당연히 종교의 인간 해방과 탈성직, 탈권위로 이어져야 한단다. 그 말 끝에 불쑥 질문 하나가 던져졌다. “만약 사찰과 출가승, 교회와 성직자가 모두 없어진다면 평신도들은 어디서 무엇을 해야 할까요.” 느닷없는 질문에 머뭇거리는 기자에게 이런 말을 돌려준다. “사과가 땅에 떨어지는 데는 만유인력이 주효하지만 결정적인 요인은 비, 바람이 아닐까요.” 성직자와 출가자들이 다하지 못한 역할에 붙인 평신도의 위상이다. “종교가 제대로 작용한다면 재가자나 평신도들이야 보조자 역할만 해도 될 텐데, 오히려 지도자들이 사회적 짐이 되고 있잖아요.” 우리 사회는 나와 다른 것에 너무 인색하다는 박 대표. “꽃도 한 종류만 있으면 예쁘지 않다”며 “사회통합을 위해 다름을 인정할 줄 아는 종교계의 여유와 풍토가 아쉽다”고 힘주어 말한다. 그는 인터뷰 말미에 여생을 평신도들의 재가결사 운동에 바치겠다는 다짐을 남겼다. “종교가 공통으로 갖는 핵심 사상인 자비와 평화, 정의로 무장된 지식인, 평신도들이 함께 연구하고 제안하고 지혜를 모아 더 좋은 세상의 불쏘시개가 될 수 있도록 울타리 역할을 하겠습니다.” 김성호 선임기자 kimus@seoul.co.kr
  • 파란 눈 선교사, 격동의 조선을 말하다

    파란 눈 선교사, 격동의 조선을 말하다

    캐나다 출신 게일 1888~1897년 기록 을미사변 등 역사 현장 생생하게 전해 조선인 묘사 눈길·유교식 교육 혹평도‘전하는 중전마마를 생각하며 울고 계셨다. 일본인이 중전을 죽였다고 말씀하셨다. 왕후의 복수를 하는 자에게는 자신의 머리칼이라도 잘라 신을 삼아주겠다 했다.’ 명성왕후가 일본 낭인들에게 시해된 날 캐나다 선교사 제임스 S 게일(1863~1937)이 목격한 고종의 인상이 담긴 저서 ‘Korean Sketches’의 한 대목이다. 게일은 을미사변을 이렇게 평가한다. “조선인뿐 아니라 다른 나라 사람들 마음에도 안 좋은 인상을 심어주었는데, 일본 정부가 진실하다는 것은 산신이나 귀신조차도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그런 것이었다.”새 책 ‘조선, 그 마지막 10년의 기록’은 선교사 게일이 1888년 입국해 1897년까지 조선 방방곡곡을 훑은 기록인 ‘Korean Sketches’의 번역서다. 미국, 영국, 캐나다 등에선 진작 출간됐고, 서울역사박물관에 원서 초판만 전시됐던 것을 우리말로 옮겼다. 격동기 조선에 몸담은 채 을미사변을 비롯한 역사 현장을 생생하게 전해 흥미롭다. 게일은 선교사로 조선에 입국했으면서도 구운몽, 심청전, 춘향전을 영문 번역해 서양에 소개한 인물이다. 최초의 한영사전을 만들 만큼 조선에 해박했던 한국학 학자이기도 하다. ‘게일만큼 한국을 잘 아는 사람이 없다’는 어느 외국인 저서의 구절대로 게일은 당시 조선을 한국 사람보다 더 세밀하고 날카롭게 기록, 평가하고 있다. 무엇보다 눈길을 끄는 부분은 조선인에 대한 생생한 묘사다. ‘이 평범한 바지 폭이 어느 정도인고 하니 극동지방에서 볼 수 있는 가장 큰 불상을 덮는 것은 물론, 뉴욕 자유의 여신상 속옷으로 입혀도 될 정도이다.’ 대부분의 조선인들이 입고 있던 바지를 소개한 대목이다. 전국을 다니면서 묵었던 구들방에 대해서는 이렇게 전하고 있다. ‘비좁은 초가집에서 잠을 잔다는 것은 그야말로 고역이었다. 방은 절절 끓어올라 이불을 걷어찰 수밖에 없었는데 밤새 불꿈에 시달리고 헐떡대며 아침이 오기만을 기다릴 뿐이었다.’ 양반, 선비를 보는 시각도 예사롭지 않다. ‘양반이 뿜는 침착하고 평온한 기운은 풀리지 않는 동방의 신비였다. 모든 특성의 바탕을 이루는 평온함이라는 특질에 있어 양반은 가히 달인이었다. 잘못된 표정이나 몸짓 한 번에 모든 걸 망칠 수 있는 사상 최고의 작품을 연기 중인 배우라도 되는 듯 말이다.’ 선비에 대해선 또 어떤가. ‘선비 두 명만 있으면 온종일 재미있게 들을 수 있는 이야기를 글자 한 자에서 끌어낼 수 있었는데 한자가 약 2만자쯤 되니까 그들은 반백년 동안 재미있게 들을 수 있는 이야기를 축적하고 있는 셈이었다.’ ‘나에게 조선이란 전 세계에서 가장 마음이 끌리는 나라이다.’ 조선을 바라보는 시선의 바탕은 틀림없이 애정으로 비친다. 하지만 어두운 부분을 들추는 데도 주저하지 않는다. 특히 유교식 교육은 혹평 일색이다. ‘조선에서 교육이란 발에 붕대를 감는 것처럼 정신에 석고 깁스를 둘러치는 것이다. 깁스가 굳고 나면 성장이나 발전은 완전히 멈추게 된다.’ 열강 각축에 따른 풍전등화의 조선을 게일은 이렇게 쓰고 있다. ‘현재 상황은 이들이 여태까지 구축한 삶의 방식뿐 아니라 사회체계까지 파멸로 몰아가고 있으며 기독교가 이들에게 전파되지 않는 한 이 나라의 운명은 미신숭배, 무신론, 그리고 혼돈 속에서 소용돌이칠 것으로 보인다.’ 조선을 그토록 사랑한 한국학 학자였지만 선교사의 피는 속일 수 없었나 보다. ‘왕부터 천민까지 생활 속에서 행하는 모든 것이 조상숭배라는 난해한 체계 그 자체와 결합돼 있다.’ 조상숭배를 종교처럼 들여다본 게일은 선교사의 시선으로 책을 마무리한다. “제사를 올리고 예를 그렇게 다했음에도 조선 사람들의 조상은 자손들을 결국 이런 상황에 처하게 했다. 영적인 삶과 이승의 번영이 고갈된 이 땅이, 이제는 무의식 중에 자신의 손을 내밀어 도움을 청하고 있다.” 김성호 선임기자 kimus@seoul.co.kr
  • 대변혁 길목에 선 인간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대변혁 길목에 선 인간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미래의 단서/존 나이스비트·도리스 나이스비트 지음/우진하 옮김/부키/360쪽/1만 8000원36년 전 미래예측서 ‘메가트렌드’(1982년)를 통해 세계적인 미래학자로 우뚝 선 존 나이스비트. 산업사회에서 정보사회로의 급속한 이행을 점쳤던 그 예고는 지금 놀랄 만큼 적중하고 있다. 이 책은 ‘메가트렌드’ 이후 반세기에 걸친 연구를 정리해 뭘 준비할지를 촘촘하게 풀어낸다. 과거와는 완전히 다른 세계로 나아가는 길목에 어떤 걸림돌과 기회가 숨어 있을까. 저자는 지금을 15세기 르네상스에 버금가는 대변혁의 시기로 규정한다. 르네상스에 특히 주목한 건 새로운 기계식 활자와 인쇄술 발명이다. 이 발명은 상류 특권층에게만 주어진 교육의 기회를 대중으로 확산시켰고 일반 국민의 경제적 풍요로움도 늘렸다. 지금 인터넷은 당시 인쇄기술의 혁명과 비슷한 양상을 띤다. 수천만 명이 서로 연결돼 의견을 교환하고 영향을 미친다. 개인이나 기업은 더이상 제한된 지리적 영역에서 개별적으로 활동하지 않으며 전 세계적인 성장과 발전의 일부분을 이룬다. “지금 요란한 ‘4차 산업혁명’이 전부가 아니다. 그보다는 세계질서의 근본적인 변동에 주목하라”는 주장이 도드라진다. 특히 새로운 기술과 적극적인 투자를 통해 급성장하는 아시아, 아프리카, 남아메리카 국가들에 주목한다. 그러면서 첨단 디지털 기술이 없앨 일자리를 두려워하지 말고 새로운 기계들을 이해하고 활용할 줄 아는 인력창출에 적극 투자하라고 말한다. “데이터 관리나 정보 보안 등 새로운 기술이 야기하는 다양한 문제들 속에 기회가 있다.” 이 대목에서 새로운 기술에 매몰돼 인문학과 예술이 제공할 수 있는 사고력, 통찰력, 상상력을 놓치지 말 것을 당부해 눈길을 끈다. 김성호 선임기자 kimus@seoul.co.kr
  • 의병 홍범도·시인 윤동주가 통탄할 너무 매끈히 덧입힌 ‘그날들의 흔적’

    의병 홍범도·시인 윤동주가 통탄할 너무 매끈히 덧입힌 ‘그날들의 흔적’

    러시아 크라스키노에서 중국 옌볜조선족자치주 훈춘시로 가려면 러시아, 중국 세관을 차례로 거쳐야 한다. 수백여m를 사이에 두고 두 곳은 극명히 비교된다. 낡고 허름한 러시아 세관에 비해 중국 세관은 최신 지문 인식 기계를 도입했고, 규모 역시 수십 배나 된다. 비포장도로도 중국으로 들어서면 매끈한 아스팔트로 바뀐다. 달라진 중국의 모습을 새삼 느낀다.지난 24일 훈춘시에서 하루를 보내고 투먼시로 이동했다. 이곳에서 1시간 정도 더 가면 왕칭현 봉오동이다. ‘봉오저수지’라는 한글과 한자를 함께 적은 간판을 지나 10여분을 더 걸어가니 매끈한 화강암으로 만든 ‘봉오동 기념비´가 나온다. 2013년 투먼시 인민정부가 세운 것으로, 글씨 윗부분에 중국을 상징하는 붉은 별 문양이 붙었다. 그 뒤로 100m 정도 떨어진 흙바닥에 1993년 만든 낡은 기념비가 적벽돌 주춧돌을 그대로 드러낸 채 방치돼 있다.두 기념비는 문구가 조금 다르다. 새 기념비는 봉오동전투에 관해 “중국 조선족 반일무장이 여러 민족 인민들의 지지하에 처음으로 일본 침략군과 맞서 싸워 중대한 승리를 거둔 규모가 비교적 큰 전투”라는 부분을 추가했다. 두 개의 기념비에서 중국의 역사관을 어렴풋이 느낄수 있다. 기념비 왼편 계단을 올라 비탈길을 10분 정도 더 가면 봉오동 전적지를 볼 수 있다. 1970년대 후반에 댐을 만들며 많은 지역이 수몰됐지만, 그나마 저수지 너머로 당시 전투지가 남아 있다. 1919년 3·1 만세운동 이후 연해주를 비롯해 간도와 만주에서 수많은 독립군 부대가 일어났다. 이들은 두만강과 압록강을 넘나들며 일본군과 전투를 벌였다. 일본 정규군과 싸워 최초로 승리한 전투가 바로 봉오동 전투다. ‘나는 홍범도´로 불리는 의병장 홍범도가 이끄는 부대와 난무의 대한국민회군, 최진동의 군무도독부가 연합한 ‘대한북로독군부’가 산에서 매복하다 두만강을 건너 독립군을 추격한 야스가와 지로 소좌가 이끄는 일본군 19사단의 ‘월강 추격대대’를 격파했다. 당시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일본군 전사 157명, 중상 200여명 독립군 전사 4명, 부상 2명이라고 발표했다. 다만 이 숫자에 관해서는 의견이 여전히 갈린다. 버스를 타고 80㎞를 달려 옌지시로 향했다. 한 식당에서 옌볜에서 가장 유명한 역사학자로 꼽히는 김성호(67·전 조선력사연구소장) 옌볜대 명예교수를 만났다. 그는 1980년대 평양 김일성종합대학 역사학부에서 근현대사를, 1990년대는 인하대에서 조선근현대사를 공부해 박사 학위를 받은 독특한 이력이 있다. 그에게 봉오동전투 일본군 사상자 수가 왜 불명확한지 묻자 “하나의 역사를 두고 조선, 미국, 중국, 일본이 다 다르게 말했다. 자기 나라에 맞게 부풀리거나 줄이는 사례가 당시에는 흔했다”는 답이 돌아온다. 그는 김좌진 장군의 ‘청산리전투’에 관해서도 “당시 독립신문이 일본군 2000명이 죽었다고 했다. 그런데 그 장소에 직접 가 봤나. 2000명이 누울 자리 있던가”라고 되물었다. 그러면서 “과거와 달리 지금도 정권이 앞장서서 그런 식으로 주장하면 문제가 생길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또 “남북이 갈라진 지금 역사 인식을 통해 분단 사관을 극복해야 한다”며 “안중근 의사, 일본군 위안부, 항일투쟁 등 남북 역사학계가 함께할 수 있는 주제부터 다뤄야 한다”고 충고했다.옌지시에서 룽징시를 향해 1시간 정도 더 달리면 명동학교가 나온다. 명동학교는 ‘간도 대통령’으로 불린 민족운동가 김약연이 세운 학교다. 그는 1908년 간도 명동으로 이주해 한인 집단 촌락을 건설하고, 명동학교를 세워 인재를 길렀다. 윤동주를 비롯해 문익환, 나운규, 송몽규 등이 이곳에서 공부했다. 1929년까지 모두 1200여명의 졸업생이 나왔다. 졸업생 가운데 가장 유명한 이는 윤동주다. ‘명동’, ‘윤동주 생가’라고 쓰인 큰 안내돌을 돌아 마을로 들어가면 가장 먼저 윤동주 생가와 마주한다. 1932년 윤동주가 용정 은진학교에 진학하면서 다른 사람에게 팔려 허물어졌던 것을 1994년 복원했다. 윤동주는 명동소학교, 은진중학교를 거쳐 평양의 숭실중학교에 편입해 공부했다. 독실한 기독교인으로 신사참배를 거부하고 자퇴해 1941년 연희전문학교 문과를 졸업했다. 이후 일본 도쿄 릿쿄대 영문과에 입학했다가 교토 도시샤대 문학부로 전학했다. 넉넉한 집안에서 태어나 일본 유학까지 했지만, 항일독립운동으로 1943년 일본 경찰에 체포돼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생체실험을 당하다 옥사했다.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게 살기를 바랐던 민족시인의 향취를 이곳에서 느끼긴 어려웠다. 명동촌은 봉오동 전적지와 마찬가지로 ‘연변조선족자치주중점문물보호단위’로 지정돼 관리 중이다. 집 인근에 윤동주의 시가 적힌 금색 조형물이 군데군데 박혀 있었다. 이곳에서 200여m 정도 떨어진 명동학교는 너무 번듯하게 새로 지어놔 어색하기까지 했다. 명동학교에 들어가니 교실에 윤동주 인형을 만들어 사진 촬영용으로 쓰고 있었다. 준수한 얼굴의 인형을 바라보며 실소가 났다. 명동학교의 옛 모습은 간데없고 인공적인 느낌이 물씬 나는 값싼 관광지를 찾은 느낌만 들었다. 현지 가이드가 ‘중국은 돈 되는 것이라면 뭐든 한다’며 농담을 건넸지만 웃을 수가 없었다.명동학교를 나와 가곡 ‘선구자’의 배경이 된 룽징시 비암산의 일송정으로 향한다. 버스를 타고 산 정상까지 오르며 조잡한 관광물을 계속 마주쳐야 했다. 일송정 역시 울긋불긋한 정자로 탈바꿈한 지 오래다. 독립운동가들이 바라보며 울분을 달래고 마음을 다잡았던 해란강이 시야에 들어온다. 흔적만 남은 러시아의 항일독립운동 유적지, 중국풍으로 바뀐 중국의 항일독립운동 유적지를 돌아보니 가슴이 답답해진다. 해를 등지고 산에서 내려오며 ‘우리는 그동안 무얼 했나’ 하는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글 투먼·룽징(중국) 김기중 기자 gjkim@seoul.co.kr
  • “보건교사 더 뽑는다며?”… 간호사들도 노량진으로

    “보건교사 더 뽑는다며?”… 간호사들도 노량진으로

    공무원 열풍이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지만 문재인 정부가 공무원 증원을 공약으로 내세우면서 ‘공시 열기’가 후끈 달아올랐다. 문 대통령은 소방관과 경찰관, 교원 등을 중심으로 17만 4000명 증원을 약속했다. 김동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도 지난 18일 국정감사에서 “(공무원 증원을) 계속할 것”이라고 기존 방침을 확인했다. ‘공시생(공무원시험 수험생)의 메카’로 불리는 서울 노량진 학원가엔 ‘이번 기회를 반드시 잡아야 한다’는 수험생들의 절박함이 가득했다.●노량진 학원가 새벽 6시부터 ‘북새통 ’ 갑작스런 추위가 전국을 덮친 30일 새벽 6시. 아직 해가 뜨기 전인데도 노량진 학원가 앞 사거리에는 강의를 들으려는 사람들로 북새통을 이뤘다. 저마다 따뜻한 아메리카노로 손을 녹이며 양손에 수험서를 안고 학원에 들어갔다. 경찰공무원을 1년째 준비하고 있다는 서모(27)씨는 “새벽 6시에 일어나 7시엔 학원에 도착한다. 4~5시에 오는 사람도 많다”고 노량진 분위기를 전했다.2년간 노량진 고시촌에서 순경직을 준비했다는 김모(28)씨는 “올해가 합격할 수 있는 가장 좋은 기회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경찰공무원 채용 정원이 크게 늘어난 데다 올해 세 차례나 순경 공채가 예정돼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경찰청은 두 차례의 공채를 거쳐 3849명을 뽑았다. 하지만 올해는 이미 두 번째 공채에서 4294명을 채용했고, 마지막 세 번째 공채에서 3000명을 더 뽑는다. 지난해와 비교해 2배 가까이 늘어난 것이다. 김씨는 “아무래도 많이 뽑다 보니 주변에 준비하는 사람이 많아졌다”면서 “조건이 워낙 좋다 보니 ‘올해는 꼭 붙겠지’라는 생각이 들다가도 ‘상황이 바뀌기 전에 빨리 합격해야 한다’는 압박감이 있는 것도 사실”이라고 털어놨다. 소방공무원에 도전하는 수험생 역시 상황은 비슷하다. 소방청은 올 상반기 4446명을 채용해 지난해 공채 선발인원(4341명)을 넘었다. 현재 하반기 추가 채용 전형이 진행 중이다. 지난 26일 소방청은 지방소방공무원, 국가소방공무원 필기시험에서 각각 1386명, 89명이 합격했다고 발표했다. 앞으로 있을 면접시험이 끝나면 지방직 경채 595명과 국가직 경채 30명을 포함해 총 625명이 합격자로 이름을 올린다. 소방공무원을 2년째 준비하고 있다는 김성호(31·가명)씨는 “공무원을 준비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면서 “노량진뿐 아니라 여기저기서 공무원을 준비한다는 사람이 늘어난 것을 확실히 느낀다”고 말했다. 하지만 김씨는 수험생 사이에서 ‘방심’을 조심하자는 이야기도 많이 나온다고 덧붙였다. 그는 “뽑는 인원이 늘었지만 지원자도 많아졌다는 점을 감안해야 한다”면서 “전력을 다하는 수밖에 없는 것 같다. ‘붙놈붙’(붙을 사람은 붙는다)이라는 말도 있지 않으냐”며 웃었다.●“갑작스레 수험판 뛰어든 사람 꽤 많아” 소방·경찰이 아닌 다른 공무원시험을 준비하는 이들은 상대적인 박탈감에 아쉬움을 표했다. 일반행정직 공무원을 2년째 준비한다는 강병호(25·가명)씨는 “많이 뽑는다는 이야기가 언론을 통해 쏟아졌지만 실질적으로 크게 늘어난 부분은 없다”고 말했다. 공무원 채용 증원 정도가 직렬별로 달라 혜택이 돌아가는 차이가 큰 탓이다. 강씨는 “지난해 국가직을 많이 뽑는다고 했지만 결국 예년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면서 “오히려 많이 뽑는다는 소문이 나니까 사람들이 몰려 경쟁률만 높아졌다”며 씁쓸해했다. 강씨의 말처럼 문재인 정부가 들어선 뒤 국가직공무원만큼은 대폭 증원이 없었다. 박근혜 정부 때인 2016년 총 5508명의 국가직공무원을 뽑았는데 지난해 6205명을 선발해 697명이 늘어나는 데 그쳤다. 다만 강씨는 경쟁률을 살펴볼 때 ‘허수’를 주의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는 “공무원시험 준비생이 늘었지만 최근 공무원 증원 움직임에 맞춰 갑작스레 수험판에 뛰어든 사람들이 꽤 있다”면서 “그런 허수 수험생을 생각한다면 예년과 크게 달라진 건 없다고 본다”고 분석했다.●보건교사 수험생 늘자 男 강사도 등장 강씨가 준비하는 일반직 공무원과 달리 갑작스런 채용 확대 소식에 수험생들이 ‘행복한 비명’을 쏟아내는 직렬도 있다. 교원 임용시험 보건 직렬과 전문상담 직렬 등이 대표적이다. 보건 직렬 교원은 지난해 299명에서 올해 584명으로 두 배 가까이 늘었다. 전문상담 교원 역시 큰 폭으로 증원된 직렬이다. 지난해 139명에서 올해 611명으로 4배 넘게 늘었으며 내년에도 575명을 선발할 예정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아예 ‘본업’을 제쳐 두고 공무원시험에 뛰어드는 직장인들도 속출하고 있다. 보건 직렬 교원을 임용할 때 간호사 면허증이 있는 사람을 대상자로 하다 보니 졸업 예정자가 아닌 현직 간호사들이 대거 임용시험에 도전하고 있다. 지난해 병원에 사표를 내고 공시에 도전하는 김준호(가명·27)씨는 “과거 상담·보건 교사는 사실상 거의 뽑지 않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는데 최근 정부가 큰 폭으로 뽑으면서 간호사를 그만두고 임용시험에 뛰어드는 이들이 많아졌다”고 말했다. 또 “과거 소수 직렬들이 이번 정부 들어서 주요 직렬로 거듭나 학원가 분위기도 바뀌었다”면서 “보건교사에 도전하는 지원자들이 대부분 간호학과 출신이어서 남자 학원강사는 거의 없었는데 이제는 남자 강사도 생겨나고 서울대 출신 강사도 종종 보인다. 생태계가 만들어지고 있다”고 달라진 모습을 전했다.●늘어난 정원 맞춰 학원가도 새 전략 ‘윌비스 신광은’ 경찰학원의 신광은 강사는 “통계만 봐도 예전에 비해 공무원을 뽑는 수치가 크게 늘었다는 걸 알 수 있다”면서 “학원가에서도 이런 분위기를 맞아 맞춤형 전략을 짜고 있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신 강사는 공무원들의 수험 기간도 예전에 비해 줄어든 편이라고 말했다. 그는 “우리 학원에서 순경직을 준비할 때 보통 1년 정도면 합격할 수 있게 지도하는데, 올해는 공채만 세 차례여서 더 빨리 합격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그럼에도 학원가와 수험생들은 공무원 채용인원 증원이 여전히 기대에 못 미친다고 입을 모은다. 신 강사는 “경찰공무원은 채용 인원이 꽤 많이 늘었지만 여전히 부족하다고 생각한다”면서 “일선 현장의 경찰인력 공급이 많이 모자라기 때문에 앞으로 더 늘어날 것이라고 보고 있다. 수험생에게도 좀더 힘을 내라고 독려한다”고 말했다. 경찰공무원을 2년째 준비하고 있는 신모(28)씨도 “언론 보도를 보면 아직도 경찰공무원이 부족하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의경 제도가 폐지되면 그에 따른 공무원 충원도 있을 것으로 보여 채용 인원이 더 늘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신형철 기자 hsdori@seoul.co.kr
  • 종교계·시민사회단체 차별금지법 제정 촉구 한목소리

    종교계와 시민·사회단체가 차별금지법 제정을 한 목소리로 촉구하고 나서 주목된다. 오는 30일 오후 5시 서울 종로구 한국기독교회관 2층 조에홀에서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와 차별금지법제정연대 공동주최로 열리는 간담회가 그것. 그동안 종교계와 시민사회 단체가 개별적으로 목소리를 높여온 것과는 달리 본격적인 연대에 나서 주목된다. 차별금지법이란 합리적 이유 없이 성별, 장애, 성적지향 등 이유로 교육이나 직업훈련 등에서 차별받지 않도록 하는 법이다. 국내에서는 지난 2007년부터 시작돼 2010, 2012년 등 세 차례에 걸친 입법 시도가 있었지만 개신교계 등의 반발로 번번히 무산됐다. 그러다가 최근 최영애 국가인권위원장이 취임식을 통해 차별금지법 제정을 적극 추진할 뜻을 밝히는 등 법 제정의 목소리가 다시 커지고 있다. 이날 간담회는 이같은 흐름에서 갈수록 심해지고 있는 한국사회의 차별과 혐오 문제를 정색하고 짚어보기 위해 마련된 모임. 무엇보다 종교계와 시민사회가 공동 실천방안을 모색하는 자리로 관심을 모으고 있다. 차별금지법제정연대와 개신교, 불교, 원불교, 천주교 등 4대 종단이 마주앉아 주제발표및 토론을 진행한다. 한국사회의 인권현실과 차별금지법의 의미며 필요성과 관련한 열띤 토론이 예상된다. 문경란 인권정책연구소 이사장이 축사를 하며 미류 차별금지법제정연대 공동집행위원장겸 인권운동사랑방 상임활동가와 조혜인 차별금지법제정연대 공동집행위원장겸 희망을만드는법 소속 변호사가 발제에 나선다. 특히 참석자들은 각 종단별 입장 발표를 통해 공유의 방식을 모색할 것으로 보인다. 종단 참여단체는 실천불교전국승가회와 원불교인권위원회, 천주교인권위원회,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등 4개 단체이다. 문의 (02)743-4472 김성호 선임기자 kimus@seoul.co.kr
  • 전쟁은 세상을 협력하게 만든다

    전쟁은 세상을 협력하게 만든다

    초협력사회/피터 터친 지음/이경남 옮김/생각의힘/376쪽/1만 800‘인간사회의 발달은 전쟁을 빼놓곤 설명할 수 없다.’ ‘전쟁은 세상을 협력하게 만든다.’ 전쟁을 없애고 평화로운 세상을 만들자는 목소리가 요란한 지금, 전쟁 타령이 새삼스럽다. 하지만 따져보면 그 주장은 괜한 게 아니다. 1945년 2차 세계대전이 끝날 무렵 또 다른 세계대전을 막기 위해 창설된 유엔이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치열한 경쟁 당사자 15개국이 지원하는 합작 프로젝트인 국제우주정거장(ISS)은 또 어떤가. 현재 ISS를 지원하기 위해 세금을 보태는 사람은 전 세계 10억명이 넘는다. “나는 전쟁 예찬론자가 아니다.” 인류학자이자 진화생물학자인 피터 터친 옥스퍼드대 인류학과 연구교수는 결코 전쟁을 미화하거나 정당화하지 않는다. ‘창조적 파괴’라는 경제학자 조지프 슘페터의 유명한 말에 빗대, 전쟁을 ‘파괴적 창조’로 자리매김해 눈길을 끈다. 인류 사회의 진화 원인을 전쟁의 발전 과정에서 찾아낸 것이다. “인류가 거대한 협력체계를 만들어낼 수 있었던 것도, 오랜 평등의 시기를 마친 후 극도의 불평등 시기를 거쳐 또다시 평등한 시대를 열게 된 것도 전쟁 없이는 설명할 수 없다”고 잘라 말한다. 그리고 그 전쟁에 ‘협력’이란 결정적인 키워드를 얹는다.“어떻게 생면부지의 수많은 인간들이 협력하고 살아갈 수 있게 됐을까.” 책은 그 질문에서부터 시작한다. 많은 사가들은 협력의 진화를 농경사회에서 찾는다. ‘총, 균, 쇠’의 저자 재러드 다이아몬드가 대표적이다. “최초로 농사를 지을 지역을 결정한 것은 지형이었고, 그것이 이후의 인간 역사를 엮어 갔다.” 하지만 터친 교수의 주장은 다르다. 농업은 복잡사회 진화의 필요조건일 뿐 충분조건은 아니라는 것이다. ‘낯선 사람들과 협력할 줄 아는 인간의 능력.’ 터친 교수가 주목한 건 인류의 초협력성이다. 그는 그 초협력성이 바로 전쟁과 함께 발전돼 왔다고 일관되게 말한다. “집단의 생존이 좌우될 만큼 혹독한 환경적 조건에서라면 협력을 잘 이루어낸 집단이 살아남을 가능성이 크고 협력을 잘 이루어낸 집단일수록 더 큰 규모로 성장할 수 있다”는 게 핵심이다. 널리 알려졌듯 유라시아 대초원에서 시작된 군사기술은 대륙과 산맥, 바다, 사막지대 등 지형을 가리지 않고 확산됐다. 저자는 이 대목에서 이렇게 말한다. “농경지가 언제 어디서 큰 국가로 발전했는지 알려면 무엇보다 전쟁의 패턴을 잘 살펴야 한다.” 전쟁의 파괴적 창조성을 설파한 선인들은 숱하다. 프리드리히 니체는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서 전쟁에 주목한다. “소규모 수렵채집인과 농경마을에서 정교한 통치제도와 복잡하고 매우 생산적인 경제생활로 인간을 탈바꿈시킨 것은 집단 간 경쟁으로, 보통 전쟁의 형태를 띤다.” 그런가 하면 스위스 역사학자 야코프 부르크하르트는 전쟁과 파괴를 일삼는 힌두교 신 시바를 놓고 이렇게 설명한다. “파괴의 즐거움이 가득한 전쟁은 폭풍우처럼 대기를 맑게 씻어내고 용기를 한층 북돋우며 영웅적 성품을 회복시켜 준다. 국가는 원래 게으름과 배신, 비겁함을 몰아내고 회복한 영웅적 성품을 기반으로 설립되었다.” 하지만 ‘파괴적 창조’라는 전쟁의 발달과 확산은 책의 핵심 테마가 아니다. 그 주장의 요체는 확장된 사회나 국가의 안정적 유지를 위해 협력의 가치를 제대로 봐야 한다는 것이다. 이 주장에는 우리가 살고 있는 대규모 사회가 여전히 취약하다는 전제가 깔렸다. 1970년대의 북아일랜드처럼 북아메리카나 서구 유럽에서도 협력은 한순간에 와해될 수 있다고 경고한다. “사회 전반, 특히 규모가 큰 사회에서의 협력은 본래적으로 허약할 수밖에 없고 그럴 때 파괴적 창조의 힘이 작용하지 않는다면 협력은 쉽게 와해되고 만다.” 책에서 특히 주목할 부분은 ‘역사는 과학’이라는 강변이다. “‘협력의 과학’을 이용해 효과적인 정책을 제시하고 사람들의 삶을 개선하는 수단까지 개발해야 합니다.” 김성호 선임기자 kimus@seoul.co.kr
  • 살인사건이 보여준 민초의 삶

    살인사건이 보여준 민초의 삶

    100년 전 살인사건/김호 지음/휴머니스트/400쪽/2만 2000원살인사건 수사에는 면밀한 사체 검시와 촘촘한 주변인 진술 확보가 필수다. 100년 전 조선에선 살인사건을 어떻게 풀어냈을까. 저자는 그 생소한 영역을 파고들었다. 서울대 규장각 한국학연구원이 소장한 살인사건 보고서 ‘검안’(檢案)을 분석해 들춘 조선시대의 사회상이 도드라진다. 검안은 시체 검사소견서 시장(屍帳)과 사건 관련자 심문기록인 공초(供招)를 포함한 일체의 살인사건 조사보고서다. 19세기 후반~20세기 초반 작성된 검안 500여건 2000여책에는 기이한 사연들이 빼곡하다. 질투에 눈멀어 아내를 살해하고 자살로 위장한 남편, 사람을 죽여 놓고 여우를 때려잡았다고 강변하는 추한 양반이 등장한다. 아이를 납치해 간을 빼먹은 한센병 환자며 사위를 살해한 딸을 목 졸라 죽인 친정엄마의 일탈도 눈에 띈다. 그 살인사건들을 종합해 보면 일단 강·절도가 살인으로 이어진 경우가 가장 많다. 특히 혼자 사는 과부와 외지에서 들어와 살거나 가난 탓에 남의 집에 기식하던 여성이 희생되기 일쑤였다. 폭력으로 유발된 살인은 개인뿐 아니라 향촌의 양반 가문이나 계·두례 같은 평민 상호 부조조직 간에도 빈번히 발생했다. 책은 단순히 살인사건 소개와 수사 양상 소개에 머물지 않는다. 유형별 살인사건 15건의 틈새에 담긴 민중의 삶을 건져 올린 관점이 신선하다. 특히 죽음 앞에서 토해낸 민초들의 솔직한 목소리에 주목한다. 그 목소리에 성리학의 ‘군자론’, 특히 정조의 ‘소민군자론’을 얹는다. “누구나 도덕적인 삶, 인간다운 삶을 추구할 자질을 갖추고 있고 갖춰야 한다.” 그 군자론에서 소민, 즉 민초들도 예외는 아니었다는 주장이다. 김성호 선임기자 kimus@seoul.co.kr
  • “교황, 평화 향한 우리의 발걸음에 큰 힘 실어주셨다”

    ‘환영하지만 선결 과제 적지 않아….’ 18일 프란치스코 교황이 사실상 방북을 수락한 것에 대한 한국 천주교의 반응이다. 일제히 환영하면서도 교황 방북 전 해결해야 할 일들이 산적했다는 고민을 숨기지 않는 표정이다. 천주교계는 프란치스코 교황이 한반도 평화에 각별한 관심을 갖고 있다는 점을 들어 방북을 예상했던 결과로 여긴다. 이와 관련해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의장인 김희중 대주교는 “평화의 사도이신 교황님께서 평화를 향한 우리의 발걸음에 큰 힘을 실어 주심에 깊이 감사드린다”고 밝혔다. 하지만 교황 방북 전 풀어야 할 문제가 적지 않다. 무엇보다 교황의 외국 방문은 대부분 사목 방문의 성격을 띤다는 게 가장 큰 고민이다. 북한에는 천주교 단체인 조선가톨릭협의회와 평양 장충성당 한 곳이 있지만 사제는 단 한 명도 없는 실정이다. 따라서 교황이 방북하면 평양교구장을 겸하고 있는 서울대교구장 염수정 추기경이 교황을 영접해야 할 판이다. ‘교황 방북 전 북한·바티칸 수교’의 예측이 나오는 이유다. 천주교계는 그런 교회 내적인 상황에도 불구하고 한반도의 특별한 상황을 고려해 교황 방북을 적극 지원할 태세다. 천주교주교회의 안봉환 신부는 “교황 방문으로 신앙 자유가 없는 북한 주민들이 심리적·정서적 안정을 찾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김성호 선임기자 kimus@seoul.co.kr
  • 한국 천주교계 “교황 방북 수락 환영… 그러나 선결 과제 적지 않아”

    한국 천주교계 “교황 방북 수락 환영… 그러나 선결 과제 적지 않아”

    ‘환영하지만 선결 과제 적지 않아….’ 18일 프란치스코 교황이 사실상 방북을 수락한 것에 대한 한국 천주교의 반응이다. 일제히 환영하면서도 교황 방북 전 해결해야 할 일들이 산적했다는 고민을 숨기지 않는 표정이다.천주교계는 프란치스코 교황이 한반도 평화에 각별한 관심을 갖고있다는 점을 들어 방북을 예상했던 결과로 여긴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수차례에 걸쳐 방북 의사를 표명해왔던 만큼 그다지 놀랄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의장인 김희중 대주교는 “평화의 사도이신 교황님께서 평화를 향한 우리의 발걸음에 큰 힘을 실어 주심에 깊이 감사드린다”고 밝혔다. 하지만 교황 방북 전 풀어야 할 문제가 적지 않다. 무엇보다 교황의 외국 방문은 대부분 사목방문의 성격을 띤다는 게 가장 큰 고민이다. 현재 신앙의 자유가 허용되지 않는 북한에는 천주교 단체인 조선가톨릭협의회와 평양 장충성당 한 곳이 있지만 사제는 단 한 명도 없는 실정이다. 드러난 신자도 없다. 따라서 교황이 방북하면 평양교구장을 겸하고 있는 서울대교구장 염수정 추기경이 교황을 영접해야 할 판이다. ‘교황 방북 전 북한-바티칸 수교’의 예측이 나오는 이유이다. 천주교계는 그런 교회 내적인 상황에도 불구하고 한반도의 특별한 상황을 고려해 교황 방북을 적극 지원할 태세다. 천주교주교회의 안봉환 신부는 “가톨릭 수장인 교황은 평화를 필요로 하는 곳이면 어디든 갈 수 있고 도모할 임무를 갖는다”며 “교황 방문으로 신앙 자유가 없는 북한 주민들이 심리적·정서적 안정을 찾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다음은 김 대주교의 메시지 전문이다. 대한민국 문재인 대통령의 교황청 방문과 프란치스코 교황 면담에 관한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의장 김희중 대주교의 메시지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초청과 교황청의 배려로 대한민국 문재인 대통령의 로마 교황청 방문이 성공적으로 이루어진 것을 환영합니다. 어제 로마 성 베드로 대성전에서 봉헌된 ‘한반도 평화를 위한 미사’는 한반도의 모든 국민과 세계인의 마음을 모으는 자리가 되었습니다. 미사를 주례해 주시고 고난 가운데서도 평화를 추구하며 화해의 은총을 주님께 청하도록 용기를 북돋워 주신 교황청 국무원 총리 피에트로 파롤린 추기경님께 감사드립니다. 같은 시간, 한국의 한밤중에 깨어 한마음으로 기도해 주신 국민 여러분께도 깊이 감사드립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은 즉위 직후인 2013년 주님 부활 대축일 강복 메시지에서 온 세계를 향해 “아시아의 평화, 무엇보다 한반도의 평화를 빕니다. 불화가 극복되고 화해의 쇄신된 영이 자라나기를 기원합니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2014년 8월 한국에 오셨을 때 ‘평화와 화해를 위한 미사’에서도 “대화하고, 만나고, 차이점들을 넘어서기 위한 새로운 기회들이 샘솟듯 생겨나도록 기도합시다.”라고 권고하셨습니다. 올해 열린 평창동계올림픽과 두 차례 남북 정상회담, 북미 정상회담 등 한반도의 평화를 촉진하는 중요한 시기마다 교황님은 기도와 축복의 말씀으로 한민족의 만남과 대화를 지지하고 응원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오늘, 대한민국 문재인 대통령과의 만남에서 프란치스코 교황께서는 북한 김정은 위원장의 공식 초청장이 오면 무조건 응답을 줄 것이고 가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평화의 사도로서 양 떼를 찾아 가는 목자의 모습을 보여주신 프란치스코 교황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이제 한반도는 냉전과 갈등의 그림자를 걷어 내며 평화의 땅으로 변모하고 있습니다. 평화의 사도이신 교황님께서 평화를 향한 우리의 발걸음에 큰 힘을 실어 주심에 깊이 감사드립니다. 한국 천주교회는 한반도의 항구한 평화 정착을 위한 남북한과 교황청의 노력을 지지하며 평화의 도구가 되어 역할을 다할 것입니다. 2018년 10월 18일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의장 김 희 중 대주교 김성호 선임기자 kimus@seoul.co.kr
  • 큰스님 담다 깨달음 닮다

    큰스님 담다 깨달음 닮다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로다.’ 1981년 조계종 제6대 종정에 추대된 성철(1912~1993) 스님이 해인사에서 대중에게 내린 취임 법어이다. 오랜 선(禪) 수행을 통해 크게 깨달은 마음 경지를 설한 이 법문은 일반에게 가장 흔히 회자된다. 이 오도의 일침 말고도 성철 스님은 숱한 명언을 남기며 제자, 신도들에게 ‘속이지 말고 자기 수행을 하라’고 당부했다. 수행과 생활 모두에서 자신과 남에게 가혹할 만큼 엄격했던 성철 스님. 그래서 현대 한국불교를 대표하는 선지식(善知識) 성철 스님에겐 늘상 ‘가야산 호랑이’란 별명이 따라붙는다.그렇다면 가까이에서 제자와 신도들이 겪고 느꼈던 ‘가야산 호랑이’는 어떤 인물일까. 일반인들이 알고 있듯이 그저 늘 “3000배를 하라”며 호통만 치는 ‘산중 호랑이’였을까. 백련불교문화재단(이사장 원택 스님)이 성철 스님 25주기(28일)를 맞아 세상에 낸 ‘성철 큰스님을 그리다’(유철주 지음, 장경각 펴냄)는 성철 스님을 친근하게 드러내는 인터뷰집으로 눈길을 끈다. 성철 스님을 가까이서 시봉했거나 가르침을 받은 직계 상좌(제자) 16명과 출가하지 않은 재가 제자 20명의 회고담이 새삼스럽다.그중에서도 일반에겐 생소한 맏상좌 천제 스님(성철스님문도 회장)과 둘째 상좌 만수 스님(대구 금각사 주지)의 전언은 특별하다. 천제 스님은 시봉 10년 만에 상좌가 된 제자. “평생 상좌를 두지 않겠다”던 성철 스님의 결심을 무너뜨린 주인공이다. 경남 통영 천제굴부터 시작해 성철 스님의 수행처가 바뀔 때마다 곁을 지켰다. 암자 주변에 철조망을 친 뒤 정진에만 집중한 전설적인 ‘성전암 동구불출’ 때도 만수 스님과 함께 성철 스님 곁을 지킨 천제 스님. 그는 “부처가 되기를 거절하는 천제가 되라”던 스승의 역설적인 인연담을 떠올린다. “수행자는 모름지기 가난을 배워야 한다”는 스승의 말씀을 전한 스님은 “큰스님은 빈부귀천의 차별이 없었으며 누구든 자기 기도는 자기가 해야 함을 강조하셨다”고 말을 맺는다. “공부한다고 여기 왔지만 바로 중이 되는 것은 아니다. 빨리 중 되고 싶으면 다른 곳으로 가도 좋다.” 평생 오로지 성철 스님만을 보고 정진했다는 만수 스님이 전한 입산 초기의 인연담이다. “지금 생각하면 수행자로서 하지 말아야 할 것은 절대로 하지 말라는 것을 강조하신 것 같다”는 만수 스님은 묻는다. “요즘 스님들이 하지 말아야 할 것을 하고 다녀 얼마나 많은 문제가 있습니까.” 원융·원타·원택·원영·원행·원암 스님 등 성철 스님의 수행 전통을 지켜오고 있는 제자들의 면면이 눈길을 끈다. 백련암으로 출가해 성철 스님을 생전 20년, 열반 후 20년을 모신 원택 스님은 스승의 가르침을 이렇게 전한다. “중은 평생 정진하다가 논두렁 베고 죽을 각오를 해야 한다.” 성철 스님의 가르침을 수십 년간 받고 ‘나 자신’을 다잡아온 재가 불자들의 이야기도 피부에 와닿는다. 출가승은 아니지만 성철 스님의 가르침을 따르며 수십 년간 매일 3000배를 올리거나 100일간 1만배를 꼬박 올린 신도들의 수행 정진담이 흥미롭다. 성철 스님 제자와 재가 불자들을 일일이 만나 인터뷰한 유철주 불교전문작가는 “큰스님은 재가자도 성불할 수 있으며 자기 수행과 사회적 실천을 함께하라고 강조하셨다”며 특히 “재가불자의 권위를 떨어뜨렸다는 등 성철 스님을 둘러싼 오해가 있지만, 인터뷰를 하면서 큰스님이야말로 재가불자 수행 정진의 표본을 제시하셨다는 걸 느꼈다”고 밝혔다. 한편 책은 비매품으로 발간됐다. 불가에서 전해 내려오는 ‘무상 법보시’의 전통을 따른 것이다. 백련불교문화재단은 오는 24일부터 4일간 해인사 백련암에서 진행되는 추모 법회와 27일 사리탑에서 이어지는 추모 삼천배 정진, 28일 해인사 대적광전에서 봉행되는 25주기 추모제 참여 대중들에게 무료로 배포할 예정이다. 김성호 선임기자 kimus@seoul.co.kr
  • 마트 카트 안에 당신이 담겨 있다

    마트 카트 안에 당신이 담겨 있다

    카트 읽는 남자/외른 회프너 지음/염정용 옮김/파우제/290쪽/1만 5000원‘당신은 슈퍼마켓에서 어떤 행동을 하나요?’, ‘슈퍼마켓에서 구입하는 물건을 통해 당신의 사회적 지위와 성향, 미래를 알 수 있다면?’ 놀랍게도 독일 사회학자 외른 회프너는 ‘슈퍼마켓의 사회학’을 펼쳐 보이고 있다. 2015년 독일 과학교육부가 주관하는 과학 강연대회인 사이언스 슬램에서 ‘광역열차 속의 사회학’이란 주제로 우승해 주목받은 젊은 사회학자. 그가 이번엔 무대를 슈퍼마켓으로 옮겼다. 각종 슈퍼마켓을 훑어 건져낸 메시지가 신선하다. 저자는 고객들의 행동과 구입물품을 토대로 사회 구성원을 10개 부류로 분류해 소개하고 있다. 시민 중산층, 디지털 원주민, 사회생태적 환경주의자, 보수적 기득권층, 진보적 지식인층, 순응적 실용주의자, 전통주의자, 성과주의자, 쾌락주의자로 대별된다. 1980년대부터 지금까지 “독일 사회를 이루고 일궜다”는 각계각층의 집단이다. 비단 독일뿐 아니라 어느 나라에서나 있을 수 있는 모든 계층과 성향이 망라됐다. 그 군상들이 슈퍼마켓에서 보이는 행동과 구입하는 물품들을 관찰해 분석하면서 독자들의 동참과 판단을 유도하는 구성이 독특하다. 왜 하필 슈퍼마켓일까. 저자에 따르면 슈퍼마켓은 타인을 자세히 관찰해 볼 수 있는 최적의 장소이자 이상적인 여건을 갖춘 곳이다. “많은 낯선 사람들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슈퍼마켓에서 자연스럽게 꾸밈없이 행동한다. 슈퍼마켓은 우리가 사회를 조사할 수 있는 이상적인 배양접시다.” 그 ‘배양접시’에서 고객들이 구입하는 물품들을 보자. ‘얇게 저민 돼지고기 두 팩, 오렌지 한 망, 샐러드 토핑 다섯 팩짜리 한 묶음, 아침식사 대용 시리얼 두 통, 샴페인 한 병, 레타 버터 두 통.’ 청바지와 평범한 가죽구두, 수수한 실외용 재킷 차림을 한 ‘시민 중산층’ 중년 여성의 구입 목록이다. 그렇다면 이 물품들은 어떨까. ‘포장 안 된 사과 두 개, 유리컵에 담긴 목장우유 하나, 공정무역 초콜릿 한 판, 생강 녹차 한 팩, 통밀빵 한 덩이.’ 한 젊은 여성 환경운동가가 구입한 것들이다. 흥미롭게도 사회 구성원 계층별로 구입한 물품과 그들이 슈퍼마켓에서 보인 언행, 옷차림이 동일한 패턴으로 묶인다.책에서 눈여겨볼 대목은 그 연관성을 토대로 분석한 계층별 구성원들의 속성과 미래 전망이다. 이를테면 저자는 ‘시민 중산층’을 향해 이렇게 일갈하고 있다. “시대를 초월하며 기능에 충실하고 타협하지 않는다. 자신이 무엇을 얻을지 정확히 알고 있다. 하지만 사회적으로 신분이 하강할 것이라는 불안, 힘들여 얻어낸 것을 더이상 지킬 수 없어 사회적으로 몰락할 것이라는 불안이 심하게 괴롭히고 있다.” ‘과도한 여가활동을 통해 좌절과 자신의 불완전함에 대한 두려움으로부터 관심을 딴 곳으로 돌리려고 노력한다’는 쾌락주의자들에겐 이렇게 묻는다. “얼마나 오랫동안 27세로 남아 있을 수 있으며 얼마나 오랫동안 록스타가 아닌 모든 사람들을 무시할 수 있을까.” ‘사회학자는 인간과 사회를 관찰하는 사람.’ 그 철학과 소신을 굽히지 않겠다는 저자가 정작 전하려는 메시지는 책의 맨 마지막에서 돌출한다. “우리는 모두가 자기만의 전망대에서 세상을 바라봅니다.” 메시지의 극적인 반전인 셈이다. 그 반전의 메시지는 이렇게 맺어진다. “누구나 늘 오직 자신의 모든 경험과 가치관이 반영된 유리창을 통해서만 우리를 바라본다. 사람들이 보는 것이 반드시 우리가 보는 것일 필요는 없다. 그러니 곧장 진실을 본다고 가정하지 말자. 대부분의 사람들은 다시 한번 눈길을 보낼 가치가 있다.” 김성호 선임기자 kimus@seoul.co.kr
  • 원불교 교정원장에 오도철 교무

    원불교 교정원장에 오도철 교무

    원불교 제28대 교정원장에 홍산 오도철(57) 교무가 9일 선출됐다. 신임 오도철 교정원장은 1979년 출가해 대연교당 교무로 시작해 교화연구소 과장, 중앙중도훈련원 부원장, 기획실장, 서신교당·신촌교당 주임교무 등을 역임했다. 오 교무는 다음달 4일부터 임기 3년의 교정원장 직을 수행한다. 원불교 교정원장은 원불교 교단 행정을 총괄하는 행정 수반으로 조계종의 총무원장과 같은 지위에 해당한다. 김성호 선임기자 kimus@seoul.co.kr
  • 홀대받았던 그 사건들… ‘한국사 밖의 한국사’

    홀대받았던 그 사건들… ‘한국사 밖의 한국사’

    한뼘 한국사/만인만색연구자네트워크 지음/푸른역사/296쪽/1만 5000원우리의 역사 교육은 국가와 민족 우선주의를 벗어나지 못한 경향을 갖는다. 그 범주 밖의 사람과 행동은 배제되거나 홀대받기 일쑤다. 책은 그 흐름과 달리 새로운 역사 쓰기를 강조하고 있다. 2015년 말 박근혜 정부가 밀어붙인 역사 교과서 국정화에 반발한 신진연구자들 모임인 만인만색연구자네트워크의 첫 결실이다. 역사학을 전공한 박사과정·수료생 열세 명이 역사학 대중화 차원에서 기획해 처음으로 세상에 내놨다. ‘한국사 밖의 한국사’라는 부제가 암시하듯 글들은 모두 배제·홀대의 대상이었던 인물과 사건을 재평가한다. 낮은 곳에 위치했던 평범한 사람들, 주류 역사 서술에서 금기시됐던 이들, 같은 국민이었지만 잊혀져간 존재들이 역사의 정면에 새로운 얼굴로 부상한다. 가장 눈길을 끄는 부분은 ‘역사 주인공’의 재배치다. 권력을 갖지 못한 사람들이 감내했던 불합리한 환경과 그 안에서 살아 냈던 삶의 방식들이 흥미롭게 풀어진다. 베트남전쟁 파병 군인의 계급별 경험 차이도 신선하다. 그동안 똑같이 여겨졌던 파병 군인들에 대한 인식을 바꿔 놓는다. 1925년 발생한 예천 형평사 공격사건에선 사회적 약자 사이의 갈등과 반목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국가 안보를 강조했던 공장새마을운동과 노동자들의 이야기는 순응과 저항 사이를 오간 유신시대 사람들의 삶 그 자체다. 역사의 경계에 서 있었던 사람들의 이야기도 새삼스럽다. 민족사에서 사라졌던 조선족의 조국관 형성 과정, 조선시대 세종의 4군6진 개척 과정에서 북으로 이주했던 조선인들에 대한 인상이 새롭게 각인된다. 글들은 결국 한쪽을 향해 모아진다. “역사 교과서는 역사학, 역사 교육, 국가와 시민의 관계를 모두 반영하는 그 시대의 산물입니다.” 김성호 선임기자 kimus@seoul.co.kr
  • 목회자·교회 늘어나는데…교회 찾는 신도는 갈수록 줄어

    ‘개신교 신도는 줄어드는 반면 목회자·교회는 계속 증가세.’ 2일 개신교계에 따르면 지난 9월 정기총회에 보고된 각 교단 통계 분석 결과 대부분 교단에서 교인 수 감소현상이 심화되는 등 교세가 줄어든 것으로 확인됐다. 2017년 기준 대다수 교단에서 전년 회기 대비 교인이 줄어들었고 전년 회기 교인 수가 늘었던 교단들도 감소했다. 예장 통합총회는 교인 수가 전년도 273만 900명에서 1만 6586명(0.61%) 감소한 271만 4314명으로 집계됐다. 지난해 처음 예장통합을 앞질렀던 예장 합동총회도 줄었다. 276만 4428명에서 7만 5570명(2.7%)이나 감소했다. 특히 지난 회기 교인 수 증가세를 보였던 예장 고신총회는 2004년 이래 최저의 교인 수를 기록했다. 작년엔 47만 3500명이었지만 올해는 45만 2932명으로 2만 568명 감소했다. 한편 지난해 교세가 9%나 감소했던 한국기독교장로회는 전년 대비 2.14%인 5032명이 줄어 감소세가 주춤했다. 이에 비해 교회와 목회자는 증가했다. 예장 통합총회는 산하 교회가 8984개에서 9096명으로 1.25% 증가했다. 목회자도 530명이 늘어난 1만 9832명, 장로는 42명이 증가한 3만 1279명으로 조사됐다. 예장 합동총회의 경우 교회는 0.1% 줄어 1만 1922개를 기록했으며, 목회자는 1.2% 증가한 2만 3726명이었다. 기장총회는 전년 회기 대비 교회 7개, 목회자 38명이 늘었지만 입교인은 897명 줄었다. 예장 합신총회는 교회 수 958개로 전년보다 10곳이 늘었지만, 교인은 14만 6898명으로 전년보다 4800여명 줄었다. 김성호 선임기자 kimus@seoul.co.kr
  • 새 얼굴 뽑았지만 앞길은 첩첩산중

    새 얼굴 뽑았지만 앞길은 첩첩산중

    24개 단체 선거 무효·즉각 퇴진 요구 기득권 인사로 집행부…갈등 커질 듯 종단 비위 의혹 등 명예 회복도 관건“새 총무원장을 뽑긴 했지만 앞길은 첩첩산중.” 요즘 한국불교 맏형 격인 조계종의 상황을 솔직하게 드러낸 총무원 관계자의 심경 표현이다. 지난달 28일 제36대 총무원장에 당선된 원행 스님이 2일 조계종 최고의결기구인 원로회의의 인준을 받아 총무원장 지위를 확정했다. 원행 총무원장은 당선증을 받은 직후 총무부장 등 6개 주요 부, 실장 임명을 전격 단행해 새 집행부의 닻을 올렸다. 혼란스러운 종단을 곧바로 수습하겠다는 단호한 의지로 읽힌다.하지만 조계종의 갈 길은 순탄치 않아 보인다. 우선 설정 총무원장 탄핵과 새 총무원장 선거 과정에서 불거진 극심한 분열을 어떻게 극복할지가 관건이다. 73.9%의 득표율로 당선된 총무원장을 향한 재야단체와 스님들의 반발이 심상치 않다. 24개 불교단체로 구성된 불교개혁행동은 선거 무효와 총무원장 불인정을 선언했다. 이들은 나아가 당선자 원행 스님의 즉각 사퇴와 직선제 선거 재실시, 자승 전 총무원장의 종단 축출을 요구하고 있다. 여기에 선거 이틀 전 빚어진 세 후보의 동반 사퇴도 후유증을 예고하는 종단 초유의 사태다. 이들은 사퇴 기자회견을 통해 “선거운동 과정에서 두터운 종단 기득권 세력들의 불합리한 상황들을 목도하면서 참담한 마음을 금할 수 없었다”고 밝혔다. 특정인을 지적하지는 않았지만 원행 스님을 지지한 것으로 알려진 자승 전 총무원장 측과 종단 기득권 세력을 겨냥한 만큼 내홍 수습이 쉽지 않으리란 전망이 우세하다. “당선의 기쁨보다는 우리 종단과 불교계의 엄중한 현실에 대한 무거운 책임감을 느낍니다.” 종단 상황을 의식한 때문인지 원행 스님은 당선 소감을 통해 갈등 해소와 개혁을 우선 입에 올렸다. 그 실효적인 조치로 “소통과화합위원회를 만들어 어떠한 의견일지라도 총무원이 먼저 듣도록 하겠다”고 선언했다. 하지만 새 집행부가 대부분 기득권 인사로 구성된 만큼 갈등 해소 과정에서 적지 않은 문제에 부닥칠 것이란 관측이 벌써부터 흘러나오고 있다. 여기에 추락한 종단의 위상 회복 문제도 큰 과제로 꼽힌다. MBC PD수첩이 설정 스님 등 조계종단의 비중 있는 인사들에 얽힌 비위 의혹을 방송해 사실 여부를 떠나 국민의 눈총과 지탄을 받았다. 위상 회복과 함께 중장기적으로 풀어야 할 숙제는 역시 종단개혁이다. 조계종은 선거 때마다 각종 비방과 의혹, 금권선거 논란으로 세간의 눈총을 받곤 했다. 이번 선거만 해도 간선제로 진행됐지만 직선제를 비롯한 선거제도 개선 등 재야단체들의 혁신 요구가 더 거세질 것으로 보인다. 원행 스님이 제시한 승려복지제도 확대와 교구중심제 완성, 비구니특별교구 설립과 관련한 공약 이행도 새 집행부의 성패를 가르는 첨예한 사안이다. 문화재관람료 문제 해결과 남북 불교협력 사업, 신도와 출가자 감소 등도 화급한 당면과제다. 원행 스님은 종단의 요직을 두루 거친 데다 선거 과정에서 비위 등 자격 논란 시비가 일지 않아 무난히 당선됐고 원로회의의 인준도 받았다. 하지만 종단 내 주류 세력의 지지를 받아 당선된 만큼 적폐청산을 요구하는 재야 단체와 스님들의 목소리를 피할 수 없는 태생적 한계를 가진 총무원장으로 인식된다. 따라서 이후 단행할 인사와 공약 이행과정에서 불거질 불협화음을 어떻게 극복할지 조계종 ‘원행호’의 출범에 불교계 안팎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김성호 선임기자 kimus@seoul.co.kr
  • 조계종 제36대 총무원장에 원행 스님

    조계종 제36대 총무원장에 원행 스님

    대한불교 조계종 제36대 총무원장에 중앙종회 의장인 원행 스님이 선출됐다. 원행 스님은 28일 서울 종로구 한국불교역사문화기념관에서 열린 선거에서 선거인단 318명 중 투표에 참여한 315명의 과반이 넘는 235표를 얻어 당선됐다. 이날 선거는 정우, 혜총, 일면 스님 등 세 후보가 선거 이틀 전인 지난 26일 ‘선거 불공정’을 이유로 동반사퇴해 단독후보 선거로 치러졌다. 원행 스님은 금산사에서 월주 스님을 은사로 출가, 법주사에서 혜정 스님을 계사로 사미계를, 범어사에서 자운 스님을 계사로 구족계를 받았다. 해인사 승가대학·중앙승가대를 졸업했으며 금산사 주지, 본사주지협의회장, 중앙종회 11~13대·16대 의원, 중앙승가대 총장 등을 역임했다. 현재 지구촌공생회, 나눔의 집 상임이사와 16대 중앙종회의장을 맡고 있다. 원행 스님은 설정 스님의 중도 퇴진으로 총무원장이 궐위 상태인 만큼 당선증을 받는 즉시 임기를 시작한다. 조계종 총무원장은 조계종의 행정을 총괄하는 행정 수장으로, 인사와 예산 집행에 막강한 권한을 갖고 있다. 총무원 임직원과 전국 사찰 3100여 곳에 대한 주지 임명권, 스님 1만 3000여 명의 인사권을 비롯해 매년 530억 원이 넘는 예산 집행권과 종단 소속 사찰의 재산 감독및 처분 승인권을 가진다. 한편 재가불자 단체로 구성된 불교개혁행동과 설정 총무원장 사퇴및 조계종 개혁을 요구하며 단식했던 전 불국사 주지 설조 스님 등 재야 스님들은 선거 원천 무효와 불복을 선언했다. 따라서 은처자와 사유재산 축적 의혹 등으로 사퇴한 설정 총무원장 탄핵과 맞물린 조계종의 혼란은 지속될 전망이다. 김성호 선임기자 kimus@seoul.co.kr
  • ‘국민의당 제보조작‘ 이준서 전 최고위원 징역 8개월 확정

    ‘국민의당 제보조작‘ 이준서 전 최고위원 징역 8개월 확정

    지난해 대선 당시 ‘국민의당 제보조작’ 사건으로 기소된 이준서 전 최고위원의 징역형이 확정됐다.  대법원 2부(주심 박상옥)는 28일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이 전 의원에 대해 징역 8개월을 선고한 원심 판결을 확정했다.  국민의당 선거대책위원회 ‘2030희망위원회’ 위원장이던 이 전 최고위원은 당원인 이유미씨에게 문재인 대통령의 아들 준용씨의 한국고용정보원 입사 특혜 의혹을 뒷받침할 녹취록을 구해오라고 요구한 뒤 조작된 자료를 공명선거추진단에 넘겨 공개하도록 한 혐의로 기소됐다. 이유미씨도 입사 특혜 관련 육성 증언 파일과 카카오톡 캡처 화면을 허위로 만들어내 국민의당이 공개하도록 한 혐의로 기소된 뒤 1·2심에서 징역 1년을 선고받았으나 상고하지 않았다.  재판부는 “단순히 의혹을 제기하는 취지가 아니라 당시 문재인 후보자의 당선을 방해하는 내용을 포함한 허위사실을 공표한 것”이라며 “공직선거법상 허위사실은 후보자에 대해 정확한 판단을 그르치게 할 수 있을 정도로 구체성을 가지면 충분하다”고 밝혔다. 이어 “민주주의 정치제도에서 언론의 자유는 충분히 보장돼야 하고, 공직선거에 있어 후보자를 검증하는 것은 필요하고 중요한 일이긴하지만 근거가 약한 의혹 제기를 광범위하게 허용하면 유권자의 선택을 오도하는 결과를 야기한다”며 “의혹이 진실인 것으로 믿을 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는 경우에 한하여만 허용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 전 의원은 2심 재판 중이던 지난 3월 보석 결정으로 구속상태에서 풀려난 상태였다. 검찰은 조만간 이 전 위원의 형 집행 절차를 시작한다.  또 조작된 제보 내용을 제대로 확인하지 않고 대선을 사흘 앞둔 지난해 5월 5일과 7일 두차례에 걸쳐 기자회견을 열어 관련 내용을 공개한 혐의로 기소된 김성호 전 의원과 김인원 변호사에 대해서도 각각 벌금 1000만원과 벌금 500만원을 선고한 원심 판결이 확정됐다.  이민영기자 min@seoul.co.kr
  • 당신도 ‘놈놈놈’ 비하하는 ‘다문화맹’은 아닙니까

    당신도 ‘놈놈놈’ 비하하는 ‘다문화맹’은 아닙니까

    차별의 언어/장한업 지음/아날로그/240쪽/1만 4000원 #1. 서울 광화문 네거리에서 백인과 흑인이 각각 길을 잃는다. 갈 길을 알려 달라는 부탁을 받은 한국인들의 입장이 극명하게 갈린다. 백인에게는 친절하게 응답하거나 손수 길을 인도하지만 흑인에게는 데면데면 응수하거나 그냥 지나치기 일쑤다. #2. 어릴 적부터 발레를 익힌 베트남 여학생이 한국 대학교에 유학을 온다. 그는 몸이 굳는 걸 막기 위해 틈틈이 발레 강습소를 찾아 몸을 풀면서 한국인 강사에게 지도를 부탁한다. 강사가 신기한 듯 쳐다보며 이렇게 말한다. “베트남에서도 발레를 가르치나요?”한국을 찾는 외국인들은 “한국인들이 피부색에 따라 이중적인 태도를 보인다”고 불평한다. 백인에게는 비굴할 만큼 친절하지만 황인이나 흑인에게는 냉담하기 짝이 없다는 지적이다. 베트남 유학생의 발레는 어떤가. 따져보면 19세기 중반부터 약 100년간 프랑스의 지배를 받았던 베트남에는 한국보다 훨씬 앞서 발레가 유입됐다. 그런데 ‘베트남 사람들도 발레를 배우냐’는 질문을 받는 베트남 사람은 어떤 생각을 하게 될까. 한국인들은 ‘다문화 사회’를 애써 강조하지만 현실의 태도는 영 딴판이다. 다름과 차이를 인정하고 더불어 살자는 공동체 의식보다는 나와 남을 가르는 차별의 몸짓이며 말이 앞선다. 다문화사회에 천착해 온 장한업 이화여대 교수는 한국의 뿌리 깊은 단일민족주의와 집단주의를 ‘차별의 언어’를 통해 꼬집는다. 그 차별과 비하의 언어는 중국인과 일본인, 서양인을 낮춰 부르는 ‘떼놈’, ‘왜놈’, ‘양놈’의 이른바 ‘놈놈놈’ 이론에서 명확하게 드러난다. 떼놈은 ‘때가 많아서’, ‘떼를 잘 써서’쯤의 중국인에 대한 속칭이다. 하지만 그 어원인 ‘되놈’의 ‘되’는 북쪽을 가리키는 고유 한국어다. ‘왜놈’도 왜소한 일본인쯤으로 알고 입에 올리지만 본래 ‘왜놈’의 ‘왜’는 난장이 왜(矮)가 아닌 왜나라 왜(倭)다. 다문화 사회 한국에서 만연한 ‘놈놈놈’류의 편견과 비하를 저자는 ‘다문화맹’이라고 부른다. 그 ‘다문화맹’의 흔적은 이탈리아 스파게티와 베트남 쌀국수에서 쉽게 찾아진다. 베트남 쌀국수라 한다면 스파게티도 이탈리아의 밀국수로 불러야 하지 않을까. 그렇다면 이 땅에 그토록 많은 차별의 언어가 횡행하는 이유는 뭘까. 그 원인은 역시 단일민족주의처럼 민족과 자기를 우선시하는 중심주의와 집단주의다. 실제로 한국인들 사이에서는 다른 나라와 달리 ‘우리’와 ‘국민’이라는 수식어가 넘쳐난다. 외국에서는 내 남편, 내 아들이라 부르지만 한국인들은 늘상 우리 남편, 우리 아들이라는 말을 즐겨 쓴다. ‘우리’의 어원은 울타리다. 울타리는 안에 있는 사람에게는 보호막이 되지만 그 밖의 사람에게는 차단막이 될 수 있다. 노르웨이 오슬로대학교 한국학과 교수인 박노자는 한국인의 우리주의와 집단주의를 이렇게 꼬집은 적이 있다. “한국인은 ‘우리 것’은 본래 좋고 우월한 것이며 우리 속에 사는 ‘나’는 별로 잘난 게 없어도 우리에 속한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상당히 잘난 것처럼 여긴다.” 독일 철학자 하이데거는 ‘언어는 존재의 집’이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인간은 언어를 통해 사고하고 존재하는 만큼 언어를 잘못 쓰면 잘못된 사고를 할 수 있다는 일갈이다. “20세기 말부터 이민자가 대거 들어오면서 다문화 현상이 가속화하고 있다”며 저자는 이렇게 당부하고 있다. “인식을 전환하는 첫걸음은 자신과 자기 문화에 대한 통렬한 비판과 성찰입니다.” 김성호 선임기자 kimus@seoul.co.kr
  • “조계종 불공정 선거” 총무원장 후보 3명 사퇴

    “조계종 불공정 선거” 총무원장 후보 3명 사퇴

    조계종 제36대 총무원장 선거에 출마한 후보 4명 가운데 3명이 선거운동의 불공정을 이유로 공동 사퇴했다. 이에 따라 28일 선거는 가장 유력한 후보로 꼽혀 왔던 중앙종회 의장 원행 스님 단독 후보 체제로 치러지게 됐다. 혜총, 정우, 일면 스님은 26일 오전 서울 종로구 견지동 한국불교역사문화기념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사퇴 의사를 밝혔다. 이들은 “선거운동 과정에서 두터운 종단 기득권세력들의 불합리한 상황들을 목도하면서 참담한 마음을 금할 수 없었다”며 “이권만 있으면 불교는 안중에도 없는 기존 정치세력 앞에 종단의 변화를 염원하는 저희들의 노력은 아무런 의미가 없음을 통감했다”고 말했다. 후보들은 이어 “이번 선거가 현재대로 진행된다면 종단 파행은 물론이거니와 종단이 특정세력의 사유물이 돼 불일(佛日)은 빛을 잃고 법륜(法輪)은 멈추게 될 것”이라며 “불합리한 선거제도를 바로잡고자 이번 제36대 총무원장 후보를 사퇴하기로 결의했다”고 말했다. 이에 앞서 조계종 개혁을 요구하며 단식했던 전 불국사 주지 설조 스님은 지난달 30일 기자회견을 통해 “총무원장 선거는 종헌종법에 근거해 적폐, 유사승려들이 청산된 이후에 진행돼야 한다”며 선거 중지를 요구했었다.따라서 조계종단 사상 초유의 현직 총무원장 탄핵사태 끝에 치러지는 총무원장 선거는 후보들의 집단사퇴로 적지 않은 후유증을 낳을 전망이다. 한편 총무원장 선거는 28일 오후 1시부터 한국불교역사문화기념관 지하공연장에서 예정대로 진행된다. 원행 스님은 현 중앙종회 의원 78명과 전국 24개 교구 본사에서 선출한 240명 등 318명으로 구성된 선거인단 과반수의 찬성이면 당선된다. 김성호 선임기자 kimus@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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