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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씨줄날줄] 난행량/김성호 논설위원

    미국 마이애미와 플로리다, 푸에르토리코를 삼각형으로 잇는 버뮤다 해역은 ‘마의 삼각지대’라 불린다. 항공기며 선박이 느닷없이 추락, 실종하는 의문의 사건들이 잇따랐기 때문. 최근 에어프랑스기 실종도 무관치 않다고 한다. ‘열대성 고기압 허리케인의 이상돌풍 탓’이란 과학적 설명에도 불구, ‘마의 삼각지대’를 놓곤 블랙홀 등 공상을 유발하는 화제가 여전히 입에 오르내린다. 우리 문화재와 관련해 ‘버뮤다 해역’으로 통하는 신비한 곳이 있다. 태안 앞바다. 대량발굴되는 도자기며 고선박, 희귀 파편들…. 후손들이야 손에 넣는 문화재들을 반기며 환호하는 게 당연할 터. 하지만 잃어버린 선박과 유물, 선원들을 놓고 당대엔 얼마나 많은 이들이 안타까워했을까. 까닭도 모른 채 사라지는 배들을 찾을 생각이나 했을까. ‘버뮤다 해역’ 태안 앞바다에서 귀중한 해저유물이 또 무더기로 건져올려졌다. 1970년부터 유물 신고가 잦았던 그 유명한 마도 해역에서다. 2007년 25점의 고려청자가 주민 신고로 빛을 봤고 지난해에만 무려 고려청자 500여점이 발굴된 곳. 이번엔 고려, 조선, 중국 송·원·명·청대 도자기 300여점에 선박 일부까지 수습하는 큰 수확이다. 지금까지 건진 유물이 자그마치 943점이나 된다고 한다. 그런데 이 마도 해역엔 흥미로운 이야기가 전한다. 고려 때 외국 사신을 태운 배들이나 무역선의 기착지로, 객관이 섰었고 조선시대엔 조운선들이 통과하던 곳. 요지이지만 바다밑 지형이 복잡하고 물흐름이 빨라 사고가 잦았다고 한다. 오죽하면 ‘통행이 어려운 여울목’이란 뜻의 난행량(難行梁)이란 이름이 붙었을까. 사고가 너무 잦자 ‘무사고 왕래’의 기원을 담아 안흥량(安興梁)이라고도 불렀다고 한다. 문화재청이 이 ‘난행량’을 작정하고 파고들 요량이다. 20년 계획으로 치밀한 조사를 벌이겠다는 것이다. 희귀 도자기는 물론 함께 발굴된 고려선박과 볍씨, 취사용 석탄, 죽간 등의 유물들이 예사롭지 않기 때문이다. 큰배 몇 척이 묻혔는지조차 알 수 없다는 수중보고. 얼마나 많은 사연과 유물들을 이 난행량은 갖고 있는 것일까. 블랙홀 난행량의 비밀이 완전히 벗겨지는 날은 언제쯤일까, 기대된다. 김성호 논설위원 kimus@seoul.co.kr
  • [길섶에서] 대물림/김성호 논설위원

    싫었다. 정말 싫었다. 어릴 적 외할머니가 말끝에 버릇처럼 붙이셨던 말씀. “이담에 나 죽거든…” 할머니를 참 좋아했는데. 손자 앞에서 왜 그 말을 그리 자주 하셨을까. 손자 잘돼라, 챙기는 노파심이었겠지만. 어린 나이에도 죽음은 무서웠나 보다. 운 좋게 할머니의 임종을 지킬 수 있었다. 마지막 말씀에선 “나 죽거든”이라 하셨다. ‘이담’이 빠졌다. 그때 알았다. ‘이담’의 의미를. 요즘 어머니가 그 말을 자주 입에 담는다. “이담에 나 죽거든…” 할머니 말투를 꼭 닮았다. 70대 중반, 아직 젊다면 젊은 나이. 부쩍 는 외할머니식 말투가 거슬린다. 한번 겪었던 때문일까. “그 말씀 하지 마시라.”고 번번이 정색하지만, 결정적인 순간엔 꼭 “이담에…”다. 듣기가 싫다. 그 ‘이담에’를 내가 할 줄이야. 오늘 아침 아들녀석하고의 자리에서다. 별로 대수롭지 않은 말 끝에 불쑥 튀어나왔다. 그렇게 싫어했고 피하던 말이. 머쓱하게 돌아서서 다시 입에 올려봤다. “이담에 나 죽거든…” 놀랍다. 정말 놀랍다. 대물림? 김성호 논설위원 kimus@seoul.co.kr
  • [서울광장] 네버랜드의 현실과 환상/김성호 논설위원

    [서울광장] 네버랜드의 현실과 환상/김성호 논설위원

    1904년 영국작가 J M 배리가 세상에 내놓은 동화 ‘피터 팬’. 100여년이 지난 지금도 영화, 뮤지컬 등 다양한 장르를 통해 동심을 자극하는 불후의 명작이다. 영원히 어른이 되지 않는 소년 피터 팬과 인간세계의 소녀 웬디가 이끌어가는 모험. 현실과 환상을 넘나들며 신비한 스토리들을 세우는 피터 팬 작품들엔 어김없이 네버랜드가 있다. ‘피터팬 신드롬’이란 용어까지 끌어낸 공통의 중심축인 것이다 영원히 나이를 먹지 않는 ‘가상의 섬’ 네버랜드는 작품 속 신비와 꿈의 공간과는 달리 실제로는 원작자 배리의 실화와 연결된 슬픈 땅이다. 일찍 죽은 형을 절절히 그리워한 어머니의 사랑을 받기 위해 몸부림쳤던 어린 시절. 역경을 딛고 작가로 대성, 엄청난 명예와 부를 쌓았지만 배리는 작품 속 실 모델들을 박대해 죽게 하거나 고통을 안겨 주었다고 한다. 과거사에 대한 후회인지 아동성애에 빠져들었고 자신 탓에 희생된 이들을 위해 작품 속 가상공간으로 네버랜드를 설정했다고 한다. 이 통설이 후대 사람들의 끼워맞추기식 미담인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작가의 고통스러운 현실을 아름다운 가상의 공간으로 탄생시킨, 현실-환상의 간극 메우기는 많은 걸 생각하게 한다. 유토피아적 환상이며 더 나은 삶과 위치에 대한 집착이 보편 인심이라고 할 때 ‘영원히 늙지 않는 동심의 세상’ 네버랜드는 가장 근본적인 욕심의 결정으로 볼 수 있다. 100여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인기를 끌고 있는 ‘피터 팬’은 바로 세상 인심과 속성을 아름답게 환치한 단적인 예가 아닐까. 급사한 ‘팝 황제’ 마이클 잭슨의 안식처로 네버랜드가 거론된다. 20년 전 캘리포니아주 샌타바버라에 동물원, 놀이시설을 갖춘 어린이공원, 저택을 세우고 이름 붙인 곳. 잇따른 어린이 성추문과 악화된 재정 탓에 떠나야 했던 미완의 섬이지만 마이클 잭슨에겐 결코 잊을 수 없는 회심의 땅이다. 아주 어린시절부터 아버지의 학대에 시달렸던 그가 ‘피터 팬’의 네버랜드를 꿈꾼 건 우연이 아니다. 돌아갈 수 없는 어린 시절에 집착한 때문일까. 유난히 어린아이들을 좋아했고 자주 네버랜드에도 초청했지만 결국 성추행으로 네버랜드의 환상을 스스로 접어야 했다. 아직도 깨지지 않는, 1억 400만장의 최다 단일음반 판매기록과 그래미상 13회 수상. 달 위를 걷는 듯한 뒷걸음질춤 ‘문 워크’로 춤 패턴을 단박에 바꿔 놓은 ‘팝 황제’. 기네스북에 오른 ‘가장 성공한 연예인’이란 수식어를 달고 살던 마이클 잭슨은 왜 하필 네버랜드를 세워놓았을까. ‘영원한 피터 팬으로 살고 싶다.’는 말 그대로 현실과 환상을 넘나든 재인은 아니었을까. ‘피터 팬’ 원작자 배리가 현실의 부조리를 환상으로 성취해 놓은 네버랜드와, ‘팝 황제’ 마이클 잭슨이 환상을 현실로 바꾼 네버랜드. 배리의 ‘피터 팬’ 속 네버랜드가 사라지지 않는 영원한 환상섬이라면 마이클 잭슨의 네버랜드는 자신이 세워 놓은 무덤이 될 판이다. 마이클 잭슨의 사인을 놓고 말들이 많다. 약물중독이니, 심박정지후 소생과정에서 주사한 약제 탓이니 공방이 치열하다. 두 차례에 걸친 성추행 사건과 거듭된 결혼 파경, 알아볼 수 없을 만큼의 얼굴성형 비난에 얹혀 잡음이 난무한다. 다음달 중순 예정된 런던 공연을 ‘마지막 커튼콜’이라고 불렀던 마이클 잭슨. 2005년 대중들을 떠나 은둔생활 중 재기를 위해 몸부림치다 맞은 죽음에 돌팔매질을 해 그의 간절하고 소박했던 환상의 네버랜드마저 박탈해야 할까. 김성호 논설위원 kimus@seoul.co.kr
  • [길섶에서] 회한/김성호 논설위원

    빵집. 약속장소가 하필 빵집이람. 독일로 건너가 산 지 오래됐다지만…. 50줄의 이방인(?)에겐 영 어색한 자리. 약속시간도 한참 지났는데, 친구는 나타나지 않고. 사방엔 10대들의 재잘대는 소리만 그득하다. 여기저기서 흘깃흘깃 겨눠오는 눈길들. 피곤하다. “냠냠.” “냄냄.” 시선들을 피하다가 만난 앞자리의 대화. 20대 중반 엄마와 2∼3살쯤의 어린 딸. 빵을 먹이며 “냠냠.”을 강요하는 엄마에게 아이는 번번이 “냄냄.”으로 응수한다. 발음탓이려니 했는데 아니다. 생글생글 웃어가며 엄마를 놀린다. 엄마가 소리를 지른다. 벼락처럼 터진 울음. 울릴 것까지야. 아이 엄마에게 어색한 웃음을 지어보이다가 떠올린 선친. 사춘기에 나도 “냄냄.”이었지. 귀찮은 잔소리로만 여겨 굳이 청개구리가 되곤 했으니까. 카투사 복무시절 미군 룸메이트도 그랬지. 한국말 발음을 교정시킨다며 정색하고 다투던 미군 친구. 다 하릴없는 고집뿐인 것을. “냄냄.” 헐레벌떡 들어선 친구에게 장난삼아 건넨 인사말. 오랜만의 대면인데 좀 심했나? 김성호 논설위원 kimus@seoul.co.kr
  • [씨줄날줄] 맞뺨/김성호 논설위원

    ‘군사부일체(君師父一體).’ 스승, 선생의 높임말 중 이만한 게 있을까. 나라님,어버이의 동일선상에 자리한 위상. 유교이념에 매몰된 시절의 높임이지만 적어도 스승, 선생을 향해선 최상의 표현이다.두려움 없이 임금 앞에 직언상소한 유생·학생들이며, 그 상소를 들어주던 왕의 열린 귀는 바로 스승의 존재를 인정했기에 가능하지 않았을까. ‘그림자도 밟지 않는다.’는 존경의 염. 스승이 얼마나 높고 귀했기에 그림자조차 못 밟을까. 교단에 선 교사라면 흔히 손에 들곤 했던 가느다란 막대기, 교편(敎鞭). 이젠 직업 수준의 상징적 보통명사가 됐지만 스승의 얼굴이자 이름격으로 통했었다. 존경과 높임의 대상으로 스승의 자리를 생각하게 하는 말들이었으리라. 이런 높임말이며 은유적 표현은 이제 우리네 많은 피교육자들에겐 언어도단이다. ‘좋은 대학 입문’을 최상의 목표로 꼽는 각축장인 교실, 학교에서 가당치도 않은 말들. 교사의 지나치다 싶은 체벌에 손전화로 경찰을 불러 응징하는 제자의 대응, 학교 선생님보다 학원교사의 말을 앞세우는 학생, 감 놔라 배 놔라 오지랖 넓은 학부모들…. 붕괴된 공교육에 만연한 일탈의 큰 요인은 분명 사제의 괴리와 불신이다. 야단치는 교사에게 반말로 대들다 출석부로 머리를 맞고는 교사의 뺨을 후려친 한 과학고 여학생의 맞폭행이 화제다. 분에 못 이겨 학생을 팬 교사는 폭행혐의로 입건됐고 선생님의 뺨을 후려갈긴 제자는 중징계를 받았다. 지금은 유명 대학에 진학한 그 학생은 졸업전 ‘징계가 부당하다.’며 학교·교사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해 패소했다. 그 학생은 전에도 교사를 폭행, 징계를 받았었다고 한다. 우리 학교의 흉측한 단면에 아연실색할 따름이다. 손발로 거칠게 제재한 교사, 그리고 교사의 폭행에 똑같은 폭력으로 응수한 뒤 ‘정당방위’라며 칼을 빼든 제자. 험한 싸움판의 모습과 뭐가 다를까. 법원은 징계를 재량권 남용으로 볼 수 없다며 학교측의 손을 들어줬다. 출석부로 머리를 때린 건 잘못이지만 그렇다고 교사의 뺨을 때린 것을 정당방위로 볼 수 없다는 판시도 있었다. ‘정당방위’, 정말 무섭지 않은가, 사제지간이…. 김성호 논설위원 kimus@seoul.co.kr
  • [길섶에서]홈리스/김성호 논설위원

    서울 잠실 지하철역에서 두 사람을 만나는 일은 매일 아침의 일과이다. 아니, 만남이 아니라 그저 스쳐 지나는 일이다. 변함없이 같은 곳을 지키는 40대 후반 남녀. 꾀죄죄하지만 보통 노숙자들과는 사뭇 다르다. 매일의 만남에 낯이 익었을까, 이젠 눈인사까지 건네온다. 언제나 다정한 두사람이다. 그런데 오늘 아침엔 자리가 비어 있다. 지나치려다 발걸음을 돌려 옆 꽃가게엘 들러 슬쩍 물어본다. 꽃집 아줌마도 궁금했나 보다. 여기저기 알아보러 다니는 중이라고 한다. “노숙자치곤 괜찮은 사람들이었는데….” 매일 대수롭지 않게 만나던, 아니 지나치던 사람들이지만 느닷없는 증발이 서운하다. 지하철에서 내려 지하도를 걷던 중 눈에 든 낯익은 얼굴들. 잠실역 노숙 남녀다. 빚쟁이에 쫓겨 식구들이 흩어졌는데 근방 쉼터에서 아들을 보았다는 소식에 이사(?)를 했단다. 사무실서 펴든 신문. 고생 끝에 하버드대 장학생으로 입학한 흑인 홈리스 소녀의 사진이 눈에 든다. 비슷한 처지의 엇갈린 운명들. 손이라도 한 번 잡아 줄 것을…. 김성호 논설위원 kimus@seoul.co.kr
  • [길섶에서] 눈물/김성호 논설위원

    “악어가 무슨 눈물을 흘린다고 그래.” “악어라고 감정이 없겠어.” 출근길 전철 객차 안. 바로 옆 좌석, 두 젊은 여성의 대화가 아침 객차의 적막을 깬다. 그중 한 여성이 가슴에 품은 책에 ‘OO대학 도서관’이라고 찍힌 도장 새김. 대학생들인 듯싶다. 이른 아침 하필이면 악어 눈물을 화제로 삼을까, 대수롭지 않게 여겨 토끼잠이나 잘 요량으로 눈을 붙이려는데 대화 톤이 심상치 않다. “먹이 먹을 때 나오는 분비물뿐이라고….” “네가 악어 돼 봤어? 정말 슬퍼서 흘리는 눈물인지 어떻게 알아….” 객석의 시선들이 두 여성에게 쏠린다. 두 사람의 목소리가 점점 높아진다. 싸움 수준이다. 한쪽이 벌떡 일어선다. 꽤나 화가 났나 보다. 때마침 무가지를 주워 모으며 지나던 할머니가 그 여성 손에 든 신문을 눈치 없이 홱 집어 간다. “아니 남의 신문을 왜 가져가세요.” 앙칼진 소리에 놀란 할머니가 “미안하다.”고 돌아서며 한마디를 보탠다. “아이고, 피도 눈물도 없구먼.” 그래 맞다. 악어는 눈물이 없다. 명쾌한 결론이다. 김성호 논설위원 kimus@seoul.co.kr
  • [서울광장]피맛골 백자와 바돌로뮤의 한옥/김성호 논설위원

    [서울광장]피맛골 백자와 바돌로뮤의 한옥/김성호 논설위원

    ‘피맛골에서 최상급 조선백자가 출토됐다.’ 지난주 불쑥 전해진 피맛골의 백자 발굴소식. 재개발이 한창인 피맛골 청진동에 조선초기 보물급의 희귀 순백자 항아리 3점이라니. 고고학 발굴서 보물급의 백자를 수습하기란 아주 드문 일일 터. 그것도 예상치 않은 엉뚱한 곳에서 왕실의례용 고급 자기가 모습을 드러낸 연유에 세인들의 관심이 쏠림은 괜한 게 아닐 것이다. 조선시대 종로 일대 고관대작들의 말을 피해 서민들이 드나들던 피맛골. 큰 길 양쪽의 좁은 골목길이 자연스럽게 서민들의 공간으로 형성된 채 보통 사람들의 애환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이 서민의 골목에 전혀 어울리지 않는 백자는? “후대인이 소장하다가 급하게 묻은 것으로 추정된다.”는 발굴팀의 설명. 무슨 사연이 있었기에 황급히 묻었을까. 발굴 자체보다 지켜내기 위한, 누군가의 절박한 몸짓에 신경이 쏠린다. 빌딩 올려세우기가 한창인 서민의 거리에서 500년만에 모습을 드러낸 백자. 사라져 가는 것들의 가치를 ‘지켜내라.’는 소리없는 외침으로 들림은 왜일까. 지난주 피맛골 백자 출현과 함께 전해진 동소문동의 한옥 지킴이 소식 역시 ‘소중한 것들’의 가치를 지켜내기 위한 울림이 아닐까. 재개발이 한창인 지역에서 철거될 뻔한 한옥 43채를 살려낸 미국인 바돌로뮤씨. 1968년 평화봉사단원으로 한국에 왔다가 35년째 동소문동 한옥에 몸담아 살며 한옥이 들어있는 동소문동 재개발 취소소송을 낸 지 3년만에 결국 취소 판결을 끌어냈다고 한다. 경제 이데올로기에 휩쓸린 채 스러져 가는 우리 것들을 못 본 척 지나치는 세상. ‘한옥을 살려내야 한다.’는 한 외국인의 힘겨운 싸움을 향해 많은 이들이 보내는 박수에 씁쓸함이 묻어나는 건 왜일까. 피맛골에서의 백자 출토와 동소문동 한옥 지킴이의 소식에 얹어 멀지않은 서울시청앞 서울광장을 떠올려 본다. 원래 고종이 황제 자리에 오른 뒤 ‘나라의 기틀을 새롭게 한다.’는 통합의 뜻을 담은 핵심공간으로 일궜다는 서울광장의 유래를 아는 이가 얼마나 될까. 덕수궁 대한문을 중심점으로 해서 방사선형 도로를 닦아 이룬 서울광장. 고종의 뜻을 아는지 모르는지 서울광장은 현대사를 관통하며 분열과 갈등의 공간에 치우쳐온 파란의 궤적을 담고 있다. 3·1운동, 4·19혁명, 한일회담 반대시위, 6월 민주화운동…. 이 서울광장이 최근 노무현 전 대통령의 급작스러운 서거 이후 또다시 관심의 극단적 초점이 되고 있다. 서로 다른 구호와 이념이 엇갈린 채 난무하는 각축장으로서의 서울광장은 분명 슬픈 공간이다. 덕수궁 대한문 앞에 이어진 노무현 전 대통령의 조문 행렬과 그로 인해 치열했던 광장 개방의 공방.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 이른바 ‘뜨거운 6월’의 서울광장은 혼란스러운 가치 다툼이 난무한 채 가파른 충돌을 또 겪어내야 할 것 같다. 나라의 갈라짐을 한군데로 모으기 위한 통합의 공간이었던 광장은 실종된 채. 허물고 다시 쌓아올리는 불도저 소리에 파묻힌 피맛골서 나온 백자, 그리고 동소문동의 쓰러져 가는 한옥을 지켜 내려는 고달픈 싸움은 그래서 반갑다. 우리가 정작 지켜 내야만 하지만, 휩쓸린 채 잊고 살아가는 것들의 가치를 서울광장에서 먼저 찾을 길은 없을까. 날 세운 구호와 가치의 충돌을 잠재울 평화와 통합의 광장은 언제쯤 만날 수 있을까. 뜨거운 6월 피맛골의 백자, 아니 ‘서울광장의 백자’는 그래서 더 애틋하다. 김성호 논설위원 kimus@seoul.co.kr [다른기사 보러가기] ☞유시민 한명숙 손석희 누가 나와도 吳 시장 누른다 ☞사면초가 대검 중수부 ☞[환각에 빠진 연예계] 끊이지 않는 연예인 마약 왜 ☞[관가 포커스]“호화결혼식 자제하세요” ☞6월 모의고사 후 고3 수험 전략 “영역별 성적 고려 목표대학 정해야”
  • [길섶에서] 터줏대감/김성호 논설위원

    동네에 재래시장이 있다. 1㎞쯤 걸쳐 올망졸망 늘어선 점포들. 늦은 시간 틈날 때 기웃기웃 점포들을 훑는 재미가 쏠쏠하다. 10년 넘게 한 동네에 살면서 시장 노마드를 즐긴 덕에 얼굴 익힌 상인이 꽤 된다. 어떤 이는 멀찌감치서 먼저 다가와 말을 건넨다. 재래시장의 분위기도 많이 바뀌었다. 불황 탓에 점포를 접고 떠나는 상인들이 적지 않다. 한두 달 만에 주인이며 간판이 홱홱 바뀐다. ‘이웃사촌’의 살가운 정도 예전 같지 않다. 사소한 일에 언성을 높이는 실랑이가 잦다. 살기가 힘든 탓이다. 어제는 벗들과의 만남을 마치고 일부러 시장 길을 택했다. 예전 같으면 웃고 떠드는 왁자함이 요란했는데. 헛헛한 기분으로 시장을 관통하던 중 멱살잡이가 눈에 든다. 10여년 전부터 알고 지낸 상인과 처음 보는 젊은 상인의 실랑이. 낯익은 상인이 불러세운다. “아! 터줏대감 양반 이리좀 와보소.” 자기 편을 들어달라는 하소연. 날 보고 터줏대감이란다. 오래 살긴 살았나보다. 그런데 어제는 누구 편을 들어야 했을까. 아직도 헷갈린다. 김성호 논설위원 kimus@seoul.co.kr
  • [스포츠 돋보기] KBO 정부입김 언제까지?

    5일 한국야구위원회(KBO) 이상국 사무총장 내정자가 전격적으로 자진 사퇴했다. 승인권을 갖고 있는 문화체육관광부가 세 차례에 걸쳐 승인을 미루자 이 총장 내정자가 ‘알아서’ 물러난 것. 4월30일 KBO 이사회에서 차기 총장으로 내정된 이후 36일 만의 일이다. KBO는 조만간 이사회를 열어 신임 사무총장을 선출할 방침이다. 이 총장 내정자의 사퇴 과정은 씁쓸한 뒷맛을 남겼다. 프로야구 구단주 총회와 이사회에서 내정한 사무총장에 대해 문화부가 승인을 거부한 전례는 없다. 주로 총재 선출과 관련해 정부의 입김이 강했지만 행정 실무 책임자인 사무총장에 대해서는 총재의 의견을 존중해 왔다. 하지만 문화부는 세 차례나 보완하라며 신청 서류를 반려했고 결국 승인 거부 의사를 밝혔다. 문화부 김성호 체육국장은 이날 “여론이 좋지 않아 윗선에서 부적합하다고 판단해 지난주 김대기 문화부 제2차관이 유영구 총재를 만나 이같은 의사를 전했다.”고 말했다. 문화부는 이상국씨가 과거 총장 재직 시절 도덕적 흠결이 있었다는 이유를 내세우고 있다. 대법원에서 무죄 판결을 받은 배임수뢰 혐의 등을 문제삼은 것. 그러나 야구계에서는 이 말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는 분위기다. 오히려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계속 논란이 된 구 여권 인물에 대한 거부감이 아니냐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전남 나주 출신인 이상국씨는 ‘마당발’이라 불릴 만큼 민주당 인사들과 친분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정부 예산을 한 푼도 쓰지 않는 민간조직 인사에 정부가 지나치게 간섭한다는 비판도 제기됐다. KBO의 한 관계자는 “프로 4단체 중 아직까지 사무총장 승인권을 정부에서 갖고 있는 곳은 야구뿐이다. 실무 책임자에게까지 인사권을 행사하는 건 심하다.”며 볼멘소리를 냈다. 사무총장 임면권을 자체적으로 행사하는 내용을 담은 KBO의 네 번째 정관변경 승인안이 지난 3일 문화부에 제출된 상태다. 김성호 체육국장은 “아마 그대로 승인될 것”이라고 밝혔다. 결국 이 총장 내정자 사퇴와 KBO의 정관변경을 맞바꾼 셈이다. 손원천기자 angler@seoul.co.kr
  • [씨줄날줄] 겨울의 사랑/김성호 논설위원

    ‘한손에 칼, 한손에 쿠란’. 이슬람교의 호전성을 빗대 많은 이들이 입에 올리는 상징문구이다. ‘중세 십자군전쟁 중 만들어낸 매터도’란 보편주장에도 가시지 않는 전도(顚倒)의 말. “종교의 믿음이란 마음으로 시작되는데 칼을 들고 사람마음에 들어갈 수 있습니까.” 최근 성공회대 강연회 연사로 나섰던 한 무슬림의 강변이 사람들을 얼마나 설득할 수 있었을까? 실상을 왜곡한 가치의 전도가 특정 대상을 겨눈 여론몰이로 향할 때 큰 재앙을 낳음을 역사는 보여준다. ‘스케이프 고트(scape goat)’. 고대 유대인들이 사람의 죄를 양에 뒤집어씌워 황야로 내쫓은 속죄양·희생양의 비극은 열거할 수 없을 정도다. 일본 간토지역에서 10만여명이 사망하고 3만 7000여명이 실종된 1923년의 간토대지진. “재난을 틈타 방화와 테러·강도를 일삼는다.”는 흑색선전에 들뜬 광기의 일본인에게 6000명 이상의 무고한 조선인이 처참하게 죽어갔다. 15∼17세기 중세 유럽에서 극성을 부렸던 마녀사냥. 종교전쟁, 30년전쟁으로 피폐해진 경제상황과 기근, 페스트로 사람들이 죽어넘어가던 시절. 사회혼란과 불행의 원인으로 몰려 집단 떼죽음을 당한 비극의 마녀사냥도 그리스도교 지배사회속 종교·체제유지를 위한 집단 매터도로 평가된다. 이념·정치적 시인으로 인상지워진 ‘풀’의 시인 김수영의 미공개 시 ‘겨울의 사랑’이 발견됐다. ‘늬가 준 욧보의 꽃잎사귀 우에서 잠을 자고 늬가 준 손수건으로는 아침에 얼골을 씻고…이만하면 나는 너의 애정으로 목욕을 할 수 있는 행복한 사람이다.’ 6·25전쟁 중 거제도수용소에서 만난 한 간호사를 향한 연시. ‘김일성 만세/한국의 언론 자유의 출발은 이것을/인정하는데 있는데’(1960년 ‘김일성 만세’중)라고 썼던 김수영의 색다른 면모를 들추며 문단이 시끄럽다. ‘민족주의 저항시인’은 사랑시 한 편쯤 써서는 안 되는 것인가. 연시 한편이 발견됐다고 ‘민족주의 저항시인’의 인상과 가치가 바뀌는 것일까. 원래 그 자리에 있었고 지금도 그 자리를 변함없이 지키는 많은 사람들을 우리는 얼마나 왜곡한 채 흔들어댔을까. 김수영의 저항 이미지도 ‘내편 네편’의 편향 탓은 아닐지. 김성호 논설위원 kimus@seoul.co.kr
  • [씨줄날줄] 금연 경고 그림/김성호 논설위원

    “담배 있나.” “없습니다. 가서 가져올까요?” “됐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죽음을 앞둔 절박한 상황서 남긴 대화. 왜 하필 담배를 마지막으로 요구했을까. 생사의 갈림길에서 떠올린 담배는 무엇인가. 일반인이 노 전 대통령의 극적인 죽음과 연결한 담배 인상보다 흡연자들이 떠올린 담배 단상은 더 깊었을 듯싶다. 담배의 유래를 놓곤 많은 의견이 엇갈린다. 아메리카 인디언들이 종교의식이나 병 치료에 썼던 재료가 그 시초라는 데 사가들은 대체로 동의한다. 콜럼버스의 아메리카 발견을 계기로 유럽에 들어왔던 담배. ‘만병통치약’이란 소문과 함께 상류층 중심으로 퍼졌고 이 땅엔 임진왜란기 일본을 통해서 유입됐음이 정설로 통한다. 우리도 양반계급부터 확산됐다고 하니 담배의 역사는 아무래도 특권층과 관련이 깊은가 보다. 이젠 신분과 나이, 성별을 가리지 않은 채 많은 이들에게 통용되는 담배. 흡연자들은 흔히 담배를 즐겨 찾는 이유로 세 가지의 맛(三味)을 꼽는다. 냄새와 손끝의 촉감, 그리고 연기. 아침에 일어나 잠자리에 들 때까지 세수하고 밥 때까지도 담뱃불을 꺼뜨리지 않았다는 공초, 아니 ‘꽁초’ 오상순도 이 삼미의 삼매에 빠져 살았던 인물이다. 삼미의 예찬에도 불구하고 담배는 이젠 보편적으로 멸시와 혐오의 대상이 되었다. 코미디언 고(故) 이주일씨의 “담배는 독입니다.”라는 금연 캠페인 말고도 비행기며 대중음식점, 버스 정류장 같은 공공장소에서 담배는 이미 ‘공공의 적’이 된 지 오래다. 담배가 내뿜는 유독성에 대한 집단 반발이다. 정작 담배를 좋아하는 흡·애연가들도 유독성에 대한 꺼림은 있을 터. 그래도 한쪽에서 ‘흡연할 권리’를 여전히 줄기차게 주장한다. 흡연자들을 향한 압박이 더 거세질 조짐이다. 정부가 담뱃갑에 섬뜩한 폐암이며 구강암 사진을 싣는다고 한다. 담배 광고와 판촉·후원도 전면 금지될 전망이다. 흡연자들은 벌써부터 뒤숭숭하다. 지난해 섬뜩한 TV광고에 적지 않이 타격받은 터이다. 하지만 아무리 섬뜩한 경고 그림이라 한들 마음자리에 견줄까. 수처작주(隨處作主)라고 했다. ‘언제 어디에 서 있건 휘둘리지 말고 마음의 주인공으로 살라.’ 내 마음자리부터 먼저 닦는 게 어떨까. 김성호 논설위원 kimus@seoul.co.kr
  • [스포츠 라운지] 배구국가대표 발탁 중앙여고 김희진

    [스포츠 라운지] 배구국가대표 발탁 중앙여고 김희진

    “높이뛰기 선수를 해서 점프에는 자신 있어요.”다른 선수들보다 머리 하나는 족히 넘는 큰 키(186㎝)임에도 체격이 다부져 보인다. 자신감 넘쳐보이는 강렬한 눈빛은 상대를 압도하기에 충분하다. 파워 넘치는 스파이크는 ‘제2의 김연경’(일본 JT마베라스 입단)이라고 불러도 손색 없을 듯하다. 2010년 세계 여자배구선수권대회 국가대표 엔트리 최종 12명에 전격 발탁된 김희진(18·중앙여고) 얘기다. 서울 북아현동 중앙여고에서 훈련 중인 그를 만났다. “주말에는 거의 게임에 빠져 살아요.”라며 웃는 모습이 영락없는 여고생이다. 언제까지 키가 자랄 것 같으냐는 질문에 “요즘에도 조금씩 자라는 것 같아요. 190㎝까지는 크고 싶은데….”라며 멋쩍은 표정을 짓는다. 김희진이 처음부터 배구를 시작한 건 아니었다. 부산 상리초교 시절에는 주목받는 높이뛰기 선수였다. 4학년 때 운동을 시작해 5학년 말 두각을 나타냈다. 육상선수였던 아버지와 테니스 선수였던 어머니에게서 이어받은 핏줄을 숨길 수는 없었다. 그러나 부모님은 운동을 하겠다는 딸을 말렸다. “부모님의 반대가 심했죠. 운동이 얼마나 힘든지 잘 아시니까요. 몰래 운동을 하다가 들켰는데 6학년 때까지 해보고 아니다 싶으면 관두기로 했죠.” 그는 2003년 소년체전에서 높이뛰기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육상계는 김희진을 주목하기 시작했다. 그는 “그렇게 뜯어 말리던 엄마도 금메달을 따면서부터는 아무 말 안 하시더라고요.”라며 웃었다. 높이뛰기에서 우승한 뒤 갑자기 배구·농구 쪽에서 러브콜이 쇄도했다. 6학년 때 이미 165㎝까지 자란 데다, 점프력이 검증된 그를 배구와 농구 지도자들이 스카우트에 나선 것. 육상계의 반발이 컸지만 결국 6학년 말 배구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중앙여중·고 배구팀 심재호 총감독은 키가 175㎝까지 자란 김희진에게 잔뜩 눈독을 들였고, 부산에서 아버지 정돈(54) 씨 설득에 공을 들인 끝에 서울로 데려오는데 성공했다. “부산에서 정든 친구들을 떠나 객지 생활을 하려니 힘들었죠. 하지만 적응되고 나니 배구가 생각보다 재밌더라고요.” 심재호 총감독은 중앙여중에 갓 입학한 김희진에게 기초 훈련을 시키는데 힘과 정성을 쏟았다. 김희진이 “점프에 자신 있다.”며 의욕을 보였지만, 남들보다 배구 입문은 2~3년 늦었기 때문. 혹독한 훈련 끝에 김희진은 중학교 3학년이던 2007년 봄철대회에서 최우수선수(MVP)로 선정된 데 이어 아시아·세계유스선수권 청소년대표로 뽑히는 등 가파른 성장세를 보였다. 중앙여고에 진학한 뒤에는 신만근 감독(현 프로배구 도로공사 감독)에게 지도를 받았다. 김희진은 “두 감독님께서 항상 ‘너는 꼭 성공할 것이다. 운동에만 전념해라.’며 늘 격려해 주셨어요. 특히 경기에서 기복이 심한 저를 정신적으로 많이 잡아 주셨죠. 배구 말고 인성교육에도 힘써 주셨어요.”라며 고마움을 잊지 않았다. 심 총감독은 “희진이는 높이와 파워에서 프로선수들 못지않다. 체력도 남자 못지않다.”면서 “앞으로 김연경 같은 재목으로 성장할 것”이라고 자신했다. 김희진은 지난 4월 충북 단양에서 열린 봄철중고연맹전에서 중앙여고를 대회 2연패로 이끌었다. 이 때 눈부신 활약 때문일까. 지난 18일 그는 라이벌 박정아(16·남성여고)와 함께 당당히 태극마크를 달았다. 이어 28일 발표한 최종 엔트리 명단에는 박정아를 제치고 김희진만 포함됐다. 어리지만 높이와 파워를 겸비한 김희진의 가능성을 배구계가 인정한 것. 김희진은 “최종 12명 안에 들 것으로 상상도 못했어요. 프로 언니들하고 같이 뛰게 돼 너무 설레요.”라며 기뻐했다. 이어 “국가대표로 코트에 설 기회를 준 만큼 작은 힘이지만 보탬이 되고 싶어요.”라며 기대감을 부풀렸다. 글 황비웅기자 stylist@seoul.co.kr 사진 류재림기자 jawoolim@seoul.co.kr ■ 김희진 프로필 ▲출생 1991년 4월29일 부산 ▲체격 186㎝, 몸무게는 비밀 ▲학력 부산 상리초·서울 추계초-중앙여중-중앙여고 ▲가족 아버지 김정돈(54) 씨와 어머니 김성호(53)씨, 오빠 김홍준(28)씨 ▲닮고 싶은 선수 일본 JT마베라스 입단이 결정된 김연경(흥국생명) ▲취미 추리소설 읽기, 게임 ▲경력 봄철중고연맹전 여중부 최우수선수(MVP), 아시아유스선수권·세계유스선수권 청소년대표(이상 2007년), 주니어아시아선수권 청소년대표(2008년)
  • 이상국 KBO 사무총장 승인 난항

    이상국 KBO 사무총장 승인 난항

    이상국(57) 한국야구위원회(KBO) 사무총장 내정자의 KBO ‘연착륙’에 이상 기류가 감돌고 있다. 주무부처인 문화체육관광부가 절차상의 문제 등을 들어 승인을 거푸 반려하고 있기 때문이다. 문화부 김성호 체육국장은 26일 기자간담회를 열고 KBO에서 승인을 요청한 정관 개정안 등에 대해 “좀 더 검토해 봐야 할 사항이 있다.”고 말했다. KBO는 지난달 30일 이상국 전 사무총장을 재임용한 뒤 문화부에 사무총장 승인과 사무총장 임명권을 정부에서 KBO로 귀속시키는 내용을 담은 정관 개정 승인 등을 요청했으나 정부는 두 사안의 내용이 상충된다며 돌려 보냈다. 이에 KBO는 사무총장을 주무부처 장관의 승인 없이 구단주 총회에서 자율적으로 임명할 수 있도록 개정한 정관만을 제출했으나 역시 사무총장 해임에 대한 규정이 없다는 이유로 반려됐다. KBO는 이같은 내용을 보완해 세 번째로 정관 변경 승인을 요청했으나 이날 김성호 체육국장은 “KBO가 정관을 새로 고치면서 이사회와 총회의 의결을 거치지 않았다.”며 다시 반려할 의사를 내비친 것. 그러자 야구계에서는 정부의 거듭된 반려는 이상국 총장 내정자에 대한 거부감을 그대로 드러낸 것으로 해석하는 분위기다. 하지만 김성호 국장은 “정부의 사무총장 승인 권한은 다른 프로단체에는 없기 때문에 KBO도 없앨 수 있다. 정관 변경 승인을 미루는 것은 다른 규정에 문제가 있어 검토하는 것일 뿐”이라며 확대 해석을 경계했다. KBO 관계자는 “한달 가까이 사무총장 승인이 늦어지면서 TV 중계권 협상 등 산적한 현안들이 한 발짝도 진행되지 않고 있다.”며 “총회와 이사회 의결 등 사무총장 선임 절차에 하자가 없었기 때문에 자꾸 미뤄지는 이유를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손원천기자 angler@seoul.co.kr
  • [씨줄날줄] 평화의 종/김성호 논설위원

    1986년 10월, 온 나라를 패닉으로 몰아넣은 충격발표가 있었다. “북한이 서울을 삽시간에 물바다로 만들 금강산댐을 건설중”이라는 건설부장관의 대국민성명. 당시 방송에서 수없이 반복해 보여준 가상의 63빌딩 잠수장면은 지금도 기억에 생생하다. 국방·통일 등 부처 합동성명에 이어 순식간에 번진 반북·반공의 물결. 결국 북한의 수공(水攻)방책으로 강원도 양구·화천에 ‘평화의 댐’을 세웠다. 댐은 전국적인 모금운동에 힘입어 1989년 1차 완공됐다. 하지만 나중에 ‘금강산댐 위협이 턱없이 부풀려진 것’임이 드러나면서 공사가 중단됐다. 이후 두 차례 집중호우를 맞아 홍수조절 기능을 인정받아 2002년 공사를 재개했고, 지금의 모습을 갖춘 건 2005년의 일이다. 홍수 조절의 순기능에도 불구하고, 평화의 댐은 군사정권 시절 남북대결의 여론몰이가 낳은, 웃지 못할 ‘비평화’적 해프닝의 결과물이다. ‘88서울올림픽 준비용’이라든가 전국적인 모금액의 석연찮은 용처…. 이런저런 뒷말이 무성한 채 진실은 오리무중이다. 아무래도 가장 씁쓸한 건 남북 대치속 이데올로기에 이용된 국민의 가슴에 남은, 지울 수 없는 그 앙금이 아닐까. 23년전 온 국민을 ‘물 고문’한 아픈 기억을 씻어내기라도 하듯 어제 그 평화의 댐이 ‘평화의 성지’로 탈바꿈했다. 화천군이 이 일대를 ‘세계평화의 종(鍾) 공원’으로 조성, 준공식을 가졌다. 팔레스타인이며 에티오피아, 콜롬비아 같은 분쟁지를 비롯한 30개국과 6·25전쟁 중 북한군이 쓴 탄피들을 모아 올려세운 종이 울렸다. 갈등과 분쟁을 접고 평화와 상생을 앞당기자는 마음의 울림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급작스러운 서거 이후 혼란스러운 정국, 때맞춰 터져 나온 북한의 2차 핵실험과 그에 맞선 국제적 제재의 쩌렁쩌렁한 으름장…. 어수선한 상황속 최전방서 울려퍼진 평화의 종소리가 낭랑하다. 비단 한반도만의 상생과 평화의 염원은 아닐 터. 화해의 메시지를 영원히 전할 ‘평화의 종’ 맨위엔 비둘기 4마리를 새긴 조형물이 설치됐다. 그중 한 마리의 날개는 통일될 그날까지 따로 분리, 전시한다고 한다. 비둘기의 날개는 언제쯤 제 자리를 찾을 수 있을까. 김성호 논설위원 kimus@seoul.co.kr
  • [길섶에서] 빈 자리/김성호 논설위원

    ‘아름다운 사람은 머문 자리도 아름답습니다.’ 언제부턴가 흔하게 마주치는 문구. 청결·양심을 부추기는 단문의 설득이 통쾌하다. 도덕과 절제가 숨은 목적일 터. 뒤 이을 사람, 즉 남은 자들에 대한 배려가 압권이 아닐까. 아름다움의 강요를 심어놓은 채…. ‘빈 자리’. 누군가가 머물다 남겨 놓은 자리는 살아남은 자가 챙겨야 할 몫이다. 떠난 자는 말이 없다. 그래서 부재의 공간을 채워 다른 공간으로 바꿔야 할, 살아남은 자들은 더욱 슬퍼야만 한다. 상실의 허무보다 현실의 무게이다. 내가 떠난 뒤 빈 공간을 채울 이들도 생각해야 하고. ‘서거(逝去)’. 생의 종말을 겨눈 말 중 이보다 더 큰 것이 있을까. 빈 자리의 주인공을 향한 최상의 높임. 30년 만에 맞닥뜨린 최상칭의 죽음에 또 한번 가슴을 쓸어내린다. 우리의 서거는 왜 이렇게 번번이 급작스러운 충격을 동반해야 하나. 남겨진 빈 자리를 놓고 얼마나 많은 말들과 몸짓들이 또 세상을 뒤덮을까. 아름다운 빈 자리를 만나기 위해 얼마나 더 기다려야만 하나. 지금 살아남은 자들은…. 김성호 논설위원 kimus@seoul.co.kr
  • [길섶에서] 결혼은 만화/김성호 논설위원

    ‘남녀가 정식으로 부부관계를 맺음.’ 사전속 결혼의 의미는 간결하다. 현실적으로 결혼의 의미가 사전 뜻쯤에 머물까. 문화며 가풍의 충돌도 피해야 하고 인격체의 만남이 빚는 가치관 대립도 감내해야 한다. 옛사람들은 대소사 ‘관혼상제’ 중 결혼을 두번째로 꼽았지만 지금이야 결혼이 으뜸 아닐까. ‘정식 부부관계 맺음’인 결혼도 많이 달라졌다. 미래의 잘못을 예방하기 위한 계약결혼이며 현실이득을 노린 위장결혼…. ‘못살겠다’ 싶은 부부관계의 늦은 청산인 대입이혼, 황혼이혼의 선언도 심심치 않게 들린다. 그래도 우리네 정서는 여전히 ‘검은 머리 파뿌리 될 때까지’식의 백년가약이다. 시인 이상은 파격과 비범의 천재로 통한다. 생활도 갇힌 일상과 도식적인 것의 거부가 주였다. 그런 그가 ‘결혼은 만화(慢畵)’라고 했단다. 친구인 소설가 박태원 결혼식 방명록에 그렇게 썼다는데…. 결혼은 대수롭지 않은 만화 수준의 남녀관계라는 말인가. 아니면 보듬어안고 그렁저렁 잘살라는 뜻인가. 이왕이면 ‘검은 머리 파뿌리’식의 금슬쪽이 낫지 않을까. 김성호 논설위원 kimus@seoul.co.kr
  • [씨줄날줄] 시복시성/김성호 논설위원

    한국천주교는 외부 선교사 없이 자발적으로 시작된 자생종교의 특성을 갖는다. 세계천주교 역사를 들춰도 한국천주교처럼 독특한 자생신앙의 태동은 드물다. 한국 최초의 세례자인 이승훈이 중국에서 세례 받고 귀국해 지금의 명동성당 인근 명례방에서 평신도들을 모아 모임을 시작한 게 공동체의 시초. 당시 집회를 공식적인 전례로 인정할 수 없다는 지적이 있지만 한국천주교는 분명 이 명례방 집회에 뿌리를 둔다. 독특한 출발 못지않게 한국 천주교사는 세계 천주교에서도 주목하는 박해의 점철이다. 조정의 척외정책과 맞물린 민간의 뿌리 깊은 전통은 신자들을 ‘천주학쟁이’로 몰아 순교행렬을 낳았다. 한국천주교가 집계한 순교자만도 대략 1만명에서 많게는 2만명. 서울의 절두산이며 서소문네거리, 전주의 풍남문…. 전국 어디서든 천주교 신자의 목을 친 망나니 칼날의 핏빛 흔적을 보기란 어렵지 않다. 순교자의 무덤이 이토록 태산같지만 이땅의 순교자는 오래도록 역적이며 소수 이단아로 머물러야만 했다. 천주교계가 명예 찾기와 현양 노력을 이어갔지만 여전히 많은 순교자와 희생자는 눈길도 제대로 못 받는 들꽃신세다. 그런 점에서 1984년 교황 요한 바오로2세가 한국순교자 103명을 성인의 반열에 올린 시성식(諡聖式)은 커다란 획을 그은 사건이다. 기해·병오·병인박해 때 망나니의 칼날을 받은 순교자들이 두 차례에 걸쳐 복자(福者)품에 오른 뒤 마침내 천주교 최고의 영예를 얻게 된 것이다. 복자품에 이어 성인품에 오르면 세계 천주교계의 존경을 받게 되며 성인은 신자들의 세례명으로도 쓰인다. 한국천주교가 순교자 124명의 시복·시성을 위한 최종자료를 로마 교황청에 보냈다. 대상들은 이미 성인품에 오른 103위와는 달리 대부분 초기의 평범한 일반 신자들. 한국 두 번째 사제로 몸바쳐 희생한 최양업 신부도 보인다. 무려 12년에 걸친 힘겨운 사전조사 끝에 이뤄낸 심사요청. 김수환 추기경 장례를 교황청장으로 치를 만큼 주목받는 한국천주교를 떠받치는 초석은 분명 초기의 평범한 순교자들이다. 험한 시절 목숨 바쳐 신앙을 이어간 무명 순교자들이 하루빨리 세상의 빛을 보게 되기를 기대한다. 김성호 논설위원 kimus@seoul.co.kr
  • [서울광장] 조선왕릉, 그리고 숭례문/김성호 논설위원

    [서울광장] 조선왕릉, 그리고 숭례문/김성호 논설위원

    경기도 구리시의 건원릉, 즉 조선 건국조 태조의 능에는 슬픈 사연이 담겨 있다. 태조가 계비 신덕왕후의 소생 방석을 세자로 책봉한 데 앙심을 품은 태종이 일으킨 ‘왕자의 난’. 권좌에 오른 태종은 신덕왕후 옆에 묻히길 원했던 태조의 원을 철저히 묵살했다. 신덕왕후의 능 정릉을 파괴한 뒤 태조를 홀로 모신 쓸쓸한 무덤이 건원릉이다. 태종은 뒤늦게 회심(回心), 아버지 고향 함흥의 억새풀을 가져다 봉분에 심고 깍듯이 예를 갖췄다고 한다. 건원릉이 부자지간의 한이 어린 곳이라면 경기도 화성의 융릉, 즉 사도세자와 사도세자비 혜경궁홍씨 합장묘는 부자간 정이 담긴 효심의 결정이다. 정조가 뒤주 속에서 죽임을 당한 아버지 사도세자의 해원과 복권의 상징으로 세운 게 융릉. 정조는 지금 서울시립대 터의 사도세자 릉을 화성으로 옮겨 세운 융릉을 틈틈이 참배했다. 상경길, 서울로 향하는 1번국도변 지지대고개에서 눈물짓곤 했다는 효심이 읽힌다. 조선 500년대에 세워져 전해지는 왕릉들은 ‘핑계 없는 무덤없다.’는 말대로 얽힌 사연이 각양각색이다. 후손들이 한결같이 사연 따라 깍듯한 제례를 올려옴도 흥미로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조선 왕릉 40기가 유네스코 지정 세계유산에 등재된다고 한다. 조선 역대 왕릉 42기 중 북한 개성의 제릉·후릉을 뺀 모든 능이 일괄등재되는 셈이다. 9번째 세계유산을 갖게 된 소식에 달뜬 잔치 분위기가 역력하다. 그런데 국제기념물유적협의회(ICOMOS)가 조선왕릉을 등재권고한 이유를 보면 흥미로운 사실을 만나게 된다. ‘유교적·풍수적 전통을 기반으로 한 독특한 건축, 조경양식과 함께 지금까지 제례의식 등 무형의 유산을 통해 역사의 전통이 이어진다.’는 점이다. 독특한 건축·조경양식이야 세계유산에 당연한 요소이겠지만 무형유산을 지켜온 노력은 우리전통의 문화적 양식과 보존정신을 높이 산 것이라 흐뭇하다. 9번째 세계유산 소식에 얹어 지난해 2월 국보1호 숭례문이 무너져 내린 비극을 떠올림은 지나친 노파심일까. 수도 한복판에 우뚝했던 민족 자존심이 순식간에 허물어지는 참상. 나라의 으뜸 문화재를 빼앗긴 상실감보다 더 뼈저린 아픔은 무관심과 무지다. 노숙자들의 빈번한 잠자리며 술판으로 변해 갔고 매뉴얼 하나 없이 속수무책 당해야 했던 무방비, 미련의 회한인 것이다. 이땅의 문화재 수난을 말하자면 어디 숭례문만의 일일까. 4년 전 양양의 1300년 고찰 낙산사가 산불에 잿더미로 변했고 전국 사찰에 즐비한 성보문화재의 도난, 훼손도 다반사다. 개발에 밀려 국가·지방문화재들이 무너져 내리고 관리의 손길이 미치지 않는 유구한 고택들이 방기되고 있다. 조선왕릉의 세계유산 등재 권고가 무색할 형편이다. 그제 용산 국립중앙박물관에 1000만번째 관람객이 들었다. 2005년 조선총독부 건물을 헐고 ‘민족정신을 새 그릇에 담아 보자.’는 깃발 아래 세워진 지 3년 7개월만의 기쁜 소식이다. 금동미륵보살반가상이며 백제금동향로, 경천사지 10층석탑처럼 어디에 내놓아도 손색없는 13만 5000여점의 찬란한 유산을 만나려는 발걸음의 집적이다. 우리 유전인자를 고스란히 담은 산물들이 어디 국립중앙박물관에만 있을까. 잔치가 아무리 좋아도 잔칫상의 귀한 그릇들은 챙겨야 한다. ‘숭례문 비극’의 교훈은 한 번으로 족하다. 아 숭례문. 김성호 논설위원 kimus@seoul.co.kr
  • [씨줄날줄] 매춘관광/김성호 논설위원

    인간이 생래적으로 갖는 가장 기본적인 욕구는 식욕과 성욕이다. 식욕이 몸을 지탱·유지하는 생존의 본능이라면 성욕은 종족 보존을 위한 태생의 욕심이다. 인류 역사의 발전과 함께 식·성욕을 유지, 증진하려는 기술이 동반된 것은 당연해 보인다. 성욕은 자주 일탈로 치솟는다. 쾌락의 악마성이 강한 탓이다. 불교에서 꼭 지킬 5가지 생활규범 오계(五戒)에 ‘음행하지 말라.’는 불사음(不邪淫)을 넣은 것이나 ‘간음한 자는 돌로 치라.’는 많은 종교의 징벌은 일탈성욕을 경계하는 상징이다. 물론 모든사회의 규범에서도 일탈성욕은 큰 응징의 대상이다. 정도를 벗어난 성욕이 사고파는 거래와 결합하면 매춘(賣春)의 흉측한 일탈로 증폭된다. 매춘은 인류의 궤적만큼이나 오랜 역사를 갖는다. 인간이 무리지어 산 이래 가장 오랜 직업으로도 평가받는다. 문명 발상지인 메소포타미아에서 신전에 공물을 바치는 남성들에게 몸을 판 여인들의 이른바 ‘사원매춘’이 이집트, 아시리아로 이어진 게 증거다. ‘몸접촉’을 통한 성욕 거래, 매춘만큼 끈질긴 일탈도 없어 보인다. 이 땅에서도 매춘은 예외가 아닐 것이다. 조선후기의 관기, 축첩제가 시초로 여겨지고 전쟁을 거치며 미군부대 주변의 성했던 사창가며 가파른 산업화에 편승해 퍼져간 집창촌은 한때 공공연한 일탈의 공간으로 통하기도 했다. 유린되는 여성인권 보호라는 큰 목표 아래 ‘성매매’로 개명된 채 국가적 차원의 타도대상으로 찍혀 철퇴를 맞은 건 불과 몇 년 전의 일이다. ‘인류 역사 중 가장 오래된 직업’이라는 역사학자의 표현답게 매춘은 정말 끈질긴 생명력을 가졌는가 보다. 당국의 집중단속을 피한 일탈의 성거래가 최근 들어 더욱 교묘, 집요해지고 있다고 한다. 어제는 엔고(高) 특수에 편승한 일본인 관광객들에게 성매매를 기업적으로 알선해온 일당이 대거 붙잡혔다. 택시기사며 식당주인들도 매춘관광 거래에 가세했다. 짧은 일탈의 재미를 맛본 일본인들은 객지에서 쇠고랑을 찰 판이다. ‘순간의 실수는 영원할 수 있다.’ 비단 매춘관광에 나섰다가 피를 본 일본인들만이 새겨야 할 교훈일까. 김성호 논설위원 kimus@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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