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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씨줄날줄]돈의문 현판/김성호 논설위원

    15년 전 국립중앙박물관에선 충격적인 발견이 있었다. 지하 수장고에서 우연히 모습을 드러낸 대동여지도 원판. 대동여지도라면 김정호가 일일이 발품을 팔아 한반도의 처음과 끝을 70여장의 목판, 22첩에 담은 조선 최고의 실측 조선전도이다. 전 지형을 촘촘히 새긴 정확성으로 해서 지금의 지리학자들조차 감탄해마지 않는 경외의 지도. 하지만 나라의 기밀이 새어 나갈 것을 우려한 대원군이 압수해 불태웠다는 설과 함께 기록으로만 남았던 게 대동여지도 목판이다. 그러다가 한국 최고의 박물관, 국립중앙박물관 수장고에서 먼지가 켜켜이 쌓인 채 모습을 나타냈으니…. 대동여지도 못지않게 의외의 충격적인 발견은 그 이후로도 숱하게 있었다. 가까운 2007, 2008년 국립중앙박물관 수장고에서 잇따라 발견된 우리나라 최초의 인쇄체 금속활자 ‘교서관인서체자(校書館印書體字)’와 1916년 이후 종적을 감춘 고려 초기 석조비로자나불상. 모두 기록으로만 전할 뿐 멸실된 아쉬움의 대상이던 소중한 문화재들이다. 국립중앙박물관에서만 발견된 게 이 정도이니 얼마나 많은 귀중 유산들이 사람 손길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을지 모를 일이다. 이미 발굴된 국가귀속 대상 문화재 30만점만 해도 그냥 수장고에 묵히고 있는 실정이라고 한다. 돈의문, 그러니까 서대문의 현판 실물이 발견됐다. 돈의문이라면 조선 태조 이성계가 한양에 도읍을 정한 지 5년째 되는 해 도성의 동서남북에 낸 네 개의 대문 중 서쪽의 것을 말한다. 1915년 조선총독부가 철거해 4대문 중 유일하게 복원되지 못한 문. 서울시가 2013년까지 복원을 계획해 관련 사료들을 백방으로 수소문하던 중 우연찮게 국립고궁박물관에서 그 현판을 찾은 것이다. 역시 도심 한복판 가까운 곳에서의 발견이 반갑고도 씁쓰름하다. 예정대로라면 3년 뒤 돈의문의 제 모습을 볼 수 있을 터. 대문에 당연히 걸려야 할 제 문패를 찾았으니 어쨌든 반가운 일이다. 엉뚱한 곳을 헤매다가 결국 집에 돌아와서야 행복의 파랑새를 찾았다는 벨기에 문인 마테를링크의 파랑새. 해외에 빼앗기고 내돌려진 우리 문화재를 되찾겠다는 목소리가 부쩍 커지는 지금 새길 대목이 있지 않을까. 빼앗기고 사라진 것들의 되돌림에 앞서 손에 쥔 것들의 소중함부터 먼저 챙김이 어떨지. 서울시가 4대문 안 전 지역 지표조사를 통해 유적지도를 만들고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하겠다는 문화유산 보존방안이 반갑다. 우리만의 파랑새를 함께 찾아보자. 더 늦기 전에. 김성호 논설위원 kimus@seoul.co.kr
  • [길섶에서]처음처럼/김성호 논설위원

    회사 건물을 둘러선 라일락이 일품이다. 호위하듯 선 열 그루 남짓의 나무들. 하얗고 연보라 빛을 띤 색색의 꽃들이 맘에 들고 질리지 않을 만큼의 은은한 내음 또한 압권이다. 봄꽃들이 요란한 자태를 거둘 무렵 어김없이 등장하는 현신. 올해도 그 라일락의 재회가 반갑고 즐겁다. 20대 초반 라일락에 얹힌 단상은 희망이다. 논산 훈련소에 막 입소했을 때, 그러니까 바로 지금 무렵. 뚝뚝 떨어지는 목련의 어지러운 잔해들을 치우는 사역은 정말 싫었다. 탐스럽고 곱기만 한 목련의 시든 꽃잎들이 어찌 그렇게 지저분하고 보기 흉했던지. 스러지는 목련들의 한편에서 화사한 꽃과 향기를 수줍은 듯 피워내던 라일락 나무들. 희망을 얹어 바라보던 그 라일락들이 눈에 선하다. 네번째 달력 장을 뜯어내야 할 즈음. 원단에 옹골차게 품었던 꿈과 약속들은 얼마나 이루고 지켜왔을까. 어중간한 봄의 자락에서 쳐다보는 라일락이 오늘은 유난히 더 곱다. 꿈은 멀고 약속도 숱하게 어겼지만, 희망만은 잃지 말아야지. 처음처럼. 김성호 논설위원 kimus@seoul.co.kr
  • [이용철의 영화만화경] 뭘 또 그렇게까지

    [이용철의 영화만화경] 뭘 또 그렇게까지

    2009년, ‘영화, 한국을 만나다’라는 프로젝트 아래 다섯 명의 감독이 다섯 도시로 떠났고, 완성된 다섯 편의 영화가 4월부터 매주 한 편씩 극장에서 선보인다. 윤태용의 ‘서울’에 이어 두 번째로 개봉되는 작품이 전계수의 ‘뭘 또 그렇게까지’이다. 문승욱의 ‘시티 오브 크레인’, 김성호의 ‘그녀에게’, 배창호의 ‘여행’ 등도 곧 관객과 만날 예정이다. 첫 주자인 ‘서울’이 투어가이드용 홍보영화에 머문 것과 달리, 춘천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뭘 또 그렇게까지’는 저예산영화의 한계를 참신한 아이디어로 푼 모범 사례로 평가받을 만하다. 화가인 찬우는 세미나 참석차 춘천으로 향한다. 충동적으로 기차에서 내린 그는 ‘김유정 문학촌’을 거닐다 누군가의 스케치를 본다. 그리고 그림을 그린 유정과 찬우는 예술과 철학을 주제 삼아 오후를 함께 보낸다. 유정에게 호감을 느낀 찬우는 슬쩍 접근을 시도해 보지만, 내내 잘 따르던 유정은 그의 꾐을 요리조리 잘 피한다. 그는 순진한 듯 영악한 여학생의 진심이 뭔지 궁금하기 짝이 없다. 전문가, 지식인, 인생의 선배로서 찬우는 배움의 한 과정을 마쳤다고, 스스로 옳다고 자만하는 인물이다. 그는 니체의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을 읽다 열차에 두고 내리는데, 나중에 유정과의 대화 도중 철학 입문서로 니체를 읽으라고 권한다. ‘생의 철학’인 니체의 사상을 죽은 문자의 형태로 대하던 그는 그나마 책을 두고 내리면서 깨달음을 얻지 못한 형편을 간접적으로 드러낸다. 그리고 말로써 타인에게 자기 생각을 강요하고, 마침내 착취하기를 기도함으로써 ‘인간적인 모순’을 적나라하게 표출하고 만다. 찬우가 ‘말로 떠드는’ 사람에 머문 반면, “좋은 말씀 많이 해주세요.”라고 청하는 유정은 지혜로운 인간이다. 유정이 “니체는 고등학교 때 이미 다 읽었어요.”라고 말하는 순간 둘의 권력관계는 뒤집어지고, 영화는 재미를 넘어 흥미진진함을 얻는다. 니체가 말했던 바, 인간은 세 가지 단계-권위와 스승에 의존하는 단계, 거기서 벗어나 자유를 쟁취하는 단계, 독자적인 가치와 궁극적 목표에 헌신하는 단계- 를 거친다. 그리고 놀랍게도 영화라는 제한된 공간과 시간 속에서 유정이라는 인물은 세 단계를 모두 통과하는 모험을 감행한다. 그렇다고 해서 시시콜콜 지식을 전파하는 유의 영화일 거라고 속단하진 말길 바란다. ‘뭘 또 그렇게까지’는 단순한 구조와 재미있는 이야기를 통해 삶의 철학이 인간을 얼마나 자유롭고 행복하게 만드는지 증명한다. 영화가 지식인을 풍자하거나 놀릴 마음이 없으니 찬우는 수치를 느낄 필요가 없으며, 악한 소설의 주인공과 다름없었던 그는 물론 관객 또한 생의 의지와 즐거움을 찬미하기에 이른다. 전대미문의 장르영화인 ‘삼거리극장’으로 데뷔한 전계수는 두 번째 작품에 임해 예상 밖의 노선을 선택했다. 이제 장르 뒤틀기와 이야기 꾸미기에는 관심이 없다는 듯, 여백과 대화와 질문으로 이번 영화를 채워 놓았다. 혹자는 홍상수의 영화와 비교할 법하지만, ‘뭘 또 그렇게까지’의 로드무비 스타일은 ‘길과 걸음에서 찾는 인생의 가치’라는 주제가 반영된 결과일 뿐, 쓸데없이 일상성을 영화에 끌어들인 건 아니다. 작품세계를 멋대로 규정하는 사람들을 향해 전계수는 멋진 한방을 날렸다. 영화평론가
  • [인사]

    ■국무총리실 ◇서기관급 파견 △재정금융정책관실 금융정책과장 임수현 ■감사원 ◇일반직고위감사공무원 전보 △공공기관감사국장 정태문 ■기상청 ◇고위공무원 전보 △수치모델관리관 이우진◇고위공무원 승진임용△강원지방기상청장 박관영 ■대한주택보증 ◇파트장 <전보>△경영관리팀 최종원 이진용△인사팀 이호철△총무팀 강홍민△영업관리팀 서훈성△주택금융센터 유경찬△서울중앙지점 이정석△서울강남지점 최재관 최성권△남부지점 김성호△광주지점 오규섭△서울관리1센터 이상을△서울관리2센터 공대운△서울관리3센터 천일<승진>△채권관리팀 이종도△서울강북지점 강원석△남부지점 임공수△부산지점 윤명규△대구지점 이창하△대전지점 김성수△서울관리2센터 강신균△서울관리3센터 노찬현△서울관리3센터 최종운 ■강제동원피해자지원위원회 ◇부이사관 △사무국 조사심의관 겸 조사1과장 이진흥◇서기관△지원심사관 박판수<과장>△운영지원 정락선△기획총괄 이명식△조사2 정혜경△조사3 허광무△조사4 권봉두△심사1 최장관△심사2 강석환△심사3 이인옥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KISTEP) △정책기획본부장 박구선△경영관리〃 오동훈△인사총무실장 황병용 ■서울대 의과대학 △교무부학장 신희영△학생〃 최민호 박웅양△연구〃 박정규△기획조정실장 박기호 ■한국해양대 △대학원장 남기찬△도서관장 김윤식△학생생활〃 최철영△박물〃 하세봉△종합인력개발원장 정영석 ■한국대학신문 △대표이사 겸 발행인 박성태 ■엠유마케팅 △대표이사 민국홍△전무이사 유호진 ■사노피아벤티스 △한국 R&D 담당이사 이승주 ■MBC플러스미디어 ◇임명 △편성제작본부장 이은우<센터장>△경영 김봉하△편성 조성미△기술 정재관<팀장>△미래전략 조범△경영기획 임장식△광고전략 이동연△광고1 남현우△방송사업 장세종△마케팅홍보 임택삼△편성 박성호△편성운영 서흥교△제작1 장재혁△제작2 손인철◇전보△광고사업본부 사업센터장 조정현 ■GM대우 ◇부사장 승진 △기술연구소장 손동연△국내차량생산·파워트레인생산·노사부문 전영철△인사 및 변화관리 부문 크리스 테일러
  • [길섶에서] 인사 떡/김성호 논설위원

    어린 시절 우리네 이웃들은 참 살가웠다. 넉넉하지 않음에도 나누고 챙기는 정만은 늘상 넘쳐났는데. 지금 각박한 삶은 그래서 옛날의 우리 고향 인심을 문득문득 떠올리게 한다. 조금만 마음자리를 내면 이웃끼리 흐뭇하고 오붓할 텐데. 나부터가 이웃 챙기기라면 귀찮고 성가시니, 남 탓해서 뭣할꼬. 혼잣 속으로만 어린 시절의 이웃을 사무치게 그릴 따름이다. 오랜만에 만난 이웃 인심이 반갑다. “아래층에 새로 이사왔어요.” 30대 초반 아낙이 상냥한 인사말을 얹어 건네는 시루떡. 쟁반에 정갈하게 담긴 인사 떡이 유난히 예쁘다. 이웃의 정이 더 반가운 게지. 어렸을 때 우리네도 그랬는데. 마을에 새로 든 이웃은 으레 떡 쟁반을 돌리곤 했다. 오랜만에 받아든, 예사롭지 않은 인사 떡. 답례도 제대로 못한 채 엉거주춤 선 모습이 어색했을까. 떡 돌리는 게 폐를 끼치는 것 같아 오히려 죄송하단다. 그게 아닌데. 너무 반갑고 좋아서 당황했을 뿐인데. 돌려줄 쟁반에 과일이라도 몇 개 담아야겠다. 어렸을 때 그랬던 것처럼. 김성호 논설위원 kimus@seoul.co.kr
  • [길섶에서] 생채기/김성호 논설위원

    후유증이 크다. 몸 곳곳에 난 생채기들. 넘어져 쓸린 자국이 분명한데. 어디서 어떻게 받은 훈장(?)인지는 기억이 나질 않고. 아무튼 술자리의 여파가 크다. 식구들의 눈총과 지청구야 받아 싼 것이지. 제 몸 하나 간수하지 못한 과보이니. 그래도 원인 모를 훈장은 야속하다. 오랜만에 걸어보는 석촌호수길. 호수를 휘돌아 흐르는 꽃바람이 좋다. 샛노란 개나리며 순백의 목련은 흐드러지고, 연분홍 진달래는 아직 수줍은 듯 조심스럽다. 꽃들도 서열이 있을까. 앞서거니 뒤서거니 얼굴을 내미는, 섭리에 순응하는 모습이 오묘하다. 생채기의 통증도 농염한 화신(花信)엔 감쪽같이 묻히니 신기하다. 일렁이는 꽃 물결의 한편에 초라하게 선 작은 나무. 꽃조차 피우질 못한 채 배리배리 고사 직전이다. 여기저기 난 생채기며 부러진 가지들. 얼핏 봐도 심한 훼손이 역력하다. 흐드러지는 봄꽃들의 경연에 숨소리도 내지 못하고 소외된 모습이 안쓰럽다. 잠시 잊었던 생채기의 통증이 살아난다. 생채기 난 숱한 마음들이야 오죽할까. 김성호 논설위원 kimus@seoul.co.kr
  • [씨줄날줄]명동성당/김성호 논설위원

    한국천주교의 상징이자 심장인, 서울 남산자락의 명동성당(사적 제258호). 1898년 그 자리에 세워진 뒤 몇 차례 보수를 거쳐 지금의 모습을 갖췄다. 1900년 이전 세워진 건물 중 가장 크고 잘 보존된 건물. 건축면적만 1412.12㎡, 연면적 2025.42㎡, 외곽길이 68.25m, 높이 23.48m의 위용이다. 가장 순수한 고딕 성당으로, 지금의 이름이 불리게 된 것은 광복 이후부터. 옛 지명을 딴 종현(鐘峴)성당의 이름이 컸고 높은 언덕에 우뚝 섰다 해서 오래도록 ‘언덕 위의 뾰족집’으로 불렸었다. 성당이 그 자리에 선 것은 인근 명례방(명동부근 수표교 옆)에 있던 최초의 신앙공동체 때문이다. 최초의 영세자 이승훈이 청나라에서 세례를 받고 귀국해 명례방서 비밀리에 세례를 베푼 것을 시작으로 천주교의 신앙집회는 번졌다. 이승훈의 영향으로 집회를 이어가던 역관 김범우는 고문으로 첫 순교자가 됐고 이후 한국천주교는 1만∼2만명의 순교자를 내기에 이른다. ‘박해의 역사’라 불리는 한국천주교사에서 뺄 수 없는 굵은 선이 명례방이요, 그 자리에 선 명동성당인 것이다. 민주화운동이 거셀 무렵 시위의 공간과 도피처로 각광받던 것도 우연은 아닐 듯싶다. 건립 터 못지않게 성당 건립엔 숱한 우여곡절이 얽혀있다. 쇄국의 조선 땅에서 천주교 전파를 막기 위한 조정의 서슬이 시퍼렇던 시절. 각국 천주교가 하느님을 우러른다는 앙천(仰天)의 공간으로 높은 언덕에 교회를 세우던 때이니 성당 건립은 순탄치 않았을 것이다. 더군다나 성당 터가 왕궁을 내려다보고 있고 임금들의 영정을 모신 영희전의 주산맥이었으니 조정의 반대와 미움이 오죽했을까. 1887년 한불수호통상조약이 비준돼 언덕을 깎는 정지작업이 시작됐고 부지 소유권 분쟁으로 기공식은 그 후 5년 뒤에야 있었다. 기공식 후 건립까지 무려 6년이 걸렸고 사상자가 속출해 공사가 숱하게 중단됐던 것으로 전해진다. 아픔과 희생의 점철이다. 천주교 서울대교구가 명동성당 본당 주변에 지상 9층과 13층짜리 빌딩 2개 동과 함께 지하 4층 규모의 주차장을 건설한다고 한다. 좁은 공간 문제 해소와 주변 정비차원에서 추진하는 대공사에 문화재 훼손의 우려가 쏟아진다. 고층 건물을 짓는 공사가 지반에 영향을 미쳐 본당을 훼손할 위험성이 있음을 지적하는 내용이다. 서울대교구는 무진동 공법 등을 통하면 새 건물 건립에 문제가 없다는 강변. 서울대교구의 형편도 이해는 하지만, 한국천주교의 심장에 이상은 없어야 할 텐데. 김성호 논설위원 kimus@seoul.co.kr
  • [씨줄날줄] 미인계/김성호 논설위원

    중국의 4대 미인으로 춘추 말 월나라의 서시와 한나라의 왕소군·초선, 당나라의 양귀비를 든다. 고대 소설에 자주 등장하는 수사 ‘침어낙안(浸魚雁)’의 용모며 ‘폐월수화(閉月羞花)’의 아름다움을 낳게 한 주인공들. 용모와 미색이 얼마나 출중했으면 침어, 낙안, 폐월, 수화의 수식어가 붙었을까. 물고기가 헤엄치는 것을 잊을 만큼 빼어나다는 게 침어이고, 기러기가 날갯짓을 멈춘 채 땅에 떨어진다 해서 낙안이요, 달이 부끄러워 얼굴을 가린다는 폐월, 꽃조차 부끄러움을 못이겨 떨어진다는 수화이다. 물고기, 기러기도 시샘하고 달과 꽃마저 견디지 못할 만큼의 미색이니 사람들에게야 오죽 인기가 높았을까. 예나 지금이나 미인은 환영 받고 관심 받는 존재. 뭇 시선을 받고 자주 중심에 서기도 한다. 빼어난 용모를 받아 태어남은 복중의 복일 터. 절세의 미모가 좋은 일을 부르겠지만 거꾸로 엄청난 화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동양 최고의 미인’이라는 양귀비가 안녹산의 난 중 병사들에게 무참히 살해당한 일은 유명한 일이다. 미인박명의 대표적 예가 아닐까. 나라를 무너뜨리는 악의 존재로서의 ‘경국지색’ 또한 망국의 해악으로 미인을 가리킨다. 빼어난 미모의 여인을 수단으로 쓰는 계략인 미인계. 손자병법의 36계 중 영웅을 무너뜨리는 무기로 예쁜 여인을 쓴다는, 패전계의 첫번째인 31계가 미인계다. 오나라와 월나라의 싸움에서 월나라의 계략에 끼어든 침어의 주인공 서시가 오나라 왕 부차의 마음을 빼앗아 멸망케 했다는 고사. 후한 말 한나라의 실권을 쥔 동탁과 여포를 이간질시킨 것도 폐월 초선이다. 제1차 세계대전 중 독일과 프랑스를 넘나들며 이중 스파이로 활약하다 비참한 최후를 맞은 마타하리는 미인계의 대명사처럼 회자된다. 양의 동서와 시대의 고금을 관통하며 회자된 미색들은 죄다 불행한 최후를 맞았으니 이상한 일이다. 러시아에서 미인계가 화제다. 미국 시사주간지 뉴스위크 러시아판 편집장의 마약 흡입과 매춘 장면을 찍은 CC TV화면이 공개되고 포털과 유튜브까지 번져 모스크바가 시끄럽다. 편집장은 뉴스위크 내용과 편집방향에 불만을 가져온 러시아 당국이 자신을 음해하려 미인 스파이를 썼다며 음모론을 제기하고, 러시아 방송들도 동조하고 나섰다는데. 서방 외교관들이 러시아 당국의 미인계에 종종 당하곤 했다니 음모론도 괜한 건 아닐 듯싶다. 사실이야 어쨌든 마타하리를 떠올리는 논란이 흥미롭다. 그런데 미인계, 러시아만의 일일까. 김성호 논설위원 kimus@seoul.co.kr
  • [서울광장] 함장과 총무원장/김성호 논설위원

    [서울광장] 함장과 총무원장/김성호 논설위원

    온 나라가 천안함에 파묻혔다. 한밤중 시커먼 바닷속으로 침몰한 해군 군함을 향한 눈, 귀, 입들의 집중이다. 무엇보다 느닷없이 실종된 46명의 군인을 향한 필사적인 구조작업과 그에 앞선 생존의 여부가 초미의 관심사이다. 해저 속 군함에 갇힌 자식·형제의 형편이 절실하기만 한 유족의 한숨, 절규의 한편에선 군함을 순식간에 분파 침몰시킨 직접적인 원인 찾기에 호흡이 숨가쁘다. 원인 규명이 늦어지면서 이런저런 설들이 왕왕하지만 정확한 정황은 계속 오리무중이다. 힘겨운 탐색을 이어가는 중에 베테랑 해군요원의 순직까지 겹쳐 군의 분위기는 말 그대로 무거운 초상집이다. 원인 파악부터 실종자 구조, 사태수습까지 무엇 하나 속시원히 풀리는 게 없다. 답답한 노릇이다. 천안함 침몰 참사 와중에 불교 조계종의 분란이 혼탁하고 시끄럽다. 봉은사의 총무원 직영사찰화를 둘러싼 잡음이 정치권 개입의혹으로 번지는가 싶더니 승·속이 맞물린 종단 사부대중(四部大衆)의 분열로까지 치닫는 형국이다. 직영사찰화를 결정한 중앙종회의 입장을 존중하라는 원로회의와 교구본사 주지들의 입장 발표에 맞서 진실을 밝히라는 봉은사 신도회와 불교단체들의 반발이 거세다. 걷잡을 수 없이 갈라지고 터지는 한국불교 맏형, 장자(長子) 종단의 체면이 말이 아니다. 이대로라면 표류하는 조계호가 어디로 흐를지 예단 못할 일이다. 봉은사 주지 명진 스님의 잇따른 폭로와 파문의 확산에도 의혹의 당사자들은 말이 없다. 사찰 직영화 과정에 간여한 것으로 입초시에 오른 안상수 한나라당 원내대표와 정치권 결탁설에 휘말린 자승 총무원장은 이렇다 할 추가소명 없이 묵묵부답이다. 답답하기가 침몰한 천안함의 암담한 형편이나 별반 다름없어 보인다. 일파만파로 번지는 한국 최대 종단의 파열음에 국민들의 입과 귀도 덩달아 바빠지는 듯하다. 침몰한 천안함의 함장과 표류하는 조계호의 총무원장 입장을 함께 떠올려본다. 1200t급 주력 전투함 함장이라면 마땅히 승선 장병 104명의 일거수 일투족은 물론 함정의 처음과 끝을 지휘 통제하고 수습해야 하는 최고의 수장이다. 조계종 총무원장 역시 한국불교 최대 종단의 행정과 신행을 좌지우지하는 사실상 한국불교 최고 수장이다. 함장과 총무원장 모두 함정과 종단의 통제 지휘에 관한 한 그 누구의 간섭도 받지 않는 나름의 권한을 갖는다 할 수 있다. 불의와 불미의 폭발적인 사안에 권한 못지않게 수습과 정리의 모든 책임을 가져야 함 또한 당연하다 할 것이다. 천안함 침몰의 참사나 봉은사 분란을 놓고 함장과 총무원장의 입에 대중이 촉각을 곤두세우는 이유는 그래서 명확하다. 참사현장과 분란사태의 당사자로서 밝혀야 할 진실이 분명히 있고 사람들은 그 진실이 궁금한 것이다. 천안함 함장은 배의 침몰 직전까지 배에 남아 있다가 마지막으로 퇴함을 했다고 한다. 그럼에도 촌각을 다투는 위기상태의 전투함 지휘와 잔류자 구조 부분에선 비난의 화살이 쏠린다. 군함 폭파 침몰 순간의 명확한 증언이 빠진 점에 대한 아쉬움이 큰 것이다. 총무원장 역시 봉은사 직영사찰화와 관련한 명진 스님 발언을 반박하는 대변인 명의의 입장을 냈지만 진실의 직접적인 확인과는 먼 것만 같아 안타깝다. ‘소낙비가 와도 뛰지 않는다.’ 불교 승가에 불문율처럼 전해 내려오는 말이 있다. 장마철 우기에 곤충이 밟혀 죽을 것을 우려한 지침이라지만 발 밑을 살피지 않는 경거와 망동이 부를 화를 경계하려는 뜻이 크다 할 것이다. 신중한 처신에 대한 당부다. 소낙비에도 뛰지 않는다는 경계와 교훈이 불가 승단에만 국한할까. 발 밑을 챙기지 못한 허물과 발 밑 진실의 회피가 아쉽다. 적어도 지금 최대의 이슈인 천안함 침몰과 조계종 표류의 당사자인 함장과 총무원장의 입장에서라면 말이다. ‘버리고 내려놓으라.’는 방하착(放下着)의 덕이 진실에 가려지는 것 같아 안타깝다. 당사자들은 무얼 말하고 풀어야 할지 잘 알 텐데…. kimus@seoul.co.kr
  • [씨줄날줄]軍紀와 士氣/김성호 논설위원

    기강, 질서가 흐트러지고 사기가 땅에 떨어진 엉망의 군대를 부를 때 쓰는 말 ‘당나라군’. 중일전쟁기 일본군이 우왕좌왕하는 중국군의 모습을 놀려대고 비웃었다는 데서 유래된 속어로 통한다. 속빈 강정의 ‘당나라군’은 2003년 이라크전쟁 초기, 힘 한번 못쓰고 궤멸한 이라크 공화국수비대의 별칭으로도 회자됐다. 이라크 공화국수비대라면 8만여명에 달했던 최정예 부대. 후세인 친위대라며 위세를 과시했지만 연합군의 초기 공격에 흩어져 오간 데 없는 ‘종이호랑이’로 판명났으니…. 오합지졸의 ‘당나라군’과 ‘이라크 공화국수비대’의 종이호랑이 오명은 모두 군기(軍紀)와 사기(士氣)의 실종을 겨눈다. 군대에서 한치의 소홀함과 실수도 용납될 수 없는 질서 기강의 소멸이며, 싸울 명분과 의욕의 처절한 상실인 것이다. 군기와 사기가 떨어진 별개의 질서이고 기세일까. 전장서 병사 일탈과 실수에 일벌백계의 처단을 내리고 흩어지는 기세를 결집했던 극단의 처방은 모두 군기와 사기를 지키고 부양하기 위함이다. 춘추전국시대 ‘무패신화의 장군’, 오기가 지은 오자병법의 ‘필사즉생 행생즉사(必死則生 幸生則死).’ 죽기를 각오하면 살 것이요, 요행히 살려 하면 죽을 것이라는 결사의 다짐이다. 임진왜란 영웅 이순신 장군의 말로도 유명한 ‘생즉사 사즉생’도 극한의 사기 다짐이고, 사기(史記) ‘회음후열전’ 속 한나라 조나라의 최후결전서 유래한 ‘배수진’도 군기와 사기의 다짐이다. 이 군기와 사기를 들추고 경계함이 먼 옛날, 먼 나라만의 일일까. 요즘 우리 군에도 무너지는 기강 질서의 일탈이며 그로인한 사기의 저하가 심심찮게 들춰진다. 몇몇 이탈과 일탈이 부르곤 하는 군 전체의 명예손상과 사기 저하의 안타까움이 크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 군을 향해 ‘당나라군’ ‘종이호랑이’를 들먹이는 이가 있을까. 천안함 침몰 사태에 군기와 사기가 도마에 오르고 있다. 46명의 대량실종을 부른 원인 규명이 늦어지는 데 따른 추측과 성급한 재단들이다. 함장을 비롯해 지휘부에 편향된 질타도 있고 평소 미흡했던 훈련과 소홀한 대응에 관한 화살도 쏟아진다. 실종자 가족들의 타들어가는 마음과는 동떨어진 듯하다. 2002년 연평해전에서 희생된 전사자 6명과 부상자 19명의 아픔은 여전히 생생한데. 연평해전 희생자 말고도 꽃다운 젊음을 나라에 맡긴 젊은이들은 숱하다. 성급한 무심의 돌팔매에 억울하게 상처받는 젊음을 한번 생각해 보자. 사기는 군인만이 아닌 모두가 챙겨야 할 몫일 텐데. 김성호 논설위원 kimus@seoul.co.kr
  • [씨줄날줄] 대장경 DNA/김성호 논설위원

    불교 대장경(大藏經)이란 경·율·논 삼장을 모은 불교 신앙, 사상과 문화의 집대성이다. 부처님 말씀인 경(經)과 사람이 지킬 도리인 율(律), 부처님의 가르침을 연구한 논(論)의 결집. 산스크리트어 ‘Tripitaka’를 한역한 ‘세 개의 광주리’란 어원이 흥미롭다. 흔히 말하는 대장경, 그러니까 팔만대장경은 거란, 몽골의 내침이란 위기 상황에서 나라와 백성이 혼연의 정신으로 빚어낸 정신세계의 총화이다. 거란 침입을 계기로 조판한 것을 처음 만들었다 해서 초조대장경이라 부르고, 몽골의 침입에 맞서 초조대장경을 바탕으로 다시 제작한 조판을 재조대장경으로 구분한다. 해인사에 보관 중인 팔만대장경은 불경 1538종을 5100만 글자로 새긴 경판 8만 1350장의 규모. 그래서 흔히 팔만대장경이라 칭한다. 비단 8만여 경판과 불경의 방대한 규모를 지칭한다기보다 가르침과 방향의 포괄적인 내용에 대한 강조일 것이다. 부처님 말씀과 교훈을 세 개의 바구니에 담았다지만 그 내용은 불교의 영역에 국한하지 않는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심지어 남녀상열지사까지 들어 있음을 보면 인간 삶의 총체적 반영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240여년에 걸쳐 130만명이 동원돼 빚어낸 이 대작의 중요한 가치는 역시 정성과 마음의 결집이다. 불경 한 구절, 경판 한 장을 마무리할 때마다 절을 한 번씩 했다는 일배일배의 혼과 궤적이 그것이다. 이어령 이화여대 명예석좌교수가 엊그제 ‘2011 대장경천년 세계문화축전’ 국민보고대회에서 전한 말이 흥미롭다. 대장경 속에 한국인이 가진 국난 극복의 독특한 DNA가 들어 있단다. 아무래도 거란, 몽골의 재차 침입에 맞선 위기 극복의 노력과 정신을 든 말일 것이다. 그저 부처님 말씀과 교훈을 집대성한 경판의 범주를 넘어 삶의 고비를 지혜롭게 헤쳐나가기 위한 방법과 길을 대장경에서 찾아보자는 발견이 새삼스럽다. 왕실과 백성이 한마음으로 뭉쳐 완성한 대장경이야말로 국가주의와 개인이 충돌하는 요즘 긴요한 해결책이 될 수 있다는 혜안이다. 세계인들이 우리의 팔만대장경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시킨 건 우수한 기록의 보존만을 산 것은 아닐 것이다. 기록에 담긴 정신과 혼의 발견이다. 나라가 어수선한 지금이다. 침체된 경제상황이며 지방선거의 혼란상에 갈등과 반목이 홍수를 이룬다. 봉은사 직영사찰화의 파장과 불꽃은 어디까지 튈지도 모를 상황이다. 이 교수의 말마따나 팔만대장경 속 DNA를 한번 찾아봄이 어떨지. 김성호 논설위원 kimus@seoul.co.kr
  • [영화단신]

    ●날카로운 시선으로 미국 사회를 응시했던 엘리아 카잔(1909~2003) 감독의 대표작을 만날 수 있는 특별전이 마련됐다. 새달 6일부터 18일까지 서울 낙원동 서울아트시네마에서 열린다. 터키에서 태어난 카잔은 사실적이고 현대적인 연출 스타일을 선보이며 제2차 세계대전 뒤 미국 영화계에 큰 영향을 준 거장이다. 반유대주의를 소재로 한 ‘신사협정’(1947), 노동자와 자본 계급 간 대립을 그린 최고 걸작 ‘워터프런트’(1954), 제임스 딘의 고독한 눈빛을 접할 수 있는 ‘에덴의 동쪽’(1955), 방황하는 청춘을 그린 ‘초원의 빛’(1961) 등이 준비됐다. ●새달 29일 개막하는 전주국제영화제의 한국 장편경쟁 및 단편경쟁 부문 본선 진출작 20편이 선정됐다. 장편경쟁 본선 진출작은 신수원 감독의 판타지 음악영화 ‘레인보우’, 박동현 감독의 ‘기이한 춤-가무’, 김성호 감독의 ‘그녀에게’, 서세진 감독의 ‘저 달이 차기 전에’ 등 8편이다. 단편경쟁 본선 진출작은 ‘당신의 어머니’, ‘밤을 위한 춤’, ‘연인과 주말에’, ‘츄리멜로’ 등 12편이다. 부문별 우수 작품에 최고 1000만원의 상금이 주어진다. ●한국 문예영화의 대부 김수용 감독의 회고전 ‘나의 사랑, 씨네마’가 한국영상자료원 주최로 새달 4일까지 서울 상암동 시네마테크KOFA에서 열린다. 신상옥, 유현목, 김기영 감독 등과 함께 1960년대 한국 영화의 르네상스를 이끌었던 김 감독은 무려 109편의 영화를 연출해 고영남 감독(111편)과 함께 한국 영화계 최다작 감독으로 꼽힌다. 오영수 작가의 단편소설을 스크린으로 옮긴 ‘갯마을’(1965)로 문예영화 붐을 일으키기도 했다. 모파상 소설을 각색한 초기작 ‘돌아온 사나이’(1960)부터 가장 최근작인 ‘침향’(1999)에 이르기까지 김 감독이 직접 선정한 27편이 상영된다.
  • [씨줄날줄]義士와 將軍/김성호 논설위원

    인간 삶의 사고와 행위를 규제하고 재는 큰 틀로 사람들은 흔히 대의(大義)와 명분(名分)을 들춰 세운다. 대의가 큰 차원의 도리나 본분이라면, 명분은 대의를 향한 협의의 구실이고 이유다. ‘아침에 도를 듣는다면 저녁에 죽어도 좋다(朝聞道夕死可矣).’는 유교식의 대의가 있다면, ‘까마귀 노는 곳에 백로야 가지마라.’식의 처세 격의 치레와 명분이 있겠다. 대의와 명분은 동떨어진 별개의 개념이 아닌 맞물린 주종과 융합의 명제가 아닐까. 군(軍)에서 전략과 전술이 잘 결합해야만 소기의 목적을 얻을 수 있는 것처럼 말이다. 안중근 의사 호칭을 둘러싼 논란이 거세다. 널리 회자되어온 의사(義士), 여기에 무인·군인을 부각시킨 장군(將軍) 호칭의 맞섬이다. 안 의사 자신이 ‘의군 참모중장’이라 칭했고 ‘나라를 위해 몸바침이 군인 본분’이라는 글을 남겼다며 내세우는 ‘장군 밀어붙이기’도 명분은 있을 터. 국제적으로 안 의사의 의거를 합법적으로 평가받기 위해서라도 장군 호칭이 합당하단다. ‘나라를 침탈한 원흉을 쏘았다.’는 의거의 근저엔 어두운 나라 형편에 대한 걱정과 평화정신이라는 근본 대의가 있다는 의사론. 따져보면 나라와 민족 없는 장군이 어디 있을까. 뜬금없는 대의명분 싸움이 부질없다. 협심·협량의 다툼 속에 던져진 사사가와 노리가쓰(笹川紀勝) 일본 메이지대 교수의 화두가 가슴을 친다. 안 의사 순국 100주년 학술회의에서 꺼낸 ‘안중근 동양평화론’. 안 의사가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를 저격한 근본은 동양평화에 있고, 그 동양평화론은 칸트의 평화연맹 구상을 넘는 수준이라는 것이다. 침략 원흉을 쓰러뜨린 ‘장군 안중근’과 ‘의사 안중근’을 넘어선 세계평화의 실천적 의인으로 안중근을 보라는 대국적 외침이다. 그것도 일본인 입에서 흘러나온…. 대의명분 다툼에 매달린 우물 안 개구리 격 협심이 부끄럽다. 내일 오전 서울시청 광장에선 안 의사 순국 100주년 추념식이 보훈처 주관으로 성대하게 열린다. 정부 주요인사와 안 의사 유족 등 2000명이 모여 안 의사 행적 낭독과 추모공연, 추념사를 한다는데. 모처럼 마련된 뜻깊은 자리의 언저리에서 행여 장군입네 의사입네 운운의 다툼은 없어야겠다. 이명박 대통령은 순국 100주년에 맞춰 안 의사 유해발굴을 위해 중국, 일본에 적극 협조를 구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안 의사 유해 발굴이 어디 안중근을 그저 우리 곁에 가까이 모시자는 차원에 머물까. 의사 안중근도 좋고, 장군 안중근도 좋을 것이다. 이제 안중근을 제대로 보자. 김성호 논설위원 kimus@seoul.co.kr
  • [씨줄날줄] 세치 혀/김성호 논설위원

    ‘개에게도 불성(佛性)이 있다.’는 화두로 유명한 중국 당대의 조주 선사. 선사가 짚고 다니던 지팡이를 탐낸 선비가 섣부른 거량을 한다. 지팡이를 달라며 건넨 말. “부처님은 중생이 바라는 바를 저버리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조주 선사 왈. “군자는 남이 좋아하는 것을 빼앗지 않습니다.” 질세라 응수하는 선비. “저는 군자가 아닙니다.” 내처 받아친 선사의 할(喝). “노승도 부처님이 아닙니다.” 유교와 불교를 에둘러 비유한 욕심과 탐냄의 경계. 선비와 선승의 거량에 담긴 임기응변의 말솜씨가 기발하다. ‘말 한마디로 천냥 빚을 갚는다.’지만 말이 어디 좋은 일만 부를까. 순간의 말이 화근이 되는 게 다반사다. ‘강을 건너면 배를 버려라.’ 불교경전 금강경 속 일화. 부처님이 남겼다는 ‘사벌등안(捨筏登岸)’의 교훈이다. 진리의 세계에 도달하면 그동안 썼던 모든 도구를 다 버린다는, 집착에 대한 경계일 터. 버리고 놓으라는 교훈의 핵심도 말과 언어의 조심이다. “그동안 풀어놓은 말빚을 다음 생에 가져가지 않으려 한다.”며 모든 출판물의 절판을 당부한 법정 스님. 스님의 유언도 집착에 대한 경계를 넘은, 말 조심 글 조심의 당부가 아닐까. 혹여 내 말로 화를 불렀거나 부르지나 않을까 하는 챙김이 클 것이다. 불교에서 내 몸과 말, 뜻이 선악을 조장하고 과보를 부른다는 신구의(身口意) 삼업(三業)에 구업을 놓음도 세치 혀에 놀아나는 말의 폐해와 업의 강조이다. 김우룡 방송문화진흥회(방문진) 이사장의 구업이 일파만파로 번지고 있다. 신동아 인터뷰 중 쏟아낸 말들이 화근이다 .“큰집이 김사장을 불러다가 조인트 까고 매도 맞고 해서 만들어진 인사” “MBC좌파 대청소는 70∼80% 정리됐다.”…. 공영방송 MBC를 쥐락펴락하는 방문진 수장의 말치곤 험악하다. 야당은 현 정권의 방송장악 의도를 명확히 노출한 발언이라며 청문회 개최를 들먹이고, 당사자인 MBC 구성원들도 그냥 넘길 수 없다며 불만의 목소리를 터뜨린다. 민감한 시기에 터뜨린 ‘말 폭탄’의 파편들이 어디로 어떻게 튈지 분간하기 어려울 만큼 심각한 양상이다. 권력과 방송의 관계를 넘어 말 폭탄의 진의가 애매하다. 무엇을 위한 발설인지, 도대체 파장의 수위를 의식이나 한 것인지 모를 일이다. ‘결자해지’의 멍에를 지고 내린 사퇴만으론 해결될 조짐이 안 보이는 상황. 구업의 과보를 어떻게 정리해야 할까. 강을 건너려면 아직도 물길이 멀기만 한데 뗏목부터 버리려 들었으니…. 세치 혀가 문제다. 김성호 논설위원 kimus@seoul.co.kr
  • [인사]

    ■소방방재청 ◇소방준감 승진발령 △대전소방본부장 이강일 ■식품의약품안전청 △부산지방식품의약품안전청장 박전희△위해사범중앙조사단장 김형중△행정관리담당관 김영균◇과장△임상제도 김영옥△해외실사 손정환△식생활안전 김수창△신소재식품 홍진환△건강기능식품기준 최동미△의약품관리 김인범△첨단제제 박윤주△의료기기정책 김성호△의료기기품질 신규태△진단기기 정희교<서울지방식품의약품안전청>△식품안전관리과장 박희옥<식품의약품안전평가원>△화학물질과장 권기성△오염물질〃 김미혜△식품감시과학팀장 김동술△심사과학과장 김인규△신약연구팀장 정명훈△생물의약품연구과장 안치영 ■행정중심복합도시건설청 ◇승진 <부이사관>△운영지원과장 이상복<서기관>△기획재정담당관실 남일석<기술서기관>△도시발전정책과 박상옥 ■방송통신위원회 ◇부이사관 승진 △미래기획위원회 파견 김정원 ■서울시 ◇3·4급 전보 <일자리창출대책추진단>△단장 직무대리 김인철△추진반장 〃 엄의식 ■경기도 △의회사무처 김용덕△건설본부 관리과장 정찬열△언제나민원실장 이관수△경기일자리센터장 강승도◇단장△통합시출범준비 김호겸△정보화기획 김귀영△전국체전추진기획 장수진△디자인총괄추진 이부영△고양관광문화단지개발사업 박충호△도시계획상임기획 송상열◇담당관△평가 임봉재△기획발전 손경식△행정관리 이만휘△기술심사 윤성진◇과장△투자진흥 신낭현△관광진흥 최계동△지역정책 김춘식△교육협력 하종목△콘텐츠진흥 강승호△농정 김두식△건설재난 김철중 ■제주도 ◇지방부이사관 승진 △지식경제국장 강승수 ■MBC △기획조정실장 전영배△디지털본부장 이우철△비서실장 정경수△홍보국장 최기화 ■YTN △경영담당 상무이사 홍상표△보도담당 〃 김백△감사 김영덕 ■농수산물유통공사(aT) ◇승진 <1급>△식품산업처장 김기홍△경남지사장 박해열◇전보△개혁추진사업단장 현성기△유통교육원장 남상원<처장>△경영관리 이호선△수출전략 김진영△농수산마케팅 김학수△선진유통 윤정인△국영무역 홍주식△식량관리 전원수<직무대리>△식품마케팅처장 민경한△화훼공판장장 최영일△강원지사장 김달룡<지사장>△서울경기 윤장근△대구경북 이성진△충북 이광수 ■동덕여대 △총장직무대행 김윤식△대학원장 이덕봉△특수대학원장 장창곡△패션전문대학원장(디자인대학장 겸임) 최현숙△인문대학장 배현식△사회〃 성기주△자연과학〃 김영옥△약학〃 김효진△정보〃 장도석△예술〃 정진원△공연예술〃 이연수△교양교직학부장 이병화△교무처장 곽형기△학생〃 도수환△기획〃 조성하△정보운영〃 한만호△사무〃 서재봉△평생교육원장(보육교사교육원장 겸임) 신용주△춘강학술정보관장 김미예 ■포스코ICT △사내이사 김영섭 심동욱△상임감사 조재구◇임원 승진△전무 최승갑◇임원 신규 선임△전무 이인봉△상무 황석주 박성원 손주혁△펠로(상무대우) 최창호
  • [씨줄날줄] B-Boy兵 /김성호 논설위원

    유행가 가사가 귀에 쏙쏙 박히기 시작하면 늙는 징조란다. 늙는다는 게 어디 나이만의 궤적일까. 세상 이치를 막연히나마 이해하고 받아들일 줄 아는 인정의 지혜를 겨눈 말일 게다. 유행가. 사랑의 테마가 보편적이지만 우리네 삶과 처지를 녹인 축소판이겠다. 나라 잃은 설움의 응축인 ‘황성옛터’며 ‘울밑에선 봉선화’, 동족상잔의 비극을 노래한 ‘이별의 부산정거장’…. 군사정권 시절 아침 저녁 귀찮을 만큼 귀를 자극했던 ‘새마을 노래’도 따져보면 유행가라면 유행가가 아닐까. 일부러 만들어낸 억지의 건전가요였지만. 어쨌든 늘상 생기고 사라지곤 하는 유행가는 어쩔 수 없이 시대와 세태를 담아내기 마련이다. 유행가가 노랫말로 대중을 움직인다면, 유행어는 촌철살인의 짧은 말로 심중을 겨눈다. ‘지구를 떠나거라.’ ‘잘돼야 할텐데….’처럼 경색된 사회상을 꼬집은 풍자가 흔했다가 요즘엔 실업이나 어려운 생활상을 빗댄 은어풍이 유행이다. 이태백, 사오정에 청년실신까지. 개그맨이나 연예인들이 입에 올려 젊은 층을 대상으로 급속히 퍼져나가는 요즘 유행어가 지닌 함의, 기지는 신기할 만큼 번득인다. 아무래도 대중이 인정하고 받아들일 만한 사회적 요인과 계기가 충만할 탓일 게다. 유행가, 유행어의 생멸은 사회의 변천을 닮는다. 갈라지고 확산되는 영역의 투영인 셈이다. 지금도 어른들이 젊은이들을 향해 푸념조로 뱉곤 하는 ‘말세야 말세.’ 탄식이 아득히 먼 태고에도 있었다는 우스갯소리를 들으면 보편의 정서야 어디 갈까마는, 그래도 역시 유행의 노래나 말들은 사회를 빼닮게 마련인가보다. 물론 상식과 도덕의 테두리 안에서라면 더욱 흡인력이 강할 터. 그러지 않아도 젊은 층의 유행어는 이젠 선량들이나 학자들까지 허물없이 입에 담아 낸다지 않는가. 군(軍)은 보통의 사회에선 동떨어진 이색지대로 통한다. 국토방위의 우선적 가치에 매몰된 특수상황의 분리된 별세계인 셈이다. 유행가, 유행어란 도통 먹힐 것 같지 않은…. 그런데 요즘 현역병들이 가진 천양의 주특기를 들여다 보면 군이 더 이상 특별한 이색지대가 아닌 것 같다. 병영에서 발생하는 사망자 장례를 도맡는 장의 전문 ‘영현등록병’, 조종사들의 비행 시뮬레이션을 담당하는 ‘e-스포츠병’, 전세계에서 춤 기량을 인정받은 비 보이(B-Boy)들로 구성된 ‘동아리 지도병’까지. 육군에만도 무려 289개의 주특기병이 있단다. 이쯤되면 군대가 아닌 군사회라 불러도 틀린 말은 아닐 듯싶다. 군 참 많이 변했다. 김성호 논설위원 kimus@seoul.co.kr
  • [씨줄날줄] 열반과 상실의 사이, 무소유/김성호 논설위원

    일체의 마음과 몸이 얽히고 엮였다는 불교의 인다라망 세계일화(世界一華). 내 한몸 치중해 살다 보면 어찌 남 생각이 앞설까. 나도 살고 남도 살리자는 연기와 인연의 궁극적 가치는 영원히 바래지 않는 형형한 빛인 것을. 현실의 아둔하고 미련한 인생은 그래서 초월과 초탈을 어려워하기 마련이다. 고승대덕들의 ‘버리고 놓으라.’는 방하착(放下着)의 일갈이 아니더라도 말이다. 하물며 세속의 티끌과 터럭에 매달리고 쏠려 사는 미물 중생의 삿된 욕심에서랴. 그래서 현실을 뛰어넘어 치달았던 선승과 대덕들의 죽음은 두고두고 아쉬움을 남긴다.어제 열반에 든 법정 스님처럼. 무소유(無所有). 스님의 법신에 따라 속인들에게 남겨진 대명사 격의 유명한 명제. 마지막 찰나에 스님이 몸을 맡긴 길상사도 무소유의 산물이다. 권번 출신 소유주 김영한이 운영하던 고급요정 대원각을 무보상, 무조건으로 스님에게 기부해 태어난 길상사이니. 스님의 베스트셀러 ‘무소유’가 전한 울림의 현현한 증거다. 무소유의 증거가 길상사뿐일까. 감화의 물결은 수녀, 목사들의 개종과 천선으로 숱하게 이어졌고. ‘버리고 놓으라.’는 방하와, ‘나누고 전하자.’는 무소유가 어디 서로 다른 것일까. 불이(不二)의 두 가치들은 그래서 스님의 열린 행적으로 고스란히 남아 있다. 암울하고 답답했던 시절, 이웃종교와의 교감과 열린 소통이 어디 우연한 것일까. 세속에 휘말리겠다 싶으면 홀연히 벗어던지고 떠나곤 했던 스님의 삶이다. 출가본사 송광사 뒷산 불일암의 은둔수행이며, ‘무소유’의 유명세를 피해 강원도 산골 오두막에서의 두문불출…. 나를 다스리고 속된 도취에 젖지 않겠다는 극한의 경계였지만 어렵고 소외된 이웃을 향한 목소리는 아끼지 않았으니. 1960년대 말 함석헌, 장준하와 함께했던 민주수호국민협의회와 유신철폐 운동. 고 김수환 추기경과의 동행이 모두 다 우연이 아닌 것이다. 이판사판의 그 어떤 가름에도 헛되이 놓이지 않으려던 스님은 이제 속세의 육신을 벗고 해탈에 들었다. 스님이 생전 지극하게 말, 행동으로 보여줬던 무소유의 실천은 이제 누구의 몫일까. 스님들의 다비(茶毘)장에선 웃고 우는 감정의 엇갈림이 흔히 있게 마련. 스님이 열반의 경지에 들었으니 웃고 환영해야 하겠고. 한편으론 속세의 인연이 다한 상실의 아쉬움이 겹친다. 그래서 두 마음이 겹치는 스님의 입적은 유난히 더 사무친가 보다. 언제까지 죽음의 상실과 열반의 가치에 휘둘릴 수만은 없을 터인데…. 김성호 논설위원 kimus@seoul.co.kr
  • [길섶에서] 짝귀/김성호 논설위원

    짝귀다. 등산용 모자를 얼굴까지 푹 내려 쓴 버스 속 50대 중반 남자. 없는 한쪽 귀를 가리려 눌러 쓴 기색이 역력하다. 자꾸 눈길이 가는 건 어릴 적 기억 때문이다. 그때 동네 아저씨도 그랬다. 짝귀. 낫을 들고 장난하다 실수로 한쪽 귀를 잃었다는데. 집 나간 아내를 못 잊어하다가 화풀이 자해를 했다는 말도 있었고…. 도통 말이 없던 짝귀 아저씨. 아저씨는 가는 귀를 먹어 잘 듣지도 못했다. ‘벙어리 아저씨, 벙어리 아저씨.’ 아저씨 뒤를 따라다니며 손뼉치고 놀려대던 철부지 녀석들. 나도 그랬었는데. 악동들의 놀림이 얼마나 야속하고 성가셨을까. 반복되는 조롱과 놀림에도 도무지 성을 내지 않던 짝귀 아저씨. 아니 초탈했던 것일까. 힐끗힐끗 쳐다보는 시선을 알아챘는지 짝귀 남자가 슬그머니 자리를 피한다. 미안하다. 쳐다보지 말았어야 했는데. 어릴 적 기억이 자꾸 얹히는 통에, 그만 폐를 끼치고 말았다. 사라진 짝귀 아저씨. 사과라도 할 것을. 버스를 내리며 한쪽 귀의 귓바퀴를 꽉 눌러본다. 아주 불편하다. 김성호 논설위원 kimus@seoul.co.kr
  • [길섶에서]세치 혀/김성호 논설위원

    오랜만에 입에 올린 말이다. 요강. 그리 오래지 않은 시절까지 우리네 일상에서 흔했던 배출의 도구. 생리현상의 당연한 해결사였지만, 요즘에야 어디 쉽사리 볼수 있을까. 술 자리에서 눈치없이 입에 올린 원색적인 ‘지난 도구’ 요강 발언에 발설자도 섬뜩했다. 순간에 몰아치는(?) 시선이 그냥 미안하기도 하고. 그것도, 어렵다면 어려운 자리에서였으니. 그러려니 넘기는 동료들의 아량이 그저 고마울 따름이지. 미련한 세치 혀의 망발이다. 농담반 진담반. 농이면 농이려니 흘리면 편할 터인데. 진담이면 또 어떤가. 술좌석을 향한 후배의 뒤늦은 치근거림이 어렵다. 우리네 살아냄이 어찌 진실만 있으려나.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는 낙화유수도 좋겠고. 송곳니 세우고 앞뒤 따져보자는 옹찬 다툼에서야. 망발의 요강도 때로는 가뭄의 단비 격 청량제가 아닐까. 흐르는 강물처럼 식의 유유자적. 생지를 찾아드는 연어의 원천적 생존본능. 살다 보면 갈등의 간격은 어찌할 수 없을 터인데. 그래도 가끔씩은 세치 혀의 망발도 긴요하지 않을까. 김성호 논설위원
  • [씨줄날줄]초대받지 않은 손님/김성호 논설위원

    ‘사람이 자리를 만들고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 사회 조직의 순환을 들 때 흔히 하는 말. 자리라 함은 위상과 가치를 가리킬 터. 높고 낮은 자리 개념의 바탕엔 사람이 으뜸이다. 그래서 마땅히 그 자리에 있어야 할 사람이 빠진다면 허전함과 공허함이 남는다. 그런가 하면 마땅치 않은 의외의 사람이 현신하는 자리엔 이런저런 불편과 거추장이 들먹거려지기 마련. 그래서 사람들은 제자리에 맞는, 들고 남을 예사롭지 않은 격식으로 따지곤 한다. 자리에 어울리지 않는 불편한 끼임을 피하려는 것이다. 편견과 손가락질의 방비랄까. 흑인 의사와 백인 처녀의 결혼을 모티프로 삼은 스탠리 크레이머 감독의 1967년 미국영화 ‘초대받지 않은 손님’. 흑백의 차별과 신분의 가름을 스크린으로 옮겨놓은 영화의 얼개와 투르기도 다름아닌 자리와 사람의 갈등이다. 흑인 의사와 백인 처녀의 지순한 사랑을 좀먹는 편견과 협심. 피부색이 달라 어색한 양가 부모, 그러니까 ‘초대받지 않은 손님’의 불편과 어색이 드러내는 차별의 묘사가 극적이다. 지난해 11월 세상을 왁자하게 만들었던 미국 백악관 불청객 사건도 어디 다른 것일까. 얼굴 한번 디밀기가 그렇게 어렵다는 백악관 국빈 행사에서 빚어진 해프닝. 초대받지 않은 불청객으로 보란듯이 참석해 만찬장을 휘젓고 다닌 부부를 향한 눈길도 따져보면 자리와 사람의 부조화 때문이다. 사흘 전 ‘금의환향’한 밴쿠버 올림픽 한국선수단의 귀국 회견장. 개인기록을 경신, 13위를 차지하며 선전한 곽민정의 홀대에 누리꾼의 불만이 이어진다. 회견장 단상의 메달리스트들에 집중된 질문공세며 스포트라이트의 그늘에서 1시간 내내 어정쩡하게 자리를 지켰다는 차별과 무시에 대한 불만이다. ‘제2의 김연아’니 어쩌니 입에 발린 찬사가 무색할 만큼 그저 ‘초대받지 않은 손님’으로 비쳐진 어색한 자리지킴이 안쓰럽다. 있어야 할 자리에 당연히 있었건만. 응당 대접받고 위로받아야 할 16세 소녀의 상처받은 자존심은 어떻게 보상할까. ‘자리에 민정이를 앉히라.’는 누리꾼들의 항의와 불만이 괜한 것일까. 자리가 만드는 사람과 사람이 만드는 자리. 자리에 맞는 사람에 대한 대우가 아주 중요할 터. 하지만 자리에 끼지 못한 차별이 낳는 희생은 어찌할까. 요즘 흔한 ‘1등만 챙기는 더러운 세상’의 비아냥이 결코 공허하지 않다. 정상의 영웅이 아닌 그늘의 영웅들을 챙겨야 하지 않을까. 그늘에서 눈물짓는 ‘초대받지 않은 손님’은 우리사회에 그득하기 때문이다. 김성호 논설위원 kimus@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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