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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6·25 행불자 생사 北, 의제로 첫 제시

    북한이 또 한번의 전격적인 태도변화를 보일까. 23일 금강산에서 사흘간 일정으로 개막된 제6차 남북 적십자회담이 주목받고 있다. 중단된지 1년9개월여만에 재개된 이번 회담에 관심이 쏠리는 까닭은 국군포로와 납북자 문제와 관련해 뭔가 가시적인 결과물이 나올 것으로 기대되기 때문이다. 남북간 ‘뜨거운 감자’인 국군포로 및 납북자 문제에 대해 북측은 지금까지 공식적으론 그 존재 자체를 부인해왔다. 일부 납북자 가족이 보통의 이산가족 상봉 행사에서 ‘비공식적으로’ 상봉의 기쁨을 나눈 것도 이 때문이다. 하지만 최근 북측이 우리측 현충원을 전격 참배하고 국회를 방문하는 등 적어도 외형상으로는 전향적 자세변화를 잇따라 선보임에 따라, 국군포로 및 납북자 문제에서도 기대를 갖게 하고 있다. 첫날 회담 분위기도 긍정적이다. 북측은 이날 전체회의 기조발언을 통해 전쟁시기 행방불명자 생사확인을 의제로 제시함에 따라 국군포로 등의 논의에 대한 가능성을 열어놓았다. 이와 함께 금강산 면회소 건설 추진, 화상상봉, 이산가족 생사확인 및 서신교환 등을 의제로 내미는 등 남측과 거의 일치된 ‘코드’를 형성했다. 남측 회담 관계자는 “양측이 공히 의제로 제시한 ‘전쟁시기 생사를 알 수 없게 된 자’에는 우리가 통상 알고 있는 국군포로와 납북자 문제도 포함된다는 것에 상호 인식하고 있는 상태”라며 “양측이 상당부분 의견을 같이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와 관련, 북한 적십자사가 1972년 홍어잡이 도중 납북된 어선 ‘오대양 61호’ 선장 박두남(당시 38세)씨의 사망 사실을 최근 대한적십자사에 통보해온 것으로 밝혀져 주목된다. 이에 따라 정부가 파악하고 있는 납북자 490여명 가운데 지금까지 이산가족 상봉을 통해 11명이 남쪽 가족과 재회를 했으며, 박씨를 포함해 사망자가 10명, 생사확인 불가능으로 통보된 납북자가 31명인 것으로 각각 집계됐다.김상연기자 carlos@seoul.co.kr
  • [여의도in] 밥통 채운 대통령… 밥통 태운 대통령…

    유석춘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가 22일 역대 대통령들을 밥통에 비유한 글을 인터넷사이트 ‘프리존’에 기고했다. 시중의 우스개를 정리한 내용이다. 유 교수는 박정희 전 대통령을 “밥통은 있는데 밥이 없어서,20년 동안 허리띠를 졸라매자고 설득하다 겨우 양식 마련할 즈음 부하 하나가 총을 쏴 세상 떠난 사람”이라고 비유했다. 전두환 전 대통령은 “미제 밥통에 양식까지 가득해서 부하들 모두 불러 잔치하면서 배불리 나눠 먹은 사람”으로 정리했다.노태우 전 대통령에 대해선 “밥통에 밥은 없고 누룽지만 남은 경우”라고 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밥통에 누룽지 한 조각 남아 있지 않아 나중에 어떻게 되건 밥통이라도 외국에 팔아 살림했다.”고 했고, 김대중 전 대통령은 “양식은커녕 밥통마저 없어 카드빚을 내 현대식 전기밥통을 마련했다.”고 정리했다. 노무현 대통령에 대해선 “마침 새로 산 전기밥통을 코드 맞는 사람들과 성능 시험해 본다고 가동했는데,220V에 꽂아야 할 코드를 110V 코드에 꽂아 전기밥통이 타버린 경우”라고 했다.김상연기자 carlos@seoul.co.kr
  • [일본을 다시본다] (18) 일본인이 그리는 일본의 미래

    [일본을 다시본다] (18) 일본인이 그리는 일본의 미래

    |도쿄 특별취재팀|일본인 특유의 엄살을 감안하더라도 많은 일본인들이 너무나 진지한 표정으로 “이대로 가다간 일본은 안된다.”고 하는 데 놀라지 않을 수 없다. 미래에의 비관은 엘리트층일수록 더 심하다. 미국의 케네디스쿨에서 유학 중인 아키(42·전 중소기업 이사)는 “미국에서 보면 영락없이 일본은 미국의 여자친구다. 남자친구가 하자는 대로 한다. 이렇게 해도 정말 괜찮은지 걱정이 든다.”고 꼬집는다. 그의 지적은 일본의 종속적인 대미관계를 비판한 것이지만, 외교를 비롯해 일본의 시스템 전반을 뜯어고치지 않으면 2류국가로의 추락은 시간문제라는 사고를 갖고 있는 일본인을 만나기란 어렵지 않다. 일본의 집권 자민당은 창당 50주년을 맞는 올 가을쯤 싱크탱크를 출범시킨다. 웬만한 대기업, 은행에 하나쯤 있는 게 싱크탱크인데 뭐 대단하냐고 하지만 관료집단에 정책을 의존해 온 일본 정치 풍토에서는 예사롭지 않은 시도이다. 경쟁이라도 하듯 제1야당 민주당도 비슷한 시기에 싱크탱크를 띄운다. 입법이나 정치활동에 자기의 정책을 관철시키는 것이 정당 본래의 임무인데도, 패전후 일본을 이끌어온 자민당 정치는 관료에 의한, 관료를 위한, 관료의 것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을 만큼 관료의존이 심각했다는 진단은 일본 정치인이라면 누구나 공유하는 것이다. 관료의 정보와 정책에 목을 매는 한심한 처지를 호소하는 일본 정치인의 자조인 셈이다. 스즈키 다카히로는 “가스미가세키(霞が關·중앙관청가)가 최대의 적”이라고 말한다. 스즈키는 아베 신조 자민당 간사장대리의 특명을 받고 지난해부터 싱크탱크 출범을 진두지휘하고 있는 인물이다. 오사카대학 교수 출신의 그는 도쿄재단을 만든 수완을 인정받은 일본의 싱크탱크 1인자이기도 하다. “정치가 행정을 컨트롤해야 하는데, 일본은 그렇지 않다.”고 비판하는 그는 정당과 싱크탱크, 행정이 합체화되어 있는 미국이 이상적인 모델이지만 거기까지는 바라지 않는다고 했다. 행정과 민간, 정치의 경계를 넘나들 수 없는 일본 시스템을 이들이 자유롭게 왕래할 수 있도록 바꾸는 게 그의 소망이다. 차기내각의 재무상으로 꼽히는 시오자키 야스히사 의원도 자민당 싱크탱크에 깊숙이 관여하고 있다. 그는 지금의 일본을 이렇게 진단한다.“자본주의라고 하면서도 관료통제의 사회주의 경제를 해왔다.” 미국 유학파(하버드대학)인 그가 싱크탱크에 거는 기대가 높은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는 “10∼20년 뒤의 동아시아가 어떻게 되어야 하는지, 큰 그림이 없다면 곤란하다.”면서 “한국과의 자유무역협정(FTA)이라든가, 일본 내 미군기지의 재편 같은 문제들은 미래의 밑그림이 없으면 불가능한 것”이라고 했다. 그는 일본의 핵무장에는 동의하진 않지만, 헌법 개정에는 찬성한다.70년대와 같은 고도 경제성장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하지만, 사람·돈·물건이 어떤 장애없이 오갈 수 있는 시스템은 필요하다고 믿는다. 또한 유엔에 내는 분담금이 가맹국 중 2위인 일본이 국제정치에서의 영향력은 30위라는 불균형도 바로잡을 필요가 있다고 덧붙인다. 일본의 추락을 걱정하기는 40대의 소장파인 고바야시 유타카 참의원 의원(자민당)도 마찬가지다.“일본이 선진국 중 가장 하위로 떨어지고, 중국이나 인도에도 추월당하지 않을까 걱정된다.”는 그는 강한 경제의 재구축이라는 기대를 미래 일본에 걸고 있다. 민주당에서 브레인으로 꼽히는 마쓰다 고지 의원(참의원)의 진단은 보다 가혹하다. 그는 “일본이란 나라 전체가 바뀌어야 한다.”면서 재정악화, 소자화(少子化)·고령화, 교육, 역사의 순으로 ‘위기의 일본’이 타개해야 할 문제로 꼽았다. 일본이 떠안고 있는 780조엔의 국채 및 지방채는 경기악화가 지속될 경우, 하이퍼 인플레의 뇌관이 될 수 있다고 내다봤다.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의 외교방식과 역사인식에도 통렬한 일침을 놓는다.“미국에는 3분의2 정도를, 나머지는 한국이나 아세안과 손잡아야 하는데, 고이즈미는 양다리를 모두 미국에만 걸치고 있어 너무 위험하다.”고 지적한다. 또한 “고이즈미는 역사인식 문제만 나오면 이상한 발언을 하는데, 개인적인 신조와 일국의 총리된 입장은 달라야 한다.”고 꼬집는다. 우정민영화 법안이 부결돼 지난 8일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가 중의원을 해산함에 따라 9월11일 치러질 총선은 패전 60년 이후 일본의 미래를 점쳐볼 수 있는 가늠자이다. 색깔이 비슷한 자민·민주당의 정권교체의 가능성보다는 전쟁을 모르는 전후 세대, 특히 30∼40대의 주류화 여부는 큰 관심거리다. 청년시절 80년대 거품경제의 단맛과 90년대 장기불황의 쓴맛을 두루 경험한 그들이 일본의 메인스트림으로 자리잡는다면 그들 선배가 이룩한 ‘재팬 넘버1’의 신화를 어떻게 재창조하려 들지가 최대 관전포인트이다. ■외무성 출신 하라다 다케오 |도쿄 특별취재팀| 지난 3월 외무성에서 잘 나가던 젊은 관료가 자리를 박차고 나온다.1971년생, 도쿄대 법대 출신. 고시출신인 그는 출세가 보장되는 코스인 북한반장을 끝으로 관직을 접는다. 대북 외교의 최일선을 떠나 민간인이 된 그는 ‘북한 외교의 진실’이란 책을 펴내 일본에서 화제를 불러 일으킨다. 책의 저자 하라다 다케오는 “동아시아가 ‘세련된 제국주의’의 격전장이 되고 있으나 일본은 그런 데 전혀 눈치조차 못채고 있다.”고 주장한다. ‘세련된 제국주의’에 대한 그의 정의는 이렇다.100년 전에는 군대를 보내 상대를 제압해 이익을 취했다면, 지금의 제국주의는 상대가 눈치채지 못하게 세련된 방법으로 이익을 챙긴다는 것이다. 북핵문제도 이런 맥락에서 봐야 한다고 그는 주장한다.“냉전구조가 무너진 뒤 동아시아, 북동아시아가 같은 큰 시장을 놓고 치열한 경쟁을 하고 있다.”면서 “겉으로는 북핵문제를 떠들고 있으나 미국은 부(富)가 어디에 있는지 눈을 돌려 군사·외교·문화 정책을 전개하고 있으나 일본만 뒤떨어져 있다.”고 말한다. 그는 “세련된 제국주의를 인식하고 최대한의 이익을 취하려고 노력하지 않으면 점점 다른 나라의 기업에 빼앗겨서 일본은 점차 하락할 것”이라고 걱정한다. 따라서 일본은 새롭게 부(富)를 챙기기 위해서 무엇을 생각해야 하는지 자성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이런 논리는 그의 책에서 북한의 희소광물에 주목해야 한다는 섬뜩한 주장으로 연결된다. 그는 “북한은 어디까지나 ‘사례연구’일 뿐”이라고 하지만 ‘세련된 제국주의’에 입각한 일본의 한반도 경제침략론으로 읽히는 그의 논리전개는 당돌하고, 우리로선 입맛이 쓰지 않을 수 없다. 이른바 고도경제성장의 단물을 누린 70년대생인 그는 일본 사회를 어떻게 보고 있을까.“옛 세대는 좋은 대학 나와서 좋은 회사에 들어가고 좋았다. 단독주택에 살고 아이 낳고, 그런 꿈이 있었다. 지금은 그렇지 않다. 우수한 사람은 해외로 나가고 가서는 돌아오지 않는다. 경제가 안 좋아지고 정치의 수준도 떨어진다.‘내일 뭘 하지.’라는 그런 논의밖에 하지 않는 정치가 되어버렸다. 그런 악순환에 빠져 있다.” 그렇지만 그는 “우리 같은 70년대생들이 일본을 바꿀 수 있다.”며 자신만만하다.‘70년대생의 힘’, 그 실체는 있는가.“절대적으로 사람 숫자가 많다. 노동자도 많고, 시장에서 볼 때 소비자도 많다.”일본의 전후를 일궜던 베이붐세대(단카이세대)에 이은 제2의 베이붐 세대가 일본의 재약진을 이루겠다는 소리로 들린다. 일본의 향후 10년은 어떤 모습일지를 묻자 그는 또 ‘세련된 제국주의’를 꺼낸다.“뺏을까 뺏길까 하는 상황에서, 지금까지는 뺏는 주체였으나, 다른 나라에 빼앗기는 대상이 될 수 있다. 발상의 전환, 대담한 정책 즉 외교, 교육문제에 눈을 돌려야 하며 새로운 국가를 만드는 데 힘을 써야 한다. 지금 방향전환, 그 분기점에 와 있다.” marry04@seoul.co.kr ■취재 후기 2020년의 세계정세를 전망한 ‘지구의 미래를 그린다’는 지난 1월의 미 중앙정보국(CIA) 보고서. 중국의 국민총생산(GNP)이 일본을 웃돌고 “21세기는 중국·인도가 이끄는 세기가 될 것”이라고 중국의 위협을 경고하고 있다. 일본에 대해서는 ‘노화하는 대국’으로 정의,“중국에 대항하느냐, 영합하느냐의 선택에 몰릴 것”이라며 일본의 분발을 우회적으로 촉구하고 있다. 3개월 뒤, 일본 정부의 경제재정자문회의는 2030년의 미래상을 담은 ‘일본 21세기 비전’을 발표한다. 소자(少子)·고령화가 진행되어도 구조개혁에 힘쓰면 몇살이 되더라도 일이나 사회에 참가하는 ‘건강수명 80세 시대’의 실현할 수 있다는 낙관적 목표를 설정해 두고 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시대조류의 변화에 둔감한 채 있으면 되돌릴 수 없는 사태에 이른다.”는 경고도 잊지 않는다. 미지근한 물이 덥혀지면서 서서히 죽어가는 개구리처러 비극을 맞게 된다는 낙관과 비관이 교차하는 20년쯤 뒤 일본의 자화상이다. 일본에서 만난 차세대 정치인, 교수, 언론인들, 그들의 상당수는 지금의 일본에 답답해 하는 듯 보였다. 패전 이후 일궈온 제2의 경제대국, 그러나 세계에서 존경받지 못하고 배척받는 나라. 식민지배와 침략전쟁은 이미 사죄했으니 더 거론하지 말라는 신경질적인 반응. 공룡이 되어가는 중국의 압박과 유일한 동맹국 미국에 대한 지나친 의존. 그들은 패전 직후 전쟁 포기를 명문화한 헌법을 개정하는데서 질식할 듯한 일본의 상황을 돌파하는 열쇠를 찾고 있는 것은 아닐까. 헌법을 지키겠다는 좌파세력이 몰락한 토양에서 이윽고 시동이 걸린 개헌론. 개헌을 통해 새로운 패러다임을 만들겠다는 일본호의 향후 10년간은 우리가 결코 눈을 뗄 수 없는, 엄중한 압력이 아닐 수 없다. marry04@seoul.co.kr ●특별취재팀 한종태 국제부장(팀장), 황성기 사회부장, 이춘규 도쿄특파원, 주병철(경제부)·손원천 이언탁(사진부)차장, 안미현(산업부)·김상연 황장석(정치부)·유지혜(사회부)·정연호(사진부)기자 marry04@seoul.co.kr
  • [일본을 다시본다] (17)심화되는 우경화

    [일본을 다시본다] (17)심화되는 우경화

    |도쿄 특별취재팀|“김정일과 타협하는 고이즈미는 물러가라. 자민당 숙정하라.”지난 5월24일 오후 1시40분, 도쿄 자민당 당사 앞에서 파란 제복을 입은 20여명의 사내들이 깃발과 피켓을 휘두르며 뭔가를 요구하고 있었다. 시민들은 조심스럽게 이들을 피해 지나가고 있었지만 현장에 출동한 경찰들은 시민들의 통행에 방해가 되지 않도록 하라며 당부할 뿐 특별하게 이들을 제지하지는 않았다. ●극우단체 도쿄도심 정기시위 일장기를 붙인데다 확성기까지 단 차량을 동원해 시위에 나선 이들은 정심동지사(正心同志社)라는 극우단체의 회원들. 자민당 당사 앞과 도쿄 번화가 등지에서 정기적으로 시위를 하고 있는 이 단체는 과거 일본의 침략전쟁을 정당화하자는 내용의 ‘교육 정상화’와 유사시의 방어만 가능하도록 규정하고 있는 평화헌법을 개정하자는 ‘자주헌법 제정’을 주장하고 있다. 이 단체 회원들은 이날 시위에서 “극동아시아의 평화를 위협하는 독재자 김정일을 타도하라. 김정일과 대화하는 자민당을 숙정하라.”고 외쳤다. 고이즈미 총리에 대해서도 “타도 대상인 김정일 정권과 협상을 시도하며 2차례나 평양을 방문했다.”고 거칠게 몰아붙였다. 이같은 극우단체의 비판을 받고 있는 자민당의 속사정도 크게 다르지 않다는 데 일본 사회 우경화의 심각성이 자리한다. 지난 4월 마치무라 노부타카 일본 외상이 참의원 외교방위위원회에서 한 발언은 자민당 정부의 우경화를 상징적으로 보여줬다. 당시 마치무라 외상은 ‘일본도 독일처럼 철저하게 과거사를 반성해야 한다.’는 야당 의원의 비판에 대해 “독일은 나치에 유대인 학살 책임을 뒤집어 씌우는 게 가능했지만 일본은 그것이 불가능했다.”며 정면 반박했다.‘독일이나 일본이나 마찬가지인데 다만 일본에는 희생양을 삼아 책임을 떠넘길 나치와 같은 존재가 없었다는 점이 다를 뿐’이라는 인식이다.‘일본만 욕을 먹는 것은 불공평하다.’는 궤변인 셈이다. 일본 사회의 우경화에 대한 인식에서는 기득권 세력인 자민당 등과 진보세력간에 이미 메워질 수 없을 만치 깊은 골이 형성돼 있었다. ●자민당 “법·제도를 현실화하자는 것일 뿐, 우경화는 아니다.” 현재 자민당 내 실세인 모리 요시로 전 총리 계파 중에서 40대 ‘젊은 피’로 손꼽히는 고바야시 유타카 참의원 의원은 자민당뿐 아니라 일본 사회에 “우경화는 없다.”고 단언했다. 그가 속한 모리파에는 고이즈미 총리를 비롯해 차기 총리 후보 1순위인 대표적 우익 인사 아베 신조 간사장 대리 등이 포함돼 있다. 고바야시 의원은 ‘현재 일본이 우경화하고 있다.’는 비판에 대해 “패전 이후 일본은 국가나 국왕에 대한 충성심이라든가 도덕 교육을 버렸다.”면서 “지금의 현상은 단지 헌법을 포함, 국가의 존재와 어떤 교육 제도를 만들어가야 하는지에 대해 논의하는 것일 뿐”이라고 반박했다. 그는 “일본이 패전 이후 하지 못했던 일을 60년이 지난 지금 다시 하자는 것”이라고 말했다. 평화헌법을 개정하고 자위대를 정식 군대로 만들려는 움직임과 관련해선 한국 사례를 들기도 했다. 그는 “한국도 이라크에 파병했는데 이처럼 국제사회 공헌을 위해 부대를 보낼 수 있도록 헌법을 개정한다든지, 자위대를 군대가 아니라고 규정한 현실을 좀 더 유연하게 바꾸자는 것”이라고 설명했다.‘자위’에만 한정하고 있는 무력행사의 요건을 완화하는 문제도 포함시켰다. 이런 움직임이 결코 군국주의로 연결되지 않을 것이란 말도 잊지 않았다. 평화헌법 개정을 우경화와 동일시하지 말라는 이같은 주장은 그러나 자민당 등이 추진하는 평화헌법 개정의 핵심 조항 2개를 들여다보면 설득력이 떨어진다. 문제의 헌법 조항들은 ‘일본 국민은 국제 분쟁의 해결 수단으로서 국권 발동에 의한 전쟁과 무력에 의한 파괴, 또는 무력의 행사를 영구히 포기한다.’는 9조 1항과 ‘1항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 육·해·공군과 그 외의 전력(戰力)은 보유하지 않으며, 교전권 역시 허용하지 않는다.’는 같은 조 2항의 완전 비무장법이다. ●진보세력 “쇼비니즘이 자민당을 장악했다.” 지난 4월 마치무라 외상에게 ‘일본의 과거사 반성’을 주문했던 야당 의원은 공산당 소속 오가타 야스오 참의원 의원이었다. 도쿄 참의원 회관에서 만난 오가타 의원은 광신적인 애국주의를 일컫는 ‘쇼비니즘(chauvinism)’이 자민당을 장악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는 “자민당은 ‘침략 전쟁은 당연한 것이다.’는 입장으로 이웃 나라들이야 어찌되건 관여치 않는다.”면서 “과거에는 극우세력들이나 하던 쇼비니즘 같은 주장이 지금은 자민당 내에서 나오고 있다.”고 지적했다. 군사 대국화의 길이 일본 외교의 최우선이기에 주변국과의 관계가 무너져도 상관없다는 쪽으로 질주하고 있다는 것이다. 오가타 의원은 올해 초 노무현 대통령이 독일을 방문했을 때 “독일은 일본과 다르다.”며 과거사에 대한 독일의 반성 노력을 높이 평가한 사실을 상기했다. 그는 “나치보다 먼저 침략에 나선 것이 일본인데도 전혀 반성의 기미가 없다. 이것이 고이즈미와 자민당의 인식”이라고 매섭게 비판했다. 그는 고이즈미 정부의 대북 강경정책이 우경화와 같은 맥락이라고 설명했다. 실제 일본이 군사력 강화의 필요성을 주장하며 논거로 들고 있는 것은 북한과 타이완, 특히 북한의 군사적 위협이다. 오가타 의원은 유사시 자위대가 적극적인 공격을 할 수 있도록 규정하는 유사법제 제정시 한 자민당 의원이 “북한이 대포동(미사일) 한 발 쏘면 쉽게 통과시킬 수 있다.”고 말했다는 일화도 소개했다. 그는 “북한이 사정거리로 볼 때 일본까지 도달할 수 없는 단거리 미사일을 발사해도 우익 성향 언론들은 ‘이것이 바로 일본이 미국과 미사일방어체제(MD)를 구축해야 하는 이유’라며 법석을 떤다.”면서 “언론도 우경화를 부추기고 있다.”고 말했다. 우익세력이 이미 정치·언론계를 장악하고 있다는 것이다. surono@seoul.co.kr ■ 日NGO ‘피스보트’ 노히라 신사쿠 대표|도쿄 특별취재팀| ‘왜곡된 역사교육을 바로잡자.’는 취지로 출범한 일본의 대표적인 시민단체 피스보트. 도쿄 시내 사무실에서 만난 노히라 신사쿠 공동대표는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의 정책을 ‘친미 민족주의와 경제적 신자유주의’로 특징짓고 “일본은 아시아에서 점점 더 외톨이가 되고 있다.”고 지적했다.1982년 제1차 역사교과서 분쟁이 일어났을 때 언론인과 대학생, 학자 등 200여명이 배를 타고 이웃 아시아를 체험해보자며 의기투합, 이듬해 정식 출범한 것이 피스보트다. 피스보트는 1990년 이후 ‘평화·인권·환경’과 ‘지속가능한 발전’을 주제로 세계일주 크루즈를 기획,80개국 이상을 방문하며 네트워크를 형성해 가고 있다. 최근에는 한국의 환경재단 등과 공동으로 13일 도쿄를 출발해 부산, 인천, 단둥, 오키나와를 거쳐 나가사키에 도착하는 ‘아시아의 화합 기원’ 크루즈를 시작했다. ▶일본 사회가 우경화로 가고 있다는 비판이 많다. 고이즈미 내각의 정책을 어떻게 평가하나. -현 정부의 특징은 민족주의와 경제적 신자유화다. 교육으로 애국심을 높이려는 것이 민족주의적 측면이라면 경제적 민영화는 신자유주의 정책이다. 경제적 신자유주의로 인해 빈부 격차는 더욱 커지고 있는데, 이는 ‘가치구미(勝ち組み·이긴 팀)’와 ‘마치구미(町組み·진 팀)’를 분리하는 엘리트주의이다. ▶민족주의에 대해 구체적으로 설명해달라. -일본 민족주의는 친미와 반미로 나뉘는데 고이즈미는 친미 민족주의다. 미국만 중요할 뿐 한국과 중국은 냉대한다. 미국은 무조건 추종해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선 한국과 중국에 고자세를 취해야 한다. 자존심 때문이다. 새로운 역사교과서를 만드는 모임(새역모)에 주도적으로 참여하고 있는 만화가 고바야시 요시노리와 평론가 니시베 스스무 등은 원래 반미였는데 후소샤판 역사교과서를 만드는 과정에서 입장을 바꿨다. 고이즈미가 미국을 따르는 이유는 주위에 친구가 없기 때문이다. 미국이 없으면 고립되기 때문에 더욱 더 심해지고 있다. ▶일본의 이라크 파병에 대해. -독일과 프랑스 등이 이라크전쟁에 반대할 수 있었던 것은 유럽연합(EU)이라는 하나의 공동체가 형성돼 있기 때문이다. 일본과 한국이 국민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군대를 보낸 것은 아시아가 하나로 결속되지 못해 미국의 영향력이 너무 크기 때문이다. ▶시민운동의 방편으로 크루즈를 기획한 이유는. -60·70년대 학생운동이 활발했지만 내부의 노선투쟁이 많아 주위의 인식이 좋지 않았다. 크루즈는 가볍게 다가가는 ‘소프트 터치(soft touch)’다. 즐겁게 참가하는 새로운 개념의 시민운동이다. 일본이 다른 국가들과 친구가 되는 것이 중요하다. 일본 정부는 아시아를 신뢰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미국과의 관계를 더욱 밀접하게 하는 것이다. 나는 한국과 중국에도 친구가 있다. 일본 정부의 역사 왜곡에 항의하는 사람들은 한국과 중국(정부의 잘못된 행위)에도 항의한다. surono@seoul.co.kr ● 특별취재팀 한종태 국제부장(팀장), 황성기 사회부장, 이춘규 도쿄특파원, 주병철(경제부)·손원천 이언탁(사진부)차장, 안미현(산업부)·김상연 황장석(정치부)·유지혜(사회부)·정연호(사진부)기자
  • [광복60 남북 화상상봉] 화면 건너편 중병 모친에 “눈좀 뜨시라요” 절규

    [광복60 남북 화상상봉] 화면 건너편 중병 모친에 “눈좀 뜨시라요” 절규

    북녘의 두 딸은 60년 만에 본 어머니가 중병으로 눈을 뜨지 못하고 고개만 떨구고 있자 기어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그리고는 TV 화면을 향해 손을 정신없이 휘저으며 절규했다.“어머니 말씀 좀 하라요. 눈 좀 떠보시라요. 말 한 마디만 하라요.” 하지만 더이상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분명 눈앞에 선명한 어머니의 얼굴이건만 좀처럼 만져지지 않았다. 볼 수 있지만 만질 수 없고, 어른거리지만 부둥켜 안을 수 없는, 이 극한의 비극은 인간의 인내를 잔인하게 시험하는 것 같았다. 그 어떤 이념이, 그 어떤 정치가 이들의 절규를 설명할 수 있을 것인가. 15일 사상 처음으로 실시된 남북 이산가족 화상상봉은 직접 만나는 상봉보다 훨씬 애절하고 안타까운 장면을 연출했다.TV 화면으로 만나기 때문에 감동이 덜할 것이란 예상은 빗나갔다. 촉각이 배제된 채 시각과 청각만을 충족시키는 상봉방식은 구경하는 일반 국민까지 애간장이 타들어가게 했다. 수십년 만에 가족의 얼굴을 접한 이산가족들은 처음엔 어색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TV 화면을 통하는 방식도 그렇고, 특히 북측 가족들은 일거수 일투족이 공개된다는 점이 부담스러운 듯했다. 하지만 대화가 점차 진행되면서 감정이 복받치기 시작했고 이내 눈물바다가 됐다. 이들 가운데 1946년 두 딸을 북에 남겨둔 채 막내 딸과 아들만 데리고 월남한 김매녀(98) 할머니는 지난해 찾아온 뇌졸중으로 휠체어에 앉아 고개만 떨구고 앉아 있을 뿐 화면을 응시하지 못해 주위를 안타깝게 했다. 북의 딸들은 끝내 어머니의 음성을 듣지 못하자 발을 동동 구르며 자지러졌다. 다른 가족들은 화면으로나마 상봉의 정을 애틋하게 교환했다. 서울의 박여환(94) 할머니는 북쪽에 나온 70대의 세 딸이 ‘고향의 봄’을 불러주자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인천의 변석현(96) 할아버지는 1·4후퇴 때 북에 두고온 60대 전후의 두 아들로부터 큰 절을 받고는 눈물을 참으려는 듯 입술을 깨물었다. 장남만 데리고 월남한 변 할아버지는 남쪽 손자와 북녘의 손자 이름이 ‘준식’으로 같다는 사실을 알게 됐을 땐 “참 묘한 우연이다.”며 웃기도 했다. 가족들은 가져온 사진들을 화면을 통해 보여주며 얘기꽃을 피웠다.5평 남짓한 상봉장에 인원 제한으로 들어가지 못한 나머지 가족들은 상봉장 밖에서 까치발을 해가며 유리창 너머의 화면에 나타난 북의 가족들을 보려 애썼고, 상봉 장면을 캠코더에 담는 사람도 눈에 띄었다. 이날 상봉과정에서 화면이 흔들리거나 음향이 들리지 않는 등 일부 기술적 문제점이 노출됐지만, 전반적으로 순조롭게 진행됐다는 평가다. 오전 화상 상봉에 앞서 한완상 한적 총재와 장재언 북측 조선적십자회 위원장의 화상대화 도중 3∼4분간 대화가 중단되는 사태가 발생했는데, 이것은 북측에서 조명선을 건드려 생긴 일시적 사고로 알려졌다. 김상연기자 carlos@seoul.co.kr
  • 헌화·분향없이 추모 묵념

    헌화·분향없이 추모 묵념

    광복 60돌 기념 ‘자주평화통일을 위한 8·15 민족대축전’에 참가하기 위해 14일 서울에 온 북측 당국 및 민간 대표단이 오후 3시 동작동 서울 국립현충원을 공식 참배했다. 북한측 인사가 현충원을 참배한 것은 처음이다. 북측 대표단장인 김기남 노동당 중앙위원회 비서 등은 또 오는 17일쯤 청와대로 노무현 대통령을 방문할 것으로 알려졌다.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특사’ 자격 여부와 함께 친서를 전달할지가 주목된다. 북측 대표단은 16일에는 분단 사상 처음으로 국회를 방문, 남북 국회회담 개최방안 등을 협의할 예정이다. 남북 국회간 교류가 급물살을 탈 조짐이다. 이날 현충원 참배에는 김기남 당 비서와 임동옥 노동당 통일전선부 제1부부장, 최성익 조선적십자회 중앙위 부위원장 등 14명의 당국 대표단과 안경호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서기국장, 김정호 조선문학예술총동맹 중앙위원장, 성자립 김일성종합대 총장 등 13명의 민간대표단, 기자 3명 등 모두 30명이 참석했다. 북측 대표단은 6·25 전사자 위패와 무명용사 유골이 봉안된 현충탑 앞에 도열,“순국선열 및 호국 영령에 대해 묵념”이라는 집전관의 구호에 따라 약 5∼6초간 묵념했다. 그러나 헌화와 분향 순서는 생략했으며, 방명록에 서명을 하진 않았다. 김기남 비서는 이에 앞서 숙소인 서울 워커힐호텔에 도착한 직후 정동영 통일부장관 등 우리측 대표단과의 환담에서 “조국 광복을 위해 생을 바친 분이 있어 방문하겠다는 의견을 제기한 것”이라고 말해 6·25 전몰 군경이 아닌 광복 유공자를 위한 추모 차원에서 방문했음을 시사했다. 그러나 북측 자문위원인 임동옥 제1부부장은 이 자리에서 “현충원 (참배) 결정은 어려운 것이었고 언젠가는 넘어야 할 관문”이라며 “6·15 시대에는 모든 것을 초월해야 한다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앞서 북측 당국대표 17명, 남녀축구선수단 65명, 민간 대표 100여명 등 180여명은 이날 오전 10시5분과 10시20분 고려항공 전세기 2편에 나눠 타고 인천공항을 통해 입국했다. 김수정 김상연기자 crystal@seoul.co.kr
  • [광복60-민족대축전 화보] 광복에 바친 生 영원히…

    [광복60-민족대축전 화보] 광복에 바친 生 영원히…

    ■ 北대표단 현충탑 참배 안팎 그들의 얼굴 앞에 포연(砲煙) 대신 향연(香煙)이 자욱하게 피어올랐다. 14일 ‘8·15 민족대축전’ 북한 대표단이 6·25 전쟁 전사자의 위패가 모셔진 현충탑 앞에서 참배하는 장면은 실감이 나지 않을 만큼 긴 여운을 남겼다. 50여년 전 서로 총부리를 들이댔던 쌍방이 무덤 앞에서 참배의 형식으로 만나는 그림은 전쟁 당시는 물론 불과 며칠 전만 해도 일반 국민으로서는 상상키 어려웠기 때문이다. 하지만 북측 대표단의 표정과 행동엔 약간의 경직됨이 묻어 있었고, 참배 절차와 시간도 최대한 짧게 하는 등 전체적으로 수위를 조절하고 있다는 인상을 풍겼다. 이날 오후 3시쯤 대형버스로 현충원 현충문 앞에 도착한 북측 대표단 32명은 김기남 당국대표 단장과 안경호 민간대표 단장을 선두로 해 5열 종대로 줄을 맞춰 현충탑으로 향했다. 고경석 현충원장과 송기호 현충과장이 좌우에 서서 대표단을 안내했다. 이때 양옆에 도열한 국군의장대가 “받들어 총”이라는 구령과 함께 거총 자세로 예우를 갖췄지만 대표단은 일체 두리번거리지 않고 정면만을 응시했다. 표정은 엄숙하면서도 굳어 있었다. 대표단은 50m가량을 걸어서 2분여 만에 현충탑에 도착했다. ●행동경직… 참배시간 모두 5분정도 걸려 현충탑 앞에 도열한 대표단은 “순국선열 및 호국영령에 대해 묵념”이라는 집례관의 구호에 따라 약 5초간 가볍게 고개를 숙였다. 대표단은 묵념을 끝내자마자 곧바로 오던 길을 되돌아 현충문으로 나왔으며 이때 의장대가 다시 “세워 총”이라는 구령으로 거총 자세를 취하면서 참배는 마무리됐다. 전체 시간은 5분 정도 걸렸다. 김기남 단장은 나오는 길에 고경석 원장에게 현충원의 시설과 규모에 대해 물었다. 이어 그는 “이렇게 현충원을 방문하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민족의 화합을 위해 앞으로 일들을 많이 합시다.”라고 소감을 밝혔다. 안경호 단장은 기자들이 몰려들자 “역사적인 장면이니까 취재 경쟁이 심한 것 같다.”고 말하기도 했다. 현충원의 공식 참배 절차는 헌화→분향→묵념 등 순으로 진행되지만 북측은 이날 헌화와 분향 절차를 생략했다. 다만 대표단이 도착하기 전 현충원측에서 향을 피워놓아 묵념 당시에는 하얀 연기가 솟아 오르고 있었다. 통일부측은 “우리와 북측은 참배 관행이 다르다.”고 설명했다. ●보수단체 회원 24명 연행 격리 북한은 김일성 주석의 동상 등을 참배할 때 헌화는 하지만 분향은 하지 않는다. 앞서 오후 1시45분쯤 현충원 정문 앞에서 시위를 벌이던 보수단체 회원 24명이 경찰에 의해 연행돼 강제 격리됐으며, 대표단 버스가 현충원 정문을 통과할 때도 40대 남성이 경찰 저지선을 뚫고 버스에 달려들며 반북구호를 외치다가 연행됐다. 김상연 이효연기자 carlos@seoul.co.kr ■ 헌화·분향 않고 왜 묵념만 14일 국립현충원을 방문한 북측 대표단이 묵념만 하고 5분 만에 서둘러 자리를 뜬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대표단은 현충원의 공식 참배 절차 가운데 헌화와 분향 순서를 생략했다. 이는 북측의 요청에 따른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 관계자는 “북측의 참배 관행이 자연스럽게 반영된 것으로 보면 된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부의 설명은 설득력이 약하다는 지적이다. 북측은 김일성 동상과 혁명열사릉 등 현충시설을 참배할 때 분향은 안 하지만 꽃다발과 꽃바구니로 헌화도 하기 때문이다. 더욱이 북측은 5초 정도의 짧은 묵념이 끝나기가 무섭게 서둘러 현충탑을 떴고, 내내 경직된 표정을 풀지 않았다. 이와 관련, 북한 당국이 북한내 강경파와 대남관계의 수위 조절을 두루 감안한 것 같다는 분석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현충탑에 헌화할 경우 김일성 동상에 대한 예우와 맞먹는다는 점에서 북한 주민이 받을 충격을 우려했다는 것이다. 아울러 아직 남한과의 공조 방침이 확실히 정리되지 않은 상황에서 한번에 너무 최고의 예우를 할 경우 나중에 남북관계가 부정적으로 흐를 때 빠져나갈 여지가 없다는 점도 감안했다는 관측도 있다. 김상연기자 carlos@seoul.co.kr ■ 민족대축전 이모저모 14일 저녁 서울 상암월드컵경기장은 관중석을 가득 메운 5만 인파의 우렁찬 통일 함성으로 진동했다. 함성은 이어 벌어진 통일축구로 절정에 달했다. ●“말복 폭염도 통일열기 못 따라와” 나흘간 계속되는 8·15 민족대축전은 오후 5시10분 남·북·해외 대표단의 민족대행진(상암동 평화공원∼월드컵경기장)으로 막을 열었다. 북한 대표단은 ‘역사적인 북남공동선언 기치 밑에 통일운동을 거족적으로 벌여나가자.’고 적힌 플래카드를 앞세워 행진했다. 성자립 김일성종합대 총장은 “오늘이 말복이라 날씨가 덥고 폭염이 계속되고 있지만 통일열기는 따라잡지 못한다.”고 말해 박수를 받았다. 대표단이 경기장에 도착한 오후 6시 각각 백두산과 한라산에서 채화된 성화가 성화대에 불을 붙였고, 그 순간 한반도기가 게양됐다. 개막식은 백낙청 남측 준비위원회 위원장의 개막선언과 북측 당국 대표단장 김기남 노동당 중앙위원회 비서, 남측 당국 대표단장 정동영 통일부장관의 개막연설 순으로 진행됐다. ●세종로서도 축구 보며 남북 동시응원 오후 7시 남북 통일축구 경기 시작에 앞서 일제시대 위안부로 끌려갔던 최갑순씨 등 정신대 할머니 3명과 경기 하남시 대안학교인 ‘꽃피는 학교’ 학생 28명이 ‘고향의 봄’ 노래를 부르기도 했다. 경기가 열린 상암월드컵경기장 주변은 물론 차량의 통행을 막은 세종로에 모인 시민들까지 남북 양측을 모두 응원하며 통일을 향한 염원을 실어보냈다. 통일연대 등 진보단체는 15일 0시쯤 경희대 노천극장에서 ‘자주·평화·통일을 위한 결의의 밤’ 행사를 가졌다. 김혜경 민주노동당 대표, 한상렬 통일연대 상임대표 등의 인사말로 시작된 행사에는 학생 등 1만6000여명(경찰추산)이 참가했다. 이례적으로 한국민주통일연합(재일 한국인 단체) 등 해외인사들도 참석했다. 당초 행사는 연세대에서 열릴 예정이었으나 연세대측과 연세대총학생회의 반대로 장소가 변경됐다. 유영규 이효연 나길회기자 whoami@seoul.co.kr
  • 北대표단 8·15때 현충원참배

    北대표단 8·15때 현충원참배

    8·15 서울 민족대축전 기간에 김기남·임동옥 조국평화통일위원회 부위원장을 비롯한 북측 당국 대표단과 민간 대표단 30여명이 서울 동작동 국립현충원을 방문해서 현충탑을 참배할 계획이라고 통일부가 12일 밝혔다. 북한 사람이 6·25전쟁의 국군 전사자들이 묻혀 있는 국립현충원을 방문하기는 사상 처음이다. 현충탑에는 6·25 전쟁 전사자의 위패와 무명용사의 유골이 봉안돼 있다. 이봉조 통일부 차관은 “지난 5일 8·15 민족대축전 행사를 협의하기 위한 남북 연락관 접촉에서 북측이 당국 및 민간 대표단의 국립현충원 방문 의향을 전달하면서 의례 절차를 문의해 왔다.”면서 “정부는 민족의 불행했던 과거를 치유하고 진정한 화해를 이룰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으로 판단해 9일 판문점 연락관을 통해 수용의사를 전달했다.”고 밝혔다. 이 차관은 “북한의 현충원 방문 의향은 참배를 의미하는 것으로 보는 게 정확하다.”면서 “북측은 이와 관련한 어떤 사전 논의나 전제 조건 없이 자발적으로 참배 의사를 전달해왔다.”고 말했다. 그는 “아직 방문 날짜는 일정 조정 문제 때문에 확정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이와 관련해 현재로선 광복 60주년인 오는 14∼15일이 유력한 것으로 알려진다. 한편 북측 대표단은 14∼17일 서울과 경기도 고양시 등지에서 치러지는 ‘자주 평화 통일을 위한 8·15 민족 대축전’에 김기남 부위원장을 단장으로 하는 17명의 당국 대표단을 파견할 예정이다. 우리 당국 대표단은 정동영 통일부 장관(단장)과 박병원 재정경제부 차관, 유홍준 문화재청장외에 5개 부처 차관 등 22명으로 구성된다. 북측 민간과 당국 대표단은 14일 오전 10시와 10시15분쯤 각각 고려항공편으로 인천공항에 도착한다. 김상연기자 carlos@seoul.co.kr
  • “믿을건 南뿐” 김정일뜻 반영

    8·15 민족대축전에 참가하는 북한 대표단이 국립현충원을 방문하겠다고 나선 것은 그 상징성만으로도 큰 의미가 있다. 전쟁 당사자로서 상대방 전사자의 무덤을 방문하는 행위는 과거를 씻고 새 출발을 하는 데 있어 가장 적극적 의사표시의 하나이기 때문이다. 그동안 6·25 전쟁은 워낙 민감한 사안이라는 점에서 남북 당국간 회담에서 거론 자체가 금기시돼 왔다. 때문에 국립현충원 참배 같은 행사는 남북화해 국면의 마지막 수순으로 예견돼 왔다. 따라서 이번 북측의 참배 결정은 아주 뜻밖의 뉴스로 받아들여진다. 북한이 갑자기 참배 카드를 들고 나온 배경에는 앞으로 상당기간 남한과의 화해협력 기조를 유지하겠다는 의중이 작용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남한과의 ‘찰떡공조’를 통해 경제적 이득을 얻는 한편 미국으로부터의 체제전복 위협에서 벗어나려는 전략이라는 것이다. 경남대 김근식 교수는 “북한의 현충원 참배 결정은 남북관계 진척의 큰 모티브가 될 것”이라면서 “지금은 남한 밖에 믿을 곳이 없다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절박한 심정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고 평가했다. 일각에서는 북핵 6자회담의 와중에 이런 결정이 내려진 것과 관련, 북측이 정전체제의 평화체제로의 전환 분위기를 잡기 위한 전략의 일환인 것 같다는 분석도 나온다. 한·미간의 틈을 벌리면서 협상에서의 우위를 점하려는 의도라는 관측이다. 세종연구소 백학순 교수는 “북한으로서는 평화체제를 정전체제로 바꿔서 미국의 공격 대상에서 벗어나려는 생각이 절실하다.”면서 “참배 결정은 그런 생각의 연장선상에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물론 과거의 경험상 북측의 이런 제스처가 1회성으로 그칠 공산도 적지않다. 남북한간, 또는 북·미 관계 등 국제적 정세의 변화에 따라 얼마든지 과거의 적대적 관계로 회귀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다만 큰 방향은 일단 긍정적이라는 평가가 많은 편이다. 백학순 교수는 “2000년 6·15 남북관계 개선에 분수령이 됐듯이 북한의 현충원 참배가 한반도 비핵화와 남북관계 정상화에 돌이키기 힘든 긍정적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내다봤다. 관심은 남북간의 이런 긴밀한 관계개선이 미국 부시 행정부의 대북 정책기조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하는 점이다.남북이 협조해 한반도에서 주도권을 행사하려 들 경우 부시 행정부의 대(對)한반도 입지는 일정부분 위축될 수도 있다. 그러나 부시 행정부의 강경파들이 핵 문제와 관련한 북한의 자세 불변과 남한 당국의 동조적인 태도에 불만을 표출할 경우 북·미, 한·미간 긴장도가 높아지면서 한반도를 둘러싼 정국은 극도의 불안에 빠질 개연성도 배제할 수 없다.김상연기자 carlos@seoul.co.kr
  • “北대표단 현충탑만 참배”

    ▶상호주의에 따라 남측 대표단이 평양을 방문할 때 금수산 기념궁전 등을 방문하나. -상호 참배 문제에 대해서는 논의된 바 없다. 상황이 되면 검토해 보겠다. 현 단계에서는 입장 정리가 안됐다. ▶국립현충원의 특정 묘역을 지정해서 참배하나. -일반적으로 의전관례에 따른다. 따라서 현충탑만 가게 될 것이다. ▶정부가 수용하게 된 배경은. -오랜 분단동안 겪은 불행했던 과거는 앞으로 남북의 진정한 화해·협력을 위해 반드시 해결돼야 한다. 국민적 공감대가 있다는 믿음을 바탕에 깔고 있다. 북한이 먼저 제기했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두고 판단했다. ▶지난 5일 북한의 의향을 비춰 북한의 정확한 메시지는. -현충원을 방문할 의향이 있고, 어떤 의전 절차를 거쳐야 하느냐는 것이었다. 이를 파악해서 알려주는 데 시간이 걸렸다. 그 외에 특별한 메시지는 없었다. 정확한 말은 잘 기억이 안난다. ▶김기남 단장이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특사 자격인가. -단정할 수 있는 팩트를 갖고 있지 않다. 설명한 대로만 이해해달라. 추가로 파악이 되면 설명하겠다. 김상연기자 carlos@seoul.co.kr
  • 北 ‘8·15축전’ 대표단 165명 통보

    북측은 14∼17일 서울과 고양 등에서 치러지는 8·15민족대축전에 참가할 민간대표단 100명과 통일축구 선수단 65명 등 모두 165명의 명단을 11일 남측에 통보했다. 민간 대표단 단장으로는 안경호 조국평화통일위원회(조평통) 서기국장이 맡았으며 김정호 조선문학예술총동맹 중앙위원장, 이충복 북측 민족화해협의회 부위원장, 성자립 김일성종합대학 총장 등이 명단에 포함됐다. 또 벽초 홍명희 선생의 아들로 북측에서 소설가로 활동 중인 홍석중씨와 정덕기 조국통일범민족연합 북측본부 부의장이 대표단의 일원으로 남녘 땅을 밟게 됐다. 그러나 작년 6월 인천에서 열린 우리민족대회에 참가해 주목을 받았던 북송 비전향 장기수 이인모 노인의 외동딸 이현옥씨는 명단에서 빠졌다. 오는 14일 저녁 상암경기장에서 통일 축구 경기를 벌일 북측 남자 선수단은 이번 동아시아축구대회에서 북한 대표단 단장으로 서울을 방문했던 이경일과 이원남이 공동 단장을 맡았다. 여자 선수단에는 이금숙과 진별희 등 간판급 선수들이 포함됐다. 대표단은 14일 오전 10시 고려항공 전세기편으로 인천공항을 통해 입국할 예정이다. 김상연기자 carlos@seoul.co.kr
  • [北어린이에 우유를…] 민간교류가 ‘하나됨’ 북돋운다

    [北어린이에 우유를…] 민간교류가 ‘하나됨’ 북돋운다

    “4년 전 나는 9살이었고 자주 가는 곳은 벼룩시장이었습니다. 여기서 풍선 날리기 대회가 열렸습니다. 나는 풍선을 크게 불어서 날렸습니다. 어느날 집배원 아저씨가 엽서를 가져다 주셨습니다.‘안녕, 안야! 우리가 네 풍선을 발견했단다. 풍선은 국경을 넘어 700㎞나 떨어진 동독의 드레바까지 날아왔단다. 우리 가족은 정말 기뻤어. 네 편지를 기다리며….’굉장한 일이었습니다. 나는 편지쓰기 병에 걸린 사람처럼 열심히 편지를 썼습니다.” 독일 통일 이듬해인 1991년 안야 빈터베르크라는 13살 소녀는 글짓기 대회에 낸 이 체험수기로 많은 사람의 심금을 울렸다.‘안야의 풍선’은 국경을 넘는 순간 일개 장난감에서 동포애의 기폭제로 진화한 것이다. 마찬가지로 북한 어린이에게 전달되는 ‘통일 우유’도 휴전선을 통과하는 순간 단순한 영양식품의 차원을 넘어 통일의 씨앗으로서의 지위를 확보할 법하다. 주민끼리의 자연스러운 교감이 독일 통일의 토대로 작용했음을 안야의 풍선은 웅변한다. 물론 동독 당국이 처음부터 주민들을 풀어준 것은 아니다. 동독의 개방은 서독이 장기간에 걸쳐 집요하게 경제적 지원을 쏟아부은 끝에 얻어낸 결실이었다. 예컨대 서독은 동독 주민이 방문할 경우 연 1회에 한해 1인당 100마르크(당시 미화 200달러 정도)의 돈을 ‘여행환영금’조로 주는 방식으로 교류를 유인했다. 덕택에 1962년 연간 2만 7000명에 불과했던 동독주민의 서독 방문은 1986년에는 200만 2000명으로 20여년만에 100배 가까이 늘었다. 서독 관광객이 동독을 여행할 때 일정 금액(1일 10마르크 정도)을 반드시 현지에서 환전토록 함으로써 결과적으로 동독 시장에 돈을 지원하는 서독의 정책도 민간교류 활성화에 기여했다. 이른바 ‘최소 의무 환전액’ 제도다. 동독 당국은 이 정책으로 인한 민간교류 확대 추세에 불안을 느껴 한때 환전 기준액을 25마르크까지 올렸으나, 서독의 물량공세에 결국 두 손을 들고 말았다. 통일부 양창석 정보분석국 분석총괄과장은 “당시 먹는 문제만큼은 어려움이 없었던 동독의 사례와 지금 기아에 허덕이는 북한을 단순비교하긴 힘들지만, 어떤 식으로든 남북이 자주 접촉하고 교감하는 기회를 만들어나가는 게 중요하다.”며 통일 우유 지원사업의 효과에 기대를 표시했다. 사실 독일의 경우뿐 아니라 거의 모든 정치적 통합은 경제·사회적 통합 이후에 이뤄졌다는 것을 역사는 증명하고 있다. 비근한 예가 유럽연합(EU)이다. 지금의 EU는 1951년 프랑스·독일·이탈리아 등 6개국이 창설한 유럽석탄철강공통체(ESCE)가 ‘배아’ 역할을 했다. 10년째 대북 민간지원 사업을 벌이고 있는 ‘월드비전’의 이주성 북한팀장은 “통일 우유 지원사업은 남북이 상호 신뢰를 쌓는 데 긴요한 사업”이라며 “남북관계가 경색됐을 때 민간 지원사업이 숨통 역할을 해왔던 전례를 볼 때 이런 사업은 더욱 확대돼야 한다.”고 말했다. 관건은 정부의 지원이 얼마나 적극적인가에 달려 있다. 이 팀장은 “민간 교류사업에 가속도가 붙으려면 정부 차원의 지원이 필수적이라는 것을 경험으로 절감하고 있다.”고 했다. 이런 측면에서 지난 8일 정동영 통일부 장관이 채수삼 서울신문사 사장을 만난 자리에서 “통일 우유 지원사업의 취지에 100% 공감한다.”면서 적극 지원을 약속한 것은 큰 기대를 갖게 한다. 김상연기자 carlos@seoul.co.kr
  • 北선박 15일부터 제주해협 통과

    북한 민간 선박이 오는 15일부터 제주해협을 통과할 수 있게 된다.북한선박이 우리측 해역의 해상항로대를 직접 이용할 수 있게 됨으로써 운항시간과 비용, 안전성 등이 크게 개선될 전망이다. 남북은 8일부터 10일까지 경기도 문산 홍원연수원에서 제5차 남북해운실무접촉을 열어 이 같은 내용을 포함한 6개항의 공동보도문을 채택했다고 통일부가 10일 밝혔다. 북측 민간 선박의 제주해협 통과가 허용됨에 따라 북측 선박은 그동안 이용해온 제주도 남쪽 항로대가 아니라 제주해협을 바로 통과할 수 있게 됨으로써 약 53해리의 항해거리와 4시간25분 정도의 시간(12노트 항행기준)을 단축할 수 있게 됐다.김상연기자 carlos@seoul.co.kr
  • “까까머리 학생이 장관 됐다니”

    반기문(61) 외교통상부 장관이 지난 5일 고교시절 미국에서의 민박집 주인이었던 패터슨(88·여)을 43년만에 서울에서 재회했다. 충주고 3학년생이던 1962년 미 적십자사 초청으로 방미했을 때 샌프란시스코에서 한달간 민박집을 제공했던 패터슨은 이날 반 장관의 개인 부담 초청으로 딸 메리베스(56·고교 음악교사)와 함께 서울에 왔다.패터슨은 ‘볼품 없던 까까머리 학생’이 세계 11위 경제대국의 외교장관으로 변신한 것이 믿어지지 않는 듯 연신 울먹여 주위 사람들의 눈시울까지 적셨다고 한 외교부 관계자는 전했다. 반 장관은 “당시 백악관에서 존 F 케네디 대통령을 만나는 등 워싱턴 일정 후 샌프란시스코로 가 한 달간 민박했는데 그동안 신세를 갚지 못해 늘 마음에 걸렸다.”면서 “지난 2월 미국 방문 중 전화를 걸어 초청했다.”고 말했다. 패터슨은 방한 이후 경복궁 등 시내관광과 함께 오두산 통일전망대를 찾아가 남북분단의 현장을 둘러봤다.8일에는 외교부 청사로 반 장관을 예방했고 9일 제주도를 관광한 뒤 11일 귀국한다. 제주도행에는 반 장관 부인 유순택씨가 동행한다.김상연기자 carlos@seoul.co.kr
  • 아키하바라 가전상가 게임업체가 점령

    아키하바라 가전상가 게임업체가 점령

    |도쿄 특별취재팀|1999년 여름 일본 기타큐슈에 자리한 국제동아시아연구센터(ICSEAD)를 찾았을 때의 일이다. 한국은 점차 초고속인터넷 서비스가 확대되고 있는 상황이었지만 일본은 사뭇 달랐다. 당시 방문한 국제 규모의 연구센터엔 제법 빠른 속도의 인터넷망이 연결돼 있었지만 공공기관이나 가정에선 거의 대부분 전화선을 통한 ‘거북이 인터넷’을 이용하고 있었다. 하지만 2000년 전후 한국의 정보기술(IT) 산업이 초고속인터넷이라는 사회기반시설을 기반으로 폭발적 성장세를 보이기 시작할 즈음 뒤늦게 출발한 일본 IT는 2005년 현재 한국을 위협할 정도로 급성장했다. ●‘e재팬 전략’의 성공 한 나라의 IT 수준을 평가하는 기본 잣대로 초고속인터넷 이용 현황이 종종 거론된다. 일본의 초고속인터넷 가입자는 지난해 말 기준으로 1826만가구. 총무성 통계국 자료 등에 따르면, 이는 일본 전체 4937만가구의 37% 수준이다. 가입자 비율로 보면 지난 6월말 현재 전체 1533만가구 가운데 80%인 1220만가구가 가입한 한국에 뒤지고 있지만 규모로는 이미 2003년부터 한국을 추월했다. 포화 상태에 이르고 있는 한국에 비해 성장 여력도 크다. IT산업의 핵심 인프라인 초고속인터넷의 이같은 ‘초고속’ 보급은 일본 정부의 ‘e재팬(Japan) 전략’이 성공을 거둔데 따른 것으로 평가된다.1999년 실무진 검토를 시작으로 2001년 1월 본격 시작된 ‘e재팬 전략’을 주관하는 일본 정부의 IT전략본부 본부장은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 장기침체에서 허우적거리던 경제를 살리기 위해선 IT산업을 발전시켜야 한다는 정부 의지를 반영한 것이다. 2001년 당시 ‘5년 내에 일본을 세계 최고수준의 IT국가로 만든다.’는 거창한 목표를 내세우며 출발한 ‘e재팬 전략’에 대해 정부 담당자들은 “속도가 빠르고 값싼 인터넷을 사용토록 하는 데 중점을 두고 있다.”고 설명했다. ‘e재팬 전략’을 담당하는 경제산업성 정보정책과 사카이 마사요시 과장보좌는 일본에서 인터넷 종량제가 사라진 상황을 예로 들었다. 종량제를 본격적으로 도입한 회사는 일본 굴지의 기업인 NTT였다고 한다. 그런데 2001년쯤 모뎀에서 비대칭디지털가입자회선(ADSL)으로 인터넷서비스가 바뀌면서 종량제는 거의 사라지고 월 정액제가 주종을 이루게 됐는데, 이는 ‘e재팬 전략’의 성과라고 그는 설명했다. 정부가 기업으로 하여금 요금을 강제로 내리게 하지는 않았지만 그같은 방향으로 유도했다는 뜻이다. 일본 정부 통계에 따르면,2001년 3월 1개월에 7800엔이었던 요금은 지난해 7월 2600엔으로 급격히 인하됐다. 같은 기간 초고속인터넷 가입자 수는 19배 이상 증가했다. ●IT를 이끄는 게임산업 IT정책을 담당하는 경제산업성 정보통신기기과 히라이 아쓰오 과장보좌는 정부의 정책적 지원으로 탄탄한 인프라를 갖춘 IT산업을 이끄는 기업들에 대해 묻자 경제의 ‘거점’이란 뜻의 ‘플랫폼(platform) 기업’이란 신조어를 사용해 설명했다. 그는 “하드웨어에서 소프트웨어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부문의 기업들이 IT산업을 이끌고 있어서 분야를 구분한다는 것은 큰 의미가 있지 않다.”면서도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모두 생산하는 기업을 높이 평가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하드웨어인 게임기와 소프트웨어인 게임프로그램을 동시에 만드는 소니(Sony)를 언급했다. 그가 선뜻 대표적 게임기업인 소니를 거론한 것은 게임산업이 일본에서 차지하는 위상 때문이다. 지난해 일본 컴퓨터엔터테인먼트협회(CESA)가 발간한 ‘2004 CESA 게임백서’에 따르면,2003년말 현재 일본 게임시장은 4462억 1800만엔(약 4조원) 규모였다. 경제전문지 포브스 일본판 7월호에서 일본 억만장자들에 포함된 재일교포 손정의 회장의 소프트뱅크와 통신기업 히카리쓰신 등도 IT산업의 대표기업으로 평가받지만, 전문가들은 세계적 경쟁력을 인정받아온 일본의 게임기업들이 IT산업의 중추 역할을 맡고 있다는데 이견이 없다. 갈수록 높아지는 게임산업의 위상은 한때 최첨단 전자제품 상가로 이름을 날리던 도쿄 아키하바라의 변모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상점들이 최근 3∼4년새 플레이스테이션을 비롯한 게임 관련 점포들로 대체되고 있다.”는 아키하바라의 전자제품 상점 직원 미조베 교코의 말처럼 이미 게임이 아키하바라를 장악한 지 오래다. 그나마 남은 전자제품 상점들은 상당수가 전자제품뿐 아니라 향수와 여행 기념품까지 파는 잡화점 형태로 바뀐 상태였다. ●새로운 도전 온라인게임 정부의 ‘e재팬 전략’으로 구축된 초고속인터넷망과 게임산업이 만나 새롭게 떠오르고 있는 분야는 온라인게임이다.‘게임은 게임기로 즐기는 것이며 컴퓨터는 사무용 기기다.’는 인식이 뿌리깊이 박힌 일본의 엄청난 변화다. 아직까지 온라인게임이 게임시장 전체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크지 않지만 성장세는 눈부시다.‘디지털 콘텐츠 백서’에 따르면,2000년 9억엔에 불과했던 일본 온라인게임 시장 규모는 2003년 198억엔에 이어 지난해 382억엔을 기록하는 등 불과 4년 새 42배나 성장했다. 한국의 게임기업들이 온라인게임 분야의 기술적 우위를 앞세워 열도 공략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가운데 현지 게임업체들도 앞다퉈 이 시장에 뛰어들고 있다. “아직까지 그렇게 시장 규모가 큰 것은 아니다. 다만 온라인게임은 이용자가 서버에 접속하는 시간에 비례해 요금을 받기 때문에 복제품 범람으로 개발비도 건지기 어려운 중국에서도 수익을 내고 있다.”는 게임기업 남코(Namco)의 이시무라 시게이치 사장의 말은 온라인게임에 대한 일본 게임업계의 평가를 대변한다. surono@seoul.co.kr ■ “게임 업계 경쟁력은 돈 작년 200억엔 R&D 투자” |도쿄 특별취재팀| 한국을 비롯해 세계적으로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비디오게임 ‘철권(鐵拳·일본명 데켄)’시리즈로 유명한 남코(Namco). 지난 5월25일 도쿄 오타구 야구치에 있는 남코 본사에서 이시무라 시게이치 사장을 만나 일본 게임산업 전반에 대해 들어봤다. 그는 세계적 경쟁력을 유지하는 비결로 연구 개발에 대한 끊임없는 투자를 들었다. 남코가 ‘기동전사 건담’ 등 캐릭터 장난감과 게임 ‘다마고치’로 유명한 일본 최대 완구업체 반다이(Bandai)와의 합병을 발표하고 20여일이 지난 시점이어서 인터뷰는 자연스럽게 합병 문제로 시작됐다. 게임업체 ‘세가(Sega)’와 슬롯머신업체 ‘사미(Sammy)’가 합병하는 등 일본 게임업계에선 지난해부터 짝짓기를 통한 몸집불리기 열풍이 불고 있다. 이같은 합병 바람은 출산율 저하에 따른 게임과 장난감 업계의 경쟁 격화가 주요 원인으로 분석되고 있다. ▶반다이와의 합병을 결정한 이유는. -출산율 문제도 있지만, 기본적으로 합병을 통한 시너지효과가 예상됐기 때문이다. 반다이의 어린이 고객과 남코의 청소년 및 성인 고객이 합쳐질 것을 기대했다. 우리가 만든 게임을 즐긴 세대가 부모가 되고, 나중에 할머니 할아버지가 돼서도 자녀는 물론 손자 손녀와 더불어 즐길 수 있게 하자는 것이다. 세대에서 세대로 이어져 인생을 함께할 수 있는 게임을 만들겠다는 것이다. ▶일본 게임 경쟁력의 원천은. -돈이다. 돈을 많이 투자한 게임은 경쟁력을 가질 수밖에 없다. 지난해 1785억엔(약 1조 6300억원)의 연간 매출 가운데 200억엔가량을 연구개발비에 투자했다. 마케팅의 경우 특별히 정해진 비용은 없지만 10억∼20억엔 정도라고 보면 된다. ▶남코가 최근 10년간 집중적으로 투자한 부문은. -플레이스테이션이 출시되면서 철권 등 격투기와 총격전 등의 3차원(3D)게임에 많은 투자를 해왔다. 그 때문에 살아남지 않았나 싶다. ▶일본의 IT산업에 대한 전망과 게임업계와의 관계에 대해. -IT와 관련, 컴퓨터 운영체계(OS)는 마이크로소프트(MS)로 대표되는 미국 기업이 단연 앞서가고 있다. 하지만 컴퓨터 응용프로그램이나 주변기기 등에 있어서는 일본과 한국이 강점을 갖고 있다고 본다. IT와 게임산업의 관계를 보면, 예를 들어 게임을 더 재미있게 즐기려면 해상도 높은 화면을 제공하는 액정이 필요한데, 그런 액정이 개발되면 그런 화질로 즐길 수 있는 수준높은 게임을 만들어야 한다. 상호 보완적이다. ▶온라인게임 시장을 어떻게 보나. -아직 발표는 하지 않고 있지만 우리 역시 온라인게임을 개발하고 있다. 컴퓨터보다 게임기로 즐기는 게임 문화가 훨씬 먼저 정착된 일본은, 온라인게임 문화가 발달한 한국이나 중국과는 상황이 다르다. 하지만 우리도 온라인게임에 주목해야만 한다고 생각한다. ▶실제로 즐기는 게임은. -(남코의 대표적 게임인 철권 등의) 격투기 게임은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웃음). 자동차 운전게임을 좋아한다. surono@seoul.co.kr ●특별취재팀 한종태 국제부장(팀장), 황성기 사회부장, 이춘규 도쿄특파원, 주병철(경제부)·손원천·이언탁(사진부)차장, 안미현(산업부)·김상연(정치부)·황장석(국제부)·유지혜(사회부)·정연호(사진부)기자
  • “한반도비핵화 동의는 13년 北核회담중 처음”

    “북한이 핵확산금지조약(NPT)을 탈퇴한 이후 지난 13년동안의 북핵 관련 회담 중 처음으로 의미있는 회담이었다.” 정부 고위당국자는 8일 뚜렷한 결론을 내지 못하고 ‘휴회’ 결정이 내려진 4차 6자회담에 대해 이렇게 자평했다. 그는 이날 기자간담회를 자청,“4차회담 휴회 결정으로 남북관계가 지체될 것이라는 일부 보도는 맞다고 보지 않는다.”면서 “지난 2월10일 북한의 핵 보유 선언 이후 전쟁위기 운운했던 상황과 비교해 보면, 이번에 한반도 비핵화라는 대전제에 참가국 모두가 동의한 것 자체가 큰 성과”라고 강조했다. 이같은 발언은, 국내외에서 4차 6자회담에 대한 평가와 향후 전망이 부정적인 쪽으로 쏠리는 것을 적극 차단하고 6자회담의 동력을 이어가기 위한 일환으로 풀이된다. 이 당국자는 “4차회담에서 북한과 미국이 각각 핵포기와 관계정상화 의사를 밝혔고,‘평화적 핵 이용권’에 대한 이견만 남았다.”면서 “따라서 이제부터 본격적인 협상국면에 돌입했다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지난 4차회담의 과정을 회고하며 아쉬움 비슷한 감정을 털어놓기도 했다. 그는 “돌이켜 보면 중국측이 1,2,3차 초안을 제시했을 때 잘 하면 좋은 결과를 낼 수도 있었다.”면서 “지금 ‘복기’해 보면 아쉬운 생각이 든다.”고 알쏭달쏭한 얘기를 했다.김상연기자 carlos@seoul.co.kr
  • 전투기 추락 원인은 ‘비행착각’

    지난달 13일 서·남해상에서 공해합동훈련 중 공군 전투기 F-4E와 F-5F가 잇달아 추락한 것은 조종사의 ‘비행착각’(Vertigo)이 원인이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공군은 5일 “두 지역에서 일어난 항공기 사고 원인은 약간의 차이는 있으나 야간투시경을 장착한 채 가상 적 함정을 공격하는 훈련 중 조종사가 야간 비행착각에 빠져 추락한 사고”라고 밝혔다.김상연기자 carlos@seoul.co.kr
  • [베일벗는 도청] 풀리지 않은 6대 의혹

    5일 국정원이 불법 도청에 대한 자체 조사결과를 발표했다. 하지만, 김영삼(YS)·김대중(DJ) 두 전직 대통령의 인지여부 등 몇가지 의문점들은 말끔히 해소되지 않고 있다. ① YS·DJ는 몰랐을까 국정원 발표에 따르면,YS정부는 물론 DJ정부때까지 불법 도청이 행해졌다. 그러나 당시 두 대통령이 그 사실을 알거나 보고받았는지에 대해서는 명확히 설명되지 않고 있다. 국정원측은 YS에 대해서는 “당시 국정원 도청 담당 국장이 입을 열지 않고 있어 알 수 없다.”고 했고,DJ에 대해서는 “당시 제한된 사람들만 봤을 것이고,DJ가 그걸 원치 않았다는 건 분명하다.”고 했다. 하지만 당시 최고권력자인 두 사람이 불법도청 사실을 전혀 몰랐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말이 안된다는 지적도 만만치 않다. 적어도 ‘미림’팀이 본격 재편된 1994년 6월은 YS정부의 권력이 정점에 있던 시기란 점에서 대통령에게 보고가 이뤄졌을 가능성이 크다는 관측이 나온다. 또 DJ정부 말기인 2002년 3월 신건 국정원장이 도청을 전면 금지하는 과정에서도 대통령에게 보고됐을 정황이 농후하다.DJ가 처음엔 도청사실을 몰랐을지라도 나중에 알고 신 원장에게 중단을 지시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② 현정권 불법도청 없다? 청와대는 5일 현 정권의 불법 도청 의혹을 완강히 부인했다. 하지만 윗선에 도청 사실 자체가 보고되진 않더라도, 양질의 정보에 욕심이 있는 정보기관 요원들이 도청에 대한 유혹을 떨치지 못했을 가능성은 적지않다. 실제 참여정부 초기 한나라당 정형근 의원은 국정원이 휴대전화 도청 의혹을 부인하자 면전에 있는 기자들에게 “OO기자,OO기자, 당신들 휴대전화도 다 도청되고 있어”란 말을 한 적이 있다. 한나라당 강재섭 원내대표도 이날 “정보기관은 과거 중앙정보부 때부터 나름의 타성과 고집이 있기 때문에 도청 근절을 선언한다고 해서 안하는 게 아니다.”고 추정했다. ③ 2002대선 도감청 여부는 국정원은 “여·야를 막론하고 대선후보들을 대상으로 한 감청은 없었다.”고 밝혔다. 하지만 권력의 향배가 왔다갔다 하는 극도로 민감한 시기에 정보기관 요원들이 손을 완전히 놓고 있었다고 보긴 무리라는 지적이 만만치 않다. 실제 2002년 대선 당시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는 도청을 우려해 휴대전화 비화기를 부착하고 통화를 했다는 일화가 있다. ④ 미림팀 부활 진짜 배후는 국정원은 “당시 국내정보 수집담당인 모국장이 간부회의에서 재편을 건의함에 따라 결성된 것”이라고 밝혔다. 미림팀은 국정원의 조직 직제상 명시돼 있는 조직이 아니므로 실무선에서 이뤄졌을 것이며, 따라서 지휘부에는 보고하지 않았을 것으로 판단한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당시 YS의 차남 김현철씨가 국정에 깊숙이 개입했던 정황을 들어, 그의 지시에 따라 미림팀이 재편됐고 그에게 도청 결과가 직보됐을 것이란 관측도 일각에선 나온다. 이런 의혹에 대해 국정원은 “구체적으로 확인되지 않고 있다.”면서도 “사실 여부를 계속 조사하고 있다.”고 여운을 남겼다. ⑤ ‘미림’ 도청테이프 8000개? 국정원은 “일부 언론에서 미림팀에서 8000여개의 테이프를 생산했다고 보도했는데, 사실이 아니다.”고 밝혔다. 하루 1∼2개의 테이프를 생산하고 6개월마다 재분류해 가치가 없다고 생각되는 테이프는 폐기했다는 설명이다. 하지만 테이프 폐기를 담당한 실무자들이 폐기하지 않거나 복사본을 만들어두었을 경우 수량은 8000개가 충분히 넘을 수 있다. ⑥ 274개와 261개 차이는 국정원은 “공씨가 원본 테이프 274개의 복사본을 만드는 과정에서 원본 테이프 중 음질상태가 좋지 않은 13개를 뺀 261개를 복제한 뒤 99년 12월 국정원에 261개의 원본 테이프를 반납했고, 남은 복제 사본 261개와 원본 테이프 13개를 섞어 자택에 보관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김상연기자 carlos@seoul.co.kr
  • 해병대 1000기 드디어 ‘빨간명찰’

    ‘귀신잡는’ 한국 해병 1기가 드디어 999기수의 ‘졸병’을 갖게 됐다. 해병대(사령관 김명균)는 5일 오전 경북 포항 해병대 1사단 연병장에서 해병 1000기 358명에 대한 수료식을 연다고 4일 밝혔다.1000기 탄생은 1949년 해병 부대 창설 이후 56년 만이다. 해병 1000기는 지난 6월27일 입소,6주 동안 인간의 한계에 육박하는 강도 높은 신병 교육훈련 과정을 이수했다. 입소 당시 1000기는 500명이 넘었지만 100명 이상이 극한적인 훈련을 견디지 못하고 탈락했다.특히 훈련을 수료한 1000기 중에는 최근의 병역 기피 세태를 무색케 할 만큼의 애국적 열혈청년들이 끼어 있어 눈길을 끈다. 박제성(19) 해병은 7차례의 도전 끝에 해병의 꿈을 이뤘으며, 허준석(19) 해병은 6대 독자로 부모님의 만류를 뿌리치고 자신과의 도전에 성공했다. 또 이름이 ‘한국인’(20)인 해병은 외할아버지와 삼촌 등 집안에서 6명이 해병대 출신으로 3대째 해병대의 ‘혈통’을 잇게 됐다. 수료식에서는 앞으로 2000기 이상의 해병을 기원하는 의미로 선정한 ‘미래 해병’ 어린이 3명(남 2명, 여 1명)에게 명예 해병증이 수여된다. 이들 ‘미래 해병’은 6∼10세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한 인터넷 공모를 통해 선발됐으며, 특히 해병대 창설 기념일인 4월15일에 태어난 이태웅(6)군은 할아버지가 제23대 해병대사령관인 이갑진 예비역 중장이다. 해병대는 또 수료식에서 서풍웅(62·해병대 부사관후보생 27기)씨와 조종환(72·해병대 병 6기)씨 집안에 ‘해병대 명문가’ 인증패를 수여한다.서씨 집안은 서씨를 포함해 아들 2명, 사촌 등 2대에 걸쳐 총 36명이 해병대에서 군 복무를 마친 예비역 또는 현역이며 조씨는 형제 5명과 손자 2명이 모두 해병대와 인연을 맺었다. 해병대는 49년 진해 덕산 비행장에서 부대 창설과 함께 1기 303명으로 걸음마를 떼었으며,56년 동안 83만여명의 해병을 배출했다.김상연기자 carlos@seoul.co.kr
  • ‘코드인사’ 논란 재점화 가능성

    야당으로부터 ‘코드인사’ 비판을 받자 지난 5월 돌연 사표를 제출했던 이용철(45) 전 국방획득제도개선단장이 이달 1일부터 방위사업청 개청 작업에 재합류한 것으로 4일 확인됐다. ‘국방획득제도 개선과 방위사업청 개청준비단’ 관계자는 “이 전 단장이 1일부터 방위사업청 개청 준비단에 출근해 업무를 돕고 있다.”고 말했다. 방위사업청 개청준비단은 이 전 단장이 이끌었던 국방획득제도개선단의 후신으로 새로 제정된 대통령 훈령을 근거로 이달 1일 국방장관 소속으로 발족, 활동중이다. 이 관계자는 “이 전 단장은 개청준비단 부단장으로 내정된 상태이며, 오는 17일쯤 준비단이 정식 발족하면 임명장을 받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윤광웅 국방장관이 업무 연속성을 이유로 재합류를 설득했다.”면서 “변호사 출신인 이 전 단장은 개청준비단장으로 내정된 김정일 예비역 소장을 부단장으로서 돕게 된다.”고 말했다. 이 전 단장은 청와대 법무비서관을 하다가 지난 1월부터 개선단장을 맡아 국방 조달제도 개선 업무를 지휘해오던중 한나라당 등으로부터 “전문성이 결여된 코드 인사다.”란 비판을 받자 갑자기 사표를 냈었다. 이번엔 단장이 아닌 부단장으로 재합류한 모양새이긴 하나, 그가 내년 1월 출범 예정인 방위사업청의 ‘실세’ 부청장이 될 것이란 관측이 나오고 있는 만큼 다시 코드 인사 논란이 일 가능성도 없지 않다. 개청준비단은 최근 입법예고 기간이 끝난 방위사업청법안을 4∼5일쯤 법제처에 제출하는 것을 시작으로 이달 23일쯤 법안을 국회에 제출, 정기국회에서 처리한다는 계획이다.김상연기자 carlos@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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