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장의 ‘미군부지 평택 대추리’ 르포
‘빼앗긴 들’에 봄은 없었다.
주한미군 이전 부지인 경기도 평택시 팽성읍 대추리. 부지를 접수하려는 국방부와 이주를 거부하는 주민들 사이에 물리적 충돌이 임박했다는 소문이 나돈 3일 오전 11시쯤 그곳은 화사한 봄볕에 어울리지 않게 황량했지만, 예상 밖으로 평온해 보였다.
‘대추리’란 이정표에 진입하면서 너른 농지가 시야에 들어왔지만, 농민들의 모습은 좀처럼 발견할 수 없었다. 대신 ‘미군기지 이전 반대’ 등의 구호가 어지럽게 적힌 깃발과 현수막들이 외지인을 맞았다.
반미성향의 시민단체인 범국민대책위원회(범대위)가 ‘주둔’하고 있는 대추분교 폐교 건물은 이미 단아한 시골학교의 외관을 잃어버리고 전체가 온통 울긋불긋한 깃발과 포스터, 현수막 등으로 어수선했다.
‘범대위 사령부´답게 경계가 삼엄할 것이란 예상을 깨고 건물은 비어 있었다.
한참을 서성거린 뒤에야 범대위 관계자로 보이는 30대 여성이 자전거를 몰고 들어왔다.
▶거의 전쟁 분위기로 알려져서 와봤는데 너무 평온하다. 왜 사람들이 없느냐.
-“들에 일하러 나갔다.”
▶국방부에서 접수를 강행할 것이란 얘기가 있는데….
-“(무덤덤하게)내일쯤 온다고 들었다.”
▶충돌이 일어나면 다치는 사람이 나올 텐데 어떻게 하느냐.
-“죽을 각오가 돼 있다.”
주민들을 찾아 학교건물 옆 언덕 너머 들판으로 발걸음을 옮겼지만 역시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농지는 상당부분 논갈이 작업이 돼 있었다. 다시 대추분교 쪽으로 돌아나오다가 길가에서 얘기를 나누는 60대가량의 여성 주민 두 명을 발견했다. 반가워서 말을 붙였는데, 잔뜩 경계를 하며 대꾸를 피했다. 마침 길 건너편 평상에 한 할머니(송순분·80세)가 걸터앉아 있었다.
▶여기 얼마나 사셨나요.
-“15살 때 옆동네(숙성리)에서 시집와서 쭉 살았지. 그런데 이제 와서 떠나라니, 나는 못해.
▶다른 사람들은 많이 떠났나요.
-“(손가락으로 가리키며)이 집도 떠났고, 저 집도 떠났어. 서운하지.
▶정부에서 보상금을 준다는데 안 떠나세요.
-“주긴 뭘줘. 나중에 다 다시 갚아야 한대.
▶그렇지 않아요. 누가 그러던가요.
-“몰라. 그렇대.”
▶여기에 땅은 갖고 계신가요.
-“없어. 남의 논에서 농사 짓고 살아왔어.”
▶정부에서 곧 들이닥친다는데, 다치면 어쩌시려고….
-“얼른 죽었으면 좋겠어.”
연로한 주민들에게 뭔가 잘못 알려진 사실이 있는 것 같다는 의구심을 갖고 발걸음을 뗐는데 멀리 마을회관 앞에 주민들이 걸터앉아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막 점심을 먹고 나온 모양이었다. 대부분 50∼60대 이상 연배에 얼굴이 검게 그을려 있었고, 흙이 묻은 작업복 차림이었다.
기자가 다가가니 대뜸 소속이 어디냐부터 묻는다. 그러면서 “○○일보,○○일보 놈들은 오면 가만 안 둔다.”고 말한다. 기자가 들으라는 듯 주민들이 경쟁적으로 욕설을 퍼부었다.“국방부 개XX들, 오려면 오라고 해. 다 죽으면 그만이지.”라는 식으로 험악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어떤 주민은 주머니에서 ‘평택, 제2의 광주되나.’라고 적힌 전단지를 꺼내 보여주기도 했다.
당시 마을회관 안팎을 합쳐도 20여명으로 한산했지만, 주민들은 남아 있는 사람이 70여가구라고 했다. 기자가 주민들에게 이것저것 캐묻자 범대위 관계자로 보이는 청년 두어 명이 “자꾸 우리가 미군철수 주장하는 것처럼 연결시키지 말라.”“보상금 때문에 그런다는 식으로 유도질문하지 말라.”고 제지했다.“그러다 봉변당할 수도 있다.”는 으름장도 뒤따랐다. 도리없이 발길을 돌리는데 그제서야 길가에 앳된 얼굴의 전경들이 드문드문 경계를 서고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평택 김상연기자 carlos@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