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는 지금 성형미인이 되고 있다
정부는 지난해 공공디자인의 중요성을 강조한 ‘디자인 코리아 프로젝트’를 발표했고, 지방자치단체 사이에는 건축·거리 등 공공시설에 독특한 디자인을 적용하는 열풍이 불고 있다. 디자인이 도시 경쟁력이라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하지만 고작 하고 있는 일은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킬 랜드마크를 만들어야 한다면서 디자인 비용에만 수억원이 들어가는 해외 건축디자이너를 섭외하고, 거리 환경을 정비한다면서 개성 없이 일률적인 간판과 위험한 조형물을 설치한다. 이런 방법밖에 없는 것일까.
김민수 서울대 디자인학부 교수는 ‘한국 도시디자인 탐사’(그린비 펴냄)에서 전국에서 진행되는 도시 디자인의 문제점을 꼼꼼하게 파헤친다. 서울시가 추진하는 ‘동대문운동장 공원화 사업’을 대표적 사례로 꼽은 김 교수는 “이곳을 어떻게 재생시킬지 지혜를 모으기도 전에 중층화된 시간의 켜가 얽힌 역사·문화적 장소를 철거했다.”고 지적한다. 이곳에 지어질 동대문디자인플라자&파크(DDP)가 서울의 새로운 랜드마크가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은 인정하지만 문제는 ‘과정’. 도시 재생을 위해 정체성을 고민하고, 이를 보존하면서 가꿔나갈 지혜를 모으는 과정을 생략한 것이다.
김 교수는 이같은 도시디자인, 공공디자인 사업을 우려하면서 “저마다 다른 역사와 문화를 지닌 도시는 미래 비전, 도시 정체성과 연결시킬 방법을 고심하고 논의하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이 책은 그 연장선으로, 부산·대구·대전·광주·울산·인천의 6대 광역시에서 진행되는 공공디자인 사업을 조명한다. 각 도시의 과거, 현재, 미래를 차근차근 짚어보며 역사적 맥락과 문화적 정체성을 연결시켜 어떻게 ‘살아 있는 도시 디자인’을 만들어낼 수 있을지 조언했다.
가장 먼저 만난 곳은 부산이다. 지은이가 본 부산은 구릉성 산지와 만입이 심한 해안 지형에 다채로운 삶이 형성된 역동적인 도시이다. 그러나 오늘날 부산은 난개발로 특색 없이 복잡성만 증가했다. 부산탑에서 보이는 모습은 북항 일대부터 107층으로 지어지는 롯데월드 옆 영도다리에 이르기까지 건물, 가로, 철도, 항만 등이 뒤엉켜 있다. 독특한 자갈치시장과 한국전쟁 중 삶의 애환을 담은 동광동은 본래의 모습을 잃어간다. 다른 도시가 흉내낼 수 없는 역사와 고유 문화가 있는데도, 영어 일색의 초고층 건물이 즐비한 도심 재개발을 꿈꾸면서 다른 도시와 유사한 ‘성형미인’이 되고 있다.
광주도 마찬가지이다. 광주의 도시 역사는 소외와 편견, 5·18 민주항쟁에 따른 아픔과 상처로 정의된다. 이러한 역사를 딛고 광주는 ‘첨단산업 문화수도’를 내건 종합발전전략을 추진하고 있다. 지역산업이 발달한 경제도시, 풍성한 문화 중심도시, 인간과 자연이 공존하는 환경도시 등으로 요약된다. 하지만 이런 과정 속에서 광주의 정체성은 없다. 지속가능한 도시문화보다는 과시적인 시청사 건설이나 디자인비엔날레와 같은 비현실적인 사업에 몰두한다. 김 교수는 “5·18 민중항쟁 등 쓰라린 과거를 문화적 자산으로 승화시키지 못하고 억지스러운 포장술에만 몰두하고 있다.”면서 “실존적 역사와 삶, 문화를 ‘자연스럽게’ 융화하는 진솔함이 요구된다.”고 안타까워한다.
또 개발독재 시대, 중공업 노동의 도시로만 비춰진 울산은 공업도시 나름의 도시 정체성이 무엇인지 진지한 고민을 제안한다. 반구대 암각화와 천전리 공룡발자국 같은 선사시대 흔적을 품은 천혜의 자연환경에 기초해 도시 디자인을 총체적으로 펼치라는 말이다.
인천, 대구, 대전에도 김 교수의 조언은 같은 맥락으로 이어진다. 다양한 장소·시간의 켜와 서사가 존재할 때 도시문화는 독특한 매력을 발산하며 풍요로워진다. 겉만 번드르르하고 알맹이가 없는 사람은 시선을 끌지는 몰라도 지속적인 관심을 받기 힘들다. 다른 사람에게 없는 매력이 있고, 속이 꽉 차 있어 자꾸 보고싶은 사람처럼, 도시도 자신만 가진 역사와 정체성을 높인 삶의 터전이 돼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런 지적을 언짢아하기 앞서 곰곰이 곱씹어볼 필요가 있어 보인다.
언급된 자료와 현장성 있는 사진에서 지은이가 얼마나 도시를 샅샅이 탐방했는지 알 수 있게 한다. 여기에 지은이의 행적을 따라가는 듯한 내용과 설명이 곁들여져 설득력을 높인다. 3만 2000원.
최여경기자 kid@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