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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세훈 서울시장 “주민투표 이겨 야당의 보편적 복지 프레임 허물겠다”

    오세훈 서울시장 “주민투표 이겨 야당의 보편적 복지 프레임 허물겠다”

    오세훈 서울시장이 1일 무상급식 주민투표 발의라는 승부수를 던졌다. 정치인 오세훈의 운명이 걸린 도박일 수도 있다. 무상급식을 정치쟁점화하고 있다는 야권의 비난도, 집중호우로 적지 않은 피해가 벌어진 와중에 주민투표를 해야 하느냐는 우려도, 그의 결심을 막지 못했다. 수해현장을 막 돌고 서울시 청사로 돌아온 그는 푸른색 트레이닝복 차림이었다. “밤새 고심했다.”고 했다. 그러면서 “무상급식 주민투표는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한 국가적 어젠다가 무엇이어야 하는지를 묻는 가치를 지닌 것으로, 결코 포기할 수 없었다.”고 힘줘 말했다. 이날 주민투표 발의를 마친 오 시장은 오후 서울신문과 인터뷰를 갖고 “주민투표에서 반드시 승리해 야당의 보편적 복지 프레임에서 벗어나겠다.”고 밝혔다. 인터뷰는 진경호 정치부장과의 대담으로 서울시청 시장실에서 1시간 동안 진행됐다. 다음은 일문일답. →수해 정국에 무상급식 주민투표를 꼭 발의해야 하는가에 대한 지적이 많다. -물론 침수피해와 이에 대한 사후구제 조치가 최우선으로 중요한 게 사실이다. 그러나 주민투표는 서울의 미래뿐 아니라 대한민국의 미래를 가름하는 분수령이 될 거라 생각한다. 내년 두 번의 큰 선거를 앞두고 여야 구분없이 민심 얻기 경쟁에 들어가 있는 상황이다. 무상급식에 대해 진보진영은 아이들 밥 먹이는 것에 대한 이슈로 자꾸 의미를 축소하지만 실제로 지난해 6·2 지방선거의 핵심 이슈였다. 진보진영에서 이른바 보편적 복지라고 하는 새로운 형태의 복지를 화두로 론칭 역할을 했던 이슈이고, 그렇게 하면서 내년 선거를 보편적 복지로 치른다는 입장이다. 그런데 여기에 또 한나라당이 흔들리는 모습이 보인다. 선거를 앞둔 정치권은 브레이크 역할을 못 한다. 따라서 시민과 유권자의 힘으로 할 수 있도록 하는 게 주민투표다. 유권자의 판단이 나오게 되면 그것이 바람직하지 않은 방향으로 가는 과잉복지를 제어할 수 있는 수단이 될 것이기 때문에 포기할 수 없는 것이다. →김문수 경기지사나 한나라당 박근혜 전 대표 등이 무상급식은 국가적 차원이 아닌 지방자치단체가 해야 할 일이라고 했는데. -주민투표는 전혀 의도했던 바가 아니었다. 민선 5기를 시작하면서 6개월 동안 태스크포스(TF)를 만들어 고민했고, 민주당에 전수조사나 여론조사라도 해서 무상급식 여부를 가리자고 했다. 그러나 다 거절당했다. →주민투표에 대해 한나라당에서도 부담이 적지 않은 듯하다. -당에서는 지면 말할 것도 없고 이겨도 부담이라고 하면서 주민투표를 반대했다. 하지만 이기면 민주당의 프레임에 갇혀 있던 선거 프레임이 풀리는 것이다. 민주당이 설정한 보편적 프레임에서 해체되면 내년 총선과 대선 때 대한민국 미래를 위해 설정할 국가적 어젠다가 무엇인가, 지금처럼 보편적 복지냐, 아니면 어렵고 힘든 부분을 도와주고 여력이 있으면 성장에 투자해야 하느냐의 프레임으로 바뀌는 것이다. 선거를 앞둔 국회의원이나 당은 당장 표가 급하기 때문에 절대 이런 생각을 못 한다. 지금 당에서 정통 보수학자로 불리는 분도 전혀 과거의 스탠스와 어울리지 않는 말을 하고 있지 않나. 표 앞에 장사 없다. 일단 다수 의석 차지, 대선 승리가 중요하다. 그러나 나처럼 내년 선거에서 한발 떨어져서 객관적으로 볼 수 있는 입장에서는 프레임 자체를 허무는 작업이 더 중요하다. →주민투표는 승산이 있다고 보나. -승산이 있다고 해서 시작한 건 아니다. 여론조사만 보면 주민투표를 해야 한다는 의견이 70%대로 유리해 보인다. 서울시 안과 민주당 시의회 안에 대해서도 대체로 6.5대3.5로 나뉜다. 그러나 실제 투표장에 나오느냐의 문제가 있어 여론조사와는 다르다. 다만 지난해 지방선거에서는 유권자들이 뭔가에 홀린 상태에서 투표에 임했다. 선거 직전에 무상급식 같은 이슈를 내놓으면 속수무책이다. 그런데 선거가 끝난 뒤에는 어떻게 됐나. 시민들이 무상급식에 대한 인식이 점차 바뀌게 됐다. 여론조사 결과들이 말해준다. 민주당이나 진보진영이 노심초사하면서 주민투표를 하지 못하게 하려고 우왕좌왕하고 있지 않나. 1년 동안 꾸준히 논쟁을 하는 사이 시민의식이 많이 성숙했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금 수해정국까지 이용해 나를 비판하는 거다. →어떤 점에서 이용한다고 보나. -폭우 피해가 있은 바로 다음 날 청문회를 하자고 했다. 어느 나라나 국가적 재난이 닥치면 여야가 마음을 합해서 위기를 극복한 뒤에 책임소재를 따지는 것이다. 더구나 민주당은 집권을 해본 당인데 하루 만에 청문회를 이야기했다. 가장 섭섭한 것은 수방예산을 10분의1로 줄였다고 공세를 펼치는 것이다. 민주당 김진표 원내대표는 재경부 장관을 해서 예산을 볼 줄 안다. 수해방지예산은 크게 일반예산, 특별예산, 재난회계기금으로 구분된다. 일반회계가 줄었다고 시에서 수방예산을 줄였다고 주장하는데 과거에는 일반회계를 많이 썼지만 이것을 쌓아둔 기금으로 활용한 것뿐이다. 그것도 야당이 집권하던 시절 중앙정부에서 결정한 거다. →‘오세이돈’이라는 말도 있다. -그런 거야 인터넷상에서 재기발랄하게 할 수도 있다. 그런데 일반인이 아닌 야당에서 조장한다는 게 문제다. →주민투표에서 성과를 거둔다면 대선 출마의 뜻을 밝힐 것인가. -그게 바로 민주당이 바라는 프레임이다. 주민투표에 대해서 자꾸 오세훈 개인의 정치행위로 찍고 싶어 한다. 우리 입장에서 보면 주민투표를 폄하하는 것으로, 절대 동의할 수 없다. 나는 처음부터 타협을 하고 싶어서 야당 쪽에 유리한 방법도 제안했었는데 다 거절하고는 결과적으로 내가 이길 확률이 생기니까 우왕좌왕하고 있다. 그러면서 오세훈 개인 행보에 도움이 될 것 같으니까 꽃놀이패라고 얘기하는 데 이는 내가 제일 경계하고 인정하고 싶지 않은 분석이다. 내 진심은 그게 아니다. →주민투표에서 부정적 결과가 나올 경우 시장직 수행이 어려운 것 아닌가. -원래 어려웠다. 4분의3이 민주당인 의회와 싸운 것 자체가 원래 어려웠다. 다만 단계적 부분 무상급식이 다수의 표를 얻게 되면 아마 의회도 지금까지 나를 상대로 해온 스탠스를 유지하기 어려울 것이다. 지난해 6개월 만에 시의회에 갔을 때에는 4분의3에 도취된 시의회가 “무릎 꿇어.” 하는 분위기였다. 그런데 너무 코너로 몰아붙이니 상상 밖의 행동도 하는구나 하는 점을 느낀 것 같다. 제 느낌에는 시의회도 상당한 변화가 있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서는 투표 참여를 독려하는 것도 어렵다고 유권해석했다. -재고를 요청하겠다. 찬반 투표면 투표 참여를 독려하는 게 어느 한쪽을 지지하는 것인데 이번 투표는 선택이다. 정치 선택이 아니라 정책 선택이다. →당의 지원이 필요한가. -사실 당 차원으로서는 입장을 정리하는 것까지가 지원이다. 중앙당이 아니라 시당 차원에서 지원하면 충분하다. →수해 방지 대책은 어떻게 구상하고 있나. -큰 틀에서 서울시 수방시스템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하수관거 통수면적을 넓히는 것이다. 과거처럼 많은 비가 고루 내리는 패턴이면 지금까지 서울시 건설 하수관거가 맞는 패턴인데 요즘은 게릴라성·국지성 호우의 경우 특정한 곳에 집중돼 시간당 40~50㎜가 내리면 견딜 수 없다. 하나 손대기 시작하면 서울시 전체를 파헤쳐야 돼서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대안으로 부분적으로 잘못 시공된 것을 집중적으로 찾아내 수리하겠다. 또 많은 양의 비를 임시로 머금을 수 있는 유수지 시설을 설치해야 한다. 15조원 정도면 된다. 서울시 예산이 1년에 20조원인데 10년으로 나눠 증설할 수 있을 것이다. 현재 1년에 3000억원 정도인 것을 1조 5000억원 정도로 획기적으로 늘리는 건데 국민적 공감대가 있으면 가능하다. →박근혜 대세론은 어떻게 보나. -분명히 당내 대세론이란 게 있는 건 사실 아닌가. 그 이상은 나도 모르겠다. 얼마 전 자유선진당 이회창 전 대표가 “나 때보다 (박 전 대표의 대세론이) 더 센 것 같다.”고 말했다던데 당사자가 그렇게 말하는 것을 보니 맞는 것 같다. →야권 주자에 대해서는. -정말 잘 모르겠다. 요즘 문재인 변호사 이야기가 많이 나오는데 그런 식으로 주자가 만들어지나. 유시민 견제 차원일 수도 있고…. 야당 내에서는 손학규 대표에게 너무 쉽게 (대권을) 주기 싫은 것 아니겠나. 아직 갈 길이 멀다. 정리 조현석·허백윤기자 baikyoon@seoul.co.kr
  • 타고르 고향서 만난 시간의 향기

    인생은 떠날 때 아름답다고 했다. 삶이 지치면, 연애하던 연인과 헤어지면 어디론가 떠나고 싶어진다. 거기에서 굳이 ‘뭔가 찾을 일’도 없겠지만 마음의 무게를 가벼이 하려는 몸부림일 것이다. 2009년 9월 시인 곽재구는 순천대학교 문예창작과에서의 시 강의를 멈추고 타고르의 고향인 산티니케탄으로 떠난다. 여기에서 540일 동안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고 사진을 찍고 여행을 한다. 왜 그랬을까. 1981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사평역에서’의 당선을 통해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시인 곽재구는 ‘서울 세노야’ ‘참 맑은 물살’ ‘꽃보다 먼저 마음을 주었네’ ‘포구기행’ 등으로 독자들과 친하게 가까이했다. 그가 9년 만에 에세이집 ‘우리가 사랑한 1초들’(문학동네 펴냄)을 펴냈다. 여기에서 그는 “여행의 시작은 타고르의 시편을 찾아가는 것이었다. 벵골 사람들 속에 함께 살면서 타고르의 모국어의 벵골어를 익혀 타고르의 시편들을 한국어로 직접 번역하고 싶었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타고르의 꿈과 이상이 고스란히 남은 산티니케탄에서 벵골 사람들과 살아가는 것은 기쁨 이상이었다.”고 덧붙인다. ‘우리가 사랑한 1초들’은 산티니케탄에서 만난 시간의 향기를 노래하고 있다. 아울러 책의 출간에 대한 아무런 의식도 없이 ‘필연적으로 쓰여진’ 글들을 묶었다고 시인은 토로한다. 그저 ‘오래 묵힌 마음의 여행’이라는 것이다. 책의 첫 대목부터 인상 깊다. ‘하루 24시간 8만 6400초를 기억하고 싶었던 시간들이 있었습니다. 스무 살 때였지요. 내게 다가오는 8만 6400초의 모든 1초들을 다 기억하고 싶었습니다. 어떤 1초는 무슨 빛깔의 몸을 지녔는지, 어떤 1초는 무슨 음악을 좋아하는지, 어떤 1초는 지금 누구와 사랑에 빠졌는지, 어떤 1초는 왜 깊은 한숨을 쉬는지 다 느끼고 기억하고 싶었지요. 그런 다음에 좋은 시를 쓸 수 있으리라 생각했습니다.’ 시인으로서의 인생 고백 글도 눈길을 끈다. 1970년대 중반이었고 삶의 현실이 척박했고, 정치적 피폐함이 극에 이른 시간들 속에서 읽는 타고르의 시편들은 솜사탕 같았고 작은 천국이라고 말한다. 시인이 묘사하는 산티니케탄은 우리나라의 1960년대 농촌과 비슷한 풍경이다. 초가집들, 뙤약볕 아래 논에서 일하는 농부들, 물을 긷는 아낙네, 흙먼지 이는 시골길 위로 자전거 타고 가는 아가씨 등등. 시인은 이를 ‘별’이라고 표현한다. 하여 그 별과의 인연을 씨날로 흥미진진하게 엮어 나간다. 바람과 나무와 꽃향기가 폴폴하다. 1만 3800원. 김문 편집위원 km@seoul.co.kr
  • [김문이 만난사람] 국내 첫 상설 취미박물관 ‘하비인월드’ 엄윤성 대표

    [김문이 만난사람] 국내 첫 상설 취미박물관 ‘하비인월드’ 엄윤성 대표

    야구장에서 시원스럽게 날아가는 홈런 공을 보고 무슨 생각을 할까. ‘좋아하고 행복한 일을 해야지.’라고 할 수도 있겠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에세이집 ‘작지만 확실한 행복’이란 제목이 문득 생각난다. 소소한 일상이지만 행복하게 살아가는 방법과 삶을 미학화해서 그린 이야기들을 모은 책이다. 하루키는 맥주와 두부를 즐겨 먹고, 개미를 무서워하고. 이사하는 걸 좋아하고, 정든 고양이와의 이별을 슬퍼한다. 우리 인간은 누구나 작지만 확실히 행복할 수 있는 ‘거리’가 많다. 그렇다면 당신의 취미는 무엇입니까. 미팅을 하거나 새로운 사람과 대화를 하다 보면 이런 질문을 받게 된다. 확실하게 대답을 못할 수도 있다. 미치도록 좋아하는 것이 없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잠시 생각하고는 다들 대답하게 된다. ‘네 이런 거요.’라고. 사람은 일생을 살아가면서 좋아하고 즐기는 취미 한두 가지씩은 가지고 있게 마련이다. 독서, 장난감 만들기, 만화보기, 영화보기, 인형만들기, 종이접기, 휴대전화로 문자질하기, TV보기 등 아주 다양한 저마다의 취미를 갖고 있다. 좋아하는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작지만 확실한 행복이다. 이러한 취미를 한군데 모아 보면 어떨까. 국내 최초의 상설 취미박물관인 ‘하비인월드’가 지난 22일 경기도 과천 서울대공원에서 정식 개장했다. 취미박물관이라는 말 자체가 눈길을 끌었지만 지하 1층 지상 3층 연면적 7200㎡(2200여평)라는 국내 최대 규모의 박물관이라는 점에서 주목을 받고 있다. 이곳에는 개인과 동호회에서 제공된 2000여점의 취미작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프라모델(Plastic Model·조립식 장난감), 디오라마(Diorama·어떤 배경위에 모형을 설치해 놓은 것), 밀리터리(Military)모형, 미니어처(Miniature), 캐릭터(Character)인형, 테디베어(Teddy Bear·손바느질로 만든 곰인형), 코스프레(Costume Play·만화 캐릭터 흉내내는 것), 전통공예 등 가지가지다. 특히 국내 최초로 국제경기를 치를 수 있는 RC(Remote Control Car)트랙을 설치했다. 여기에서 연 9회 정도 국내외 대회를 열 예정이어서 이 또한 눈길을 모은다. 지난 25일 오후 취미박물관을 직접 가 봤다. 1층 전시관에는 지금 30~40대가 유년시절 한번은 만들어 본 추억이 서린 건담(Gundam) 등 로봇들과 피겨(figure), 디오라마, 미니어처 등이 전시돼 있다. 특히 5m나 되는 국내 최대 크기의 항공모함과 40여대의 전투기(실제의 71분의1 크기), 철도 모형 등이 관람객들의 눈길을 사로잡는다. 규방공예관에는 조선시대의 생활용품이 전시돼 있으며 닥종이인형관에는 여러 모습의 인형들이 손님을 맞이한다. 2층 인형관에는 유니세프 아우인형, 테디베어 스타이프를 만날 수 있고, 관람객이 직접 체험할 수 있는 공간도 마련돼 있다. 3층에는 각종 폐품과 쓰레기 등으로 만든 정크(junk) 아트 작품들이 전시돼 있으며 조립식 키트로 불리는 플라스틱 제품들이 진열돼 있다. 폐품예술가로 잘 알려진 기병선씨의 작품 수십점도 눈길을 끌었다. 탱크와 전차, 비행기 등 전쟁 스토리로 엮은 40여명의 동호인 작품은 만나 보기 힘든 작품이다. 박물관 대표 엄윤성(46)씨를 만났다. 한국과학기술원(KAIST) 경영공학박사 출신으로 국립과학관 ‘동물의 신비’ 전시를 기획해 화제가 된 인물이다. 그는 “이곳은 취미라는 동질성 아래 남녀노소가 즐길 수 있는 공간”이라며 “부정적이든 아니든 취미활동을 양지로 끌어올려 공감대를 형성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박물관을 열게 된 동기를 얘기했다. 그러면서 취미라는 공통분모를 즐기는 동호인들에게는 소통의 장이며 일반인들에게는 색다른 취미문화를 즐길 수 있는 체험의 장소라고 덧붙였다. “어린 아이에서부터 어른까지 가족 모두가 좋아하는 취미들을 한 공간에서 직접 보고 체험하면서 부담없이 즐길 수 있는 공간으로 내국인뿐만 아니라 외국 관광객들이 많이 찾는 대표적인 전시관으로 자리매김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이 박물관은 벌써 외국에도 입소문이 났다. 덕분에 개장식 직후 일본의 유명한 모형작가인 시게이토와 노리오 다케무라가 1945년 독일에서 사용했던 탱크와 아라비아 로렌스에 등장했던 영국군 트럭 모형의 작품을 선뜻 기증하기도 했다. 2층 전시관에 가면 볼 수 있다. 엄 대표에게 언제부터 이런 생각을 하게 됐는지 물었다. “3년 전이었습니다.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줄 수 있는 공간이 무엇인지 골똘히 생각했지요. 취미에 대해서는 누구나 추억을 가지고 있잖아요. 하지만 사는 게 바빠서 취미를 잊고 있습니다. 그런 기억을 되살리도록 하고 싶은 생각에서 출발했습니다.” 엄 대표는 원래 ‘보고 수집하는 것’이 취미였다. 아울러 장난감이나 정크작품에도 관심이 많아 인터넷을 통해 취미 동호인들과 꾸준히 접촉을 했다. 한발 더 나아가 취미박물관을 만들 터이니 작품을 제공해 달라고 일일이 부탁을 했다. ‘한국구체관절인형협회’에도 여러번 찾아가 이 같은 뜻을 전했다. 처음에는 동의하지 않았지만 엄 대표의 진지한 설득에 동호인들은 함께 뜻을 모았고 결국 박물관을 열게 됐다. 사기꾼이 아니냐는 비난도 감수하면서 얻은 결과였다. “취미 없는 사람은 없잖아요. 제가 어릴 적에는 우표수집을 했습니다. 사람들의 취미는 매우 다양합니다. 그런 추억을 느끼게 하고 다시 한번 체험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하면 많은 사람들이 즐거워하거든요. 또 취미로 만든 작품도 하나의 예술입니다. 그런 것들을 한데 모아 전시를 하면 작지만 많은 행복을 전달해 주잖아요.” 그러면서 박물관을 열게 된 뜻을 다시 강조한다. “세상에는 무궁무진한 취미들이 존재합니다. 영화, 스포츠, 회화, 조각 등 예술로 불리는 것들도 결국 취미에서 시작된 것이지요. 취미활동의 결과물들이 굉장히 높은 수준에 도달해 있는 경우가 많은데 우리 사회에서는 음지에 묻혀 있습니다. 프라모델 같은 경우 대부분 집에서는 싫어합니다. 밖에서도 ‘오타쿠’라며 부정적인 인식이 강하지요. 주눅이 들어 오프라인으로 나오지 못하고 온라인으로 활동을 하면서 1년에 하루 정도 장소를 빌려 동호인들끼리 작품을 공유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상설 전시장을 만들어 취미들을 양지로 끌어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지요. 박물관 수준의 장소에 자신의 결과물이 전시돼 있다면 자랑거리가 되고 떳떳하게 활동할 수 있고 일반인들도 새로운 문화를 즐길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엄 대표는 2003년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서 공룡전시회를 열었던 후배와 친구들을 만나 “앞으로 즐거움을 줄 수 있는 전시를 해 보자.”고 제의했고 지난해 11월 함께 ‘동물의 신비’ 전시를 하게 됐다. ‘인체의 속’도 중요하지만 ‘동물의 속’을 제대로 보여 주자는 취지에서 출발했다. “종류는 무궁무진합니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취미들이 전시대상이지요. 보여 줄 수 있는 것들은 뭐든 다 된다고 생각하면 됩니다. 콘텐츠를 바꿔가며 항상 취미박물관에 가면 새로운 것들이 있다는 생각이 들도록 전시물을 꾸밀 계획입니다. 오늘날 우리 사회에는 흉흉한 뉴스가 많습니다. 특히 청소년들에게는 많은 정보를 주고 있지만 컨트롤을 하지 못하고 있지요. 아이들한테는 꿈을 주고 어른한테는 추억을 제공해 주면 우리 사회가 더 밝아지지 않을까요. 어렵고 힘든 일이 있으면 우리 박물관으로 오세요. 취미활동을 하는 것 자체가 스트레스를 푸는 것입니다.” 박물관의 위치가 장점이라는 것도 강조한다. 서울대공원에 놀러왔다가 한번쯤 들러 과거를 회상하면 나쁠 일이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가족끼리 사진을 찍어 유화로 만드는 체험공간도 마련했다. “최초의 상설전시장이기도 하지만 작품을 전시하고 소통할 수 있는 공간을 동호인들은 원해 왔습니다. 더 넓게 보면 관광자원, 관련 산업 육성이라는 의미도 있지요. 일본에서는 시즈오카 하비쇼를 하는데 세계 각국에서 많은 관람객이 옵니다. 우리나라의 경쟁력이 결코 일본에 뒤지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꿈과 희망을 선사하는 박물관으로 만들어 나가겠습니다.” 글 편집위원 km@seoul.co.kr 사진 류재림기자 jawoolim@seoul.co.kr 엄윤성 대표는 1965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1984년 오산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경희대 전자계산공학과를 나와 연세대 산업대학원에서 전자계산을 전공했다. 1999년 한국과학기술원(KAIST)에서 경영공학 박사학위를 딴 뒤 한국과학기술원 테크노경영대학원 위촉 연구원(2000), 경기대학교 경영학부 겸임교수(2001), 한라대학교 경영학부 강의전담 교수(2002) 등을 거쳤다. 2003년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서 공룡전시회를 가진 후배·친구들과 함께 국립과학관 ‘동물의 신비’ 전시 총괄을 맡았다. 이어 지난 22일 경기도 과천에 국내 최초의 상설 취미박물관을 개관했다. 주요 연구실적으로는 ‘한국적 그룹의사결정 지원시스템·그룹웨어 개발에 관한 연구’(한국과학재단), ‘단위 그룹의사결정지원시스템 개발에 관한 연구’(삼성물산) 등을 비롯 ‘분산 데이터베이스의 설계 및 구현’ ‘의사결정 기술, 컴퓨터 자원, DB 등을 통합 설계하여 경영 제반 회의 등을 지원하기 위한 시스템의 개발’ 등이 있다. 건국대, 단국대, 상명대, 국민대, 성균관대, 연세대, 외국어대, 부천대 등 10여개 대학에서 강의했다.
  • 욕망에 솔직·자유로운 30대 여성의 편력기

    소설의 첫 대목부터 파격적이다. ‘맛있는 섹스는 있어도 맛있는 사랑은 없다. 사랑이 허기라면, 섹스는 일종의 음식이다.’ 이상문학상, 동인문학상 등을 수상한 소설가 권지예(51)의 네번째 장편소설 ‘유혹’(1~3권)이 민음사에서 출간됐다. 작가는 소설에서 독특한 여성 캐릭터를 만들어냈다. 확고한 사회적 지위와 기반 아래, 경제적으로 남성에게 예속돼 있지 않은 주인공 ‘오유미’는 과감하고 매우 도발적인 30대 후반의 여성이다. 독립적인 사고를 가지면서 욕망에 솔직하고 자유롭고 거침없이 성적 쾌감을 즐긴다. 소설은 오유미의 사랑과 야망, 복수 등을 추리기법으로 긴장감 있게 그리면서 남성 편력기를 흥미롭게 다뤄 눈길을 끈다. 읽노라면 얼핏 그렇고 그런 통속 소설인 것 같지만 박진감과 흡인력 넘치는 서사, 속도감 있는 전개, 풍부한 상징과 은유, 매혹과 정염의 이미지 등으로 독자들을 사로잡는다. 유혹하지 않으면 유혹당하는 오늘날의 자본주의 경쟁사회에서 살아가는 현대인들의 성과 사랑을 통해 우리 사회의 욕망 지형도를 탐구하는 소설이다. 여성의 성적 판타지와 남성의 로망을 동시에 엿볼 수 있다. 권지예는 작가의 말에서 “짐승은 발정을 하지만 인간은 유혹한다. 솔직히 어디로 튈지 모르는 오유미의 행보는 나도 궁금하다. 다만 오유미가 욕망의 종결자, 유혹의 종결자가 되었으면 싶다는 바람뿐”이라고 하면서 “지금까지 썼던 어떤 소설보다도 파격적이다. 어떤 비난이나 찬사도 신경쓰지 않겠다는 각오로, 그동안 내가 천착해온 주제인 인간의 욕망을 이 소설에서 끝까지 밀어붙였다.”라고 출간 소감을 피력한다. 한 일간지에 2년째 연재 중인 이 소설은 내년 2월 완간(4~5권)할 예정이다. 작가는 경주 출신으로 이화여대에서 영문학을 전공했다. 프랑스 파리7대학 동양학부에서 ‘한국 근대문학에 나타난 여주인공들의 섹슈얼리티를 통한 여성상’을 주제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2002년 ‘뱀장어 스튜’로 이상문학상을, 2005년 ‘꽃게무덤’으로 동인문학상을 수상했으며 그동안 장편소설 ‘4월의 물고기’ ‘붉은 비단보’ ‘아름다운 지옥’ 등을 펴냈다. 김문 편집위원 km@seoul.co.kr
  • [김문이 만난사람] 세계적 옻칠예술가 전용복

    [김문이 만난사람] 세계적 옻칠예술가 전용복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모나리자’를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다. 르네상스 시대에 제작된 최고의 명작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500여년 지난 지금은 어떤 모습일까. 도료나 아교 등으로 덧칠을 해 놓아 원래의 ‘모나리자 미소’를 잃은 지 오래다. 만약 무덤에서 다빈치가 일어나 그 모습을 본다면 어떤 생각을 할까. 아마도 장탄식을 하겠다. 좀 더 오래가는 물감으로 그림을 그리지 못한 것을 놓고 후회막급할 것이다. 여기서 잠깐, 고민하는 다빈치에게 우리 전통의 옻칠을 얘기해 주자. 1500년 전의 고구려 벽화나 700여년 전의 팔만대장경 글씨가 지금까지 온전하게 남아 있는 것을 예로 들면서 우리 조상의 옻칠에서 그 비결을 찾을 수 있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요즘 같은 첨단 과학의 시대에 그저 산에 나는 옻을 사용했다는 조상들의 지혜가 얼마나 대단한지를 이참에 제대로 보여 주고 싶다. 그만큼 옻칠은 나무의 결이나 그림을 고스란히 살려 주는 동시에 장구한 세월을 견디는 생명력을 여실히 입증하고 있다. 그렇다면 옻이란 무엇인가. 옻을 잘 모르는 사람도 ‘옻오리탕’ ‘옻닭도리탕’ 정도는 들어 봤을 것이다. 또 ‘옻이 올랐다’는 얘기도 있다. 좀 더 전문적으로 알기 위해 세계적으로 명성을 얻은 옻칠 예술가 전용복(58)씨를 만나러 간다. 인터뷰에 앞서 유명한 일화를 떠올렸다. 지난해 7월이었다. 문화재청이 주최한 ‘전통공예의 산업화·세계화 심포지엄’에서 전씨는 직접 옻칠한 손목시계를 선보였다. 옻을 입힌 제기와 상, 장롱 등은 수없이 보았으나 손목시계는 처음이라는 점에서 확 주목을 끌었다. 그가 지금까지 만든 손목시계는 8억원과 3억원짜리 1개씩, 그리고 5000만원짜리 30여개. 4년 전 세이코 시계 회사의 주문을 받아서 시계 금박에 옻칠을 해 영원 불멸의 작품을 만들었던 것. 또 있다. 1991년 11월 13일. 도쿄 시내의 국보급 연회장인 메구로가조엔(1920년대 일본의 고급 문화를 담은 호텔, 연회장, 예식장으로 쓰인 복합 건물)이 오픈되는 날이다. 거기엔 이례적으로 태극기가 휘날렸다. 전씨가 3000여명에 달하는 일본 옻칠 장인들과의 경쟁에서 이겨 3년 만에 완벽하게 복원해 낸 공로를 인정받았기 때문이다. 60년 전 조선의 장인들이 나라 잃은 울분을 삭이며, 피와 땀을 흘렸던 과거의 한을 떠올리며 대역사를 재현해 내 일본 사람들의 심금을 울렸던 것이다. 미술관 엘리베이터나 사계절 산수화 등의 창작품에는 전씨의 이름 세 글자가 선명하게 새겨져 있음은 물론이었다. 서울 화양리 네거리에 위치한 ‘전용복 옻칠예 아카데미’. 자리에 앉으면서 “옻이란 무엇입니까.”라고 물었더니 “거봐요, 기자라는 사람이 저러니 참으로….”라고 야단부터 맞았다. “옻은 만년의 신비를 갖고 있습니다. 세 가지로 말할 수 있지요. 첫째, 옻칠은 지구상에서 그 어떤 물질보다 오래 생명력을 유지합니다. 둘째, 옻칠은 나무에서 추출한 수액이므로 자연 친화적이며 인체에 유익한 물질을 생성합니다. 셋째, 옻칠은 아름다움을 가장 오래도록 간직하게 해 줍니다. 옻칠만이 가지고 있는 신비스러움은 역사적 사실들을 통해 생생하게 전해지고 있지요. 그런데 안타까운 것은 그런 수액을 제공하는 옻나무들이 점점 없어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는 지난 4월 중국 문화부 중외문화교류중심 초청으로 베이징에서 ‘전용복 칠화전’을 가졌다. 이때 이어령 전 문화부장관은 축사를 통해 “신해혁명 100주년을 맞는 중국 땅에서 서양인들이 선망해 오던 칠공예를 아시아 문화 발신의 기점을 만든 전용복 선생에게 큰 기대와 함께 경의를 표한다. 한국에서 일본으로, 일본에서 중국으로 걸어간 거대한 발자국이 드디어 대륙 땅에 찍히는 순간 옻칠은 다채롭고 찬란한 아침 햇살로 변하게 될 것”이라고 언급했다. 일본에서 24년을 살면서 세계적 명성을 얻은 그가 당당히 중국 문화부 초청으로 전시회를 가진 무대였으니 국내외에서 적지 않은 관심이 쏠렸다. 중국 문화부 관계자 뤼진은 “이번 전시는 만년의 빛이라는 테마로 중국에서는 처음으로 열리는 전시회”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중국 전시를 얘기하는 전씨에게 요즘 무슨 일로 바쁜지 물었다. “서양 가구에 옻을 입히는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바로크 양식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하고 있지요. 다시 말하면 전통적인 옻칠을 갖고 우리의 생활공간에 어떻게 아름답게 접목할까 하는 것입니다. 4년 전부터 연구해온 것을 구체화하고 있지요. 한국의 전통 옻이 친환경적 소재라는 것을 전 세계에 알리는 것입니다. 전씨는 또 “옻의 활용은 무궁무진하다. 옻을 이용한 작품 개발 등 순수 예술도 있지만 이제는 일반 서민들도 옻에 관심을 가질 수 있도록 대중화해야 한다.”면서 국내뿐만 아니라 세계화에도 힘써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중요한 얘기를 하나 꺼낸다. 다름 아닌 오는 11월 세계 유네스코 이리나 보코바 사무총장이 방한할 때 세계 문화재 보존을 위한 전 세계 투어 전시회 협약을 맺기로 했다는 것이다. 유네스코 본부가 있는 프랑스를 시작으로 유럽 일대와 미국 남미 등에서 옻예술 전시회를 갖는 일이라는 설명이다. 이는 우리의 전통 옻예술이 서양 세계를 향해 떠나는 최초의 길이라고 말했다. 그가 일본에서 귀국한 지 1년밖에 안 됐다. 소식을 듣고 한 수 배우려는 사람들이 많이 찾아왔다. 이들 중 몇몇이 선발돼 ‘옻칠예 아카데미’에서 작품 활동을 같이 하고 있다. 수제자로 할 만한 사람은 15명. 전씨는 현재 세 가지 일에 몰두하고 있다. 첫 번째는 창작 전시 작품, 두 번째는 주거공간에 쓰이는 생활작품, 그 다음에는 후진 양성을 위한 일이다. 그는 얼마 전 부산 영산대 석좌교수로 초빙을 받았고 올가을 학기부터는 이화여대에서 특강을 하기로 예정돼 있다. 최근에는 가구 회사인 바로크C&F와 협약을 맺어 서양 가구에 우리의 전통 옻을 입히는 작업에 주력하고 있다. “완성된 물건이 1만년 가는 것은 옻밖에 없습니다. 살균력이 좋고 전자파도 잘 흡수합니다. 이러한 장점을 활용해 산업 부문에도 적용할 때가 됐다고 생각합니다. 아울러 예술적 접목도 다양할 때가 됐지요. 젊은 작가와 젊은 디자이너, 그리고 우리 공예를 지켜온 사람과 결합해 좋은 작품을 만들어 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는 지금까지 여러 가지 실험작품을 내놓았다. 앞서 얘기한 옻칠한 금속시계뿐만 아니라 비올라·첼로 등 악기에도 옻칠을 했던 것. 특히 피아노의 경우 음향판에 옻칠을 했더니 소리가 무척 아름답다는 찬사를 받기도 했다. 그렇다면 완성된 물건에 옻은 어떻게 칠할까. 오묘한 색깔은 어떻게 빚어낼까. “옻나무 수액을 처음 채취했을 때에는 막걸리 색깔과 비슷합니다. 이에 열을 가하면 맥주병 색깔로 변하지요. 이런 정제 과정에서 돌가루를 적당히 섞어 가면서 여러 가지 색깔을 만들어 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옻을 음용하다 보니 옻나무가 점점 줄어들고 있어 안타깝습니다. 요즘에는 중국에서 수입해야 할 형편입니다. 일본의 경우 우리나라보다 훨신 많은 1년에 70t 정도 사용하고 있지요.” 그는 6·25전쟁이 끝날 무렵 부산에서 태어났다. 가난한 집안 살림으로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길거리에서 과일과 국화빵 장사를 했다. 연탄 배달도 마다하지 않았다. 그러면서 관심을 두었던 것은 동네 어귀마다 자리한 나전칠기 가구나 장롱을 만드는 곳이었다. 화가가 되는 꿈도 꾸었다. 소나무 판자에 분필로 그림을 그리는 것이 유일한 즐거움이었다. 또 손재주가 좋아 목재소에서 헌 나무토막을 주워 와 토끼집이며 개집을 직접 만들어 이웃에게 선물하기도 했다. 그런 생활을 견디며 청년이 돼 해병대에 입대했고 전역한 뒤 목재 회사에 입사했다. 1978년 당시 월급은 57만원. 솜씨가 워낙 좋아 회사로부터 특별 배려를 받았다. 열정과 패기까지 있어 젊은 나이에 기획실장과 디자인 회사 재정까지 맡았다. 잘나가던 그에게 어느 날 ‘전용복식 가구’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 찾아왔다. 회사의 만류를 뿌리치고 경기 마석에 예린공예사를 차렸다. 고기비늘처럼 반짝이는 공예품을 만들어 내려는 뜻에서 예린(藝鱗)이라고 했던 것. 이후 그의 작품은 서울에 있는 고급 가구상들에게 인기를 끌기 시작했다. 그러나 고향인 부산으로 옮기면서 가구공방 운영이 어려워지기 시작했다. 활로를 모색하던 중 도자기 위에 옻칠을 한 ‘와태칠 기법’을 생각해 냈다. 독학으로 1200년 전의 기술을 익히면서 옻칠의 매력에 흠뻑 빠졌다. 가구와는 점점 멀어졌고 순수한 옻칠 작품을 만들어 내는 작가로 탈바꿈했다. 1986년 한국현대공예미술전에 와태칠 작품을 출품해 대상을 거머쥐는 등 타고난 실력을 발휘했다. 얼마 후였다. 일본인 무역상이 오래된 ‘오젠’ 밥상 하나를 들고 와 수리를 부탁했다. 그 일본인은 도쿄예술대학에서 얘기를 듣고 찾아왔다고 말했다. 밥상 윗부분에는 고운 빛깔의 나전으로 두 마리의 학이 아름다운 자태로 입혀져 있었다. 전씨는 새것처럼 깔끔하게 수리를 했다. 이런 인연으로 그는 일본으로 건너가 메구로가조엔 복원 작업에 참여했고 여러 차례 전시회를 가지면서 명성을 얻었다. 그의 작품은 일본 교과서에 실렸으며 한때 귀화 요청을 받기도 했다. “옻칠은 우리 선조들이 남긴 혼의 정수(精髓)이자 영원불멸의 유산입니다. 일본에서 당당할 수 있었던 것도 ‘나는 조선의 옻칠장이’라는 마음가짐이었습니다. 이 땅의 옻칠 문화를 되살리는 데 진력을 다할 생각입니다.” 편집위원 km@seoul.co.kr 전용복씨는… 1953년 부산에서 태어났다. 1991년 일본 메구로가조엔의 옻칠 작품을 3년에 걸쳐 복원해 내 세계적인 옻칠 작가로 명성을 얻었다. 23년 동안 일본에서 살다가 1년 전 귀국했다. 지난 4월 중국 정부 초청으로 전시회를 가져 그의 진가를 새삼 입증했다. 그의 이력은 이렇다. 1980년 예린 칠연구소를 설립했으며 1983년 일본 한국문화원 초대 전시회, 1986년 한국 현대미술전 대상 수상, 일본 이와테 현 미술공방전 특상(1988), 대한민국 신지식인 대통령 표창장 수상(2000), 이와테 현 가와이무라 약사도칠예관 명예관장(2000), 대통령 표창 수상 기념 개인전(2001), 이와테 칠예미술관&동관대표 취임(2004), APEC기념작품전시회(2005), 세계 최고급 옻칠 시계 발표(2008), 온스타일과 유네스코 한국위원회 공동 기획 아트도네이션 작품 기증(2009) 등이다. 현재는 서울 화양리에서 제자들과 작품 활동을 하면서 생활공간에 어떻게 옻을 적용할 것인지를 연구하고 있다.
  • [인사]

    ■농림수산식품부 ◇과장급 전보 △경영인력과장 김종구△농수산식품연수원 운영지원〃 최완현 ■전남도 ◇서기관 승진 △F1조직위 마케팅부장 윤진호△의회사무처 이기춘 최두주 김충경 김태환<과장>△기업유치 김범수△신성장동력 윤순선△토지관리 홍성일△수산자원 양근석<파견>△행정안전부 소영호△전남개발공사 김태일△전남장애인체육회 김용△문화예술재단 차주경△호남권광역경제발전위원회 이덕부◇서기관 전보△F1조직위 티켓사업부장 박봉순△신안군 전출 김을배△공로연수 김홍재 김문식 이종원 이종민<과장>△경제통상 황기연△행복마을 정근택△도로교통 김명우△일자리창출 설인철△문화예술 조정훈△스포츠산업 방옥길△사회복지 이광수△세무회계 안용찬△노인장애인 이준수△농업정책 주순선△관광정책 이기환△기업도시 안상현<담당관>△예산 양재승△법무통계 김판암<단·소장>△영산강사업지원단 윤순홍△서울투자유치사무소 김양수<의회사무처 수석전문위원>△운영 홍영민△건설소방 김용철<광양만권경제자유구역청>△행정관리부장 박양종△기업지원〃 방길현<파견>△지식경제부 박은호△전남발전연구원 김영희△여수엑스포조직위 민상기 박현식<농업기술원>△운영지원과장 배재권△친환경연구소장 박종대△녹차연구〃 방극필△생명농업기술과장 김종국△전입 김영길 ■한나라당 △대표최고위원실 상근부실장 김관현△〃 부실장 조상환 홍종일△수석부대변인 김대은 서장은 함진규 이훈근 ■한국경제신문 △독자서비스국 독자지원부장(발송부장 겸임) 한규완 ■연세대 △문과대학장 홍종화△생활과학대학장 겸 생활환경대학원장 김영인△학부대학장 김영세 ■사립학교교직원연금공단 △상임이사 백성기 ■농협중앙회 ◇상무 △IT본부 분사장 윤한철 ■수협 ◇부장급 승진 △수산금융부 최정수△부산지역금융본부 정문기◇팀장 및 지점장급 승진△자금부 박대식△해양투자금융부 박해영△전산정보부 진범섭△전주지점 강두원△순천지점 이종권△서대구지점 최병용△울산지점 박영주△심사부 최민성◇팀장급 전보△금융기획부 경영관리팀장 박경민△여신관리부 특수관리〃 임덕순<고객지원부>△상품개발팀장 박양수△여신지원〃 한동진<심사부>△개인심사팀장 신재광△기업심사〃 김종규<지점장>△성남 송노일△가락시장 이원주△길동 단광수△녹번동 조광래△방화동 임태석△장안평 김완수△주안 허석△남대구 서영창△상무역 김철△비산동 임봉주△을지로 박서연△춘천 김현태△암사역 정명옥△목포 강종관<지역금융본부 RM지점장>△강북 문복일 김재현△강남 최규태 안철민<부부장·부지점장·부본부장>△영업부 최임수△서울중앙지점 김갑석△동대문지점 전양수△여의도지점 이태욱△경남지역금융본부 박봉우<센터장>△강남지역금융본부 장재연<출장소장>△인천항만공사 박진형
  • 김문수 “이재오, 대선주자로 나설 것”

    김문수 “이재오, 대선주자로 나설 것”

    한나라당의 대선 주자로 꼽히는 김문수 경기지사가 같은 당의 오세훈 서울시장이 추진하는 무상급식 주민투표에 대해 “득보다 실이 많을 것”이라며 거리를 뒀다. 김 지사는 그동안 정몽준 전 당 대표와 함께 오 시장이 추진하는 무상급식 주민투표를 적극적으로 지원해 왔다. 김 지사는 지난 19일 밤 도쿄특파원과의 간담회에서 “복지 포퓰리즘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오 시장의 뜻에는 공감하지만 경기 하남시의 경우를 보면 주민 투표는 (결과에 상관없이) 자칫 갈등을 낳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하남시는 2007년 12월 김황식 당시 시장이 추진한 광역 화장장 유치 문제로 시장 소환 주민투표를 했지만, 정족수를 채우지 못해 무산됐다. 김 지사는 “한나라당은 복지에 적극적이고, 가능한 한 무상급식도 하자는 입장”이라며 “이미 무상급식을 하고 있는데 주민투표로 이를 일부나마 유상으로 바꾸면 한나라당이 마치 무상급식에 반대하는 듯한 인상을 줄 수 있다. 애들 밥 안 주는 게 보수는 아니지 않으냐.”고 덧붙였다. 김 지사는 또 최근 한나라당으로의 복귀 가능성이 점쳐지고 있는 이재오 특임장관에 대해 “이 장관이 나라를 위해 헌신할 뜻이 상당히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내년 대선정국에서 킹 메이커보다는 대선 주자로 나서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도쿄 이종락특파원 jrlee@seoul.co.kr
  • “약초 캐려면 마음이 흐르는 물처럼 맑아야”

    “약초 캐려면 마음이 흐르는 물처럼 맑아야”

    약초(藥草)란 말 그대로 질병의 치료와 예방을 목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식물을 말한다. 따라서 누구나 한번쯤은 관심을 갖거나 눈여겨보게 마련이다. 하지만 재배가 아닌 야생 약초를 쉽게 접하기는 간단치 않다. 그러니까 10년 전이다. 충남 보령에서 식당업을 하던 최원길(58)씨는 이런 생약초를 직접 만나고 싶어 무작정 산행을 하기 시작했다. 그저 산에서 어떻게 자라고 있는지가 궁금했을 뿐이다. 이후 그는 경기, 강원, 충청 등 전국의 산을 대책 없이 떠돌아다녔다. 처음에는 매우 힘들었다. 어느 산에 무슨 약초가 있는지도 모르고 새벽에 떠나 다음 날 새벽에 돌아오는 일이 허다했다. 여름에는 무더위, 모기, 벌, 뱀 등과 사투를 벌이는 일도 많았다. 그런 일을 겪으면서도 뜻을 굽히지 않았다. 야생에서 백하수오와 천마, 토산마, 청머루 등을 만나면서 기쁨을 느끼기 시작했다. 나중에는 산삼을 여러 뿌리 캐는 행운도 뒤따랐다. 이제는 약초와 만나는 것이 삶의 유일한 취미이자 즐거움이 됐다. “일주일에 4, 5일은 산에서 지내지요. 하루만 산에 안 가도 몸이 근질근질합니다. 캐 온 약초는 어디에다 쓰느냐구요? 모두 술 담갔지요. 그게 보관하는 데 제일 좋은 것 같아요.” 대개의 경우 어렵게 캔 약초를 주위 환자나 아니면 시장에 내다 팔 법도 한데 최씨는 모두 술을 담갔다. 여러 번 물었더니 그냥 취미생활이라고 말한다. 그래서 보령시 동대동에 있는 전시장에 들어가 봤다. ‘세상에 이런 일이’라는 탄성이 절로 나올 만도 했다. 100년생 가까이 돼 보이는 산삼을 비롯해 백하수오, 봉삼, 진삼, 산도라지, 창출, 야관문, 잔대, 죽순, 우술뿌리, 왕벌집, 야생복숭아, 독배 등 우리나라에서 내로라하는 유명 생약초들이 크고 작은 병속에 고스란히 잠겨 있었다. 이렇게 보관된 술병만 1500병은 족히 넘는다. 전국 어디에도 이 같은 규모의 전시장은 없을 듯싶다. 최씨 자신도 “이만한 곳은 없다.”며 웃는다. 그렇게 좋다던 산삼과 백하수오 등 약초가 잔뜩 있는데 판매를 권하는 사람들은 없었을까. 최씨는 단호하게 “좋아서 하는 일을 돈과 거래하면 어떻게 하느냐.”고 반문한다. 그래서일까. 주위에서 는 최씨를 ‘약초박사’로 부른다. 지난해 부인이 뇌출혈로 쓰러졌을 때 산에 가서 약초를 캐와 정상으로 되돌린 사연은 훈훈한 화제가 되고 있다. “북향의 약초는 음지에서 자랍니다. 또 약초를 캐려면 마음이 흐르는 물처럼 맑아야 합니다. 경건해야지요.” 알듯 모를 듯한 말(?)을 하는 최씨에게 앞으로의 꿈을 물었더니 약초와 함께하는 것이라며 웃는다. 김문 편집위원 km@seoul.co.kr
  • [창간특집 여론조사] 박근혜 유일한 20%대… 문재인 4위 약진

    [창간특집 여론조사] 박근혜 유일한 20%대… 문재인 4위 약진

    대선후보 지지도 부문에서는 박근혜 한나라당 전 대표가 유일하게 20%대(22.9%)의 지지율을 나타내면서 우위를 지켜 나갔다. 손학규(13.0%) 민주당 대표, 김문수(12.7%) 경기도 지사, 문재인(11.5%) 노무현재단 이사장, 오세훈(9.4%) 서울시장 등이 뒤를 이었다. 박 전 대표는 ▲20대와 40대 이상의 연령층 ▲고졸 이상의 학력층 ▲중산층과 빈곤층 ▲수도권과 강원권에서 상대적으로 지지도가 높았다. 특히 박 전 대표는 호남권 출신자와 진보층에서도 고른 지지를 받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호남권 출신자들로부터 김문수(28.2%) 지사에 이어 2위(27.4%)를 차지했고, 진보층에서는 38.4%로 가장 높은 지지도를 보였다. 박명호 동국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아직 야권 후보가 정해지지 않은 상황에서 호남과 진보층의 지지는 일시적일 가능성이 높다.”면서 “그럼에도 박 전 대표의 지지도는 20%대를 유지하고 있기 때문에 핵심 지지층의 변동은 거의 없는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이번 지지도 조사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문재인 노무현재단 이사장이다. 그는 야권에서 손학규 민주당 대표에 이어 2위, 전체에서 4위로 약진했다. 문 이사장은 ▲30대와 40대 ▲고졸 이하 학력층 ▲중산층과 저소득층에서 상대적으로 지지도가 높았다. 특히 보수층에서도 가장 높은 지지도(16.6%)를 보여 향후 본격 대선구도가 펼쳐지면 지지층이 확대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문 이사장의 급부상은 최근 자서전 출간을 계기로 ‘스토리’가 있는 그의 인생역정도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김문수 경기지사는 ‘특강 정치’를 통해 국민적 관심을 끄는 이슈를 제기하는 행보가, 오세훈 서울시장은 무상급식 주민투표 등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오 시장의 경우 8월 말 진행되는 서울시 무상급식 주민투표의 결과에 따라 지지도에 큰 변화가 있을 것으로 관측된다. 윤설영기자 snow0@seoul.co.kr
  • [확 달라진 주5일 생활상] 가족과 함께 주말농장·봉사활동 어때요?

    서울 상도동에 사는 강순철(45)씨 가족은 지난해부터 ‘놀토’ 때마다 봉사활동을 다닌다. 강씨는 ‘놀토’가 다가올 때마다 봉사활동 일정을 공유하는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관련 일정을 찾아본다. 유기견보호소에서 유기동물 돌보기, 독거노인들에게 도시락 배달하기, 판자촌에 연탄 배달하기 등 다양한 봉사활동을 해 봤다. 강씨는 “주말이라고 굳이 돈과 시간을 들여가며 거창하게 놀아야 하는 것은 아니다.”며 “주말에 하는 봉사활동은 여가를 즐길 뿐 아니라 사회에 보탬도 되고, 자녀 교육에도 유익하다.”고 강조했다. 주5일제 근무가 전면 시행되면서 주말을 유익하게 보내려는 직장인들의 고민도 커지고 있다. 봉사활동, 여행, 운동 등의 활동을 부지런히 즐기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주말에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는 여가 활동을 찾지 못해 답답해하는 사람들도 있다. 전문가들은 일반인들이 주말에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여가 인프라를 보다 확충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정부 여가인프라 확충 선행돼야 주말을 유익하게 보낼 수 있는 방법은 다양하다. 가족들이 함께 북한산 둘레길 같은 산책코스로 나들이를 갈 수도 있다. 또 자녀들은 지역아동센터에서 마련한 주말 프로그램에 참가할 수 있다. 가족들이 주말농장을 찾아 텃밭을 가꾸며 자연의 소중함을 느끼는 것도 대표적인 주5일제 활용법이다. 그러나 이러한 여가 문화가 남의 이야기만 같은 사람들도 있다. 입사 2년차 회사원 정모(26·여)씨는 “5일 내내 술자리에 시달리기 때문에 토요일은 집에서 편히 쉬는게 낫다.”고 말했다. 가족들이 함께 부담 없이 다녀올 수 있는 장소를 찾기가 쉽지 않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서울 효제동에 사는 최모(50·여)씨는 “토요일에 반나절 정도의 시간을 들여 산책이나 나들이를 다녀오고 싶지만, 차를 타고 멀리 나가지 않는 이상 마땅한 곳을 찾기 힘들다.”고 전했다. ●마을 공터 운동장·산책코스로 김문조 한양대 관광학부 교수는 “점점 핵가족화되는 사회 변화 속에서 사람들은 여가를 즐기고 자기계발을 하려는 욕구가 점점 증대되고 있는 만큼, 이에 부응할 수 있도록 다양한 여가 인프라가 확충돼야 한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지금까지 정부는 굵직한 문화 및 체육 인프라를 조성하는 데에 치중해 왔다.”면서 “마을에 있는 공터에 운동장을 만든다거나, 마을 뒷산에 산책 코스를 만드는 등 사람들이 자신이 사는 지역 안에서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여가 인프라를 조성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김소라기자 sora@seoul.co.kr
  • 조선시대 외국어로 富·명예 거머쥔 사람들

    역관(譯官)이란 알다시피 통번역을 하는 벼슬이다. 이들은 주로 중국과 왜, 몽골, 여진 등과의 외교에서 통역 업무를 맡았다. 사신의 행차를 따라가 통역을 하거나 외국 사신이 방문했을 때 통역을 맡는 등 외교 관계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 이들은 또 밀무역에 깊숙이 관여하면서 많은 이익을 남기기도 하면서 조선시대의 무역 활동에서도 큰 비중을 차지했다. 따라서 역관들은 기술과 행정 실무뿐만 아니라 지식과 경제력에서도 양반 계층에 뒤지지 않았다. 하지만 늘 중인으로 대우받는 것에 불만을 가졌다. 그렇다면 조선시대 당시 뛰어난 외국어 실력을 바탕으로 외교에서부터 무역까지 종횡무진 활약한 사람들은 누구일까. 중인 신분의 외국어 전문가이면서도, 양반 사회에서 신분차별의 설움을 견디며 부와 명예를 거머쥔 인물들이기에 ‘조선 역관 열전’(이상각 지음·서해문집 펴냄)에 적잖이 눈길이 간다. 이 책의 특징은 인물을 크게 네 분야로 나눴다는 점이다. ‘차이나 드림을 꿈꾸다’, ‘일본과 통하다’에선 중국어와 일본어 역관을 집중적으로 다루고 나머지는 조선시대 통역관의 면면을 세밀하게 살피고 있다. 저자는 이 책에서 “역관들은 외교 당사국의 이질적 문화를 적극 수용하고 장점을 받아들일 줄 알았던 외교관이자 뉴프런티어였다.”고 강조한다. 그러면서 나라의 위급상황 시 활약했던 인물들을 흥미롭게 나열한다. 임진왜란 당시 홍순언은 종계변무(명나라 사서에 잘못 기록된 조선 왕실의 족보를 바로잡는 일)와 명나라가 참전하는 데 큰 공을 세운 점을 강조하고 있다. 반면 청나라 역관이 돼 조선을 골탕 먹인 정명수는 홍순언과는 반대되는 인물이라는 점을 대비시킨다. 그는 청나라 포로가 됐다가 병자호란 당시 청나라 장수의 역관이 돼 청나라가 조선을 침략하는 데 앞잡이 역할을 했다. 조선시대 최고의 역관 가문이 밀양 변씨와 인동 장씨라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이 두 가문의 대표적 역관으로 변승업과 장현 등을 열거하면서 특히 변승업의 할아버지는 뛰어난 외국어 실력과 장사 수완을 바탕으로 큰 재산을 모았고 ‘허생전’의 등장인물이라고 소개하고 있다. 장희빈의 숙부이자 대부호인 장현도 역관 신분으로 중개무역을 통해 큰 부를 쌓으면서 조선시대 최고 역관 가문의 반열에 올랐다고 말한다. 19세기 중엽 중국어 역관으로 활약한 오경석의 집안은 아버지 오응현과 아들 오세창까지 이어지는 조선 후기의 대표적 역관 가문이다. 이러한 내력을 상세하게 소개하고 있다. 오경석은 병인양요 당시 프랑스 침공에 대비한 대책을 세우는 등 대외 관계에서 많은 활약을 하면서도 역관으로 쌓은 지식과 부를 바탕으로 서화 수집과 예술활동에 적극 참여했다는 대목에도 눈길이 간다. 1만 5000원 김문 편집위원 km@seoul.co.kr
  • 뇌·척추 전문 S포항병원 성공 비결

    뇌·척추 전문 S포항병원 성공 비결

    뇌·척추 질환 전문인 경북 S(에스)포항병원은 지방병원 중 성공적으로 인정받고 있는 사례로 꼽힌다. 2008년 11월 개원과 함께 지금까지 14만 2700여명의 외래환자가 다녀갔고, 10만여명의 입원 환자를 진료했다. 뇌·척추 질환 수술 건수도 2710여건(연 평균 903건)에 이른다. 치료 성공률은 95% 이상. 이는 지방의 신생 병원으로선 감히 상상할 수 없는 실적이라고 한다. 병원의 수술 건수는 수도권 대학병원들을 압도한다. 국내에서 뇌동맥류 제거술을 가장 많이 하는 것으로 알려진 서울 모 대학병원의 경우 연간 150~300건 정도이며, 대구지역 대학병원들의 수술 건수도 70~150건이 고작이기 때문이다. 성공 비결은 뭘까. 200병상 규모의 병원은 대학병원 교수 및 강사 출신 전문의 18명과 대학병원에도 없는 혈관조영장비를 비롯한 MRI, CT, 적외선체열장비, 뇌혈류초음파장비 등 최첨단 고가 장비를 갖추고 있다. 다른 병원이 실시하지 않는 토요일 오전 외래진료를 진행하고, 24시간 수술 가능 시스템을 갖췄다. 그런데도 진료비는 서울·대구 등지의 대학병원에 비해 30% 이상 저렴하다. 김문철 병원장은 “급성 뇌졸중 치료와 만성적 척추 질환에 대한 체계적이고 고급화된 수술을 통해 특화 병원을 만들어 가고 있다.”고 말했다. 포항 김상화기자 shkim@seoul.co.kr
  • [김문이 만난사람] 마라토너서 ‘댄싱 위드 더 스타’ 댄서로 변신한 이봉주

    [김문이 만난사람] 마라토너서 ‘댄싱 위드 더 스타’ 댄서로 변신한 이봉주

    불꺼진 무대, 남녀가 야릇하게 춤을 춘다. 남자는 야광옷에 야광봉을 흔들어댔다. 마치 클럽에 온 듯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여인은 원숙한 몸짓으로 남자를 리드한다. 둘은 ‘시대별 유행댄스를 접목하라’는 미션으로, 고난도의 테크토닉 춤을 추었다. 이어 박수갈채가 쏟아졌고 서바이벌에서 살아남았다. 지난주 한 방송 프로그램 ‘댄싱 위드 더 스타’에 나오는 장면이다. 시청자들의 관심을 끈 것은 남자의 변신이었다. 남자는 다름 아닌 국민 마라토너 이봉주(41)였기 때문. 촌스럽고 순진하게 생긴 ‘봉달이’가 미모의 젊은 파트너인 최수정(아래 사진 오른쪽·26)씨와 호흡을 척척 맞추는 모습은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눈길을 떼지 못하도록 압권을 연출했다. 이 경기에서 그는 과연 언제까지 살아남을까. 지난 11일 서울 양재동에서 이씨를 만났다. 그는 집이 수원이지만 요즘에는 양재동에 위치한 댄스 연습실에서 거의 살다시피 한다. 수염을 말끔히 깎고 모자를 썼다. 청바지에 운동화 차림이었다. 봉달이 특유의 미소는 여전했다. 요즘 얼마나 바쁘냐고 했다. “하루에 5~6시간 (댄스)연습합니다. 오전 11시부터 양재동에 나와 파트너와 연습하고 쉬었다가 다시 저녁에 하고…, 다른 일은 거의 못하고 있습니다.” 이씨는 그러면서 조금은 멋쩍게 웃음을 짓는다. 마라토너가 댄서로 (물론 잠시겠지만)변한 자신을 생각해서이겠다. 그렇다면 왜 TV 예능 프로그램에 나갔을까. “5개월 전 이 프로그램 출연제의를 받고 처음에는 무척 망설였지요. 안 한다고 했습니다. 달리기만 해 온 사람이 스포츠 댄스를 한다는 것이 영 낯설고 두려움도 있었고요. 마라토너로 알려진 제가 혹시 잘못했다가 이미지가 바뀌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많이 했습니다. 그런데 제가 아는 사람들을 통해서 계속 설득이 들어왔어요.” 결국 마음을 움직이게 한 계기는 무엇일까. “주변 사람이 그랬습니다. ‘마라톤도 스포츠고, 댄스도 스포츠다. 이것저것 떠나 무엇을 도전한다는 것은 인생의 또 다른 즐거움이 아니냐’고 말입니다. 그 얘기를 듣는 순간 마음을 결정했지요. 만약에 (살아남아) 상금을 받는다면 마라톤 꿈나무에게 지원하겠다는 생각도 함께 들었습니다. 집사람도 많이 반대했는데 나중에 그런 얘기를 했더니 허락하는 눈치였습니다.” 부인 얘기가 나오자 약간 짓궂은 질문을 했다. 젊은 파트너하고 춤을 추는 장면을 보고 부부 싸움은 없었는지 말이다. 피식 웃으면서 대답을 한다. “연습하느라 늦은 시간에 집에 오면 사소한 문제가 연결되면서 여러번 트러블이 생겼지요. 한때는 후회도 했습니다. 하지만 이해를 많이 해 주는 편입니다. 연습 안 하는 날에는 집에서 함께 춤을 추는 일도 생겼습니다. 아내는 춤을 못 추기 때문에 동작은 안 되고 자세 정도 잡습니다.” 그는 마라톤과 스포츠 댄스를 비교하는 대목에서 “시간을 많이 뺏기고 고난도 연기가 힘들다.”고 토로했다. 마라톤은 평소 연습한 대로 이를 악물고 달리면 되지만 음악을 듣고 표정을 지어야 하는 연기가 무척 어렵다고 말했다. 서바이벌에서 언제까지 살아남을 수 있겠느냐고 물었다. “현재는 5등 안에 들어 있지만 이번 주에는 떨어질 것 같아요. 다른 사람들의 실력이 워낙 쟁쟁해서 말입니다. 아무래도 한계점에 이른 것 같습니다. 저는 마라토너 이봉주잖아요.(웃음)” 그는 연습을 하면서 자신 있는 점 한 가지를 들었다. 매일 수십 ㎞를 뛰는 사람이어서 체력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것. 다른 출연자들을 보면, 한두 시간 연습을 하면 매우 힘들어하는데 이씨는 전혀 그렇지 않다고 했다. 하지만 발연기와 유연성을 연습할 때에는 어려움이 많다고 했다. 화제를 바꿔 요즘에도 달리기를 계속하는지 물었다. “매일 아침 6시에 일어나 집근처 둑방길 15㎞를 달립니다. 동호회도 있지만 거의 혼자서 달리지요. 버릇처럼 돼 있기 때문에 안 달릴 수가 없어요.” 그의 집은 수원과 화성의 경계에 있어 농촌마을 분위기가 나는 곳이다. 그는 달리면서 마음 같아서는 마라톤을 괜히 일찍 그만두었나 하는 생각도 했단다. 나이가 지금보다 한두 살만 젊었어도 멋지게 더 달릴 수 있을 것 같다는 뜻이다. 하지만 아무래도 현역과는 다를 터. 체중은 전성기 때보다 조금 늘었다고 했다. 날렵한 몸매라고 거들면서 슬쩍 몸무게를 물었더니 60㎏ 정도라는 대답이 돌아온다. 이씨에게는 아들 둘이 있다. 최근 인터넷에 아들 얼굴이 공개돼 ‘얼짱 아들’로 화제가 됐다. 아들의 마라톤 DNA는 어떨까. “지금 초등학생인데 소질이 없어요. 운동회 때 학교에 가 봤거든요. 6명이 달리는데 6등으로 골인했습니다.(웃음)” 이참에 달리기는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은지 물었다. “시간이 날 때마다 걷든지 뛰든지 하는 마음가짐이 중요합니다. 중요한 것은 무리하지 않고 체력에 맞는 운동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요즘 같은 더운 여름에는 수분을 충분히 섭취하면서 운동을 해야 합니다. 일반 물이나 스포츠 드링크 종류도 무난합니다.” 마라톤 풀코스를 완주하려면 어떤 방법이 좋을까. 보스턴 마라톤대회에서 우승한 세계적인 선수에게 ‘원 포인트 레슨’ 차원에서 물었다.“단계적인 스케줄을 짜야 합니다. 짧은 거리에서 긴거리를 달리면서 서서히 호흡과 리듬을 채워줘야 합니다. 훈련량이 어느 정도 돼야 하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무리하면 사고가 날 수도 있고요. 나이는 상관없지만 사전 훈련량은 꼭 필요합니다.” 다음 달 대구에서 벌어지는 세계육상선수권대회에 대한 얘기를 꺼냈다. 이씨는 이 대회에서 홍보이사를 맡고 있다. “우리나라 육상 발전을 위한 중요한 계기가 될 것입니다. 저변확대를 기대하고 있지요. 중요한 것은 대회를 성공적으로 치러야 한다는 것입니다. 육상 꿈나무들에게도 좋은 볼거리와 훌륭한 경험이 될 것입니다.” 다시 마라톤 얘기로 넘어갔다.“지영준 선수가 현재 잘해 주고 있지만 뭐든지 대회를 앞두고는 훈련을 확실히 했느냐는 것이 중요합니다. 우승 여부를 떠나 이번 대회에서 세계적인 선수들과 같이 달리는 경험 또한 좋은 기회이지요. 지영준 선수가 잘 달릴 수 있느냐 없느냐 하는 것도 더운 날씨를 어떻게 극복하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충분한 훈련과 홈그라운드의 이점을 살리면 달리는 데 부담이 줄고 좋은 결과를 이룰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마라톤 전망은 어떨까. 대답이 단호했다. “선수들이 없습니다. 저변이 약합니다. 기대할 만한 선수들이 많이 나와야 합니다. 아마추어 마라톤 인구는 많은데 엘리트 마라토너의 계층이 취약합니다.” 마라톤 현실을 지적하는 이씨에게 마라톤 발전을 위한 계획이 없느냐고 반문했다. 잠시 생각하더니 올가을에는 모 실업팀 감독을 맡을 것 같다고 말했다. 몇 군데 제의가 왔고 지금 심사숙고하고 있다는 것이다. 달려온 만큼 후배들에게 달리는 방법을 잘 전수해 주겠다는 의욕을 피력했다. 지금 출연하는 예능프로그램은 오늘내일 그만둘 것이고 진정코 하고 싶은 것은 후진양성이라고 강조했다. 이씨는 마라톤 외에 영화를 자주 본다. 최근에는 아들 둘과 함께 ‘트랜스포머3’를 관람했다. 가족과 함께 달릴 수 있는 것은 아직은 영화인 것 같다며 멋쩍게 웃는다. 그에게 잠시 밖에서 사진촬영을 하자고 했다. 만나는 장소가 서초구민회관 안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비가 왔다. 우산을 쓰고 나오면서 어디론가 전화를 했다. 대화내용을 얼핏 들어보니 아들인 것 같았다. 다정한 아빠의 목소리였다. 전화를 끊고 히죽 웃으며 나무를 배경으로 포즈를 취했다. 이씨에게 어디로 가느냐고 물었더니 “댄스 연습하러 가야지요. 파트너가 오라는 시간에는 무조건 달려갑니다. 아마도 이번주 (서바이벌에서)금요일이 고비인 것 같아요.”라고 대답했다. 그는 인터뷰를 마치고 헤어지면서도 내리는 비 사이로 봉달이 특유의 미소를 짓는다. 편집위원 km@seoul.co.kr ●이봉주는… 20년간 앞만 보고 달려온 ‘끈기의 마라토너’… 2009년 은퇴까지 풀코스 41회 완주 1970년 충남 천안에서 태어났다. 가난한 농가의 3남 2녀 중 막내였다. 초등학교에 다닐 때는 축구선수를 꿈꿨다. 중학교 때는 복싱과 태권도를 하고 싶었지만 어려운 집안 형편상 꿈을 접어야 했다. 그래서 돈이 안 들어가는 육상을 택했다. 천안농고에 진학하면서 육상부에 들어갔지만 장학금을 주는 곳을 찾아다니느라 삽교고와 광천고로 옮겨 다녔다. 그가 육상에서 두각을 나타낸 것은 고 3때. 전국 체전 10㎞에서 3위에 입상하면서였다. 이후 서울시 육상팀에 입단한 뒤 야간인 서울시립대에 진학했다. 1990년 전국체전에서 처음으로 마라톤 풀코스에 도전, 2시간 19분 15초의 기록으로 2위를 차지해 마라톤 선수로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서울시립대를 졸업한 뒤 1993년 코오롱 마라톤팀에 들어갔고 이후 정봉수 감독의 지도를 받으며 본격적인 마라톤 레이스에 들어갔다. 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에 출전한 그는 은메달을 땄고 1998년 네덜란드 로테르담 마라톤에서 2위, 그해 방콕 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1999년 이른바 ‘코오롱 사태’ 때 팀을 떠나 무소속 선수가 됐으나 2000년 도쿄마라톤에서 2시간 7분 20초로 한국 최고기록을 세우면서 2위를 차지해 건재를 과시했다. 이후 삼성전자에 입단, 2001년 보스턴마라톤대회에서 우승하면서 세계적인 육상 스타로 떠올랐다. 이어 2002년 부산 아시안게임 우승, 2007년 서울 국제마라톤대회 우승 등을 이끌었다. 2009년 은퇴할 때까지 그는 마라톤 풀코스를 41회 완주했다. 이는 세계 마라톤 역사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대기록이다. 마라톤 인생 20년의 처음과 끝을 전국체전에서 장식했다는 점도 의미가 있다. 또 1등보다는 2등으로 레이스를 마친 경우가 많았지만 ‘은근’과 ‘끈기’로 대변되는 배달민족의 정서와 많이 닮아 더욱 사랑을 받았다. 소처럼 묵묵히 발을 내디디면서 기록과의 끝없는 싸움을 했다. 자신을 위협할 라이벌도, 무섭게 치고 올라올 후배도 없는 상황에서 고독하게 달렸다. 현재는 손기정기념재단 이사와 대구 세계육상선수권대회 홍보이사로 활동하고 있다. 슬하에 두 아들을 두고 있다.
  • 무주리조트 개명에 지역주민들 반발 거세

    전북 무주의 대표적인 관광시설인 ‘무주리조트’의 명칭이 바뀌자 지역 주민들이 반발하고 있다. 지난 4월 무주리조트를 인수한 ㈜부영은 최근 무주리조트의 명칭을 부영 고유의 캐릭터인 ‘원앙’을 결합시켜 ‘부영덕유산리조트’로 개명했다. 리조트 관계자는 “무주리조트가 주인이 두 번이나 바뀌었기 때문에 새로운 이미지를 가지고 출발한다는 의미에서 명칭을 바꾼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무주군민들이 느끼는 상실감은 매우 크다. 무주관광협회 맹갑상 회장은 “수 십 년째 관광 무주의 얼굴로 여겨졌던 무주리조트의 명칭을 군민들의 의사와 무관하게 바꾼 것은 안타까운 일”이라며 “무주의 이미지를 부각시킬 수 있는 이름으로 되돌렸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재경 무주군민회 김문기 회장도 “일어나서는 안될 일이 벌어졌다.”며 “반대운동 등 원래의 명칭을 찾는 데 일조하겠다.”고 말했다. 무주군 측은 “명칭 변경을 알고 두 차례나 항의해 무주를 넣을 것을 요청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며 “앞으로 교통표지판 명칭 변경 등은 군에서 협조하지 않을 것이며 행정기관의 자료 문서는 무주리조트로 계속 표기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한편 무주리조트는 1990년 쌍방울개발이 문을 연 뒤 1997년 대한전선이 두 번째 주인이 됐지만 명칭은 무주리조트로 그대로 이어왔다. 전주 임송학기자 shlim@seoul.co.kr
  • [데스크 시각] 대권주자들과의 인터뷰/이도운 정치부장

    [데스크 시각] 대권주자들과의 인터뷰/이도운 정치부장

    지난해 4월 정치부장을 맡은 이후 여야의 유력 정치인들과 직접 인터뷰할 기회를 갖게 됐다. 인터뷰 기사가 나올 때마다 “그 정치인은 직접 만나 보니 어떠냐?”는 질문을 받는다. 그에 대한 답변을 이번 칼럼에 담아보려 한다. 가장 최근에 인터뷰한 인물은 문재인 노무현재단 이사장이다. 그가 내년 총선과 대선에 직접 뛰어들 것인가에 대해 궁금해하는 분들이 많다. 나는 ‘할 것 같다.’고 답변하고 싶다. 지난달 15일 부산에서 1시간 50분간의 인터뷰를 끝내고 문 이사장에게 확인 질문을 했다. “오늘 출마 여부와 관련해 많은 말씀을 하셨다. 그 가운데 ‘아직은 결정할 시기가 아니고, 선거 때가 다가오면 결정하겠다’고 답변한 부분을 기사로 쓰겠다. 그러면 편집에서는 ‘출마 가능성 배제 안해’라고 제목을 뽑을 것이다. 그래도 되겠느냐?” 문 이사장은 빙긋이 웃으며 “그렇게 하십쇼.”라고 말했다. 독자들이 가장 많이 본 인터뷰는 ‘의외로’ 지난 1월 14일 가졌던 김두관 경남지사와의 대담이었다. 사흘 뒤 지면에 실린 김 지사 인터뷰 기사는 대표적인 인터넷 포털에서 그날 ‘가장 많이 본 정치기사’가 됐다. 대중이, 혹은 네티즌들이 김 지사에게 그 정도로 관심이 많다는 사실에 놀랐다. 동료 언론인들로부터 가장 많은 ‘피드백’을 받았던 것은 이광재 전 강원지사와의 인터뷰였다. 인터뷰 날짜가 대법원 판결로 지사직을 잃기 바로 전날인 지난 1월 26일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인터뷰 속에 이 지사의 착잡함, 비장함, 허탈함, 마지막 희망, 이런 감정들이 묻어났다. 그런 감정 속에서도 이 지사는 2012년을 넘어 2017년까지 바라보고 답변하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손학규 민주당 대표와의 인터뷰는 ‘터프’했다고 말할 수 있다. 손 대표는 질문·답변이든 사진 촬영이든 ‘인위적인’ 연출을 원하지 않았다. 손 대표는 또 ‘공정’하지 못하다고 느끼는 듯한 질문에는 그냥 넘어가지 않고 반격을 했다. “당의 실세는 손 대표가 아니라 박지원 원내대표라는 말들도 나온다.”고 당내 사정을 꼬집어 보자 “무슨 여의도 참새들이나 지저귀는 듯한 질문을 던지느냐.”고 힐난하기도 했다. 여당 정치인들과의 인터뷰는 재미가 덜할 수도 있다. 아무래도 야당 정치인들보다는 말을 아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치적인 반향이 가장 컸던 것은 이재오 특임장관과의 인터뷰였다. 지난해 10월 23일, 정권 실세로 돌아온 이 장관은 당시 검찰의 기업 수사가 “구여권에 대한 수사”라고 규정해 큰 파문을 일으켰다. 당시 많은 언론이 사설과 논평으로 다뤘을 정도였다. 이 장관에게 “매일 지하철로 출근하고, 5000원짜리 점심을 먹는다는데, 그러러면 무엇하러 실세를 하느냐.”고 던져봤다. 이 장관은 “바로 그런 것이 구시대적인 사고”라고 반격했다. 김문수 경기도지사는 국회의원을 세 차례 하고 도지사를 연임했지만 말과 행동은 여전히 서민 같았다. 김 지사에게 “주변에 아직도 민중당 출신이 많다. 이들도 김 지사처럼 모두 전향했느냐.”고 물었다. 그에 대한 답변은 김 지사가 아니라 배석했던 민중당 출신 최우영 대변인이 자청했다. “의(義)를 버리고 이(利)를 택했다는 비판을 받으며 김 지사와 함께한 지가 10여년이다. 우리도 바뀌었다고 봐야 한다. 10여년이 지난 지금도 ‘너 바뀌었느냐’고 계속 물으면 좀 그렇다.” 독자들이 가장 관심이 많을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와는 아직 인터뷰할 기회가 없었다. 박 전 대표는 언론과의 인터뷰를 시작하지 않았다. 차기 또는 차차기 대권 후보로 꼽히는 정치인들과 인터뷰를 하면서 느낀 감정은 안도감과 아쉬움이다. 여야 대표와 원내대표, 국회의장, 주요 시·도지사 등을 대부분 인터뷰했지만 그 가운데 ‘엉터리’라고 생각되는 인물은 없었다. 거기서 안도감을 느낀다. 그러나 국가의 미래에 대해 명확한 비전을 제시하고, 이를 실현할 수 있다는 열정을 느끼게 해준 인물도 거의 없었다. 나의 통찰력이 부족했기 때문일 수도 있다. 거기서 아쉬움을 느낀다. dawn@seoul.co.kr
  • “초등교사 임용 지역가산점 계산방식 잘못”

    “초등교사 임용 지역가산점 계산방식 잘못”

    초등교사 임용시험에 있는 ‘지역가산점 제도’의 계산 방식이 잘못됐다는 법원의 판결이 처음 나왔다. 1점 미만의 근소한 점수 차로 떨어진 교대생들의 유사한 줄소송이 예상돼 파문이 증폭될 것으로 보인다. 서울고법 행정5부(부장 김문석)는 초등교사 임용후보자 선정 경쟁시험에서 불합격한 배모·정모씨가 경기도교육감을 상대로 낸 불합격처분취소 청구소송에서 원심을 파기하고 원고 승소로 판결했다고 11일 밝혔다. 재판부는 지역가산점 제도를 부여하는 계산 방식에 잘못이 있다고 봤다. 교육공무원법 제11조에 따르면 가산점은 1차 필기시험 만점의 10% 수준에서 부여할 수 있다. 경기도의 경우 지역가산점 6점 등을 포함해 총 30점까지 가산점을 받을 수 있다. 문제는 최종 합격자 선정에서 1차, 2차, 3차를 각 100점으로 환산해 합친 뒤 가산점을 부여한다는 것. 재판부는 “최종합격자는 1차 시험 점수에 가산점을 합한 ‘최종 1차 점수’와 2, 3차 시험 점수를 각각 100점 만점으로 환산해 더한 점수(300점 만점)로 뽑아야 한다.”면서 “1, 2, 3차 시험점수를 먼저 100점 만점으로 환산해 합한 뒤 여기에 가산점을 더해 선정하는 방식(330점 만점)은 관련 법령에 반하므로 허용될 수 없다.”고 밝혔다. 그러나 지역가산점제 자체는 문제가 없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지역 교육대학의 질적 수준 유지와 향상이라는 입법 목적의 정당성이 인정되고, 자신의 선택에 따라 이익과 불이익 모두가 될 수 있으므로 기본권의 침해와는 달리 봐야 할 여지가 있다.”면서 공무담임권 및 평등권을 침해한다는 원고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경기도교육청은 이와 관련, “이들을 당장 구제하기보다는 판결문을 면밀히 검토한 다음 상고 여부를 결정하겠다.”고 밝혔다. 배씨 등은 경기도 이외 지역 출신으로 2010학년도 경기도 초등교사 임용시험에 응시했지만 지역가산점을 받지 못해 합격점수에서 0.15~0.2점이 부족해 불합격하자 지역가산점 제도 때문에 불이익을 당했다며 소송을 냈다. 이민영기자 min@seoul.co.kr
  • [저자와 차 한 잔] ‘역사소설, 자미에 빠지다’ 박사 논문 출간한 김병길씨

    [저자와 차 한 잔] ‘역사소설, 자미에 빠지다’ 박사 논문 출간한 김병길씨

    “자미는 재미의 옛말입니다. 1920년대 중반부터 한국 문단에는 주목할 만한 일이 일어납니다. 매일신보(서울신문의 전신) 등 주요 신문 도처에 역사소설이 연재되기 시작한 것이지요. 민족주의를 내세웠지만 사실은 야담인 것 같기도 하고 소설인 것 같기도 한 아슬아슬한 경계를 넘나들면서 대중을 열광하게 했고 신문사들은 예고 광고까지 하면서 더욱 열을 올렸지요.” 질문 하나 던져본다. 자미(滋味)란 무엇일까. 한자로 풀이해 보면 자(滋)는 ‘늘다’, ‘많아지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고, 미(味)는 맛이라는 의미다. 그렇다면 맛이 많아진다는 뜻이겠다. 민족주의 담론에 갇힌 한국 근대 신문 연재 역사소설의 진면목을 통속적 ‘자미’라는 주제를 통해 모색하고 한국 근대 소설의 진정한 계보와 진실을 밝히고자 한 책이 나왔다. 제목은 ‘역사소설, 자미(滋味)에 빠지다’(삼인 펴냄)이다. 박사 논문이 일반 출판 시장에서 단행본으로 나오는 것은 드문 일. 하여 저자 김병길(39)씨를 만났다. ●“한국 근대소설 계보 쫓는 재미에 빠져” “자미는 재미의 옛말입니다. 1920년대 중반부터 한국 문단에는 주목할 만한 일이 일어납니다. 매일신보(서울신문의 전신) 등 주요 신문 도처에 역사소설이 연재되기 시작한 것이지요. 민족주의를 내세웠지만 사실은 야담인 것 같기도 하고 소설인 것 같기도 한 아슬아슬한 경계를 넘나들면서 대중을 열광하게 했고 신문사들은 예고 광고까지 하면서 더욱 열을 올렸지요.” 한 예를 든다. 1942년 이광수의 ‘원효대사’ 연재를 앞둔 ‘매일신보’는 당시 다음과 같은 문구로 광고했다. ‘이 소설은 오늘날과 가튼 시국하에서 희생과 봉공과 고행의정신을 체득하는데 하나의 경전이 될만한 귀한작품인줄 생각한다.’ 지금의 띄어쓰기나 맞춤법에는 안 맞지만 내용을 보자면 신문사에서는 일제시대의 상황을 의식해 태평양 전쟁의 정신을 배경에 깔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김씨는 이에 대해 “당시 역사소설가들은 ‘우리는 민족 이야기를 하는 것이 목적’이라는 정당성을 내세우면서도 밑바닥에는 일제를 의식하는 마음이 깔려 있을 수밖에 없었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당시 역사소설을 쓰는 작가들은 야담과 사담 등 통속적으로 접근하는 방식을 취했다고 분석했다. ●1942년 이광수, 매일신보에 연재 광고도 책의 부제를 ‘새로 쓰는 한국 근대 역사소설의 계보학’이라고 붙였듯이 일반인들이 흥미롭게 접근할 있도록 ‘자미’라는 시각으로 신문 연재 소설의 계보와 구체적인 면면, 그리고 발전 과정을 소상하게 살피고 있다. 그렇다면 김씨는 왜 이 책을 쓰게 됐을까. “2005년 김동리의 역사소설을 연구하던 중 우리 신문 연재 소설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됐습니다. 처음에는 조선과 동아, 매일신보 등 3대 신문이 주축이 됐으나 나중에는 매일신보가 독보적으로 연재소설을 다루게 됩니다. 우리나라 역사소설이라는 용어는 최남선의 ‘ABC계’가 ‘소년’지에 연재되면서 처음 등장하고 나중에 신문 매체로 옮겨지지요. 또한 역사소설은 1945년 8월 14일 자 ‘매일신보’에 실린 박태원의 ‘원구’를 마지막으로 중단됐다가 6·25전쟁 이후 다시 부활하게 됩니다.” 김씨는 이와 관련된 연구를 더 하겠다고 말한다. 첫째는 역사문학 전반의 지형을 살피는 일이고, 둘째는 계보학적으로 접근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황진이를 다룬 소설만 19편이 나왔는데 저자에 따라 어떻게 달라지는지를 연구하는 작업이다. 김씨는 전남 담양에서 출생해 연세대 국문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에서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는 숙명여대 교양교육원 조교수로 있다. 글 김문 편집위원 km@seoul.co.kr 사진 도준석기자 pado@seoul.co.kr
  • 잠룡들의 미래는

    잠룡들의 미래는

    한나라당 7·4 전당대회를 통해 출범한 ‘홍준표 체제’는 차기 대선주자들의 입지에도 적잖은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박근혜 전 대표에게는 ‘과속주의보’가 내려지고, 오세훈(왼쪽) 서울시장은 외줄타기를 하는 형국이다. 김문수(가운데) 경기지사와 정몽준( 오른쪽) 전 대표는 미로 속 출구를 찾아야 하는 상황에 가깝다. 우선 이번 전대에서 ‘파워’를 재확인한 박근혜 전 대표는 정치 활동 재개가 가시권에 들어온 것으로 관측된다. 박 전 대표는 그동안 당내 현안에 대해 “지도부가 알아서 할 일”이라고 한발 물러서 있었으나, 새 지도부와 동일시되는 상황에서 일보 전진이 불가피해 보인다. 잠재적 위험요인이 줄어든 점도 긍정적이다. 4·27 재·보궐 선거 완패 이후 위기론이 퍼지면서 박 전 대표가 내년 총선을 책임져야 한다는 이른바 ‘총대론’이 제기됐다. 하지만 야당의 공세를 막아낼 전사를 자처한 홍 대표의 등장으로 부담을 덜게 됐다. 다만 ‘미래권력’ 등으로 불리며 독주 체제가 더욱 굳어졌다는 점은 부담요인이다. 대선 본선 경쟁력도 여전히 갖춰 나가야 할 부분으로 평가받는다. ●吳, 최고위원 3명 ‘우군’ 확보 오 시장은 이번 전대 경선 과정에서 홍준표 대표를 물밑 지원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당내 지분이나 발언권을 확보하는 데 유리한 고지를 점령한 것이다. 무상급식 주민투표를 추진하는 데도 힘이 실릴 것으로 예상된다. 선출직 최고위원 5명 중 홍 대표를 비롯해 원희룡·나경원 최고위원 등 3명이 경선 과정에서 오 시장의 손을 들어준 것. 주민투표에 부정적인 유승민·남경필 최고위원이 비판의 목소리를 무작정 키울 수는 없는 상황이다. 그렇다고 당이 전면에 나서기도 쉽지 않다. 투표 결과에 따라 당에 치명적인 생채기를 남길 수 있기 때문이다. 서울지역 한 의원은 “주민투표 결과가 내년 총선·대선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불확실한 상황에서 당이 부담을 나눠 갖기는 쉽지 않다.”면서 “그러나 당이 오 시장의 발목을 잡을 가능성은 사라졌으며, 결국 오 시장 스스로 정면 돌파할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金·鄭, 당청 갈등땐 목소리 낼 듯 반면 김 지사와 정 전 대표는 운신의 폭이 제약을 받게 됐다. 사실상 친이명박계는 흩어지고, 친이재오계만 존재하는 상황에서 범친이계로 분류되는 김 지사와 정 전 대표의 지지 기반과 활동 공간은 급격하게 줄어들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지난해 7·14 전대에서 친이계가 최고위원 5자리 중 4자리를 ‘독식’한 이후 친박계와 소장파의 활동 공간이 극도로 위축됐던 당시와 판박이 상황이 연출될 수 있다는 것이다. 당 관계자는 “김 지사와 정 전 대표 입장에서는 당·청 관계 등이 갈등 구도로 바뀔 경우 자기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정치적 공간이 마련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장세훈기자 shjang@seoul.co.kr
  • 김문수 “몸사리는 공무원 탓에 GTX사업 지연”

    김문수 “몸사리는 공무원 탓에 GTX사업 지연”

    김문수 경기지사는 4일 “대통령 임기 말이라 굉장히 몸조심하는 공무원들 탓에 수도권광역급행철도(GTX) 사업이 지연되고 있다.”고 비판했다. 김 지사는 라디오 방송 프로그램에 출연해 “GTX는 민간이 3년 이상 연구한 것인데 정부에서는 민간제안 사업으로 하면 특혜 시비가 일까봐 임기 말에 공무원이 굉장히 조심하고 있다.”며 “반값 등록금, 무상급식에는 서로 나서지만 국가 미래가 걸린 사회간접자본(SOC)은 기피해 정말 걱정이다.”라고 지적했다. 경기도가 정부에 제안한 GTX는 지난 4월 ‘제2차 국가철도망 구축계획(2011~2020년)’의 전반기 신규 사업으로 채택돼 2015년 안에 착공하게 됐지만 국토해양부는 GTX의 민간제안사업 여부 결정 등 사업 추진에 뜸을 들이고 있다. 앞서 김 지사는 지난달 28일 KTX 수서~평택 구간 건설사업 착공식에서 “정부가 GTX를 5년째 붙들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이 불도저라고 하는데 그렇게 간이 크신 분이 아니다.”고 말한 바 있다. 김 지사는 뉴타운 정책의 실패에 대해서는 “제 책임이 크다. 부동산이 악화될지 몰랐다.”면서도 “(뉴타운 문제 해결은) 경기도가 하기 어렵다. 국토부가 권한을 지방에 이양해야 하고 이 대통령이 시원하게 해결해 주시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김병철기자 kbchul@seoul.co.kr
  • 아내가 낳은 건 아이가 아니었어요

    아내가 낳은 건 아이가 아니었어요

    프랑스에서 휴가 중 업무상 혼자 한국으로 돌아온 장루이 는 서울 서초구 반포4동 서래마을 자신의 집 냉동실에서 갓난아이 시체 2구를 발견한다. 경찰에 신고한 쿠르조는 자신의 집에 정체불명의 외국인이 들어가는 것을 봤다는 목격자의 진술이 있었다고 주장하지만 국립과학수사연구소의 DNA 검사 결과 경찰은 쿠르조와 그의 아내를 죽은 두 아이의 부모로 지목한다. 2006년 여름에 발생한 ‘서래마을 영아살해 유기 사건’은 대한민국과 프랑스를 떠들썩하게 만들었다. 결국 장루이 쿠르조의 아내 베로니크 쿠르조는 범인으로 지목돼 프랑스 법정에서 재판을 받은 뒤 수감됐다. 조사 과정에서 범행을 자백했던 베로니크는 재판에서 임신을 자각하지 못하는 임신거부증이라는 정신질환을 인정받아 8년형을 언도받고 복역하다가 2009년 5월에 가석방됐다. 이후 쿠르조 가족은 프랑스 수비니에서 함께 생활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베로니크의 남편은 2010년 9월 사건의 전말과 심경을 고백하는 책을 프랑스에서 출간했다. 자신의 아이를 셋이나 살해했지만 이미 두 아이를 낳아 기른 아내를 버릴 수가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면서 아내의 구명에 적극적으로 나섰던 것. 이렇게 남편 장루이 쿠르조가 쓴 책 ‘그녀를 버릴 수가 없었다’(김옥진 옮김, 스크린셀러 펴냄)가 국내에 번역 출간됐다. 사건의 시작부터 베로니크가 조건부 석방된 지금까지의 일들을 상세히 기록하고 있다. 또한 재판과정에서 세인들의 따가운 눈총에도 불구하고 석방을 청원하면서 세상에 알려지게 된 ‘임신거부증’에 대해서도 자세히 서술하고 있다. 그러면서 저자는 아내 베로니크가 ‘괴물’이 아니라 ‘임신거부증’에 걸린 탓에 그런 끔찍한 일이 발생했다고 설명하고 있다. 또한 그는 “아내는 책을 쓰는 것에 반대했다. 그녀는 주변 사람들의 자유를 존중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했고 그들의 자유를 존중한다는 조건 하에서 내게 책의 집필을 허락해 주었다.”고 책을 쓰게 된 과정과 동기를 밝히고 있다. 아울러 저자는 “처음 사건이 공개됐을 때 사람들은 끔찍함에 놀라면서도 사건의 진상에 대해 알려고 하지 않았다. 그래서 내가 이렇게 살아 있는 증언을 하는 것이 우리 아이들에게 꼭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했다.”고 절절이 토로하고 있다. 저자는 또 책에서 임신거부증에 대해 자세히 소개하면서 “이 질환에 걸린 여성들이 대화가 전혀 없는 가정에서 자랐다는 공통점이 있다.”고 여러 번 강조한다. 아내의 모습에 혼란을 느끼기도 했지만 동시에 18년간 함께 살며 사랑을 나눠 온 아내의 질환을 묵묵히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자신의 심정을 호소하고 있다. 1만 2000원. 김문 편집위원 km@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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