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교 10년 韓·中] (中)대륙 속의 작은 한국
***왕징신청, 韓人6000명 ‘북적' 한국어 통용… 자장면 배달도
[베이징 김규환특파원] 베이징(北京) 시내에서 자동차로 30∼40분 거리에 있는 대규모 아파트단지 왕징신청(望京新城).단지 전체의 2만여가구 가운데 1500여가구(5000∼6000명·베이징시 전체 2만 5000명 추산)의 한국인들이 모여 살아 ‘베이징 속의 작은 서울’로 불리고 있는 곳이다.
“불편한 점이 전혀 없어요.전화 한 통화면 모든 것이 OK입니다.자장면은 물론 한국에서 2∼3일 전에 출시된 비디오도 배달해주고 있어요.” 이곳에서 2년6개월째 살고 있는 주부 조정숙(趙貞淑·41)씨는 “10위안(1600원) 이상 되는 상품이면 어떤 물건이든 집으로 배달해준다.”며 “때때로 한국에 살고 있는 것으로 착각된다.”고 말한다.
왕징신청에 한국인들이 몰려들기 시작한 것은 1998년부터.한국에 경제위기가 몰아닥치자 인근 지역의 아윈춘(亞運村) 등 부촌에 거주하던 한국인들이 임대료가 싼 이곳으로 옮기면서 초기 이주가 이뤄졌다.이후 아파트단지가 늘어나고 한국상품 가게가 하나둘 생기는 등 거주환경이 좋아지면서 한국인들이 몰려들어 4년여만에 ‘베이징의 코리아타운’을 형성한 것이다.
이곳에 한국인들이 몰리는 이유는 무엇보다 외국이라고 생각되지 않을 만큼 우리 말이 통용되고 한국사람들이 필요로 하는 상품을 구입할 수 있는 등 한국인들이 불편없이 쉽게 정착할 수 있는 덕분이다.아파트단지 규모가 크고 한국상품 상가가 완비돼 있는 등 거주환경도 쾌적한 데다 주택 임대료가 상대적으로 싼 점도 한국인을 유인하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왕징신청의 아파트 임대료는 30평형대인 100㎡ 기준으로 월 3500(56만원)∼4000위안(64만원)선,40평형인 130㎡는 월 4500위안(72만원)선으로 비교적 저렴한 편.해운 이삿짐 전문업체인 극동해운항공 함홍만(咸弘萬·48) 대표는 “이전에는 1개월에 평균 100여가구가 중국 베이징으로 이사왔으나 최근 들어서는 150여가구로 크게 늘었다.”며 “이중 80∼90%가 왕징신청으로 몰려들고 있다.”고 전한다.
왕징신청은 한국인들이 몰려 있는 만큼 한국인들이 생활하는 데 필요한 모든 것들을 갖추고 있다.24시간 편의점과 식료품 가게·미용실에 한국 음식점도 성업중이다.자장면·짬뽕·탕수육은 물론 최근에는 솥뚜껑 삼겹살집까지 등장했다.올해 안으로 설렁탕집과 한정식 등 한국 음식점 5곳이 추가로 개업한다.뿐만 아니다.한국인이 투자한 왕징병원이 한국인 환자들을 돌보고 있으며, 3㎞쯤 떨어진 화자디(花家地)에는 한국국제학교가 있다.
위성 안테나를 설치하면 한국 TV방송도 마음대로 시청할 수 있다.지난 6월월드컵 축구대회 때는 한국 응원열기로 시끌벅적했다.스페인전이 끝났을 때는 500여명의 한국인들이 뛰쳐나와 ‘대∼한민국’을 외치는 바람에 중국 공안들이 출동하는 해프닝이 벌어지기도 했다.3년 전 이곳에 입주한 이재욱(李在郁·38) 한중직업기술학교 교장은 “주말마다 한국인 교회,사찰,성당을 찾는다거나 집집마다 한국 신문을 구독하고 위성 TV를 시청하고 있다.”며 “이곳 한국인들은 한국과 문화적 시차가 없는 생활을 하고 있다.”고 강조한다.
왕징신청 내에서 한국인들이 가장 많이 거주하는 곳은 왕징시위안(望京西園) 4취(區).5000여가구중 한국인이 1000가구 가까이 된다.이곳 한국인들이 즐겨찾는 곳은 지난 4월 문을 연 한국상품 전문상가인 왕징청(望京城) 상가.베이징시 당국이 국가명이 들어가는 건물 이름에 난색을 표명해 ‘왕징성’으로 허가났으나,한국인들은 그냥 ‘왕징 한국성’으로 부른다.
한국상품을 저렴한 가격으로 파는 하나마트,순한국식으로 지은 자연옥 찜질방,솥뚜껑 삼결살로 유명한 고향산천 식당,4구 게임을 즐길 수 있는 유성 당구장,870평의 초대형 가족노래방 등등.이밖에 주방용품·미장원·화장품 가게는 물론 속옷·건강식품·골프용품점,항공사 등 20여곳의 한국상품을 파는 가게가 입주해 있다.
왕징청 상가 외에도 한국인들이 자주 찾는 대형 상가가 3곳이나 있고 아파트단지 곳곳에 한국상품을 파는 가게들이 즐비하다.왕징백화점,한국 의류가게인 여인천하,한국식 자장면집인 자금성,한국식 피자집인 피자리아,한국 음식재료를 완비하고 있는 낙원식품 등.더욱이 태권도장과 헬스장은 말할 것도 없고 골프연습장까지 들어서 한국인들을 유혹하고 있다.따라서 한국인들을 주요 고객으로 삼고 있는 부동산중개소도 주황부동산·신라부동산·조은부동산 등 20여곳에 이른다.
왕징신청은 한국문화를 보급하는 창구역할이라는 긍정적 기능도 한다.태권도 도장의 수련생이나 한국 음식점을 찾는 손님의 절반 이상이 중국인이다.
그러나 한국인들이 큰 불편이 없다고 만족해 하는 반면 같이 살고 있는 중국인들은 불만이 적지 않다.이곳에 거주하는 중국인 위옌(于燕·44)은 “한국인들이 값이 싸다고 야채와 과일을 무더기로 사가는 모습을 볼 때마다 물건 값이 오르지 않을까 가슴이 조마조마하고,한국인들의 소비수준을 따라가야 하는 것도 부담”이라며 “더욱이 한국 젊은이들이 술에 취해 고성방가를 하는 등 소란을 피우는 것은 볼썽사납다.”고 귀띔한다.
이처럼 문화적 차이로 인해 불편한 점이 있는 것도 사실이지만,왕징신청의 한국인과 중국인들은 서로 어울리면서 비교적 잘 지내고 있다.한국인을 상대로 안마소를 운영하는 어우양취안(歐陽泉·36)은 “처음엔 한국인들이 못 산다고 무시하는 것같아 기분이 나빴다.”며 “하지만 한국 손님들이 찾아오면서 사귀다 보니 한국인들의 세심하고,불의를 보면 참지 못하는 점이 마음에 들어 오히려 중국인 친구들보다 더 가깝게 지내고 있다.”고 전한다.
왕징신청의 코리아타운은 앞으로도 더욱 확대될 것으로 보인다.베이징시 당국이 2008년 올림픽을 앞두고 왕징신청에 60만가구의 아파트단지를 건설한다는 계획에 따라 아직도 공사가 한창 진행되고 있다.왕징신청 서쪽의 다시양신청에 200여가구,서북쪽의 난후(南湖)지역에도 300여가구의 한국인이 살고있는 등 ‘베이징 속의 작은 서울’은 점차 주변지역으로 확산되고 있다.
khki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