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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규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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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세종은 능행·온천행 통해 백성과 소통

    세종은 능행·온천행 통해 백성과 소통

    조선시대 세종대왕의 잦은 온천행과 능행은 백성과 소통하고 국정 현안을 긴밀히 수행하기 위한 것이 주된 목적이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박현모 한국학중앙연구원 연구교수는 16일 ‘세종의 공간활용의 정치’라는 제목의 논문을 통해 세종대왕의 동선(動線)을 분석, 조선초 국왕의 활동공간과 정치적 재량권의 상관관계를 밝혔다. 논문에 따르면 세종은 재위 기간 동안 모두 6차례에 걸쳐 온천행(짧게는 18일, 길게는 72일)을 단행했다. 세종은 도성 밖에서 백성들의 고통을 눈여겨 보고 새겨들었던 만큼 어가가 지나가는 곳에는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어 자연히 백성과 소통의 기회를 가졌다. 세종은 특히 백성들에게도 온천욕을 할 수 있게 하고, 온천욕으로 병 치료를 할 수 있도록 세심하게 배려했다. 세종은 “병든 사람들이 땀을 내면 병이 나으리라 했던 것이 오히려 악화돼 사망하는 자가 생기고 있다.”며 “온천욕을 해서 땀을 빼는 것이 좋은지, 나쁜지 널리 물어보아 시행하도록 하라.”고 강조했다. 세종이 백성과의 만남을 통해 민폐를 신속히 해결해줬기에 백성들로부터 신뢰와 존경을 한몸에 받은 것이다. 논문은 세종의 온천행의 또다른 목적은 국정 현안을 긴밀하게 수행하기 위한 것이라고 강조한다. 박 교수는 “온천행은 중요한 비밀 프로젝트를 긴밀히 논의하기 위해서도 행해졌다.”며 “재위 26년 청주 초수리 온천행은 보수파 최만리 등을 피해 집현전 학사들과 훈민정음 창제의 막바지 작업을 비밀리에 하기 위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최윤덕 장군이 여진족 토벌에 나서는 가운데 온천행을 감행한 것은 여진족을 속이기 위한 기만책이었다는 주장도 제기한다. 박 교수는 능행 역시 세종의 소통정치의 주요 채널로 활용됐다고 지적한다. 세종은 27차례에 걸쳐 한양 인근과 개성에 있는 왕릉을 참배했다. 대상은 태조릉과 태종릉, 그리고 태조의 정비릉이다. 한 예로 세종은 재위 19년 태조릉과 태종릉을 참배하고 돌아오면서 들판에 나아가 농사 현황을 알아보는 등 백성들의 목소리를 들었다. 세종은 일산(日傘)과 부채를 쓰지 않고 들판을 지나다가 “벼가 잘 되지 못한 곳에선 반드시 말을 멈추고 농부에게 까닭을 묻고 마음이 아파 “점심을 먹지 않고 돌아오곤 했다.”고 세종실록은 적고 있다. 세종은 이처럼 백성들과 직접 만나는 기회를 자주 가짐으로써 신하들의 장벽에 둘러싸이지 않고 국왕의 재량권을 발휘할 수 있었던 것이다. 박 교수는 이같은 내용의 논문을 18일 서울 역사박물관에서 열리는 세종시대 재조명 학술대회 ‘조선초 한양의 공간과 정치’에서 발표할 예정이다. 김규환기자 khkim@seoul.co.kr
  • 부모님 손잡고 영화관 가요

    부모님 손잡고 영화관 가요

    여름방학과 휴가시즌이 다가오면서 극장가에 온가족이 함께 즐기는 가족영화가 잇따라 등장하고 있다. 탈북자의 아픔을 리얼하게 그려낸 ‘크로싱’과 애니메이션 ‘쿵푸 팬더’가 지난달 개봉된 데 이어 애니메이션 ‘스페이스 침스’와 ‘도라에몽’, 초특급 모험영화인 ‘님스 아일랜드’가 오는 17일 개봉을 앞두고 있다. ●크로싱-탈북자가족의 엇갈린 비극 차인표 주연의 ‘크로싱’(감독 김태균)은 극심한 경제난에 시달리는 북한의 참상과 탈북의 아픔을 가감 없이 담아낸 작품이다. 아픈 아내의 약을 구하기 위해 중국으로 탈북한 주인공인 용수가 계속해서 가족과 엇갈리는 비극적인 드라마. 미국과 유럽 등지에서 시사회를 열어 호평을 받았을 정도로 해외에서 더 잘 알려져 있다. 영화는 비교적 차분하고 객관적인 시선으로 바라보려는 흔적이 곳곳에 배어 있다. 때문에 ‘엄마 없는 하늘 아래’와 같은 ‘최루성’ 가족 드라마와는 분명히 거리를 두고 있다. 하지만 지나치게 건조한 시각을 견지한 나머지 눈물의 카타르시스를 잔뜩 기대한 관객들의 누선(淚腺)을 자극하기에는 다소 역부족이었다. ●쿵푸 팬더-몸치 팬더 포의 씩씩한 활약 주인공인 몸치 식신 팬더 포가 뚱뚱하고 지독하게 느린 신체적 약점을 극복하고 쿵푸의 고수로 성장하는 과정을 그린 ‘쿵푸 팬더’. 모두가 즐길 수 있는 오락 작품으로 만드는 데 탁월한 할리우드의 솜씨를 잘 보여주는 영화이다. 중국이 자랑하는 ‘쿵푸’와 ‘팬더’, 두 가지 요소를 절묘하게 결합해 관객의 호기심을 한껏 자극한다. 캐릭터들의 생생한 개성과 유머, 흥겨운 액션과 속도감 있는 이야기 전개가 시각적 즐거움을 전해준다. 팬더 포는 장난기 많은 개성파 배우 잭 블랙, 포를 훈련시키는 사부 역은 더스틴 호프먼, 카리스마 넘치는 날렵한 타이거리스 역은 앤절리나 졸리, 유머러스하고 편안한 몽키 역은 청룽(成龍)이 각각 캐릭터의 특징에 맞게 목소리 배역을 맡아 재미를 배가시켜 준다. 특히 스토리(제니퍼 여 넬슨)와 레이아웃(전용덕) 총책임자로 엔딩 크레디트에 오른 한국인의 이름이 인상적이다. ●스페이스 침스-특수임무 침팬치들의 우주모험 성인보다 어린이 관객을 겨냥하는 애니메이션 ‘스페이스 침스:우주선을 찾아서’는 사람보다 영리한 침팬지들이 미국우주항공국(NASA)의 특수 업무를 수행하는 모험담을 다룬 작품이다. 침팬지들의 모험이라는 기본 컨셉트에 다양한 개성의 캐릭터들과 유머도 풍성하다. 세밀한 캐릭터 묘사나 우주 행성에 대한 풍부한 상상력 역시 가족 관객들이나 애니메이션 팬들을 만족시키기에 충분하다. 가수 MC몽과 개그우먼 신봉선이 남녀 주인공 캐릭터를 연기했으며, 국내 극장에서는 모두 더빙 판으로 상영된다. ●도라에몽-미래에서 온 로봇과 벌이는 에피소드 일본의 대표적인 애니메이션 ‘도라에몽-진구의 마계대모험’은 덜렁이 사고뭉치 초등학생 진구와 만능 로봇 고양이 도라에몽이 벌이는 모험과 에피소드를 다룬 작품이다. 미래에서 온 로봇 도라에몽이 어린이들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여러가지 장비로 마법을 펼치는 것이 가장 큰 매력이다.‘도라에몽’은 1969년 만화로 첫선을 보인 이후 40년 가까이 어린이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데, 일본에선 해마다 도라에몽 새 극장판 개봉과 함께 방학을 맞는다고 할 정도로 인기다. ●님스 아일랜드-미지의 섬에 갇힌 소녀 구출기 조디 포스터 주연 ‘님스 아일랜드’는 남태평양 피지제도 미지의 섬에 홀로 있는 소녀를 구하기 위해 여행하는 베스트셀러 작가의 모험담을 다룬 작품. 지도에도 없는 비밀의 섬에 사는 님 역은 제2의 다코타 패닝으로 떠오른 아비게일 브레스린, 광장 공포증을 가진 엉뚱한 작가 알렉산드라 로버 역은 조디 포스터, 님의 아버지와 세계적인 영웅 알렉스 로버의 1인2역은 제라드 버틀러가 맡아 지상 최대의 모험쇼를 벌인다. 김규환기자 khkim@seoul.co.kr
  • 205편 영화 뭐부터 볼까?

    205편 영화 뭐부터 볼까?

    경기도 부천에서 ‘영화 한마당’이 펼쳐진다. 제12회 부천 국제 판타스틱 영화제(PiFan 2008)가 18∼27일 부천시민회관과 부천시청을 비롯해 복사골 문화센터,CGV 부천점 등 11개 상영관에서 열린다. 이 기간 동안 39개국에서 출품한 영화 205편(장편 125편, 단편 80편)이 상영된다. 한상준 부천 국제 판타스틱 영화제 집행위원장은 “이번 영화제는 관객 입장에서 영화의 성격을 알고 선택할 수 있도록 장르를 좀 더 세분화한 만큼 마니아와 일반 관객을 동시에 만족시킬 것”이라고 밝혔다. 이번 영화제의 특징은 ‘하이브리드’(혼종). 개막작으로 선정된 이스라엘 작품 ‘바시르와 왈츠를’은 올해 칸 국제영화제 경쟁부문에 출품돼 호평받은 영화이다. 이스라엘 작품이지만, 프랑스와 독일의 자본 합작으로 제작됐다. 폐막작 곽재용 감독의 ‘사이보그, 그녀’도 한국과 일본의 합작품이다. 소년과 소녀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액션에서 멜로까지 아우르며 여기에 시간여행이라는 SF적 요소까지 더한 작품이다. 경쟁 부문인 ‘부천 초이스’섹션에서는 왕따 소년이 뱀파이어 소녀와 친구가 되는 ‘렛 미 인’(스웨덴), 세계적인 비주얼 아티스트들이 공포·악몽을 주제로 만든 6개의 에피소드로 구성된 ‘어둠 속의 공포’(프랑스), 초인적 힘을 지닌 슈퍼 영웅들의 전투를 그린 ‘오파파티카’(태국), 정신이상 살인마와 스톡홀름 증후군에 빠진 소녀의 탈출극인 ‘TBS’(네덜란드) 등이 상영된다. 오는 8월7일 개봉 예정인 한국 공포영화 ‘고死:피의 중간고사’도 관객들을 미리 만난다. 장르영화 신작 30편을 상영하는 ‘월드 판타스틱 시네마’ 섹션은 청소년들의 살인 내기라는 끔찍한 실화를 소재로 한 ‘세븐 데이 선데이’(독일), 남미형 범죄 스릴러물 ‘사타나스:살인자의 초상’(콜롬비아), 살해당한 사람이 연예 스타로 환생해 복수를 한다는 ‘옴 샨티 옴’(인도) 등 현실과 환상의 경계를 무너뜨리는 작품들로 유쾌한 영화적 체험이 되기에 충분하다. 가족 관객을 위한 ‘패밀리 판타’ 섹션에서는 판타지 어드벤처 ‘다란:하얀 기린의 모험’(네덜란드), 소년과 유령의 가슴 찡한 우정을 그린 ‘유령친구 부트나스’(인도), 유치원생의 줄다리기 대회를 소재로 한 ‘으으 드림팀’(태국)이 있다. 흑백영화의 추억을 되살려주는 작품들도 상영된다. 한국영화 회고전인 ‘코드네임 도란스’는 한국과 일본, 홍콩을 배경으로 한 액션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김수용 감독의 첩보극 ‘동경특파원’, 영화배우 박노식이 연출한 ‘악인이여, 지옥행 급행열차를 타라’ 등 한 시대를 풍미했던 장르영화 8편이 선보인다. 김규환기자 khkim@seoul.co.kr
  • “소수언어 살려야 민족·국가간 갈등 줄인다”

    “소수언어 살려야 민족·국가간 갈등 줄인다”

    “세계화의 여파로 세계의 언어가 거대 언어, 즉 영어·중국어·프랑스어·독일어 등으로 급격히 수렴되다 보니 전 세계 4000∼6000개 언어들 가운데 절반 이상의 소수 언어들이 사멸 위기를 맞고 있습니다. 이 때문에 서로간의 의사 소통이 어려워지면서 여러가지 갈등을 빚어내고 있습니다.” ‘언어학 올림픽’으로 불리는 제18차 세계언어학자대회에 21∼26일 고려대 인촌기념관에서 열린다. 이번 대회에 참석하는 학자들은 이런 맥락에서 “선진국과 후진국간, 민족간에 일어나는 갈등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소수 언어들을 생존·유지시키는 게 바람직하다.”는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아시아에서 두번째 열리는 이번 대회의 주제는 ‘세계 언어의 통일성과 다양성’. 유네스코가 올해를 ‘세계 언어의 해’로 정한 만큼 소수 언어를 보호하려는 노력과도 맥이 통한다. 세계 언어학계의 거물인 수전 로메인 영국 옥스퍼드대 교수, 수전 피셔 미국 캘리포니아주립대 교수, 로렌스 혼 미 예일대 교수 등 세계 70여개국 1500여명의 언어학자들이 모두 850여편의 논문을 발표한다. 로메인 교수는 ‘언어의 권리:국제화 세계 안에서의 인류 발전과 언어 다양성’을, 피셔 교수는 ‘동양과 서양의 수화’라는 제목으로 특별 강연한다. 로메인 교수는 먼저 사멸 위기를 맞고 있는 세계 소수 언어의 보호에 주목한다. 그는 “창의적 사고를 잘 하기 위해서는 자기 모국어로 해야 한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면서 “세계 속의 다양한 언어도 천연자원처럼 보존·유지하기 위한 획기적이고 철저한 계획 수립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피셔 교수는 청각 장애자들을 위한 수화도 민족이나 지역에 따라 차이가 있다고 역설한다. 그는 “수화는 기본적으로 국경을 초월해 의사소통을 할 수 있는 보편성을 지니고 있다.”면서도 “그러나 미국과는 달리 그리스에서는 고개를 끄덕이는 게 부정을 뜻하는 등 수화에서도 지역과 민족적 차이가 있다.”고 강조한다. 대회 조직위원장을 맡은 이익환 연세대 명예교수는 “대회의 주제가 ‘세계 언어의 통일성과 다양성’인 만큼 언어의 보편성 내지 보편문법 확립에 이바지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규환기자 khkim@seoul.co.kr
  • 세계를 움직인 왼손잡이 29人

    람세스 2세와 알렉산더 대왕, 율리우스 카이사르, 잔 다르크, 나폴레옹, 빌 클린턴…. 세계 인구의 90%에 가까운, 압도적 다수를 차지하는 오른손잡이들을 제치고 세계 역사를 쥐락펴락한 위대한 왼손잡이들이다. 미국 작가이자 사회평론가인 에드 라이트가 쓴 ‘왼손이 만든 역사’(송설희·송남주 옮김, 말글빛냄 펴냄)는 이집트의 람세스 2세부터 미국의 빌 클린턴 전 대통령에 이르기까지 세계 역사를 바꾼 왼손잡이 29명의 삶을 재조명한 책이다. 저자는 이 왼손잡이들의 공통적 성격과 개인적 성격 등을 조목조목 살핀다. 책에 따르면 왼손잡이는 오른손잡이보다 문제 해결능력이 뛰어나다. 직관력과 남들과 잘 화합하는 감정이입 능력이 탁월하며, 유연하게 사고할 수 있는 수평사고 능력과 실험정신도 갖추고 있다. 이를테면 람세스 2세는 역사상 최초의 평화조약을 맺는 등 수평사고 능력과 실험정신, 알렉산더대왕은 전투현장에서의 직관력, 나폴레옹은 직관력과 수평사고 능력, 빌 클린턴은 수평사고 능력, 실험정신이 남들보다 뛰어나다. 독학으로 위대한 업적을 이뤄냈다는 점도 왼손잡이의 또 다른 강점으로 꼽힌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 미켈란젤로, 마크 트웨인, 찰리 채플린, 헨리 포드는 제대로 된 교육을 받지 못했지만 책보다 경험을 통한 학습에서 큰 영향을 받아 위대한 업적을 이뤘다. 물론 왼손잡이들이 화를 잘 내는 등 좋은 점만 갖고 있는 것은 아니다. 술에 취해 말다툼을 벌이다 친구를 창으로 찔러 죽인 알렉산더대왕부터 심판에게 욕을 해대는 ‘테니스 코트의 악동’ 존 매켄로에 이르기까지 욱하는 성질을 참지 못하는 기질이 쉽게 발견된다. 그러나 저자는 이런 대목에서마저 “그들의 삶에서 마주치는 차별에서 비롯됐을 수 있다.”고 말하는 등 지나치게 ‘왼손잡이 친화적’이란 인상을 줘 아쉬움을 남긴다.2만 4500원. 김규환기자 khkim@seoul.co.kr
  • 인간 세종의 삶과 고뇌 조명

    추리 작가 이상우(70)씨가 대하 역사소설 ‘대왕세종’(전3권, 집사재)을 냈다. 세종의 역사적 삶은 물론 내면의 인간적 고뇌까지 가감 없이 담아냈다. 소설은 세종이 왕이 되자마자 장인 일가가 살육당하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큰며느리의 폐빈, 형 양녕대군의 일탈, 아들 임영대군의 탈선, 세자빈의 동성애 사건 등을 겪으며 세종이 남모르게 속앓이하는 모습이 손에 잡힐 듯 선명하게 그려진다. 작가는 “‘대왕세종’은 임금 세종의 업적보다 인간 이도의 인간적 고뇌를 조명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면서 “소설 속에 등장하는 인물과 사건은 거의 모두 실록을 근거로 한 역사적 사실”이라고 밝혔다. 실천적 행정가 황희, 청백리의 표상 맹사성, 발명왕 장영실, 천재 음악가 박연 등의 이야기도 곁들였다. 장영실이 뇌물 혐의로 투옥되는 등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도 다뤘다. 각권 9800원. 김규환기자 khkim@seoul.co.kr
  • 伊현대사 되짚는 시간여행

    ‘장미의 이름’‘푸코의 진자’로 널리 알려진 기호학자이자 세계적인 작가인 움베르토 에코(76)가 다섯번째 소설을 내놓았다. 기억상실증에 걸린 주인공이 과거의 기억을 되살려가는 과정을 타임머신을 타고 시간여행하듯 종횡무진 넘나드는 ‘로아나 여왕의 신비한 불꽃’(전2권, 이세욱 옮김, 열린책들 펴냄). ●기억상실 주인공 추억과 사랑 되찾아 ‘로아나 여왕’은 하나의 ‘큰 이야기’와 하나의 ‘작은 이야기’가 마치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돌아가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이탈리아 파시즘에 관한 거대 서사에 자신의 첫사랑이라는 소소한 이야기가 절묘하게 결합돼 있다. 그런 만큼 고도의 집중력을 발휘하지 아니하면 읽어내기가 쉽지 않다. 옮긴이 이세욱씨는 “무솔리니 시대의 파시즘 등 이탈리아 현대사에 대한 이해가 없으면 따라잡기가 쉽지 않다.”며 “그러나 조금 집중해 전체적 맥락을 파악하면 에코의 그 어느 작품보다 재미있게 읽을 수 있다.”고 말했다. 이번 작품은 소설 그 자체로서도 독특한 실험성을 띤다. 소설에는 단테의 ‘신곡’ 등 고전 문학에서부터 영국 작가 렌 데이턴의 첩보소설 ‘국제첩보국’ 등 현대 대중소설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문학 텍스트들이 정교하게 얽혀져 있다. 그 위에 1940∼50년대 이탈리아를 생생하게 되살리게 해주는 이미지들을 섞고 작가 자신의 개인적 추억까지 불어넣었다. 그런 복잡다단한 작업을 거쳐 탄생한 것이 바로 이 ‘삽화소설’이다. 소설은 밀라노에 사는 고서적 전문가 잠바티스타 보도니(일명 ‘얌보’)가 심혈관 계통의 사고로 혼수상태로 빠졌다가 깨어나지만 기억상실증에 걸리는 것으로 시작된다. 그런데 ‘얌보’의 기억상실증은 좀 특이하다. 공적인 기억이나 백과사전적인 기억은 그대로 남아 있지만 개인적인 기억은 모조리 사라져버린 것이다. 온갖 소설의 구절들이나 곱셈과 피타고라스의 정리는 뚜렷하게 기억나지만 정작 자신의 이름은 나올듯 말듯 혀끝에서 맴돈다. ‘얌보’의 부인은 개인적 기억을 되살려주기 위해 그의 고향인 솔라라로 데리고 간다. 시골집에서 ‘얌보’는 다락방에 잔뜩 쌓여 있는 수많은 읽을 거리들을 만난다. 장난감과 판화, 만화, 모험소설, 추리소설, 파시스트의 정치선전 팸플릿…. 그의 손때가 묻은 읽을 거리들은 단순한 읽을 거리가 아닌 추억이다. 이 시간여행을 통해 ‘얌보’는 첫사랑을 되살리고 전쟁을 만나며 자기 삶과 정면으로 마주한다. 그러나 자신만의 기억은 떠오르지 않고 그 수많은 자료들이 자신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도 알 수 없어 ‘얌보’는 더 큰 혼란에 빠지고 만다. ●에코 “인터넷은 아주 멍청한 신이다” 고대, 중세에 달통한 에코는 온라인 매체와도 친밀한 관계를 맺고 있다. 그렇다고 인터넷광은 아니다. 에코는 인터넷 이용 시간의 대부분을 이메일과 날씨를 확인하는 데 사용한다.“인터넷을 통해서만 정보를 접하게 된다면 우리는 남들과는 전혀 고립된 나만의 백과사전을 만드는 우를 범하게 된다. 인터넷은 모든 정보를 담고 있되 좋은 것과 나쁜 것을 구분하지 못한다. 인터넷은 신이다. 하지만 아주 멍청한 신이다!” 에코의 ‘인터넷관(觀)’을 엿보게 하는 대목이다. ‘로아나 여왕’의 출간에 맞춰 소설 속에 등장하는 작품인 에밀리오 살가리의 ‘산도칸-몸프라쳄의 호랑이들’, 에드몽 로스탕의 ‘시라노’, 빅토르 위고의 ‘웃는 남자’ 등 세 편의 소설도 이번에 함께 나왔다. 각권 1만 800원. 김규환기자 khkim@seoul.co.kr
  • “20대에 짝퉁 구별 의미없어”

    “20대에 짝퉁 구별 의미없어”

    “지금까지는 컴퓨터와 말을 거는 게 고작이었죠. 이제 정식 등단한 만큼 지면을 통해 사람들과 소통할 수 있게 됐다는 사실이 너무 기쁩니다.” 올해 제32회 오늘의 작가상을 수상하며 ‘문단의 신데렐라’로 등장한 고예나(24)씨. 그가 첫 장편소설 ‘마이 짝퉁 라이프’(민음사)를 펴냈다.20대들의 사랑과 성풍속도를 그렸다. 소설은 연애에 실패한 뒤 ‘진짜’ 사랑을 거부하며 ‘가짜’ 사랑에 위안을 받는 주인공 진이를 비롯, 성형수술에 집착하는 친구, 가짜 집인 미니홈피에 열광하는 또 다른 친구 등 짝퉁 인생의 단면들을 보여준다. “진짜와 가짜를 구별하는 것 자체가 부질없다고 생각해요. 가상공간인 인터넷에 열광하는 젊은 세대의 경우는 특히 가짜에 대한 거부감이 덜한 편입니다. 심지어 짝퉁 명품에 열광하기도 하죠.” 작가는 세상사의 진위를 가르는 구분 자체가 애매모호하다는 생각에서 이번 작품을 쓰게 됐다고 했다. “여성들이 가짜에 의존하고 그것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 세태에 대한 고발적 성격을 띤다는 점에서 일반적인 ‘칙릿(여성 취향 소설)’과는 다르다.”는 작가는 현재 구상중인 작품도 이번 소설과 일맥상통한다고 귀띔한다.“온라인과 오프라인상의 서로 다른 자아에 대한 이야기를 써보고 싶어요.” 1만원. 김규환기자 khkim@seoul.co.kr
  • “실용주의 거봉의 삶 자유롭게 그렸죠”

    “실용주의 거봉의 삶 자유롭게 그렸죠”

    “‘다산’이라는 거대한 준봉을 넘었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한결 홀가분해졌습니다. 이제는 그 어떤 소설도 쉽게 써내려 갈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이 생기는군요.” 소설가 한승원(69)이 조선 실학자 정약용의 삶을 파고든 역사소설 ‘다산’(전2권, 랜덤하우스)과 시집 ‘달 긷는 집’(문학과지성사)을 동시에 펴냈다. 다산의 제자 초의 스님을 다룬 ‘초의’(2003), 다산의 둘째형 정약전을 그린 ‘흑산도 하늘 길’(2005), 다산의 후학 김정희를 복원한 ‘추사’(2007)에 이어 내놓은 시리즈 완결편이다.‘초의’ ‘흑산도 가는 길’ ‘추사’는 모두 ‘다산’을 위한 전주곡에 불과했던 셈이다. ●작가 스스로 유폐된 삶 선택… 토굴 짓고 글쓰기 “10여년 전 다산 공부를 시작하면서 소설로 한번 써보고 싶었습니다. 다산은 18년간 전남 강진에 유배돼 갇혀 살면서도 헛되이 보내지 않고 500권이 넘는 책을 쓰면서 철저히 자기 삶을 승화시킨 분이었습니다.” 작가 또한 스스로 ‘유폐의 삶’을 택했다.”나를 가두면 뭔가 큰 일을 이루지 않을까 싶어 13년 전 서울을 떠나 전남 장흥으로 내려와 토굴을 짓고 글을 쓰기 시작했지요. 그 결과물이 바로 ‘다산’입니다.” 소설은 다산이 결혼 60주년 회혼일(回婚日)에 숨을 거두는 장면에서 시작된다.“‘다산’을 시간 순으로 다루진 않았습니다. 다산의 임종을 전후해 시간을 넘나들며 영상적인 기법으로 처리했습니다.” 역사소설의 딱딱함을 조금이라도 덜어주기 위한 배려라는 작가는 “그림으로 치면 남종화처럼 자유롭게 썼다.”고 말했다. 그러다 보니 정조 임금의 승하 후 1801년 서용보의 간언으로 다산이 형제들과 함께 잡혀들어가는 장면에서 다시 정조의 총애를 받으며 참 선비의 길을 걷던 때로 거슬러 올라가는 등 긴박감 넘치는 구성이 가능했다. 물론 다산이 오랜 유배를 통해 절대 고독을 체험하고 이를 극복하려고 노력하는 인간적 고뇌도 생생하게 그렸다. “다산은 유학자였지만, 천주교·불교·도교 등 다른 종교와의 교유가 폭넓게 이뤄진 까닭에 사상체계가 방대하죠. 때문에 이들 사상을 이해하기 위해 나름대로 많은 공부를 했습니다.” 다산의 저술은 물론 천주교의 천주실의·칠극, 도교의 노장서적, 유마경·화엄경의 불경, 사서삼경 등 200권 이상을 독파했다는 것이다. 작가는 “‘실사구시’를 중시하는 다산은 실용주의를 앞세운 새 정부가 들어서면서 특히 재조명되고 있는 인물”이라며 ”다산은 성인의 뜻에 따라 백성을 이끄는 것을 ‘사업’이라 했고 이런 사업을 하는 사람을 선비로 봤다.”고 설명한다.“단지 밥밖에 모르고, 그 천덕스러운 밥을 위해 백성들을 속이는 실용주의와는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는 게 그의 말이다. 각권 1만원. ●샤머니즘과 불교가 융합된 원초적 생명의 세계 함께 나온 시집 ‘달 긷는 집’은 소설을 집필하는 틈틈이 쓴 71편의 시를 묶은 것.‘열애일기’(1991),‘사랑은 늘 혼자 깨어 있게 하고’(1995),‘노을 아래서 파도를 줍다(1999)’에 이어 네번째로 펴낸 시집이다. 내 몸을 소진시켜 진리를 추구한다는 뜻이 담긴 ‘달 긷는 집’은 한과 샤머니즘, 불교가 융합된 원초적 생명의 세계를 진솔하게 그려냈다.“우주를 화려하게 색칠하는 것이 꿈인 나는/피어나는 것이 아니고/혈서처럼 세상 굽이굽이에 시를 쓰는 것입니다.”(시 ‘꽃’중에서) 꽃과 바다, 구름 등 천하만상(萬象)이 불교적 색채 속에 오롯이 휘감겨 있다. 작가는 “살아가는 것 자체가 경계 없이 사유하는 것인 만큼 굳이 장르에 구애받지 않고 자유롭게 글을 쓰고 있다.”며 “내 시는 특별한 기교가 없고 쉽게 다가갈 수 있는 게 특징”이라고 밝혔다.“그동안 쓰고 싶었던, 인간의 근원적인 깨달음에 대한 이야기를 구상하고 있어요. 문학으로 삶의 시원을 탐구해보자는 것이지요.” 7000원. 김규환기자 khkim@seoul.co.kr
  • “한국과 그리스는 아픈 역사 공유”

    “한국과 그리스는 아픈 역사 공유”

    “한국과 그리스는 식민지 압제와 전쟁이라는 아픈 역사를 공유하고 있습니다. 이 소설은 두 차례 한국에 체류하면서 싹튼 한국인들에 대한 사랑을 토대로 한 작품입니다.” 6·25전쟁에 장교로 참전했던 그리스 정교회 성직자가 실화를 바탕으로 식민지 조선의 이야기를 담은 소설 ‘송연 이야기’(안티쿠스 펴냄)를 냈다. 책 출간에 맞춰 서울에 온 저자 콘스탄티노스 할바차키스(79)씨가 19일 기자들과 만나 집필 동기 등을 밝혔다. 할바차키스는 휴전협정 이후인 1953년부터 1954년까지 유엔군 산하 그리스군 소대장으로 파견돼 전쟁의 상흔이 그대로 남아 있는 한국 사회를 경험했다.1955년 그리스 정교회 성직자가 된 그는 1967년 정교회 사제로 다시 한국에 와 6개월 동안 머물기도 했다. ‘송연 이야기’는 작가가 참전 당시 송연 출신 주민들을 만나 전해들은 이야기에다 사제의 신분으로 한국에 왔을 때의 기록을 보충해 1967년 탈고한 작품. 서울 북동쪽에 위치한 송연이라는 마을에 사는 한 가족을 중심으로 일제하 민중의 삶을 진솔하게 그렸다. 소설에는 이방인들에게는 낯설 수밖에 없는 씨받이 등의 한국 풍습도 소개돼 눈길을 끈다. 작가는 “나라마다 나름의 전통과 풍습이 있고, 그것을 존중한다.”며 “씨받이 이야기도 처음 들었을 때 전혀 놀랍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리스 내에서 소설을 비롯해 여러 권의 책을 쓰기도 한 작가는 전쟁 후 한국에서의 경험을 기록한 ‘한국:위대한 시간들’이라는 책을 1965년에 현지에서 출간하기도 했다. 작가는 “한국과 한국인들의 습성을 잘 모르는 상태에서 쓴 작품이어서 혹시 한국인들에게 누가 되지는 않을까 걱정이 된다.”고 출간 소감을 밝혔다. 글 사진 김규환기자 khkim@seoul.co.kr
  • 고립의 불안과 고통 해결책은 ‘소통’

    고립의 불안과 고통 해결책은 ‘소통’

    “한동안 지독한 슬럼프에 빠져 어려움을 겪었죠. 혼자 분투하던 시절의 글을 소설집으로 묶게 되니 기분은 좋습니다.” 조경란(39)은 이번에 펴낸 소설집 ‘풍선을 샀어’(문학과지성사)를 계기로 슬럼프를 벗어나 다시 글을 제대로 쓸 수 있는 용기가 생겼다고 했다. 소설집으론 2004년 ‘국자 이야기’ 이후 4년만이다. 이번 소설집엔 1인칭 ‘나’의 시점으로 쓰여진 여덟편의 단편이 실렸다. 저마다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비루한 주인공들이 소통을 통해 불안과 고통을 극복해가는 과정을 섬세한 필치로 담아냈다.“이번 소설집을 관통하는 키워드는 소통과 두려움입니다. 달리 말하면 소통에 대한 두려움이라고 할까요.” 그것은 또한 글쓰기에 대한 근본적인 회의와 늙어감에 대한 두려움이라는 작가 자신의 문제이기도 하다. 표제작 ‘풍선을 샀어’는 독일 유학을 마치고 돌아온 37세 철학도의 입을 통해 “한국에서 정말 필요한 것은 우정과 신뢰에 바탕한 대화와 휴식”임을 강조한 1인칭 소설. 풍선을 불어 날리며 절대고독 속에서도 희망의 단서를 잃지 않는 주인공 ‘나’의 이야기다. 또다른 수록작 ‘달팽이에게’‘형란의 첫번째 책’‘버지니아 울프를 만났다’‘밤이 깊었네’ 등도 타인과 벽을 쌓고 고립에서 벗어나지 못하던 주인공들이 소통을 통해 상처를 극복해가는 이야기를 다룬다. 자기 치유의 미덕이 돋보이는 작품들이다.1만원. 김규환기자 khkim@seoul.co.kr
  • [데스크시각] ‘시크릿’ & ‘여비서의 정사’/김규환 문화부 부장급

    [데스크시각] ‘시크릿’ & ‘여비서의 정사’/김규환 문화부 부장급

    자기 계발서 바람이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2005년 ‘마시멜로 이야기’로 시작된 자기 계발서 열풍은 요즘에도 ‘시크릿’과 ‘마시멜로 두번째 이야기’를 베스트셀러 순위 1·2위에 올려 놓을 정도로 거침없이 달리고 있다. 특히 ‘시크릿’은 지난해 6월 출간된 이후 1년간 베스트셀러 1위를 독식하며 판매 부수가 130만부를 넘어섰다.‘크리스찬을 위한 시크릿’‘3분 시크릿’‘부의 비밀’ 등 16종의 아류까지 쏟아져 나와 온통 서점가를 뒤덮고 있다. 자기 계발서 바람이 지속되는 이유는 자신의 경쟁력을 높이고 보다 나은 미래와 경제적 풍요를 이루기 위한 욕망 때문이 아닐까. 미국·일본 등 외국의 사례를 보면 대공황·버블붕괴 시기 등 경제적으로 어려운 시기일수록 자기 계발서의 판매가 늘어난 것처럼, 우리 사회도 외환위기 이후 자기계발의 필요성이 대두되면서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교훈과 성공담을 담은 자기 계발서가 폭발적인 인기를 끄는 만큼 효과적이냐 하는 데 대해서는 별로 동의하고 싶지 않다. 이 점에서는 ‘시크릿’이 오히려 중국의 성애소설 ‘여비서의 정사’보다 효과적이지 못하다고 생각한다. 주변 사람들을 보면 책의 내용에는 공감하지만, 실천의 추동력으로 작용하는 효과는 그다지 큰 것 같지 않다. 물론 ‘시크릿’과 ‘여비서의 정사’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책이다. 기자가 베이징에서 근무하던 때의 일이다. 지인 중 한 외국인은 중국어를 전공하지 않은 데다, 중국 연수 한번 가지 않은 상태에서 갑작스럽게 베이징 근무 명령을 받았다. 업무가 현지 신문이나 연구보고서 등을 신속하게 읽고 분석해 본국에 보고해야 하는 까닭에 높은 수준의 중국어 실력이 필요했다. 그래서 중국어 실력을 높이기 위해 역사·경제·경영 등 딱딱한 내용의 전문 서적을 읽으려고 밤새 씨름했다. 하지만 금방 흥미를 잃어 번번이 몇쪽밖에 읽지 못하고 그만두는 바람에 결국 허사로 끝나고 말았다. 이런 ‘절망적인 상황’에서 읽게 된 책이 ‘여비서의 정사’다. 속어 등 관용어가 많고 300쪽의 만만찮은 분량이어서 중국어 초보자가 읽기에는 쉽지 않지만, 내용이 워낙 자극적이다 보니 흠뻑 빠져 ‘완독’을 경험하게 됐다. 이 일을 계기로 자신감이 붙은 그는 이후 역사·경제·경영서적 등 폭넓게 읽게 돼 중국어 실력이 눈에 띄게 향상됐다. 조선시대 문신 백곡 김득신은 유명한 독서광이었다. 부친이 감사를 역임한 명문가 집안이었지만 머리가 나빠 열살이 돼서야 글을 배운 그는 좋은 작품들을 반복해 읽고 또 읽었다. 한유의 ‘사설’ 등은 1만 3000번 읽었고 ‘노자전’과 ‘중용’의 서문도 각각 2만번 읽었다. 즐겨 읽은 사기의 ‘백이전’은 무려 11만번을 읽었다. 간단없이 노력한 결과 비록 머리는 아둔했지만,59살에 과거에 급제하고 한시의 대가로 조선 중기 대표 시인이라는 문명(文名)을 떨쳤다. 자기계발은 결코 자기 계발서 책 자체에서 나오는 게 아니다. 무엇보다 읽은 내용을 얼마나 실천하느냐에 달려 있는 것이다.‘새벽형 인간이 되어라’‘기쁘게 일하라’‘인간관계의 진정한 승리자가 되어라’ 등은 모두 옳은 말이지만, 말로만 하지 말고 그것을 실행에 옮기는 게 중요하다.“재주가 남만 못하다고 스스로 한계 짓지 말라/나보다 어리석고 둔한 사람도 없겠지만/결국에는 이룸이 있었다/모든 것은 힘쓰는데 달렸을 뿐이다”(김득신이 스스로 지은 ‘묘갈명’(墓碣銘)에서) 여름 휴가철이 다가온다. 피서를 떠나 쌓인 피로를 푸는 것도 괜찮을 테고 양서(良書)를 골라 읽는 것도 좋은 일이다. 진정코 자기계발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이 책 저 책 읽는 데 연연할 게 아니라, 양서를 한권 읽고 교훈적인 한 구절만이라도 아금받게 실천해 보는 것이 어떨까. 김규환 문화부 부장급 khkim@seoul.co.kr
  • “그는 젊은 詩의 거대한 뿌리”

    “그는 젊은 詩의 거대한 뿌리”

    ‘풀’의 시인 김수영의 시 세계를 되새기고 후배 시인들이 기념 시집을 헌정하는 김수영 40주기 기념 문학제가 16일 서울 홍대 앞 한 카페에서 열렸다. 이날 행사에는 시인의 아내 김현경씨와 여동생 김수명씨, 시집을 헌정한 김근·이원·이장욱·강정·김이듬·문혜진 등 시인과 독자 등 70여명이 참석해 시인의 문학혼을 기렸다. 이날 헌정한 기념 시집 ‘거대한 뿌리여, 괴기한 청년들이여’(민음사)는 시인이 세상을 뜬 해인 1968년 이후에 태어난 젊은 시인 40명이 그에게 바치는 젊은 시들을 묶은 것. 김경주, 손택수, 신용목, 심보선, 안현미, 이원, 이장욱 등 시인들은 김수영의 실험적이고 전위적인 작품들을 선보였다. 서동욱 시인은 기획의 말에서 “김수영 시인은 한국 사회가 서구 근대화 물결에 밀려 재래적 시작법이나 시적 접근이 어려울 때 전위적인 시적 모험을 통해 한국 시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면서 “독자들과의 만남을 통해 현 시점에서 김수영 시인의 시가 어떻게 반영돼 대중 속에 발현되고 있는지를 짚어보는 데 행사의 의의가 있다.”고 밝혔다. 김 시인의 대표시를 낭송한 김근 시인은 “‘사랑의 변주곡’을 낭송하다 보니 지금 우리가 처한 현실과 너무 맞아떨어졌다.”고 말했다. 한편 김수영 시인의 육필 원고를 모은 영인본 시집도 이달 중 나올 예정이다. 하버드대 한국문학 강사인 이영준씨가 고인의 부인 김현경씨가 소장하고 있던 육필 원고를 받아 편집했다. 영인본엔 김수영 시전집에 실린 시 176편 외에 방민호 서울대 교수가 2005년 발굴한 ‘음악’, 지난달 공개된 ‘김일성만세’등 새로운 원고가 추가될 예정이다. 글·사진 김규환기자 khkim@seoul.co.kr
  • 이생진 시집 ‘반 고흐, 너도 미쳐라’

    이생진 시집 ‘반 고흐, 너도 미쳐라’

    ‘섬’을 노래해온 이생진(79) 시인이 화가 빈센트 반 고흐의 삶에 흠뻑 녹아들어 쓴 시집 ‘반 고흐, 너도 미쳐라’(우리글 펴냄)를 내놓았다. 우리나라 섬 1000여개를 편력하며 ‘그리운 바다 성산포’ ‘거문도’에 관한 시 세계를 천착해온 시인이 ‘독도로 가는 길’에 이어 1년만에 낸 시집이다. “고흐의 작품 전시회에 들른 어린이들이 너무나 진지하게 설명을 들으면서 감상하는 거예요. 이 모습을 보고 고흐의 삶을 통해 어린이들이 좋은 영향을 받을 수 있는 데 도움을 주자는 마음에서 시로 표현하게 됐습니다. 한편으로는 고흐의 삶을 통해 나의 인생을 한번 정리해보고도 싶었습니다.” 이번 시집에는 시인 자신이 고흐가 되고, 말을 건네는 친구도 되면서 정갈한 언어로 써내려간 67편의 시가 실렸다.“고흐는 만년에 668통의 편지를 쓰고 에밀 졸라, 빅토르 위고 등의 작품을 탐독하는 등 문학을 잘 이해한 화가인데다 드라마틱한 인생도 그렇고….” 고흐의 삶이 시의 모티프로 삼기에는 ‘안성맞춤’이었다는 얘기다. 시인이 고흐와 한몸이 돼 쓴 시들인 만큼 고흐의 행복과 절망, 사랑과 그리움, 고갱에 대한 애증 등을 오롯이 담아냈다.“남들이 나를 따뜻이 대해줬던들/나는 나만으로도 만족했을 텐데/사람들은 나를 짐승처럼 여기니/내가 나를 동정하지 않으면/나를 돌려받을 수 없어/나는 왜 이리 불쌍한가”(‘자화상’ 중에서) 고흐의 그림에서 받은 느낌을 고흐의 시각에서 쓴 시들도 그림과 함께 수록됐다.“누군가 울고 있다/꺼져가는 벽난로 옆에 앉아/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울고 있다/저렇게 머리가 벗겨지도록/울어야 할 까닭이 무엇인가/갈수록 엎질러진 가슴을 채우기 위해/저녁노을이 된 등줄기/그것은 고흐에게만 매달린 통증이다”(‘울고 있는 노인’ 중에서) “이 나이가 되도록 글을 쓸 수 있다는 자체가 너무 감사하다.”는 시인은 “앞으로 죽음을 의식해가며 죽음의 세계까지도 나의 시 세계로 끌어들이고 싶다.”고 말했다.9000원. 김규환기자 khkim@seoul.co.kr
  • 정미경 단편집 ‘내 아들의 연인’

    정미경 단편집 ‘내 아들의 연인’

    소설가 정미경(48)이 단편집 ‘내 아들의 연인’(문학동네)을 펴냈다.‘발칸의 장미를 내게 주었네’ 이후 2년만이다. 표제작 ‘내 아들의 연인’과 이상문학상 수상작 ‘밤이여, 나뉘어라’ ‘들소’ ‘바람결에’ ‘매미’ ‘시그널 레드’ ‘너를 사랑해’ 등 7편이 실렸다.“남들은 절대 할 수 없는 나만의 이야기를 하고 싶다.”고 작가 스스로 밝혔듯, 소설은 이 땅의 비루한 인간 군상의 이야기를 여과 없이 드러낸다. ‘내 아들의 연인’은 젊은 시절 재수생과의 풋풋했던 추억을 뒤로 하고 ‘교활한 계산법’으로 남편을 선택해 강남의 ‘유한 가정주부´가 된 주인공이 가난한 여자친구를 사귀다가 헤어지는 아들을 지켜보며 회한에 젖는다는 이야기.‘밤이여, 나뉘어라’는 한 천재 의사가 기억과 욕망에 관한 신약을 개발하려다 파멸해가는 모습을,‘바람결에’는 인공수정을 통해 형식적인 부부관계의 탈출구를 마련하려다 좌절하는 부부의 이야기를 다뤘다. 작가는 “이 책에 담을 첫 소설을 구상할 무렵에는 욕망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어보려 했다.”면서 “그러나 모아놓고 보니, 생긴 대로 살아야 하는 조잔한 존재들의 슬픔만이 자욱하다.”고 털어놨다.1만원. 김규환기자 khkim@seoul.co.kr
  • 소설 ‘꽃피는 고래’ 펴낸 김형경

    소설 ‘꽃피는 고래’ 펴낸 김형경

    “고도 산업사회로 진입하면서 우리 사회가 잃어가는 것들에 대해 어떻게 떠나보내고, 슬픔을 어떻게 극복해야 하는지 있는 그대로 드러내고 싶었습니다.” 중견 작가 김형경(48)이 3년만에 장편 ‘꽃피는 고래’(창비)를 펴냈다. 그는 2006년 심리치료 산문집 ‘천개의 공감’을 냈을 정도로 상처를 치유하고 달래는 데 일가견이 있는 섬세한 글솜씨의 작가다. 제목 ‘꽃피는 고래’는 고래잡이들 사이에서 통용되는 ‘꽃이 핀다.’라는 말에서 빌려 왔다. 고래가 급소에 작살을 맞고 도망가다 지쳐 있는 상황에서 또다시 작살에 급소를 맞았을 때 마치 피를 뿜어내는 듯한 마지막 숨을 뜻한다. “원래 구상은 환경에 대한 소설을 쓰겠다고 생각하고 10년 전부터 자료를 모아왔습니다. 하지만 막상 소설을 쓰려고 하니 환경이라는 주제가 다큐멘터리적 요소가 많아 좀더 구체적인 주제인 고래로 잡았습니다.” 소설은 열일곱살 소녀 ‘니은’이 갑작스러운 교통사고로 부모를 잃고 마음의 구멍을 어떻게 메워나가야 할지 몰라 방황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크나큰 상실감을 채울 수 없는 니은은 아빠의 고향 처용포를 찾는다. 울산시 장생포를 모델로 한 허구의 공간인 처용포는 소설 속에서도 국내 유일의 고래잡이 항구가 있는 곳이자 대형 공업단지로 변모하는 장소로 그려진다. 그곳에는 포경 금지령으로 잡지 못하는 ‘신화처럼 숨 쉬는 고래’, 금지령이 풀리기만을 기다리는 장포수 할아버지, 일흔이 넘어 한글을 배우러 다니는 왕고래집 할머니가 있다. 니은은 장포수 할아버지와 함께 배를 손보면서, 한편으론 왕고래집 할머니의 한글교실 숙제를 도와주면서 점점 마음 속 슬픔을 다스리는 법을 알아가게 된다. “주인공 니은뿐 아니라, 소설에 나오는 다양한 세대의 등장인물들 모두 상실의 아픔을 겪고 있습니다. 장포수 할아버지와 왕고래집 할머니 역시 고래잡이에 토대한 삶을 잃어버린 인물이지요.” 부모를 잃는다는 극도의 상실을 경험한 니은은 고래에 대한 수많은 신화와 전설을 잃어버리고 지내던 처용포에서 상실에 대처하는 방법을 배우게 된다. 그러면서 차츰 키우던 개를 잃은 후 이십년 동안 울지 못한 엄마와 처용포 이야기만 나오면 자못 진지해지는 아빠의 말 못할 상실도 차츰 이해한다는 것이다. 작가는 “고향에서 멱을 감고 얼음배를 타던 강물이 칠팔년 후 흰 거품이 끓고 나쁜 냄새가 나는 더러운 물로 변해버린 데서 느꼈던 상실감도 이 소설의 하나의 모티프가 됐다.”고 털어놨다. 작가는 이번 작품을 바탕으로 이제 다른 이야기를 할 때가 왔다며 다음 작품 구상에 대해 귀띔했다.“전문가의 시대가 되면서 오히려 총체성을 잃어가고 있잖아요. 개인적으로 역학과 풍수, 한의학 등에 흥미를 느껴 조금씩 공부하고 있는데 꽤 재미 있었습니다. 우주와 인간에 달통한 인간인 조선시대의 선비 이야기를 하고 싶어요.” 9800원. 글 김규환기자 khkim@seoul.co.kr 사진 안주영기자 jya@seoul.co.kr
  • 5000년 탐험역사 유쾌하게 뒤엎기

    5000년 탐험역사 유쾌하게 뒤엎기

    ‘역사는 승리자를 위해 잘 차려진 말의 성찬’이라고 했던가. 엄밀히 말해 해적의 무리인 바이킹의 후예 영국은 ‘신사의 나라’로 미화되는가 하면, 목숨을 살려준 인디언들의 은혜에 대한 잔혹한 ‘학살의 축제’는 아메리카 대륙 정착에 성공한 것을 감사하는 ‘추수감사절’로 둔갑했다.‘세계 지리 오디세이’(일빛 펴냄)는 인류의 5000년에 걸친 탐험의 역사를 유쾌하게 뒤엎는 데 초점을 맞춘 책이다. 저자는 세계사를 전공한 장서우밍 중국 난징대 역사학과 교수와 가오팡잉 쑤저우대 역사학과 교수. 옮긴이는 중국어 전문번역가인 김태성 한성문화연구소 대표. ●탐험가들, 끝없는 자신의 탐욕 채우려 도전 디아스의 희망봉 발견, 콜럼버스의 신대륙 발견, 마젤란의 세계일주, 피사로의 잉카제국 정복, 미국 지리 탐험의 선구자 그레이, 아문센의 극지 탐험…. 책은 기원전 7세기 3척의 배에 나눠 타고 2년여간 아프리카 대륙 연해를 일주했던 최초의 항해민족 페니키아인들의 이야기부터 400년 동안 계속된 북극탐험 도전기에 이르기까지 5000여년에 걸친 방대한 인류 탐험의 역사를 파고든다. 이집트의 지리학자 프톨레마이오스의 ‘지리학’ 등 참고 자료를 토대로 정치한 고증을 거쳤다. 저자들이 추적하는 탐험의 역사는 현재 학계에서 정설로 통하는 그런 역사가 아니다. 사뭇 새로운 시각에서 바라본다. 탐험가들이 자신의 끝없는 탐욕을 채우기 위해 탐험에 나섰다는 주장이 그 한 예다. 책은 먼저 ‘신사의 나라’의 대명사를 불리는 영국에 대해 비판의 칼날을 들이댄다.“793년 6월8일 새벽, 잉글랜드의 린디스판 주민들은 평온하게 하루를 시작하고 있었다. 참배객들이 끊이지 않는 유명한 수도원이 자리잡고 있는 곳이다. 그때 갑자기 해적선이 나타나 신을 경배하기는커녕 여성들을 겁탈하고 금은보화를 닥치는 대로 약탈했다.” 이들 약탈자가 훗날 오늘의 영국을 건설하는 선조가 됐다는 게 저자들의 주장이다. 미국인의 선조가 된 영국의 ‘메이플라워호’ 청교도들도 마찬가지다. 자신들을 아메리카에 정착하도록 도와준 인디언들에게 고마움을 전하기보다 오히려 잔인한 ‘학살’로 보답했다.“1620년 8월 청교도들이 북아메리카 탐험에 나섰다. 수많은 위기와 희생을 딛고 아메리카 대륙에 도착한 이들이 절망에 빠졌을 때 인디언들은 도움의 손길을 내밀었다. 정착에 성공한 이들은 인디언들과 신에게 감사하는 ‘추수감사절’을 제정했다. 하지만 1년이 지나자 인디언들을 몰아내고 학살하기 시작했다.” 추수감사절은 이교도인 인디언들을 몰아내고 학살한 데 대한 ‘승리의 자축연’이었던 셈이다. ●추수감사절은 인디언 몰아낸 승리의 자축연 이런 관점에서 저자는 아메리카와 마젤란 해협, 빅토리아 호수, 허드슨강 등의 탐험사도 살핀다. 책은 이들 지역을 발견하고 탐험한 이들을 기념하지만, 이들에게 무고하게 생명과 삶의 터전을 빼앗긴 원주민들을 추모하거나 억울한 영혼을 위로하는 기념물은 거의 없다고 비판한다. 요컨대 서구인들의 강자논리에 따라 역사적 진실이 왜곡됐다는 시각이다. 세계 질서를 주도하는 이들 강대국은 이제라도 자신들이 서술한 역사가 진실이 아니라고 말하는 용기를 보여줘야 하지 않을까.2만 3000원. 김규환기자 khkim@seoul.co.kr
  • “가슴 따뜻하게 해주는 문학을…”

    “가슴 따뜻하게 해주는 문학을…”

    서울신문사가 주최하는 제16회 ‘공초(空超)문학상’ 시상식이 12일 오전 11시 서울 프레스센터 19층 기자회견장에서 열렸다. 이날 시상식에는 올해 수상자인 조오현 시인을 비롯해 원로시인 김종길 고려대 명예교수, 김남조 시인, 정진규 시인, 조정래 소설가와 김초혜 시인 부부, 신달자 시인, 한분순 시인, 이근배 공초숭모회 회장 등 문단 인사와 친지 등 100여명이 참석했다. 시상식은 노진환 서울신문 사장의 인사말에 이어 공초 오상순 시인의 시 ‘방랑의 마음’과 수상작인 조 시인의 시 ‘아지랑이’ 낭송, 심사위원장인 시인 오세영 서울대 명예교수의 심사평, 조 시인의 수상 소감, 김남조·김종길 시인의 축사, 이근배 시인의 공초 선생 업적 소개 등의 순으로 진행됐다. 노 사장은 “공초문학상은 무소유의 삶을 살다간 공초 선생을 아끼고 존경하던 구상 시인, 김기창 화백 등 시인 및 예술인들이 자발적으로 제정한 상이라는 점에서 무엇보다 권위있는 문학상으로 인정받고 있다.”면서 “올해 수상자로 선정된 조오현 시인께 진심으로 축하를 드린다.”고 말했다. 수상자인 조 시인은 “‘무사시귀인’(無事是貴人·아무리 좋은 일이라도 없는 것만 못하다는 뜻)이라는 공초 선생의 가르침을 따르지 못하고 상을 받게 돼 부끄럽기 짝이 없다.”며 “그렇지만 오늘은 무슨 상이든 좋은 것이니까, 기쁘게 받겠다.”고 수상 소감을 밝혔다. 김남조 시인은 축사를 통해 “조 시인에게서 가슴을 따뜻하게 해주는 문학성을 느꼈다.”며 “목 마를 때 물 한 잔이 소중하듯 즐겁게 상을 받으면 아름다운 추억이 될 것”이라고 축하의 말을 건넸다. 이어 김종길 시인은 “수상작 ‘아지랑이’는 전통적인 시조 형식을 과감히 해체해버린 데 그 의미가 있다.”며 시선일여(詩禪一如)의 경지에 이른 조 시인의 시세계를 기렸다. 한편 이날 참석자들은 시상식이 끝난 뒤 서울 수유리 공초 선생 묘소를 참배했다. 김규환기자 khkim@seoul.co.kr
  • “촛불집회는 디지털 포퓰리즘의 승리 하지만 그 본질은 위대하면서도 끔찍”

    “촛불집회는 디지털 포퓰리즘의 승리 하지만 그 본질은 위대하면서도 끔찍”

    “이번 촛불시위는 ‘디지털 포퓰리즘’의 승리입니다. 하지만 촛불 시위의 본질은 위대하면서도 끔찍하다고 생각합니다.” 소설 ‘초한지’(전10권, 민음사) 완간에 맞춰 미국에서 일시 귀국한 이문열(60)씨가 11일 서울 세종문화회관내 한 음식점에서 기자간담회를 갖고 이같이 밝혔다.“다수의 국민들이 촛불 시위에 대해 침묵하고 동조하고 있는 만큼 ‘민의’의 선택이라고 봐야 한다.”는 것이다. ●“먹는 문제는 하나의 빌미가 됐을 뿐” 이씨는 ‘위대하고 끔찍하다.’는 부분에 대해 “아주 어려운 일을 해냈기 때문에 위대하다고 할 수 있고, 정말 중요한 다른 문제에서도 이런 게 통하게 된다면 끔찍하다고 말할 수 있다.”는 뜻이라고 덧붙였다. 이씨는 “(이번 촛불 시위는) 먹는 것의 문제는 아니고, 다른 문제라고 본다.”며 “먹는 것이 하나의 빌미가 됐을 뿐, 또 다른 하나의 빌미는 감정적인 문제”라고 강조했다. 이어 이씨는 “‘초한지’의 코드가 낡고 반복된 것이라는 인상이 있어 간담회를 갖는 게 좀 멋쩍다.”며 “재미있게 설명할 수 있는데 조잡하게 된 부분이 있고, 정사(正史)에 보다 충실해야겠다는 생각에서 새로 ‘초한지’를 쓰게 됐다.”고 출간 소감을 밝혔다. ●正史에 보다 충실하게 ‘초한지´ 새로 써 “우리나라에 ‘초한지’라고 나오는 책들은 대개 명나라 때 종산거사가 쓴 ‘서한연의’를 원전으로 한 것입니다. 가장 긴 것이라고 해야 분량이 5권 정도밖에 안 되는 데다 종산거사는 너무 많은 부분을 상상력에만 의지해 역사와 동떨어진 부분이 적지 않습니다.” ‘초한지’는 기원전 3세기 중국의 진말한초(秦末漢初)시대 천하의 패권을 놓고 겨룬 한고조 유방과 항우, 두 영웅을 중심으로 쓴 역사소설. 그는 사마천의 ‘사기’를 원전으로 하고 사마광의 ‘자치통감’과 반고의 ‘한서’를 보조자료로 삼아 기존의 ‘초한지’를 완전히 새로 썼다. “흔히 역사는 승자의 것이기에 유방은 많이 미화됐고 항우는 폄하됐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그렇지 않았습니다. 유방은 뛰어난 순발력과 임기응변의 사나이가 아니라 탐욕스러운 시정잡배처럼 그려졌죠.” “원래 ‘초한지’를 쓰기 전에는 항우가 더 소설적인 인물이라고 생각했다.”는 그는 “두 사람이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차이가 있는 게 아닐까 생각했는데 막상 글을 쓰면서 유방 쪽으로 기울게 됐다.”고 털어놨다. 이씨는 “예컨대 항우에게 쫓겨 달아나던 유방이 수레가 무거워져 적에게 붙잡힐까봐 수레에 타고 있던 자식들을 밖으로 던지는 대목이 유방의 비정함 내지 파렴치한 욕망으로만 해석됐다.”며 “그러나 그것은 자기를 살리기 위해 죽은 많은 장병들을 생각했기 때문이지, 결코 자신의 목숨 때문에 자식을 버렸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앞으로는 한국 역사물 쓸 계획” “당초 7월에 한국에 들어오려고 했지만 완간에 맞춰 앞당겨 들어왔다.”는 그는 10월쯤 미국에서 완전히 철수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씨는 향후 작품 계획과 관련,“중국 역사물은 이만하면 됐다 싶어 이제 쓰지 않겠다.”며 “앞으로는 한국 역사물을 쓸 계획”이라고 말했다. 글 김규환기자 khkim@seoul.co.kr 사진 류재림기자 jawoolim@seoul.co.kr
  • [16회 공초 문학상]조오현 시인 수상 인터뷰

    [16회 공초 문학상]조오현 시인 수상 인터뷰

    “스님은 말과 글을 버리는 공부를 하는 사람입니다. 말과 글을 버려야 되는 사람이 시와 글을 쓴다는 게 너무 세속적인 일이죠. 더더구나 상을 받는다는 것은….” 시조시인으로서는 처음으로 제16회 공초 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된 무산 조오현 시인은 말과 글을 버려야 하는 스님이 시를 써서 상을 받는다는 게 부끄럽다며 겸사의 말부터 꺼냈다. 그래서인지 1978년 첫시집 ‘심우도(尋牛圖)’를 상재한 이후 30년 가까이를 절필하다시피 하다가 2007년 이번 수상작 ‘아지랑이’가 실린 시집 ‘아득한 성자’ 등 ‘겨우’ 두 권의 시집을 내는 데 그쳤다. 수상작 ‘아지랑이’는 죽음을 앞두고 걸어온 삶을 반추하며 웅숭깊은 삶의 통찰과 인식을 담아내고 있다.“얼마 전부터 ‘나도 이제 죽을 때가 됐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6개월간 밥은 거의 안 먹고 죽을 준비를 하는 과정에서 내가 ‘아지랑이’를 붙들고 살았다는 회한에 사무치게 된 것이지요.” 막상 삶의 정점, 꼭대기에 올라섰다고 생각하고 내려다보니 물러설 곳도, 옆으로 갈 곳도 없는, 생사의 백척간두 위에 서 있었다는 것이다.“곧 죽을 마당에 돈이고 명예고 직위고 모든 것이 실체가 없는 ‘아지랑이’를 좇아 애면글면 살아왔다고 생각하니 우스웠습니다.” 그러니까 칠십 평생을 허상을 붙들고 마치 그 속에 진리나 있는 것처럼 살아왔다는 게 후회스러웠다는 것이다. 1932년 경남 밀양에서 태어난 시인은 1939년 입산한 뒤 1968년 ‘시조문학’으로 등단했다. 대한불교 조계종 신흥사·백담사 회주를 거쳐 설악산 산감을 맡고 있다.“1960년대 절 주지를 하려면 관청에 등록해야 했죠. 등록을 위해 이력서를 써야 했는데, 학교에 다니지 못한 내가 학력란을 공란으로 비워두니까, 막 무시하는 거예요. 그때는 젊었을 때니까, 어떻게 하면 알아주느냐고 물었죠. 어떤 이가 시집이 하나 있으면 알아준다고 하기에, 부랴부랴 내놓은 게 ‘심우도’예요.” 그렇지만 스님이 시를 발표한다, 신문에 난다는 것이 어쩐지 부끄러운 일인 것 같아 시를 거의 쓰지 않았다. 그런데 이태 전부터 죽음이 가까워졌다는 생각이 들어 삶을 되돌아본다는 의미에서 시를 쓰게 됐다고 한다.“춘천불교방송 창립에 관여하고 장학재단도 설립했으며, 만해 선양회와 만해마을도 만들었습니다.” 이런 일들을 지금 돌이켜보니 한낱 ‘아지랑이’를 붙들기 위해 발버둥친 것처럼 느껴졌다는 것이다. 공초 오상순 선생과의 특별한 인연도 털어놓았다. 공초 선생이 서울 조계사 지대방(객승 등이 쉬는 곳)에 머물 때 시인은 여러번 만나뵈었다.“당시 공초 선생은 최고급 담배인 ‘백양’을 태웠는데, 내가 그 재떨이를 매일 비웠어요. 내가 꽁초를 모아 피운다는 사실을 눈치챈 선생께서 재떨이를 치울 시간이 되면 담배 한갑을 몰래 놔두고 방을 비웠죠.” 공초 선생은 이렇게 사람들을 배려한 것은 물론, 깊은 깨우침도 남겼다고 한다. 시인에게 ‘무사시귀인(無事是貴人)’이 되라는 것. 일이 없는 사람이 귀한 사람이라는 뜻으로 큰 깨달음이 있는 사람은 일이 없는 사람, 즉 도인(道人)이라는 얘기다. 세상의 시비, 번뇌 등을 끊어야 귀인이 된다는 공초 선생의 말을 시인은 지금도 생생히 기억하고 있었다. 글 김규환기자 khkim@seoul.co.kr 사진 안주영기자 jya@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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