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OK 아시아]4부 21세기 변해야 한다 - 동북아 경제질서 재조명 좌담
21세기 세계경제의 질서가 재편되고 있다.미국·유럽연합(EU)과 함께 중국을 중심으로 한 동북아지역이 3대 경제중심 축으로 급부상하고 있다. ‘세계속의 동북아’의 새로운 밑그림을 그리기 위한 한국·중국·일본의 역할은 무엇이고,3각 협력체제가 가능할 것인가,한국의 전략적 목표는 무엇인가 등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전문가 좌담을 통해 새로운 동북아 질서의 과제 등을 재조명해 본다.
●동북아 시대의 개막
전홍택 부원장 새 정부는 동북아 경제중심 국가를 국정과제 중의 하나로 채택했다.그 핵심은 우리나라가 동북아의 허브(Hub)가 되는 것이다.중국은 급속한 발전을 통해 세계 경제의 중심 축 가운데 하나가 되었다.동북아의 번영과 정치적 안정,평화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동북아 지역의 네트워크가 보다 확대돼야 한다.이는 단순히 시장개방만을 강조하는 것이 아니라 한국이 갖고 있는 지정학적 장점 등을 활용해서 네트워크의 연결고리 위치를 선점하자는 것이 논의의 요체다.
이석영 부회장 우리가 갖고 있는 조건을 극대화하는 것이 중요하다.인력과 기업의 글로벌라이제이션(Globalization),즉 어떻게 하면 유능한 인적자원을 개발하고 기업하기 좋은 환경을 만드느냐가 당면한 과제다.패러다임(Paradigm)을 바꿔야 한다.개인소득 1만달러를 돌파하려면 지금까지 알고 행하던 것을 버리고 새로운 개념의 전략을 세워야 한다.
김칠두 차관 우리는 개인소득 1만달러에 8년째 머물고 있는데,이제 경제의 성장동력을 찾을 때가 됐다.동북아 시장의 잠재력은 크다.중국의 경제적 가치는 1960년대 우리나라 국내총생산(GDP)의 4%에 불과했으나 지금은 20%나 되고 있다.우리는 주변국들과 균형발전을 이뤄야 한다.
●중국의 허와 실
전 부원장 중국은 시장경제 체제를 통해 지속적으로 고도성장을 하고 있으나 그 나름의 그늘이 있다.오늘날에 와서 거대한 국영기업을 구조조정하려니까 어려움에 직면해 있으며,국영기업의 부실채권 등은 금융권의 부담으로 넘어갔다.이 점은 지금 중국 경제의 뇌관과도 같다.정치적으로 중국은 사회주의에서도 드물게 평화적인 정권교체를 이룬 나라이다.하지만 최근 ‘서부대개발’ 사업을 보면 경제논리 보다 여전히 정치논리가 앞서고 있다.
이 부회장 중국은 우리가 1970년대에 겪었던 용광로와도 같은 성장시대를 맞고 있다.고도성장이 끝나면서 우리에게 드러난 문제점이 중국에서도 가시화될 것이다.하지만 빈부격차,인종격차 등 중국 스스로 감내할 문제도 있으나 이는 차후의 문제다.우리가 중국을 너무 두려워할 필요도 없다.경쟁 상대국으로 대하면 된다.
김 차관 다소 견해를 달리한다.중국의 지역간,계층간 갈등 문제에 대해 많은 분들이 우려하고 있으나 출장 등을 가보면 최고 지도자들이 그런 문제에 대해 너무 잘 알고 있더라.성장 주도의 정책을 펴면서 그것의 역작용이 부각되지 않도록 조직력이나 행정력을 동원,조정할 것이다.규모가 크고 다양한 국가인 만큼 정치와 경제를 합리적으로 분리한 시스템을 갖췄고,권력교체도 어느 민주주의 국가 못지않게 평화적으로 쉽게 이뤄냈다.
전 부원장 중국의 ‘놀라운 리더십’ 외에도 미시적인 제도중에는 우리가 배울 점들이 도처에 있다.베이징대학 등의 고급두뇌 교수들을 보면 교수마다 연봉의 격차가 매우 크다.우리 현실로는 어려운 얘기다.경제특구의 고용계약을 봐도 근로자 각자와 맺은 개별적인 계약이 이미 보편화돼 있다.우리가 중국과 아직은 기술격차가 있다고 해서 안일하게 생각하면 안 된다.
●한·중·일 경제협력 모색
이 부회장 한·중·일간의 경제협력이 발전해야만 하는 이유는 3개국이 서로 보완적 관계에 놓여 있다는 데 있다.우리가 역동적으로 발전하려면 이웃 일본도 변화·발전해야만 한다.서로가 윈·윈(Win·Win)이 돼야 한다는 말이다.이렇게 되려면 서로 불신의 벽을 허물어야 한다.아시다시피 한국인과 일본인 사이에도 상당한 불신이 깔려있다.그래서 부드러운 문화적 협력이 우선 필요하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독일과 프랑스도 널리 알려진 견원지간(犬猿之間)이었으나 지금은 유럽연합의 핵심 축으로 잘 협력하고 있다.노무현 대통령의 방일을 계기로 한·일 자유무역협정(FTA)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하지만 관계를 맺기에 앞서 불신이 사라지지 않고 있는 것은 “서로의 관계가 종속적으로변질되지 않을까.”라고 우려하기 때문이다.일본과 경제협력을 한다면 당장의 문제로 대일 무역적자 해소의 어려움,국내 산업의 예속화,농산물의 비관세 문제 등이 고민될 것이다.하지만 장기적으로 우리가 3개국의 리더가 되려면 과감하게 내놓을 것은 내놓아야 한다.
김 차관 지금 3개국은 모두 세계화를 주장하고 글로벌라이제이션을 외치고 있다.이것이 근본적인 흐름인 것만은 분명하다.지정학적 구조만 보더라도 언젠가 3개국은 긴밀한 협력관계를 유지할 수밖에 없다.따라서 가능한 부분부터 지금 시작을 해야 한다.이것이 현 정부의 입장이기도 하다.3개국이 막바로 테이블에 앉아서 논의하기는 쉽지 않을 테지만 일본과는 FTA 등을 우선 푸는 것도 방법일 것이다.FTA 문제는 그동안 민간과 학계 중심의 논의에 그쳤으나 이제 정부도 참여하는 방향으로 한단계 업그레이드 되었다는 점에서 의미를 찾을 수 있다.양국의 기업은 서로 이익이 남는 쪽을 찾으려 할 것이다.서로 이해가 맞아떨어지는 어떤 베이스(Base)를 찾으면 국가간의 관세장벽 등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다.우리는 일본에 적극적인 투자를 요청하고 있으나,부품·소재 산업의 경우 일본측이 먼저 우리의 기술력에 대해 확신을 갖고 생산거점을 아예 한국으로 옮기려 하고 있다.우리와 중국과의 관계를 살펴보면 우리의 생산기지가 기업환경이 나은 중국으로 이전하는 상황이다.한·중 관계는 한·일 관계보다 풀기 쉬운 편이다.결국 우리가 중심이 되기 위해선 먼저 얘기를 꺼내고 중간자 역할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
●한국의 경쟁력 강화
전 부원장 우리나라가 동북아 네트워크의 연결고리가 되기 위한 전략에 대해 각계의 의견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첫째 한국이 동북아 경제물류의 중심이 돼야 한다.세계적인 물류 기업을 적극 유치해서 활용하는 방안도 생각해 볼 수 있다.둘째 우리는 싱가포르와 달리 물류산업의 구성만으론 발전의 한계가 있다.전통 주력산업의 클러스터(Cluster)를 육성하는 데 소홀해선 안 된다.셋째 경쟁력이 강해지고 있는 서비스업의 고부가가치 상품을 만들기 위해선 이와 관련된 전문 비즈니스 인력을 개발해야 한다.해외의 고급두뇌 유치가 핵심이 될 수 있다.연구개발(R&D)센터,산업제휴단지 등도 조성해야 한다.
이 부회장 이제 ‘제조업 베이스’만으론 어렵다.제조업에다 서비스가 바탕이 되는 구조가 돼야 한다.기업하기 좋은 환경을 만들자면 한국인뿐만 아니라 내·외국인들이 함께 우리 경제의 중심이 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관치 경제가 민간자율 경제로 옮겨가고 있다.싱가포르는 2018년까지 내다본 장기발전전략을 만들고 있다.우리도 내 임기동안에 모든 것을 다하겠다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선택과 집중을 통해 방법을 찾아야 한다.
김 차관 중국은 경제성장의 방향을 자국에서 조립생산해 다양한 완제품을 만드는 쪽으로 중심을 잡아가고 있다.일본은 앞선 기술과 디자인을 바탕으로 제조업 중심의 고부가가치를 추구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여기서 우리의 갈 길에 대해 “잘못하면 양국의 중간에 끼어서 제대로 방향도 잡지 못하지 않을까.”라는 걱정도 할 수도 있으나 이는 기우다.우리의 부품·소재산업 등은 성장 가능성이 매우 크다.
산자부는 그가능성을 살리는 데 역점을 두고 있다.물류 중심의 거점 확보는 남북한과 동·서로 이어지는 1일 생활권이 보장되면 가능하다.인천국제공항이 중심적인 역할을 할 수도 있다.
●동북아 경제권의 과제
이 부회장 우리가 동북아의 중심이 되고자 하는 것을 중국이나 일본은 분명히 경계하고 있다.따라서 쓸데없이 말 잔치만 요란한 것은 그들의 불필요한 경계심만 부른 뿐이다.우리가 자연스럽게 주도적인 역할을 하고 양보할 것을 양보한다면 그들이 먼저 한국이 중심이 되어달라고 요청할 것이다.정부가 너무 외형적인 부분에 치우쳐 중심을 잃어선 안 된다.물류 규제를 하나 더 풀고,기업하기 좋은 환경을 만든다면 실속을 챙길 수 있을 것이다.요란만 떨지 말고 반성하자는 말이다.
전 부원장 물류 중심으로 가든,아이덴티티(Identity) 중심으로 하든 기업하기 좋은 환경을 만들고 네트워크의 연결고리가 되자는 것이 결론적인 메시지다.과거 민간차원에서 이뤄지던 경제협력이 FTA라는 공식 채널을 통해 발전하고 있다.논의의 핵심은 경제적인 문제이지만 여기엔국제정치적 고려와 미·일의 역학적 관계 등에 대한 분석도 함께 이뤄져야 한다.
김 차관 이제는 우리가 함께 이익을 나누지 않으면 더 이상 파이를 키울 수 없다는 인식을 공유해야 한다.주변국에 우리 것을 나누어 주고 배울 것은 배우고,이용할 것은 이용하자는 자세가 필요하다.M&A(기업 매수합병)에 대한 거부감을 버리고,낫다고 판단이 서면 과감하게 받아들여야 한다.우리가 중심국으로 서는 데 스스로 움츠러들 필요는 없다고 본다.경제를 아는 사람은 말보다 내용을 하나하나씩 개선하는데 더 큰 무게중심을 둔다.다만 동북아의 경제협력 방안을 모색하는 데 북한 문제에 대해서도 여러가지 신중한 고려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대담 진행·정리 주병철 김경운 기자 kkwo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