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 ‘증권 라이벌’ 투자금융 재대결
증권가의 30년 라이벌 대한투자증권과 한국투자증권이 갑옷을 바꿔 입고 싸움터에 마주섰다.‘용호상박(龍虎相搏)’의 결과에 따라 앞으로 투자금융시장이 고객 중심의 자산관리(PB) 또는 기업투자 중심의 투자은행(IB) 중에서 어디로 흐를지 가늠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은행계와 증권계의 맞대결
지난 1일 서울 여의도 대한투자증권(약칭 대투증권) 본사에서는 조왕하 신임 사장의 취임식이 열렸다. 조 사장은 “대투와 하나금융의 조합이 갖는 잠재력과 폭발력은 한국투자증권과 동원증권의 결합보다 강하다.”면서 “이제 경쟁 상대는 더 이상 투신권이 아니다.”라고 밝혔다. 같은 시각 바로 옆 한투 빌딩에서는 동원과 합병한 한국투자증권(약칭 한국증권)의 통합 출범식이 열렸다. 홍성일 신임 사장은 “한투와 동원이 한 가족이 되면서 이제 아시아 최고의 투자은행을 만들 수 있게 됐다.”고 선언했다. 대투는 지난 4월 은행계인 하나금융그룹의 계열사로 편입됐다. 하나금융지주가 출범하면 하나은행과 대투증권, 하나증권, 대투운용, 하나알리안츠투신이 한 식구가 된다. 앞서 지난 3월 증권계인 동원금융지주에 매각된 한투는 동원증권과 합병했다. 이로써 ‘대투+하나’는 수익증권 판매액 20조 8547억원, 펀드 설정액 25조 3281억원 등으로 펀드업계의 1위 금융사로 재탄생했다.‘한투+동원’이 간발의 차이로 2위를 달리고 있지만 언제 뒤집을지 모르는 상황이다. 지점 수는 각각 646개,124개로 늘었다.
●소액을 모아 vs 거액을 한꺼번에
두 금융사의 인연은 1969년 설립된 한국투자공사에서 시작됐다. 지난 74년 수익증권(펀드) 업무를 떼어내 출범한 곳이 한투다. 이어 77년 공사가 해체되면서 본래 주식매매 업무를 인계한 곳이 대투다. 그래서 한투가 ‘펀드업계의 원조이자 맏형’이라고 자부하면 대투는 ‘한투는 잔뿌리고 우리가 원뿌리’라고 주장한다. 두 금융사는 다른 증권사들이 주식매매 수수료나 챙기는 단순 영업에 몰두할 때 선진적인 펀드 영업을 하면서 경쟁관계를 유지했다.
그러나 무리한 영업이 경영난을 불렀고, 외환위기 당시엔 ‘대우 채권’에 발목을 잡혀 둘다 휘청댔다. 대투와 한투에 각각 4조 5000억원(회수율 13.3%),7조 5000억원(12.0%)의 공적자금이 투입됐지만, 결국 하나은행과 동원증권에 각각 4750억원,5460억원에 팔렸다.
두 금융사가 걸어온 길은 비슷하지만 나아갈 길은 엇갈린다. 자산관리의 양대 시장에서 대투는 고객영업을 잡았고, 한국증권은 기업금융을 선택했다. 대투는 하나은행의 막강한 판매망을 이용, 적립식 펀드 등 PB 영업에 집중하기로 했다. 반면 한국증권은 기업금융이 강했던 동원증권의 장점을 살려 인수·합병(M&A) 등 IB 영업에 주력하기로 했다. 대투가 적은 것을 많이 모으겠다는 복안이라면, 한국증권은 큰 것을 한꺼번에 챙기겠다는 속셈이다. 각자의 취약점에 대해 대투는 “기업금융은 같은 계열사인 하나증권이 전문적으로 챙길 것”이라고 밝혔다. 한투는 “펀드 판매는 기업은행과 판매망 제휴를 했기 때문에 결코 불리하지 않다.”고 맞선다.
●조직 통합이 우선과제
이들의 결합이 어떤 시너지 효과를 가져올지에 대해 전문가들의 견해는 분명하게 엇갈린다.
삼성증권 장효선 수석연구원은 “자산관리시장의 핵심인 펀드 판매는 은행망을 활용한 대투가 유리한 고지를 선점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현대증권 심규선 연구원도 “한국증권이 기업은행과 제휴을 했다고 해도 브랜드 가치와 신시장 개척에서 대투에 밀린다.”고 지적했다.
반면 굿모닝신한증권 손현호 연구원은 “동원은 상품개발에, 한투는 판매에 강점이 있어 서로 보완적 역할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같은 전망에 앞서 노조를 포함한 조직통합을 얼마나 원활하게 이끄느냐가 시장 선점의 관건이라는 지적도 있다. 대투는 지난 8일 상품전략본부 신설 등 영업력을 강화하는 대규모 조직개편을 단행했다. 본부장 5명과 부서장 17명 전원을 40대 인사들로 교체했다.143명의 희망퇴직도 접수했다. 반면 한국증권은 한투 노조의 고용보장 파업 등으로 출발점에서 주춤하고 있다.
김경운기자 kkwoon@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