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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경두
    2025-0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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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름 넣고 선물도 챙기고

    기름 넣고 선물도 챙기고

    정유업계의 ‘봄맞이 이벤트’가 한창이다. 영화 시사회부터 장학금, 가전 경품에 이르기까지 고객에게 나눠주는 선물이 다채롭다. 이왕이면 기름도 넣고, 선물도 챙기는 것은 어떨까. 19일 업계에 따르면 SK㈜는 화물 운전자 복지카드 회원이면서 중·고·대학 신입생 자녀를 둔 고객들을 대상으로 5억원 상당의 ‘사랑의 장학금’이벤트를 지난 1일부터 펼치고 있다.1인당 최대 2자녀까지 2500명에게 혜택이 돌아간다. 오는 31일까지 전국 SK 트럭플러스 주유소에서 신청받아 다음달 25일 대상자를 뽑는다. SK㈜ 홈페이지(enclean.com)에서는 30일까지 ‘당첨 주유복권’ 이벤트가 진행된다. 사이트에 응모만 하면 다음달 첫 주유할 때, 캐시백 100포인트를 일괄적으로 적립해 준다. 또 22일까지 영화 ‘카리스마 탈출기’ 시사회 행사의 응모자 가운데 1000명을 추첨해 시사회 입장권을 나눠준다. 브랜드 마케팅에 나선 GS칼텍스도 ‘봄 이벤트’를 내놓고 있다.GS칼텍스는 31일까지 수도권 지역 GS칼텍스 주유소를 이용하는 보너스 카드 고객을 대상으로 1000명을 추첨해 1인당 2장씩 에버랜드 자유이용권을 나눠준다. 에쓰오일도 ‘새봄맞이 포인트 사은행사’를 이달 말까지 진행한다.5000점 이상 적립한 자사의 보너스카드 회원들이 홈페이지(www.oilbonus.com)를 통해 신청하면 점수에 따라 인켈오디오와 삼천리자전거, 스팀 청소기, 주유 상품권을 나눠준다. 또 31일까지 수도권 및 충청지역의 주유소나 충전소를 찾는 모든 고객에게 테마온천인 ‘스파비스’와 인근 눈썰매장, 삽교호 함상공원 입장 할인권(30%)을 준다. 이와 함께 다음달 9일까지 보너스카드 홈페이지를 통해 데이콤 국제전화 ‘00300’ 이벤트에 응모한 후 국제전화를 1만원 이상 사용한 회원을 대상으로 추첨해 300명에게 주유 상품권(1만원)을 제공한다. 신규로 국제전화 00300 가입 고객에게는 데이콤 국제전화 무료 통화권(2000원)도 준다. 김경두기자 golders@seoul.co.kr
  • 삼성, 헌혈캠페인도 1등답게

    삼성그룹이 최근 대대적인 헌혈 캠페인을 벌여 2t트럭 두 대분의 혈액을 모아 대한적십자사에 전달했다. 19일 삼성에 따르면 지난달 ‘헌혈, 함께 해요 투게더’라는 이름으로 진행된 이 캠페인에는 삼성 임직원 9833명이 참여해 모두 4000ℓ의 혈액을 기증했다. 삼성은 1996년부터 동절기 혈액부족 해소를 돕기 위해 적십자사와 공동으로 헌혈 캠페인을 전개해 왔지만 올해에는 그룹 차원의 자원봉사 확대 분위기에 힘입어 참여 인원이 지난해보다 10%가량 늘었다.삼성 관계자는 “이번에 기증된 혈액은 2만 5000명의 환자에게 투여될 수 있는 양이며, 기업 단체 헌혈로는 사상 최대 규모일 것”이라고 말했다.김경두기자golders@seoul.co.kr
  • [2006 재계 인맥·혼맥 대탐구] 벽산그룹 김희철 회장家

    [2006 재계 인맥·혼맥 대탐구] 벽산그룹 김희철 회장家

    한때 18개 계열사를 거느리면서 30대 재벌그룹으로 명성을 떨쳤지만 외환위기(IMF)와 함께 구조조정을 겪으면서 벽산건설㈜,㈜벽산, 벽산페인트㈜,㈜인희, 동양물산 등 5개만 남은 미니그룹으로 축소된 게 오늘날의 벽산이다. 출자전환된 채권단의 주식을 되사들여 창업주 가문이 명맥을 잇고 있는 것은 불행중 다행이다. 벽산의 주력사는 벽산건설이다. 전체 매출 가운데 60% 이상을 차지할 정도다. 때문에 벽산 사람들은 그룹이라는 표현 대신 건설 전문업체라는 표현을 쓴다.3세 경영체제로 넘어가면서 재도약의 발판을 마련하기 위해 애쓰고 있다. ●GS가문·박정희 대통령 등과 혼맥 형성 고 김인득 창업주의 3남 2녀중 장남 김희철(69) 벽산건설 회장은 경기고 3학년이던 16세 때 미 캘리포니아로 건너가 15년간 유학생활을 했다. 한 달에 2∼3통씩 집으로 편지를 썼는데 아버지인 고 김인득 창업주는 틀린 한자를 교정해 보내주는 등 자식 교육에 애착을 보였다. 김희철 회장도 기대에 부응해 미국 퍼듀대 기계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 경영학 석사·MIT대와 퍼듀대에서 각각 원자력공학 석·박사학위를 땄다. 이어 미주리주 롤라대학에서 조교수를 역임하다 1969년 정부의 해외우수인재 유치 계획에 따라 과학기술처 1급 연구관으로 초빙돼 귀국했다. 김희철 회장은 1965년 김인득 창업주의 3남이자 김 회장의 동생인 김희근(60) 벽산엔지니어링 명예회장과 김 명예회장의 경기고 동창인 허광수(60) 삼양인터내셔널 회장의 제의로 삼양통상 고 허정구 회장의 장녀 허영자(66)씨를 만났다. 허광수씨의 누나인 영자씨는 이대 불문과를 졸업한 뒤 미 노스웨스턴대 불문학과 석사 과정을 밟다 다음해 시카고에서 김 회장과 결혼했다. 김희철 회장은 1971년 건축자재 생산업체였던 ㈜벽산의 전신인 제일스레트 대표이사를 맡으면서 벽산 경영에 참여했고,1982년 그룹 부회장으로 오르면서 사실상 경영을 도맡았다. 하지만 김인득 창업주가 세상을 뜬지 반년도 지나지 않아 IMF 위기를 맞아 선친이 키운 기업을 구조조정해야 하는 불운을 맞기도 했다. 벽산은 3세 경영 체제에 안착했다. 김희철 회장의 장남인 김성식(39) ㈜벽산 대표이사 사장은 ㈜벽산페인트 대표이사도 겸하고 있다. 오하이오주립대 마케팅 학사, 하버드대 경영대학원 석사를 졸업했다. 이후 보스턴 컨설팅에서 일하다 2001년 1월 ㈜벽산 전무로 입사했다. 지금은 부도로 쓰러졌지만 80년대 말 주택사업을 활발히 펼쳤던 ㈜동신 박승훈 회장의 장녀 박성희(36)씨를 학교 선배의 소개로 만나 결혼했다. 김희철 회장의 차남 김찬식(37)씨는 주력사인 ㈜벽산건설에서 경영수업을 받는 중이다. 경영지원실장(전무)으로 내부 살림을 챙기고 있다. 서울대 서양사학과를 졸업하고 조지타운대에서 MBA를 땄다. 한 살 아래인 장현주(36)씨를 대학(이대 동양학과)시절 소개팅으로 만나 연애 결혼했다. 장씨의 아버지 장경환(74)씨는 포항제철 전무이사, 삼성중공업 사장 등을 거쳐 포항제철(현 포스코) 경영연구소 회장을 지냈다. 장녀 김은식(35)씨는 서울대 음대 기악과를 나온 바이올리니스트. 양해엽(77) 전 재불 한국문화원장의 차남인 첼리스트 양성원(39·연세대 기악과 조교수)씨와 결혼, 음악가 집안을 꾸렸다. 이들의 결혼은 양가 어머니들의 오랜 친분으로 맺어졌다. 김인득 창업주의 차남인 김희용(64) 동양물산 회장은 미 인디애나주립대 출신으로 1987년부터 그룹의 모태이자 농기계전문업체인 동양물산 사장으로 취임,2001년부터 회장을 맡고 있다. 고 박정희 전 대통령의 셋째 형인 고 박상희씨의 딸 설자(61)씨와 중매로 만나 결혼했다. 설자씨는 김종필 전 자유민주연합 총재의 처제이기도 하다. 이로써 벽산가 혼맥은 경제계 뿐 아니라 고위 정치권과 닿는 계기가 됐다. 장남 김희철 회장가와 차남 김희용 회장은 2004년 주식 교환을 통해 사실상 독립경영 체제를 갖췄다. 김희철 회장 집안이 벽산건설과 ㈜벽산 등을, 김희용 회장 집안이 동양물산 지분을 갖는 것으로 구도를 정리했다. 김희용 회장의 장남 김태식(33)씨는 동양물산 이사로 근무하고 있으며, 딸 김소원(28)씨도 동양물산에 몸을 담고 있다. 셋째 아들인 김희근(60) 회장은 지금은 정리된 벽산건설의 해외부문을 담당하는 등 줄곧 건설을 책임지며 벽산건설 부회장까지 역임했다. 미 마이애미대 출신으로 IMF 위기를 맞아 건설에서 손을 뗐고 지금은 계열분리된 벽산엔지니어링 명예회장 직함만 갖고 있다. 벽산건설 부회장으로 재직하면서 은행 대출을 받기 위해 재무제표를 조작한 사기 혐의로 검찰에 불구속기소된 상태다. 미 LA에 살고 있지만 결백을 입증하기 위해 귀국해 수사를 받고 있다. 김희근 명예회장측은 당시 대출은 만기연장이 대부분이어서 사기 혐의는 터무니없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 고 이윤우 전 그린파크 회장의 4녀인 이소형(58)씨와 결혼했다. 고 김인득 창업주의 장녀인 김숙희(66)씨는 피혁전문 무역업체인 천마를 운영하는 정영현(72) 회장과 중매로 만나 결혼했다. 막내 딸 김연숙(57)씨는 원영종(59) 화인계기주식회사 대표이사와 사이에 치성(28)·치열(26) 두 형제를 두고 있다. ●고 김인득 창업주…소문난 근검절약가 고 김인득 창업주는 경남 함안군 칠서면 무릉리라는 작은 마을에서 4남2녀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아버지가 농사를 지었지만 계절에 따라 포목상 일을 겸해 형편은 어렵지 않았다. 고향에서 보통학교(칠서초등학교)를 졸업한 뒤 3수 끝에 열 네살이 되던 해에 마산상고에 입학했다. 성적이 좋아 우등생으로 졸업했고, 농구·탁구·축구 선수로 활약하는 등 운동도 잘했다. 남선주산대회에서 1등을 했고 서화전시회에 출품하면 항상 상을 받는 모범생이었다. 첫 직장은 1934년 봄 입사한 마산금융조합. 예금 권유부터 연체 독촉까지 항상 1등이란 팻말이 따라다녔다.‘남과 같이해서는 남 이상 될 수 없다.’는 철학은 이때부터 생겼다. 당시 월급 28원을 받던 그는 10년동안 1만원(현재 1억원)을 벌겠다는 목표를 세워 9년간 8900원을 모았다. 이 돈을 모으기 위해 숙직을 자청, 숙직비를 모았고 출장 갈 때면 새벽에 일어나 목적지까지 걸어가면서 출장비를 아꼈다. 투철한 절약정신만큼 가족 사랑도 깊었다.“1932년 1월11일 양가 부모와 일가친척의 축복 속에서 17세 신랑과 18세 신부는 결혼을 했어요. 신랑이 장남이라 결혼시켜 어린 5남매와 큰 살림을 맡기실 작정을 하신 모양이었어요.17세 신랑은 키도 크고 헌칠했어요. 결혼후 남편은 3년을 학생 신랑으로 지내고 저는 신랑 없는 시집살이를 했어요.” 고 김인득 창업주의 부인 고 윤현의 여사는 김 창업주의 첫 인상을 ‘벽산 김인득 선생 회갑 기념-남보다 앞서는 사람이 되리라’란 책을 통해 이같이 회고했다. 고 김인득 창업주의 동생인 고 김재동씨도 같은 책에서 창업주를 두고 애처가 중의 애처가라고 평했다. 평상시에도 “부인이 무슨 낙이 있겠어. 내가 아내의 종이 돼야지…”라고 말하며 부인에 대한 사랑의 표현을 아끼지 않았다는 것이다. 고 김인득 창업주는 일제 치하였던 만큼 기술자나 사업가가 아니면 한국인은 성공할 수 없다는 판단에 따라 1943년 진주상공회의소로 자리를 옮긴다.1949년 무역업을 하기 위해 상경했는데, 당시 외국 무역이나 한다는 사람들은 으레 호텔에 머물며 식사도 고급으로 하는 등 허세를 부리기 일쑤였지만 김인득 창업주는 삼류여관에 머물며 국밥 외엔 다른 음식을 입에 대지 않았다. 택시는 타지 않았고 걷거나 전차·버스를 이용했다. 모두가 멋쟁이 양복을 빼고 다녔지만 농구화나 군화를 신고 다녔으며 그나마 구두 뒷굽이 빨리 닳는다며 바닥에 말발굽 ‘징’을 박아 신고 다녔다. 호주머니에 쓸데없이 돈을 넣고 다니지 않았으며 필요한 돈만 명함꽂이에 넣어 다닐 만큼 근검절약이 몸에 배어 있었다. ●‘극장의 제왕’서 건자재·건설업으로 비약 부산 동아극장 지배인으로 일하다 6·25가 발발한 1950년 피란갔던 부산에서 오늘날 벽산의 효시인 동양흥산(현 동양물산주식회사)을 창업한다. 외국영화를 수입해 전국 영화관에 공급하는 일과 수입·무역업이 주종이다. 전쟁에 지친 사람들에게 당시 오락시설로는 극장이 전부인 시절이었고 동양물산은 외화의 60%를 수입했다. 중앙극장, 단성사 등 서울 주요 극장을 비롯해 부산 대전 대구 진주 등 전국에 100여개에 달하는 극장 체인을 형성, 극장 재벌로 부상하며 50년대 말 흥행업 왕좌에 올랐다. 산업의 본질은 생산업이라 여긴 김인득 창업주는 60년대 들어 ‘사업보국’을 내걸며 흥행업에서 점차 손을 떼고 제조업쪽으로 방향을 돌린다. 단성사와 반도극장(현 피카디리) 등을 판 돈으로 1962년 9월 한국스레트공업주식회사(현재 ㈜벽산)를 인수한 것은 제2의 도약기를 맞는데 중추적인 역할을 한다. 이 회사는 일제 당시 일본 아사노 스레트의 서울 공장으로 1929년 출범했지만 당시 부실화되어 개점 휴업상태인 회사였다. 인수 직전 9개월까지 실적이 3000만원에 불과했지만 주인이 바뀐 뒤 3개월간 6000만원의 실적을 올렸다. 이어 60∼70년대 새마을운동으로 시작된 전국적인 농어촌개량작업으로 슬레이트 사업은 번창일로를 맞는다. 이후 건자재 생산업체인 오늘날의 ㈜벽산으로 자라났다. 1964년 1월 한국스레트공업주식회사에 건설사업부를 발족하면서 건설업을 본격화했다.1968년 시공능력 33위에서 1971년에는 11위에 오를 정도로 덩치가 커지면서 같은 해 1월 한국건업주식회사로 떨어져 나와 지금의 벽산건설로 성장했다. 그룹의 모태인 동양물산은 고구마 절단기 등 농기계 생산업체인 ‘한국이기공업주식회사’(1964년)와 한국경금속(1968년)을 인수하면서 새 전기를 맞는다. 동양물산은 지금도 경운기 등 농기계와 스푼 등 양식기를 만들면서 과거 명맥을 잇고 있다. 1973년 스레트공업사 내 페인트공장을 신규 착공하면서 시작한 페인트 사업도 그대로 있다.1999년 구조조정과 함께 벽산화학㈜에 합병됐다 2001년 벽산페인트로 거듭났다. 이로써 벽산그룹은 벽산건설,㈜벽산, 벽산페인트, 동양물산,㈜인희 등 5개사를 거느리고 있다. ●IMF때 대대적인 구조조정 그룹명 벽산은 고 김인득 창업주의 아호를 따서 지은 것이다.60년대말부터 회사를 끊임없이 인수·합병하는 등 사세를 키워카며 통일성을 위해 붙인 이름이다. 그러나 유통 금융 방송 지하자원개발 등 전체 18개에 달하던 계열사는 IMF이후 구조조정을 겪으며 현재 5개로 줄었다. 1976년 설립한 건축내외장제 제조사 벽산산업개발㈜은 1998년 그룹 경영합리화 계획에 따라 ㈜인희에 합병됐다.㈜인희는 영화산업에 애착을 가졌던 김인득 창업주가 1952년 중앙극장을 세우면서 설립했던 회사. 영상산업회사로 키우기 위해 비서실내에 신규 영상 사업팀까지 두고 챙겼었지만 지금은 발코니 확장과 일부 건자재만 만들며 ㈜벽산의 지분을 소유하고 있다. 1985년 벽산쇼핑㈜을 통해 유통업에 진출했지만 1999년 3월 구조조정계획에 따라 매각했고,1989년 인수한 정우개발㈜,㈜동부해양도시가스 등 정우 계열사들 역시 1999년 정리했다.1991년 유신상호신용금고를 인수해 금융업도 본격화했지만 1998년 대출금 마련을 위해 팔았고,㈜한국케이블TV 전남동부방송을 설립해 종합유선방송(SO)사업도 손을 댔지만 1999년 구조조정 과정에서 정리했다. 대부분의 그룹 사옥도 처분했다. 그룹 40주년 출범과 함께 서울역 앞에 지었던 시가 1100억원 연건평 900평 규모의 그룹 사옥인 ‘벽산 125빌딩’을 포함해 퇴계로 ‘인희빌딩’ 등이 모두 넘어갔다. 벽산 125빌딩은 유명한 건축가 김수근씨의 마지막 작픔으로 유명하다. 전주 백화점, 안양 벽산쇼핑, 부산 남포동 복합상가빌딩 등 유통 사업 관련 부동산도 함께 정리했다. ●3대를 잇는 기독교 사랑 고 김인득 창업주의 3남2녀중 막내딸 가족을 제외하면 지금도 매주 일요일 오전 고 김인득 창업주 때부터 다니던 인사동 승동교회에 나가 예배를 들이며 온 가족이 한자리에 모인다. 김인득 창업주가 6·25때부터 승동교회에 나갔고 장남 김희철 회장도 같은 교회 장로를 지낸 바 있다.3세인 김성식 ㈜벽산 대표이사 사장도 술·담배를 일절하지 않고, 매사 성경이 판단의 기준이 될 만큼 신앙이 깊다는 게 주변의 평가다. 벽산의 기독교 사랑은 가족에서 끝나지 않는다. 시무식은 물론 창립기념식 등 모든 공식행사가 예배로 시작되는 ‘기독교문화’ 회사다. 국내 처음으로 직장예배를 도입한 기업으로 창립 초창기인 1956년 서울 종로 단성사에서 첫 직장예배 이후 매주 금요일 아침 8시30분(일부 계열사는 다름)부터 1시간은 본사와 각 공장, 지점, 현장별로 직장예배를 보고 있다. 기독교를 통해 임직원을 통합해 나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란 평이다. 벽산건설이 1998년 워크아웃에 들어갔을 때에도 노사가 무분규로 일관, 회사 살리기에 힘을 합했던 것도 기독교 문화가 바탕이 됐다는 설명이다. jhj@seoul.co.kr ■ 오뚝이 정신으로 일군 ‘벽산 56년’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요한복음 16장33절) 고 김인득 창업주의 장손자인 김성식 사장이 맡고 있는 ㈜벽산은 최근 수년간 이 회사 주식을 사들이며 끊임없이 M&A 위협을 해온 창투사 아이베스트와 ‘적과의 동침’을 선언했다. 지난해 말 아이베스트가 구주 매출을 통해 벽산 주식 100만주를 주당 1만 5000원에에 팔고 나간 뒤 주가가 1만 1000원대까지 빠지면서 아이베스트는 시세 차익을 얻은 반면 개인 투자자들은 손해를 입어 벽산에 대한 개미들의 원성이 높았다. 특히 벽산은 적대적 M&A를 막기 위해 아이베스트 보유 주식에 대해 의결권을 행사하지 못하게 해달라는 가처분 신청을 법원에 내는 등 양측이 경영권을 둘러싸고 대립해왔다. 이처럼 수년간 벽산을 괴롭혀온 아이베스트가 최근 대주주의 우호 지분을 자청하면서 두 회사간 구원(仇怨)관계가 일단 봉합된 상태다. 벽산그룹은 56년을 헤쳐오면서 고난도 많았지만 어려움을 극복하면서 내실을 다져온 기업이다. 1998년 구조조정에 들어갔을 때에도 노사간 분규없이 한마음으로 대처했던 혼연일체는 지금도 업계의 귀감으로 회자된다. 벽산건설의 경우 워크아웃 당시 채권단과 맺은 목표보다 50%가량 많은 244명이 명퇴했다. 자진해 나간 사람이 많다는 얘기다. 남은 직원들은 상여를 전액 반납해 떠나는 사람들에게 나눠줬다. 대주주도 4대1 감자를 단행하는 등 책임지는 모습을 보였다. 덕택에 2000년 회사가 흑자로 전환됐고 2002년 말 워크아웃에서 졸업했다. 김희철 벽산건설 회장은 풋백옵션을 행사, 출자전환된 채권단 주식을 2004년 되사면서 회사를 되찾았다. 이에 앞선 지난 1992년 7월. 당시 재계 25위이던 벽산건설은 자사가 시공한 신행주대교가 준공 4개월을 앞두고 붕괴하면서 창사 이래 최대 위기를 맞았다. 부실공사가 원인으로 규명되면서 대대적인 이미지 실추와 함께 영업정지, 단자사 여신 동결 등 악재가 뒤따랐지만 불행중 다행으로 인명 사고가 없어 복구공사비 200여억원 등을 전액 부담, 재공사를 맡아 결자해지로 매듭지었다. 여전히 우환은 끊이지 않는다. 벽산건설 임원 2명이 1999년부터 2005년까지 각각 회사돈 수십억원을 빼돌려 부동산 구입과 주식투자 등에 쓴 혐의로 조사를 받는 등 집안 단속 문제가 붉어져 조사 중이다. 벽산건설 관계자는 “주택 사업 이외에 토목공사 등 포트폴리오를 확대하는 데 주력할 계획이다.”면서 “무엇보다 구조조정을 겪으면서 위축됐던 직원들의 사기와 자신감을 회복시키는 게 가장 큰 과제다.”고 말했다. 벽산그룹 5개 계열사의 2005년 기준 총 매출은 1조 2500억원이며, 이중 벽산건설의 매출이 전체의 61%를 차지한다. jhj@seoul.co.kr ■ 벽산을 만든 전문 경영인들 벽산그룹은 올해로 56년을 헤쳐오면서 가장 훌륭한 전문경영인으로 이 회사 부회장을 지낸 정종득(65) 목포 시장을 꼽고 있다. 워크아웃 조기졸업의 일등 공신으로 지목되는 정 사장은 서울대, 산업은행, 쌍용을 거쳐 1983년 벽산건설에 이사로 입사 1994년 사장이 되면서 워크아웃의 시작과 끝을 지키는 등 벽산과 고락을 함께해온 인물. 특유의 인화력과 결단력으로 조직을 이끌며 대주주인 김희철 벽산건설 회장과 호흡을 맞췄다는 평이다.2005년 5월 시장 출마를 위해 부회장으로 위촉된 뒤 당선과 함께 회사를 떠나 지금은 공직자로 일하고 있다. 김재우(62) 아주그룹 부회장은 1997년 2월 워크아웃에 들어가기에 앞서 ㈜벽산 사장에 취임해 3년 만에 경영을 정상화시킨 능력을 인정받아 아주그룹에 스카웃된 인물. 삼성물산 출신으로 2005년까지 ㈜벽산 부회장 등을 지내며 ‘누가 우리회사 망한다고!!’‘거봐!안 망한다고 했지!!’ 등 벽산 구조조정 성공사례들을 책으로 발간해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광주고·건국대 출신의 신광웅(63) 신동아건설 사장도 벽산건설 출신이다. 한신공영을 거쳐 지난 1995년부터 2004년 6월까지 벽산에 적을 둔 바 있다. 벽산건설 부사장을 끝으로 회사를 떠났다. 한편 지난 2004년 뇌물수수죄 재판중 또다시 뇌물수수 의혹을 받아 감옥에서 자살했던 고 안상영 전 부산시장도 벽산건설에서 부회장직을 수행한 바 있다. jhj@seoul.co.kr ●특별취재반 산업부 박건승 부장(반장) 정기홍·류찬희·최용규 차장 이기철·강충식·주현진·류길상·김경두·서재희 기자
  • 전경련 회장단 ‘골프회동’

    전국경제인연합회 회장단이 10개월만에 골프 모임을 갖는다. 17일 전경련에 따르면 강신호 전경련 회장과 조석래 효성 회장, 이준용 대림 회장, 이웅열 코오롱 회장, 허영섭 녹십자 회장, 박영주 이건산업 회장, 최용권 삼환기업 회장, 김윤 삼양사 회장, 현재현 동양 회장과 신동빈 롯데 부회장, 조건호 상근부회장 등 11명이 18일 안양 베네스트 골프장에서 친선 골프 모임을 개최한다. 전경련 회장단의 골프 모임은 지난해 5월 강원도 춘천에서 당시 박용오 두산그룹 회장 주재로 14명이 라운딩을 가진 이래 10개월만이다.김경두기자 golders@seoul.co.kr
  • 5년만에 지킨 완전복직 약속

    ‘5년 만에 찾아온 설렘’ 2001년 2월19일. 인천 서구 대우차 직원 임대아파트에는 집집마다 한숨과 탄식이 새어나왔다. 미래에 대한 걱정과 억울함, 분노로 뒤엉켜 있었다. 대우차는 이날 부평공장 근로자 1725명에 대해 근로계약 해고통지서를 전달했다. 울분을 삭이지 못한 일부 가족들은 “16평짜리 임대아파트에서 어렵지만 희망을 안고 살았는데 앞으로는 뭘 먹고 살라는 것이냐.”며 가장이 농성중인 부평공장으로 달려갔다. 그러나 이들 600여명은 이날 저녁 출동한 전경 4000여명에 의해 무참히 끌려나왔다. 부실기업이 얼마나 고통스럽고 큰 희생을 가져오는지를 여실히 보여준 ‘부평공장 사태’였다. 그리고 이들은 사람들의 뇌리에서 점차 사라져갔다. 그로부터 5년 1개월이 흐른 2006년 3월16일.GM대우 노사는 인천 부평공장에서 ‘노사상생 및 회사 경쟁력 제고를 위한 공동 기자회견’을 갖고 오는 6월까지 정리해고자 1725명의 재입사를 완료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날 회견장에는 80,90년대 노사가 사사건건 충돌하고 파업을 벌였던 과거 대우차의 모습은 더 이상 찾아볼 수 없었다. 대신 “노조와의 대화를 노사문제에 한정하지 않고 회사의 장래와 미래로 넓혀 투명한 경영을 했기 때문에 노사상생이 가능했습니다.”(이성재 노조위원장),“회사의 의지와 사업을 충분히 이해하는 노조와 함께 일하는 것을 기쁘게 생각합니다.”(닉 라일리 사장)는 양측의 덕담만이 오갔다. 이번에 복직하는 조립2부 이정국씨는 “있어야 할 곳에 있어서 그런지, 마음이 편안해졌다.”며 지난 5년간 가게 운영과 중소기업을 전전했던 어려움을 털어버렸다. 이어 “(정리해고)당시만 해도 너무 분하고, 억울하고, 참담해서 그야말로 살 맛이 안났다.”면서 “이제는 착실하게 열심히 일하겠다.”고 밝혔다. GM대우는 외환위기 여파로 정리해고한 근로자를 전원 복직시킨 국내 1호 기업이 됐다.1725명 가운데 1081명은 회사 사정이 나아진 2002년 12월부터 순차적으로 복직했고, 나머지 인원도 6월안에 복직시킬 예정이다.2002년 10월 GM대우가 출범하면서 닉 라일리 사장이 노조에 “회사 상황이 나아지면 해고 근로자를 전원 복직시키겠다.”는 약속을 3년만에 지킨 것이다. 해고 근로자의 복직은 사측의 의지 못지않게 노조의 협조도 한몫했다. 과거 대우차 노조는 대표적인 ‘강성’으로 이름을 떨쳤지만 GM대우 출범이후 2004년 한 차례 부분 파업한 것을 빼고는 사측과 별다른 마찰없이 회사 정상화에 힘을 보탰다. 대우차 인수당시 노사관계가 불안하다는 이유 등으로 인수하지 않았던 부평공장을 당초 예상보다 훨씬 빠른 지난해 10월 조기 통합한 것도 노사상생 문화가 정착됐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GM대우는 노사상생에 힘입어 2002년 41만 1573대에 불과했던 판매 대수가 지난해 115만 7857대로 크게 늘었고, 당초 예상보다 1년 빠른 지난해에 첫 흑자를 달성했다. 이는 모기업 제너럴모터스(GM)가 실적 악화로 3만여명의 인력을 감축하는 것과 비교하면 천양지차다. 닉 라일리 사장은 “정리해고된 직원이 전원 회사로 복귀할 수 있어 무엇보다 기쁘다.”면서 “출범 3년 만에 회사가 안정적인 모습을 갖춰 옛 동료들을 다시 부르게 된 데에는 상호 신뢰와 존중의 노사문화가 있었기에 가능했고, 앞으로도 미래 지향적인 노사관계가 지속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김경두기자 golders@seoul.co.kr
  • [재계 인사이드] 동부에 무슨 일이?

    동부에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을까. 김홍기 동부정보기술 사장이 10개월 만에 중도 하차했다. 이명환 ㈜동부 부회장이 임시 경영체제를 3개월간 지속하다가 최근 조영철 ㈜동부 사장이 동부정보기술 대표직을 함께 맡기로 했다.삼성SDS 사장을 지낸 김 전 사장은 정보기술(IT)업계 ‘맏형’이자 한때 정보통신부 장관 후보로까지 거론됐던 인물이다. 이 때문에 김 전사장의 공백을 조 사장이 메우게 되자 무슨 말못할 사연이 있는 것 아니냐는 의혹이 일고 있다. 김 전 사장은 지난해 2월 동부정보기술 사장직에 취임한 뒤 2010년 매출 1조원의 청사진을 밝히는 등 의욕적인 행보를 거듭했다. 그러나 지난 12월 김준기 동부그룹 회장과의 골프 라운딩에서 돌연 “쉬고 싶다.”며 사의를 표명한 것으로 알려졌다.이어 김 전 사장은 잔여 임기 동안 출근까지 거부한 것으로 전해졌다. 보통 사의를 밝혀도 후임자가 결정되기 전까지, 혹은 주총 전까지 책임지는 것이 관례임에 비춰 매우 이례적이지 아닐 수 없다. 동부측은 “김 전 사장이 건강이 좋지 않았다.”며 일신상의 불가피한 사유를 댔다. 그러나 KTF 사외이사를 맡고 있는 김 전 사장은 올 들어 1,2,3월 세 차례의 이사회에 모두 참석했으며, 이달 정기주총에서 사외이사 후보로 다시 올라 있을 정도로 업무를 충실히 수행하고 있다.또 지인들은 김 전 사장이 건강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밝히고 있다. 최근 ‘피부 알레르기’외에는 특별한 이상이 없으며 대외 활동을 정열적으로 펼치고 있다고 한다. 일각에서는 김 전 사장의 퇴진을 동부의 조직 문화와 연결시키기도 한다. 계열사 사장단 가운데 6명을 삼성 출신으로 채울 정도로 ‘외부 수혈’을 좋아하지만 인재를 너무 가볍게 여기는 풍토가 있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는 것이다. 그룹의 2인자이며, 김 회장의 30년 지기인 한신혁 부회장도 지난해 소리없이 물러났다. 동부정보기술만 하더라도 등기이사의 임기가 1년이다. 설령 임기가 1년이더라도 다른 그룹의 경우 보통 재선임을 통해 지속 경영을 보장하지만 동부에선 쉽지 않다는 평이다. 동부 출신 관계자는 “인화를 강조하지만 정감있게 사람을 대하는 조직은 아니다.”면서 “특히 외부에서 온 사람들은 단기 실적에 매달리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김경두기자 golders@seoul.co.kr
  • 이구택 포스코 회장, 濠 ‘최고 훈장’

    이구택 포스코 회장이 호주 정부로부터 민간인 대상 ‘최고 훈장’을 받는다. 포스코와 주한호주대사관은 호주 정부가 무역과 투자를 통해 한국-호주 우호협력에 기여한 공로로 이 회장에게 최고 훈장을 수여키로 결정했다고 16일 밝혔다. 이 훈장은 ‘Companion’과 ‘Officer’,‘Member’ 등 3가지 호주 훈장 가운데 최고 등급으로 조만간 호주 캔버라에서 마이클 제프리 총독이 직접 수여할 계획이라고 대사관측은 설명했다. 마크 베일 호주 부총리 겸 무역성 장관은 “이 회장이 4년간 한·호 경제협력위원장으로서 양국간 경제협력에 지대한 공헌을 했으며, 포스코를 최고의 경쟁력을 가진 글로벌 철강기업으로 성장시키는 데 탁월한 리더십을 발휘하고 있다.”며 최고훈장 수여 결정 배경을 설명했다. 한편 이 회장은 ‘6시그마’ MBB(마스터 블랙벨트)들과 함께한 자리에서 “글로벌 기업으로 발전하기 위해서는 직원 개개인을 배려하고 존중하는 기업문화를 확산하고, 이를 토대로 타사에 모범이 되는 비즈니스 프로세스와 문화를 만들어야 한다.”며 고유의 기업문화를 강조했다.이어 “큰 위기를 겪어보지 않은 것이 변화의 가장 큰 장애물이 될 수 있다.”면서 “앞으로의 30년은 과거 30년과는 질적으로 크게 다를 것이며, 향후 3∼4년이 포스코의 명운을 결정하는 중요한 시기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김경두기자 golders@seoul.co.kr
  • SK ‘행복날개’ 전국 누빈다

    SK가 ‘행복날개’로고를 전국의 주유소와 대리점 간판으로 확대하며, 행복 경영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SK그룹은 15일 SK㈜와 SK텔레콤 등 전국 6800여곳의 주유소와 대리점의 간판 교체 작업을 내년 상반기까지 끝낼 계획이라고 밝혔다. 간판 교체작업이 마무리되면 행복과 따뜻함을 상징하는 ‘행복 날개’이미지로 고객들의 시각 행복지수도 높아질 것으로 기대했다. SK는 지난해 말부터 신문과 TV 등의 매체에 ‘행복날개’광고를 시작하면서 고객들에게 새로운 로고 알리기에 적극 나섰다. 이런 노력에 힘입어 SK는 ‘행복날개’ 로고에 대한 인지도와 호감도가 로고 출시 때보다 3배 가까이 상승했다고 설명했다. 권오용 SK기업문화실 전무는 “현재 관계사별로 로고 작업이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다.”면서 “앞으로 주유소와 대리점 간판 교체작업이 완료되면 고객들은 전국 어디에서나 ‘행복날개’의 행복, 따뜻함 등의 이미지를 느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김경두기자 golders@seoul.co.kr
  • 노트북시장 ‘지각변동’ 오나

    노트북시장 ‘지각변동’ 오나

    국내 노트북시장이 심상찮다. 수요 폭발에 맞춰 중국과 일본업체들의 공세가 거세지는 데다 한때 PC시장 점유율 3위를 차지했던 현주컴퓨터가 다시 노트북시장에 뛰어들었다. 프리미엄과 보급형 시장을 가리지 않고 물고 물리는 접전이 예상된다. 여기에 휴대성이 뛰어난 신개념의 모바일PC가 출시되면서 노트북시장의 수요를 상당부분 잠식할 것이라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올 노트북시장 16% 성장 예상 15일 시장조사기관인 IDC에 따르면 올해 노트북시장 규모는 104만대 수준으로 지난해(89만)보다 16% 늘어날 것으로 점쳐졌다. 또 내년 113만대,2008년 120만대,2009년 125만대 등 연평균 15%가량 성장할 것으로 예상됐다. 이는 데스크톱의 성장세와 비교하면 놀라운 수치다. 지난해 280만대 규모였던 데스크톱 시장은 2009년 290만대 규모로 전망되고 있다. ●노트북 ‘신(新)삼국지’ 그동안 ‘노크’ 수준에 그쳤던 중국 기업들의 국내시장 공략이 본격화되고 있다.IBM컴퓨터 사업부를 인수한 중국 최대 PC기업인 ‘레노보’는 다음달 노트북 ‘레노보 3000’시리즈를 국내에 처음 선보인다. 레노보는 IBM이 보유했던 국내 AS센터(76개)를 그대로 운영하고 있어 중국업체의 단점으로 지적됐던 전국 애프터서비스(AS)망에 문제가 없다. 이 때문에 국내 중저가형 시장에 상당히 위협적인 존재로 떠오를 전망이다. 또 중국 노트북시장에서 레노보와 1,2위를 다투는 하시도 한국시장에 ‘출사표’를 던졌다. 일본은 국내에 신모델을 속속 출시하며, 프리미엄 노트북시장 공략에 나서고 있다. 도시바코리아는 기존 중앙처리장치(CPU)보다 처리 속도가 30% 빠른 인텔의 센트리노 ‘듀오 플랫폼’을 탑재한 ‘새틀라이트 A100’을 출시한다. 소니코리아도 ‘블루투스(근거리 무선통신)’ 기능을 설치한 ‘바이오’ 노트북 2종을 선보인다. 국내에선 현주컴퓨터가 시장 재진입을 통해 재기에 나선다. 현주컴퓨터가 출시한 새모델은 3종류, 가격은 100만원 안팎이다. 또 대리점 확충에도 나서 연말까지 800곳으로 늘린다. 국내 시장점유율 1위인 삼성전자는 올 들어 매월 2종 이상의 신모델을 출시하며, 보급형 시장마저 넘보고 있다. 삼성전자는 2008년까지 노트북을 ‘글로벌 톱5’ 브랜드로 육성할 방침이다. ●모바일PC가 노트북 위협 ? 손바닥보다 조금 크지만 성능은 일반 컴퓨터와 맞먹는 모바일PC가 노트북업계를 긴장시키고 있다. 삼성전자의 울트라 모바일PC ‘센스Q1’은 무게가 779g으로 기존 노트북보다 가볍고, 휴대성이 뛰어나다. 공간 제약을 뛰어 넘어 언제 어디서나 인터넷 등 PC의 모든 기능을 사용할 수 있다. 반면 화면(7인치)이 작아 사무 업무를 보기엔 부적합하다는 지적도 있다. 다음달 출시될 센스Q1이 기존 노트북시장을 나눠 먹느냐, 신규 시장을 창출하느냐에 따라 업계 판도가 요동치기 때문에 업계에서도 의견이 분분하다. 업계 관계자는 “사무용보다 엔터테인먼트 기기로 이용될 가능성이 커 보인다.”면서 “새로운 영역을 개척할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삼성 관계자는 “가격이 100만원 수준이기 때문에 보급형 노트북시장에서 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경두기자 golders@seoul.co.kr
  • “올 일자리 33만~40만개 는다”

    삼성경제연구소는 올해 새로 창출되는 일자리 수가 33만∼40만개일 것으로 전망했다. 연구소는 13일 ‘경기회복기 일자리 창출력 분석과 2006년 일자리 창출 전망’ 보고서에서 “부문별 성장률 전망치와 취업유발계수를 토대로 계산한 올해 일자리 증가 규모는 33만∼40만개”라며 “이는 정부 목표치인 35만∼40만개에 육박하는 수준”이라고 밝혔다. 연구소는 소비와 투자, 수출 부문 성장률을 각각 4.9%,3.9%,8.3%로 예상하고, 각 부문의 취업유발계수로 10억원당 각각 24명,16.1명,15.7명을 적용했다. 손민중 연구원은 “올해 경제 성장률이 4.8%로 작년보다 0.8%포인트 높아지면서 일자리 창출 폭도 지난해 29만 9000개를 웃돌 것”이라며 “특히 취업유발 계수가 큰 소비와 투자 부문의 성장률 개선이 기대된다.”고 말했다. 그러나 연구소는 외환위기 이후 전반적으로 경기와 고용상황 사이의 상관관계가 약해졌다고 지적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72년 2월과 98년 8월 사이(1∼6순환기)의 여섯 차례 확장기의 평균 일자리 창출 규모는 49만 4000개인데 비해 수축기의 경우 26만 9000개에 불과, 큰 차이를 보였다. 그러나 98년 8월 시작된 제7순환기부터 현재의 10순환기(확장기 진행 중)까지 네차례 확장기의 일자리 창출 폭은 29만 2000개, 세차례 수축기는 28만 5000개로 거의 차이가 없다. 이는 외환위기 이후 고용창출력이 낮은 수출 위주 정보기술(IT) 산업이 경기 확장을 주도한 데다 고용창출력이 상대적으로 큰 서비스업 부문은 가계 신용 거품 후유증으로 계속 부진했기 때문이라고 연구원은 설명했다. 손 연구원은 “좋은 일자리 창출을 위해서는 기업들의 투자 확대가 시급하다.”며 “특히 제조업 가운데 바이오산업을, 서비스업에서는 고부가 비즈니스 서비스, 문화와 관광 등 감성산업을 육성해야 한다.”고 강조했다.김경두기자 golders@seoul.co.kr
  • LG전자 ‘중견인력 파견제’ 상시 운영

    LG전자가 중소 협력사 지원에 팔을 걷어붙였다. LG전자는 자사의 전문 인력을 중소 협력업체에 파견해 각종 경험과 노하우를 전수하는 ‘중견인력 파견제’를 확대 실시한다고 13일 밝혔다. 지난해 시범적으로 실시하면서 총 6명을 파견했었지만 올해는 이를 연중 상시적으로 운영하고, 파견 인원 규모를 대폭 확대할 방침이다. 중견인력 파견제는 연구개발(R&D)이나 생산 관리, 마케팅 등 전문 분야의 현장 경험이 풍부한 자사의 차·부장급 전문 인력을 직접 협력업체에 장기간 파견해 사업 경험과 노하우를 전수함으로써 중소 협력업체의 경쟁력을 지원하는 제도다.김경두기자 golders@seoul.co.kr
  • 가계자산 90%가 부동산

    ‘뭐니 뭐니 해도 자산은 부동산이 최고(?)’ 가계 자산의 89.8%가 주택 등 부동산 자산이라는 결과가 나왔다. 은행 대출 증가액은 주택담보대출이 중소기업 대출을 압도했다. 대한상공회의소가 전국 7대 도시 700가구를 대상으로 실시해 13일 발표한 ‘우리나라 가계의 자산보유 현황과 시사점 조사’에 따르면 국내 가계자산은 거주 주택이 평균 83.4%, 기타 부동산 5.2%, 금융자산이 10.2%, 기타 비금융자산 1.2%를 차지했다. 하지만 국민들이 안정적으로 보는 가계자산 구성비는 금융자산 45.8%, 비금융자산 54.2%로 조사돼 현실과 큰 차이를 보였다. 우리 국민의 부동산 선호도는 은행 대출에서도 잘 나타난다. 은행의 중소기업 대출은 최근 2년간 18조원 증가한 데 반해 같은 기간 주택담보대출은 두배가 넘는 37조원이나 급증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해 은행의 주택담보대출 증가액은 20조 5534억원으로 중소기업 대출증가액 11조 400억원을 배 가까이 능가했다. 2004년의 경우 중소기업 대출증가액이 고작 6조 9002억원에 그친 데 반해 주택담보대출은 16조 3952억원이나 증가, 중소기업 대출보다 10조원 가까이 증가 규모가 컸다. 은행의 대출이 생산 현장보다 부동산시장에 집중적으로 흘러갔음을 확연히 보여준다.김성수 김경두기자 golders@seoul.co.kr
  • 70년 브라운관TV시대 ‘OFF’

    70년 브라운관TV시대 ‘OFF’

    브라운관 TV가 ‘안방극장’의 ‘마님역(役)’에서 물러나고 있다.1936년 영국 BBC가 정규 TV방송을 시작한 이래 70여년간 안방극장을 꿰차며 가족의 희로애락을 책임졌던 브라운관 TV가 기술 발전에 밀려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고 있는 것이다. 흑백에서 컬러로, 평면에서 슬림 브라운관으로 진화하며 질긴 생명력을 이어가고 있지만 안방극장으로서의 명성은 액정표시장치(LCD) TV에 내주고 있다. 브라운관 TV의 미래는 더 암울하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배불뚝이 TV’로 알려진 볼록화면 TV 생산을 중단했다. 신제품 출시도 줄고 있어 사실상 ‘명맥’이 끊길 처지에 놓였다. 삼성전자 브라운관 TV의 신제품 출시는 2003년 13개에서 2004년 9개, 지난해 4개로 해마다 줄고 있다. 올해는 슬림 브라운관 TV 하나만 출시된다. LG전자도 지난해 20개 모델 출시에서 올해는 10개 미만의 신제품만 내놓는다. 신모델 대부분이 기존 디자인에서 변화가 없는 슈퍼슬림 브라운관 TV다. 디스플레이별 매출액에서도 브라운관 TV는 LCD TV에 사상 처음으로 1위 자리를 내줬다. 13일 시장조사기관인 디스플레이서치에 따르면 지난해 4·4분기 LCD TV의 매출액은 100억 967만 7000달러를 기록, 전분기 대비 54.3%나 늘면서 최초로 브라운관 TV(4·4분기 매출 74억 6537만 5000달러)를 앞질렀다. 브라운관 TV 시대가 저물고 본격적인 ‘평판(Flat Panel)TV’ 시대가 열린 셈이다. 김경두기자 golders@seoul.co.kr
  • 협회 수장들 확 바뀐다

    ‘얼굴 바뀌는 협회 회장님들.’ 업종별 전문 협회를 이끄는 ‘수장’들이 최근 새 얼굴로 속속 교체되고 있다. 연임보다 기업경영 활동에 더욱 집중하기 위한 최고경영자(CEO)들이 많아졌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특히 ‘굴뚝’보다 정보기술(IT)업종에서 협회 회장의 세대교체가 두드러진다. 13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두산그룹의 간판 CEO인 김대중 두산중공업 부회장은 지난달 한국기계산업진흥회 정기총회에서 17대 회장으로 선임됐다. 김 사장은 고려대 강단에도 설 예정이어서 올해는 경영 외적인 활동이 많아질 전망이다. 최승철 두산인프라코어 사장도 한국건설기계공업협회 회장에 선임돼 기계분야의 대표 협회를 두산에서 책임지게 됐다. 그동안 바깥 활동이 잦지 않았던 이들 CEO의 행보를 감안하면 이례적이다. 한국자동차공업협회 상근 부회장에는 허문 산업자원부 전 무역조사실장이 선임됐다. 허문 부회장은 행정고시 18회 출신으로 산업자원부 산업정책과장, 국가균형발전위원회 총괄국장 등을 지냈다. 한국케이블TV방송협회 회장엔 오지철 전 문화관광부 차관이 취임했다. 오 회장은 취임 일성으로 ‘힘있는 협회’를 강조했다. 오 신임 회장은 문화부 문화산업국과 문화정책국 국장을 역임했다. IT 업종에선 협회 수장이 잇따라 바뀌고 있다.KT 노태석 부사장은 최근 한국지능로봇산업협회 신임 회장으로 선출됐으며, 한국모바일게임산업협회(KMGA) 회장엔 박지영 컴투스 사장이 선임됐다. 특히 부회장단에 모바일게임 분야 메이저업체 대표들이 대거 참여하면서 그동안 협회가 유명무실하다는 비판을 잠재울 것으로 보인다. 한국인터넷마케팅협회는 지난달 정기총회를 열고 인터넷광고대행사 코마스의 홍원의 부사장을 신임 회장으로 선임했다. 홍 회장은 광고대행사 동방기획을 거쳐 현재 코마스 마케팅커뮤니케이션부문 총괄 부사장을 맡고 있다. 한국인터넷기반진흥협회(KISPA)도 서광주 KT 전무(네트워크부문장)를 새 회장으로 선임했다. 박덕희 넷포유 사장은 한국IT여성기업인협회 3대 회장으로 취임했다. 박 신임 회장은 한양대 컴퓨터공학과를 졸업했으며, 동원시스템즈와 한국텔레시스 SW개발팀장을 거쳐 1999부터 네트워크 솔루션 및 멀티미디어 단말기 업체인 넷포유 대표를 맡고 있다. 한편 전임 회장의 잔여임기를 성공적으로 마친 신박제 필립스전자 사장은 지난달 한국외국기업협회(FORCA) 회장으로 추대됐다. 신 사장은 지난해 7월 인천국제공항공사 사장으로 선임된 이재희 회장 후임으로 외국기업협회 회장에 선임됐었다.김경두기자 golders@seoul.co.kr
  • LG전자 창원공장 르포

    LG전자 창원공장 르포

    지난 10일 오후 5시30분 LG전자 창원공장 냉장고 1라인에 들어서자 생산량과 불량대수를 표시한 전광판이 눈길을 끌었다.‘생산목표 1650, 현재 생산수량 1143, 현재 불량대수 11’이 찍혀 있었다. 불량률 0.0096%. 북미에서 폭발적 인기를 얻고 있는 3도어(Door) 냉장고 ‘프렌치 디오스’의 비결을 상징하는 듯했다. ●불량률 0.0096%… 하루 8000여대 생산 총 8000평 규모의 냉장고 1라인에서는 근로자 200여명이 분주하게 손을 놀리고 있었다. 이 공장에서는 3도어 냉장고 ‘프렌치 디오스’의 북미지역 수출물량을 16초마다 1대꼴로 쏟아내고 있었다. 이 제품은 현재 약 40개국에 수출되고 있으며 북미지역이 전체 물량의 70%를 차지하는 최대의 시장이다. ‘U자형’ 라인을 따라 ‘가조립→발포→제품 조립→검사→포장’ 과정이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었다. 창원공장 1·2라인에서 생산되는 냉장고는 하루 8000여대. 연간 250만대 수준이다. LG전자가 프리미엄급 제품을 내세워 2010년 냉장고 세계 1위를 선언했다. 이를 위해 연평균 20% 이상의 성장을 지속해 2010년 매출 40억달러를 달성키로 했다. 엉업이익은 4억달러 목표로 외형과 내실 ‘두마리 토끼’를 잡겠다는 각오다. ●국가별 ‘맞춤형 냉장고’ 수출 LG전자는 이날 창원공장에서 ‘2006 디오스 냉장고 신제품 및 전략 발표회’를 갖고 세계시장을 휩쓸 신모델 65개를 선보였다. 올해 신제품은 냉장고의 특선실내에 발광다이오드(LED) 조명을 장착해 야채가 광합성을 통해 신선한 상태를 오래 유지할 수 있는 ‘유기농 광특선실’을 설치했고, 세계 최초로 얼음을 만드는 제빙기를 냉동실 문에 부착해 실내 공간을 더 넓혔다. 국가별 맞춤형 냉장고도 내놓았다. 북미로 수출할 프리미엄급 제품엔 실시간 일기예보를 확인할 수 있도록 했으며, 러시아 제품엔 보드카 보관실을 별도로 만들었다. 또 크리스털 1300여개를 부착해 명품의 이미지를 강조하고, 비만 관리나 혈압 관리, 식단 추천 등의 기능을 부착한 제품도 선보였다. 냉장고사업부장 박찬수 상무는 “올해 신제품은 철저한 소비자 조사와 환경 분석을 통해 이를 제품에 반영한 것”이라면서 “디오스를 앞으로 명품 냉장고의 대명사로 인식시키겠다.”고 자신감을 드러냈다. ●냉장고 2010년 세계 1위 매출 LG전자는 올해 글로벌 매출 30억달러,2008년 35억달러,2010년 40억달러를 각각 달성해 현재 세계 1,2위인 월풀과 일렉트로눅스를 제치고 냉장고 부문 세계 1위에 올라설 계획이다. 이영하 디지털 어플라이언스(DA) 사장은 “세계 냉장고 시장은 연평균 4%의 완만한 성장세를 보이고 있지만 LG전자는 지난 3년간 연평균 20% 이상 성장하고 있다.”면서 “앞으로는 미국과 유럽에서도 1위를 차지하겠다.”고 강조했다. 창원 김경두기자 golders@seoul.co.kr
  • [2006 재계 인맥·혼맥 대탐구] 대신증권-양재봉 명예회장家

    [2006 재계 인맥·혼맥 대탐구] 대신증권-양재봉 명예회장家

    주식을 잘 모르는 사람도 ‘큰 大 믿을 信’ 하면 대신증권을 단박에 떠올린다. 한때 큰 주목을 받았던 광고 카피가 알반인의 뇌리에 많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익숙한 이름만큼 회사의 규모나 역사는 일반인에게 제대로 알려져 있지 않다. 대신증권은 증권업계에서 여타 대형 증권사와 다른 몇가지 ‘독자적인’ 위치를 갖고 있는 것으로 평가받는다. 우선 재벌 계열이나 은행 계열이 아니면서 40년간 업계 상위권을 지켜왔다.1990년대 말 IMF 외환위기 이후 재벌이나 은행을 끼지 않은 증권사가 살아남기 힘든 환경속에서도 여전히 ‘빅5’ 안에 든다. 대신증권은 또 선진국형 증권 시스템을 가장 먼저 도입한 곳으로 꼽힌다. 증권사 흑판에 분필로 시세를 적던 시절 최초로 ‘전광판’을 도입했다. 이후 ‘온라인 거래의 최강자’란 명성을 얻었고 사이버 누적거래 1위 자리를 지켜 오고 있다. 금융계에서는 보기 드물게 ‘3세 경영’을 잇게 된다.‘거상(巨商)의 꿈’ 하나로 빈손으로 대신증권을 일군 양재봉(81) 명예회장의 역할을 현재 아들과 며느리, 사위가 잇고 있으며 머지않아 손자가 이 역할을 대물림받을 전망이다. ●빈손 ‘송촌’ 거상의 꿈 양 명예회장은 1925년 전남 나주군 나주읍 송촌리에서 태어났다. 고향에 대한 애착으로 호를 ‘송촌(松村)’으로 지었고 훗날엔 이 명칭을 딴 ‘송촌문화재단’을 설립했다. 그가 거상의 꿈을 품기 시작한 것은 송촌을 떠나 당시 ‘수재의 집합소’로 불리던 목포상업고등학교에 진학하면서부터였다. 15대1이 넘는 경쟁률을 뚫고 ‘나주에서 간 유일한 합격자’가 된 양 명예회장은 이곳에서 ‘일본인들에게 뒤져서는 안 된다.’는 일념으로 공부하면서 돈을 벌어야겠다는 꿈도 키웠다. 그의 첫 목표는 한국은행 전신이었던 조선은행 입사였다. 양 명예회장은 “대학 졸업자들도 번번이 낙방하는 판에 상업학교 재학 중에 그 좁은 관문을 뚫어 자부심이 컸다.”고 당시를 회고한다. 이 때 생긴 ‘하면 된다.’는 자신감은 모험에 대한 열망으로 자라났다. 하지만 그는 안정된 은행원 생활에 만족하지 못했다. 거상의 꿈을 이루기 위해서는 다양한 경험을 쌓아야 한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이후 장사를 할 기회를 살피며 아이디어만 생기면 곧바로 실행에 옮겼다. 목포와 나주 일원의 쌀을 사서 부산에 파는 미곡상을 하기도 했고, 양조 사업에도 손을 댔다. 겁없이 뛰어든 사업은 실패로 끝났다. 다시 조흥은행 신입 은행원의 자리로 돌아와야 했고, 이후 여러 은행을 거치면서도 사업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않았다. 끊임없는 새 사업 궁리끝에 시작한 극장 사업에서 성공하면서 그는 자신감을 되찾게 된다. 금융업 경영자로서 본격 나선 것은 한일은행 서울 청량리 지점장으로 재직하던 1970년대초 무렵이다. 지점장 부임 1년도 안 돼 예금 계수를 2배로 만들 만큼 실력을 인정받았다. 이어 단자회사 설립을 권유받던 양 명예회장은 미원그룹 임대홍 회장, 해태제과 박병규 사장과 함께 ‘대한투자금융’을 설립했다. 증권 회사 설립은 그로부터 1년 뒤 일본 방문을 계기로 추진한다. 도쿄에 있던 ‘노무라증권연구소’의 선진적 체계에 깊은 인상을 받은 그는 돌아오자마자 증권업 진출을 서둘렀다. 당시 정부는 소규모 증권사 난립을 경계해 새 증권회사 설립 허가를 꺼려했다. 양 명예회장은 75년에 직원 11명의 ‘망해가던’ 증보증권을 전격 인수한다. ●망해가던 증보증권 잘나가는 대신증권으로 증보증권은 경영 실적이 형편없는 하위권 회사였지만 그는 ‘꿈에도 그리던 증권회사를 세웠다.’는 생각에 희망에 넘쳐 있었다. 우선 회사의 이미지를 바꾸기 위해 ‘대신증권’으로 이름을 변경했다. 이름을 바꾼 뒤부터 대신증권은 연일 승승장구했다.75년 대기업들이 탐내던 명동 국립극장 입찰에 성공해 ‘주식 투자자들의 베이스 캠프’로 만들었다. 77년 양 명예회장은 대한투자금융 전무이사직을 버리고 대신증권 사장으로 나섰다. 이어 업계 최초로 ‘전광시황 속보판’을 세우는 등 혁신을 거듭한 끝에 업계 2위로 올라섰다. 그러나 성공 가도를 달리던 양 명예회장에게도 암흑기는 찾아온다. 사장 취임 4개월만에 회사 영업부장이 고객과 회사의 돈을 빼돌려 피해자만 100명에 이르는 대형 금융사고를 일으켰다. 대신증권과 자신의 신뢰에 엄청난 손상을 입힌 사고였다. 그 여파가 얼마나 컸던지 양 명예회장은 사장 자리에서 물러난 이후 3년간 시골 농장에서 가축을 기르며 은둔 생활을 해야 했다. 다시 증권계로 돌아온 것은 81년. 대신증권의 대주주들이 양 명예회장을 찾아와 쓰러져가는 대신증권을 살려달라고 간곡하게 부탁했다. 그가 대신증권 사장에 복귀했을 때, 회사는 이미 자본잠식 상태였다. 그는 “죗값을 치르겠다.”는 심정으로 일을 했다. 가장 먼저 한 일은 흐트러진 임직원들을 단합시키는 것이었다. ‘구두쇠 100일 작전’,‘개미작전’ 등 전 직원의 단합을 유도하기 위한 각종 아이디어를 짜냈다. 잘 나가던 대한투자금융 주식을 주고 미원 임 회장이 보유하고 있던 대신증권 주식을 인수, 최대 주주가 됐고, 회사 재건에 ‘올인’했다. 다행히 80년대 중반 국내 증시는 최고 활황의 시기를 맞이한다. 양 명예회장은 대신증권의 회생에 성공해 84년 대신경제연구소,86년 대신개발금융,87년 대신전산센터,88년 대신투자자문,89년 대신생명보험,90년 송촌문화재단,91년 대신인터내셔널유럽 등을 잇따라 설립하면서 대신을 명실상부한 종합금융그룹으로 만들었다. ●신뢰 중시 경영으로 IMF 극복 하지만 그에겐 또 한번의 어려움이 닥친다.IMF 외환위기가 발생하자 연 20%대의 살인적인 고금리 상황이 발생해 수많은 기업이 어려움에 빠졌다. 대형 증권사인 동서증권, 고려증권이 환매 사태로 하루아침에 부도에 이르면서 ‘재벌이 아니면 살아남기 힘들다.’는 루머까지 돌았다. 비재벌 단독 증권사인 대신증권에도 이 분위기는 예외가 아니었다. 당시 대신증권은 단기 차입금을 모두 상환해 빚이 없는 상황이었다.90년대 말 펀드 열풍으로 시중의 자금도 증권사로 몰렸다. 하지만 양 명예회장은 회사채를 편입한 수익증권 판매를 전면 중지시키고 안전한 국공채 위주의 채권형 펀드만을 취급하라고 지시한다. 예상은 맞았다. 대우그룹 부도, 하이닉스 사태,SK사태 등이 연이어 터지며 회사채로 수익증권을 판 증권사들은 잇따라 위기를 겪었지만 대신증권은 안전한 국공채를 편입한 수익증권만 판매한 덕에 손실을 입지 않았다. 결국 90년대 초반 업계를 대표하는 5대 대형사의 주인이 모두 바뀔 정도로 부침이 심한 증권업계에서 대신증권은 살아남았다. 양 명예회장이 이처럼 오뚝이처럼 일어선 것은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사업부문에 대해 과감하게 투자하는 결단력 때문이었다. 오래 전부터 전산부문이 증권회사의 성장을 이끌 것으로 본 양 명예회장은 전산부문에 과감한 투자를 감행했다. 초기 집중 투자를 통해 온라인거래 시스템을 구축했고, 이로 인해 99년 이후 온라인 거래가 폭발적으로 늘자 대신증권은 또 한번의 중흥기를 맞게 됐다. ●내실화 일군 고 양회문 회장 양 명예회장은 2001년 현업에서 물러나고, 차남인 양회문(2004년 작고, 당시 53세) 전 회장에게 회사 경영을 물려줬다. 양 명예회장의 4남4녀 중 차남인 고 양 회장은 75년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대신증권 공채 1기로 입사했다.10년동안 지점영업에서부터 인수, 법인, 자산운용, 기획, 인사 등 증권 전부문에 걸쳐 실무경험을 쌓으면서 경영수업을 받았다. 고 양 회장은 회장 취임후 외형 성장보다는 내실을 다지기 위해 재무 구조 정비에 나섰다. 생명, 정보통신 등을 계열 분리하고 대신증권, 투신운용, 경제연구소 중심으로 그룹을 정리했다. 그는 2002년 초 폐암진단을 받은 후 2004년 작고 때까지 약 3년간 초인적인 투병 생활을 하면서도 리더십을 발휘했다. 대신증권이 외국인 지분율이 가장 높은 내실있는 회사로 재탄생한 것은 고 양 회장의 공이 크다는 게 안팎의 평가다. 양 회장 작고 이후 대신증권을 이끄는 주역은 고 양 회장의 부인이자 양재봉 명예회장의 둘째며느리인 이어룡(52) 회장이다. 평범한 가정주부였던 이 회장은 남편이 투병생활을 하던 3년여동안 집중적으로 경영수업을 받은 뒤 2004년 10월 회장에 취임했다.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과 종종 비교되는 이 회장은 특유의 세심함으로 회사를 이끌어 가고 있다. 지난해에는 한 달만에 109개 전 영업점을 순회방문하면서 직원들을 격려해 주위를 놀라게 했다. 여성 특유의 섬세함뿐만 아니라 강단도 함께 갖췄다. 최근에는 자본통합시장법 제정에 따라 일본의 SPARX그룹과 자본 및 업무 제휴를 통해 향후 종합금융투자회사로의 전환에 대비하고 있다. 대만의 IBTS와 제휴하는 등 외국 금융기관과 국제적인 제휴를 진두지휘하는 역동적인 모습을 보여줬다. 이 회장은 자신을 드러내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편이며 조용히 책읽기를 좋아한다. 남편의 투병 중에는 국내·외에서 발간된 대부분의 암 관련서적을 섭렵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에는 서울과학종합대학 최고경영자과정에 다녔다. 동기로는 현대그룹 현정은 회장, 유한킴벌리 문국현 사장,SK텔레콤 김신배 사장이 있다. 이 회장과 함께 대신증권의 제2도약을 이끌 인물로는 양재봉 명예회장의 사위이자 차녀 회금(52)씨의 남편인 노정남(53) 현 대신증권 사장이 있다. 연세대 행정학과를 나온 노 사장은 지난해 10월 대신증권 사장에 취임했다. 노 사장은 77년 한일은행에 입사한 뒤 29년간 금융업에만 종사해온 탁월한 금융 전문가로 인정받고 있다. 87년 대신증권에 입사해 영국 런던사무소장·지점장,IB담당임원, 상품운용본부장, 국제본부장 등을 두루 거쳤다.99년부터 6년 동안 대신투신운용 대표이사로 재직해 왔다. 런던 소재 코리아유럽 펀드의 이사를 지내는 등 국제적 감각이 뛰어나고 강력한 추진력을 지녔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대신증권의 1대 주주이자 실질적인 대신증권의 차세대 주인으로 주목받고 있는 사람은 양 명예회장의 손자이자 이어룡 회장의 아들인 홍석(25)·홍준(22)씨다. 장남인 홍석씨는 현재 서울대 경영학과 4학년에 재학 중이며, 차남 홍준씨는 고려대 경영학과 3학년이다. 홍석씨는 올해안에 대신증권에 입사해 아버지인 고 양회문 회장이 밟았던 것처럼 말단에서부터 시작해 경영 수업을 받을 것으로 알려졌다. 첫째이자 장녀인 정연(27)씨는 이화여대 경영학과를 졸업한 뒤 외국계 컨설팅회사 베어링포인트에서 근무하다 현재 미국에서 MBA 과정을 밟고 있다. ●단출한 혼맥… 정략결혼은 없다 양재봉 명예회장은 부인 최갑순(78)씨와의 사이에 고 양 회장 외 3남4녀를 두고 있다. 이들은 대부분 연애결혼을 해 평범한 집안에 시집·장가를 갔다. 양 명예회장이 자식들의 의사를 존중해 정략적 결혼을 권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전 송촌 회장 및 전 광주방송 회장을 역임한 장남 회천(57)씨는 대구 교육자 집안 출신의 문홍근(58)씨와 결혼했다. 회천씨는 처음부터 대신그룹에 근무하지 않고 대신전기 등 제조업체를 경영했다. 문홍집(56) 대신경제연구소 사장이 회천씨의 처남이다. 문 사장은 비즈니스 위크에서 아시아를 이끌 50인으로 선정하기도 한 금융 IT부문 한국 최고의 전문가로 꼽힌다. 대신증권 IT본부장으로 재직하면서 개발한 온라인거래 시스템인 ‘U-사이보스’는 지금도 세계 최고 수준이라는 격찬을 받는 등 전산부문을 한국 최고로 이끈 실력자로 평가받고 있다. 둘째인 고 양 회장과 현 이어룡 회장 역시 연애결혼을 했다. 이 회장은 충북 괴산 출신으로 부친이 한학자였다. 이 회장 동생인 제봉(43)씨는 대학 교수이고, 제영(41)씨는 대신증권 IB 1팀장으로 근무하고 있다. 3남인 용호(48)씨는 코스닥 상장 창업투자회사인 대신개발금융회장과 아인스 회장을 역임했다. 아인스는 세계 유명 건축물 모형 전시시설인 경기도 부천의 아인스월드를 운용하는 회사다. 서울시 공무원 집안의 조선미(45)씨와 결혼해 2남1녀를 두고 있다. 4남인 정현(37)씨는 현재 코스닥 상장 금융 IT전문 회사인 대신정보통신 전무이사로 있다. 부인 이현아(30)씨는 조선내화 이훈동 회장의 손녀이자, 민주당 이정일 국회의원의 딸이기도 하다. 장녀 영애(59)씨는 대학때 연애를 통해 만난 나영호(60) 현 경원대 겸임교수와 결혼했다. 재무학 박사인 나씨는 대신경제연구소 사장으로 재직하다가 2005년 은퇴했다. 차녀 회금씨와 노정남 대신증권 사장도 연애결혼했다. 노 사장은 한국행정연구원장을 역임했던 노정현(77) 전 연세대 행정학과 교수의 친동생이다. 3녀 미경(42)씨는 이시영(46) 현 중앙대 교수와 결혼했다. 이시영 교수는 미국 시카고대에서 경제학 석·박사를 받은 뒤 중앙대에서 사회과학대학 상경학부 교수와 동대학 국제대학원장을 맡고 있다. 이 교수의 부친은 전북지사와 공보부 차관을 지낸 이춘성씨다. 4녀 회경(41)씨는 이재원(46) 현 대신정보통신 대표이사와 결혼했다. 이 대표는 미국 위스콘신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뒤 93년부터 금융솔루션 업체인 대신정보통신에 근무하고 있다. s123@seoul.co.kr ■ 슬로건 ‘큰大 믿을信’ 어떻게 지었나 대신증권을 오늘의 위치에 올려놓은 일등 공신은 ‘큰大 믿을信’이라는 슬로건이다. 이 슬로건은 양재봉 명예회장의 작품이다. 양 회장은 증보증권을 인수해 새 회사를 만들면서 “인간과 인간 사이에 믿음이 없이는 그 어떤 일도 이루어 낼 수 없다.”는 신념으로 ‘대신’이라는 이름을 붙인다.‘큰 대 믿을 신’이라는 슬로건을 사용하게 된 것은 그로부터 약 10년 후인 1986년부터다. 당시 증권 산업은 성장하고 있었지만 국민들의 증권사에 대한 인식은 좋은 편이 아니었다. 양 회장은 주식 투자의 대중화를 위한 분위기를 조성하고, 회사의 이미지를 높이기 위해 홍보활동을 강화했다. 86년 3월 처음으로 TV CF를 제작했지만 시청자에게는 크게 파고 들지 못했다. 새로운 홍보전략을 구상하던 양 회장은 어느 날 열차를 타고 가던 중 열차바퀴가 레일과 마찰하면서 일어나는 소리가 매우 경쾌하다고 느낀다. 그는 “마치 옛날 서당에서 ‘하늘천 따지’하고 천자문을 읽을 때의 리듬과 비슷하다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그리고 그 소리가 곧 우리 정서에 잘 맞는 3·3조 가락과 닮았다는 생각에 바로 큰 대 믿을 신 이라는 단어를 떠올린다. 이후 TV 광고에는 ‘큰 대 믿을 신’ 이라는 슬로건을 빠짐없이 사용하게 됐다. 이 슬로건은 주식투자를 하지 않는 사람들까지도 증권회사 하면 ‘큰大 믿을信=대신증권’을 떠올리게 할 만큼 히트했다. 이후 ‘큰大 믿을信’은 20여년간 대신증권 광고의 슬로건으로 사용되면서 대신증권을 증권명가의 이미지를 만드는데 큰 공헌을 하고 있다. s123@seoul.co.kr ■ 금융통 대거 배출한 ‘증권계 사관학교’ ‘증권업계 사관학교’로 불리는 대신증권은 금융계에서 내로라할 만한 인물들을 숱하게 배출했다. 주택은행장과 중소기업은행장을 지낸 박동희(76)씨, 정해왕(59) 한국은행 금융경제연구원장, 김정태(59) 전 국민은행장, 이강원(56) 한국투자공사 사장 등이 대표적이다. 지난 1986년 대신경제연구소에 대표이사로 입사한 박 전 중소기업은행장은 대신개발금융, 대신투자자문, 대신증권 대표이사를 거쳐 대신그룹 부회장을 역임했다. 정 금융경제연구원장은 미국 켄터키 주립대에서 경영대 조교수로 있다가 대신경제연구소 상무이사로 입사,89년부터 4년간 대신경제연구소를 이끌었다. 김정태 전 국민은행장도 대신증권과 각별한 인연을 맺고 있다. 조흥은행 출신인 김 전 행장은 양재봉 명예회장이 설립한 대한투자금융에 74년 스카우트됐다. 양 명예회장의 두터운 신임을 받은 그는 대신증권 비서실장으로 발령났고,80년 34세의 나이로 대신증권 최연소 임원으로 승진했다. 이강원 한국투자공사 사장은 89년 대신증권 국제영업담당 상무이사로 대신증권에 입사했다. 퇴사 후 아시아개발은행을 거쳐 외환은행장, 굿모닝 증권 사장을 역임하는 등 탄탄대로를 걷고 있다. 이밖에 이준호(61) 대한화재 사장은 77년 대신증권 종합기획실 실장으로 입사한 뒤 이사, 상무이사를 거쳐 94년에 대표이사 사장을 역임했다. 김한(52) 메리츠증권 부회장은 89년 대신증권에 입사한 뒤 만 35세의 젊은 나이에 이사직에 올랐다.97년까지 대신증권에서 국제본부장, 인수본부장, 기획본부장 등을 역임하면서 증권계의 거목으로 성장했다. s123@seoul.co.kr ●특별취재반 산업부 박건승 부장(반장) 정기홍·류찬희·최용규 차장 이기철·강충식·주현진·류길상·김경두·서재희 기자
  • LG전자 ‘상복’ 터졌네

    LG전자 ‘상복’ 터졌네

    LG전자의 벽걸이형 프로젝터(AN110))가 세계적 권위의 디자인상을 연이어 수상하고 있다. LG전자는 독일 하노버 ‘iF디자인 어워드’ 시상식에서 자사의 벽걸이형 프로젝터가 전자·통신부문 최고 디자인상인 ‘황금상’을 수상했다고 10일 밝혔다. 황금상은 iF디자인상 수상 제품중 각 제품군중에서 최고의 디자인을 갖춘 제품에 주어지는 디자인 분야의 최고 상이다. 벽걸이형 프로젝터는 지난 1월 세계 가전전시회인 ‘CES 2006’에서 혁신상을 수상한 것을 비롯해 레드닷(reddot) 디자인상 가운데 ‘최고 디자인상’을 수상하는 등 디자인 부문 3관왕에 오른 셈이다. LG전자는 올해 iF디자인상에서 벽걸이형 프로젝터를 비롯해 50인치 타임머신 PDP TV 등 11개 제품이 수상작으로 선정됐다. 삼성전자도 캠코더 ‘미니켓’과 LCD(액정표시장치) 모니터 등 25개 제품이 이번 iF디자인상을 받았다. 김경두기자 golders@seoulco.kr
  • ‘프리미엄LG’ 유럽시장 공략

    LG그룹이 유럽에 ‘프리미엄 LG’ 브랜드 알리기에 본격 나선다. LG는 8일부터 런던 히드로 공항로와 독일 베를린의 테겔공항 입출구, 프랑스 파리 순환도로 등 3개 도시에서 공항중심으로 첨단 이동단말기 및 디스플레이 제품을 알리는 새로운 옥외광고를 운영한다고 9일 밝혔다. 런던에선 히드로 공항로에 위치한 빌딩 벽면을 활용해 가로 30m, 세로 20m의 대형 크기로 옥외 광고판을 설치하고, 파리는 드골공항에서 시내로 진입하는 순환도로에 가로 64m, 세로 5m의 크기로 LG로고와 함께 첨단 휴대전화 및 PDP(플라즈마디스플레이패널),LCD(액정표시장치) 등의 디스플레이 제품을 광고한다. 독일 월드컵 결승전이 치러질 베를린의 테겔공항 입출구 중앙엔 높이 16m의 대형 조형탑에 클린스만 감독, 올리버 칸 골키퍼 등 LG가 후원하는 독일 축구 국가대표팀 사진과 함께 휴대전화 광고사진을 실어 휴대전화 분야의 글로벌 리더로서 LG브랜드 이미지 확산에 나선다. LG는 체코 프라하와 독일 프랑크푸르트 공항에서도 활발한 ‘관문 마케팅’을 실시하고 있다. LG전자는 올 초 체코 프라하 루지네 신공항에 42,32인치 LCD 모니터 700대를 설치했다.LG는 지난해 3월부터 올해 2월까지 연간 5000만명이 이용하는 독일 프랑크푸르트공항 전역에 승객 시청용 42인치 PDP TV 180대를 설치,‘LG 브랜드’ 이미지를 강화했다.김경두기자 golders@seoul.co.kr
  • LG전자 17년 무분규 단협타결

    LG전자 노사가 올해 임금을 6.2% 인상키로 합의함에 따라 이 회사는 17년째 임금협상 무분규 타결을 기록했다.LG전자는 9일 서울 문래동 LG전자 강서빌딩에서 김쌍수 부회장과 장석춘 노조위원장 등이 참석한 가운데 단체교섭을 갖고 올해 임금을 6.2% 올리기로 합의했다고 밝혔다. 이로써 LG전자는 17년 연속 분규 없이 임금협상을 타결지었다. LG전자는 임금인상 외에도 가산동 통합단말연구소에 시범적으로 직장보육시설을 운영하고 향후 전체 사업장으로 확대해 나가기로 했다. 또 올해 임금인상 재원에서 노사가 각각 5억원을 출연,10억원의 사회 공헌기금을 조성한 뒤 공동으로 사회봉사활동을 전개하기로 했다. 김쌍수 부회장은 “17년간 이어진 LG전자 노사의 평화적 단체교섭 전통은 세계 최고의 기업으로 도약하기 위한 핵심 경쟁력”이라면서 “올해도 노조와 경영진이 하나가 돼 알찬 결실을 이루고 이를 사회에 환원하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김경두기자 golders@seoul.co.kr
  • ‘구조본’ 해체해도 아류조직 ‘명맥’

    ‘이름은 달라도 필요악?’ 삼성이 구조조정본부의 명칭을 전략기획실로 바꾸면서 ‘구조본 시대’가 사실상 막을 내리고 있다. 그러나 ‘황제 경영’의 산실인 비서실과 경영기획실 등이 “외환위기를 불러왔다.”는 사회적 비난에 못이겨 구조본으로 말을 갈아탄 것처럼 구조본도 “오너가(家)의 친위부대”라는 오명을 피해 많은 ‘아류’들을 만들어내고 있다. 재벌그룹 대부분이 현재 기획총괄본부나 전략경영본부, 투자회사관리실 등으로 구조본을 대신하고 있으며, 특히 구조본을 해체한 현대나 코오롱 등은 최근 구조본 조직을 사실상 부활시켰다. 일사불란한 조직 체계와 중앙집권식 통제, 자원의 효율적 배분, 계열사의 이해 조정 등에 장점이 많은 구조본의 유혹을 쉽게 뿌리칠 수 없었기 때문으로 보인다.●그룹별 구조본 ‘아류’들 두산은 ㈜두산에 전략기획본부를 설치해 그룹의 장기 전략과 계열사를 지원하는 일을 맡고 있다. 롯데는 호텔롯데에 15개실의 경영관리본부를 두고 있다가 2004년 12월 8개실로 축소하고, 명칭을 정책본부로 변경했다. 정책본부는 미래전략 수립과 신사업 발굴, 중복투자 예방, 핵심가치 수립 등 그룹 차원의 주요 정책들을 추진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 동부는 ㈜동부가 계열사의 최고경영자(CEO)와 실적 등을 평가하며, 경영사항 등을 지원하고 있다. 현대차는 중장기 사업계획과 미래 비전을 고민할 경영전략추진실을 두고 있으며,SK는 2004년 구조본을 해체한 이후 SK㈜에 투자회사관리실을 설치해 재무관리나 사업 구조조정, 인재 수급 등을 추진하고 있다. LG는 지주회사인 ㈜LG가 그룹의 ‘컨트롤 타워’ 역할을 하고 있다. 강유식 부회장이 재경팀과 인사팀, 경영관리팀, 브랜드관리팀, 법무팀 등 60여명의 구성원을 이끌고 있다. 한화는 재계에서 유일하게 구조본이라는 명칭의 총괄기구를 두고 있다. 회장 비서실 조직에서 출발해 외환위기 때 계열사 구조조정을 위해 출범했다. 별도 조직으로 계열사에서 파견한 인원 50여명으로 구성돼 있다. 한진그룹은 구조조정실을 두고 있으며, 삼성은 최근 전략기획실로 새롭게 변신했다. 기존 구조본 조직 1실 5개팀 147명에서 3개팀 99명으로 축소했다. 법무실 18명, 재무팀 28명 등 48명이 계열사로 돌아갔다.●중견그룹은 구조본 강화 금호아시아나와 현대, 코오롱, 현대백화점 등은 구조본의 ‘아류 조직’을 강화시켜 사실상 구조본을 부활시켰다. 코오롱은 지난해 12월 경영전략기획실을 경영전략본부로 승격시켰다. 구조본 폐지 이후 5년 만에 구조본 기능을 되살린 것이다. 경영전략본부는 전략기획팀, 인사팀, 윤리경영팀, 재무팀, 비서팀, 홍보팀 등 6개팀으로 구성돼 있다. 현대는 지난해 경영전략팀을 기획총괄본부로 확대 개편하고, 전인백 전 하이닉스반도체 부사장을 본부 사장으로 영입했다. 회장 직속기구인 기획총괄본부는 구조조정 업무를 비롯해 그룹 현안 업무를 총괄한다. 금호아시아나도 지난해 전략경영본부를 기존 6팀 체제에서 5개 부문 10팀 체제로 확대 개편했다. 현대백화점은 2004년 부사장급인 경영지원실을 사장급인 기획조정본부로 격상시켰다.김경두기자 golders@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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