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줄날줄] 다양성과 저력
“경화원,이벤트학 교수,소재 디자이너…” 과거엔 듣도 보도 못했던 새 직종들로,이중 경화원은 커튼에 자외선 차단막을 입히는 직업을 가리킨다.노동부 중앙고용정보관리소에 따르면 지난해 우리 사회의 전체 직종 수는 1만2,306개로 1995년에 비해 769개나 늘어났다.특히 ‘2001 한국 직업사전’에는 교육서비스 분야에서 5년만에 122개직종이 새로 등재됐다.
새해 벽두에 이 통계를 음미하면서 안도감보다는 아직 갈 길이 멀다는 생각이 들었다.우리의 직업 계층구조가 여전히 단조롭고 전문성도부족하다는 점에서다. 3만여개에 이른다는 미국의 직종 수는 제쳐놓더라도 일본·캐나다(2만5,000여개)에 비해도 절반 수준이기 때문이다.전문가들이 올해 한국경제의 가장 큰 고민거리로 꼽고 있는 내수시장의 부진도 이와 무관치 않다는 지적이다.인구 4,600여만명이라면적지않은 시장이다. 그런데도 구매력과 내부 예비자원이 고갈되다시피 한 것은 경제·사회적 다양성 결핍과 이로 인한 저력 부족을 웅변한다.
사실 우리 사회는 큰 취약점 하나를 안고 있다.뭐가된다고 소문이돌면 너도나도 우르르 몰려드는 통에 결국엔 함께 망하게 되는 풍조가 그것이다.PC방이니,무슨 방이니 해서 우후죽순처럼 생겨났다가 거품처럼 사라지는 세태에서 장인정신에 바탕을 둔 전문성인들 제대로길러질 리 있겠는가.
한때 세계적 선망의 대상이었으나 끝 모를 나락으로 추락중인 남미국가들을 돌아보자.이들은 엄청난 자원을 보유하고도 경제침체의 수렁에서 헤어날 발판을 찾지 못하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지난 연말 또다시 국제통화기금(IMF)의 구제금융을 받은 아르헨티나가 대표적이다.
20세기 중반 세계 5대 부국으로 꼽힌 아르헨티나로 유럽인들이 일확천금의 꿈을 안고 몰려들었다.그러나 그 후손들은 거꾸로 국내에서일자리를 찾지 못하는 절망적 상황에서 각국 대사관의 비자 창구 앞에 장사진을 치고 있다.
아르헨티나는 목축업과 곡물생산 등 단조로운 산업구조로 세계적 경제흐름에 적응하지 못했던 셈이다.이른바 페론주의로 불리는 인기영합주의에 함몰돼 곡물수출 등으로 얻은 외화를 국민들에게 나눠주는데 열중하면서 경제의 기초를 넓히는 투자에 소홀했던 것이다.
다른 산의 거친 돌도 내 산의 옥을 가는 데 쓰겠다는 적극적 사고가절실한 때다. 정부는 앞으로 벤처 지원을 하더라도 좀더 다양한 전문성을 키우는 쪽으로 해야 할 것이다.다채로운 자격증을 신설해 전문직종의 저변을 넓히는 것도 대안이 될 듯싶다.따지고 보면 특정 분야로만 설비와 금융이 몰리는 편식적 과잉투자가 결국 우리의 IMF 위기를 부른 게 아닌가.
■구본영 논설위원kby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