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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구본영
    2025-0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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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길섶에서] 페이스북 단상/구본영 논설고문

    트위터나 페이스북 등 개방형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접속하지 않은 지 꽤 오래됐다. 대신 밴드나 카카오톡 등 토종 폐쇄형 SNS를 주로 이용하는 편이다. 수많은 지인들이 전해 오는 글과 사진에 일일이 반응을 보일 만큼 부지런하지 않은 게 개방형 SNS를 끊다시피 한 이유라고 여겼다. 그러나 강준만 교수의 책에서 ‘부작위 편향’이란 용어를 접하면서 꼭 게으름 탓만은 아니라는 걸 알게 됐다. 즉 “가만 있으면 중간은 간다”는 손실 회피 경향 때문이라는 대목에 고개가 끄덕여졌다. 남에게 큰 상처를 주는 악플이나 댓글 논쟁에서 보듯 인터넷·SNS 시대에는 안 해도 될 일을 목숨 걸고 하려는 편향성이 더 큰 문제일 수 있다는 지적이 다소 위안도 됐다. 오랜만에 페이스북 계정에 들어가 봤다. 친구 맺기를 요구하는 지인들이 잔뜩 대기하고 있었다. ‘우정의 상업화’를 부추기는 게 SNS의 메커니즘이라지만, 물리적 거리나 바쁜 일상 때문에 자주 못 만나는 친구들에게는 좀 미안한 생각도 들었다. 어떤 편향성을 띠기 일쑤인 사이버 공간에서도 적극성과 신중한 배려 사이의 중용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뇌리를 스쳤다. 구본영 논설고문 kby7@seoul.co.kr
  • [씨줄날줄] ‘사이버 반달리즘’

    할리우드 영화 한 편이 미국을 발칵 뒤집어 놓았다. 제작사인 소니 픽처스가 북한 노동당 김정은 제1비서의 암살을 다룬 ‘인터뷰’를 상영 취소하면서다. 당장 북한과 ‘테러 위협에 굴복한’ 소니사에 대한 비판론이 들끓고 있다. 급기야 버락 오바마 대통령까지 나서 북의 소행으로 추정되는 소니사 해킹 사건을 ‘사이버 반달리즘’이라고 규정하고 나섰다. 반달리즘은 다른 문화에 대한 편견에 따른 문명 파괴 행위를 일컫는다. 이슬람 극단주의 세력 탈레반이 아프가니스탄의 바미안 석불을 짓뭉갰듯이 말이다. 5세기 초 로마를 초토화한 반달족의 약탈·파괴 행위에서 유래한 용어이지만 오바마는 반달리즘의 사이버 버전을 언급한 셈이다. 다만 오바마는 소니사 해킹을 전쟁 행위로는 간주하지는 않는다면서 군사적 옵션은 일단 배제했다. 그런데도 북한 국방위원회는 그제 “백악관과 펜타곤(국방부), 미 본토를 겨냥한 초강경 대응전을 벌일 것”이라고 격렬하게 반응했다. 사실 인터뷰는 미 영화 평단에서도 완성도가 높지 않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주연·감독·각본 등 1인 3역을 맡은 세스 로건조차 “김정일을 다루려다 갑자기 죽자 아들 김정은으로 모델을 바꿨다”고 고백할 정도로 급조한 인상도 든다. 그렇고 그런 오락영화일 뿐이지만, 북한의 민감한 반응으로 외려 세계적 주목을 받게 된 모양새다. 살아 있는 권력을 조롱하는 영화를 아무렇지 않게 제작하는 미국 문화와는 전혀 다른 북한의 ‘최고 존엄’을 건드리는 통에 큰 ‘사고’를 친 격이다. 소니사 해킹 사건의 파장이 어디까지 미칠 것인가. 오바마는 사이버 반달리즘에 상응하는 ‘비례적 대응’을 공언했다. 그 일환으로 미 국무부가 북한을 테러지원국으로 재지정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단다. 뉴욕타임스는 오바마가 언급한 대북 상응 조치와 관련, 북한의 언론매체 연결망을 교란하는 컴퓨터 정보전과 북한 주민들에 대한 정보작전 등이 취해질 가능성을 내다봤다. 앞서 미국 뉴욕 소재 인권단체 ‘인권재단’은 인터뷰의 DVD를 풍선에 매달아 북한에 살포하겠다고 밝혔었다. “역사적 사건엔 역사의 진로를 사람들이 의도하지 않은 방향으로 돌리는 성질이 있다.” 영국 사학자 버터필드의 경구다. 하찮은 사건이 역사의 물꼬를 왕왕 바꾸기도 한다는 뜻이다. 북한 당국자들이 소니사의 전산망을 해킹하는 ‘충성 범죄’를 저지른 게 사실이라면 그들도 예상하지 못한 일이 벌어지고 있는 꼴이다. B급 코믹영화 한 편이 세계사에서 유례없는, 70년 세습독재를 감내 중인 북한의 보통 사람들을 흔들어 깨우는 마법의 주문이라도 된다면 이번 사건의 에필로그는 해피엔딩이라고 해야 할까. 구본영 논설고문 kby7@seoul.co.kr
  • [씨줄날줄] 푸틴의 위기/구본영 논설고문

    전국에서 휘발유 값이 가장 비쌌던 국회 앞 한 주유소가 얼마 전 가격 파괴를 선언했다. ℓ당 550원이나 내렸단다. 제 돈 안 내고 기름을 넣는 국회의원실 등이 주고객이라 유가 변동에 둔감했던 곳인 데도 말이다. 나비의 날갯짓이 지구 반대편에선 태풍을 일으킬 수 있다던가. 미국의 ‘셰일혁명’이 서울의 여의도에서 후폭풍을 일으킨 모양새다. 물리학의 카오스 이론(Chaos Theory)의 토대가 된 ‘나비효과’의 함의를 실감하는 요즘이다. 미 대륙의 셰일층에 묻혀 있던 석유·가스의 효과적 채굴을 가능케 한 ‘수압파쇄공법’의 위력을 보라. 그리스계 이민 2세 조지 미첼의 이 아이디어 덕택에 미국은 석유수출국으로 부상 중이다. 유가 급락과 함께 국제정치의 판도까지 바꾸고 있다. 국제사회로 눈을 돌려 보자. 전통적 에너지 부국 러시아의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셰일혁명의 가장 큰 희생양이 될 조짐이다. 국제유가가 반 토막 나면서다. 그러잖아도 우크라이나 사태로 서방의 경제제재를 받던 러시아였다. 이번에 저유가 직격탄을 맞으면서 루블화 폭락과 함께 디폴트(채무불이행)위기로 내몰렸다. ‘현대판 차르’ 푸틴의 15년째 집권을 가능케 한 원동력 중 하나가 고유가였다. 오일머니로 러시아 근로자의 수입이 급증한 덕분이다. 하지만 유가 폭락으로 푸틴이 다시 정치적 위기를 맞았다. 물론 기준금리를 10.5%에서 17%까지 올리는 극약처방으로 환율 방어에 나서면서 러시아가 당장 국가부도를 맞을 개연성은 크지 않을 수 있다. 다만 저유가 흐름이 이어지면 2018년 대선서 승리해 2024년까지 집권하려는 그의 야심은 차질을 빚을 것이란 전망도 있다. 최대 산유국 사우디아라비아의 행보도 푸틴을 곤혹스럽게 하고 있다. 셰일석유의 경제성 유지의 관건인 배럴당 60달러선이 무너졌는데도 사우디가 주도하는 석유수출국기구(OPEC)가 감산에 뒷짐을 지면서다. 사우디가 미국발 셰일혁명의 효과를 상쇄하기보다는 숙적인 이란과 비(非)OPEC 산유국인 러시아를 견제하는 형국이다. 수니파 이슬람 국가인 사우디가 시아파 국가인 이란과 국민 다수는 수니파이지만 시아파인 알아사드 정권이 집권 중인 시리아를 역성드는 러시아를 길들이려 한다는 분석이다. 유가가 그려내는 천변만화(千變萬化)가 한반도에선 좋은 결실을 맺었으면 싶다. 러시아 천연가스 배관의 한반도 연결 프로젝트가 성사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개방 공포증을 갖고 있는 김정은 정권이 몸을 사리고 있는 게 걸림돌이지만, 셰일혁명은 러시아가 보다 적극적으로 북한을 설득할 모멘텀이 될 수도 있지 않겠는가. 구본영 논설고문 kby7@seoul.co.kr
  • [단독] [커버스토리] 시장님, 지사님 위에 만사秘통, 만사不통

    [단독] [커버스토리] 시장님, 지사님 위에 만사秘통, 만사不통

    충남 천안시에는 직제에도 없는 ‘천안시 정무부시장’이 있다고 한다. 시 공무원들은 구본영 시장과 가까운 모 시의원에게 이런 별칭을 붙여 비아냥대고 있다. 이 시의원은 구 시장과 자유선진당 때부터 정치 행보를 같이했다. 이 외에도 천안시 안팎에는 실세들이 많다. 구 시장이 장기간 야인 시절을 보낼 때 정치적 관계로 맺어진 사람들과 선거 전후 구 시장 주변에서 자문 역할을 했던 교수단, 인수위원, 선거 공신, 지역 정치인 등이다. 구 시장 취임 이후 실세들이 판을 치자 천안시 공무원 노조가 시 공무원 871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까지 벌였다. 그 결과 4분의1이 넘는 직원이 실세들의 고압적이고 안하무인식 태도와 무리한 정보 공개 요구 등이 줄을 잇고 있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일부 직원은 실세들의 ‘이권 개입’이나 ‘인사 청탁’마저 의심하고 걱정했다. 일부는 “천안에 정무부시장님(?)이 있다고 하는데, 제발 자중해 주세요”라고 조롱 섞인 글을 설문에 쓰기도 했다. 실세들의 횡포와 구설수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실무자들이 공들여 추진한 ‘프로젝트’를 손바닥 뒤집듯이 바꾸고, 계획에도 없던 특정 사업을 만들어 내도록 해당 부서에 압력을 행사한다는 소문이 끊이지 않는다. 말을 듣지 않으면 은밀히 ‘시장님 뜻’이라고 압력을 넣어 시 공무원들을 당혹스럽게 한다는 것이다. 또 눈에 거슬리는 시 산하기관이나 보조단체 인사를 찍어내기 위해 갖은 음해설을 퍼트린다는 얘기도 나돈다. 천안시의 한 공무원은 “실세라는 이들이 ‘완장’을 찬 듯 시정을 쥐락펴락해 민선 6기에 대한 기대와 희망이 불신으로 바뀌고 있다”며 “수개월간 고민해 만든 사업이 외부인에 의해 순식간에 제지당하는데 일할 마음이 나겠느냐”고 되물었다. 제주도는 비선 라인 개입 논란으로 지난 7월 취임 이후 원 지사가 잇따라 인사에 실패했다. 이지훈 전 제주시장은 불법 건축 특혜 시비로 취임 1개월여 만에 낙마했고, 이기승 제주시장 내정자는 음주 사고 논란으로 취임도 못 해보고 자진 사퇴했다. 최근에는 김국주 감사위원장 후보가 제주도의회 인사 청문회를 통과하지 못해 물러났다. 도의 한 공무원은 “고교 졸업 후 서울에서 내내 정치를 해 온 원 지사가 30년 만에 돌아와 고향 제주의 실정을 몰라도 너무 모른다”며 “지역 사정에 이리 어둡다 보니 특정 비선 라인에 의존해 인사 참사가 벌어진다”고 주장했다. 원 지사는 이를 부인했다. 송모 교수에 대해 원 지사는 “어떤 특정인에게 쏠려 있다는 것은 전혀 사실무근”이라며 “의견을 구하고 토론하는 많은 분 중 한명인 것은 사실”이라고 자문그룹의 일원일 뿐임을 강조했다. 하지만 원 지사 부친이 다니는 교회에도 공무원들이 몰린다는 소문이 나도는 등 측근은 물론 혈육까지 실세처럼 등장하는 웃지 못할 소문까지 돌았다. 실제로 홍낙표 전 전북 무주군수의 부인 이모(60)씨는 군수 부인이란 지위를 이용해 비서실장 등을 통해 폐기물 처리업체로부터 뇌물을 받았다가 지난 10월 말 법정구속됐다. 대구시는 ‘대구판 문고리 3인방’에 대한 소문으로 뒤숭숭하다. 3인방은 권영진 시장의 선거캠프에서 공직으로 옮긴 강모 정책보좌관 등 3명을 가리킨다. 이들은 그동안 대구시 정책보좌관들이 보좌관 역할에 그쳤던 것과 달리 각종 부서의 정책 결정에 깊숙이 개입한다는 것이다. 더구나 이들은 시장에게 보고되는 병목을 지키고 있으며 부시장에게 보고해 결재된 것까지 되돌려 보낸다는 말이 돌았다. 이 때문에 권 시장에게 보고되지도 않는 정책이 수두룩하다는 것이다. 또 지난 9월 권 시장의 첫 인사에도 깊이 개입했다는 소문이 나돌았다. 권 시장은 “이들의 개입설은 어불성설이다. 지난번 인사 때도 내가 모든 것을 결정했다”고 소문을 부인했다. 배국환 인천시 정무부시장은 지난 7월 유정복 인천시장 취임 직후 정무부시장 내정설이 나돌았다. 당시에는 주목받지 못했지만 ‘설’이 사실로 바뀌면서 ‘아니 땐 굴뚝에 연기 날까’라는 속담이 그대로 맞아떨어졌다. 그는 유 시장 인수업무를 맡은 희망인천준비단 참여 인사다. 배 부시장은 지난 7월 30일 시청 직원 집인 남동구로 주소지를 옮겨 이미 내정돼 있었음을 방증했다. 배 부시장은 이 문제로 지난 5일 주민등록법 위반 혐의로 검찰 조사를 받고 경제부시장 역할로 제한됐지만 전 부서까지 장악하면서 단숨에 실세로서의 정체를 드러냈다.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박현정 서울시립교향악단 대표이사는 서울시 실세까지는 몰라도 ‘낙하산인사’ 의혹을 샀다. 삼성화재와 삼성생명 출신으로 경력이 전무한데도 시 출연기관장으로 임명됐기 때문이다. 개방형 공개 기관인 서울대공원의 안영노 원장도 동물원 업무와 전혀 상관없는 인디밴드 ‘허벅지’의 보컬 출신이다. 청주시 정책보좌관 고모씨에 대한 소문도 파다하다. 시 인사 창구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통합 청주시 출범 이후 단행된 첫 시청 인사에서도 이 같은 말들이 떠돌았다. 강원도에서는 인사 때마다 도지사를 움직이는 실세가 있다는 소문이 끊이지 않고 있다. 지방선거 때 캠프에서 일했던 언론사 출신 모씨가 비서실 간부와 함께 실·국장급 인사에 관여한다는 소문이 퍼져 공무원들 사이에 줄 대기를 한다는 얘기가 나돌았다. 윤장현 광주시장은 선거 때 자신을 도운 광주시체육회 상임부회장에 유재신 전 광주시의원을, 사무처장에 전 광주시생활체육회 사무처장 P씨를 최근 임명했다. 그러나 임기가 2년 남아 있는 현 박모 사무처장에 대한 면직 처분도 하지 않고 P씨를 임명해 P씨가 ‘숨은 실세’라는 소문이 나돌고 있다. 윤 시장은 앞서 문화재단, 환경관리공단, 도시철도공사 등에도 전문성이 검증되지 않은 측근 인사를 임명해 논란을 빚었다. 자치단체 공무원들의 원성은 하늘을 찌른다. 제주도의 한 공무원은 “공직사회는 물론 도민들까지 ‘만사송통’이라고 쑤군대면서 개선을 바라는데 원 지사는 모르쇠”라며 혀를 찼다. 청주시의 한 사무관은 “정책을 챙겨야 할 정책보좌관실이 인사에 관여하는 것 같아 직원들 사이에 말들이 많다”면서 “일부 직원은 정책보좌관을 통해 시장에게 줄을 대려다 실패하자 정책보좌관을 욕하고 다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정치판에서나 있을 법한 일이 공직사회에서 벌어지고 있다”고 씁쓸해했다. 천안시의회는 구 시장이 정책보좌관 자리를 만들기 위해 조례안을 개정하려 하자 ‘측근은 안 된다’는 조건을 다는 등 단체장이 오히려 측근 영입에 앞장서 빈축을 사고 있다. 남경필 경기지사는 최근 측근들에 대한 잡음이 잇따르자 대대적인 특보라인 손질에 나섰다. 이모 특보가 지방선거 이틀 전 5000만원의 후원금을 500만원씩 쪼개 낸 벤처기업을 확인 없이 도와 양해각서를 체결케 해 구설수에 오른 뒤의 일이다. 남 지사는 이 특보를 경질했고 다른 특보 3명이 낸 사표도 수리하기로 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 김모 비서관은 도와 도교육청 등 3개 기관의 상생협약과 관련해 검토 소홀과 보고 누락 책임으로 사표를 내고, 경모 특보단장은 정무직 참모진의 좌장 역할을 못 했다는 이유로 연대책임을 지는 것으로 전해졌다. 한 시민은 “선거캠프 출신 특보와 비서관을 경질한 것은 잘한 일이지만 지사 스스로 조직 내부의 경고 메시지에 귀 기울이며 깨끗하고 투명한 조직을 유지하는 데 노력해야 할 것”이라고 충고했다. 천안 이천열 기자 sky@seoul.co.kr 제주 황경근 기자 kkhwang@seoul.co.kr 청주 남인우 기자 niw7263@seoul.co.kr
  • [구본영 칼럼] 모두가 완생을 꿈꾸는 미생의 나라

    [구본영 칼럼] 모두가 완생을 꿈꾸는 미생의 나라

    요즘 바둑 용어를 타이틀로 뜨는 드라마가 ‘미생’(未生)이다. 완전히 죽은 돌인 사석(死石)과 달리 집이나 대마가 살아날 여지가 있다는 뜻이다. 하지만 드라마에서 고졸 신참 장그래든, 화려한 ‘스펙’의 장백기든 직장 생활이 고달프긴 매한가지다. 하물며 현실에서 완생(完生)을 바라는 건 늘 희망 사항일 뿐일 게다. 철학자 칼 포퍼도 그랬잖은가. “인생은 끊임없는 문제 해결의 과정”이라고. 완생이 어렵긴 국가도 마찬가지다. 세계 최강국 미국은 최근 인종 문제로 몸살을 앓고 있다. 흑인 용의자를 사살한 백인 경찰이 불기소 처분을 받으면서 시작된 흑인 사회의 격렬한 시위가 퍼거슨시에서 뉴욕시로 계속 번지고 있다. 부자 이웃 일본은 어떤가. 엔화를 마구 풀었지만 경제가 살아나지 않자 저소득 가구 대상의 무상보육조차 포기했다. 그런데도 무디스 신용등급은 우리보다 한 단계 떨어졌다. 이쯤 되면 유토피아는 어원 그대로 ‘아름답지만 이 세상엔 없는 곳’일 뿐이다. 대한민국이 미생의 나라임을 실감하는 요즘이다. 국민행복 시대를 열겠다는 박근혜 정부의 갈 길도 아득해 보인다. 올해까지 10년 연속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중 자살률 1위다. 지난해 기준으로 합계출산율은 세계 각국 중 최하위권이다. 구성원들이 미래를 불안해한다는 징표다. 그런데도 박 대통령의 공약인 무상보육도, 야당이 밀어붙인 무상급식도 재원 조달이란 벽에 부딪혀 있다. 게다가 국정 동력마저 떨어지고 있다. 세월호 정국에서 겨우 헤어나자마자 ‘비선 의혹’이란 자승자박의 덫에 걸리면서…. 2013년 기준으로 한국의 1인당 소득은 2만 4000달러 수준이다. 세계 33위로 꽤 잘사는 나라 축에 들지만, 현실에 대한 불만은 세계 어느 나라보다 심각하다. 어찌 보면 자업자득일는지도 모르겠다. 박근혜 정부 역시 이룰 수 없는 공약으로 국민의 기대치를 잔뜩 부풀려 놓고 그 늪에서 허우적대는 형국이다. 대통령 직선제 이후 역대 정부가 그랬듯이. 집권 3년차를 앞둔 박근혜 정부의 국정 목표치부터 ‘영점 조준’이 불가피해 보인다. 이제 먹고살 만한 나라인데 우리 국민의 행복지수는 왜 형편없이 낮을까. 국민소득에 내재된 평균의 함정 탓이다. 1인당 국민소득은 그야말로 평균치일 뿐 양극화가 심화된다면 삶의 만족도가 낮은 국민의 비율은 늘어나기 마련이다. 더구나 배고픈 것보다 배아픈 걸 더 참기 힘들어 하는 우리 사회 아닌가. 그럼에도 한정된 재원으로 모든 국민을 완생으로 이끌 요술 방망이는 어디에도 없다. 결국 맞춤형 생산적 복지를 추구하는 것 이외에 무슨 대안이 있겠나 싶다. 제 돈은 안 내면서 전면 무상복지를 말하긴 쉽다. 이는 일말의 선의가 있다 할지라도 결과적으로 같이 망하자는 악마의 주술일 수도 있겠다. 우리는 인구는 적고 자원은 풍부한 북유럽 몇몇 나라와는 다르다. 지속적 성장 없이는 지금의 복지 수준도 유지할 수 없는 게 현실이다. 정부부터 솔직해져야 한다. 국민들도 복지는 공짜가 아님을 인식하기 시작했다. 올 정기국회에서 무상보육과 무상급식 예산 문제를 놓고 중앙정부와 지방자치단체, 그리고 여야와 시·도 교육감들이 벌인 ‘밀당’을 보면서. 여야는 3∼5세(누리과정) 보육 예산을 땜질 합의했다. 누리과정 예산 증가분을 국고로 직접 지원하면 법에 어긋난다며 시·도 교육청의 다른 항목 예산을 늘려 주고, 늘어난 예산을 누리과정 예산으로 편성하도록 한 것이다. 하지만 이런 편법이 언제까지 통하겠나. 무리하게 보편적 복지를 고집할 게 아니라 이쯤에서 선별적 무상복지로 전환해야 한다. 복지는 절실한 취약계층부터 먼저 배려하면서 재정이 허용하는 데 따라 단계적으로 확대하는 게 합리적이다. 꼭 복지 문제만 아니더라도 박근혜 정부가 담대하게 국가적 위기 탈출 전략을 새로 짜야 할 시점이다. 전면 인적 쇄신이 그 첫 단추여야 한다. 작금의 ‘비선 의혹’이 부풀려졌든 아니든 실력을 갖춘 새로운 진용으로 출발해야 할 필요성은 차고 넘친다.
  • [씨줄날줄] 인터스텔라와 달탐사 예산/구본영 논설고문

    할리우드 영화 인터스텔라가 대박 행진을 이어 가고 있다. 국내 개봉 한 달이 넘으면서까지 박스 오피스 1, 2위를 다투더니 지난 주말 900만명 관객을 돌파한 기세가 놀랍다. 블랙홀과 상대성이론 등 물리학 용어가 낯선 이들에겐 황당해 보이는 공상과학(SF) 영화인데도…. 황폐화된 지구를 대체할, 우주의 새 정주지를 찾는 서사 자체가 관객들의 로망과 그다지 동떨어지지 않았기 때문일 게다. 최근 인터스텔라의 상상력이 막연해 보이지 않게 하는 국제적 이벤트가 몇 건 있었다. 유럽우주국(ESA)이 발사한 우주탐사선(로제타)에서 분리된 탐사 로봇이 지난달 13일 혜성 67P에 도착해 우주 개척사의 신기원을 열었다. 일본의 소행성 탐사기 ‘하야부사(솔개)2’가 얼마 전 예정 궤도에 진입했다는 소식도 마찬가지다. 순조롭다면 2018년 지구와 화성 사이 소행성에 도달해 암석을 채취하고 2020년 말 귀환할 예정이라고 한다. 국회가 내년도 예산에서 달 탐사 예산 410억 8000만원 전액을 삭감했다. 지난 3일 여야 합의로 새해 예산안을 처리하면서다. 이에 따라오는 2020년까지 한국형 발사체로 달 착륙선을 발사하려던 계획은 차질이 불가피하게 됐다. 안타깝게도 우리의 우주 개발은 유치산업 단계다. 러시아 추진체를 빌려 겨우 나로호 발사에 한 번 성공한 게 전부다. 미국과 러·유럽연합(EU)은 물론 아시아의 중국과 인도, 그리고 일본에 비해서도 한참 뒤처져 있다. 2017년 달에 무인 착륙선을 보낸다는 박근혜 정부의 달탐사 공약도 우주 강국들의 눈높이로 보면 걸음마 수준이다. 존 F 케네디 미 대통령이 1960년대 초 우주인을 달에 보내겠다고 공언한 뒤 아폴로 11호를 탄 닐 암스트롱은 1969년 달에 첫발을 내디뎠다. 당시에도 예산 낭비라는 비난도 있었지만, 결과적으로는 엄청난 산업 연관 효과를 창출했다. 내비게이션과 형상기억합금 등 우주기술의 상용화 사례는 셀 수 없이 많지 않은가. 물론 불요불급한 예산을 줄이는 일은 국회의 본령이다. 하지만 정치 논리로 달 탐사 예산을 ‘전면 백지화’한 것은 설득력이 없어 보인다. 교통량도 별로 없는 곳에 도로를 건설하는 것을 포함해 여야 지도부가 지역구 예산은 1000억원이나 추가로 챙긴 마당에 말이다. 15세기 말 ‘대항해 시대’에 뛰어든 유럽 열강들은 ‘지리상의 발견’이란 미명으로 다른 대륙에 방대한 식민지를 건설하고 산업생산력을 한 차원 끌어올렸다. 그런 서세동점(西勢東漸)의 시대는 이미 끝났지만, 바야흐로 ‘우주 대항해 시대’가 열릴 참이 아닌가. 달 탐사 예산을 깎는 정도가 아니라 전면 삭감한 일은 우주 개발 비전의 싹마저 자르는 어리석은 선택일 듯싶다. 구본영 논설고문 kby7@seoul.co.kr
  • [씨줄날줄] 일본 적군파의 후회/구본영 논설고문

    북한에 사는 요도호 납치범 4명이 최근 일본 귀국 의사를 다시 밝혔다고 한다. 이들이 본국 송환을 원한다는 뉴스는 일본 언론이 수차례 보도해 새삼스럽지도 않다. 하지만 이번엔 그 열망의 농도가 유달리 진해 눈길을 끈다. 납치 주범 격 인물이 일본 내 가족에게 “여생을 감옥에서 보내는 한이 있더라도 돌아가고 싶다”고 한 보도가 이를 말한다. 요도호 사건은 1970년 일본 내 극좌익 적군파에 의해 저질러졌다. 적군파 9명이 하네다발 후쿠오카행 민항기를 승무원·승객을 인질로 해 평양으로 납치한 것이다. 공산세계혁명 기지 건설을 꿈꾸던 이들은 이후 평양 근교에서 북한의 특별예우를 받으며 살아왔다. 이 중 3명은 사망하고, 2명은 일본과 태국에서 체포돼 이미 재판을 받았다. 북에 남은 4명 중 우오모토 기미히로는 유럽에서 일본인 3명을 납치한 혐의로 이중 수배를 받고 있다. 이들도 그들의 ‘사상의 고향’쯤으로 여겼던 북한이 ‘지상낙원’이 아니었음은 진작에 알아챈 모양이다. 2011년 이들은 사건 41년 만에 인질 중 한 명에게 사죄 편지를 보낸 바 있다. 특히 납치범들은 자신들의 처는 물론 자녀들을 모두 일본으로 귀국시켰다. 심지어 도쿄 의대를 중퇴하면서까지 납치에 가담했던 ‘확신범’ 고니시 다카히로도 부인과 자녀를 2002년에 일본으로 돌려보냈다. 이들의 귀국 열망이 황혼기의 수구초심(首丘初心·고향을 그리는 마음)뿐만 아니라 북한에 대한 미련도 없음을 방증하는 셈이다. 재미교포 신은미씨와 황선 전 민노당 부대변인의 방북 체험 토크쇼를 둘러싼 논란이 갈수록 거세다. 이들이 “북한 사람들이 젊은 지도자에 대한 기대감과 희망에 차 있는 게 보였다”, “북에선 의사가 환자를 찾아다니고 예방 접종도 찾아와 해 준다”는 등 검증되지 않은 주장을 쏟아내면서다. 당장 탈북 여성 5인이 엊그제 회견에서 맹반박했다. 이른바 ‘꽃제비’ 생활 중 혜산역 보일러실에서 몸을 풀었다는 이순실씨는 2005년 최고급 병원인 평양산원에서 출산한 황선씨를 겨냥해 직격탄을 날렸다. “아이에게 먹일 게 없어 소똥에서 여물 콩을 골라 입에 넣어 준 적도 있다”면서. 탈북 여성들이 신·황 두 사람에게 진실을 가리는 끝장토론을 제안했다. 하지만 대다수 국민은 이미 답을 알고 있을 법하다. 북한 당국의 연출에 따른 허상만 보고 온 듯한 두 사람의 얘기보다는 배고프고 숨막히는 북녘의 삶을 못 견뎌 내려온 2만 7000여명의 남한 내 탈북자의 존재 자체가 확실한 판단 자료란 점에서다. “감옥에 가더라도 고국에 가겠다”는 일본 적군파의 때늦은 후회를 듣고 보니 더욱 그런 생각이 든다. 구본영 논설고문 kby7@seoul.co.kr
  • [길섶에서] 망년회의 계절/구본영 논설고문

    곧 망년회(忘年會)의 계절이다. 이런저런 덕담과 건배사가 오가는, 흔한 풍경과 함께 말이다. 망년회의 사전적 의미는 한 해를 보내며 그해의 온갖 괴로움을 잊자는 뜻일 게다. 일본식 표현이라는 지적이 나오면서 요즘엔 송년회라고도 부르지만. 누구나 한 해가 저물 무렵이면 지난 시간들을 되돌아 보게 된다. 그래서 연초에 했던 숱한 다짐과 이루지 못한 목표들로 인해 자괴심이나 후회를 갖기 마련일 게다. 하지만 그걸 잊으려고 갖는 망년회든, 송년회든 술추렴만 하다 대개 허무하게 끝나기 일쑤다. 엊그제 한 지인이 보낸 이메일을 읽고 송년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됐다. 아메리카 인디언들이 1년 중 12월을 ‘침묵하는 달(月)’로 은유한 대목을 접하면서다. 굳이 떠들썩한 이벤트로 일상의 괴로움을 피하려 하지 말고 조용히 자신의 상처까지도 성찰하면서 새해의 희망을 찾으란 메시지로 새겨졌다. 메일로 보내 준 터키 시인 나짐 히크메트의 시 ‘진정한 여행’의 시구가 그래서 가슴에 와 닿았다. “가장 아름다운 노래는 아직 불려지지 않았다/최고의 날들은 아직 살지 않는 날들…”이라는. 구본영 논설고문 kby7@seoul.co.kr
  • [씨줄날줄] 유커의 명암/구본영 논설고문

    서울 명동엔 패스트푸드점들이 사라지고 중국 관광객(유커·遊客)을 위한 화장품 가게들이 하나둘 들어서고 있단다. 제주 신시가지의 이름 없는 상점가는 중국 바오젠그룹의 대규모 포상 관광단이 다녀간 뒤 ‘바오젠 거리’란 이름이 붙었다. 어딜 가나 넘쳐나는 유커가 이제 상권 지도까지 바꾸고 있다. 중국 관광객들이 최대 인바운드 시장을 형성한 지 오래다. 올 한 해 방한하는 유커는 600만명에 이를 참이다. 그래서 미군이 떠난 이태원은 을씨년스럽지만, 일본인들이 줄어든 명동은 아직 흥청거리고 있다. 유커들이 지난해 한국을 찾아 뿌린 돈이 약 7조 6000억원이라니 그 위력이 실감난다. 하지만 중국인의 입장에서는 한국 관광이 차지하는 비중은 미약하다. 올해 연인원 1억 1000만명이 넘는 중국인이 해외 방문에 나설 것으로 추계된다. 물론 중국을 상대로 한 관광산업의 잠재력은 여전히 크다. 2013년 중국의 민간 소비는 국내총생산(GDP)의 36%(미국의 경우 70%)에 그쳤다. 엄청난 속도의 경제성장에 따른 중산층의 급증으로 중국의 민간 소비, 특히 해외 관광 등 서비스 소비의 확대 가능성을 예고하는 지표다. 우리가 하기에 따라 ‘유커 600만명 시대’를 뛰어넘는 새 이정표를 세울 수 있다는 뜻이다. 유커를 위한 관광 인프라를 제대로 구축하는 걸 전제로 해서다. 관광지마다 무자격 관광 가이드가 판을 치고 있는 현실이 그래서 걱정스럽다. 어제 아침 경복궁 한편에서 엉터리 중국어 관광 가이드가 “한글은 세종대왕이 궁궐 창문을 보고 만든 ‘창문 글자’”라고 해설하는 기사를 읽었다. 한글이 인체의 발성기관을 본떠 창제된 사실을 알 리 없는 유커들이야 고개를 주억거렸겠지만, 관광산업을 담당하는 당국자들은 가슴을 쳐야 할 일이다. 유커 증가는 반길 일이지만 ‘중국 편식 현상’은 바람직하지 않아 보인다. ‘핀란드화’(Finlandization)란 말을 곱씹어 보자. 냉전 시기 옛 소련을 이웃에 뒀던 핀란드인들은 대체로 모욕적으로 받아들이는 용어다. 강대국을 이웃한 중소 규모 국가가 아무런 지렛대 없이 늘 강대국의 이해관계를 고려해 자국의 정책을 결정해야 하는 상황을 말한다. 우리의 관광산업도 중국으로부터 얻는 ‘이웃효과’를 극대화하되 부작용은 최소화해야 한다. 돈벌이에만 급급해하는 싸구려 관광은 지속 가능하지 않다는 생각이다. 유커 머릿수만 세는 저품질 관광은 중국의 관광정책이 바뀌면 한순간에 ‘훅 갈 수도 있다’고 본다. 장기적으로는 전 세계를 상대로 한류든, 전통문화든 정체성과 격조 있는 문화를 파는 관광을 추구해야 할 이유다. 구본영 논설고문 kby7@seoul.co.kr
  • [씨줄날줄] ‘셰일 혁명’과 국제정치/구본영 논설고문

    요즘 흥행몰이 중인 외화 인터스텔라를 봤다. 스크린 가득히 펼쳐진 옥수수밭을 보며 광활한 미국 텍사스주를 무대로 하는, 오래된 할리우드 영화 ‘자이언트’가 생각났다. 록 허드슨의 농장에서 머슴처럼 일하던 제임스 딘이 어느 날 석유 재벌로 부상하는 줄거리만이 아니다. 반항적 이미지의 딘이 농장주 부인 엘리자베스 테일러를 못 잊어 고뇌하는 명품 연기는 아직도 잔상으로 남아 있다. 카우보이들의 무대였던 텍사스는 석유 채굴과 함께 미국 산업화의 전진 기지가 됐다. 그랬던 텍사스가 다시 주목받고 있다. 이른바 ‘셰일 혁명’ 덕분이다. 주인공은 텍사스의 유전도시 갤버스턴에서 구두닦이의 아들로 자란 조지 미첼이다. 지난해 94세로 세상을 뜬 미첼은 평생을 석유와 가스 개발에 미쳐 살다 말년에 ‘대박’을 터뜨린다. 지하 암반에서 천연가스를 뽑아내는 기술을 고안하면서다. 지질시대 진흙 퇴적층인 셰일층에 석유와 가스가 부존돼 있을 가능성은 진작에 점쳐졌다. 다만 미첼이 ‘수압파쇄공법’을 개발할 때까지는 그림의 떡이었다. 수직으로 갱을 뚫고 들어가다 지하 1000m 이상 깊이에서 셰일층을 만나면 다시 수평으로 관을 깔아 물과 모래, 화학약품을 배합하고 고압으로 분사해 암벽을 깨는 기술이다. 이 기술이 근년에 상용화되면서 미국은 에너지 대국으로 부활하고 있다. 미국은 2017년 세계 최대 원유 생산국인 사우디아라비아를 제칠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머잖아 미국이 석유 순수출국으로 돌아서면 중동 산유국들이 유가를 좌지우지하던 시대도 저물고 말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실제로 이코노미스트의 얼마 전 보도에 따르면 올해 초 북해산 브렌트유 기준으로 배럴당 110달러 하던 유가가 80달러 선으로 곤두박질쳤다. 중국·유럽연합(EU) 등 세계 주요국의 불황으로 인한 수요 감소와 미국의 셰일 혁명에 따른 공급 증대가 원인으로 분석된다. 셰일 혁명이 이제 국제정치의 판도까지 바꿀 참이다. 미국의 위상 강화와 반비례해 중동·베네수엘라 등 석유수출국기구(OPEC) 국가들의 발언권 약화는 불을 보듯 뻔하다. 급성장한 에너지 산업에 힘입어 우크라이나 침공 등 기세등등하던 러시아도 마찬가지다.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은 최근 유가·루블화 가치 동반 하락 조짐을 맞아 “‘철의 장막’을 칠 계획은 없다”며 서방과의 관계개선 의지를 밝혔다. 하긴 남의 나라 걱정할 계제인가. 석유 한 드럼 안 나는데 10대 석유소비국인 우리다. 우물 안 개구리처럼 진영을 나눠 안에서 드잡이만 하고 있을 때인가. 각 부문에서 ‘셰일 혁명’ 같은 혁신으로 꽉 막힌 한국 경제의 돌파구를 열 시점이다. 구본영 논설고문 kby7@seoul.co.kr
  • [길섶에서] 사보(社報)의 퇴장/구본영 논설고문

    기자 초년병 때인 1980년대엔 대기업은 물론 다수 중견기업들도 인쇄판 사보(社報)를 발간했다. 이따끔 아르바이트 삼아 원고 청탁에 응했던 기억이 새롭다. 하지만 종이 사보는 시나브로 하나 둘씩 사라지고 있는가 보다. 재계 1위인 삼성그룹마저 사보를 올해를 끝으로 폐간한다고 한다. 내년부터 웹진 형태의 온라인 사보를 내놓는단다. 이는 돌이키기 어려운 시대의 흐름인지도 모르겠다. 이에 대해 인쇄 매체 종사자로서 위기 의식을 느끼는 건 논외로 치자. 다만 종이 사보의 퇴장과 함께 아날로그적 감성마저 함께 실종된다면 퍽 안타까운 일이다. 아직도 아날로그 세대의 촌스러움(?)을 버리지 못한 탓일까. 필자는 지금도 잘 편집된 사보를 펼치면 컴퓨터 창에서 스크롤바를 움직여 볼 때와는 확연히 다른 느낌이 든다. 사라지는 것들이 아름다운 이유는 거기에 담긴 진한 추억 때문일 게다. 노란 은행잎을 책갈피에 끼워 놓는 습관도 낙엽 길을 홀로, 혹은 누군가와 함께 걷던 기억을 반추하려는 몸짓이듯이…. 온라인이 대세라지만 ‘명품 사보’ 몇 가지는 살아남았으면 좋겠다. 구본영 논설고문 kby7@seoul.co.kr
  • [씨줄날줄] ‘허경영식’ 공약의 허실/구본영 논설고문

    20세기 지구촌의 불가사의 중 하나가 아르헨티나 경제의 추락이다. 광활한 국토와 천혜의 부존자원으로 한때 세계 5위권 경제대국으로 꼽혔던 나라가 국가부도(디폴트) 위기를 겪으면서다. 추락의 배후엔 후안 페론 전 대통령과 부인 에바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다. 아르헨티나인들은 1년 일하면 13개월치 임금을 주는 식의 선심 정책에 환호했으나, 아르헨티나 경제는 슬금슬금 주저앉았다. ‘공짜라면 양잿물도 마신다’는 우리 속담이 있다. 하지만 아르헨티나인들이 인기 영합이 본질인 페론주의에 열광했듯이 인간의 보편적 심리일지도 모르겠다. 시혜적 복지 정책의 문제는 일단 시행하면 부작용이 불거져도 돌이키기 어렵다는 점이다. 이는 시혜를 입는 사람은 환호하는 반면 혜택을 못 보는 사람도 자기 호주머니에서 직접 돈이 빠져나가는 건 아니라 보고 적극 반대하진 않기 때문이다. 지난 대선에서 허경영 후보는 가계부채를 없앤다며 결혼 시 남녀에게 각 5000만원씩을 준다는 공약을 내걸었다. 그는 올 초엔 19대 대선을 겨냥해 더 정교(?)하게 다듬은 공약들을 쏟아냈다. 출산 때마다 출산수당을 3000만원씩 지급하고 독도 간척 사업으로 일본 근해 500m 앞까지 영토를 확장하겠다는 공약도 추가했다. 이를 위한 재원은 어디서 충당할 것인지 의아하지만, 국민경제에 해를 입힐 소지는 적어 보인다. 의석 한 석 없는 당 소속인 그에 대한 지지도를 감안할 때 어차피 ‘허무 개그’에 그칠 공산이 큰 까닭이다. 하지만 집권이 목적인 정당이라면 ‘아니면 말고’ 식 공약은 곤란하다. 새정치민주연합이 ‘신혼부부 임대주택 공급’ 정책의 실현 가능성을 자문해 봐야 할 이유다. 물론 새누리당 일각에서 대뜸 이를 “공짜 주택을 제공하려는 포퓰리즘”이라고 낙인찍는 것은 온당하지 않다. 연간 15만쌍 정도의 신혼부부에게 임대주택을 공급하겠다는 취지라는 게 새정치연합의 설명이다. 다만 기초수급자와 고령 장애인 등 임대주택을 기다리는 사회적 약자들은 놔둔 채 어디서 100조원을 염출해 신혼부부용 주택을 더 짓겠다는 건지 여전히 궁금하다. 그러잖아도 무상급식과 무상보육 등 ‘보편적 복지’ 정책이 재원 조달이란 벽에 부딪혔다. 지난 11∼13일 한국 갤럽이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66%가 선별적 무상급식을 지지했다. 반면 전면적 무상급식에는 31%만이 찬성했다. 영유아 무상보육 역시 응답자 64%가 선별적 실시를 지지했다고 한다. 정치권보다 현명한 국민이 ‘복지 포퓰리즘’의 허상을 먼저 알아챈 모양새다. 복지는 절실한 계층부터 차질 없이 도달하도록 하면서 재정여건이 허용하는 데 따라 단계적으로 확대하는 것이 답이다. 구본영 논설고문 kby7@seoul.co.kr
  • [길섶에서] 오래된 징크스/구본영 논설고문

    엊그제 이른 아침. 아들이 수능시험을 치르는 서울의 한 고교를 찾았다. 담벼락 옆에선 먼저 온 학부모 여럿이 몸을 떨고 있었다. 입시 날이면 꼭 한파가 찾아온다더니 징크스가 딱 들어맞았다는 느낌이었다. 오래전 기자 초년병으로서 프로야구를 취재할 때의 에피소드가 떠오른다. 당시에도 팀 성적에 따라 감독 자리는 ‘파리 목숨’이었다. 친했던 K감독은 장례차와 마주치는 날이면 승리한다는 징크스를 굳게 믿는 눈치였다. 팀이 연패하는 날이면 장례식장에 들렀다 경기장으로 나올 정도였으니…. 징크스처럼 어쩔 수 없는 인간의 한계를 실감나게 하는 단어도 없을 터. 하지만 일상사에서 소소한 길흉은 늘 엇갈리게 마련이다. 장기적 통계를 내보면 K감독의 승률도 영구차를 만난 날이든, 아니든 별반 다르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가 나중에 명장 반열에 오른 것은 최선을 다하는 마음가짐 때문이었을 듯싶다. 그렇다면 징크스에 연연하기보다는 최선을 다하는 가운데 낙관적 자세를 잃지 않는 게 더 중요할 것이다. 영국 시인 로버트 브라우닝이 그랬던가. “최고의 날은 미래에 있다”고. 구본영 논설고문 kby7@seoul.co.kr
  • [구본영 칼럼] 미국과 중국 사이, ‘서희 외교’가 답이다

    [구본영 칼럼] 미국과 중국 사이, ‘서희 외교’가 답이다

    요즘 서울 빛초롱 축제가 열리는 청계천은 유커(중국 관광객)로 넘쳐나고 있다. 한·중 정상이 자유무역협정(FTA)의 사실상 타결을 선언한 베이징 인민대회당 주변이 한국 관광객들로 붐볐듯이. 13억 인구의 중국이 우리에게 거대한 내수 시장의 빗장을 푼 까닭은 뭘까. 과거 혈맹이었던 북한이 추진 중인 압록강 하중도의 황금평경제특구에 중국 기업의 투자 건수는 ‘제로’라는데 말이다. 한·중 FTA 체결이야말로 비단 장수 왕서방의 실리적 상술을 말해 주는 듯싶다. 하긴 중국인들의 상술은 본래 유대인이 울고 갈 정도였다. 지폐와 어음도 세계 최초로 사용했다지 않는가. 아편전쟁 직전까지만 해도 중국은 늘 세계 총생산의 20% 이상을 차지한 ‘공룡’이었다. 1949∼78년 사회주의 경제를 실험하느라 허비한 ‘잃어버린 30년’은 제쳐 두자. 이후 덩샤오핑이 개혁·개방으로 중국인들의 잠들었던 상혼을 흔들어 깨우자 엄청난 경제성장 속도를 시현하지 않았나. 한·중 FTA는 어느새 주요 2개국(G2)이 된 중화(中華)의 자신감 발현으로도 비친다. 어쩌면 한국을 중립지대화해 미국의 패권에 도전장을 내밀려는 의도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우리 사회 일각에선 이참에 한반도 평화와 통일을 위해 미국보다는 중국을 더 가까이 하자는 주장을 펴기도 한다. 그러나 탈미 친중론은 대단히 위험한 발상이다. 중국은 반만년 역사에서 언제나 친구이자 적이었다. 영어로 표현하면 프레너미(Frenemy)였다. 얼마 전 추이톈카이 주미 중국대사는 “북 인권의 국제형사재판소(ICC) 회부는 내정간섭”이라고 거품을 물었다. 북한 정권의 붕괴는 바라지 않는 중국의 속내가 여실히 드러난다. 독일 통일 2년 전인 1989년 가을. 미하일 고르바초프 옛 소련 대통령은 동베를린에서 유통기한이 끝난 사회주의 체제를 바꿀 개혁을 한사코 거부하는 에리히 호네커 동독 서기장에게 경고했다. “인생은 너무 늦게 오는 자를 벌준다”고. 물론 그 이전에 서독 헬무트 콜 총리는 옛 소련에 막대한 경제원조를 제공했다. 고르비가 동독을 버렸듯이 이제 시진핑이 북 세습정권을 포기하면 남북 간 진정한 협력은 급물살을 탈 게다. 북한이 보다 합리적 정권으로 ‘레짐 체인지’되면서다. 그러나 그럴 가능성은 적다. 하루가 다르게 경제력을 불리고 있는 중국이 어디 우리의 원조에 매달릴 처지인가. 다만 중국이 G2라고는 하나 세계의 지도국이 되기엔 왠지 역부족으로 보인다. 시진핑 국가주석이 꿈꾸는 비전이 다당제와 직접선거, 그리고 언론의 자유를 기반으로 한 확고한 민주주의와는 거리가 먼 탓이다. 중국이 이런 세계 문명사의 큰 흐름에 올라타지 않는 한 지식산업이 근간인 21세기 유일 패권국이 되긴 어려운 노릇이다. 학문과 과학기술의 창의는 자유가 있는 곳에서 샘솟기 때문이다. 까닭에 한·미 동맹을 공고히 하면서 중국과도 협력을 강화하는 ‘연미협중’(聯美協中)이 우리의 과제일 수밖에 없다. 지난한 일이지만 한국 외교가 개척해야 할 뉴프런티어다. 쉽진 않겠지만 지레 불가능하다고 포기할 까닭 또한 없다. 과거 기울어져 가는 송(宋)과 중원을 장악한 요(遼·거란) 사이에서 고려의 서희가 그랬다. 그는 요의 위세에 굴복하지 않고 또 다른 신흥세력인 여진과 요·송의 틈새에서 고려의 전략적 가치를 당당히 설파함으로써 외려 강동 6주를 양보받았다. 중국으로 하여금 핵개발에 매달리는 북한이 더는 ‘전략적 자산’이 아니라 ‘전략적 함정’임을 깨닫게 해야 한다.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 방어체계)의 한반도 배치도 이를 위한 좋은 카드일 수 있다. 미국은 바라지만, 중국이 꺼리는 현실을 역발상으로 활용할 경우다. 북핵을 막지 못하면 사드의 주한미군 배치가 불가피함을 주지시킴으로써 중국의 북핵 억제 영향력 강화를 이끌 지렛대로 삼으란 얘기다. 마찬가지 맥락에서 미국 주도의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에도 적극 참여해야겠지만, 중국이 제안한 아·태자유무역지대(FTAAP)를 외면할 이유도 없다.
  • [씨줄날줄] 창문세 & 버핏세/구본영 논설고문

    가을이 깊어 가는 요즘 중앙정부와 지자체, 교육감들이 벌이는 ‘삼각 핑퐁게임’이 한창이다. 무상급식과 무상보육이란 ‘보편적 복지’의 재원 부담이 주 이슈다. 어제 노란 은행잎으로 뒤덮인 서울시의회 앞 대로변에서 이를 실감했다. “대통령 공약 보육비 5400억원 지출 초중고교 교육재정 파탄난다”는 새정치민주연합 명의의 현수막 구호를 보면서다. 어찌 보면 이런 사태는 올 것이 온 형국이다. 2010년 새정치연합의 전신 민주당이 교육감 선거에서 무상급식 공약으로 재미를 보고, 이에 놀란 현 여당이 이후 각종 선거에서 무상보육 카드로 맞불을 놓을 때부터 예견된 일이란 점에서다. 보편적 복지를 마다할 사람은 없지만, 이를 감당할 재원도 결국 국민의 호주머니에서 염출해야 한다. 여야가 이를 몰랐을 리는 만무하다. 다만 유권자의 ‘눔프 심리’를 의식해 애써 외면한 결과일 뿐이다. 여기서 눔프(Not Out Of My Pocket)란 복지 확대를 바라면서도 이에 필요한 비용은 부담하지 않으려는 현상을 가리킨다. 문희상 새정치연합 비대위원장이 엊그제 복지 재원 충당용 증세론을 제기했다. 종전보다는 솔직한 태도다. 하지만 중산층을 포함한 국민의 조세저항을 각오하고 ‘보편적 증세’를 본격 논의하자는 건지는 여전히 불분명하다. 소위 ‘부자 증세’만으론 현 수준의 보편적 복지 공약을 이행하는 데는 턱없이 부족하다는 게 중론인데도 말이다. 특히 이명박 정부 말부터 부분적으론 고소득층과 대기업 등에 대한 증세가 이뤄져 왔다는 지적도 있다. 증세는 말이야 쉽지만, 동서고금을 통틀어 집권자에겐 늘 위험한 선택이었다. 프랑스대혁명이나 우리 역사 속 민란들이 다 가혹한 세금과 무관하지 않다. 물론 조세저항보다 더 경계해야 할 대목은 증세로 인한 역설적 결과다. 1696년 영국왕 윌리엄 3세가 ‘창문세’를 신설했다. 소득이 높은 집일수록 창문 개수가 많을 것이라는 데 착안했다. 그러자 세금을 피하려고 창문을 막는 사람이 속출했다. 결국 대저택에 사는 귀족보다는 중산층 이하 계층이 햇볕도 포기해야 하는 블랙 코미디를 빚어낸 꼴이다. 멀리 볼 것도 없다. 참여정부 때 강남 아파트에 투하한 ‘세금폭탄’의 결과를 보라. 집값만 천정부지로 올려 무주택 서민이 가장 큰 피해자였다. 증세 없는 복지의 한계는 드러났다. 다만 소득세 최고세율 신설을 포함한 ‘한국형 버핏세’가 세수에 도움은 안 되고 투자만 위축시킨다는 우려도 있다. 여야가 이왕 복지 파산을 막을 증세나 선별적 복지로의 전환을 놓고 논쟁하려면 제대로 해야 한다. 정략적 계산을 접고 서민에게 실질적 도움이 될 전문적 토론을 하란 뜻이다. 구본영 논설고문 kby7@seoul.co.kr
  • [길섶에서] 가을 단상/구본영 논설고문

    꽤 오래전에 언론계를 떠난 선배 한 분이 이메일을 보내왔다. 서울 송파구 석촌호수의 가을 풍경을 그린 글이 실려 있었다. 내용 중 와 닿는 대목이 있었다. 네덜란드 설치예술가가 만든 ‘러버 덕’이란 고무 오리를 보러 온 시민들의 북새통에 놀라 진짜 백조들이 사라졌다는 것이다. 선배의 글엔 인조 혹은 모조품에 자연이나 진품이 외려 밀려나는 세태에 대한 애석함이 진하게 배어 있었다. 하긴 도회 생활에서 바쁜 일상에 쫓겨 놓치기 일쑤인 소중한 것들이 어디 한두 가지랴. 캐나다 대도시 토론토에서 차도를 줄이고 보행로를 넓히고 있다는 뉴스가 눈길을 끈다. 일명 ‘도로 다이어트’로 차량 이동을 줄이려는 취지다. 그 이면엔 시민들이 ‘느림의 미학’을 체감할 때 더 행복해질 수 있다는 철학이 깔려 있을 게다. 선배의 글과 조간신문 기사를 읽은 뒤 출근길. 아파트 단지에서 빨갛게 물든 단풍이 새삼스럽게 눈에 확 들어왔다. 생각이 바뀌니 보이는 것도 달라지는 듯싶었다. 시간이 없어 가을 정취를 제대로 만끽하지 못하고 지나가는 게 아닌가 하는 조바심도 다 부질없다고 느껴졌다. 구본영 논설고문 kby7@seoul.co.kr
  • [씨줄날줄] 개헌론과 통일/구본영 논설고문

    지난해 도쿄의 일본 국회의사당을 둘러본 적이 있다. 무엇보다 건물이 좌우 대칭이라는 사실이 인상적이었다. 알고 보니 정면을 향해 왼쪽에 하원 격인 중의원, 오른쪽에 상원 격인 참의원이 배치돼 있었다. 그런데도 우리 국회의사당보다 규모가 크지는 않았다. 하긴 단일 의사당 건물로는 우리 국회가 동양에서 제일 크단다. 이는 1966년 5월 박정희 대통령이 새 의사당 건립안에 결재할 때부터 비롯된 일이었다. 즉 “남북 통일에 대비하고, 양원제 실시에 적응할 수 있으며, 민주주의를 상징하는 역사적 대규모 건물로 하되 국내 기술진이 세울 수 있어야 한다”는 내용의 지침에 따라서다. 여기서 통일과 양원제에 대비하겠다는 대목이 눈길을 끈다. 새 의사당의 규모를 키운 숨은 요인이란 점에서다. 이런 지침에 따라 1975년 준공된 여의도 의사당 2층의 본회의장은 양원제에 대비해 민의원용 300석, 참의원용 100석 등 2개로 만들었다. 참의원용은 현재 예결위에서 사용하고 있지만 말이다. 통일이 요원해 보였던 당시에도 훗날을 내다보며 민의의 전당을 설계한 셈이다. 개헌론이 좀처럼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가 얼마 전 중국 방문 중 오스트리아식 이원집정부제 등 개헌 방향을 언급한 뒤 여진이 이어지고 있다. 김 대표가 정기국회 중 경제살리기와 개혁법안 처리에 올인하려는 청와대의 불편한 기색을 읽고 자신의 발언을 사과했지만, 불씨는 꺼지지 않고 있다. 여야 개헌론자들이 계속 군불을 지피고 있는 탓이다. 새정치민주연합 문희상 비상대책위원장은 어제 “이번 골든타임을 놓치면 낡은 권력구조를 (개편하기) 위한 개헌이 어렵다”며 올해 내 개헌특위 구성을 제안했다. 1987년 개정된 현행 헌법의 수명이 다됐다는 전문가들의 의견이 빗발쳐 온 건 사실이다. 대통령을 간선제로 뽑던 5공화국 헌법을 대신해 5년 단임 직선제를 골자로 성안됐지만, 여러 가지 역기능이 빚어지면서다. 그러나 작금의 개헌 논쟁이 한 가지 간과하고 있는 대목이 있다. 이왕이면 통일에 대비하는 헌법을 만들 생각을 해야 하는데도 이런 데까지 눈을 돌리는 정치인들은 눈에 띄지 않는다. 그저 권력구조 개편 과정에서 정파별 유불리만 따지는 계산만 두드러져 보일 뿐이다. 정치사상가 막스 베버는 ‘직업으로서의 정치’라는 저서에서 ‘책임 윤리’가 없는 정치인의 등장을 저어했다. 서울보다 남쪽으로 수도를 옮긴다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 이미 커다란 부작용을 빚고 있지만, 통일시대에는 비효율이 더욱 두드러지리란 전망도 있지 않은가. 통일 한국이란 백년대계를 내다보지 않은 채 경솔히 개헌론을 입에 올릴 때인가 싶다. 구본영 논설고문 kby7@seoul.co.kr
  • [씨줄날줄] 남북 디지털 격차/구본영 논설고문

    북한이 최근 국내 스마트폰에 해킹을 시도한 정황이 드러났다. 엊그제 정보 당국이 국회 정보위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북 해킹 조직이 국내 웹사이트에 게임 위장 악성 앱을 게시·유포, 2만여대의 스마트폰이 감염됐을 가능성이 포착됐다는 것이다. 두 갈래로 놀라운 소식이다. 하나는 세계적 정보기술(IT) 강국인 우리의 허술한 보안 시스템이다. 다른 하나는 주민들이 인터넷도 접속하지 못하는 북의 형편에 비해 대단한 해킹 역량이다. 그렇다면 북한에서 인터넷은 어느 수준에서 통용되나. 범세계적으로 보편적인 월드와이드웹(World Wide Web·www)에 보통 주민들이 함부로 접속할 순 없다. 대신 일종의 인트라넷인 ‘광명’을 이용할 수 있다. 하지만 자체 검색엔진인 ‘내나라’를 통해 접근 가능한 웹사이트는 1000∼5500개에 불과하단다. 그나마 검색과 채팅 및 이메일이 철저한 감시 대상이라 사용이 극히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연초 방북한 한 서방 언론사가 광명을 “인터넷의 독재 버전”으로 평가한 배경이다. 반면 북한의 해킹 능력의 신장은 괄목할 만하다. 이를 위해 사이버테러 전문 인력만 3만명 넘게 키우고 있다고 한다. ‘110호 연구소’란 곳도 그 산실의 하나다. 이는 국제적 고립과 남북 체제 경쟁 레이스에서의 열세에 따른 반작용일 게다. 북한의 처지에서는 다른 전산망에 침입해 정보를 빼내거나 파일이나 시스템을 훼손해야 할 유인이 그만큼 크다는 얘기다. 한마디로 쌍방향 접속은 차단한 채 일방적 해킹 역량은 비대해지고 있는 게 북한판 ‘디지털 세상’의 현주소다. 이런 기형적 구조에 대한 전문가들의 평가는 냉정하다. IT산업의 진흥은 기대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인터넷이나 휴대전화는 가입자가 많으면 많을수록 사용자의 편익과 기업의 이익이 늘어나게 돼 있다. 이른바 ‘망외부성’이다. 그러나 북한은 거꾸로 가고 있다. 얼마 전 자유아시아방송(RFA) 보도를 보라. 북한 국가보위부가 북·중 국경지대에서 (중국 통신망을 이용해) 카카오톡을 사용하는 일부 북 주민을 잡기 위해 눈에 불을 켜고 있다는 뉴스였다. 이런 형편에 북한 IT산업이 무슨 시너지를 얻겠는가 싶다. 이러니 북한주민의 외부 정보나 김정은 노동당 제1비서 등 권부의 실체를 알게 되는 경로는 고작 입소문 정도다. 북한정권이 탈북자 단체의 삐라에 알레르기 반응을 보이는 이유다. 그러나 북한이 남북 간 디지털 격차를 해소해 IT산업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하려면 외길 수순밖에 없다고 본다. 하루속히 ‘개방 울렁증’에서 벗어나 북 주민들에게 쌍방향 소통이 핵심인 진정한 ‘인터넷 세상’을 허(許)하란 주문이다. 구본영 논설고문 kby7@seoul.co.kr
  • [씨줄날줄] 제주도와 차이나 타운/구본영 논설고문

    당나라 전성기, 즉 성당(盛唐)시대 중국 동해안 일대에는 ‘신라방’이 있었다. 한반도 출신 상인·유학생과 망명객들의 집단 거주지로 신라의 사신들도 머물렀던 곳이다. 대제국 당은 꽤 개방적인 대외 정책을 폈던 모양이다. 신라 말고도 인도·페르시아 등 세계 70여개국과 무역을 했을 정도라니…. 역사는 돌고 도는 건가. 요즘 한반도 어디서나 중국 관광객과 상인들로 넘쳐나고 있다. 특히 중국인들의 제주도 부동산 사재기 열풍이 심상찮다. 제주 도심의 상가·모텔에서 아파트까지 문어발 식으로 매입 중이라고 한다. 한 해 수백만명이 넘는 중국 관광객, 즉 유커를 상대로 한 수지맞는 장사가 일차적 목적일 게다. 한화 5억원 또는 미화 50만 달러 이상 부동산에 투자하면 영주권을 주는 제도도 중국인을 제주도로 끌어당기고 있다. 이로써 외국 자본으로 제주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으려는 소기의 목적은 달성한 셈이다. 하지만 제주도민들은 큰 경계심을 보이고 있다는 전문이다. 무엇보다 유커들이 중국 가게로만 몰리게 되면 원주민이 소외되는 역설이 빚어진다는 걱정이다. 얼마 전 국정감사에서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가 제주도에 ‘차이나 타운’을 만들자는 아이디어를 제기한 배경도 이와 무관치 않다. 차이나 타운은 중국 자본이 마구잡이로 제주 전역의 토지를 잠식하지 않도록 울타리를 치자는 발상이다. 원희룡 제주지사가 “오히려 국민이 우려하는 상황이 될 수 있다”고 완곡히 거부해 없던 일로 됐지만, 국민 여론이 중국인들의 부동산 사재기를 양날의 칼로 보고 있음을 방증하는 사례다. 사실 세계시장에서 중국의 물량 공세가 사뭇 위협적이다. 최근 중국 안방보험그룹이 미국의 자존심인 뉴욕의 월도프 아스토리아 호텔을 사들여 주목을 받았다. 약 2조원의 자본을 유치한 미국이 상당한 대가를 감수해야 할 판이다. 미 국무부가 전 세계 정상들이 묵는 이 호텔에 중국 정부가 도청장치라도 달까봐 고심하고 있다니 말이다. 그러나 자본이 초단위로 국경을 넘는 세계화 시대다. 제주도의 정체성 훼손은 유의해야겠지만, 이러다간 중국땅이 되고 만다는 식의 반응도 성급하다. 2000년 방북한 언론사 사장단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대화 장면이 생각난다. 당시 한 남측 인사가 백두산을 관광지로 개발하자고 제의하자 김정일은 “닭도리탕 집과 러브호텔로 뒤덮일 것”이라고 일축했다. 김일성 가계 우상화로 도배된 백두산을 개방하는 데 따른 위험부담을 고려한 거부였겠지만, 난개발을 부추기는 남측의 상혼도 들춰낸 셈이다. 중국 자본에 의한 제주도의 난개발 가능성이야말로 우리가 신경 써야 할 대목일 듯하다. 구본영 논설고문 kby7@seoul.co.kr
  • [본사 인사]

    △논설고문 구본영 △논설실장 곽태헌 △편집국장 오승호 <10월 25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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