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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전 톡톡 다시 읽기] 공포와 안도의 백성들 거인을 직시하다

    [고전 톡톡 다시 읽기] 공포와 안도의 백성들 거인을 직시하다

    여기 한 권의 책 표지가 있다. 그렇다. 홉스가 도안했다고 알려진 리바이어던 책 표지이다. 모든 책들이 다 마찬가지이겠지만, 책의 표지는 단순히 예쁜 그림으로 장식하기 위한 것만은 아니다. 특히나 그가 살던 시대에 시각적 이미지는 자신의 뜻을 전달하기 위한 훌륭한 수단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책의 표지를 이해하는 것만으로도 책의 내용을, 저자의 의도를 파악하는 것이 가능하다. 일단 한 명의 거인이 도시 위에 서 있는 모습이 보인다. 누굴까? 책 제목이 리바이어던인 만큼 리바이어던을 그린 것이리라. 그렇다면 그가 양 손에 들고 있는 것은? 왼손에는 칼을, 오른손에는 주교가 종교 행사 때 드는 지팡이, 목장(牧杖)이다. 그리고 칼과 목장 양 끝 위로 문장 하나가 보인다. “지상에 더 힘센 사람이 없으니 누가 그와 겨루랴.(욥기 41장 24절)” 즉, 리바이어던이 세속적인 권력과 교회 권력을 양손에 쥔 무소불위의 주권자임을 보여준다. 그리고 그 아래에는 다섯 개의 그림들이 쌍을 지어 나란히 있다. 위에서부터 보자면 성과 교회, 왕관과 교황모자, 왕권을 의미하는 대포와 교황권을 의미하는 파면권이다. 그 아래에는 전쟁터에 쓰이는 총칼과 종교재판에서 쓰이는 논리라는 무기이고, 마지막 그림은 전쟁터와 종교재판을 의미한다. 이것들이 의미하는 바는 굳이 설명 안 해도 될 듯. 그리고 그 사이에 휘장처럼 책의 제목이 내려져 있다. ‘리바이어던, 교회국가 및 시민국가의 재료와 형태 및 권력!’ 그러나 여기서 놓치고 가기 쉬운 것 하나. 리바이어던의 몸을 자세히 들여다 보라. 무엇이 보이나? 갑옷? 아니다. 리바이어던의 몸을 이루고 있는 것은 단순히 갑옷이 아니라, 300여명의 사람들, 즉 리바이어던을 구성하고 있는 백성들이다. 그 사람들은 무언가 두려워하면서, 한편으로는 안도감을 느끼고 있다. 그리고 그들의 시선은 공통적으로 모두 리바이어던의 얼굴을 향해 있다. 자신의 안전을 위해 사회계약을 맺은 이들은 리바이어던의 몸뚱이를 구성하며 리바이어던의 처분만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자, 책 표지만 보아도 홉스가 말하고자 했던 바가 무엇이었는지 대충 감이 잡히지 않는지. 서울신문·수유+너머 공동기획
  • [행시개편 논란 이렇게 풀자] (상) 고시낭인과 순혈주의

    [행시개편 논란 이렇게 풀자] (상) 고시낭인과 순혈주의

    유명환 외교통상부 장관 딸의 특별채용 특혜 사실이 드러나면서 행정안전부가 지난달 발표한 행정고시 개편안이 의외의 역풍을 만났다. 행시 대신 명칭을 5급 공채로 바꾸고 그중 일부를 민간 전문가를 특채하는 이 개편안은 공직사회에 다양성을 부여한다는 점에서 바람직하지만, 특채 과정의 공정성과 투명성 문제로 제동이 걸린 상태다. 서울신문은 한국인사행정학회(회장 권경득 선문대 교수)와 함께 행시 개편안의 문제점과 보완책을 상중하로 짚어 본다. 김호영(32·가명)씨는 5년째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고 있다. 졸업반이던 2005년 대기업 공채에 도전했지만 줄줄이 쓴맛을 봤다. 김씨는 고민 끝에 공직에 입문하기로 마음을 굳혔다. 지방 출신이라는 한계와 학벌의 벽을 넘으려면 그 길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죽기 아니면 살기로 공부했지만 행정고시는 녹록지 않았다. 2006년 2차에서 아깝게 낙방한 뒤 이듬해 1차 합격자 유예조항을 활용해 다시 도전했지만 고배를 마셨다. 김씨는 “‘조금만 더 하면 될 것 같다.’는 생각 때문에 쉽게 포기할 수 없다.”고 말했다. “한두 해 실패하면서 나이를 먹다 보니 일반 기업에는 지원해 볼 엄두조차 나지 않는다.”고 털어놨다. 김씨는 이른바 ‘고시낭인’이 됐다. ●고시 비용 등 ‘사회적 낭비’ 막대 사법고시와 로스쿨, 행정·외무고시 등에 도전하는 수험생들은 13만명으로 추산된다. 하지만 이들 시험의 한 해 합격자는 모두 합쳐 1500명이 되지 않는다. 단순하게 말하면 13만명이 시험을 봐서 13만명이 떨어진다. ‘고시낭인’이 속출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임승빈 명지대 행정학과 교수는 “책값, 고시원 비용 등 한 달 평균 86만원으로 모두 합치면 몇조원 시장”이라며 “다른 분야에서 발휘돼야 할 부분이 이 시장에서 사장되고 있으니 엄청난 사회적 낭비”라고 지적했다. 대부분의 고시생은 서울 신림동 등에서 외부와의 접촉을 끊고 합격에 모든 것을 건다. 합격까지 걸리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고시 이외의 취업 가능성은 점점 줄어든다. 학점은 물론 자격증에 어학실력 등 취업에 필요한 스펙은 이들에게는 거리가 먼 이야기다. 이종수 연세대 교수는 “대다수가 고시촌이나 절에서 공부하다 보니 정상적인 품성 형성, 건강한 지식을 쌓을 기회와 유리돼 있다.”며 “이는 합격자와 불합격자 모두에게 바람직하지 못하다.”고 지적했다. 신림동 학원가의 한 강사는 “실패와 도전, 그리고 성공은 아름다운 이야기이긴 하지만 오랜 기간 고시에 ‘올인’하는 것은 추천하고 싶지 않다.”고 지적했다. 3년 이상을 고시에만 투자하는 것은 너무 위험이 크기 때문이다. ●명문대 나와야 합격 유리 고시를 준비하는 사람들의 출신 배경은 다양한데 합격자는 정형화가 가능하다. 지난해 행시 합격자는 307명이다. 이 중 서울대가 108명으로 35.2%를 차지, 세 명 중 한 명은 서울대 출신이다. 그나마 2007년 40.8%, 2008년 40.7%에서 줄어든 것이다. 3년간 평균은 38.9%로 행시 합격자 10명 중 4명에 육박한다. 서울대를 포함해 고려대와 연세대, 이른바 ‘SKY’가 차지하는 비중은 2007년 74.5%, 2008년 72.6%, 2009년 64.2%다. 3년간 ‘SKY’ 출신이 행시에서 차지한 평균은 70.4%. 행시 합격생 10명 중 7명이 ‘SKY’ 출신이라는 것은 이른바 명문대를 나오지 않으면 행시에 합격하기 어렵다는 것을 방증하는 셈이다. 최근 3년간 한번이라도 10명 이상의 합격자를 낸 대학은 ‘SKY’를 합쳐서 7개 대학뿐이다. ●능력있는 민간인 공직 진입 차단 특정 대학 집중 현상은 특정 부처의 경우 특정 학과 집중 현상으로도 나타난다. 기획재정부는 서울대 경제학과나 경영학과, 외교통상부는 서울대 외교학과가 해당 부처의 중심축이 된다는 것은 관가의 정설이다. 행안부 관계자는 “해당 공무원들이 실력이 뛰어난 것은 사실이지만 같은 대학과 같은 학과를 나온 사람들이 모여서 정책을 결정하게 되면 다양한 사회현상을 보거나 해결책을 제시하지 못할 수 있다.”며 순혈주의의 폐해를 지적했다. 출신 학교를 중심으로 한 동질 문화는 행시 기수에서도 그대로 적용된다. 기수 중심의 문화는 인사 담당자에게는 양날의 칼로 작용하기도 한다. 인사 적체가 심하면 아래 기수를 급속 승진, 위 기수들이 퇴진하도록 압박을 넣을 수 있다. 반면 특정 기수가 다른 기수보다 많아 그 기수에서 주요 보직을 여러 번 차지하게 되면서 아래 기수들의 불만이 쌓일 수 있다. 능력과 평판이 중요한 인사지만 기관장이나 인사 담당자는 주요 보직을 뽑을 때 아래 기수들을 이끌고 갈 수 있는 기수를 선택하게 된다. 이런 문화는 실력 있는 민간인의 공직 사회 진입을 막는 요인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사회생활을 함께 시작했거나 심지어 학창 시절부터 알고 지내던 사람들이 모여 있는 조직에 들어가 ‘왕따’를 당할 수 있는 위험을 감수해야 하기 때문이다. 중앙부처의 한 국장은 “외교통상부 특채 파문으로 행시 개편 문제가 몰매를 맞고 있지만, 국가발전을 위해서는 궁극적으로 고시제도의 개편은 필수”라고 말했다. 전경하·남상헌기자 lark3@seoul.co.kr 한국인사행정학회·서울신문 공동기획
  • 108호걸의 忠이란… 마음의 중심(中+心)

    108호걸의 忠이란… 마음의 중심(中+心)

    ‘수호지’의 내용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뉜다. 1화부터 70화까지와, 71화부터 120화까지. 전반부가 하늘의 별을 타고난 108명의 강골들이 양산박에 모이는 것을 그렸다면, 후반부는 이들의 나라를 위한 싸움을 그린다! 전자가 의(義)에 초점을 맞춘다면, 후자는 충(忠)을 강조한다. 국가의 외부에서 활기차게 살아가던 인물들이 갑자기 국가에 충성이라니! 그러나 충을 마음(心)의 중심을 잡는 것(中)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강골들의 행동이 꽤 흥미롭다. 한 부류는 전사로서의 삶에 마음의 중심을 잡았다. 이들은 국가와의 만남을 하나의 기회로 활용한다. 이들은 가만히 있기보다는 전장에서의 싸움을 갈망한다. 요나라나 방랍과의 전투, 혹은 길 위의 삶을 지루한 양민으로서의 삶보다 더 즐긴다. 전쟁이 끝나고 조직이 해체된 다음에도 국가로 편입되지는 않는다. 가령 연청이나 이준, 공손승과 같은 이들은 전장에서 공훈을 세우고 난 후 홀연히 자취를 감춘다. 이들은 알고 있다. 자신들이 토사구팽당할 것임을. 설사 그렇지 않다 하더라도 기다리는 건 ‘진부한 일상’뿐임을. 다른 부류는 자신이 선택했던 마(魔)의 세계를 삶의 일부로 받아들인다. 가령 송강이 그렇다. 송강은 전쟁이 끝난 후 왕이 내린 독주를 마시고 죽는다. 게다가 자신이 죽은 다음 이규가 반란을 꾀할 것을 염려해 그에게도 독주를 마시게 한다. 그는 왕이나 권력집단이 자신을 죽일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이런 행로를 선택했다. 자신이 사람을 죽였고 그 공으로 살고 있다는 것, 자신이 이런 인과의 일부임을 당당히 받아들인 것이다. 좋은 것만을 즐기는 것은 졸장부의 행동이라고 말한다. 고통을 삶의 일부로 받아들이지 않으면 삶은 구원되지 않는다. 동시에 마의 세계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마군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을 구원하지도 못할 것이다. 그의 충성은 국가나 왕과 같은 특정한 대상을 위한 것이 아니었다. 마음(心)의 중심(中)을 잡는 것은 차라리 이러한 자기 배려의 한 형식이었다. 서울신문·수유+너머 공동기획
  • [고전톡톡 다시읽기] 대중지성의 산물 햄릿

    ‘햄릿’의 저자 셰익스피어는 전 세계적으로 유명한 문학가이다. 당대의 영국인들이 셰익스피어와 인도(당시 영국 식민지)를 바꾸지 않겠다고 했다는 이야기 또한 유명하다. 그 말을 두고 영국인들의 오만함이나 제국주의적 사고방식을 비판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와는 별개로 400년 동안 셰익스피어가 영국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 끼친 거대한 영향을 부정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원래 셰익스피어는 배우로 출발해서 나중에는 자신이 소속된 극단의 주주이자 전속작가 노릇을 했다고 한다. 극단은 셰익스피어가 쓴 희곡을 연극 흥행을 이유로 출판하지 않았다. 그러나 ‘햄릿’ 공연을 했던 배우, 주로 조연급 배우들이 극단 밖에서 대사를 외워내고, 그것을 재구성하면서 셰익스피어의 연극 대본은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했다. ‘햄릿’은 1603년쯤 처음으로 전체적인 작품 꼴을 갖추었고, 이후 계속 수정 증보 과정을 거친다. 1623년 셰익스피어의 동료배우들이 극단에 보존된 자료들을 토대로 다시 작품을 완성해낸다. 결국 ‘햄릿’은 애초부터 판본이 정해져 있지 않았을뿐더러 여기에 번역본이라는 한국적 차이까지 감안하면, 그 어디에도 셰익스피어가 쓴 그대로의 것은 없는 셈이다. 또 셰익스피어 연구자들은 12세기 말부터 유럽에 전해 내려오는 전설, 설화, 덴마크 역사 이야기 등의 집합적 맥락에서 ‘햄릿’을 바라봐야 한다고 지적한다. 결국 ‘햄릿’은 셰익스피어라는 개인의 창작물이라기보다는 유럽에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와 연극 공연, 배우들의 기억, 극단의 자료 등등이 모두 합쳐진 그야말로 집단 생산물인 셈이다. 한 개인의 개별적 능력이 아니라, 그의 시대가 셰익스피어를 통해서 발현된 것이다. 시대의 집합적 배치 속에 들어가 공동체적 기반 속에서 삶의 리듬을 조율해낸 것이 ‘햄릿’이다. 셰익스피어라는 이름을 통한 대중지성의 창작물! 그리고 그 ‘햄릿’은 지금도 계속해서 새롭게 만들어지고 있다. 연극, 뮤지컬, 오페라, 영화, 드라마, 미술, 그림책, 애니메이션, 심지어 컴퓨터 오락게임까지. ‘햄릿’은 아직도 계속 생산되는 중이다. 서울신문·수유+너머 공동기획
  • [자립형 지역공동체사업-지역경제 활로 찾는다] (7)에너지마을 후보 공주 월암리

    [자립형 지역공동체사업-지역경제 활로 찾는다] (7)에너지마을 후보 공주 월암리

    정부는 저탄소 녹색성장 정책의 한 축으로 녹색마을 조성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일상생활에서 발생하는 부산물을 자원화하고 탄소배출을 최소화하는 마을로 탈바꿈시키는 작업이다. 이를 추진하게 된 배경에는 에너지 확보와 환경적인 측면이 동시에 고려됐다. 국제유가 상승에 따른 미래의 대체 에너지 개발이 시급한 데다 유기성폐자원(가축분뇨, 음식물폐수, 하수슬러지 등)의 해양투기가 런던협약에 따라오는 2012년부터 금지되기 때문이다. 독일을 비롯한 선진국들은 이미 저탄소 녹색마을이 일반화 단계에 접어 들고 있다. 일본의 경우 올해 말까지 무려 300개의 바이오매스 타운이 조성될 예정이다. 우리는 현재 행정안전부가 도농복합형 녹색 에너지 자립 마을 조성 사업을 진행하고 있는 것을 비롯해 환경부는 도시형, 농림수산식품부는 농어촌형, 산림청은 산촌형 녹색마을 조성사업을 벌이고 있다. 정부는 내년까지 부처별로 각각 2개씩의 시범마을을 조성한 후 지역별로 적합한 녹색마을 수를 늘려 오는 2020년까지 600개의 녹색마을을 조성한다는 방침이다. 이 가운데 행안부는 2020년까지 358개 마을을 완성한다는 목표를 세워놓고 있다. 부처별로 사업방식이나 규모에는 차이가 있지만 큰 맥락으로 보면 폐자원 및 바이오 매스를 활용해 생활에너지를 충당(40% 이상)하고 각종 생활 부산물을 자체 처리하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이 가운데 행안부가 주도하는 녹색마을 조성사업의 시범지역인 충남 공주시 계룡면 월암리를 찾아 추진과정과 방향 등을 살펴봤다. 우리나라 최초의 에너지 자립마을 후보지로 선정된 충남 공주시 계룡면 월암리는 교통이 편리하다. 천안~논산 간 고속도로를 이용할 경우 공주 나들목에서 11㎞가량 떨어진 곳에 있어 차량으로 20분 정도면 도착할 수 있다. 마을 앞에는 국도 23호선이 시원하게 뚫려 있다. 마을 뒤쪽은 주민들이 계룡산 자락으로 여기는 나지막한 야산들이 병풍처럼 펼쳐져 포근함을 더한다. ●왜 월암리인가 월암리에는 반경 1.6㎢ 내에 219가구 500여명의 주민들이 모여 살고 있다. 여느 농촌마을 같지 않게 주택들은 깔끔하게 잘 정돈돼 있다. 주민들 가운데는 공주와 천안 등지를 출퇴근하는 도시 근로자들도 함께 거주하는 도농복합형 마을이다. 옹기종기 모여 사는 월암리의 가구형태는 에너지 자립마을 후보지로 선정된 이유가 됐다. 최인수 한국지방행정연구원 수석연구원은 “농촌임에도 불구하고 여러 가구가 밀집해 있다는 것은 생산된 에너지를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게 하는 등 사업효과를 높일 수 있다.”고 말했다. 또 반경 5㎞ 이내에 대규모 축산시설과 대기업의 식품가공공장과 농장 등이 위치해 있어 바이오매스 활용자원이 풍부하다. 23번 국도는 운송을 쉽게 하고 사업장 진입 시 마을 경유를 최소화할 수 있다. 특히 에너지 생산시설이 들어설 예정지는 마을에서 500여m 떨어져 있는 데다 23번 국도가 가로질러 있어 혹시 있을지도 모르는 악취 및 소음발생으로부터 주민들을 보호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어떻게 조성되고 뭘 기대할 수 있나 행정안전부는 이 마을에 모두 48억원(자치단체 50%)을 들여 바이오 가스 플랜트와 열병합발전시설, 지역난방 보조시설, 교육·홍보관 등을 설치할 예정이다. 유입 바이오 매스량은 가축분뇨 1일 35t, 음식물 폐수 10t, 식품슬러지 5t 정도로 예상하고 있다. 이를 바탕으로 500t 규모의 소화조 2개를 설치하고 일일 생산 예정량 50t 규모의 액비(액체비료) 저장조도 설치할 예정이다. 이 같은 시설을 갖추면 월암리는 시간당 150㎾의 전략과 하루 47t의 액비를 생산할 수 있게 된다. 연간 1만 8000여t으로 예상되는 액비는 총 400여㏊의 논·밭에 살포할 수 있는 물량이다. 이는 주민들에게 연간 8000만~9000만원의 전기료 절감과 가구당 350여만원 정도의 난방비 절감 혜택을 주는 등 마을 전체적으로는 연간 2억~3억원 정도의 소득 증대 효과를 가져다줄 것으로 공주시와 행안부는 예상하고 있다. 황의배 공주시 지역경제과 담당은 “시설 설치후 발생하는 연간 수익금에 대해서는 주민들의 의견을 모아 법인체를 만들어 주민복지에 사용될 수 있도록 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악취발생은 없을까 월암리가 녹색 에너지 자립마을 후보지로 선정된 것은 지난해 12월18일이다. 입지적인 장점과 자치단체의 추진의지가 탁월했기 때문이다. 그동안 두 차례에 걸친 주민설명회 등을 통해 사업의 안전성과 타당성 등을 알리며 다음달이나 10월쯤에는 착공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악취 및 소음발생 등을 우려하는 주민들이 관련 시설물의 설치를 반대하고 있어 사업추진이 다소 주춤거리고 있다. 축산분뇨나 음식물 쓰레기 및 폐수 등의 유입 과 유출 과정에서 완전한 밀폐화가 사실상 불가능해 악취 발생 가능성은 예상된다. 현재 주민들의 20~30% 정도는 사업 자체를 반대하고 있는 상태다. 박해담(50) 자립마을 조성 추진위원장은 “주민들이 외부의 폐기물 유입과 이에 따른 악취 발생을 우려하고 있다.”면서 “사업의 타당성이나 안전성을 홍보하는 데 정부나 지자체가 더 적극적으로 나서 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행안부는 월암리의 녹색에너지 시설은 바이오 필터(생물학적 탈취법)와 흡착법을 이용한 최신기술이 적용될 예정인 데다 시설 예정지가 마을과 격리돼 있는 만큼 큰 문제는 없을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서철모 행안부 지역녹색성장과장은 “녹색 에너지 자립마을 조성사업은 주민들의 자발적인 참여 여부가 성공의 관건이 된다.”면서 “현재 우려되는 악취와 소음발생 등에 대해서는 충분한 대책과 기술지원이 가능한 만큼 사업 추진에는 별 문제가 없을 것으로 예상한다.”고 말했다. 글 사진 이동구기자 yidonggu@seoul.co.kr ■공동기획 서울신문·행정안전부
  • [고전 톡톡 다시 읽기] 조주선사의 화두 ‘끽다거(喫茶去)’

    ‘벽암록’의 근간이 되는 텍스트는 설두중현(雪竇重顯·980~1052) 스님이 설두산의 자성사에 머물면서 옛 조사들의 고칙(古則) 100개를 정리하고 여기에 송을 붙여 만든 ‘설두송고’다. ‘벽암록’은 송대에 원오극근(1063~1135) 스님이 ‘설두송고’를 바탕으로 수행자에게 제창하기 위해 만든 어록으로, 설두 스님의 본칙과 송에 원오 스님의 수시, 평창, 착어가 더해져 1125년에 완성되었다. 원오 스님은 중국 후난성 창더에 있는 협산사에서 ‘벽암록’을 집필했다고 하는데, 전하는 바에 따르면 쏟아지는 졸음을 쫓기 위해 벽암천의 온천수를 길어와 그 위에 찻잎을 띄워 마셨다고 한다. 스님이 일본인 제자에게 남겨주었다는 ‘다선일미(茶禪一味)’라는 말도 있지만, 차와 관련된 유명한 화두는 뭐니뭐니해도 조주선사의 ‘끽다거(喫茶去)’ 화두다. 절에 와본 적이 있다는 학인에게도, 와본 적이 없다는 학인에게도, 조주가 한 말은 “차 마시게.”였다. 학인들이 돌아간 후 “어째서 와보았다 해도 차나 마시라 하고, 와본 적이 없다 해도 차나 마시라고 하십니까?”라고 묻는 원주(院主)에게도 조주 스님은 말한다. “자네도 차나 마시게!” 조주 스님은 시종일관 그저 ‘차 마시게.’라는 한마디를 했을 뿐이다. “누구나 매일 마시는 차로써 수월하게 종지를 전하는 방식에 세파의 인연을 귀찮다 하지 않고 유연하게 따르는 조주의 비결이 나타난다. 조주가 학인들의 전력을 가리지 않고 권한 뜻과 일치해야 조주가 정성껏 올린 한 잔의 차 맛을 진실로 음미할 수 있을 것이다.”(김영욱, ‘화두를 만나다’)하지만 여전히 알 수 없다. 우리 같은 범인으로서는, 차나 한잔 하고 ‘벽암록’을 펴드는 수밖에! 서울신문·수유+너머 공동기획
  • 마르크스 탈고 뒷얘기

    마르크스 탈고 뒷얘기

    ‘자본’은 마르크스가 정치경제학 연구에 착수한 지 거의 20년 만에 내놓은 미완의 역작이다. 1867년 마르크스가 직접 탈고한 책은 1권뿐이고, 2권과 3권은 엥겔스가 마르크스의 원고를 모아 사후에 엮은 것이다. ‘자본’의 기본 구상이 이루어진 1850년대 말에서 1860년대 초 사이, 마르크스는 스스로의 표현을 빌리자면 ‘미친 사람’처럼 연구와 집필에 몰두했다. 하지만 집필 환경이 좋았던 것은 아니다. 망명지에서의 생활고 때문에 자식도 잃었고, 약한 폐와 엉덩이 종기로 집필을 중단하기도 했다. ‘자본’의 마지막 몇 페이지는 종기 때문에 아예 일어서서 썼다고 한다. 그러나 마르크스는 그의 아내도 감탄할 만한 유쾌한 정신의 소유자였다. ‘자본’ 집필을 마친 후 그는 원고를 직접 함부르크에 있는 출판사에 가져가려 했다. 하지만 입고 갈 옷과 시계가 전당포에 있었다. 정작 원고는 썼는데 옷이 전당포에 있어 갈 수가 없었다. 하지만 이는 마르크스의 처신을 통해 볼 때, 비극이기보다는 가난한 자의 코믹한 일상에 가까웠던 것 같다. 마르크스는 엥겔스에게 돈을 받아 전당포에 감으로써 ‘자본’ 출판의 첫 번째 실무를 수행했다. 출판사에 원고를 넘긴 뒤 교정지를 받기까지 한 달 동안, 마르크스는 자신의 팬이었던 쿠겔만의 집에 머물렀다. 거기서 그는 온갖 익살과 농담, 박식을 뽐내며 쿠겔만의 가족과 이웃을 즐겁게 해주었다. 그는 사람들을 즐겼고 사람들은 그를 즐겼다. 그 와중에 비스마르크가 보낸 사절이 와서 독일을 위해 그의 두뇌를 써줄 수는 없는지 묻기도 했다. 그런데 유머를 잃지 않던 그가 딱 한 번 분노를 터뜨린 적이 있다고 한다. 어느 방문객이 ‘공산주의에서는 누가 구두를 닦느냐.’고 물었을 때였다. 마르크스는 이렇게 쏘아붙였다. “당신이 닦으쇼.” 쿠겔만 부인이 마르크스 같은 귀족적 인물이 평등사회에서 살아갈 모습을 상상하기 어렵다고 하자 그는 말했다. “나도 상상할 수 없소. 그런 시대가 반드시 오겠지만, 그 때 우리는 이미 세상에 없을 거요.” 서울신문·수유+너머 공동기획
  • 슬로공동체 대전 유성 세동마을

    면 단위로 지정되는 슬로시티는 여러 개의 마을로 이뤄져 있다. 그러나 슬로시티 안에 있지 않아도 슬로시티의 삶을 추구하는 마을은 전국 곳곳에 있다. 행정안전부는 이 같은 마을을 ‘슬로공동체’로 지정, 적극 육성할 계획이다. 자립 여건도 갖추면서 자연 친화적인 발전이, 대전 유성구 세동마을에서 보듯 충분히 가능하기 때문이다. 세동마을은 변변한 생업거리 없이 근근이 벼농사로 연명하던 곳이었다. 시 안에 위치하지만 전체 65가구 가운데 45가구가 농사를 짓는 전형적인 농촌이다. 하지만 계룡산 자락에 위치해 날씨가 서늘한 관계로 벼농사는 영 신통치 않았다. 외부 인적도 드물던 이 마을은 지난해 농림수산식품부로부터 우리밀 생산사업 특화마을로 지정받으면서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 행안부의 희망근로와 연계해 우리밀 생산단지를 조성하면서 마을 수입이 늘고 연꽃 체험장, 우리밀재배 체험 등 기반시설을 만들면서 방문객도 늘어났다. 지난해 6가구가 2만 2000㎡(7000평)에 우리밀농사를 지어 4t을 수확했다. 단순 밀가루 판매만으론 수익을 기대할 수 없어 우리밀 국수, 우리밀 찐빵 등 가공제품을 밀다원에 위탁판매했다. 결과는 놀라웠다. 2일 만에 다 팔려 4500만원의 매출을 올렸다. 세동마을은 올해 4월엔 백세밀영농조합이란 법인도 세우고 자체 판로확보에 나섰다. 재배면적을 6만 6000㎡(2만평)로 늘리고 20여가구 이상이 참여했다. 당초 매출액은 3억원(가구당 소득 2000만원) 이상으로 기대했지만 아쉽게도 냉해 때문에 절반에 그칠 것으로 보인다. 우리밀 사업을 총괄하고 있는 김종우 세동 통장은 “지난해 정도 날씨였으면 수확량이 최소 4배 이상은 늘었을 것”이라면서 “우리밀은 침체된 농촌마을에 자립의 길을 열어준 아이템”이라고 대견해했다. 올해는 우리밀 가양주 사업도 시작했다. 우리밀을 이용해 전통 누룩을 제조하고 술을 생산하는 사업이다. 농식품부로부터 예산 1000만원을 지원받기도 했다. 행안부는 9월 세동마을을 지역공동체사업 마을로 지정해 재정, 행정적으로 뒷받침할 예정이다. 세동마을은 이에 힘입어 우리밀농사 체험, 가양주 빚기 등 가족단위 녹색체험 상품화에도 나선다는 계획이다. 이재연기자 oscal@seoul.co.kr 공동기획 서울신문·행정안전부
  • [고전톡톡 다시읽기] 삼국사기의 영원한 라이벌 ‘삼국유사’

    [고전톡톡 다시읽기] 삼국사기의 영원한 라이벌 ‘삼국유사’

    삼국시대의 역사를 이야기하려면 ‘삼국사기’와 일연의 ‘삼국유사’를 함께 거론하지 않을 수 없다. 두 역사서는 꼬박 대칭을 이룬다. 정사와 야사, 유학자와 불승, 문헌조사 중심과 현지 조사 중심 등으로 대비된다. 이 때문에 ‘삼국사기’를 읽으면 ‘삼국유사’가 궁금해지고, ‘삼국유사’를 읽으면 ‘삼국사기’를 비교하고 싶은 충동이 든다. ‘삼국사기’ <열전>과 ‘삼국유사’ <기이편>에 동시에 실려 있는 신라의 박제상 이야기를 비교해 보자. 박제상은 계림의 신하다. 박제상은 고구려에 억류되었던 왕자 복호를 구하고, 일본에 억류되었던 왕자 미사흔을 탈출시키는 데 성공한다. 그러나 정작 박제상 자신은 일본 왕에게 잡혀 온갖 고문을 당한 끝에 죽임을 당한다. 이야기는 여기서 끝이 아니다. ‘삼국사기’에서 죽은 박제상은 대아찬에 추증되고 그의 가족들은 후한 상을 받았으며 제상의 둘째딸은 미사흔의 아내가 된다. 미사흔의 귀환으로 왕실은 화락함을 되찾는다. 그러나 ‘삼국유사’의 뒷이야기는 이와 다르다. 박제상의 아내는 왜국으로 떠나는 남편을 따라잡지 못해 망덕사의 모랫벌 위에 누워 길게 울었다. 오래 뒤 제상의 아내는 그리움을 견딜 수 없어 치술령에 올라 왜국을 바라보며 통곡하다가 죽어 치술신모가 된다. 김부식은 국가인의 시선으로 사건을 기술한다. 김부식에게 국가는 주체고, 개인은 객체다. 그렇기 때문에 국가가 충신에게 부여한 영광에 초점을 맞춘다. 반면 일연은 박제상의 부인을 주체로 다룬다. 왕실은 가족을 되찾았지만 정작 제상의 아내는 남편과 이별하게 되고 사무치는 그리움 때문에 죽게 되는 이 역설. 명예와 영광 이면에 도사리고 있는 비감어린 가족사. 일연은 이 부분에 주목했다. 김부식은 국가에 집중했고, 일연은 국가 외부의 개인에게 시선을 던졌다.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 대해, 역사책으로서 그 우열을 판정하고 가치를 판단하기는 어렵다. 확실한 건 ‘삼국사기’가 국가 내부를 사유하게 한다면, ‘삼국유사’는 국가 외부를 사유케 한다는 점이다. 역사 기술의 출발점이 다른 ‘삼국사기’와 ‘삼국유사’는 영원한 맞수이자 서로를 비춰주는 거울이다. 서울신문·수유+너머 공동기획
  • 욕심·허영·어리석음… 차갑게 바라본 군상들

    욕심·허영·어리석음… 차갑게 바라본 군상들

    스탕달은 ‘적과 흑’(1830)에서 나폴레옹을 동경하는 젊은이 쥘리앵 소랠을 그렸다. 쥘리앵은 사랑과 박애의 혁명정신을 순수한 마음으로 동경했다. 발자크에게 이런 낭만은 없다. 그는 사랑과 우정에 대한 헛된 꿈을 철저히 버리고 차갑게 세상의 추이를 지켜보는 길을 선택했다. 그 누구도 고리오 영감의 죽음에 조의를 표하지 않았다. 하숙집 주인 보케르 부인은 두 딸의 머리털이 들어 있는 금색 메달을 고리오의 주검에서 떼어 낸다. 그녀는 고리오가 저승길에 가지고 갈 수 있는 유일한 물건마저 훔치려고 달려든 것이다. 발자크는 이 부인의 어리석은 욕심도 가차없이 포착했다. 그 결과, 나폴레옹 후일담만 되새김질하며 지내던 사람들은 허영에 허우적대는 자신 또한 직면할 수 있게 되었다. 보들레르는 1845년 자신의 비평문에서 이런 발자크의 인물들이 ‘일리아스’의 주인공보다 훌륭하다고 썼다. 고리오와 라스티냐크가, 심지어는 하숙집 주인 여자가 더 독특하다! 왜? 그들은 신화 속 영웅들처럼 자기 욕망 때문에 좌절하고 시련을 겪지만 결코 자신의 본성, 자신의 호기심을 꺾지 않기 때문이다. 신도 없는 세계에서 어떻게 그런 용기를! 그들은 그 끝에 허망한 죽음이 기다릴지라도, 약속된 것 하나 없이 세상에 알몸으로 떨어지더라도, 자기 두 주먹으로 세상과 맞짱 뜨는 일에 목숨을 걸었다. 발자크의 독자들은 이런 주인공의 매력에서 헤어나올 수 없었다. 작가 발자크 역시 부와 명성이라는 자기 욕망에 충실했다. 쓰지도 않은 원고 인세를 미리 받아가며 좋은 집과 가구들을 사들이기도 했다. 그는 대중의 기호에 따라 하루아침에 판세가 바뀌는 근대 저널리즘의 본성을 꿰뚫어 보았다. 덕분에 최초로 독자를 연구한 작가가 되었다. 당대 사회를 철저히 조사하여 대중의 욕망을 만족시키려고 노력했던 것이다. 그는 매일 밤 엄청난 양의 커피를 몸 속에 쏟아부어가며 쓰고 또 썼다. 그리고 이런 자신을 자랑스러워했다. 발자크의 이런 철저함과 낙관성 때문에 한낱 이야기꾼에 불과하던 소설가도 근대적 영웅으로 재탄생할 수 있게 되었다. 서울신문·수유+너머 공동기획
  • [자립형 지역공동체사업-지역경제 활로 찾는다] 주민 삶의 질 최우선… 관광수입은 덤

    [자립형 지역공동체사업-지역경제 활로 찾는다] 주민 삶의 질 최우선… 관광수입은 덤

    로마에서 기차로 한 시간 걸리는 오르비에토 기차역. 이곳과 해발 고도 195m 바위산 정상에 위치한 오르비에토 도심을 잇는 산악궤도열차 푸니쿨라(케이블카). 오르비에토 관광의 상징이기도 한 푸니쿨라는 올해 6월15일부터 8월 말까지 운행을 멈춘다. ●관광 성수기에 케이블카 운행 안해 한창 관광객이 몰릴 성수기에 웬 운행정지냐고 되묻자, 관계자들은 방학 때문이라고 답한다. 오르비에토 도심에 중고등학교가 없어 학생들이 오르비에토 기차역까지 푸니쿨라를 타고 내려온다. 가장 안전하고 빠른 수단이기 때문이다. 방학이 시작돼 학생들의 이동수요가 없기 때문에 수리에 들어간다는 것이다. 로마 문명 이전 고대 에트루리아 문명이 남아있고, 교황 클레멘트 7세가 잠시 거주하면서 수원 확보를 위해 판 깊이 64m의 성 파트리치오 우물과 가톨릭 성지순례지로 이탈리아에서 가장 아름답다는 대성당이 있는 오르비에토. 주민 2만 1000여명에 관광객이 연간 110만∼120만명인 오르비에토가 슬로시티를 선택한 목적은 관광객 증가가 아니라 주민들의 삶의 질을 높이는 것이었다. 슬로시티 국제연맹 본부도 이곳에 있다. 오르비에토는 백포도주로도 유명하다. ●네온사인은 약국 녹색 십자가가 유일 피에르 올리베티 슬로시티 사무총장은 “관광객 입장에서라면 둘러보는 것이 아니라 머물다 갈 수 있는 여행, 살고 싶다는 느낌이 드는 여행이 되도록 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오르비에토는 슬로시티를 선언한 뒤 대형 주차장을 3개 만들고 일반 차량의 도심 진입을 제한시켰다. 관광지라면 으레 볼 수 있는 대형 관광버스는 도심 지하주차장에 주차해야 한다. 5분 단위로 주요 관광지를 잇는 버스를 운행, 차량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도록 배려했다. 새로 건물을 지을 때는 반드시 친환경적이어야 하며 오래된 돌을 사용하도록 했다. 주민들과 협의는 기본이다. 시청 등 공공건물 위주로 태양열 패널의 사용을 늘리면서 시간대별로 전기와 물의 공급을 조절, 에너지를 아끼는 시스템을 도입했다. 네온사인은 약국을 표시하는 녹색 십자가가 유일하다. 6개 항목, 52개 지표로 에너지 절약 등 슬로시티 이행 사항을 점검한다. 주민의 삶을 우선으로 하는 정책은 젊은 층이 이곳에 거주, 소규모 창업을 하는 결과로 나타났다. 경제적·물질적 성공이 아닌 자신이 중요시하는 가치를 위한 삶을 선택한 사람들이다. 도자기, 화산석으로 만들어진 계단석 등을 제작·판매하는 말돈 발테르 부부는 자신들 소유의 가게에서 작품을 만들고 물건을 파는 시간까지 하루에 8시간만 일한다. 더 일해 돈을 많이 벌고 싶은 생각이 없느냐는 질문에 “가족들을 위해 식사를 준비하고, 가족들과 함께 하는 시간이 소중하다.”고 대답한다. 한국의 소규모 상점 영업시간을 들은 발테르 부부는 “한국인들은 이번 생애에는 일만 하고 다음 생애에는 쉬기만 할 모양”이라고 응수했다. 2008년 12월 이곳에 레스토랑을 연 발렌티나 솔타히치아 부부. 이들의 특별한 마케팅은 없고 손님 비중도 관광객이 아닌 현지인이 90%다. 이 레스토랑의 특징은 주변에 위치한 농가에서 모든 식재료를 조달하고, 이를 중심으로 메뉴를 만든다는 것이다. 이들 부부는 “장사가 잘될수록 거래하는 농가가 늘어나고, 이곳의 소득이 늘어나 현지인 손님이 늘어나는 구조”라고 설명했다. 글 사진 오르비에토(이탈리아) 전경하기자 lark3@seoul.co.kr 공동기획 서울신문 ·행정안전부
  • 과학을 앞선 SF 소설들

    허버트 조지 웰스가 타임머신이라는 황당무계한 소재를 상상했을 때, 사람들은 터무니없다고 치부했다. 하지만 불과 10년 후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이 나오면서 이 황당한 상상력은 가능성이 되었다. 비슷한 사례는 또 있다. 윌리엄 깁슨의 ‘뉴로맨서’가 그러하다. 가상공간에 대한 개념조차 없었던 1984년 발표된 소설의 배경은 사이버 스페이스이다. 컴퓨터나 인공지능 등 컴퓨터에 대한 어떤 이해도 없었던 윌리엄 깁슨은 고물 타자기 한 대로 이 놀라온 소설을 완성했다고 한다. 오락실에서 오락을 하는 아이들을 보고 아이디어를 얻었다는 소설은 지금 보아도 낯설기만 한 용어로 가득하다. 사람의 두뇌에 컴퓨터를 연결해서 사이버 스페이스로 들어가는 방식을 창안한 소설은 이후의 사이버펑크라는 SF소설의 하위 장르를 탄생시켰으며 소설뿐 아니라 음악, 영화에까지 많은 영향을 끼치고 있다. 쥘 베른의 소설 ‘달세계 여행’에는 미국에서 달나라로 여행을 떠나는 이야기가 나온다. 약 100년 뒤인 1969년 미국의 암스트롱이 달나라 착륙에 성공한다. 쥘 베른의 상상력이 현실이 된 사례는 또 있다. 그의 소설 ‘해저 2만리’는 잠수함을 타고 해저를 여행하는 이야기다. 소설이 발표되었던 1870년에는 아직 잠수함이 발명되기 전이었다. 그로부터 84년 뒤인 1954년 세계 최초로 취항한 미국의 핵잠수함은 ‘해저 2만리’에 나오는 잠수함 이름인 노틸러스를 그대로 썼다. 이름뿐 아니라 소설 속 다른 아이디어도 상당부분 수용했다고 밝혔다. ‘2001 스페이스 오딧세이’의 작가 아서 클라크의 일화도 있다. 영국 공군의 레이더 담당 교육장교로 근무하던 그는 최첨단의 통신 장비를 접하면서 기이한 아이디어를 생각해 낸다. 1945년 그는 공군 시절의 과학적 지식을 기반으로 한 ‘무선세계’라는 글을 발표했다. 그의 아이디어에 착안해 통신위성이 발사되었으며, 1964년 일본 도쿄올림픽이 전 세계로 TV중계 될 수 있었다고 한다. 때로 세상을 바꾸는 것은 소설가들의 놀라운 상상력이기도 한 것이다. 서울신문·수유+너머 공동기획
  • 정보화마을이 만든 新농촌 일자리

    ‘임실치즈마을’로 유명한 전북 임실에 사는 이동훤(50)씨. 이씨는 1993년 서울의 직장생활을 접고 이곳에 귀농해 밭농사를 지어왔다. 그러나 2년 전부터 농사를 포기했다. 임실치즈마을의 사무국장을 맡으면서 인터넷을 통한 숙박·체험여행 예약 접수, 상품 판매, 체험장 관리 등을 총괄하고 있기 때문이다. ●임실치즈마을 이동훤씨 농사 안 짓는 귀농 임실치즈마을의 지난해 매출은 9억 2000만원. 세계적 금융위기와 신종플루 여파에도 불구하고 2008년 7억 3000만원에 비해 26%나 늘어났다. 두 악재, 특히 신종플루가 없었다면 더 늘어났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이 사무국장은 사무국 직원 7명과 함께 사실상의 비상대기조로 마을의 원활한 운영을 책임진다. 매년 주민들을 상대로 앞으로 나아갈 방향을 정하는 회의도 하고, 이에 필요한 교육도 실시한다. “마을 사람들이 힘을 모아야 마을이 발전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귀농을 해서 반드시 농사를 지어야 한다는 이유는 없다. 자신의 전공분야인 회계·경영이 자신이 마음 붙여 정착한 곳에 기여하는 것을 보면, 일이 고되고 농사포기에 대한 아쉬움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보람이 더 크다. 임실치즈마을은 행정안전부와 지방자치단체가 중점적으로 마련한 363개 정보화마을 중 하나다. 도농 간 정보격차를 줄이기 위해 농촌 지역에 인터넷 이용 환경을 만들고 마을 사이트를 구축해 주자는 취지로 2001년 시작했다. 구축사업이 끝난 2009년부터 농촌 지역 특산품을 알리는 ‘인빌쇼핑(www.invil.com)’과 체험 여행을 알리는 ‘인빌체험(http://tour.invil.com)’으로 업그레이드됐다. 인빌쇼핑이 지난해 전국 매출 89억 8000만원, 인빌체험이 45억 9000만원, 총 135억 7000만원을 기록했을 만큼 해당 마을의 효자다. ●전국 363곳… 최근 20대도 눈에 띄어 물론 마을 간 편차가 크다. 임실의 경우 이미 2003년에 녹색농촌체험마을로 지정돼 어느 정도 알려져 있었고 2006년 정보화마을 선정, 2009년 온라인예약시스템 가동 등을 거치면서 매출이 급격히 늘어난 경우다. 363개 정보화마을에는 각 1명씩의 프로그램관리자가 상시 배치된다. 초기에는 40대가 주류를 이뤘으나 최근에는 20대도 종종 눈에 띈다. 이들의 월급 110만원은 중앙정부가 50%, 시·군·구가 50%를 각각 부담한다. 마을에서 행사를 자주 열거나 사업이 잘되고 관리자가 열심히 하면 몇십만원씩 웃돈을 얹어주기도 한다. 사업이 잘되고 있는 마을의 욕심은 이들이 귀농하는 것이다. 마을위원회 위원장은 노령층으로 무보수직이다. 사업이 본궤도에 오르면 마을 자체적으로 귀농인을 중심으로 사무국장을 구한다. 월급은 천차만별이지만 이들은 마을에 대한 열정으로 일한다. 전경하기자 lark3@seoul.co.kr 공동기획 : 서울신문·행정안전부
  • [고전톡톡 다시읽기] 주희 ‘주자어류’

    [고전톡톡 다시읽기] 주희 ‘주자어류’

    <하루라도 음식을 어떻게 어디에서 구할 것인가 등을 걱정하지 않고 보낼 수 있게 된다면, 그 하루의 절반은 조용히 앉아서 지내고 나머지 절반은 책을 읽으며 보내는 것이 좋을 것이다.> 주자(朱子·1130~1200)는 성실한 학자이자 모범적인 스승이었다. 이 글은 한 제자에게 던진 덕담이었지만, 짧은 언급에서도 주자의 평소 스타일이 드러난다. 주자는 결코 부유하거나 영향력 있는 집안 출신이 아니었다. 주자의 아버지 주송(朱松)이 과거에 급제했고 관직에 나아가기는 했지만, 주자는 가난한 집안의 수재일 뿐이었다. 주자는 19살에 공식적인 과거 시험을 모두 통과했다. 비교적 이른 나이부터 그는 사실상 혼자 힘으로 세상과 맞서야 했던 것이다. 주자 철학의 핵심은 흩어진 선배들의 생각들을 한데 모아 묶어낸 데 있다. 주자는 ‘시경(詩經)’, ‘서경(書經)’, ‘역경(易經)’, ‘예기(禮記)’ 등 경서(經書)에 방대한 주석 작업을 완성했을 뿐 아니라, ‘논어(語)’, ‘맹자(孟子)’, ‘대학(大學)’,‘중용(中庸)’을 사서(四書)라는 이름으로 묶어 주석 작업과 함께 편찬하고, 이를 경전화시켰다(죽기 사흘 전까지도 주자는 ‘대학’에 관한 경구 해석에 매달렸다!). 그런가 하면 주자는 ‘절친’인 여조겸과 함께 자신이 존경하는 북송대의 선배 유학자 글을 편집하여 ‘근사록(近思錄)’이란 책을 편찬했다. 주자는 ‘근사록’을 ‘사서에 이르는 사다리’에 비유했다. ●주자학의 가장 충실한 텍스트 ‘주자어류’ 주자에 의해 편찬된 사서는 유학의 공식적인 해석으로 인정되어 1313년부터 과거 시험의 척도가 되었다. 주자학의 영향력은 1912년 과거제가 공식 폐지될 때까지 지속되었다. 이 사실은 주자의 사유가 700여년간 한 세계-사실상 중국은 당시 세계 그 자체였다-의 학문적 헤게모니를 장악하고 있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제자 문인들과의 강학 및 대화를 기록한 방대한 양의 ‘주자어류(朱子語類)’는 바로 이러한 주자의 세계관과 학문에 대한 태도 등을 살펴볼 수 있는 주자학의 가장 충실한 기본 텍스트이다. 이와 같은 주자의 철학 정신은 오늘날 ‘집대성(集大成)’이란 말로 불린다. 주자의 철학적 관심은 새로운 개념의 창안에 있지 않았다. 그렇다고 해서 주자의 작업이 단순히 흩어져 있던 선배들의 자료를 한데 모아놓았다는 식의 의미로 축소되는 것은 아니다. 집대성이란 말 그대로 한데 모아 크게 이룬다는 뜻이다. 그런 점에서 볼 때 집대성자로서의 주자는 오히려 ‘조술하되 창작해서 짓지는 않는다’는 술이부작(述而不作)의 창작 태도를 견지했던 공자의 학문 정신과 일맥을 같이한다고 말할 수 있다. ●집대성, 성실과 근면의 다른 이름 집대성, 그러므로 그것은 성실과 근면, 그리고 끈기로 똘똘 뭉친 한 위대한 지성의 작업에 대한 존경을 표현하는 말이라고 할 수 있다. 주자는 새로운 개념을 추구한 철학자였다기보단 이곳저곳에 산재해 있던 다양한 원석(原石)들을 한자리에 모아 데코레이션을 가미한 철학자였다. 그리고 바로 이러한 과정을 거쳐 주자는 앞선 문헌들에 대해 유학의 전통적인 해석과는 다른 생기를 불어넣었다. 다시 말해 2차 해석에 불과한 주석 작업을 통해 주자는 서로 무관해 보이던 텍스트들 사이를 이(理)와 기(氣)라는 실로 메워주었던 것이다. 이와 기! 주자는 단순해 보이는 이 두 개의 용어로 우주론으로부터 존재론으로, 인식론으로부터 윤리론 사이를 종횡무진 넘나든다. 이기론(理氣論)이란 간단히 말해 세상 모든 현상(기·氣) 이면에는 그 이치(이·理)가 존재한다는 사유다. 예컨대 하늘에는 하늘의 이치가, 사물에는 사물의 이치가, 사람에게는 사람의 이치가 각각 존재한다. 그런데 이러한 각각의 이치들은 또한 서로 무관한 것이 아니라 그렇게 존재하게끔 되어 있는 또 다른 이치를 따르고 있다. 다시 말해 원래 이(理)는 하나인데, 이 하나의 이치가 각기 다른 수많은 존재로 현상하고 있다는 것이다. ●1000개의 달은 저마다 하나의 달을 품고 있다 예를 들어보자. 밤하늘에 달이 떠오르면, 1000개의 강과 호수마다 그 달이 비치지 않는 곳이 없다. 간혹 날이 흐려 달이 구름에 가려진다면 1000개의 달은 구름에 가려진 모습으로 드러난다. 즉 1000개의 달은 하늘의 달에 의해 그 존재 작용이 가능하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하늘의 달과 1000개의 달 사이의 관계가 서로 종속적인 것이라고는 말할 수 없다. 1000개의 달의 존재 이유가 되는 하늘의 달이라 할지라도 그것은 결국 강과 호수라는 구체적 작용이 아니면 세상에 드러날 수가 없다. 요컨대 하늘의 달 또한 1000개의 달에 의지하지 않고서는 세상에 나설 수가 없는 것이다. 하늘의 달과 강물 위에 뜬 1000개의 달을 같다고 말할 수도 없다. 그렇다면 하늘의 달과 강과 호수 위에 떠오른 1000개의 달은 어떤 관계인 것일까. 천지는 그 마음이 만물에 두루 미치기 때문에, 사람이 그것을 얻으면 사람의 마음이 되고, 사물이 그것을 얻으면 사물의 마음이 되고, 초목과 짐승이 그것을 얻으면 초목과 짐승의 마음이 되니, 오직 천지의 마음 하나일 뿐이다.(‘주자어류’) 주자는 하나의 달이 1000개의 달로 떠오르는 것은 하나의 이치(理)를 수많은 존재들이 나눠 갖고 있는 것(이일분수·理一分殊)이라고 했다. 1000개의 달은 하나의 달을 1000개로 조각내 나눠갖고 있는 것이 아니다. 1000개의 달은 저마다 각각 하나의 달을 품고 있다. 다만 그 1000개의 강마다 서로 다른 기질적 차이 때문에 하나의 달은 1000개의 강으로 세상에 드러나는 것이다. 예컨대 어떤 강의 달은 지형에 의해 일그러질 테고, 어떤 강의 달은 조도(照度)에 의해 더 하얗게 빛나거나 어둠 속에 잠길 것이고, 또 어떤 강의 달은 크거나 작게 현상할 것이다. 어느 것 하나 하늘의 달을 따르지 않을 수 없지만, 이 각각의 달들은 저마다의 조건, 혹은 기질에 따라 단 하나도 똑같은 달이 되지는 않는다. 주자는 말한다. 이와 기는 서로 섞이지 않으며(불상잡·不相雜), 서로 떨어지지도 않는다(불상리·不相離)고. 하지만 모든 현상의 이면에는 반드시 그것을 가능케하는 이치가 있다는 주자의 생각은 사실상 기보다 이가 선차적인 것임을 선언한 것이었다. 물론 주자는 이것이 시간적인 순서가 아님을 분명히 했다. 하지만 논리적으로 따진다면 이가 기에 선행한다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이 순간, 주자의 이기설은 천 수백년 간 이어온 기(氣) 중심의 중국 철학 전통을 근본에서부터 뒤집는 혁명을 시작한다. 문성환 수유+너머 강원연구원 서울신문 · 수유+너머 공동기획
  • 세계무대서 한국을 빛낸 사람들

    세계무대서 한국을 빛낸 사람들

    아리랑TV가 세계를 무대로 활발히 활동하고 있는 한국인을 찾아 그들의 활약상을 보여주는 ‘코리안스 온 더 월드 스테이지’(Koreans on the world stage)를 18일부터 매주 금요일 오후 11시에 방송한다. 해외문화홍보원과 공동기획으로 총 9차례에 걸쳐 방송된다. 백남준에 이어 최고의 미디어 아티스트로 불리는 정연두를 시작으로 세계의 사법기구를 이끄는 국제형사재판소(ICC)의 송상현 소장 등 한국인의 이름으로 전 세계를 빛내고 있는 인물들이 소개된다. 세계 속 한국인이 되기까지 겪었던 실패와 좌절, 그리고 남다른 포부와 열정으로 세계에 이름을 남기고 있는 이들이다. 18일에는 백남준 이후 처음으로 세계 3대 미술관인 뉴욕 현대미술관에 작품을 내건 미디어 아티스트 정연두 편이 방송된다. 그는 최근 프랑스 명문화랑 ‘페로틴 갤러리’에서 첫 개인전을 열기도 했다. 세계적인 아트페어에서도 영향력을 행사할 만큼 세계에서 손꼽히는 유명 갤러리스트인 엠마누엘 페로틴은 그동안 프랑스작가들과 세계적인 작가들만 초대해왔다. 그만큼 정연두가 세계적인 작가 반열에 올랐다는 것을 나타내는 방증이다. 25일에는 송상현 국제형사재판소(ICC) 소장 이야기가 방송된다. 네덜란드 헤이그의 ICC는 대량학살과 고문, 전시강간 같은 비인도적 범죄부터 전범까지, 국제적으로 중대한 범죄를 저지른 개인을 기소하고 처벌하는 상설기관이다. 송상현은 2009년부터 수장을 맡았다. 그가 ICC 소장으로 선출된 뒤 밝힌 “평화는 정의 위에 비로소 실현된다.”라는 말은 여러 사람들에게 큰 감동을 전해주기도 했다. 정연두와 송상현 외에도 세계적으로 유명한 동영상 사이트에서 뮤지컬 캐츠의 인기곡인 ‘메모리(Memory)를 가장 잘 부른 가수’ 1위로 선정된 파페라 가수 로즈 장과 제지, 컨테이너, 금융 등 30여개의 계열사를 운영하며 인도네시아 재계 20위권 내에 오른 코린도 그룹의 승은호 회장, 슈퍼옥수수 개량으로 빈민국을 원조에 힘쓰고 있는 김순권 박사 등이 소개된다. 이경원기자 leekw@seoul.co.kr
  • [지역개발 현장] 평택 브레인시티

    [지역개발 현장] 평택 브레인시티

    경기 평택시 도일동 일대가 새로운 패러다임의 지식기반산업 도시로 탈바꿈한다. 평택시와 성균관대는 제3캠퍼스와 국제공동연구소(BRI)를 포함한 지식산업단지, 친환경 주거공간이 어우러지는 ‘브레인시티’ 사업을 추진 중이다. 국내 처음 대학이 주축이 돼 시도되는 미래형 모델도시이다. ●482만㎡면적 2013년 말 완공 16일 도일동 지역엔 “국내외 유수대학 및 대기업 유치로 지역이 획기적으로 발전할 수 있을 것”이란 기대가 가득 차 있었다. 주민 최모(45·자영업)씨는 “국내 굴지의 반도체 회사를 비롯한 첨단기업과 유명 대학들이 입주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지역 경제 활성화와 함께 글로벌 도시로 거듭날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다. 브레인시티 조성사업은 평택시 관내 13개 동 가운데 5개 동이 포함된 거대 프로젝트로 조성 면적이 482만 4900여㎡에 이른다. 지난 3월 경기도로부터 승인고시됐으며 현재 토지보상 준비작업이 진행 중이다. 내년 1월 착공, 2013년 말 준공할 예정이며 모두 4조 8000억원 규모의 사업비가 투입된다. 사업부지는 산업시설 36%(173만 5000㎡), 주거용 18.3%(88만 3500㎡), 교육시설 12%(57만 7000㎡), 상업 및 지원시설 3.5%(16만 7000㎡)로 계획돼 있다. 나머지 30.3%에 해당하는 146만여㎡는 도로 및 주차장, 공원, 문화복지 등 공공시설 용지로 개발된다. 산업시설용지에는 전자(통신)부품과 의료정밀, 자동차 및 운송·기계제조 분야의 기업들이 자리잡을 예정이다. 국내 반도체 회사인 S사를 비롯한 국내외 첨단기업이 입주할 것으로 알려졌다., 주거지엔 단독 및 공동주택과 주상복합을 포함, 총 1만 4700여가구(3만 9000여명)가 들어서게 된다. ●해외大 공동캠퍼스·다국적 기업 유치 교육시설용지에는 성균관대 제3캠퍼스 외에 기숙사 및 교직원 아파트와 게스트하우스, 국제공동캠퍼스 및 국제공동연구소(BRI)가 입주할 계획이다. 성균관대는 국제 전문대학원과 국제어학원, 국제어학부, 국제 문화예술 전문학부 프로그램을 통해 제3캠퍼스 정원의 20%(2000명)를 외국인 유학생으로 수용한다는 방침이다. 국제공동연구소(BRI)에는 해외대학 및 국내외 유수 연구소, 다국적 기업 등이 참여해 인재양성 및 연구개발 지원체계 구축, 지식산업 공동기획 등을 추진한다. 이를 위해 성균관대는 2008∼2009년 미국 조지아공대 및 프랑스 라세마대와 양해각서(MOU), 미국 남가주대 및 UT댈러스대와 투자합의각서(MOA)를 각각 맺은 데 이어, 브레인시티 내에 공동캠퍼스나 연구소 건립을 위해 일본과 스웨덴, 핀란드의 일부 대학과 협의를 진행하는 등 발 빠른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또 평택시와 성균관대는 지난해 11월 연구소 설립을 위한 MOU를 체결했으며 지난 3월에는 국제공동연구소 설립 및 운영을 위한 조례를 제정했다. ●생산유발 효과 11조5000여억원 예상 시와 성균관대는 브레인시티 조성 사업으로 11조 5000여억원의 생산유발 효과와 9만 9000여명의 고용유발 효과로 지역경제 활성화에 기여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브레인시티가 들어서는 지역은 경부·서해안·평택~화성 간 고속도로와 KTX 및 경부선 등이 인접, 서울과 양호한 접근성을 갖추고 있다. 평택시 관계자는 “브레인시티 첨단복합산업단지는 산학연이 연계돼 추진되는 국내 첫 사례로 우리나라 산업단지 조성 사업의 새로운 모델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병철기자 kbchul@seoul.co.kr
  • 장애인 일자리 모범 장기리 ‘떡메마을’

    장애인 일자리 모범 장기리 ‘떡메마을’

    사회적 약자인 중증 장애인에게 일자리를 제공하고 자활능력을 키워주기 위해 설립한 ‘떡메마을 민들레농장’은 전북 완주군이 운영하는 새로운 개념의 사회공헌 공동체이다. 보건복지부가 공모한 중증장애인 일자리 최우수 시범사업에 선정돼 정부지원으로 설립됐다. 올해 2월 완주군 봉동읍 장기리에 단체급식이나 선물용 떡 생산시설을 갖춰 중증 장애인 20명(상근 15명, 비상근 5명)에게 일자리를 제공하고 있다. 떡의 원료인 쌀·팥·콩 등 재료는 지역농가와 계약재배를 통해 구입한다. 현재 명절 선물용 세트를 비롯, 생일과 각종 기념식에 사용되는 떡 케이크 등 26가지의 떡을 생산하고 있다. 수익을 우선하기보다는 장애인들에게 용기와 희망을 심어주기 위한 사회적 약자 지원사업이다. 새로운 형태의 사회공헌 공동체로 출발한 떡메마을은 지난 3월 대통령도 방문할 정도로 유명해졌다. 이명박 대통령은 떡메마을을 방문한 자리에서 장애인 일자리 창출 모범사례라고 칭찬한 뒤 향후 사회공헌 기업들이 참여해 확산시키는 게 좋겠다는 의견도 제시했다. 아직은 군청 직영으로 운영돼 인력과 자금을 지원받지만 내년부터는 매출 증대와 생산성에 주력해 독립 운영으로 전환할 계획이다. 떡메마을 최연님(57·여) 원장은 “중증 장애인들은 취업이 제한되고 이웃과 만날 기회도 적어 방치되는 경우가 많다.”면서 “공동체 사업장에서 일하는 장애인들은 건강도 좋아진 것 같다.”고 설명했다. 아울러 납품처를 적극 개발하고 물량도 늘려 더 많은 중증 장애인에게 일자리를 제공할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이애희(44) 완주군 사회복지사는 “관내에 중증장애인 1830명이 거주하는데 소득이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며 “떡메마을이 중증 장애인들에게 희망을 주는 지역 공동체로 크게 성공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글 사진 유진상기자 jsr@seoul.co.kr 공동기획 서울신문·행정안전부
  • 스토아 학파는

    스토아학파는 기원전 4세기 말에 키프로스의 제논이 설립한 학파다. 제논이 아테네 광장에 있던 공회당의 채색주랑(彩色柱廊·스토아 포이킬레)에서 제자들을 가르쳤다고 해서 붙여진 명칭이다. 스토아는 ‘주랑(긴 복도)’를 가리킨다. 기원전 3세기 중반에 크리시포스에 의해 도약의 국면을 맞은 이래로 세네카, 무소니우스, 에픽테토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등으로 이어지며 기원후 2세기까지 명맥을 유지했다. 스토아주의 철학은 철학자가 실천해야 할 구체적인 수련 덕목들을 다룬다. 그래서 종종 가벼운 ‘어록’이나 ‘덕담집’으로 치부되기도 하지만, 그들에게 철학은 일상과 동일한 지평에서 구체적인 ‘연장’으로 작동한다. 이 연장을 손에서 놓지 말고 열심히 일상을 단련하라는 것이 스토아철학자들의 한결같은 조언이다. 이 말을 확인하고 싶다면, ‘명상록’과 더불어 에픽테토스의 어록이나 세네카의 서간집을 함께 읽기를 추천한다. 흔히 스토아학파를 ‘금욕주의자’로 명명하는데, 이들이 주장한 ‘금욕’은 강제적 법칙이나 규율과 무관한, 자기구원과 쾌락에 도달하기 위한 자율적인 ‘삶의 기술’(ars vivendi)이었다. 이들에게 철학하기란 단지 ‘생각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변형하는 문제, “한 번도 되어 본 적이 없는 자신이 되는”(푸코) 문제다. 누구도 운명을 피할 수는 없다. 그러나 그 운명을 기다리고 준비하는 나의 모습은 내가 만들 수 있다. 이것이 자유고, 이것이 철학해야 하는 이유다. 세네카는 이렇게 말한다. “네가 원하는 대로 사태가 일어나도록 하고자 힘쓰지 말라. 그저 일어나야 할 방식대로 일어나기만을 바라라. 그리하면 행복하리라.” 서울신문·수유+너머 공동기획
  • [책꽂이]

    ●대한민국 컬처코드(주창윤 지음, 21세기북스 펴냄) 다섯 가지 문화코드(유목민, 참여, 몸, 섹슈얼리티, 역사적 상상력)를 통해 21세기 한국 문화의 흐름과 지형을 파악한다. 글쓴이는 한국 문화 속 생산 주체로서의 대중을 ‘게릴라’와 ‘놀이족’으로 규정한다. 이들은 제한된 제도 속에서도 자유로운 상상을 통해 실천적 놀이를 만들어 내는데, 이를 기업·국가가 이해관계 속에서 활용할 수 있음을 지적한다. 1만 5000원. ●꽃 할머니(권윤덕 글·그림, 사계절 펴냄) 한·중·일 작가들이 각각의 주제로 책을 만든 뒤 3국에서 동시에 출판하는 공동기획 평화그림책 시리즈의 첫 번째 책.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심달연 할머니의 증언을 토대로 비인간적인 위안부의 실상을 고발했다. 태평양 전쟁 무렵 13살 나이로 위안부에 끌려간 할머니는 몸과 마음이 망가지고 기억조차 잃은 채로 살아간다. 일본에서도 역시 같은 내용으로 출간된다. 1만 500원.
  • [고전 톡톡 다시 읽기] 마술적 사실주의? 경이로운 현실!

    중남미 문학에 대해, 더 엄격하게는 자신의 글쓰기에 대해 마르케스가 한 이야기 중 아주 재미있는 구절이 있다. 그는 ‘팔딱팔딱 뛰는(부글부글 끓는)’ 칠리 그릇을 바라보며 몇 시간을 보내는 자신에 대해 이와 같은 설명을 하고 있다. “정말로 멋진 것은 애벌레가 있어서 칠리가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칠리가 움직이기 위해서 애벌레를 갖고 있다는 설명일 것이다.” 다이내믹한 자연 기후와 원초적인 토속 신앙, 그리고 콜럼버스의 아메리카 발견 이래 계속되어 온 역사적 굴곡들로 점철된 카리브해에서 나고 자란 마르케스에게 있어 세상은 가공할 만한 것들로 이루어진 원더랜드다. 그러므로 작가인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은 기껏해야 시적 영감을 가지고 그 현실을 문학 속에 이식하는 것 정도라고 그는 말한다. 그런데 이건 아무래도 개인적인 겸양의 표현 같지가 않다. 쿠바의 작가 카르펜티에르는 ‘로트레아몽’을 필두로 한 유럽의 초현실주의자들에 대해 비판하면서, 불신 상태에서 오직 상상만으로 비현실적인 것을 표현하는 것은 문학적 속임수에 지나지 않는다고 말한다. 그에게 있어 경이로움은 작가의 조작된 몽상이 아니라 현실에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 경이로움은 현실에 있다! 중남미 작가들에게 있어서는 현실, 그것이야말로 경이로움이다. 흔히 ‘중남미 소설’ 하면, ‘마술적 사실주의’라는 말이 따라붙곤 한다. 결국 사실과 환상을 적절히 섞어 작품을 쓴다는 말인데, 예술 중에 그렇지 않은 건 또 어디 있을까? 낯설고 이질적인 것이 익숙한 틀 안에 포섭되는 과정이 여기에서 드러나는 것 같아 마음이 불편해진다. ‘마술적 사실주의’라는 유럽의 사조보다-이 용어는 독일의 예술 비평사 프란츠 로가 회화 비평을 위해 처음 사용했다-카르펜티에르의 말, ‘경이로운 현실’이 와 닿는 건 이 때문이다. 중남미 문학은 곧 경이로운 현실이다. 현실이야말로 가장 훌륭한 작가다. 그래서 중남미 작가는 오늘도 현실을 받아 적고 있다. 단, 시적 영감으로 가득찬 채로. 서울신문·수유+너머 공동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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