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예산 대해부] 농어촌뉴타운 등 40%가 건설예산… 의료·복지는 뒷전
내년도 정부 예산안에 따르면 농림수산식품분야 통합재정 규모는 17조 2274억원이다. 올해 16조 8745억원보다 2.1% 증가했다. 이 가운데 농림수산식품부 재정은 전체 14조 6434억원 중 농업·농촌 12조 1795억원, 수산업·어촌 1조 3356억원, 식품업 5652억원 등으로 농업 관련예산이 대부분을 차지한다. 국가 전체 총지출에서 농림수산식품분야 비중은 올해와 내년 모두 5.9%이다. 2007년도 6.5%와 지난해 6.2%에 비해 줄어들었다. 이런 이유로 많은 농림어업인들은 정부지원이 부족하다고 하소연한다. 반면 일부에선 급격한 고령화와 인구감소, 낮은 생산력 등을 이유로 오히려 재정지원을 줄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농림수산식품분야 예산의 구조적인 문제점을 들여다봤다.
흔히 정부가 농림수산업을 지나치게 홀대한다는 목소리가 많다. 하지만 농림수산식품분야가 국가 전체 총지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007년 기준 5.9%로 이는 미국 3.2%(2005년), 일본 2.9%(2006년), 영국 1.3%(2003년), 독일 4.6%(2003년), 프랑스 5.3%(2003년) 등과 비교해도 결코 작지 않은 규모다. 경제규모 차이를 반영하기 위해 농림수산식품분야 재정규모가 국민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선진국과 비교해 보면 한국은 2.2%(2007년)로 미국 2.7%(2005), 일본 2.6%(2006년), 독일 4.6%(2003년)보다는 낮지만 영국 0.9%(2003년), 프랑스 1.8%(2003년)보다 높다.
한국의 농가인구 1인당 재정지출은 일본보다 많다. 국회예산정책처에 따르면 2007년 기준 농가인구 1인당 농림수산 예산 규모를 일본과 비교한 결과, 한국은 414만원이었고 일본은 35만 2000엔이었다. 특히 농·어업용 면세유와 기자재 부가세 사후환급 등 조세감면 규모만 약 5조원에 이른다.
선진국 수준인 재정지원에도 불구하고 실제 농·어업인들은 그것을 체감하기 힘들다. 그 비밀은 막대한 재정지원의 과실이 지역 개발업자들에게 돌아가는 데 있다.
농림·어업인뿐만 아니라 농어촌 생활에 관심을 갖는 도시민 모두 교육, 의료, 복지 등 ‘삶의 질’을 가장 중시한다. 농림수산식품부도 내년도 예산안 편성 개요에서 “복지·교육 지원 내실화 등을 통한 농어촌 삶의 질 향상 지원”이 주요 방향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실제 예산 편성은 반대였다.
서울신문은 농림수산예산이 어떻게 배분되는지를 확인하기 위해 예산감시운동 전문단체인 ‘함께하는 시민행동’과 함께 기금을 제외한 내년도 농림수산식품부 소관 회계별 예산(9조 5985억원)을 사업 성격에 따라 ▲건설 ▲투·융자 ▲사업 ▲연구개발 ▲교육 ▲복지 ▲행정 등 7가지로 재분류했다. 그 결과 각종 건설공사에 들어가는 예산이 약 4조원이나 된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반면 연구개발은 2258억원(2.4%), 교육은 1114억원(1.2%), 복지는 5013억원(5.2%)에 불과했다.
정부는 1993년 우루과이라운드 협상 타결 이후 세 차례에 걸쳐 중장기 투·융자사업을 실시하고 있다. 1차와 2차의 경우 생산기반정비가 29.9%와 34.1%인 반면 복지 관련은 9.6%와 8.2%에 불과했다. 2004년부터 시작된 3차 사업은 2007년 12월 기본틀을 보강했는데, 이에 따라 복지여건개선이 4.1%에서 3.5%로, 교육여건개선은 2.7%에서 0.6%로 더 축소됐다.
이런 점에서 농림수산식품부가 ‘젊은 선도인력 유치’를 명분으로 추진 중인 농어촌뉴타운 조성사업에 대해서도 회의적인 반응이 나온다. 이 사업에는 올해부터 2017년까지 무려 8137억원을 투입할 계획이다. 하지만 올해 21억원에서 874%나 증액된 내년도 203억원 전액이 기반시설조성과 주택건축비에 들어갈 계획일 뿐, 사업대상인 도시 거주 30~40대가 가장 중요시하는 교육환경, 의료시설, 복지 등에 대한 정책수요가 반영되지 않은 실정이다. 전문가들은 농업예산의 큰 줄기를 ‘건설’에서 ‘삶의 질’로 바꿔야 한다고 지적한다.
국회예산정책처 관계자는 “정부에선 농업 체질을 강화해야 한다면서 영농 규모화, 농어촌 뉴타운사업 등을 말하지만 현실성이 떨어진다. 오히려 농업예산을 농촌 현실과 정책적 수요에 맞게 쓰는 게 중요하다.”면서 “이는 곧 의료와 교육 등 복지로 농업예산의 방향을 바꿔야 한다는 것을 뜻한다.”고 지적했다.
박진도 충남대 경제학과 교수는 “농·어민들은 이미 웬만큼 갖춰진 사회간접자본(SOC)보다는 생활과 직결되는 교육, 의료, 복지 등을 원한다.”고 말했다. 윤석원(중앙대 산업경제학과 교수) 경실련 농업개혁위원장도 “건설만 한다고 농민들 ‘삶의 질’이 좋아지진 않는다.”고 정부정책을 꼬집었다.
강국진 이민영기자 betul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