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사, 아할테케… 고대 파르티아의 추억에 젖다
중앙아시아 남단에 있는 투르크메니스탄은 우리에겐 다소 생소한 국가다. 지난달 걸그룹 에이핑크의 멤버 정은지가 신곡을 소개하면서 “투르크메니스탄에서 일하고 있는 아빠에 대한 그리움을 표현했다”고 언급해 주목을 받았지만 어떤 나라인지는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투르크메니스탄을 대표하는 이미지는 유럽에서는 ‘파르티아 사법’(射法·말을 탄 채 몸을 돌리며 활을 쏘는 사법), 동아시아에선 ‘한혈마’(汗血馬·하루에 천리를 가는 말) 정도다. 그러나 1991년 구소련의 해체와 함께 독립한 투르크메니스탄은 파르티아 제국의 수도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니사’ 유적 등 헬레니즘을 상징하는 많은 유적이 남아 있는 곳이다. 내년 9월 열리는 아시아 실내무도대회를 앞두고 들썩이고 있는 투르크메니스탄을 다녀왔다.지난 6일 투르크메니스탄 정부가 개최한 아시아 실내무도대회 개막 500일 전 기념행사가 열린 곳은 니사 유적지였다. 행사의 하이라이트는 ‘아할테케’. 한 소년이 한혈마를 데리고 니사 성채에서 내려오는 장면이었다. 투르크메니스탄이 해외 언론인들과 각국 정부 관계자들에게 자랑하고 싶은 국가적 자존심인 니사 유적과 한혈마, 두 가지를 결합한 공연이다. 니사 유적지는 투르크메니스탄 수도 아시가바트에서 서쪽으로 15㎞가량 떨어진 곳에 있다. 코베트다크 산맥이 바라보이는 산기슭에 넓게 자리잡고 있기 때문에 기후와 상수원 모두 수도를 삼기에 적당하다. 이곳을 바탕으로 파르티아 제국은 기원전 3세기 중반부터 서기 3세기까지 고대 서남아시아를 무대로 동서 교역을 장악하며 번성했다. 니사 유적지는 2007년 유네스코가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했다. 20세기 들어 본격적인 발굴을 시작하면서 다양한 건축물 유적을 찾아냈다. 유적지는 왕궁인 5각형 내성, 이른바 ‘옛 니사’와 바깥쪽 상업·거주 지역인 외성, 이른바 ‘새 니사’로 나뉜다. 내성은 진흙과 벽돌로 20m 높이 벽을 쌓고 그 안쪽으로 정원과 신전, 탑, 방 같은 구조물을 배치했다. 왕실 기둥을 비롯해 연회장으로 썼던 ‘붉은 방’, 조로아스터교 원형 사원 흔적 등이 지금도 남아 있다. 니사 유적지가 세계사에서 중요한 것은 이곳이 바로 알렉산더 대왕이 이끈 동방원정을 계기로 동서문화가 융합하며 헬레니즘 문화를 만들어낸 중심지였기 때문이다. 조로아스터교 사원과 그리스 신상이 공존하고 그리스식 양조법에 따라 포도주를 빚은 흔적이 남아 있다. 동서교류사 권위자인 정수일 박사는 한 글에서 니사 유적지가 바로 헬레니즘의 산실이라고 강조하기도 했다. ‘안서도호의 푸른 호마(胡馬), 만리를 뛰는 한혈마를 이제 보았네. 장안의 장사들이야 감히 타 보기나 하랴, 번개보다 더 빠른 걸 세상이 아는데. 푸른 실로 갈기 딴 채 늙고 있으니, 언제나 서역 큰길을 다시 달릴까.’당나라 시인 두보가 지은 ‘고도호총마행’(高都護聰馬行)은 고구려 유민의 후손이었던 고선지 장군이 아끼던 한혈마를 소재로 했다. 피 같은 땀을 흘린다는 한혈마는 동아시아에서 천리마의 대명사다. 그 한혈마의 후손들이 현재 투르크메니스탄에서 천연기념물로 귀한 대접을 받고 있는 아할테케다. 아시아 실내무도대회 기념행사에서도 전통의상을 입은 의장대 수십명이 아할테케를 타고 행진하는 장면을 연출했다. 소련에서 독립한 뒤 외교 무대에선 영세 중립국으로서 독자적 생존을 모색하고 있는 투르크메니스탄은 내년 9월 열리는 제5회 아시아 실내무도대회를 통해 국가적 위상을 높이려 한다. 천연가스 매장량 세계 4위인 지하자원을 갖고 있지만 최근 수송로를 장악한 러시아와의 관계가 불편해지면서 발생한 경제적 어려움을 탈피하자는 국내외 정치적 목적도 있다. 아시아 실내무도대회는 아시아올림픽평의회(OCA)가 실내 아시안게임과 무도 아시안게임을 통합해 주최하는 국제 스포츠 행사로 4년에 한 번씩 열린다. 제4회 대회는 인천에서 열렸다. 댄스스포츠, e스포츠, 당구, 볼링, 체스, 바둑을 비롯해 태권도와 킥복싱, 무에타이 등 다양한 종목을 포함하고 있다. 특이한 점은 아시가바트에서 만난 시민들은 하나같이 “내년에 아시안게임을 개최한다”고 말한다는 점이다. 2014년 인천에서 열렸고 2018년 인도네시아에서 열리는, 우리가 익히 아는 아시안게임과 아시아 실내무도대회가 별개 대회라는 건 별로 의미가 없어 보인다. 중요한 건 1991년 독립 이후 처음으로 자신들이 주체가 돼 개최하는 대규모 국제 스포츠 행사이기 때문이다. 글 니사 강국진 기자 betul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