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광장] 선거여론조사 설문 공개를
정치의 계절이다.신문과 방송은 선거여론조사 결과를 앞다퉈 보도하고 있다.국내 주요 언론이 각각 4월 중순에 직접조사하거나 조사전문기관에 조사를 의뢰해 발표한 대통령선거 예상 후보 지지도 조사 결과는 거의 같은 시기에 행해진것이라고 하기에는 믿기 힘들 정도의 차이를 보이고 있다.1위와 2위 후보 순위는 네 조사 모두 동일하지만,격차는 15∼28%포인트에 달했다.
보통 대통령선거 여론조사는 1000명 혹은 그 이상의 표본자료를 통해 전국 유권자의 표심(標心)을 예측하므로 표본을 뽑을 때마다 결과가 달리 나타날 수밖에 없다.그것을 표집오차라 한다.표집오차는 단순무작위 표집을 했을 경우 ‘표본의 크기'에 의해 결정된다.1000명을 조사했을 경우 95%신뢰도 수준에서 모수 추정치의 최대허용 표집오차는 ±3.1%이고,1500명을 조사했을 경우에는 ±2.5%이다.
한편 비표집오차도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
첫째는 표집틀을 구성할 때 배제돼 버리거나 잘못 포함된자료가 있으면 오차가 생긴다.예컨대 전화조사를 할 경우전화를 직접 받지 않는사람들은 거의 체계적으로 배제되고,대신 전화기 근처에 붙어 사는 사람들이 과잉 대표될 가능성이 있다.
둘째, 응답자가 어떤 이유로든 솔직히 응답하지 않았거나,응답을 거부했을 경우 오차가 생긴다. 조사 응답률은 특히중요한데, 응답자와 조사 거부자의 응답 패턴이 같을 것으로 기대할 수 없기 때문이다.
셋째,조사자의 질문내용과 방식에 따라 응답결과가 달라진다.A후보와 B후보중 “누구를 지지하는가.”라고 질문한 경우와,“누구에게 투표할 것인가.”를 물은 경우의 응답 분포는 다르다.심지어 질문에 A후보와 B후보를 배열한 순서에따라서도 응답 결과는 영향을 받는다.넷째,조사자가 응답을잘못 기재해 오차가 생길 수 있다.
거의 같은 시기에 조사했음에도 불구하고, 측정된 여론의편차가 최대허용표집오차를 훨씬 초과하는 것은 비표집오차가 대폭 개입했기 때문이다.그렇기 때문에 법률과 학계에서는 여론조사 결과를 발표할 때 비표집오차가 개입될 수 있는 항목을 명기해 그것을 동시에 공표하도록 요구하고 있다.
‘공직선거 및 선거부정방지법’ 제108조 ④항은 “누구든지 선거에 관한 여론조사의 결과를 공표 또는 보도하는때에는 조사의뢰자와 조사기관·단체명,피조사자의 선정방법,표본의 크기,조사지역·일시·방법,표본오차율,응답률,질문내용 등을 함께 공표 또는 보도”하도록 규정하고 있다.또한 한국조사연구학회(www.kasr.org) 조사윤리강령은 “선거법에 규정된 의무사항은 아니지만 조사목적,모집단과표집틀,표본대체규칙,재통화·재방문·재발송 횟수,가중치부여방식,기타 조사 및 분석절차와 관련된 사항”까지 밝히도록 권장하고 있다.
선거법이 ‘질문내용'을 포함한 여러 가지 사항 공표를 의무화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대부분의 국내 언론은 그러지않고 있다.신문은 그 이유로 ‘제한된 지면',방송은 ‘시간의제약'을 들고 있다. 그러나 아무리 지면이 비좁고,시간 제약이 심하더라도 생략할 것과 빠뜨려서는 안될 것을 구분해야 한다.
유권자는 선거여론조사의 객체이지만,여론의 주체다.그러므로 유권자는 조사기관과 언론에 의해 자신의 의견이 왜곡돼 전달되는지여부를 객관적으로 판단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므로 언론은 조사 결과를 보도할 때 선거법이 규정한여러 항목을 빠짐없이 공개해야 한다.특히 문항과 선택지는실제 조사에 사용한 것 그대로 공개해야 한다. 유권자는 질문이 어떻게 구성됐는가를 보고 그것이 특정 후보에 편파적인지 여부를 판단할 수 있을 것이다.이러한 과정을 통해 유권자들은 각 언론사에서 행한 조사의 질을 평가해 우열을매길 것이고,그것은 결국 선거여론조사의 질을 향상시키는데 기여할 것이다.
설동훈 전북대교수·사회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