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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개 중소국 정치불안… 세계경제 발목잡나

    3개 중소국 정치불안… 세계경제 발목잡나

    지난 3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위협과 국제사회의 경제제재 우려로 러시아 주가지수(MICEX)는 5년 3개월여 만에 최대폭으로 급락했다. 일부 동유럽 국가의 화폐 가치도 급락했다. 유럽으로 전이되면 2008년 경제위기가 재현될 수 있다는 전망까지 나온다. 우크라이나뿐 아니라 태국, 베네수엘라 등에도 동시다발적으로 정치 불안이 동반되는 점이 더 큰 걱정이다. 이들 국가는 경제 규모 면에서는 중소국이지만 대륙마다 지정학적·경제적으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추경호 기획재정부 제1차관은 4일 서울 명동 은행회관에서 경제금융상황점검회의를 열고 “2월에 다소 안정적이었던 국제금융시장이 우크라이나 사태를 계기로, 엔화·달러화 등 안전자산 강세 및 신흥국 통화·주가 약세 등 시장 불안으로 이어지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우리나라는 외화유동성 등 기초 체력이 좋아 직접적인 영향을 받을 가능성은 적다”면서도 “다만 현재는 작은 위험요인도 글로벌 시장의 변동성을 커지게 하는 단초가 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우크라이나 정정 불안은 2013년 11월 우크라이나 정부가 유럽연합(EU)과 경제협력을 보류하면서 시작됐다. 지난 3일 러시아의 크림반도 침공 우려에 러시아 주가지수는 10.8%가 떨어졌다. 루블·달러 환율은 연초보다 10.6% 올랐다. 120억 달러에 달하는 러시아 중앙은행의 개입과 정책금리 인상도 소용없었다. 러시아 은행권의 해외 차입 중에 유럽계는 73.8%에 이른다. 유럽은 천연가스 수입의 30%를 우크라이나 가스관을 통해 들여 온다. 우크라이나에 문제가 생기면 유럽 소비에 큰 타격이 온다는 의미다. 이미 우크라이나 흐리브냐화의 가치는 연초보다 17.8% 떨어졌고, 폴란드 포린트화는 가치가 5.5% 떨어졌다. 친탁신파인 정부와 반탁신파 시민들의 충돌이 진행 중인 태국, 차베스의 후계자인 마두로 대통령의 반대파에 따른 베네수엘라의 정정 불안도 동시에 진행되고 있다. 사실 우크라이나, 태국, 베네수엘라 등 3국의 경제 규모는 크지 않다. 태국(GDP 4010억 달러)은 전 세계 29위, 베네수엘라(3670억 달러)는 32위, 우크라이나(1760억 달러)는 57위다. 지난해 6월 기준으로 선진국에 대한 익스포저(대출·투자금액) 규모도 태국 1034억 달러(선진국 전체 익스포저 중 2.1%), 베네수엘라 281억 달러(0.6%), 우크라이나 257억 달러(0.5%) 등이다. 하지만 베네수엘라는 세계 9위 산유국이다. 원유매장량(2970억 배럴)은 세계 1위다. 베네수엘라에 문제가 생길 경우 주요 투자국인 러시아와 중국에도 타격이 예상된다. 태국 역시 아세안(ASEAN) 지역만 국한해 볼 때는 경제 규모가 인도네시아에 이어 2위다. 강명헌 단국대 경제학과 교수는 “우리나라에 직접적 영향은 제한적이지만 상황이 좋지 않은 유럽경제가 타격을 받으면서 세계시장으로 전이될 수 있다”고 진단했다. 안남기 국제금융센터 연구위원은 “신흥국에 불안을 가져온 이벤트가 대부분 정치적 상황이기 때문에 국내 금융 지표를 관리하는 것보다 정정 불안국을 모니터링하는 것이 중요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세종 이경주 기자 kdlrudwn@seoul.co.kr 윤샘이나 기자 sam@seoul.co.kr
  • 퇴근 후에도 효율적인 ‘열쇠’냐 퇴근 후까지 구속하는 ‘족쇄’냐

    정보기술(IT) 관련 업체에 근무하는 회사원 김모(30)씨는 요즘 ‘야근 아닌 야근’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 원인은 회사에서 도입한 ‘재택근무 시스템’ 때문이다. 유연한 출퇴근 관리와 업무 효율성을 높인다며 개인 컴퓨터로 회사 시스템에 접속할 수 있도록 한 것인데, 이 때문에 집에서 업무를 보는 시간이 자연스레 늘었다. 김씨는 “30분쯤 짧게 업무를 볼 때는 야근 수당을 신청하기도 애매하다”며 “괜한 야근은 물론 개인 공간까지 회사에 흡수돼 버린 기분”이라고 말했다. 최근 이른바 BYOD(Bring Your Own Device)가 기업 트렌드로 자리 잡으면서 집과 회사의 경계가 무너지고 있다. 자신이 가진 노트북, 스마트폰 등을 회사 시스템과 연계에 업무에 사용하는 BYOD를 기업은 생산성 향상과 기기 비용 절감을 위한 혁신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반면 노동계 등에서는 휴식권을 보장하지 않는 부당한 시스템이라고 반발하고 있다. SK텔레콤은 1일 BYOD를 위한 보안 솔루션인 ‘T페르소나’를 국내 최초로 출시했다고 밝혔다. T페르소나는 개인 기기로 업무를 수행할 때 생기는 보안 위협을 막고 반대로 사원들의 사생활 침해도 최소화하는 시스템이다. 하나의 기기로 기업 모드와 개인 모드를 선택할 수 있도록 해 업무를 볼 때는 와이파이 차단 등 보안을 강화하고, 개인적으로 쓸 때는 이를 해제하는 것이다. SKT는 이를 우선 자사에 도입했고 현대중공업에도 시범 제공하고 있다. T페르소나 이전에도 이미 대기업과 IT 업체 등은 자체 보안 시스템을 바탕으로 BYOD를 구현했다. 인텔은 2009년 이를 도입했고, 국내에서도 KT가 자가 컴퓨터로 사내 전산망에 접속해 일할 수 있는 ‘스마트 워킹’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삼성전자와 LG전자는 BYOD 활용을 위해 최신 스마트폰에 아예 기업용 보안 솔루션을 탑재했다. 솔루션 업체 VM웨어의 올해 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 직장인의 93%는 개인 모바일 기기를 업무에 활용하고 있다. 이에 정호희 민주노총 대변인은 “과거 삼성전자 서비스센터, 지하철공사 등에서 개인 기기를 업무에 활용하며 사생활 침해 등 논란이 있었던 것으로 안다”며 “그런 시스템은 실제 일을 시키지 않더라도 자유로운 휴식권이 보장되지 않는, 24시간 회사에 속박되게 만드는 부당한 제도”라고 말했다. 반면 한 통신회사 직원은 “집에서도 회사일을 할 수 있는 시스템이 마련되면서 일하는 시간이 늘어나고 피곤해진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그렇지만 BYOD가 없던 과거에도 퇴근 후 일을 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퇴근 후 택시 타고 회사로 돌아가지 않고도 급한 일을 처리할 수 있으니 오히려 유용한 것 아니냐”고 말했다. SKT 관계자는 “BYOD는 T페르소나와 상관없이 이미 기업 트렌드가 됐다”며 “T페르소나는 그 과정에서 생기는 문제를 해결하는 솔루션일 뿐”이라고 말했다. 강병철 기자 bckang@seoul.co.kr
  • [한국형 창조경제 성공으로 가는 길] ⑧ 싱가포르 사례에서 배운다 - 카지노 관광

    [한국형 창조경제 성공으로 가는 길] ⑧ 싱가포르 사례에서 배운다 - 카지노 관광

    싱가포르 창이공항에 내려 택시로 30분 정도를 달리면 사람 인(人) 자 형태의 3개 건물과 이들을 연결하는 거대한 배 모양 건축물을 만나게 된다. 사자 머리에 물고기의 몸을 가진 ‘멀라이언’을 밀어내고 싱가포르의 새 랜드마크가 된 마리나베이샌즈(MBS)다. 특히 이 건물은 ‘도덕국가’ 싱가포르에 파란을 일으킨 카지노의 상징으로 자리 잡고 있다. 실제로 기자가 찾아간 지난 20일 MBS 내 초대형 카지노에는 새벽 1시가 넘은 시간에도 테이블마다 환호성을 지르며 갬블링(내기)에 몰두하는 중국인들로 빈자리를 찾을 수 없었다. ‘카지노 도시’의 원조인 미국 라스베이거스가 컨벤션 행사와 엑스포 등에 참석하는 비즈니스맨들이 주로 찾는 지역이라면 이곳은 순전히 카지노를 하기 위해 많은 관광객들이 찾는다. 루이비통 가방과 롤렉스 시계 등 명품을 온몸에 걸치고 현찰이 불룩한 전대(纏帶)를 허리나 가슴에 두룬 기이한 패션으로 중국식 도박을 하는 이들을 쉽게 볼 수 있었다. 말 그대로 돈을 쓰고 가려고 이곳에 온 것이다. 도덕을 중시하는 싱가포르는 1963년 영국에서 독립한 뒤로 카지노에 대해서는 어느 나라보다 빗장을 단단히 걸었다. 초대 싱가포르 총리였던 리콴유(1959~1990년 재임)는 수시로 “도박은 사람을 나태하게 한다”며 내국인은 물론 외국인 전용 카지노도 철저히 반대해 왔다. 하지만 2000년대 들어서면서 중국과 인도가 부상하자 “신성장 동력을 찾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때마침 2003년 사스(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가 아시아 전역에 퍼지면서 싱가포르를 찾는 외국인 관광객이 70% 가까이 급감했고, 같은 시기 ‘카지노의 나라’인 마카오가 관광산업으로 큰 성공을 거둔 것도 자극제가 됐다. 결국 리콴유 전 총리의 아들이자 2004년 싱가포르 3대 총리에 오른 리셴룽은 카지노를 내국인에게도 허용해 국가적 전략 산업으로 육성하기로 결정했다. 아버지인 리콴유마저 반대했지만 “모두가 변하는데 우리만 변하지 않는다면 20년 뒤 싱가포르는 어떻게 될 것인가”라며 자신의 정책을 밀어붙였다. 쓰나미처럼 밀려오는 ‘차이나파워’ 앞에서 사회적 부작용을 감수하더라도 실리를 택한 것이다. 당시 카지노 정책 입안을 주도했던 탄기지압 싱가포르 국립대 교수는 “국운을 걸고 하는 사업이었던 만큼 세계 최고 수준의 카지노 노하우를 가진 기업이 지금까지 없었던 새로운 형태의 건축물을 짓도록 해 싱가포르의 국가 이미지를 단박에 바꿀 수 있게 해 달라고 제안했다”고 말했다. 2010년 싱가포르는 마리나베이샌즈(미국 라스베이거스 샌즈그룹)와 리조트월드센토사(말레이시아 겐팅그룹) 등 두 곳의 복합리조트(IR)에 처음으로 카지노를 열었다. IR은 카지노를 기본으로 호텔, 명품 쇼핑몰, 공연장, 컨벤션센터, 전시장, 놀이시설 등을 한곳에 모아 유기적으로 운영하는 시설을 말한다. 우리나라가 ‘새 먹을거리’로 육성하려 하는 ‘마이스’(MICE·국제 규모의 회의, 전시회 관련 산업)의 핵심 인프라이기도 하다. 우리나라의 코엑스몰이 IR과 비슷하다고 볼 수 있지만, 리조트 시설이 없고 이들 전체를 한 몸처럼 움직이게 하는 구심점이 없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도덕’을 버리고 ‘도박’을 감행한 싱가포르의 모험은 일단 성공한 것으로 평가된다. 두 곳의 리조트 카지노에서만 2010년 51억 달러(약 5조 7069억원), 2011년 59억 달러(약 6조 6021억원)를 벌어들여 GDP 성장률을 1.7% 포인트나 끌어올렸다. 카지노를 개장한 2010년 GDP 성장률이 사상 최고치인 14.8%를 기록했다. 직접 고용 2만명을 포함해 약 5만명의 신규 고용 창출 효과를 내면서 인구 100명 가운데 1명이 카지노 덕분에 일자리를 구할 수 있게 됐다. 한때 한국보다 적었던 관광객 수도 2010년 1160만명을 기점으로 다시 추월했다. 지난해 싱가포르를 찾은 관광객은 1440만명으로 싱가포르 인구의 세 배 수준이다. 밀려드는 관광객들로 호텔난이 심해지자 최근 싱가포르 정부는 저가 패키지 관광 상품들을 없애는 등 ‘수요 조절’에 나서고 있다. 대규모 컨벤션센터를 갖춘 이 두 복합리조트 덕분에 싱가포르는 단박에 미국을 제치고 국제회의 개최 건수가 세계에서 가장 많은 ‘마이스 국가’가 됐다. MBS의 경우 협력업체의 93%가 싱가포르 기업이고, 이 가운데 51%가 중소기업이다. 카지노로 만들어지는 일자리의 60%가량이 35세 이하의 젊은 취업자들에게 돌아간다. 김홍주 주싱가포르대사관 상무관은 “싱가포르의 체제 특성상 구성원들이 창조적이라고 보기는 어렵지만 정치인들이 국가 현실을 냉철히 파악하고 이를 통해 IR이나 항공기 MRO(정비, 수리, 점검) 등 자신들 역량에 맞는 독창적 신산업들을 만들어 내는 것은 창조경제의 좋은 사례로 배울 게 많다”고 했다. 다만 우리도 싱가포르의 IR 아이디어를 들여와 ‘잭팟’을 터뜨릴 수 있는지는 미지수다. 카지노 시설은 전체 IR 면적의 3% 정도에 불과하지만 이곳에서 IR 전체 수익의 80~90% 정도를 창출한다. 호텔과 명품숍, 리조트, 전시장 등 나머지 97%의 면적은 냉정하게 말해 카지노를 덜 유해한 것처럼 보이게 하려는 ‘포장지’다. IR이라는 거대한 열차가 어떤 악조건에도 쉼 없이 달릴 수 있게 만드는 ‘엔진’은 카지노다. 우리나라에 IR을 짓고 싶어 하는 글로벌 기업들은 내국인 출입이 허용되는 카지노를 기대하고 있다. 하지만 정부가 현행 법을 고쳐 가면서까지 이를 수용할 가능성은 크지 않다. 일본과 러시아, 타이완 등이 잇따라 카지노 산업을 육성하려는 상황에서 자칫 국내 IR들은 ‘반쪽 카지노’로 경쟁력이 떨어질 수 있다. 반면 ‘증세 없는 복지’를 달성하기 위해 박근혜 정부가 내국인 카지노를 허용할 것이라는 의견도 있다. 마리나베이샌즈 한 곳이 정부에 내는 세금이 한 해 7억 달러(약 7833억원)가 넘는 현실을 무시할 수 없기 때문이다. 다만 이 경우 카지노 허용에 따른 부작용에 대해서는 정부가 전적으로 책임져야 한다. 그야말로 ‘카지노 딜레마’에 빠져 있는 모습이다. 싱가포르 류지영 기자 superryu@seoul.co.kr
  • [주말 인사이드] 내년엔 아이언맨처럼… 구글 안경 쓰고 애플 시계 차고 ‘입는 컴퓨터’ 시대

    [주말 인사이드] 내년엔 아이언맨처럼… 구글 안경 쓰고 애플 시계 차고 ‘입는 컴퓨터’ 시대

    영화 ‘아이언맨’에는 전 세계를 날아다니며 악당들을 물리치는 주인공 토니 스타크가 나온다. 그는 홀로그램 프로젝터가 부착된 헤드 업 디스플레이(HUD) 헬멧을 쓰고 ‘자비스’라는 음성 인식 프로그램이 제공해 주는 여러 정보를 실시간으로 받으며 키보드 없이도 파워 슈트를 조종한다. 영국의 한 가격 비교 사이트는 그가 직접 개발한, 입는 컴퓨터들의 가치가 약 16억 1000만 달러(약 1조 8500억원)에 달한다는 연구 결과를 내놓기도 했다. 최근 애플이 손목에 차는 스마트 시계를, 구글이 안경처럼 쓰고 다니는 구글 글라스를 내놓을 것으로 알려지면서 지금까지 공상으로 치부되던 ‘웨어러블 기기’(입는 컴퓨터)들이 조금씩 현실이 되고 있다. 정보기술(IT) 업계에서는 사용자 대신 정보를 습득해 필요한 결과를 실시간으로 제공하는 웨어러블 기기들이 내년부터 대거 쏟아져 시장 판도를 바꿔놓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하지만 일부에서는 장비를 몸에 착용해야 하는 불편함이나 과도한 정보 제공으로 인한 사생활 침해 등을 이유로 잠깐의 유행에 그치고 말 것이라는 전망도 내놓고 있다. 웨어러블 기기(wearable device·이하 웨어러블)는 말 그대로 입거나 몸에 걸치는 형태의 모든 IT 기기를 뜻한다. PC나 스마트폰처럼 특정한 형태로 만들어진 제품이 아니라 우리가 일상적으로 몸에 걸치고 다닐 수 있는 안경이나 시계, 허리띠 등의 형태로 설계된 정보 기기들을 아우른다. 웨어러블의 역사는 생각보다 길다. 1946년 미국의 TV 프로그램 ‘딕 트레이시’에서 이미 지금의 스마트 워치의 원조 격인 만능 시계가 등장했다. 하지만 웨어러블에 대한 세계적 관심이 커진 것은 최근 들어 애플과 구글이 관련 제품을 내놓는 것으로 알려지고부터다. 구글은 영상 정보는 그대로 시야에 들어오면서 그 위에 새로운 정보를 추가하는 ‘증강현실’ 기술을 기반으로 컴퓨터와 음성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구글 글라스를 준비 중이다. 증강현실은 사용자가 눈으로 보는 현실 세계에 가상 물체를 겹쳐 보여주는 기술이다. 애플도 아이폰과 연계해 다양한 기능을 수행하는 ‘아이워치’를 내놓을 것이라는 소문이 오래전부터 나온 상태다. 기본적으로 스마트폰과 웨어러블은 서로 반대되는 성향의 제품이다. 스마트폰이 하나의 기기로 모든 기능을 수행하는 데 초점을 둔다면 웨어러블은 기본적으로 기능을 여러 부분으로 나누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이 때문에 스마트폰 혁명으로 어려움을 겪는 주요 정보기술(IT) 업체들은 웨어러블 시대가 하루빨리 오기를 학수고대하고 있다. 스마트폰이 바꿔놓은 세계 IT 업계의 판도를 또 한번 뒤흔들 수 있는 기회로 보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소니나 모토로라 등은 애플이 스마트 워치를 내놓을 것이라는 소문만 듣고 한발 앞서 경쟁 제품들을 내놓기도 했다. 서기만 LG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아직까지는 웨어러블 기기들이 스마트폰에 종속된 형태로 개발되고 있지만 시간이 지나면 웨어러블 자체가 경쟁력을 갖게 되면서 스마트폰과 독립된 형태로 발전해 갈 것”이라고 설명했다. 특히 웨어러블 시대가 도래하면 손목의 중요성이 가장 커질 것이라는 견해가 설득력을 얻고 있다. 24시간 이용자와 접촉해 이용자의 움직임을 파악할 수 있어 스마트폰과 연계해 최고의 시너지를 낼 수 있는 위치라는 설명이다. 실제로 초보 단계의 웨어러블이라 할 수 있는 나이키의 ‘퓨얼밴드’나 IT 업체 조본의 ‘업’ 밴드 등은 모두 손목에 착용한 뒤 건강, 운동과 관련된 다양한 정보를 모아 스마트폰에 전송하는 역할을 한다. 자동차 분야 또한 운전자가 착용한 IT 기기가 자동차와 소통해 주인을 인식하거나 졸음 운전을 막아주는 등 ‘스마트카’로 진화할 것으로 예상된다. 여기서도 손목에 차는 스마트 워치가 큰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인다. 조현익 한국자동차산업연구소 연구원은 “자동차가 (스마트 워치 등의) 웨어러블과 결합해 달리는 IT 및 헬스케어 플랫폼으로 변화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업계에서는 장기적으로 옷이 웨어러블의 최종 형태가 될 것으로 보고 있다. 기술의 발달로 우리가 입는 옷에 전자 기판을 그릴 수만 있다면 의복 자체가 하나의 컴퓨터로 발전할 수 있기 때문이다. 현재 이를 현실화하기 위해 전도성 섬유와 직물 센서 등 새로운 소재에 대한 연구가 활발히 진행 중이다. 옷이 웨어러블 기기로 진화한다면 이로 인한 경제적, 사회적 파장은 엄청날 수밖에 없다. 10~20년 뒤에는 제일모직이나 코오롱 같은 섬유·의복 업체들이 IT 기업으로 거듭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다만 일부 전문가들은 웨어러블 기기들이 지나친 환상을 제공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입는 형태로 개발됐다는 이유만으로 소비자가 비싼 돈을 주고 이를 사야 할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출시가 임박한 스마트 안경 논란이 대표적이다. 안경을 멋으로 쓰는 사람도 있지만 기본적으로 안경을 쓰는 것은 무척 불편한 일이다. 2~3년 전만 해도 세상을 바꿀 기술로 여겨졌던 3차원(3D) 입체영상 기술이 예상보다 더디게 발전하는 이유 가운데 하나로 3D 영상을 보기 위해 안경을 써야 한다는 번거로움이 꼽힌다. 시계 역시 마찬가지다. 현재 시계는 시간을 알려주는 기기라기보단 하나의 패션 아이템으로 소비되고 있다. 스마트 워치는 이러한 트렌드와는 반대되는 제품이다. 이 때문에 웨어러블이 성공하려면 대중적 효용 가치가 있는 서비스를 지속적으로 발굴해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웨어러블 기기 사용으로 인한 프라이버시 침해 우려도 커지는 만큼 규제나 사회적 저항 등을 극복하는 것도 시장 확대의 변수가 될 것이라는 설명이다. 실제로 웨어러블 기기(입는 컴퓨터)가 대중화되기도 전에 벌써부터 부작용이 부각되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는 구글이 지난해 4월 선보인 안경 모양의 스마트 단말기인 구글 글라스. 소형 카메라와 마이크, 스피커가 내장돼 사진 촬영과 길 찾기, 동영상 보기, 메시지 보내기, 인터넷 접속 등이 가능하다. 지난 5월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연례 개발자회의(I/O)에서 공개된 구글 글라스는 현재 1000명이 시험 사용하고 있으며 내년 중 일반인에게 판매될 예정이다. 문제는 미국에서 최근 구글 글라스로 찍은 일반인의 체포 장면이 공개되면서 “구글 글라스가 사생활을 침해할 우려가 있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는 것이다. 공영라디오(NPR)의 지난 9일 보도에 따르면 다큐멘터리 영화 제작자로 피알서브닷컴(PRServe.com) 창업자인 크리스 배럿은 지난 4일 뉴저지에서 산책길에 우연히 싸움을 목격하면서 구글 글라스로 체포 장면을 촬영하게 됐다. 하지만 촬영분을 본 사람들은 “당사자도 모르는 사이에 은밀하게 어떤 상황이든 녹화될 수 있는 것 아니냐”며 사생활 침해라고 주장하고 있다. 비디오 촬영 외에 구글 글라스의 얼굴 인식 가능성도 도마 위에 올랐다. 사진 속 인물의 이름, 거주지 등 개인정보를 구글 글라스가 검색해서 알려줄 수 있기 때문이다. 해당 인물이 정보 공개에 동의하지 않아도 신상을 알아낼 수 있어 논란을 빚었다. 구글 글라스의 애플리케이션(앱)도 문제다. 벌써부터 포르노 앱이 등장했다. 구글은 서둘러 앱을 차단하고 ‘글라스 플랫폼 개발자 정책’의 콘텐트 정책 부분에 ‘성적으로 노골적인’ 앱은 차단하겠다는 방침을 밝혔지만 대응이 늦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권기덕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은 “웨어러블 기기의 장점에 기반해 다양한 용도와 가치를 발굴하고 대중적인 구매를 촉발할 수 있도록 저가격의 혁신적인 하드웨어를 개발하는 것이 시급하다”고 진단했다. 류지영 기자 superryu@seoul.co.kr 김민희 기자 haru@seoul.co.kr
  • [정전협정 60년] 한반도 지형변화(하)

    지난 60년간 전쟁 억제 역할을 해온 정전협정은 북한의 무효화 선언이 아니더라도 이미 한계점에 도달한 상태다. 북한이 정전협정을 지키지 않는 상황이 오히려 더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질 정도로 ‘적대 행위의 사실상 정지’라는 본래 의미를 잃고 사문화된 지 오래됐다. 정전협정이라는 안전장치가 전면전을 막고 있는 게 아니라 달라진 국제 역학관계 등 외교 환경과 ‘최악의 무장 충돌만은 피하자’는 남북의 암묵적 합의에 의해 안전이 위태롭게 유지되고 있다. 정전은 휴전보다 좁은 의미로 ‘서로의 합의에 의해 전쟁 당사국들이 일시적으로 전투를 중단한다’는 뜻이다. 휴전은 전쟁 중 얼마 동안 전투를 멈춘다는 의미로 정전보다는 더 나아간 준 평화상태로 볼 수 있다. 정전협정 한글판에는 ‘한반도 정전협정’으로, 영문판에는 ‘휴전협정’(Armistice Agreement)이란 표현을 혼용해 사용하고 있다. 어떤 것이든 전투를 일시 중단할 뿐 전쟁의 종식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정전협정상 비무장지대는 1000명 이내의 비무장 인원이 들어가 관리하도록 돼 있지만, 한반도 대치 상황이 이어지면서 실제로는 양측의 무장병력과 지뢰, 방벽 등 군사 시설물로 중무장됐다. 군사 인원 및 장비의 반입을 감시하는 중립국감독위 산하 중립국 시찰 소조의 활동은 북한의 소련 무기 반입 논란 끝에 1956년 5월 활동이 중지됐고, 시찰 소조의 활동을 규정한 정전협정 조항도 폐기됐다. 정전 감시의무를 수행하는 군사정전위와 중립국감독위의 기능도 1990년대 들어 공산 측 대표단이 철수하면서 완전히 마비된 상태다. 북한은 1993년 체코, 1995년 폴란드 대표단을 강제 철수시켰는데, 폴란드의 경우 철수를 거부하자 겨울철 막사의 전기와 수도까지 단절했다. 1994년 12월에는 군사정전위 중국 대표단을 철수시켰고, 1996년에는 군사정전위를 대신한다는 명분으로 인민군 판문점대표부를 일방적으로 설치했다. 북한이 군사정전위원회를 거부한 표면상의 이유는 한국군 장성을 군사정전위 수석대표로 인정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한국군은 휴전협정 당사자가 아니기 때문에 수석대표가 될 수 없다는 논리다. 서명 당사자에 한국대표가 빠진 정전협정의 태생적 한계가 결국 협정문을 형식상의 문서로 만들어 버린 셈이다. 정전협정은 북한의 김일성 주석과 중국 인민지원군 사령관 펑더화이(彭德懷), 유엔군 사령관 클라크 대장 등 3명만이 서명했다. 중국군만 제어할 수 있다면 북진통일을 할 수 있다고 믿었던 이승만 당시 대통령은 정전협상에 반대하며 한국군 대표를 휴전회담에서 철수시켰다. 전문가들은 바로 이 지점에서 정전협정의 불안정성이 시작됐다고 지적하고 있다. 한국군은 6·25전쟁 당시 교전 당사자일 뿐만 아니라 정전협정의 구속을 받는 집행 당사자임에도 불구하고 유엔군 사령관에게 권한을 맡기고 있다. 이를 빌미로 북한은 정전체제의 평화체제 전환 협상에서 한국을 제외해야 한다는 주장을 펴는 등 정치·외교적 공세를 펴왔다. 정전협정을 적용하면 한국은 북한이 도발을 해 와도 직접 책임을 따지지 못하고 유엔군 사령관에게 책임 추궁을 의뢰해야 한다. 군사정전위가 나선다고 문제가 다 해결되는 것도 아니다. 군사정전위가 조사 활동을 마치고 유엔군 사령관에게 조사보고서를 제출하면 유엔군 사령관은 이를 유엔 안보리에 보고하는 절차를 밟는데, 이후의 대응 조치에 대해서는 특별한 규정이 없어 북측의 책임을 추궁하기가 현실적으로 어렵다. 2010년 천안함 폭침 사건 당시에도 유엔사 특별조사팀이 조사에 들어갔지만 북한은 자신들의 어뢰공격으로 천안함이 침몰했다는 조사 결과를 부인했다. 꼭 평화체제로의 전환이 아니더라도 정전협정은 60년간 달라진 남북 간 상황에 맞는 새로운 체제로의 변화를 요구받고 있다. 이와 관련해 북한도 1996년 외무성 대변인 담화를 통해 정전협정을 대신하는 ‘잠정협정’을 제안한 바 있다. 평화협정 체결 시까지 정전 상태를 평화적으로 유지하기 위한 잠정협정을 체결하자는 것이었지만, 주체를 북·미로 한정한 게 문제다. 정전협정이 그렇듯, 한국이 배제된 협정은 실효성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평화체제로의 전환 과정에 제도상이 아닌, 실질적인 안전관리 방안 마련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이현정 기자 hjlee@seoul.co.kr
  • 바꿔도 모른다? ‘선택맹’ 보고도 모른다? ‘변화맹’

    바꿔도 모른다? ‘선택맹’ 보고도 모른다? ‘변화맹’

    거의 모든 민주국가에서 주류 정당은 둘로 나뉜다. 한국에는 새누리당과 민주통합당, 미국에는 공화당과 민주당, 영국에는 보수당과 노동당이 있다. 여기에는 기존의 가치를 지키려는 보수적 성향과 새로운 가치를 추구하는 진보적 성향을 각기 대표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길게는 수백년의 역사를 지닌 각국의 정당들이 유지되는 원동력은 ‘지지자’다. 한나라당이 새누리당이 됐듯 정당의 이름을 바꾸거나 지도부를 교체하고 새로운 인사를 수혈해도 지지자들은 좀처럼 변하지 않는다. 정당이 추구하는 근본이 변하지 않는다고 믿고, 본인의 정치적 성향 역시 그 정당에 부합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정치인들 역시 같은 관점에서 정치전략을 짠다. 4·24 노원병 국회의원 보궐 선거에 출마한 허준영 새누리당 후보는 최근 “돌로 깨부숴도 부서지지 않는 45%의 확실한 고정표가 있다”고 자신감을 내비쳤다. 이는 각종 선거를 통해 나타난 이 지역의 보수층이 45%인 만큼 이들이 새누리당 소속인 자신을 지지할 것이라는 확신이다. 지지층을 확연히 둘로 나눠서 가르는 현상은 지난해 미국 대선에서도 있었다. 밋 롬니 공화당 후보는 대선 모금 행사에서 “스스로를 피해자라고 여기고 소득세를 내지 않으며 정부에 의존하는 저소득층 47%는 어떤 일이 있어도 오바마에게 투표할 것”이라고 말했다. 공화당 지지자 결집을 위한 발언이었지만, 이는 큰 반발을 불러일으켰고 선거 패배의 주요 원인으로 분석되기도 했다. 두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정치인들은 확고한 자신들의 지지층이 있고, 선거 막판까지 표심을 결정하지 못하는 5~10%의 부동층이 선거의 향방을 가른다고 믿는다. 유권자들 중 대부분도 ‘나는 ○○당의 □□□ 후보를 지지한다’고 생각하고, 비슷한 성향의 정당이나 후보로 옮겨갈 수는 있지만 반대편은 절대 뽑지 않겠다고 자신한다. ‘확고한 정치적 신념’은 과연 얼마나 굳건한 것일까. 스웨덴 룬트대의 라르스 홀 교수 연구팀이 공공도서관학회지(플로스원) 최신호에 발표한 논문에 따르면 ‘확고한 정치적 신념’을 허무는 것은 아주 간단했다. 연구팀은 2010년 스웨덴 총선을 앞둔 마지막 주에 162명의 유권자를 대상으로 실험을 했다. 당시 스웨덴 총선은 보수성향인 보수당과 진보성향인 사회민주당·녹색당 연합이 경합하고 있었다. 연구팀은 유권자들에게 선거에서 투표자를 선택했는지를 물은 뒤 설문에 답하게 했다. 질문지는 ‘증세’, ‘고용보험’, ‘환경정책’, ‘원자력정책’ 등 12개의 정치적 좌우 성향을 가르는 대표적 질문들로 구성됐다. 연구팀은 설문 응답자들의 답변 중 몇 가지를 몰래 바꾼 뒤 반대편 선거캠프로 데리고 가 “이쪽 정당이 당신의 정치적 성향에 맞는다”고 주지시키고, 자신의 선택에 대해 설명하도록 했다. 실험 결과, 92%는 자신의 답변이 바꿔치기 됐다는 사실조차 발견하지 못했다. 자신이 실수로 잘못 답변했다면서 일부 답변을 바로잡은 사람도 22%에 불과했다. 심지어 상당수 사람들은 자신의 평소 의사와 반대되는 정책에 대해 표기된 답변서를 보고, 이를 정당화하면서 자신이 그 정책의 열렬한 지지자라며 설명하기 위해 애썼다. 실험이 끝난 뒤 조사 대상자들에게 다시 질문을 던지자 10%는 보수에서 진보, 또는 진보에서 보수로 투표 성향을 바꿨다. 19%는 자신이 기존에 했던 선택에 대한 확신이 사라졌다고 말했다. 홀 교수는 과학저널 네이처와의 인터뷰에서 “조사 시작 단계에서 아직 결정을 내리지 않았다고 답한 18%를 포함하면 선거 마지막 주에도 47%의 사람들이 얼마든지 선택을 바꿀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것”이라면서 “사람들이 확신하는 자신의 정치적 성향이 사실은 간단한 트릭으로 바뀔 수 있을 정도로 과장된 믿음이었다는 것이 입증됐다”고 설명했다. 사람들의 인지 능력이 혼동을 겪으며 자신의 선택을 합리화하는 현상을 심리학에서는 ‘선택맹’(選擇盲·Choice blindness)이라고 해석한다. 홀 교수는 2010년 미국 뉴욕대 연구진과 함께 선택맹을 입증하는 실험결과를 과학저널 ‘사이언스’에 발표한 바 있다. 연구팀은 120명을 대상으로 2장의 여자 사진을 보여주며 더 매력적인 사진을 고르게 했다. 이어 선택되지 않은 사진을 다른 사진으로 바꾸고 이 중에서 다시 한 장을 고르게 하는 과정을 15차례 되풀이했다. 그중 3차례는 두 장 모두 고르지 않은 사진을 보여줬다. 하지만 실험 참가자 중 이 사실을 알아챈 사람은 10%도 되지 않았다. 특히 처음에 선택하지 않은 사진을 보여주면서 “왜 이 사람이 마음에 드냐”고 묻자 참가자들은 “귀걸이가 마음에 든다”, “짧은 머리가 좋다”고 답변하는 등 이유를 만들어 내기 위해 애썼다. 실제로 참가자가 처음에 고른 사진의 여성은 귀걸이를 하지 않거나 머리가 길었음에도 같은 현상이 벌어졌다. 홀 교수는 “뇌가 이성적이고 기계적이며 정확한 메커니즘으로 작동한다고들 생각하지만, 실제로 사람은 자신의 선택을 합리화하기 위해 변명하고 자신의 선택이 잘못된 것이라는 것을 인정하려 들지 않는다”면서 “사실이 아닌 선입견을 갖고 판단하고 보고 싶은 대로 보고, 듣고 싶은 대로 들으며 착각하는 것이 선택맹의 원인”이라고 설명했다. 뇌가 눈이나 귀, 코, 촉각 등 받아들인 정보들 중 일부만 인식하고 이후 자기 유지 본능은 그것을 선택한 이유를 따로 만들어 낸다는 것이다. 선택적으로만 정보를 받아들이고 판단하는 뇌 때문에 일어나는 또 다른 현상으로는 ‘변화맹’(變化盲·Change blindness)을 들 수 있다. 미국 일리노이대 연구팀은 실험 참가자들에게 농구 영상을 보여주며 특정 학생이 패스한 공의 개수를 세도록 했다. 영상 속에는 고릴라 탈을 쓴 사람들이 농구하는 학생들 사이에서 가슴을 치거나 카메라를 뚫어지게 쳐다보는 장면이 9초간 토막토막 삽입됐다. 하지만 참가자 중 50%는 고릴라의 존재를 알아채지 못했다. 연구팀은 “공을 세라는 부분에 집중하기로 선택했기 때문에 그 밖의 변화에 대해서는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고릴라와 농구 패스가 동시에 등장했고 눈으로 봤으면서도 뇌가 선택적으로 한쪽을 무시했다는 것이다. 실제로 고릴라의 존재를 알아채지 못했던 사람들만을 대상으로 아무런 임무 없이 다시 영상을 보여주자 모두들 쉽게 고릴라를 발견했다. 하지만 이들은 “앞서 본 영상과 지금 영상은 다르다”고 주장했다. 교통사고나 살인사건 등을 같이 목격한 사람들 사이에서도 진술이 엇갈리는 경우 역시 이런 변화맹 때문에 벌어지는 현상이다. 박건형 기자 kitsch@seoul.co.kr
  • 이경재 의장 기습하려던 어윤대 회장 역공 맞았다?

    이경재 의장 기습하려던 어윤대 회장 역공 맞았다?

    KB금융이 어윤대 회장의 최측근인 박동창 전략담당 부사장을 18일 보직 해임했다. 박 부사장이 외부에 왜곡된 정보를 흘렸다는 것이 이유다. 이사회의 반대로 ING생명 인수가 무산되자 어 회장 측이 주주총회를 앞두고 ‘눈엣가시’ 격인 이경재 이사회 의장의 재선임을 막기 위해 기습을 시도했다가 오히려 거센 역공을 맞았다는 게 금융권의 시각이다. 어 회장은 이날 열린 임시 이사회에서 “박 부사장이 미국의 주총안건 분석기관인 ISS(Institutional Shareholder Service) 측에 왜곡된 개인 의사를 전달했다는 혐의가 사실로 확인돼 보직해임했다”고 이사회에 보고했다. 주주들의 혼란과 주총 진행에 차질을 야기했다는 것이다. KB금융은 박 부사장이 ISS와 접촉한 경위 등을 조사한 뒤 최종 징계 수위를 결정할 방침이다. 경우에 따라서는 해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박 부사장은 이사회가 끝난 뒤부터 모든 업무에서 배제됐다. KB금융은 어 회장과의 연관설은 강력 부인했다. 어 회장은 이사회에서도 “박 부사장이 ISS와 접촉한 사실을 전혀 몰랐다. 사전에 보고받지 않았다”고 해명했다. 박 부사장은 2월 말과 3월 초 두 차례 ISS 한국 사무소 관계자를 만난 사실을 시인하면서도 이유는 밝히지 않았다. 이 의장을 중심으로 한 사외이사들은 격앙된 반응을 보였다. 어 회장이 먼저 나서 ‘박 부사장을 보직 해임하겠다’고 결정한 것을 두고 ‘꼬리 자르기’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된다. 이와 관련, KB금융 고위 관계자는 “ISS 보고서가 나오기 전부터 자체 조사에 착수했고, 어 회장도 15일쯤 보고를 받고 황당해했다”면서 “박 부사장의 과도한 사명감이나 충성심 아니겠냐”고 해명했다. 박 부사장은 ING생명 한국법인 인수를 지휘했던 인물이다. 이사회의 반대로 결국 무산되자, 반대 의견을 주도한 이 의장과 일부 사외이사의 재선임을 막기 위해 ISS에 왜곡된 정보를 전달했다는 게 KB금융 측의 해석이다. 하지만 KB금융의 주장대로 어 회장이 사전에 몰랐다고 하더라도 박 부사장의 ‘ISS 접촉’ 사실이 확인된 이상 어 회장에게는 타격이 아닐 수 없다. 박 부사장은 어 회장이 취임하자마자 KB금융의 실세로 등극했다. 어 회장의 경기고 후배이자 고려대 경영대학원 제자이기도 하다. 금융감독원은 1주일가량 남은 KB금융 종합검사에서 이번 사안에 대해 철저히 조사할 방침이다. 어 회장이 연루된 정황이 발견되면 올해 7월까지인 임기가 위태로울 수도 있다. 금감원 관계자는 “박 부사장이 ISS와 접촉한 정황과 경위에 대해 조사한 뒤 연관된 경영진은 처벌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다만, 박 부사장이 ING생명 인수전의 실무자로서 ISS 측에 인수 무산 경위를 단순 설명한 것이라고 주장하면 중징계하기는 어려울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이민영 기자 min@seoul.co.kr 백민경 기자 white@seoul.co.kr
  • ‘거수기’ 사외이사 대거 재선임… 물갈이 지지부진

    ‘거수기’ 사외이사 대거 재선임… 물갈이 지지부진

    KB금융의 사외이사 정보 유출을 둘러싸고 논란이 일고 있는 가운데 4대 금융지주들이 주주총회 시즌을 맞아 사외이사를 대거 유임시킨 것으로 나타났다. 사외이사의 권한이 너무 세 논란이 된 경우도 있었지만 대부분 ‘거수기’ 논란에서 자유롭지 못하자 쇄신 차원에서 대거 물갈이가 예상됐으나 여전히 ‘그 밥에 그 나물’로 굳어지는 모양새다. 동일 인물이 이리저리 옮겨 다니는 ‘사외이사 회전문 현상’도 심각했다. 17일 금융권에 따르면 KB금융지주와 우리금융지주는 22일, 신한금융지주와 하나금융지주는 28일 각각 주총을 연다. 주된 안건은 사외이사 교체다. KB금융은 이경재 이사회 의장과 배재욱 사외이사 등 7명을 재선임하고 금융정보분석원(FIU) 원장 출신의 김영과 한국증권금융 고문을 사외이사로 신규 선임하는 안건을 예고한 상태다. 미국의 주총 안건 분석기관인 ISS(Institutional Shareholder Service)가 이경재, 배재욱, 김영과씨의 사이외사 선임을 반대하는 보고서를 제출해 주총 결과가 주목된다. 표면적인 반대 이유는 “ING생명 인수 반대로 회사 경영에 손실을 끼쳤다”는 것이었으나 배씨는 당시 찬성표를, 김씨는 사외이사 선임 전이어서 직접적인 연관이 없다. 금융감독원은 이같이 잘못된 정보가 ISS로 흘러들어간 배후에 KB금융의 임원이 연루된 정황을 포착하고 엄중 제재에 나서기로 했다. 일각에서는 한때 주당 6만원이던 KB금융의 주가가 3만원대에서 지지부진한 데는 ING 인수 내분 등으로 촉발된 ‘불안한 지배구조’ 탓이 크다고 본다. 그럼에도 이사진이 대거 재선임되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 시각도 있다. 하나금융은 현 사외이사인 허노중·최경규씨를 유임시키고 정광선씨 등 3명을 신규 선임할 계획이다. 우리금융은 이용만씨 등 4명을 재선임하고 박영수·채희율씨 등 두 명을 새로 정한다. 신한금융은 임기가 끝난 9명의 사외이사 가운데 8명을 재선임한다. ‘라응찬-신상훈 사태’와 과련된 재판이 일단락되면서 이사진 쇄신이 거론됐으나 재일교포 한 명(고부인)을 바꾸는 데 그쳤다. 2010년 제정된 사외이사 모범 규준에 따르면 사외이사의 최초 임기는 2년 이내로 하되 연속해서 5년을 초과해 재임할 수 없다. 사외이사는 후보추천위원회가 따로 구성돼 추천하도록 돼 있다. 그런데 추천위의 2분의1 이상은 사외이사로 구성해야 한다. 사외이사가 주축이 된 추천위가 사외이사를 뽑는 구조이다 보니 ‘서로 끌어 주고 밀어 주는’ 양상이 벌어지곤 한다. 정광선 하나금융지주 사외이사 내정자는 지주와 계열사를 단골로 옮겨 다니는 대표적인 인사다. 2010~2011년 하나금융지주 사외이사를 지낸 뒤 계열사인 하나대투증권 사외이사로 나갔다가 이번에 다시 금융지주 사외이사 입성을 앞두고 있다. 이명박 정권 인수위 출신인 채희율 우리금융 사외이사 내정자도 계열사(우리은행)에서 지주로 갈아탔다. ‘거수기’ 관행도 여전하다. 최근 3년간 금융지주사들이 처리한 안건은 400여건이다. 이 가운데 사외이사들이 부결시킨 안건은 KB금융의 ‘ING 인수’ 한 건뿐이다. 3년을 통틀어 반대표 자체가 10표뿐이다. 대부분의 사외이사가 경영진과 인맥이 있거나 관료 출신이라 경영진 내지 정부의 입김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점도 문제로 지적된다. 예컨대 우리금융의 이용만 사외이사는 지난 17대 대선 때 이명박 캠프에서 활동했고 대통령직인수위 자문위원도 지냈다. KB금융의 배재욱 사외이사(재선임 예정)는 김영삼 정권 때 사정비서관으로 있으면서 세풍 사건에 휘말린 전력이 있다. 하는 일에 비해 몸값이 높다는 비판 여론도 여전하다. 올해 사외이사의 보수 한도는 신한금융 60억원, KB금융 50억원, 우리금융 40억원, 하나금융 8억원이다. 지난해 사외이사들이 실제 챙겨 간 1인당 연봉은 KB금융이 7990만원으로 가장 많았다. 그 뒤는 하나금융(5793만 5484원), 신한금융(5300만원), 우리금융(3300만원) 순이다. 김진아 기자 jin@seoul.co.kr 이민영 기자 min@seoul.co.kr
  • 남녀가 많이 하는 거짓말 1위 알아보니…

    남녀가 많이 하는 거짓말 1위 알아보니…

    영국 남성은 여성에 비해 3배나 거짓말을 많이 하는 것으로 설문 조사를 통해 밝혀졌다. 게다가 이들 남성의 평균 거짓말 횟수는 하루 세 번이나 됐다. 이는 1년에 1천 번이나 되는 수치다. 영국 일간지 데일리메일 5일자 보도에 따르면 영국 남녀 2531명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한 결과 남성의 52%가 하루 평균 3회의 거짓말을 하고 있으며 14%는 5회 이상인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여성의 거짓말 횟수는 51%가 하루 평균 1회, 17%는 3회에 머물러 의외로 남성보다 덜 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또한 거의 매일 거짓말을 하거나 정직하게 살고 있다고 답한 사람은 남녀 모두 5%에 불과했다. 그렇다면 ‘신사의 나라’ 영국의 남성들과 여성들은 어떠한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일까. 조사 결과에 따르면 여성은 대개 자신의 감정 상태에 관해 거짓말을 많이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27%의 여성은 기분이 좋지 않은데도 “괜찮다”고 말하는 경향이 있었는데 매일 자신의 기분과 정반대의 인사를 하고 있다고 전해졌다. 이에 반해 남성은 전에 해본 적 없는 일도 “해봤다.”고 허풍을 떠는 경향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으며 다른 상위 답변은 주로 귀찮은 일을 피하려고 둘러대는 모습을 보였다. 다음은 남녀별로 나타나는 거짓말 상위 5가지다.  ▲남자의 거짓말 톱 5  1위. “응, 해봤어”(Yes, I’ve done it)  2위. “미안, 휴대전화 전파가 안터졌어”(Sorry, I had no signal)  3위. “지금 가고 있는 중이야”(I’m on my way)  4위. “전화/문자메시지 온지 몰랐어”(I didn’t see you’d called/texted)  5위. “다른 여자 쳐다보지 않았어”(I don’t look at other women)  ▲여자의 거짓말 톱 5   1위. “괜찮아”(I‘m fine)  2위. “지금 가고 있는 중이야”(I’m on my way)  3위. “세일할 때 산거야”(It was on sale)  4위. “멋져 보여”(You look really nice)  5위. “미안, 휴대전화 전파가 안터졌어”(Sorry, I had no signal) 사진=자료사진(서울신문 DB) 윤태희 기자 th20022@seoul.co.kr
  • 연구원은 외교관급 파격 지원… 우주 근원 찾아 수백개 연구 동시진행

    연구원은 외교관급 파격 지원… 우주 근원 찾아 수백개 연구 동시진행

    스위스 제네바역에서 프랑스 국경 쪽으로 15분쯤 차를 달리면 소도시 메이런에 도착한다. 하얗게 눈으로 덮인 전원도시 한가운데에 나무로 만들어진 거대한 지구 모양의 ‘더 글로브’가 우뚝 솟아 있다. 지난해 ‘힉스 입자’(Higgs bosson·137억년 전 우주대폭발 직후 우주 만물에 질량을 부여한 것으로 알려진 신(神)의 입자)의 발견으로 전 세계를 떠들썩하게 했던 현대 물리학의 최전선. 유럽입자물리연구소(CERN)의 상징이다. 글로브를 둘러싼 둥근 원형고리는 이 지역 일대 지하 50~100m에 묻힌 27㎞ 길이의 거대강입자가속기(LHC) 터널을 의미한다. ‘우리는 어디에서 왔는가? 우리는 어디에 있는가?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Where do we come from? What are we? Where are we going?) 지난 23일(현지시간) 글로브 내 전시관 초입에 들어서자 영어, 프랑스어, 독일어, 이탈리아어 등으로 쓰여진 도전적인 질문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우주의 근원을 찾는 CERN의 존재 이유가 어렴풋하게 다가왔다. 글로브를 제외하면 메이런은 겉으로는 평범한 시골마을에 불과하다. 하지만 낮게 이어진 오래된 건물 사이를 거닐다 보면 노벨상 수상자 등 세계적인 물리학 석학들과 쉽게 마주칠 수 있다는 점에서 CERN이 가진 힘이 여실히 느껴진다. 1954년 설립된 CERN은 세계 초강대국 미국에 맞서온 유럽 과학의 상징이다. 메이런 일대에는 전 세계에서 온 1만여명의 물리학자와 가족 등 4만명이 거주한다. CERN 소속 과학자들에 대한 지원은 획기적이다. 영어, 프랑스어, 독일어, 이탈리아어 등 어느 한 가지라도 구사할 수 있으면 연구와 생활에 지장이 없도록 인프라가 구축돼 있다. CERN 소속 과학자들은 외교관 신분에 준하는 대우를 받는다. 세금도 내지 않는다. 이 때문에 전 세계 입자물리학자의 50%가 CERN과 직간접적으로 연관을 맺고 있다는 통계도 있다. 본관 건물에 들어서자 역대 CERN 소장(디렉터)들의 사진이 벽면을 장식하고 있다. 이들 중 카를로 루비아, 펠릭스 블로흐, 시몬 판데르메르 등 상당수는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다. CERN에서 소장이 갖는 권한은 막강하다. 임기가 있지만 사실상 한번 맡으면 종신직으로 이어진다. 현재 소장인 롤프 디터 호이어 박사는 10조원 이상이 투입된 LHC 프로젝트의 성공으로 종신직을 예약한 상태다. CERN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있는 박인규 서울시립대 교수는 “막대한 예산을 따오기 위해 정치적 수완을 발휘하고, 수많은 연구가 진행되는 연구소 내 팀 간 의사 소통을 조절하는 것이 소장의 역할”이라며 “유능한 과학자 중에는 유능한 정치가도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존재들”이라고 밝혔다. CERN은 철저히 과학자들을 위한 도시다. CERN 내부 거리마다 마리 퀴리, 볼프강 파울리 등 유명 과학자들의 이름이 붙어 있다. 세계에서 몰려든 단기 체류 과학자들을 위해서는 연구소 내 숙소가 제공되고, 호텔과 콘퍼런스룸도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다. 식당은 각국 과학자들의 기호에 맞춰 요리사들이 눈앞에서 조리하는 10여 가지의 메뉴가 끼니마다 제공된다. 미래 과학자들을 위한 문도 열려 있다. 유럽 각지에서 견학 행렬이 끊이지 않고, 학생들은 인턴십 프로그램을 통해 방문 연구자 겸 학생으로 머물 수 있다. CERN을 소개할 때 관용어구처럼 쓰이는 ‘스위스와 프랑스 국경지대’라는 말은 과장이 아니다. CERN 본부 내부로 국경선이 지나간다. LHC 역시 국경에 걸쳐 커다란 원을 그리고 있다.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지만 LHC가 지나가는 3m 직경의 총 길이 27㎞, 지름 8㎞에 이르는 원형터널은 2008년 LHC 건설 훨씬 전부터 존재했다. 원래 거대 전자-양전자 가속기(LEP)가 설치돼 있던 공간을 재활용했기 때문이다. CERN에서 연구하고 있는 유희동 미국 퍼듀대 교수는 “LEP 역시 힉스 입자 발견을 위해 만들어졌지만, 검출에 실패했고 그 뒤 LHC 프로젝트가 시작됐다”면서 “실패에도 굴하지 않고 훨씬 더 큰 프로젝트를 기획하는 과학계의 정신을 보여주는 사례”라고 설명했다. 이어 “미국 페르미연구소 테바트론의 경우에는 지상에 가속기가 지나가는 흔적이 나타나지만, LHC는 주택가를 지나는 부분도 많아 겉으로 전혀 드러나지 않도록 설치돼 있다”고 덧붙였다. LHC에는 ATLAS, CMS, LHC-b, ALICE 등 4대의 대형 검출기가 있다. 이 중 ATLAS와 CMS는 힉스 입자 검출에 사용된다. 본부에서 5㎞가량 떨어진 CMS는 한적한 시골 연구소를 연상케 했다. 가건물 3개 동으로 이뤄진 CMS연구소는 지하 100m 깊이에 설치된 CMS를 모니터하는 10평 남짓한 주조종실과 압축기·통풍시설·전자제어·플랜트 냉각 등 보조시설로 구성돼 있다. 주조종실에는 미 페르미연구소, 독일 중이온가속기연구소(GSI) 등 전 세계 입자물리연구소 내부를 실시간으로 관찰하고 데이터를 주고받을 수 있는 모니터링 시스템과 CMS 감시장치가 설치돼 있다. 빛의 속도에 가깝게 양성자를 가속하기 위해서는 여러 대의 가속기가 쓰인다. 1960년대부터 설치된 CERN의 소형 가속기 몇 대를 거치면서 서로 반대 방향으로 일정 수준 이상 빨라진 양성자들이 LHC로 들어오면 LHC 주조종실이 검출기 4곳에서 이들이 충돌하도록 미세조정한다. 충돌한 양성자들의 흔적은 눈이나 카메라로 추적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자기를 띤 실리콘에 입자가 지나간 흔적을 살피거나, 바깥쪽 벽에 부딪힌 입자를 통해 충돌 직후의 모습을 거꾸로 구성하는 방식으로 연구가 이뤄진다. ATLAS와 CMS는 기본적으로 같은 구조를 갖고 있지만 ATLAS가 훨씬 크다. 당초 CERN은 힉스 입자 검출을 위해 ATLAS 1대만 설치할 계획이었지만, 정확성 확보를 위해 건설 과정에서 CMS가 추가됐다. 데이터양은 ATLAS가 많지만, 뒤늦게 설계된 CMS가 효율성에서 더 낫다는 것이 물리학계의 평가다. ATLAS와 CMS에는 각각 3000명 이상의 전세계 과학자들이 공동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90여명의 한국 연구진은 대부분 CMS에 참여하고 있다. 지난해 7월 발표 이후 치열한 논란이 이어지고 있는 힉스 검출은 확실한 것일까. 최종 검증에는 좀 더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이 CERN 측 입장이다. 유 교수는 “지난해 말 ATLAS에서 힉스 입자 두 종류가 나왔다는 외신 보도가 있었는데, CMS에서도 같은 현상이 있었지만 외부로 발표는 되지 않았다”면서 “전 세계 연구진이 모이다 보니 발표 여부나 발표문의 문구 하나까지도 치열한 토론이 일주일 이상 이어질 때가 많다”고 설명했다. 이어 “올봄과 여름에 예정된 입자물리 관련 학회에서 결론이 내려질 것으로 기대한다”고 덧붙였다. CERN이 힉스로 유명해졌지만 사실 힉스는 CERN의 극히 일부분에 불과하다. CERN에서는 수백 가지 이상의 연구과제가 동시에 진행된다. 소설 ‘천사와 악마’의 소재가 됐던 반물질과 힉스는 CERN의 자금줄이다. 유 교수는 “입자물리처럼 실용성과 거리가 먼 연구에 당위성을 부여하기 위해서는 대중성이 확보되는 것이 최우선 과제”라면서 “힉스나 반물질은 CERN이 예산을 확보할 수 있는 일종의 영업수단인 셈”이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유럽경제 위기로 매년 수조원 이상의 예산이 필요한 CERN 역시 어려움을 겪고 있다. 2009년에는 1959년부터 CERN에 참여해온 오스트리아가 ‘참여 중단’을 선언했다가 전 세계 과학계의 탄원서를 받고 이를 철회하는 소동도 있었다. CERN은 근본적인 연구를 진행하기 때문에 인류에 기여하기는 쉽지 않은 한계가 있다. 오히려 CERN의 부산물들이 더 큰 영향을 미친다. 대표적인 것이 현재와 같은 인터넷의 원조인 ‘월드와이드웹’(WWW)이다. WWW는 영국의 팀 버너스 리가 CERN에서 쏟아져 나오는 엄청난 양의 데이터를 처리하고 공유하기 위해 1989년 제안한 연구소 내 정보처리 시스템에서 출발했다. CERN은 최근에는 세계 각국에 데이터를 나눠 보관하고 접근하는 ‘스마트 그리드’ 시스템을 상용화하기도 했다. 세계 수천 개의 대학과 연구소에 LHC에서 얻어진 데이터가 보관된다. 한국에도 경북대와 대전 과학기술정보연구원(KISTI)에 LHC의 데이터가 보관된다. 유 교수는 “전 세계가 LHC 연구에 동참하고 있는 셈”이라며 “이렇게 큰 규모의 연구소에서 찾고자 하는 것이 눈에 보이지도 않는 아주 작은 입자라는 점이 과학의 아이러니”라고 말했다. 글 사진 메이런(스위스) 박건형 기자 kitsch@seoul.co.kr
  • 말레이시아-말라카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

    말레이시아-말라카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

    말라카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 평일 낮, 말라카 거리는 왁자지껄한 아이들 무리로 활기에 차 있다. 우리가 경주에 가서 역사를 배우듯, 말레이시아 사람들은 말라카에서 자신의 뿌리를 찾는다. 물론 수학여행 온 아이들에게는 수백년 전의 역사유적도 그저 오래된 놀이터일 뿐이지만 말이다. 말라카 강변에 펼쳐진 책 한 권 말레이시아의 수도 쿠알라룸푸르에서 남쪽으로 두 시간 정도 달리면 말라카에 도착한다. 지도상에서 이 도시는 말레이반도 왼편에서 인도양을 향하고 있다. 거대한 함선과 포탄을 앞세운 14세기 정복자들도 말라카를 거쳐, 말레이반도와 수마트라섬 사이 좁은 물길을 지나야만 더 깊숙한 동쪽에 닿을 수 있었다. 말라카는 그들이 처음 발을 디딘 동양의 땅이었고 동양과 서양, 거대하고 상이한 두 세계가 만나는 지점이었다. 과거 수백년간 말라카는 아시아에서 제일가는 무역항이었다. 무역량으로 따지면 수에즈 운하에 비견됐을 정도다. 하지만 지금은 수심이 너무 낮아져 항구로서의 기능을 거의 상실했다. 여행객들도 간척개발이 한창인 해변보다 오래된 가옥이 늘어선 말라카 강변의 분위기를 더 선호한다. 말라카강 리버크루즈는 40여 분 동안 9km에 이르는 물길을 거슬러 올라간다. 잘 꾸민 액세서리 상점, 한적한 노천 카페들 사이사이 중국풍 홍등을 매단 집들이 보이고 화려한 원색의 벽화가 펼쳐진다. 먹음직스런 열대 과일과 음식부터 말레이시아에 살고 있는 인도, 중국, 아랍계 사람들의 다양한 모습까지, 움직이는 배 안에서 보면 그 자체가 한 권의 그림책이다. 그 뒤로 이어지는 건 나무로 지은 붉은 지붕의 전통가옥촌 ‘캄풍모텐Kampung Morten’이다. 우리나라 한옥에 해당하는 것이 캄풍인데 바닥이 지상에서 1~2m 높이에 있고, 천장이 높은 것이 특징이다. 이렇게 하면 비가 많이 와도 물에 잠기지 않고, 통풍이 잘돼 위생적이라고 한다. 1922년 지은 빌라 센토사Villa Sentosa는 그중 가장 오래된 집인데 말레이시아 국기를 내걸고 있어 쉽게 찾을 수 있다. 개인 가옥이지만 집주인이 평생 동안 공들여 모은 골동품과 개인 소장품을 전시해 박물관으로 개방하고 있다. 저녁에는 불을 밝힌 노천 카페에서 분위기에 취해 보는 것도 좋겠다. 한차례 소나기 후, 불어난 강물이 일렁이는 모습도 여기선 한없이 매력적이다. 강변에는 맹그로브 나무가 울창하다. 운이 좋은 날에는 반딧불이나 월광욕을 하고 있는 도마뱀도 볼 수 있다. 강변의 카페와 연결되는 존커 스트리트Jonker Street와 히런 스트리트Heeren Street는 꼭 들러 보길 권한다. 존커 스트리트에는 골동품점과 작은 미술관, 특색 있는 식당들이 많다. 매주 금토일 저녁 6시부터 자정까지는 벼룩시장도 열린다. 존커 워크 스트리트 바로 옆 골목이 히런 스트리트다. 저렴한 호텔과 예쁜 네덜란드풍 건물이 많다. 네덜란드어로 ‘존커’는 하인을, ‘히런’은 주인을 뜻한다. 존커 거리는 히런 거리의 부자들을 위해 일하던 사람들이 살던 곳이라고 한다.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1 메나라 타밍 사리 전망대에서 보는 말라카 해협의 모습. 시가지와 항구가 한눈에 보인다 2 존커 워크 스트리트는 골동품점, 기념품점, 카페와 술집이 늘어선 전형적인 여행자들의 거리다 3 말라카 리버크루즈 는 9km에 이르는 말라카 강줄기를 따라간다. 노천카페와 전통가옥, 벽화가 말라카의 분위기를 전한다 4 비오는 늦은 밤, 조명을 밝힌 말라카 강은 한없이 매력적이다 5 재즈가 흘러나오는 존커 워크 스트리트의 라이브 카 ▶travie info 말라카 리버크루즈Melaka River Cruise 매일 오전 9시부터 저녁 11시30분까지 운항한다. 어른 기준 15RM으로 저렴한 편이며, 왕복 40분 정도 소요된다. 크루즈 선상 공연이 포함된 티켓(Bot VIP/ 매주 일요일 오후 8시~오후 1시/어른 기준 30RM), 하루 동안 자유롭게 타고 내릴 수 있는 프리패스 티켓(Ho-Ho Service/ 오전 9시~밤 11시30분/어른 기준 30RM)도 판매한다. 해양박물관 앞에서 승선하면 된다. www.ppspm.gov.my 메나라 타밍 사리Menara Taming Sari 전망대 80m 높이까지 올라가는 메나라 타밍 사리 전망대에서는 말라카 시가지와 항구의 풍경을 한눈에 볼 수 있다. 360도 회전식이라 가만히 앉아 있어도 사방의 정경을 볼 수 있다. 푸른 말라카강과 붉은 지붕 가옥, 세인트 폴 언덕의 옛 유적지들로 대표되는 육지 모습과 달리 바닷가는 부산하게 변화 중이다. 연륙도에는 마리나 리조트가 들어섰고, 갯벌에는 간척공사가 한창이다. 낮은 곳에선 볼 수 없던 말라카의 현재진행형 모습이다. 개장시간 오전 10시~밤 10시 입장료 어른 기준 RM20 홈페이지 www.menaratamingsari.com 1 15세기 말라카 왕궁의 모습. 바닥이 지면에서 1~2m 떨어져 있고, 나무로만 지어진 점이 전통적인 말레이시아 건축 구조를 보여 준다 2 도시 이름의 어원이 된 말라카 나무 3 네덜란드 통치 시기 공관으로 쓰였던 스태이더스 빌딩은 현재 말라카 민족박물관으로 탈바꿈했다 4, 5 포르투갈의 흔적은 볼 수 있는 세인트 폴 성당. 벽채만 남은 모습에서 역사와 세월의 흔적이 느껴진다 6 말라카는 한때 세계적인 무역항으로 동서양을 잇는 관문 역할을 했다. 당시 교역량은 수에즈 운하와 비견됐을 정도다 7 말라카에서 꼭 경험해 봐야 할 인력거 ‘트라이쇼’. 화려한 꽃과 음악으로 장식하는 게 특징이다 포르투갈과 네덜란드가 있는 언덕 말라카는 아시아에서 가톨릭의 세례를 받은 첫번째 도시이며, 400년간의 식민 지배 속에서도 독특한 문화를 꽃피운 생명력의 땅이다. 말레이시아 사람들에게는 최초의 왕조가 탄생한 곳이라 더욱 의미가 크다. 말라카가 유명해지기 시작한 건 2008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면서부터다. 말레이, 포르투갈, 네덜란드, 영국의 흔적이 한 덩어리를 이룬 도시는 전세계적으로도 유례를 찾기 힘들 것이다. 여기에 이주 중국인들이 말레이 사람들과 결혼해 낳은 ‘페라나칸’의 문화까지 더해져 이색적이다. 본격적인 말라카 시간 여행은 독립기념관 앞에 있는 한 그루의 나무에서부터 시작된다. 수마트라섬 스리비자야 왕국에서 건너온 파라메시바라Paramesvara왕자가 자신의 나라를 세우기로 결심한 곳이 바로 이 나무 아래 서였다. 그는 이곳에서 궁지에 몰린 아기 사슴이 자신의 사냥개를 물리치는 것을 보고 깨달음을 얻었다. 작은 힘으로도 용맹하게 맞서면 큰 힘을 이길 수 있다는 것. 나무의 이름을 딴 말라카왕국이 건국된 것이 1402년인데, 역사학자들은 이때를 말레이시아 역사의 시작점으로 본다. 독립기념관 앞 말라카 나무 주변에는 포르투갈의 요새와 15세기 말라카왕궁The Melaka Sultanate Palace이 있어 여러모로 역사 여행의 시작점이라 할 만하다. 파라메시바라 왕의 바람대로 작은 왕국 말라카는 전세계의 큰 도시들을 상대하며 세계적인 항구도시로 성장했다. 말라카 사람들은 해상 교역 활동에 관련된 ‘말라카법’을 만들어 교역 기반을 다졌으며, 앞다퉈 이슬람교로 개종해 멀리서 온 아랍 상인들의 호감을 샀다. 하지만 말라카의 영광은 오래가지 못했다. 건국 백여 년 만인 1511년 포르투갈에 의해 멸망했고 뒤이어 1641년 네덜란드, 1795년부터는 말라카를 포함한 말레이시아 전역이 영국의 지배를 받았다. 포르투갈은 당시 황금보다 더 귀했던 향료를 독점하기 위해 동남아시아로 왔는데, 바스코 다 가마가 인도항로를 발견한 지 겨우 9년 만의 일이다. 그들은 말라카를 시작으로 아시아 침략의 포문을 열었다. 말라카를 점령한 포르투갈 사람들이 처음 한 일은 안전한 거주지 겸 요새 ‘에이 파모사A’Famosa’를 짓는 것이었다. 원주민 노예를 동원해 술탄의 왕궁과 왕릉, 모스크를 철거하고, 성벽 두께가 3m나 되는 요새와 다양한 용도의 건물을 세웠다. 하지만 지금은 그 형체가 거의 남아있지 않다. 뒤이은 네덜란드와 영국의 포화 속에 살아남은 것은 성문Porta de Santiago과 성당St.PaulChruch 한 채뿐이다. 성문을 지나 계단을 오르면 언덕 위로 벽채만 남은 세인트폴성당이 보인다. 이 성당은 가톨릭을 처음 포교한 성 자비에르와 관련된 일화로 유명하다. 자비에르는 말레이반도와 일본, 중국을 오가며 가톨릭을 알리는 데 힘쓰다 1552년 중국 광저우에서 사망했다. 시신은 말라카에서 6개월간 안치된 후 그의 첫 해외 포교지였던 인도 고아로 가게 됐는데, 관을 열어 보니 전혀 썩지 않았다고 한다. 또 자비에르가 바다에 십자가를 던지자 사나운 풍랑이 거짓말처럼 잠잠해졌다는 일화도 있다. 얼마 후 어부가 같은 자리에서 게를 건져올렸는데 신기하게도 자비에르의 십자가를 쥐고 있었다고 한다. 지금도 말라카에서는 등에 십자 모양의 무늬가 있는 게는 성스럽게 여겨 잡지 않는다. 에이파모사 요새는 전체적으로 붉고, 거칠게 풍화된 듯 보인다. 가까이서 보면 마치 녹이 슨 듯 보이는데, 철성분이 함유된 홍토 벽돌로 만들어서 그렇다. 이 벽돌은 캄보디아 앙코르와트에 쓰인 것과 같은 종류로 수백년이 지나도 변화가 없을 정도로 단단하다. 요새 아래쪽에는 멀리서도 붉은 벽이 눈에 띄는 스태이더스The Stadthuys 빌딩이 있다. 원래 네덜란드 총독의 공관이었는데, 현재는 말라카 민족박물관이자 랜드마크로 사랑받고 있다. 말라카 이전부터 식민시대에 이르기까지 시대별 유물과 옷차림을 전시하고 있다. 네덜란드식 거실과 당시 사용했던 생활용품들도 볼 수 있다. 베이커리에서는 갈색빵을 파는데 네덜란드 점령 당시 가난한 사람들에게 탄 빵을 나눠주었던 데서 유래됐다고 한다. 주말에는 네덜란드, 포르투갈 등 다양한 군복 코스프레도 볼 수 있다. 스태이더스와 맞붙어 있는 크라이스트 처치는 말레이시아에서 가장 오래된 교회로 18세기에 세워졌다. 거대한 대들보와 시계탑에서 네덜란드 분위기를 물씬 느낄 수 있다. ▶travie info 트라이쇼Trishaw 스태이더스 앞에는 말레이시아와 페낭에서만 볼 수 있는 인력거 ‘트라이쇼’가 줄지어 서 있다. 평범한 인력거가 아니다. 오디오에서는 ‘강남스타일’을 비롯해 최신 유행가가 흘러나오고, 지붕이며 좌석을 각종 꽃과 인형, 깃발로 치장하고 있다. 잘나가는 트라이쇼는 광고판까지 달고 성업 중이다. 트라이쇼를 타고 말라카의 골목골목을 돌아보다 보면, 아직 그 누구에게도 발견되지 않은 보석 같은 장소를 발견하게 될지 모른다. 트라이쇼┃이용요금 시간당 40RM(30분 25RM), 어른 2인까지 탑승 가능 에이파모사┃입장료 무료 말라카왕궁┃개장시간 오전 9시~오후 5시30분 입장료 어른 기준 2RM 스태이더스┃개장시간 오전 9시~ 오후 3시30분(금~일요일은 오후 9시까지) 입장료 어른 기준 5RM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이 나라가 사는 법 여행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말레이시아에서 진한 친근감과 편안함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우선 이 나라에선 한국인의 영어가 유독 잘 통한다. 우리나라 콩글리시 버금가는 게 바로 말레이시아의 ‘맹글리쉬’. 다양한 민족이 어울려 사는 말레이시아에서는 한 가지 언어로 이뤄지는 완벽한 의사소통보다 다양한 언어로 이뤄지는 유연한 의사소통이 더 일반적이다. 사람들이 생각하는 방식도 이와 비슷한 것 같다. 한 가지를 고집하기보다 여러가지를 포용한다. 가장 전통적인 것을 가장 현대적인 것으로 재구성하고, 감추고 싶은 역사를 가장 매력적인 역사로 소개한다. 에펠탑, 자유의 여신상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쿠알라룸푸르의 페트로나스 타워는 이슬람 사원의 첨탑을 본떴고, 쇼핑몰을 활보하는 여자들은 검정색 대신 온갖 화려한 색깔과 무늬로 치장한 차도르를 둘렀다. 이곳에서 이슬람 전통은 속박의 족쇄가 아니라, 가장 세련되고 감각적인 디자인이 된다. 거리를 걷다 보면 건물이나 광장 이름에서 독립을 뜻하는 ‘메르데카’라는 단어를 쉽게 찾을 수 있다. 말레이시아는 1957년 영국으로부터 독립했는데 매년 8월31일 독립기념일에 성대한 축제를 치를 정도로 독립에 대한 자부심이 크다. 반면 쿠알라룸푸르와 말라카 곳곳에서 포르투갈, 네덜란드, 영국의 식민 통치 유적들이 버젓이 관광상품화 돼 있다. 말레이시아 사람들은 이국적인 분위기를 즐기기 위해 부러 이런 곳들을 찾기도 한다. 식민 역사에 대해 예민한 우리로서는 이런 모습이 양면적으로 느껴지는 게 당연하다. 그런 모습이 너무 양면적이지 않은지 묻자 나이 지긋한 관광가이드 노마가 적절하게 설명을 해줬다. “말레이시아 사람들은 용서에 관대한 편이예요. 아마 종교의 영향도 크겠죠. 무엇보다 우리는 이제 식민시대에 아무런 악감정도 없어요. 역사 그대로의 과거에 얽매어 있기보다 새롭게 보고, 발전시키는 게 중요한 거지요.” 오랫동안 하나의 영토를 다양한 무리의 사람들과 공유하며 살아온 역사 속에서, 말레이시아 사람들은 포용을 배웠을 것이다. 그들은 다른 종교와 다른 피부색, 다른 언어, 다른 가치관을 인정하는 데 가장 뛰어난 국민이다. 그리고 그런 관용적인 태도 속에는 다양한 삶의 어떤 형태든 받아들이는 긍정적인 강인함이 있다. “나는 10년 동안 트라이쇼 운전을 해왔어요. 운전 기술로 치면 말라카에서 나를 따라올 사람이 없을 거예요. 그거 알아요? 말라카 최고의 직업이 바로 트라이쇼 운전사라는 거. 난 매일 ‘이녀석’과 함께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이야기하고, 새로운 곳에 대해 알아 가죠. 난 정말 이 일이 좋아요.” 적도 부근의 뜨거운 태양 아래서 매일 12시간씩 인력거 운전을 하는 만MAN 씨의 얼굴은 까맣게 그을려 있었다. 말라카에서 트라이쇼를 타며 만씨와 함께한 시간은 유쾌함으로 가득했다. 처음 만나는 말라카의 신선한 풍경 때문이기도 했고, 비온 뒤 씻은 듯 갠 하늘 때문이기도 했다. 어쩌면 그 많은 자전거 운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불룩한 그의 배와 넉넉한 웃음 때문이기도 했다. 그리고 어쩌면 화려하게 뽐낸 ‘이녀석’의 아늑한 품 때문이기도 했을 것이다. 자전거와 만씨 자신의 이름에서 따온 ‘베크만BECHMAN’. 그것은 어느새 만씨 자신이 돼 버린 녀석에게 썩 잘 어울리는 이름이었다. 에디터 트래비 글 Travie writer 도선미 사진 Travie photographer 지성진 취재협조 말레이시아관광청 www.mtpb.co.kr ★MALAY FOOD & SWEET DESERT MALAY FOOD 말라카의 음식 계보는 복잡 다단하다. 인도, 포르투갈, 네덜란드, 중국의 조리법이 말레이시아 특유의 향신료와 만나 새로운 퓨전 요리로 탄생했다. 달콤한 ‘자연주의’ 디저트도 말라카에선 꼭 맛봐야 한다. 단맛을 내는 데 코코넛 우유와 팜나무 수액으로 만든 흑설탕 ‘굴라Gula’을 주로 이용하기 때문에 인공적이지 않고 몸에 좋다. 입 안에 감도는 두 가지 맛 ‘뇨냐푸드NONYA FOOD’ 중국인과 말레이인이 결혼해서 낳은 2세를 남자는 바바, 여자는 뇨냐라고 한다. 뇨냐음식은 말레이시아와 중국음식의 특징을 모두 갖고 있는데, 아마 혼혈 가정 내 다양한 입맛을 충족시키기 위해서였으리라. 주로 중국 조미료에 코코넛 우유, 말레이 향료를 함께 넣어 조리한다. 태생이 가정식 요리기 때문에 겉보기에 매우 단출하다. 레스토랑에서 먹더라도 휴대용 찬합에 담겨 나온다. 튀김요리인 바이띠Baidee, 중국식 야채볶음인 찹차이Chap Chye, 커리잎을 넣어 구운 치킨IncheKabin 등이 대표적이다. 뇨냐 음식은 중국인들이 많이 거주하는 말라카와 페낭에서만 찾아볼 수 있는데, 말라카식은 코코넛 우유를 많이 사용해 달달한 반면, 페낭식은 태국의 영향으로 매운 고추가 사용되는 점이 다르다. 뇨냐 식당은 존커 스트리트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고향에서 맛보는 원조 ‘아쌈페다스ASAM PEDAS’ 말라카는 말레이시아인들이 즐겨 먹는 아쌈페다스의 고향이다. 아쌈은 타마린드 열매즙을, 페다스는 ‘매운’을 뜻한다. 파인애플, 스타프루트 등 열대과일, 아쌈, 토마토, 절인 갓으로 만든 소스에 생선과 채소를 넣고 조리하는데, 겉보기엔 생선찌개에 가깝다. 맛은 전혀 비리지 않고 깔끔해 카레처럼 국물을 밥에 얹어 먹으면 맛있다. 아쌈페다스를 맛보고 싶다면 카페 루마말라카KafeRumah Melaka를 추천한다. 다양한 말레이, 말라카 전통 음식으로 유명하며, 20년 된 캄풍의 풍취도 느낄 수 있다. 영업시간 오전 8시~오후 7시, 일요일 제외(영업시간 이후는 사전 예약 필수) 홈페이지 www.keferumahmelaka.com SWEET DESERT 코코넛밀크의 감미로운 맛 ‘사고Sago’ 바바 뇨냐들이 어렸을 때부터 즐겨먹는 간식이다. 사고팜 나무에서 나오는 전분을 하루동안 물에 담그면 젤리처럼 되는데, 이걸 동그랗게 뭉쳐서 은단만한 알갱이로 만들고, 코코넛 우유에 넣어 먹는다. 여기에 과일과 팜나무 설탕인 ‘굴라Gula’를 넣으면 매우 고소하고 달콤하다. 굴라는 메이플 시럽과 같은 방법으로 팜나무에서 추출한 설탕으로, 디저트에 주로 사용된다. 말레이시아식 팥빙수 ‘첸돌Cendol’ 첸돌은 말라카의 대표적인 디저트다. 얼음에 팥을 올리는 것이 전체적으로 우리나라 팥빙수와 흡사하다. 다른 점은 연유 대신 코코넛 밀크를, 시럽 대신 굴라를 사용한 자연식이라는 것. 특히 향료의 하나인 판단잎 즙으로 만든 녹색 젤리를 짧게 채썰어서 넣는 게 특징이다. 이 젤리는 해독 성분이 있어 몸에도 좋다. 독특한 향을 지닌 두리안을 좋아하는 말레이시아 사람들은 첸돌에 두리안을 토핑해서 먹기도 한다. 존커 스트리트 입구에 있는 ‘산슈공San Shu Gong’의 첸돌이 유명하다. ▶travie info 말라카 가는 방법 인천에서 말레이시아항공, 에어아시아항공, 싱가포르항공 등을 이용해 쿠알라룸푸르, 싱가포르까지 이동한 후 현지에서 버스, 기차를 타면 편하다. 1 쿠알라룸푸르 버스터미널 TBSTerminal Bersepadu Selatan에서 말라카행 버스 이용. 1시간45분 소요되며 매일 7:00~23:00 사이 15분 간격으로 운행한다. 12.3RM. www.tbsbts.com.my 2 쿠알라룸푸르 기차역KL Central에서 싱가포르 우드랜드Woodland행 열차South Line를 이용하면 된다. 반대도 가능하다. 하지만 하루에 1대만 운행하기 때문에 다소 불편하다. 쿠알라룸푸르발 말라카행은 오전 9시 출발, 2시간 30분 소요, 23RM. 싱가포르발 말라카행은 오후 1시45분 출발, 4시간 소요, 38RM. www.ktmb.com.my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위 기사는 기사콘텐츠 교류 제휴매체인 여행신문의 기사입니다. 이 기사에 관한 모든 법적인 권한과 책임은 여행신문에 있습니다.
  • [미주통신] 미국 여성이 뽑는 1등 데이트 상대는?

    미국 여성들은 어떤 남성을 가장 데이트 상대로 선호할까? 놀랍게도 각 도시의 특성에 따라 가장 최고로 여기는 항목이 다른 것으로 나타났다. 10일(현지시각) 뉴욕데일리뉴스에 의하면 미국의 한 온라인 데이트 회사(WhatsYourPrice.com)가 미국 여성 9345명을 대상으로 외모, 수입, 학력 등의 항목을 놓고 남성과 데이트를 할 때 가장 중요하게 보는 것이 무엇인가에 관해 설문조사를 시행했다. 뉴욕에 거주하는 여성의 경우, 외모(38%), 학력(26%), 수입(15%)순으로 응답하여 외모를 가장 우선시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관해 이번 조사를 담당한 회사의 브랜든 웨이드 CEO는 “뉴욕 여성의 경우 경제 자립도가 높아 돈과 교육보다는 외모를 선호하는 것이 분명하다.”고 분석했다. 이와는 반대로 도박 도시로 유명한 라스베이거스에 거주하는 여성들은 수입(51%), 외모(23%), 교육(4%)순으로 응답하여 상대 남성의 수입을 최고 항목으로 선택해 뉴욕시와 뚜렷한 대조를 보였다. 하지만 시카고에 거주하는 여성들은 교육(27%), 수입(25%), 외모(10%)순으로 응답하여 상대 남성의 교육 수준을 최고의 선택 기준으로 선호했다. 이 밖에도 보스턴의 경우는 수입(33%), 교육(21%), 외모(5%)순으로 응답해 라스베이거스와 비슷한 선호도를 보였다. 이러한 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할 때, 연봉이 1억 5000만 원에서 2억 원 사이이며 대학원 졸업 학력과 준수한 외모를 가진 남성이 미국 전역을 통틀어 여성들이 가장 선호하는 ‘완벽한 남성’이 될 수 있다고 뉴욕데일리뉴스는 전했다. 다니엘 김 미국 통신원 danielkim.ok@gmail.com
  • SURFING HAWAII 인간의 온도 하와이

    SURFING HAWAII 인간의 온도 하와이

    그 섬에서는 중력을 느낄 수 없었다. 편서풍에 실려 어디든 날아 갈 수 있을 것 같았다. 물 위를 걷는 것쯤은 손쉬워 보였다. 그것이 하와이 서핑에 도전한 변이다. 그 바람을 살 수 있다면 애스톤 와이키키 리조트 23층 21호. 19시간의 시차는 하와이의 밤에서 한국의 늦은 오후 사이를 운항하는 모호한 타임머신에서 몇 번 멀미를 하고 나서야 적응한 것이었다. 습관처럼 발코니로 향했다. 거기 놓인 1인용 플라스틱 의자에 비스듬히 앉아서 하는 일은 항상 뻔했다. 한 5분 동안 별이 총총한 하늘을 올려다보며 감탄하다가 조금 지겨워지면 저 멀리 활처럼 휘어 있는 와이키키 해변으로 시선을 옮기는 일이었다. 처음에는 어둠 속을 달려오는 거품만 보이지만 일단 눈이 적응하고 나면 아직도 바다를 애무하는 섹시한 실루엣을 발견하게 되기도 했다. 그러다 지루해지면 이번에는 청각이 슬슬 깨어나서 해변도로를 달리는 자동차의 소음을 감지하고, 후각은 비린내 없는 바다냄새를 분석하기도 한다. 마지막에 등장하는 것은 불평 아닌 불평을 늘어놓은 촉각이다. 이 섬의 공기는 너무 비현실적으로 쾌적하지 않느냐 볼멘소리. 이것이 하루도 빠짐없이 하와이에서 치렀던 밤의 의식이었다. 바람. 이 모든 것은 순전히 바람 때문인 것 같았다. 파도가 높은 것도, 하늘이 맑은 것도, 별이 빛나는 것도, 무지개가 뜨는 것도, 내가 이곳에 다시 온 것도. 밤마다 와이키키를 내려다보며 내가 생각한 부질없는 소망은 ‘이 바람을 살 수 있다면’이었다. 그 바람으로 나는 매일 매일 서울의 매연을 날려 보내고, 예쁜 구름들을 뭉치고, 그 사이에 무지개를 띄우고 있는 나를 상상했다. 바람을 타고 훨훨 날아가는 상상을 했었다. 1 해안 가까이 방파제를 쌓아서 천연의 수영장을 만든 와이키키 해변 2 서퍼들에게는 밀려오는 파도 하나하나가 모두 의미 있다 3 스탠드 업 패들링을 하는 청년의 등에는 작은 봇짐과 운동화가 매달려 있었다. 항상 붐비는 와이키키 해변에서 바다는 가장 빠른 지름길이다 그 바다를 걷지 않는다면 낮이 되어 관광객으로 붐비는 와이키키 해안 도로를 걷다 보면 라스베이거스가 생각나곤 했다. 바닷가에 늘어선 대형 호텔이 커다란 장막을 치고 있고, 그 사이사이에는 크고 작은 쇼핑점들이 자리잡고 있는 풍경 때문인 것 같았다. 보이는 것이 전부는 아니어서 건물 안으로 들어가면 또다시 수많은 삼정들이 블록마다 꽉꽉 들어차 있다. 단, 카지노의 바다 대신 진짜 바다가 있다는 것만 다를 뿐. 라스베이거스를 여행하는 방법이 다양하듯, 와이키키 지역을 여행하는 방법도 여러 가지다. 여행자들이 처음 하는 일은 대부분 짐을 풀자마자 와이키키 해변에서 가장 가까운 칼라카우아 도로로 쏟아져 나오는 일이다. 양복 입은 사람들과 비키니 입은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섞여 흘러가는 그 길의 양쪽에는 호텔과 쇼핑센터, 레스토랑들이 가득하다. 유명한 오믈렛 레스토랑 ‘에그 포 낫싱’과 ‘치즈케이크 팩토리’도 그 대로변에 있다. 소란을 조금 벗어나고 싶다면 두 번째 방법, 모래사장을 걷는 방법이 있다. 누워 있는 사람들을 밟고 지나가지 않도록 조심하면서 말이다. 하지만 놀랍게도 와이키키의 바다 위에는 교통정리가 필요할 만큼 많은 서퍼들이 하루 종일 정체를 이루고 모래사장도 붐비기는 마찬가지다. 처음 시도해 본 세 번째 방법은 물속으로 산책하는 일이었다. 바닷물에 몸을 반쯤 담그고 바라본 세상의 풍경과 감각은 낯설다고 느껴질 만큼 새로웠다. 허리춤을 간질이는 파도, 발을 부드럽게 핥아 주는 고운 모래, 멀리서 들려오는 ‘쏴아’ 물거품 소리와 별안간 나타나 떼를 지어 지나가는 물고기떼들. 그런 감각들로 충만한 채 수킬로미터씩 이어졌던 와이키키의 바다속길 산책은 내게 신항로 개척보다 의미 있는 루트 개척이었다. 그리고 급기야 지금까지 고수하던 ‘구경꾼’의 자세를 버리고 파도와 맞서 보기로, 서핑에 도전하기로 마음먹었다. ▶interview KITV 뉴스앵커 케니 최 Kenny Choi “서핑은 조깅이다” 낯선 사람들이 함께 둘러앉은 원탁. 어색하게 밥먹기에만 열중하게 되기가 쉬운 그 테이블에서 자연스럽게 대화를 중계하기 시작한 것은 케니였다. 질문을 던지고 주제를 이어가면서도 좌중을 고루 배려하는 세련된 매너는 ‘앵커’라는 그의 직업과 관련이 있어 보였다. 하와이 지역방송사의 메인 뉴스 앵커이자 한인 2세라는 사실에 어디를 가도 집중을 받는 케니를 다시 바라보게 된 순간은 그의 입에서 ‘매일 아침마다 서핑을 한다’라는 말이 나왔을 때였다. 누군가가 매일 조깅처럼 즐기는 서핑이 내게는 태어나서 한번도 접해 보지 못한 스포츠였다는 사실이 갑자기 머리를 강타하고 지나갔기 때문이다.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그를 다시 만난 것은 토요일 아침, 듀크 카하나모크Duke Kahanamoku동상 앞에서였다. 며칠 전 보았던 정장의 앵커맨은 온데간데없고 맨발에 검은 티셔츠와 헐렁한 반바지, 서핑 보드를 옆구리에 낀 청년은 검게 그을린 얼굴로 하얗게 웃고 있었다. 뉴욕에서 왔다고 들었다. 서핑 때문에 하와이로 온 것인가? 하하. 그렇지는 않다. 2년 전에 메인 뉴스 앵커로 발탁되면서 이주했으니 직장 때문이다. 코네티컷 출신이지만 대학을 UCLA로 가면서 서핑을 종종 즐겼다가 하와이에 오면서 실력이 많이 늘었다. 원래 나는 스포츠 리포터로 시작해서 스포츠 앵커로 일했을 만큼 스포츠라면 분야를 가리지 않고 좋아했었다. 지금은 9시 뉴스의 앵커라서 매일 2시부터 11시까지 일하니까 오전에 혼자서도 즐길 수 있는 서핑이 가장 좋다. 와이프도 지금 저 앞바다에서 서핑을 하고 있다. 하와이에서 일상인으로 산다는 것은 좀 다를 것도 같은데. 하와이에 와서 놀란 점은 사람들이 일을 매우 열심히 한다는 것이다. 보통 하와이 사람들은 유유자적 즐기며 살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말이다. 그래도 뉴욕에서 스포츠나이트 쇼, 스포츠 네트워크 뉴욕, 폭스 등의 스포츠 뉴스 앵커를 하면서 치열하게 살다가 하와이에 와서 ‘릴렉스’하는 법을 좀 배운 것 같다. 유전적으로 ‘알로하 정신’을 가지고 태어났다고 할 만큼 친절한 사람들도 많이 만났다. 서핑의 매력은 무엇인가? 뭐랄까…, 말로 설명하기가 좀 어려운데, 공기 속을 나는 느낌, 바다와 연결된 느낌이 든다. 마치 자연의 일부가 된 것 같은 그런 느낌말이다. 처음 서핑에 도전하기로 마음먹은 사람이 있다면 한번 해보고 나서 어렵다고 포기하지 말고 최소한 2~3번은 계속 도전해 보라고 말해 주고 싶다. 그래야만 서핑의 진짜 재미를 느낄 수 있다. 남성 서퍼들이 훨씬 많은 것 같다. 서핑은 남성적인 스포츠인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남자들이 많기는 한데 그렇다고 남자의 스포츠라고 말할 수는 없을 것 같다. 나도 이제 서핑을 좀 해보려고 하는데 좋은 장소를 추천해 달라. 이런. 서퍼들 사이에서 불문율은 장소를 누설하지 않는 것이다. 그런 게 있는 줄 몰랐다. 여러 해변을 찾아가서 서핑을 해 보면서 나만의 비밀장소를 찾는 것도 서핑의 재미이기 때문이다. 여기 와이키키는 항상 사람들이 많아서 나는 좀더 동쪽의 한적한 해변을 찾는 편인데 며칠 전에 그곳에서 좋은 파도를 만나서 아주 기뻤다. 어딘지는 말할 수 없지만. ▶1970년대에 미국으로 이민을 온 한국인 부모님 사이에서 태어난 케니 최는 하와이 KITV의 밤 10시 뉴스 앵커를 맡고 있다. 내년이면 한인 이민 110주년을 맞이하는 하와이에서는 이미 유명인이다. 그가 진행하고 있는 뉴스를 보고 싶다면 미국 예일대와 한국 연세대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는 그의 부모님들처럼 KITV 사이트(www.kitv.com)를 열면 된다. ■Chun’s Reef 서핑 체험기 바람 반, 물 반의 자유 이틀 후 이른 아침, 눈을 뜨자 팔이 잘 올라가지 않을 정도로 온몸이 뻐근했다. 어제보다 무겁게 느껴지는 커튼을 젖히고 발코니로 나가서 점점 밝아지는 바다를 향해 심호흡을 했다. 새벽 6시에도 이미 서핑을 즐기는 사람들, 조깅을 즐기는 사람들로 어제와 다름없는 풍경들이 펼쳐져 있었다. 하지만 나는 그전까지 보이지 않던 전혀 새로운 것을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었다. 그저 ‘파도들’이라고 불렀던 그 물결들이 하나하나 달라 보이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다음번에 나도 타 볼 수 있을 것 같은 파도, 그렇지 않은 파도, 너무 낮아서 그냥 흘려 보내야 하는 파도, 무섭지만 황홀하게 힘이 넘치는 파도 등등. 나는 각각의 파도를 구분해 내고 있었다. 그저 하나의 레포츠 경험으로 생각했던 서핑이 앞으로의 내 삶에서 파도를 향한 태도 전체를 바꾸어 놓을 수도 있겠다는 깨달음은 소름끼치는 기쁨이었다. 하지만 시계를 돌려 전날 오전, 오아후 섬의 북쪽으로 올라가는 서핑 버스 안의 나는 심각하게 망설이고 있었다. 언제든 마음이 바뀌면 취소해도 된다는 여행사의 안내가 있기도 했고, 15여 명 정도의 여행자 중에서도 서핑 레슨을 받는 사람은 나 하나뿐이었기 때문이다. 서핑을 배우게 될 장소의 이름이 Chun’s Reef가 아니었다면, 내 이름의 영문 스펠링이 Chun이 아니었다면 예약을 취소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름이 같다는 우연의 일치에 운명이라는 망상을 덧댄 끝에 나는 일행의 응원을 받으며 홀로 버스에서 내렸다. 올 겨울 서핑 대회를 준비하기 위해 지난 3월부터 이곳에 와서 훈련을 하고 있다는 캘리포니아 출신 프로 서퍼 제이크가 나의 선생님이었다. 피부와 보드의 마찰을 줄여 준다는 서핑티셔츠를 입고 나니 준비는 끝이라고 했다. 낡은 트럭에서 보드를 하나 꺼낸 그는 말했다. “단 한 가지만 기억하면 됩니다. ‘나무’요. 나무만 바라보면 됩니다.” 물론 그때는 그게 무슨 소리인지 알지 못했다. 다른 수강생이 없어서 개인 교습이 되어 버린 레슨은 빠르게 진행됐다. 보드 위에 배를 깔고 엎드려 있다가 파도가 오는 타이밍에 맞춰 제이크가 보드를 빠르게 밀어 주면 그 순간 재빠른 동작으로 일어서서 균형을 잡는 것이다. 절대로 손으로 보드를 붙잡지 말아야 한다거나(그러면 보드의 균형이 깨진다), 무릎을 굽히고 허리를 바로 세워야 한다는(스키나 보드를 타는 요령과 비슷하다) 것보다 가장 중요한 요령은 아래를 쳐다보지 않는 것, 즉 해안의 ‘나무’에 시선을 고정하는 것이었다. 그렇게 두 시간 동안 내가 한 일은 수없이 물속으로 곤두박질치는 것. 순간이나마 완벽한 자세를 유지했다는 제이크의 과장된 칭찬을 듣기도 했지만 그런 순간은 두 시간 동안 다 합쳐 30초도 되지 않았던 것 같다. 하나의 파도를 넘으면 다음 파도가 넘어오듯이 서핑은 그런 것이었다. 파도가 좋다 싶어도 너무 늦게 일어서면 꽝이고, 제때 일어났다 싶으면 다리 위치가 틀렸고, 다리 위치가 맞았다 싶으면 상체가 기울고…. 어이가 없어 웃음을 터트리는 내게 제이크가 말했다. “서핑의 재미는 수없이 작은, 그리고 수없이 많은 장애물들을 하나씩 극복해 나가는 것이랍니다.” 서핑은 상상 이상으로 어려웠다. 제이크는 수영을 못해도 서핑이 가능하다고 했지만, 발이 닿지 않는 물이 두려운 사람이라면 감히 엄두를 내지 말아야 할 일이었다. 큰 파도야 타 본 적이 없지만 서핑의 리스크는 파도에 휩쓸려 바위나 산호에 부딪치게 되는 일이다. 발밑이 온통 날카로운 산호라서 그 위에 발을 딛었다가는 ‘나처럼’ 살을 베이는 일이 다반사라고 했다. 체력고갈로 지쳐 버린 나는 제이크의 사진 한 장을 찍을 생각조차 못했음을 고백한다. 하지만 발뒤꿈치의 상처가 다 아문 지금까지도 서핑의 여운은 길게 남아 있다. 그것은 내가 극복하지 못한 채 남기고 돌아온 ‘수없이 많고, 작은 장애물’들에 대한 아쉬움이기도 했고 물속으로 계속 곤두박질치게 했던 바다에 대한 앙심이기도 했지만, 사실은 그리움이었다. 하와이의 바람을 내 소유로 만든 것 같았던 그 30초. 바람 반, 물 반으로 만들어진 파도를 밟고 섰던 그 기적적인 순간으로 자꾸만, 자꾸만 다시 돌아가고 싶다. 1 11월이면 큰 바람이 불어오는 오아후 북쪽 해안가. 반자이 파이프라인의 굵고 튼튼한 파도는 도전의 대상이다 2 환경단체 NGO들의 보살핌으로 자연 생태계에서 살아가고 있는 하와이안 그린 터틀. 자주 등장하기 때문에 만날 확률이 높은 편이다 3 해변의 명예의 전당이라고 할 만큼 유명한 비치들이 이웃하고 있는 노스 쇼어에서 자전거는 가장 유용한 이동 수단이었다 4 울창한 원시림이 가득한 와이메아 계곡은 해변 못지않은 비경이다 Oahu North Shore ‘첫 서핑’을 위한 그곳 해변에도 셀러브리티가 있다면 오아후 노스 쇼어는 명예의 전당이다. 무슨 소리인가 하면, 전세계적으로 유명한 서핑과 스노클링 명소들이 이곳에 모여 있다는 뜻이다. 와이메아 폭포에서 흘러내린 물이 바다와 만나는 와이메아 베이Waimea Bay, 파도가 높기로 유명한 반자이 파이프라인, 최고의 해안 다이빙 장소이자 천연 수족관으로 꼽히는 더 코브The Cove, 하와이 그린 바다거북이 살고 있는 터틀 비치, 눈부신 모래사장이 펼쳐진 선셋 비치Sunset Beach까지, 어느 하나도 놓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자전거를 빌렸다. 하지만 노스 쇼어의 자전거 대여점에 도착했을 때 살짝 당황했던 이유는 고물상에 온 것이 아닌가 싶은 낡은 자전거들이 때문이었다. 다 고만고만한 녀석들 중에서 크기가 작은 것을 잡아타고 도로를 50m쯤 달렸을 때 두 번째 당황의 순간이 찾아왔다. 기어가 없는 것이야 그렇다 쳐도 브레이크가 없다니! 혹시나 하고 페달에 힘을 줘 보니 페달 브레이크 방식이었다. 익숙지 않은 자전거에 잔뜩 겁을 먹고 돌아가서 핸드 브레이크 자전거를 찾았지만 주인은 태연한 표정으로 없다고 대답하며 한마디를 보탰다. ‘우린 어려서부터 그런 자전거를 타고 자랐는 걸. 브레이크 잡을 때 발의 위치를 주의해야 한다는 걸 잊지 마. 다리가 일직선이 되면 버티기가 어려우니까.’ 그리하여 노스 쇼어 여행은 시속 10km 이하였다. 브레이크 때문만은 아니고 1~2km 간격으로 이웃하고 있는 해변들이 하나같이 절경이라 자주 멈춰 서야만 했기 때문이다. 노스 쇼어 파도의 명성은 이미 버스가 반자이 파이프라인Banzai Pipeline에 잠시 멈춰 섰을 때 확인한 터였다. 오죽 파도가 높고 단단하게 휘어지면 이름부터 파이프라인이겠는가. 게다가 그 파도가 가장 높아지기 시작하는 시즌은 큰 바람이 찾아오는 11월부터다. 두 시간은 이 매혹적인 해변에 들러 사진만 찍기에도 부족한 시간이었다. 그래서 막상 하와이 그린 거북이를 만났을 때는 아주 빠른 속도로 사진만 찍고 돌아서야 했는데, 그때의 심정은 경주에서 지고 있는 토끼가 된 듯한 기분이었다. 해변을 독서실 삼아 일광욕과 독서를 겸하는 사람들을 발견했을 때도 ‘루저’의 심정이긴 마찬가지였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할레이바 타운Haleiwa Town의 그 유명한 빙수를 버스가 떠나기 전에 가까스로 구입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사탕수수 농장이 흥했던 시절의 가옥들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할레이바는 이제 서퍼들이 주둔하는 마을이다. 더위와 갈증을 한번에 날려 버리는 빙수가 유명해진 것도, 간단하게 끼니를 해결하면서도 단백질을 공급하는 새우라이스 트럭이 유명해진 것도 서퍼들과 관련이 있다. 글·사진 천소현 기자 취재협조 트래블프레스 02-2264-8494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travie info 노스 쇼어 서핑 버스 해변과 서핑으로 유명한 오아후 북쪽을 느긋하게 즐길 수 있는 원데이 투어 프로그램이다. 오전 오후의 자유 시간 동안 해변을 옮겨가면서 폭포 수영, 스노클링, 자전거 타기, 서핑, 바디보드, 카약, 스탠드 업 패들링, 서핑 등 1~2가지 액티비티를 즐길 수 있다. 필요한 장비와 왕복 교통편을 제공하며 식사는 포함되지 않는다. 해변뿐 아니라 할레이바 마을, 와이메아 폭포에서 시간을 보낼 수도 있고, 바다거북이도 구경할 수 있다. 와이키키에서 노스 쇼어까지는 전용차량으로 50분 정도 소요되며 서핑, 카약 등의 레슨에는 추가 요금이 붙는다. 투어시간 오전 8시~오후 5시 비용 76달러(액티비티 1가지 기준), 89달러(액티비티 2가지 기준), 2시간 서핑 교습 145달러(호텔 픽업 및 왕복 교통, 장비 대여 포함, 세금 별도) 문의 (808)226-7299 www.northshoresurfbus.com ▶Travel to Hawaii Hawaii 사랑을 부르는 섬, 하와이 하와이는 1778년 영국의 탐험가 제임스 쿡에 의해 세상에 알려졌으며 1959년 알래스카에 이어 미국의 50번째 주가 되었다. 하와이 제도는 오아후, 마우이, 하와이(빅 아일랜드), 카우아이, 몰로카이, 라나이, 니하우, 카홀라웨 등 8개의 큰 섬과 130여 개의 작은 섬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 중 개인 소유와 군항기지로 이용되는 니하우와 카홀라웨를 제외한 6개의 큰 섬에 관광객이 들어간다. 이중 하와이의 주도인 오아후섬이 정치, 경제, 문화, 교육, 관광의 중심지 역할을 한다. 8개 섬 중 규모로는 3번째 해당하지만 전체 주민의 78% 정도가 이 오아후섬에 거주하고 있다. 항공 찬스는 하루 4번! 최근 2년 사이에 인천-호놀룰루 사이에 신규 취항과 증편 등이 활발했다. 현재 아시아나항공(오후 8시 인천 출발)과 하와이안항공(오후 10시 인천 출발)이 매일 취항하고 있으며 대한항공은 매일 2편(오후 7시, 오후 9시10분 인천 출발)을 운항하고 있다. 비행시간은 하와이로 갈 때 8시간 40분이 소요되며 인천으로 돌아 올 때는 10시간 정도가 걸린다. 비자 허가를 받으시오! 까다로웠던 미국 비자발급이 2008년 11월17일부터 전자여행허가제Electronic System for Travel Authorization로 변경됐다. 여행 전에 미리 ESTA 사이트(www.estausa.co.kr)를 통해 입국 허가를 신청한 뒤 서류를 프린트해 미국 입국시 제출하면 된다. 일주일 정도 여유를 두고 신청하는 것이 좋다. 수수료는 4만4,000원. 날씨 이토록 쾌적한 맑음 아열대에 속하는 하와이는 평균기온은 23.8도로 아주 쾌적하다. 하와이가 북위 19~22도의 열대권에 들면서도 이런 날씨를 유지하는 것은 여름에 동북무역풍이 불고 한류인 캘리포니아 해류가 섬을 지나기 때문. 겨울에는 무역풍 대신 남풍이 비를 몰고 오지만 한바탕 내리고 나면 금방 맑아져 다시 상쾌하다. surfing season 지금 하와이는 서핑 중 서핑이야 일년 내내 즐기는 스포츠지만 한겨울에 파도가 가장 높아지는 오아후의 북쪽, 노스 쇼어에는 전세계 최정상급의 서퍼들이 모여든다. 매년 11월12일부터 12월20일까지 펼쳐지는 밴스 트리플 크라운 서핑 대회는 리프 하와이안 프로, 밴스 월드컵 오브 서핑, 빌라봉 파이프 마스터스로 이어지는데, 이들 대회에 걸린 상금만 총 80여만 달러다. 하와이관광청 홈페이지 www.gohawaii.com 음료 얼음빙수 한 방! 달궈진 몸, 아직 식지 않은 열정을 살짝 식히기로는 얼음빙수shave ice만한 것이 없다. 단팥도, 떡도, 우유도 없이 그냥 얼음을 갈아 수북이 담고 그 위에 커피맛, 레몬맛, 메론맛 등등의 다양한 액체를 부었을 뿐인 심심한 빙수지만 할레이바타운에서는 최고의 간식이다. 언제 가도 줄 서 있는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 팥빙수처럼 단팥을 넣은 메뉴도 있다. 재료와 크기에 따라 빙수 가격은 2.5~3.5달러 사이. 마츠모토 빙수집이 가장 유명하지만 90년 전에 지어진 고풍스러운 건물이 멋진 아오키스Aokis도 용호상박이다. resort 애스톤 와이키키 비치 호텔 방문을 열면 커다란 통창으로 바다가 쏟아진다. 25개 층에 있는 644개 객실 중 열에 여덟은 환상적인 오션뷰를 누릴 수 있는 애스톤 와이키키 비치 호텔Aston Waikiki Beach Hotel. 호텔 로비에서 몇 발자국만 걸어나가면 펄떡거리며 살아 숨쉬는 와이키키를 만나게 된다. 하와이의 5개 섬 중에 호놀룰루가 위치한 오아후에는 수많은 호텔과 리조트가 있지만 코앞에서 와이키키 해변을 즐길 수 있는 애스톤 와이키키 비치 호텔이 특별한 이유다. 1948년 태평양에서 난파된 프랑스인이 하와이 원주민과 결혼해 조그만 숙박업소로 출발한 애스톤은 현재 오아후에 9개, 마우이 9개, 카우아이 5개, 빅아일랜드 3개의 숙박시설을 보유한 하와이 최대 규모의 호텔 그룹으로 발전했다. 일반 호텔 스타일부터 부티크 스타일, 콘도미니엄, 빌라형까지 다양한 객실 타입을 갖췄다. 특유의 환대정신인 ‘알로하 스피릿Aloha Spirit’으로 무장해 한국인들이 가장 선호하는 호텔로 선정되기도 했다. 애스톤 와이키키 비치 호텔 역시 2010년 개보수를 마치고 재개장을 하면서 하와이를 찾는 많은 신혼부부를 위한 호텔로 손님에게 차별화된 허니문을 제공하고자 고심했다. 일례로 아기자기한 허니문을 위해 호텔은 작은 장치를 이용했다. 그중 하나가 소꿉놀이 같은 애스톤 라이프를 상징하는 물건인 ‘쿨러백’. 객실에 비치된 쿨러백에 호텔에서 제공하는 조식을 차곡차곡 담아 바닷가로, 야자수 밑으로, 해변의 벤치로 자리를 옮겨 야외 식사를 하는 사람들을 많이 볼 수 있다. 하지만 허니문에서 점잖게 멋을 부린 저녁식사는 필수! 호텔 내에는 하와이안 퀴진을 맛볼 수 있는 ‘틱스 그릴 앤 바Tik’s Grill and Bar’가 있어 멀리 가지 않아도 파인 다이닝이 가능하다. 식사를 하면서 즐기는 훌라쇼도 빠질 수 없는 즐거움이다. 호텔에 묵는 손님 모두에게 제공되는 ‘알로하북Aloha book’도 애스톤에서만 제공받을 수 있는 잔재미 중 하나! 알로하북에는 쇼핑, 레스토랑, 투어어트랙션 등을 할인받을 수 있는 쿠폰이 모두 들어 있다. 수영장과 로비에서는 무료로 와이파이 이용이 가능하다는 점도 기억해 두자. 주소 2570 Kalakaua Avenue, Honolulu, HI 96815 문의 866-77-774-2924 www.astonhotels.co.kr(한국어) place 폴리네시안 문화센터 수천년 전 머나먼 섬에 사는 폴리네시안Polynesian들이 하와이에 도착했다. 그들은 수개월에 걸쳐 해와 달 그리고 별의 길을 읽으며 바다를 항해했다. 파도의 방향을 읽고, 새들의 비행을 관찰하며 망망대해를 건너온 그들이 바로 하와이안들의 조상들이다. 자고 나면 땅의 모양이 바뀌어 있는 화산섬에 정착해 ‘알로하 정신’을 가꾸어 왔다. 와이키키 해변에서 북쪽으로 1시간 거리에 있는 폴리네시안문화센터PCC, Polynesian Cultural Center에서는 7개의 폴리네시안 부족을 만날 수 있다. 피지, 타히티, 사모아, 하와이, 뉴질랜드(마오리), 파파누이(이스터섬), 통가의 원주민들이 자신들의 문화를 보여 준다. 방문객들이 잘 신경 쓰지 않는 사실 하나는 PCC가 몰몬교단이 운영하는 비영리단체라는 것. 수익의 대부분을 장학금 등 교육사업에 사용하고 있으며 입장료 외에 기부금도 받고 있다. ‘민속촌’이라고 말하기 어려울 정도로 원주민들의 실제 삶이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는 곳이기에 PCC는 지금까지 3,300만명 이상이 방문한 하와이의 대표적인 명소로 자리잡았다. 하와이 토속 음식을 맛볼 수 있는 ‘루아우’ 뷔페식을 마치고 나면 느린 카누 여행이 기다리고 있다. 가이드의 재담에 웃다 보면 어느덧 반대편 종착지에 도착하게 되고, 그때부터 각 부족 마을의 방문이 시작된다. 부족마다 매일 3~5회씩 공연이 반복되므로 시간표를 잘 짜는 지혜가 필요하다. 오후 2시30분에 진행되는 카누 선상 쇼 관람을 위해 응달에 자리를 잡는 민첩함도 필요하다. 저녁에 펼쳐지는 쇼 <HA: Breath of Life>까지 관람할 예정이라면 입장료(49.95달러), 저녁 식사(35달러), 쇼(49.95달러)를 포함하는 패키지 티켓(성인 91.95달러부터, 소인 67.95달러)을 구입하는 것이 현명하다. 폴리네시안문화센터┃주소 55-370 Kamehameha Highway in Laie, Hawaii 96762 운영시간 매일 낮 12시~오후 6시(매주 일요일 휴무) 문의 800-367-7060 www.polynesia.com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위 기사는 기사콘텐츠 교류 제휴매체인 여행신문의 기사입니다. 이 기사에 관한 모든 법적인 권한과 책임은 여행신문에 있습니다.
  • [CEO 칼럼] 달변보다 위대한 경청의 힘/방한홍 한화케미칼 대표

    [CEO 칼럼] 달변보다 위대한 경청의 힘/방한홍 한화케미칼 대표

    대통령 선거가 한 달 앞으로 다가왔다. 후보들이 국민의 목소리를 듣기 위해 전국 구석구석을 누비고 있다. 누가 대통령에 선출되든 지금처럼 국민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일 줄 아는 지도자가 됐으면 좋겠다. 서로 이야기가 겉돌거나 같은 입장만 되풀이할 때 ‘말이 안 통한다’는 얘기를 하는데, 이는 말하기가 아니라 듣기가 안 되어서다. 소통을 잘하려면 말을 잘해야 하는데, 말을 잘하려면 무엇보다 잘 들어야 한다. 가족이든 친구든 선후배든 살면서 호감을 가졌던 사람들을 떠올려 보라. 말을 잘한 사람보다는 잘 들어준 사람이 대부분이다. 경청(傾聽)은 글자 그대로 ‘귀를 기울여 듣는 것’이다. 경청은 모든 인간관계뿐 아니라 기업의 경쟁력을 좌우하는 핵심요소이다. 과거의 성공 경험에서 깨어나지 못하고 자신이 늘 옳다고 믿는 독불장군형 리더들이 많다. 이들은 대부분 조직을 병들게 한다. 이런 리더는 새로운 아이디어가 제시되어도 잘 이해하지 못하고 진가를 알아보지 못한다. 결국 구성원들은 시간이 갈수록 침묵하게 되고 창의성이 죽은 조직으로 전락한다. 리더는 전지전능하지 않기 때문에 다른 사람의 생각을 잘 다듬어 성과를 낼 수 있도록 만드는 경청의 리더십이 필요하다. 리더가 경청하면 더 많은 지식과 지혜를 얻을 수 있고 조직원은 아낌없는 몰입과 헌신으로 답한다. 고객과의 관계 역시 다르지 않다. 고객은 자신의 이야기를 진심으로 들어주는 이에게 문제를 풀 수 있는 실마리를 선물한다. 성공한 상품은 고객의 사소한 불만과 문제의식에서 시작했고, 처절하게 실패한 상품은 과거의 성공에서 기대 고객의 이야기를 듣지 않은 경우가 많다. 기업들도 경청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고객과의 소통방식도 과거 광고를 통한 일방적인 말하기보다는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이야기를 듣는 쪽에 관심을 높여가고 있다. 얼마 전 미국 포브스지에서 향후 유망직업 10개를 선정했다. 이 가운데 하나가 최고경청책임자(CLO·Chief Listening Officer)였다. CLO는 소셜미디어 서비스들이 부상하면서 새로 생긴 직업이다. 페이스북과 트위터, 유튜브 같은 소셜미디어를 통해 고객의 얘기를 듣는 업무를 총괄한다. 이제는 고객의 목소리가 기업의 성패를 좌우할 수 있는 시대가 됐다. 보험업계에서 억대 연봉을 받는 상위 1%의 설계사들을 조사했더니 절반 이상이 내성적이고 차분한 성격이라는 결과가 있다. 흔히 영업사원은 외향적이고 말솜씨가 좋아야 할 것으로 생각하는데, 우수한 실적을 내는 사람들을 보면 의외로 그 반대인 경우가 많다. 상대를 설득해야 하는 협상 테이블에서 아무리 상대방의 논리를 완벽하게 제압했다 해도 그의 마음을 움직이지 못한다면 무슨 의미가 있는가. 희대의 플레이보이 ‘카사노바’의 최고 유혹의 기술은 바로 경청이었다. 화려한 언변을 뽐내는 다른 남자들과 달리 그는 남성우월주의 시대에서 고통받던 여인들의 이야기를 진심으로 들어줬다. 소크라테스의 제자들은 1년간 공부를 마칠 때까지 아무 말도 하지 말라는 지시를 받기도 했다. 경청의 가장 큰 적은 욕심과 자만이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이 너무 많다 보니 상대의 말을 잘 듣지 않는다. 열 번 말할 게 있다면 여덟 번은 듣고 말은 두 번만 하는 절제가 필요하다. 자신을 낮춰야만 경청할 수 있고 타인의 경험과 지식을 내 것으로 만들 수 있다. 탈무드에서는 많이 듣고 적게 말하라는 뜻으로 신이 인간에게 두 개의 귀와 한 개의 입을 줬다고 말한다. 공자는 60세가 돼야 경청의 경지에 이르렀다고 말했다. 사람이 태어나 말을 하는 데는 2년이면 되지만, 듣는 데는 60년이 걸린다는 의미다. 그만큼 듣는 것이 어렵다. 하지만 충분히 노력해 볼 만한 가치가 있다. 상대방의 마음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 흡연율 낮추는 ‘흡연 면허증’ 어떤 제도?

    세계보건기구에 따르면 전 세계 흡연자가 11억 명을 넘어선 가운데 외국의 공공건강전문가가 흡연율을 줄이기 위한 이색 방안을 제시해 눈길을 모으고 있다. 호주 시드니대학의 사이먼 채프먼 교수는 최근 공공과학도서관의학지인 플로스 메디슨(PLos Medicine)에 “흡연자들을 상대로 일종의 ‘흡연 면허증’(Smoking Licence)을 도입한다면 담배로 인한 피해를 줄일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흡연 면허증은 작은 스마트카드 형식의 의무적인 면허(자격)증으로, 담배를 살 때마다 이를 반드시 제시해야 구입이 가능하다. 하루 또는 1년에 구입할 수 있는 담배의 수량이 엄격히 제한되며, 1년 마다 담배와 관련한 건강 검진 및 건강 상식 테스트를 거친 뒤에야 면허증을 갱신할 수 있다 채프먼 박사는 이러한 제도가 특히 습관적으로 담배를 사는 청소년들에게 반드시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그는 담배 판매 제재가 현재 다른 위해 요소들의 판매 금지조치에 비해 매우 미미한 정도라고 비난하는 금연운동가들의 말을 인용한 뒤 “담배 사용을 연장하는 것은 흡연자들의 죽음을 재촉하는 것일 뿐”이라며 “이미 수 십 억 명의 사람이 담배 중독으로 사망했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면허증 형태의 스마트카드가 정부의 승인을 받을 수 있을지, 또 담배 구매 및 흡연율을 얼마나 줄일 수 있을 지에 대해서는 아직 증명된 바가 없다. 영국 에딘버그대학의 제프 콜린 교수는 채프먼 박사의 의견에 맞서 흡연 면허증은 효용이 없다고 반박했다. 그는 “흡연 면허증이라는 규제는 불가피하게 폭넓은 반대에 부딪히게 될 것이다. 특히 영국을 예로 들면 연이은 정부들이 비슷한 스마트카드제도를 시행하려다 실패한 경험이 있다.”고 지적했다. 또 “이러한 면허증은 흡연자들을 더 나쁘게 낙인찍어 결국 멀어지게 할 것이며, 흡연의 진짜 ‘범인’이나 다름없는 담배제조업체로 집중되던 이목을 빼앗아 갈 것”이라고 덧붙였다. 송혜민기자 huimin0217@seoul.co.kr
  • [열린세상] 대통령의 외교언어/장철균 서희외교포럼대표·전 스위스 대사

    [열린세상] 대통령의 외교언어/장철균 서희외교포럼대표·전 스위스 대사

    신라 선덕여왕이 즉위하자 당(唐) 태종이 모란 그림을 보내왔는데 당연히 있어야 할 나비가 없는 것을 보고 여왕은 ‘그림에 나비가 없으니 이는 당제(唐帝)가 과인이 짝이 없음을 놀리는 것이다.’라 했다고 삼국유사는 전하고 있다. 이는 당과 신라의 정상외교를 묘사한 것으로, 여기에서 모란 그림을 오늘날 넓은 의미의 외교언어(diplomatic parlance)라고 할 수 있다. 이와 같이 외교언어란 말과 글(문서)뿐만 아니라 그림과 같은 상징물, 독특한 몸짓이나 태도, 스타일과 같은 비언어로도 메시지를 전달하는 외교 의사소통 방식이다. 미국 첫 여성 국무장관이었던 매들린 올브라이트 여사가 외국방문 시에 색깔이 다른 브로치를 사용해 의사표시를 한 것도 외교언어다. 1972년 닉슨 대통령의 베이징 방문 시에는 중국이 판다 곰을 선물해 ‘판다 외교’도 그 이름을 남겼다. 때로는 침묵도 외교언어가 될 수 있다. 은둔으로 일관하다가 필요할 때 잠시 등장해 세상의 주목을 유도한 김일성과 김정일 부자의 행태를 ‘침묵 외교’라고도 한다. 2008년 2월 뉴욕 필이 평양에서 공연을 했다. 미국의 ‘콘서트 외교’는 1956년 미·소관계 정상화의 물꼬를 튼 이래 1973년에는 미·중관계의 해빙을 조성해서 공산권과의 외교에 단골메뉴가 되었다. 1946년 3월 영국의 윈스턴 처칠 총리가 야당 당수일 때 미국을 방문해 미주리 주의 웨스트민스터 대학 연설에서 언급한 ‘철의 장막’은 냉전 반세기 동안 외교언어의 대명사가 되었다. 1992년 5월 미하일 고르바초프는 바로 이 대학을 찾아 ‘냉전의 종식’을 선언했다. 외교언어는 국가관계와 국제정치에 영향을 주고받는 외교의 중요한 소통수단이다. 그래서 국가정상의 외교언어는 언제나 주목을 받지만, 외교언어에 힘과 행동이 뒷받침되지 못하면 진실성이 결여된 ‘구두선’(lip service)으로 또는 ‘그저 한번 해본 소리’(rhetoric)로 평가 절하되어 정상 개인뿐 아니라 나라의 신뢰에도 손상을 줄 수 있다. 그래서 서양에서도 ‘큰 대포는 잘 쏘지 않는다.’고 한다. 세치 혀는 천 냥 빚을 갚을 수도 있지만, 천 냥의 빚을 질 수도 있다. 한국 대통령의 외교언어는 실패한 사례가 자주 거론된다. 1995년 김영삼 대통령의 ‘일본 버르장머리 고치기’와 2006년 노무현 대통령의 ‘북한 핵 개발 일리 있다’는 발언이다. 정제되지 않은 외교언어였다. 지난 8월 이명박 대통령의 ‘일왕도 방한하고 싶으면 먼저 사과하라.’는 발언도 신중하게, 의도된 외교언어가 아니었기 때문에 독도문제나 과거사 문제에 대한 메시지는 약화되고 대일외교에 혼란을 초래했다. 학생과의 대화 중에 우연히 나온 실수라는 해명은 또 하나의 실패한 외교언어가 될 수 있다. 옛말에도 ‘왕의 말씀은 바꿀 수 없다.’고 했다. 한국 대통령의 외교언어로서 성공사례가 없는 것은 아니다. 1952년 1월 국제사회에서는 ‘리-라인’으로 회자된 이승만 대통령의 ‘평화선‘이다. 6·25전쟁 중이었고 미국과 일본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평화선을 통해 우리의 영해를 넓히고 독도의 실효적 지배를 가능하게 했다. 외교언어를 잘 구사하기 위해서는 우선 의도하는 목표를 명확히 하고, 그 결과를 예측해야 한다. ‘결과를 잘 생각하라.’는 로마 속담도 있다. 결과를 생각하고 행동하라는 것이다. 결과가 불확실하면 아니함만 못하다. 그리고 행동할 때는 힘이 수반되어야 효과가 있다. ‘큰 몽둥이를 갖고 다니되 말은 부드럽게 하라.’ 외교의 정곡을 간파한 시어도어 루스벨트 미 대통령의 말이다. 12월 19일 대통령 선거가 있다. 대통령의 외교언어는 곧 외교력이다. 세 후보의 외교언어 능력을 눈여겨보아야 한다. 아직 후보들은 인기가 없는 외교, 안보 이슈에 말을 아끼고 있다. 그러나 남북관계와 동북아의 영토분쟁, 민족주의, 정치 우경화, 군비경쟁 등 한국에 주어진 외교적 도전은 그 어느 때보다도 준엄하다. 한국의 미래는 외교전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북한과 러시아의 지도자는 교체되었고, 중국과 미국·일본의 정상은 곧 선출된다. 이들과 상대하게 될 새로운 한국 대통령의 외교력을 기대해 본다.
  • 정치 프레임은 논리가 아니다, 매력이다

    정치 프레임은 논리가 아니다, 매력이다

    추석입니다. 그것도 연말에 대선이 예정된. 그래선지 추석 민심을 겨냥한 대선용 책들이 범람(?)합니다. 역시나 썩 와닿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이 참에, 요즘 언론들이 앞다퉈 쓰는 프레임(Frame)을 한번 정리하려 합니다. 대선을 즐기는 또 하나의 방법쯤이라고 해두지요. 프레임은 세상을 대할 때 잣대로 쓰이는 어떤 틀을 말합니다. 1970년대 어빙 고프만이라는 학자가 쓴 뒤 심리학, 경제·경영학, 정치학 등 여러 분야로 널리 퍼졌습니다. 와튼 스쿨에서 13년간 인기강좌였다는 후광을 받아 베스트셀러를 기록한 스튜어트 다이아몬드의 책 ‘어떻게 원하는 것을 얻는가’(8.0 펴냄)도 결국 프레임에 대한 얘기입니다. 그럼에도 프레임이라는 단어가 대중화된 것은 아무래도 미국 인지언어학자 조지 레이코프의 공이라 해야겠지요. 대충 생각나는 것만 떠올려봐도 ‘코끼리는 생각하지 마’(삼인 펴냄), ‘프레임 전쟁’(창비 펴냄), ‘자유는 누구의 것인가’(웅진지식하우스 펴냄), ‘폴리티컬 마인드’(한울아카데미 펴냄) 같은 책들이 줄줄이 번역되어 나왔습니다. 이렇게 많이 소개된 것은 아무래도 상식을 뒤엎는 묘한 매력 때문일 겁니다. 진보진영의 18번 레퍼토리 ‘반대!’, ‘철폐!’라는 구호가 사실은 상대방 프레임을 더 강화시켜줄 뿐이라는 주장이었으니까요. 가장 강력한 슈팅인 줄 알고 발가락에다 온 힘을 다 모아 찼는데, 알고보니 우리 골대 쪽으로 차고 있더라는 겁니다. 레이코프가 책을 쓴 이유도 이겁니다. 사실에 근거해 논리적으로 합당한 얘기를 풀어내는 것이 중요하고, 프레임 같은 얘기는 일종의 테크닉 문제라고 보는 게 답답해서입니다. 레이코프의 한국판 B급 버전이랄까, 딴지일보 김어준은 ‘닥치고 정치’(푸른숲 펴냄)에서 이런 표현을 씁니다. “그런데 진보 정당의 방식은 이런 식이야. 처음 만난 상대 앞에 재무 계획서와 신혼방 설계도를 딱 꺼내놔. 그리고 입주할 주택의 입지 조건과 구입할 차량의 대출 조건 및 주변 교육 환경의 우수성에 대해 부동산과 금융, 교육 전문 용어를 섞어 진지하게 프레젠테이션하지. 그런 다음 건조한 표정으로 바로 결혼하재.” 김어준이 보기에 “정치란 국민과 연애하는 것”인데, 이게 과연 연애냐고 되묻는 겁니다. 레이코프는 이 문제를 ‘문화전쟁’이라 부릅니다. 자기가 만든 말이 아닙니다. 19세기 독일 비스마르크 정권이 가톨릭 세력에 맞서 추진한 세속화정책에서 나온 용어입니다. 이 단어가 미국에서 다시 나타난 것은 클린턴-르윈스키 스캔들 때입니다. 대중적 관심은 클린턴이 집무실로 르윈스키를 불러다 구강성교를 했을까, 그러니까 영어식 말장난으로 오벌(Oval Office·백악관 서쪽 대통령 개인 집무실)에서 오럴(Oral)했을까 같은 자극적 소재에 쏠렸습니다. 그런데 당시 미국의 식자층과 언론인들이 ‘문화전쟁’이라 부르며 우려했던 사태는 뉴트 깅리치의 공화당이 장악한 의회가 연방정부 폐쇄에 이를 정도로 클린턴 정권을 극한으로 몰아붙이는 상황이었습니다. 기독교 근본주의에 매몰된 공화당 내 극우파들 때문에 백인 하층 노동자들을 선동해 의회의 합의정치라는 틀 자체를 망가뜨리는 게 아니냐, 이로 인해 의회 포퓰리즘을 제어하기 위해 도입한 대통령제가 무력해지는 것 아니냐는 한탄들이 쏟아진 겁니다. 요즘 미국 대선에서 보듯, 이 문제는 아직도 해결되지 않은 것 같습니다. 이제 슬슬 대입이 되십니까. 미국에서 문화전쟁은 대개 레이거니즘이 시초로 꼽히는데, 한국에서 문화전쟁은 언제부터였을까요. 뉴라이트라 불리는 일군의 학자들, 조중동이라 불리는 보수언론 등이 ‘건국과 부국의 역사’, ‘산업화와 민주화를 넘어 선진화로’, ‘잃어버린 10년’ 같은 서사들을 끊임없이 만들어내고 전파한 시기부터가 아니였을까 싶습니다. 현 정권의 멘토라 불리는 최시중 전 방송통신위원장이 ‘정명’(正名)을 말하고, 지금은 박근혜 캠프에 가 있는 이상돈 중앙대 교수가 우파가 문화전쟁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주장하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는 겁니다. 이들 주장이 사실적으로, 논리적으로 옳고 그르냐는 중요한 문제가 아닙니다. 아니, 레이코프가 수차례 얘기했지요. 상대가 말한 것을 두고 옳으냐 그르냐 따지는 순간, 대중들은 코끼리를 떠올리고 그들의 프레임은 작동하기 시작합니다. 레이코프에게서 흥미로운 부분은 바로 그 뒤의 대목들입니다. ‘그럼 어떻게 할까요’라는 질문에 그는 대면으로든, 서면으로든, 전화로든, 뭐로든 어떤 사안에 대해 질문받거나 입장 표명을 요구받을 때에 최대한 겸손하고 친절하게 다 설명해주라고 합니다. 이거 참 묘하게 웃깁니다. 인지과학이 어쩌고, 프레임이 어쩌고 한창 떠들다 결론은 ‘성의 있게 답하라.’니까요. 이 부분에서 ‘정치의 발견’(박상훈 지음, 폴리테이아 펴냄) 제3강 ‘정치의 기술, 실천의 기술’ 부분을 꼭 참고해 볼 만합니다. 시카고 빈민운동의 대부로 힐러리 클린턴과 버락 오바마에게 큰 영향을 끼친 정치이론가 사울 알린스키(1909~1972) 얘기가 집중적으로 소개되어 있습니다. 최근 미국 대선의 화제 가운데 하나는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빈 의자 퍼포먼스였지요. 그런데 그 퍼포먼스를 눌러버린 건 오바마의 대응이었습니다. “그래도 난 당신의 팬”이라 대꾸해버렸으니까요. 요즘 말로 완전 ‘대인배 포스’지요. 인간적 매력이 먼저이고 그 뒤에 사실관계나 논리적 정합성을 갖춘 서사가 따라붙어야 한다는 것, 그게 프레임의 작동방식이라는 겁니다. 모두가 프레임, 프레임을 외치는 상황 속에서 어떤 후보가 프레임의 이런 속성을 정확히 알고 잡아낼 수 있을까요. 관전 포인트입니다.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신용조회 자주 하고 신용카드 바로 쓰고 빚독촉 전화 잘 받고

    신용조회 자주 하고 신용카드 바로 쓰고 빚독촉 전화 잘 받고

    최근 연체율이 크게 오르면서 금융권의 대출 행태가 더 보수적이 될 전망이다. 돈 빌리기가 점점 더 어려워진다는 의미다. 이럴 때일수록 개인 신용등급 관리가 중요하다. 대출 가능성도 높일뿐더러 조금이라도 낮은 이자에 돈을 빌릴 수 있기 때문이다. 3일 금융업계에 따르면 지난 5월 은행권 가계대출 잔액은 455조 8000억원을 기록했다. 연체율은 0.89%로 5년 2개월 만에 가장 높았다. 집단대출 연체율은 1.56%로 사상최고치를 기록했다. 대부업 연체율도 지난해 말 8.0%로 2년 만에 최고치로 올라섰다. 쉽게 돈을 빌릴 수 있어 ‘가계부채의 바로미터’로 불리는 신용카드 연체율은 지난 3월 말 3년 만에 2%를 돌파했다. 이렇듯 연체가 늘다 보니 금융권은 대출 심사를 강화하고 나섰다. 조금이라도 떼일 위험이 있는 돈은 아예 빌려주지 않겠다는 의도다. 그도 그럴 것이 연체가 쌓이게 되면 금융회사의 건전성이 흔들려 더 큰 ‘돈맥경화’를 불러올 수 있다. 금융소비자 입장에서는 신용 관리를 더 철저히 해야 하는 것이다. 개인 신용등급은 자신도 모르게 떨어질 수 있어 각별한 주의가 요구된다. 나이스(NICE)신용평가정보가 운영하는 크레딧뱅크의 ‘신(新)신용관리 10계명’ 조언을 소개한다. 우선 신용정보 조회를 자주 해야 한다. 잘못된 상식 가운데 하나가 신용 조회를 하면 신용등급이 떨어진다는 생각이다. 본인이 직접 자신의 신용을 조회하는 것은 신용도에 아무런 영향을 주지 않는다. 오히려 자주 확인하고 계획을 세워 꾸준히 관리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빚을 정리하는 것도 매우 중요하다. 대출이 있으면 상대적으로 신용등급에 불리하다. 빚이 많을수록, 건수가 잦을수록 신용점수는 떨어지게 돼 있다. 대출 금리가 낮다 보니 빚을 갚는 대신에 적금을 드는 방안을 놓고 고민하는 경우가 적지 않은데, 전문가들은 빚부터 갚으라고 조언한다. 적금이 있다고 해서 신용등급이 좋아지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신용카드는 안 쓰기보다 잘 써야 한다. 카드 사용 실적이 아예 없으면 신용 거래가 없는 것으로 간주돼 오히려 등급 평가에 불리하기 때문이다. 한도 대비 적정 수준을 사용하고 연체하지 않는다면 금융거래 내역과 상환 이력 등이 신용평점에 가산점으로 작용할 수 있다. 급전이 필요하다고 해서 섣불리 비제도권 금융회사를 이용하면 신용등급이 수직 하락한다. 부득이하게 대부업체를 이용해야 때는 반드시 등록업체인지 여부를 확인해야 한다. 소액이라도 불법 대부업체를 이용하면 신용등급은 걷잡을 수 없이 악화된다. 빚 갚으라는 독촉 전화도 피하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다. 무작정 피했다가는 더 큰 피해를 볼 수도 있다. 자신도 모르게 빚이 늘거나 신용등급이 하락할 수 있기 때문이다. 금융거래 알림(SMS) 및 고지서 수신 정보 등이 바뀌었을 때는 해당기관에 꼭 통보하는 게 좋다. 이미 연체가 생겼다고 해서 체념하지 말고 수시로 연체 정보를 체크해야 한다. 이성원기자 lsw1469@seoul.co.kr
  • [씨줄날줄] ‘헛방’ 출구조사/곽태헌 논설위원

    선거를 앞둔 여론조사의 원조 격은 미국이다. 리터러리 다이제스트지(誌)는 1916년부터 전화와 자동차 등록명부를 이용, 많은 모의투표 용지를 보낸 뒤 회수해 결과를 예측했다. 당시로서는 획기적인 아이디어였다. 그러나 1936년 대통령선거 때 결과와는 정반대의 예측 결과를 발표해 망신을 샀다. 많은 표본이 중요한 게 아니라, 지역과 소득·연령·성별 등에 따른 비례할당법에 따른 정교한 조사가 필요하다는 것을 일깨워준 계기가 됐다. 선거 전에 하는 여론조사보다 정확도가 높은 게 출구조사(Exit Poll)다. 출구조사는 투표소에서 투표를 막 마치고 나오는 유권자를 상대로 어느 후보를 선택하였는지를 조사하는 방법이다. 여론조사에서 응답한 유권자가 실제는 투표에 참여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점에서, 출구조사의 정확도는 여론조사보다 높을 수밖에 없다. 미국에서는 수정헌법 1조에 의해 출구조사가 보장돼 있다. 1993년엔 출구조사만을 전담하는 투표자뉴스서비스(VNS·Voter News Service)라는 컨소시엄이 설립됐다. 여기에는 ABC, NBC, CBS, CNN 등이 참여하고 있다. 2000년 대통령선거 때 당시 부통령이던 앨 고어의 당선을 성급하게 잘못 예측해 VNS와 전 회원사가 의회 청문회에 불려가 곤욕을 치르기도 했다. 국내 방송사들도 정확한 선거 예측을 위해 출구조사를 하고 있다. 1996년 15대 총선 때는 선거법상 투표소로부터 500m 내에서는 투표자를 상대로 한 출구조사를 할 수 없었으나 1999년 말 선거법 개정에 따라 그 범위가 300m로 완화됐다. 2004년 3월 선거법 개정으로 100m로 더 완화됐다. 출구조사의 정확도를 높이기 위해서였지만 결과는 그리 신통치 않았다. 15대 총선 때에는 당시 여당의 의석수를 175석으로 예상했으나 실제는 155석에 불과했다. 2000년 16대 총선 때에는 제1당과 제2당을 잘못 예측하는 ‘굴욕’을 당했다. 2008년 18대 총선의 출구조사에도 직접 출구조사는 40%였고, 전화예측조사가 60%였다. KBS, MBC, SBS 등 방송 3사는 그제 실시된 19대 총선을 앞두고는 70억원이나 들여 100% 직접 출구조사로 정확도를 높이려고 의욕을 보였지만, ‘혹시나’는 ‘역시나’였다. 방송 3사는 새누리당과 민주통합당의 의석수를 각각 20석 정도의 여유치를 둔 예상치를 발표했지만, 이마저도 정확히 맞히지 못했다. 참고는커녕 괜한 혼란만 주는 무용지물에 가까운 출구조사라면 굳이 할 필요가 있을까. 이대로라면 출구조사 무용론이 나오지 않을까. 곽태헌 논설위원 tiger@seoul.co.kr
  • 주류경제학이 지운 중상주의 ‘富國의 비결’

    주류경제학이 지운 중상주의 ‘富國의 비결’

    부키에서 냈다. 2008년 대안적 경제저작에 주어지는 뮈르달상을 받았다. 장하준 영국 케임브리지대 교수가 받은 그 상이다. 추천사도 장 교수가 썼다. 감이 온다. 주류경제학에 대한 비판이다. 농업과 서비스업이 아니라 제조업이 국부의 근원이며, 제조업 육성을 위해 강력한 개발국가가 있어야 하고, 그러려면 시장이라는 이름으로 정부와 연고주의와 지대추구를 모조리 내치는 것은 엄청난 실수라고 주장한다. 시장에 대한 ‘깨알 같은 디스(상대를 공격하는 신조어)’가 넘쳐나는 이 주장은 ‘사다리 걷어차기’에서부터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에 이르기까지, 장 교수의 저작을 탐독해온 이들이라면 익숙한 논리다. ‘부자나라는 어떻게 부자가 되었고, 가난한 나라는 왜 여전히 가능한가.’(에릭 라이너트 지음, 김병화 옮김)는 이 장하준 논리의 심화확대버전이다. 시장에 대한 절대적 믿음을 깨기 위해 장 교수가 역사에서 찾을 수 있는 반대증거를 꾸준히 제출한다면, 저자는 아예 “몇십 년 만에 한 번씩 지표 위로 솟아오르는 지하 하천처럼 움직”이는 비주류경제학의 복원이라는 정공법을 택했다. 비주류란 19세기 말 한계혁명의 맥을 잇는 주류경제학이 경제학사에서 지워버린 유럽의 중상주의와 역사주의 전통이다. 지웠다는 말은 과장이 아니다. 저자는 미국과 유럽의 각 대학에서 이런 전통에 입각한 저서와 자료들을 계속해서 폐기하고 있고, 이를 자신이 구해다 집에다 부려놓다 보니 장서가 5만권에 이르렀다고 밝혔다. 자신의 입장을 ‘다른 전통’이라 표현하면서 종교의 이단심판 냄새가 물씬 풍기는 ‘Canon’(교회법)이란 단어를 쓰는 데서도 이에 대한 분노는 잘 드러난다. 저자는 ‘다른 전통’의 존재를 입증하고자 14세기 르네상스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처음으로 부를 쌓은 곳은 이탈리아의 도시국가들. 이들의 발전전략을 고스란히 따라한 곳이 바로 15세기 이후 영국의 튜더왕조, 17세기 프랑스 중상주의를 이끌었던 장 바티스트 콜베르 재정총감, 18세기 ‘미국 제조업에 대한 보고서’를 내면서 산업발전의 아이디어를 제공한 알렉산더 해밀턴 초대 재무장관, 19세기 유치산업보호론을 내세워 자유무역은 모든 나라가 산업화된 뒤에나 해야 한다고 주장한 프리드리히 리스트로 이어진다. 일본의 메이지유신, 1960년대 이후 한국과 타이완의 고도성장도 이 전통의 적자라는 것이다. 즉, 서구 열강의 탄생과 동아시아의 기적은 보이지 않는 손이 만든 완전균형의 덕택이 아니라 “힘을 이용한 규모의 경제”와 “모방”에 의한 것이라는 얘기다. “일반적 경제학 교과서에 비유해서 말하자면 경제발전은 완전시장의 실패작, 그것도 엄청난 실패작”이다. 그러면 르네상스기 도시국가에 뿌리를 둔 발전의 비결에는 대체 뭐가 들었는가. 저자는 1613년 안토니오 세라가 내놓은 ‘국가의 부와 빈곤의 원인에 관한 짧은 소고’라는 글에 주목한다. 고향 나폴리보다 환경이 열악한 베네치아가 왜 더 발전했느냐는 게 세라의 궁금증이다. 연구 결과는 단순했다. 물 위에 세워진 국가라 “토지를 개발할 여지가 없으니 제조업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특별히 잘나서가 아니다. 제조업을 하다보니 다양한 직업이 발달했고, 이 직업 간 시너지효과가 발생하면서 더 나은 생산품을 내놨고, 그러다 보니 무역에서 우위를 차지했다는 것이다. 동시에 개발할 토지가 없으니 혁신에 딴죽을 걸 지주계급과 봉건제가 없었고 민주주의로 나아가려는 경향이 뚜렷이 드러났다. 다른 나라들은 모두 이 분석을 받아들였다. 심지어 개간할 땅이 있어서 지주계급이 존재했던 피렌체의 경우, 수세기 동안 지주의 참정권을 법으로 제한하기까지 했다. 이는 아메리카를 식민지화하면서 한발 앞서나갔던 스페인이 오히려 주저앉아버린 이유와도 직결된다. 아메리카에서 엄청난 금과 은이 유입됐으나, 지주계급의 이익을 지키기 위해 농업을 보호하고 제조업을 희생시키다보니 결국 망해버렸다는 것이다. “금광은 실제 금광이 아니라 제조업”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해서다. 수요와 공급의 수학적 모델에 따른 아름다운 시장균형을 두고 미학적 감탄사를 연발하기보다, 실제 역사 사례를 우위에 놓는 이런 분석을 진행하다보니 주류경제학에 대해서는 비판을 넘어서 조롱에 가까운 평가를 한다. 경제발전이란 “기술변화, 수확체증, 고도의 노동분업, 불완전 경쟁, 그리고 이들 간 시너지 효과”라는 점은 14세기 르네상스 이후 명백했으나 일반 경제학 교과서는 이런 역사적 사실을 외면하고 “수학적 저항이 최소인 방향을 따라 간다.”라는 얘기다. 그러다 보니 논리 자체는 완벽하고 논리를 두고 다투는 논쟁에선 승리하는데, 정작 그 차갑도록 투명한 논리는 현실과 무관하다. 지금 경제학은 “시체애호적”이고 “자폐증적”이다. 학자들끼리 가지고 노는 장난감이 되어버렸다. 가령, 책의 주된 논의는 애덤 스미스의 노동가치설과 데이비드 리카도의 비교우위론을 뼈대로 삼는 경제학의 ‘수확체감 법칙’을 비판하고 ‘수확체증 법칙’이 어떻게 가능한가에 대해 얘기하는 것이다. 시장을 긍정했으니 스미스와 리카도가 자본주의를 찬양했을 것 같지만, 실제로는 수확체감 법칙에 따라 자본주의는 장기정체상태에 접어들 것으로 전망했다. 수확체증이라면 ‘저물가 고성장’이라는 미국 클린턴 행정부 때의 ‘신경제’를 뒷받침하는 폴 로머의 신성장이론이 떠오른다. 이 논의는 DJ정권 때 ‘신지식인’과 IT열풍으로 한국에도 밀어닥쳤다. 저자는 이 주장을 “IT 주식 투기 붐”이란 단 한마디로 잘라 버린다. ‘규모의 경제’에 기반한 국제무역 논의를 펼쳐 리카도의 비교우위론을 교정했다는 평을 받고, 그 평에 어울리게 주류경제학에 대해 비판적인 폴 크루그먼에 대해서도 가차없다. “일반적 이론보다 현실을 더 잘 설명하는 이론을 개발해놓고도 실제 정책에서 활용하지 않아 이론과 현실이 따로 노는 태도” 때문이다. 저자는 아예 ‘리카도의 악덕’(Ricardian Vice)에 빗대 ‘크루그먼의 악덕’(Krugman Vice)이라고까지 한다. 리카도야 몰라서 그랬다 쳐도, 뻔히 알면서 실행하지 않은 크루그먼은 더 나쁜 게 아니냐는 얘기다. 수확체증 법칙을 먼저 발견했다고 다투는 로머와 크루그먼을 비꼬면서 저자는 그 법칙은 ‘재’발견됐다고 단언한다. 앞서 봤듯, 이미 르네상스 시기 때부터 유구하게 이어져 내려온 전통이 있는데 무슨 소리냐는 얘기다. 노르웨이 출신인 저자는 하버드대 석사, 코넬대 박사를 거쳐 세계 각국에서 실제 사업과 강의를 병행했다. 저자는 누구는 잘살고, 누구는 못 사느냐는 스무 살 때부터의 의문을 풀기 위한 긴 여정의 결과로 이 책을 썼다 했다. 저자의 장서 5만권과 “경제학 분야 인간문화재”라 부르는 장 교수의 추천사는 그 증거물이다. 그래서 서술 밀도가 대단히 높다. 주류·비주류 경제학 전통에 대해 논하는 1·2장은 단 한 문장도 놓치기 아깝다. 신제도주의 경제학은 주류경제학의 실패에 대한 변명, 그것도 인종주의와 결합한 변명에 불과하다는 6장과 제조업과 산업화 문제를 근대민족국가의 탄생과 민주주의로까지 연결짓는 7장은 꼭 읽어볼 만하다. 2만원.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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