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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민족사관확립의 중추되라(사설)

    국사편찬위원장이 10년여만에 바뀜으로써 「국편위」의 개혁과 개편에 대한 학계의 기대와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위원장의 경질과 함께 지난 6월30일자로 국사편찬위원 15명 전원의 임기가 끝나 곧 있을 새 위원의 위촉도 그동안 침체된 국사편찬위원회의 활성화에 전기를 마련해줄 것으로 기대된다. 「국편위」는 민주사의 편찬을 비롯,사료수집·조사·보관및 자료간행 등을 기본적인 기능으로 하고 있다.해방되던 해 「국사관」으로 출범했으니까 반세기의 역사를 지니게 되었다. 어느 시대에나 올바른 역사인식은 타당한 「시대정신」을 창출해내고 그것은 그 사회와 국가발전의 원동력이 되는 법이다.인간은 정확한 역사인식을 통해서 과거를 반성하고 미래의 발전을 도모하는 것이다.따라서 국사의 편찬과 연구를 총괄하는 「국편위」의 중요성은 실로 막중하다 아니할 수 없다. 김영삼대통령이 신임 이원순위원장에게 『국사편찬위가 새로운 역사의식을 가지고 역사 바로잡기와 바로 세우기에 각별한 관심과 노력을 기울여달라』고 한 당부도 역사인식의 중요성을 강조한 것이다. 우리 국사연구가 추구해야 할 과제는 두말할 것도 없이 올바른 역사관을 토대로 하는 민주사관의 정립이라고 하겠다.일제 식민지지배를 통해 왜곡되고 격하당한 우리역사의 줄기가 제 모습으로,제자리에 복원되어야만 한다.통일을 앞두고 있는 우리들에게 그러한 민족사관의 확립은 더욱 절실한 명제로 대두된다. 그럼에도 최근 사학계일부에서는 진보주의라는 미명하에 근·현대사를 왜곡기술하는 사례가 빈번하여 우려를 낳게 하고 있다.96년부터 사용될 중·고교 국사교과서의 1차 시안에서 연구팀이 제시한 용어들은 역사의 진실을 왜곡하고 국민정서를 배신하는 황당한 내용들이다.「제주도 4·3사건」을 「4·3항쟁」으로,「대구폭동사건」을 「10월항쟁」으로,「동학농민운동」을 「농민전쟁」으로 기술하는등 역사왜곡이 극심한 북의 사회주의시각과 유사한 관점을 보였다.검증되지도 않은 소수의 학설을 교과서에 기술하려 했다는 것은 결코 용납될 수 없는 독선이요,오류다.사학계 일각의 이런 시각을 우리는 크게 경계하지 않을 수없다.신임 위원장의 취임과 새 편찬위원의 위촉으로 새 모습을 보일 「국편위」는 학계의 이같은 혼란에 깊은 관심을 갖고 그 대책을 세워야 할 것이다. 직제의 개편이나 연구위원의 확충,발간사업 확대등도 해결해야 할 과제다.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한국사연구를 주도하는 핵심기관으로서 올바른 사관의 방향을 제시하고 민족사관의 기틀을 확립하는 일이라고 믿는다.일부 좌경성향의 사학자들에 대해서는 학문적인 연구성과와 논리로써 오류를 시정토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 진보사관 배제… 객관성에 역점/국사교과서 개편시안의 내용과 특징

    ◎「쇄국정책」→「통상거부」·「창씨개명」→「일본식성명 강요」로/」5·16」·「10·26」·「12·12」는 평가 유보 교육부의 국사교과서 개편시안은 각계의 비판을 수렴,진보적이기 보다는 보수적·안정적인 역사의 객관적 서술에 중점을 두고있다. 이는 학계의 시비가 가려지지 않거나 평가가 덜 끝난 사건·용어를 신중하게 선택,학생들의 가치관·역사관의 혼란을 줄이겠다는 의도로 풀이된다. 「더도 덜도 아닌 있는대로」기술하는 교과서 특성을 여실히 보여준 셈이다. 이번 시안은 학계연구팀의 3월과 7월 두차례에 걸친 보고서와 국사편찬위원회 연구실팀의 심사자료를 바탕으로 교육부가 위촉한 최병헌서울대교수(국사학)등 7명의 전문가가 마련했다. 이와관련,준거안 2차 보고서를 내며 이존희교수는 『지난 3월 준거안을 발표한 것은 개인의 주관성을 최대한 배제하고 학계·교육계의 폭넓은 의견을 수렴하기 위한 것이었다』며 『이때 보여준 각계의 폭발적인 관심에 책임감을 느껴 보다 객관적이고 국민적 정서에 맞는 보고서를 작성하게 됐다』고 밝혔다. 한명희 교육부 편수국장도 『국사교과서의 개편내용이 현행과 큰 차이없이 심의절차를 거쳐 시안대로 확정될 것』이라며 쟁점사안의 논쟁을 매듭지었다.개편시안의 특징으로는 크게 네가지를 꼽을 수 있다. 첫째는 자칫 자유민주주의체제를 뒤흔드는 과격하거나 진보적인 개념규정을 피한 점이다. 당초 준거안 발표시 거센 비난을 산 제주도 4·3항쟁과 대구항쟁을 현행대로 사건·폭동으로 기술하고 주체사상을 삽입하지 않기로 한 것이 대표적인 예이다.두 사건의 역사적 평가가 끝나지 않은 상태에서 진보학설을 그대로 수용할 경우 국가의 정체성에 미치는 악영향과 학생들의 혼란을 막기 위한 것이다.김일성사상은 현행 유일사상으로도 설명이 가능해 주체사상을 빼기로 했으며 김의 사망과 후계체제 구축은 도덕·국민윤리 과목에 반영하기로 했다. 이같은 방향은 최근 사상논쟁의 방향과 일맥상통한 것이어서 주목된다.그러나 주민전체에 굴레를 씌운 여수·순천반란사건은 사건으로 표시하고 그 주체를 「주둔군 내부의 일부 좌익세력과 이 지역의 공산주의자들이 주동이 되어」라는 식으로 명확히 서술키로 했다. 둘째는 고대사 부문에서 학계의 정설을 존중하되 학문적 성과를 반영,이론이 있는 내용은 따로 설명을 붙였다.우리나라의 벼농사 시점이 청동기시대이나 최근 발견된 양양·김포등지의 쌀유적지를 감안,신석기시대로 거슬러 올라갈 수 있음을 주로 설명한 게 예. 국가의 형성과정도 이론이 있으나 군장국가­연맹왕국­고대국가로 통일시켰다.양인 주장이 있는 고려시대 천민계층인 향·소·부곡민이 특정역을 부담했다는 점에서 그대로 천민계층으로,근세의 태동시기를 18세기가 아닌 17세기로 서술하기로 한 점등이다. 셋째는 지나치게 왜곡된 역사개념을 중립적 시각에서 바로잡고 선조들의 투쟁을 주체적 입장에서 바로잡은 것. 이제껏 대원군의 대외정책을 국수적인 관점에서 몰아붙여 쇄국정책으로 기술한 것을 외세침탈에 대한 항거라는 점을 감안,잘잘못을 가려 통상거부로 표기한다.식민사관의 잔재인 창씨개명을 주체적 입장에서 일본식 성명강요로 바로잡는다. 또 일제하인 37년30만 동포가 중앙아시아로 이주한 사실을 새로 기술하고 만주지역이 과거 우리땅이란 점을 감안,49년 이후는 중국 동북지역으로 표기한다.6·25전쟁을 한국전쟁이 아닌 그대로 표기한 것도 주체적 사관을 반영한 흔적이다.광복후 반민특위 활동과 마산의거를 새롭게 평가한 점도 국가의 정통성 유지측면과 밀접히 관련돼 있다. 마지막으로 현대사에 있어 주역들이 생존해 있거나 재판계류중인 미묘한 사건등에 대해서는 평가를 유보했다. 5·16,10·26,12·12등을 쿠데타가 국민들의 언어정서에 맞지않아 이 개념을 포괄하는 정변등으로 표현한 것이 대표적이며 이는 2000년이후 7차 교과서개편시 후세사가들의 몫으로 남게됐다.
  • 교과서내용 감독 철저해야(사설)

    96학년도부터 사용될 중·고교 국사교과서의 개편을 위한 교육부시안이 31일 발표됐다.이 시안에 의하면 당초 학계연구팀이 마련해 논란을 빚었던 근·현대사의 용어문제가 대체로 현행교과서대로 기술토록 되어있어 우선 다행스럽게 여겨진다. 지난3월 「국사교육내용전개의 준거안연구」를 맡았던 연구팀들은 1차시안에서 「제주도 4·3사건」을 「4·3항쟁」으로,「대구폭동사건」을 「10월항쟁」으로,「동학농민운동」을 「농민전쟁」으로 기술하는등 역사의 진실을 북의 사회주의 사관에 근접한 왜곡된 시각으로 기술하려하는 듯한 의구심을 자아내게 했었다.연구자들의 주관을 지나치게 노출시켜 객관성이 결여되기도 했던 이같은 용어의 선택은 국민정서에 맞지않는 것이어서 여론의 호된 비판을 받았었다. 역사기술에 있어서 용어의 선택이란 사실을 포괄하고 개념을 정립시켜주는 역할을 하기때문에 가장 중요한 작업이다.또한 국가와 국민이 납득할 수 있는 사관을 기초로 해야 한다.따라서 학자들의 충분한 연구와 검토를 바탕으로 신중하게 결정되어야만한다.역사인식에 대한 고정관념은 벗어나야 하지만 균형감각을 갖추는 것이 또한 필수적이다.특히 교과서의 기술에서는 학계의 공통된 연구성과를 반영해야함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그런 점에서 현행교과서의 용어들을 대부분 그대로 쓰기로 한 교육부의 시안은 합리적이고 타당한 결정이라고 본다. 다만 「4·19의거」가 「4월혁명」으로,「5·16군사혁명」이 「5·16군사정변」으로 바뀐 것은 그나름의 설득력이 있다고 보여진다. 현대사는 역사적평가가 미완으로 되어 있으므로 역사기술에서 많은 어려움을 겪게된다. 무엇보다도 연구팀의 시안에서 주장했던 김일성주체사상의 서술을 완전 삭제한 것은 지극히 당연하고 합당한 조치라 하겠다. 대학강단에서 공공연히 주체사상강의가 이루어지고 대학의 교양과목교재가 이적성의 급진좌경사상을 수록,가르치고 있는 사실들이 발견되고 있는 요즈음이다.시대착오적인 낡은 이념으로 무장한 주사파학생들이 자유민주주의체제를 위협하면서 우리사회의 혼란을 가중시키고있는 상황이 아닌가.중고교 국사교과서에주체사상을 서술하겠다는 연구팀의 당초 발상은 위험하기 짝이 없는 것이었다.어떻게 그런 발상이 나왔는지 놀라울 뿐이었다. 교육부의 심의안은 앞으로 1종도서심의위·국사편찬위 등 3단계의 심의 검토를 거쳐 확정하게된다.그 과정에서 전문가들의 충분한 검토작업이 있을것으로 예상된다.국사교과서란 검증되지않은 일부학자의 학설을 소개하는 책이 아니다.지난번 물의를 일으켰던 연구팀의 시안을 교훈삼아 신중하고 객관적인 재편작업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해주기를 기대한다.
  • 국사교과서 개편시안 확정/교육부/대구폭동·12·12사태는 불변

    ◎4.19의거→혁명/5.16혁명→정변/여순반란→사건/96학년부터 중고사용 오는 96학년도부터 사용될 중·고교 개편 국사교과서에서는 「4·19의거」가 「4월혁명」으로,「5·16 군사혁명」이 「5·16 군사정변」으로,「여수·순천반란사건」은 「여수·순천사건」으로 바뀌는등 근·현대사가 전면 재조명된다. 그러나 그동안 역사용어 개정을 위해 연구팀이 마련해 논란을 빚은 「제주도 4·3항쟁」은 「제주도 4·3사건」으로,「대구 10월항쟁」이 「대구폭동사건」,「5·16 군부쿠테타」가 「5·16 군사정변」,「12·12 군부쿠테타」가 「12·12 사태」로 대부분 현행 교과서대로 기술된다. 또 최근 대학운동권의 주사파활동과 관련,사상논쟁을 불러일으킨 김일성의 주체사상을 교과서에 실으려던 연구팀의 당초 시안이 백지화됐다. 교육부는 31일 지난 7월 연구팀(연구책임자 이존희 서울시립대교수)이 제출한 준거안 연구보고서를 수정·보완한 이같은 내용의 「국사교육 내용전개의 준거안」 시안을 발표했다. 이 시안은 9월2일 한림대 이기백교수등 31명으로 구성된 교육부의 준거안심의위원회의 심의를 시작으로 1종도서 편찬심의위원회,국사편찬위원회의 3단계 심의·검토작업을 거쳐 10월중에 최종 확정된다. 이 시안은 학계의 논란이 있거나 통일되지 않은 역사용어는 현행대로 기술하고 재판에 계류중이거나 역사평가가 끝나지 않은 현대사는 내용을 서술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
  • 6·25전 좌익활동 학계의견 정리

    ◎“대구폭동­제주 4·3사건 항쟁일수 없다”/박헌영의 「미군정 타도」 폭력 노선이 원인/민중사관 주장 극복… “분명한 폭동” 결론 「대구폭동」인가 「10월항쟁」인가,「제주도 4·3사건」인가 「제주도 4·3항쟁」인가.지난 봄 교과서의 역사용어 변경을 위한 시안을 놓고 벌어졌던 이같은 논란은 과거와 같은 권위주의 정부 아래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비록 논의 차원이기는 했지만 새 정부가 그처럼 진보적인 사관을 교과서개편 문제에까지 개방했기에 일어난 일이었기 때문이다.그만큼 정부의 자신감이 바탕이 되었다는 평가였다. 그러나 나라 전체가 들썩거렸을 만큼 파문이 길었던 것은 이 시비가 대한민국의 정통성 시비와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6·25 44주년을 앞두고 이 문제가 다시 기억되어야 하는 것도 「10월 항쟁」「4·3항쟁」이라는 시각이 수용된다면 6·25 또한 「민족해방전쟁」이라고 할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박성수한국정신문화연구원교수는 『「10월항쟁」이나 「4·3항쟁」이라는 표기는 첫째 국내의 민중사관,둘째 북한의조선전사,셋째 중국의 혁명사관에서 영향을 받고 있다는 사실을 입증한다』고 단언했다.그들의 시각에 따르면 일제하의 독립운동은 이른바 「민족해방투쟁」인 만큼 8·15는 광복이 아닌 「민족해방」이다.또 일제하 「민족해방투쟁」은 8·15이후 미군정 치하 남한에서 「민중항쟁」이라는 형태로 계속 진행된다는 것이다. 박교수는 『이같은 논리에 따라 그들은 「민족의 통일염원을 저버린 대한민국의 건국은 1950년 한국전쟁으로 징벌을 받게되며 6·25는 북침이었을지도 모르는 단지 한국전쟁일 뿐」이라고 해석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하현강연세대교수는 『그같은 민중사관을 그동안 적지않은 학자들이 편향적이 아닌가 우려하면서도 용인해 온 것은 학문의 자유를 존중했기 때문』이라면서 『학계를 벗어나면 용인되기 어렵다는 사실을 알아야 할 것』이라는 입장을 보였다. 학자들은 「폭동」과 「사건」이라는 단어의 차이만큼 현재 국사 교과서의 표기대로 「대구폭동」과 「4·3사건」을 차별화한다. 이현희성신여대교수는 먼저 『「대구폭동」은 폭동일 뿐』이라고 말했다.아무리 진보적인 연구성과가 나와 있다고 해도 그 때를 체험·목격한 격앙의 세대가 악의적의 공산 파괴공작의 맥락에서 비롯된 당시 상황을 증언·열변하고 있는 한 달리 평가할 수 없다는 것이다. 진덕규이화여대교수는 『1948년 대구에서 일어난 사건을 폭동으로 보느냐 항쟁으로 보느냐는 문제는 타협의 여지가 없다』면서 『이는 우리 국가의 이념까지 연결되는 사안』이라고 말했다. 이현희교수는 그러나 『과거 일반화된 표기였던 「4·3제주폭동」은 그 간의 연구와 지역적 특수성으로 볼 때 「폭동」이라 표기하기에는 사실과 거리가 있다는 것이 학계 대다수의 시각』이라고 전하고 『이같은 시각은 교과서에 「4·3사건」이라고 표기됨으로써 이미 수용된 상황』이라고 말했다. 한승조고려대교수는 이 두 사건을 남로당 총책 박헌영과 직접적으로 연결시켰다.남로당은 미소공동위원회가 실패하자 1946년 가을부터 폭력투쟁 노선으로 전술을 바꿨으며 이는 좌익세력에 대한 과신과 우익 세력에 대한 과소평가에서 비롯된 과오로「대구폭동」과 「4·3사건」이 대표적이라는 것이다.한교수에 따르면 박헌영이 보기에는 미군정이 국민적 지지기반을 갖지 못했고 보수세력도 한줌 밖에 안되므로 밀어붙이면 된다고 계산했다.한편으로는 북한 인민군이 도와줄 것이라고 생각해 3만명의 경찰과 5만명의 국방경비대를 상대로 폭력과 무장투쟁을 하다 좌익세력은 모두 소진됐다.또 박헌영은 남로당 조직에게 모두 총탄이 되어서 「5·10총선거」를 저지할 것을 명했으나 많은 인명의 살상과 대량 구속을 초래했을 뿐 대한민국 정부수립을 저지하지 못했다.결론적으로 상대방의 전력을 정확하게 평가하지 못하고 극한투쟁을 벌이다 좌익세력의 총 붕괴를 재촉했을 뿐이라는 것이다. 그동안 정통주의적 입장에 서는 학자들 사이에는 자성의 목소리도 있었다.사람에 따라 다르기는 하나 좌익·혁신적인 학자들에 비해 무기력하고 나약하며 기회주의적인 경향이 없지 않았다는 것이다.좌파학자들에게 보수·반동·어용으로 낙인찍히며 공격당할까 두려워 사실과 다른 억지주장을 하고 있음에도 이의나 반론을 제기하기를 꺼려온 것도 사실이었다. 그러나 우려 속에서도 이제 폭동을 폭동이라고 제목소리를 내는 학자가 많아졌다는 것은 폭동이냐 항쟁이냐의 논쟁을 계기로 우리 학계가 한부분의 건강은 되찾았다는 것을 의미한다는 평가이다. ◎46년10월 대구폭동/경찰서 등 방화·군수 살해/식량요구 시위가 발단… 경남북 등 확산 「대구폭동」은 1946년10월1일 상오 쌀을 나누어준다는 풍문을 듣고 대구시청 앞에 모인 1천여명의 시위가 발단이 됐다.당시는 미군정 아래 좌우대립으로 정국불안이 계속되고 물자부족과 군정당국의 식량공출로 생활고가 극심한 가운데 좌익계열의 「조선노동조합전국평의회」(전평)가 주도한 이른바 「9월총파업」이 전국을 휩쓸고 있는 상황이었다. 사태는 하오 들어 시위군중이 1만여명으로 늘어난 가운데 하오7시쯤 대구역 앞에서 경찰의 사격으로 한 시민이 숨지면서 걷잡을 수 없이 번져나갔다.흥분한 시민들은 이튿날인 2일 아침부터 경찰서·역·시청 앞 등에서 대규모시위를 벌였고 당초 식량배급을 요구하던 구호도 애국자석방,조선인에게 행정권이양 등 정치적 문제로 발전되어갔다.경찰서를 점거해 무기를 탈취하고 대구시청 간부의 집을 습격하기에 이르렀다.이에 군정당국은 하오7시 대구일원에 계엄령을 선포했고 미군의 출동으로 대구의 소요사태는 진정국면에 접어들었다. 그러나 시위는 다음 날인 3일 저녁부터 영천·달성 등 주변지역으로 번져나가 11월 중순까지 경북전역과 경남·전남·강원지역에서 계속됐다.시위가 일어난 대부부의 지역은 경찰서가 습격당하고 교량·철도가 파괴됐다.특히 시위가 극심한 영천의 경우 경찰서·군청·재판소가 불타고 군수가 살해되는 사태가 벌어졌다. ◎48년4월 4·3사건/좌익의 지서습격이 원인/9년간 희생자 3만∼8만명 추정 「4·3사건」은 제주도에서 1948년4월부터 만9년동안 최소 3만명에서 최대 8만명으로 추정되는 희생자를 낸 해방후 최대의 유혈사태였다. 사건은 단독정부수립을 위한 5·10총선을 한달남짓 앞둔 4월3일 상오2시,산중에 집결해 있던 제주도민 2천여명이 도내 15개 경찰지서 가운데 14개를 일제히 습격하면서 시작됐다.이들은 「미군철수」와 「단독선거반대」 「이승만매국도당타도」 등 구호를 외치며 일부는 일본군이 남기고 간 99식소총으로 무장한 상태에서 좌익세력의 지도를 받고 있었다. 미군정은 즉각 1천7백여명의 경찰을 비롯,국방경비대와 우익인사들인 서북청년단으로 구성된 대규모 진압군을 파견했다.이에 봉기대와 이에 동조한 도민들은 한라산으로 들어가 장기적인 유격전의 성격으로 전환됐다. 이후 봉기대를 주민으로부터 분리시키기 위해 근거지가 되는 마을전체를 불살라버리고 주민들을 집단이주시키는 군·경의 소개작전과 이에 맞선 봉기대의 격렬한 저항이 이어졌다.이 과정에서 양민을 포함해 수많은 인명피해가 났다. 이 사건은 또 진압을 명령받은 군대가 이를 거부하고 소요를 일으킨 48년10월 「여순반란사건」을 촉발시키기도 했다.「4·3사건」은 1957년4월2일 마지막 「빨치산」 오완권이 생포되어서야 비로소 막을 내렸다.
  • 민족극 큰잔치 열린다/17∼30일 서울 문예회관서

    ◎극단 아리랑 등 10개 단체 참가 전국의 진보적 연극단체들이 한데 모여 신명나는 민족극 잔치를 펼친다. 사단법인 한국민족예술인총연합 산하 전국민족극운동협의회(의장 김창우)는 17일부터 30일까지 대학로 문예회관소극장등에서 「민족극 한마당」을 개최한다. 문예진흥원과 한국연극협회가 주관해 온 기존의 연극제(사랑의 연극잔치,서울연극제등)와는 달리 순수 민간차원에서 이뤄지는 이 행사는 올해로 7번째.89년에 이어 5년만에 다시 서울에서 열리는 이번 「민족극 한마당」에는 협의회가 엄선한 7개의 민족극 단체와 3개의 초청단체가 참여한다. 진보적 연극운동의 대명사로 자리잡고 있는 민족극은 분단이라는 민족현실을 민중적 입장에서 형상화하고 극복해 내려는 연극.특히 올해는 동학 1백주년을 맞는 해이니 만큼 동학을 주제로 한 작품이 많은 것이 특징이다.극단 서낭당의 무언극 「심우성의 새야 새야」를 비롯해 대구 극단 함께 사는 세상의 「궁궁을을」,대전 놀이패 우금치의 「우리동네 갑오년」,청주 놀이패 열림터의 「북실 진달래」등모두 4편이 동학관련 작품들이다.또한 해마다 제주도 4·3항쟁 소재의 작품을 공연해 오고 있는 제주도 놀이패 한라산이 올해에도 「4월굿 4월」이란 작품으로 참가,격동의 한국 근현대사를 연극행위로 보여준다.이밖에 외국인 노동자문제를 다룬 극단 한강의 「나마스테」,환경과 사람을 생각하는 노래모임인 초록지대의 「개구리눈물」등이 무대에 오른다. 한편 이번 민족극제에서는 공연과는 별도로 17,18일 이틀간 문예진흥원 강당에서 「국제화시대의 공연예술」,「서울지방의 탈춤­산대놀이에 대해」라는 주제로 학술토론회도 갖는다. 3672­0357
  • 교과서 역사용어 변경 논란 가열/시안발표에 학계등서 비판론 대두

    ◎북 주체사상 거론하며 남부정요소만 강조/「제주 4·3항쟁」 표기는 국민정서 안맞아/“의견수렴 심의거쳐 6월 확정”/교육부 국사교과서에 실려있는 「대구폭동」을 「대구항쟁」으로,「5·16」과 「12·12」「5·17」은 모두 「쿠데타」로 바꾸자는 「국사교육 내용전개 준거위원회」(위원장 이존희서울시립대교수)의 시안이 18일 발표되자 학계와 이해당사자는 물론 일반 국민들 사이에도 논란이 가열되고 있다. 교과서 개편의 주체인 교육부와 각 언론사에는 19일 아침부터 『5·16과 5·17이 교과서에도 쿠데타로 실리게 된 만큼 이제 국립묘지에 있는 주도자들의 무덤을 모두 이장해야 하지 않느냐』는 주장에서부터 『이게 어느나라 교과서냐.북한의 주체사상까지 싣기로 했다면서 우리는 부정적인 부분만 강조된다면 아이들이 어떤 생각을 갖겠느냐』는 의견까지 갖가지 상반된 내용의 전화가 쇄도했다. 그러나 이런 열기는 「준거위원회가 교육부의 용역을 받아 안을 마련한 만큼 발표된 내용이 그대로 당장 96년부터 교과서에 실리는 것이 아니냐」는오해에서 비롯됐다는 것이 교육부측의 설명이다.이번 안은 학자들의 개인적 논문발표와 같다고 보면 된다는 것이다.18일 열린 세미나에서 이미 한차례 여과된 이 시안은 31인의 전문가로 구성된 심의위원회가 이달안에 1차,4월중에 2차 심의를 벌여 다듬은뒤 5월말쯤 국사편찬위원회에 넘겨져 다시 심의과정을 거치고 나서 6월에 최종 확정될 예정이라는 것.그런 만큼 이 시안에 대한 현재의 논란은 폭과 강도에 있어 크면 클수록 좋다는 것이 학계와 교육부의 공통된 시각이다. 실제로 이번 시안은 18일 발표되는 자리에서부터 연구자와 토론자 사이에 치열한 논쟁이 벌어졌다.특히 현대사 용어부분과 관련한 용어개칭문제에 대해 학자들의 강력한 반대의견이 제기됐다.논란의 핵심인 현대사부문의 연구자는 서중석성균관대교수.토론에는 이범직건국대교수와 유영렬숭실대교수,심지연경남대교수를 비롯,31명의 심의위원 전원이 참여하다시피 했다. 서교수의 시안 가운데 「여순반란사건」을 「여수·순천사건」으로 쓰자는데는 별다른 이의가 없었으나 좌익계가 포함된 폭동이라는데 별다른 이의가 없는 「대구폭동」을 「대구항쟁」으로 표기하는 문제와 「제주4·3사건」을 「제주4·3항쟁」으로 바꾸자는데 대해서는 뜨거운 격론이 벌어졌다.또 「5·16」과 「12·12」「5·17」등의 개념규정에 대해서도 이를 「쿠데타」로 기술해도 좋을 것인가의 여부를 놓고 상당한 의견개진이 있었다.한마디로 일반인들이 우려하는 것과 같은 차원에서 학자들 사이에 심도있는 논의가 이루어 졌다고 보면 된다. 국사교과서 편수를 맡고 있는 교육부 신영범연구관은 『「대구항쟁」은 물론 「쿠데타」도 언어정서에 맞지않을 뿐 아니라 교육용어로도 부적절하다고 생각된다』면서 『이번 시안과 논의 결과는 결정을 내리는 과정에서 좋은 참고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학자들은 이번 논란에 대해 『가장 보수적이라는 교육부가 진보적인 학자들에게 연구를 맡겨 이같은 논쟁을 불러일으켰다는 것 자체가 신선한 느낌』이라면서 『그런만큼 교육부는 국사교과서의 내용이 확정되기까지 논의를 더욱 개방해 국민적 합의를 도출하는데 최선을다해야 한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 여명의 눈동자/갖가지 화제 뿌리고 종영

    ◎MBC 창사30돌 기념특집극… 무엇을 남겼나/제주4·3사건등 금기소재 과감히 극화/“주제음악 표절·출연진 연기력 부족” 지적도/채시라·박상원등 CF계 최고스타로 부상 방영 초기 TV드라마 표현의 한계 논쟁에서 후기의 주제음악 표절시비에 이르기까지 갖가지 화제와 폭발적인 인기를 이끌어 냈던 MBC드라마 「여명의 눈동자」가 6일로 막을 내렸다. MBC 창사30주년 특집드라마로 기획초기부터 지대한 관심을 모았던 이 작품은 지난 해 10월 첫회를 내보낸 뒤 36부작으로 종영되기까지 시종 시청률50%이상을 유지해 왔다는 점에서 일단 성공작으로 평가받고 있다.시청률의 차원이외에도 제작과정과 소재의 확대라는 측면에서 여러가지 의미를 지닌다. 앞으로 당분간은 TV드라마의 평가기준으로 작용할 「여명의 눈동자」에 쏟아졌던 여러 찬사와 비판을 정리해보는 것은 우리 드라마의 현주소를 확인한다는 점에서 필요한 작업이 될 것이다. 40여 억원의 제작비 투입,2년여에 걸친 장기 사전 제작제 시도,일본·필리핀·중국 등 해외 장기로케이션 실시등 이런 시도가 외형적인 측면에서 이 드라마를 설명하는 수식어라면 일제하 정신대 차출,해방공간에서의 좌우익 대립,4·3제주 사태등 이제까지 드라마에서 금기시돼온 현대사를 소재로 다루었다는 점은 「여명의 눈동자」가 내용적인 측면에서 거둔 성과이다. 또 「선이 굵고 드라이한 연출기법으로 주로 다큐멘터리성 드라마를 연출해온 김종학PD의 장인정신이 잘 배어나는 화면들」,「원작의 상업성과 이념적 편향성을 뛰어넘었다」거나 「드라마사상 최초로 제주4·3항쟁을 4회에 걸쳐 별다른 이념적 치우침없이 그려냈다」는 평가들은 모두 칭찬에 속하는 평들이다. 반면 이 드라마를 겨냥한 비판들도 만만치 않다.초반부 시청자들의 눈길끌기를 위한 지나친 선정적인 장면이나 잔혹행위묘사,이면에 짙게 드리운 역사적 개연성의 상실,세 주인공들의 연기력 부족등이 여기에 해당한다. 일제치하 태평양전쟁의 막바지에 타의에 의해 역사의 장에 끌려나온 하림(박상원분),대치(최재성분),여옥(채시라분).이 세 사람이 현대사의 격랑속을 각기 다른 이념으로 헤쳐가면서 엮어가는 사랑의 삼각구도가 이 극의 주축을 이루었다.이념보다는 인간성을 우위에 두었다는 제작진의 설명에도 불구하고 드라마속의 인간들은 상황과 이념에 구속된 비주체적인 인간들로 묘사되고 있다.이들은 「이념적 지향보다는 단순히 생존을 위해 공산주의자가 되었거나(대치)해방공간의 보혁대립을 단순한 편가름으로 볼 정도로 역사의식이 희박하거나 (하림)두 남자사이에서 방황하는 여인(여옥)」으로 그려지고 있는데 이는 당시 지식인들의 이념적 지향성을 간과하고 수동적 인간상만 확대시켰다는 지적을 뒷받침하는 부분이다. 또 역사에 대한 허무적 태도,이념 자체에 대한 극도의 혐오감 자체가 지배이념의 일종이라는 비판도 꽤 자주 등장했다. 물론 전체적인 극의 완성도에 비추어 이러한 비판들은 침소봉대한 결과인지도 모르나 아무튼 이 드라마가 안방문화에 미친 막강한 위력을 감안하면 꼭 지적하고 넘어가야 할 부분이다. 한편 주제음악인 「여옥의 테마」가 외화 「드레스트투킬」과 아주 흡사하다는 주장이나 박상원·최재성·채시라등이 이 드라마를 통해 CF계에서 최고의 값을 부르는 인기스타로 발돋움한 점,40여억원의 제작비에 36억원의 광고비유치로 드라마사상 최고가를 기록한점 등은 이 드라마의 인기를 반영하는 얘깃거리들이다.
  • 27개대 9천명 격렬시위/「4ㆍ3제주사건」42주년 맞아

    ◎가두진출,화염병 던져 서울대 고려대 성균관대등 서울시내 12개 대학을 비롯,전국 27개 대학생 9천4백 여명은 3일 하오 교내에서 「4ㆍ3항쟁 기념식」등의 행사를 가진뒤 이 가운데 일부 학생들은 화염병을 던지며 시위를 벌였다. 서울대생 2백여명은 이날 하오1시 학생회관 옆뜰에 모여 「4ㆍ3민주항쟁계승 및 파쇼야합분쇄 결의대회」를 갖고 「4ㆍ3항쟁」정신을 되살려 조국통일을 앞당길것등 4개항을 결의하고 하오2시부터 30분간 교내시위를 벌인뒤 자진 해산했다. 성균관대생 4백여명도 이날 하오2시 교내 금잔디광장에서 「4ㆍ3제주항쟁 정신계승 및 민자당 일당독재 분쇄를 위한 결의대회」를 갖고 화염병 1백50여개를 던지며 시위를 벌였다. 고려대생 1천여명과 국민대생 3백여명도 이날 하오 2시쯤 교내에서 각각 집회를 가진뒤 교문밖으로 나와 화염병 1천여개를 던지며 시위를 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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