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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 공화 지도부도 반대 “트럼프 퇴임前 아프간·이라크 미군 감축 강행”

    미 공화 지도부도 반대 “트럼프 퇴임前 아프간·이라크 미군 감축 강행”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내년 1월 중순까지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에 주둔하고 있는 미군 가운데 2500명의 감축을 명령했다고 국방부가 17일(현지시간) 밝혔다. 내년 5월까지 완료하기로 한 아프간 주둔 미군 완전 철군의 수순으로 보이지만, 미치 매코널 상원 원내대표를 비롯해 공화당 지도부조차 반발하면서 임기 말 백악관과 여당 간 불협화음이 예상된다. 크리스토퍼 밀러 국방부 장관 대행은 이날 국방부에서 취재진에게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에서 병력을 재배치하라는 대통령 명령을 이행할 것임을 공식적으로 밝힌다”고 말했다고 외신이 보도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퇴임해야 하는 내년 1월 20일 닷새 전까지 병력을 감축하는데 현재 아프간에는 약 4500명,이라크에는 약 3000명의 미군이 주둔해 있다. 아프간에서는 2000명, 이라크에서는 500명을 줄이겠다는 것이다. 밀러 대행은 트럼프 대통령의 감축 결정은 “행정부 전반에 걸쳐 나와 동료들과의 지속적인 논의를 포함해 지난 몇 달 동안 국가안보 각료들과의 계속된 관여를 토대로 이뤄졌다”고 말했다. 또 이 계획을 업데이트하기 위해 이날 오전 해외의 동맹과 파트너들은 물론 의회 주요 지도자들과도 대화를 나눴다고 덧붙였다. 그 동안 국방부 수뇌부의 조언과 모순되는 이날 명령은 트럼프 대통령이 마크 에스퍼 국방장관을 경질하고 밀러 대행을 앉힌 지 일주일 만에 나왔다. 에스퍼 장관 축출은 국방부에서 지휘부 숙청으로 이어져 이들의 난 자리에는 트럼프 ‘충성파’로 채워졌다. 군 수뇌부가 오랫동안 아프간 주둔 미군을 4500명 이하로 감축하는 것을 반대해왔기에, 인사 교체는 트럼프 대통령이 졸속 감축을 명령할 수 있는 길을 분명히 하는 데 도움이 된 것으로 보인다고 정치전문매체 더힐은 분석했다. 로버트 오브라이언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4년 전 트럼프 대통령은 끝 없는 전쟁을 끝내겠다고 약속했고, 이를 지키는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5월까지 병력이 모두 안전하게 귀국하는 게 트럼프 대통령의 바람”이라면서 “이 정책은 새로운 게 아니라, 취임 후 원래 정책이었다”고 강조했다. 이어 감축 뒤 남은 병력은 대사관과 다른 정부 시설 및 외교관을 보호하고 적군을 저지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국방부 고위 관계자는 이번 감축이 “공동의 결정”이라고 했지만, 군 수뇌부의 누가 이 계획을 제안했는지, 아프간에서의 감축을 보증하기 위해 탈레반이 어떤 조건을 충족했는지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트럼프 행정부는 2001년 9·11 테러 이후 20년 가까이 이어져 온 탈레반과의 전쟁을 끝내기 위해 탈레반이 알카에다에 안전한 근거지 제공을 거부하는 등의 대테러 약속을 유지하면 내년 5월까지 아프간에서의 완전한 미군 철수를 약속하는 합의서에 지난 2월 서명했다. 그 뒤 미국은 아프간 일부 기지를 폐쇄하고, 수천 명의 병력을 철수시켰다. 탈레반은 아프간 정부와도 전쟁을 끝내기 위한 협상을 시작했지만, 진전이 없는 상태다. 협정 체결 이후 탈레반은 오히려 아프간 정부군에 대한 공격을 강화했고, 미국은 평화 프로세스를 위협한다고 비난해왔다. 탈레반의 미군 공격도 이어지고 있다. 이날 감축 명령 몇 시간 전에 발표된 국방부 감시 보고서에는 지난 2월 합의에도 탈레반이 미군 주도의 연합군에 대해 소규모의 공격을 가했다는 내용이 담겼다. 보고서는 탈레반이 미·탈레반 합의를 위반하고 연합군에 대한 공격을 시작했음을 공식 확인한 첫 사례라고 더힐은 전했다.매코널 원내대표는 앞으로 몇달 동안 이라크와 아프간에서의 철군을 포함한 국방 및 외교정책에 커다란 변화가 있어서는 안 된다고 경고했다고 로이터 통신이 보도했다. 그는 전날에도 감축 결정은 “동맹을 다치게 하고 우리를 해치려는 이들을 기쁘게 할 것”이라고 걱정했다. 하원 군사위 공화당 간사인 맥 손베리는 성명을 내고 “테러 지역에서 미군을 추가 감축하는 것은 실수로, 협상력을 약화할 것”이라며 “탈레반은 아무것도 하지 않았고, 이런 감축을 정당화할 어떤 조건이 충족된 것도 없다”고 지적했다. 한편 철군 계획이 발표된 뒤 몇 시간 안돼 이라크 수도 바그다드의 정부 청사와 외교 공관이 몰려 있는 ‘그린 존’을 겨냥한 로켓 공격으로 어린이 한 명이 숨지고 적어도 다섯 명이 부상했다고 로이터와 AP 통신이 전했다. 이라크군은 부상자가 민간인 다섯, 군인 둘이라고 조금 다르게 밝혔다. CNN은 대사관 직원들이 피신했으며, 아직 피해가 집계되지 않았지만 인적 물적 피해는 없다고 전했다. 로켓 공격의 배후를 자처한 단체는 아직 나타나지 않고 있다. 미국 관리들은 최근 간헐적으로 이어지는 그린존에 대한 로켓 공격의 배후로 친이란 민병대 카타이브 헤즈볼라를 지목해왔다. 임병선 평화연구소 사무국장 bsnim@seoul.co.kr
  • “약속 지키는 것”…트럼프, 아프간·이라크 미군 감축 지시(종합)

    “약속 지키는 것”…트럼프, 아프간·이라크 미군 감축 지시(종합)

    아프간 2000명·이라크 500명 줄이기로미 국방부 “내년 1월까지 미군 감축 예정”“동맹 다치게 하는 것”…공화당은 반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내년 1월 중순까지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에 주둔하고 있는 미군 중 2500명 감축을 명령했다고 미 국방부가 17일(현지시간)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이 내년 5월까지 완료하기로 한 아프간 주둔 미군 완전 철군 수순으로 보이지만, 미치 매코널 상원 원내대표를 비롯한 공화당 내에서조차 반발하면서 임기 말 백악관과 여당 간 불협화음이 예상된다. 크리스토퍼 밀러 미 국방부 장관 대행은 이날 국방부에서 취재진에게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에서 병력을 재배치하라는 대통령 명령을 이행할 것임을 공식적으로 밝힌다”고 말했다고 외신이 보도했다. 이에 따라 미 국방부는 트럼프 대통령 퇴임 전인 내년 1월 15일까지 아프간과 이라크에서 각각 2500명 수준으로 주둔 미군을 감축할 예정이다. 현재 아프간에는 약 4500명, 이라크에는 약 3000명의 미군이 주둔해 있다. 트럼프 퇴임 전까지 아프간에서는 2000명, 이라크에서는 500명을 줄이겠다는 것이다. 조 바이든 행정부는 내년 1월 20일 공식 출범한다. 밀러 대행은 트럼프 대통령의 감축 결정은 “미 행정부 전반에 걸쳐 나와 동료들과의 지속적인 논의를 포함해 지난 몇 달 동안 국가안보 각료들과의 계속된 관여를 토대로 이뤄졌다”고 말했다. 또 이 계획을 업데이트하기 위해 이날 오전 해외의 동맹과 파트너들은 물론 의회 주요 지도자들과도 대화를 나눴다고 덧붙였다. 그간 국방부 수뇌부의 조언과 모순되는 이날 명령은 트럼프 대통령이 마크 에스퍼 국방장관을 경질하고 후임에 밀러 대행을 앉힌 지 일주일 만에 나왔다. 에스퍼 장관 축출은 국방부에서 지휘부 숙청으로 이어졌고, 이들 빈 자리에는 트럼프 ‘충성파’로 채워졌다. 군 수뇌부가 오랫동안 아프간 주둔 미군을 4500명 이하로 감축하는 것을 반대해왔기에, 그런 인사 교체는 트럼프 대통령이 졸속 감축을 명령할 수 있는 길을 분명히 하는 데 도움이 된 것으로 보인다고 정치전문매체 더힐은 분석했다.로버트 오브라이언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4년 전 트럼프 대통령은 끝 없는 전쟁을 끝내겠다고 약속했고, 이를 지키는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5월까지 병력이 모두 안전하게 귀국하는 게 트럼프 대통령의 바람”이라면서 “이 정책은 새로운 게 아니라, 취임 후 원래 정책이었다”고 강조했다. 그는 감축 뒤 남은 병력은 대사관과 다른 정부 시설 및 외교관을 보호하고 적군을 저지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국방부 고위 관계자는 이번 감축이 “공동의 결정”이라고 했지만, 군 수뇌부 누가 이 계획을 제안했는지, 아프간에서의 감축을 보증하기 위해 탈레반이 어떤 조건을 충족했는지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트럼프 행정부는 2001년 9·11 테러 이후 20년 가까이 이어져 온 아프간 무장반군인 탈레반과의 전쟁을 끝내기 위해 탈레반이 알카에다에 안전한 근거지 제공을 거부하는 등의 대테러 약속을 유지하면 내년 5월까지 아프간에서의 완전한 미군 철수를 약속하는 합의서에 지난 2월 서명했다. 이후 미국은 아프간 일부 기지를 폐쇄하고, 수천명의 병력을 철수시켰다. 탈레반은 아프간 정부와도 전쟁을 끝내기 위한 협상을 시작했지만, 진전이 없는 상태다. 협정 체결 이후 탈레반은 아프간군에 대한 공격을 강화했고, 미국은 평화 프로세스를 위협한다고 비난해왔다. 탈레반의 미군 공격도 이어지고 있다. 이날 감축 명령과 관련해 공화당 상원 원내대표인 미치 매코널은 향후 몇 달간 이라크와 아프간에서의 철군을 포함한 미 국방 및 외교정책에서 주요 변화가 있어서는 안 된다고 경고했다고 로이터통신이 보도했다. 매코널은 전날에도 감축 결정은 “동맹을 다치게 하고 우리를 해치려는 이들을 기쁘게 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하원 군사위 공화당 간사인 맥 손베리는 성명을 내고 “테러 지역에서 미군을 추가 감축하는 것은 실수로, 협상을 약화할 것”이라며 “탈레반은 아무것도 하지 않았고, 이런 감축을 정당화할 어떤 조건이 충족된 것도 없다”고 지적했다.최선을 기자 csunell@seoul.co.kr
  • [글로벌 In&Out] 미 대선으로 재평가될 한국 외교/알파고 시나씨 아시아엔 편집장

    [글로벌 In&Out] 미 대선으로 재평가될 한국 외교/알파고 시나씨 아시아엔 편집장

    최근 한 달 동안 전 세계적으로 최대 관심거리는 미국 대선이었다. 지난 4년간 트럼프 행정부는 미국과 전 세계에 아주 큰 영향을 미쳤다. 그 이유는 미국이 지구상 최대 강대국이라는 특성 때문이다. 미국 대선 승자가 조 바이든이냐, 도널드 트럼프냐에 따라 이해관계가 달라지는 만큼 어쩔 수 없다. 일단은 중국부터 이야기하자면 ‘트럼프 행정부 스타일’ 때문에 최근 4년 미국과 무역전쟁을 벌였고 큰 피해를 입었다. 트럼프의 강한 외교전 때문에 아주 예민해진 중국이 안 그래도 그동안 물컹물컹하는 온화한 이미지를 잃게 됐다. 이란 역시 이번 대선에 아주 큰 관심을 보였다. 국내 언론에서 미국 대선 결과를 실시간으로 특보했다. 이란의 지방도시도 이란 시민들이 미국 대선 덕분에 접전이 벌어진 위스콘신, 미시간, 펜실베이니아 같은 경합주들의 위치를 정확하게 학습하게 됐다고 한다. 반면에 친미 성향이 강한 나라들의 반응도 다양했다. 방위비 분담금 문제를 겪고 있는 독일은 트럼프보다는 바이든을 선호하는 모습을 취했다. 반면 민주주의 후퇴 문제에 큰 목소리를 내지 않은 트럼프 스타일의 행정을 좋아하는 터키는 바이든의 당선을 원하지 않았다. 영국이나 캐나다는 바이든과 트럼프 양쪽에 같은 거리를 두었다. 한국은 미국 대선에 매우 관심이 큰 나라였다. 1948년 한국 정부 수립 당시 미국의 대통령은 해리 트루먼이었다. 미국 내에서 때로는 사회주의적인 발언을 하던 트루먼은 그 당시에 우파에서 비난받을 복지 정책을 내기도 한, 대외적으로 아주 강력한 보수파였고, 냉전체제 탄생에 큰 기여를 했다. 한반도 분단의 여러 원인 중 하나도 트루먼 대통령의 강력한 반공 정책에 기인하지 않았나 싶다. ‘애치슨 라인’ 설정 등으로 6·25전쟁이 터지자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후보는 6·25전쟁을 끝내겠다는 공약을 내세웠다. 그 당시 대선이 한국에서 큰 관심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역시 아이젠하워가 당선되면서 한국전쟁도 휴전으로 마무리됐다. 한국에서 관심거리였던 또 다른 선거는 1968년 선거다. 그 선거 역시 2020년 선거 때처럼 미국의 가장 혼란스러운 시기 중의 하나였다. 인종차별 문제가 수면 위로 떠올랐고, 매일 시위가 있었고, 미국이 아주 난장판이었다. 한국은 공화당 후보인 리처드 닉슨의 당선 여부가 관심이었다. 닉슨 후보는 한때 열렬한 반공 정치인이었다. 린든 존슨 대통령 때 한미 관계가 어떻게 보면 제일 좋았던 시기인데, 이 분위기가 계속될 것인지 우려되는 상황이었다. 결국 닉슨 정부는 중국을 방문하면서 데탕트 시기를 연 탓에 한국이나 인도네시아 같은 아시아권 친미 반공 국가들에서 긴장이 강화됐다. 로널드 레이건이 당선된 1981년 대선도 관심이 컸다. 지미 카터 정부에서 한미 동맹이 약화됐고 한국에서 신군부의 쿠데타가 있었다. 전두환 당시 대통령에겐 카터보다 레이건의 당선이 훨씬 좋았다. 카터 시절에 파손된 한미 관계는 개선됐다. 오늘날엔 트럼프냐 바이든이냐에 따라 각 나라의 입장이 다르다. 그러나 한국은 옛날처럼 한 후보에게 올인하기보다 양 후보를 따로따로 보고 있었다. 한국은 영국과 캐나다의 거리두기와 비슷했다. 한국의 이러한 떳떳한 모습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 하나는 한국이 예전의 약한 국가가 아니고, 한 국가에 의존하는 피동적인 나라가 아니기 때문이다. 둘째는 핵심적인 것인데, 한국의 외교다. 외교라는 것은 현재의 문제를 잘 푸는 것만큼이나 미래에 발생할 문제들을 미리 파악하고 예방하는 것도 중요하다. 그러다 보니 한국은 트럼프든 바이든이든 누가 당선돼도 자국에 유리한 외교적 라인을 이미 구축한 상황이다. 한국은 이런 외교력 덕분에 미국 대선에서 다른 나라들이 취했던 피동적인 모습을 보여 주지 않았다. 이런 외교적 역량이 지속되면 좋겠다.
  • ‘장군의 아들’ 김두한, 교수형 받고 미7사단 구금소 갇힌 사연은?

    ‘장군의 아들’ 김두한, 교수형 받고 미7사단 구금소 갇힌 사연은?

     1947년 4월 20일, ‘장군의 아들’로 불리는 김두한 일당이 과거 같은 종로패에 소속돼 있던 정진룡을 살해한 사건이 발생했다. 김두한은 해방 후 정진룡과 함께 좌익청년단체인 조선청년전위대를 결성했다. 이후 아버지 김좌진 장군이 공산주의자 총에 죽었다는 걸 알게 된 후 전향해 우익단체인 대한민주청년동맹(대한민청)을 조직했다. 이날 대한민청 회원들은 조선청년전위대의 정진룡 등 35명을 납치했다. 폭행 끝에 정진룡 등 2명이 결국 사망했고, 미군정청은 김두한을 체포하고 대한민청을 해산시켰다.  김두한이 서울 용산에 있던 미7사단 구금소 수감 사실을 확증하는 문건이 최초로 발굴됐다. 서울 용산구는 1948년 3월 15일자로 작성된 ‘미군정재판 군사위원회 명령 2번(Military Commission Order #2)’과 같은 해 3월 26일자로 작성된 ‘명령 3번’, 5월 17일자로 작성된 ‘명령 5번’ 등을 발굴했다고 3일 밝혔다. 명령 2번에 따르면 김두한 등 일당 16명이 각각 교수형(김두한), 종신형(김영태·신영균·홍만길·조희창), 30년형(박기영·양동수·임일택·김두윤·이영근·이창성·송창환·고경주·김관철), 20년형(문화태·송기현)을 언도 받았다. 문건에는 ‘한국 서울 제7사단 구금소가 구금 장소로서 지정됐다.(The 7th Infantry Division Stockade, Seoul, Korea, is designated as the place of confinement)’, 미군정청장이었던 ‘하지 장군의 명령(COMMAND OF LIEUTELANT GENERAL HODGE)’이라고 쓰여 있다.  명령 3번에는 김두한을 제외한 나머지 사건 관계자들이 미7사단구금소에서 각각 마포형무소, 대구형무소, 광주형무소, 부산형무소로 이감될 것라고 기록돼 있다. 명령 5번에는 김두한의 형 집행에 대해 ‘미극동사령관 확인 전까지 보류될 것(the execution thereof will be withheld pending confirming action by the Commander-in-chief, Far East)’이라고 적혀 있다.  이 사건으로 인해 김두한은 구속돼 재판을 받았다. 이후 미군정청에 의해 사형선고를 받고, 서울 용산에 있던 미7사단 구금소를 거쳐 대전형무소로 이감됐다. 1948년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자 이승만 전 대통령이 특별사면했다. 이후 제 3대 민의원, 제6대 국회의원에 연달아 당선됐고 1972년 55세 나이로 사망했다.  김두한이 구금된 미7사단 구금소는 용산 미군기지 내에 위치한 군사 시설이다. 일제강점기 일본군 제20사단이 만든 용산위수감옥이 전신이다. 군형법을 어긴 일본군인 등을 가두기 위해 1909년 준공했다. 111년이 지났지만 지금도 용산 미군기지에 감옥 담장을 비롯한 일부 건물이 옛 모습 그대로 남아 있다. 김두한 외에도 일제강점기 의병장으로 활동한 강기동(1884-1911), 백범 김구를 암살했던 안두희(1917-1996), 철학적이고 현실비판적인 시를 썼던 시인 김수영(1921-1968) 등도 이곳을 거쳐간 것으로 알려졌다.  미7사단 구금소 수감 사실을 확인하는 문건은 김천수 용산문화원 역사문화연구실장이 찾아냈다. 김 실장은 국사편찬위원회 전자사료관에서 해당 자료를 찾았다. 김 실장은 “신문기사를 통해서만 알려졌던 김두한 수감 관련 사실을 주한미군 기록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용산구는 해방 후 미7사단의 용산기지 주둔, 김두한 수감 기록 등을 담은 용산기지 역사책 ‘6.25전쟁과 용산기지’를 다음달 발간한다. ‘용산의 역사를 찾아서(2014)’, ‘용산기지 내 사라진 둔지미 옛 마을의 역사를 찾아서(2017)’에 이은 용산기지 역사 3부작의 마지막이다.  성장현 용산구청장은 “온전한 용산공원 조성을 위해 근현대시기 저 땅에서 과연 어떠한 일이 있었는지 살피는 것도 우리의 과제”라며 “용산기지 관련 새로운 사료를 지속적으로 발굴해 시민들에게 하나하나 소개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민영 기자 min@seoul.co.kr
  • [박기석의 외교 통일 수첩] 한미 진보 정부 들어서면 ‘케미’ 선보일까

    [박기석의 외교 통일 수첩] 한미 진보 정부 들어서면 ‘케미’ 선보일까

    다음 달 3일 미국 대선을 앞두고 조 바이든 민주당 대선후보가 전국 여론조사 지지율에서 공화당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을 앞서고 있다. 민주당이 정권을 탈환한다면 한미 양국에는 클린턴 정부와 김대중 정부 이후 20년 만에 같은 진보 정부가 들어서게 된다. 바이든 정부가 이념적으로 가까운 문재인 정부와 양국 현안과 관련해 협력을 강화할 수 있다는 기대가 있는 반면, 문재인 정부가 주력하는 북한 비핵화 협상에 대해선 바이든 후보가 트럼프 정부에 비해 완고한 입장을 취하고 있어 양국이 엇박자를 낼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한국에 1987년 대통령 직선제가 도입된 이후 약 32년 동안 한미 양국에 동일 이념의 정부가 집권한 경우는 다섯 차례, 기간은 총 8년 11개월에 불과하다. 1988년 2월 취임한 노태우 대통령은 같은 보수 성향의 공화당 로널드 레이건 당시 대통령, 1989년 1월부터는 같은 당의 조지 H W 부시 대통령이 1993년 1월 퇴임할 때까지 호흡을 맞췄다. 김대중 대통령은 1998년 2월 취임해 같은 진보 성향의 민주당 빌 클린턴 당시 대통령과 짝을 이뤘으나 2001년 1월 공화당의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취임하면서 한국 진보 정부-미국 보수 정부의 구도로 바뀌었다. 이후 이명박 대통령이 2008년 2월 취임함에 따라 당시 조지 W 부시 대통령과 보수-보수 정부 구도를 만들어냈으나 2009년 1월 민주당의 버락 오바마 행정부가 출범하며 한미 정부 성향이 엇갈리게 됐다. 박근혜 대통령은 집권 기간 오바마 대통령을 상대하다 2016년 11월 미 대선에서 공화당의 도널드 트럼프 후보가 당선되면서 같은 보수 정부를 맞이하게 됐다. 하지만 당시 국정농단 사태가 시작되고 이듬해 3월 박 대통령이 탄핵되면서 한미 보수 정부가 협력할 기회는 사실상 없었다. 한미 정부의 이념 성향이 양국 관계에 결정적 영향을 미친 시기는 김영삼-클린턴, 김대중-클린턴, 김대중-아들 부시 시기다. 클린턴 대통령은 1993년 1월 취임 후 첫 해외 방문지로 한국을 택할 만큼 한국에 우호적이었다. 하지만 1994년 1차 북핵 위기 당시 클린턴 정부가 북한과 비핵화 협상을 하면서 북한과의 대화를 반대하는 김영삼 정부를 배제함에 따라 양국 관계는 악화일로를 걸었다. 김대중 대통령이 1998년 2월 취임하자 상황은 전변했다. 클린턴 정부는 임기 말 김 대통령의 햇볕정책을 반영해 북한 비핵화와 대북 제재 해제를 교환하는 ‘페리 프로세스’를 가동하면서 한미는 남북·북미 관계에서 보조를 맞췄다. 1999년 조명록 북한 국방위원회 제1부위원장이 미국을 방문, 북미가 양국 관계 개선과 정상회담 개최 등을 골자로 한 공동 코뮤니케에 합의하면서 김대중-클린턴의 대북정책 협력은 정점에 달했다. 하지만 아들 부시 대통령이 2001년 1월 취임한 후 북미 정상회담을 무산시키고 북한을 ‘악의 축’으로 규정하는 등 대북 강경 노선을 택하면서 김대중 정부와 갈등을 빚었다. 부시 대통령이 2001년 워싱턴에서 열린 첫 한미 정상회담에서 김 대통령을 ‘디스맨’으로 부르며 외교적 결례를 저지른 것은 두 정부의 불편한 관계를 잘 보여준 사건이었다. 민주당의 바이든 후보가 집권한다면 한미가 김대중-클린턴 시기의 ‘케미스트리’를 보일 수 있을지 주목된다. 자국 우선주의를 표방하는 트럼프 대통령과 달리 바이든 후보와 문재인 대통령 모두 다자주의를 지지하기에 한미가 자유무역, 기후변화 등에서 협력을 확대할 기회가 많아질 수 있다. 아울러 트럼프 대통령이 한국에 방위비분담금 인상을 압박하고 주한미군 감축을 연계시킨 것과 달리, 동맹을 중시하는 바이든 후보는 분담금의 과도한 인상을 지양하고 한미 동맹을 안정적으로 관리할 것을 보인다. 바이든 후보는 30일 연합뉴스에 보낸 기고문에서 “대통령으로서 나는 우리의 군대를 철수하겠다는 무모한 협박으로 한국을 갈취하기보다는, 동아시아와 그 이상의 지역에서 평화를 지키기 위해 우리의 동맹을 강화하면서 한국과 함께 설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와 바이든 정부가 대북 정책에선 이견을 보일 가능성이 있다. 문재인 정부는 남은 임기 1년여 간 북한의 비핵화와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에서 성과를 내고자 하지만, 바이든 후보는 실무협상에 기반한 철저한 비핵화 협상을 선호하기에 북미 대화의 재개와 진전을 서두르지 않을 수 있다. 대북 정책에서는 오히려 정상 간 톱다운 방식으로 비핵화와 평화체제 구축과 관련 북한과 담판을 하려는 트럼프 대통령이 문재인 정부의 대북 정책과 부합한다는 분석도 나온다. 바이든 후보는 기고문에서 “나는 원칙에 입각한 외교에 관여하고 비핵화한 북한과 통일된 한반도를 향해 계속 나아갈 것”이라며 트럼프 대통령의 대북 정책과는 다른 기조를 취하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박원곤 한동대 교수는 “클린턴 정부는 핵 없는 북한을 상대했고, 바이든 정부는 핵을 완성한 북한을 상대해야 하기에 같은 정당이더라도 대북 정책에서 차이를 보일 수밖에 없다”며 “아울러 민주당이 오히려 민주주의 확산과 인권 존중을 중시하며 독재 정권의 교체까지 고려하는 외교 노선을 갖고 있기에 문재인 정부와 갈등의 여지가 있다”고 말했다. 박기석 기자 kisukpark@seoul.co.kr
  • [데스크 시각] 배달노동자를 라이더라 부르지 말라/유영규 사회부장

    [데스크 시각] 배달노동자를 라이더라 부르지 말라/유영규 사회부장

    “평양부 내 여러 냉면집에 있는 자전거 배달부 십여 명이 임금을 올려 달라고 동맹파업을 하였던 것은 지난 10일 양편의 양보로 무사히 해결되어 모두 복업(復業)하였다.(중략)” 1926년 1월 14일 한 일간지에 오른 ‘면옥 배달 복업’이라는 제목의 기사다. 요즘 식으로 고치면 ‘평양 냉면집 배달 노동자 파업 철회’ 정도다. 10여년 뒤인 1938년 12월 1일 기사엔 보다 조직화된 동반 파업 이야기도 나온다. “평양면업노동조합’의 피고용인 240명이 임금 인상을 요구하며 파업했다”는 내용이다. 당시 90전이던 임금을 1원으로 올려 달라고 요구했지만, 주인들이 차일피일 미루기만 해 파업을 강행했다고 적혀 있다. 일제강점기 배달노동자들의 파업을 다룬 짧은 기사들로 몇 가지 유추가 가능하다. 암울한 시대였지만 당시 냉면 배달노동자는 연대파업이 가능할 정도로 단단한 지역 조직이 있었고, 근로자성도 인정받아 고정급을 받았다는 점이다. 당시로서는 지금의 자동차만큼이나 귀했을 자전거가 배달에 이용됐다는 점도 흥미롭다. 그럼 100년이 지난 지금 배달노동자의 삶은 나아졌을까. 100년 전 냉면 배달부는 요즘 ‘라이더’라는 그럴싸한 이름으로 불린다. 통상 취미로 고가 오토바이나 자전거를 타는 동호인들이 스스로를 라이더라고 부르는데 그 이름이 배달노동자에게 차용됐다. 배달할 음식도 냉면 하나에서 수백 가지로 늘었다. 배달 품목이 늘었다는 건 돈벌이 기회도 늘었다는 이야기다. 주소를 적은 쪽지는 스마트폰으로, 자전거는 오토바이로 업그레이드됐다. 그럼 그들의 삶 역시 업그레이드됐을까. 답부터 이야기하면 ‘아니요’다. 2020년 대한민국의 아스팔트 위에는 배달용 소형 이륜차가 넘쳐난다. 대표적인 ‘플랫폼 노동자’로 꼽히는 라이더는 지난해 말 기준 약 13만명에 달한다. 정보기술(IT)을 통해 사람을 분초 단위로 고용하는 배달앱이 만들어 낸 디지털 인력시장에 일을 원하는 배달 인력들이 몰렸고, 코로나19는 그 수를 다시 배양 중이다. 라이더가 늘고 경쟁도 심해지면서 다치는 사람도 많다. 올 상반기에만 이륜차 사고로 253명이 사망했는데 지난해 같은 기간 사망자 226명보다 11.9% 증가했다. 현행법상 배달노동자는 근로자로 인정받지 못한다. 계약서에는 사장님이지만 일할 때는 직원으로 변하는 특수고용직노동자다. 때론 본사 지휘에 따라, 때론 배달앱 속 AI 알고리즘의 명령에 따라 지시를 받으며 개인의 노동력을 제공하지만 노동법은 물론 사회보험 역시 적용받을 수 없다. 어느덧 플랫폼 노동은 극단적인 비정규직 노동의 한 형태로 고착화되고 있다. 지난해 기준 국내 플랫폼 노동자 수는 54만명에 달한다. 전체 취업자의 2%에 해당하는데 비중은 빠르게 증가하는 추세다. 다음달 13일 전태일 50주기에 맞춰 노동계가 ‘전태일 3법’의 입법을 촉구하고 있다. 근로기준법 적용 범위를 5인 이상에서 모든 사업장으로 확대하고 플랫폼 노동자 등 특수고용직 노동자를 노동자로 인정하며 중대 재해 발생 시 원청에 책임을 물을 수 있게 하는 것이 골자다. 외침은 높지만 현실적인 장벽은 만만치 않아 보인다. 옥스퍼드대 교수 제레미아스 아담스 프라슬은 그의 저서 ‘플랫폼 노동은 상품이 아니다’를 통해 ‘배달노동자를 라이더라 부르지 말라’고 말한다. 라이더란 이름은 기업이 사회적 책임을 회피하려 만들어 낸 가짜 이름표라는 것이다. “배달노동자를 라이더라고 부르는 것은 노동자를 독립 계약자(특수고용직노동자)로 분류해 노동법을 따돌리기 위한 술책”이라고 말한다. 오늘도 13만 배달노동자는 노동자라는 이름표를 달지 못한 채 도로 위에 고단한 바퀴자국을 남긴다. whoami@seoul.co.kr
  • [씨줄날줄] 시진핑의 한국전쟁관/박홍환 논설위원

    [씨줄날줄] 시진핑의 한국전쟁관/박홍환 논설위원

    한국전쟁에 대한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의 시각과 발언이 10년 만에 또다시 논란이 됐다. 시 주석은 지난 23일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열린 ‘항미원조(抗美援朝·미국에 맞서 북한을 도움) 70주년 기념식’에 참석, 무려 40여분에 걸친 연설을 통해 한국전쟁을 제국주의 침략에 맞선 전쟁으로 지칭하고 결사항전의 전통을 계승해야 한다고 말했다. 외교부는 시 주석 발언 다음날 “한국전쟁이 북한의 남침으로 발발했다는 것은 부인될 수 없는 역사적 사실”이라면서 그의 발언을 비판했다. 앞서 시 주석은 10년 전인 2010년 국가부주석 시절에도 ‘항미원조 참전 60주년 좌담회’에서 “항미원조 전쟁은 침략에 맞선 정의로운 전쟁이었다”고 발언해 한국과 미국 양국의 거센 비난을 자초한 바 있다. 당시에도 한미 양국은 그의 잘못된 역사인식을 꼬집었다. 한국전쟁을 항미원조전쟁으로 부르는 중국의 국가주석이 관련 기념식에서 침략에 맞선 전쟁이라고 공개연설한 것은 2000년 장쩌민(江澤民) 주석 이후 20년 만이다. 미중의 중간에서 눈치 보고 있는 한국에 대한 경고로도 읽힌다. 10년 전 ‘정의로운 전쟁’ 언급도 ‘한미’ 대 ‘북중’ 간의 동맹·혈맹 대결이 극단적으로 치닫던 시기에 나왔다. 중국 내 최근의 애국주의 선풍과도 무관치 않다. 중국 일부 네티즌과 언론은 한국전쟁 당시 한국과 미국 양국의 고난의 역사를 언급한 방탄소년단(BTS)의 벤플리트상 수상 소감을 문제 삼아 “왜 중국의 희생은 언급하지 않았느냐”며 BTS발 한한령(限韓令)을 선동했는데 이런 중국 내 그릇된 역사인식에 시 주석의 발언이 불을 댕길 우려마저 있다. 실제 시 주석 발언 당일 개봉한 항미원조전쟁 관련 영화가 흥행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고 한다. 중국은 한국전쟁이 남한과 미국의 북한 침략에서 시작됐다는 역사교과서 내용을 한국과의 수교 이후 완전히 뜯어고쳤다. 남침이나 북침에 대한 판단을 얼버무린 채 ‘한반도 내전’이라고 규정했다. 중국의 항미원조전쟁은 미 제국주의가 침략해 중국의 안전마저 위협한 데 대한 일종의 자위권적 측면과 함께 사회주의 혈맹인 북한 측의 지원 요청 때문이라고 했다. 하지만 선즈화(沈志華) 화둥사범대 교수 등 중국 내 일부 학자들은 비밀해제된 옛 소련 외교문서 등을 통해 “혁명의 동력을 지속시키면서 (사회주의 신생국) 중국의 국제지위를 높이려”는 마오쩌둥의 의지에 따른 잘못된 참전이었다는 사실을 밝혀낸 바 있다. 18만여명의 중국인민지원군이 한국전쟁에서 희생된 것은 안타깝고 슬픈 일이지만 지도자의 오판을 숨긴 채 실패한 전쟁을 정의로운 전쟁으로 미화하는 역사관은 분명 잘못된 것이다. stinger@seoul.co.kr
  • [5분시사] ‘간접선거?’, ‘선거인단?’ 미국 대선 제도 한눈에 알아보기

    [5분시사] ‘간접선거?’, ‘선거인단?’ 미국 대선 제도 한눈에 알아보기

    보름 앞으로 다가온 미국 대통령선거. 재선에 도전하는 도널드 트럼프(공화당)와 조 바이든(민주당)이 출마하는 제46대 미국 대통령선거는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전 세계가 주목하고 있는 최근 가장 큰 이슈이기도 하다. 제도와 과정이 복잡해 미국 사람들도 쉽게 이해하지 못한다는 미국 대통령선거 제도. 우리나라 대통령선거와 가장 큰 차이점은 무엇일까? 우선 미국 대선 제도를 이해하려면 가장 먼저 간접선거제를 기억해야 한다. 유권자가 직접 대통령을 뽑는 우리나라의 직접선거제와 달리, 미국은 유권자가 선거인단을 뽑고 그렇게 선출된 선거인단이 대통령을 뽑는 ‘선거인단 제도’ 즉 간접선거제를 채택하고 있다. 2020년 미국 대선의 전체 일정을 살펴보면, 2월에서 6월까지 프라이머리와 코커스가 열린다. 8월에는 각 당의 대통령 후보를 선출하는 전당대회가 열리고 이후 9월에서 10월에는 대통령 후보 토론회가 열린다. 올해는 11월 3일, 유권자가 선거인단을 뽑는 투표가 열린다. 이후 12월 14일에는 선거인단이 대통령을 뽑는 투표가 이루어지고, 당선된 대통령 후보는 2021년 1월 20일 정식으로 취임하게 된다.‘프라이머리’, ‘코커스’, ‘선거인단’과 같이 생소한 단어들로 이루어진 미국 대선 제도. 크게 보면 각 당에서 대통령 후보를 선출하는 경선과 대통령을 선출하는 본선으로 구분할 수 있다. 경선 과정 각 당의 일반 유권자와 당원은 대선에 출마할 각 당의 대선 후보를 직접 뽑는 것이 아니라 당의 후보자를 최종 투표해줄 사람, 즉 ‘대의원’을 선출한다. 이 대의원을 뽑는 과정을 ‘코커스’, ‘프라이머리’라고 하는 것이다. 전체 대의원의 1/4은 코커스로, 3/4은 프라이머리로 선출하게 된다. 코커스(Caucus) ‘코커스’는 정당에 가입한 당원만 투표할 수 있는 대의원 선출 방식이다. 전체 선거 일정 중에서 아이오와주의 코커스가 가장 먼저 열리는데, 이는 미국 대선의 공식 일정이 시작되는 셈이기 때문에 가장 큰 이슈가 되는 지역이기도 하다. 이곳에서 이기면 기선제압도 하고 아직 마음을 못 정한 유권자들에게 관심도 받을 수 있다. 프라이머리(Primary) ‘프라이머리’는 당원이 아닌 일반 시민도 참여하는 대의원 선출 방식이다. 3월의 첫째 화요일에는 가장 많은 프라이머리가 열려서 이를 ‘슈퍼 화요일(Super Tuesday)’이라고 부른다. 사실상 이날 대선 후보가 판가름 난다고 볼 수 있다. 이렇게 선출된 대의원들이 모여 전당대회를 열고 각 당의 대통령 후보를 선출하게 된다. 이번 2020년 미국 대선 각 당 후보에는 도널드 트럼프(공화당), 조 바이든(민주당)이 선출됐다. 경선이 끝나면 본선으로 향하게 된다. 각 당의 대통령 후보는 전국을 돌며 지지를 호소한다. 11월 3일에는 선거인단 투표가 열리는데, 이들은 국민을 대신해서 투표하는 사람들을 의미한다. 각 주의 주민은 선거인단이 어느 후보에게 투표하면 좋을지 투표한다. 이 투표는 ‘승자독식제도’이기 때문에 한 표라도 더 많이 가져간 후보가 해당 주의 선거인단 표를 모두 가져가는 것이다. 선거인단 숫자 선거인단 숫자는 주별로 인구에 비례해서 정해진다. 인구가 가장 많은 캘리포니아주는 55명, 인구가 적은 알래스카는 3명. 그렇기 때문에 후보 입장에서는 선거인단이 많은 지역에서 이기는 것이 중요하다. 예를 들어 캘리포니아주에서 바이든과 트럼프를 지지하는 표가 각각 1만표, 1만 1표라면 캘리포니아주의 선거인단은 1표라도 더 얻은 트럼프가 모두 가져가는 것이다. 각 주의 선거인단을 모두 합치면 총 538명이고, 이 중 절반이 넘는 270명 이상의 표를 얻는 후보가 대통령으로 당선되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독특한 방식으로 인해 실제로 유권자에게 표를 더 많이 받고도 대통령이 되지 못한 사례도 있다. 2016년 대선, 미국 전체에서 힐러리 후보(민주당)가 트럼프 후보(공화당)보다 유권자에게 300만 표를 더 받았지만, 승자독식제도로 인해 선거인단은 트럼프가 많이 가져서 결국 트럼프가 대통령으로 당선되었다. 또 2000년 대선에는 고어 후보(민주당)가 부시 후보(공화당)보다 54만 표를 더 받았지만 승자독식제도로 인해 선거인단 5명의 차이로 당선에 실패했다. 11월 3일 선거인단 선출이 끝나면 이 선거인단으로 12월 14일 대선 투표를 하게 된다. 어차피 결과는 11월 3일의 선거인단 투표에서 99% 확신할 수 있게 된다. 혹시 선거인단에서 배신 표가 나와서 결과가 바뀌지는 않을까? 그럴 확률은 희박하다. A후보가 확보한 주의 선거인단은 모두 A후보에게 투표해야 한다. 하지만 선거인단에서 B후보에게 투표하는 배신 투표가 발생할 수도 있다. 이런 배신 투표를 막기 위해 애초에 정당에 대한 충성심이 높은 사람을 선거인단으로 지정한다. 최근 미국 연방대법원이 “승자독식제도를 따르지 않는 선거인단은 처벌할 수 있다”고 판단해서 앞으로는 배신 표가 잘 나오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지난 10월 2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코로나19 확진 판정 이후 트럼프의 지지율이 급속도로 하락하고 있다. 현재 바이든 후보가 지지율에서 앞서고 있지만 앞으로의 상황 등에 있어서 변수가 있기 때문에 마지막까지 긴장을 늦출 수 없는 상황이다. 누가 당선되느냐에 따라 대북 정책, 한미 동맹 등 우리나라에도 큰 영향을 끼칠 것으로 보인다. 여러 방면에 걸쳐 초강대국인 미국의 대통령이 누가 될지 전 세계가 주목하고 있다. 보름 앞둔 미국 대통령 선거. 바이든의 굳히기일까, 트럼프의 뒤집기일까. 글·영상 장민주 인턴 goodgood@seoul.co.kr
  • 한미 안보성명 ‘주한미군 유지’ 문구 빠져··장관회견도 갑자기 취소

    한미 안보성명 ‘주한미군 유지’ 문구 빠져··장관회견도 갑자기 취소

    서욱 “전작권 전환 조건 조기 구비하겠다”에스퍼 “모든 조건 갖추려면 시간 걸릴 것”성명에서도 전작권 FOC평가시기 특정 안해성명서 ‘주한미군 현 수준 유지’ 문구 빠져국방부 “병력 감축 의미는 절대 아니다”에스퍼는 모두발언서 방위분담금 인상 압박관행이던 한미 장관 기자회견 미측이 취소미 대선 앞두고 곤란했더라도 ‘외교 결례’ 에스퍼 의제 아닌 인도·태평양 전략 강조서욱 국방부 장관과 마크 에스퍼 미 국방부 장관이 14일(현지시간) 미국 알링턴에 있는 국방부 청사에서 제52차 한미안보협의회(SCM)을 열고 공동성명을 도출했다. 예년과 달리 ‘주한미군 현 수준 유지’라는 문구가 빠졌고, 전시작전통제권 전환과 관련해 미래연합사에 대한 완전운용능력(FOC) 평가를 추진하는 시점도 명시하지 않았다. 특히 사전 조율됐던 양 장관의 공동기자회견도 갑자기 취소됐다. ●모두발언부터 느껴진 온도차 양 장관은 북한이 신형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공개하며 핵전력을 과시한 가운데 한미 국방장관이 ‘확장억제’를 언급하며 동맹을 강조한 것은 동일했다. 하지만 방위비 분담금이나 한미 전시작전통제권 전환 문제에서는 온도차가 느껴졌다. 이날 모두발언에서 서 장관은 한미 전시작전통제권 전환과 관련해 “전작권 전환의 조건을 조기에 구비하겠다”고 했지만 에스퍼 장관은 “전작권 전환을 위한 모든 조건을 갖추는 데는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말해 온도차를 보였다. 또 에스퍼 장관은 “우리는 집단 안보 비용을 분담하는 보다 공평한 수단을 찾아야 한다”며 방위비 분담금 인상을 압박했다. 이어 “미국은 신남방정책과 같은 이니셔티브를 통해 지역안보를 위한 한국의 기여가 증대된 것을 환영한다. 우리 두 나라는 함께 자유롭고 개방적인 인도·태평양을 유지하는데 전념하고 있다”며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을 강조했다. ●공동성명 내용 예년과 달라져 국방부는 이날 오후 공동성명을 발표했다. 지난해에는 7항에 ‘에스퍼 장관은 현 안보 상황을 반영하여 주한미군의 현 수준을 유지하고 전투준비태세를 향상시키겠다는 공약을 재확인했다’고 돼 있었는데 올해는 이 부분이 빠졌다. 그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방위비분담금 인상을 압박하며 ‘주한미군 감축’을 언급한 적이 있다는 점에서 눈길을 끄는 대목이다. 국방부 관계자는 “(미군) 숫자보다 공동방위를 강조하는 취지”로 이해해달라며 “병력 감축을 의미하는 것을 절대 아니다”고 했다. 하지만 한국 측이 ‘주한 미군 현 수준 유지’ 문구를 넣자고 주장했음에도 미국 측이 거부한 것으로 전해져, 향후 논란이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또 지난해 성명에서 11항에 ‘양 장관은 2020년에 미래 연합사에 대한 완전운용능력(FOC) 평가를 추진하기로 결정하였으며, 전략문서 발전 등 검증평가에 필요한 조치를 이행해 나가기로 했다’는 부분도 들어가지 않았다. 국방부 관계자는 “2019년에 2020년으로 FOC 시기를 잡아놓았다가 여러 어려움을 겪었기 때문에 특정을 안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정권 내 전작권 전환이 문재인 대통령의 공약이었다는 점에서 전환 시기가 예상보다 늦어질 수 있는 부분이다. 이에 대해 국방부 고위관계자는 “우리가 (전작권 전환과 관련해) 정한 건 조건 개념이지 시간 개념은 없다”며 “공약은 그렇지만(임기 내 전환이지만) 국정과제는 ‘조속한 (전환)’으로 돼 있다”고 설명했다. ●이해 안되는 양 장관 공동기자회견 취소 이날 한미 국방장관은 SCM을 마친 뒤 공동 기자회견을 가질 예정이었다. 하지만 갑자기 취소됐다. 미국 측의 요청이었다. 국방부 관계자는 “미측이 내부 사정이라고 했다”고 전했다. 대북 외교를 치적으로 삼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재선을 앞두고 공고한 대북 방어 태세를 강조하는 게 부담스러웠던 것 아니냐는 추측이 나온다. 그럼에도 공중급유기까지 타고 대면협의를 위해 서 장관이 미국에 온 뒤에 공동기자회견을 취소하는 것은 외교상 결례라는 지적이 나온다. 게다가 이날 에스퍼 장관은 모두발언에서 이번 SCM의 의제가 아닌 인도·태평양 전략을 강조하는 등 트럼프 대통령의 ‘중국 때리기’를 지원사격했다. 또 현행 방위비 분담금 구조가 미국 납세자에게 불리하다는 식으로 노골적으로 분담금 인상을 압박했다. 워싱턴 이경주 특파원 kdlrudwn@seoul.co.kr
  • [속보]“모든 것 바칠 것” 바이든 美 대선후보직 공식 수락

    [속보]“모든 것 바칠 것” 바이든 美 대선후보직 공식 수락

    조 바이든 전 부통령이 20일(현지시간) 2020년 미국 대선 민주당 대통령 후보직을 공식 수락했다. 바이든은 이날 화상으로 생중계된 민주당 전당대회 마지막날 수락연설에 나서 “미국을 단결시키겠다”며 후보직을 수락했다. 그는 이자리에서 “여러분이 대선후보로 저를 믿어 준다면 나는 나의 모든 것을 바칠 것”이라며 “나는 어둠이 아닌 ‘빛의 동맹’의 일원이 될 것”이라고 다짐했다. 또 “너무 많은 분노와 너무 많은 두려움, 너무 많은 분열이 있다”며 “나는 여기서 지금 약속한다. 여러분이 내게 대통령직을 맡긴다면 나는 최악이 아닌 최선을 다하겠다“고 다짐했다. 전대 일정의 마지막 대미를 장식한 이날 연설은 바이든의 자녀인 헌터·애슐리 바이든이 직접 화상을 통해 아버지를 민주당 대통령 후보로 소개하며 시작됐다. 사망한 장남 보 바이든이 생전에 유세장에서 아버지를 소개하는 장면도 나왔다. 바이든으로서 이날 수락연설은 50년 정치인생의 하이라이트라고 할만하다. 1972년부터 단 한번을 제외하고 12번의 민주당 전당대회를 참석했던 그가 비로소 주인공으로 거듭난 순간이었다. 1988년과 2008년 대선 출사표를 던졌다가 당내 경선에서 고배를 마셨던 그는 30여년의 세월이 지나 대망을 꿈꾸게 됐다. 77세의 바이든은 당선시 미 역사상 최고령 대통령이 된다. 안석 기자 sartori@seoul.co.kr
  • 카멀라 해리스의 부상, 뉴테크노크라트·美 새 리더십 전형 주목

    카멀라 해리스의 부상, 뉴테크노크라트·美 새 리더십 전형 주목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은 재선될까?” 미국인뿐 아니라 전 세계인이 가진 공통 질문이다. 오는 11월 3일 치러질 미 대선처럼 미국 대통령이 누가 되는지 여부가 각국의 이해관계에 직접 영향을 미친 적은 역사상 없었다. 트럼프 대통령 집권 이후 4년간 중국뿐 아니라 유럽과도 긴장 관계를 유지하고 기후변화 의정서(파리 협약) 및 세계보건기구(WHO) 탈퇴 등 세계 질서를 뒤흔들어 놨다. 미국 내적으로도 외국인 비자 제한 등의 조치를 취함으로써 미국에 사는 외국인 신분이 불안해졌고 미국과 무역을 하는 비즈니스맨들도 사업의 지속성을 위협받고 있다. 트럼프 재선 여부는 정치적 견해차이가 아니라 사느냐 죽느냐의 문제까지 되고 있다. 트럼프의 재선 여부는 어느 누구도 확신할 수 없다. 하지만 지금 선거한다면 트럼프의 재선 가능성이 높지 않은 것은 사실이다. 실제 파이낸셜타임스의 예측에서는 선거인단 투표에서 조 바이든은 298석, 트럼프는 119석을 가져갈 것(현지시간 2020년 8월 15일 기준, 매일 업데이트)으로 예측됐다.중요한 것은 이 시점의 여론조사는 그냥 조사에 머무는 건 아니라는 점이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각 주에서 우편투표가 확산되고 있기 때문. 이른 곳은 9월 초에 투표가 시작된다. ‘스윙 스테이트’(대선의 승패를 결정짓는 주들)로 불리는 주요 경합 주 중에서도 노스캐롤라이나주는 9월 4일, 위스콘신주 9월 17일, 미시간주 9월 19일, 플로리다주는 9월 24일에 선거가 시작된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올해는 대선일 전에 이미 투표를 마친 유권자들이 상당히 많을 것으로 전망된다. 뉴욕타임스는 지난 2016년 선거에서 40%의 유권자들이 사전투표와 우편투표를 했는데 올해는 전체 유권자의 75%까지 우편 또는 사전투표를 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2020년 대선의 시작은 오는 9월 4일이며 11월 3일까지 한 분기가 선거기간이 될 것이다. 여론조사 시점에 표심을 반영하게 되는 것이 이번 대선의 특징이다. ●FT, 8월 ‘바이든 298석·트럼프 119석’ 예측 이 상황에서 지난 11일 미 민주당 대선 후보 바이든이 부통령 후보로 카멀라 해리스 캘리포니아주 상원의원을 지명한 데 이어 위스콘신주에서 열린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해리스 부통령 후보가 19일(현지시간) 이목을 집중시키며 성공리에 지명 수락 연설을 함으로써 선거 분위기를 한껏 고무시켰다. 자메이카계 흑인 아버지와 인도계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사상최초의 흑인 여성 캘리포니아주 법무장관 출신 상원의원 해리스는 미국의 핵심 가치 중 하나인 ‘다양성’을 상징하면서 주목을 받았다. 특히 미국 언론이 해리스에 주목한 이유는 현재 바이든 대통령 후보가 4년 후에 재선에 도전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고령인 바이든이 81살이 되는 4년 뒤에 재선에 도전하지 않겠다고 공언하고 있어 4년 후에도 50대(59살)인 해리스는 유력한 대선 후보 중 한 명일 것이다. 2020년 8월 시점에서 해리스는 미 민주당의 부통령 후보다. 낙선한다면 다시 후보로 나갈 가능성은 없어 보인다. 하지만 이번에 당선 된 후 4년 후 대선 후보로 선출돼 당선, 혹시 재선까지 한다면 오는 2032년까지 최초의 여성 대통령 및 부통령으로 미국을 이끌 인물이 될 수 있다. 미국에서는 전무후무한 일이지만 독일의 앙겔라 메르켈 총리가 여성 총리로 15년째 성공리에 집권한 사례도 있어 전혀 불가능한 시나리오는 아니다. ●레이건 이후 첫 캘리포니아 출신 부통령 후보 실리콘밸리는 특히 해리스의 부통령 후보 선출을 크게 반겼다. 역사상 처음으로 실리콘밸리 출신 후보이기 때문이다. 셰릴 샌드버그 페이스북 최고운영책임자(COO)는 “(해리스의 후보 지명은) 전 세계의 흑인 여성과 소녀들, 그리고 우리 모두에게 큰 순간이다”고 즉각 환영 메시지를 남겼다. 해리스는 샌프란시스코에 가까운 ‘범실리콘밸리’로 꼽히는 오클랜드에서 태어났으며 샌프란시스코에서 지방검사를 역임했다. 해리스의 부상은 실리콘밸리가 단순한 ‘기술 혁신 허브’에서 세계에서 가장 강력하고 영향력 있는 비즈니스 중심으로 성장한 것과 맥락을 같이한다. 캘리포니아주는 미국 및 전 세계에 경제, 사회, 문화 전반에 미친 강한 영향력에도 정치적 영향력은 미미했는데 경제나 인구나 미국 내 최대 규모인 캘리포니아의 위상에 맞는 부통령 후보 선출이란 의미도 있다. 해리스는 지난 1984년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 이후 첫 캘리포니아 출신 정부통령 후보다. 코로나19 팬데믹이 가져온 불황, 분열 그리고 리더십 공황의 시기, 2020년 해리스의 출현은 실리콘밸리 정신을 정치 영역에서도 불어넣어야 하는 시대적 의미가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지금 미국은 실리콘밸리식 사고방식과 아이디어가 가장 필요한 순간이라는 것이다. 실리콘밸리는 인종이나 국적에 상관없이 글로벌 인재가 실패 가능성이 커도 세상을 바꾸는 아이디어를 피칭(기업 소개)하면 기꺼이 큰 투자를 해왔다. 인텔, 야후, 구글, 페이스북 등은 그 같은 ‘모험자본’과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정신’을 바탕으로 성장했다.●비디오게임 ‘징가’ CEO 핀커스 최대 후원자 해리스는 이 지역 출신답게 테크 기업의 최고경영자 및 주요 임원들과 끈끈한 유대가 있다. 엘리자베스 워런 상원의원(매사추세츠주) 등이 실리콘밸리 빅테크 기업을 해체해야 한다고 강하게 주장하고 바이든도 “우리는 (빅테크 독점을) 열심히 봐야 한다”고 할 때도 해리스는 목소리를 높이지 않았다. 애플, 구글, 페이스북, 아마존 등 빅테크 기업이 반독점 청문회를 할 때도 해리스는 “최우선순위는 사용자 개인 정보를 보호하는 것이다”며 핵심 논점에 비켜가는 대답을 하기도 했다(뉴욕타임스 인터뷰). 때문에 해리스는 “실리콘밸리와 잠재적 동맹을 맺었다”는 평가가 나오기도 했다. 실제 해리스는 샌드버그 페이스북 COO 외에도 마크 베이노프 세일스포스 창업자, 리드 호프먼 링크트인 공동창업자, 존 도어 벤처캐피털리스트(클라이너퍼킨스), 로렌 파월 잡스 애플 스티브 잡스 미망인, 니콜 어반트 전 바하마 대사(테드 사란도스 넷플릭스 공동 CEO의 부인), 찰스 필립스 전 오라클 사장(흑인 경제연합 공동 의장) 등 실리콘밸리의 리더 그룹과 긴밀한 유대 관계를 맺고 있다. 이들은 그저 그런 돈 많이 번 기업가가 아니라 팟캐스트나 책을 출간하며 사상과 이론을 정립하고 전파하는 등 실리콘밸리 내에서 큰 영향력이 있는 ‘빅마우스’로 꼽힌다. 해리스 처남(토니 웨스트)은 우버의 법률고문이기도 하다. 해리스와 가장 친밀한 실리콘밸리 인사는 비디오게임 회사 징가의 마크 핀커스 창업자 겸 CEO가 꼽힌다. 그는 해리스의 오랜 지지자이자 후원자로 지난 2016년 캘리포니아주 상원의원에 출마할 때 모금 행사를 공동 주최했으며 법률가 출신인 해리스가 비즈니스 분야에 조언을 구하는 인물로 알려져 있다. 즉 해리스는 법률가 출신이지만 기술과 과학 그리고 기업가정신을 깊게 이해하고 있다는 점이 뉴테크노크라트의 상징이 될 수 있으며 미국 새로운 리더십의 전형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주목해야 한다. 더밀크 대표
  • 고체연료 ‘족쇄’ 풀려, 언제든 군사위성 쏜다

    고체연료 ‘족쇄’ 풀려, 언제든 군사위성 쏜다

    민간용 우주발사체 연구 개발·생산 탄력김현종 “주권국 눈·귀 ‘인공위성’ 있어야”‘사거리 800㎞’ 해제 필요하면 추후 협의北 자극 우려… 美, 中 견제 의도 담은 듯청와대는 28일 한미 미사일 지침 개정으로 우주발사체에 대한 고체연료 사용 제한이 완전히 해제됐다고 밝혔다. 탄도미사일 사거리 제한(800㎞)은 일단 유지하기로 했다. 이에 따라 고체연료 발사체를 이용한 군사정찰위성을 쏘아 올려 한반도 상공을 24시간 감시하는 길이 열리고 민간용 우주발사체의 연구개발 및 생산도 자유로워질 전망이다. 김현종 국가안보실 2차장은 브리핑에서 “오늘부터 우주발사체에 대한 고체연료 사용 제한을 해제하는 미사일 지침 개정을 채택한다”고 밝혔다. 기존 지침은 우주발사체 추진력을 ‘100만 파운드/초’로 제한했다. 발사체를 우주로 보내려면 5000만 또는 6000만 파운드/초가 필요한데, 필요한 총에너지의 50분의1~60분의1 수준만 사용하도록 묶어 둔 것이다. 김 차장은 “이런 제약 아래서 고체연료 발사체 개발은 사실상 불가능했다”고 말했다. 이에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해 10월 청와대 안보실이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와 직접 이 문제를 해결할 것을 지시했고, 9개월간의 협의 끝에 개정에 이르렀다. 김 차장은 “2020년대 중후반까지 자체적으로 고체연료 발사체를 이용해 저궤도(500~2000㎞) 군사정찰위성을 다수 발사하게 되면 우리 정보·감시·정찰(ISR) 능력이 비약적으로 향상될 것”이라며 “전시작전통제권 환수와 평화로운 한반도 및 동북아 구축에 큰 기여를 할 것”이라고 했다. 또 2040년 1조 달러 규모로 전망되는 민간 우주산업 진출에 긍정적 영향은 물론 한미 동맹을 업그레이드시킬 것이라고 밝혔다. 1979년 만든 미사일 지침은 그동안 세 차례 개정됐으며 이번이 네 번째다. 2017년 9월 문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미사일 사거리를 800㎞로 하되 탄두 중량 제한을 해제하는 3차 개정을 했다. 한미 방위비분담금특별협정(SMA) 협상에서 우리가 양보한 것 아니냐는 관측도 제기되지만, 김 차장은 “SMA와 무관하며 반대급부는 없다”고 잘라 말했다. 북한과 중국을 자극할 것이라는 우려도 적지 않지만, “주권국가로서 눈과 귀 역할을 하는 (군사용) 인공위성을 갖고 있어야 한다”고 했다. 일각에서는 미국이 지침 개정에 응한 배경으로 미중 갈등 속 중국을 견제하려는 의도가 담겨 있다는 해석도 나온다. 800㎞로 유지되는 사거리에 대해 김 차장은 “사거리 제한은 일단 유지된다. 우주발사체 고체연료 사용제한 해제가 더 급하다고 판단했다”면서 “필요하다면 언제든 협의할 수 있다”고 밝혔다. 임일영 기자 argus@seoul.co.kr
  • [이해영의 쿠이 보노] 머나먼 다리

    [이해영의 쿠이 보노] 머나먼 다리

    지난 6월 개성 남북공동연락사무소 폭파로 2년 전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의 성과도 날아간 듯싶었다. 언제 그랬던가 싶을 정도로 우리는 다시 일상을 살고 있고, 북미 관계도 그냥 하던 대로 옥신각신이다. 어찌 보면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날갯짓 한 번에 구만리를 난다는 대붕(大鵬)의 시선과 초대축적의 역사지도 아닌가 싶다. 그리 생각하는 연유는 다름 아닌 현대 세계사의 경험에서 비롯된다. 나는 6·12 북미 데탕트 프로세스를 1972년 미중 데탕트에 견줄 만한 세계사적 대사변이라 본다. 1949년 공산화된 이후 미중 관계는 한반도에서 일전을 겨룬, 매우 적대적인 관계였다. 심지어 60년대 초 중국이 핵개발에 나섰을 때 미국이 선제공격을 검토했을 정도다. 그래서 닉슨의 방중은 ‘닉슨 중국에 가다’ 혹은 ‘닉슨 중국에’(Nixon to China)가 세계 외교사의 숙어가 될 정도로 충격적이었다. 공화당의 강경 우파였던 닉슨이 공산주의 중국과 관계 정상화에 나섰을 때 민주당은 선수를 빼앗긴 탓에 깊은 내상을 입었다. 닉슨과 그의 안보보좌관 키신저가 대중 관계 정상화에 나선 것은 중소분쟁을 활용해 중국을 분리시켜 소련을 고립시키고, 또 중국을 지렛대로 베트남과의 휴전협상을 가속화하려는 전략적·지정학적 사고의 산물이었다. 그래서 당시 소련과 동구권은 대체적으로 중국의 수정주의를 격렬히 비난했다. 흥미로운 점은 당시 북의 반응인데, 미제국주의가 중국에 굴복한 것으로 해석한다. 흔히 ‘핑퐁외교’로 불린 1972년 미중은 공동성명 이후 낮은 단계부터 하나씩 신뢰 구축에 나선다. 양국 사이 정식 국교가 수립된 것은 그로부터 7년이나 지난 1979년 카터 행정부 때다. 이 당시 미국 내 최초로 설치된 중국 영사관이 이번에 트럼프가 폐쇄한 휴스턴 영사관이었다. 양국 간 정식 국교가 수립된 뒤 미국은 양국 관계의 지난한 걸림돌이었던 대만 문제를 정리한다. 즉 1955년 체결된 미·대만 상호방위조약 곧 미·대만 동맹을 폐기하고 약 3만명 규모 주대만 미군을 철수한다. 1972년 상하이선언 이후에도 닉슨 탄핵과 미국 내 여론 등 국내적 요인과 대만 문제 등 정치군사적 현안이 해소될 때까지 무려 7년이 걸렸다는 말이다. 하지만 이조차도 레이건 행정부에 와서 미국의 대만에 대한 새로운 안보 공약이 나오면서 삐걱거렸다. 미중 관계가 안착되는 건 톈안먼 사태 이후 덩샤오핑 노선이 확고하게 자리를 잡은 뒤였다. 나아가 미국의 대중 투자가 본격화되는 것은 1990년대 들어와서부터다. 닉슨 방중 이후 근 20년 이상이 걸린 셈이다. 그렇다면 미·베트남 관계는 또 어떤가. 1973년 10년에 걸친 전쟁을 끝내고 미ㆍ북베트남은 파리평화조약을 체결한다. 여기에는 물론 남베트남과 베트콩의 대표도 참석했다. 하지만 이 조약 2년 뒤 남베트남 정부는 붕괴되고 베트남은 통일된다. 이 평화협정은 대략 20여개의 조문과 다수의 합의 의사록으로 이루어진 34쪽의 문서다. 이 협정은 하지만 끝내 미의회 비준동의를 받지는 못했다. 통일 후 베트남은 미국과의 관계 정상화 합의를 1978년에 했지만 실행에 옮기진 못했다. 미국은 대중 관계를 우선했고 베트남은 대소 관계로 상황을 관리했다. 미·베트남 국교가 정상화된 것은 1995년 클린턴 행정부 때다. 1973년 파리평화조약 이후 22년이 걸렸다. 이때 와서야 비로소 미국은 대베트남 봉쇄를 해제한다. 1975~95년까지 양국은 근 20년에 걸쳐 경제 지원 또는 전쟁배상금 대 미군실종자·포로문제를 놓고 지루하기 짝이 없는 협상을 벌였다. 미·베트남 경제 관계가 본격화된 것은 21세기다. 평화협정 이후 근 30년이 지나서다. 2015년에 와서는 일종의 FTA인 ‘항구적 통상 파트너십 협정’(PNTR)이 체결됐다. 특히 양국 관계가 급속 진전된 것은 미국의 대중 봉쇄전략으로 베트남의 지정학적 위치의 전략적 비중이 커진 덕분이기도 하다. 일본과 더불어 베트남 역시 미국의 대중 전략에 올라타 실익을 챙긴 셈이다. 요컨대 1972년 닉슨 방중 이후 1979년 미중 국교 정상화까지 7년 걸렸고, 경제 협력까지는 20년 이상이 걸렸다. 미·베트남 관계는 1973년 파리평화협정 이후 1995년 국교 정상화까지 22년 걸렸다. 경제 협력까지는 근 30년이다. 물론 여기에는 미국의 전략적 이익, 즉 중국을 통한 소련 견제와 베트남을 통한 중국 견제가 작동하고 있었다. 북미 관계 정상화는 얼마나 걸릴까? 한 가지는 분명하다. 아주 오래 걸릴 거다. 호흡 조절부터 잘해야 오래 또 멀리 간다.
  • 주한미군 사령관 백선엽 별세에 “국가의 보물”(종합)

    주한미군 사령관 백선엽 별세에 “국가의 보물”(종합)

    육군 5일 육군장으로 백 장군 장례식 거행 로버트 에이브럼스 주한미군 사령관은 11일 전날 별세한 백선엽 장군(예비역 육군 대장)에 대해 “진심으로 그리워질 영웅이자 국가의 보물”이라며 애도했다. 에이브럼스 사령관은 이날 애도 성명을 내고 “주한미군을 대표해 백 장군의 가족과 친구에게 진심 어린 애도와 위로를 표한다”며 “백 장군은 종종 주한미군을 방문해 한국전쟁과 군인으로서의 그의 경험을 이야기했다”고 밝혔다. 이어 “백 장군은 오늘날 한미동맹을 구체화하는데 믿을 수 없는 공헌을 했다”며 “6·25전쟁 당시 군인으로 복무하고, 한국군 최초 4성 장군으로 육군참모총장까지 한 백 장군은 영웅”이라고 강조했다. 백 장군은 전날 오후 11시 4분쯤 100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1920년 평남 강서에서 출생한 백 장군은 6·25전쟁 때 1사단장, 1군단장, 육군참모총장 등을 역임하며 6·25 전쟁영웅으로 추앙받지만, 일제강점기 간도특설대에 근무한 이력으로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가 발표한 친일반민족행위 명단에 이름이 올랐다. 백 장군의 생일에는 항상 주한미군 사령관이 참여했으며 지난 백수 생일에는 해리 해리스 주한미국 대사가 휠체어를 탄 백 장군 앞에 무릎을 꿇고 생일을 축하하기도 했다. 장지는 국립대전현충원 장군 2묘역으로 확정 해리스 대사는 이날 트위터를 통해 “한국 최초 4성 장군에 올랐던 백선엽 육군 예비역 대장의 지난 밤 별세 소식에 마음이 아픕니다. 지도자이자 애국자이며 정치가였던 백 장군은 현대 한미 동맹 구축을 주도했으며 ‘조국이 없으면 나도 없다’란 말도 남겼습니다. 유족분들께 깊은 위로를 전하며 백 장군님이 그리울 것입니다”란 애도의 글을 남겼다. 한편 육군은 11일 부고를 내고 백 장군의 장례가 5일 육군장으로 거행되며 장지는 국립대전현충원 장군 2묘역으로 확정됐다고 발표했다. 오는 15일 오전 7시 30분 서울아산병원에서 서욱 육군참모총장 주관으로 육군장 영결식이 열리며 같은 날 11시 30분 대전현충원에서 안장식을 거행한다. 육군은 “고(故) 백 장군은 1950년 4월 제1사단장으로 취임해 낙동강지구 전선의 다부동 전투에서 한국군 최초로 합동작전을 통해 대승을 거둬 반격작전의 발판을 제공했다”며 “같은 해 10월 국군 제1사단이 먼저 평양을 탈환해 민족의 자존심과 국민의 사기를 드높였다”고 설명했다. 윤창수 기자 geo@seoul.co.kr
  • [속보] 주한미군 사령관 백선엽 별세에 “국가의 보물”

    [속보] 주한미군 사령관 백선엽 별세에 “국가의 보물”

    로버트 에이브럼스 주한미군 사령관은 11일 전날 별세한 백선엽 장군(예비역 육군 대장)에 대해 “진심으로 그리워질 영웅이자 국가의 보물”이라며 애도했다. 에이브럼스 사령관은 이날 애도 성명을 내고 “주한미군을 대표해 백 장군의 가족과 친구에게 진심 어린 애도와 위로를 표한다”며 “백 장군은 종종 주한미군을 방문해 한국전쟁과 군인으로서의 그의 경험을 이야기했다”고 밝혔다. 이어 “백 장군은 오늘날 한미동맹을 구체화하는데 믿을 수 없는 공헌을 했다”며 “6·25전쟁 당시 군인으로 복무하고, 한국군 최초 4성 장군으로 육군참모총장까지 한 백 장군은 영웅”이라고 강조했다. 백 장군은 전날 오후 11시 4분쯤 100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1920년 평남 강서에서 출생한 백 장군은 6·25전쟁 때 1사단장, 1군단장, 육군참모총장 등을 역임하며 6·25 전쟁영웅으로 추앙받지만, 일제강점기 간도특설대에 근무한 이력으로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가 발표한 친일반민족행위 명단에 이름이 올랐다. 백 장군의 생일에는 항상 주한미군 사령관이 참여했으며 지난 백수 생일에는 해리 해리스 주한미국 대사가 휠체어를 탄 백 장군 앞에 무릎을 꿇고 생일을 축하하기도 했다. 윤창수 기자 geo@seoul.co.kr
  • 美, 中의 아킬레스건 ‘인권’을 꺼냈다

    美, 中의 아킬레스건 ‘인권’을 꺼냈다

    미 의회 위구르인권문제 강경조치 촉구폼페이오 홍콩에 “공산당 치하도시일뿐”무역대국 중국에 경제 우군확보 어렵자 인권, 민주주의 등 가치 싸움으로 확전트럼프는 재선 위해 다소 모순적 상황미중 무역합의 이행, 中때리기 둘다 필요 무역갈등, 기술패권경쟁, 코로나 책임론 등으로 중국을 압박해 온 미국이 중국의 홍콩 국가보안법을 계기로 ‘인권 카드’를 전면에 내세웠다. 그간 미중 경제갈등의 경우 상호 이익을 건 한판이라는 점에서 한국과 같이 무역면에서 중국의 그늘에 있는 국가들이 선뜻 입장을 정하지 못했다. 하지만 인권은 자유민주주의의 핵심으로 중국 공산당과 가치의 이분법이 가능하다. 미국이 자신의 우군을 늘릴 수 있는 확실한 묘수를 뒀다는 평가가 나온다. 75명이 넘는 미국 의회 상·하원 의원들은 2일(현지시간) 트럼프 행정부에 대해 신장 위구르 자치구에서의 탄압과 관련해 더 강경한 조치를 취할 것을 촉구했다고 로이터통신이 전했다. 이들은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과 스티븐 므누신 재무장관 앞으로 보낸 공문에서 “중국 정부가 위구르족의 가정, 문화, 종교적 신념을 의도적으로 파괴, 말살하고, 여성에 대한 폭력을 조장하고 있기 때문에 이러한 인권 학대는 미국과 국제사회의 즉각적인 대응을 요구한다”고 지적했다. 이외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를 소집해 동맹국들과 협력하며 신장 위구르 자치구 내 상황을 조사하는 특별 조사관을 임명할 것을 요청했다. 위구르족은 튀르크계 이슬람교도로 중국 한족과 외모나 언어가 달라 중국 당국의 탄압을 받아 왔으며 미국은 100만여명이 피해를 입는 것으로 보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도 지난달 17일 신장 위구르 자치구 내 소수민족 탄압에 책임이 있는 중국 당국자들을 제재할 수 있도록 하는 ‘2020년 위구르 인권정책 법’에 서명했다.무역분쟁을 통해 1차 무역협정 합의를 이끌어 냈던 미국은 코로나19로 인한 중국 우한의 봉쇄 때부터 인권 문제를 표면화했다. 이어 중국의 코로나 책임론을 언급했고 트럼프 대통령은 ‘차이나바이러스’, ‘쿵 플루’(쿵푸 인플루엔자) 등 조어를 만들어내기도 했다. 미국 입장에서 인권보호는 민주주의와 다른 체제를 가르는 중요한 기준이라는 점에서 무역분쟁과는 결이 다른 공격포인트를 꺼낸 셈이다. 중국은 이에 대해 우리가 코로나19에 더 잘 대처했다는 식의 ‘체제우위론’으로 맞섰다. 하지만 홍콩보안법은 미중 간 체제갈등이 폭발한 계기가 됐다. 홍콩보안법은 국가 분열과 국가 정권 전복, 테러 활동, 외국 세력과의 결탁 등 4가지 범죄에 대해 최고 무기징역형으로 처벌할 수 있게 했다. 국가안보 위해 인물에 대한 감시와 통신 감청을 허용했고, 이에 따라 안보 담당 비밀경찰이 반정부 인사들을 24시간 감시할 수 있다. 홍콩에 머무는 베이징 요원들은 면책특권을 누린다. 홍콩에서 활동하는 비정부기구(NGO)와 국제인권단체, 외국 언론사에 대한 관리와 통제도 강화됐다. 홍콩 내 외국인에게도 보안법이 적용된다. 홍콩의 국가안보를 심각하게 위반한다고 판단될 경우 중국 중앙정부가 피고인을 본토로 데려가 직접 재판할 수 있다. 외국 기자들이 재판 과정을 지켜볼 수 없게 비공개로도 재판을 진행할 수도 있다.인권을 침해하는 독소조항이 즐비한 홍콩보안법에 대해 미국 측의 공격 선봉장은 폼페이오 장관이다. 그간 반복해 중국 공산당을 직접 지칭하며 비판해온 그는 지난 1일 “이제 홍콩은 공산당이 운영하는 또 하나의 도시”라고 공격했다. 다만 재선을 앞둔 트럼프 대통령의 입장은 다소 모순적이다. 중국의 농산물 수입 확대가 포함된 1차 미중 무역협상은 확실하게 이행되기를 바란다. 농업지역인 ‘팜 스테이트’의 표가 걸려 있다. 반면 인권 및 체제는 공격 강도를 높이고 있다. 재선의 키워드인 ‘경제 회복’을 위해 중국이 필요하지만 미국 내 반중 정서는 충족시켜야 하는 입장으로 보인다. 김한권 국립외교원 교수는 “중국을 향한 미국의 인권 공격은 사실상 오래됐으며 미국은 계획대로 단계적 순서를 밟는 것으로 보인다”며 “이미 2017년 대만에 무기를 판매했고 이듬해 미국과 대만 공무원의 자유로운 상호방문을 허용하는 대만여행법을 만드는 등 미국은 ‘하나의 중국’에 지속적으로 의문을 표해왔다”고 말했다. 이경주 기자 kdlrudwn@seoul.co.kr
  • [2000자 인터뷰 39] 이종석 “대북 전단 못 막으면 대결 시대로 되돌아가”

    [2000자 인터뷰 39] 이종석 “대북 전단 못 막으면 대결 시대로 되돌아가”

    노무현 정부 시절 통일부 장관(2006년 2~12월)을 지낸 이종석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은 김여정 노동당 제1부부장의 담화로 시작해 대남 군사행동 위협으로 번진 작금의 사태와 관련, “지금은 남북 관계의 판이 깨지는 것을 넘어서 과거의 대결 시대로 돌아갈 수 있는 엄중한 상황”이라고 진단하고 “대북 전단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는 그다음 단계로 나아가기 어렵다”고 밝혔다. 이 전 장관은 15일 서울신문과 인터뷰를 갖고 “전단을 기화로 호랑이 등에 올라탄 북한을 내려오게 하는 게 중요하다”면서 정부가 전단 문제 해결에 집중할 때라고 강조했다. 2000년 6월 24명의 대통령 민간인 특별수행원 자격으로 김대중 전 대통령과 평양에 갔던 이 전 장관은 “남북이 교착에 빠진 지금 4·27 판문점선언과 9·19 평양선언을 만든 문재인 정부는 스냅백을 전제로 한 대북 제재 완화 등에 대해 할 말은 미국에 하는 능동적 자세가 필요하다”고 주문했다. 다음은 이 전 장관과의 일문일답 내용.●군사행동 위협 사태 -북한이 개성 남북연락사무소 파괴나 군사행동까지 거론하고 있다. 왜 지금인가. “지난 4일 김여정 제1부부장의 담화나 노동당 통일전선부 담화를 보면 마구 화를 내면서 전단 살포를 막으라는 요구가 이뤄질 때까지 우리가 가만히 안 있겠다고 하면서 예시한 세 가지가 있다. 개성공업지구와 개성 남북연락사무소의 철거, 군사합의 파기다. 전단 살포 금지법이 나올 때까지 괴롭히겠다는 뜻이었다. 북한이 우리를 지켜보면서 압박하는 데 약간 에스컬레이트된 측면이 있긴 하다. 군사합의 파기는 예고한 것인데 그렇게 되면 (군사)행동을 취할 것이다. 전단이 심각한 게 두 가지인데 김정은 국무위원장 비방이 들어가 있고, 코로나19 같은 가장 적절하지 못할 때 북으로 날아간다는 점이다.” -북한 위협이 전단지에 국한된 얘기인가. “평론가들은 북한 경제난이 심각해 주민들의 관심을 돌리기 위해서 혹은 북미 관계가 잘 안 풀리니까 대남 위협 상황을 만들었다고 한다. 검증이 안 되는 말이지만 중요한 것은 북한이 전단을 놓고 전 주민을 상대로 캠페인을 벌였다는 것이다. 그건 뭐냐 하면 쌀 50만t을 대가로 해결이 안 된다는 뜻이다. 오로지 전단지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북한의 누적된 불만이 터진 지점이 전단지다. 전단지는 남한에 책임을 물을 명확한 명분이 있다. 이것을 해결해야만 경제나 그다음을 말할 수 있다. 1단계, 2단계가 있는데 딴소리하면 안 된다. 전단 살포 문제에 대한 한국 정부 태도가 문재인 정부의 남은 2년간 남북 관계 바로미터가 될 가능성이 크다. 북한이 얘기하듯 분명한 해결이 없으면 남북이 더 가봐야 소용없다고 생각할 것이다. 북한 입장에서는 부당하거나 일방적인 요구가 아니다. 4·27 판문점선언에서 두 정상은 전쟁과 충돌 없는 한반도를 합의하면서 그 일환으로 적대행위 중지와 전단 살포 방지 등을 합의했다. 이걸 지키라는 것이다. 비무장지대에서의 적대행위 중지와 전단 살포 방지 등의 합의가 들어 있는 만큼 매듭을 지으려고 할 것이다. 김여정 제1부부장은 ‘이걸로 끝이다가 아니고 이거 하지 않으면 끝이다’라고 말하고 있다.” -정부가 할 일은 전단지 대책에 집중하는 것인가. “그렇다. 전단지 살포를 못 하게 만들어 내는 것이고, 시간이 경과되면 압박은 커질 것이다. 국내 여론은 더 나빠질 것이고, 그게 어떻게 작용할지는 알 수 없다. 그렇지만 그걸 이겨 내야 한다. 남북 관계의 판이 깨지는 게 아니라 잘못하면 과거 대결의 시대로 돌아갈 수 있다. 쉽게 말하면 북한은 호랑이 등에 올라탔다. 일단 호랑이 등에서 북한을 내려오게 해야 한다. 엉뚱하게 경제 문제라면서 쌀 주면 된다는 주장은 북한의 북자도 모르는 사람이 하는 소리다.” ●6·15 남북공동선언 20주년 -선언의 의미와 성과를 재해석한다면. “평화 분위기 조성을 기다리는 게 아니고 한반도 운명의 당사자로서 주동적으로 남북 관계에 나섰고, 이걸 통해 한반도 역사의 물줄기를 대결과 갈등에서 협상과 협력의 방향으로 바꿨다. 한반도 정세 변화를 기다리는 게 아니라 정세를 만들어 가는 게 한반도 운명의 당사자임을 6·15 선언은 보여 줬다. 성과라면 둘을 꼽을 수 있다. 첫째, 대결 상태의 남북 관계를 경제 협력을 중심으로 하는 교류협력 관계로 재구성하기로 합의했다. 그 합의가 공동선언 4항에 있다. 과거에는 못 한 남북 교류협력이 6·15 이후 대결이 고조될 때조차 극단적으로 나빠지는 것을 막아 온 측면이 있다. 둘째는 통일 문제가 첨예한 이슈이지만 북이 남의 연합제에 호응하면서 ‘낮은 단계의 연방제’라는 말을 만들어서 합의를 만들고 인식의 공통성을 얘기했다. 즉 통일은 빠른 시간 내에 이룰 수 있는 게 아니고 장기적이고 단계적이며 점진적으로 갈 수밖에 없다는 인식을 남북이 공유했다. 남북 관계에서 상대방에 대한 의심, 상대방이 나를 잡아먹을 것이라는 의구심에서 벗어날 수 있는 여유를 만들었다.” -선언의 요체는 무엇이고 선언이 잘 이행되지 않은 이유는 뭔가. “적대와 대결의 남북 관계를 화해·협력 관계로 바꾸자는 게 요체다. 잘 이행됐더라면 4·27 선언이 필요 없었을 것이다. 이행되지 않은 이유는 여전히 남북과 북미의 대결 구조 속에 한반도가 있기 때문이다. 대결의 본질은 불신이다. 남북 관계 외에 북미 관계가 중요 변수다. 북미 대결과 불신을 해소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지만 남북 관계 개선에 발 맞춰 그만큼의 북미 간 불신을 줄이지 못했던 게 문제였다.” -6·15 선언 20주년을 맞는 감회라면. “학계 사람으로 문정인 청와대 특보와 함께 평양을 방문했다. 평양 순안공항에 내렸을 때 감격적인 순간을 맞으면서도 지속성을 갖고 빠른 시일 안에 대결에서 화해와 협력으로 가는 길이 실현돼 공동 번영을 맞을 수 있을까 하는 걱정도 있었다. 20년이 지났는데, 그때보다는 상황이 더 좋아진 것 같지만 남북 통로가 막혀 있다. 이런 현실에 자괴감을 갖고 있다.” -문재인 정부가 한반도 정책에서 어떤 점을 잘했다고 보는가. “평창올림픽을 계기로 북한 전략의 변화를 정확히 포착했다. 당시는 한반도가 전쟁 직전까지 다다랐다. 이랬던 한반도의 대결 정세를 대화와 평화 국면으로 전환하는 물꼬를 텄다. 그것이 가장 잘한 것이다. 6·15보다 진전된 내용을 4·27과 9·19에 담은 것도 잘했다. 군사분야 합의를 이뤘는데 한반도에서 종전 상황을 만들어 내는 깊이 있는 내용이다.” -아쉬운 점이 있다면. “지난해 이후 교착 국면을 타개해 정세를 호전시키는 주도적 노력이 부족했다. 좋은 정세를 만들어 내기 위해 필요한 자기 목소리를 못 내고 있다. 두 개의 정상 선언을 합의한 상태에서 핵 문제가 걸려 있다고는 하지만 북한이 핵실험이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발사도 안 하고 있다. 남북 군사 충돌도 없다. 여러 가지 말은 오가고 있지만. 북한 내부적으로는 국가 전략이 군사 중심에서 경제 중심으로 바뀐 것도 사실이다. 유엔의 대북 제재 때문에 남한, 서방과의 협력을 못 하고 있어서 그렇지 북한은 개혁개방을 했다. 이런 것들은 옛날에 없던 변화다. 이런 정도 기반이 있다면 뭔가 돌파를 해야 한다. 핵 문제처럼 매우 어려운 것도 있지만, 두 정상 선언을 일정하게 실천할 수 있는 환경이 좋은 것도 사실이다. 주도적이고 창의적으로 한반도 평화를 위해 미국과 다른 생각이 있으면 그 얘기도 할 수 있어야 한다. 북한한테도 마찬가지다.” ●남북·북미 관계 전망 -꽉 막힌 남북 관계를 풀 수 있는 방안을 문재인 정부에 제안한다면. “정세를 만들어 나가는 능동적·적극적 자세가 매우 중요하다. 한반도 운명의 당사자는 우리다. 미국이 아니다. 미국을 설득해야 한다. 한반도 문제에 관한 한 우리가 더 잘 안다. 우리의 운명이 걸려 있다. 또 하나는 핵 문제와 관련해 스냅백(약속한 합의 사항을 이행하지 못하면 제재 해제를 철회) 조치를 전제로 해서 단계적 비핵화를 이끌어 내라고 미국에 요구해야 한다. 북한이 영변 핵시설을 포기하면 요만큼 제재를 완화해 주고 하며 단계적으로 하자는 거다. 스냅백을 하면 미국이 손해 볼 일은 매우 적다. 북한은 비핵화 조치에서 핵실험장을 이미 폭파했다. 그다음 영구적으로 폐기하겠다는 게 동창리 엔진실험장이고 영변 시설이다. 미국은 체제 안전 보장 등을 말하지만 가장 큰 게 뭐냐. 제재 해제다. 제재가 풀리면 외부 자본이 들어가고 기술이 들어간다. 만약 북한이 핵무기를 포기하지 않는 게 눈에 보이거나 하면 스냅백을 해서 원래대로 되돌리면 된다. 북한이 파괴한 시설을 다시 건설하긴 어렵다. 반면에 한국이나 서방이 스냅백을 해서 보는 손해는 북한보다 훨씬 적다. 우리의 대북 진출은 한국 경제에서 작은 비중이지만 북한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매우 크다. 만일 스냅백이 이뤄지면 북한 경제는 망한다. 북한의 28개 경제 특구가 외부 자본을 받아들여야 하는데 전혀 가동이 되지 않고 있다. 북한이 한국이나 서방 투자를 먹고 떨어진다고 우려하는데 그럴 수 없는 구조다. 아무도 보지 못한 진실의 순간을 보기 위해 단계적으로 비핵화 조치를 하고, 제재 해제를 해주면서 스냅백을 걸자는 거다.” -북미 관계 전망을 해 달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비핵화를 진전 없이 그럭저럭 끌고 갈 것이다. 우리에겐 고통의 시간이 될 것이다. 민주당 조 바이든 후보가 당선되면 문제 해결에 상대적으로 더 유리할 것이라고 본다. 공화당은 동맹에 대해 일방적인 경향이 강하다. 트럼프의 일방주의는 더 세다. 트럼프가 김정은 위원장을 만나서 북핵을 풀겠다고 했을 때 환호했지만 한계도 봤다. 철학이나 조직을 갖고 하는 게 아니라 자기 장삿속에서 하는 것이다. 한반도 문제를 풀겠다는 구도 속에서 하는 게 아니다. 바이든이 된다고 해서 미국의 대북 정책이 당장 달라질 것은 없다. 그러나 민주당 정권은 동맹의 의견을 경청하는 편이다. 그래서 대북 정책에서 한국이 말할 수 있는 공간이 생길 것이다. 누가 대통령이 되든 교착 국면에서 한국이 상황을 돌파하려는 의지와 결단과 실행 능력이 중요하다. 그것이 북미 관계에도 영향을 미친다.” marry04@seoul.co.kr이종석 전 장관은 3년간의 청와대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차장을 거쳐 노무현 정권 말기 2006년 2월부터 12월까지 통일부 장관을 지냈다. 문재인 대통령이 청와대 민정수석을 지낸 2003년 NSC 차장으로서 인연을 맺었다. 저서는 ‘북한-중국 국경: 역사와 현장’(2017), ‘칼날 위의 평화: 노무현 시대 통일외교안보비망록’(2014) 등.
  • 주한미군 한국근로자 생계 ‘숨통’… 방위비 협상은 장기화 우려

    주한미군 한국근로자 생계 ‘숨통’… 방위비 협상은 장기화 우려

    무급휴직 4000여명에게 15일 출근 통보 美, 주한미군 준비태세 우려 입장 선회 방위비 타결되면 지급한 인건비는 공제 “가능한 한 빠른 합의를” 우리 정부 압박 美 압박 지속 땐 연말까지 표류할 수도한미가 주한미군 한국인 근로자의 인건비를 한국 정부가 우선 지급하는 데 합의했다. 한미 방위비분담특별협정(SMA)이 체결되지 않아 4월부터 무급휴직에 들어간 한국인 근로자 4000여명이 오는 15일 복귀할 예정이다. 다만 방위비분담 본협상에서는 이견을 좁히지 못해 협상 장기화 우려도 나온다. 미국 국방부는 2일(현지시간) “2020년 말까지 모든 주한미군 한국인 근로자의 인건비를 지급하겠다는 한국의 제안을 수용했다”고 밝혔다. 주한미군사령부도 무급휴직 근로자에게 오는 15일 출근하라고 통보함에 따라 무급휴직 사태가 75일 만에 마무리될 것으로 전망된다. 앞서 한국 정부는 지난 2월 방위비분담협상이 난항을 겪자 한국인 근로자 인건비 지급을 위해 별도 교환각서를 우선 체결하는 ‘인건비 선타결’ 방안과 한국 정부가 이미 국방예산에 편성돼 있는 방위비분담금 인건비 예산을 우선 집행하는 ‘인건비 선지급’ 방안 등 두 가지 안을 제안했다. 당시 미국 정부는 “전체 협상의 신속한 타결을 손상시키는 것”이라며 거부했지만 무급휴직이 두 달 가까이 이어지며 주한미군 준비태세에 대한 우려가 깊어지자 입장을 바꾼 것으로 보인다. 노조 관계자는 “주한미군사령부 측이 인건비 문제라도 먼저 해결하자고 미국 정부에 강력히 요청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 한미가 합의한 ‘인건비 선지급’ 방안은 정부가 미국에 지불해야 할 방위비분담금 중 인건비만 우선 지급한다는 것으로, 방위비분담금과 별개로 추가 지출하는 것은 아니다. 방위비분담협상이 타결되면 전체 분담금 중 선지급한 인건비는 공제할 것으로 보인다. 한국이 지급할 인건비 액수 등 구체 사항은 논의 중이다. 미국 국방부는 “모든 주한미군 한국인 근로자에 대한 한국의 자금 지원으로 2억 달러 이상이 제공될 것”이라고 했지만, 외교부 관계자는 “인건비가 구체적으로 얼마나 필요한지는 정확히 따져 봐야 한다”고 했다. 다만 “구체적 액수는 협상의 대상이라기보다는 계산의 문제”라고 덧붙였다. 미국은 방위비 인상 압박을 이어 나갔다. 미 국방부는 “우리는 우리 동맹국(한국)이 가능한 한 빨리 공정한 합의에 이를 것을 강력 권고한다”며 “미국은 상당한 유연성을 보였고 한국도 똑같이 해 주길 요청한다”고 말했다. 미국이 인건비 선지급 방안을 수용했다는 명분으로 분담금 인상을 더욱 압박하고, 한국도 한국인 근로자 인건비 문제를 해결한 만큼 버티기에 나설 경우 연말까지 표류할 수 있다는 전망도 제기된다. 다만 미국이 인건비 문제에 전향적으로 나온 만큼 본협상에서 유연한 태도를 취할 수 있다는 관측도 조심스럽게 흘러나온다. 외교부 관계자는 “속단하기 어렵지만 인건비 선지급 방안 수용을 좋은 시그널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박기석 기자 kisukpark@seoul.co.kr이주원 기자 starjuwon@seoul.co.kr
  • 임종석 “김정은 답방만 기다릴수 없어, 문대통령 일만들것”

    임종석 “김정은 답방만 기다릴수 없어, 문대통령 일만들것”

    정부 대북제재 5·24조치 장애 아니란 입장 임종석 전 대통령 비서실장이 “올해도 북미 간 진전이 없다면 문재인 대통령은 미국과 충분히 소통하되 부정적 견해가 있어도 일을 만들고 밀고 가려 할 것”이라고 말했다. 임 실장은 오는 22일 출간되는 ‘창작과 비평’ 2020년 여름호 대담에서 “지금 남북이 하려는 것은 국제적 동의도 받고, 막상 논의하면 미국도 부정하지 못하는 일”이라며 이같이 밝혔다. 이런 언급은 문 대통령이 취임 3주년 연설에서 “북미 대화만 바라보지 말고 남북 간에 할 수 있는 일들을 해나가자”고 말한 것과 맞물려 주목된다. 임 실장은 “미국뿐만 아니라 중국, 러시아와의 관계를 활용하는 결심이 필요하다”고도 주장했다. 임 실장은 북한의 비핵화 과정이 교착상태인 원인을 묻자 ‘하노이 노딜’을 꼽았다. 그는 “북한은 전면적 제재 해제가 아니라 민수경제와 인민생활에 지장을 주는 제재를 먼저 해제해달라고 요구했다”며 “불가역적 비핵화의 시작인 영변 핵시설 해체를 제시했는데도 미국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고 분석했다. 임 실장은 교착의 다른 원인을 두고 “남북이 양자 간 합의사항을 적극적으로 실행했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했다”며 “우리 마음대로 북미 관계를 풀 수 없다면 새로운 결심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또한 대북 제재를 적극적으로 해석해야 한다며 “미국은 월경(越境) 여부를 기준으로 삼아 물자가 넘어가면 무조건 규제하려 하는데, 말이 안 된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이를 해결하면 산림협력과 철도·도로 연결도 진행할 수 있다”고 부연했다. 임 실장은 당장 실천해야 할 과제로 남북 정상회담을 들었다. 문 대통령은 미국과 국제사회의 대북제재 해제를 마냥 기다릴 수 없는 만큼 “할 수 있는 것부터 하자”는 입장을 밝혔으며, 통일부는 5·24 대북제재 조치 10주년을 앞두고 이 조치가 남북관계의 장애가 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5·24 조치는 천안함 폭침에 대응해 우리 정부가 독자 시행한 조치로 남북교역과 북한선박의 운항 등을 금지하고 있다. 북한 코로나 확산방지 위해 제재 해제 주장임 실장은 이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답방만 기다릴 수는 없다”며 “여러 정세를 토론하고 상대가 어떤 어려움을 겪는지 이해하면 성과로 더 잘 이어질 것”이라고 역설했다. 김 위원장에게 하고 싶은 말로 “‘문 대통령 임기에 꼭 같이 성과를 내자’고 하고 싶다”고 설명했다. 앞으로 활동 계획에 대해서는 “일반 제도정치에 몸담고 싶은 생각은 없다”며 “남북문제에 제도 정치에서의 역할이 있다면 솔직하게 설명드리고 할 것”이라고 밝혔다. 한편 북한은 18일부터 이틀간 열린 세계보건총회(WHA)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의 확산을 막기 위해 제재 해제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미 국무부 관계자는 “미국의 제재 프로그램은 인도주의 지원이 아니라 미국의 금융시스템을 이용하거나 미국, 동맹국, 파트너, 민간인을 위협할 수 있는 나쁜 행위자들의 능력을 제약하기 위한 것”이라며 제재 유지 입장을 밝혔다고 미국의소리(VOA) 방송은 전했다. 윤창수 기자 geo@seoul.co.kr
  • 3·1만세운동·일제 만행, 사진·글로 전 세계에 알린 ‘34번째 민족대표’

    3·1만세운동·일제 만행, 사진·글로 전 세계에 알린 ‘34번째 민족대표’

    1920년 초 대구감옥. 스코필드는 누워 있는 김마리아를 보고는 뜨거운 눈물을 흘렸다. 김마리아는 애국부인회 사건으로 악랄한 고문을 받아 반신불수가 된 채 수감 중이었다. 스코필드는 혹한의 날씨에도 서울에서 대구로 내려가 마리아의 손을 꼭 잡고 위로했다. 스코필드는 서울로 올라온 즉시 사이토 총독을 방문해 강력하게 항의했다. 지난달 12일은 스코필드(Frank William Schofield) 박사의 서거 50주기였다. 국립서울현충원에 묘소가 있지만 코로나19가 창궐하던 때라 작은 추모식도 열리지 않았다. 스코필드는 우리가 잘 모르는 독립운동가에 앞서 잊어서는 안 될 독립운동가다. 그는 3·1만세운동이 일어나기 전에 협력을 요청받은 유일한 외국인이다. 또한 그 참상을 세계에 널리 알려 ‘34번째 민족대표’로 불린다. 건국훈장을 받은 독립유공자 1만 5500여명 중 순수 외국인은 스코필드를 포함해 70명이다. 장제스, 쑨원, 베델도 들어 있고 식민지 정책에 반기를 든 후세 다쓰지 변호사, 박열과 옥중 결혼한 가네코 등 일본인도 훈장을 받았다.스코필드는 1889년 3월 15일 럭비의 발상지인 영국 워릭셔주 럭비시에서 태어났다. 1907년 캐나다로 홀로 이민을 가서 토론토에 있는 온타리오수의대를 졸업하고 박사 학위를 받아 모교에서 세균학 강사로 일했다. 스코필드가 한국에 온 것은 세브란스의학전문학교 교장 에비슨으로부터 “한국과 같은 외딴 나라에서 굳은 의지와 정열로 교육 활동을 할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하다”는 편지 한 통을 받은 것이 계기가 됐다.스코필드는 대학생 때 소아마비를 앓아 한쪽 다리와 팔이 불편한 몸이어서 주변에서 말렸지만 뿌리치고 1916년 11월 아내와 함께 한국에 들어왔다. 스코필드는 석호필(石虎弼)이라는 한국식 이름부터 지었다. 철석같은 의지(돌 석), 호랑이같이 무서운 사람(호랑이 호), 어려운 사람을 도와주는 것(도울 필)을 뜻한다고 말하곤 했다. 3·1운동 전날 저녁 세브란스의학교 제약주임이자 민족대표 33인 중의 한 사람인 이갑성은 세브란스의학교 교수로 있던 스코필드를 찾아가 거사 계획을 설명하고는 현장 사진을 기록으로 남겨 달라고 부탁했다. 또 독립선언문을 영어로 번역해 미국 백악관에 보내 달라고 요청했다. 일제의 강압적인 지배 정책에 반대하고 한국의 독립과 자유를 지지하던 스코필드는 망설이지 않았다. 드디어 3월 1일. 스코필드는 자전거를 타고 파고다공원으로 나가 만세 부르는 모습을 카메라에 담기 시작했다. 한쪽 다리가 불편한 스코필드는 외발로 자전거를 몰아야 했다. 대한문, 왜성대, 숭례문, 서울역까지 군중을 쫓아다니면서 열심히 셔터를 눌러 역사적인 현장을 촬영했다. 사진을 잘 찍으려고 일본인이 운영하는 과자점에 들어갔다가 도둑으로 몰리는 봉변도 당했다. 남아 있는 3·1운동 현장 사진 대부분은 스코필드가 찍은 것이다. 스코필드는 보고 들은 것들을 사진과 함께 외국 신문에 기고했다. 스코필드가 찍은 태형 피해자 사진 등 만행 사진은 미 국무장관에게 보낸 보고서에 첨부됐다.스코필드의 두 번째 활약은 일제의 학살 사건을 전 세계에 알린 일이다. 경기도 수원(현재 화성) 지역 만세운동의 보복으로 일본군은 수촌리 마을 전체를 불태우고 항의하는 주민을 총칼로 제압하고 죽였다. 또 발안 시위의 보복으로 제암리 주민 30여명을 교회 안에 가둔 뒤 불을 질러 23명을 학살했고 이웃 고주리에서도 천도교인 6명을 총살했다. 소식을 들은 스코필드는 기차와 자전거를 이용해 현장으로 달려가 진상을 눈으로 보고 보고서를 썼다. 수촌리 사건은 ‘수촌리 만행보고서’라는 제목으로 미국 장로회 기관지 ‘프레스비테리안 위트니스’ 1919년 7월 26일자에 보도됐다. 제암리 사건은 ‘제암리 대학살’이란 제목으로 중국 상하이에서 발행되던 ‘상하이 가제트’ 1919년 5월 27일자에 게재됐다. 스코필드가 아니었다면 일제의 만행은 한동안 파묻혔을지도 모른다. 스코필드는 김마리아와 같은 수감자 인권 문제에도 깊은 관심을 가졌다. 당시 ‘서울프레스’라는 영자신문이 서대문형무소를 ‘서대문요양소’, ‘서대문직업학교’라고 보도하자 직접 형무소를 찾아가 진실을 확인했다. 유관순, 어윤희, 이애주 등을 만나 끔찍한 고문이 있었음을 두 눈으로 확인하고 총독부로 찾아가 하세가와 총독에게 강력하게 항의했다. 그는 총독부 간부들을 만날 때 반드시 명함을 받고 사진을 찍어 둬 방해하는 일경들에게 압력을 행사하는 데 활용했다고 한다.스코필드는 1919년 8월 일본에 건너가 극동 선교사 800여명 앞에서 일제의 만행을 비난하는 연설을 하고 하라 총리를 만나 비인간적인 만행을 중단하라고 요구했다. 각국 언론과 접촉해 일본을 비난하는 글도 계속해서 실었다. 일본 영자신문 ‘재팬 애드버타이저’와 캐나다 ‘글로브’ 등에는 기고문을 보내 한국인에 대한 만행을 중단하고 독립과 자치를 허용하라고 촉구했다. 세브란스의학교 제자들은 스승 스코필드의 뒤를 따라 독립운동에 투신했다. 이용설, 김문진, 김명수, 배동완 등은 3·1만세운동에 참여했다. 세브란스병원 부속 간호부 양성소를 다니던 정종명, 박덕혜, 노순경, 이정숙, 이성완 등은 만세운동에 참가하거나 애국부인회 활동을 하다 옥고를 치렀다. 특히 세브란스의학교 1917년 졸업생 안사영은 만주로 가서 신흥무관학교 군의과장으로 독립운동을 도왔다.일제에 스코필드는 눈엣가시 같은 존재일 수밖에 없었다. 일본은 영국과 동맹을 맺고 있던 터라 영국계 캐나다인인 스코필드를 추방할 수 없었다. 그러나 귀국을 종용하도록 세브란스에 직간접적인 압력을 넣었으며 암살을 기도하기도 했다. 스코필드는 결국 세브란스와의 계약을 연장하지 못하고 1920년 4월 캐나다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캐나다에 있으면서도 스코필드의 한국 사랑은 식지 않았다. 공개편지를 국내로 보내 한국을 자신의 고향이라고도 하고 자신은 캐나다인이라기보다 조선인이라고 말했다. 1954년 스코필드는 온타리오수의대에서 은퇴했고 1957년에는 부인 엘리스가 사망했다. 한국 친구들은 스코필드가 한국에 오기를 바랐다. 마침내 1958년 8월 스코필드는 국빈 자격으로 38년 만에 한국에 돌아왔다. 스코필드는 서울대 수의대 교수로 재직하면서 고아원과 직업학교를 돕는 봉사활동에도 열성적으로 참여했다. 정부가 작은 아파트를 내줬지만 그는 우편료가 비싸진다며 편지의 여백을 가위로 자를 만큼 검소하게 살았다. 그가 만년에 한국에서 생활한 12년은 독재의 시대였다. 스코필드는 독재와 부정을 비판했고 당국은 그의 강의를 중단시키기도 했다. “국민은 불의에 항거해야만 하고 목숨을 버려야만 할 때가 있다. 그럼으로써 일종의 노예 상태에서 해방되고 조금은 광명을 되찾을 수 있는 것이다.” 스코필드는 굴하지 않았고 강연과 언론 기고를 통해 끊임없이 바른 소리를 했다. 1968년 정부는 스코필드에게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했다. 스코필드는 1969년 초부터 천식이 심해졌고 병원에 입원했다. 그는 병상에서도 한국의 장래를 걱정하다가 1970년 4월 12일 81세로 영면했다. 캐나다에는 스코필드의 손자와 손녀가 살고 있고 몇 차례 할아버지가 묻힌 한국을 방문했다. “캐나다인으로 우리 겨레의 자주독립을 위하여 생애를 바치신 거룩한 스코필드 박사 여기에 고요히 잠드시다.” 묘비에는 이렇게 새겨져 있다. 스코필드는 외국인이었지만 한국인도 하지 못한 일을 했고 한국을 자신의 조국보다 더 사랑했다. 우리가 그를 잊어서는 안 되는 까닭이다. 글 사진 논설고문 sonsj@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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