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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설] 홍업씨 수사, 국민이 지켜본다

    김대중 대통령의 차남 홍업씨에게 19일 출두하도록 통보한 검찰은 먼저 국민과 눈높이를 맞춰야 한다.그동안 검찰은 월드컵과 지방선거를 의식한다거나 청와대와 정치권의 눈치를 보아 홍업씨 수사를 끈다는 등의 인상을 주었던 것이 사실이다.3남 홍걸씨가 구속 기소되었으니 홍업씨는 불구속 기소해도 되지 않느냐는 내부 의견도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그것은 민심을 모르고 하는 말이었다. 6·13 지방선거가 끝난 뒤 MBC가 휴대전화 사용자 2000명을 조사한 결과,69.3%가 대통령 아들의 비리가 지지 후보 결정에 영향을 미쳤다고 응답했다.한마디로 권력 비리에 대한 염증이 표심을 좌우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민주당의 표밭인 호남에서조차 무소속 후보가 강세를 보였다. 검찰은 우선 홍업씨가 S건설 전모회장에게 받은 3억원 등 20억원을 이권청탁의 대가로 받은 것으로 보아 사법처리 수순을 밟을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그러나 국민들은 지금까지 제기됐던 의혹들을 해명하지 못하면 검찰을 믿으려 하지 않을 것이다.언론에 보도된 몇가지만 든다면아태재단 직원 등을 통해 돈세탁한 28억원의 출처,‘국정원 5억원?’‘후광 돈 확인’등의 메모도 규명해야 한다.3인방인 김성환씨가 평창종건 등과 거래한 100억원대와 유진걸씨가 관리한 32억원의 출처,이거성씨가 이재관 새한 그룹 전 부회장에게 받은 17억원 가운데 홍업씨에게 얼마나 건너갔는지도 밝혀야 한다. 이들이 호가호위하면서 홍업씨에게 돈을 건네지 않았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납득이 되지 않는다.대가성은 폭넓게 인정한 뒤 법원의 판단을 구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명재 검찰’은 국정조사나 특검이 필요하다는 얘기가 나오지 않도록 해야 한다.만약 특검이 대통령 아들의 비리를 다시 수사해 또다른 비리를 밝혀낸다면 검찰의 신뢰는 회복하기 어렵다.그럴 경우 수사권 독립을 제고할 수 있는 다른 제도적인 방안이 강구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 “환상의 세계 푹 빠져보세요”, 미야자키 하야오 최신작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구치’‘샤넬’‘루이뷔통’‘페라가모’ 등 고가의 수입 명품을 구입하면서 품질을 의심한다면 바보다.애니메이션의 거장 미야자키 하야오의 작품을 앞에 두고 재미를 의심한다면 그 또한 어리석다. ‘이웃집의 토토로’‘바람계곡의 나우시카’‘천공의 성 라퓨타’‘원령공주’등 수많은 문제작을 만든 미야자키 감독의 최신작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이 오는 28일 개봉한다.4년간의 공백 뒤에 나온 작품이어서인지 거장의 기개가 농축된 듯하다.올해 베를린영화제에서 애니메이션 사상 최초로 금곰상을 받은 이 영화는 일본에서 사상 최고인 2350만명의 관객을 끌어모았다. 일본산 화제의 애니메이션이 제작한 지 여러해 지나서야 국내에서 개봉,정작 영화관 상영에서는 흥행에 실패한 것과는 달리 ‘센과 치히로…’는 지난 4월까지 일본에서 상영한 ‘새것’이어서 국내 흥행성적에 대한 기대도 매우 크다. 평범한 응석받이 치히로는 부모와 함께 이사가는 도중 길을 잃어 폐허가 된 놀이공원에 도착한다.가뜩이나 이사가는 것이 마뜩찮은 치히로는그곳에서 빨리 빠져나오려고 하지만 부모는 주인없는 식당에 들어가 음식을 탐하다가 돼지로 변해버린다.그곳은 일본의 신과 정령들이 살아가는 이승과 저승의 중간쯤되는 공간.일하지 않으면 가축으로 만들어 버리는 마녀 아바바의 지배를 받는 곳이기도 하다.치히로도 살아남으려고 800명이 넘는 신들의 휴식처인 온천장에 종업원으로 취직해 모험을 펼친다. 영화는 혼을 쏙 빼앗길 만큼 재미있다.팔이 6개 달린 가마할아범,열심히 석탄을 나르는 검댕이,얼굴이 몸보다 더 큰 마녀 아바바,머리밖에 없는 호위병 3형제.미야자키의 머리에는 무엇이 들었길래 이토록 풍부한 상상력을 쏟아낼까? 등장하는 캐릭터가 모두 독특한 개성을 갖고 있어 환상의 세계가 현실세계보다도 생생하다. 그러나 영화는 무턱대고 환상의 나래만을 펼쳐 보이지는 않는다.친구를 사귀고 싶지만 방법을 모르는 얼굴없는 요괴,오물신이라고 오해 받을 정도로 탁해진 강물의 신,돈이면 무엇이든지 하는 마녀 아바바 등을 통해 현대사회의 문제점을 꼬집기도한다. “10살배기 아이들을위해 이 만화영화를 만들었다.”는 미야자키는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이 어린 소녀의 모험과 그를 통한 성장을 주제로 하고 있지 않다.”고 강조했다.불만 많고 투덜대기 좋아하는 치히로의 성장과정보다는 ‘격려와 이해’에 초점을 맞추었다는 것.그는 단지 “괜찮아.너는 할 수 있어.”라는 말을 하고 싶었다고.그러나 10대뿐만 아니라 20∼30대,아니 나이를 초월해서라도 거장의 따뜻한 그 말 한마디를 가슴으로 느낄 만한 걸작이다. 이송하기자 songha@
  • [임영숙 칼럼] 선거연령, 붉은악마, 희망…

    사상 최저의 투표율을 기록한 제3회 지방선거가 끝나고 월드컵 한국축구의 아침이 다시 밝았다.솔직히 재미없는 회색빛 지방선거 결과보다 열정의 붉은색 물결이 출렁이는 월드컵 쪽으로 내 마음은 달려간다. 아직도 지난 10일 시청 앞 광장을 가득 메운 길거리응원단의 함성이 귓가에 맴돌고 있다.15년전 같은 날 같은 장소에서 분출했던 ‘호·헌·철·폐’‘직·선·쟁·취’의 비장하고 엄숙한 구호위에 겹쳐 들린 ‘대∼한민국’‘오∼필승 코∼리아’의 순도 높은 경쾌함은 지금도 가슴을 뜨겁게 한다. 아,어느 사이 우리가 그 많던 무거움을 떨구어내고 이토록 높이 비상할 준비를 갖추었는가.월드컵 대회를 세 번째 취재한다는 외국 기자까지 “믿어지지 않을 만큼 감동적인 장면”이라고 한 축제의 현장에서 나는 마음속 찌든 때를 씻어내는 목욕을 했다.그날 나의 푸른색 바지 정장 차림만큼이나 격식에 묶인 마음을 풀어헤쳤다.그 순수의 목욕물은 물론 ‘붉은악마’였다. 전국 80여개 전광판 앞에 모인 100여만 길거리응원단의 핵심인 그들은 줄기차게퍼붓는 장대비 속에서도 꼼짝 않을 만큼 집중된 힘과 신명을 보여주었다.미국에 1대0으로 지고 있는 상황에서 한국 선수가 절호의 득점 기회인 페널티킥에 실패했을 때도 절망의 한숨 다음에 곧바로 ‘괜찮아’‘침착해’를 연호하며 선수들을 격려했다.경기가 끝난 후에는 비에 젖어 지저분하기 짝이 없는 쓰레기들을 스스로 치우기 시작해 슬그머니 그 자리를 떠나려던 어른들을 무안하게 했다.대형 전광판 앞의 정원수가 망가질까 걱정했던 대한매일의 염려도,행여 과격한 반미시위가 일어나지 않을까 예측했던 언론의 기우도 통쾌하게 배반했다. 그런 ‘붉은악마’ 가운데 많은 이들이 13일 지방선거에 참여할 수 없었다.불합리한 선거연령 규정 때문이다.만 20세가 돼서야 우리 청소년들은 선거권을 갖는다.그러나 전세계 대부분 국가들이 18세 이상이면 선거권을 부여한다.한국처럼 20세가 넘어야 선거권을 부여하는 나라는 튀니지 파키스탄 피지 쿠웨이트 보츠와나 일본등 20개국 정도에 불과하다. 한국도 근로기준법·병역법·도로교통법 등 많은 국내법에서 성인연령을 18세 이상으로 간주하고 있다.18세가 되면 공무원 시험,운전면허 시험 자격과 병역 의무를 갖는 것이다.18세에서 19세까지의 청소년은 대체로 고등학교 3학년이나 대학교 1학년에 해당한다. 헌법재판소는 지난 4월 만 20세 이상 선거연령 제한은 위헌이라는 헌법소원을 또다시 기각했다.“선거권 연령을 20세 이상으로 제한하고 있는 것은 입법자가 미성년자의 정신적·신체적 자율성의 불충분 외에도 교육적인 측면에서 예견되는 부작용과 일상생활 여건상 독자적으로 정치적인 판단을 할 수 있는 능력에 대한 의문등 여러 가지 사정을 고려해 규정한 것이어서” 위헌이라고 볼 수 없다는 것이 그결정의 요지였다. 청소년들이 중심축을 이룬 ‘붉은악마’가 이번 월드컵에서 보여준 놀라운 역동성과 자발성은,헌법재판소의 이런 결정이 의심에 찌든 어른들의 기우이거나 정치권의 복잡한 이해관계에 따른 것이라는 생각을 갖게 한다.우리 사회의 민주화와 교육수준,경제·문화수준과 언론자유의 향상 등을 고려하면 42년 전에 규정된 선거연령 20세는 18세로 하향 조정해야 마땅하다. 고질적인 투표율 저하는 20세 선거연령 문제에서 비롯된 측면도 없지 않다.‘붉은악마’는 참여를 통한 변화의 희망을 우리에게 안겨주었다.축구의 제전보다 더 중요한 민주주의의 제전인 선거에 18세 이상 청소년들이 참여한다면 누더기 같은 우리 정치에도 희망의 바람이 불어 올 것이다. 오늘 경기 결과가 어떻게 되든 우리는 이미 이번 월드컵에서 기대 이상의 성과를 거두었다.정몽준 한국월드컵조직위원장은 지난해 한 간담회에서 “월드컵 유치 당시 꿈은 우리도 축구전용구장들을 짓는다는 것이었지 16강 진출은 엄두도 내지 않았다.”고 밝힌 바 있다.선거연령을 18세로 낮추는 것이야말로 이번 월드컵에서 우리 자신을 놀라게 한 성숙한 응원문화를 사회자본화하는 길이다. 임영숙/ 미디어연구소장
  • 선택6.13/ 올바른 후보 선택기준 6가지

    ‘나도 누굴 찍어야 할지 모르겠어요….” 6·13 지방선거를 하루 앞둔 12일 중앙선관위 고위관계자가 무심코 한 말이다.선관위 고위관계자의 발언은 이번 선거의 실상을 단적으로 드러낸다.이런 마당에 일반 유권자들은 이름조차 생소한 후보들을 놓고 망설일 수밖에 없다.이럴 때 유용한 자료가 선관위가 각 가정에 보낸 선거공보물이다.여기엔 후보의 약력과 정견,공약이 정리돼 있다.후보를 제대로 모르는 유권자라면 투표전에 이 공보물이라도 꼼꼼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하지만 이 공보물에는 유권자들을 현혹하는 함정도 있다.공보물로 살펴볼 후보 선택의 6대 포인트를 짚어본다. ●거창한 공약은 ‘NO’= 후보들은 당선을 위해 ‘장밋빛 공약’을 제시하는 게 상례다.여기에 현혹되지 말아야 한다.지방행정은 대부분 예산이 뒷받침돼야 하고,예산은 중앙의 통제를 받는다.선거 때마다 장밋빛 공약이 난무하지만 선거 이후 ‘공약(空約)’으로 끝나는 악폐가 되풀이돼 왔다.시민단체 ‘함께하는 시민행동’의 오관영(吳寬英) 예산감시국장은 “재정계획도없이 ○○○을 건립하겠다는 식의 거창한 공약을 내세운 후보 대신 작아도 실천 가능한 공약을 제시한 후보를 뽑아야한다.”고 말했다. ●직함 많은 후보는 요주의= 지방선거 후보 가운데는 10여개 이상 많은 직함을 가진 인사들이 적지 않다.물론 지역활동이 활발해 많은 직함을 가진 것 자체를 탓할 수는 없다.그러나 옥석은 가려야 한다.직함이 많을수록 ‘허세용’일 가능성이 높다.무엇하나 제대로 하는 것이 없다는 반증일 수도 있다.특히 ‘○○지역발전연구소이사장’‘○○보호위원’과 같은 직함은 눈 여겨볼 필요가 있다.실제로 지역발전을 위한 연구소인지,몇달짜리 임대사무실에 전화만 달랑 놓은 선거용 유령사무실인지 살펴야 한다. ●학력에 현혹되지 말아야= 흔히 공보물에 적힌 후보의 학력 가운데 ‘○○대 ○○과정 수료’와 같은 내용을 볼 수 있다.외국의 유수한 대학 이름을 내건 후보도 적지 않다.그러나 실제로는 유명무실한 경우가 적지 않다.선거법은 정규학력에 준하는 외국의 교육과정을 이수한 학력을 게재할 경우 그 교과과정과수학기간,학위명등을 기재하도록 하고 있다.이런 요건을 갖추지 않은 채 기재된 학력은 ‘허명’일 가능성이 높고,그 자체로 선거법 위반이기도 하다. ●정치쟁점을 강조하는 후보는 피해야= “○○○을 심판하자!”“XXX를 청산하자!”는 식으로 중앙정치의 쟁점을 강조하는 후보도 적지 않다.결론부터 말하면 그런 후보는 중앙정치무대로 보내야 한다.지방선거는 말 그대로 지역일꾼을 뽑는 선거다.정국 쟁점을 부각시키는 후보는 상대적으로 지역연고나 활동이 부족한 경우가 많다는 것이 선관위의 분석이다. ●성(性)과 인상에 대한 편견은 금물= 공보물 전면에는 예외없이 미소짓는 후보 얼굴이 실려 있다.갈수록 이미지 정치가 강조되면서 후보의 인상이 당락에 주요한 변수가 되는 것이 현실이다.그러나 현명한 유권자라면 앞서의 항목들을 꼼꼼히 점검한 뒤 후보 얼굴을 살필 것이다. 성에 대한 편견도 경계해야 할 대목.이번 지방선거에 나선 여성후보는 비례대표광역의원 후보를 포함해 394명이다.이는 전체 출마자 1만 918명의 3.6%에 불과하다.여성정치에 대한 부정적 인식과 제도적 장벽이 낳은 결과로,낮은 참여율이 능력부족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전과·납세 조회도 필수= 선거공보물을 보고 후보를 낙점했다면 인터넷을 통해 그 후보의 전과나 납세실적을 조회해 보는 것이 중요하다.중앙선관위 인터넷 홈페이지(www.nec.go.kr)에 들어가면 이를 열람할 수 있다.중앙선관위 홈페이지 초기화면에서 ‘6·13 동시 지방선거’를 클릭한 뒤 ‘후보자 정보공개현황’을 열면 해당후보의 전과기록과 납세실적,병역기록,재산상태를 알 수 있다. 진경호 조승진기자 jade@
  • [가자! 교통월드컵] 교통문화도 한단계 ‘업그레이드’

    ■차량2부제 자율참여 2002 한·일 월드컵은 역대 어느 대회보다 성공적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한·일 두 나라는 다양한 프로그램과 질서정연한 시민의식을 선보이며 개최국뿐아니라 아시아의 위상을 한단계 올려 놓았다. 특히 한국은 이번 월드컵을 통해 ‘최악의 교통지옥’이라는 오명을 씻어낼 수 있는 전기를 마련했다.자원봉사자들의 친절과 서비스,질서정연한 관전문화도 개최국으로서 손색이 없다. ●경기마다 수만 관중 대중교통 이용= 터키와 코스타리카의 경기가 열린 지난 9일인천 문학경기장.경기 시작 4시간 전인 오후 2시부터 몰려들기 시작한 관중들로 인천지하철 1호선 문학경기장역 출구는 북새통을 이뤘다.인파에 묻혀 느릿느릿 걸어야 했지만 누구 하나 짜증내는 이가 없었다. 이와 달리 경기장 주변 주차장은 을씨년스러울 정도로 텅 비어 있었다.내국인 차량은 찾아볼 수 없고 외교용과 외국인 차량만 간간이 눈에 띄었다.이날 경기를 관람한 4만여 관중 가운데 행사차량을 이용한 경우를 제외하고 줄잡아 3만명이 지하철을, 5000명이버스를 이용한 것으로 집계됐다. 개막전이 열린 지난달 31일 서울시도 개최국의 수도다운 면모를 과시했다.경기장을 찾은 6만 5000여명의 관중 가운데 5만여명이 지하철과 버스 등 대중교통을 이용한 것으로 파악됐다.수색로·강변북로 등 주요 간선도로에서 경기장으로 진입하는 도로는 행사용 차량 전용도로나 마찬가지였다. 경찰청 관계자는 “경기장 주변 도로의 일반 차량 운행을 통제하긴 했지만 이렇게 협조가 잘 된 적이 없다.”면서 “교통경찰들이 딱히 할 일이 없다.”고 말했다. ●2부제 참여율 90% 웃돌아= 전 세계적으로 아무리 큰 대회가 열려도 2부제를 도입하는 나라는 거의 없다.시민들의 합의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기 때문이다. 1988년 서울 올림픽에 이어 이번 월드컵 기간에 일부 도시에서 실시 중인 2부제는 시민들의 자발적인 참여로 실효를 거두고 있다. 서울시 등 지방자치단체들에 따르면 서울·부산·인천 등 강제 2부제를 도입하는 도시뿐 아니라 대구 등 자율 2부제를 실시하는 곳에서도 참여율이 90%를 웃돌았다. 홀수차 운행이금지된 지난 9일 인천시내 대부분의 도로는 보통 때와 딴 판이었다.이날 정오부터 1시간여 동안 부평역 북쪽 광장 앞 대로변을 지나친 차량 중 끝자리가 홀수인 승용차는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 인천시는 이날 2부제 참여율이 95%에 육박한 것으로 추산했다. 서울시도 마찬가지였다.지난달 30·31일 이틀간 실시된 2부제는 참여율이 92.7%에 이르렀다.이틀간 서울시내 출근시간대 평균 시속은 평소 24.2㎞에서 31.4㎞로 빨라졌다.대신 지하철 등 대중교통 이용객은 크게 늘었다. 서울지하철공사 관계자는 “평소 42만명선이던 출퇴근 시간대 지하철 이용객이 2부제 실시기간에 46만명선으로 크게 늘었다.”고 말했다. ●일부 얌체 운전자는 선진 교통의 걸림돌= 지구촌 축제를 성공적으로 이끌자는 국민적 합의로 2부제 실시기간에 대다수 운전자들은 핸들을 놓고 대중교통을 이용했다.그런 와중에도 일부 얌체 운전자들은 이에 아랑곳없이 차를 끌고 다녔다. 특히 값비싼 승용차를 몰고다니는 운전자일수록 2부제 참여율이 저조했다. 서울 강남구에 따르면 지난달 30·31일 출근시간대에 실시한 2부제 단속에서 2000㏄급 이상 중·대형 차량이 전체 위반건수의 70%를 웃돌았다.30일 오전 적발된 37대의 차량 가운데 27대가 2000㏄ 이상이었다. 한편 월드컵 경기가 열리지 않는 날은 대부분의 도시가 평상시와 별로 차이가 없는 모습이어서 아쉬움을 더하고 있다.도로 곳곳은 불법 주정차한 차량으로 몸살을 앓고,운전자들의 신호위반과 보행자들의 무단횡단이 외국인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박미옥(35·서울 목동)씨는 “경찰차가 바로 옆으로 지나가는데도 안전벨트조차 매지 않고 휴대전화를 사용하는 운전자도 있었다.”면서 “이런 모습을 외국인들이 지켜보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니 정말 부끄러운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전광삼기자 hisam@ ■성숙한 시민의식 돋보였다 2002 월드컵 개최국인 한·일 양국은 성숙된 시민의식을 선보이고 있다. 우리 국민들은 일본에 뒤질세라 어느 때보다 외국인들에게 친절하려 애썼고,경기장에서도 깔끔한 시민의식을 보여줬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특히 ‘붉은악마’를 포함한 대다수 국민들은 질서정연한 관전행태를 견지해 외국인들을 놀라게 하고 있다. 실제로 지난달 31일 개막식을 보기 위해 서울 상암경기장으로 몰려든 9만여명의 시민들은 한단계 성숙된 질서의식을 과시했다.경기장 진입에 앞서 경찰이 실시한 보안검색으로 출입구마다 수십명씩 줄을 서서 기다려야 했지만 검색에 짜증을 내거나 불응하는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부산·서귀포 등 대다수 경기장의 풍경도 상암경기장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더욱이 시종일관 질서 정연한 관전태도와 각국 응원단을 미소와 박수로 맞아준 시민들의 친절함은 우리나라의 이미지를 크게 높여줬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경기가 끝난뒤 관중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간 자리는 외국인들뿐 아니라 우리 스스로를 놀라게하고 있다.산더미처럼 쏟아져 나오던 쓰레기가 자취를 감췄기 때문이다.큰 대회가 치러진 역대 어느 경기장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장면이었다. 지난달 31일 개막전에서 만난 재미교포 찰스 조(32)는 “개막식도 훌륭했지만 시민의식이 더욱 빛났다.”면서 “한국인 2세라는 사실이 자랑스럽다.”고 말했다. 조현석기자 hyun68@ ■교통통제 어떻게 월드컵이 열리는 서울에서는 12∼13일(터키-중국전),24∼25일(준결승전) 차량 강제 2부제가 도입된다. 이에 앞서 지난달 31일 개막식 당일과 전날에도 2부제를 실시했다. 12·24일에는 차량번호 끝자리가 짝수,13·25일에는 홀수 차량의 운행이 각각 금지된다.이를 어기면 과태료 5만원을 물어야 한다. 적발된 뒤 2시간 뒤에 다시 걸리면 또 5만원을 내야 한다. 대상차량은 10인승 이하 승용차와 3.5t 이상의 비사업용 화물차.다만 긴급·장애인·외교용 차량 등은 2부제 대상에서 제외된다. 또 부가가치세가 면제되는 쌀·야채 취급 차량이나 결혼·장례식용 차량은 구청이나 동사무소의 허가를 받으면 된다. 운행 금지시간은 오전 7시부터 밤 10시까지 15시간. 이와 함께 월드컵이 열리는 날에는 경기장 주변 도로와 주차장 이용이 제한된다. 서울의 경우 외곽통제선인 수색로·강변북로·가양로 등에서 경기장으로 진입하는 도로는 주차권을 붙인 차량과버스 등 대중교통수단,지역주민 전용차량에 한해 개방된다. 또 내부통제선인 중암로터리∼난지도나들목,상암교∼경기장 서쪽 임시주차장은 주차권 부착 차량과 대중교통 차량만 다닐 수 있다. 전광삼기자
  • [제정러시아 외교문서 새 발굴 대한제국 비사] (8)군사교육 지원의 전모

    ***“6000精兵 양성” 러 군사교관단 2차례 파견 ‘마지막 황제’ 니콜라이 2세의 대관식에 참석하기 위해 러시아를 방문한 민영환(閔泳煥) 특명전권공사는 1896년 6월13일 외무장관 로바노프를 만났다.이 자리에서 민영환 특사는 러시아군대 파견,군사교관단 파견,차관제공,재정고문 초빙,전신선가설 등 5가지 요청 사항을 제시했다.이중 러시아군 및 군사교관단 파견요청에 대해 두 사람이 주고받은 문답은 다음과 같다. 고종의 호위를 위해 러시아 군대를 조선에 파견해 줄 수 있는가.(민영환).왕이 러시아 공사관에 있는 동안 러시아 해군이 호위할 것이다.공사관에 체류하고 싶은 만큼 체류할 수 있다.(로바노프).조선군대를 훈련시키는 동시에 왕을 호위할 군사교관 200명을 파견해 줄 수 있는가.(민영환).군사교관은 파견할 것이나 빠른 시일안에는 곤란하다.(로바노프) 당시는 고종이 러시아공사관에 피신해 있던 아관파천(1896년2월11일∼1897년 2월20일)기간중이었고 러시아가 조선의 국사를 쥐락펴락하던 시기였다.고종은 자신의안위를 보호해줄믿을 만한 군대가 절실하게 필요했고 러시아군이 그같은 역할을해줄 것으로 여겼다.고종은 일본인 특히 일본 군사고문단의 한반도 진출을 꺼려했다.일본 군사고문단 대신 러시아 군사교관단을 초청하고 싶었다.하지만 군사교관단의 파견은 러시아의 의지만으로 해결될 간단한 문제가 아니었다.열강을 동원한 일본과 친일파들의 거센 반발에 부딪혔다.러시아로서도 극동주둔 군사력의 대(對)일본 열세를 잘 알고 있었고 당시 군사교관단의 파견은 군대 파견의 전제조건이자 러시아의 확고한 한반도 지배의사로 해석되는 분위기였기 때문이다. 1896년 2월23일 일본 군사무관 보각 대령은 참모본부 학술위원회에 보낸 전문에서 “조선의 군사교관단과 재정고문 파견요청에 동의하면 일본을 자극하게 될 것이다.이 경우 일본 정계에서 조선문제에 관해 러시아와 협력을 하려는 분위기를 파국으로 이끌거나 아니면 일본의 적극적인 개입을 불러올 수 있다.”고 주장하는 등 러시아 군 내부에서도 반대여론이 팽배했다.이 때문에 러시아정부는 파견결정을 차일피일미뤘고 주한 베베르 대리공사와 대립각을 세우기도 했다.결국 군사고문단의규모를 대폭 축소하는 선에서 ‘생색내기용’파견이 이뤄졌다. 조선의 불안한 정세로 보아 군사교관단과 재정고문 파견문제를 고종과 협의하기는아직 시기상조이다.(1896년 3월1일 로바노프 외무장관이 스페이예르 서울주재 공사대리에게) 가능하면 신속하게 군사고문단을 파견해야 한다.그것이 왕권강화,질서회복 그리고일본견제책의 유일한 수단이다.(같은해 3월20일 베베르가 외무부에 띄운 보고문)국방부에서 검토한 결과 고종의 시위대는 러시아인 장교를 지휘관으로 한인 1개 대대로 구성하고 교관은 위관급 5명,상사 4명,하사관 10명과 소총 1000정이 적합하다고 한다.(1896년 4월28일 외무장관이 베베르에게).고종은 무기와 교관단 파견결정에 감사를 표했다.조선군은 4000명이기 때문에 왕의 시위대외에 서서히 다른 부대의 교육도 위탁하고자 한다.(같은해 같은달 30일 베베르가 외무부에) 1896년 11월22일 러시아 하바로프스크에서 민영환 특사와 청국주재 군사무관이던푸차타 대령 사이에 제1차 군사교관단초청 계약서가 체결됐다.계약에 따르면 초청기간은 1년이며,인원은 장교 2명,하사관 10명,군의관 1명,악장 1명 등 모두 14명으로 돼있다.조선측은 장교급에겐 매월 150엔,사병에게 20엔의 월급과 숙소를 제공키로 했다.제물포까지의 여비와 부임수당 등도 별도로 부담하는 조건이었다.이들 중악장을 제외한 13명이 블라디보스토크에서 그레마쉬호를 타고 제물포항을 통해 입국했다. 곡절끝에 13명의 제1차 러시아 군사교관단은 1896년 10월24일 조선땅에 들어왔다.고종이 요청했던 200명에는 턱도 없이 모자란 숫자였지만 군사교관단의 한반도 파견의 의미는 결코 무시할 수 없는 무게를 갖고 있었다. 러시아는 군사교관단의 파견과 함께 푸차타 대령을 군사교관단장에 임명했다.또 1896년 1월 동부 시베리아 제2보병여단 소속 스트렐비스키 중령을 서울주재 러시아공사관 군사무관(軍事武官)으로 임명했다.1895년 6월17일 아무르군관구 참모부장이 외무장관에게 “이제 서울에도 별도의 상주 군사무관이 필요하다.앞으로극동의분쟁에서 조선의 무력이 큰 변수로 등장할 것이 분명하다.”라고 강력하게 주장한데 따른 후속조치였다.스트렐비스키 무관은 1902년 라벤 중령과 교체될 때까지 서울에서 근무했다. 조선은 청·일전쟁(1894∼1895)이전까지는 지리적 특성으로 러시아 우수리지방의중요한 국경을 보호해 주는 방벽구실을 했다.현재 독립국가로 인정을 받고 있지만앞으로는 어떤 운명을 맞게 될 것인지 예상하기 어렵다.그러나 조선의 최근 역사를 분석해 볼 때 아마도 국내의 혼란으로 인해 정치적 욕망이 많은 열강,특히 일본의 세력각축장으로 변하게 될 것임이 틀림없다.(푸차타 군사교관단장의 1897년 수기)조선은 6000명의 상비군을 보유해야 국내 질서가 안정될 것이다.고종은 유럽식으로 군사교육을 받은 3000명의 정병(精兵)이면 충분하다고 말하지만 현실에 맞지 않다.…6000명 정병양성은 조선의 영토나 국민수로 보아 외국의 의심을 사지 않을 것이다.그러나 조선과 병력양성문제에 관한 조약을 체결한 뒤 일본과 협의를 해야 할것이다.군부에 만연돼 있는 부패를 척결하고 공정한 예산집행이 이뤄져야 한다.(1897년 6월17일 푸차타의 비밀보고서) 푸차타의 이같은 조선군대 증강계획안에 대해 일본은 거세게 항의했으며 러시아 내부에서도 논란이 일었다.증강계획을 포기하든지 일본과의 전쟁을 불사해야 할 것이라는 의견이었다.전쟁은 러시아에 불리하기 때문에 이 계획에 착수하면 돌이킬수 없는 우를 범할 것이라는 경고도 나왔다. 제1차 군사교관단의 대한제국군 군사조련은 일단 성공적인 것처럼 보였다.1897년6월9일 고종과 각부 대신 그리고 주한외교사절단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조선군 의장대 사열식은 참석자들에게 큰 감격을 안겨주었다.대한제국군중 러시아교관단 산하부대로 들어오려는 경쟁도 치열했다. 당시 서울에는 대한제국군 5개 대대병력 4000여명이 있었지만 모든 것이 엉망이었다.30대의 젊은 한국인 대대장이 부대에 출근할 때는 부하들의 부축을 받으며 ‘영감행세’를 하기 일쑤였다.병력중 많은 숫자가 ‘유령 병력’이었다.식비를 횡령하기 위해 숫자를 부풀린 탓이다.대부분이 군인 신분을 창피하게 여겨 밖에 나갈 때는 사복으로 갈아 입었다.교관단은 이중 1600여명을 선발해 2개 대대로 조직했다.이들은 궁정을 경비하는 시위대 요원이었다.따라서 훈련과목에는 궁중 예절과 궁중 호칭법 등도 포함돼 있었다. 러시아정부는 대한제국 군대의 개편을 포함,재정지원을 제공하고 제2차 군사교관단을 또다시 파견하기로 결정했다.장교 3명,하사관 10명,사관학교 교관·병기병·군악대지휘자 각 1명,군악대원 3명,위생병 2명 등 총 21명이다.(1897년 5월15일 베베르가 무라비요프 외무장관에게) 1차 군사교관단의 성공에 고무된 러시아가 제2차 군사교관단을 파견했다.2차 교관단의 장교와 하사관 등 13명은 아무르군관구에서 차출됐으며 나머지 기능직은 예비역중에서 선발됐다.하지만 독립협회의 활동과 친일파의 득세 등으로 인해 대한제국내 정세는 급격하게 반(反)러감정이 확산되고 있었다.급기야 1897년 8월14일 푸차타 군사교관단장이 본국으로 소환되면서 알렉세예프 중위에게 교관단 통솔권이 위임됐다.푸차타 대령의 야심찬 조선군 증강계획은 수포로 돌아갔지만 그는 이후 소장으로 진급,아무르지사로 임명되는 등 출세가도를 달렸다. 최근 여러 보고서로 미뤄볼 때 대한제국의 정세가 매우 불안하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다.관직에 있는 사람이나 모든 당파가 러시아에 적대적이며 친러적인 성향을 갖고 있는 고종황제 역시 매우 의심스럽게 되었다.이러한 상황 때문에 러시아가 대한제국 국내문제에 적극적으로 개입할 수 없는 것이다.니콜라이 황제께서 고종황제와 대한제국 정부가 향후 러시아의 지원을 더 이상 필요로 하지 않는지 문의하라고 하셨다.대한제국의 요청으로 파견된 군사교관단과 재정고문이 필요치 않다면 러시아는 마땅히 소환하겠다.(1898년 3월3일 외무장관이 스페이예르 대리공사에게) 대한제국 정부가 공식적인 회답을 보냈다.현재 러시아의 군사 및 재정고문(알렉세예프)이 더 이상 필요 없다고 했다.러시아는 모든 외국인 고문의 파면을 요청하고 최근 통역관(김홍륙)살해 음모자 처벌을 요구해야 한다.대한제국 정부가 거부하면 공사관 기를 내리고 원산을 점령해야 한다.(같은해 3월12일 스페이예르의 회신) 평소 거칠고 직선적인 언사 때문에 초대 대리공사 베베르가 10년동안 한국에서 닦아놓은 외교적 성과를 물거품으로 만들었다는 평가를 받은 스페이예르는 ‘공사관철수 후 한반도 북부 무력 점령’이라는 극단 처방을 내놓았다.니콜라이 2세는 1898년 5월4일 대한제국에서 군사교관단과 재정고문의 철수를 허락했다. 러시아 군사교관단이 철수한 이후 대한제국군의 조직은 일본의 수중에 넘어갔다.일본에서 군사교육을 받은 20명의 한국인 장교들이 교관이 되었다.1901년 1월 당시 대한제국군은 장교 372명에 사병 1만 5200명이었고 군대예산은 360만엔이었다. 1,2차 러시아 군사교관단의 한반도 파견과 철수시기를 전후해 일본과 러시아는 1896년 로바노프-야마가타 의정서(모스크바 프로토콜)체결,1898년 로젠-니시협정(러·일특별협정) 등 대한제국의 운명을 결정짓는 중요한 협정을 맺었다.러시아가 일본과 일련의 협정체결과 함께 군사교관단을 철수시킨 것은 대한제국을 지배하려는 야심을 사실상 접은 것이나 다름없었다.고종은 이후 국내외 압력에 밀려 러시아교관단이 철수하도록 등을 떼민 자신의 ‘우둔한’결정을 한없이 후회했지만 때는 늦었고 돌이킬 수 없었다.‘눈엣가시’러시아군이 떠나자 일본의 한반도 점령 프로젝트 추진에는 더 이상 거칠 것이 없었다. 노주석기자 joo@ ■'거문도 사건' 러 대응 1885년 4월15일부터 23개월 동안 영국의 극동함대가 거문도(전남 여수시 삼산면)를 무단 점령한 사건은 러시아의 태평양진출정책을 경계한 열강,특히 영국의 극동에 대한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부딪친 사건이었다. 새로 발굴된 러시아문서보관소의 비밀외교문서에 따르면 러시아 군부는 거문도 점령 당일 외무부에 급보를 띄워 대책마련을 촉구하는 한편 서울점령 등 강공책을 제시하는 등 급박하게 움직였다.하지만 영국의 무력시위 앞에 러시아는 다소 유약한 모습을 보였다.이 과정에서 영국과 청의 비밀거래설도 제기돼 주목된다. 블라디보스토크호가 일본 나가사키(長崎)에서 귀국하는 길에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거문도를 방문한다.거문도를 점령한 영국의행위는 러시아에 적대적인 것이다.러시아의 태평양함대사령부와 인접한 지역에 위치한 영국의 군사기지를 폐쇄하도록항의해야 한다.영국과의 협상에서 카스피해 동부지역과 조선이나 일본의 항구를 점령해서는 안된다고 주장해야 한다.(1885년 4월15일 해군부관리관이 기르스 외무장관에게 보낸 비밀문서). 만일 영국이 거문도를 합병한다는 소문이 사실이라면 러시아 순양함대는 동해에서완전히 군사적으로 봉쇄당하게 된다.또한 일본군이나 청국군이 서울을 점령하게 되면 러시아군이 그들을 몰아내고 아예 서울을 점령해야 한다. (1885년 4월18일 아무르 동부지역 총독 코르프가 황제의 시종무관장에게 띄운 암호전문). 러시아는 정보라인을 총동원,영국의 점령의도와 군사력 등을 파악했다.거문도점령 9일후인 4월23일 일본 나가사키에 파견된 코스틸예프가 외무부에 보낸 전문에는“거문도에는 1척의 영국전함이외에 2척의 소형함정이 있다.오늘 식료품을 실은 기선이 거문도로 출발했다.그곳에는 상륙병 50명이 있으며 나가사키에 있는 영국군함에는 200명의 수병이 승선하고 있다.”.라고 보고했다. 또 베이징주재 러시아 공사 파포프는 1885년 9월20일 외무부에 보낸 전문에서 “청국의 이홍장(李鴻章)은 영국의 거문도점령을 결코 찬성하지 않는다.그는 종속국인 조선의 보호를 의무로 여기고 있다.청국의 거문도철수항의를 영국이 수용하게 될지는 모르지만 거문도 때문에 전쟁까지는 일어나지 않을 것으로 판단된다.러시아가 거문도를 점령하지 않겠다는 보장을 하면 영국은 거문도를 떠날 것으로 확신하고 있으며 영국의 거문도점령은 러시아의 남하를 경계한 결과로 분석된다.”라고정확하게 분석했다.청국주재 군사무관 시누에르는 1885년 11월17일 참모본부학술위원회에 보낸 보고서에서 “확증은 없지만 청과 영국의 비밀거래가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있다. 이홍장의 한 측근은 나에게 ‘영국은 러시아와 전쟁시 거문도를 요새로 사용하고 전쟁후에는 시설물 일체를 청국에 팔기로 했다’고 귀띔했기 때문이다.”라고 보고해 영국과 청의 거래관계를 의심하고 있다. 결국 북양대신 이홍장의 중재에 의해러시아는 한국영토의 어느 지점도 점령하지 않겠다는 확약을 했고 영국함대는 1887년 2월27일 자신들이 헤밀턴섬이라고 이름붙인 거문도를 떠났다. 노주석기자
  • 월드컵선수 경호 ‘각국각색’

    각국 월드컵 선수단은 입국과 동시에 최고의 ‘VIP경호’를 받고 있다.테러에 대비한 삼엄한 외곽 경호·경비 작전 속에 4∼5인조로 구성된 ‘신변보호대’가 이동은 물론숙식을 같이하며 24시간 그림자 경호(신변보호)를 펼치고있다.그러나 경찰은 선수단의 전력노출을 이유로 한 접근불허,갑작스러운 돌출행동 등으로 적지않은 곤욕을 치르고있다. ◆터키=지난 25일 오후 김해공항에 도착한 터키 선수단은“본국에서 사설 경호원 3명과 경찰요원 1명이 동행했으니 (한국요원은) 필요없다.”고 말해 우리측 신변경호 요원을 당혹스럽게 했다.결국 우리측 요원은 선수단 이동차량에 동승하지 못하고 별도 차량으로 뒤따라가야 했다.또 터키 선수단중 일부는 갑자기 ‘사우나’로 잠수해버려 경호요원의 애를 태우기도 했다.이에 대해 터키측 관계자는 “작전 노출은 금물이 아니냐.”고 말했다. ◆중국=지난 26일 제주도에 여장을 푼 선수단은 예상과 달리 자유분방해 우리측 신변보호 요원과 호의적으로 지내는 것으로 알려졌다.특히 선수들은 훈련 직후 애인과 포옹하는 등 도발적인 행동도 서슴지 않아 주변 사람들을 놀라게 하고 있다고 현지 관계자가 전했다. 경찰청 관계자는 “중국이 제주공항 도착 직후 신변보호요원을 1명 더 요청해와 서울에서 예비요원을 급파했다.”면서 “당초 우려와는 달리 행동이 자유로워 경호에 별다른 어려움은 없다.”고 말했다. ◆미국=영어회화를 수준급으로 구사하는 경찰관 2명(경위1,경사1명)을 근접요원으로 배치했다.그러나 미국 선수단은 이들의 접근을 달갑지 않게 여기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28일 오전 숙소인 서울 메리어트호텔에서 연습장으로 이동할 때 선수단 차량에 우리측 요원의 동승을 거부한 것이 대표적이다.결국 요원들은 미 대사관 직원 승용차를 급히 얻어타고 뒤따라 가느라 진땀을 빼야 했다.또 미국 선수단 중 일부는 공식 일정에도 없는 돌출 행동(쇼핑 등)으로 신변보호에 적지 않은 어려움을 겪게 한다고 경찰 관계자가 전했다. ◆프랑스=프랑스측 관계자들은 도착 직전에 가진 예비 만남에서 우리측 요원들이 운동복 차림으로 위장,부드럽게 신변보호를 해줄 것 등 몇 가지를 요청했으나 도착 후에는 근접경호를 꺼리는 등 행동이 돌변,우리측 관계자를 어리둥절케 했다는 후문이다.이에 대해 한 관계자는 “헬기 3대 등을 동원,지공(地空) 입체작전으로 미국을 환영한 반면 국제축구연맹(FIFA) 랭킹 1위인 프랑스에 대한 경호예우가 이에 못미치자 시큰둥해진 것 같다.”고 풀이했다. ◆남아공=28일 낮 12시 인천공항에 도착한 남아공 선수단은 비행기를 이용해 강릉 숙소까지 직행한다는 당초 계획을 수정,버스로 이동할 것을 요청했다. 이 때문에 인천에서 강릉으로 이어지는 해당 도로변 관할경찰서들은 버스 1대,미니버스 1대,승용차 2대 등에 나눠탄 선수단 행렬을 호위하느라 한바탕 소동을 벌였다. 김문기자 km@
  • 월드컵/ “”종묘대제 호화롭고 장엄하게”” 봉행위 이근주 홍보부장

    “월드컵을 맞이하여 우리 민족문화의 우수성을 널리 알리기 위해 종묘대제 행사를 그 어느 때보다 호화롭고 장엄하게 준비하고 있습니다.”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무형 유산인 종묘대제를 준비 중인 종묘대제 봉행위원회 이근주(李根柱·65)홍보부장은 29일 “나라의 으뜸가는 행사인 종묘제례를 지구촌 축제인월드컵 기간에 갖게 돼 가슴이 설레인다.”며 이같이 밝혔다. ●준비는 잘되고 있나. 전 세계인이 주목하는 월드컵대회기간중 갖는 만큼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다.문화재청과 서울시 등의 재정지원을 토대로 의상과 깃발 등을 새로 준비하는 등 그 어느 때보다 볼거리가 풍부할 것이다.구체적으로는 종묘대제에 참여하는 사람들이 입을 제복 220벌을 새로 마련했다.어가행렬에 사용될 가마와 큰 북도 새로 만들었다.외국인 관람객을 위한 행사안내 팜플렛도 영어·일본어·중국어판으로 준비하고 있다. ●과거와 다른 점이라면. 우선 개최시기가 다르다.종묘대제는 지금까지는 해마다 5월 첫 일요일에 개최했다.그러나 올해에는 월드컵 문화행사로지정돼 6월 2일에 연다.종묘대제의 메인이벤트라 할 수 있는 정전(正殿)제향을 그동안은 낮에 했으나 원래대로 밤에 한다. ●제사와 어가행렬의 관계는. 궁궐에 사는 왕이 제사를 지내는 종묘에 가기 위해서는 궁궐 밖으로 나와야 한다.이른바 출궁(出宮)이다.어가행렬은 오후 4시에 경복궁을 출발해 세종로와 종로 1·2·3가를 거쳐 종묘로 가게된다.임금이 탄 가마를 선두로 신하들이 말을 타고 뒤를 따른다.호위부대인 현무대도 나온다. ●어가행렬이 볼거리가 많다는데. 우선 규모를 키웠다.지난해에는 500여명이 행사에 참여했다.그러나 올해에는 참여인원이 1200명이나 된다. 박현갑기자 eagleduo@
  • 中 ‘한국공관 탈북자’ 인도 요구

    [베이징 김규환특파원] 중국 정부는 지난 23·24일 베이징 주재 한국대사관 영사부에 들어간 탈북자 3명과 관련,이들의 신병을 중국에 인도해 달라고 28일 요구했다. 쿵취안(孔泉) 외교부 대변인은 이날 브리핑을 통해 “중국 국내법과 국제법에 따르면 중국내 외교공관이 제3국 국민을 보호할 권리가 없다.”며 “우리는 한국대사관이 보호하고 있는 탈북자 3명을 넘겨주어 우리가 처리할 수 있도록요구했다.”고 밝혔다. 한편 지난 17일 베이징(北京) 주재 한국대사관 영사부에진입,되돌아가는 바람에 한국 망명요청 여부를 둘러싸고 논란을 빚어오던 탈북자 석모(36)씨가 27일 다시 한국대사관영사부에 들어와 한국 망명을 요청 중이다. 한국대사관은 “탈북자 석씨가 27일 오전 10시35분(한국시간 11시35분)쯤 한국대사관 영사부에 들어와 한국 망명을요청했다.”며 이날 석씨의 진입 사실을 중국 정부에 통보한 뒤 석씨에 대해 조사를 진행하고 있다고 28일 밝혔다. 대사관 관계자는 탈북자 석씨가 당시 영사부 내에서 3차례에 걸쳐 망명요청을 했다고 진술했다고 말했다.이 관계자는 “석씨가 17일 영사부에 진입해 여자 직원에게 두번,남자직원에게 한번 등 모두 3차례 망명요청을 했으나 이들은 못 들었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고 전했다.석씨는 북한 호위총국 산하 인민군 출신으로 1996년 9월 함경북도 종성군에서 두만강을 건너 지린성(吉林省) 카이산툰(開山屯)을 거쳐 베이징에 거처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khkim@
  • 2002 월드컵/ 세계를 한강의 품으로

    월드컵 하루 전날.들뜬 기분을 주체할 수 없다면 한강으로 나가 보자.낮 12시부터 잠실에서 신명나는 ‘세계 민속한마당’이 펼쳐진다.오후 3시에는 ‘평화의 배’가 잠실을 떠나 상암동으로 향한다.오후 8시 배가 도착하면 ‘월드컵 전야제’의 무대가 열린다.잠실부터 상암동까지,낮 12시부터 오후 10시까지 이어질 월드컵 공식 전일(前日)행사의 모든 것을 알아본다. ■미리본 전야제 26일 오후 햇볕이 따갑게 내리쬐는 상암동 월드컵 공원.까맣게 그을린 전야제 행사 진행요원들은 짜증이 날법도한데 표정이 밝았다.“처음 무대 설치를 할 때 이틀간 비가 내려 아까운 시간을 날렸죠.월드컵 개막식이 열릴 때까지 이렇게 좋은 날씨가 계속됐으면 좋겠습니다.” 전야제의 첫 마당을 장식할 무용수들을 지휘하는 조용환진행감독은 “국내에서 개최되는 처음이자 마지막일 월드컵 행사에 참여하게 돼 기쁘다.”며 활짝 웃었다.그는 며칠 남지 않은 전야제의 준비에 행여 차질이 있을까봐 분주하게 이리저리 현장을 누볐다.월드컵 공원을 찾은 무용수들은 비지땀을 흘리며 연습에 몰두하고 있다.‘쿵따따 쿵따쿵…’마이크 소리에 맞춰 불을 형상화한 의물(儀物)을올렸다 내렸다 하는 무용수들은 군부대에서 동원된 장병들.음악·춤 동아리에서 활동한 장병 가운데 시험을 치러 뽑은 ‘정예’무용수들이다.이들이 선보일 ‘불춤’은 오염된 땅을 정화하는 의식으로 전야제의 시작을 여는 공연이다. 군부대 ‘오빠’들과 함께 무용을 전공하는 여고생들이날렵한 손동작으로 목어(木魚)를 힘차게 두드리고 있다.서울예고 1학년 김선정양은 “한달 전부터 수업 끝나고 연습해 손목이 너무 아프다.”면서 “그래도 세계적인 행사에참여하게 돼 좋다.”고 수줍은 듯 웃으며 연습 대열로 뛰어 들어갔다.안무를 맡은 김향금 창원대 무용과 교수는 “죽비,박 등을 이용,전통적인 소리의 어울림을 통해 화합을 표현했다.”고 설명했다. 무대 연출을 맡은 오태호 감독은 ‘시민들의 축제’에 의의를 둔다.“세계적인 스타 위주의 공연보다는 시민들이함께 즐길 수 있는 행사로 꾸몄습니다.” 낮 12시부터 잠실 둔치에서 진행될 민속 행사는 누구나 무료로 즐길 수있다.상암동 전야제는 각 구청을 통해 서울시민 5만여명을 초청했다.나들이 나온 시민들을 위해 무대 뒤편에 대형스크린을 설치,입장권 없이도 인공호수 뒤 공원에서 관람할 수 있도록 배려했다. 오 감독에게 준비하면서 어려웠던 점을 물었다.“사실 FIFA 주관이라 모든 것을 허락 받아야 했죠.공식 스폰서인 S뮤직에서 소속 뮤지션들의 출연을 요구할 때는 난감했습니다.조수미,사피나는 경쟁사 소속이라 출연을 성사시키기까지 어려움이 많았죠.” 결국 적당한 선에서 타협했지만 그 과정에서 오 감독은 마케팅과 평화의 축제라는 개념이 충돌하는 것을 느꼈다고 털어놨다. 방송중계도 골칫거리였다.월드컵 독점중계를 맡은 HBS측에서 “우리는 경기만 중계한다.”며 전야제 중계를 거부한 것.결국 국내 방송사에서 중계한 화면을 50여개국으로송출하기로 했다. 이번 전야제의 대표적 컨셉트는 ‘어깨동무’.기획을 맡은 홍성용 제작단장은 “한국이 중심이 되겠다는 것이 아니라 나란히 서겠다는 의미”라면서 “월드컵을 통해 친구가 되자는 제안을 하는 것”이라고 취지를 설명했다. 무대는 모두 다섯으로 구성된다.인공호수의 시원한 바람을 뒤로 받는 메인 무대,관람석의 중앙을 가로지르는 중앙 무대,전야제의 대미를 장식하는 1000여명의 합창단이 설보조 무대,그리고 관람석 양쪽의 소나무 숲에 무대가 둘더 마련돼 있다.출연 인원만 모두 2600여명.화려하고 입체적인 전야제를 기대해도 좋을 듯 싶다. 김소연기자 purple@ ■세계 민속 한마당/ 12시~18시 ‘한강에서 신명나게 놀아보세.’ 인간문화재와 세계 민속공연의 대가들이 함께하는 ‘세계 민속 한마당’이 낮 12시∼오후 6시 잠실 고수부지 1.7㎞를 따라 펼쳐진다. *대동마당 월드컵의 개최를 알리고 성공을 기원하는 제의로 구성된다.전북 기세배놀이,서울 고유제,전남 고놀이,전통춤 한마당,일본 타이코 다이 축제,농악 한마당 순. *전통마당 한국을 대표하는 연희 형태인 탈춤과 전통 춤,민요가 한데 어우러진 행사.경기 서해안 대동굿,고성 오광대 공연,봉산탈춤 등을 공연한다. *해외마당 월드컵 본선 진출국 가운데 프랑스,중국,파라과이,폴란드,세네갈,브라질,터키,일본,덴마크,슬로베니아등 11개국의 민속공연단을 초청했다.각국의 화려한 민속의상,춤,연주로 이국적인 정취를 흠뻑 느낄 수 있다. *민속놀이마당 시민들과 함께 하는 놀이 한마당.널뛰기,그네뛰기,줄타기,연날리기 등을 각 단체들이 시연하고 관람객들도 참여할 수 있다.한강변 하늘을 색색으로 누빌 무형문화재의 연날리기 시연도 장관.페이스 페인팅과 즉석사진촬영 등 가족단위 행사가 푸짐하다. ■상암행 평화의 배/15시~20시 신명나는 민속축제가 무르익는 오후 3시 잠실 한강공원에서는 ‘평화의 배’가 닻을 올린다.월드컵의 열기를 한강의 물줄기를 따라 상암으로 실어나르는 것. 세계평화아동축제에 참가한 50여개국 어린이 250여명과유니세프 친선대사인 로저 무어 부부,남북이산가족 대표등 모두 500여명의 평화사절단이 한강 유람선에 오른다.32발의 축포가 터지고 2002개의 풍선이 하늘로 올라간다. 오후3시 평화의 배가 출항하면 좌우·전후를 모터보트,제트스키,소방선 등 선박 100여대가 호위한다.크고 작은 배가 꼬리에 꼬리를 물고 한강을 항해하는 모습은 일대 장관을 이룰 것이다. 오후 3시40분 잠수교에서는 취타대와 농악연주가,반포대교에서는 물줄기 분사쇼가 평화사절단을 반긴다.오후4시30분 여의도한강공원에 도착해 전야제 행사에 전달할 평화의 공을 받는다.오후 6시 양화대교에 들어서면 선단에서 종이 비둘기를 날리고,선유도에서는 연날리기,선녀춤 등의공연이 기다린다.오후 7시30분 난지도에 도착한 평화사절단 250여명은 청사초롱을 들고 전야제 무대로 향한다. ■전야제 3마당/20시~22시 평화의 배가 상암동에 도착하면 3마당으로 구성된 전야제의 화려한 막이 오른다. *설렘 생명의 태동을 의미하는 불춤,태평성대를 기원하는 태평무로 막을 열어,35개의 목어 연주로 이어진다.낮은타악기 소리가 지친 영혼을 위로하고 삼라만상을 일깨운다.100여명의 전통 연희 공연단이 새 생명의 탄생을 춤사위로 표현한다. *어우름 클래식과 팝음악을 넘나드는 대형콘서트가 80분간 펼쳐진다.조수미,아케미 사카모토 등 한국과 일본의 유명 성악가들의 합동공연이 첫 무대를 장식한다.로봇 비둘기가 하늘로 비상,전 인류에게 평화의 메시지를 전달한다.마지막으로 조용필,리얼그룹 등 세계 유명 가수의 열창 무대가 준비돼 있다. *어깨동무 대금 연주,창 공연,패션 퍼레이드,아리랑과 대합창,불꽃축제 등 총 7가지 공연으로 구성된다.대미를 장식하는 최대의 장관은 ‘장벽 오프닝’.70명의 모델들이분단의 벽 앞에 서면 분단을 상징하는 거대한 장벽이 열린다.그 사이로 조용필과 1000명의 합창단이 걸어 나와 부르는 ‘꿈의 아리랑’이 전세계로 울려퍼진다.
  • 행정 뉴스라인/ ‘북어의 독’ 안전기준 신설 등

    ■식품의약품안전청은 냉동 상태로 유통되는 복어의 안전도를 높이기 위해 식품공전을 개정, 복어 독에 대한 안전기준을 신설했다. 기준은 ‘1g당 10MU 이하’로 복어의 식용 부위인 육질과 껍데기에 모두 적용되나 활어는 예외다.1MU/g의 복어독은 무게 20g짜리 실험용 흰쥐 새끼에 투여 후 30분 안에 숨지게 할 수 있는 양이다. ■행정자치부는 월드컵을 앞두고 인천공항고속도로에서의 사고에 즉각 대처하기 위해 구조·구급대 청사 준공식을갖고 인원 및 장비를 대폭 보강했다. 인천공항고속도로 구조·구급대는 그동안 119대원 8명이활동해왔으나 24일부터 인원 7명과 구조공작차 1대 등이늘어났다. ■과학기술부는 병역대체 복무제도의 하나인 전문연구요원제도 운용과 관련,27·28일 서울 역삼동 한국과학기술회관 대강당에서 ‘2002년 하반기 전문연구요원제도 종합설명회’를 개최한다. 과기부와 병무청 관계자가 참석해 전문연구요원제도 운용방향 및 병역지정업체 추천기준 등 최근 정책사항과 자세한 내용을 설명하고 질문에 응답한다.병역지정업체(병역특례 연구기관) 지정 및 인원배정에 관한 신청절차·신청양식 등 자세한 안내사항은 과학기술부 홈페이지(www.most.go.kr)를 참조하면 된다. ■중소기업청은 중소기업들이 제조물책임(PL)법 대책추진 과정에서의 어려운 점을 신속히 해결하도록 지원하기 위해 PL전문가 인력 풀을 구축,중기청 홈페이지(www.smba.go.kr)를 통해 이용할 수 있도록 했다. PL전문가 인력 풀은 PL법무,대응시스템 구축,메뉴얼 작성,계약관리,판매관리,보험관리,원인규명,손해사정 등 9개분야 264명의 전문가로 구성됐다.문의 중소기업청 정책총괄과 (02)503-7928. ■국무총리 산하 청소년보호위원회(위원장 이승희)는 24일 오후 서울 동숭동 마로니에 공원 등 전국 11개 지역에서 PC방·노래방·편의점 등 전국 4만 5000여개 청소년 이용업소 대표들이 참여한 가운데 가출청소년 보호 공동 캠페인을 펼쳤다.
  • 北京 한국대사관 진입 탈북자 “망명요청 거부당했다”

    [베이징 김규환특파원·김수정기자] 지난 17일 중국 베이징 주재 한국총영사관에 들어갔던 30대 탈북자가 ‘한국행’을 세차례나 요구했으나 영사와 직원들이 묵살했다고폭로,큰 파장이 예상된다. 북한 호위총국 산하 평양시 삼석구역 부대에서 장교로 근무했다는 탈북자 S씨는 23일 총영사관내에서 “북한에서왔는데 망명 신청을 하러 왔다.망명하러 왔는데 여기서 못 나간다.가라는 것은 죽으라는 것과 같다.”며 영사와 영사관 직원에게 거듭 망명의사를 표시했다고 밝혔다. S씨의 주장이 사실로 드러날 경우 “그가 만약 망명 의도를 밝혔다면 구체적인 조치를 취했을 것”이라고 밝힌 영사관측은 누락·허위 보고를 하고,외교부는 거짓 발표를한 셈이어서 엄청난 비판에 직면할 것으로 보인다. S씨는 앞서 96년 10월에는 산둥성(山東省) 칭다오(靑島)총영사관내에도 진입,한국행 망명을 요청했으나 한국 외교관들이 묵살했으며,97년 10∼11월에 한국대사관 관리를 베이징 시내에서 여러차례 만나 한국행 의사를 밝혔으나 거절당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외교부는 “탈북자 S씨의 주장은 사실과 다르다.”면서 “지난 17일 주중 총영사관에 들어온 30대 중반의 남자 1명은 자신이 탈북자라고 밝혔지만 한국행을 희망한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khkim@
  • ‘청소년 성매매’675명 9월 공개

    청소년을 대상으로 성범죄를 저지른 675명의 3차 명단이오는 9월 공개된다. 국무총리 산하 청소년보호위원회는 23일 청소년 대상 성범죄로 확정판결을 받은 1244명에 대한 심사를 벌여 이 가운데 675명의 이름(한자병기)과 나이,생년월일,직업,주소,범죄사실 등을 위원회 인터넷홈페이지(www.youth.go.kr)와 관보,정부중앙청사 및 전국 16개 시·도 게시판 등에 공개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이는 지난 3월 2차 신상공개 때의 443명보다 크게 늘어난 수치로,지난해 8월 1차 공개의 6배에 달한다.위원회는 이에 대해 “범죄 발생빈도의 증가도 원인이지만 2차 공개분에서 이월된 사람이 상당수 포함됐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3차 명단에는 특히 교수,의사,약사,언론인,예술인 등 사회지도층 인사도 12명이나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신상공개 대상자들의 범죄유형은 강간과 성매수·강제추행이 84% 이상을 차지했고,연령별로는 30대가 34.8%로 가장 많았으며,직업별로는 무직이 많았다. 위원회는 “청소년 보호를 위해서는 범죄예방차원의 다각적인 대책이필요하고 성범죄 피해자의 재활을 돕는 제도적 방안을 연구 중”이라며 “청소년 성폭력범죄 친고죄적용 배제,청소년 성매매 사실 보호자 통지제도 도입 등을 주요내용으로 하는 청소년 성보호에 관한 법률 개정작업을 올해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최광숙기자 bori@
  • [사설] 홍걸씨 출두를 보는 국민 시선

    김대중 대통령의 3남 홍걸씨가 16일 검찰에 소환돼 출두하는 모습을 본 국민들은 분노보다는 착잡함을 느꼈을 것이다.동시에 5년 전 김영삼 전 대통령의 아들 현철씨가 구속된 기억이 아직 생생한데 왜 똑같은 전철을 밟는지 안타까워했을것이다.이제 곧 2남 홍업씨마저 소환되면 이같은 불행의 악순환을 반드시 단절해야 한다는 국민적 공감대가 확산될 것으로 보인다. 홍걸씨와 홍업씨는 현철씨가 구속된 것을 반면교사로 삼아몸가짐을 신중하게 했어야 했다.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이 정권이 바뀐 뒤 한동안 ‘귀양’생활을 하거나 영어의 몸이 됐다는 사실도 마땅히 교훈으로 간직했어야 했다.그러나 유감스럽게도 대통령 아들 주변의 비리는 5년 주기로 반복된것이다. 물론 사태가 여기까지 이르게 된 것이 대통령 아들 책임만은 아니다.홍업·홍걸씨는 어느 새 모든 국가권력이 집중된‘제왕적 대통령’인 아버지 그늘에서 살아왔다.‘제왕적 대통령제’아래서는 권력의 사유화 현상이 나타나기 마련이다.그래서 국민으로부터 권력을 위임받지 못한대통령의 친인척 등 권력 주변 사람들도 마치 권력을 행사할 수 있는 것처럼 착각하고 있는 것이다.홍걸씨는 물론 홍업씨도 마찬가지다.더 큰 문제는 친인척 주변의 사람들이 호가호위하며 사유화된 권력에 기생하고 이권에 개입하는 풍토가 조성된 것이다.홍걸씨를 등에 업은 최규선씨가 그 대표적 사례다. 국민들은 이번 기회에 사유화된 권력이 누리는 추악한 부패의 사슬을 완벽하게 단절하기를 희구하고 있다.그런 의미에서 검찰은 엄정한 법의 잣대를 추상같이 적용해야 할 것이다.국가최고 권력자인 대통령의 아들이라는 신분은 더이상 사법적 처리를 가로막는 보호막이 될 수 없는 것이다.대통령아들들의 비리는 권력의 사유화 현상이 빚은 필연적 결과이고,한편으로는 우리의 잘못된 정치 풍토의 탓도 없지는 않을 것이다.그러나 홍걸씨는 이를 탓하기보다는 국민들에게 진심으로 사죄하고 그에 상응하는 법적 책임을 지겠다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홍걸씨는 국정의 최고 책임자인 대통령의 아들이라는 그 이유만으로도 높은 도덕적 책무가 요구된다는것을 깊이 깨달아야 할 것이다.
  • “이성계 사냥행차요”

    성동구는 오는 18일 오후 2∼5시 태조 이성계의 ‘사냥행차’를 재현한다. 어가 행렬은 곳곳에서 재현되지만 임금의 사냥행차 재현은 성동구가 유일하다. 이는 ‘살곶이벌’로 불리는 중랑천과 뚝섬 일대가 조선시대 임금의 매사냥터인데서 유래됐다. 행차에는 취타대와 말 8마리,전위사령,호위무사 등 180여명이 참여하고 500여 주민들의 무학대사 순례,남이장군 개선행차 등이 뒤따를 예정이어서 행렬은 1.5㎞에 달하게 된다. 행차 구간은 성동문화광장을 출발해 왕십리길∼행당중학교 뒷길∼살곶이 다리∼체육공원을 잇는 길이다. 특히 이번 행차에는 이 지역에 거주하는 중국·방글라데시·필리핀·인도네시아·베트남 등 5개국 외국인 근로자20여명이 자국의 전통의상을 입고 참가,이채를 띠게 된다. 이동구기자
  • KT 위성사업 첫 흑자 전환

    KT는 올 1·4분기 무궁화위성사업에서 25억원의 영업이익 흑자를 달성했다고 13일 밝혔다. 지난 1990년 무궁화 위성사업을 시작한 이후 12년만이다. KT는 1분기에 기수익목표 197억원보다 34% 늘어난 264억원의 매출을 올렸다.영업수익은 261억원,영업외수익 3억원으로 영업비용 236억원을 빼면 25억원의 영업이익 흑자를냈다. KT는 지난 1990년 7월 2일 위성사업을 개시한 뒤 95년에1호,96년에 2호,1999년에 3호위성을 발사, 운용해오고 있다. 박대출기자
  • [러 외교문서로 밝혀진 구한말 비사] (1)초대 대리공사 베베르의 수기

    1884년 첫 수교,1990년 재수교….한국과 러시아가 외교관계를 맺은지 118년이 지났지만 한·러 관계사는 아직도 많은 부분이 베일에 가려져 있다. 첫 수교 이후 한일합방에 이르기까지 러시아의 대한(對韓)정책은 일본과 더불어 38선 남·북 분할점령,한반도 전역 무력점령 및 보호국화,독립국가 유지안을 중심으로 변화해왔다.남·북 분할점령안은 해방 및 6·25전쟁 이후 현실화됨으로써 한국민들에게 지울 수 없는 상처를 남겼다. 대한매일은 박종효 전 모스크바대학 교수가 지난 10년 동안 러시아 각지에 흩어져 있는 20여개 한국관련 문서보관소를 샅샅이 뒤져 수집한 3000여건의 외교,정치,군사,경제관계 보고서 중 1884년 수교 이후부터 1910년 한일합방을전후한 시기의 미공개 외교문서 1000여건을 해제해 최초로 공개한다. 100여년만에 햇볕을 본 이 극비문서에는 조선주재 초대러시아 대리공사였던 베베르의 수기를 비롯,1·2차 군사고문단 파견의 실상,고종과 러시아의 마지막 황제 니콜라이2세가 주고받았던 친서,러시아측의 기획외교로 인한 헤이그밀사 파견 실패 등 국내에 소개된 적이 없는 새로운 내용들로 가득차 있다. 주 2회씩 10회에 걸쳐 계속되는 이번 연재물은 그동안 미흡했던 한·러 관계사의 복원은 물론,우리 근세사에서 잘못 알려진 부분들을 바로 잡는데 크게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 러시아문서보관국 서고에 묻혔다가 100년만에 햇볕을 본베베르의 수기 ‘1898년 전후 대한제국’은 러시아의 대한(對韓)정책의 실상과 당시 우리 사회상을 엿볼 수 있는 귀중한 사료로 평가된다. 베베르는 수기 전반부에서 자신이 공사로 재임했던 1898년 이전의 대한제국의 실정과 러시아의 극동정책에 관해기술했다.후반부에서는 1903년 고종재위 40년을 맞아 경축 러시아특사로 다시 찾은 대한제국이 일본의 경제식민지로 전락한 상황을 상세하게 기록했다.모두 144쪽 분량으로된 이 수기는 자필로 작성됐지만 이를 보고받은 러시아 외무부가 황제에게 보고하기 위해 타이핑했다. 1895년 10월8일 민왕후가 일본인에 의해 잔인하게 시해된 사실이 알려지자 복수를 위해 전국적으로 봉기가 일어났다.민왕후가 시해당한 후 수개월동안 고종왕은 일본군의감시아래 포로처럼 대궐에 갇혀 있었다. 베베르는 명성황후 시해사건의 전말을 자세하게 설명하지 않았다.그는 사건 발생 당시 현장을 목격한 러시아인 건축기사이자 궁궐경비원이었던 사바틴의 증언서와 자신의목격담을 난수표 암호전문 형식으로 러시아 외무부에 잽싸게 보고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니콜라이2세 황제는 이 보고서를 읽고 친필로 “천인공노할 사건이니 좀 더 자세히보고하라.”고 지시했다.이어 극동지역에 주둔하던 아무르군관구 사령관에게 비상경계에 들어가도록 지시했다. 민왕후가 시해당한 후 수개월동안 일본군의 감시하에 포로처럼 대궐에 갇혀있던 고종은 1896년 2월11일 아침 7시30분 여인복장으로 변장하고 왕세자와 함께 부인용 가마 두 대에 앉아 공사관으로 피신해오는 데 성공했다.뜻밖의 정변이 발생한 것이다.고종의 탈출소식을 들은 수천명의 군중이 공사관 담벽 아래로 몰려와 국왕의 탈출을 만세로 환호했다.고종이 러시아공사관으로 피신해온 이후 모든 국사는 러시아제국의 국기가 게양된 러시아공사관에서 경비해군 160명의 호위 아래 행해졌으며,각부 대신들은 공사관건물 안에 병풍을 친 임시 사무실을 사용했고 본인과 협의하라는 왕명을 받으면 어떤 사건이든 대신과 단둘이서 논의할 기회가 주어졌다. 고종이 러시아공사관 옆에 위치한 경운궁(덕수궁)으로 환궁할 때까지 1년동안 자신이 대한제국의 국사를 사실상 좌지우지했음을 드러낸 대목이다.이때부터 러시아는 이전에일본이 누리던 영향력을 대신했다.베베르가 분석했듯이 러시아는 1884년 수교 이후 10여년간 대한제국 문제에 무관심했다.당시 러시아의 주된 관심은 청국이었으며 시베리아의 경제 여건을 호전시키는 데 있었다.따라서 러시아공사관의 임무는 청과 일본이 대한제국을 ‘독식’하지 못하도록 소극적으로 방어하는 데 있었다. 고종이 러시아공사관으로 피신한 1년은 베베르와 러시아에는 더할 나위 없는 호기였지만 고종에게는 암울한 시기였다.당시 러시아공사관 서기였던 쉬테인은[“그는 두개의 방에 왕세자와 각각 따로 앉아공사관 뜰을 무심히 바라보기도 하고 때로는 서서 방안을 이리저리 거닐었다.가끔씩은 두려움에 떨며 이웃 궁궐(경운궁)에 계신 노대비(명헌태후)에게 문안을 드리려고 몰래 세자와 함께 가곤 하셨다.그리고 남은 시간은 방안에 은둔하고 앉아 계셨다.”]고 외무부에 보고했다.고종의 공사관 생활은 수인(囚人)과다를 바 없었다는 증언이다. 청·일전쟁 후 지방세가 서울로 납입되지 않아 국고는 텅 비어 있었다.일본인 재정관리자와 고문관이 떠나버리자국고에 잔액이 얼마 남았으며 어디에 보관되어 있는지 아는 사람이 없었다.…관리들의 월급,특히 군인과 경찰관에게 제때 월급을 지불하기 위해서는 탁지부(재무부)의 재정실정을 밝혀야 했다. 베베르는 영국인 해관총무사 브라운을 재정고문으로 천거해 이 일을 맡겼다고 밝혔다.브라운은 지방에서 올라온 수입을 올바르게 수령,장부에 기입하고 지출을 줄여 관리들에게 월급을 지불할 수 있었으며,이때부터 관리에 대한 통제가 이뤄졌다고 기록했다.1896년말 국고는 1,660만엔의여유가 생겼으며,일본에서 차관으로 들여온 300만엔 중 100만엔을 상환하고 이듬해 가을 또 100만엔을 갚을 수 있었다는 것이다. 고종이 환궁한 후 신변안전책으로 단행된 조선군의 개편작업에도 베베르가 깊숙이 개입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고종왕의 요청을 받아들여 시베리아에 주둔하고 있던 러시아군에서 2차에 걸쳐 군사교관단을 초청,대궐시위대 2개 대대를 교육시켰으며 러시아식 군운영체계를 도입했다.여타의 대한제국군들은 러시아교관단이 관리하는 대대로 들어오려고 애를 쓰기도 했다. 베베르는 러시아국가회의 체제로 의정부의 개편,13개 도와 342개 군으로의 행정구역 분할,범법자에 대한 처벌 법규 시행,재정고문 알렉세예프 파견 요청,러시아어학교 개교,러청은행 지점 개설 등 자신의 업적을 열거했다.이 기간동안 서북 석탄광개발과 압록강,두만강변의 벌목이권을러시아가 따낸 사실도 털어놨다. 그는 대표적인 친한파인사로 알려졌지만 고종과 황실인사는 물론,한국과 한국인을 혹평하기도 했다. [대한제국을 떠난 지 5년만에 다시 와보니 거리의 남루한복장은 이전보다 두배나 많았다.…고종황제는 무당을 불러 굿을 하는 엄비(嚴妃)를 따라 미신을 신봉하고 있었다.…정치적인 상황은 더욱 악화되어 있었다.일본인들이 다시절대적인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었다.한국인은 러시아,일본 기타 열강의 국제관계 및 그들의 정치적 의도를 제대로이해하지 못하고 있었으며 나라가 어떤 처지에 놓였는지제대로 몰랐다.…강대국과 종속관계에 놓여 독립심이 박약하고 의타심이 강하다.…고종은 아주 호감을 주는 인품이지만 많이 쇠약해졌으며,공적과 능력에 따라 관직에 임용되지 않고 뇌물의 액수에 의해 결정됐다. 1903년 다시 서울에 와보니 일본인들은 대한제국의 독립을 보장한다면서도 정치,경제적 예속화를 촉진시키는 데모든 수법을 동원하고 있었다.한국인들은 일본의 속셈을알지 못했고,러시아는 법적으로 그런 정책을 중지시킬 권한을 보유하고 있지 못했다.일본은 은밀하면서도 조직적으로 대한제국의 조정과 국민자산을 잠식하고 있었다.] 그는 일본의 영향력이 확산될 수밖에 없는 7가지 이유를열거하면서 대한제국이 조만간 일본의 정치적 속박을 받게 될 것이라고 예고했다. 대한제국에 거주하는 일본인은 2만명을 넘으며,일본인 1인당 한인 5명이 식모,사무실 서기,잡부,납품상인 등으로고용되다시피 했다.…대한제국 연간 무역액의 72%를 일본이 차지할 정도였다.…1898년 9월 경부선철도 부설권 협정서 중 ‘철도에 필요한 역사,창고 등 대한제국측이 제공하는 부지는 철도회사에 귀속되며 역사는 필요한 곳에 건설하되 역 앞에는 일본인 이외 타민족의 거주를 금한다.’는 불평등 조항 때문에 철도부설과 동시에 대한제국의 철도및 역사주변 땅은 일본의 소유물로 전락했다.…일본은 대한제국과 다른 국가들이 통신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인 서울∼부산∼일본해저 전신선을 통제했다.…개항지마다 일본은행이 개설돼 일본엔화가 시장을 지배하고 있었다. 노주석기자 joo@ ■베베르는 누구 우리나라에 부임했던 역대 외교관 중 초대 러시아 대리공사 겸 총영사였던 베베르만큼 광범위한 영향력을 행사한외교관은 없었다. 베베르는 1885년부터 1897년까지 12년 동안 공사로 재직하면서 고종의 최측근 인사로 통했다.그는 고종이 러시아공사관에 머문 1년 동안 친러시아내각을 출범시키는 등 대한제국의 국정을 사실상 좌지우지했다. 고종은 베베르가 멕시코 공사로 발령나자 ‘이임이 유감스럽다.장기간 유임시켜달라.’는 친서를 니콜라이2세에게 보냈다.니콜라이2세는 고종 재위 40주년 경축식(1902년)에 당시 야인이던 베베르를 사절단장으로 특파하기도 했다. 이번에 발굴된 문서 중에도 ‘베베르는 고종과 개인적으로 친분이 두텁고 한국인들에게 지금도 좋은 평가를 받고있다.’‘베베르를 경축사절단장으로 결정한 것은 고종황제에게 가장 기쁜 일이 될 것’이라는 내용이 나온다.고종은 서울에 온 베베르를 자문역으로 붙잡기 위해 니콜라이2세에게 서울체류 연장을 요청하기도 했다. 하지만 베베르에 대한 학계의 연구실적은 전무하다시피하다.그의 출생연도와 학력,수기 등도 이번의 문서 공개를 통해 처음 알려지게 됐다. 베베르는 1841년 6월5일에 태어난 독일계 러시아인.부친은 루터교 선교사였다.페테르부르크 제국대학 동양어학부를 졸업하고 중국 베이징(北京)에서 5년동안 중국어 공부를 했으며 이후 톈진영사와 일본 총영사를 거쳐 조선주재초대 대리공사로 부임했다. 베베르는 러시아 외무부와 중국,일본 등 주변국 외교가에서 ‘친한파’로 낙인찍힌 데다 수뢰사실(2만엔)이 외무부에 알려지는 바람에 서울을 떠나게 된 것으로 전해졌다. 노주석기자 ■박종효 前모스크바대 교수 “러 문서국 20곳서 10년간 자료 뒤져” “러시아에 산재한 20여개의 국립문서보관소에는 한국과관련된 방대한 양의 비밀문서가 먼지를 뒤집어쓴 채 방치돼 있습니다.러시아가 한국 근대사와 현대사에 미친 영향을 감안하면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러시아 문서수집 및 번역 부문에서 국내 최고의 권위자로 꼽히는 박종효(朴鐘孝·65) 전 모스크바대학 교수는 지난 90년 한·러 재수교 직후 러시아문서보관소가 외국인에게도 개방되자 가장 먼저 그곳으로 달려갔다.문서보관소는전세계에서 몰려온 학자들로 만원사례를 이뤘지만 한국관계문서를 찾는 학자는 박 전 교수뿐이었다. “문서보관소에 소장된 문서를 조사,열람한 뒤 복사하려면 기록부에 이름을 남기게 되는데 한국 학자들의 이름은본 적이 없어요.” 러시아어와 러시아사,한국사,한·러관계사를 동시에 소화할 수 있는 학자들이 드문 탓도 있었지만 소장된 문서가외교,군사,경제 등 전문 분야의 필사본이어서 웬만한 학자들은 엄두를 내기도 힘들었다.산더미처럼 쌓인 문서보관소의 서고를 뒤져 한국관련 문서를 찾아내기란 숨은 그림찾기나 마찬가지였다.최근에야 러시아어와 역사를 전공하는소장학자 몇명이 한국관련 자료 수집작업에 합류했다. 박 전 교수는 99년부터 2년 동안 국제교류재단으로부터연구비를 지원받아 문서찾기와 번역,해제작업을 해왔으며,조만간 ‘러시아국립문서국 소장 한국관련 문서 요약해제집’이란 책을 펴낼 계획이다. “러시아국립문서보관소에 소장된 비밀문서의 목록을 총망라,문서목록해제집을 간행하는 것은 세계적으로도 드문일입니다.제정러시아 대외정책문서보관소,군사문서보관소,연방문서보관소의 서고에 숨겨져 있던 문서들을 분석해 보면 러시아가 견지해온 한반도정책의 과거는 물론,현재와미래까지 유추할 수 있습니다.” 박 전 교수는 러시아측의 공개 제한조치로 ‘극비문서’들이 소장된 크렘린문서보관소와 KGB문서보관소에 접근할수 없었던 점을 아쉬워했다.그는 한국외국어대 러시아어과를 졸업한 뒤 소련 아카데미 러시아역사연구원에서 박사학위와 교수자격(독토르)을 땄고 모스크바대학 객원교수로대학원생들에게 한·러관계사를 강의했다. 노주석기자
  • 아라파트 5개월만에 연금해제

    5개월 넘게 이스라엘군에 의해 요르단강 서안 라말라의 자치정부 본부에 갇혀있던 야세르 아라파트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수반이 드디어 자유의 몸이 됐다. 이스라엘군은 레하밤 지비 관광장관 암살 용의자 6명이 예리코의 감옥으로 이송됨에 따라 2일 새벽 아라파트 집무실에 대한 봉쇄를 해제하고 라말라에서 완전 철수했다. 지난 주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은 테러용의자 구속에 대한 대가로 아라파트 수반의 연금을 해제하는 미국의 중재안에 합의한 바 있다. 아라파트 수반은 연금해제 뒤 집무실 밖으로 나와 환호하는 지지자들 앞에서 “이스라엘군은 테러리스트”라고 강도높게 비난했다.특히 예닌과 베들레헴 예수탄생교회에서 벌어진 상황에 대해 지지자들과 서방기자들에게 “어떻게 세계가 이같이 잔혹한 범죄에 침묵할 수 있느냐.”며 크게 분노했다. 아라파트 수반은 예닌 난민촌에 대한 이스라엘군의 공격을 제2차세계대전 중 옛소련의 볼고그라드(옛이름 스탈린그라드) 전투에 비유,‘예닌그라드’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아라파트 수반은 기자회견 뒤 곧바로 본부 건물을 떠나 다른 장소로 이동했다.아라파트 수반은 지지자 100여명의 환영을 받으며 본부 건물 밖으로 나온 뒤 팔레스타인 무장대원들의 호위 속에 차를 타고 현장을 떠났다. 박상숙기자 alex@
  • 책/ 조선의 협객 백동수

    흔히 조선은 문약(文弱)한 나라요, 무사가 천시받던 나라로 인상지워진다.비단 조선 뿐만 아니라 우리 나라의 역사는 대대로 문(文)에 치우치고 무(武)에 인색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무인은 제 아무리 능력이 특출해도 문사의 권위에 밀려 변방을 돌거나 호위 차원에 머물렀다는 차별에대한 지적이다. ‘조선의 협객 백동수’(김영호 지음 푸른역사 펴냄)는이같은 문무차별의 통념을 송두리째 뒤엎는 흥미있는 책이다.협객 백동수라는 인물의 일대기를 축으로 18세기 그와그에 얽힌 인물들의 궤적을 추적해낸 구성이 돋보인다. 사서에 등장하는 백동수는 스물아홉에 무과에 급제,마흔다섯에 국왕 호위부대인 장용영 초관에 임명돼 정조의 특명으로 군사들의 창검 기예 교범서인 ‘무예도보통지’ 편찬 총감독을 맡았던 인물.말년에 비인현감과 박천군수를지낸뒤 1816년 74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저자는 10년간에 걸쳐 그에 얽힌 사료를 샅샅이 뒤져 백동수가 ‘무예도보통지' 편찬과,북학파 탄생의 숨은 산파였으며 정조대왕과 많은 선비들로부터사랑받는 협객이었음을 증명한다. 서자 출신인 백동수는 어릴 때부터 신분상의 현실적인 한계에서 오는 고뇌를 겪고 자란 것으로 전해진다.자신이 직접 지은 호 ‘야뇌’는 이같은 고뇌가 그대로 담긴것으로권력에 얽매여 비굴하게 살지 않겠다는 의지를 담고 있다.그러나 천성이 호탕했던 그의 곁에는 신분과 나이를 초월한 많은 사람들이 꼬였고 대부분 이들은 평생 그의 곁에서지기로 남았다.‘무예도보통지’ 편찬에 함께 참여한 이덕무 박제가는 모두 어릴적부터 교유하며 뜻을 같이 했던지기들.이들은 백동수의 고집세고 불같은 성격과 행동을나무라며 “고삐로 묶어두고 싶다.”고 심경을 토로하기도했다. 책에서는 나중에 ‘무예도보통지’에서 호흡을 맞춘 세사람의 어릴적 결의부터 시작해 이들을 주축으로 결성된서얼 출신 시인들의 시사(詩社)인 ‘백탑시사’에 박지원서상수 유득공 홍대용 박지원 이서구가 참여하는 과정이세밀하게 묘사돼있다.백동수가 윤활유 역할을 하며 젊은이들의 만남 주선에 앞장섰던 이 ‘백탑시사’는 훗날북학파의 산실이 된다.연암 박지원과 함께 전국을 유랑할때 지금의 평양 인근 연암골을 소개시켜 박지원의 호가 연암이된 사실과,당대의 화백 김홍도와 처음 대면했을때 김홍도의 그림이 화법에 어긋난다며 찢어버린 뒤 두 사람이 가까운 사이가 됐다는 이야기도 흥미롭다. 저자는 “경사와 사기를 함께 논할 만하다”(박제가) “전서와 예서에 뛰어나다”(박지원)는 당시 지식인들의 표현을 인용하면서 백동수는 무관이었지만 시와 글씨,그림에 빼어난 솜씨를 가진 지식인이었음을 끈질기게 증명해내고 있다.저자는 지난 93년부터 무예 수련자들과 함께 ‘무예도보통지’ 윤독회를 시작해 ‘민족무예’라는 회보를 펴내고 직접 거창과 고령에서 가야산 무예학교를 운영하고있는 무술인이다.1만5000원. 김성호기자 kimus@
  • 여중생 폭력서클 급증

    여중생들의 집단폭행과 패싸움이 급증하고 있다.특정 학생을 찍어 무차별로 때리는 ‘물갈이’,떼싸움에서 진 후배들을 집단으로 때리는 ‘뒤풀이’,두 명이 한 명의 어깨를 잡고 다른 한 명이 뛰어가 가슴이나 배를 차는 ‘날아치기’,쓰러진 학생을 번갈아 차는 ‘축구공차기’ 등 잔혹성이 조직폭력배를 뺨친다.경찰이나 학교에 신고하면 보복성 폭행도 저지른다. 23일 청소년보호위원회에 따르면 지난해 10월부터 두 달간서울지역 중·고생,학부모,교사 등 1744명을 대상으로 청소년 폭력실태를 조사한 결과,학교 폭력 피해자는 여중생이 17.6%로 가장 많았다.남중생은 15.6%,실업고 남학생이 10.9%,인문고 남학생이 3.2%였다. 전문가들은 90년대 이후 남자 고교생을 중심으로 퍼졌던 일본의 집단 따돌림(왕따) 문화가 나이가 어리고 질투심이 많은 여중생에게까지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보고 있다. 특히 여중생들의 폭행사례는 서울 강남지역에 많다.어릴때부터 학원,과외수업 등에 지친 일부 학생들이 또래끼리의 폭력행위로 스트레스를 푼다는 것이다.피해 학생들은 “강남지역 중에서도 부유층이나 우등생이 상대적으로 왕따를 자주당한다.”고 귀띔했다. 강남구 D여중 3학년 홍모(14)양은 지난 15일 자신을 폭행한 김모(14)양 등 4명을 경찰에 신고했다가 같은 서클 학생들로부터 ‘죽여버리겠다.’는 협박을 받아 일주일 이상 학교에 다니지 못하고 있다. 지난해 말 고모(13·서울 D중 1년)양은 학교 인터넷 게시판에 “학교 언니들이 무섭다.”는 유서를 남긴 채 강남구 삼성동 H아파트 옥상에서 뛰어 내려 목숨을 끊었다. 지난달 10일 부산에서는 학교 근처를 돌아다니며 상습적으로 ‘결투’와 ‘집단 폭력’을 행사해온 M·D여중 S·J파등 여중생 폭력서클 6개파 37명이 경찰에 붙잡혔다. 서울 광남중 한인경(46) 교사는 “우등생들도 ‘조직’을만들고 후배를 길들이기 위해 폭력을 휘두른다.”면서 “건전한 놀이문화로 학생들을 유도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영표기자 tomca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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