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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지원의 절절한 사부곡 “여보, 잘 가. 미안했고 잘못했고 사랑해”

    박지원의 절절한 사부곡 “여보, 잘 가. 미안했고 잘못했고 사랑해”

    “여보, 잘 가. 미안했고 잘못했고 사랑해.” 박지원 민주평화당 의원의 부인 이선자씨가 지난해 말 뇌종양 수술을 받고 308일 투병 끝에 15일 별세했다. 향년 66세. 박 의원은 이날 부인을 향한 절절한 그리움을 담은 글을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렸다. 그는 국회와 지역구인 목포 등을 오가는 힘든 일정에도 투병 중인 부인 곁을 지켰다. 박 의원은 “지난 12월 금요일 아침 9시, 성애병원에서 아내에게 ‘오늘 과천 법무부에서 밤늦게까지 국감하고 마지막 KTX나 고속버스로 금귀월래할게. 토요일 목포에서 남북정상회담 보고대회도 하고 광주 등 행사가 많아. 일요일 성당·교회·절에 예배하고 올라올게. 괜찮지’했더니 ‘네’하고 제 손을 꼭 잡아주며 가벼운 미소, 아내와 나눈 대화가 마지막이 됐다”고 했다. 그는 약 한 달 전부터 부인의 기력이 떨어져 부부만이 느끼는 감정으로 마음의 준비를 했다고 털어놨다. 박 의원은 “아내는 3주 전 제 손을 잡고 ‘당신은 하고 싶은 일을 그랬던 것처럼 열정적으로 하시고 그 대신 이제 두 딸만을 위해서 살아요’라고 했지만 난 ‘아니야 당신이랑 함께 그렇게 살아야지’라고 했더니 눈을 감고 눈물을 흘렸다”고 했다. 박 의원은 부인이 14일 일요일 아침 중환자실로 옮겨졌고 급거 상경했지만 이미 의식 불명 상태였다고 안타까워했다. 그는 아내와의 추억을 이야기하며 “7년간 제가 쫓아다니다 처가의 강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아내는 저를 선택했다”며 “아내와 결혼 50주년, 사실상 저랑 57년을 살았다”고 말했다. 이어 “아내는 제가 머리를 짧게 커트하는 것을 좋아해 어제 위급하지만 저는 아내를 보고 이발관으로 달려갔다. 아내에게 마지막 충성스런 사랑을 보였다”고 슬퍼했다. 박 의원은 “아내가 오늘 가니 저는 앞으로 이렇게 살아갈 것 같다. 병원에서 밥 먹여 주고 눈을 부라리며 운동을 시켰건만 거기까지가 제 행복이었다”며 부인을 그리워했다. 박 의원 부인의 장례식장은 서울 신촌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 특1호실이며 발인은 17일 오전 10시, 장지는 경기 용인시 처인구 용인공원묘원이다. 김진아 기자 jin@seoul.co.kr
  • “사람은 배신하지만, 반려견은 다르죠” 팝아티스트 낸시랭

    “사람은 배신하지만, 반려견은 다르죠” 팝아티스트 낸시랭

    “인간은 인간을 배신하면서 살 수도 있고 가족끼리도 사기를 치고 배신을 하기도 하죠. 하지만 강아지는 오직 주인만 바라보고, 설령 주인이 화가 나서 때리더라도 하루 종일 주인만 기다리는, 그냥 그렇게 주인만 사랑하고 모든 걸 바치는 생명체잖아요. 근데 그런 존재를 버린다는 건 살인행위와 같다고 생각해요” 지난 2006년 KBS 인간극장에 출연해 암투병 중인 어머니를 위해 병원비를 힘들게 모으며 생활하는 감동적인 모습과 함께 호불호가 극명하게 갈린 그녀만의 독특한 예술혼으로 대중의 큰 관심을 받았던 팝아티스트 낸시랭씨(39·본명 박혜령). 그런 그녀가 여러 의혹을 한 몸에 지닌 한 남성에 대한 따가운 시선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사랑을 지켰고 결혼을 통해 그 사랑을 증명해 보였다. 하지만 그렇게 대중에게 다시 돌아온 그녀가 결혼 10개월 만에 남편과의 불화로 최근 이혼절차를 밟고 있는 안타까운 소식이 전해지고 있다. 7년 전, 본 기자는 낸시랭씨에게 팝아티스트로서의 ‘예술관’을 취재하기 위해 인터뷰를 요청한 적 있다. 하지만 당시 그녀의 바쁜 일정으로 성사되지 못했다. 그리고 지난 3일 ‘반려동물’이란 주제로 두 번째 ‘도전’을 시도했다. 그녀 조차 기억 속에 없는 7년 전 ‘인터뷰 고사 사건’에 대한 본 기자의 ‘협박(?)’을 빌미로 결국 흔쾌히 승낙을 받았다. 그렇게 인터뷰 요청은 생각보다 쉽게 성사된 듯 했다. 하지만 호사다마(好事多魔)라 했던가. 다음날 낸시랭은 남편 왕진진과의 부부싸움 도중 남편이 방문을 부수는 등 폭력을 행사 했다는 이유로 남편을 경찰에 직접 신고했다. 이 사건기사를 접한 데스크가 “낸시랭 인터뷰 건, 쉽지 않을 거 같다”라고 했고 낸시랭 본인 입장을 확인하기 위해 통화를 했지만 연락이 닿지 않았다. 급한 마음에 낸시랭씨에게 카톡을 보내 직접 통화를 했으면 좋겠다는 메시지를 보냈다. 잠시 후, ‘내일(5일) 낮에 연락드리겠다’는 답신이 왔다. 하루를 기다려 오후가 되어도 연락이 없자 일정관련 통화를 요청하는 카톡 메시지를 다시 한 번 보냈고 ‘오늘 안으로 전화를 드려도 괜찮을까요’란 메시지가 왔다. 당시 남편 경찰신고 건과 관련해 긴박하게 돌아가는 낸시랭씨의 입장은 염두에 두지 않고 인터뷰에만 집착한 것이 미안했다. 더 이상 불편하게 하지 않기로 맘 먹고 기다렸다. 결국 그날 저녁 10시가 넘어서 그녀로부터 전화가 왔고 최종 일정조율을 마친 뒤 인터뷰를 할 수 있게 됐다. 그녀는 “공과 사는 구별해야 하는 것이고 다른 내용의 인터뷰도 아니고 내가 가장 사랑하는 반려견에 대한 인터뷰였기에 남편과의 상황과는 별개로 미루거나 중지할 생각은 전혀 없었다”고 말했다. 다음 날 자신의 작품들이 전시되고 있는 일산 킨텍스 KAFA 대한민국축전 국제아트페어 전시장에서 그녀를 만났다. 남편과 관련된 것을 제외한 그녀의 반려동물(관), 작품(일)에 대한 질문만으로 인터뷰를 진행했다.Q. 낸시랭씨에 반려견은 어떤 존재인지?하니, 리키는 그냥 제 가족이에요. 그냥 제 남동생들죠. 십 수 년 간 함께 했던 반려견 폴이 오래 전에 죽었지만 폴 이상으로 또 다른 나의 가족이 생긴 거죠. 예를 들어, 제가 좋은 집에 살면서 좋은 옷을 입고 싶다든가 혹은 좋은 가방을 들고 여행을 가고 싶어도 이들과 함께 하지 못한다면 아무 의미 없는 저한테는 굉장히 소중한 존재예요. (남편보다 소중한가요?) 당연하죠. Q. 반려견 하니와 리키는 어떤 강아지인지?현재 5살이고 애기 때부터 함께 해서 그런지 정말 말을 잘 들어요. 둘 다 우리나라 4대 지랄견이라고 하는 종류에 들어가거든요. 한 마리는 화이트 슈나우저고 다른 한 마리는 코카스파니엘 버프예요. 남들은 굉장히 힘든 이 두 녀석들을 어떻게 키우느냐 걱정하시는데, 둘 다 성품이 너무 좋아서 특별히 힘들게 하는 건 없었어요. 특별히 교육 받은 것도 없는데도 제 옆에 딱 붙어서 보행도 잘 하구요. Q. 평소 반려견 건강관리를 어떻게 하는지?제가 다니는 집 앞 동물병원에서 항상 체크를 해요. 애들 병원수첩 보고 예방접종이라든지 뭔가 이상한 증세가 보이면 바로바로 병원 가서 체크하고 있어요. 그리고 매일매일 산책 시키는 게 중요한 데 하루 한 시간씩은 못하더라도 하루 10분이라도 꼭 해야 된다는 얘기를 자주 들어요. 제가 바빠서 매일매일 못 지킨 게 굉장히 미안하죠. 강아지는 주인이 보여주는 세상만 볼 수 있다고 하더라고요. 그렇기 때문에라도 단지 내가 강아지들을 예뻐해 하는 것보다 그들을 데리고 함께 산책하는 게 더 중요하다는 걸 근래에 깨달았어요. 근래에 좀 힘든 일들이 있어서 하니, 리키를 산책 못 시켜 준 게 괜히 좀 죄책감으로 오기도 해요. Q. 2012년엔 8월엔 반려견 폴이 죽은 모습을 셀카로 찍어 공개해 논란됐었는데 당시 어떤 상황이었는지 설명해 준다면?폴은... 하아(깊은 한숨). 저희 엄마가 17년 동안 암투병 하다가 돌아가셨어요. 제가 외동딸이라 저랑 15년을 같이한 반려견 폴은 진짜 제 남동생 같은 그런 존재였어요. 엄마 돌아가시고 저희 외할머니까지 돌아가시고 폴도 죽게 됐거든요. 그래서 폴에 대한 아픔 또한 너무 컸어요. 폴이 아파서 동물병원에 맡겨 놨는데 죽게 된 거예요. 그 모습을 보고 오열을 했고 지쳐서 눈물이 그쳤을 때 폴과의 마지막 순간까지도 함께 있는 모습을 기억으로 남기고 싶었어요. 제가 항상 기록하는 것들을 좋아하고 기억을 잘 못하는 편이기도 해서 모든 걸 찍어놓거든요. 이미지 인식이 텍스트보다 좀 더 빠르고 오래가는 편이라서 그 마지막 순간까지도 폴을 기억하고 싶어서 당시 찍었던 거죠.Q. 함께 살고 있는 하니, 리키가 한남동 반려인들 사이에서 잘 알려져 있다는데...제가 사는 한남동에 많은 사람들이 강아지들을 산책 시키는데, 화이트 슈나우저는 한남동에 리키 한 마리 밖에 없어요. 슈나우저는 많은데 대체적으로 블랙이나 그레이만 있어요. 그래서인지 리키를 데리고 지나가면, “아니, 화이트 슈나우저도 있어요?” 이렇게 말하면서 신기해 해요. 하니, 리키가 둘 다 수컷이에요. 그래서 종자는 달라도 함께 커 왔기 때문에 그냥 형제견이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둘이 너무 예쁘고 사랑스럽게 생겨서 산책을 시키러 나가면 많은 외국인들이 지나가면서 너무 예쁘다고 활짝 웃고 그래요. 우리 하니, 리키가 사람들한테 저렇게 웃음을 줄 수 있다라는 게 그냥 괜히 기분이 좋아요. 다른 사람들에게 뭔가 행복한 순간을 준 거 잖아요. Q. 낸시랭 하면 ‘어깨 위 고양이(샤넬 코코)’가 상징처럼 떠오르는데, 그 이유와 혹시 고양이를 반려동물로 함께 키운 적이 있는지...코코사넬과는 평상시 대화도 나누고 오랜 시간 동안 함께 했죠. 육체가 살아있는 제 애완견들은 어떻게 보면 저랑 해외여행을 못 다녔잖아요. 하지만 전시회든, 어딜 놀라가는 간에 코코샤넬은 항상 데리고 다닐 수 있죠. 지금도 제 차안에 있어요. 똥오줌 안 싸고 밥도 안 먹으니깐 사랑만 주면 되죠. 어머니가 하늘나라 가신 이후부터는 진짜 살아있는 고양이를 키울 수도 있었지만 뭔가 코코샤넬한테 배신하는 느낌도 들고, 이해하실 수 없는 저의 예술가로서 정립된 그런 게 있어요. 그래서 반려견 폴을 키우는 것만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했고 폴이 죽고 나선 하니, 리키로 만족해서 일단은 반려견만 키우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어요. Q. 반려동물을 쉽게 유기하는 사람들 보면 어떤 생각이 드는지?정말 말도 안 되는 거죠. 그들도 가족이 있을 거 아니에요. 내가 내 가족을 휴게소나 산 속 어느 곳에 버리는 거와 똑같다고 생각해요. 인간과 달리 강아지는 좀 특별한 게 있잖아요. 인간은 인간을 배신하면서 살 수도 있고 가족끼리도 사기를 치고 배신을 할 수도 있지만 강아지는 그렇지 않잖아요. 강아지는 오직 주인만 바라보고 하물며 주인이 화가 나서 때리더라도 주인이 나가면 하루 종일 주인만 기다리는, 그냥 그렇게 주인만 사랑하고 모든 걸 바치는 생명체잖아요. 근데 그런 존재를 버린다는 살인행위와 같다고 생각해요. Q. 유기견을 입양하고자 하는 분들에게 당부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유기견이라고 하면 왠지 고아 같은 느낌이 들잖아요. 단지 동정심이나 불쌍해서 키운다라는 식의 마음으로 입양하면 절대 안 될 거 같아요. 또 입양하더라 물고 난리치고 정신빠지게 하는 등 예상치 못한 일들이 다반사로 발생할 거예요. 자신이 직접 키운 개가 아니잖아요. 그러니깐 유기견을 입양했을 때, 내가 알 수 없는 모든 리스크들을 신중히 생각하고 그래도 내가 끝까지 얘들을 책임질 수 있다고 판단된 후 키워야 하는 거예요. Q. 올 한 해 많은 일들을 겪었다. 앞으로의 계획과 소망이 있다면?제 지도교수님이셨던 (고)이두식 교수님의 철학이 있었어요. ‘아티스트는 매년 개인전을 하는 게 매우 중요하다’고. 그 분 말씀대로 대학원 시절부터 그렇게 해왔는데 지난 3년 동안은 제가 사기를 당한 것도 있고 힘든 일들을 많이 겪어 개인전을 못해서 많이 속상했어요. 어쨌든 올해 12월 7일에 낸시랭의 개인전을 보여드릴 수 있을 거 같아요. 작가로서 열작(熱作)하고 있으니깐 많이 기대해 주시고 응원해 주세요. 그리고 반려동물들 많이 사랑해 주세요. 박홍규 기자 gophk@seoul.co.kr 영상 박홍규, 문성호 기자 sungho@seoul.co.kr
  • “내 딸이 아파”…기부금 갈취하려 멀쩡한 딸까지 속인 母

    “내 딸이 아파”…기부금 갈취하려 멀쩡한 딸까지 속인 母

    사람들로부터 기부금을 갈취하기 위해 자신의 7살 된 딸까지 속인 비정한 엄마가 경찰에 체포됐다. 캔자스시티스타 등 미국 현지 언론의 11일 보도에 따르면 제이미 카예 파커라는 이름의 여성은 어느 날 복통을 호소하는 자신의 딸을 본 뒤 거짓으로 모금운동을 펼칠 아이디어를 떠올렸다. 파커의 7살 된 딸은 그저 가벼운 복통을 호소했을 뿐이었지만, 파커는 ‘완벽한 범죄’를 위해 딸까지 속였다. 딸에게 비호지킨림프종(림프조직 세포가 악성으로 전환되어 생기는 종양)에 걸렸다고 거짓말을 했고, 치료 도중 머리가 빠질 수 있다며 머리도 짧게 자르게 했다. 그리고는 자신의 SNS에 딸의 사진과 함께 ‘거짓 투병’ 사실을 알렸다. 소식을 접한 친구들과 이웃들은 지난 2년간 투병 중인 파커의 딸을 위해 꾸준히 기금을 보내왔다. 각지에서 돈이 모금돼 들어오자 파커는 더욱 정교한 속임수를 계획했다. 페이스북에 특별 페이지를 만들고 자신의 딸이 앓고 있다고 거짓말 한 비호지킨림프종에 대한 경각심을 높이고 모금을 독려하는 콘텐츠를 지속적으로 업로드했다. 파커는 이 페이지에서 “누구든 림프종에 대한 치료 방법이 알고 싶거나 환자들에게 기부를 할 의사가 있다면 메시지를 달라”고 호소했다. 하지만 파커의 행동을 의심한 일부 기부자들이 이를 경찰에 신고했고, 결국 그녀는 자신의 건강한 딸을 거짓 환자로 만든 뒤 기부금을 가로챈 사기꾼이라는 사실이 들통 나 쇠고랑을 차는 신세로 전락했다. 해당 사건을 조사한 경찰은 “자신의 엄마로부터 몹쓸 병에 걸렸다는 이야기를 들은 딸은 자신이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며 두려움에 떨었을 것이다. 이것은 명백한 아동학대에 해당한다고 본다”고 설명했다. 자신이 엄마의 사기에 이용당했고, 무서운 병에 걸리지도 않았다는 사실을 알게 된 파커의 딸은 현재 다른 가족들의 보살핌을 받으며 마음의 상처를 다스리고 있다. 한편 파커는 아동학대 및 사기 혐의로 경찰 조사를 받고 있다. 송현서 기자 huimin0217@seoul.co.kr
  • 이혜경 남편 故 오정욱 오늘(11일) 발인..네티즌 애도 물결

    이혜경 남편 故 오정욱 오늘(11일) 발인..네티즌 애도 물결

    뮤지컬 배우 이혜경의 남편 성악가 故 오정욱의 발인이 11일 진행된다. 오정욱의 발인은 이날 오전 서울 고대 안암병원 장례식장에서 진행된다. 지난해 췌장암 말기 진단을 받고 투병을 하던 오정욱은 지난 9일 세상을 떠났다. 향년 48세. 아내인 뮤지컬 배우 이혜경은 뮤지컬 ‘오! 캐롤’ 공연 중 남편의 비보를 접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혜경은 관객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끝까지 공연을 마무리한 것으로 전해졌다. 소식을 접한 네티즌들은 고인을 추모하며 “얼마나 가슴 아플까”, “힘내시고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이혜경 씨도 힘내세요” 등 댓글을 달았다. 이혜경은 지난 1997년 뮤지컬 ‘한여름 밤의 꿈’을 시작으로 ‘베르테르’, ‘명성황후’ 등에 출연했다. 연예팀 seoulen@seoul.co.kr
  • [포토] ‘다리 길이만 106cm’ 러시아 미스 롱다리

    [포토] ‘다리 길이만 106cm’ 러시아 미스 롱다리

    러시아에서 공인된 롱다리 미녀는 어떤 아름다움을 지녔을까. 러시아 시베리아 출신 아나스타샤 스트라셰프스카야는 지난 2014년 ‘미스 러시아 2014’의 ‘미스 롱다리’ 부문에서 가장 많은 표를 얻었다. 그는 당시 1600파운드(약 235만원)의 상금을 부상으로 받았다. 179cm의 스트라셰프스카야는 다리 길이만 자신의 키에 2/3에 해당하는 106cm를 자랑한다. 스트라셰프스카야는 노보시비르스크에서 법학과에 다니며 변호사를 꿈꾸는 수재였다. “내 미래가 변하지 않을 것이다. 지금처럼 공부해 굼을 이룰 거”이라던 그는 당시 상금을 부모님과 암투병 중인 어린 아이들을 위해 기부해 마음까지 아름다운 모습을 보여줬다. 그는 당시 콘테스트에서 52명의 라이벌을 제치고 9880표를 얻어 ‘미스 롱다리’ 부문에서 수상할 수 있었다. 미모와 완벽한 몸매 그리고 심성까지 어느 하나 빠질 것 없는 아나스타샤 스트라셰프스카야의 근황을 그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확인해보자. 스포츠서울
  • ‘마이웨이’ 가수 진성, 혈액암 투병 고백 “암이라는 얘기 듣고 혼이 나갔다”

    ‘마이웨이’ 가수 진성, 혈액암 투병 고백 “암이라는 얘기 듣고 혼이 나갔다”

    ‘마이웨이’ 가수 진성이 혈액암 투병 사실을 털어놨다. 4일 방송된 TV조선 ‘인생다큐 마이웨이’에는 히트곡 ‘안동역에서’로 잘 알려진 가수 진성이 출연해 이야기를 전했다. 그는 2016년 갑작스럽게 찾아온 암으로 힘든 시간을 보내왔다고 고백했다. 진성은 “암이라는 얘기를 들었을 때 혼이 나갔다”며 “아무리 좋은 약이 있다고 해도 ‘암에 걸리면 죽는다’는 생각을 했기 때문에 좀 힘들었다”고 털어놨다. 이어 “죽음의 사선까지 갔다. 다행히도 ‘너는 조금 더 살아라’는 조물주 명이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제2의 삶을 얻게 됐다”고 말했다. 진성은 “몸이 아프고 난 뒤 녹화를 할 때마다 위험부담이 있다. 몸이 완벽하게 나을 때까지 노래할지 말까 했지만 그러자니 세월이 날 기다려주지 않는다”고 말해 안타까움을 자아냈다. 현재 진성은 회복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날 진성 아내 용미숙 씨는 “아픈 남편을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더라”라며 “민간요법에 좀 의지하고 있다”고 털어놨다. 실제로 아내는 남편을 위해 백도라지를 캐다가 낭떠러지에서 구르기도 했다고. 진성은 “아내를 보고 내가 아프다는 게 화가 났다. 나로 인해 주변 사람들이 아픈 게 싫어서 그냥 죽고 싶었다”고 심경을 전했다. 사진=TV조선 연예팀 seoulen@seoul.co.kr
  • 독일서 위암 투병 허수경 시인 별세

    독일서 위암 투병 허수경 시인 별세

    독일에서 위암으로 투병 중이던 허수경 시인이 지난 3일 세상을 떠났다. 54세. 경남 진주 출신인 고인은 경상대 국문과를 졸업하고 상경해 방송국 스크립터 등으로 일하다 1987년 ‘실천문학’을 통해 등단했다. 시집으로 ‘슬픔만한 거름이 어디 있으랴’, ‘혼자가는 먼집’, ‘빌어먹을 차가운 심장’ 등이 있으며 산문집 ‘모래도시를 찾아서’, ‘너 없이 걸었다’ 등을 썼다. 장편소설 ‘박하’, ‘아틀란티스야, 잘 가’ 등과 다수의 번역서를 펴내기도 했다. 고인은 1992년 돌연 독일로 건너가 뮌스터대학에서 고대근동고고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독일인 지도교수와 결혼해 정착한 뒤 지금까지 독일에서 꾸준히 활동해 왔다. 지난 8월에는 ‘길모퉁이의 중국식당’(2003)의 개정판인 ‘그대는 할말을 어디에 두고 왔는가’를 펴냈다. 이슬기 기자 seulgi@seoul.co.kr
  • ‘마이웨이’ 진성, 혈액암 투병 고백 “아내, 민간요법 구하다 죽을 뻔”

    ‘마이웨이’ 진성, 혈액암 투병 고백 “아내, 민간요법 구하다 죽을 뻔”

    ‘안동역에서’ 진성이 과거 암 투병을 고백했다. 4일 방송된 TV조선 ‘인생다큐 마이웨이’에서는 ‘안동역에서’ 노래의 주인공 진성의 모습이 공개됐다. 1997년 ‘님의 등불’로 데뷔한 가수 진성은 ‘사랑은 장난이 아니야’ ‘내가 바보야’ ‘태클을 걸지 마’ 등 다양한 곡을 발표했지만 오랜 무명 시간을 겪었다. 이후 2008년 ‘안동역에서’의 히트로 마침내 꽃길을 걷게 됐지만, 2016년 혈액암 판정을 받으면서 위기에 직면했다. 진성은 “병원 갔는데 의사 선생님이 ‘암입니다’라고 하는데 그 뒷 이야기가 안 들렸다. 그 이야기를 들었을 때 혼이 나갔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이어 그는 “요즘에는 암에 좋은 약도 많이 나오고 초기에만 발견하면 좋은 결과로 갈 수 있다고 한다. 그렇지만 암에 걸리면 죽는다는 강박관념이 있어서 사실 힘들었다”고 털어놨다. 아내 용미숙은 “남편이 항암 약을 먹으니 당 수치가 올라간다. 이젠 당 수치와 싸움이다. 돼지감자를 사서 썰어 말려 끓였다. 그 전부터 건강을 챙겼는데 아프고 나서 더 많이 신경 쓴다. 제가 신랑에게 해줄 수 있는게 아무것도 없다”며 민간요법에 의존하게 된 사연을 전했다. 진성은 아내가 백도라지를 발견하고 낭떠러지에 굴러떨어질 뻔 했던 사연을 공개했다. 그는 “제가 몸이 아프다는게 스스로 용납이 안 될 정도로 화가 나더라. ‘어디가서 죽어버릴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나로 인해 주변 사람들이 고통을 받아야하나 그런 생각도 들었다”고 고백했다. 하지만 아내는 남편을 위해서라면 두려울 것이 없다고 고백해 감동을 안겼다. 연예팀 seoulen@seoul.co.kr
  • 남도의 가락과 여성의 처연함을 읊은 허수경 시인 타계···수목장

    남도의 가락과 여성의 처연함을 읊은 허수경 시인 타계···수목장

    위암 말기 투병하다 별세···이달말 고향 진주서 추모행사 예정독일에서 꾸준히 우리 말로 시를 쓴 허수경 시인이 지난 3일 오후 7시 50분 별세한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 시인의 작품을 편집·출간한 출판사 난다 김민정 대표는 4일 “어제저녁 시인이 세상을 떠나셨다는 연락을 받았다. 자택에서 밤새 병세가 악화해 다음 날 아침(현지 시간)에 눈을 감으셨다고 한다. 장례는 현지에서 수목장으로 치른다고 한다”고 전했다고 연합뉴스가 보도했다. 54세. 시인은 위암 말기 진단을 받고 투병했으며, 이 사실을 지난 2월 김 대표에게 알린 뒤 자신의 작품 정리에 들어갔다. 지난 8월에는 2003년 나온 ‘길모퉁이의 중국식당’을 15년 만에 새롭게 편집해 ‘그대는 할 말을 어디에 두고 왔는가’라는 제목으로 내기도 했다. 고인은 생전 마지막으로 펴낸 이 산문집 개정판에 서문으로 이렇게 썼다. “내가 누군가를 ‘너’라고 부른다./내 안에서 언제 태어났는지도 모를 그리움이 손에 잡히는 순간이다.//불안하고,/초조하고,/황홀하고,/외로운,/이 나비 같은 시간들.//그리움은 네가 나보다 내 안에 더 많아질 때 진정 아름다워진다./이 책은 그 아름다움을 닮으려 한 기록이다./아무리 오랜 시간을 지나더라도…” 1964년 경남 진주에서 태어난 시인은 경상대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하고 상경해 방송국 스크립터 등으로 일하다 1987년 ‘실천문학’에 시를 발표하며 등단했다. 이후 시집 ‘슬픔만한 거름이 어디 있으랴’와 ‘혼자 가는 먼 집’을 낸 뒤 1992년 돌연 독일로 건너갔다. 독일 뮌스터대학에서 고대 근동 고고학을 공부해 박사학위를 받았고 그 와중에도 꾸준히 시를 써 ‘내 영혼은 오래되었으나’, ‘청동의 시간 감자의 시간’, ‘빌어먹을,차가운 심장’, ‘누구도 기억하지 않는 역에서’까지 총 6권의 시집을 냈다.시인은 인간 내면 깊숙한 곳의 허기와 슬픔, 그리움을 노래했다. 또 독일에서 오랫동안 이방인으로 지낸 삶은 그의 시에 고독과 쓸쓸함의 정서를 짙게 드리우게 했으며, 시간의 지층을 탐사하는 고고학 연구 이력은 시공간을 넘나드는 독보적인 시 세계를 만들어냈다. 문학과지성사 이광호 대표(문학평론가)는 “시인의 시 세계는 독일로 가기 전엔 고향인 남도 가락과 정서, 여성적인 처연함이 결합해 최고의 사랑 시로 볼 만한 작품을 남겼다. 독일에 가서는 먼 나라에서 고고학을 공부하며 독특한 상상력을 보여줬다. 고고학이 시간의 오래된 지층, 흔적을 찾아내는 것이어서 그런지 시에서도 아주 긴 시간을 사유하는 상상력이 두드러졌다. 유고시집인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 역에서’를 보면 오래된 시간에 대한 상상력, 현생의 이전과 이후 시간까지 함께 상상하는 능력을 보여줬다”고 설명했다고 연합뉴스가 전했다.. 고인은 동서문학상(2001년), 전숙희 문학상(2016년), 이육사 시문학상(2018년) 등을 받았다. 유족으로는 독일에서 지도교수로 만나 결혼한 남편이 있다. 한편 고인의 유해는 국내로 돌아오지 않는다. 대신 10월말쯤 진주에서 허수경 시인을 기리는 추모행사가 열릴 것으로 알려졌다. 이기철 선임기자 chuli@seoul.co.kr
  • “슬픔만한 거름이 어디 있으랴”… ‘말기암 투병’ 허수경 시인 별세

    “슬픔만한 거름이 어디 있으랴”… ‘말기암 투병’ 허수경 시인 별세

    독일에서 말기암으로 투병 중이던 허수경 시인이 3일 세상을 떠났다. 향년 54세.경남 진주 출신인 시인은 대학을 졸업하고 상경해 방송국 스크립터 등으로 일하다 1987년 ‘실천문학’을 통해 등단했다. 시집으로 ‘슬픔만한 거름이 어디 있으랴’, ‘혼자가는 먼집’, ‘빌어먹을 차가운 심장’, ‘내 영혼은 오래되었으나’ 등이 있으며 산문집 ‘모래도시를 찾아서’, ‘너 없이 걸었다’ 등을 썼다. 장편소설 ‘박하’, ‘아틀란티스야, 잘 가, ‘모래도시’, 동화책 ‘가로미와 늘메 이야기’ 등을 썼고 다수의 번역서를 펴내기도 했다. 시인은 1992년 가을 돌연 독일로 건너가 뮌스터대학에서 고대근동고고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독일인 지도교수와 결혼해 정착한 뒤 지금까지 독일에서 꾸준히 활동해왔다. 지난 8월에는 2003년에 출간했던 ‘길모퉁이의 중국식당’의 개정판인 ‘그대는 할말을 어디에 두고 왔는가’를 펴냈다. 책에는 낯선 독일땅에 던져진 본인의 처지를 담은 139개의 짧은 산문과 지인들에게 쓴 9통 긴 편지가 담겼다. 시인은 올해 제15회 이육사 시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되며 “20년 이상 독일에서 생활하면서도 모국어를 잊지 않고 갈고 닦아 수상자로서의 자질이 충분하다”는 평을 받았다. 이 외에도 동서문학상, 전숙희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이슬기 기자 seulgi@seoul.co.kr
  • [김유민의 노견일기] 15살 짱아의 처음이자 마지막 바다

    [김유민의 노견일기] 15살 짱아의 처음이자 마지막 바다

    군대를 갔다 오니 집에는 새하얀 말티즈 한 마리가 있었습니다. 강아지를 썩 좋아하지 않던 어머니였지만 여동생이 데려온 작고 예쁜 녀석을 내칠 순 없었던 것 같습니다. 함께한 시간은 짧았습니다. 몸이 편찮으셨던 아버지가 산책 중에 목줄을 놓치면서 한 순간에 녀석을 잃어버렸기 때문입니다. 온가족이 전단지를 돌리며 함께 있었던 공원과 그 주변을 찾아다녔지만 강아지를 찾지는 못했습니다. 다들 많이 힘들어했습니다. 어머니는 강아지를 잃어버린 그 공원에 가서 한참을 울고 돌아오기를 반복했습니다. 우리 4남매는 상심이 큰 어머니를 위해 녀석과 최대한 비슷하게 생긴 강아지를 데려왔습니다. 그 때가 2003년, 짱아를 만난 해입니다. 어머니는 강아지를 잃은 아픔에 짱아에게 정을 주지 않으려 했다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마음을 열었습니다. 워낙 강아지를 좋아했던 아버지는 짱아에게 가장 많은 사랑을 주었습니다. 사회초년생이었던 우리 4남매는 바쁘다는 이유로 짱아를 살뜰히 챙기지 못했습니다. 짱아가 오고 몇 년 뒤 아버지가 돌아가셨습니다. 형제들은 하나 둘 결혼을 하고, 아이가 생겨 육아로 정신이 없었습니다.짱아는 자연스럽게 어머니와 제가 보살피게 되었습니다. 짱아는 다른 강아지들하고 잘 어울리지 못했고, 소심한 성격 탓에 어딘가 짠하고 안쓰러운 마음이 드는 강아지였습니다. 항상 잘해주고 싶었지만 애정표현에는 서툴러 사랑한다는 말을 자주 못해준 것이 못내 마음에 걸립니다. 13살이 된 짱아와 함께 독립을 하였습니다. ‘강아지 아무나 키우는 거 아니다’라는 말을 실감하며 대소변을 치우고 밥을 챙겼습니다. 퇴근 후 돌아오면 짱아가 꼬리를 흔들며 반기고, 말티즈 특유의 도도한 눈빛으로 쳐다보는 것이 하루의 낙이었습니다. 여자친구는 짱아에게 따뜻한 인연이 되어주었습니다. 제가 없는 동안 짱아를 돌봐주고, 산책해주고, 애정표현도 해주었습니다. 미용을 다녀오면 스트레스로 일주일간 밥을 안 먹는 짱아를 위해 직접 미용도 해주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여자친구는 짱아 배에 혹이 만져진다고 했습니다. 유선종양이었습니다. 병원마다 수술을 해야 한다, 14살엔 당연한 증상이다 등 말이 달라 선택이 쉽지 않았습니다. 간단한 수술이지만 나이가 많기에 마취에서 못 깨어날 수도 있다는 점 때문에 고민이 되었습니다. 유명한 병원을 수소문했고, 악성종양이 아니기에 주기적으로 검사를 하면서 지켜보자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막연하게만 생각했던 짱아와의 이별이 현실로 와 닿는 순간이었습니다.별 탈 없이 지내던 짱아는 올해 초부터 조금씩 안 좋아졌습니다. 간식이나 사료에 흥미를 잃었지만 산책시간만큼은 활발해지기에 병원을 하루 미루고 함께 바다를 보러 가기로 했습니다. 더 미루면 안 될 것 같아서 떠난 바다. 15살 견생에 처음 본 바다에서 짱아는 실컷 뛰어다녔습니다. 기분이 좋았는지 산책 나온 강아지들하고도 어울려 놀았습니다. 바다에서 노는 짱아를 보고 우리의 시간이 많이 남아있지 않을 수 있다는 걸 느꼈습니다. 그 날 이후 시작된 짱아의 투병생활. 나이에 비해 앳된 얼굴의 짱아는 자궁축농증 수술을 하고 한 달 사이에 많이 늙어버렸습니다. 회복은 잘 됐는데 이번엔 만성 신부전증이라는 새로운 병명을 알게 됐습니다. 완치라는 게 없고, 먹으면 안 되는 게 많았습니다. 인터넷을 뒤져가며 이유식을 만들어 주사기로 입에 넣어 먹이고, 황태물 을 만들어 먹이고, 병원에 가서 수액을 맞히고... 늙고 아픈 강아지를 챙기며 다른 일은 할 수가 없었습니다. 병원비도 무시할 수 없었습니다. 원체 조그만 녀석이 투병생활을 하며 뼈만 남았습니다. 안으면 부서질 것 같은 체구로 먹는 것도 힘겨워하는데 그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는 것이 힘들었습니다. 조카가 어릴 때 아파서 병원을 다녔는데 그 때 여동생이 많이 힘들었겠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병원에서는 한 시간 뒤에 죽는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은 상태라고 말했습니다. 걷지도 못하고 누워만 있던 녀석은 오랜만에 여자친구를 보자 꼬리를 흔들었습니다. 그리고 여자친구와 제가 오기만을 기다렸다는 듯 편안한 모습으로 눈을 감았습니다. 15년. 아버지께서는 돌아가시기 전 짱아한테 인사를 했고, 짱아는 혼자 남은 어머니 방안에서 항상 어머니 옆을 지켜주었습니다. 걸음마를 시작한 조카 옆에서 아장아장 함께 산책하던 모습. 여자친구와 바다에서 신나게 뛰어다니던 모습. 아파서 움직이지도 못하는 몸으로 아련하게 저를 쳐다보던 모습. 가슴을 뾰족한 것으로 콕콕 찌르는 것 같다고 표현하면 맞을까요. 마트에 갈 때 짱아 것을 더 이상 안사도 될 때, 음식을 배달하고 졸졸 따라다니며 난리피던 녀석이 없어 조용할 때. 괜찮다가도 불쑥, 순간순간 떠오릅니다. 그리고 이제 더는 아프지 않을 테니 다행이라는 생각으로 그 순간들을 달래봅니다. 짱아야, 아무 것도 모르는 주인 만나서 고생 많았어. 꼭 아빠있는 곳으로 찾아가서 애기때처럼 산책도 다니고 편안한 모습으로 지내길 바래. 언제까지나 기억할게. - 짱아오빠의 이야기를 듣고 복실이누나 씀.한국에서는 해마다 약 8만 2000마리의 유기동물이 생겨납니다. “한 국가의 위대함과 도덕적 진보는 그 나라의 동물들이 받는 대우로 짐작할 수 있다”는 간디의 말이 틀리지 않다고 믿습니다. 그것은 법과 제도, 시민의식과 양심 어느 하나 빠짐없이 절실하게 필요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어떠한 생명이, 그것이 비록 나약하고 말 못하는 동물이라 할지라도 주어진 삶을 온전히 살다 갈 수 있는 사회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노견일기를 씁니다. 반려동물의 죽음은 슬픔을 표현하는 것조차 어렵고, 그래서 외로울 때가 많습니다. 세상의 모든 슬픔을 유난이라고는 말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여러분에게 늙은 반려동물과 함께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요? 오랜 시간 동물과 함께 했던, 또는 하고 있는 반려인들의 사진과 사연을 기다립니다. 소중한 이야기들은 y_mint@naver.com 로 보내주세요.
  • [김주영의 구석구석 클래식] 영화 ‘클라라’가 선물한 흥미로운 상상

    [김주영의 구석구석 클래식] 영화 ‘클라라’가 선물한 흥미로운 상상

    독일 영화 ‘클라라’(2008) 는 ‘독일의 신사임당’인 현모양처의 표본 클라라 슈만의 이야기를 다룬다. 기둥 줄거리는 남편 로베르트 슈만의 마지막 모습과 혜성처럼 나타난 스무 살 청년 요하네스 브람스와의 만남 등을 담았지만, 내게 흥미로운 부분은 영화 중간에 등장하는 클라라의 지휘다. 슈만은 뒤셀도르프로 이사온 직후 오케스트라의 음악감독을 맡게 되는데, 건강 문제와 레퍼토리 선정상의 갈등으로 단원들과 사이가 좋지 못했다.어느 날 아픈 남편을 대신해 오케스트라 리허설을 찾은 클라라는 포디엄에 오르기까지 적지 않은 실랑이를 벌인다. 이유는 단 한 가지. 여자가 지휘를 하는 경우는 없다. 이 장면의 결말은 교향곡 3번 ‘라인’의 한 부분을 멋지게 소화해 내는 클라라의 모습으로 마무리된다. 하지만 현실은 조금 달랐다. 19세기 중반 유럽 여성의 활동 영역은 이른바 음악계의 ‘셀럽’이었던 클라라에게조차 지극히 제한돼 있었고, 정식 연주가 아니라 리허설이라도 그 자리가 쉽게 허용되지 않았을 것이 분명하다. 여성에게 음악학교 입학조차 어려웠던 당시의 유럽 분위기가 조금 바뀌어 클라라가 더 많은 공부와 교류를 가졌다면 어쩌면 우리는 클라라 슈만이 아닌 클라라 비크(그녀의 결혼 전 이름)라는 걸출한 작곡가를 만났을지도 모른다. 현존하는 클라라의 많지 않은 작품들은 보석과 같은 아름다움을 품고 있으며 충분히 더 연주될 가치가 있다. 남편 로베르트 슈만의 이른 죽음도 안타깝다. 1856년 세상을 떠났지만 2년간 투병 생활을 해 실상 그의 인생은 44년 남짓이었다. 여러 명의 자식을 남기고 일찍 세상을 뜬 남편의 뒤를 이어야 했던 클라라의 인생, 그 후의 하이라이트는 프란츠 리스트와 리하르트 바그너를 포함한 표제음악 대가들과의 갈등이다. 슈만과 리스트는 한 살 차이의 절친인데, 피아니스트로 리스트와 호각세이던 클라라는 리스트의 쇼맨십적인 기질과 지나치게 화려한 연주 스타일을 좋아하지 않았다. 슈만이 그의 대표작 환상곡 C장조 작품 17을 리스트에게 헌정한 사실을 남편 사후에 알게 된 클라라는 큰 충격을 받았다고 전해진다. 슈만의 작품과 그가 지향했던 예술 세계를 충실히 대변하는 활동을 펼친 클라라는 1896년 77세로 사망하기까지 꼿꼿한 음악적 자존심으로 정상의 자리를 유지했는데, 이런 그녀를 리스트와 그의 제자들은 보수적이고 낡은 스타일이라며 비난하곤 했다. 그녀의 우군은 브람스였다. 그 역시 묘사음악에 주력하던 리스트의 반대편에 서서 음악 그 자체가 중심인 ‘순수음악’을 신봉했는데, 브람스의 영향력이 커지면서 대두된 라이벌은 리스트의 절친이자 훗날 사위가 된 바그너였다. 독일 악극의 시작이자 끝이라 할 수 있는 바그너는 당시로는 급진적인 화성 전개와 작곡법, 자신만의 철학이 담긴 독특한 드라마로 오페라를 만들어 엄청난 추종 세력을 거느렸다. 이른바 브람스파와 바그너파의 대립은 19세기 음악사의 가장 중요한 포인트이기도 한데, 제자들에게까지 이어진 이 갈등은 사실 클라라와 리스트의 대결에서부터 시작됐다고 보는 것이 옳을지도 모른다. 슈만의 부인과 친구가 빚어낸 흥미로운 대결의 역사가 아닐 수 없다. 이들의 대립은 음악사에서 부정적인 결말로 끝나지 않았다. 표제음악(바그너)과 순수음악(브람스)의 서로 다른 색깔과 목표점은 서로 견제하며 끊임없는 진화를 거듭했고, 20세기 초의 수많은 음악사조에 오롯이 영향을 끼쳤다. 요컨대 반드시 필요한 싸움이었다는 것은 분명하나, 그래도 여전히 하나의 가정은 이어진다. 만약 둘과 모두 가까웠던 음악가이자 문필가 로베르트 슈만이 70세 정도까지 생존했다면 우리가 아는 이 대립의 모양은 다른 형태로 나타났을까. 19세기 초 약 10년의 시간 차를 두고 태어난 낭만음악의 대가들을 생각할 때마다 드는 재미있는 공상이다.
  • [월드피플+] “현실로 이어진 게임 우정”…희귀암 친구위해 뭉친 게이머들

    [월드피플+] “현실로 이어진 게임 우정”…희귀암 친구위해 뭉친 게이머들

    무려 6년 동안 게임 속 가상현실에서만 만나 온 친구들이 처음으로 한 자리에 모였다. 희귀암 판정을 받은 아픈 멤버를 위해서다. BBC 등 해외 언론의 28일 보도에 따르면 남다른 우정을 과시한 이들 6명은 미국 뉴저지 주(州)에 사는 남성들로, 약 6년 전 온라인 게임상에서 만나 함께 게임을 즐겨왔다. 오랫동안 수 도 없이 함께 게임을 했지만 단 한 번도 현실에서 만난 적이 없던 이들을 불러 모은 것은 게임 멤버 중 한 명인 조(Joe, 23)의 투병 소식이었다. 올해 23세인 조는 지난 여름 유잉 육종(Ewing‘s sarcoma)진단을 받았다. 유잉 육종은 뼈에 생기는 악성 종양 중 하나로, 정확한 발병 원인은 아직까지 밝혀지지 않고 있다. 전이되었거나 몸통에 있는 뼈에 발생한 경우 예후가 좋지 않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조는 결국 병원에 입원했고 고통스러운 치료를 시작했다. 이 소식을 접한 게임 멤버 5명은 조의 쾌차를 위해 처음으로 한 자리에 모일 것을 약속했다. 그 중 한 사람인 데이비드 밀러는 캐나다에 사는 19살 소년으로, 10대 중반 시절부터 조 및 다른 멤버들과 함께 게임을 즐겨왔다. 그는 BBC와 한 인터뷰에서 “우리는 지난 6년간 항상, 그리고 많은 게임을 함께 해왔다. 언젠가는 다 함께 현실에서 만날 날을 기다리고 있었다”면서 “그러던 중 조가 아프다는 소식을 듣게 됐고, 우리는 현실에서 처음으로 만나는 날이 지금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고 전했다. 이어 “이미 게임을 하며 많은 시간을 함께 보냈기 때문에 현실에서 처음 만나는 것이 어색하지 않았다”면서 “처음으로 함께 모인 멤버들을 보니 눈물이 날 정도로 꿈같았다”고 덧붙였다. 아픈 조의 침대 주위로 모인 5명의 게임 멤버들의 사진은 미국 최대 온라인 커뮤니티인 레딧에 올라 화제가 됐다. 레딧에는 조의 건강을 응원하는 메시지와 함께, 이 게임 멤버들의 우정을 지지하는 수많은 메시지가 올라와 감동을 전했다. 송현서 기자 huimin0217@seoul.co.kr
  • 함중아 아내 폭로 “미희와 스캔들...남편, 바람피울 때가 더 좋았다”

    함중아 아내 폭로 “미희와 스캔들...남편, 바람피울 때가 더 좋았다”

    ‘마이웨이’ 가수 함중아 아내 손명희가 과거 남편의 여자 문제로 마음고생이 심했다고 털어놨다. 27일 오후 방송된 TV조선 ‘인생다큐 마이웨이’(이하 ‘마이웨이’)에서는 가수 함중아 부부가 출연했다. 이날 함중아 아내 손명희는 남편의 여자 문제로 힘들었던 시절을 회상했다. 그는 “이혼하려고 법원도 갔었는데 남편이 초밥 맛있게 먹고 좀 더 생각해보고 내일 이혼하러 오자고 하더라”라며 “그리곤 이혼을 안 했다”고 전했다. 함중아는 과거 미스코리아 출신 가수 미희와 스캔들에 휩싸인 바 있다. 아내 손 씨는 “지금 생각하면 바람피웠을 때가 좋았던 것 같다”며 “남편이 건강하게 다녔을 때가 좋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함께 사는 그날까지 같이 운동하고 맛있는 음식 먹으면서 살았으면 좋겠다”며 남편에 대한 애정을 드러냈다. 한편 함중아는 ‘안개 속의 그림자’, ‘내게도 사랑이’, ‘카스바의 여인’ 등 히트곡으로 한 시대를 풍미했다. 그는 5년 전 간 경화를 진단받고 현재 투병 중이다. 연예팀 seoulen@seoul.co.kr
  • ‘5·18과 무관하다’던 전두환, 치밀한 ‘집권 시나리오’

    ‘5·18과 무관하다’던 전두환, 치밀한 ‘집권 시나리오’

    1980년 5·18민주화운동이 일어난 지 38년이 지났지만 발포 명령자 등 완전한 진상규명은 미완의 과제로 남아있다. 그러나 각종 증언과 기록물 등에는 5·18을 통해 권력을 찬탈하려 했던 전두환씨의 야욕과 그가 광주진압을 총지휘했던 정황들이 곳곳에 드러나 있다. 5·18민주화운동기록관은 28일 이같은 내용이 담긴 ‘전두환과 그의 보안사의 5·18 연관 행적’ 문건을 분석해 공개했다. 각종 군 기록물과 12·12 및 5·18 검찰 수사, 재판 기록 등을 통해 본 해당 문건은 전씨가 자신의 주장과 달리 5·18에 깊숙이 관여한 것으로 드러났다. 전씨는 5·18 이전부터 권력 찬탈 야욕 드러낸 정황이 엿보인다. 1980년 5·17 비상계엄 전국 확대 3달 전부터 공수부대는 폭동 진압 훈련인 ‘충정훈련’을 조기 실시했다. 계엄이 확대됨과 동시에 각 요충지에는 계엄군이 포진해 있었다. 각종 증언과 기록은 이 모든 상황의 장본인으로 전두환 당시 보안사령관을 지목하고 있다. 권력 찬탈 야욕은 ‘충정훈련’부터 엿보였다. 1980년 2월 18일 육군본부는 1.2.3야전군사령관과 특전사령관, 수경사령관, 치안본부장에게 ‘충정훈련’을 2월 중 조기 실시해 완료하라는 특별지시를 내렸다. 12·12사태로 군을 장악한 전두환 보안사령관의 지시에 따른 것이다. 같은해 5월 초 전씨는 보안사에 ‘시국수습방안’ 수립을 지시했다. 당시 보안사 정보처장이었던 권정달 대령을 중심으로 허화평, 허삼수, 이학봉 등 보안사 참모들이 맡아서 처리했다. 권 대령은 1995년 12·12 및 5·18 사건 검찰수사에서 ‘시국수습방안’ 수립 과정 등을 진술하며 “실질적인 집권 시나리오였다”고 폭로했다. 그는 5월 초부터 비상계엄 전국 확대, 국회 해산, 비상기구 설치를 골격으로 하는 ‘시국수습방안’ 작성 작업을 진행했으며, 이를 실행으로 옮긴 게 ‘5·17 내란사건’이라고 증언했다. 5·18 이전인 5월 3일부터 각 공수여단의 병력 이동은 시작됐다. 9공수여단을 수도군단에 배속하고, 13공수여단을 3공수여단 주둔지로 이동시켰다. 11공수여단은 1공수여단 주둔지로, 3공수여단은 국립묘지에 진주했다. 잠실체육관, 효창운동장, 태릉 등지에 계엄군이 포진했다. ‘시국수습방안’의 일환이었던 비상계엄 전국 확대는 이미 예정된 절차였다. ‘시국수습방안’은 수립단계부터 전두환 등 신군부가 권력 찬탈을 치밀하게 준비했고, 이는 5·18로 이어졌다. 5·18과 전혀 무관하다는 전씨의 주장과 달리 그의 행적은 곳곳에 남아 있다. 5공화국 출범 전후 정국 현안을 다룬 ‘제5공화국 전사’(5공 전사) 제3장 ‘광주사태’에는 “(5월) 19일부터 전례 없이 매 격일마다 국방부 장관을 비롯한 합참의장, (한미) 연합사 부사령관, 육.해.공군 참모총장, (전두환) 보안사령관, 수경사령관, 특전사령관 등 군수뇌가 국방부 회의실에 모여 2군사령부와 광주의 전투병과교육사령부로부터 올라오는 매일의 상황보고에 따라 (광주)사태에 대한 대책을 논의·결정했다”는 대목이 나온다. 전씨가 5.18 기간 중 거의 매일 국방부에서 열린 ‘광주사태 대책회의’에 참석했다는 얘기다. 당시 군 공식 지휘 체계상 광주 현장 총책임자였던 윤흥정 전교사령관의 갑작스러운 교체가 전씨의 지시 때문에 이뤄진 것도 그가 사실상 군의 총지휘자였음을 뒷받침한다. 전씨는 이희성 계엄사령관을 통해 시위 진압에 소극적인 윤 사령관을 교체시켰다. 또 5월 21일 전남도청 앞 집단발표 다음날인 22일 11공수여단장 최웅에게 격려금 100만원을 전달하도록 지시했다. 전씨는 ‘자위권 발동’을 결정하는 국방부회의에도 참석했다. ‘5공 전사’에 따르면 5월 21일 국방부에서 이희성 계엄사령관이 주영복 국방부 장관에게 광주 투입 계엄군 자위권 발동을 결정하는 자리에 전씨가 등장한다. 국방부회의에 참석한 상태에서 ‘자위권 발동 결정’이 난 것은 그가 5·18을 총지휘했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나의갑 5.18기록관장은 “정권찬탈을 위해 광주를 짓밟은 전두환을 ‘5·18 총사령관’으로 규정하고, 그의 보안사를 ‘공작부대’로 설정해야 한다”면서 “그와 그의 ‘5·18 연관 행적’을 구체적으로 발굴해 낸다면 진상규명에 더 가까이 갈 수 있다”고 말했다. 광주 최치봉 기자 cbchoi@seoul.co.kr
  • ‘마이웨이’ 함중아, 간경화 5년 투병+혼혈아 거짓말 한 이유 고백

    ‘마이웨이’ 함중아, 간경화 5년 투병+혼혈아 거짓말 한 이유 고백

    ‘마이웨이’ 가수 함중아가 아내와의 일상을 공개했다. 27일 방송된 TV조선 ’인생다큐 마이웨이‘(이하 ’마이웨이‘)에서는 가수 함중아가 출연했다. 함중아는 5년 전 간 건강에 문제가 생겨 간 경화로 투병했다고 털어놨다. 야간업소를 무대로 일하던 시절, 하루 일을 마치고 친구들과 술을 기울이는 게 일상이었다고. 그는 “야간업소에서 음악 활동을 하다 보니 일이 끝나면 허전하다. 그래서 친구들끼리 모여 매일 술을 먹었다. 적게도 아니고 폭주하다시피 수십 년을 마셨다”고 전했다. 함중아는 “평소 술을 많이 먹어 술병으로 고생했다”며 “건강이 많이 나빴을 때는 배에 복수가 찼다”고 고백했다. 현재는 많이 호전된 상태. 이어 “술을 안 먹은 지 한 5년이 넘었다. 담배도 거의 끊었다”며 달라진 생활을 전했다. 함중아의 간 경화 투병 소식에 동료 가수 박일준은 “간이라는 것은 표시가 안 나지 않나. 제가 먼저 당하지 않았나”라며 함중아를 걱정했다. 박일준 역시 2002년 간 경화로 쓰러진 바 있다. 한편 함중아는 데뷔 당시 혼혈 가수로 주목받았지만, 뒤늦게 한국인이라고 밝혀 화제를 모았다. 그는 혼혈이 아님에도 숨겨온 이유와 관련 “어려서부터 유난히 흰 피부와 이국적인 외모 때문에 혼혈로 오해를 받곤 했다”며 “가난했던 형편 탓에 배고픔을 피하기 위해 혼혈아들이 모인 고아원에 혼혈아인 척 들어가게 됐다. 그것이 오해의 시작이었다”고 털어놨다. 이어 “당시 가수로 인기를 유지하기 위해 계속해서 혼혈이라고 거짓말할 수밖에 없었다”고 전했다. 사진=TV조선 연예팀 seoulen@seoul.co.kr
  • ‘마이웨이’ 함중아, 간경화 투병 고백 “하루에 소주 30병...지금은 금주”

    ‘마이웨이’ 함중아, 간경화 투병 고백 “하루에 소주 30병...지금은 금주”

    ‘마이웨이’ 가수 함중아가 간 경화 투병 사실을 털어놨다. 27일 방송되는 TV조선 ‘인생다큐 마이웨이’(이하 ‘마이웨이’)에는 가수 함중아가 출연해 이야기를 전한다. 부산 기장에서 살고 있는 함중아는 이날 아내 손명희 씨와의 일상을 공개할 예정이다. ‘안개 속의 두 그림자’, ‘내게도 사랑이’, ‘카스바의 여인’ 등 히트곡으로 이름을 알린 함중아는 1978년부터 가수로 생활했다. 그러던 중 5년 전, 간 건강에 문제가 생겼다. 함중아는 “야간 업소 무대에서 일할 때 하루에 소주 30병을 마셨을 정도로 폭음했다”며 “일 년에 366일을 술을 마셨을 정도”라고 털어놨다. 이어 “건강에 이상이 발견된 뒤로는 금주하며 회복에 전념하고 있다. 이제 아내가 내게 거의 엄마 역할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내가 표현을 안 할 뿐이지 속으로는 아내한테 정말 고맙다”며 옆에서 든든한 조력자가 돼준 손명희 씨에게 고마운 마음을 전했다. 한편 함중아의 이야기가 그려지는 ‘마이웨이’는 이날(27일) 오후 10시 TV조선에서 공개된다. 사진=TV조선 연예팀 seoulen@seoul.co.kr
  • “항상 널 위해 뛰겠다” 투병 소녀에게 답장 ‘맘스 터치’ 모드리치

    “항상 널 위해 뛰겠다” 투병 소녀에게 답장 ‘맘스 터치’ 모드리치

    “인성이 매우 훌륭한 선수다. 정직하고 겸손하고 성실하다.”다보르 수케르 크로아티아 축구협회장이 과거 루카 모드리치(33·레알 마드리드)의 인성에 이렇게 찬사를 보낸 적이 있다. 보스니아의 온라인 매체 ‘이자다르’는 지난 23일(현지시간) 영국 런던에서 진행된 국제축구연맹(FIFA) 베스트 어워즈 시상식에서 그가 ‘올해의 선수상’을 수상하자 백혈병 투병 소녀에게 직접 손편지를 써 보낸 사실을 소개해 눈길을 끌었다. ●전쟁 겪은 그, 팀 내 정신적 지주 역할 급성 림프구성 백혈병이란 진단 후 6개월만 지나면 세상을 뜬다는 진단을 받은 다섯 살 소녀 셀레나가 어느 날 언니가 대신 써서 보낸 편지에 모드리치가 답장을 보내와 깜짝 놀랐다. 그는 “팀원 모두가 네 투병 사실을 알고 있고 네가 얼마나 어려운 화학 치료 과정을 이겨내고 있는지 잘 알게 됐다. 항상 널 위해 뛰도록 노력할게”라고 다짐했고, 셀레나는 더욱 밝은 표정으로 화학 치료를 받게 됐다. 사실 지난 6월 러시아월드컵 결승에 사상 최초로 조국 크로아티아를 견인했을 때도 그의 인성은 화제가 됐다. 레알 마드리드 경기를 마친 뒤 터널 안에서 유니폼을 벗어 달라는 소년에게 하의를 건네고 자신은 팬티 차림으로 라커룸을 향해 달려갔다. 유니폼 상의를 벗은 상태였다. 이른바 ‘빤스 런 움짤’ 동영상이 인터넷을 달궜다. 그런 모드리치가 전쟁의 참화 중에 축구에 눈을 떴다는 사실은 널리 알려져 있다. 한창 철들 나이에 축구를 처음 접했는데 난민 신세였다. 크로아티아와 신유고연방이 전쟁을 벌여 고향 자다르를 떠나 호텔 주차장을 전전하며 축구공을 튕겼다. 물론 부모는 그가 최대한 전쟁의 참화에서 비켜설 수 있도록 돌봤다고 하지만 인성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을 것이 틀림없다. 그런 어려움을 겪어서일까? 그는 중뿔난 스타라기보다 늘 어려움을 겪는 선수나 어린 선수들을 다독여 팀을 정신적으로 한데 묶는 데 더 뛰어나 보였다. 이번 FIFA ‘올해의 선수상’ 최종 후보에 오른 옛 동료이자 레알 3연패의 주역인 크리스티아누 호날두(유벤투스)와 다른 면모이기도 하다. 호날두와 2008년 이후 5회씩 나눠 가져 소위 ‘메날두 시대’를 양분한 리오넬 메시(바르셀로나)는 최종 후보에서 탈락했다. ●“팀과 국가 대표팀 동료들과 함께 받은 상” 모드리치는 29.05%를 얻어 호날두(19.08%)와 무함마드 살라흐(리버풀·11.23%)를 따돌리고 영예를 차지했다. 중원의 어느 포지션을 맡겨도 소화해내고 경기 완급을 조율하는 능력, 동료들을 다독이는 능력에서도 버금 가는 선수가 많지 않다. 딥 라잉(deep lying·가장 뒤쪽에 처지는) 플레이 메이커로도 최고란 평가를 듣는다. 그는 수상 소감으로 “이 상은 나 혼자만의 것이 아니다. 레알 마드리드와 크로아티아 대표팀 동료들과 함께 받는 것이다. 코치들이 없었다면 이 상은 없었을 것이며 가족이 없었다면 난 지금의 선수가 되지 못했을 것”이란 말을 남겼다. 이제 관심은 모드리치가 유럽축구연맹(UEFA)과 FIFA에 이어 2016년 이후 FIFA에서 떨어져나간 발롱도르까지 차지하는 ‘트리플 크라운’에 성공할지에 쏠리고 있다. 임병선 선임기자 bsnim@seoul.co.kr
  • 순천만세계동물영화제 집행위원회, 위원 명단 허위로 작성해 기부금 수령

    순천만세계동물영화제 집행위원회, 위원 명단 허위로 작성해 기부금 수령

    지난달 폐막한 순천만세계동물영화제 집행위원회 명단이 허위로 만들어진 것으로 드러났다. 집행위원회는 조작된 서류를 제시해 기업체 등에서 지정 기부한 1억 3000만원을 받아 챙겨 파장이 예상된다. 19일 순천시에 따르면 올해 열린 제6회 동물영화제는 시가 7억 1000만원을 들여 모든 행사를 주관· 주최해 마무리했다. 시 관계자는 “그동안 영화제를 같이 해왔던 집행위원회가 전문성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많아 업무를 수행할 수 있는 업체를 새로 선정해 일을 맡겼다”며 “올해는 집행위원회 없이 행사를 치렀다”고 말했다. 그는 “동물영화제 집행위원회가 올해 기부금을 받은 일은 우리와 전혀 무관하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지난해 동물영화제 집행위원이었던 일부 위원들이 ‘순천만세계동물영화제 집행위원회’라는 단체명을 새로 만들어 등록하고 지난 4월 기부금 1억 3000만원을 수령했다. 이들은 이 과정에서 지난해 임기가 종료된 집행위원 22명의 이름을 거짓으로 작성해 제출했다.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한국문화예술위원회는 이 자료를 근거로 기부금을 전달했다. 올해 집행위원으로 돼 있는 A씨는 “영화제와 관련 없는 사람들이 기부금을 받아 몇사람이 나눠먹기식으로 그들만의 잔치를 하고 있다”며 “난 위원이 아닌데 왜 이름이 기재돼 있는지 알수 없다”고 말했다. 집행위원으로 적혀있는 순천대 교수와 순천시의원, 공무원 등 대다수들도 “작년에 임기가 이미 끝났고 집행위원이 아니다”며 “올해 회의 한번 열리지 않았다”고 밝혔다. 병원에 입원해 투병 생활을 하다 지난 4월 지병으로 숨진 B씨도 집행위원으로 올라가 있는 황당한 일도 있다. 이들은 “예전 위원들의 동의도 없이 법인을 만들고 기부금을 몰래 받아간 말도 안되는 상황이 되고 있다”면서 “도대체 1억이 넘는 기부금을 어디다 쓰고 있는지 의아스럽다”는 반응들이다. 이에대해 김진호 집행위원장은 “작년과 올해 집행위원은 모두 똑같은 사람들이다”면서도 “위원들 몇명은 알지만 전체 다 알지는 못한다”고 말했다. 이와관련 한국문화예술위원회 관계자는 “집행위원회 위원이 사실과 다를 경우 기부금이 잘못 내려간 만큼 전액 환수할 방침이다”고 밝혔다. 순천 최종필 기자 choijp@seoul.co.kr
  • 41세 요절 일본 격투기 스타 야마모토 노리후미, 애도의 물결

    41세 요절 일본 격투기 스타 야마모토 노리후미, 애도의 물결

    지난 18일 41세의 나이에 세상을 떠난 일본 격투기의 간판스타 야마모토 ‘키드’ 노리후미에 대한 팬들의 애도가 이어지고 있다. 2005년 12월 K-1 히어로즈 미들급 그랑프리에서 우승하며 경량급 최고의 인기 파이터로 사랑받아온 그는 준수한 외모와 거침없는 언변, 난타전을 즐기는 화끈한 공격 스타일로 팬들의 사랑을 받았다. ‘키드’(Kid)는 신장 163㎝, 체중 65㎏의 작은 체구 때문에 붙여진 애칭이었다. 야마모토의 사망은 지난달 26일 자신의 인스타그램을 통해 암 투병 사실을 공개한 이후 20여일만의 일이어서 팬들의 충격은 더욱 컸다. 그는 어떤 종류의 암인지는 밝히지 않고 “꼭 돌아올 것이라고 강하게 믿는다. 따뜻한 응원 부탁합니다”라고 썼지만 결국 돌아오지 못했다. 야마모토는 레슬링 집안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이쿠에이는 1972년 뮌헨 올림픽 레슬링 국가대표였고, 누나 미유와 여동생 세이코는 세계레슬링선수권대회에서 우승을 했다. 어린 시절부터 레슬링 자유형에서 활약한 야마모토는 2000년 시드니 올림픽 대표 선발전에서 탈락한 뒤 2001년 격투기 선수로 전향했다. 야후재팬 등 일본 포털사이트는 그의 사망 소식을 메인 뉴스로 다루며 요절한 격투기 선수의 40여년 인생을 추모했다. 격투기 선수이자 탤런트인 다카다 노부히코는 “너무 이른 나이에 ‘신의 아들’ 야마모토 키드 노리후미가 세상을 떠났다”며 “싸우는 것의 멋짐과 재미, 고귀함을 세상에 알린 위대한 공로자가 최후까지 싸운 뒤 여행을 떠났다”라며 애도했다. 일본 축구 대표선수인 나가토모 유토도 트위터에서 “야마모토 키드 노리후미를 늘 동경했고, 학창시절 머리 스타일이나 근육만들기를 모방했다”고 추억하고 “우리는 남의 인생을 사는 게 아니다. 한번뿐인 자신의 인생을 후회하지 않도록 도전하고 지금을 즐기자”라고 했다. 도쿄 김태균 특파원 windsea@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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