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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단독] [커버스토리] 美·日·加, 개별 납세…獨, 원천징수

    일반인과 동일… 특별 과세제 없어 獨, 공무원 간주… 국가서 월급 지급 선진국 클럽으로 통하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은 한국을 포함해 35개국이다. 이 가운데 종교인에게 세금을 물리지 않는 나라는 몇 개국일까. 정답은 ‘1’이다. 오로지 한국만이 종교인이라는 이유만으로 과세를 하지 않고 있다. 미국에서 종교인은 일반인과 똑같은 소득세 납세의무자로서 연방세, 주세는 물론 사회보장세와 의료보험세 등을 부담한다. 미국에 선교사로 파견된 한국인 목회자들이 이 사실을 모르고 소득신고를 하지 않았다가 국세청에 고발당해 낭패를 보기도 한다. 독일에선 종교인을 공무원과 유사하게 간주한다. 국가에서 종교인들에게 월급을 지급하고, 종교인들은 원천징수 방식으로 소득세를 납부한다. 재원은 신도들이 종교단체에 내는 교회세로 충당한다. 독일에서는 종교단체 신도들이 소득세의 약 8~10%를 별도로 납부하는 교회세 제도가 있다. 교회세는 교회 유지비나 사업비·건축비 등 교회와 관련한 여러 비용을 충당하는 재원이 된다. 교회세는 십일조를 폐지하고 이를 대체하기 위해 마련한 세금이다. 교회세는 신도 수에 따라 종교단체에 배분한다. 원칙적으로 교회세를 내지 않는 사람은 교회에서 제명당할 수 있다. 캐나다에는 종교인에 대한 특별한 과세제도는 없다. 대신 개별 납세자로서 일반인과 동일한 납세 의무를 진다. 종교인은 종교단체에서 받는 보수나 사례 등을 수입금액으로 신고, 소득세를 낸다. 소득이 없더라도 보조금 수령 등을 위해 신고서를 반드시 작성해야 한다. 일본도 종교인에 대한 별도의 과세 규정 없이 개인과세제도를 동일하게 적용한다. 역사적으로 보면 종단에 속한 사원이나 성직자에게 완전한 면세 혜택은 물론이고 병역의무까지 면제해 준 사례가 하나 있기는 했다. 칭기즈칸과 그 후예들이 다스린 몽골제국이다. 몽골은 체제에 반대하지 않는 한 불교, 도교, 기독교, 이슬람 등 모든 종교에 포교의 자유를 보장했다. 종교 지도자들은 국정자문역으로 우대받았다. 종교와 정치가 분리되기 이전에 종교를 제국 통치의 하위 동반자로 대우한 예외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세종 강국진 기자 betulo@seoul.co.kr
  • [단독] [커버스토리] 종교인 30만원 vs 근로자 64만원…공제 더하고 사례비 뺀 ‘반쪽 과세’

    [단독] [커버스토리] 종교인 30만원 vs 근로자 64만원…공제 더하고 사례비 뺀 ‘반쪽 과세’

    기타 소득 신고… 인적공제는 해당 생활비·목회비 등 정기적 수입 과세 정부가 내놓은 종교인 과세 기준안 초안을 보면 종교인들의 반발을 최소한으로 하기 위해 애쓴 흔적이 역력하다. 바꿔 이야기하면 최대한 세금을 덜 걷기 위한 구조로 만들었다.종교인과 근로자가 똑같이 연소득이 2400만원이라고 가정할 때, 국세청 홈택스의 세금 계산기에 넣어 보면 기타소득으로 신고한 종교인은 우선 1800만원(2000만원까지 80%, 초과분은 50%)을 필요경비로 인정받아 소득공제를 받는다. 반면 근로자는 근로소득 공제 885만원(500만원까지 70%, 1500만원까지 40%, 초과분은 15%)을 받는다. 기타소득으로 신고하지만 종교인도 인적공제 대상이다. 종교인 본인과 배우자, 미성년 자녀까지 합해 450만원의 인적공제를 받는다. 소득공제만 받는다고 하면 과세표준은 150만원이고, 세율 20% 적용을 받아 납부해야 할 세금은 30만원이다. 같은 조건의 근로자도 450만원의 인적공제를 받아 과표는 1065만원이 된다. 여기에 세율 6%를 적용받아 내야 할 세금은 63만 9000원이다. 같은 돈을 벌어도 2배 넘게 차이가 나는 것이다. 물론 종교인이나 근로자 모두 이 정도 과세액은 세액공제를 통해 충분히 털어낼 수 있다. 문제는 근로자라면 당연히 내야 할 과세 대상이 종교인에게는 비과세라는 점이다. 대표적으로 근로자의 외부 강의는 종합소득세 신고 대상이지만 종교인에게는 아니다. 대형교회 목사들 상당수가 소속 교단 신학교의 겸임교수로 있다. 또 다른 교회에서 부흥회를 한다거나 신도가 입원한 병원이나 개업한 가게의 심방(방문)에 대한 사례, 결혼식 주례에 대한 사례도 비과세다. 기획재정부가 마련한 과세 기준안 초안에 따르면 이런 소득은 모두 ‘정기적으로 받는 일정액’이 아니기 때문이다. 사례비, 상여금, 격려금 혹은 공과금·사택공과금·건강관리비·의료비·목회활동비·사역지원금·연구비·수양비·도서비 등 이름이나 취지는 상관없다. 정기적으로 일정액을 받으면 신고를 해야 한다. 물론 신고하지 않아도 검증할 방법은 없다. 사택 지원 역시 정기적으로 주거비를 지원받으면 과세 대상이지만 종교단체가 직접 소유하거나 임차해 제공하는 형태라면 비과세다. 목회 활동비·사역 지원비·접대비 등은 실제 지출한 비용이 개인이 아니라 종교단체에 귀속된다는 것을 증명만 하면 과세 대상에서 제외해 준다. 자기 소유 차량을 이용하는 종교인이 유지비를 지원받는다면 20만원 이하까지는 비과세다. 물론 20만원이 넘으면 세금을 물린다. 세종 강국진 기자 betulo@seoul.co.kr 세종 장형우 기자 zangzak@seoul.co.kr
  • [단독] [커버스토리] 종교인 과세 세수에 도움 될까

    종교인 상당수 수급 대상…사실상 ‘마이너스 세수’ 논란 끝에 내년부터 종교인 과세가 시행되면 실제로 세수에 도움은 되는 것일까. 답은 ‘아니다’이다. 목사·승려 등 종교인들이 내지 않던 세금을 내면 세수가 좋아질 것 같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오히려 ‘배보다 배꼽이 큰’ 상황이 펼쳐질 가능성이 크다. 종교인의 소득에 대한 과세가 시작되면 동시에 정부는 근로장려금(EITC·일하는 저소득층에 주는 지원금)을 지급해야 하는데, 수급 대상이 납세를 하게 될 종교인 수의 갑절에 이르기 때문이다. ●23만명 중 4만 6000명만 납세 정부는 2014년 종교인 과세를 추진하면서 전체 종교인 23만명의 약 20%인 4만 6000명에게 연간 100억~200억원 정도의 세금을 걷을 수 있을 것으로 예상했다. 그런데 정부는 반대급부로 지원해야 하는 근로 및 자녀 장려금의 규모에 대해선 밝히지 않았다. 소득이 낮은 종교인들이 기타소득이 아니라 근로소득으로 신고를 하면 ‘월급쟁이’로 인정받아 근로장려금을 받을 자격이 생긴다. 근로장려금은 가족 재산이 1억 4000만원 미만이고 연소득이 맞벌이 2500만원, 외벌이 2100만원 미만이면 받을 수 있다. 한 해 동안 맞벌이는 최대 250만원, 외벌이는 최대 200만원을 현금으로 지급받게 된다. ●최소 10만명 장려금 지급 대상 그런데 종교인 상당수가 장려금 지급 대상이다. 국회예산정책처의 2013년 추산에 따르면 개신교만 놓고 봤을 때 약 14만명의 교직자 가운데 연소득 1000만원 미만이 2만 7000여명, 1000만~2000만원이 5만 3000여명에 이른다. 개신교 교직자만 약 8만명이 대상이고, 이들에게 연간 737억원을 지급해야 한다. 전체 종교인으로 확대하면 최소 10만명이 장려금 지급 대상이고, 1000억원이 넘는 지원이 이뤄지게 된다. 기획재정부 관계자도 “실질 세수는 마이너스가 될 수도 있다”고 시인했다. 한승희 국세청장은 지난 6월 국회에 제출한 인사청문 자료에서 “종교인 대다수가 면세점 이하여서 실제 세금 부담은 적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세종 장형우 기자 zangzak@seoul.co.kr
  • [단독] [커버스토리] 낱낱이 드러나는 종교 재정…교인들 떠날까 두렵습니다

    [단독] [커버스토리] 낱낱이 드러나는 종교 재정…교인들 떠날까 두렵습니다

    “우리가 이제는 거울로 보는 것같이 희미하나 그때에는 얼굴과 얼굴을 대하여 볼 것이요. 이제는 내가 부분적으로 아나 그때에는 주께서 나를 아신 것같이 내가 온전히 알리라.”(고린도전서 13장 12절) 성서 고린도전서 13장은 개신교와 천주교인들에게 ‘사랑장’으로 불리며 널리 사랑받는 구절들로 가득하다. 그중 12절은 예수가 재림하면 고난받던 신자들이 구원의 비밀과 사랑의 본질을 제대로 깨치게 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그런데 내년부터 종교인 과세가 시작되면 지금까지 베일에 가려져 희미했던 개신교 교회의 재정 운영 현황도 차츰 투명해지게 된다.과세 관련 근거 자료도 없고 종교인들의 반발이 두려워 자진 신고로 과세의 첫 발걸음을 내딛지만, 해가 거듭될수록 자료가 쌓이고, 종교계 내·외부의 역학관계 등의 영향으로 교회 재정운영의 건전성은 크게 개선될 가능성이 크다. 정부가 ‘안 내면 그만’인 과세 기준안을 제시했지만, 일부 보수 개신교회들이 끝까지 반발하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대부분의 교회, 지금도 충분히 투명하다” 일반적인 개신교회의 운영은 대부분 교인들의 헌금으로 이뤄진다. 일정 규모 이상의 교회들이 카페나 서점, 선교원 등을 운영하는 것을 볼 수 있지만, 대부분이 돈벌이를 위해서가 아니라 지역 주민들을 대상으로 한 선교 차원에서 운영된다. 물론 비영리법인이 수익을 목적으로 하지 않는 운영을 하기 때문에 이런 업장들의 이익은 과세 대상이 아니다. 헌금이 증축이나 인건비 등 모두 교회 운영에 사용된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교회는 헌금의 상당 부분을 지역사회에 다시 기부한다. 동남아나 남미 등 외국에 나가 있는 선교사들도 지원한다. 교인들 중 어려움을 겪는 이들에 대한 부조도 이뤄진다. 기부금의 상당 부분을 다시 기부하는 구조다. 일부 교회는 이 때문에 종교인 과세에 반발하기도 한다. 교회의 재정운영도 일반 기업과 마찬가지로 지출 계획을 승인받고, 감사도 받고, 결산도 한다. 대부분의 교회는 소속 교단이 정한 교회법에 따라 회계담당자를 두고, 이에 대한 감사를 진행하는 집사나 장로 등 직분자도 정한다. 자금 운영에 대한 부분은 재직회를 거쳐 최종적으로 총회에서 승인을 받는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신자가 많은 대한예수교장로회의 경우 대부분은 목사가 아니라 다수의 장로들이 민주적 절차를 밟아 교회를 운영한다. 목사는 당회장을 맡는데, 당회는 재정적 측면보다는 세례나 선교 등 교리와 관련된 부분을 담당한다. 감리교, 성결교, 침례교 등도 이와 비슷하다. 서울 관악구의 A교회 담임목사는 “교회가 교회법에 따라 운영되기만 한다면 세상 사람들에게 부끄러운 분쟁이 전혀 발생하지 않을 것”이라면서 “실제로 대부분의 교회가 교회법이 정한 내용과 절차에 따라 운영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과세 땐 목회자 납세내역 모든 교인에 공개 교계에서는 교회의 재산이나 상속을 둘러싸고 분쟁이 발생하는 곳은 주로 담임목사가 직접 개척한 대형교회들로 보고 있다. 교회를 개척해 키운 목사가 교회법이 정한 장로회의 권한을 무시하고, 예수가 아닌 자신을 교회의 주인으로 여기고 전횡을 일삼을 때 문제가 발생한다는 것이다. 실제 교인들 간의 분쟁과 목사, 장로회의 갈등이 벌어지고 있는 교회들도 대부분 이런 개척 대형교회들이다. 또한 이런 교회 목사들이 성직자인 아들이나 사위에게 교회를 물려주려고 할 때 갈등이 심화된다. 그런데 내년부터 종교인 과세가 시행되면 이런 일부 교회의 부정부패를 미연에 방지하는 단초가 마련될 수 있다. 물론 과세는 종교인의 자발적 신고에 근거해 이뤄진다. 그러나 종교인 소득이 얼마인지만 파악되면 교회로 들어가는 종교단체 기부금 중 목회자의 인건비 비중이 얼마나 되는지 파악할 수 있다. 교회는 대부분 종교단체 기부금, 즉 헌금으로 운영된다. 또 종교단체 기부금은 매년 근로소득 연말정산이나 종합소득세 신고를 통해 세정당국이 어렵지 않게 파악하고 있다. 교회 운영자금 중 목회자들의 인건비 내역이 나오면, 전체적인 재정 운영 상황을 파악하는 것은 시간문제다. 이게 종교인 과세가 베일에 가려진 듯 희미했던 교회 재정 운영 현황을 ‘얼굴과 얼굴을 대하며’ 보듯 선명하게 만드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전망하는 근거다. 일부 보수 개신교 목회자들이 종교인 과세를 극구 반대하는 이유도 여기 있다. 세정당국이 종교단체에 대한 세무조사를 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목회자의 납세 내역이 재직회나 총회를 통해 모든 교인에게 공개된다. 독실한 기독교인들도 점차 종교인 과세에 찬성하는 분위기 속에서 담임목사나 목회자들이 제대로 세금을 내지 않는 교회는 점차 쇠락할 수밖에 없다. 서울 양천구의 B교회 부목사는 “요즘 교인들은 예전처럼 목사님 말씀이라면 무조건 옳다고 받아들이지 않는다”면서 “교회도 쇼핑처럼 자신의 취향에 맞는 곳을 선택해서 다니고, 불투명한 운영이나 갈등이 있으면 미련 없이 다른 교회로 떠난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따라서 종교인 과세는 신자들이 교회를 선택하는 하나의 중요한 기준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헌금 거의 100% 현금… 흑색선전 악용 우려도 종교인 과세가 궁극적으로 종교계 관행을 발칵 뒤집어놓을 만큼 ‘엄청난’ 변화의 계기를 제공할 것이라는 과세 지지론이 지나치게 낙관적이라는 주장도 만만찮다. 교회 운영의 밑바탕인 헌금의 거의 100%가 현금으로 들어오기 때문에 초기 단계에 유용이 이뤄지면 확인이 어렵다는 것이다. 또 교인들이 헌금을 모두 종교단체 기부금으로 신고하는 것도 아니다. 과세당국이 반발을 무릅쓰고 교회 운영 계좌를 열어볼 수도 없기 때문에, 오히려 분쟁이 발생한 교회 내에서 벌어지는 흑색선전에 악용될 수 있다는 반론도 팽팽하다. 개신교회의 집사로 과거 교회 회계를 담당한 경험이 있는 회계사 C씨는 “교인 1000명이 넘는 지역사회의 비교적 큰 교회라고 해도 회계가 주먹구구식으로 이뤄지는 경우가 있다”면서 “목사나 장로 등 특정 개인이 욕심을 부리는 경우도 아닌데, 제대로 체계가 안 잡혀 그런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국민의 의무”… 과세 찬성 종교인도 상당수 보수 개신교 목회자들 중에 종교인 과세에 적극 찬성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구로구의 D교회 담임목사는 “우리 국민들이 교회를 멀리하고, 개신교를 ‘개독교’라고 모욕하는 이유 중 하나가 교회가 납세의 의무를 다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본다”면서 “신앙적으로 보수적이라는 게 정치적으로 보수적인 것과 혼동돼 사용되는 면이 있는데, 보수 개신교 목회자 중에도 교회의 미래를 위해 종교인 과세에 찬성하는 사람이 많다”고 전했다. 그는 “믿음과 소망과 사랑 중에 제일이 사랑(고린도전서 13장 13절)이고, 교회는 사랑을 실천하는 곳인데 종교인들이 국민의 의무를 다하지 않으면 일반 국민들이 교회의 실천을 모두 위선으로 받아들이지 않겠느냐”고 반문했다. 세종 장형우 기자 zangzak@seoul.co.kr
  • [단독] [커버스토리] 종교인 과세 ‘양심’만 믿습니다

    [단독] [커버스토리] 종교인 과세 ‘양심’만 믿습니다

    정부 “기부금 내역 통해 파악 가능” 보수 개신교 “세무조사 안하면 수용”내년부터 시행될 예정인 종교인 과세 성패는 오직 종교인의 ‘양심’에 달렸다. 정부가 종교인이 소득을 정확히 신고하고, 제대로 세금을 냈는지 확인할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일단 과세가 시작되고 관련 자료가 쌓이기 시작하면 종교단체 재정운영의 투명성을 크게 높이는 계기가 될 전망이다. 일부 보수 개신교 측에서는 정부가 “교회에 대한 세무조사를 하지 않겠다”고 공언하면 종교인 과세를 받아들일 수 있다는 태도를 보인다. 22일 기획재정부와 국세청 등에 따르면 내년부터 시행될 종교인 과세에 따른 성실 납세 내역을 확인할 수 있는 검증 자료나 소득 통계는 사실상 전무한 것으로 확인됐다. 국세청은 근로자의 성실 납세 여부를 검증하기 위해 원천징수 기록이나 연금 납부 기록, 신용카드 등 소비 내역을 확인한다. 그러나 기존에 세금을 내지 않고, 세제 혜택을 받지도 않았던 종교인들은 이런 기록이 전혀 없다. 기재부 세제실 관계자는 “국세청이 검증을 위해 종교단체의 운영이나 수입 내역을 파악하려 하면 당장 세무사찰이라며 거세게 반발할 것”이라면서 “결국 종교인들의 양심에 맡길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털어놓았다. 그나마 정부가 활용할 수 있는 통계라고는 고용노동부 산하 한국고용정보원이 조사한 ‘한국직업정보’ 정도다. 이것도 2015년 통계다. 당시 목사 수입은 연평균 2855만원, 승려는 2051만원, 신부는 1702만원으로 조사됐다. 직업당 평균 30명의 재직자를 조사한 것이라 정확성은 떨어진다. 하지만 일단 과세가 시작되면 종교단체의 재정운영 내역 파악이 어렵지 않을 것이라는 게 정부의 판단이다. 근로자나 자영업자, 법인들이 해마다 연말정산이나 종합소득세, 법인세 등을 신고하면서 종교단체 재정운영의 핵심인 기부금 내역도 함께 신고하기 때문이다. 과세가 이뤄지더라도 세금 부담은 크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똑같이 연소득 2400만원이라고 할 경우 직장인은 63만 9000원의 세금(근로소득세)을 내지만 종교인은 30만원(기타소득세)으로 절반도 채 안 된다. 종교인 과세를 반대하는 일부 보수 개신교 진영은 한승희 국세청장 등이 국정감사처럼 공개된 자리에서 “교회에 대한 세무사찰을 하지 않겠다”고 선언하면 과세를 받아들이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앞서 김동연 경제부총리가 같은 취지의 말을 했지만 실제 세금을 거둬들이고 세무조사를 진행하는 세정당국 책임자가 ‘확약’을 해 달라는 요구다. 세종 장형우 기자 zangzak@seoul.co.kr
  • 녹내장 치료 실마리 찾았다

    녹내장 치료 실마리 찾았다

    녹내장은 안압이 상승해 시신경이 눌리면서 혈액 공급에 문제가 생겨 시력이 약해지고 심하면 실명까지 이르는 질환이다. 전 세계 40세 이상 성인 인구의 3.5%가 녹내장을 앓고 있고 국내서도 환자가 증가하는 추세이지만 아직까지 정확한 발병 원인이 밝혀지지 않아 근본적인 치료가 어려운 상태다.기초과학연구원(IBS) 혈관연구단 고규영(카이스트 의과학대학원 특훈교수) 단장과 김재령 연구원은 19일 녹내장이 발생하고 진행되는 근본적 원인을 밝혀내고 새로운 치료 방법을 제시했다. 연구팀은 눈 속에 차 있는 체액인 방수의 흐름을 조절하는 쉴렘관에 문제가 생겨 방수가 배출되지 못할 경우 안구의 내부 압력이 커지고 녹내장이 발생한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또 혈관 형성과 안정화에 필수적인 ANG단백질과 TIE2 수용체가 쉴렘관 주변과 내부에 많이 분포돼 있다는 것을 확인하고 ANG-TIE2 신호전달체계가 쉴렘관의 기능을 정상적으로 유지하고 방수 유출을 원활하게 한다는 것을 알아냈다. 실제로 녹내장을 유발시킨 생쥐에게 TIE2 활성 항체를 주사한 결과 안압이 떨어져 녹내장이 완화됐다. 쉴렘관이 망가져 안압이 계속 상승하는 생쥐에게도 안구에 항체를 주사하면 쉴렘관이 회복되면서 안압이 떨어진다는 것을 실험적으로 증명했다. 연구 결과는 미국 임상연구학회에서 발간하는 의학분야 국제학술지 ‘임상연구학회지’ 19일자에 발표되고 10월호 표지 및 커버스토리로 실릴 예정이다. 유용하 기자 edmondy@seoul.co.kr
  • [커버스토리] 태안 찾은 문재인 대통령 기념사 “초고속 해상재난안전통신망 구축”

    [커버스토리] 태안 찾은 문재인 대통령 기념사 “초고속 해상재난안전통신망 구축”

    문재인 대통령은 15일 사상 최악의 해양 유류 오염 사고가 발생한 충남 태안을 찾아 “연안으로부터 배타적경제수역(EEZ)까지 전 해역의 통합관리를 실시하겠다”고 밝혔다.문 대통령은 이날 서해안 유류피해극복 10주년 행사 기념사를 통해 “지자체의 능력을 넘는 해양재난과 재해에 대해서는 지자체와 국가기관 간 협업 체계를 갖춰 신속하고 체계적으로 대응하겠다”며 이렇게 말했다. 문 대통령은 또 “재난에 미리 대비할 수 있도록 예보, 경보 시스템을 갖추겠다”면서 “세계 최초로 초고속 해상재난안전통신망을 구축해 해양안전을 확보하겠다”고 약속했다. 충남 지역 미세먼지의 ‘주범’인 노후 석탄발전소 폐쇄 문제도 언급했다. 문 대통령은 “지난 6월 한 달간 보령화력발전소 1·2호기와 서천 1·2호기 등 충남의 4기를 포함한 전국 8기의 노후 석탄발전소 가동 중단을 지시한 결과 그 기간 충남 지역 미세먼지 농도가 지난 2년 평균치보다 15.4% 낮아졌다”며 “앞으로 노후 석탄발전소 가동 중단을 매년 봄철 정기적으로 시행하면서 폐쇄 시기를 최대한 앞당기겠다”고 밝혔다. 아울러 “사업장 미세먼지 총량관리제를 도입해 충남과 대한민국의 공기를 깨끗하게 만들어 가겠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이어 2015년부터 계속된 충남 지역의 가뭄 문제를 언급하며 “가뭄은 해당 지자체의 자구책을 넘어 범정부 차원의 체계적, 선제적, 종합적인 대책 마련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문 대통령은 또 2007년 기름 유출 사고 당시 노무현 전 대통령과 함께 태안을 찾았던 기억을 떠올리며 “1997년 외환위기, 2007년 서해 기름 유출 사고, 2016년 국정농단과 헌법 유린 사태를 극복한 힘은 모두 국민이었다”고 말했다. 이현정 기자 hjlee@seoul.co.kr
  • [커버스토리] 검은 절망 닦아낸 123만 영웅들, 희망의 성지로 돌아오다

    [커버스토리] 검은 절망 닦아낸 123만 영웅들, 희망의 성지로 돌아오다

    “생각나, 생각나. 봉사활동 갔다 와서 기름 냄새 때문에 사흘 동안이나 밥을 못 먹었다니까.” 10년 전 검은 기름으로 뒤덮인 지옥과 같았던 서해 바다를 살려낸 영웅들이 15일 태안에 다시 모였다. 충남 태안군 연안에서 일어난 유류피해 사고 극복 10주년 기념행사에는 전국에서 기름을 걷어내고자 그야말로 구름처럼 몰려들었던 123만명의 자원봉사자들 가운데 3000여명이 참석했다. 123만명의 이름 없는 영웅 가운데는 이날 VIP로 참여한 문재인 대통령도 있었다. 보기만 해도 마음이 시원해지는 푸른 파도가 넘실대는 태안 만리포해수욕장 앞 행사장에 모인 10년 전의 영웅들은 그날의 기억을 웃음과 함께 떠올렸다.●불임 경고받던 아가씨, 4살 아들 둔 엄마로 참석 대한민국 국민이 만든 서해의 기적을 보여 준 태안은 ‘자원봉사 희망의 성지’로 선포됐다. 자원봉사의 어마어마한 저력으로 새로 태어난 태안 바닷가에는 서해안 유류피해 극복 기념관도 들어섰다. 푸른 바다를 늠름하게 헤쳐 나가는 하얀 돛단배를 연상시키는 형태의 기념관은 10년 전 나의 얼굴이 혹시 사진 속에 있을까 찾아보는 자원봉사자들로 북적였다. ‘서해의 기적’을 낳은 자원봉사자들의 힘은 내년 평창동계올림픽으로 이어질 예정이다. “10년 전에도 오늘처럼 서울시청 앞에서 버스를 타고 태안 신두리로 향했습니다, 삽으로 기름을 퍼서 포대에 담았는데 추운 겨울 바다에서 하는 삽질이 여간 힘들지 않았어요. 기름 냄새가 정말 지독했는데 나중에 불임으로도 이어질 수 있다는 이야기에 손수건과 마스크를 이중으로 쓰고 작업했어요.”10년 전 미혼이었던 박인영(39)씨는 이제 네 살 난 아들을 키우는 엄마가 됐다. 태안에서 손으로 기름을 푸고 닦아냈던 자원봉사자들에게는 함께 살렸기에 희망이 된 바다를 만나는 유류피해 극복 10주년 기념식 초청 문자메시지 등이 발송됐다. 2007년과 달리 즐겁고 설레는 마음으로 버스에 올랐다는 박씨는 “아무런 문제 없이 건강하게 아이를 낳아 기르고 있다”며 활짝 웃어 보였다. 2007년 12월 7일 태안군 앞바다에서는 삼성중공업 소속 크레인선과 유조선 허베이 스피리트호가 충돌해 1만 2547㎘(1만 900t)의 원유가 바다로 쏟아졌다. 서해안 일대가 전남 끝자락 진도까지 온통 시커먼 기름으로 뒤덮였고 말 그대로 검은 파도가 쳤다. 허베이 스피리트호가 쏟아낸 기름의 양은 1995년 여수 시프린스호 사고로 유출된 원유 5035t의 2배에 이르는 것으로 대한민국 최악의 기름 유출 사고였다.검은 바다와 절망한 어민들의 모습이 뉴스를 뒤덮자 자원봉사자들이 너도나도 서해로 몰렸다. ‘자원봉사 희망의 성지’ 선포자로 참여한 이영숙(58)씨도 그중 한 사람이었다. 기름제거 작업에 자녀와 함께 가족봉사단으로 참여한 후에도 봉사활동을 이어 가 현재는 ‘서울 꽃동네 사랑의 집’에서 사무국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이씨는 “기름으로 뒤덮인 바다를 보고 학부모 봉사단으로 자녀와 함께 4번 정도 기름제거 작업에 참여했다”며 “그때 자원봉사의 힘을 체감하고 아이도 저도 지금까지 10년째 봉사활동을 계속하고 있다”고 말했다. 외국인들도 죽어 가는 바다를 살리는 데 빠지지 않았다. 파키스탄에서 귀화해 사고 당시 시흥이주노동자 지원센터를 통해 봉사활동에 참여한 모함마드 수바칸(48)도 희망의 성지 선포식 참여자다. 봉사에 참여했던 외국인 노동자 가운데 한 명은 “태안에 오기 전까진 고향에 있는 가족을 생각하며 일만 하느라 한국 사람과 어울릴 기회가 없었다”며 “처음 봉사활동을 하러 갔을 때 그렇게 많은 사람이 모인 건 처음 봤는데 내가 그 속에 있는 게 뿌듯했다”는 소감을 밝혔다. 이어 “봉사활동을 하면서 함께 기름 닦고 밥 먹는 것이 마치 가족과 같이하는 것처럼 좋아서 한국인의 정을 느끼고 오히려 위로받았다”고 덧붙였다. 고령에도 사고 당시는 물론 현재까지 열성적으로 봉사활동을 계속해 나간 박노권(80)씨, 사고 당시 대학생 봉사단원으로 참여한 것이 계기가 돼 현재는 전북자원봉사센터에서 근무하는 유정훈(35)씨도 태안을 자원봉사 희망의 성지로 선포하는 기념식에 함께했다. ●최대 180만명 추산… 10일 만에 원유 30% 거둬 사실 태안에서 봉사활동에 참여한 정확한 자원봉사자의 숫자는 모른다. 130만명에서 180만명까지로 추산할 뿐이다. 아이의 고사리 같은 손부터 할아버지의 힘줄이 불거진 손까지 모두 기름을 닦는 걸레를 들자 시프린스호 기름유출 사고 때 5개월 동안 회수했던 폐유를 태안에서는 단 일주일 만에 거뒀다. 사고발생 10일이 지나자 유출된 원유의 30%를 거둬들일 수 있었다. 해양환경 보전을 위해 설립된 공기업 해양환경관리공단은 2007년부터 오염된 자갈과 모래를 자동으로 씻는 자갈 세척기를 개발했다. 한 시간에 평균 4.5t의 자갈을 씻어 사람 500명이 할 일을 해내는 자갈 세척기는 2016년 부산 영도 해안에서 발생한 오션탱고호 기름 유출 사고에서 맹활약했다. 2014년 여수 우이산호 오염사고에서도 높은 방제 효과를 선보였다. 자갈 세척기는 컨베이어 벨트에 자갈을 놓으면 80도의 뜨거운 물과 마찰로 기름을 닦아낸다. 이날 해양환경관리공단은 10년 전 태안에서 거둔 시커먼 자갈을 전시해 눈길을 끌었다. 기름 범벅 자갈을 직접 닦아 보는 체험 행사도 마련돼 자원봉사자들은 물론 기념식 참가자들의 관심을 모았다. ●10주년 기념 유류극복 피해 기념관도 설립 서해안 유류피해 극복 10주년 기념식 ‘함께 살린 바다, 희망으로 돌아오다’는 정부와 충남도가 기적을 일군 자원봉사자들에게 감사를 전하고 다시 살아난 서해를 알리고자 마련됐다. 유류피해 극복 기념관과 함께 자원봉사 사진 공모 거리전, 자원봉사 아카이브 역사관, 자원봉사 동참선언 ‘우리함께 캠페인’, 체험프로그램 등 많은 시민이 즐길 수 있는 다양한 참여형 행사가 열렸다. ‘10주년 기념식’에는 2007년 기름 제거를 위한 자원봉사 활동에 참여한 자원봉사자와 지역 주민 등 3000여명이 참석해 자원봉사를 통한 ‘공존과 통합’의 정신을 되새겼다. 만리포해수욕장 앞 희망광장에 마련된 자원봉사 아카이브 역사관에서는 10년 전 전국에서 모인 수많은 자원봉사자의 이야기를 생생하게 살려냈다. 20대 대학생, 70대 노인, 초등학생, 외국인 노동자 등 ‘곱셈의 희망을 만들어낸 작은 영웅들’인 자원봉사자 7명의 캐릭터를 담은 등신대를 설치해 봉사자들의 증언을 입체적으로 전했다. 서울시자원봉사센터의 김의욱 사무국장은 “10년 전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을 정도로 자원봉사자들이 태안에 모였던 것은 처음엔 안타까운 심정으로 시작했지만 나중에는 거대한 역사의 현장에 동참하겠다는 마음이 모였기 때문일 것”이라며 “봉사자들의 기록이 휴대전화 번호밖에 남아 있지 않아 많은 이들을 초청하지 못했다”고 안타까워했다. 당시 자원봉사센터는 방제복, 장갑, 마스크 등 방제작업 장비와 버스 수송 등은 체계적으로 제공했지만, 자원봉사자들의 활동시간 등은 기록으로 남기지 못했다. 이는 결국 국제유류오염보상기금(IOPC)으로부터 받아야 할 제대로 된 보상의 근거를 마련하지 못한 것으로 아직 짧은 우리 자원봉사 역사의 뼈아픈 실수다. 올해는 한국자원봉사협의회, 한국자원봉사센터협회, 한국중앙자원봉사센터가 주관하고 행정안전부가 후원하는 한국자원봉사의 해다. ‘지속가능한 미래, 행복한 공동체’라는 주제로 자원봉사 문화 확산을 위해 내년까지 진행된다. 다음달에는 자원봉사 경험을 나눠 대한민국을 밝히는 ‘이그나이트 브이-코리아’가, 12월에는 전국자원봉사자대회가 열린다. 이날 10주년 기념식에 참여한 윤종인 행안부 지방자치분권실장은 “자원봉사로 하나 된 시민들의 열정과 에너지를 2018 평창동계올림픽대회로 이어 가도록 지원하겠다”며 “자원봉사는 정부의 손길이 닿기 어려운 대한민국 구석구석까지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드는 기적의 힘”이라고 강조했다. 태안 윤창수 기자 geo@seoul.co.kr
  • [커버스토리] 공무원과 엄마 사이… 아슬아슬 외줄 타기

    [커버스토리] 공무원과 엄마 사이… 아슬아슬 외줄 타기

    공무원 워킹맘은 민간 워킹맘에겐 부러움의 대상이다. 육아휴직을 최대 3년까지 쓸 수 있고 직장어린이집을 이용할 수 있어서다. 그러나 엄마 공무원들이 호소하는 고충을 들어 보면 공직사회 역시 ‘육아 천국’과는 거리가 멀다. 앞서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달 부처 업무보고를 받기 위해 정부세종청사를 찾을 때마다 공무원 워킹맘을 격려해 화제가 됐다. 지난 1월 휴일에 출근했다가 과로로 숨진 세 아이 워킹맘 김모 사무관이 일하던 보건복지부 사무실을 찾아 애도했고(아래 사진), 며칠 뒤에는 공정거래위원회 직원식당에서 육아휴직에서 복귀했거나 다자녀를 둔 직원 20여명을 불러 함께 점심을 먹었다. 공무원 워킹맘들은 다자녀 공무원의 보직 우선 선택권, 정시 퇴근 보장, 육아 안식제 도입, 청사 어린이집 확충 등 실제 경험에 바탕을 둔 아이디어를 쏟아냈다. 그 이유를 들어 봤다.●30대 중반 기획재정부 여성 사무관 “엄마, 오늘도 집에 못 오는 거야? 새벽에 올 거야? 어제는 언제 왔다 갔어?” 휴대전화 영상통화가 연결되자 아이가 속사포처럼 말을 쏟아낸다. 한마디 한마디가 ‘비수’다. 가슴을 문지르며 말문을 연다. “응, 엄마 새벽 3시에 들어갔다가 재준이(가명) 자는 거 보고 나왔지. 오늘은 못 갈 거 같아. 할머니랑 먼저 자고 있어, 알았지?” 오늘은 8월 24일, 벌써 2주째 7살 아들을 못 봤다. 일주일 뒤 국회에 내년도 예산안을 제출할 때까지는 계속 이런 신세일 것이다. 사무실이나 국회 복도에서 매일 밤 9시 영상통화를 하는 것 외에 아이에게 해줄 게 없다. 아이도 안다. 매년 되풀이되는 일이니깐. 나는 엄마 공무원이다. 기획재정부에서도 업무 강도가 세기로 둘째가라면 서러운 예산실에서 일한다. 예산안을 짜는 6~8월은 물론 예산안의 국회 통과를 위해 뛰어야 하는 10~12월은 지옥처럼 바쁘다. 집이 세종이라 국회가 열리면 짐 가방을 꾸려 서울 여의도 호텔에서 장기 투숙한다. 아이는 친정부모님께서 맡아주신다. 내일이면 일흔이신 두 분이 50년 넘게 산 서울 집을 떠나 나 때문에 세종에 내려오셨다. 딸이 죄인이다. 요새 아이 때문에 걱정이 많다. 엄마가 옆에 없어서인지 정서적으로 불안해 보인다. 어쩌다 쉬는 토요일 오전이면 내 옆에 붙어서 좀체 떨어질 생각을 안 한다. 공원에 나가 같이 자전거도 타고 놀고 싶은데 몸은 피곤하고 토요일 오후부터는 또 사무실에 나가 일을 봐야 한다. ‘여유로운 부서에 가 볼까. 아니면 좀 덜 바쁜 부처로 옮겨 볼까’ 생각을 안 한 것도 아니다. 그런데 고생한 게 아까워서 안 되겠다. 몇 년만 더 버티면 승진하고 인정도 받을 텐데 그동안의 희생이 물거품이 될까 두렵다. 화가 나는 건 왜 이런 고민을 엄마들만 하느냐는 거다. 나처럼 애가 있는 동기 남자 사무관들은 이런 고민 안 한다. 일과 육아 사이의 번민은 늘 일하는 엄마들의 몫이다. ●30대 중반 외교부 여성 서기관 9월 3일 일요일, 모처럼 여유로운 오후다. 집에서 남편, 7살 아들과 함께 뭘 먹을지 행복한 고민을 하고 있었다. 북한이 6차 핵실험을 했다는 소식에 잠깐의 평화는 무참히 깨졌다. 칭얼대는 아이를 남편에게 맡겨 두고 부랴부랴 사무실에 출근했다. 내가 하는 일이 늘 그렇다. 외교부는 업무 특성상 엄마의 특수성을 아무리 배려한다 해도 한계가 있다. 본부에 있을 때에는 그나마 낫지만 결국 국외 근무를 피할 수 없다. 외교관 남편을 따라나가는 아내는 제법 있지만 외교관 아내를 따라 외국에 가서 애를 키우겠다는 남편은 찾기 어렵다. 그래서 대부분의 여자 선후배, 동기들은 친정엄마나 시어머니와 함께 해외 공관에 나간다. 나도 내년에 미국 공관에 나갈 때 시어머니를 모시고 갈 생각이다. 남편은 한국에 떨어져 있고 만리타국에 시어머니와 함께 살며 애를 키우고 일하는 것이다. 그게 아니면 현지에서 애를 봐 줄 사람을 찾아야 하는데 야근 상황이 생기거나 하면 대처가 곤란하니 엄두가 안 난다. ●39세 한 사회부처 여성 사무관 나 자신을 포기한 삶이 익숙해졌다. 한때 영화광이었는데, 영화관에 가본 게 언제인지 기억도 안 난다. 11살 아들과 7살 딸을 키우는 나는 12년째 ‘독박육아’ 중이다. 후배들은 친정이나 시댁 도움 없이 혼자 아이들을 키우며 일하는 나를 대단하다고 치켜세운다. 하지만 겨우겨우 하루를 버텨 가는 처지라 과연 잘하고 있는지 의문이 들 때가 많다. 다람쥐 쳇바퀴 도는 것 같은 일상을 소개하자면 이렇다. 새벽 6시 전에 일어나서 아이들 밥상을 차린다. 초등학생은 학교에서 아침을 안 준다. 집에서 아침을 먹여서 보내야 한다. 아이 둘이 어린이집에 다닐 때는 정 바쁘면 아침을 건너뛸 수 있었다. 어린이집에서 죽 등 간단한 아침을 먹여 주기 때문이다. 출근해서 일하고 퇴근하면 아이를 찾아 데려다 놓고 다시 부엌에 들어간다. 저녁을 차리면서 세탁기를 돌리고 청소하고 아이들 숙제를 봐주면 어느덧 자정이다. 이렇게 산 지 한참 됐다. 물론 지금보다 아이들이 더 어릴 땐 퇴근해서 집에 가면 이유식을 만들어 얼려 놔야 하고 젖병 소독하고 할 일이 더 많았다. 5시간밖에 못 자니 늘 잠이 부족하다. 7시간만 잘 수 있다면 소원이 없을 것 같다.●40대 초반 여성 검사 “이모님, 오늘 꼭 끝내야 하는 사건이 있어서요. 조금만 더 있어 주시면 안 될까요? 11시까지는 꼭 갈게요.” 피의자들 앞에선 당당하게 큰소리치던 나도 아이를 봐주는 육아도우미 앞에서는 한없이 작아진다. 여성 검사에게도 육아는 피해 갈 수 없는 문제다. 수사 업무의 특성상 야근이 잦은 탓에 엄마 검사는 육아도우미 사이에서 ‘기피 대상’이라는 소리도 듣는다. 보모를 구하지 못해 친정이나 시댁 부모님 손을 빌리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남성 중심의 조직문화 때문에 육아휴직을 ‘쉬었다 오는 것’으로 인식하는 것도 불편하다. 직접 아이를 키워 보면 육아가 일하기만큼 어렵다는 걸 금방 알게 될 거다. 경력 단절에 대한 고민도 적지 않다. 보통 검사 2~3년차에 특수부 등 잘나가는 부서에 갈 기회가 생기는데 하필 그때가 결혼과 출산을 많이 하는 시기다. 그 시기에 출산휴가를 다녀오면 원하는 부서에 가기 힘들어진다.●35세 경제부처 여성 사무관 3살인 첫째가 밤새 열에 시달렸다. 체온이 40도를 넘기자 겁이 덜컥 났다. 중요한 정책 발표를 앞두고 있어 차마 휴가를 낼 수도 없다. 지난번 아이가 갑자기 아파서 출근할 수 없다고 전화했다가 과장님께 혼쭐이 났다. 그때 느낀 설움과 당황함이 떠올라 고개를 세차게 흔들었다. 하는 수 없이 10분 거리에 사는 친정엄마에게 ‘SOS’를 쳤다. 평소에도 어린이집 등·하원을 도맡아 주시는데 오늘은 더 죄송해서 엄마 눈을 마주치지 못하고 서둘러 집을 나왔다. 오전에 집에 전화해 보니 첫째가 수족구 판정을 받았다. 아플 아이보다는 과장님 얼굴이 먼저 스쳤다. 수족구는 전염병이라 일주일 동안 어린이집에 보내지 못할 것이다. 한 살 둘째와도 격리해야 하니 나와 남편 둘 중 하나는 휴가를 내야 한다. 변호사인 남편은 재판 때문에 안 된다고 할 게 뻔하다. 결국 내가 철판을 깔아야 한다. 예전보다 대우가 좀 나아져서 엄마라고 하면 정시 퇴근을 눈감아 주고, 회식에서 빠져도 크게 뭐라고 하진 않는다. 그래도 여전히 육아 문제로 돌발 휴가를 쓰는 건 어렵다. 머리가 지끈거린다. 세종 오달란 기자 dallan@seoul.co.kr 서울 강병철 기자 bckang@seoul.co.kr 서울 김동현 기자 moses@seoul.co.kr
  • [커버스토리] 그 길에서 나를 찾다

    [커버스토리] 그 길에서 나를 찾다

    가을이다. 걷기 좋은 계절, 놀멍 쉬멍 걸으멍 고치(놀면서 쉬면서 걸으면서 같이) 가는 제주 올레길이 손짓한다. 올해 10살이 된 제주 올레길은 도보여행 바람을 일으키며 전국 곳곳에 수많은 올레길을 탄생시켰다. 도시의 가파른 속도에 지친 사람들은 간세다리(게으름뱅이)가 돼 꼬닥꼬닥(천천히) 올레길을 걸으며 일상의 지친 마음을 달랬다. 제주올레 10년이 바꿔 놓은 세상을 들여다봤다. 사단법인 제주올레는 2007년 9월부터 지난 10년 동안 걸어서 여행하는 길 26개 코스를 제주 땅 위에 냈다. 길이만 해도 425㎞에 이른다. 그동안 800여 만명의 올레꾼들이 찾았다. 제주올레가 일으킨 도보여행 열풍은 거셌다. 도보여행 통합사이트(www.koreatrails.or.kr)에 등록된 올레길만 1539곳에 이른다.올레길이 생기자 사람들은 하나 둘 차를 버리기 시작했다. 배낭 하나 달랑 메고 두 발로 걷는 도보여행이 새로운 여행 트렌드로 자리잡았다. 제주 올레길은 이름난 관광지가 아닌 제주의 속살을 그대로 보여준다. 오름과 바다, 아름다운 원시 자연과 내세울 것 없는 소박한 마을들, 물질하는 해녀들, 감귤 따는 농부들, 제주의 일상을 가만히 보여준다. 바쁠 것 없는 슬로 제주 풍경에 올레꾼들은 빠져들었다. 차이나머니의 화려한 리조트가 아닌 안티 콘크리트 제주의 진짜 가치를 제주올레가 재발견했다. 혼자여서 더 좋은 올레길, 아무런 간섭과 눈치 볼 것 없이 나 홀로 터벅터벅 걷는 게 올레길 여행의 매력이다. 오직 나만을 위한 여행, 제주 올레길에는 혼행족(혼자 여행하는 사람)을 쉽게 만날 수 있다. 나 홀로 도보여행은 자신의 내면과 대화하는 여행. 올레길이 생긴 후 혼밥, 혼술에 이어 혼행이 크게 늘었다. 혼행 올레꾼은 호텔과 펜션이 전부였던 제주에 수많은 게스트하우스를 탄생시켰다. 이 바람은 전국으로 퍼졌고 도보여행, 혼행족, 게스트하우스라는 새로운 여행문화를 창출했다.●1600여명, 26개 올레길 전 코스 여행 반나절이라도 시간이 있다면 떠날 수 있는 게 올레길 여행이다. 동행자를 구할 것도 호텔과 렌터카를 예약할 필요가 없다. 올레길 주변 값싼 게스트하우스에 하룻밤을 의지하면 된다. 도보여행은 거창한 계획도 많은 돈도 필요 없는 저비용 여행. 2013년 제주 땅에 26개 올레길이 모두 들어선 이후 1606명이 올레길 전 코스를 여행했다. 언제든지 부담 없이 혼자서라도 떠날 수 있는 도보여행, 제주 올레는 일상과 여행의 경계를 허물었다. 제주 올레길에선 다양한 사람들을 만난다. 입대를 앞둔 아들과 아버지, 암 선고를 받은 가장을 둔 가족들, 취업에 실패한 청년, 첫 사랑에 실패한 청춘 등. 일진을 아들로 둔 아버지는 올레길을 걸으며 난생처음 자식과 속 깊은 대화를 나눴다. 제주 올레가 10주년을 맞아 공모한 올레이야기에는 다양한 사연이 넘쳐난다. 이들은 한결같이 ‘올레길이 내게, 우리에게 말했다. 수고했다. 모든 게 잘될 거야’라고. 올레길에서 상처 난 마음을 치유했고 서로 소통했다. 문재인 대통령도 2012년 첫 도전에 실패한 뒤 제주 올레길을 걸으며 마음을 달랬다. 2015년 민주당 분당 사태가 터지자 다시 제주 올레길을 찾았다. 혼행족들은 더러 눈이 맞아 부부의 인연을 맺기도 했다. 마법 같은 올레길은 수많은 사람의 상처를 보듬었고 다시 용기를 일상으로 돌아갔다. ●2010년부터 작년까지 5만 6000명 제주로 이주 제주 이주바람이 불기 시작한 것은 2010년부터다. 입소문을 타고 제주 올레길 여행이 막 인기를 끌기 시작한 시기와 궤를 같이한다. 올레길 걸으면서 빨리빨리 속도전을 벌여야 하는 도시의 일상과 사뭇 다른 제주의 일상에 반했다. 나도 이런 곳에 살고 싶다며 다운시프트 이주족이 늘기 시작했다. 다운시프트는 자동차 기어를 고속에서 저속으로 낮춘다는 뜻이다. 돈벌이와 성공에 쫓기는 도시 일상을 거부하고, 넉넉하진 않지만 자연에서 마음의 여유를 찾는 삶을 살아 보겠다는 이주민들이 몰려들었다. 2010년부터 지난해까지 5만 6000명이 제주 이민을 감행했다. 제주의 농촌 마을도 젊은이들은 모두 떠나고 노인뿐이였다. 하지만 올레길이 농촌 마을을 지나면서 올레꾼들이 생기를 불어 넣었다. 손님이 없어 닫았던 동네 상점은 다시 열었고 할머니가 혼자 살던 시골집은 할망민박으로 변신, 골목 경제가 다시 깨어났다. 손님 걱정하던 재래시장인 서귀포 매일 올레시장은 2007년 10월 제주올레 6코스에 편입된 뒤 해마다 매출이 30%씩 늘어났고 전국에서 가장 유명한 재래시장이 됐다. 신한은행 빅데이터 센터와 한국은행 제주본부가 분석한 결과 주요 올레길이 지나가는 구좌읍, 성산읍, 서귀동, 안덕면, 애월읍 등지에서 관광객 카드 이용이 해마다 늘어나 ‘올레노믹스’라는 신조어를 만들어 냈다. ●‘올레 6코스’ 서귀포 매일 올레시장, 매출 매년 30% 증가 돌하르방이 전부였던 제주에 올레는 간세(게으름)라는 새로운 디자인을 입혔다. 제주 조랑말을 형상화해 한 땀 한 땀 손으로 만든 간세인형은 최고의 제주 기념품이자 상징 디자인이 됐다. 제주 올레길 인기가 치솟자 일본은 2012년 제주올레에 도움을 요청했고 규수지역에 올레길을 수출했다. 규수 올레는 현재 19개 코스 220.1㎞가 개장됐다. 규슈 올레는 제주올레의 표지인 간세와 화살표, 리본을 그대로 사용한다. 규수 관광추진기구는 매년 제주올레에 자문비와 로열티 등을 낸다. 제주올레는 지난 6월 몽골에도 2개 코스의 몽골 올레길을 만들었다. 가을에 열리는 제주올레 걷기 축제는 울타리가 없는 축제이지만 유료 축제다. 해마다 3000여명이 기꺼이 2만원의 참가비를 내고 찾는다. 일본 등 외국인 참가자도 10%에 달한다. 참가비를 내지 않더라도 눈치 보지 않고 축제를 즐길 수 있다. 올레길을 번갈아 가며 열리는 올레축제는 트레킹과 수준 높은 전시·공연, 올레길에 사는 주민들이 정성껏 내놓은 토속 먹거리 등이 어우러져 힐링을 선사한다. 올레꾼들은 ‘내가 바로 축제의 주인공’이라며 즐긴다. 세금을 쏟아붓고도 사람들을 동원해야 하는 수많은 전시성 축제와는 다른 새로운 축제 모델을 만들었다. 올해 축제는 11월 3~4일 제주올레 3, 4코스에서 열린다. 제주 황경근 기자 kkhwang@seoul.co.kr
  • [커버스토리] “걷고 나니 보였다 이토록 아름다운 제주의 풍경이”

    [커버스토리] “걷고 나니 보였다 이토록 아름다운 제주의 풍경이”

    걷는 게 쉬는 것이다. 내 나이 쉰이 되던 해인 2006년 여름, 나는 23년에 걸친 언론인 생활에 종지부를 찍기로 했다. 사실 한국처럼 빠르게 돌아가는 사회, 무한경쟁 체제인 언론사 생활에서 스스로 지쳤음을 인정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무능하다는 말과 거의 동의어였기 때문이다. 사직서를 간직한 채 출근했다가 그냥 돌아오기를 몇 차례 거듭했던가. 그러나 그해 여름 나는 이 생활을 계속 버티어 나갈 기운이 없다는 걸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과로사와 돌연사를 피하기 위해서는 사표를 내는 수밖에 없었다.나는 어머니에게 사표를 냈다는 사실을 뒤늦게야 조심스레 털어놨다. 일제강점기와 제주 4·3, 6·25, 매일 시장통에서의 식료품 장사 등 이른바 산전수전 공중전을 다 겪어낸 어머니는 펜대나 굴리는 언론사 생활 겨우 20여년 만에 ‘항복 선언’한 딸의 근성 없음을 나무랐다. 사표를 낸 딸내미가 800㎞도 넘는다는 외국의 길을 걸으러 떠난다고 하자 더더욱 이해하기 힘들어했다. 대체 왜? 좀 쉬고 싶어서요. 아니 지쳤다면서 일본에 가서 온천욕을 하든지 태국에 가서 마사지하든지, 지쳤다는 얘가 무슨 배낭을 지고 한 달 넘게 걷는다니? 내겐 걷는 게 쉬는 거라니까요! 우리 모녀는 서로 다른 행성에서 온 사람들 같았다. 3년간 마음으로만 꿈꿔온 길 800㎞를 걷는 동안, 내겐 기쁘고 즐겁고 자유로운 순간만 찾아온 건 아니었다. 막막한 순간도, 아찔한 순간도, 떠나온 걸 후회하는 순간도 찾아왔다. 더없이 외로워서 마음속으로 눈물을 흘리며 대평원 메세타 구간을 터덜터덜 걷기도 했다.그러나 왼쪽 다리와 오른쪽 다리를 교차하면서 걸음을 걷는 그 순간들이야말로 한시도 쉬지 않고 들볶여온 내 정신세계에 처음으로 온전하게 휴식을 준 순간들이었다. 나는 그 길 위에서 어린 시절 내가 걸었던 제주의 풍경이 얼마나 아름답고 특별했는지를 비로소 깨달았고, 그 길을 잇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정신을 쉬었기에 볼 수 있었던 새로운 신세계였다. 걷는 게 쉬는 것이다.
  • [커버스토리] ‘귀향’ ‘아이 … 스크린도 주먹 불끈

    [커버스토리] ‘귀향’ ‘아이 … 스크린도 주먹 불끈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를 다룬 영화 ‘귀향, 끝나지 않은 이야기’와 ‘아이 캔 스피크’가 나란히 가을 스크린에 걸린다.다큐멘터리 형식의 영화 ‘귀향, 끝나지 않은 이야기’는 지난해 2월 개봉해 관객 368만명을 끌어모은 영화 ‘귀향’의 후속편으로 오는 14일 개봉한다. 이 영화는 본편에 담지 못했던 위안부의 처절한 참상과 ‘나눔의 집’에서 제공한 위안부 할머니들의 증언 영상을 더했다. 어린 나이에 일본군 위안부로 끌려가 집으로 돌아오지 못한 피해 소녀들의 이야기를 담은 영화 ‘귀향’은 전 세계 10개국 61개 도시를 순회하며 상영회와 강연회를 열어 세계적으로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관심을 가지도록 이끌었다. 오는 21일 개봉하는 ‘아이 캔 스피크’는 위안부 피해자 시나리오 공모전 당선작이다. 상업영화의 틀 안에서 위안부 피해자의 현실과 아픔을 웃음과 감동이 담긴 ‘휴먼 스토리’로 풀어냈다. 지난 6일 시사회에서 나옥분 역을 맡은 배우 나문희는 “위안부 할머니들이 얼마나 지옥 속에서 살았을까 싶었다. 이 영화로 한몫을 기여하겠다는 마음으로 임했다”고 말했다. 위안부를 소재로 했던 영화로는 1995년 변영주 감독의 ‘낮은 목소리-아시아에서 여성으로 산다는 것’을 시작으로 2009년 다큐멘터리 영화 ‘나의 마음은 지지 않았다’ 등이 있다. 또 위안부 피해자의 법정 스토리를 다룬 김희애·김해숙 주연의 ‘허스토리’(감독 민규동)가 내년 개봉을 목표로 촬영을 준비하고 있고, ‘군함도’를 만든 외유내강은 위안부 피해 여성이 주인공인 영화 ‘환향’을 기획하고 있다. 김주연 기자 justina@seoul.co.kr
  • [커버스토리] “할머니 연세 보면 文정부가 마지막 기회… 끝까지 진실 알릴 것”

    [커버스토리] “할머니 연세 보면 文정부가 마지막 기회… 끝까지 진실 알릴 것”

    “할머니들 연세를 생각하면 이번 문재인 정부가 마지막 기회입니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안신권(56) 나눔의집 소장은 8일 “할머니들의 건강이 점점 악화돼 향후 5년 내에 할머니들이 모두 돌아가실 것 같아 걱정된다”며 착잡한 심경을 밝혔다. 안 소장은 2001년부터 17년째 나눔의집에서 할머니들 곁을 지켜오며 일본의 공식 사과와 법적 배상을 위해 뛰고 있다. 안 소장은 2004년에 별세한 김순덕 할머니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김 할머니는 안 소장이 나눔의집에 들어온 뒤 처음으로 세상을 하직한 위안부 피해 할머니다. 김 할머니는 나눔의집에 사는 할머니들을 이끄는 대장이었다고 한다. 안 소장은 “김 할머니는 해외에 나가서도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피해 사실을 증언했고, 그림도 참 잘 그렸다”고 회상했다. 그러면서 “2001년 일본 역사 교과서 논란이 일었을 때 김 할머니가 ‘일본은 소니처럼 전자제품을 잘 만드는데 왜 교과서는 잘 만들지 못하는지 이해가 안 된다. 내가 교과서를 만들어 주겠다’고 했던 게 지금도 생생하다”고 전했다. 안 소장은 할머니가 한 명씩 돌아가실 때마다 마음이 점점 더 무거워지고 책임감에 짓눌린다고 토로했다. 그는 “할머니들과 함께 싸우는데 할머니들은 돌아가시고 나만 남아 있다”면서 “할머니들이 원하시는 것이 이뤄지지 않으니까 압박감도 크고 미안한 마음도 든다”고 말했다. 안 소장은 문재인 정부에 대한 기대감과 함께 아쉬운 점도 내비쳤다. 특히 안 소장은 모두가 잘못됐다고 지적하는 한·일 위안부 합의를 외교부가 태스크포스(TF)팀을 꾸려서 검증하는 배경에 의문을 품고 있다. 안 소장은 “민주적인 절차는 중요하지만 할머니들에게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기 때문에 당장 합의 폐기부터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안 소장은 “최근 합리적인 절차만으로는 일본을 설득할 수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고 말했다. 일본 정부가 1965년 국교정상화 때 대일 청구권은 마무리됐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할머니들의 사과 요구에 입을 닫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안 소장은 ‘평화의 소녀상’이 마지막으로 역할을 해 줄 것을 기대하고 있다. 일본도 소녀상 문제에서만큼은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어서다. 안 소장은 “일본을 협상테이블로 끌어내기 위해서는 해외에 소녀상을 많이 건립해야 한다”면서 “해외에서는 위안부 문제를 역사 문제가 아닌 순수한 인권 문제로 바라보기 때문에 보편적인 지지를 이끌어 내기가 한층 수월하다”고 말했다. 이어 안 소장은 “시간은 흘러도 진실은 변하지 않는다”며 할머니들의 한을 풀어 주기 위해 끝까지 뛰겠다는 각오를 다졌다. 기민도 기자 key5088@seoul.co.kr
  • [커버스토리] 저승서도 주먹쥐고 외칠거다 사죄하라

    [커버스토리] 저승서도 주먹쥐고 외칠거다 사죄하라

    “내가 먼저 가려고 했어. 그런데 군자가 10만원이 든 흰 봉투를 주면서 자기가 먼저 가겠다는 거야. 결국 말대로 됐지.”8일 경기 광주시 나눔의집 인근 병원에 신장 치료차 입원한 이옥선(90) 할머니는 지난 7월 세상을 떠난 김군자 할머니를 떠올리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이 할머니는 “형제보다 더 가까이 지냈는데, 이제 얘기할 사람도 없다”면서 “하긴 얘기할 사람이 있다고 해도 이젠 말할 정신이 없다”고 말했다. 이 할머니는 하상숙(89) 할머니의 지난달 28일 별세 소식도 뒤늦게 듣고 굵은 눈물방울을 떨궜다. 이 할머니는 “정신이 없다”고 했지만 75년 전 위안부로 끌려간 그때 그 일만큼은 또렷하게 기억했다. “15살 때 집안 형편이 좋지 않아 학교에 가질 못했어. 그러다 결국 1942년에 중국 연변으로 끌려갔어. 일본군이 차를 끌고 다니면서 길에 있는 여성들을 다 태웠었지. 그때부터 3년간 위안부 생활을 했어. 그러고 나서 한국으로 돌아오려고 했는데 차마 가족을 다시 만날 자신이 없어서 중국에 눌러앉았어. 2000년 6월에 한국으로 돌아왔는데 가족들은 모두 죽고 아무도 없었어.” 이 할머니는 자못 담담하게 아픈 기억을 쏟아냈지만 이내 눈시울을 붉혔다. 할머니의 가슴에 남은 상처와 분노에는 아직도 굳은살이 생기지 않은 듯했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의 저항은 26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91년 8월 14일, 고 김학순 할머니는 일본 정부가 “일본군은 위안부에 관여하지 않았다”고 발표한 것에 분노해 마이크를 잡고 자신이 당한 피해를 증언했다. 김 할머니의 증언으로 의혹으로만 제기됐던 일본군 위안부 문제가 처음으로 공개됐다.지난달 29일 고 하상숙 할머니의 빈소에서 만난 이용수(89) 할머니는 25년 전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에 위안부 피해자라고 신고하던 순간을 생생하게 기억했다. 이 할머니는 “1992년 6월 25일에 내가 직접 위안부 피해자라고 신고했다”면서 “다음날 모임에 나갔더니 거기서 수십명의 동료(피해 할머니)들을 만났다”고 회상했다. 이 할머니는 75년 전 기억을 마치 최근에 겪었던 일처럼 끄집어냈다. 이 할머니는 16살이던 1944년 어느 날 한밤중에 ‘밥도 많이 먹게 해 주고 가족들도 잘살게 해 준다’는 말만 듣고 군복을 입은 일본인을 따라 나섰다. 잠들어 있었던 가족들에게 인사도 하지 못했다. 그날 밤 이 할머니와 함께 일본인을 따라 나선 ‘소녀’는 이 할머니의 친구 ‘분순이’를 포함해 모두 5명이었다. 2015년 12월 28일 박근혜 정부가 일본과 체결한 한·일 위안부 합의는 피해 할머니들에게 위로는커녕 상처만 남겼다. 특히 이 합의에 따라 일본 정부의 예산으로 지난해 설립된 여성가족부 산하 재단법인 화해·치유재단을 둘러싼 논란은 지금도 뜨겁다. 할머니들은 “돈으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라며 한·일 위안부 합의 폐기와 재단의 해체를 주장하고 있다. 할머니들이 바라는 것은 돈이 아니라 일본의 진정성 있는 사과와 명예회복, 그것뿐이었다. 이용수 할머니는 “1억원 같은 거 필요 없다. 명예회복이 필요하다”면서 “일본 국왕이 무릎 꿇고 빨리 사죄해야 한다. 일본 총리가 법적인 배상을 해야 한다”고 단호하게 말했다.할머니들이 그렇게 26년 동안 일관되게 일본 정부의 공식 사과를 요구해 왔지만 일본의 태도는 변함이 없다. 그렇게 세월이 흘러 할머니들도 하나둘씩 하늘의 별이 돼 가고 있다. 2015년 한·일 위안부 합의 이후에만 12명의 할머니가 세상을 떠났다. “일본은 할머니가 모두 돌아가시길 기다리고 있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이용수 할머니는 “일본은 우리가 살아 있는데도 저렇게 거짓말을 하는데 우리가 죽고 나면 무슨 소리를 할지 모르지 않느냐”면서 “저승에 가서라도 사죄하게 할 거다. 데모할 거다”고 호소했다. 현재 경기 광주시의 나눔의집에 9명, 서울 마포구 연남동 ‘평화의 우리집’에 2명의 할머니가 거주하고 있다. 나머지 생존자 24명은 가족과 함께 살거나 혼자 생활하고 있다. 여가부 관계자는 “신분 노출을 꺼려 하는 할머니 중에는 가족들에게 위안부 피해자라는 사실을 알리지 않고 지내는 할머니들이 많다”면서 “모두 85세가 넘는 고령분들이시고, 아직 당시의 상처를 가족에게 알리기 어려운 분들”이라고 설명했다. 이용수 할머니는 오는 20일 ‘평화의 소녀상’이 세워지는 미국 샌프란시스코로 떠난다. 이 할머니는 “소녀상을 한국에 빼곡하게 세우고, 미국에도 세우고, 마지막은 동경 벌판에 세워서 사죄를 받아낼 것”이라면서 “어떻게든 내가 해결해 놓고 가겠다”고 했다. 김주연 기자 justina@seoul.co.kr 기민도 기자 key5088@seoul.co.kr
  • [단독] [커버스토리] 사과는 아직 없다 시간이 정말 없다

    [단독] [커버스토리] 사과는 아직 없다 시간이 정말 없다

    생존 위안부 피해 할머니 35명뿐 평균 92세… “日 달라지지 않아” “기다림의 폭력 더 안겨줘선 안돼” “정말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이제 남으신 분은 35명뿐입니다. 평균연령도 벌써 92세나 됐습니다.”올 들어 5명의 일본군 위안부 피해 할머니가 ‘노랑나비’가 돼 고통 없는 세상으로 떠났다. 할머니들은 끝내 가슴속에 응어리진 분노를 풀지 못한 채 세상과 작별을 했다. 이로써 정부에 등록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239명 가운데 생존자는 35명으로 줄었다. ‘노랑나비’는 위안부 할머니들의 상징으로 정신적 고통으로부터 해방돼 자유롭게 날갯짓하기를 염원하는 의미를 담았다. 특히 일본 정부의 공식 사죄를 요구하며 1992년 1월 8일 주한 일본대사관 앞에서 시작된 ‘일본군 성노예제 문제 해결을 위한 정기 수요시위’(수요집회)가 오는 13일로 1300회를 맞는다. 25년이나 흘렀지만 피해 할머니들은 “(일본의 태도가) 달라진 건 하나도 없다”고 깊은 숨을 내쉬었다. 2015년 12월 28일 이뤄진 한·일 위안부 합의도 할머니들의 마음을 다독이지 못했다. 아까운 시간만 하염없이 흐르고 있는 것이다. 8일 일본군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이 거주하는 경기 광주시 퇴촌면 ‘나눔의집’은 가슴의 한을 풀지 못하고 생을 마감한 할머니들의 빈자리가 크게 느껴졌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10여명이 거주할 때 느껴졌던 온기도 적잖이 식은 듯했다. 할머니의 물품과 사진들로 가득 차 있었던 방들은 하나둘씩 빈방이 돼 갔다. 이제 나눔의집에는 9명의 할머니만 남았다. 이제 수요집회에 나가 마이크를 잡고 우렁찬 목소리로 증언할 수 있는 할머니도 거의 없는 상황에 이르렀다. 펜으로 글씨를 써서 의사 전달을 할 수 있는 할머니조차도 드물다고 한다. 하점연(95) 할머니는 식사를 마친 뒤 거실에서 텔레비전을 보고 있었다. TV에서 나오는 소리는 왁자지껄했지만 할머니의 표정은 썩 밝지 않았다. 얼굴에 팬 주름살에 근심이 가득 차 있는 듯했다. 박옥선(93) 할머니는 반갑게 인사를 건넸지만 초기 치매 증세가 있는 듯 “몰라. 난 잘 몰라”라는 말만 되풀이했다. 노환으로 나눔의집 인근 병원에 입원 중인 이옥선(90) 할머니는 “이제 나도 아파서 증언을 잘 못해. 기억도 잘 안 나고 말을 예전처럼 잘 못하겠어”라고 힘겹게 입을 열었다. 이어 1942년 일본군에 의해 중국으로 끌려간 얘기를 꺼내다 이내 말을 멈추더니 “말해 뭐해. 일본이 사과하길 기다리는 것은 필요 없는 기다림이야”라며 고개를 돌렸다. 지난 6일 1299회차 수요집회에 참여한 김복동(91) 할머니도 “우리가 살아서는 일본의 사과를 못 받을 것 같다”며 깊은 체념의 한숨을 내쉬었다. 윤미향(53)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대표는 “더이상 할머니들에게 기다림이라는 폭력을 안겨 줘서는 안 된다. 이제 남은 시간이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기민도 기자 key5088@seoul.co.kr 김주연 기자 justina@seoul.co.kr
  • [커버스토리] 육아수당 달랑 50만원… 가장인데 손가락 빨라는 건가요

    [커버스토리] 육아수당 달랑 50만원… 가장인데 손가락 빨라는 건가요

    상한액 150만원 묶은 채 첫 3개월 수당만 2배로… 적립금 떼고… 연금 기여금 떼고 ‘스칸디 대디’는 북유럽에 위치한 스웨덴에서 엄마 대신 육아를 전담하는 아빠를 가리킨다. 스웨덴의 수도 스톡홀롬에서는 평일 낮 테이크아웃 커피 한 잔을 들고 유모차를 끌고 돌아다니는 남성들의 모습이 낯설지 않다고 한다. 스웨덴 못지않게 남성 유급 휴가 기간이 긴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요원한 얘기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따르면 우리나라 남성에게 주어지는 유급 휴가 기간은 52.6주로 세계 주요국 가운데 최상위이지만 막상 사용률은 저조하다. 공직사회는 그나마 민간에 비해 남성이 육아휴직을 사용하는 분위기가 확산되고 있지만, 여전히 육아휴직을 사용하는 10명 중 남성의 비율은 2명 미만에 그치는 실정이다. 전문가들은 휴직하고 육아에 동참하는 남성의 비율을 확대하려면 육아휴직 수당의 소득대체율과 상한액을 높여야 한다고 공통적으로 입을 모았다. 아울러 장기적인 차원에서는 대체 인력의 활용이 활발해질 수 있도록 직무에 따라 임금을 지급하는 직무급제로의 전환이 요구된다는 의견도 제기됐다.# 공무원 42% “경제적 문제로 신청 못 해” 기존의 육아휴직 수당은 본봉의 40%, 상한액 100만원이다. 이 금액에서 15%를 매달 적립해 휴직에서 복귀한 후 7개월째 되는 시점에 일시금으로 지급받는다. 여기에 공무원연금 기여금을 다달이 납부하기 때문에 실수령액은 50만원이 채 되지 않는다. 국가직 공무원의 육아휴직 수당을 담당하는 인사혁신처 관계자는 “육아휴직 기간에 공무원연금 기여금을 의무적으로 원천징수하는 것은 아니다”라며 “다만, 복직 후 소급해서 납부하면 더 큰 부담이 되기 때문에 대부분 휴직과 관계없이 납부하는 쪽을 택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정부가 이달 1일부터 육아휴직 첫 3개월 동안의 수당을 2배 상향한 것은 휴직 기간의 소득 감소가 남성 육아휴직을 사용하는 데 걸림돌이 된다는 인식에서 비롯됐다. 실제로 인사혁신처가 올 5월 공무원을 대상으로 육아휴직을 충분히 사용하지 못하는 이유 등을 설문한 결과 응답자의 42.1%는 경제적인 요인을 꼽았다. 근무평가·승진 등 불이익 우려(22.5%), 업무를 대신할 인력부족(20.5%) 등이 뒤를 이었다. 양재진 연세대 행정학과 교수는 “남성이 벌어들이는 소득에 대한 의존도가 상당한 구조에서 육아휴직 기간 동안 소득 상실 부분을 보완해 주지 않으면 생활을 유지하는 것이 어려운 상황”이라면서 “지금처럼 본봉의 40%를 주더라도 상한액을 올리거나, 아예 없애야 중간 소득 이상을 벌어들이는 남성의 육아휴직이 활발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 대체인력 활용 어려운 연공급제도 문제 남성의 육아휴직 사용을 가로막는 요인 중 하나로 대체인력 활용이 어려운 연공급제가 지목되기도 했다. 양 교수는 “근속연수에 따라 임금을 지급하는 연공급제 특성상 육아휴직으로 발생한 업무 공백을 메울 대체 인력을 쓰는 것이 어렵다”고 지적했다. 직무 구분이 불분명한 데다 노동 가치에 따라 임금을 책정하는 시스템이 아니기 때문에 대체 근무자에 대한 임금 기준을 설정하기가 모호하다는 설명이다. 육아휴직 수당을 지속적으로 현실화하려면 아예 최저임금 수준과 연동시켜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노민선 중소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육아휴직 수당을 최저임금 인상에 연동시키는 것도 한 방법”이라며 “사업장 규모에 따라 남성 육아휴직 사용률 편차가 굉장히 큰 민간에 비해 공직사회의 남성 육아휴직 사용률이 전반적으로 높은 것은 대체인력에 대한 인건비가 주어지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행정안전부는 지난해 ‘행정기관의 조직과 정원에 관한 통칙’ 일부를 개정해 육아휴직으로 인한 결원이 발생하면 별도 정원을 100% 인정해 주고 있다. 쉽게 말해 육아휴직으로 공석이 생기면 신규로 정규직 공무원을 뽑아 대체할 수 있다는 얘기다. # “북유럽처럼 남성 육아휴직 의무화 필요” 남성의 출산휴가에 이어 육아휴직 사용도 의무화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도 있다. 인사처의 한 과장은 “출산휴가 의무화 후 직원들의 만족도가 굉장히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며 “공공이든 민간이든 여유가 있는 쪽부터 스웨덴 등 북유럽 국가처럼 남성 육아휴직을 의무 할당하는 시도가 이뤄지면 문화가 바뀌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본다”고 말했다. 북유럽 국가들 중 ‘아버지 할당제’를 처음 도입한 나라는 노르웨이다. 1993년 노르웨이에 이어 1995년 스웨덴, 1999년 덴마크, 2000년 이탈리아 등이 차례로 이 제도를 도입했다. 남성이 사용하지 않으면 사라지는 휴가로 급여도 전액을 보장한다. 노르웨이는 아버지 할당제 도입 후 3%대에 그쳤던 남성 육아휴직 비율이 97%대로 뛰는 효과를 봤다. # “지방직 사용률은 민간부문보다 낮아” 홍승아 한국여성정책연구원 가족평등사회연구실장은 “같은 공직 사회라도 차이가 크다”면서 지방직 남성 공무원의 육아휴직 사용률은 국가직은 물론 민간에 비해서도 낮다는 점을 지적했다. 홍 실장은 “지방은 민간에 비해서도 남성 육아휴직 사용률이 낮은 편인데 중앙부처를 중심으로 육아휴직 제도가 도입돼 지방자치단체로 확산해 나가다 보니 아직까지 영향이 미치기엔 역부족이거나, 가부장적인 문화와 역동성이 낮은 조직 내 분위기 등이 작용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최훈진 기자 choigiza@seoul.co.kr
  • [커버스토리] 오지로 간 공무원 그들이 사는 세상

    [커버스토리] 오지로 간 공무원 그들이 사는 세상

    국내 어딜 가도 공무원은 있다. 도서·벽지지역 구석구석뿐만 아니라 ‘동서남북’ 최끝단에도 어김없다. 그곳이 바로 우리나라 영토라는 증거다. 예전에는 ‘유배’라는 인식에 근무를 기피하는 경향이 강했지만 지금은 자부심 가득한 공무원들이 서로 가겠다고 손을 들고 있다. 물론 도심과 멀리 떨어져 있기 때문에 의료·금융·미용·문화 시설이 열악한 건 그때나 지금이나 똑같다. 고생길이 훤한데도 근무를 자원하는 이유는 그만큼 삶의 보람이 있기 때문이다. 대한민국 동서남북 끝단에 근무하는 4명의 ‘오지(奧地) 공무원’들이 전하는 삶의 이야기를 들어 봤다.# 돈 쓸 일 없는 곳… “아내가 아들 군대 보낸 심정이랍니다” “여기는 출퇴근이라는 개념이 없습니다. 걸어갈 수 있는 곳이 100m밖에 안 되는데 어딜 가겠어요. 여기 독도입니다.” 지난달 30일부터 독도에서 근무하고 있는 박연호 경북경찰청 독도경비대장은 27일 “독도에서는 24시간 내내 근무한다고 보면 된다”면서 “경찰관 4명이 하루 당직하고, 하루 대기하지만 실질적으로는 매일매일 근무하는 것과 다름없다”고 말했다. 또 “주말이나 공휴일에는 관광객들이 많이 찾아와 오히려 평일보다 더 바쁘다”면서 “하루에 적게는 1500명에서 많게는 2500명이 찾아오기도 한다”고 전했다. 독도경비대는 해양경계 임무, 주변 선박 관리 업무, 2개 초소에서 주야간 관측 근무, 관광객 안전사고 방지 활동 등을 하고 있다. 40여명 정도의 대원들은 오전 6시 30분 기상, 아침점호 및 체조, 7시 아침식사, 9시 접안지 근무 투입 순으로 하루 일과를 시작한다. 생활관 3층에는 체육관, 브리핑룸, 컴퓨터실, 노래방, 헬스장 등으로 활용할 수 있는 30평형짜리 다용도 공간이 마련돼 있다. 1층에는 식당, 2층에는 숙소가 있다. 의료시설은 아주 긴급한 경우에만 해경정이나 해경·소방 헬기 등을 이용해 1시간 50분 거리에 있는 울릉의료원을 이용한다. 더 심하면 경북 포항으로 응급수송 한다. 그 이외에는 자체적으로 구비하고 있는 비상약으로 응급 상황에 대비한다. 금융 시설도 울릉도에 있는 농협과 수협이 전부다. 박 대장은 “은행 이용이 불편해 거의 이용하지 않는다”면서 “독도에 있다 보니까 돈 쓸 일도 없다”고 말했다. 박 대장은 “독도경비대에 지원한다고 했을 때 아내가 아들 군대 보내는 심정이라고 했는데 와보니 딱 군 생활하는 기분”이라면서 “가족들 생각이 많이 나고 어려운 점도 한두 가지가 아니지만, 독도라는 아름다운 곳에서 근무하는 기회가 누구에게나 주어지는 게 아니기 때문에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있고, 우리 땅을 지킨다는 마음가짐으로 근무하고 있다”고 말했다. # 목포에서 배로 4시간 30분… “2교대로 3박 4일 근무합니다” 한반도의 최서남단에 있는 가거도에는 80여명의 공무원이 근무하고 있다. 김제수 전남 목포해양경찰서 가거도 출장소장은 “가거도에는 520여명의 주민이 살고 있고 초등·중학교 분교와 우체국, 보건지소 등이 있다”고 소개했다. 이어 “해상 안전을 담당하는 해경은 저와 의경 1명뿐”이라면서 “2명이서 어업에 종사하는 260여명의 주민을 관리하는 셈”이라고 말했다. 김 소장은 2교대로 3박4일 동안 근무를 하고 있다. 목포까지 배로 4시간 30분이 걸린다고 한다. 김 소장은 “배멀미를 많이 하는 편이어서 배 타는 것이 지금도 두렵다”고 했다. 기상악화로 배가 뜨지 않으면 어쩔 수 없이 하루씩 더 섬에 갇혀 지내기도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김 소장은 “낚시꾼들의 안전을 관리하는 것도 출장소의 몫”이라고 했다. 여름과 겨울을 가리지 않고 매일 100명이 넘는 낚시꾼이 가거도로 몰려온다고 한다. 김 소장은 “낚시꾼들이 배를 타고 바다로 나갔다가 자칫 사고를 당할 수도 있기 때문에 반드시 신원 파악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 섬에서 3일·뭍에서 3일… “혼자만의 시간, 외롭지 않다” 2016년 2월부터 제주 마라도치안센터에서 일하는 이재웅 경위는 “사람의 개성과 취향에 따라 이런 곳에 있기 힘들어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저는 외롭지 않다”고 담담하게 말했다. 이 경위는 “마라도를 관할하는 서귀포경찰서에서 수사 업무를 하다가 내 개인 시간을 갖고 싶어서 자원했다”면서 “근무시간 이후 시간적 여유가 날 때 다양한 책도 보고 공부도 할 수 있어서 좋다”고 말했다. 이어 “3일을 근무하고 제주로 돌아가 3일을 쉬는데, 매일 가족과 보진 못하지만, 쉴 때 낮에 볼 수 있기 때문에 좋다”고 덧붙였다. 마라도 주민은 100명 정도다. 이곳의 명물인 짜장면집은 오후 5시면 문을 닫는다. 그날 장사가 끝나면 배를 타고 제주로 돌아가는 주민이 많다. 생활 용수는 해수를 담수로 만들어서 사용하고 있다. 담수화시설이 고장이라도 나면 물 없이 2~3일을 견뎌야 한다. 마라도를 비롯한 도서 지역을 관리하고 있는 김영옥 제주경찰청 생활안전계장은 “섬 주민들이 어떤 경찰이 오는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예전에 징계받았던 경찰을 보냈더니 왜 이런 사람을 보냈냐고 항의를 많이 받았다”면서 “이 때문에 도서 지역 근무자로 누구를 보낼지 심사숙고하지 않을 수 없다. 성격도 좋아야 하고 경험도 풍부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 계장은 섬별 선호도에 대해 “마라도는 30분, 가파도는 15분, 우도도 15분이면 가니까 선호하는데, 추자도는 1시간 10분가량 배를 타고 들어가야 하기 때문에 가장 인기가 없다”고 전했다. 남해안과 제주도의 중간 경계 지역에 있는 추자도에는 30명 정도 되는 공무원이 근무하고 있다. 추자도 현지인이 절반, 제주 본토에서 발령받아 온 사람이 절반쯤 된다. 강창준 추자도 면사무소 사회복지계장은 “섬 내 관사에서 살고 있다”면서 “금요일 밤 배를 타고 제주로 가서 주말을 보낸 뒤 일요일 점심 때 배를 타고 다시 섬으로 돌아와 근무하고 있다”고 말했다. 강 계장은 “처음 3개월 동안은 혼자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었고, 가족과 떨어져 사니까 서로가 더 애틋해졌다”면서도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더 외로워지는 것 같다”고 말했다. # 하루 두 번 北에 신호… “그들은 전화를 받지 않는다” 한반도의 북쪽에는 판문점 남북연락사무소가 있다. 우성호 통일부 남북연락사무소 연락관은 지난 4월 15일부터 연락관으로 근무하고 있다. 남북연락관은 ‘전문관’으로 지정돼 있다. ‘전문관 제도’는 특정 분야에 대한 전문적인 업무를 장기간 수행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마련됐다. 근무자는 지원과 경쟁을 통해 선발되며, 최초 4년을 근무하며 본인의 희망에 따라 연장 근무도 가능하다. 우 연락관은 “업무에 특수성이 있고 북한과 가장 가까운 곳에서 근무한다는 자부심도 있어 계속 근무하길 희망한다”고 말했다. 2016년 2월부터 북한이 남북 간 연락 채널을 중단해 현재 남북 직통전화와 팩스, 남북연락관 접촉이 모두 중단된 상태다. 업무 개시시간인 오전 9시와 종료 시간인 오후 4시쯤 북측에 신호를 보내고 있지만 북측은 전화를 받지 않고 있다. 직원들은 오전 8시쯤 출근해 오후 5시쯤 퇴근한다. 서울 광화문에서 오전 6시 40분에 출발하는 버스를 타고 출퇴근하는 직원이 대부분이며, 인근 파주시 문산읍 쪽에 집을 구해 사는 직원도 있다. 우 연락관은 “최근 북한의 미사일 발사 등으로 남북 관계 개선이 쉽지 않아 보이지만, 위기 뒤에 기회가 오듯이 빠른 시일 내에 화해협력 관계로 변하길 기대하며 인내심을 갖고 기다릴 것”이라고 말했다. 이하영 기자 hiyoung@seoul.co.kr 이주원 기자 starjuwon@seoul.co.kr
  • [커버스토리] “침몰 중 선적 철근 일부 쏟아져…과적 침몰설 풀기엔 한계”

    [커버스토리] “침몰 중 선적 철근 일부 쏟아져…과적 침몰설 풀기엔 한계”

    “인양 시기·업체 논란 투명하게 밝힐 것…유실 가능성 미수습자 5명 회수안 연구” 세월호 참사의 원인 중 하나로 거론되는 과적설의 실마리를 풀어 줄 철근 무게 측정에 한계가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사고 초반 갑판에 있던 다량의 철근이 바다로 빠져 정확한 집계가 어렵다는 것이다.김창준 세월호 선체조사위원장은 선체 조사 개시 50일을 하루 앞둔 지난 24일 전남 목포신항만 선조위 사무실에서 가진 서울신문과의 단독 인터뷰에서 “세월호에 철근이 얼마나 실렸는지 확인하는 데 한계가 있다”며 “선체 내부는 상관없지만 침몰 당시 선체 2층 선수 갑판에 있던 트럭 5대분의 철근과 기둥에 주로 쓰인 ‘I’자 형태의 쇠기둥이 기울어지면서 바다에 빠졌는데 인양하기가 어려울 것 같다”고 말했다. 앞서 세월호 특별조사위원회는 적정 화물량의 40%에 달하는 철근 410t이 세월호에 실려 있다고 발표했고 검·경 합동수사본부는 철근량을 286t으로 계산해 120t 이상 차이가 났다. 조사 기록물이 산처럼 쌓여 있는 사무실 책상 앞에서 김 위원장은 “철근을 실었던 화주가 보상 신청한 전수조사 내역과 동국제강 등 최초 판매·제조업체들도 모두 확인해 보려고 한다”며 “현재 특조위 발표보다 보상 신청 건수가 30% 더 많고 박근혜 정부 시절 의도적으로 은폐했다는 의혹까지 있는 만큼 침몰 당시 유실된 철근이 얼마나 되는지 확인하기 위해 해양수산부에 철근 인양 가능성을 확인해 달라고 요청한 상태”라고 설명했다. 김 위원장은 “미수습자 수색과 병행해 조사하고 있고 진행률은 30% 정도인데 총 10개월의 조사 기간은 짧다”며 “화물칸 조사가 끝나야 가장 중요한 타기실, 보조발전기실 등을 볼 수 있는데 현재는 물리적 접근이 어려워 기관실밖에 못 들어갔다”고 아쉬워했다. 그는 “영국의 감정기관 브룩스벨이 사람, 화물 등 세월호 침몰 당시 상태와 가깝게 배를 500분의1 크기 모형으로 만들어 당시 상황을 실험할 것”이라며 “입력치에 따라 달라지는 컴퓨터 시뮬레이션과 달리 인공조작 가능성을 최대한 줄여 사고 원인 조사의 신뢰성을 훨씬 높일 것”이라고 강조했다. 미수습자 5명이 아직 발견되지 않은 데 대해 수색을 강화하는 ‘미수습자 수색 체증’ 연구용역도 발주했다. 김 위원장은 “인양 후 반잠수선까지 3㎞ 이동했는데 땅에 닿은 배 부분은 유실방지망 설치가 어려워 방지망이 제대로 쳐지지 않아 이동 중에 유실됐을 가능성이 있어 회수 가능성을 의뢰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기존 미수습자 유해와 맞지 않는 유골 38개에 대한 DNA 분석도 진행한다. 김 위원장은 “뼈 가운데 소속이나 장소 등이 애매해 도저히 맞춰지지 않는 38개 뼈에 대해 DNA 검사를 진행하기로 했다”고 덧붙였다. 김 위원장은 “조사의 투명성을 통해 국민이 납득하고 논란을 종식시키는 것이 목표”라며 “왜 탄핵에 맞춰 인양됐는지, 일부러 지연시킨 건 아닌지, 왜 당초 재킹바지선 기술을 제시한 업체가 아닌 상하이샐비지와 인양 계약을 맺었는지 등을 조사해 필요하면 검찰 조사를 의뢰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김 위원장은 2기 세월호 특조위 출범과 관련해 “선조위는 침몰 시까지를, 특조위는 침몰 이후 조사 방해, 명예훼손 등을 조사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목포 강주리 기자 jurik@seoul.co.kr
  • [커버스토리] 말라버린 세월호…가라앉은 세월들

    [커버스토리] 말라버린 세월호…가라앉은 세월들

    부실 수색 논란 속에 지난 22일 중단됐던 세월호 침몰 해저면 수중수색 작업이 사흘 만인 25일 재개됐다. 정부는 바닷속으로 가라앉은 지 3년 만에 세월호를 인양해 지난 4월부터 수색을 본격화했지만 미수습 희생자 9명 가운데 5명은 여전히 가족의 품으로 돌아오지 못했다. 세월호 수색 150일을 하루 앞둔 지난 24일 찾은 전남 목포신항 세월호 미수습자 수색 현장은 여느 때처럼 바쁘게 돌아가고 있었다. 그렇지만 미수습자들의 발견이 늦어지면서 시름이 깊어지는 분위기였다. ‘다시는 이런 비극이 발생하지 않기를.’ ‘꼭 돌아오세요. 조금만 기다리세요.’ 세월호 참사 1227일째. 세월호 수습 현장 바깥 담장에는 시민들이 남기고 간 노란 리본들이 날리고 있었다. 그렇지만 목포신항 주변은 인적이 거의 없이 고요했다. 신분 확인 뒤 신항 내부에서 세월호 현장으로 가는 길에는 선체에서 나온 찌그러져 형체를 알아보기 힘든 자동차와 각종 잔해물이 켜켜이 쌓여 있었다. 3년 묵은 펄에서 풍겨 나오는 짜고 쾨쾨한 냄새가 연신 코를 찔렀다. 거대한 세월호는 뙤약볕에 가로로 길게 누워 있었다. 객실 수색은 사실상 끝났고 해저면과 충돌 시 찌그러진 부위와 모서리 등을 점검하고 있었다. 화물칸 2개층 중 1개층도 수색 종료가 목전에 와 있었다. 미수습자 가족들은 숙소 내부에 설치된 모니터를 통해 작업 현장을 실시간으로 볼 수 있다. 크레인들이 세월호 화물칸에서 진흙으로 범벅이 된 자동차들을 들어 올려 지상으로 내렸다. 바퀴는 찌그러졌거나 아예 사라지고 없었다. 파란 작업복을 입은 세월호 선체조사위원회 조사관은 자동차가 내려오자마자 다가가 현장의 진실을 밝혀 줄 블랙박스 수거에 나섰다. 블랙박스는 진흙에 덮여 엉망진창이었으나 세척 후 다소 녹슨 부분을 빼고는 금세 제 모습을 되찾았다. 현장 작업을 하는 코리아샐비지 직원들은 차에서 나온 진흙을 수거해 포대에 담아 세척하는 장소로 이동시키는데 작업 속도에 브레이크가 걸리자 선조위 조사관들을 못마땅한 표정으로 채근하기도 했다. 한쪽에선 화물칸에서 나온 진흙 등을 세척해 분류하는 작업이 한창이었다. 자갈, 유리 조각, 조개껍데기 등이 체에 담겨 있었고 육안으로 보면서 손으로 거르고 있었다. 선조위 관계자는 “선체 내부 석면 제거 작업을 하고 있다”며 “객실 작업은 거의 다 끝났고 화물칸 차량도 160대 이상 꺼낸 상태인데 아직 화물칸에 철근이 많이 남아 있다”고 말했다. 세월호 현장수습본부에 따르면 25일 기준 반출된 차량은 185대 중 176대(95.1%), 철근은 112.2t을 꺼낸 상태다. 수거된 유류품은 5022점에 달했다. 맹골수도 해역에서는 지난 22일 2차 수중수색이 가족들 요청으로 중단됐다. 한 미수습자 가족은 “퍼 올린 진흙더미에서 뼈인지 돌멩이인지 제대로 살피지도 않고 어설프게 대충 본 뒤 호스로 물을 뿌려 바다에 다시 버리고 있는 걸 확인했다”며 “보완 작업을 하든, 새로운 수색 방안을 내놓든 하라고 했다”고 전했다.인양 당시 해양수산부는 유실방지망 등을 설치해 유실 가능성이 낮다고 재차 설명하고 두 달에 걸쳐 중국 인양업체인 상하이샐비지가 여러 번 종횡하며 1차 수중수색을 마쳤지만 지난 16일부터 시작된 2차 수색에서 현재까지 6점의 사람 유해가 추가로 발견됐다. 해수부 관계자는 “지상처럼 할 수는 없지만 세월호 선조위도 감독하고 있고 조사 방법에 대한 의견을 구해 철저하게 하고 있다”며 “약 0.7㎜ 간격의 체 면적을 넓혀 진흙 등을 넓게 펴서 볼 수 있도록 조치를 취했고 빠진 부분들에 대해서도 반복해 점검한 뒤 보내기로 보완했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진흙에 대한 선별 작업은 비전문가인 상하이샐비지 직원들이 오롯이 하고 있었다. 미수습자 가족들은 “돼지 뼈 같은 건 분리를 잘 해낼 수 있어도 사람 뼈 판단은 쉬운 일이 아닌데 비전문가들이 유해와 진흙을 대충 보고 버리니 신뢰가 별로 안 간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아직 찾지 못한 미수습자는 단원고 남현철·박영인군, 양승진 교사, 권재근씨·혁규군 부자 등 5명이다. 인양 당시보다는 크게 줄었지만 세월호 현장엔 추모 시민들의 발길이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광주에서 온 김미경(68)씨는 “너무 마음이 아프다”며 “어떻게든 찾아 유족들 품으로 모두 다 돌아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서울에서 온 이민균(42)씨도 “1차 수색이 미흡한 것 같은데 착실하게 잘해 2차 수색에서는 모두 찾길 바란다”며 “좀더 가까이 세월호를 볼 수 있으면 좋을 텐데 아쉽다. 어처구니없는 일이 벌어진 만큼 정부에서 최선을 다해 줘야 한다”고 밝혔다. 목포 강주리 기자 jurik@seoul.co.kr
  • [커버스토리] 세월호 때 홀로 살아남은 8살, 왜 세 번이나 전학해야 했나

    [커버스토리] 세월호 때 홀로 살아남은 8살, 왜 세 번이나 전학해야 했나

    철없는 아이들 놀려 다른 곳으로 이사 존재 알려질까봐 심리 치료도 힘들어 “피해자인데… 왜 이런 생활해야 하나” 2014년 4월 16일 세월호 참사 당시 어린 소녀는 침몰 직전의 배에서 가까스로 구출돼 마지막 구명정에 오를 수 있었다. 엄마(한모씨·사망)와 아빠(미수습자 권재근씨), 한 살 터울의 오빠(미수습자 혁규군)까지 모두 잃고 유일하게 생존한 은지(당시 5세·가명)양의 모습은 주위를 안타깝게 했다. 은지네 가족은 제주로 귀농을 하기 위해 화물 트럭에 이삿짐을 싣고 세월호를 탔다가 참변을 당했다.사고 이후 3년이 훌쩍 지난 지금까지도 세월호의 악몽은 은지를 괴롭히고 있다. 올해 초등학교 2학년이 된 은지는 입학한 지 1년 반 만에 벌써 세 번이나 전학을 하는 아픔을 겪었다. 아직 돌아오지 못한 남동생과 조카를 찾기 위해 3년 4개월째 전남 진도와 목포신항을 떠나지 못하고 있는 은지의 큰아버지 권오복(63)씨는 지난 24일 “여동생이 은지를 돌보고 있는데 아이들의 계속된 놀림 때문에 학교를 세 번이나 옮겼다”고 털어놓으며 깊은 한숨을 쉬었다. 철없는 아이들은 어디서 들었는지 “너 엄마, 아빠 다 죽었다며?”라며 은지의 상처를 건드렸다. 이런 상황에서 학교나 선생님도 은지의 울타리가 크게 되지 못했다. 은지의 고모는 은지의 상처가 덧날 것을 걱정해 살던 터전을 버리고 은지의 얼굴과 신분을 아무도 모르는 곳으로 이사했다. 최근 옮긴 학교에서는 은지의 힘든 사정이 드러나지 않도록 배려해 다른 이름으로 부르고 있다. 한때 서울의 한 대형병원에서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트라우마) 치료를 받아 왔지만 지금은 중단한 상태다. 은지의 고모는 학교를 옮긴 뒤 은지에 대한 주위 시선을 피하기 위해 다니던 병원 대신 집 근처 심리치료기관을 찾고 있다. 그렇지만 상담 내역 확인 과정에서 은지의 존재가 알려질까 봐 조심하고 있다. 권씨는 “피해자는 내 조카인데 왜 이렇게 생활을 해야 하는지 가슴이 아프다”고 고개를 떨구며 울먹였다. 은지는 현재 기초생활수급자로 지정된 상태다. 지난해 보상금을 받았지만 은지가 30살이 될 때까지 쓸 수 없도록 법원 신탁이 이뤄져 있기 때문이다. 국무조정실 세월호 피해자 지원 및 추모사업 지원단 관계자는 “세월호특별법에 따라 미성년자 보호를 위해 은지를 위한 별도 전담팀을 꾸려 지원했지만 자연스럽게 클 수 있도록 관심을 덜 가져 달라는 가족 측 의견이 있었다”고 설명했다. 이동우 상계백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친부모가 모두 없는 상황에서 가족 체계 자체가 일반 가정과 달리 취약할 수밖에 없고 일상적 학교생활의 스트레스를 겪어도 대처가 쉽지 않다”며 “트라우마와 직접 관련된 외부 자극이 자꾸 가해지면 치료를 받아 나았던 사람도 재발할 수 있기 때문에 트라우마에 대한 지속적인 상담치료가 필요하고 시스템상 정보 노출을 최소화하기 위한 배려 있는 정부 지원이 절실하다”고 25일 조언했다. 목포 강주리 기자 jurik@seoul.co.kr ※권양의 이름은 이미 언론에 공개되었으나 사생활 보호를 위해 가명으로 처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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