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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커버스토리] 열등감이 낳고 관음증이 키웠다… 분노의 사생아 ‘패치’

    [커버스토리] 열등감이 낳고 관음증이 키웠다… 분노의 사생아 ‘패치’

    경찰이 최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인스타그램을 무대로 특정인들의 신상을 마구잡이로 공개하며 음해해 논란이 된 ‘강남패치’와 ‘한남패치’의 운영자를 입건하면서 이른바 ‘○○패치’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 통상 ‘○○패치’는 운영자가 다른 사람의 사생활을 공개한 글을 올리고 불특정 다수의 네티즌들이 관련 제보를 댓글로 올리는 식으로 운영된다. 조직적이고 노골적인 뒷담화의 소셜미디어 버전으로 불리는데, 그 와중에 허위 사실이 유포되고 수많은 피해자가 발생하고 있다. ●사생활 공개·조직적 뒷담화 ‘강남패치’ 원조 강남패치 홈페이지에는 ‘금수저와 신분 세탁이 판치는 헬조선 속 오아시스’라는 자평이 올라 있다. 이렇게 보면 네티즌들의 열광적인 지지를 받는 것 같다. 하지만 인터넷 곳곳에서 ‘쓰레기를 까발리는 또 다른 쓰레기’라는 평가를 쉽게 만날 수 있다. 전문가들은 개인의 비뚤어진 분노와 불만이 표출되고 이 결과물이 네티즌들의 관음 심리를 충족시키며 ‘패치 신드롬’을 만들어 냈다고 설명했다. 이런 분노의 원인에 대해서는 젊은 세대들이 사회에서 정당한 보상을 받지 못하는 상황을 주목했다. ‘○○패치’의 원조는 지난 5월부터 6월 말까지 운영하며 8만명의 팔로어를 끌어 모았던 강남패치다. 연예인의 파파라치 사진으로 유명한 ‘디스패치’를 모방했다는 강남패치는 강남 유흥업소 출신이라는 여성들의 사생활을 인스타그램에 폭로했다. 입건된 운영자 정모(24·여)씨는 수십개의 계정을 이용하며 경찰을 따돌리려 하고 ‘고소할 테면 고소해봐 ’라는 식의 글도 남겼지만 피해자의 고소로 경찰이 수사에 나선 지 2개월 만에 덜미를 잡혔다. 경찰은 “인스타그램에서 여혐(여성혐오) 현상에 대해 심각성을 인지하고 IP를 전달해 준 것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명예훼손 혐의로 수사를 받고 있는 정씨는 “자주 가던 강남의 클럽에서 한 기업 회장의 외손녀를 보고 박탈감을 느꼈고, 질투심이 일어 강남패치를 만들었다”고 경찰에 진술했다. ●“고소할테면 해보라”던 운영자 두 달만에 잡혀 강남패치에 신상이 공개돼 피해를 입은 여성들은 우울 증세와 수치심을 호소했다. 하지만 운영자는 사실과 다르다고 주장하는 피해 여성과의 대화를 다시 강남패치에 공개하고 ‘혼이 덜 났다’고 조롱했다. 대학 시절 유흥업소에 드나든 것으로 지목된 한 쇼핑몰 모델은 “그런 곳은 근처에도 가본 적 없는데 왜 마녀사냥을 당해야 하는지 화만 난다”고 토로했다. 진실인지 거짓인지 알 수 없는 여성 연예인이나 모델 등의 과거도 여과 없이 게시됐다. 강남패치의 남성 버전으로 불리는 한남패치는 6월 24일부터 29일까지 단 6일간 운영됐다. 유흥업소에서 성매매를 하는 남성의 신상을 알리는 게 목적이었다. 운영자 양모(28·여)씨는 지난달 30일 강남패치 운영자와 함께 명예훼손 혐의로 경찰에 입건됐다. 경찰 조사 결과 양씨는 성형수술 피해자로 우울증 약을 복용 중이었다. 이에 대해 양씨는 어린 시절 성폭행 경험을 주장했고, 지난달 31일 오후 9시쯤에는 자살이 의심된다는 신고를 받은 경찰이 양씨가 머물던 속초의 한 리조텔에 출동하는 소동도 있었다. ●‘성병패치’‘창놈패치’‘홍대패치’ 유사 패치 확산 강남패치와 한남패치가 각각 여혐, 남혐을 표방하면서 논란의 중심에 있지만 이외에도 각종 ‘○○패치’가 존재한다. 지하철·버스의 임신부 배려석에 앉은 남성이나 ‘쩍벌남’(다리를 넓게 벌리고 앉아 옆좌석 승객에게 피해를 주는 남성)의 얼굴을 공개하는 ‘오메가패치’, 성병에 걸린 남성의 신상정보·병명 등을 알린 ‘성병패치’, 성매매업소 등을 출입하는 성매수 남성 신상을 공개하는 ‘창놈패치’, 홍대 유명 클럽에서 문란하게 유흥을 즐기는 남녀의 신상을 알리는 ‘홍대패치’ 등이다. 전문가들은 가수 타블로의 학력에 의혹을 제기했던 ‘타진요’(타블로에게 진실을 요구합니다)를 ‘패치’의 원형으로 본다. 연예인의 인터넷 안티 카페에서 나온 뒷담화가 특권층의 편법, 반칙에 대한 불신, 학벌 중시 풍조 등과 변주되며 발생한 사건으로 해석했다는 점에서 패치 열풍과 맞닿아 있다는 것이다. 타블로 측의 사실확인 노력에도 의혹은 사라지지 않았고, 사건의 주범 6명은 실형을 받았다. 하지만 일부 네티즌들은 여전히 활동을 이어 가고 있다. 대화로 옮겨지던 뒷담화가 ‘패치’라는 기록으로 축적되고, 명예훼손의 증거가 되면서 법적 문제가 발생하기 시작했다. 명예 훼손은 3년 이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 벌금에 처할 수 있다. 운영자뿐 아니라 제보자도 처벌될 수 있다. 하지만 실형이 선고된 타진요는 이례적인 사례이며 사이버 명예훼손은 대부분 벌금에 그친다. 경찰청에 따르면 사이버 명예훼손, 모욕죄의 발생 건수는 2012년 5684건에서 지난해 2015년 1만 5043건으로 164.7% 증가했다. 올해 상반기에는 8371건이 발생해 산술적으로 볼 때 올해 말에는 1만 6000건도 넘을 것으로 보인다. ●“우울한 청춘 탈출구 못 찾아” 구정우 성균관대 사회학과 교수는 “2030 세대에게 삶은 팍팍하고 현재는 불안하며 미래는 우울한데, 이런 것들을 해소할 통로가 우리 사회에 없다”며 “긍정적인 배출구가 없다 보니 소셜미디어가 유일한 창구가 됐고, 이곳에서 자신의 억눌린 감정들을 잘못 해소하다 보니 패치 신드롬이 탄생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법적으로 볼 때 공적 영역인 소셜미디어를 사적인 공간으로 잘못 이해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노기영 한림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는 “소셜미디어에 익숙한 세대일수록 정보 노출에 대해 관대하며 노출 자체를 즐기기도 하는데, 그에 비례해 사적 정보의 노출이 얼마나 위험할 수 있는지에 대해 둔감해지기도 쉽다”고 말했다. 그는 “작은 명예훼손까지 모두 법적으로 처벌할 수 없기 때문에 소셜미디어 이용자들의 책임의식과 윤리의식이 강조되는 규범이 만들어져야 한다. 이런 규범을 지키지 않으면 사회적 불이익이나 비난이 뒤따른다는 사회적 공감대도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사회 이면 폭로 제대로 못한 기성언론 책임론도 최승원 덕성여대 심리학과 교수는 “인터넷의 정보 홍수 속에서 사람들의 관심을 얻기 위해서는 원초적 흥미를 자극하는 은밀한 폭로나 선정적인 콘텐츠를 제시해야 하는 구조가 조성되고 있다”며 “소셜미디어상의 자극적인 폭로나 사생활 침해가 반복되는 현상을 볼 때 언론의 역할에 대해 고민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기성 언론이 사회 이면의 실체를 폭로하지 못한다는 불신을 불식시켜야 한다”며 “특히 여성 혐오나 금수저와 같은 사회적인 대립각을 지나치게 이용해 주목도를 높여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임명호 단국대 심리학과 교수는 “정신과적으로 (강남패치와 한남패치의) 운영자들은 마음속에 피해의식이 자리잡고 있다”며 “소셜미디어에 남의 뒷담화를 늘어놓아 주목을 끈 것을 볼 때 낮은 자존감을 다른 이의 관심으로 보상받으려 한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그는 “소셜미디어는 누구나 볼 수 있고 기록으로 남기 때문에 파급 효과도 엄청나다”며 “성숙한 토론 문화와 자정 노력을 강조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명희진 기자 mhj46@seoul.co.kr 김희리 기자 hihit@seoul.co.kr 그래픽 강미란 기자 mrkang@seoul.co.kr
  • [커버스토리] 자동폐기 굴욕 감액도 4차례…제헌국회부터 굴곡진 ‘추경史’

    [커버스토리] 자동폐기 굴욕 감액도 4차례…제헌국회부터 굴곡진 ‘추경史’

    정부가 조선·해운업 구조조정 지원과 일자리 창출을 위한 11조원 규모의 추가경정예산(추경)을 편성해 제출한 지 딱 한 달 만인 26일 국회에서 추경안 통과를 전제로 한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전체회의가 열렸다. 이번 추경은 8월 임시국회 종료 전날인 오는 30일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될 예정이다. 정부는 헌정 사상 최초의 추경 무산을 피하게 됐다며 가슴을 쓸어내리는 분위기다. 하지만 엄밀히 봤을 때 설령 이번 추경이 무산됐다고 하더라도 정부가 제출한 추경안이 국회를 통과하지 못하는 것이 처음은 아니다. ‘서울의 봄’과 광주민주화운동 등으로 숨 가빴던 1980년 정부가 10월 초 추경안을 제출했지만 전두환 군부가 이미 5월 20일에 군 병력을 동원해 10대 국회를 사실상 해산해 버린 상황이라 임기만료로 자동폐기되고 말았다. 그런데 똑같은 내용의 추경안이 자동폐기 바로 다음날인 10월 28일 다시 제출됐고, 전두환 군부의 국가보위입법회의(국보위)가 나흘 만에 이를 통과시켰다. 국가재정법은 ▲전쟁 ▲대규모 재해 ▲경기침체 ▲대량실업 ▲남북관계의 변화 ▲경제협력 등으로 추경 편성의 조건을 한정하고 있다. 하지만 국회에 제출되기만 하면 여야 간의 정쟁으로 이어진다. 제헌국회에서도 그랬다. 우리나라 추경의 역사 속에 담긴 정치, 경제, 사회상을 살펴봤다. ●6·25전쟁 발발했던 1950년에는 총 7회 올해 추경안의 국회 통과가 늦어지면서 “정쟁에 민생이 파묻힌다”는 비판이 나왔다. 그런데 예산안, 추경안 등을 둘러싸고 국회에서 벌어지는 정쟁은 이미 제헌국회(1948~1950년) 때부터 치열했다. 또 정부수립 초창기 국내 상황의 혼란과 여러 행정기능 미비로 인해 예산 편성부터 지연되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정부는 1949년과 1950년 회계연도가 시작된 뒤에야 예산안을 제출했고, 어쩔 수 없이 2년 연속으로 당장 급히 써야 할 돈을 가예산으로 편성·집행했다. 이후 본예산을 현재의 추경인 ‘추가예산’의 형식으로 국회에 제출했는데, 이마저도 당시 세수 및 세출 예측 능력의 부족으로 여러 차례의 추경을 거듭할 수밖에 없었다. 6·25전쟁이 일어난 1950년에는 모두 일곱 번의 추경이 이뤄졌다. 현재 기록이 남아 있는 가장 오래된 추경은 1950년 3월 23일 국회에 긴급 동의 형식으로 상정된 ‘단기 4282년도 제3차 추가예산’이다. 당시 여당이었던 대한독립촉성국민회 소속 황호현 의원은 3차 추가예산을 재정경제위원회 심의를 생략하고 본회의에서 처리하자고 긴급 동의했다. 그는 “5월 총선거를 앞두고 의원 대다수가 시골로 내려갔기 때문에 본회의조차 정족수를 간신히 채운 상황”이라면서 “예산을 심사할 재정경제위원회 구성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기 때문에 오늘 하루에 심사를 끝내고 내일 통과시키자”고 주장했다. ●기록상 가장 오래된 추경 ‘1950년 3차 추가예산’ 그러자 야당인 한국민주당 서우석 의원이 “재경위 종합심사를 거치지 않고 본회의에서 다루는 것이 도리어 시간을 더 끌게 된다”며 반발했다. 또 같은 당 김상순 의원은 “농림부의 예산 산출 인원수 계산이 기획처의 계산과 차이가 나는데, 확인해 보니 농림부가 틀렸다”면서 “이런 유사 사례가 많을 테니까 재경위에서 1차 심의만큼은 분명히 해야 한다”고 거들었다. 결국 당시 추경안은 야당의 주장대로 분과위원회를 거치고 3월 27일에 본회의를 통과했다. 야당이 빼도 박도 못하는 허점을 지적해 ‘현미경 심사’를 관철시켰던 것이다. 추경이라고 하면 보통 나랏돈을 풀어 경기를 부양하고, 태풍 등으로 무너진 도로·시설물 등 사회간접자본(SOC)을 확충하는 것을 떠올리기 마련이다. 그러나 씀씀이를 줄인 ‘감액 추경’도 네 번이나 된다. 6·25전쟁 발발 직후였던 1950년 7차 추경 때 정부는 세수와 세출 56억원을 줄였다. 전쟁으로 인해 세금을 걷기가 어려워졌기 때문에 자연히 세수와 세출을 줄일 수밖에 없었다. 1982년에는 추경에서 2643억원을 삭감했는데, 전년도에 국보위가 정부가 잘못 계산해 제출한 세입·세출을 제대로 심의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해 상반기까지 예상 경제성장률 전망치(8%) 달성이 어렵다는 비관적 전망이 지배적이었다. 하지만 실제 1982년의 실질경제성장률은 8.3%였다. 국제통화기금(IMF)의 구제금융을 받기 직전이었던 1997년 10월, 그해 1차 추경에서 8722억원을 감액했다. 외환위기로 인한 경제환란이 그해 하반기부터 시장에 본격적으로 영향을 주기 시작했고, 자연히 세수에 펑크가 날 수밖에 없었다. 예상보다 덜 걷힌 세금은 1조 5909억원이었고, 전년도에 쓰지 않고 남았던 세계잉여금 7187억원을 이입해도 9000억원 가까운 수입과 지출을 줄여야 했다. 정부가 구제금융 지원 사실을 공식적으로 밝히기 이전에 이미 감액 추경이 위기를 알리고 있었던 셈이다. ●외환위기 직후 1998년 1조 6985억 최대 감액 외환위기 직후였던 1998년 3월 1차 추경은 우리 역사에 가장 치욕적인 추경으로 기록되고 있다. ‘경제점령군’으로 들어온 IMF는 구제금융을 받는 조건으로 전년도에 정부가 짜고 국회가 통과시킨 예산에서 필요 없는 부분을 줄여 금융 구조조정 비용을 마련할 것을 요구했다. 이에 따라 정부는 역대 최대 규모인 1조 6985억원을 감액했다. 당시 실무 사무관으로 추경 작업에 참여했던 한 정부관계자는 “우리가 짠 예산을 다시 우리가 줄이면서 공무원 급여부터 삭감하는 것도 기분이 나빴는데, 계속해서 IMF의 눈치까지 봐야 했다”면서 “약간이나마 ‘망국(亡國) 관료’의 심정이었던 것 같다”고 회고했다. 하지만 1998년 9월에는 세수를 메우기 위해 5조 4902억원을 보전하는 세입추경을 포함, 실업·경기대책 마련을 위한 12조 2000억원 규모의 2차 추경이 실시됐다. ●2002년 태풍 루사 피해때 제출 ~ 통과 ‘딱 3일’일반적으로 군부 독재 시절의 정부 추경안이 국회를 더 빨리 통과했던 것은 맞다. 하지만 헌정 사상 가장 빨리 국회를 통과한 것은 의외로 김대중 정부 시절인 2002년 태풍 ‘루사’ 피해 복구를 위한 4조 1000억원 규모의 추경이었다. 2002년 9월 10일 정부가 제출한 추경안은 바로 그날 국회 재정경제위, 행정자치위, 운영위, 교육위에 회부됐고, 다음날 예산결산특별위원회로 넘어갔다. 그리고 약간의 수정을 거쳐 이틀 뒤인 9월 13일 본회의에 상정돼 바로 통과됐다. 2002년 DJ 정부의 마지막 해로 각종 특별검사와 게이트가 쏟아지기는 했지만, 태풍 루사로 인한 피해가 어마어마했기 때문이다. 또 그해 12월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여야가 민심을 외면한 채 정쟁을 벌일 수는 없는 상황이기도 했다. ●‘이리역 폭발사고’ 재해 아닌 인재로 긴급 편성 가슴 아프면서도, 특이한 사연을 지닌 추경은 1977년 11월 2차 추경이었다. 행정부의 기틀이 어느 정도 잡히기 시작한 1960년대 이후의 추경은 주로 태풍과 오일쇼크에 의한 경우가 대부분이었는데, 1977년 2차 추경은 자연재해가 아닌 인재(人災) 때문에 긴급 편성됐다. 11월 11일 이리역에 서 있던 화약수송열차가 관리원의 부주의에 따른 화재로 폭발해 직경 16㎞ 이내의 집과 건물이 모두 파괴됐고, 58명이 사망하고 1400여명이 부상했다. 1만여명의 이재민이 발생했고, 재산 피해는 당시 돈으로 100억원이 넘었다. 피해가 얼마나 컸던지 폭발 사고 뒤, 이리 시내 다방과 음식점에는 반창고로 얼굴이나 손등을 허옇게 바르고 나온 사람들로 넘쳐났다고 전해진다. 당시 정부는 사고 나흘 뒤인 11월 15일 사고 복구를 위한 5억원 규모의 추경안을 국회에 제출했고, 열흘 만에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물론 5억원으로는 복구가 사실상 불가능했고, 보상비를 노린 투기꾼들이 이리에 몰려들면서 민심마저 흉흉해졌다. 그런데 이 사고로 유명해진 인물이 있는데, 바로 ‘20세기 최고의 코미디언’ 이주일이다. 사고 당일 이리역에서 500m 떨어진 삼남극장에서 관객 600여명이 들어찬 가운데 인기가수 하춘화의 리사이틀이 열리고 있었고, 폭발사고로 극장 지붕이 내려앉고 의자가 뒤집혀 6명이 죽고 수십명이 다치는 등 아수라장이 됐다. 당시 무명 MC였던 이주일은 자신도 머리가 함몰돼 4개월 넘는 치료를 받아야 하는 중상을 입었음에도 불구하고 쓰러져 있던 하춘화를 업고 극장 밖으로 나왔다. 이주일은 이 사건 이후 ‘의리의 사나이’로 불리며 유명세를 타기 시작했다. 하춘화는 2007년 11월 열린 이리역 폭발사고 30주년 추모행사의 홍보대사로 위촉되기도 했다. 세종 장형우 기자 zangzak@seoul.co.kr
  • “사드 등 정책 부문은 국민·국익 관점에서 보도해야”

    “사드 등 정책 부문은 국민·국익 관점에서 보도해야”

    올림픽 자원봉사자 소개 돋보여 이대 평단사업 더 깊이 논했어야 “심층성·스토리텔링 방향 설정” 서울신문 독자권익위원회(위원장 박재영 서울대 행정대학원 객원교수)는 22일 제86차 정례회의를 열고 지난 두 달간의 서울신문의 각종 현안 보도에 관해 자유롭게 토론했다. 이날 회의에서는 참신한 관점으로 보도한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올림픽 개막식 기사가 호평을 받았다. 반면 일부 기획기사는 심층적 분석이나 제언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이날 회의에는 박 위원장을 비롯해 김영찬(한국외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 홍현익(세종연구소 안보전략연구실장), 유경숙(세계축제연구소장), 이상제(한국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소순창(건국대 행정학과 교수) 위원이 참석했다. 유 위원은 ‘보험 직원·삼바 강사… 평범한 우리, 리우 수놓다’<서울신문 8월 8일자 26면>에 관해 “이날 한 신문의 공연담당 기자가 쓴 기사를 다들 베껴 썼는데 서울신문은 개막식 자원봉사자들의 다양한 면면과 숨겨진 이야기를 발굴해 냈다”면서 “비슷한 기사들이 난무하는 가운데 서울신문만의 목소리가 나온 가장 유쾌하게 잘 본 기사였다”고 칭찬했다. 박 위원장은 20일자 커버스토리로 다룬 ‘국회는 민원종말처리장’, ‘1급 이상 공직자 96명, 비상장주식 대거 보유’<서울신문 8월 4일자 1면> 등 단독보도와 관련기사들, 18일자에 실려 세종시 공무원들의 무사안일주의를 비판한 ‘오대수’ 특집과 관련해 “독자의 공분을 일으키는 기사들”이라고 호평하며 “근본적인 해결책 등 이런 문제들을 계속 다뤄 줬으면 좋겠다”고 했다. 최근 이화여대 평생교육 단과대학 지원사업(평단사업)을 둘러싼 학교와 학생 간의 분쟁 상황과 관련해서는 좀더 심층적인 기획보도가 없었다는 점이 지적을 받았다. 김 위원은 “지난 7월 말부터 이어진 보도 위에 좀더 심층적인 기획기사를 기대했는데 서울신문에서 끝까지 나오지 않아 의아했다”면서 “우리 고등교육이 어떤 문제와 위기에 직면했는지 공론화하고 해결책을 찾는 사회적 논의의 장을 마련해야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이어 “지난 4일엔 대학 관련 기사가 실렸는데 맥락도 정보도 없는 뜬금없는 것이었다”면서 “심층기사를 기대했는데 실망스러운 특집이었다”고 혹평했다. 이와 관련, 소 위원은 “이화여대 학생 소요에만 초점을 맞춰 평단사업의 본질이 부각되지 않은 가운데 ‘초고학력사회와 평생교육’<서울신문 8월 4일자 27면>이라는 ‘씨줄날줄’ 칼럼이 평단사업의 문제점과 대학 구조조정 등을 의미 있게 정리했다”고 평가했다. 외부 전문가들이 관련된 연속 기획도 비판을 받았다. 유 위원은 ‘관광산업 발전 위한 릴레이 제언’에 관해 “키워드 하나 뽑을 수 없을 만큼 추상적이고 뻔한 얘기들을 구구절절하게 늘어놓았다”면서 “독자들을 위해 신문사 내부에서라도 ‘영양가’를 만들어 냈어야 하는 것 아닌가”라고 평했다. 김 위원은 ‘PB(프라이빗뱅커)의 생활 속 재테크’와 관련, “그렇게 단정적인 말들을 독자들이 믿고 따랐다가 손해를 보게 되는 건 아닐지 우려스럽다”고 말했다.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 등 정책 부문에서 정부의 입장보다는 국민과 국익 관점에서 보도가 부족했다는 지적도 있었다. 홍 위원은 사드 배치 관련 보도에 관해 “대북 제재 국제 공조 라인이 깨졌다는 것을 알려 주고 이후 한·중 관계 개선을 위한 방안이 뭔지 등 국민 불안을 해소하는 방향으로 보도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우병우 민정수석과 국방부의 잇단 비리, 사고, 대통령의 광복절 경축사 내용 오류와 관련해서도 “국가 이익에 입각한 정리가 요망된다”고 주문했다. 이날 회의에 참석한 이경형 주필은 “디지털시대에서 종이신문은 심층성, 스토리텔링으로 전략적 방향을 설정해야 생존할 수 있다”면서 “옛날 제작 방법과 달리해야 한다는 점을 무겁게 받아들이며, 공익신문으로서의 범위를 유지하겠다”고 말했다. 김균미 편집국장은 “대학 교육과 구조조정 문제는 심각하게 받아들이며, 앞으로 신중하고 꾸준하게 다루겠다”고 말했다. 김민석 기자 shiho@seoul.co.kr
  • [커버스토리] 부정청탁 금지 사례에 일반인 기준은 없어… 공익성 여부 판단도 개개인마다 달라 혼란

    국회의원에게 제기하는 일반인의 민원이 오는 9월 28일 시행되는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김영란법)에 저촉될지 관심이 쏠린다. 지역구 의원들은 대부분 ‘민원의 날’을 운영한다. 접수된 민원은 보통 ‘엑셀’ 프로그램을 통해 관리된다. 새누리당의 한 의원실에 접수된 민원 리스트를 살펴보니 ▲병원비가 너무 비싸다 ▲집 천장에 물이 샌다 ▲일조권·조망권이 침해됐다 ▲보도블록을 교체해 달라는 등 종류를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다양한 민원이 기록돼 있었다. 의원이 직접 해결할 수 있는 민원이 아니라 의원의 입김을 통해 지방자치단체가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대부분이었다. 김영란법이 시행되면 이런 민원들이 도마에 오르게 된다. 우선 민원의 ‘공익성’ 여부가 처벌의 기준이 될 것으로 보인다. 국회 정무위도 “의원이 사익을 위한 민원을 전달하면 처벌받는다”고 밝혔다. 문제는 민원의 공익성 여부를 어떻게 판단하느냐이다. 또 사익을 위한 민원이라 하더라도 ‘부정청탁’에 해당하지 않을 여지도 있어 제도 시행 후 혼란은 가중될 것으로 예상된다. 민원 수렴을 의원의 의정 활동 일환이라고 해석한다면 아무리 사익성 민원이어도 처벌받지 않을 수 있다. 김영란법 5조에 규정된 부정청탁 금지 사례에도 일반인의 민원에 대한 언급은 없는 상태다. 또 민원인은 ‘부정청탁’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데 의원이 ‘부정청탁’으로 인식해 민원인을 신고하는 사례가 발생할 수도 있다. 더민주 한 중진 의원은 19일 “김영란법이 시행되면 어떻게 민원을 처리하게 될지 아직 도저히 감을 잡을 수가 없다”고 말했다. 이영준 기자 apple@seoul.co.kr
  • [커버스토리] “핵심은 피드백이죠”… 소음 민원인에게 “누님, 마음고생 심하시겠네요”

    [커버스토리] “핵심은 피드백이죠”… 소음 민원인에게 “누님, 마음고생 심하시겠네요”

    새누리당 김용태(3선·서울 양천을) 의원은 민원 처리의 ‘달인’으로 통한다. 2010년 7월부터 격주로 토요일마다 양천구 신월동의 지역사무실에서 ‘민원의 날’ 행사를 열고 있다. 하루 평균 50~60명, 7년 동안 1만 7000여명이 다녀갔다. 이후 민원의 날 행사는 여야 의원들에게 유행처럼 번져 지금은 ‘필수 이벤트’로 자리매김했다. 140번째 행사가 열린 지난 13일 신월동 사무실에서 만난 김 의원은 “‘내가 힘이 없어서 그렇구나’ 하는 불신이 있기 때문에 국회의원의 권위를 빌려 확인을 한번 더 해주는 것”이라면서 “자세한 정보를 소개하는 것만으로도 민원인들에게는 굉장한 힘이 된다”고 설명했다. 민원인들은 이미 여러 곳에서 “안 된다”는 답변을 듣고 온 상태다. 똑같이 안 된다는 말도 “설마 국회의원한테 거짓말하겠어요?”라고 하면 설득이 된다는 것이다. 물론 무리한 악성 민원이나 불법 청탁은 단호하게 거절한다. 김 의원은 민원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피드백’이라고 한다. 그는 “민원 해결을 잘한다는 것은 안 될 만한 것도 끝까지 알아본 다음에 왜 안 되는지를 정성스럽게 알리는 것”이라는 설명이다. 실제 김 의원은 오전 8시부터 몰려든 민원인들을 쉴 틈 없이 마주했다. 비행기 소음이 심해 잠을 못 잔다는 중년 여성에게는 “아이고, 누님. 마음고생이 심하시겠네요”라며 위로했고, 집 앞의 전봇대를 옮겨 달라는 민원인에게는 “어려운 일이네. 한국전력공사 측에 알아는 보겠지만 기대는 마세요”라고 말했다. 접수된 민원은 가능한 채널을 총동원해 알아봐 준다. 한 60대 부부가 소유하고 있는 주택의 세입자와의 갈등을 토로하자 김 의원은 주택임대차보호법을 거론하며 “정확한 사실관계를 확인해 주겠다”며 대학 동창인 변호사에게 바로 전화를 걸었다. 60대 후반의 남성은 이중과세가 됐다며 과세 철회를 요구했다. 이미 국민권익위원회에서 해당 지방 국세청에 시정을 권고했지만 국세청에서 “구속력이 없다”며 철회하지 않았다. 김 의원은 국회 기획재정위 소속 의원과의 면담을 약속했다. 종종 의원들 간의 ‘품앗이’로 서로의 민원을 해결한다고 했다. 김 의원은 “처음에는 내가 민원을 많이 들어주면 그게 다 표가 될 거라는 계산으로 민원의 날을 시작했다”면서 “그러나 어느 순간 변해 있었다. 정치에 도(道)가 있다면 이건 도량(道場·도를 닦는 곳)이다. 민원을 해결하는 자체가 중요한 게 아니라 그 과정에서 마음이 풀리게 하는 것이 정치”라고 강조했다. 허백윤 기자 baikyoon@seoul.co.kr
  • [커버스토리] 의원들 “장관님, 예산 약속하세요”… 국감은 민원 해소의 장

    [커버스토리] 의원들 “장관님, 예산 약속하세요”… 국감은 민원 해소의 장

    국회는 민원의 집합소로 불린다. 법안 심사, 국정감사, 예산 심사 등 국회에서 이뤄지는 모든 의정 활동이 ‘민원’과 관련돼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민원의 삼각편대인 ‘국회, 정부, 기업’은 서로 얽히고설킨 먹이사슬 관계를 형성하고 있다. ‘민원의 생태계’ 속에서 각자 나름대로의 생존법을 터득하며 균형을 이루고 있는 셈이다. ●국회와 정부… 편성 법률안 놓고 서로 견제 국회와 정부는 3권 분립의 원칙에 따라 국가를 지탱하는 두 축이다. 국회는 정부가 편성한 예산안을 심사하고, 정부는 국회가 제정한 법률안을 시행하며 서로를 견제한다. 이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물밑 ‘민원’이 오간다. 국회는 예산 편성권을 지닌 정부를 압박해 지역구 예산을 따낸다. 국회의 ‘대정부민원’ 이행 방식은 다채롭다. 의원들은 국정감사나 상임위원회 전체회의가 열릴 때마다 부처 장관을 상대로 지역구 사업 추진을 압박하며 예산 증액을 요구한다. 장관이 “검토하겠습니다”라고 답변하면 의원들은 “꼭 하겠습니다라고 하세요”라며 윽박을 질러 기필코 약속을 받아 낸다. 내년도 예산안 심사를 위해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가 가동되면 의원들은 동료 예결위원을 통해 ‘쪽지 예산’을 끼워 넣는다. 정권 실세들의 지역구에 예산 폭탄이 투하되는 것이 바로 이런 예산 민원을 통해서다. 의원별 돌려 막기식 예산 민원도 난무한다. 서로 다른 상임위원회 소속 의원끼리 서로 민원을 대신 해결해주는 방식이다. 정부가 하는 ‘대국회민원’은 주로 ‘입법 민원’이다. 정부가 새로운 정책을 집행하려면 관련 법률안이 반드시 국회 본회의를 통과해야 하기 때문이다. 정부 관계자들이 수시로 국회 의원회관을 들락날락하고, 여야 원내수석부대표 간 협상장에 나타나 협상 결과에 촉각을 곤두세우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유일호 경제부총리가 여야 지도부를 만나 추가경정 예산안 처리를 요청하는 것도 일종의 ‘민원’으로 볼 수 있다. ●국회와 기업… 입법 민원·인사 청탁 등 엮여 국회와 기업도 ‘민원’의 먹이사슬로 엮여 있다. 기업의 대관(對官) 담당자들은 기업을 옥죄는 법안이 국회에 제출되면 관련 상임위 의원과 접촉을 시도하며 통과를 저지하는 데 총력을 기울인다.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법 등 기업을 규제하는 법안들이 대표적이다. 반면 규제 프리존 특별법과 관광진흥법 등 규제를 완화하는 법안은 조속한 통과를 요구하며 ‘입법 민원’을 한다. 국정감사 때에는 자신이 속한 기업의 총수가 증인이나 참고인으로 채택되는 것을 막기 위해 모든 인맥을 총동원해 로비전을 펼친다. 의원들이 기업에 하는 민원은 주로 지역구 사업 유치와 관련돼 있다. 기업의 민원을 들어주는 조건으로 기업이 자신의 지역구에 각종 투자를 해 줄 것을 요청하는 식이다. 결국 선거에서의 득표와 관련돼 있는 셈이다. 이 밖에 일부 의원들은 기업에 골프 접대를 요청하거나 각종 제품을 무상으로 요구하기도 한다. 기업 채용에서 특혜를 달라며 인사청탁을 하는 의원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10대 그룹에 속하는 한 기업의 대관 담당자는 “의원들의 취업 민원이 적지 않다. 관련 상임위 소속 의원이 부탁하면 어쩔 수 없이 성의라도 보여야 하기 때문에 서류까지는 통과시켜 준 적이 있다”고 털어놓았다. ●정부와 기업… 法 따라 오늘은 적, 내일은 동지 정부와 기업 역시 필연적으로 민원을 주고받을 수밖에 없는 ‘밀월관계’에 있다. 정부는 각종 사회간접자본(SOC) 사업과 정책들을 현실화하려면 기업의 자본력이 필요하다. 기업은 정부가 추진하는 사업 입찰과 정부의 활성화 정책 등을 토대로 이윤을 추구한다. 기업의 대관 담당자들이 국회 못지않게 정부를 챙기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두 주체 사이에는 어김없이 국회가 있다. 이들은 사안에 따라 동지가 됐다가도 순식간에 적이 되기도 한다. 예를 들어 정부가 기업 규제 법률안을 제출하면 여론에 민감한 국회는 정부와 손을 잡는다. 기업도 당하고만 있지 않다. 기업은 정부의 과도한 규제 혹은 실책들을 의원들에게 ‘제보’한다. 의원들은 그 제보를 토대로 국정감사 등에서 정부에 대한 신랄한 비판을 가하며 ‘국감 스타’ 자리를 노린다. 이영준 기자 apple@seoul.co.kr 안석 기자 sartori@seoul.co.kr
  • [커버스토리] 하루 민원객 2000명… 전화 받다 의정 뒷전

    [커버스토리] 하루 민원객 2000명… 전화 받다 의정 뒷전

    2015년 한 해 국회 의원회관을 찾은 공식 방문자 수는 50만명에 육박했다. 주 5일제인 국회 업무시스템을 기준으로 하면 하루 평균 2000여명의 민원인이 국회 의원회관을 방문한 셈이다. 300명의 의원실로 단순히 나눠도 하루 평균 6~7명의 방문객이 의원실을 찾는다. 그러나 통계에 잡히지 않는 상시 출입 대관(對官) 업무 담당자들을 합칠 경우 의원실을 찾는 사람들의 수는 더욱 늘어난다. 한 의원실 관계자는 “의원실에 전화하고 방문하는 대관 담당자는 초짜”라면서 “진짜 잘하는 대관 담당자들은 의원실에 입법보조원으로 등록해 상시 출입한다”고 말했다. 의원이 상임위원장이나 국회 의장직 등 각종 직을 가질 경우에는 이런 방문자 수가 배로 늘어난다. 한 상임위원장실 관계자는 “상임위원장이 된 이후 30분 단위로 위원장실을 찾는 방문객들의 약속이 밀려 있다”면서 “각종 민원도 배로 늘어났다”고 말했다. 다른 의원실 관계자는 “업무 시간 중에는 의원실을 방문하는 사람들을 응대하거나 민원 전화를 처리하다 시간을 다 보낸다”며 “의정활동을 위한 일은 뒷전”이라고 하소연했다. 의원회관을 찾는 방문자는 각종 피감기관의 임직원, 대관 담당자, 민원인, 의원실 주최 세미나 참석자 등 다양하다. 매년 의원회관을 찾는 방문자의 수는 늘어나고 있는 추세다. 강윤혁 기자 yes@seoul.co.kr
  • [커버스토리] 윽박지르고 거짓 인연 만드는 민원인… “심부름센터 직원과 다름없죠”

    여야 국회의원 대신 각종 민원을 처리해야 하는 보좌진은 ‘심부름센터 직원’과 다름없다고 하소연한다. 이들 대부분은 민원 내용보다 민원인들의 태도 때문에 전전긍긍하는 ‘감정 노동자’이기도 하다. 한 야당 의원 보좌관은 “의원실로 찾아와 다짜고짜 의원을 만나겠다고 해서 ‘안 계신다’고 했더니 ‘의원이 오전 9시 출근, 오후 6시 퇴근해야 하는 것 아니냐. 세금 도둑놈’이라고 큰소리치는 경우도 있었다”고 어려움을 토로했다. 또 다른 보좌관은 “한 지역 주민이 아랫집에서 본드 냄새가 난다고 경찰에 신고해 달라고 해서 신고했는데 결국 사실이 아닌 것으로 밝혀졌다”면서 “이후 이 주민은 주기적으로 의원실에 전화를 걸어 무리한 요구를 한다”고 난감해했다. 이렇듯 다자고짜 욕설부터 하는 민원인, 버럭 화를 내는 민원인, 무리한 요구를 하며 “들어주지 않으면 가만히 있지 않겠다”면서 으름장을 놓는 민원인들이 적지 않다고 한다. 하지만 “제 고향이 (의원님과 같은) ○○이다”, “의원님과 △△행사에서 만난 적 있다”, “선거 때 지역에서 몇 표를 끌어다 줬다”는 등 개인적 인연을 들먹이는 탓에 함부로 응대하기도 쉽지 않다는 것이다. 자칫 의원 얼굴에 ‘먹칠’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 국회의장단 소속 의원실 보좌관은 “거짓 인연을 내세워도 이를 지적하면 다른 꼬투리를 잡을까 봐 모른 척 넘어가기도 한다”고 귀띔했다. 특히 밀려드는 민원 탓에 대다수 여야 의원실은 ‘민원 담당자’를 별도로 지정해 두고 있다. 한 민원 담당 보좌관은 “하루 일과의 절반 이상을 민원 전화를 받고 이를 해결하는 데 쓴다”면서 “정작 주어진 업무는 일과 시간이 끝난 뒤에 처리할 수밖에 없다”며 고충을 털어놨다. 여당 중진 의원 보좌관은 “민원을 무리하게 처리하려다 보면 큰일난다. 특히 공공기관은 내부게시판에 청탁 내용을 올리기도 한다”면서 “민원은 선거 직후 특히 많고 선거가 닥칠 때는 안 해 주면 두고 보자는 식”이라고 말했다. 야당 의원실 소속 보좌관은 “업무 부담이 매우 크다. 되든 안 되든 성의를 보여야 하기 때문에 안 되면 왜 안 되는지, 어떤 절차를 거쳐야 하는지 등을 자세히 설명해 줘야 한다”면서 “스스로 해결할 수 없어 의원을 찾는 민원도 적지 않아 ‘해결’보다는 ‘위로’를 잘 해드리는 게 효과적인 상황이 더 많다”고 설명했다. 김민석 기자 shiho@seoul.co.kr 김진아 기자 jin@seoul.co.kr 강윤혁 기자 yes@seoul.co.kr
  • [커버스토리] 생떼 쓰고 협박하고… 질서 무시한 청탁에 국회는 만신창이

    [커버스토리] 생떼 쓰고 협박하고… 질서 무시한 청탁에 국회는 만신창이

    여야 국회의원들은 각종 악성 민원에 시달린다. 시쳇말로 힘없고 ‘백’(배경) 없는 사람들이 손쉽게 하소연할 수 있는 창구가 지역구 의원이라지만, 민원으로 포장된 탈법·편법 청탁도 적지 않다. 가장 골치를 썩이는 민원은 취업과 승진, 전보와 같은 인사 청탁이다. 한 의원은 “총선 직후라 선거 지원을 빌미로 한 인사 청탁이 하루에도 몇 건씩 들어온다”면서 “무작정 도와 달라고 요구하고 은근히 협박을 하기도 한다”고 귀띔했다. 이는 청탁 과정에서 뒷돈이 오가는 ‘검은 거래’라기보다는 청탁자의 일방적인 ‘읍소형 요구’에 가깝다. “우리 아들이 △△에 지원했는데 거기 인사 담당자가 ○○○, 연락처가 010-XXXX-XXXX이니 전화 한 통 넣어 달라”, “어디든 좋으니 우리 손주 취직 좀 시켜 달라”, “딸이 A 공기업 지방지사에서 근무하고 있는데 서울로 옮길 수 있도록 해 달라” 등의 식이다. 정부 사업 수주나 처벌 면제와 같은 부정 청탁도 적지 않다. “이번에 ○○부처 공모 사업에 신청했는데 낙찰받을 수 있도록 해 달라”, “주정차 위반 과태료를 부과받았는데 면제받도록 해 달라” 등이다. 이에 대해 한 의원은 “할 수도 없고 해서도 안 되는 민원”이라면서 “면전에서 거부할 수 없어 ‘알아보겠다’는 식으로 대응한다”고 말했다. 각종 편의를 봐 달라는 요청도 다반사다. “항공권을 업그레이드해 달라”, “공연 티켓 좀 구해 달라”, “콘도를 예약해 달라”, “물건 좀 싸게 살 수 있게 해 달라”, “병원 입원실을 빨리 잡아 달라”, “어린이집 대기순번을 좀 당겨 달라” 등이 대표적이다. 청탁자 입장에서는 금전적·시간적 편익만 챙기기 때문에 대수롭지 않게 여길 수 있지만 우리 사회에서 통용되는 각종 규율과 질서를 허무는 행위라고 할 수 있다. 심지어 자기 소유 부동산 가격을 올려 달라는 요구도 심심찮게 들어온다고 한다. 또 여야 지도부나 이름값 높은 중진 의원들을 괴롭히는 대표적인 민원은 ‘화환 요구’다. 여당의 한 중진 의원은 “전국적으로 하루 5~6개 정도의 화환 요청이 들어온다”고 전했다. 화환 개수 등을 경조사 주관자의 사회적 위신과 연결 짓는 왜곡된 시각 탓으로 해석된다. 지역구에서 ‘배지’를 놓고 경쟁하는 상대 후보들의 ‘낚시 민원’은 의원들과 보좌관들의 ‘경계 1순위’다. 불법 또는 편법 없이는 처리가 불가능한 민원을 끊임없이 제기한 뒤 해당 의원이 문제를 해결하면 선거운동 과정에서 “불법을 저질렀다”, “갑질을 했다”는 식으로 관련 내용을 악의적으로 유포한다는 것이다. 한 의원실 보좌관은 “신입 보좌관들이 민원 해결에만 몰두하다 실수를 하게 되는 경우도 적지 않다”고 말했다. 의원들의 정상적인 ‘입법 활동’으로 포장된 특혜 제공 요구도 있다. 특정 단체가 특별법 제정을 통해 지원의 근거를 마련해 달라는 식이다. 한 의원은 “구한말에 채권을 샀는데 시효가 만료돼 돈을 받지 못했다며 특별법을 만들어 보상해 달라는 요구도 있다”고 전했다. 민원 유형도 시대에 따라 달라진다고 한다. 예전에는 “군대를 빼 달라”는 민원이 가장 많았지만 요즘은 거의 사라졌다는 것이다. 오히려 “내 아들이 어떻게 하면 빨리 입대할 수 있느냐”는 등의 문의가 늘었다고 한다. 최근에는 대출 관련 민원이 급증하고 있다. 신용불량자라 대출이 안 되는데 가능하도록 해 달라거나, 대출 금리를 낮춰 달라거나, 보험사가 지급을 거부한 보험금을 수령할 수 있도록 해 달라는 식이다. 의원들은 이를 ‘들어줄 수도 무시할 수도 없는’ 민원 유형으로 꼽는다. 한 여당 의원은 “은행권이 아닌 지인을 통해 돈을 무이자로 빌려 달라는 사람도 있다”면서 “이 사람이 시시때때로 찾아와 생떼를 쓴다”며 혀를 내둘렀다. 허백윤 기자 baikyoon@seoul.co.kr 장진복 기자 viviana49@seoul.co.kr 송수연 기자 songsy@seoul.co.kr
  • [커버스토리] 국회는 ‘민원종말처리장’

    [커버스토리] 국회는 ‘민원종말처리장’

    새달 28일 김영란법 앞두고 공익성 여부가 부정청탁 잣대 국회는 ‘민원 종말처리장’으로 불린다. 우리 사회의 모든 민원이 국회로 몰린다는 얘기다. 그만큼 국회의원들이 각종 민원을 해결해 줄 막강한 권한과 권력을 쥐고 있다는 의미도 된다. 의원들 역시 너도나도 ‘민원 해결사’임을 자처한다. 다음달 28일부터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김영란법)이 시행되면 국회로 쏟아지는 민원이 ‘퇴출’ 대상이 될지 관심이 쏠린다. 아직 그 운명을 예단하긴 이르다. 민원의 공익성 여부가 부정청탁 여부를 가르는 기준이 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민원 해결’이 지역구를 대표하는 의원의 고유 임무로도 볼 수 있기 때문에 일부 사익성 민원도 부정청탁에 해당하지 않을 수 있다. 민원의 내용을 살펴보면 우리 사회의 가려운 곳을 긁어 달라는 ‘착한 민원’만 있는 게 아니다. 해결 불가능한 ‘악성 민원’의 비중도 상당하다. 일종의 로비성 ‘인사 청탁’도 부지기수다. 의원들이 국회 본회의장에서 인사 청탁 문자메시지를 주고받다 카메라에 딱 걸리는 사례가 물밑 청탁이 비일비재하게 이뤄지고 있음을 증명한다. 여당의 한 3선 의원은 19일 “공무원 승진을 청탁하는 민원이 가장 많다”면서 “대놓고 500만~1000만원을 주겠다는 사람도 있다”고 털어놓았다. 민원인도 ‘두 얼굴’이다. 순수하게 애로 사항에 대해 민원을 제기하는 사람도 있지만 들어주지 않으면 선거 때 찍지 않겠다며 협박에 가까운 민원을 제기하는 사람도 있다. 때문에 의원들에게 민원인은 딜레마가 된다. 의원들의 반응도 제각각이다. 어떤 의원은 김영란법이 시행되면 민원 스트레스에서 벗어날 수 있다며 반기고 있고 어떤 의원은 지역구 주민들의 민원을 해결하지 못하게 되면 차기 선거에서 당선이 어려워질 수 있다며 걱정하고 있다. 김영란법 처리 당시 국회 정무위 여당 간사였던 김용태 새누리당 의원은 “민원 가운데 어디까지가 합법이고 어디까지가 불법인지 명확하게 모르겠다”면서 “의원들의 지역구 활동이 상당히 위축될 것”이라고 말했다. 야당의 한 4선 의원은 “민원을 해결해 주지 못하면 민원인으로부터 ‘건방져졌다’, ‘변했다’는 등 온갖 욕을 먹게 된다”면서 “민원 수렴은 지역구의 민생을 살피는 일인데 그것마저 부정청탁으로 분류하는 것은 심한 것 같다”고 말했다. 허백윤 기자 baikyoon@seoul.co.kr 송수연 기자 songsy@seoul.co.kr
  • [커버스토리] 한물간 여론조사… 빅데이터가 답 될까

    美, 유권자가 선관위에 직접등록 성향 파악 韓, 유권자 정보 합법 확보 불가능 통 단위 선거지리학 기법 효과 기대 2012년 대선 당시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마이크로 타기팅’(Micro Targeting) 전략으로 재선에 성공했다. 페이스북에 담긴 유권자의 성별과 나이·관심사 등에 따라 홍보 메시지를 달리한 게 주효했다. 갓난아기를 둔 30대 여성이 환경보호 포스팅에 ‘좋아요’를 누르면 환경 공약을 이메일로 보내는 식이다. 빅데이터 기술은 이미 정치 분야에도 깊이 들어왔다. 국내 빅데이터 전문가인 고한석 빅토리랩 대표는 “미국은 전체 유권자를 대상으로 ‘우리 당을 지지할 확률’, ‘투표장에 갈 확률’, ‘지지 후보를 바꿀 확률’ 등 3가지를 분석하기 때문에 선별해서 선거운동을 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한국은 좀 다르다. 우선 유권자 정보를 합법적으로 확보할 수 없어 정보의 질이 떨어진다. 반면 미국은 사업자가 정보 주체의 동의 없이 개인정보를 처리하는 사후 거부 방식(옵트아웃)을 채택해 선거캠프와 기업 간 정보 거래가 가능하다. 당사자가 거부 의사를 밝히면 그때 중단하면 된다. 이 외에도 미국은 유권자가 선거관리위원회에 유권자 등록을 직접 하기 때문에 지지 정당, 과거 투표 성향 등 몇 가지 사항도 파악할 수 있다. 이런 척박한 상황에서 고 대표는 ‘마이크로 선거지리학’이라는 이름의 작업을 한다. 보통 10개의 동으로 이뤄지는 하나의 선거구를 통 단위로 쪼개 정치지형을 분석하고 어떤 지역에서 유세하는 게 득표를 극대화하는지 분석한다. 고 대표는 “이번 총선에서 새누리당의 압승을 예측했던 여론조사 방식은 기법 자체가 의심받는 상황”이라면서 “선거지리학 기법을 사용하면 어느 지역에 소극적 지지자가 몰려 있는지 알 수 있다”고 밝혔다. 대선이 1년여 앞으로 다가왔지만 빅데이터에 대한 정당들의 움직임은 없다. 지도부가 당장 돈을 들여 데이터 축적 작업을 해도 단기적으로 효과가 크지 않기 때문이다. 결국 지난 총선 때처럼 안심번호를 통한 여론조사 등에 의존할 것이라는 전망을 전문가들은 내놓는다. 이범수 기자 bulse46@seoul.co.kr
  • [커버스토리] 디지털 셜록 홈스 “누가 아파트 관리비 횡령했는지 알고 있다”

    [커버스토리] 디지털 셜록 홈스 “누가 아파트 관리비 횡령했는지 알고 있다”

    2012년 11월 17일 새벽 5시 30분, 미국 뉴욕의 한 음식거리 뒷골목. 해산물 레스토랑의 보조 주방원인 파블로 로드리게스(26·가명)가 큰 들통을 끌고 나왔다. 불안한 눈동자로 좌우를 살핀다. 아무도 없다. “하긴 토요일 새벽에 누가 있겠어.” 혼잣말을 내뱉고는 들통의 노란 액체를 하수구로 흘렸다. 폐식용유였다. 식용유 무단 방류는 불법이다. 그때 누군가 로드리게스의 뒷덜미를 잡아챈다. “당신이 버릴 줄 알았어.” 뉴욕시청 환경보호국 소속 단속반원 잭 포드(46·가명)였다. 그는 어떻게 로드리게스의 행동을 예측했을까. 답은 뉴욕시의 빅데이터 행정 시스템에 있다. 2012년 뉴욕시 데이터분석국장으로 영입된 마이클 플라워스는 뉴욕 배수관 막힘 원인의 50% 이상인 폐식용유 무단 방류 해법을 찾기 위해 레스토랑 소득세 기록과 폐식용유 처리 기록을 비교했다. 매출보다 폐식용유 합법적 처리량이 현격히 적은 업체 주변에 단속반원을 잠복시켰고 적중률은 95%에 달했다. 미 언론 뉴욕타임스는 이를 두고 ‘디지털 셜록 홈스’라며 칭찬했다. 빅데이터 행정은 남의 나라 얘기가 아니다. 중앙정부는 물론 서울과 경기 등 자치단체도 쌓아 놨던 데이터를 활용하기 시작했다. 범죄, 화재 등 위기 발생 가능성을 예측하거나 데이터 행간을 읽어 숨은 부조리를 찾는다. 정부와 지자체의 빅데이터 행정 사례를 살펴봤다. ●범죄·위험 예측 크고 작은 위기 가능성을 데이터로 미리 읽고 대응하려는 노력이 눈에 띈다. 경찰의 범죄예측시스템 ‘지오프로스’가 대표적이다. 할리우드 영화 ‘마이너리티 리포트’(2002)처럼 ‘예정된 범인’을 특정할 순 없지만 한 지역의 범죄 발생 가능성을 예측할 순 있다. 지오프로스는 죄종별 범죄 발생 위치와 시간, 특정지역의 유동인구와 가구소득, 폐쇄회로(CC)TV 수, 유흥업소 현황, 당일 기상정보 등의 데이터와 전국을 37만여개 블록으로 나눈 지도를 연동시켜 범죄 가능성을 1부터 100 사이 숫자로 표현한다. 예컨대 가구 소득이 높거나 유흥업소가 많으면 범죄 가능성이 높다고 해석한다. 경찰 관계자는 “지구대원들이 마을 곳곳을 무작정 순찰하는 대신 범죄 가능성이 큰 곳 위주로 영리하게 돌아볼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봄·가을철 공포의 대상인 산불도 산림청의 ‘산불 위험지수’를 참고해 미리 막을 수 있다. 산불위험지수는 1991년 이후 발생한 산불 1만여건의 정보를 분석해 만들었다. 산불 발화·확산에 영향을 미치는 기온과 습도, 풍속 등 기상요소와 특정 산의 고도, 경사면의 방향, 나무 종류 등 지역요소 등 10가지 인자 데이터가 알고리즘(컴퓨터로 답을 얻기 위해 만든 연산 공식)을 만드는 데 이용됐다. 이 공식으로 48시간 내 3490여개 읍·면·동에서 산불이 날 가능성을 예보한다. 예를 들어 일조량이 많아 건조해지기 쉬운 산의 남쪽 사면이 북쪽 사면보다 산불 가능성이 높고, 송진 탓에 불이 잘 붙는 소나무 등 침엽수가 많으면 자연발화 가능성을 높게 본다. 산림청은 관심(50 미만), 주의(51~65), 경계(66~85), 심각(86 이상) 단계로 구분해 산불 예보를 하고 심각 단계이면 감시인원을 늘린다. 산림청 관계자는 “올해 2~5월 산불 중 87%가 경계 또는 심각 단계일 때 발생했다”며 높은 적중률을 자랑했다. ●부조리 감시 감춰진 비리를 찾아낸다. ‘난방비 열사’로 주목받은 배우 김부선씨는 비리를 찾겠다며 관리소 측과 몸싸움까지 벌였지만 빅데이터 분석만으로도 공동주택 관리비의 부조리 정황을 찾을 수 있다. 행정자치부와 경기도는 안양시 160개 공동주택 단지를 대상으로 관리비가 적정한지 따졌다. 한국전력 등으로부터 전기료와 난방비, 수도료 등 47개 항목 데이터를 받은 뒤 아파트 단지들이 입주자에게 부과한 관리비와 비교했다. 차이가 현격한 아파트 단지 위주로 실사했더니 관리비 부정 사례가 많았다. 박연병 행자부 공공정보정책과장은 “빅데이터를 토대로 비위 행위를 감시하면 무작위 현장 실사를 다닐 때보다 인력과 시간 투입이 주는 등 효율성이 있다”고 말했다. 고용노동부도 고용·산재 다발 사업장 정보와 건강보험체납 내역, 장애인 지원 현황 등 빅데이터를 토대로 부당근로사업장을 찾아낸다. ●교통·상가 등 시민 편의 분석 빅데이터로 시민들의 생각을 읽어 편의를 끌어올린 행정 사례도 많다. 서울시 공공 심야버스인 ‘올빼미 버스’가 대표적이다. 시는 2013년 이 노선을 2개에서 8개로 늘릴 때 노선 선정을 위해 빅데이터를 활용했다. 시 통계데이터 전문가들은 우선 법인·개인택시에 설치된 디지털통합운행데이터(DTG) 기록을 통해 자정부터 오전 5시까지 수요가 많은 목적지와 행선지를 파악했다. 통신사 KT에서 심야 통화기록 30억여건을 얻어 고객이 전화를 건 위치와 주소지를 비교해 귀갓길을 파악했다. 자영업자를 위해 골목상권을 분석한 ‘우리마을가게 상권분석서비스’도 있다. 중국집, 편의점 등 43개 생활밀착업종의 카드매출, 임대시세 등 빅데이터 2000억개를 분석해 어떤 지역에 특정 업종을 신규 창업하면 성공 확률이 얼마나 되는지 등을 보여준다. 서울시는 빅데이터와 사물인터넷(IoT) 등 정보화사업에 올해 모두 2178억원을 투자하는 등 행정 인프라 구축에 공을 들인다. 유대근 기자 dynamic@seoul.co.kr
  • [커버스토리] 빅데이터, 사람을 ‘실험실 쥐’ 만든다?

    신원 노출 위험… 암호화·분산 저장 필수 2014년 6월 발표된 논문 한 편에 세상이 경악했다. 페이스북이 2012년 비공개로 벌인 ‘감정조작 실험’ 결과가 유력 학술지인 미국 국립과학원회보(PNAS)에 실렸다. 68만 9003명이 영문도 모르는 채 실험 대상이 됐다. 실험 내용은 이랬다. 페이스북은 어떤 이용자들을 부정적인 게시물만 보도록 하고, 어떤 이용자들은 긍정적인 게시물만 보도록 조작했다. 그 결과 긍정적인 단어를 많이 접했을 때 이용자들이 ‘좋아요’를 누르거나 긍정적인 내용의 글을 남기는 빈도가 높았다. 반대로 부정적인 단어가 많을 때에는 부정적인 내용의 글을 쓰거나 ‘좋아요’를 거의 누르지 않았다. 빅데이터는 개인이 인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사람들을 ‘실험실 쥐’와 같은 존재로 만들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페이스북의 감정 조작 실험이 대표적인 예가 될 수 있다. 당시 페이스북은 임의로 사람들의 감정을 바꾸는 등 무의식 상태의 심리 조작을 했다는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최근 개봉한 영화 ‘제이슨 본’에 등장하는 ‘딥 드림’이라는 인터넷 회사는 빅데이터가 ‘빅브러더’가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조지 오웰의 소설 ‘1984’에 등장하는 빅브러더는 정보 독점으로 사회를 통제하는 관리 권력을 의미한다. 영화에서 미 중앙정보국(CIA)은 전 세계 수억명의 이용자가 있는 딥 드림의 사생활 정보를 제공받아 감시 시스템을 구축했다. 회사의 최고경영자(CEO) 칼루어는 죄책감에 시달리다 CIA의 새로운 제안을 거절하고 갈등을 겪는다. 실제로 트위터, 페이스북 등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와 스마트폰, 웨어러블 기기 등의 확산으로 개인정보의 유통과 수집은 점점 쉬워지고 있다. 그동안은 한 사람의 데이터가 각기 연관성 없이 흩어져 있었다면 빅데이터로는 충분히 한 사람의 일상을 그려낼 수 있게 됐다. 특히 사물인터넷(IoT) 기술의 발전은 이용자의 이동경로, 습관, 기호 등을 실시간으로 모니터링할 수 있게 해 위험성을 높이고 있다. 전문가들은 빅데이터 산업 활성화와 개인정보 보호 사이에서 적절한 균형점을 찾아야 한다고 지적한다. 지난 6월 정부가 발표한 ‘개인정보 비식별 조치 가이드라인’은 논란의 불을 지폈다. 이은우 정보인권연구소장(변호사)은 “정부가 말하는 비식별화는 개인정보에 일부 모자이크 조치를 하고 사용하자는 것인데, 다른 정보와 결합하면 충분히 누구인지 알아낼 수가 있다”며 “현재 빅데이터 산업은 대기업의 배를 불리기 위한 것이지 이용자에 대한 고민은 빠져 있다”고 지적했다. 최정환 K-ICT 빅데이터 센터장은 “해외의 경우 ‘데이터 브로커’가 존재할 정도로 빅데이터 산업이 활성화돼 있지만, 우리나라의 경우 개인정보보호법에 막혀 성장에 한계가 있는 상황”이라며 “비식별화 조치를 해도 가이드라인 형태이기 때문에 기업이 부담을 느낄 수밖에 없는 만큼 암호화 기술이나 사용자 정보를 여러 장소에 분산 저장하는 방법 등이 마련돼야 한다”고 말했다. 윤수경 기자 yoon@seoul.co.kr
  • [커버스토리] 마음 들여다보는 빅데이터… HP, 누가 사표쓸지 미리 알았다

    [커버스토리] 마음 들여다보는 빅데이터… HP, 누가 사표쓸지 미리 알았다

    2011년 세계적인 PC 제조회사 휼렛패커드(HP)에는 말 못할 비밀이 있었다. 연간 1270억 달러에 이르는 매출액, 전 세계에서 27번째로 직원이 많은 회사(33만명)로 탄탄대로를 달리고 있었지만, 퇴사율이 20%에 달했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HP의 데이터 분석가 기탈리 할데르가 나섰다. 그는 ‘직원들 중 사표를 낼 확률이 높은 사람’을 예측하는 모델을 개발해 냈다. 전체 직원의 과거 2년간 급여와 임금 상승폭, 직무평가, 직무순환, 최종학력 등 데이터가 활용됐다. 결과는 흥미로웠다. ‘이직 위험’ 상위 40%에 퇴사자의 75%가 포함돼 있었다. 승진은 했으나 이에 따르는 임금 인상이 적을 경우 승진의 역효과를 발생시켜 이직률이 높았고, 반면에 직무순환이 많은 직원은 회사에 오래 다니는 것으로 나타났다. 데이터는 ‘주어진 것’이란 어원을 가지고 있다. HP는 이미 주어진 데이터를 활용해 직관을 검증했다. HP는 빅데이터 분석 결과를 이용해 직원을 붙잡아두는 전략을 세우고 이직에 대비한 보충 계획을 세웠다. 먼 나라 이야기가 아니다. 이미 우리나라에서도 동네 샌드위치 가게부터 대기업까지 빅데이터를 기반으로 미래를 예측해 움직이고 있다. 대기업의 빅데이터 분석은 특정 집단이 아닌 개인에 대한 예측 분석이 가능한 수준에 이르렀다. KT는 지난 3월 소비자 개인 맞춤형 모바일 쇼핑 애플리케이션(앱) ‘쇼닥’을 출시했다. 연령, 성별, 지역뿐 아니라 시간대별 쇼핑 특성, 최근의 관심도 등 빅데이터를 분석해 고객을 분류하고 상품을 추천하는 알고리즘을 만들어 냈다. 카카오의 음악 서비스 ‘멜론’은 빅데이터를 이용해 이용자별 감상 이력 분석 등으로 맞춤형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개인의 음악 감상 횟수를 비롯해 감상 패턴, 선호 장르, 아티스트 취향 등을 세밀하게 분석하고 ‘나만의 차트’를 추천한다. 한화생명도 빅데이터를 이용해 고객이 이탈할 가능성을 예측하거나 기존 설계사가 그만둘 때 새로운 설계사를 효과적으로 배정하는 시스템을 구축하고 있다. 빅데이터로 고객의 소득이나 추가가입 가능성을 수치화해 마케팅에 활용한다는 계획이다. 빅데이터와 무관하다고 여겨졌던 제조업계도 글로벌 경제 위기와 신흥국 부상 속에서 거대한 데이터 더미를 활용해 경쟁력 확보에 나섰다. 포스코는 가격 변동이 큰 철광석 등의 자원을 제때 조달하기 위해 데이터 분석을 통한 최적의 구매 시기와 가격대를 결정하고 있다. 남미와 호주 광산의 상황, 런던 금속거래소의 광물 가격 데이터를 분석해 미래의 철광석 가격을 예측하고 있다. 현대중공업 역시 제조 장비나 공정에 소요되는 부품별 상태 정보, 중장비 시설이나 첨단 제품 설비 운영에서 발생하는 데이터 등을 수집해 고장이나 장애 예측을 추진하고 있다. 대기업들이 빅데이터를 활용해 산업의 효율성을 높이는 것과 달리 자금·인력이 상대적으로 달리는 중소기업에 빅데이터 활용은 여전히 한계가 있는 게 사실이다. 최근 중소기업들의 빅데이터 컨설팅을 돕는 기업이 늘고 있고 정부도 ‘중소기업 빅데이터 활용지원 사업’ 등을 통해 중소기업을 돕고 있다. 샌드위치 프랜차이즈 업체인 죠샌드위치는 신메뉴 개발에 빅데이터를 활용하고 있다. 최신 뉴스와 트위터, 블로그 등에 올라온 샌드위치와 관련된 소비자 인식을 분석했다. 그 결과 사람들이 샌드위치를 먹는 공간이 카페, 공원이 아닌 집이라는 사실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의 ‘집밥’ 언급량이 2011~2015년 사이 5배 정도로 대폭 상승했다는 것을 알게됐다. 또 도넛, 햄버거와 달리 샌드위치가 ‘따뜻하다’, ‘건강하다’는 측면에서 집밥의 연관어와 겹쳐진다는 점을 발견했다. 이에 죠샌드위치는 이탈리아어로 ‘집빵’이라는 이름의 신제품 ‘빠네디까사’를 출시했고 판매량이 16% 증가했다. 화상영어 업체인 와신교육은 원어민 화상영어 서비스인 ‘스테디톡’을 출시하고 취업이나 유학을 준비하는 대학생과 직장인을 상대로 홍보했지만 성과는 기대 이하였다. 와신교육은 지난 1년간 SNS를 바탕으로 타깃 분석에 나섰다. 결과는 놀라웠다. 화상·전화영어를 가장 많이 언급한 그룹이 직장이나 대학생이 아닌 어린이·초등학생 그룹이었기 때문이다. 와신교육은 바로 ‘주니어 맞춤 과정’을 개설하고 초등학생 학부모를 대상으로 홍보에 나섰다. 그 결과 한 달 만에 회원 수가 8% 증가하고 총 수강시간도 18%가 늘었다. 함유근 건국대 경영대학 교수는 “예측을 잘한다는 것은 결국 의사 결정을 잘한다는 것과 같다”며 “하지만 데이터만 많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 경쟁력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분석에 대한 경험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윤수경 기자 yoon@seoul.co.kr
  • [단독] [커버스토리] 인류·미래 읽는 빅데이터 ‘디지털 노스트라다무스’다

    [단독] [커버스토리] 인류·미래 읽는 빅데이터 ‘디지털 노스트라다무스’다

    시장 규모 4년 내 1조 1730억 ‘마트에서 기저귀를 산 남성의 마음속에 맥주 생각이 간절함을 읽고 상품을 권한다.’ ‘유능한 직원이 2년 안에 사표 쓸 것을 예측해 급여를 올려주는 등 공을 들인다.’ ‘오늘 밤 어디서 범죄가 일어날지 예측해 경찰을 배치한다.’ 사람의 생각이나 다가올 미래를 읽으려는 인류의 오래된 꿈이 현실이 되고 있다. ‘지식산업의 원유’로 평가받는 빅데이터 덕이다. 기업과 행정기관 등은 쏟아져 나오는 데이터 속에서 상거래와 이동 동선, 부정행위 등 반복되는 행동 패턴을 찾아 ‘계산법’(알고리즘)을 만들고 미래를 예측한다. 특히 인공지능은 매일 새로 제공되는 빅데이터를 교과서 삼아 스스로 학습(머신러닝)해 예측 능력을 더욱 키울 수 있다. 인류가 평생 쌓아온 전체 데이터양을 불과 2년 안에 쌓을 수 있는 시대라 가능한 일이다. ‘디지털 노스트라다무스’의 시대가 온 것이다. 기업들은 빅데이터를 활용한 예측 분석을 통해 소비자 행동을 예상해 대응한다. 미국의 약국형 편의점 체인인 ‘오스코 드러그’는 저녁 시간 쇼핑 행태를 분석한 결과 남성이 기저귀를 사면 육아 스트레스 탓에 맥주도 살 가능성이 높다는 패턴을 발견했다. 또, 정보기술(IT)회사인 휼렛패커드사는 직원 33만명의 2년간 급여와 임금인상, 직무평가, 직무순환 데이터를 기반으로 개인별 퇴직 가능성을 평가해 인사 관리에 활용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국내 대기업도 빅데이터로 미래를 읽으려고 노력 중이다. 포스코는 해외 광산 동향, 런던금속거래소 가격 등 철광석 가격에 영향을 주는 변수를 분석해 철광석 구매의 최적 타이밍과 가격대를 결정한다. 대우조선해양은 조선·해운·선박과 관련한 수많은 데이터를 분석해 선박 수요를 예측하고 있다. 빅데이터 예측은 보건·치안 등 공공분야에서도 유용하다. 미국 캘리포니아 산타크루즈카운티는 8년간 지역 범죄 기록을 토대로 범죄자의 행동패턴, 점포 영업시간 등의 요인과 범죄 발생과의 상관성을 분석해 범죄 가능성을 예측하고 있다. 우리 경찰도 범죄예측프로그램인 ‘지오프로스’를 개발해 순찰 때 활용 중이다. 구글은 검색용어 5000만개와 독감 바이러스의 확산 패턴 사이의 상관관계를 분석해 보건당국보다 먼저 독감 유행을 파악하는 ‘구글 독감 트렌드’를 개발하기도 했다. 기업과 행정 분야에서 빅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예측 사업이 떠오르면서 관련 시장 규모도 급성장하고 있다. 한국정보화진흥원에 따르면 2013년 1643억원이던 국내 빅데이터 시장 규모는 2014년 2013억원, 지난해 2623억원으로 2년 새 59.6% 성장했다. 2020년에는 1조 1730억원 규모가 될 전망이다. 시장이 커지면서 전문가 수요도 는다. 지난해 빅데이터 비즈니스 기업 100개 사를 기준으로 조사한 설문에 따르면 지난해 918명이던 빅데이터 관련 인력은 2018년 2030명으로 2.2배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유대근 기자 dynamic@seoul.co.kr 윤수경 기자 yoon@seoul.co.kr
  • [커버스토리] 한정식집은 어쩌다 쌀국수집이 됐나

    [커버스토리] 한정식집은 어쩌다 쌀국수집이 됐나

    “장원에서 있었던 일을 절대 발설하지 마라.” 한정식의 대모, ‘장원’의 주인 고 주정순 사장이 남긴 이 마지막 유언에는 낭만과 풍류, 음모와 공작이 뒤엉킨 지난 시절 정치의 음습한 공기가 서려 있다. 종업원만 한때 100여명에 이를 만큼 위세를 떨쳤던 한정식집 ‘장원’. 역대 대통령들과 이병철, 정주영 회장에 이르기까지 내로라하는 거물급 인사들이 모두 단골손님이었다. 지난 반세기 우리에게 한정식집은 그 자체로 우리 사회의 자화상이었다. 시대 변화의 물결에 떠밀리면서도 힘겹게나마 서울 골목골목에서 명맥을 이어 온 한정식집들은 앞으로 김영란법 시행을 맞아 어떤 변화를 겪게 될까. 구한말 이후 한국 근현대사의 ‘야사’를 간직해 온 궁중요릿집과 요정 그리고 한정식집들의 흥망성쇠를 짚어본다. 박정희 정권 이후 한 시대를 풍미했던 한정식집들에 진한 석양이 깃들었다. 일본 기생 관광의 온상이 됐던 요릿집(요정)들의 화려했던 위용은 오래전 옛일이 됐고 정·재계 인사들의 은밀한 대화를 품어온 콧대 높은 한정식집들도 진작 쇠락의 길로 접어들었다. 여성 접대와 풍악을 빼고 오롯이 맛깔스러운 음식에만 집중해 온 지금의 ‘한정식집’도 오는 9월 시행되는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김영란법) 앞에서 존망을 걱정하는 처지가 됐다. 1980년대 서울 인사동에서 시작해 30년 넘게 한정식집을 운영해 온 여사장 A(61)씨는 5일 “인사동 시절엔 잘나갔다. YS(김영삼), JP(김종필), 정주영 회장이 우리 집을 많이 찾았다”면서 “박근혜 대통령도 자주 왔었는데 이렇게 (김영란법 추진으로) 망하게 하니까 솔직히 서운하다”고 말했다. 한정식집의 기원과 역사에 대해서는 많은 설들이 존재하지만 유흥이 강조된 요릿집과 혼용해서는 안 된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주영하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는 “한정식은 원래 서양 코스요리에 대응해 정부에서 만들어 낸 말”이라고 했다. 1988년 서울올림픽이 계기가 됐다. 상다리가 휘어지게 올려놓는 것을 기본으로 하는 우리 잔칫상과 달리 가짓수를 줄인 한식을 코스 요리로 내놓자는 캠페인에 가까웠다. 주 교수는 “5·16 군사 쿠데타 당시 고급 비밀 요정이 서울 도심 곳곳에 있었으나 지금은 거의 사라졌다”면서 “한정식집과 기생이 나오는 요릿집은 구분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신현규 중앙대 교양학부 교수는 “조선 후기에는 한정식이라는 용어가 없었다. 대령숙수였던 안순환이 궁중 음식을 내놓기 시작한 명월관이 한정식집의 원조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명월관은 일본의 요정을 본떠 만든 요릿집이다. 명월관은 궁중 연회 요리를 도맡았던 안순환이 1909년 서울 광화문 현 동아일보 자리에 개업했다. 1918년 화재가 난 뒤 여러 번 주인이 바뀌었다가 1963년 워커힐 호텔로 편입됐고 지금의 숯불갈비집으로 모습을 바꿨다. 신 교수에 따르면 당시 명월관은 한상 음식을 차려 놓는 게 아니라 차린 상을 들고 음식을 내놨다. 손님은 책자를 보며 권번(기생조합의 일본식 표현)의 기생을 불러 창을 듣거나 춤을 보며 여흥을 즐겼다. 기생들은 고운 빛깔의 치마저고리를 입고 인력거나 택시를 타고 요릿집에 왔다. 기생이 공연을 할 때면 음식상을 치웠다. 기생도 급(일패, 이패, 삼패)이 있어 일패 기생들의 몸값은 지금의 연예인처럼 비쌌다고 한다. 신 교수는 “낮에는 기생이 없었고, 명월관에서는 예식이나 피로연도 열렸다”면서 “명월관의 음식들이 정통 궁중 요리와는 다르다고 보는 시각도 있지만 (역사적 가치가 있는데도) 제대로 전수되지 않아 안타깝다”고 설명했다. 명월관이 번창하자 주변에 국일관, 송죽관 등 유흥 음식점들이 우후죽순 문을 열었다. 1920년대부터는 정체를 알 수 없는 음식들이 상을 가득 채우는 가게들이 많아졌다. 주객(?)이 전도되면서 요정이 성행하게 된 건 6·25전쟁 이후라고 학계는 본다. 음식보다 기생과의 유흥을 즐기려는 목적성이 강해진 것이다. 한때 정부가 외화벌이를 목적으로 이들 요릿집을 기반으로 한 일명 ‘기생 관광’을 방관했다는 연구도 여럿 존재한다. 1950~1970년 서울에는 이른바 요정 3각이라고 불리는 요릿집이 성행했다. 청운각, 대원각, 삼청각이 대표적이다. 특히 성북동의 대원각은 이승만 전 대통령이 별장으로 사용했을 만큼 풍광이 수려했다. 대원각의 안주인이던 고 김영한씨와 시인 백석과의 가슴 아픈 사랑 이야기는 유명하다. 김씨는 열여섯 살에 남편을 잃고 조선권번에 들어가 ‘진향’이란 이름의 기생이 됐다. 대원각은 1970년대 경영난을 겪다 1980년대 초 갈비집으로 전환했다. 이후 대원각은 김씨가 1987년 법정 스님의 무소유를 읽고 땅과 건물을 통째로 시주하면서 불자들의 공간인 길상사가 됐다. 효자동 산중턱에 자리한 청운각은 1965년 한·일회담이 성사된 곳이다. 1960년대 말 사라진 청운각 자리에는 교회 등이 들어서 있다. 셋 중 유일하게 요릿집을 유지하고 있는 삼청각은 후발주자였으나 그 기세와 규모가 만만치 않았다. 군사독재 시절 남북적십자회담을 앞두고 북한 방문단의 접객을 위해 만들어진 이곳은 지금은 세종문화회관에서 운영하고 있다. 가장 비싼 요리는 ‘궁중수라’다. 참치뱃살, 랍스터, 송이볶음 등 화려한 요리가 코스로 제공된다. 가격은 1인당 19만 8000원. 가장 저렴한 메뉴는 붕장어구이가 메인으로 올라가는 ‘유하수라’. 5만원짜리 메뉴다. 요정은 비밀 유지가 중요하다. 마담 사관학교로 불렸던 장원 출신 접객원 B(60)씨는 “이미 단골이 된 거물급 인사들의 비밀 유지를 위해 장원은 미로 같은 골목에 있었다”면서 “오고가는 손님들이 서로 얼굴을 마주치지 않도록 배려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고 주 사장은 종업원들 사이에서 미국 헌병이라는 별명으로 불렸을 정도로 성격이 엄격했고 회고록을 쓰자는 숱한 제의도 단칼에 거절했다고 한다. 30여년간 절정기를 구가했던 장원은 1987년 20여억원의 사채를 갚지 못해 은행에 압류된 뒤 1990년 한 건설사로 넘어가면서 잠시 문을 닫았다. 이후 고 주 사장은 서울 신문로에서 ‘향원’이라는 이름으로 재개업했고 2004년 필운동에서 다른 사람이 운영하던 ‘장원’을 되찾았다. 음식평론가 황교익씨는 세금 셈법 때문에 요릿집이 일부 한정식집으로 바뀌게 됐다고 주장한다. 1960년대 후반 요정은 유흥음식세로 총수입의 100분의20을 세금으로 내게 했는데 한정식집은 100분의10 내지 100분의5만 내게 했다는 것이다. 룸살롱, 풀살롱(접대와 성매매가 한 건물에서 이뤄지는 유흥업소) 등 유흥문화가 강남으로 옮겨가면서 경영상의 어려움을 겪던 많은 요릿집이 유흥 딱지를 떼고 ‘한식 음식점’으로의 생존을 택했다. 정치 무대가 여의도로 옮겨간 뒤로 한정식집의 수난사는 계속됐다. 2003년 노무현 전 대통령이 공무원들의 접대비를 3만원으로 줄이면서 수많은 한정식집들이 문을 닫았다. 그나마 남은 곳들이 인사동, 청운동, 수송동 근처에 밀집한 유정, 양지 등 중저가 한정식집들이다. 유정은 이번 김영란법의 여파로 문을 닫고 1만원대 쌀국수집으로 리모델링 중이다. 한정식을 특별하거나, 근본 없는 음식이라 폄하하는 시각도 있지만 한정식 가게 나름의 철학과 문화가 사라지는 데 아쉬움을 표하는 이들도 많다. 음식뿐만 아니라 고급 한정식집들은 예술품, 시조, 창, 한복과 어우러진 전통공연의 무대이기도 했다. 지금은 사라진 장원은 삼합, 애저(새끼돼지에 마늘과 생각을 넣고 삶아 초장에 찍어먹는 요리) 등 정갈한 남도 음식으로 유명했다. 60여년의 역사를 내려놓은 유정은 참나물, 쑥갓 반찬 등 계절에 따라 4~5가지 나물 반찬이 인기였다. 명희진 기자 mhj46@seoul.co.kr
  • [커버스토리] ‘한정식=고위층 접대 음식’ 인식 아쉬워… 다같이 즐기는 전통 문화 됐으면

    [커버스토리] ‘한정식=고위층 접대 음식’ 인식 아쉬워… 다같이 즐기는 전통 문화 됐으면

    “연구만 해서는 학문에 불과합니다. 많은 사람이 즐겨야 문화가 되지요. 음식은 학문이 아니라 문화입니다. 흥망을 모두 겪으며 지화자가 그동안 명맥을 이어 온 이유입니다.” 서울 종로구 청운동의 전통궁중요리 음식점 지화자의 이순화(58·여) 수석조리장은 “궁중음식에 담긴 철학에 반해 다니던 직장도 그만두고 이곳에 몸담은 지 벌써 25년이 됐다”고 말했다. 지화자는 궁중음식 인간문화재 고 황혜성 교수가 궁중음식문화를 대중에 알리기 위해 1991년 문을 연 국내 최초의 궁중요리 음식점이다. 이 조리장은 “궁중음식은 왕실의 음식, 한정식은 반가의 음식이라 그 출발이 달랐다”고 운을 뗐다. 그러나 왕실에서 가신들에게 음식을 하사하기도 하고, 왕실과 양반가문 사이에 혼례 등으로 음식문화를 서로 주고받으면서 그 경계가 모호해져 함께 발전해 왔다는 게 이 조리장의 설명이다. 또 궁중음식은 조리법이나 예법 등에서 반가의 한정식에 기준이 돼 주기도 했다. 지금의 궁중음식은 조선 말엽에 정리된 조선왕조의 음식, 그중에서도 일상식보다 연회에서의 상차림을 이어받은 것을 말한다. 그렇다 보니 한정식과 궁중음식은 첩 수부터 다르다. 보통 한국 음식은 ‘쟁첩’이라고 해서 찬 등을 담는 뚜껑이 딸린 그릇 수를 가지고 구성을 나눈다. 첩 수를 따질 때 김치, 젓갈, 장 등은 제외한다. 3·5·7·9첩 중에 9첩이 소위 ‘반가음식’이라고 해서 조선시대 사대부들이 먹던 음식을 말한다. 지금의 한정식의 모태가 됐다. 반면 궁중음식은 12첩이다. 이 조리장은 “12첩이라는 다양한 구성에 궁중음식 철학이 숨겨져 있다”고 말했다. “궁중음식은 단순히 배를 채우거나 사치를 부리기 위한 음식이 아니에요. 임금이 전국 각지의 제철 특산물로 만든 음식들을 맛보면서 풍흉을 가늠하고 백성들을 살피는 음식이었지요. 그러다 보니 찬의 종류가 다양할 수밖에 없습니다. 일반적으로 궁중음식은 굉장히 화려할 거라고 착각하지만, 찬의 가짓수는 많아도 소담하고 정갈한 게 한국 궁중음식의 특징입니다.” 이 조리장은 “드라마 ‘대장금’이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2003~2004년이 궁중음식의 전성기였다”고 말했다. 많을 때는 분점이 4개나 늘었지만 지금은 다 정리하고 종로의 본점만 남았다. 이곳도 수익을 내기 위한 곳이라기보다 중요무형문화재 38호인 궁중음식의 명맥을 이어 가기 위해 지키고 있는 셈이다. 실제로 조선시대 정조가 화성에서 어머니 혜경궁 홍씨의 회갑 잔치 자리에 차려냈던 ‘진어별만찬’을 당시 기록된 조리법 그대로 차려내는 등 전통을 이어 나가는 데 초점을 둔다. 이 조리장은 “한정식·궁중음식이 소위 ‘고위층 접대 음식’으로 인식되는 것이 안타깝다”고 말했다. 그는 “김영란법 시행을 앞두고 근심이 없다면 거짓말일 것”이라며 “단품 음식 위주인 서양식은 단가 조정이 상대적으로 수월하겠지만 정해진 구성을 갖춰야 하는 한정식은 가격 조정이 더 어려운 부분이 있다”고 털어놨다. 그래도 이 조리장은 희망을 본다고 했다. “당장 어려움은 있겠지만 이번을 계기로 ‘접대음식’이 아니라 전통 음식문화를 체험하는 공간으로 더 확실히 자리매김하고 싶습니다. 한국 전통 음식문화의 정수를 알린다는 자부심으로 이어왔으니까요.” 김희리 기자 hitit@seoul.co.kr
  • [커버스토리] 올림픽 끝나는 날, 우릴 모르는 국민 없으리

    [커버스토리] 올림픽 끝나는 날, 우릴 모르는 국민 없으리

    “우리도 리우에 간다.” 리우올림픽 개막을 눈앞에 둔 ‘태극 전사’들이 막바지 훈련에 힘을 쏟고 있다. 204명의 태극 전사들은 4회 연속 ‘톱10’에 도전한다. 선봉에 선 양궁, 사격 등 전통의 강세 종목은 국민과 언론의 뜨거운 주목을 받고 있다. 평소 이목을 끌지 못하던 배드민턴, 핸드볼 등 일부 ‘효자 종목’에도 조명이 쏟아진다. 그러나 국민들의 관심을 받지 못하는 종목도 적지 않다. 올림픽에 나서지만 메달과 거리가 멀어서다. 이들 선수는 국민들의 ‘무관심’에 익숙하다. 외롭고 서글프기까지 하지만 누구 못지않은 땀과 눈물로 이번 대회를 준비했다. 한국은 24개 종목에 출전한다. 이 가운데 112년 만에 정식종목으로 채택된 골프를 제외하고 요트, 조정, 카누, 근대5종, 사이클 등 5개 종목은 한번도 시상대에 선 적이 없다. 하지만 선수들은 리우를 ‘약속의 땅’으로 믿고 혼신을 다짐하고 있다. ●요트 하지민 올림픽 사상 첫 메달 획득 도전 한국 요트는 아시아권에서 강세지만 올림픽에서는 유럽과 북미에 밀린다. 요트는 개최지의 해면 상태와 바람 등이 큰 변수로 작용한다. 이 탓에 미국 등 강국들은 이미 리우 인근에 적응 캠프를 차렸다. 한국도 지난 1일 현지 적응 훈련에 돌입했다. 이태훈(RS-X), 하지민(레이저), 김창주·김지훈(470) 등 4명이 출전한다. 시선을 끄는 선수는 하지민(해운대구청)이다. 2010년 광저우, 2014년 인천아시안게임 금메달리스트다. 올림픽 세 번째 무대인 리우에서 첫 메달의 결실을 꿈꾼다. ●조정 김동용·김예지 결선 진출 ‘깜짝 선전’ 기대 1964년 도쿄 대회에서 첫선을 보인 한국 조정은 리우가 10번째 올림픽 무대다. 모두 14개의 금이 걸린 조정 역시 미국과 유럽이 강하다. 한국은 남녀 싱글스컬의 김동용(진주시청)과 김예지(화천군청)가 참가한다. 현실적으로 결선 진출이 목표다. 김동용은 학창 시절 투포환 유망주로 활약한 경험과 힘을 바탕으로 꾸준히 성장해왔다. 2012년 런던대회 출전 경험이 있고 인천아시안게임에서 은메달을 땄다. 아시안게임 우승자 김예지도 깜짝 선전이 기대된다. ●근대5종 전웅태 첫 메달 후보… ‘약세’ 승마 변수 근대5종은 남녀 개인전에 단 2개의 금이 걸려 있다. ‘펜싱-수영-승마-크로스컨트리-사격’을 하루 모두 치러야 하는 탓에 강인한 체력과 정신력이 요구된다. 동유럽이 강세지만 중국이 런던대회에서 강자로 떠오르면서 한국도 기대를 부풀린다. 전웅태(한국체대)와 정진화(LH공사), 김선우(여·한국체대)가 뛴다. 특히 전웅태는 첫 메달 후보로 꼽힌다. 올해 세계선수권 계주와 리우올림픽 리허설 대회인 제2차 월드컵에서 우승했다. 약세인 승마가 메달의 변수로 작용할 전망이다. ●사이클, 스프린트·경륜 선봉에 강동진·임채빈 사이클에는 모두 18개 금메달이 주인공을 기다린다. 한국은 트랙과 도로에서 모두 8명이 달린다. 금 10개가 걸린 트랙에서 메달을 꿈꾸지만 유럽의 벽이 높다. 남자 스프린트와 경륜에 나서는 강동진(울산시청), 임채빈(금산군청)이 선봉에 선다. 또 인천아시안게임과 올해 아시아선수권 여자 도로 금메달리스트 나아름(삼양사)의 선전도 점쳐진다. 김민수 선임기자 kimms@seoul.co.kr
  • [커버스토리] “빌린 배로 출전하지만 카누 새 역사 저희가 쓸게요”

    [커버스토리] “빌린 배로 출전하지만 카누 새 역사 저희가 쓸게요”

    “카누를 한다고 하면 커피 브랜드 ‘카누’를 떠올리시더라고요.” 카누 스프린트 1인승과 2인승 200m 경기에 출전하는 조광희(왼쪽·23·울산시청)는 지난 19일 서울 송파구의 한 음식점에서 열린 리우올림픽 카누 국가대표 선수단의 출정식에서 ‘비인기 종목의 설움’에 대해 이같이 말했다. 2인승 200m에 나가는 최민규(오른쪽·24·부산시 강서구청)는 “카누와 조정을 헷갈려 하는 사람들도 많다”며 “올림픽을 통해 어떤 종목인지 알아줬으면 좋겠다”고 거들었다. 수억원의 연봉을 받고 1년에도 몇 개씩이나 광고를 찍는 스포츠 선수들이 많아진 요즘이지만 조광희와 최민규의 바람은 소박했다. 조국의 명예를 위해 죽자 살자 구슬땀을 흘리는 카누 선수들이 존재한다는 것만이라도 알아줬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카누 대표팀의 현실은 열악하다. 대표팀에는 선수들이 훈련할 수 있는 전용 배가 없다. 각자 소속 실업팀에서 가져온 배들뿐이다. 이마저도 최신식이 아니어서 카누 제작사 넬로에서 새 배를 빌려쓰곤 한다. 이번 올림픽도 빌린 배로 출전할 계획이다. 최민규는 “2인승의 경우에는 지난 4일 포르투갈 전지훈련을 마치고 돌아온 뒤 배가 없어 2주가량 훈련을 못했다. 넬로에 찾아가 직접 배를 빌린 뒤에야 훈련을 재개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대한카누연맹도 안타까운 현실에 발만 동동 구르고 있다. 매년 빠듯한 예산으로 살림을 꾸리고 있는 연맹으로선 1척에 600만원(1인승)에서 1000만원(2인승)가량인 배를 구입하는 것 자체가 부담이다. 국가대표팀으로 뛰고 있는 선수가 여러 명인데다가 그 선수들이 계속 바뀌어서 각자 체형에 맞는 배를 매번 살 수 없기 때문이다. 열악한 환경이지만 조광희와 최민규는 묵묵히 올림픽을 준비하고 있다. 조광희는 “배가 정지돼 있는 상태에서 누가 가속도를 빨리 붙이느냐에 따라 순위가 달라진다. 스타트가 느린 게 약점이었는데 전지훈련에서 보완을 해서 많이 괜찮아진 것 같다”며 “지금은 배 밑에다가 테니스공이나 수건을 달아 노를 젖는 훈련을 하고 있다. 1인승 배가 12㎏정도인데 공을 하나만 달아도 엄청 힘들어진다”고 말했다. ‘올림픽을 앞두고 두 선수의 호흡은 잘 맞느냐’는 질문에 최민규는 “광희와는 알고 지낸 지가 7~8년 정도 된다”며 “2인승 팀을 이룬 것은 작년부터다. 방도 같이 쓰고 있고 훈련을 계속하다 보니 1년에 300일 정도나 함께 있는 것 같다”고 답했다. 이들의 목표는 결선(A파이널)에 진출하는 것이다. 한국 카누는 지금까지 올림픽에서 단 한번도 결선까지 오른 적이 없었다. 최민규는 “경기를 하다 보면 마지막 지점에서 너무 힘들곤 하는데 이번에는 그 고통을 이겨내야만 한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조광희는 “첫 올림픽 출전인 만큼 좋은 성적을 내고 돌아오겠다”고 강조했다. 한국 카누 역사를 새로 쓰길 목표로 하는 둘은 경북 안동 수상훈련센터에서 마무리 훈련을 한 뒤 8월 5일 결전의 땅 리우로 넘어간다. 카누 2인승 200m 경기는 17~18일에, 1인승은 19~20일에 열릴 예정이다. 글 사진 한재희 기자 jh@seoul.co.kr
  • [커버스토리] 첫 난민 대표팀 뛰고 커밍아웃 선수 품고 ‘마이너리티’ 올림픽

    4년 전 런던올림픽이 모든 종목에서 ‘금녀의 벽’을 허문 대회였다면 이번 리우데자네이루올림픽은 ‘난민을 품은’ 올림픽으로 기억될 것이다. 다음달 6일 오전 7시(현지시간 5일 오후 7시) 브라질 리우의 마라카낭 스타디움에서 열리는 대회 개회식에는 120년 근대 올림픽 역사에 처음으로 전쟁과 인권 유린으로 고국을 떠나야 했던 ‘난민 올림픽팀’(Refugee Olympic Team·ROT)이 국제올림픽위원회(IOC) 깃발을 들고 개최국 브라질에 앞서 입장하는 감격적인 장면이 연출된다. 시리아 내전을 피해 그리스 에게해를 건넌 ‘난민 소녀’ 유스라 마르디니(18·수영) 등 세 종목 10명의 선수가 오륜기를 가슴에 달고 경기에 나선다. IOC는 지난 3월 “전 세계 모든 난민들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보내고 싶다”며 남수단, 콩고민주공화국, 시리아, 에티오피아 등 4개국 출신으로 ROT를 꾸렸다. 이번 리우올림픽의 슬로건은 ‘새로운 세상’이다. 스포츠를 통해 새로운 세상을 만들겠다는 세계인의 각성을 이끌어내자는 취지다. 이에 따라 난민뿐만 아니라 다양한 ‘마이너리티’ 선수들의 참여가 눈에 띈다. 2012년 런던올림픽 수영 남자 다이빙 10m 플랫폼에서 동메달을 딴 뒤 이듬해 ‘커밍아웃’해 많은 이들을 놀라게 했던 톰 데일리(22·영국)가 두 대회 연속 메달을 노린다. 국제육상경기연맹(IAAF)과 성(性) 정체성 논란을 빚은 캐스터 세메냐(23·남아공)와 두티 찬드(20·인도)도 출전한다. 혹독한 차별에 우는 중동 여자 선수들의 메달 획득이 현실화될지도 주목된다. 4년 전 처음으로 여자 선수들을 올림픽에 내보냈던 사우디아라비아와 카타르, 브루나이는 이번 대회에도 여자 선수들을 파견한다. 또 리우올림픽에서는 전체 선수에서 여성 선수가 차지하는 비율이 런던올림픽보다 1% 포인트 높아진 45%를 차지해 여성에게 문호를 가장 넓게 연 대회가 될 전망이다. 한재희 기자 jh@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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