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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美 테러전쟁/ 각국 對美 조문외교 치열

    미국에 대한 ‘조문(弔問)외교’가 치열하다. 테러공격에 대한 각국의 ‘위로와 애도’의 표명은 한결같으나 실리를 추구하는 속셈은 제각각이다. 첫 테이프는 한국이 끊었다.유엔 총회의장 자격으로 미국을 방문 중인 한승수(韓昇洙) 외교통상부 장관은 18일(현지시간) 콜린 파월 국무장관과 한·미 외무장관 회담을 가졌다. 한국은 동맹관계를 강조하며 전폭적 지지를 밝혔으나 주된관심은 남북관계다.테러지원국 명단에 오른 북한이 미국의적대세력으로 간주될까 우려했으나 파월 장관은 북한과의 조건없는 대화재개를 재천명하며 남북 장관급 회담과 김대중대통령의 ‘햇볕정책’을 지지,한국 정부의 걱정을 덜어줬다. 이고리 이바노프 러시아 외무장관은 19일 워싱턴에서 파월장관과 회동한다.러시아는 아프가니스탄과의 전쟁 경험을 살려 미국을 지원할 수 있다고 강조하지만 보복공격시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의 ‘동진(東進)’에 거부반응을 보이고 있다.나토가 미국의 공격에 동참하면 옛 소련지역의 통과가 예상되며 이를 독립국가연합(CIS)에 대한 러시아의 영향력 감소로 받아들이는 군부의 반발이 예상된다.블라디미르 푸틴대통령은 미사일방어(MD) 못지않게 나토의 움직임에 민감하다. 중국 탕자쉬안(唐家璇) 외교부장도 7월 말 파월 장관의 베이징 방문에 대한 답방형식으로 18일 워싱턴을 향했다.중국은 테러리스트가 처벌돼야 한다고 성명을 냈지만 주방자오(朱邦造) 외교부 수석대변인은 “테러리스트와 분리주의자에게 이중잣대를 적용해서는 안된다”며 “무고한 인명이 다치지 않도록 보복공격에 앞서 명확한 지침을 확보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미국이 분리·독립을 주장하는 타이완과 티베트에 대한 미국의 유화적인 정책을 바꾸지 않으면 중국이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의 자격으로 향후 미국의 군사행동에 제동을 걸수 있음을 의미한다. 일본은 테러공격을 이용,자위대의 무기사용 허용 범위를 확대함으로써 정규군으로의 재정비를 노리고 있다. 비동맹 외교정책으로 3세계 국가와 가까운 멕시코가 미국에 전폭적 지지를 보낸 것은 비센테 폭스 대통령의 친미성향때문이기도 하지만 미국내멕시코계 이민자의 합법적 취업과 멕시코 트럭의 미 국경 통과를 겨냥하고 있다. 앞서 메가와티 수카르노푸트리 인도네시아 대통령이 17일 국내 이슬람교도들의 강력한 반발을 무릅쓰고 미국을 방문한 것은 취약한정치기반을 강화하기 위해 부시 행정부의 도움을 요청한 것으로 분석된다. 파키스탄은 아프간 전진기지 활용을 위해 30억달러 대외부채 탕감과 경제제재 완화 등을 요구한 것으로알려졌다. 워싱턴 백문일특파원 mip@
  • 이슬람은 테러의 화신?

    ■잇단 연루에 불신 확산. 이슬람 문명은 테러와 불가분(不可分)의 관계인가.미국 대테러 참사의 배후에 오사마 빈 라덴으로 대표되는 ‘과격이슬람 단체’가 개입됐다는 증거가 속속 드러나면서 ‘이슬람=테러단체’라는 등식이 확산되고 있다. 실제로 2차대전 이후 이슬람 단체들이 개입한 것으로 추정되는 굵직한 테러사건이 즐비하다. 79년 이란 이슬람 학생들에 의한 테헤란 주재 미 대사관인질 점거부터 빈 라덴을 이번 사건의 유력한 용의자로 만든 98년 케냐·탄자니아 주재 미 대사관 폭탄 테러,93년 세계무역센터 폭탄 테러 등은 ‘칼 대신 폭탄을 든 무슬림’을 각인시켰다. 이슬람 근본주의(원리주의) 단체들에 의해 저질러진 일련의 테러사건은 이스라엘 건국을 둘러싼 영토 분쟁적 성격이강하지만 이슬람 문명을 ‘폭력적이고 야만적인’성향이 강한 문명으로 보는 시각이 우세했다. 종교로서의 이슬람을 테러와 연관시키는 주요한 근거는 “너희들에게 도전하는 신의 적들을 퇴치하라”는 코란 2장 191∼193절과 “불신자(不信者)를 퇴치하기 위해싸우는 자에게 신의 은총이 있으리라”고 명시된 4장 76절.근본주의단체들은 ‘자살특공대’를 육성하면서 이같은 코란의 구절을 논리적 근거로 제시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국내 이슬람 학자들은 “이슬람은 평화와 공존을중요시하는 종교로 테러와는 관련이 없다”고 옹호한다. 이희수(李熙秀·한양대 문화인류학과 교수)한국이슬람학회장은 “이슬람 급진 세력의 테러는 종교적인 성향에 기인한다기보다 중동지역의 민족적 갈등,영토분쟁에서 비롯된 문제”라고 분석했다. 독립 이후 집권한 통치세력의 무능과 부패,사회혼란이 근본주의를 태동시켰고,1·2차 세계대전 당시 서구세력에 정치적 배신을 당하면서 2,000년 이상 살아온 터전을 빼앗긴이슬람 민족의 울분과 좌절감이 폭발하면서 테러와 연결됐다는 것이다. 이 교수는 “13억 이슬람 인구의 90% 이상은 서구세력과화해하고 평화롭게 살기를 원한다”면서 “반미 폭력 투쟁노선을 걷고 있는 일부 세력이 내부 결속을 다지기 위해 종교를 ‘이데올로기 기제’로 활용하고 있을 뿐이다”고 지적했다. 명지대 아랍어문학부 최영길(崔永吉)교수도 “코란 전반에걸쳐 ‘절대로 먼저 공격하지 말라’는 내용이 거듭 강조된다”면서 “테러를 저질러온 급진 세력은 이슬람의 이름을팔고 있는 이단자들”이라고 말했다. 이들은 한결같이 “이슬람 사회 내에서 소수에 불과한 급진세력을 전체 이슬람으로 확대 해석해서는 안된다”면서“오히려 이런 압박이 이슬람 특유의 ‘형제애’를 자극,‘침묵하는 다수’를 급진세력으로 바꿔놓을 수 있다”고 우려했다. 류길상기자 ukelvin@. ■聖戰의 역사…중동전 계기로 본격화. 이번 미 테러 대참사의 주범으로 지목된 오사마 빈 라덴의테러조직 ‘알 카에다’를 비롯, 많은 급진 이슬람 단체들은 침략자에 대한 성전(聖戰·지하드)의 미명하에 숱한 반미·반이스라엘 테러를 자행해 왔다. 원래 성전이란 ‘하느님(알라)의 뜻에 복종하는 삶을 살기위해 싸운다’는 뜻. 신의 섭리를 전파하기 위해 몸을 바쳐열심히 노력한다는 의미로 종교적 색채가 짙다. 현재와 같이 성전이 ‘무장투쟁’을 의미하는 말로 바뀐것은 20세기 초 반영(反英) 독립운동을 이끌었던 이슬람의‘무슬림형제단’ 등장 이후다.1928년 이집트의 하산 알바나가 설립한 무슬림형제단은 ‘이슬람 근본주의’의 이론적토대가 됐으며 아랍 전역의 대중조직으로 발전해 나갔다. 1981년 친미노선을 표방한 안와르 사다트 이집트 대통령 암살도 이들이 자행했다. 중동의 테러집단들은 극단적인 테러를 감행하면서 이슬람근본주의를 표방하고 있지만 학자들은 이슬람 근본주의 자체가 유혈투쟁을 정당화하는 것은 아니라고 지적한다.자살폭탄테러 등 극단적인 무장투쟁 양상을 띠는 성전의 의미는‘이스라엘과 아랍권의 관계’ 속에서 찾아야 한다는 것. 1948년 이스라엘 건국 뒤 이에 반발하는 아랍국들은 두 차례의 중동전쟁을 일으켰지만 패전했다.1967년 3차 전쟁은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싸움을 전 아랍권으로 확대시켰고73년 4차 중동전쟁에 이은 중동평화협상을 둘러싼 이슬람내 노선갈등은 이후 ‘하마스’ ‘지하드’ 등 급진 무장단체의 활동을 부추겼다. 이란 이슬람 정부의 지원을 받는 시아파 과격단체로 알려진 ‘지하드’는 1983년 4월 베이루트 주재 미국대사관 폭탄트럭 공격,같은해 10월 미 해병대 사령부 자살폭탄트럭공격 등을 자행했다.또 84년 레바논에 설립된 ‘헤즈볼라’(신의 당)는 시아파 이슬람 국가 건설을 목표로 92년 아르헨티나 이스라엘 대사관 폭탄공격 등 무수한 반미 테러를수행했다. 1980년대 반 이스라엘 성전을 주도한 대표적 이슬람 단체는 ‘하마스’.이스라엘을 중동에서 몰아내고 완전한 이슬람 국가를 건설한다는 목표 아래 팔레스타인 자살특공대를운영하고 있다. 이동미기자 eyes@
  • [美 테러의 뿌리] (1)문명충돌 오나

    미국의 심장부를 겨냥한 전대미문의 테러는 이슬람 과격분자들의 미국에 대한 증오가 얼마나 심각한지 짐작케한다. 이들은 두 문명의 뿌리깊은 적대감과 함께 미국 주도의일극체제로 재편되는 냉전 후 세계에 대한 강력한 도전을드러내 보였다.이번 사건의 파장을 긴급시리즈로 점검한다. ***기독교-이슬람 문명 '피의 성전'서막인가. 지난 11일 미 심장부를 겨눈 테러가 자행된 뒤 이에 대한미국의 보복 공격이 임박해지고 있다.일각에서는 이번 사건 여파가 3차 세계대전을 부르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이슬람 세력과 비이슬람 세력(서방세계)간의 대립이 ‘피와 보복’의 악순환으로 이어지며 새뮤얼 헌팅턴이 예고한 ‘문명 충돌론’이 점차 설득력을 얻고 있다. 헌팅턴 교수가 설명한 문명 충돌론은 크게 기독교와 이슬람 문명의 충돌을 뜻한다.현재 이 문명 충돌은 크게 이란·이라크·시리아·리비아 등을 비롯한 소위 이슬람 불량국들과 미국·영국이 대표하는 기독교 문명권 사이에 일어나고 있다.여기에 아프가니스탄의 탈레반 정권 등 과격 원리주의자들이 반서방 기치를 내걸고 있다. 특히 시오니즘으로 대변되는 이스라엘의 반아랍주의가 기독교 문명에 편입돼 아랍권과의 마찰에 기름을 붓는 역할을 하고 있다.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사이의 충돌이 툭하면 아랍권 대 이스라엘 간의 전면전 우려를 낳는 것도 바로 이런 문명간 적대 구도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이번 테러 사건 이후 미국을 비롯한 유럽의 기독교 국가에서 아랍인들이 폭력을 당하는 것도 뿌리에 이런 두 문명간 적대감이 놓여 있기 때문이다.일반인들 사이에도 상대문명에 대한 이해 부족과 비하,적대감은 심각하다.서방 기독교 문명권에서는 아랍인들을 흔히 야만적이고 예의를 모르며 폭력적이라고 치부한다.반면 아랍인들은 기독교 문명권 사람들을 이기적이고 현세적이며 타락한 금전만능주의자들이라고 비난한다. 아랍권의 이런 반서방 정서는 같은 아랍국들이라도 친서방적인 국가들에 대한 적대감으로 나타난다.아랍권에서 쿠웨이트·사우디아라비아를 비롯해 터키 등이 대표적인 친서방 국가들이다.이라크의 쿠웨이트 침공처럼지정학적 목적이 주된 이유가 되기도 하지만 친서방과 반서방 아랍국국민들 사이에도 서로 불만요인이 큰 게 사실이다. 학자들 사이에는 이번 테러를 문명 충돌에 따른 것이라기보다는 세계 유일의 초강대국으로 군림하는 미국의 패권에따른 불만과 반발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이슬람 국가가 다른 나라들보다 좀더 일찍 불만을 터뜨렸을 뿐 이슬람과 비이슬람이란 이질적 문명의 차이가 테러의 빌미를 제공했다고 보기 힘들다는 설명이다. 공산주의가 몰락하고 냉전체제가 붕괴된 지 10여년.핵무기를 앞세운 ‘공포의 균형’을 바탕으로 한 구 질서는 미국 혼자 주도하는 새로운 일극체제로 탈바꿈해 왔다.이 과정에서 미국식 가치관에 밀려 자신들의 오랜 전통을 포기해야 하는 많은 군소국가들이 불만을 토로해 왔다.하지만힘으로 밀어붙이는 미국 앞에 이렇다 할 대응책을 내놓지못한 채 선택된 것이 바로 ‘테러’라는 것이다. 이슬람 국가중 사우디아라비아 같은 대표적 친미 국가가존재하고 있다.이같은 사실은 미국이 아랍국들을 설득하고자하는 노력을 선행했더라면 이번 테러와 같은 강한 반발을 부르지 않았을 것임을 보여준다고 주장하는 학자들도있다.이러한 문명간의 이해 부족,미국의 시오니즘 비호 등의 구도가 해소되지 않는 한 이번과 같은 테러는 언제고반복될 수 있다고 학자들은 우려한다. 유세진기자 yujin@
  • [기고] 한·일 우익 그 ‘닮은꼴’의 합창

    아내의 고향인 일본 가고시마에서 알게 된 우에야마 센세이(선생)는 내게 절을 하며 “일제 36년간 저지른 죄악에대해” 깍듯이 사과했다.졸지에 민족대표가 되어 노인의 절을 받으며,나는 ‘이것이 일본의 위대함'이라는 생각을 했다.나는 이게 진정한 의미의 한일우호라 본다.그런데 이와는좀 다른 우호관계도 있다.일본에도 소위 ‘친한파'가 있다. 그런데 재미있게도 한국의 우익인사들과 긴밀한 교분을 맺고 있는 이들의 대다수가 실은 교과서왜곡을 주도하고,군국주의를 찬양하는 그 사람들이다.친미·친일·반공 전선 속에서 양국 우익이 하나가 된 것이다. 이 해괴한 우호관계가 ‘조선일보’와 ‘산케이신문'사이에도 있다.교과서 왜곡을 주도한 ‘산케이신문’은 이번 세무조사 때 조선일보의 입장을 열렬히 대변했다.그 답례일까? 총리의 신사참배로 요란한 이 때,‘월간조선'조갑제씨가용감하게 ‘산케이'지면에 얼굴을 내밀었다.그 글에 따르면 한국의 정국은 지금 ‘김정일 정권+한국 내 좌파' 대 ‘한국 주류층+부시 정권'의 대립구도를 보이고 있다.“김대중 정권은 좌파측”이며,현재처럼 좌파가 주도권을 잡으면 한미동맹관계와 한일우호관계가 깨진다.통일의 지름길은 김정일 정권의 붕괴,해체이며,현 정권은 북괴의 생존력과 군사력만 강화시켰다는 것이다. 한 마디로 현정권의 햇볕정책을 지지하면 좌파라는 얘기다.그렇다면 김대중 정권,현 정권의 대북정책을 지지하는 대다수 국민들,그 정책을 도운 미국의 민주당이 모두 좌파란말인가.심지어 한나라당 이회창 총재마저 대북 화해정책을현정권의 업적으로 꼽은 바 있다.그럼 이 총재도 좌파란 말인가? 설문조사를 보면 조갑제씨가 말한 ‘주류’,즉 북의붕괴와 해체를 통해 통일을 해야 한다고 보는 사람은 늘 극소수다.가자미처럼 오른 쪽으로 치우친 눈을 가진 사람들에게는 중간에 있는 사람조차 왼쪽에 있는 것처럼 보이는 모양이다. 더 큰 문제는 그의 사대주의적 태도다.‘월간조선’에서는 일찍이 미 공화당 부시 후보의 연설을 담은 테이프를 부록으로 끼워 판 적이 있다.부시가 대한민국 대통령이라도 되는가? 이게 무슨 망발인가.한국과 미국이 혈맹이라도,분명두 나라는 국익이 다르다.아무리 북한이 미워도,우리 국익을 버리고 미국의 이익을 앞세울 수는 없는 일이다.한국과일본도 민족적 이해가 다르다.아무리 북이 미워도,민족의이익을 저버릴 수는 없는 일이다.북에 대한 증오심에 사로잡혀 미국과 일본 앞에서 국가적 이익과 민족적 이익을 저버리는 것은 ‘신판 사대주의’가 아닐 수 없다. 한일 우호관계가 깨진 이유는 무엇인가? 조갑제씨 말대로현 정권이 북한과 접근하여 한일의 반공전선을 약화시켜서일까? 아니다.조선일보와 긴밀히 교류하는 그 신문사에서교과서를 왜곡하고,소위 ‘친한파'들이 신사참배를 획책했기 때문이다.이런 상황에서 일본 극우신문에 얼굴을 내밀어기껏 남북을 싸잡아 비방하다니,그는 대체 어느 나라 사람인가? 일본의 우익이 왜 북의 위협을 강조할까? 그걸 빌미로 재무장하기 위해서다.그런데 왜 한국의 언론인이 멍청하게 그 놀음에 놀아나는가.우익이라면 제 나라의 국가적 이익,제 겨레의 민족적 이익을 챙길 줄 알아야 한다.최소한일본 우익은 그 정도는 한다.못했을때는 하라키리(할복)로 책임이라도 진다. 진중권 문화평론가
  • [고이즈미 대해부] (2) 대외정책

    지난 4월 26일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총리가 취임하자 일본 안팎에서는 그의 외교 역량을 걱정하는 소리가 높았다. 고이즈미 총리는 사실 외교에는 밝지 않다.29년 정치 생활중 자민당이건 정부건 외교와 관련된 직책을 맡아 본 일이한차례도 없다.일본 정치인들에게서 흔히 볼 수 있는 ‘미국 중시,아시아 무시’의 판박이이다. 그의 친미 성향은 지난 6월 워싱턴 미·일 정상회담,7월 제노바 G8 정상회담에서 극명하게 드러났다.기후변화협약인 교토의정서 비준을 거부하고 있는 미국 입장에 대한 일방적 지지로 좀처럼 그를 비판하지 않던 일본 언론들도 ‘미국 추종 외교’라고 야유를 퍼부었다. 미국에는 늘 미소짓는 그이지만 아시아에는 냉담하다.역사왜곡 교과서나 야스쿠니(靖國)신사 참배 문제로 악화일로인한국,중국과의 관계에 대해서는 “참배 후에 시도하겠다”는 오만하고 고압적인 자세로 일관하고 있다. 미국 중시 성향은 성장 배경에도 뿌리를 두고 있다.고향 요코스카(橫須賀)는 1853년 미국 페리 제독의 이른바 ‘흑선(黑船)’이 찾아온 일본 개국(開國)의 시발점이다.근·현대일본 부흥의 전진기지이기도 한 요코스카에서 그의 할아버지와 아버지를 포함,3대가 정치생명을 이어 왔다. 요코스카에 미 7함대의 해군기지가 들어서면서 반미 운동의 중심지가 됐을 때도 방위청장관을 지낸 그의 부친 고이즈미 준야(小泉純也·1969년 사망)는 ‘미·일 안보조약’의 중요성을 역설했을 만큼 고이즈미 가(家)의 ‘친미 성향’은대물림이다. 일본 외무성을 출입하는 한 기자는 “아시아를 이해한다면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하겠다는 언동은 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아시아 지역에 대한 몰이해에는 그럴 만한 이유가있다. 고이즈미 총리는 놀랍게도 한국이건 중국이건 태어나서 가본 적이 없다.오는 10월 아시아·태평양 경제협력회의(APEC) 참가를 위해 상하이(上海)에 가는 게 첫 중국 방문이다.한국과 중국을 모르는 고이즈미 총리가 취임하자 한국 정부는한·일 관계의 앞날이 험난해지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기우이길 바랐다. 전문이 아니기는 방위 분야도 마찬가지다.총리 취임 후 방위 정책과관련한 그의 언급은 손가락을 꼽을 정도다.그 가운데 유사법제 정비와 집단적 자위권 행사에는 상당히 적극적이다.그는 취임 직후 “일본 근해에서 미군이 공격받았을경우 일본이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게 가능한 일인가”면서사실상 검토를 지시했다.일본 정부는 지난 60년 “헌법상 행사는 불가능하다”는 해석을 내렸으며 이같은 헌법해석은 아직까지 유효한 상태이다. 고이즈미 총리는 집단적 자위권을 행사하기 위해서는 개헌까지 염두에 두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미국의 미사일 방위(MD) 구상에도 결국은 미국의 권유를 받아들여 참여할 것으로전망되고 있다. 도쿄 황성기특파원 marry01@
  • “고이즈미 美추종 급급”

    이탈리아 제노바 G8(선진 7개국과 러시아) 회담을 마치고23일 귀국한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총리를 대하는 일본 언론의 태도는 냉랭했다. 기후변화협약인 교토의정서 비준을 둘러싼 미국과 유럽의갈등을 조정하지 못한 것은 물론 친미 (親美) 일변도의 외교노선을 국제무대에서 드러냈다는 게 비판의 요지다. 아사히(朝日)신문은 23일 사설에서 “미국 입장을 중시한나머지 교토의정서의 ‘생모’인 일본은 분명한 태도를 취할 수 없었다”면서 “‘성역없는 개혁’을 간판으로 내건고이즈미 정권이지만 미국은 고이즈미 개혁의 ‘성역’”이라고 신랄하게 비판했다. 아사히는 이어 “고이즈미 총리와 다나카 마키코(田中眞紀子) 외상의 외교는 이제부터”라면서 “한국,중국과 관계를 재구축하는 일본 외교에는 과거 역사에 대한 깊은 성찰과 아시아의 이웃과 더불어 살아가기 위한 노력이 절실하다”고 지적했다. 요미우리(讀賣)신문도 “고이즈미 총리가 교토의정서 문제에 대해 역할을 충분히 발휘했다고 볼 수 없다”며 “G8정상회담을 계기로 고이즈미 총리는 외교 전략을 재수립하지 않을 수 없게 됐다”고 평가했다. 참의원 선거를 1주일 앞두고 고이즈미 인기에 눌려 있던야당들도 최근의 주가 폭락과 함께 고이즈미 총리의 아마추어 외교를 전면에 내세워 정부·여당 비판에 나섰다. 하토야마 유키오(鳩山由紀夫) 민주당 대표는 22일 지원 유세에서 “주체성 없는 미국 추종의 외교였다”면서 “조지 W부시 미 대통령이 좋아했을지는 몰라도 세계적으로는 놀림거리가 됐다”고 주장했다. 도쿄 황성기특파원 marry01@
  • 美·中 해커전 가열

    중국 해커들이 미국 웹사이트를 공격하고 있다.백악관 웹사이트가 지난달 30일 ‘e메일 폭탄’(엄청난 양의 e메일을 보내는 것)을 맞았고 수십 곳의 미국 사이트들이 파손됐다고 인터넷 보안 전문가들이 밝혔다. 이에 맞서 친미(親美) 해커들도 중국 웹사이트를 공격하는 등 미·중간 해커전이 절정에 이르고 있다.특히 인도브라질 아르헨티나 등의 해커들은 미국을,한국 일본 인도네시아 해커들은 중국을 지지하는 등 이번 해커전이 “유례없는 세계적 규모”가 될 것이라는 우려까지 나오고 있다. 이번 공격은 지난달 미 정찰기와 중국 군용기 충돌사건이후 미국 해커들이 350여개 중국 웹사이트를 공격한 것에 대한 보복 차원이다.2∼3개 해커 집단에 의해 조직적으로 관리되는 중국 해커들은 중국에서 노동절 행사가 시작된30일 오후 8시(현지시간)부터 ‘제6차 국방 네트워크 전쟁’이라는 공격에 나섰다. 중국 해커들은 백악관 외에도 연방수사국(FBI),항공우주국(NASA),의회는 물론 뉴욕타임스,CNN 등에 대한 공격도다짐하고 있다.미 노동부,보건부 등 일부정부 사이트와몇몇 기업 웹사이트들은 한때 기능이 마비되기도 했다. 중국 해커들은 이번 공격을 나토가 유고 베오그라드주재중국대사관을 오폭한 지 2주년이 되는 7일까지 계속하겠다고 선포했다.미국은 이들이 4일 백악관에 대한 전면공격을 약속하는 등 이번주 후반에 절정에 이를 것으로 보고 대책 마련에 나섰다.문제는 중국 정부의 연관성이다.미국 뉴저지 기술보안회사인 비질링크사의 정보담당자인 제리 프리스는 “중국 정부가 해커전을 조장하고 있다고까지는 말하기 어렵지만 묵인하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고 주장했다. 전경하기자 lark3@
  • 3.1절 TV ‘특집다큐’ 다채

    ‘3.1절을 다큐멘터리와 함께’공중파 방송사들이 공들여 만든 특집 다큐멘터리가 3월1일안방에 ‘뜻깊은’ 휴일을 선사할 예정이다. 먼저 KBS는 물량공세를 편다.1TV를 통해 오전11시 ‘무주촌사람들’,오후10시 ‘망명객 서재필,세번의 귀향’을 준비한다.27일부터 이어져온 ‘백만인의 한’도 밤 12시10분 마무리격인 4·5부를 내보낸다. ‘망명객…’은 중용을 터득한 진정한 독립투사에서 친미외교론자까지 평가가 엇갈리는 서재필에 대한 집중해부.갑신정변 실패로 미국 유학길에 오른 젊은날,‘독립신문’ 활약상,조선독립 지원과 그로 인한 파산,해방정국 이승만과의 세겨루기,말년의 쓸쓸한 미국행까지 일생을 파노라마로 펼친다. 한·미·일 3국을 뒤져낸 방대한 자료가 완성도를 높인다. ‘무주촌…’은 중국 지림(吉林)성의 또다른 조선족자치주무주촌 취재기.전라북도 무주에서 일제에 등떼밀려 강제이주해온 주민들은 갖은 고초를 뚫고 60년 이상을 우리말과 전통,맛을 지켜오고 있다.북도촌 남도촌 등과 함께 중국속의 전라도 인심을 일궈오고 있는 이들에 KBS전주방송총국이 카메라를 들이댔다.한편 ‘…한’은 마에다 켄지라는 일본감독이 한국인 강제연행,종군위안부 실상을 기록했다 해서 화제가된 5부작 필름.28일 밤12시 ‘종군위안부들’에 이어 3월1일 밤12시10분 ‘천황과 마쓰시로’‘원폭피해자들’ 편을 만날 수 있다. MBC가 오후5시50분 마련한 ‘하이난섬의 대학살-땅속에 묻은 진실’은 일제에 학살된 조상들의 원혼을 위무하는 기획.태평양전쟁 당시 강제연행돼 중국 해남도에서 일본군에 학살된 1,000여명 조선보국대 사건의 진상을 파헤친다.목격자인 주민들 입을 통해 이곳이 ‘조선촌 천인갱’으로까지 불리게된 끔찍한 목격담을 듣고 당시 일본해군 16경비대 사령관을인터뷰,일본군의 잔학상을 파헤친다. 이에 비해 SBS는 한결 소프트한 특집을 내건다.98년 최초의육사 여생도로 입학한 강유미씨를 취재한 ‘새끼사자 길들이기’(오전11시).‘역할모델’도 없는 최초의 여생도로 고된훈련과 선배들의 기합에 눈물짓던 강씨는 어느덧 3학년이 돼 초창기 자신의 처지였던 예비생도들을 이끌고 있다.강씨의일상을 들여다보며 젊은이들에 이어내리고 있는 3.1절 기상을 되새긴다. 손정숙기자 jssohn@
  • [김삼웅 칼럼] 극단론이 나라 망친다

    요즘 우리사회는 극단이 판친다.대화나 타협이 통하지 않고 극단적대결과 물리력으로 문제를 풀고자 한다.여야 정치권이 그렇고 노동자,농민들의 항의집회가 그렇고 각급 이익집단의 행위도 마찬가지이다. 국회는 걸핏하면 단상점거와 의장 인질을 능사로 삼고 이익집단들은 해당 기관에 몰려가 업무를 마비시킨다.심지어 고속도로를 점거하여 차량통행을 방해하기도 한다. 우리사회가 왜 이렇게 과격해지고 험악해졌는가.대화와 설득과 토론이 사라지고 물리력과 적대감과 일방통행만이 ‘의사표현’의 수단으로 굳혀지게 되었는가.국가나 공동체 또는 상대방의 처지는 생각하지 않고 오로지 당파·집단·사익을 위해 극단론을 펴고 극한적 행동을 일삼는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이 전개되고 있다. 한국에서도 꽤 인기를 누린 에릭 홉스봄은 20세기를 ‘극단의 시대’로 정의했다.이 시대를 각각 혁명의 시대,자본의 시대,제국의 시대로 나누면서 자본이 제국과 혁명을 낳고 다시 혁명이 세계를 두개의거대제국으로 나누는 등 자본과 제국과 혁명이 물고 물리며 극단적인 대파국의 드라마를 연출했다는 분석이다. 홉스봄의 주장과는 상관없이 지금 우리사회는 ‘극단의 시대’가 전개되고 있다.이 ‘극단’이 자본과 제국과 혁명과 같은 거대담론이되지 못하고 정쟁과 기득권과 집단이기주의의 치졸한 싸움이라는 데문제가 있다. 경제가 3년전 IMF경제위기 초기 증세와 비슷한 양상으로 위기의 먹구름이 몰려 오는데도 사회 각 주체들은 제몫 챙기기의 극단적인 대결을 멈추지 않는다.대우자동차의 경우 사주는 해외에서 호화 도피생활을 하고 회사는 한달에 적자가 1,000억원 이상인데도 사원들은 구조조정을 거부하면서 공멸을 재촉하는 모습에서 한국적 극단주의의 폐단을 보게 된다. 조선말기 조정의 단발령에 반대하여 목숨을 버린 사람이 망국에 비분하여 순국한 사람보다 훨씬 더 많았다.일제때 독립운동을 하는 사람보다 친일파가 많았고,민주화운동자보다 독재자 편에 선 사람이 훨씬 많았다.대부분이 대의(大義)보다 사리(私利)에 매몰된 것이다. 캘먼 실버트의 주장대로 극단론이 내부적으로 작용하면 ‘충돌하는사회’가 되지만 외부적으로 나타나면 ‘고립주의 사회’가 된다.사례를 들어보자.남북 화해 협력은 전쟁방지를 위해서라도 시급한 민족적 과제다.그런데 일부 세력은 반공의 명분론과 기득권 유지 때문에남북 화해를 훼방한다.베트남은 300만명의 자국인과 5만8,000명의 미국인이 사망한 베트남전쟁의 적대국 대통령을 따뜻하게 환영하면서경제적 실리를 챙긴다.‘무서운 너그러움’이다. 우리처럼 친미와 반미의 극단론이 대립하는 나라도 드물다.우리는미국에 1년이면 45억달러(1999년) 이상의 무역흑자를 낸다.미국시장이 막히면 경제가 당장 큰 타격을 입는다.물론 1년에 10억달러 이상의 무기도 수입한다.그런 상대라면 친미·반미의 이분법에서 벗어나국익본위 이해관계의 조절이 중요하다. 달라이 라마의 방한문제도 그렇다.정부가 지나치게 중국의 눈치를살피는 것도 고깝지만 1년쯤 후에 그가 방한한다고 해서 세상이 달라지는 것도 아니다.중국은 우리의 4번째 교역국이고 갈수록 인적·물적 교역이 증대된다.남북의 화해 협력에도 중국의 역할은 중요하다. 굳이 중국과 마찰을 일으키고 갈등관계를 초래할 이유가 없다.중국은 힘이 없어서 홍콩과 마카오를 100년씩이나 ‘외세’에 묶어두었던것이 아니잖은가. 외규장각 도서 반환문제는 민족감정과 실리차원에서 다뤄야 한다.민족감정으로 보면 당장 되돌려 받아도 울분을 삭이기 어렵다.그러나상대가 있고 상대는 완고하다.이성적으로 판단하면 우리에게 여러 질이 있는 복제본을 넘겨주고 원본은 돌려받는 것도 해볼 만한 ‘거래’다.그런데 이런 협상론을 매국행위처럼 비난하고,결과는 다시 긴‘침묵’이다. 원칙과 함께 집단의 자존과 명예를 지키는 일은 중요하다.그와 더불어 국가의 이익과 민족의 이익은 더욱 중요하다.개인이나 집단의 제로섬게임은 설혹 일시적인 이익을 얻을지 몰라도 길게 보면 모두 패자가 된다.단발령에 목숨거는 극단론보다 나라살리는 데 몸을 던지는 대의(大義)가 지켜지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 김삼웅 주필
  • [대한시론] 친미와 반미의 허구적 인식

    미국에 대한 비판이나 이의제기를,한국의 매카시스트는 “반미는 용공이고 좌경이며 결국 빨갱이”라고 물아붙여왔다.국제관계에서 각나라가 국가이익을 겨루는 경우에는 냉정하여 인연이나 정리에 구애되지 않는다.그런데 이 당연한 사실이 우리에겐 통하지 않은 채 친미일변도의 가치기준이 독판무대가 되어 왔다. 미국이 1945년 일제로부터 해방시켜준 은인이고 1950년 전쟁에서 구원해준 혈맹이란 사실이 우리 대미관의 전부로서 압도하다시피 해왔다.그런데 미국뿐이 아니라 어느 외국에 대해서도 그런한 자세와 정서는 유치한 정치인식이다.나라 사이에는 영원한 벗도 없고 적도 없다.이 현실에 눈을 크게 뜨고 땅에 발붙이고 서야 한다.이것이 실리주의 이전에 아주 정상적인 정치인식이다. 우리의 국제관계 인식이나 외교감각이 감상적 굴레에 얽혀 친미와반미의 인식에 머무르게 된 연유를 따져보면,우선 서양열강과의 교류이전에 중국 중심의 사대교린(事大交隣)에 머물렀던 국제실정 인식수준에서 철저하게 탈피하지 못한 데 문제가 있다. 조선시대의 중국이현재론 미국으로 대체된 격이다. 조선때 명나라가 쇠망해가고 새로이청나라가 중원의 주인이 될 당시, 우리는 임진난리에 은혜를 입고 유교 모국이란 명분 때문에 시세를 거슬러 청나라로부터 두번 침략당했다.19세기 서구 제국주의 열강이 아시아에 발을 들여놓아 국제질서가재편되는 시기에도 조선 양반지배층은 소중화를 자처해 위정척사를고집하다 서양 앞잡이가 된 일본 제국주의에게 침략당했다. 이전에 우리는 아셈이란 거창한 국제회의를 치러냈고 그 성과도 평가할 만하다.그러면서도 외국 정상 등 귀빈에게 잘 보이려고 지나치게 허식을 부리는 무리는 하지 않았나 하는 불안도 있다.국제거래에서는 외교도 결국 장사 이상의 실리 챙기기이기 때문이다.그래서 국제관계 인식은 봉건적 정서에 젖어 있어도 안되고 냉전시대의 매카시스트적·친미일변도식의 편파된 시각으로 쏠려도 안된다.그러한 정치인식은 유아적 인식수준이고,심하면 한정치산자(限定治産者)의 지능수준으로 전락되어 결국은 나라 일을 망치기 때문이다. 과거 우리 지도층의 국제관계 인식의 유아적 순진성 때문에 치명상을 입은 일은,1905년 러·일전쟁 당시 미국이 필리핀 보존을 위해 일본 제국주의와 가쓰라-태프트 밀약을 맺어 조선을 팔아넘긴 사정을몰랐던 비극적 사건을 들 수 있다. 1919년 3·1운동 당시에는 윌슨의 민족자결주의가 아시아 민족의 해방이라고 또 한번의 크나큰 착각에 사로잡혀서 미국을 짝사랑했다.당시 미 국무부 주변을 맴돌며 외교를 통한 독립에 앞장선 이승만식 친미 일변도의 외교가 그후 우리의 국제관계 인식에 엄청난 영향을 끼쳤다. 결국 외국에 대한 정치인식이 바르게 깨어나는 계기가 된 것은 1980년 광주민주항쟁을 겪으면서다.참으로 수업료치곤 막대한 희생의 대가였다.당시에 미국정부는 자기의 국익기준으로 신군부집단에 손을들어주고,한국민족의 민주화투쟁은 불안하다고 봐서 묵살한 것이다. 여기서 일부 학생이 미 대사관 건물을 점거·방화하는 등 반발하지만이 문제는 국제관계의 인식차원에서 냉정하게 미국의 실체와 입장을분석해볼 수밖에 없다. 국제관계에서 제 나라 이익을 지키고 주장하느라 미국과 갈등을 빚는 일은 언제고 있을 수 있다.우리 정부는 그런 일을 극력 피하려는나머지 입지를 양보해선 안된다.또 다른 문제는,미국 비판을 모두 위험시해서 용공으로 몰아붙여 공격하는 것은 정상적인 사고방식이 못된다는 점이다.물론 매카시스트들은 지금은 정권의 밖에서 오히려 정권측을 때리는 수단으로 친미정서를 이용한다.그래서 현직 대통령에게까지도 반미적이란 딱지를 붙이려 해서 여당대표가 진땀을 흘리며항변해야 하는 실정이다.오히려 DJ의 친미성이 지나친 것 아닌가 걱정인데 말이다. 어쨌든 색맹(色盲)의 국제관계 인식이나 함량미달의 한정치산적 또는 유아적 지능으로 정치를 대하는 것은 책임 있는 정치인으로선 실격이다.정치는 장난이 아니다.그리고 정치는 개인의 분풀이 무대가되기엔 너무나 중대한 나랏일이기 때문이다. 한상범 동국대교수·헌법학
  • ‘제3의 오일쇼크 오나’ 세계이목 집중

    전 세계가 10일 오스트리아 비엔나에서 열리는 OPEC(석유수출국기구)의 제111차 총회를 주목하고 있다.증산규모에 따라 ‘제 3의 오일쇼크’ 여부가 달려 있기 때문이다. 총회에서 OPEC 11개 회원국들은 10월 이후 석유생산수준을 결정하게된다. 현재로선 회원국간 의견이 팽팽해 증산규모를 가늠하기 어렵다.의장국인 베네수엘라 외에 이란 쿠웨이트 이라크 등 강경파 산유국들은 고유가를 희망하고 있다.친미성향이 강한 사우디가 대규모 증산을 통한 유가안정 의지를 보인다. 추가증산 규모와 관련,석유공사는 국제 석유전문가들의 의견을 종합해 3가지 시나리오를 제시했다. 우선 강경그룹 회원국들이 50만배럴 증산에 합의하는 경우.이렇게되면 27∼28달러(이하 두바이유 기준)의 고유가 기조가 불가피해진다.동절기 수요에 맞춰 50만∼100만배럴을 증산하는 것이 그 다음 시나리오.통상 4분기 수요가 3분기에 비해 300만배럴 가까이 늘어나는 만큼 유가폭락 상황이 초래되지 않으면서 25달러선에서 등락을 보일 전망이다.제3의 시나리오는 100만∼200만배럴증산으로 동절기 수요를감안할 때 유가는 22∼23달러를 유지하게 된다.석유공사 조용욱(趙鏞郁) 해외조사팀장은 “시장상황을 분석해 볼때 두번째 시나리오가 유력시된다”고 말했다. 한편 이번 총회에서는 차기 사무총장에 누가 선출될 지도 관심거리다.릴와누 루크만 사무총장(나이지리아)의 사임표명으로 당초 지난 6월 총회에서 사무총장 선출문제가 이슈화됐으나 회원국간 후보난립으로 합의점을 찾지 못했다.얼굴마담격인 의장과 달리 사무총장은 주요정책사안에 실질적 영향력을 행사한다. 이변이 없는 한 사무총장 후보는 온건중도파인 사우디와 강경파인베네수엘라간의 세력다툼으로 전개될 전망이다. 함혜리기자 lotus@
  • [김삼웅 칼럼] ‘민주’ 없고 ‘나라’ 없는 정당행태

    집권 민주당의 전당대회가 열린 날 원내 제1당인 한나라당은 청와대앞에서 시위를 벌였다. 같은 날 평양 인민문화궁전에서는 제2차 남북장관급회담을 열어 투자보장협정과 경의선복원,경협을 위한 제도적장치 마련 등을 논의했다.남북화해와 남남대결의 어처구니없는 진풍경이 한반도에서 동시에 벌어진 것이다. 6·25한국전쟁이 한창인 1952년 7월 피란수도 부산에서는 이승만의권력연장을 위한 정치파동이 일어났다. 발췌 개헌파동이다.1592년 임진왜란으로 군신(君臣)이 의주로 피란을 가서도 동인과 서인들은 왜란의 책임을 물어 상대방 탄핵에 열을 올렸다.와중에서 유성룡은 이항복의 비호로 겨우 살아남아서 전란을 총지휘하게 되었다. 정치가 국난극복과 민생보호가 아닌 자신들의 권력싸움,이해다툼의방편이었음을 말해준다.지난 2년 동안 IMF환란 극복과정에서 우리 정치가 보인 행태도 임진왜란과 6·25전란때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귀화한 한 외국인은 한국인을 ‘독 속의 게’에 비유했다.독 속에게를 한 마리만 넣어두면 혼자 힘으로 빠져나오는데여러 마리를 넣어놓으면 서로 올라가는 놈의 발목을 잡기 때문에 결국 한 마리도 빠져나오지 못한다는 것이다.참으로 부끄러운 일면을 지적했다.상생과화합을 내세우면서도 공생보다 독생,밖(外)보다 안(內)에서 싸우길좋아한다. 9월1일 평양에서 끝난 2차 장관급회담의 성과로 이산가족 서신교환,군사긴장 완화 및 군 직통전화 개설을 위한 군 당국자회담,쌀 차관공여,3차 장관급 제주회담,임진강 수해방지공동추진,경협제도화 등 전방위 남북교류가 ‘급물살’을 타게 되었다. 이러한 남북한간 긴장완화로 한반도를 둘러싼 4강간에 영향력 유지를 위한 미묘한 신경전이 활발해지고 있다. 시사주간지 이코노미스트 최근호는 “궁극적으로는 통일로 이어질 남북간 화해는 환영받을일이지만 동시에 이해 관계자들을 매우 동요시켜 미국은 한국과 일본에 주둔하고 있는 미군문제를 재검토하게 하고 중국·일본·러시아간한반도에 대한 영향력을 둘러싼 경쟁관계에 다시 불을 붙이게 될 것”이라 내다 봤다. 한반도 주변의 움직임이 이렇다.국가(민족)의 미래를 내다보고 걱정하는 정치인(정당)이라면 급물살을 타고 있는 남북관계를 뒷받침하기위해 주변 4강 문제를 심도있게 연구하고 국회(또는 정당)에 4강과친선협회 등을 강화하여 정부의 입지를 도와야 할 것이다.이때의 ‘정부’는 정권이 아닌 국가와 동의어이다. 의원외교라면 너도나도 미국으로만 몰려가 관광인지 외교인지 구분할 수도 없는 일정을 보내다가 귀국하는 한심한 행태는 시정돼야 한다.미국 외교도 중요하지만 못지 않게 중국·러시아·일본과의 외교적 뒷받침도 남북화해-통일로 가는 길목에서는 매우 중요하다. 2차대전후 오스트리아 정치지도자들은 네 토막으로 쪼개진 나라를 초당파적인 외교력으로 신탁통치를 종식시키고 통일국가를 수립했다. 우리 정치인들도 나라의 장래를 위해 전문성을 바탕으로 친미파·친중파·친일파·친러파로 나뉘어 국익외교에 나서야 한다.그래야 4강에 둘러싸인 반도국가가 안전과 통일을 기약할 수 있다.한말 매국노들처럼 그들의 앞잡이가 되란 말이 아니다. 대미외교를 강화하되 다른 3강과의 관계도 소흘히 해서는 안된다는주장이다.그런 역할은 정부의 외교력만으로는 한계가 있고 국회가 담당해야 한다.다른 나라들도 다 그렇게 한다.외교문제가 너무 ‘벅차’다면 내정이라도 성실하게 챙겨야 할 것 아닌가. 폭우와 태풍으로 수많은 이재민이 가족과 재산을 잃고,중국산 농수산물 파동으로 국민이 불안에 떨고,몇달째 계속되는 의사들의 집단파업으로 의료기능이 마비되고,산불피해·구제역·저소득층 보호를위한 추경 등 산적한 현안이 오로지 정치문제로 발목이 잡혀있다.여름 임시국회에 이어 정기국회까지 파행을 거듭하더니 야당은 장외투쟁을 벌인다. 민주당에 ‘민주’ 없고 한나라당에 ‘나라’ 없다는 세간의 지탄을면하려면 민주당은 날치기 등 비민주적 행태를 버리고,한나라당은 나라를 생각하지 않고 대권욕에만 빠져있는 당노선을 바꾸어야 한다.386세대 등 정치개혁을 내걸고 당선된 개혁성향 의원들이 앞장서 정기국회부터 정상화시켜라. 그렇지 않으면 ‘무노동무임금’원칙이라도지켜라. 김삼웅 주필
  • [2000 美대선](6)외교·국방정책

    앨 고어 민주당 후보와 조지 부시 공화당 후보가 외교분야에서 제시한 공약은 한결같이 ‘미국 제일주의’이다.고어는 ‘세계 지도자 역할을 위한 강력한 국방력’을 누누이 강조했으며, 부시 역시 “미국은 자유세계의 지도자 역할을 맡아야 한다”고 역설해 왔다. 미국은 미국 이익의 극대화를 위해 세계화를 추구해 왔고 91년 이후 고립주의에서 탈피,추구한 ‘인도적인 개입주의’는 두 후보로 하여금 세계 지도자역할을 대외정책의 목표로 자연스럽게 내세우게 만들었다. 세계 지도자로 역할하는 미국을 위해서 두 후보가 표방한 전제조건은 모두강력한 국방력.외교와 국방은 한묶음으로 미국제일주의를 추구하는 유용한도구이며,‘한 손에 코란,한 손에 칼’이 아니라 ‘한 손에 총,한 손에 원조’라는 세계 운영 이념을 실현하는 중요한 방편인 것이다. 미국 원조의 혜택은 그러나 친미 사고방식을 낳아 결국 장기적 관점에서 수혜국가 경제의 미국 편향이란 결과를 가져왔으며,미국 의회가 외교·국방의성공 여부를 평가하는 기준 역시 그러해 반미감정을부추기기도 한다. 미 국무부가 웹사이트에 제시한 외교의 당면 목표는 ▲국제 안보질서 확보▲경제 ▲민주주의와 인권 문제 등 3가지이다. 이중 국제안보를 위태롭게 하는 현안에는 중동,인도-파키스탄 분쟁,신패권주의를 추구하는 중국과의 알력,최근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 등장으로 다시제역할을 찾아나선 러시아와의 무게중심 싸움, 그리고 북한 문제로 대별되는‘우려국가’ 문제 등이다. 인권·외교 문제가 현안이 아닌 유럽과는 극단적인 실리,즉 무역을 둘러싼논쟁이 한창이다. 이해가 엇갈리는 외교논쟁에 대한 고어의 대응은 국제기구를 통한 접근이다.명분을 살리면서 세계의 중지를 모으는 실질적인 방법이다.이스라엘 문제에유엔의 해결책을 근간으로 중재안을 이끌어내는 것이 대표적 실례이다. 그러나 분쟁지역에 대해서는 단호하다.91년 부시 전대통령의 걸프전 지지,유고 공습 결정,체첸사태와 관련 미 원조 제공 요구,사담 후세인 반대파 지원 등이 그것이다. 국방에 관한 한 고어는 방산업체로부터 다소 자유스러운 민주당 소속이기에여론동향에 따르는 편. 공화당에 밀려 국가미사일 방어망 계획(NMD) 추진에필요한 탄도탄요격미사일(ABM)협정 개정에 반대했지만, 국방에 있어서의 기술개발을 적극 추진해 21세기 첨단군대를 추구했다. 이에 반해 국제경영에 경험이 없는 부시는 외교정책에서 다소 어눌하다.예루살렘이 이스라엘의 수도라고 주장해 논란을 일으켰는가 하면 쿠바에 대한봉쇄를 유지해야 한다고 분위기없는 발언을 던지기도 했다. 그러나 국방에 관해서는 단호해 공화당의 특징을 대변한다는 말을 듣는다.630억달러의 NMD 계획을 적극 주장했었고 신무기 개발에 200억달러,군인 임금인상을 위해 10억달러를 책정한다는 공약을 제시하기도 했다. 외교에 어둡다는 지적에 따라 전 국가안보위원이자 스탠퍼드대 교수였던 곤돌레사 라이스,폴 월포위츠 존스 홉킨스대 국제관계대학원 학장으로부터 외교안보문제 자문을 받아 조심스럽게 이슈별로 접근중이다. 워싱턴 최철호특파원 hay@. *대북 정책-고어 '당근' 부시 '채찍'. [워싱턴 최철호특파원] 민주당의 대한반도 정책은 우리가 익히 보아온 ‘북한에 대한 적극 개입정책(engagement policy)’이다. 국제사회에서 고립된 북한의 벼랑끝 외교를 인도주의적인 원조와 국제사회로의 복귀로 완화시켜 북한 정권의 조기 붕괴를 막고 한반도 평화와 안정을 추구한다는 것을 골간으로 한다. 고어의 한반도 정책은 클린턴 행정부의 대북정책과 동일한 선상에서 이해할수 있다. 한국 정부의 ‘햇볕정책’을 지지하고 94년 북한과 맺어진 제네바 핵협정의 준수를 적극 주장한다. 반면 부시의 한반도 정책은 아직 뚜렷히 언급된 바가 없어 지적하기 어려우나 최근 한국을 다녀간 폴 월포위츠 존스홉킨스대 국제관계대학원(SAIS) 학장의 말을 통해 엿볼 수 있다.월포위츠는 공화당 정권인 부시 행정부 시절인도네시아 대사를 역임하고 국방부 차관까지 지낸 뒤 현재는 부시 후보의국제관계 자문역을 하고 있으며 당선시 곤돌레사 라이스와 함께 백악관 중용이 예상되는 인물이다. 그는 남북정상회담 이후 한국을 방문, 제네바회담의 재협상을 주장했다.근본적으로 공화당의 한반도 정책은 제네바회담에 대한 자세에서 엿볼 수 있는데 공화당은 국제사회가 핵동결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경수로와 같은 혜택을준 사례가 없기 때문에 제네바회담은 잘못된 것이며,식량 전용을 하는 북한에 대한 식량공급은 보다 신중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부시는 ‘북한에 대한 보다 확실한 채찍’을 언급,공화당의 입장을 충실히대변하고 있다. *양측 참모진. 대선에 나선 민주당의 앨 고어 부통령과 공화당의 조지 부시 텍사스 주지사가 벌이는 정책 대결은 막강한 정책 참모진이 밤잠을 설치며 뒷바침을 하기 때문에 가능하다. 이들 참모진들은 아직은 전면에 나서서 활동하는 것은 아니지만 후보의 당선시 백악관 진영과 행정부 장·차관으로 내정되기 때문에 종종 ‘세도우 캐비넷’으로 인식된다. 고어후보 참모진은 부통령 재직 시절 봐왔던 인물들이중심인 반면 부시 참모진에는 대통령이었던 부친 조지 부시의 지인들이 많이 진을 치고 있다. 하버드 출신인 고어의 참모진영은 자연스럽게 하버드 학파가 중심이 돼 케네디 스쿨 학장인 일레인 카마크를 중심으로 참모가 구성돼있다.카마크는 지난 93년 클린턴·고어 행정부 선임정책보좌관을 지내면서 국가정책검토분야에 뛰어난 역할을 했으며 백악관의 신정책위원회를 구성,전체 공무원의 14%인 30만명을 감축하는 개편작업을 이끌기도 했었다.그녀와 함께 정책입안에책임을 지는 사람은 딕 게파트 미주리주 하원의원과 빌 리처드슨 에너지 장관이다. 민주당내 제2인자 자리를 놓고 고어와 은근히 알력을 빚었던 게파트의원은지난해 대통령 출마를 포기,민주당 단합에 모범을 보였으며, 최근 부통령 러닝메이트 후보로 거론된다. 하원의원 출신인 빌 리처드슨 에너지 장관은 고어에 헌신적인 가신역할을하는 참모이다.인종문제 전문가인 헨리 게이츠 하버드교수와 환경운동전문가인 로버트 케네디 2세,게리 데이비스 캘리포니아 주지사와 톰 하킨 아이오와주 상원의원도 고어참모로 두드러진 활동을 한다. 부시는 예일을 졸업하고 하버드에서 경영학석사과정(MBA)을 마친 전형적인캠브리지파이나 국가안보위원회에서 부친을 자문했던 곤돌레사 라이스 스탠퍼드대 후버연구소 연구원을중심으로 외교자문을 받으면서 어느덧 참모진은스탠퍼드 학파로 이뤄졌다. 따라서 하버드와 스탠퍼드 양대학은 차기 정부 구성을 두고 은근히 자존심대결을 벌이고 있으며,고어와 부시 양측의 핵심 참모진은 공고롭게도 모두여자인 셈이다.15세에 덴버대학에 입학해 19세에 졸업한 영재인 라이스는 89년 부시대통령 정부의 국가안보위원회 일원으로 구소련과 동구전문가로 활동했다. 대통령 특별보좌관을 지내기도 했던 라이스는 외교와 정부정책면에서 어눌한 부시의 개인교습을 시작하면서 참모진의 핵심으로 부상했다. 대선출마선언 훨씬 이전인 98년 7월,부시는 조지 슐츠 전국무장관을 비롯한라이스, 부시 대통령 정책개발 보좌관 출신 마틴 앤더슨 등 후버연구소 요원들을 텍사스 오스틴 주지사 관저로 불러 자신의 대선 자문을 부탁했다.이렇게 시작된 부시의 참모진은 단시일내에 부시 후보를 전국후보로 등장시키는데 성공했을뿐 아니라 고어진영을 계속 앞도하는데 성공적인 전략을 구사하면서 다음 대권을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 인도네사아 대사,국방부차관,국무부 동아시아 차관보 등을 역임한 존스홉킨스대 국제관계연구소장 폴 월포위츠 역시 부시 외교문제 정통자문관으로 활동중이며,한반도 문제와 관련 역할은 주목된다. 워싱턴 최철호 특파원 hay@.
  • 金대통령 3군사령부 방문“주한미군 동북아안정에 필요”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은 29일 3군사령부를 방문한 자리에서 미국과 주한미군의 역할을 소개했다.남북 정상회담 때 김정일(金正日) 국방위원장과 나누었던 대화도 곁들였다. 김 대통령은 “주한 미군은 한반도에서 전쟁을 막고 북한의 남침을 막는 것뿐 아니라 아시아·태평양 지역,특히 동북아 지역의 안정과 균형을 위해서도 필요하다”며 미군의 존속 필요성을 역설했다. 그것이 국익에 부합되는 일이라고도 했다. 김 대통령의 논리는 “미군이 없었다면 우리가 오늘날 살아남아 이런 경제적 번영을 이룰 수 있겠느냐”는 물음으로 시작했다.그러면서 한국전쟁과 IMF위기 극복을 실례로 들었다.“미군은 한국전쟁 때 3만7,000명의 희생자와많은 실종자를 내며 한국을 지키는 데 기여했다.이들의 희생이 없었다면 우리는 존립하지 못했을지 모른다”고 했다.또 “IMF를 맞았을 때도 미국이 앞장서서 우리의 위기극복을 지원했다”고 말했다. 김 대통령은 특히 “우리 국민은 친미(親美)가 아니고 국가와 민족을 위해좋은 의미로,미국의 역할을 이해해야 된다”면서 “미국은 과거에도 중요했고,현재도 그렇고,미래에도 중요하다”고 우리와 미국의 관계발전 전망을 제시했다. 김 대통령이 이날 미국과 주한미군을 언급한 것은 최근 일부 지역에서 번지고 있는 반미감정 확산에 대한 우려때문으로 보인다. 박준영(朴晙瑩) 청와대 대변인은 김 대통령이 이날 주한미군의 존속 필요성을 강도높게 언급한 데 대해 “주한미군 문제에 대해 우리가 일시적이고 감정적으로 대응해서는 안된다는 뜻”이라고 설명했다. 양승현기자 yangbak@
  • [김삼웅 칼럼] 韓美 현안 어떻게 풀 것인가

    연초 미 정치학회장 로버트 코핸은 한 인터뷰에서 “제국(Empire)이라는 말은 미국을 표현하는 데 적절치 않다.역사상의 제국들과 달리 미국은 민주주의 체제이고 식민지 확장에 이해관계를 갖지 않는 나라이기 때문이다.대국(Great Power)이라는 표현이 정확할 것이다.미국의 지위는 기술적 지위가 계속되는 한 계속될 수 있을 것이다”란 말을 남겼다. 미국에 비판적인 사람(국가)들은 ‘미제(美帝)’ 즉 미제국주의라 부르고우호적인 사람들은 ‘우방’ 또는 ‘혈맹’이라 호칭한다.코핸은 미국이 민주주의 체제이고 식민지를 만들지 않기 때문에 ‘제국’이 아니라지만 보기에 따라 민주주의는 ‘국내용’이고 수많은 약소국가에 대한 이해 다툼은 ‘신식민지’ 정책이나 ‘속방’의 다른 이름일 수도 있다.그렇지만 과거 일본제국주의나 독일·러시아제국주의와는 존재양상이 크게 다른 것도 사실이다. 이렇게 ‘두 얼굴의 미국’이 우리에게는 어떤가.일제로부터 나라를 찾아준해방자, 6·25전쟁에서 국가를 지켜준 구원자,배고플 때 도와준 은혜의 나라,수많은 유학생과 이민을 받아준 기회의 나라,상품수출의 최대시장 등 긍정적인 측면이 너무 많다.반면에 가쓰라-태프트 밀약으로 일본의 침략을 양해해준 행위,분단의 배후,양민학살,독재정권 지원,대리전쟁(한국전과 베트남전) 조종,불평등한 한·미행정협정(SOFA) 등 부정적 측면 또한 심한 편이다.호오(好惡)와 선악이 동시적으로 존재한다. ■두 측면 함께 살펴야 개인이나 국제관계나 좋은 부분은 발전시키고 좋지 않은 부분은 시정해 나가는 것이 정도이다.한·미관계도 마찬가지다.80년 광주항쟁 이전까지 “양키 고 홈” 소리가 없는 곳이 한국이었다.그러던 것이 최근 양국관계가 곳곳에서 마찰이 생기고 긍정적인 측면보다 부정적인 측면이 부각되고 있다. 노근리와 매향리,린다 김,그리고 미8군 소속 매카시 상병 사건이 엎치고 겹치면서 그동안 묻히고 맺힌 일들이 터져나오기 시작했다.주한미군의 본질문제에서부터 행정협정 개정,여기에 미군기지와 훈련장 등이 들어선 ‘공여지’문제,심지어 미군기의 착륙소음과 쓰레기 문제까지 제기되고 있다. 언젠가드러나고 시정돼야 할 일들이지만 한꺼번에 분출되고 이것이 감정적으로 악화되어 양국의 우호관계와 공조체제에 손상을 가져와서는 안되겠다. 무엇보다 미국측이 한·미행정협정을 미·일협정이나 나토협정의 수준으로개정하려는 노력을 보여야 한다.노근리나 매향리 사건도 진실을 밝히고 응분의 배상을 해야 한다.한·미 두 나라가 서로를 필요로 하는 대등한 동반자관계이기 위해서는 상호주의 원칙이 존중돼야 하기 때문이다. 주한미군에 대한 평가 역시 마찬가지다.전쟁억지력인 점에서 한반도의 평화유지에 크게 기여해온 한편 미국의 입장에서는 최소한의 병력과 예산으로 동북아지역의 안전유지라는 국익에도 큰 역할을 해왔다.결코 일방적 시혜가 될수 없는 것이다. 이와 함께 우리로서는 미군이 수도 한복판에 주둔하고 전시작전통제권을 장악하고 있다는 현실적·역사적 상황을 인식하면서도,“일본이 미국의 배를 빌려 바다로 나가는(借船出海)식으로,이 기회를 자주방위의계기로 삼으려는”(李景治 북경인민대 교수) 노력이 필요하다. 또한 주한미군의존재는 한반도의 전쟁억지력과 함께 중국과 일본의 군비경쟁과 대립을 완충시키는 동북아지역의 힘의 균형자 역할을 하고 있다는 사실도 주목해야 한다.감정적이나 민족주의적 관점에서만 주한미군의 존재에 대처할 것이 아니라 국제질서의 안목에서 이를 인식하면서 친미냐 반미냐의 수평논리보다 독일과 일본처럼 그들을 ‘활용’하는 입체논리가 중요하다. ■정상회담 앞둔 반미분위기 우려 우리는 지금 분단 반세기 만에 남북정상회담을 앞두고 있다.정부의 역량인지 국가의 행운인지,워싱턴·베이징·도쿄·모스크바가 모두 햇볕정책을 지지하고 정상회담의 성공을 바라고 있다.이 기회에 한반도의 냉전체제 종식과교류협력의 증대를 위해 모든 역량을 정상회담의 성공에 집중시켜야 한다. 주한미군 문제나 SOFA 문제도 이 큰 원칙에서 예외일 수 없다. 미국측의 태도도 바뀌어야 한다.‘미제’가 아닌 ‘우방’이기 위해서는 아메리카정신인 ‘합리주의’의 바탕에서 SOFA 문제나 현안을 풀어나가는 성실성을 보여야 한다.“웃는 얼굴에 침뱉을 수 없다”는 전통적인 한국인의 정서를 미국은 헤아릴 줄 알아야 한다. 김삼웅 주필.
  • 한국언론에 비친 미국모습은?

    우리 언론의 미국관은 어떤 모습일까. ‘월간 말’지 편집장 출신의 최진섭씨(39)는 최근 근대 이래 한국에 커다란 영향을 끼쳐온 미국에 대한 한국언론의 보도태도를 분석한 ‘한국언론의미국관’을 살림터에서 출간했다.최씨는 책에서 “한국언론의 미국에 대한보도는 그 태도와 시각에서 시기마다,언론사마다 각각 다르다”고 분석했다. 그러나 최씨는 그 흐름은 대체로 두 가지,즉 하나는 친미 보수적 성향이고다른 하나는 반미 진보적이었다고 평가했다.이 두 흐름은 서로 시기를 비켜가면서 존재했던 것으로 보인다.즉 진보언론이 지속되기 어려웠던 시기에는보수언론이 주류를 이루었는데 이 시기 한국언론의 대미 시각은 친미·사대주의였으며 미국언론보다 오히려 친미적이었다는 것이 저자의 분석이다.상대적으로 이같은 시기에는 진보언론이 탄압을 받았으며 5·16후 ‘민족일보’가 폐간과 함께 조용수 사장이 비운을 맞은 것이 그 한 예라는 것. 한국언론의 전반적인 미국관을 친미성향으로 분석하고 있는 저자는 “사대성·반민족성·반민중성이 그 중심에 자리잡고 있다”면서 “미국을 욕하면서도 은연중에 미국화 되기를 바라는 이중적인 성향이 한국언론의 자화상”이라고 지적했다.값 1만3,000원. 정운현기자
  • [구청장 25시] 成章鉉 용산구청장

    ‘외국군 주둔 100년,용산의 역사를 다시 쓴다’ 성장현(成章鉉) 용산구청장의 요즘 일과는 온통 주한미군에 관한 일로 채워져 있다.최근 주한미군이 영내에 건축중인 드래곤 힐 로지(Dragon Hill Lodge)호텔 등으로 빚어진 미군과의 힘 겨루기 때문이다. 지난25일 아침.8시를 갓 넘어 집무실에 들어서자마자 서둘러 간부회의를 소집했다.우호도시와의 결연을 위한 출국을 앞두고 구정 현안을 점검하기 위해서였다.역시 주제는 ‘미군’이었다.간부들로부터 호텔과 주·정차 위반 과태료 체납문제 등의 대책을 보고받은 성 구청장은 짧은 한마디 말로 회의를마무리했다.“이 일은 참된 한·미 우호를 다지는 일입니다.적당히 미봉책으로 덮어버린다면 결국 국민감정만 자극한다는 점을 미군측도 잘 알고 있을겁니다.크게는 한·미간,작게는 주한미군과 용산구간의 역사를 다시 쓴다는소명감을 가집시다” 사실 용산구에는 서울의 다른 어느 지역보다도 외세의 흔적이 많다.임진왜란 때는 퇴각하던 왜군이 진영을 차렸는가 하면,구한말 러·일전쟁 후에는일본군 주력부대가 총검을 앞세워 이곳에서 식민(植民)의 터를 닦았다. 일본은 서울 도심에 인접한 요충일 뿐 아니라 한강 수로의 주요 거점이자,개항장인 인천과 가까운 용산에 군사기지를 만들어 한반도 장악과 수탈의 전진기지로 삼았다.해방 후 진주한 미군도 기존의 일본군 군사시설을 사령부로 사용하면서 점령군 역사를 오늘까지 이어오고 있다. 지역 관문에 철옹성처럼 철조망 담벽이 둘러쳐친 미군부대를 지나칠 때마다 민선 자치단체장으로서 안타까움을 느꼈다고 털어놓는 성 구청장은 “그들의 불법과 무례조차 나무라지 못할 만큼 우리가 나약하지 않다”며 문제의발단을 스스로 만들었다고 소개했다. 구청장이 된지 얼마 지나지 않아 회의 때문에 미군 영내에 들어간 그는 우연히 한 건축공사장에 눈길이 닿았다.어떤 공사인지 물었으나 구청 간부 어느 누구도 아는 사람이 없었다.나중에 그것이 문제의 호텔 건축공사임을 확인한 그는 미군측에 이 공사의 부당성을 지적하고 시정을 요구했다.“우리국민에게는 엄격하게 법을 적용하면서 미군의 불법·부당한 건축행위를 그냥 보고 넘길 수 없었다”는 것이 그 이유다. 그러나 답변은 뜻밖에도 ‘문제될 것이 없다’는 무성의하고도 오만에 가득찬 것이었다.“그때 문득 ‘주·정차 위반으로 적발된 미군병사가 시민들 앞에서 보란 듯이 스티커를 찢어버리더라’는 직원들의 하소연이 생각나 그냥덮어둘 일이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고 말했다. 한·미간의 특수관계를 모를리 없는 입장에서 자신 역시 ‘친미주의자’라고 말한 성 구청장은 “그러나 이 땅의 주인은 엄연히 한국인이며,이를 인정한다면 미군도 이제는 위압 대신 겸손을 보일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한·미 주둔군지위협정(SOFA)의 개정에 대해 미군측도 필요성을 인정하는 만큼 성의있는 조치가 있을 것”이라고 기대감을 표한 성 구청장은 “누군가가 꼭 해야 하는 일인 만큼 용산구가 앞장서서 주둔군 100년의 역사를 바꿔 나가겠다”고 말하며 토요일 늦은 오후 구청문을 나섰다. 심재억기자 jeshim@
  • [대한광장] 민족의 안녕·행복·품위를 위해

    “나는 힌두이다.나는 모슬렘이다.나는 크리스천이다.무엇보다도 나는 인도인이다.” 간디의 말이다.종교와 이념의 분열을 막고 한 민족으로 독립국가체제를 유지하려던 그의 부르짖음이다.그는 과격 분열주의자의 총에 죽는다. “신이 한 인간에게 이렇게 고상한 정신을 내려준 예가 많지 않다.” 아인슈타인의 송사(頌詞)다.그의 비폭력,독립의 성취,인도주의는 인류 역사에 살아 남는다. 남북간 전쟁과 불행을 예견해 남한의 단독선거와 반쪽 정부수립을 반대하고 남북화해 통일을 위해 평양을 방문했던 김구는 한 자객의 총에 죽는다.그의 정신은 민족사에 빛나고 있다.사람은 극적으로 타살돼야만 또는 사지(死地)에 몰려가야만 이념이 더욱 강렬하게 전달되는 것일까.시저·이순신·안중근·링컨·루터 킹·박정희·만델라….그리고 격이 같진 않지만 특히 예수. 송도 3절(三絶).경관도 수려한 박연폭포,박식 심오한 도학자 화담(花潭) 서경덕,기생이면서도 애절한 시작품으로 국문학사에 뚜렷한 자리를 차지하고있는 명월 황진이. 그녀는 자기를 사모하다죽은 한 총각의 한(限)에 큰 충격을 받는다.정을주지 못했음을 후회한다.그래서 그는 남녀의 사랑을 섬세한 감각으로 느껴헤아린다.자기를 원하고 자기가 원하는 남녀의 사랑에 투철한다.그녀가 지은 정한(情恨)의 시를 우리는 애송한다. ‘청산리 벽계수야 수이 감을 자랑마라.…명월이 만 공산하니 쉬어간들 어떠하리’ ‘…이시라 하더면 가랴마는 제 구타여 보내고 그리난 정은 나도 몰라 하노라’ 남북관계를 남녀관계에서 본다.한 남자가 한 여자를 사랑한다.남자는 상대에게 용서받지 못할 상처를 주었다.그는 진정 잘못을 반성하면서 새로운 각오와 순수한 애정으로 결혼을 간청하지만 여자는 남자를 믿지 않는다.또 속이고 결국은 버릴 것이라고 믿는다.무슨 소리를 하든 그건 속임수고 적화통일 노선은 불변이라고 믿는다.50년이 지난다.남자는 죽는다.그래서 황진이는 나섰다. 북은 1960년 남북연방제를 제안했다.그리고 80년에는 고려민주연방공화국방안을 제안했다.서로 상이한 현재의 체제를 유지하고 각각의 정부와 군대를 유지하되 병력은 10만명으로 줄이자고 했다.통일된 체제와 국가는 다음 세대에 맡기자고 했다.중국과 홍콩의 예도 들었다.반공법·국가보안법 폐지,안기부 해체,주한미군 철수 등 단서를 달았다. 주한미군 문제에 대해 북한은 공식적인 대외 수사(修辭)와는 달리 여러차례 의미있는 발언을 했다.김일성,김영남,이삼로,북·미 장성회담 대표 이찬복중장 등.“주한미군의 지역안정 역할을 인식한다.남북통일에 방해되지 않는다면 미국이 원하는 만큼 계속 주둔해도 된다.” 한국도 한민족공동체 통일방안(89년),민족공동체 통일방안(94년),김대중(대통령)의 3단계 통일방안(95년) 등을 제안했다.그러나 양측은 한번도 서로의통일방안을 놓고 책임자끼리 진지하게 논의한 적이 없었다.조평통의 허담 위원장은 지난 85년 필자에게 “남북이 제안한 통일안은 공통점이 많다.서로진지하게 상의하고 양보해 통일을 이룩하자”고 했다. 미국은 지난 9월17일 늦게나마 94년 북한과 제네바합의에서 약속한 경제제재 완화의 일부 조치 그리고 국교정상화 의향을 발표했다.페리는 남북통일을 바란다며 남북 자체의 문제라고 했다.북의 곤경에 인도적인 동정을 표명했다.우리 정부의 총괄적 타결 주장과 설득을 미국·일본이 수용한 결과다. 인구의 급격한 증가와 식량·자원 부족,이념·종족 분쟁,환경오염 등 격변의 21세기를 앞둔 지금 강대국에 둘러싸여 있는 이 민족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그리고 남의 멸시와 조소를 받지않고 떳떳하고 자랑스럽게 살기 위해서는 분단의 낭비와 비극을 하루속히 종결시켜야 한다. 김대중 대통령은 3단계 통일론을 제창했다.국가연합·연방단계를 거쳐 완전통일의 3단계다.김대통령의 높은 뜻과 목표가 임기중에 달성될 것을 간곡히기대·기원한다.진정한 포용정책과 세계화는 “나는 친북이다.나는 친일이고 친미며 친중이며 친러이다.나는 세계 모든 국가와 인민에게 우애를 견지한다.나는 무엇보다도 이 민족의 안녕과 행복과 품위를 위해 일한다”일 것이다. 손장래 전말레이시아 대사
  • [인터뷰] ‘노근리 사건’첫보도 말誌 오연호기자

    * “인간을 인간으로 보면 비극은 없어” 최근 미국 AP통신의 보도로 세계언론의 이목을 집중시킨 ‘노근리 사건’을 첫 보도한 곳은 국내언론이었다.그러나 그 매체가 월간지였다는 이유로 ‘노근리 사건’은 그동안 국내 주류언론들로부터 외면당해 왔다.지난 94년 ‘노근리 사건’을 처음으로 현장취재해 진상을 세상에 알린 주인공은 ‘월간말’의 오연호(35)기자.88년 ‘말’지 기자로 취재활동을 시작한 이래 10여년간 주한미군범죄를 끈질기게 추적해 왔다.그런 연유로 ‘반미기자’라는별명을 얻은 오 기자가 최근 자신의 ‘10년농사’를 한 권의 책으로 엮어 ‘노근리 그 후’를 월간말에서 출간했다.이 책은 주한미군범죄 55년사를 집대성한 것으로 ‘20세기 야만과의 결별을 위한 현장보고서’라는 독특한 부제가 눈길을 끈다.“해방직후이든 90년대의 것이든 노근리사건을 포함한 모든미군범죄의 핵심은 ‘인간에 대한 예의’가 없다는 것입니다.인간을 인간으로 보지않는다면 그건 모두 야만입니다” ‘양민의 죽음’을 뉴스로 만든 AP가 진짜로 기여한것은 특종보도가 아니라 바로 인간을 생각하게 하는데 있다고 오 기자는 말했다. 오 기자가 주한미군 범죄사 추적을 ‘내 일’로 여기게 된데는 ‘사연’이있다.86년 연세대 총학생회 교육부장 시절 중고등학생 2만 여명에게 보낸 ‘편지사건’이 그것이다.그가 쓴 편지속에는 “미국은 6·25때 한국을 지원만 한 것이 아니라 우리의 무수한 동포를 죽였다”는 귀절이 포함돼 있었는데이 ‘편지’는 당시 조선일보 사회면 톱을 장식하였다.이 사건으로 그는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1년간 감옥살이를 했다. “그 때 내가 쓴 편지내용이 사실로 확인돼 명예는 회복한 셈입니다.다만 AP가 노근리를 ‘해방’시킨 날 왠지 씁쓸했습니다.외세에 의한 8·15해방이다시 생각났기 때문입니다” 88년 1월 ‘말’지의 기자가 되면서 그의 ‘미국(주한미군)탐구’는 본격화 됐다.그 해 6월 ‘르포-용산 미군기지’를 취재하면서 ‘탈선미군들’의 범죄행각을 접했고 이후 그는 현장취재를 통해 밝힌 미군범죄사를 ‘식민지의아들에게’‘더이상 우리를 슬프게 하지마라’‘실록소설 살아나는 임진강’이라는 이름의 책들로 엮어 고발해 왔다.오직 그만의 외로운,‘우리현대사의 숨은 그림찾기’였다.그런 그가 ‘한국속의 미국찾기’의 마지막에서 만난것이 바로 ‘노근리사건’이었다.94년 ‘말’ 7월호에 그가 게재한 ‘6·25참전 미군의 충북 영동 양민 3백여명 학살사건’보도는 노근리에 대한 최초의 심층적 현장취재였다.당시 국내 언론은 아무데서도 주목하지 않았고 그는 금년 6월호에 다시 이를 다루었다.AP통신의 보도가 터져나오기 불과 석 달전의 일이었다. ‘반미기자’인 그는 95년부터 2년반가량 미국생활을 하고 돌아왔다. “‘미국속의 한국’을 알아야 ‘한국속의 미국’을 알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귀국한 후 ‘한국이 미국에게 당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출간했는데이는 내가 ‘반미기자’에서 ‘반미와 친미를 능숙히 배합하길 원하는 기자’로 바뀌고 있는 중임을 솔직히 고백합니다” 오 기자는 “국익보다 사실(인권유린)보도를 우선시한 AP의 편집철학에 찬사를 보낸다”며 한국언론의 ‘외신사대주의’를 다시한번지적했다. 정운현기자 jwh59@
  • [문명자 회고록 내가 본 朴正熙와 金大中](1)

    대한매일은 미국 US 아시안뉴스 서비스 주필인 문명자씨의 미공개 회고록 ‘내가 본 박정희와 김대중’을 단독입수,내용 가운데 일부를 발췌하여 연재합니다.문씨는 지난 73년 ‘김대중납치사건’을 국내에 보도한 이후 신변에 위협을 느껴 미국에 정치망명을 선언한 이후 30여 년간 미국서 활동해온 현역언론인입니다.그동안 그는 국내에서 접할 수 없는 한국관련 고급정보를 목격하고 기록해 왔으며 이번 회고록은 이같은 내용들을 토대로 한 것 입니다.회고록에는 한국현대사의 ‘미스터리’는 물론 한·미관계의 이면사를 처음 공개한 것도 상당수 포함돼있어 ‘역사적 기록’으로서도 큰 의의가 있을 것입니다. 73년 4월 15일 대만대학에 박사학위를 받으러 간다며 한국을 빠져나온 전중앙정보부장 김형욱(金炯旭)이 며칠후 미국에 나타났다.그것은 영락없는 도망길이었다. 5·16 쿠데타의 주동인물중 하나였던 그는 그후 출세가도를 달렸다.63년 5월 제4대 중앙정보부장으로 취임한 김형욱은 박정희를 위해 별명처럼 ‘곰’같은 충성심을 발휘하는 한편 자기자신을 위해 온갖 부정한 방법을 동원해치부를 했다.이같은 김형욱이 미국으로 도망온 이유는 자명했다.수십년간 충성해온 수하들을 하루 아침에 내치고 잡아넣는 박정희의 냉혹성에 대한 공포감 때문이었을 것이다. 내가 미국에서 김형욱을 처음 만난 것은 그가 71년 공화당 전국구 의원 신분으로 남미를 방문하고 뉴욕에 들렀을 때였다.그때 나는 MBC 워싱턴특파원으로 일하고 있었는데 유엔 취재차 뉴욕에 있다가 당시 컬럼비아대학 연수생으로 와 있던 동아일보 기자 이웅희(李雄熙·현 무소속 국회의원)와 함께 김형욱과 뉴욕의 한 한국음식점에서 식사를 했다. 김형욱이 미국으로 도망온 이후 나는 그와 수 차례 만난 적이 있다.73년 11월 내가 미국에 정치망명을 선언한 후 그는 내게 “문 여사,용감한 결심을존경합니다.우리는 뜻을 같이 하는 동지입니다”라며 전화를 걸어오기도 했다.그는 내가 망명을 선언한 후 부쩍 자주 전화를 걸어왔는데 “김대중 납치범 명단을 내가 다 가지고 있는데 때가 되면 가르쳐주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77년 1월 김형욱은박 정권의 미국 의회 부정로비사건 조사를 위해 구성된프레이저위원회에 증인으로 채택되어 있는 상태에서 아들과 함께 유럽여행을한 적이 있다. 그는 뉴욕 케네디공항을 통해 미국으로 돌아왔는데 여기서 낯뜨거운 사건이 발생했다.김형욱이 달러를 밀반입하다가 세관원에게 걸린 것이다.내가 그 사건을 처음 알게 된 것은 한 유태인 친구의 제보 때문이었다. 세관원은 오리걸음(덕 워킹)으로 걸어 들어오는 동양남자가 뭔가 숨긴 것이틀림없다고 확신,김형욱을 멈춰 세웠다.꼭 아편쟁이같이 생겨 마약밀수를 하는 줄 알았다고 한다. “헤이,유,스탑”(여보,좀 멈춰요). “미?”(나요?). “예스,유”(예,당신말이오). 더욱 한심한 일은 세관원이 그를 불러 세워 몸수색을 하려 하자 김형욱은 한국식으로 세관원을 협박했다고 한다.“내 몸을 수색해서 아무것도 안나오면너 그냥 두지 않겠다”.“오케이”.세관원은 보안관에게 명령했다. “데려가 발가벗겨”. 보안관이 김형욱을 방으로 데려가 발가벗겼는데 그는 무려 7만5,000달러의돈뭉치를 다리에 붕대로 둘둘 감고 그 위에 여자 타이즈를 입고 있었다고 한다. 79년 10월 7일 김형욱이 프랑스 파리에서 실종된 후 나는 교토통신의 요코가와 워싱턴특파원과 함께 처음으로 뉴저지에 있는 그의 저택을 방문한 일이있다.그의 부인 신영순(申英順·在美)에게 주소를 물어 찾아간 그의 집은 웬만한 미국 부호의 집 못지않게 호화롭게 꾸며져 있었다. 실종 직전 김형욱은 이른바 ‘회고록’ 출판문제로 박 정권과 막판 거래를하고 있었다.박 정권은 김형욱에게 “회고록을 출간하지 않는 대가로 500만달러를 주겠다”고 제의하고 이미 100만∼150만 달러를 먼저 지불했다고 한다.김형욱은 그 나머지 돈을 받으러 파리에 갔다가 결국 실종되고 만 것이다. 김형욱이 어떻게 최후를 맞았는가에 대해서는 여러가지 설이 있다.우선 중앙정보부가 파리에 온 김형욱을 납치,살해한 후 센강에 버렸다는 설도 있었고,또 산 채로 짐짝처럼 포장해 KAL기에 실어 서울로 데려갔다는 설도 있다. 그 무렵 우리 사무실에 프랑스어로 된 익명의 편지가 날아들었는데 그 내용은 김형욱이 KAL기 짐칸에실려갔다는 것이었다. 나는 미국의 한 항공사 화물부에 문의를 해보았다.“사람을 짐짝처럼 싸서운송하는 것이 가능합니까?”.“산소가 부족해 호흡이 곤란하고 온도·습도가 낮아 사람이 짐칸에서 파리∼서울간 15시간을 버틴다는 것은 도저히 불가능합니다”. 이래저래 취재는 벽에 부딪쳤고 나는 김형욱의 사인규명을 거의 포기했다. 그런데 80년대초 나는 뜻밖의 루트를 통해 김형욱의 사인에 대한 상당히 정확한 정보에 접하게 되었다.발설자는 정일권(丁一權) 전 국무총리였다.그는유럽을 여행하던 중 파리에서 자신이 신뢰하는 모 인사(본인의 요청으로 신분을 밝힐 수 없음)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고 한다. “잔인하다 잔인하다 했지만 박정희가 이렇게 잔인할 수 있나.잘못했다고비는 김형욱이를 자동차에 실어 그대로 폐차장에 밀어넣어 버렸다네”그의 말에 따르면, 산 채로 서울로 납치해간 김형욱을 차지철이 경복궁에서청와대로 이어지는 지하벙커를 통해 박정희 앞에 대령했는데 김형욱이 박정희에게 “잘못했습니다.죽여주십시오”하고 빌었다는것이다. 정일권의 말대로라면 김형욱은 폐차장 압착기 아래서 최후를 맞았다는 얘기가 된다.정일권의 입장에서 보면 김형욱은 자신을 대통령으로 옹립하려던 ‘이북파 최측근’이었으니 분개할만도 했을 것이다. 나는 이같은 사실을 정일권 본인을 통해 거듭 확인한 바 있다.지난 86년 한국을 방문했을 때 하얏트호텔에서 정일권을 만난 자리에서 나는 이렇게 물어보았다. “김형욱이가 서울로 잡혀와서 비참하게 죽었다는 얘기를 한 적이 있으시다는데 사실인가요?”“예,내가 그런 애기를 한 적이 있습니다.그것은 사실입니다”. 정일권은 말년에 암에 걸려 고생하다가 94년 타계했는데 내가 그를 본 것은그것이 마지막이었다. 정리 정운현기자 jwh59@ -文明子씨 일문일답 ■회고록을 출판하게 된 동기는. 역사를 위한 기록이다.한국사회는 가치의 혼돈시대를 맞고 있다.이대로 한세기만 지나면 한국사회에는 박정희를 미화하는 기록만 남을 것이다. 오랫동안 미국의 권부를 가까이서 취재하면서 나는 국내에서 접하기 힘든사실들을 많이 보고 들었다.우리 후손들의 역사인식에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바람으로 그동안 보고 들은 박정희의 모든 것을 기록했다. ■회고록의 제목은 ‘내가 본 박정희와 김대중’인데 박정희 전대통령에 관한 부분이 70% 정도를 차지하는 있는 것 같은데…. 61년 5·16쿠데타 때부터 시작해 82년 김대중씨가 사형수에서 사면을 받고워싱턴에 왔을 때까지를 기록했기 때문이다.박정희씨는 이미 관 뚜껑에 못을박은 사람이고 김대중씨는 아직 활동하는 현역 정치인이 아닌가. 김대중씨에대한 기록은 또다른 기회를 기다려야 할 것이다. ■문 주필의 박정희 전대통령 비판에 대해 일각에서는 주관적이라는 지적이나올 수도 있을 것 같은데. 박정희에 대해서 나는 한 언론인으로서 뚜렷한 주관을 가지고 있다.그러나독자들은 나의 책에서 사실만을 보면 된다.1961년 4월이후 현재까지 워싱턴에서 벌어진 한국정치 관련사건들을 사실에 입각해 기록했다.사실에 대한 해석과 판단은 독자의 몫이다. ■문 주필의 회고록에는 특정인들의 실명이 거침없이 거론되고 있는데…내가 실명을 거론한인물들은 한국정치사에서 책임있는 위치에 있었던 사람들이다.그들은 공직에 취임함으로써 이미 역사의 심판대 위에 스스로 올라선것이다. 나는 그들에 대한 역사적 기록을 남겼을 뿐이다.한가지 지적하고 싶은 것은 한국언론의 익명문화다.육하원칙의 가장 첫번째 요소가 ‘누가’이지 않은가.한국의 언론인들은 혈연·지연·학연의 인간관계 속에 깊이 편입돼 있어 실명을 거론하지 못한다. 퇴직후에도 그 인간관계 속에서 살길을 찾아나가야 하므로 ‘익명의 문화’는 극복되지 않는다.내 경우는 다행인지 불행인지 한국사회에서 떨어져 40년을 살아왔기 때문에 거칠 것이 없다. ■그동안 ‘반한인사’ 또는 ‘친북인사’라는 꼬리표가 따라다녔는데 이에대한 본인의 견해는? 유신정권때인 70년대까지는 ‘반한인사’로 불렸는데 80년대말 남북 고위급회담이 본격화된 후 북한취재에 나서면서 ‘친북인사’로 호칭이 바뀌었다. ‘반한인사’,‘친북인사’란 중앙정보부가 만들어낸 용어로 전혀 타당하지않다.굳이 말하자면 ‘반박정희 인사’나 ‘반유신인사’라고해야 옳다.‘친북’도 그렇다.남북은 같은 민족이다.서로가 ‘친북’도 하고 ‘친남’도해야 한다.‘친미’나 ‘친일’,‘친중’과는 성격이 다른 것이다.94년 김일성 주석 사망후 ‘100일설’부터 ‘3년설’까지 북한붕괴론이 대단했다.내가북한에 가보고 와서 북한은 붕괴하지 않는다고 했더니‘친북인사’라고 했다. 한반도 남북에 사는 사람들은 분단으로 인해 어쩔 수 없이 보는 시야도 반쪽짜리일 수밖에 없다.스스로 외눈박이라는 사실을 알지 못하면 두 눈으로 보는 사람이 편파적으로 보이는 것이다. [정운현기자] -文明子씨는 인가 문명자(文明子·70)씨는 38년째 미국 권부의 상징인 백악관을 출입하고 있는 현역 재미교포 언론인이다.73년 11월 당시 보도금지 사항인 ‘김대중납치사건’을 보도한 후 중앙정보부의 체포위협을 피해 미국에 ‘정치망명’을한 전력으로 그동안 국내에선 그의 활동이 거의 알려져 있지 않다. 80년 중국 덩샤오핑(鄧小平)의 초청으로 미국 여기자단 단장으로 중국을 방문,덩샤오핑을 인터뷰했으며 90년 남북고위급회담 이후방북취재를 시작한이후 92,94년 두차례에 걸쳐 김일성 주석을 인터뷰했다. 30년 대구 출생인 문씨는 숙명여고 졸업후 연세대 영문학과 1학년 재학중 6·25를 맞아 피란지 부산에서 일본으로 유학,메이지대 경제학부·와세다대국제법 대학원을 졸업했다. 61년 조선일보 워싱턴특파원을 시작으로 동아일보,경향신문,MBC 워싱턴특파원을 역임한 그는 73년 미국에 정치망명한 후 미국인 동료기자들과 함께 US아시안뉴스 서비스(통신사)를 설립,국제정치담당 주필로 일하고 있다. 동양통신 초대 워싱턴특파원을 지낸 남편 최동현(崔潼鉉)씨와 사이에 1남 1녀.그의 미국이름 주리 문(Julie Moon)은 ‘대지’의 작가 펄 벅 여사가 지어준 것이다. [정운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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