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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부시 “노무현 리더십 높이 평가”… 추도식 참석한다

    부시 “노무현 리더십 높이 평가”… 추도식 참석한다

    동시대 재임하며 충돌·협력했던 사이 자서전서 “그의 죽음 깊은 슬픔” 밝혀 유시민 이사장 “예 갖춰 맞을 준비 중”조지 W 부시 전 미국 대통령이 오는 23일 경남 봉하마을에서 열리는 노무현 전 대통령 10주기 추도식에 참석한다. 미국 전직 대통령이 한국 전직 대통령의 추도식에 참석하는 것은 처음이다. 보수정당 출신의 부시 전 대통령과 진보정당 출신의 노 전 대통령은 동시대에 재임 중 이념적으로 충돌하기도 하고 국익을 위해 협력하기도 한 사연이 있는 데다 노 전 대통령이 돌연 비극적으로 세상을 떠났다는 점에서 부시 전 대통령의 추도식 참석은 그 자체로 관심을 모은다.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은 13일 “부시 전 대통령 측에서 참석하고 싶다는 의사를 밝혀 와 구체적인 일정을 협의 중”이라며 “노무현재단으로서는 당연히 고맙게 생각하고 예를 갖춰 맞을 준비를 하고 있다”고 했다. 부시 전 대통령이 먼저 노 전 대통령 추도식에 참석하고 싶다는 의사를 밝힌 데는 노 전 대통령의 서거에 대한 그의 특별한 감정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재임 기간 두 정상은 공개적으로 첨예한 갈등을 표출한 때도 있었지만, 이라크 파병과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체결 등 굵직한 현안을 함께 해결했다. 유 이사장은 “공화당 출신인 부시 전 대통령과 노 전 대통령의 가치는 달랐지만 한미 간 주요 현안을 잘 협의했었고, 특히 해묵은 비자 면제프로그램 등 큰 이슈를 같이 해결했다”며 “비자 면제프로그램 협의 당시 실무자들이 준비가 덜 됐다고 하니 부시 전 대통령이 ‘일단 해보자’고 했었다”고 전했다. 또 “대북 정책도 2006년까지는 서로 이견이 있었지만 2차 남북 정상회담을 했던 2007년 노 전 대통령 임기 말에는 협의가 잘 됐었다”며 “부시 전 대통령이 회고록에도 밝혔듯 개인적으로 노 전 대통령에게 와보고 싶은 마음이 아닐까 짐작해 본다”고 덧붙였다. 실제 부시 전 대통령은 퇴임 후 자서전 ‘결정의 순간’에서 “2009년 그의 갑작스러운 죽음을 접하고 깊은 슬픔에 빠졌음을 밝히고 싶다”는 소회를 밝혔다. 또 “몇 가지 주요 현안과 관련해 그가 보여 준 리더십을 높이 평가한다”며 이라크 파병과 한미 FTA 등을 거론한 바 있다. 부시 전 대통령의 이번 방한에는 국내 방산기업인 풍산그룹 류진 회장의 물밑 역할도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류 회장은 선친인 류찬우 회장 때부터 부시 가문과 돈독한 관계를 맺고 있다. 류 회장은 지난해 12월 ‘아버지 부시’의 장례식 때 강경화 외교부 장관 등과 함께 조문 사절단에 포함됐었다. 손지은 기자 sson@seoul.co.kr
  • 황교안 탑승 차량 막아선 시민들

    황교안 탑승 차량 막아선 시민들

    ‘민생 대장정’의 일환으로 울산을 방문 중인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가 탄 차량이 9일 울산 북구 매곡산업단지 내 한국몰드 앞을 지나가려는 것을 민주노총 조합원들과 울산지역 진보정당, 시민사회단체 회원 등이 가로막자 경찰이 이를 제지하고 있다. 울산 연합뉴스
  • [서울광장] 바른미래당, 이럴 거면 갈라서라/이종락 논설위원

    [서울광장] 바른미래당, 이럴 거면 갈라서라/이종락 논설위원

    우리나라 정당사는 양당정치가 주류를 이뤘다. 진보정당은 민주당, 신민당, 신한민주당, 평화민주당, 새정치국민회의, 새천년민주당, 열린우리당, 통합민주당, 민주통합당, 더불어민주당의 이름으로 명맥을 이어 왔다. 반면 보수정당은 자유당, 민주공화당, 민주정의당, 민주자유당, 신한국당, 한나라당, 새누리당, 자유한국당 등으로 명멸했다. 거대 양당을 중심으로 정치가 이뤄지다 보니 제3당의 존재가 미미했다. 1988년 13대 총선에서 김영삼(YS) 총재가 이끌던 통일민주당이 김대중(DJ) 총재의 평화민주당에 밀려 3당을 차지한 게 명실상부한 다당제시대를 연 계기가 됐다. 이어 1992년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이 이끄는 통일국민당과 1996년 김종필 총재의 자유민주연합이 제3당의 위치를 굳건히 했다. 하지만 이후에는 또 양당 체제가 이어지다 2016년 20대 총선에서 국민의당이 38석을 차지해 제3당으로 부상했다. 당시 거대 양당에 대한 거부감으로 국민의당이 선전할 수 있었다. 국민의당은 탄핵 정국에서 새누리당을 탈당한 바른정당계와 합쳐 바른미래당으로 지난해 2월 재탄생했다. 더불어민주당과 자유한국당 사이에서 중도를 표방하며 제3지대를 지향할 것이라는 기대를 한껏 받았다. 하지만 창당한 지 1년이 지난 지금의 현주소는 어떤가. 4·3 보궐선거 참패 후 지도부 책임을 놓고 국민의당계와 바른정당계가 충돌하더니 지난달 말 패스트트랙 정국이 이어지며 사생결단식 대결을 벌이고 있다. 손학규 대표는 지난 4일 지도부 총사퇴와 ‘안철수·유승민 공동체제’ 출범을 요구한 정무직 당직자 13명을 무더기 해임했다. 이에 유승민·안철수 연합군 의원 15~16명이 손 대표와 김관영 원내대표 등 지도부의 사퇴를 촉구하며 첨예하게 맞서고 있다. 당이 쪼개지는 것은 시간문제라는 관측이 대세를 이룰 정도다. 우리나라 정당사에서 제3당은 최소한의 국민적 명분을 확보했거나 정치적 지분을 가졌을 때만 출현할 수 있었다. 통일민주당은 야당을 대표하는 YS가 DJ와 결별하면서 세를 이뤘다. ‘정주영당’은 정치 공방에 신물이 난 유권자들이 경제전문가 등장을 원한다는 틈새를 파고들어 탄생했다. 영호남의 대결에 멍든 충청도의 ‘뿔난 민심’이 자민련의 세력을 키웠다. 진보와 보수 싸움에 진저리가 난 국민이 제3지대의 정치를 염원하며 국민의당이 제3당으로 존립할 수 있었다. 이런 이유로 제3당은 거대 양당이 놓치고 있는 걸 어젠다로 삼아야 한다. 그런데 지난 1년간의 바른미래당의 활동을 따져 보자. 바른미래당이 최저임금이나 국민연금 등 민생 문제를 놓고 거대 양당과 싸웠나, 아니면 개헌 문제를 들고나와 맞섰나. 정국을 주도할 어젠다는 눈곱만치도 볼 수 없었다. 민주당과 한국당의 틈바구니에서 살아남기 위해 캐스팅보트 역할만 하려 했다. 그런데도 당내에서는 국민의당이 평화민주당과 다시 합칠 거라느니, 안철수·유승민의 보수 통합이 다시 돼야 한다느니, 손학규는 ‘굴러온 돌’에 불과한다느니 이런 정치공학만 난무하고 있다. 내년 21대 총선을 앞두고 국민의당계와 바른정당계가 이합집산과 권력투쟁만 벌이고 있는 중이다. 선거제 개편안이 사법개혁특별위원회와 정치개혁특별위원회에서 패스트트랙 지정 안건으로 상정된 뒤 거대 양당의 지지층이 결집하면서 원래 의도와 달리 양당제가 오히려 강화되는 현상을 보이고 있다. 여론조사기관 리얼미터가 지난 6일 발표한 정당별 지지도에서 민주당과 한국당은 전 주보다 각각 2.1% 포인트, 1.5% 포인트 상승한 40.1%와 33.0%를 기록했다. 반면 바른미래당은 0.1% 포인트 떨어진 5.2%, 정의당과 민주평화당은 각각 1.6% 포인트, 0.4% 포인트 내린 6.2%와 2.3%를 기록했다. 제3당의 존립 기반은 국민의 지지밖에 없다. 국민의 지지를 받지 못한 문국현의 창조한국당이 망했고, 이인제의 국민신당은 흔적 없이 사라졌다. 바른미래당의 운명은 지분협상에 달려 있지 않다. 연동형 비례대표제 뜻을 어느 정당보다 의미 깊게 활용해야 한다. 목숨 걸고 싸워야 할 것은 당내 주도권이 아니고 개혁입법이나 청년실업을 해결할 수 있는 대안을 제시하는 것이다. 하지만 바른미래당은 50억원 안팎으로 추정되는 당 자산과 정당보조금(1분기 24억 7000여만원) 때문에 어정쩡한 동거를 이어 가는 것 같다. 제3당으로 존립해야 할 명분과 정치권의 지분, 국민의 지지 등이 크게 약화하고 있다. 이러려면 차라리 갈라서는 게 떳떳하다. jrlee@seoul.co.kr
  • ‘선거법 개혁’ 노회찬 여한 푼 정의당

    ‘선거법 개혁’ 노회찬 여한 푼 정의당

    고 노회찬 정의당 전 의원의 정치적 염원이자 진보정당의 오랜 숙원이었던 ‘선거법 개정안’을 30일 극적으로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으로 지정한 정의당은 종일 고무된 분위기였다. 이정미 대표는 의원총회에서 “패스트트랙이 지정된 만큼 270일(330일에서 본회의 부의 60일 제외 기간) 안에 사법개혁과 정치개혁 합의를 이뤄 내야 한다”고 말했다. 홍영표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는 패스트트랙 처리 직후 의원총회에서 “제가 지난해 노 전 의원에게 약속했다. 노 전 의원과 손잡고 반드시 선거법 개혁하겠다고 했다”며 “노 전 의원에게 이런 말씀을 드릴 수 있게 돼 저도 마음이 놓인다”고 밝혔다. 이어 “우리가 정의당에 위원장을 양보하고 함께 논의해 역사적 합의를 이뤄냈다”고 평가했다. 정의당은 일단 패스트트랙이라는 큰 산을 넘었지만 본회의 처리까지 최장 330일의 심사 기간을 줄이면서 원안 그대로 처리하고자 내부 전략을 점검하는 데 분주했다. 선거법 개정안은 내년 총선과 연관된 만큼 가장 시급히 처리해야 한다. 소관 상임위에서 180일, 법제사법위원회에서 90일, 본회의 부의 기간 60일이 걸릴 수 있다. 특히 법사위원장이 여상규 자유한국당 의원이기 때문에 법사위 심사 기간을 꽉 채울 수 있어 일단 상임위 180일을 최대한 줄이는 게 관건이다. 또 선거법 개정안을 처리해야 하는 정개특위 활동시한이 오는 6월 말까지인 만큼 늦어도 그때까지는 법사위로 선거법 개정안을 넘기겠다는 게 정의당의 복안이다. 변수도 있다. 한국당이 반발해 정개특위 심사 기간 국회법에 따라 안건조정위원회 구성을 요청해 90일 활동기한을 채울 수 있다. 정의당은 안건조정위원회가 여당 3명, 야당 3명으로 구성되고 3분의2 찬성으로 90일을 끝까지 거치지 않고 처리할 수 있기 때문에 야당 몫의 위원으로 들어가겠다는 계획도 세웠다. 정의당 관계자는 “여야가 합의하면 원칙적으로는 정개특위에서 하루 만에도 법사위로 넘길 수 있지만 일단 냉각기를 갖고 심상정 의원이 위원장으로 있는 동안 빨리 법사위로 넘기는 게 목표”라고 설명했다. 김진아 기자 jin@seoul.co.kr
  • ‘낙태죄 폐지’ 찬반단체 헌재 앞 맞불집회…충돌 우려

    ‘낙태죄 폐지’ 찬반단체 헌재 앞 맞불집회…충돌 우려

    낙태 처벌이 헌법에 어긋나는지에 대한 헌법재판소 판단이 나오는 11일 헌재 인근에서 낙태죄 폐지를 두고 찬반 기자회견이 열린다. 감정이 격해진 양측이 헌재 인근에서 충돌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한국여성단체연합, 민주노총, 인권운동사랑방 등 23개 단체가 모여 만든 ‘모두를 위한 낙태죄 폐지 공동행동’은 이날 오전 9시부터 릴레이 기자회견을 연다. 공동행동에 참여하는 청년단체, 종교단체, 교수연구자단체, 진보정당, 의료단체 등은 이날 오전 9시부터 차례로 낙태죄 폐지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 예정이다. 또 이들은 이날 오후 7시 헌재 판결과 관련한 대중집회를 예고했다. 이들 단체는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강조하며 안전한 임신 중지를 위한 전면 비범죄화를 요구해왔다. 개신교 단체들이 중심이 된 낙태죄폐지반대전국민연합도 이날 오후 1시 헌재 인근에서 기자회견을 연다. 이들은 미리 배포한 성명서에서 “인간의 존엄성과 인권의 존중이라는 우리 헌법의 정신에 입각해 볼 때, 낙태죄는 앞으로도 계속 존치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헌재는 이날 오후 2시 대심판정에서 산부인과 의사 A씨가 낙태죄와 동의낙태죄 규정이 임산부의 자기결정권을 과도하게 침해한다며 낸 헌법소원 사건을 선고한다. 법조계에서는 유남석 헌재소장을 비롯한 6기 헌법재판관들이 이전 결정과 달리 낙태죄 처벌에 대해 위헌 결정을 내릴 가능성이 크다는 전망이 나온다. 앞서 헌재는 2012년 8월 23일 재판관 4대 4 의견으로 “태아는 모와 별개의 생명체이고 인간으로 성장할 가능성이 크므로 생명권이 인정된다”며 낙태죄 처벌이 합헌이라고 결정한 바 있다. 하지만 새로 구성된 6기 헌법재판관들의 낙태죄 관련 인식은 이전과는 달리 전향적인 것으로 알려져 위헌결정 가능성이 큰 것으로 예상된다. 헌법재판관 9명 중 6명 이상이 찬성하면 위헌 결정이 나온다. 정현용 기자 junghy77@seoul.co.kr
  • “한국당 반칙·편가르기 정치…창원시민, 준엄한 심판한 것”

    3일 경남 창원 성산 지역구 국회의원 보궐선거에서 당선된 여영국(55) 정의당 후보는 “반칙 정치, 편 가르기 정치를 하는 자유한국당에 대해 창원 시민들이 준엄한 심판을 한 것으로 생각한다”며 “창원 경제를 살리는 데 있어 모든 역량을 바치겠다”고 당선 소감을 말했다. 여 당선자는 경남 사천 출신으로 부산기계공고와 창원대를 졸업하고 통일(현 S&T중공업) 노조활동으로 구속 및 해고된 후 민주노총 전국금속산업노조연맹 조직국장 등을 맡으며 노동계에서 활동했다. 노동운동을 하며 심상정 의원, 고 노회찬 의원과 인연을 맺었고 2010년 9대·2014년 10대 경남도의원으로 정치계에 입문했다. 2014년 당선 때는 전국 유일의 진보정당 소속 선출직 광역의원이라는 기록을 세웠다. 현재 정의당 경남도당위원장 및 노회찬재단 이사직을 맡고 있다. ▲1964년생, 경남 사천 ▲창원대 ▲9·10대 경남도의원 ▲부인 한경숙씨 사이에 1남 1녀. 김진아 기자 jin@seoul.co.kr
  • “먹고사는 게 중요…빈말에 안 속아, 무조건 지역경제 살릴 후보 뽑을 것”

    “먹고사는 게 중요…빈말에 안 속아, 무조건 지역경제 살릴 후보 뽑을 것”

    “거래처 반토막 등 지역 경기 아주 엉망 정권 심판론 등 정치 개혁 다 소용없어” 젊은층서도 현재 상황 바꿀 인물 원해 한국당 강기윤 vs 정의당 여영국 ‘박빙’ 진보 정당 단일화가 최대 변수 떠올라20일 낮 서울역에서 KTX를 타고 3시간 10분 만에 창원역에 내리니 금방이라도 비가 올 듯 잔뜩 흐린 하늘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흐린 하늘만큼이나 지역경제가 좋지 않은지 4·3 보궐선거의 최대 격전지인 경남 창원시 성산구에서 만난 유권자들은 ‘경제’를 주로 입에 올렸다. 상남시장에서 16년간 과일가게를 하고 있는 김의선(63)씨는 “지역 경기가 아주 엉망이다. 거래처가 1년 사이 반으로 줄었고, 하루 매출이 10만원도 안 될 때도 있다”며 “먹고사는 문제도 해결 못하면서 (일부 후보는) 정치개혁을 하겠다고 하는데, 다 소용 없다. 무조건 지역 경제를 회복시킬 후보를 뽑을 것”이라고 했다. 옆 반찬가게의 정금자(67)씨도 “우리들끼리 이야기를 시작하면 지역 경제를 (후보들 중) 누가 제일 잘할 것이냐로 끝난다”며 “당보다도 인물이 먼저라는 게 공통된 생각”이라고 했다. 대학 휴학 중 부모님 가게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는 최선아(23)씨는 “취업 계획이 있어 휴학을 했지만, 결과적으로 부모님 가게에서 알바를 하게 됐다”며 “최저임금 인상으로 다른 알바생들을 쓸 수가 없어 내가 대신하게 된 것”이라고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이번 선거에서 누구를 지지할 것이냐’는 질문에 “이대로라면 모두가 힘드니 현재의 상황을 바꿀 후보를 뽑고 싶다”고 했다. 정치 불신과 무관심을 드러낸 유권자도 많았다. 롯데백화점 창원점 근처에서 5년째 휴대전화 가게를 하는 박영호(39)씨는 “선거 때만 되면 반갑지도 않은 얼굴들이 찾아와 지역경제를 살리겠다고 말만 늘어 놓고, 선거가 끝나면 꽁무니도 안 보이니 누가 표를 주겠느냐”며 “빈말하는 것도 하루이틀이지”라고 불만을 표시했다. 김미진(40)씨도 “새 인물이라고 해도, 뽑아 놓으면 이런저런 구설과 의혹으로 제대로 한 적이 없다”고 했다. 기존 지지정당을 바꾸겠다는 유권자도 있었다. 중앙동 이마트 옆에서 약국을 운영하는 고정남(55) 씨는 “지난 6·13 지방선거에서 민주당에 투표했지만, 김경수 도지사 구속 등 실망이 컸다”며 “이번에는 다른 선택을 할 것”이라고 했다. 반면 근처에서 식당을 운영하는 김영신(50) 씨도 “우리 부부는 모두 한국당 지지자지만 5·18 망언 의원들 징계에 대해 지도부가 미적거리는 것을 보며 마음이 싹 바뀌었다”고 했다. 현재 자유한국당, 바른미래당 등 야권 후보들은 경제 불황을 정부 정책 탓으로 돌리며 자신이 경제 살리기 적임자라고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 하지만 야권의 ‘정권 심판론’이 진보 후보 단일화 앞에서 유효할지는 미지수다. 리얼미터가 경남MBC 의뢰로 지난 16일부터 17일까지 이틀간 성산구 유권자 500명을 대상으로 한 여론조사(신뢰수준 95%에 표본오차 ±4.4%포인트,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를 발표한 결과, 강기윤 한국당 후보(30.5%)와 여영국 정의당 후보(29%)의 양강 구도가 형성됐다. 여기에 권민호 민주당 후보(17.5%), 손석형 민중당 후보(13.2%), 이재환 바른미래당 후보(3.6%), 진순정 대한애국당 후보(1.5%), 김종서 무소속 후보(0.7%) 순이었다. 진보정당 후보 간 단순 합산만으로도 과반인 60%를 채우는 것으로 나타났다. 스스로 한국당 지지자라고 밝힌 부동산중개업자 강선호(58)씨는 “진보 후보 간 단일화를 한다면 한국당 후보는 승산이 없다”며 “예전에도 그랬지만, 성산은 진보 정당과 한국당 간 뺏고 뺏기는 싸움의 연속이었다. 막판에 가면 단일화로 전세를 역전시킬지도 모르겠다”고 했다. 지지 후보를 아직 정하지 않았다고 밝힌 주부 박인향(42)씨도 “성산 산단이 침체되면서 경제 살리기의 중요성이 높아졌지만, 선거에서 진보 정당 후보들이 단일화를 한다면 한번 더 그쪽에 투표할 생각이 있다”고 했다. 창원 문경근 기자 mk5227@seoul.co.kr
  • 민주노총 “경사노위 참여…탄력근로제 확대하면 총파업”

    민주노총 “경사노위 참여…탄력근로제 확대하면 총파업”

    민주노총이 사회적 대화 기구인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참여 의사를 밝혔다. 다만 탄력근로제 기간 확대와 최저임금 결정구조 개편 저지 활동은 계속할 방침이다. 김명환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위원장은 9일 서울 중구 민주노총에서 연 신년 간담회에서 “경사노위라는 사회적 대화 기구에 참여해 사회, 경제정책, 산업정책 의제를 풀어나가는 과정에 주도적으로 임하겠다”고 말했다. 김 위원장은 “경사노위 참여 건은 (내부) 논쟁의 한가운데 있고 거기에 대해 (여러) 의견들이 있다”면서도 “이달 28일 정기대의원대회까지 사전에 충분한 논의와 토론을 거칠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또 “2020년 총선에 대비해 농민, 비정규직, 학생, 청년, 여성 등 대안 주체들과 함께 대응 계획을 세울 것”이라며 “가칭 ‘모든 을들을 위한 범국민적 연대’를 제안한다”고 말했다. 김 위원장은 또 “올해 상반기 중 진보정당들, 시민사회와 함께 진보정치 과정을 공동으로 평가하는 사업을 진행하고 그 평가에 기반을 둬 총선에 대응할 것”이라며 “대선 등 이후의 정치 일정까지 나아갈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민주노총은 경사노위 참여봐 별도로 정부가 최근 발표한 최저임금 결정체계 개편과 탄력근로제 기간 확대는 반드시 저지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김 위원장은 “문재인 정부는 투자를 끌어내야 한다는 강박 속에서 재벌 대기업 중심 정책으로 회귀하려 한다”며 “올해는 저임금화 공세가 거세질 것으로 본다”고 내다봤다. 아울러 “일차적으로 1월 중순 중앙집행위원회를 통해서 세부 투쟁 계획을 확정하고, 다음 달 중 최저임금 제도 추가 개악과 탄력근로제 기간 확대 시도가 분명하게 제기되면 총파업을 포함한 총력투쟁을 불사해 막아내겠다”고 강조했다. 정현용 기자 junghy77@seoul.co.kr
  • [논설위원의 사람 이슈 다보기] “민주노총 끊임없는 혁신·반성 통해 국가경영 주체돼야”

    [논설위원의 사람 이슈 다보기] “민주노총 끊임없는 혁신·반성 통해 국가경영 주체돼야”

    “국민 여러분, 살림살이 좀 나아지셨습니까? 저는 정리해고 당한 노동자들, 농가부채만 늘어나는 농민들, 전세금 폭등에 시달리는 서민들의 고통과 억눌려 왔던 목소리를 대변하고자 여기 섰습니다.” 2002년 16대 대선, 노무현 새천년민주당 후보와 이회창 한나라당 후보의 양자 대결로 압축됐던 대선의 경제 분야 TV 토론에서 이름조차 낯선 한 후보의 모두발언은 국민의 심금을 울렸다. IMF 환란은 극복했지만, 정작 서민 중산층의 삶은 크게 나아지지 않았다는 뼈아픈 현실을 반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영원한 노동자이자 진보 정치인’ 권영길(77) 초대 민주노총 위원장 겸 민노당 전 대표는 그해 대선 후보로 나서 95만표 남짓의 득표를 올리는 데 그쳤지만, 당시만 해도 생소했던 진보정치 정책과 노선을 성공적으로 알렸다. 이후 17·18대 국회의원을 역임하며 고(故) 노회찬 정의당 의원, 심상정 정의당 의원 등과 함께 진보정당이 한국에서 자리잡는 데 지대한 공헌을 했다. 그는 2013년 정계 은퇴 뒤 암 투병을 딛고 최근 사단법인 ‘평화철도와 나아지는 살림살이’(이하 평화철도) 이사장으로 남북철도 연결 등 남북화해와 평화통일운동에 매진하고 있다. 진료차 경남 창원 자택에서 서울로 올라온 권 이사장을 지난 28일 서울 강남의 한 커피숍에서 만났다.→남북철도운동에 대해 설명해달라. -2012년 18대를 마지막으로 국회의원(경남 창원성산, 노회찬 전 의원이 같은 지역구에서 20대 의원으로 당선)직을 그만뒀다. 평등 평화 통일이라는 신념을 범국민운동으로 전개하는 게 더 낫겠다고 판단하고 의원직을 마감했다. 그러나 2014년 6월 지방선거가 끝난 직후 자가면역체계 이상이 발견됐다. 합병증으로 설암 수술 등을 받고 아직 회복 단계다. 평화철도는 남북철도를 연결하는 실사구시적인 평화운동이다. 평화가 이뤄져야 통일이 이뤄지고, 통일이 돼야 영구평화 체계가 가능하다. 이 과정에서의 지원 등은 퍼주기 논란이 벌어진다. 하지만 철도를 깔자는 건 누구나 받아들일 수 있다. 이를 위해 휴전선 철조망을 걷어내 평화의 철도를 우리 손으로 만들자는 취지다. 철도 건설에 쓰이는 아스팔트 침목은 1개 10만원이다. 여기에 한 사람이 1만원씩 내서 내 손으로 평화의 침목을 깔자는 것이다. 100만명이 참여하는 ‘침목깔기 1만원 기증운동’을 펼칠 계획이다. 평화철도 공동대표는 김명환 민주노총 위원장과 김주영 한국노총 위원장이 맡는다. 한반도 평화를 만드는 남북철도 연결에 노동계가 앞장선다는 것이다. 경남 창원의 현대로템은 열차를 만드는 회사다. ‘우리 손으로 제작한 열차가 북녘을 넘어 유럽까지 달린다’는 취지에 공감해 노조 조합원들이 모두 동참했다. 개신교와 불교, 가톨릭 등 종교계도 모두 참여하기로 했다. →남북 경제교류 확대는 한계에 봉착한 우리 경제의 돌파구도 된다. -집이 있는 경남 창원은 조선과 기계공업이 주력 산업이다. 구조조정이 한창 진행 중이라 지역 경기가 엉망이다. 얼마 전 목욕탕에 갔더니 어떤 분이 ‘문재인 정부는 통일 정책은 잘 하는데…’라며 얼버무리더라. 그래서 현재의 경제 난국은 미국을 제외한 전 세계가 겪고 있고, 산업 경쟁력 약화라는 구조적인 문제라 현 정부를 마냥 탓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신자유주의에 바탕을 둔 한국 경제는 돌파구가 안 보인다. 수출의존형이라는 특성은 그대로인데 해외에서 물건이 안 팔리는 걸 어쩌겠나. 더구나 미국과 중국의 경제전쟁은 앞으로도 확전할 가능성이 높다. 미국이 더이상 중국의 부상을 용인하기 어렵다. 한국 경제는 미국과 중국이라는 고래 싸움에 ‘새우등’ 격이 될 수밖에 없다. 결국 지속가능한 새로운 성장동력을 찾아야 하고, 이는 남북 경제공동체가 될 것이다. 남북철도 연결 혜택의 8할은 우리 쪽에 돌아온다. 금강산이나 개성 등 각종 관광이나 물류 등 경제적 효과가 막대하다. 남북철도를 막는 건 대북제재가 아닌 대남제재가 되는 게 결국 이런 이유에서다. →어느 철도를 연결하는 걸 목표로 하고 있나. -경의선은 이미 연결돼 있고, 동해선 복원 움직임은 이미 시작됐다. 평화철도는 경원선 복원에 집중할 생각이다. 경원선은 서울에서 백마고지까지 연결돼 있다. 북쪽은 평강 이북까지는 이어져 있다. 백마고지와 평강을 연결하면 된다. 거리도 27㎞ 정도로 비교적 짧다. 침목 설치 비용으로 50억원이면 충분하다. 북한의 원산 갈마관광단지 등을 활용하기 위해서는 접근성이 갖춰져야 하고, 이를 위해서는 경원선 복원이 가장 바람직하다. 다만 남북 다 군사적 요충지를 지나야 한다. 갈마관광단지를 살리는, 경제부국을 만들기 위한 지름길이라고 북측을 설득해야 한다. 그래야 평화의 길을 앞당기는 것이다. 몸이 좀 추슬러지면 북한도 방문할 계획이다. →민주노총의 경제사회노동위원회 불참 등을 놓고 논란이 많다. -경사노위는 사회적 대화를 하기 위해 마련된 기구다. 그러나 사회적 대화의 목표와 방향 설정 등이 제대로 되지 않은 채 출범한 게 문제다. 최저임금이나 탄력근로제 등 단편적인 의제에만 매달리니 정상적인 논의가 되기 어렵다. 독일, 네덜란드 등은 우리보다 앞서 사회적 대타협을 통해 복지제도 확충, 무상교육 무상보육 등 사회보장 정책을 합의했다. 이들 국가에서는 노조가 국가 권력과 함께 ‘어떤 사회를 만들 것인가를 고민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돼 있다. 그러나 우리는 ‘노조는 그런 걸 하는 조직이 아니다’라고 여긴다. 정부도 사회도 심지어 노동자들도 마찬가지다. 이게 근본적인 문제다. 예를 들어 무상보육에 대한 합의가 없기 때문에 아동수당만 하더라도 국회에서 예산 싸움만 하고, 그러니 정치권이 신뢰를 얻지 못한다. 우리는 경제 규모 10위권의 국가이지만 교육이나 의료 등은 60위권 국가들만도 못하다. 중산층 서민들이 내는 세금이 제대로 쓰이지 않는다는 뜻이다. 합리적인 재원의 배분까지도 사회적 대화에서 논의가 돼야 한다. 지금부터라도 사회적 대화의 틀을 만들고 풀어가는 작업을 시작해야 한다. 문재인 정부의 임기는 아직 절반 이상 남아 있다. →민주노총이 대기업 귀족노조를 대변한다는 비판도 많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1980년 내란음모 혐의로 사형 선고를 받았을 때 호주와 영국의 노조들이 ‘김대중 석방’을 요구하는 파업을 결의했다. 그러나 호주와 영국에서는 ‘당연히 노조가 할 일’이라고 받아들였다. 노조는 자국은 물론 외국의 민주화와 인권 상황을 위해 행동해야 한다. 민주노총이 출범 당시부터 노동자 정치세력화와 민주 및 인권 신장 등 사회개혁 투쟁을 내걸었던 것도 그런 취지에서였다. 언론노조나 사무금융노조, 금속노조 등 모든 산별노조가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개별 노조들이 어느 순간 단위노조 투쟁에 주력하고, 그게 중점적으로 부각된 측면이 있다. 한 대기업 노조 간부가 ‘수십년간 노동운동을 하면서 가장 후회되는 게 조합원 자녀 대학 학자금 지원을 따낸 것이다. 개별 회사의 학자금 재원들을 모아 우리나라 전체 대학생의 개별 학자금 부담을 줄이는 방향으로 민주노총이 움직였어야 했다’고 말하더라. 민주노총 역시 개별 사안에 몰두하다 보니 사회적 역할은 묻혀버렸다. 탄력근로제만 해도 (대기업 중심인) 민주노총 조합원이 아닌 중소기업의 비조합원 노동자들이 피해를 입게 된다. 노조가 없는 전체 일하는 사람들의 문제이기 때문에 노조가 탄력근로제를 반대하는 것이다. 비정규직 문제만 하더라도 일부 조합원의 불만을 설득해가면서 비정규직 철폐를 외쳤다. 이런 과정은 생략되고 민주노총이 조직 이기주의로 비춰지는 게 안타깝다. 하지만 민주노총은 언론 탓을 하는 게 아니라 끊임없는 혁신과 자기 반성을 통해 제 역할을 해야 한다. 단순히 정부에 반대만 하는 게 아닌 국가 경영의 주체가 돼야 한다. 자기 희생을 통한 대안을 공격적으로 제시해야 민주노총도 살고 대한민국도 살 수 있다. →현 정부와도 노동계가 각을 세우는 분위기인데. -과거에 차령산맥 이북의 노동 관련 손해배상 사건은 김선수 변호사(현 대법관)가, 이남은 문재인 변호사가 가장 많이 맡았다. 대한민국에서 문 대통령만큼 노동자와 함께 싸웠던 이가 없다. 그럼에도 청와대가 노조에 대한 개념 정의가 부족한 것 같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가톨릭 신자인 문 대통령에게 “멈추지 말고, 두려워 말라”고 당부했다.(권 이사장도 가톨릭 신자다) 그러나 촛불정신에 따라 국가를 건설하겠다는 대국민 약속이 분기점에 서 있는 듯하다. 촛불의 주체는 서민과 노동자 등 지금껏 차별을 받아왔던 사람들이고, 이들을 위한 정치가 현 정부의 역사적 소임이다. 소임을 다하지 않는다면 정권의 존재 가치가 사라진다. 우리나라에서 지금까지 대과 없이 임기를 마친 대통령은 아무도 없다. 그러나 촛불혁명을 통해 당선된 문 대통령은 그래서는 안 된다. 지지율에 연연하는 대신 앞날의 국가 발전에 기여하는 정책을 뚝심 있게 밀고 나가야 한다. →우리 사회에서 진보정치가 해야 할 역할은 무엇일까. -진보정당은 철저히 민생정치에 주력해야 한다. 정의당 등도 민생정치는 무엇인가, 국가는 무엇인가 등을 종합적으로 통찰해 서민 중산층의 희망이 돼야 한다. ‘소득의 평준화’라는 경제 민주화는 사회적으로는 노조가 분위기를 형성하고, 진보정당이 국회에서 현실화해야 한다. 그게 진보정당의 갈 길이고 한국 정치 개혁의 길이다. ‘민주노총과 민노당은 내 영혼’이지만, 지금은 어느 당 소속도 아니다. 진보진영이 다시 통합돼야 한다는 게 변함없는 신념이다. 새롭게 하나가 된 진보정당이 출범하면 다시 당적을 갖겠다. douzirl@seoul.co.kr ●권영길은 누구 1941년 일본에서 태어났다. 경남 산청에서 유년기를 보내다 부산으로 이주해 경남중과 경남고를 거쳐 서울대 농과대학 농잠학과를 졸업했다. 1971년 서울신문 기자로 입사해 파리특파원 등을 지냈다. 부친이 빨치산으로 활동했다는 가정사가 그를 진보운동으로 이끌었다. 안락한 언론인의 자리를 박차고 1988년 전국언론노동조합연맹 초대위원장을 맡은 데 이어 1995년 출범한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초대위원장을 맡았다. 이듬해 김영삼 정부 시절 ‘노동법 날치기 사건’에 맞서 민주노총 위원장으로 총파업을 이끌어 법안 철회를 이끌어냈다. 이후 진보 정치인으로 살았다. 민주노동당의 전신인 국민승리 21에 입당해 1997년 15대 대선 후보에 출마하고, 1999년 민노당 창당 뒤 2002년 16대 대선 후보로 나섰다. 민노당 당대표이자 경남 창원에서 2004년 17대, 2008년 18대 국회의원을 지냈다. 고용·노동 전문가인 권혜원 동덕여대 경영학부 교수가 딸, 권순원 숙명여대 경영학부 교수가 사위다.
  • 권수정 서울시의원, 정례회 5대 과제 발표

    권수정 서울시의원(정의당, 기획경제위원회)은 1일 ‘노동은 당당하게, 시정은 투명하게’ 라는 기조로 서울시의회 284회 정례회 5대 과제 발표 기자회견을 진행했다. 기자회견에는 정의당 서울시당 김종민 위원장을 비롯하여, 세종문화회관지부 미화지회, 서울시 기술교육원지부, 따릉이 노동조합, 서울시 공공안전관 지부 등 서울의 주요 공공기관의 노동자들이 함께 참석했다. 권 의원은 ‘서울시 공공기관 비정규직 정규직화에 대한 진단’, ‘서울시 민간위탁의 제대로 된 운영’, ‘인력 충원이 보장되는 노동시간 단축’, ‘성별임금격차와 유리천장문제, 공공기관 성폭력 사후처리문제 등의 여성이슈’, ‘신곡수중보 개방실험 전 한강개발사업 중단 및 원점검토’ 를 이번 정례회 주요 5대 과제로 발표했다. 특히 ‘교통공사의 채용비리 논란과 관련하여 강원랜드의 권력형 비리 때와는 다르게, 자유한국당이 채용비리를 비정규직 정규직화와 연결시키는 것에 안타까움을 느낀다’ 며 ‘비정규직의 제대로 된 정규직화를 위해 박원순 시장이 추진해온 정규직화 과정을 이번 정례회에서 핵심으로 되짚어 보겠다’ 고 밝혔다. 세종문화회관 미화지부 정정순 노동자는 ‘정규직이 되어 고용이 안정되어 좋아한 것도 잠시, 여전히 생활임금에서 조금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며 ‘여전히 정규직과 많은 차이가 있어 개선이 필요하며 신축으로 인해 관리해야 하는 건물이 늘어남에도 인력 충원이 없어 업무가 과중하다’ 며 정규직화 이후의 처우개선 현황에 문제를 제기했다. 서울시 기술교육원지부 정원택 지부장은 ‘기술교육원이 시작된 지 30-40년이 되어가고 있는데 아직도 전문성 있는 훈련이 어렵다’ 며 ‘서울시민의 양질의 일자리 취업, 4차 산업 등 미래를 위한 기술교육이 실현될 수 있게 현 위탁운영에서 통합운영으로 가기위한 논의가 재개되어야 한다’ 고 민간위탁에 대한 대안으로 직영화를 제시했다. 따릉이 노동조합 이충효 위원장은 ‘생활임금은 서울시가 약속한 최저임금인데 따릉이 직원들은 받지 못하고 있다’ 며 서울시가 제대로 된 관리감독을 해 줄 것을 촉구하고 ‘따릉이 사업소가 다른 곳과는 다른 별도의 체계로 운영되어 급여와 승진에 차별을 받는다며’ 문제를 바로잡기 위해 서울시가 직영을 하거나 독립운영을 할 것을 촉구했다. 서울시 공공안전관지부 장정훈 지부장은 ‘민원업무의 증가와 주52시간 근무제로 인해 현장은 인력이 부족하다’ 며 시민의 안전을 위해 인력을 충원하고, 공공안전관이 갖는 이중적인 지위로 인해 발생되는 문제가 해소되어 당당하게 근무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해 줄 것을 촉구했다. 마지막 기자회견문 낭독에 앞서 김종민 서울시당 위원장은 ‘진보정당으로서 8년 만에 시의회 진출하여 첫 정례회를 준비하며 시민들이 주신 제보와 현장 노동자들의 목소리를 직접 반영하고자 노력해왔다’ 며 ‘노동은 당당하게, 시정은 투명하게라는 기조에 맞게 서울시와 시의회가 투명하게 운영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 는 각오를 밝혔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정의당 시민에게 욕설 정읍시의원 제명

    정의당 전북도당이 시민에게 막말과 욕설을 한 정읍시의원을 제명하고 재발방지를 약속했다. 정의당 전북도당은 25일 “김은주(48·비례대표) 의원이 최근 의정 활동에 항의한 시민 A씨에게 전화를 걸어 ”XX, 알고서 씨불여라“는 욕설과 막말을 해 당기위원회를 열어 최고 징계에 해당하는 제명을 결정했다”고 밝혔다. 정의당이 확보한 녹취록에 따르면 김 의원은 대뜸 A씨에게 전화를 걸어 이런 욕설과 막말을 15초가량 되풀이한 뒤 일방적으로 전화를 끊었다. 전북도당은 “유권자 이익과 보호를 최우선으로 하는 정의당의 당헌·당규를 위반하고 당의 명예를 실추시켜 제명했으며 시의원 자격을 정지했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김 의원은 당적은 유지하지만 (정의당 소속으로서) 의원 자격은 일시 중지됐다. 김 의원은 “제명처분은 가혹하다”며 중앙당에 이의신청했다. 중앙당은 다음 달 초순 전북도당의 제명 결정 등을 토대로 당기위원회를 소집해 제명 여부를 결론 내기로 했다. 중앙당도 제명을 결정하면 김 의원은 무소속이 된다. 김 의원은 “아파트 주차장 용지 매입 건과 관련해 시민끼리 소통하는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사실과 다른 비난과 항의하는 글 등이 올라와 순간적으로 그렇게 했다”고 해명했다. 이어 “A씨를 3번이나 찾아가 사과하려 했으나 받아주지 않았다”면서 “이유를 불문하고 큰 잘못을 했다. 이번 일에 대해 진심으로 사죄하며 진보정당 의원으로서 끝까지 의정 활동을 더 열심히 하고 싶다”고 덧붙였다. 권태홍 정의당 전북도당 위원장은 “공인이자 진보정당 의원으로서 해서는 안 될 행위를 했다”면서 “어렵게 당의 기반을 쌓는 중에 이런 일이 발생해 도민께 머리 숙여 사과드리며 재발방지를 위해 인재영입 시스템을 재정비하겠다”고 말했다. 전주 임송학 기자 shlim@seoul.co.kr
  • 진보정당 첫 위원장 ‘심상정 특위’… 2020 총선 승자독식 선거 바뀔까

    진보정당 첫 위원장 ‘심상정 특위’… 2020 총선 승자독식 선거 바뀔까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 여부 최대 관건24일 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장으로 첫 회의를 주재한 심상정 정의당 의원은 “2004년 진보정당이 원내정당이 된 이후 처음으로 주어진 ‘위원장’ 자리이자, 제가 국회의원 3선을 하면서 맡게 된 첫 번째 국회직”이라고 소회를 밝혔다. 진보정당 소속 의원이 국회 상임위원회와 특별위원회를 통틀어 위원장 직을 맡은 것은 그가 처음이다. 2020년 총선 ‘게임의 룰’을 정할 정개특위를 이끌게 된 심 의원은 “20대 국회에서 가장 중요한 과제로 부여된 정개특위 위원장이라는 점이 마치 숙명처럼 느껴진다”며 “우리 위원회에 부여된 사명은 선거제도 개혁을 통해 5163만 5256명의 국민들을 골고루 대변하는 ‘민심 그대로 국회’를 만들어 성숙한 대의민주주의로 나갈 수 있는 초석을 놓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진보정당은 2004년(당시 민주노동당) 처음 원내에 진입한 이후 줄곧 비교섭단체였다. 국회 위원장은 교섭단체 3·4선 의원이 번갈아가며 맡는 게 관례다. 특히 정치관계법을 논의하는 정개특위는 늘 집권여당의 몫이었고, 소수당인 정의당의 자리는 없었다. 19대 국회 때 새누리당(현 자유한국당)과 더불어민주당 지도부가 선거제도 논의를 할 때 정의당 원내대표였던 심 의원은 ‘초대받지 않은 회의’에 나타나 “논의에서 정의당을 배제하지 마라”고 목소리를 높이기도 했다. 정의당은 지난 4월 민주평화당과 공동교섭단체 ‘평화와 정의 의원모임’을 결성해 처음으로 교섭단체 지위를 얻고, 정개특위 위원장을 약속받았다. 하지만 노회찬 의원의 사망으로 3개월 만에 다시 비교섭단체가 됐다. 이후 ‘비교섭단체는 빠지라’는 자유한국당의 요구가 이어지다 이날 첫 회의를 열었다. 이미 6개월의 활동 시한 중 절반을 허비한 정개특위는 시한을 넘긴 선거구획정위원을 선정하고 공직선거법·정치자금법·정당법 관련 265건의 법률안을 심의·의결해야 한다. 가장 중요한 과제는 승자독식의 왜곡된 비례성을 바로잡을 선거제도 개혁이다. 특히 한국당을 제외한 4당이 찬성하는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 여부가 관건이다. 민주당은 연동형 비례대표 제도에 원칙적으로 찬성하지만 4·13총선 득표율을 감안하면 실제 제도가 도입될 경우 의석이 줄 수 있어 야당 시절만큼 적극적이지 않다. 한국당은 중대선거구제 도입 카드를 검토하고 있다. 소속 의원 이탈과 거대 양당 흡수 위협에 시달리는 바른미래당과 민주평화당은 선거제도 개혁에 명운이 달렸다. 정개특위의 법적 활동 시한은 12월 31일 종료되지만 여야 합의로 기한을 연장할 수 있다. 시간이 촉박해 21대 총선 1년 전인 내년 4월까지 활동을 이어 갈 것으로 보인다. 정개특위는 30일 두 번째 회의를 열어 소위원회를 구성하고 중앙선거관리위원회 보고를 듣는다. 손지은 기자 sson@seoul.co.kr
  • “6년 전 창당 땐 미생… 이제는 완생 꿈꿔…정의당, 2020년 총선에서 제1야당 될 것”

    “6년 전 창당 땐 미생… 이제는 완생 꿈꿔…정의당, 2020년 총선에서 제1야당 될 것”

    제1야당 도약 위해 선거 개혁 속도전 故노회찬 의원 빈자리에 눈물 훔쳐 거물급 스타정치인 부재 해결해야창당 6주년을 맞은 정의당이 2020년 총선에서 제1야당이 되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21일 국회에서 기념식을 연 정의당은 “우리 정의당은 미생이었지만 이제 완생을 꿈꾸는 정당으로 발전해 가고 있다(심상정 의원)”고 자평하고 총선 승리를 다짐했다. 이정미 대표는 “이제 국민들은 그래 너희가 제1야당 한번 해보라고 격려해주고 있다”고 강조했다. 2012년 10월 창당 당시 지지율 0%였던 정의당은 지난 8월 여론조사에서 창당 후 최고치인 15%를 기록해 원내 4개 야당 중 1위를 차지했다. 정의당은 제1당으로의 도약을 위해 ‘중단 없는 민생실천’과 정교한 입법, 전국 조직 확대 등을 과제로 꼽았다. 윤소하 원내대표는 “정의당의 입법과 정책은 얼마나 정교한지, 우리의 철학과 신념을 국민들에게 어떻게 설득할지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의당이 제1야당 목표를 달성하려면 선거제도 개혁도 필수다. 윤 원내대표는 “10% 전후의 지지율과 다르게 정의당의 의석은 5석, 1.7%가 채 되지 않는 것이 국회의 현실”이라며 선거제도 개혁의 당위성을 역설했다. 이날 기념식에선 노회찬 전 의원의 빈자리도 두드러졌다. 이 대표는 “노회찬 없는 창당 6주년 기념식”이라며 눈물을 훔치느라 말을 잇지 못했다. 정의당이 선정한 ‘2012~2018 결정적 순간들’ 11개 중 4개가 노 전 의원 관련 장면이다. 유시민, 노회찬, 심상정 등과 같은 거물급 스타정치인의 부재도 정의당이 극복해야 할 과제다. 지난 대선에선 심상정 후보가 완주해 총 득표율 6.2%, 역대 진보정당 후보 중 최고 성적을 거뒀지만 지금은 이렇다 할 ‘다음 주자’가 보이지 않는다는 지적이다. 손지은 기자 sson@seoul.co.kr 강윤혁 기자 yes@seoul.co.kr
  • [논설위원의 사람 이슈 다보기] “청춘은 정치 무관심? 기성정당이 젊은 목소리 안 듣는다는 얘기”

    [논설위원의 사람 이슈 다보기] “청춘은 정치 무관심? 기성정당이 젊은 목소리 안 듣는다는 얘기”

    청년정치. 우리에게는 이보다 낯선 말이 없다. 청년이 현실정치의 주류로 편입된 적이 없어서다. 신맛 단맛 다 보여준 ‘올드보이’들이 여야 막론하고 돌고 돌아 다시 정치판의 주류다. “정치할 사람이 그렇게 없나?” 자조 섞인 말들을 하지만 정치 제대로 할 ‘새 얼굴’은 정말 귀하다.‘청년정치크루’는 국회 밖 민간인 청년들의 청년정책 싱크탱크다. 결성된 지 2년. 돈도 백도 없는 이들은 금배지를 달아야만 정치하는 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진보·보수 편가를 생각은 더더욱 없다. 정치권이 돌아볼 때까지 청년 목소리를 담은 정책을 악착같이 제안하고 또 제안하는 것. 그것만이 목표다. 덕분에 여의도 정가에서 청년정책을 고민하는 이라면 이들의 존재를 안다. 이들 눈에 기성 정치판은 어떻게 비칠까. 이동수(30) 대표와 김수한(28)씨가 모임을 대표해 발언했다.→2016년 모임이 결성됐다. 특정 단체나 정당의 후원 없는 자생적 청년정치 모임은 드물지 않나. -(이동수 대표·이하 이) 청년유니온, 민달팽이유니온 등 청년단체들이 있지만 순수 정책 모임은 처음이다. 대형 소셜커머스 업체가 인턴 사원을 실컷 써먹고는 채용을 하지 않는 갑질로 사회적 공분을 샀다. 그걸 보고는 참을 수 없어 뜻 맞는 청춘들이 모였다. 현재 고정 멤버는 7명. 27세부터 30세까지 말 그대로 열혈 청년들이다(웃음). 전공도 직업도 모두 제각각이지만 의미 있는 청년정책으로 세상을 바꾸고 싶다는 고집은 같다. →전공과 이력들이 다 달라서 다양한 정책에 관심 갖기 적합하겠다. -(이) 나는 여의도연구원 인턴을 거쳐 이혜훈 의원 비서, 안희정 경선 캠프 등을 경험했다. 정치 쪽 일을 해본 적 없는 멤버도 많다. 우리는 특정 정당의 노선을 맹목적으로 추종하지 않는다. 청년진보정당 우리미래에서부터 자유한국당까지 지지 정당이 다양하며 사안별 청년맞춤 정책을 고민할 뿐이다.→직접 만들어 제안한 청년정책은 어떤 것들이 있나. -(김수한씨·이하 김) 일명 ‘취업준비생 보호법’이 대표적이다. 사용자가 채용을 빌미로 영업이익을 편취하거나 수습기간을 지나치게 길게 잡는 행태를 금지하고, 채용 공고에 연봉을 아예 명시하도록 하는 내용이 골자다. 더불어민주당 송옥주 의원과 자유한국당 신보라 의원이 우리 제안을 받아들여 지난해 개정안을 발의했다. 여야 없이 관심을 갖는 청년정책 의제였던 셈이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소관인데, 최저임금 등 현안들에 처리 순서가 밀린 게 좀 안타깝다. →청년들 목소리를 대신 담는 정책 아이디어들은 주로 어디서 얻는가. -(이) 현실에 귀를 열면 청년들이 목말라하는 정책을 알 수 있다. 조금만 보살펴 줘도 청년들에게는 큰 도움이 되는 유의미한 것들이 많다. 예컨대 태부족인 대학 기숙사 문제가 그렇다. 기숙사 신축 권한은 지방자치단체장에게 있는데, 지역 건물 임대업자들이 반대하면 어쩌지 못한다. 그러니 기숙사 신축 권한만큼은 지자체의 상위 기관으로 넘기자는 식의 정책을 우리는 제안한다. -(김) 우리 모임에 청년들이 직접 제보하기도 한다. 소소한 것들도 많다. 외국항공사들은 대개 승무원 학원에 인력을 의뢰하는데, 불량 학원들은 이를 악용한다. 취업을 시켜줄 것처럼 해서는 수강료만 몇백만원씩 챙긴다. 이런 취업 사기들을 법으로 방지해야 한다.→현실정치판으로 직접 뛰어들고 싶다는 생각들은 없는가. 정책을 제안하는 과정에 한계를 느낄 듯하다. -(이) 할 수 있다면 해보고도 싶다(웃음). 그러나 현실정치 진입이 우리나라는 어려워도 너무 어렵다. 금배지를 어렵게 달아도 젊은 정치인들은 기성정당의 이미지 메이커에 그친다. 20대 총선만 보자. 20~30대 청년 출마자 중에서 국회에 입성한 이는 세 명뿐이었다. 바른미래당의 이준석 의원이 30대 선출직 최고위원이 됐다고 두고두고 떠들썩한 얘깃거리가 되는 현실이다. →청년 정치인을 양산할 수 있는 토양이 다져져야 하겠다. 현실적으로 어떤 부분이 가장 안타까워 보이나. -(김) 일자리가 있는 곳에 인재가 모인다. 공무원, 공기업 쪽으로 우리 청년들이 저절로 쏠리는 까닭이다. 정치를 도박하듯 하는 지금의 풍토에서는 훌륭한 정치인력이 나올 수 없을 것 같다. 국회 보좌진만 하더라도 인력운용을 체계적으로 한다면 많은 인재들이 유인될 거다. 당장 청년 당직자 처우만 해도 그렇다. 최근 어느 야당에서는 예산절감을 한다고 젊은 당직자들을 무더기 해고했다. 의원들의 쓸데없는 씀씀이부터 줄여야지, 걸핏하면 당직자들을 건드리더라. 그런 환경이라면 청년 인재들이 정가로 어떻게 눈을 돌리겠나. -(이) 국회의원실 인턴의 급여는 10년 가까이 동결됐다. 그마저도 실컷 쓰다 마음대로 버리는 ‘티슈 인턴’ 취급들이다. 국회의원들 세비는 그 기간 37%나 올랐다. 이런 불안한 채용 시스템으로 청년들을 소모품 취급한다면 정치판은 갈수록 금수저들의 전유물이 될지 모른다. 모임 활동을 하면서 정당의 운영 생리를 조금씩 들여다보게 되는데, 그런 미래는 아찔하다. 공짜 정치, 공짜 정책을 청년들에게 강요하고 있다. →요즘 청년들은 정치에 무관심하다는 말들을 한다. 기성정당들의 부실한 정치교육도 한몫한다고 보는지. -(김) 청년들의 정치 참여 의식은 기성세대가 생각하는 것만큼 저조하지 않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 온라인을 통해 얼마든지 발언할 준비가 돼 있다. 과거와 다른 방식으로 정치에 관여하고 싶은데, 그런 터전이 없을 뿐이다. 정치교육을 한다는 정당들은 얼마나 주먹구구인지 모른다. 말로는 청년들과 만나 청년정책을 함께 고민하겠다고 하면서 그 행사를 한낮에 개최한다. 그런 자리에는 정작 청년들이 있을 수 없다. →우리 정치권을 보고 느낀 이야기를 책(청년정치)으로도 펴냈다. 우리 정당들에도 청년정책을 연구하는 청년기구들이 없지는 않은데. -(이) 정당마다 정치학교를 개설해 청년정치인 육성에 신경을 쓰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청소년들의 정치참여가 법으로 막혀 있는 우리나라에서는 정치적 근력을 키우는 것 자체가 역부족이다. 책을 내려고 공부를 좀 많이 했다(웃음). 청년정치 참여가 왕성한 독일에는 앙겔라 메르켈 총리가 소속된 기독민주당과 기독사회당의 연합청년조직(JU)이 있다. 만 14세부터 가입할 수 있어 유럽 최대 규모인 12만명의 청년조직이 됐다. 정당이 미래세대에 정강을 알리고 정치참여의 장을 꾸준히 제공한다. 20세에 정계 입문해도 될 만큼 정치적 자질과 역량을 키워 주는 거다. →지원 없이 모임을 유지하기가 쉽지 않을 듯하다. 지속가능한 모임을 위한 고민을 많이 해야겠다. -(김) 가수들이 쇼케이스를 열어 외부와 소통하지 않나. 우리는 정책을 개발해서 ‘정책 쇼케이스’라는 걸 한다. 누구의 입김에도 자유롭고 싶으니 제반 비용은 우리끼리 십시일반 마련한다. 또래 청년들이 몰리는 홍대 카페를 2시간에 30만원 주면 빌리는데 그 자리에 정당 관계자, 의원 보좌관들이 찾아와 우리 제언을 귀담아듣는다. -(이) 모임이 정당 토론회들에 자주 초청될 정도로 자리를 잡고 있다. 정치는 어려운 것이라는 인식의 벽부터 우리 청년들이 깨야 한다. 당분간 고정 회원을 늘리지 않고 다양한 청년 참여 이벤트를 내놓고 소통영역을 넓힐 계획이다. 유튜브 채널(정치크루 TV)을 개설해 정치 콘텐츠를 두루 제공하는 것은 당장의 주요 사업이다. 우리 청년들은 유튜브로 한창 소통하는데, 정치권의 누구도 유튜브에 관심조차 없다. 이런 현실이다. 그만큼 우리 정치는 현실감각이 떨어지고 늙었다. sjh@seoul.co.kr
  • 日언론 “한국에서 일본 열풍…한국인들 반감 줄어든 이유는…”

    日언론 “한국에서 일본 열풍…한국인들 반감 줄어든 이유는…”

    최근 일본에서 ‘제3차 한류’ 바람이 강하게 불고 있는 가운데, 한국에서도 젊은층을 중심으로 이른바 ‘일류’(日流) 붐이 일고 있다고 일본 니혼게이자이신문이 보도했다. 이 신문은 일본에 대한 한국인들의 인식이 개선된 데는 현재 한국 사회에 대해 갖고 있는 불만이 하나의 이유가 되고 있다고 해석했다.니혼게이자이는 ‘한국의 젊은이들 일류 붐’이라는 제목의 지난 10일자 석간판 1면 톱 기사에서 “양국 정부는 위안부 문제 등으로 삐걱대고 있지만, 민간에서는 본격적인 일류 붐이 일고 있다”고 전했다. 니혼게이자이는 “서울 시내 한 대형서점의 경우 소설 부문 상위 15권 중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 등 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설이 2권이나 포함되는 등 일본 서적들이 높은 인기를 누리고 있다”고 설명했다. 특히 이 서점에서 지난 9월 1일 기준 한국인 작가를 포함한 전체 서적 판매 1위를 야쿠마루 가쿠의 소설 ‘서약’(번역제목은 ‘돌이킬 수 없는 약속’)이 차지한 사실도 소개했다.한국의 35세 회사원은 “친구들과의 대화에서 일본 소설을 일상적으로 화제에 올리고 있다. 소설을 통해 일본의 문화와 사회를 배우려는 또래나 후배들이 많다”고 말했다. 일본정부관광국에 따르면 지난해 한국인의 방일 관광객은 714만명으로 전년보다 40% 늘면서 국가별 1위인 중국(735만명)에 근접했다. 올해에도 6월까지 401만명이 일본을 찾아 중국(405만명)과의 차이가 더욱 좁혀졌다. 최근에는 도쿄, 오사카 등 대도시보다 지방 여행이 급증하고 있다. 니혼게이자이는 “지난해부터 일본어를 배우려는 젊은이가 늘어났다. 2년 전 25명 정도이던 20~30대 (수강)학생이 현재는 35명에 이르고 인기 있는 TV 여행·버라이어티 프로그램이 일본의 각지를 소개하면서 지방에 대한 관심도가 부쩍 높아졌다”는 서울의 한 일본어학원 원장의 말을 인용했다. 니혼게이자이는 그러나 “진보정당 지지자를 중심으로 반일 감정은 여전하다”며 최근 욱일기를 게양한 일본 해상자위대 함정의 방한 반대 여론을 소개했다. 니혼게이자이는 “높은 실업률에 괴로워하는 한국의 20~30대는 한국 사회를 차가운 시선으로 보는 경우가 많고, 이것이 일본에 대한 반감을 누그러뜨리고 있다”고 평했다. 이어 “일본에서도 최근 젊은층을 중심으로 다시 한류붐이 일고 있는 가운데 문화 차원에서 쌍방을 이해하는 움직임이 확산되면 양국 외교관계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기대된다”고 했다. 도쿄 김태균 특파원 windsea@seoul.co.kr
  • 불평등을 평등으로, 불공정을 공정으로… 노회찬이 꿈 꾼 세상

    불평등을 평등으로, 불공정을 공정으로… 노회찬이 꿈 꾼 세상

    “저는 촛불시대의 과제를 세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고 봅니다. 바로 불평등을 평등으로, 불공정을 공정으로, 전쟁의 위협으로부터 평화의 정착으로, 이 세 가지가 우리에게 떨어진 시대의 과제라고 생각합니다.” 고 노회찬 의원의 사후 그의 이름으로 나온 첫 책이 발간됐다. 창비에서 펴낸 ‘지혜의 시대 세트’(전 5권) 중 하나인 ‘우리가 꿈꾸는 나라’다. 노 의원 외에도 김대식 한국과학기술원(KAIST) 교수, 김현정 CBS PD, 변영주 영화감독, 정신과 전문의 정혜신씨 등 5명의 저자가 4차 산업혁명, 언론, 창작, 죽음과 관련한 새로운 시대의 지혜를 서술했다.책은 2018년 2월 창비에서 주최한 ‘지혜의 시대’ 연속 특강 중 노 의원의 강연 내용을 바탕으로 했다. 저자 교정이 한창이던 지난 7월 23일 노 의원이 운명을 달리 했다. “회찬이 형, 잘 가요”라며 울음을 삼켰던 유시민 작가와 이정미 정의당 대표의 추도사, 소설가 안재성씨가 정리한 노 의원의 약전이 함께 수록됐다. 노 의원은 책에서 평화 정착을 위해 남북 대화를 통한 한반도 비핵화가 우선이라고 말했다. 대북 제재를 강화해본들 별 효과가 없다는 것이 지난 20년 세월에서 입증됐다는 것. 그는 “그 누구도, 보수라 할지라도 전쟁을 부추겨서는 안 된다”며 “평화란 의견이 갈릴 수 없는 문제”라고 역설했다. 말미에 실린 청중과의 문답에서는 ‘정치인 노회찬’을 잃은 아픔이 새삼 밀려온다. 여러 고초에도 불구하고 정치권에 남아 있는 이유에 대해 그는 답했다. “제대로 된 진보정당을 만드는 것이 제 평생의 목표가 됐습니다. (중략) 저에게는 다른 일을 할 생각과 능력이 부족하기 때문에, 지금 하고 있는 일로써 우리나라에 기여하고자 합니다.” 이슬기 기자 seulgi@seoul.co.kr
  • [기자칼럼]노회찬 의원이 말했던 “진보가 희망인 이유”

    [기자칼럼]노회찬 의원이 말했던 “진보가 희망인 이유”

    27일 고(故) 노회찬 정의당 원내대표의 국회 영결식이 열렸습니다. 평생을 한국의 민주화와 진보정치에 바쳤던 그의 죽음을 안타까워하는 추모 물결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노 의원을 기억하며 그가 2009년 당시 ‘서울신문’ 기자들의 공부모임이었던 ‘연대와 희망’ 초청강사로서 세 시간 가까이 진솔한 얘기를 들려줬던 얘기를 다시 꺼내놓습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노 의원이 초청강연을 했던 2009년 1월 16일 당시 그는 2004년부터 2008년까지 17대 국회의원으로 활동한 뒤 진보신당 공동대표로서 활동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2008년 1월부터 서울 노원(병)에서 18대 국회의원 선거를 준비할 당시 겪었던 얘기로 자신의 17대 의정활동에 대한 반성을 시작했습니다. 선거를 준비하면서 노 의원은 유권자들한테 받을 예상 질문을 뽑아서 맞춤형 답변을 열심히 연습했다고 합니다. 결과적으로 그건 헛수고였습니다. 선거까지 석 달 동안 아무도 그가 준비했던 예상질문이었던 “너무 과격한 거 아니냐” “너무 한쪽으로 편향된 거 아니냐” “중간에서 폭넓게 해야 하지 않느냐” “왜 밤낮 데모만 하느냐”를 묻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예상하지 못했던 질문만 많이 받았답니다. 가장 많이 받은 질문은 “서민들 먹고 살게 해달라”였고, 그 다음이 “서민을 위해 앞으로도 열심히 일해달라”는 것이었답니다. 노 의원에게 특히나 충격적이었던 건 자신이 몸담았던 민주노동당이 유권자들에게 서민의 대변자로 비치지 않았다는 점이었습니다. 노 의원은 17대 국회 당시 울산 현대자동차 공장을 방문한 적이 있습니다. 그 넓은 현대차 공장에서 옷차림만 봐도 정규직과 비정규직을 구별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사람이 섞여서 같은 일을 하는데 복장이 다른 겁니다. 노 의원은 “정규직들은 우리를 보면 장갑을 벗고 반갑게 악수를 하며 이런 저런 얘기도 나눈다”면서 “비정규직은 장갑 안벗는다. 다가가서 손을 내밀어도 외면하기도 한다”고 털어놨습니다. 노 의원으로선 서운할 법도 한 그런 상황은 왜 벌어졌던 것일까요. 노 의원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비정규직은 정규직과 일은 똑같은데 월급은 절반 밖에 안된다. 정규직노조가 파업이라도 하면 비정규직은 일감이 없어서 굶어야 한다. 정규직노조는 2층짜리 단독건물을 노조사무실로 쓴다. 상근자도 엄청 많다. 비정규직노조 사무실은 공장 한켠에 한 평 정도 된다. 노조 설립하고 나서 1년까지는 유선전화도 회사에서 안 놓아줬다고 한다.” 결국 비정규직 입장에선 정규직노조는 남의 편입니다. 민주노총은 정규직노조 집합체입니다. 민주노총이 지지하는 민노당은 당연히 자기들 편이 아닌 겁니다. 노 의원은 그런 인식이 굳어지도록 방치한 책임을 크게 느꼈습니다. 노 의원은 “민노당이 정말로 당시에 서민을 위한 정당이라고 인식됐다면 지난 대선 지지율이 20%는 거뜬했을 것”이라면서 “돌이켜보면 진보라는 사람들이 오히려 준비 부족, 정치력 부족, 전략 부족… 그런 걸 반성해야 한다”고 말했다. 노 의원은 2000년 1월 창당한 민노당 초기 주역 가운데 한 명이었습니다. 2000년대 초반 민노당은 놀라운 성장세를 이어갔습니다. 노 의원은 “민노당이 창당 당시 당원 7000명에서 1년만에 두배, 2년차에 3만, 3년차에 5만, 4년차에 7만, 나중에 10만 됐다”면서 “지지율도 처음엔 1~2%였는데 17대 총선에서 정당투표로 13.4%까지 기록했고 그해 말 지지율이 18~19%까지 나왔다”고 회상했습니다. 노 의원은 “13%라는 건 국민들 사이에서 진보를 수용할 수 있는 토대가 꽤 있다는 걸 보여준다”면서 “문제는 그걸 더 끌어내는 것과, 고정지지로 만드는 거였는데 민노당 의정 4년에 결과적으로 제대로 못하니까 국민들이 지지를 철회한 것이지 국민이 보수화된 게 아니다”라고 밝혔습니다. 그런 점에서 노 의원은 17대 국회 4년 동안 가장 아쉬운 대목 세 가지를 꼽았습니다. 첫번째는 민노당 17대 총선 공약으로 내세웠던 “무상교육 무상의료 부유세” 공약을 제대로 끌고가지 못했다는 겁니다. 그는 “국민들은 그 공약의 실현가능성을 본 게 아니라 그런 얘기가 계속 나와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이라면서 “문제는 무상교육 무상의료 부유세를 민노당의 브랜드로 하지 못했다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2004년 원내 진출 이후 1년 내내 당시 여당이던 열린우리당이 벌인 국가보안법 판에 휩쓸렸다”면서 “2005년 가을에야 무상교육 무상의료 부유세 관철 위한 본부를 만들었다. 노력도 별로 안하고 타이밍도 놓쳐버렸다”고 아쉬워했습니다. 2004년 당시 한창 시끄러웠던 국가보안법 논쟁도 아쉬운 대목이라고 했습니다. 당시 국가보안법을 그대로 고수하자는 쪽은 한나라당 내에서도 적었다고 합니다. 국가보안법 7조(이적단체, 이적표현물, 이적행위)만 없애자는 게 한나라당 개혁파와 민주당 주류 입장이었습니다. 하지만 열린우리당 강경파와 민노당에선 완전폐지를 주장했다. 노 의원은 “국가보안법 사범 보면 95%는 7조가 문제다. 나머지는 간첩처럼 국보법 없더라도 잡혀갈 사람들이었다”면서 “당시엔 나도 국보법 완전폐지 주장했지만 지금 생각하면 반성할 부분 있다”고 말했습니다. 김용철 변호사가 양심선언한 것을 계기로 탄생한 특검도 많이 아쉬운 대목이라고 했습니다. 특검 주장을 관철시키는 데 큰 역할을 한 노 의원이었지만 “지금 와 생각하면 경륜부족”이라고 했습니다. “당시 상황에선 구석에 몰린 검찰이 대검중수부장 지휘받는 특별수사본부에 삼성 수사 열심히 해 좌천된 사람들로 구성했다. 이들이 당시에 제일 수사 잘할 사람들이었다. 성과도 있었다. 그런데 특검 때문에 중단됐다.” 노 의원은 “특검이 검찰보다 잘한다는 보장도 없고, 특검은 누가 되느냐에 따라 판도가 완전히 달라지는데 노무현(대통령)이 검찰보다도 의지가 적었다”면서 “민변이 추천한 변호사가 했으면 100중에 60은 했겠지만 노무현은 삼성맨을 특검으로 임명했다. 나는 그것까지 내다보지 못했다”고 했습니다. 노 의원은 당시를 떠올리며 “운동권 관성과 흑백논리”를 반성한다고 했습니다. 노 의원은 17대 의원 시절을 반성하면서 미래에 대한 목표와 전망도 밝혔습니다. 지금 들어도 시사점이 많습니다. “객관적으로 보면 진보는 지금 분명히 위기다. 지금 진보진영에게 필요한 건 실용노선, 즉 실사구시라고 생각한다. 역사를 되돌아봐도 성공한 혁명은 모두 실용노선으로 성공했다. ‘실사구시’를 진보의 기본철학으로 삼아야 한다.” 18대 총선 당시 선거참모들이 노회찬에게 “자유총연맹 회의가 있으니 거기 가서 인사를 하라고 권했답니다. “그 말을 듣고 몸이 굳어졌다”는 노 의원은 참모들 강권에 별 수 없이 자유총연맹 회의에 갔답니다. 그가 거기서 본 건 무엇이었을까요. “내 선거구 인구가 20만명이고 9개 동이다. 자유총연맹이 동마다 조직이 있다. 내가 찾아간 자리는 어느 동의 운영위원회 뒷풀이였는데 거기 참석한 사람만 줄잡아 30명이었다. 본격적인 이념투쟁 벌어질거라 생각하고 각오 단단히 했다. 하지만 막상 가보니 평범한 사람들이었다.” 노 의원은 “자영업 위해 먹고살기 위해 가입한 사람도 있고, 동네에서 사람들 많이 만나야 하는 필요 있는 사람들도 있고, 놀랍게도 여성이 절반 정도였다”고 했습니다. 그는 “자유총연맹 수뇌부는 극우조직이지만 하부는 그냥 평범한 사람들이다. 처음엔 인사만 하고 나오려 했는데 주저앉아서 결국 소주를 너댓병 먹었다”면서 “만나보니 자유총연맹 회원이라는 사람들이 서민 범주에 드는 사람들이었다. 나중에는 9개 동네 운영위원회마다 가봤다”고 회상했습니다. 결국 내친김에 재향군인회도 찾아갔답니다. 재향군인회 사무실 한쪽은 6.25참전무공자회가 쓰고 있었답니다. 연배가 최소 60세는 되는 이 단체 소속 할아버지들이 재향군인회보다 훨씬 반갑게 맞아줬습니다. “외롭고 소외돼 있는데 알려진 사람이 찾아오니 반가운 거다. 나중엔 노원구 총회가 있는데 와달라고 귀띔까지 하더라. 70대 할아버지 500명이 모이는 자리였다. 후보들 중 유일하게 초청받아서 인사를 했다.” 그는 “결국 다른 게 아니다. 불의에 맞서 싸우는 거와 약자 편에 서는 활동에 호감 보인것”이라면서 “대중들을 만나보니 ‘친북만 아니면 사회주의도 좋다’는 정서가 강했다. 한국에선 노무현 정부조차도 친북으로 몰아세우는 분위기가 있지만, 가만히 보니 북한만 편드는 거 아니면 이데올로기에 구애받지 않는다. 레드컴플렉스가 막상 보니 웃기는 거였다”고 말했습니다. 바로 이것이 노 의원이 말하는 “진보가 희망이 있다는 근거”였습니다. 그런 고민 위에서 노 의원이 가장 먼저 거론한 것은 남북문제였습니다. 노 의원은 “박근혜가 북한에 가면 조선노동당 관계자들이 만나준다. 정동영 전 통일장관이 북한 가도 조선노동당 관계자를 만났다. 하지만 민노당이 북한에 가면 노동당이 아니라 사회민주당이 만나준다”고 했습니다. 쿠바나 중국같은 혈맹은 조선노동당이 만나고 사회민주당은 서방세계 대표단 만나는 당이랍니다. 노 의원은 “북한은 오히려 보수든 진보든 상관없이 ‘힘’을 본다. 우리만 짝사랑한다고 되는게 아니다”면서 “오히려 진보정당이 북한 비판하면 그게 오히려 북한에게 따끔하다. 그걸 감안해서 북한에 대한 자세를 취해야 한다”고 지적?습니다. 당시 노 의원은 선거제도 개혁을 역설했습니다. 그리고 그 과제는 바로 현재 정의당이 가장 주력하는 과제 가운데 하나입니다. “선거제도 개혁이 개헌보다 더 중요하다”는 노 의원의 외침은 이제 살아있는 사람들의 몫이 됐습니다. “국민들이 5% 지지하면 5%만큼 의석을 가져야 한다. 1등 말고는 다 떨어지는 구조에선 최소 50% 국민의 선택이 무의미해진다. 유럽정치도 초기엔 완전비례대표제도를 위해 한세대 가까이 걸린 투쟁이 있었다. 그걸 거쳐서 좌파정당이 집권도 하고 그런 거다.” 세종 강국진 기자 betulo@seoul.co.kr
  • [문소영의 시시콜콜] 영면하세요! 노회찬 의원

    [문소영의 시시콜콜] 영면하세요! 노회찬 의원

    일산에서 광화문으로 출근하는 길에 연세대 장례식장이 있다. 운전기사가 “운구하나 보다”고 하는 말이 들려 버스 커튼을 열어보니 취재진과 관광버스, 검은 장례식 차량 등이 잔뜩 몰려있다. 문상을 가려고 4일째 검은 옷을 입고 다니다가, 어제 저녁에서야 겨우 조문했다.오늘, 2018년 7월 27일은 고(故) 노회찬 정의당 의원의 발인날이다. 오늘 국회 본청 앞에서 국회장(葬)도 언론으로 생방송됐다. 30도가 넘는 폭염에도 자리를 지킨 동료 국회의원들과 시민 등 2000여 명이 고인과 마지막 작별인사를 했다. 조사에서 이정미 정의당 대표가 “노회찬을 잃은 것은 (중략) 우리는 약자들의 삶을 바꿀 수 있는 민주주의의 가능성 하나를 상실했다”고 애도하는데, 눈물이 핑돈다. 2004년 총선에서 많은 사람들이 처음으로 도입된 정당투표를 진보정당인 민주노동당에 했듯이, 나 역시 그러했다. 그 덕분에 민주노동당 비례대표가 8명이 대거 국회에 처음으로 입성했고, 비례대표 8번이던 노회찬도 그 중 한 사람이었다. 노 의원과는 개인적 인연은 없다. 2005년 국회 출입기자일때 점심 먹으러 간 평양냉면집 을밀대에서 반가워하며 “언제 만나자”는 식의 인사가 전부였다. 2011년인가 대한문 앞에서 심상정 의원과 노 의원은 쌍용차 노동자 복직관련해 단식투쟁했는데, 그때도 그냥 천막을 지나치면서 ‘열심히 하신다’며 혼자서 좋아하던 정도였다. 물론 그는 내가 아끼는 후배의 외삼촌이었다. 2013년부터 늘 그의 활동을 더 눈여겨 봤다.노회찬 의원은 좋은 평가를 받는 정치인이었다. 진보정치를 대중화한 촌철살인의 정치인일 뿐만 아니라, 강자에 맞서고, 사회적 약자와 진보를 가치를 지켜온 ‘진보정치의 아이콘’이었다. 기자는 기사로, 판사는 판결문으로 평가받는 것처럼, 국회의원은 입법으로 그 존재를 입증한다. 고인도 그러했다. 7년의 의정활동 기간에 1029건의 법안을 발의했다. 3선 의원이지만, 17대 4년하고 18대 낙선하고, 19대 ‘삼성X파일’ 폭로가 유죄가 돼 겨우 9개월, 20대 26개월에 불과했지만, 왕성한 의정활동이었다. 2005년 호주제 폐지법를 시작으로, 차별금지법, 대체복무법, 하도급거래 공정화 개정안, 산업재해보상보험법 개정안 등 여성과 장애인, 노동자 등 소수자를 위한 입법에 앞장 섰다.‘나는 여기서 멈추지만, 정의당을 아껴달라’는 노회찬의 유언은 현실화하고 있다. 국회의원 6명에서 5명으로 줄어든 정의당의 지지율을 11%까지 끌어올렸다. 이는 제1야당으로 국회의원 114명(탈당계 제출의원 2명 포함)인 자유한국당의 지지율 11%와 똑같은 지지율이다. 추모 열기가 여전할 8월 첫째 주의 여론조사는 정의당이 한국당을 제치는 골든 크로스를 기록할 가능성도 없지 않다. 노 의원의 비통한 죽음에 시민들은 자발적으로 정의당 당원에 가입하고 정치 후원금도 내고 있다. 좋은 정치인이라고 생각했지만 후원할 생각을 못했다는 한탄과 함께 ‘지·못·미’(지키지 못해 미안합니다)의 마음을 행동하는 것이다. 6·13지방선거에서 나타난 조짐처럼 수구가 몰락하고 중도와 진보가 확대하는 정치지형이 예상보다 빠르게 전개될 수도 있겠다. 현역의원과 거대정당에 유리한 현행 정치자금법의 개선은 불가피하다. 하지만, ‘노회찬도 지키지 못한 정치자금법’이라는 명분을 앞세워 금권정치와 부정부패를 가까스로 막아온 현 제도를 개악하는 일은 피해야 한다. 2004년 1억 5000억원에 묶어놓은 후원금 한도를 14년이 지난 만큼 물가상승분이라도 반영해 상향조정해야 한다. 원외 정치인이나 정치 신인들이 정치후원금을 받을 수 있는 기간을 현행 선거 120일 전에서 1년 안팎으로 확대해 선거에서 공정한 경쟁 구도를 만들어줄 필요도 있다. 또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정당에 배분하는 국고보조금을 교섭단체(의원 20명 이상)에 50%를 지급하고 남은 50%로 의원 수 등으로 나누는 방식은 개선되어야 한다. 대신 회계를 투명성을 강화해야 한다. ‘노회찬의 비극’을 보면서, 큰일과 작은 일을 나눠 사안별로 비판의 경중을 가리는 건설적인 비판 문화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고인이 2016년 경기고 동창에게 받은 4000만원은 후원회를 통하지 않은만큼 불법정치자금이 분명하다. ‘드루킹 특검’에서 이를 거론했을 때 노 의원은 ‘안받았다’며 거짓말도 했다. 삼성이 검찰에 건넨 뇌물을 폭로한 ‘삼성X파일’로 의원직까지 상실해 청렴하고 도덕적인 정치인으로 평판이 높았던 노회찬이었다. 만약 노 의원이 고백하고 사과했다면 과연 국민은 그를 용서했을까. 아니었을 것이다. 오히려 비난여론이 태풍처럼 불어 그와 정의당을 초토화했을 것이다. 경중을 가리지 않고 몰아치는 정치비판 문화에서는 양심적인 정치인을 지키지 못하고, ‘방탄국회’나 일삼는 후안무치 형 정치인만 국회에 남기게 될 것이다. 수천만원 불법정치자금에 몸을 던지는 양심적인 정치인이 있는가 하면, 수천억원의 부정부패을 비난하는 여론에도 멀쩡하게 잘 살고 있는 염치없는 정치인이 공존하는 사회가 한국이다. 잘못의 수준에 맞춰 비판하고 당사자가 감당할 수 있는 방향으로 비판문화도 개선되길 희망한다.노회찬 의원! 영면하시길. 논설실장 symun@seoul.co.kr/
  • [전문] 문희상·이정미·심상정·김호규 노회찬 의원 영결식 조사

    노회찬 정의당 의원의 영결식이 27일 오전 국회 본청 앞에서 국회장으로 엄수됐다. 영결식에서는 국회장 장의위원장인 문희상 국회의장이 영결사를 맡았으며, 이정미 정의당 대표와 심상정 의원, 김호규 금속노동자가 조사를 낭독했다. 다음은 영결사와 조사 전문. 문희상 의장 “어떻게 하다가 이 자리에서 노회찬 의원님을 떠나보내는 영결사를 읽고 있는 것입니까?” 노회찬 의원님! 이곳 국회에는 한여름 처연한 매미 울음만 가득합니다. 제가 왜 이 자리에 서있는 것입니까? 어떻게 하다가 이 자리에서 노회찬 의원님을 떠나보내는 영결사를 읽고 있는 것입니까? 태양빛 가득한 계절이건만 우리 모두는 어두운 터널에 들어선 듯 참담한 심정으로 모여 있습니다. 둘러보면 의원회관 입구에서 본청입구에서 노회찬 의원님의 모습이 보일 듯합니다. 삶에 대한 치열한 고민 속에서도 여유 가득한 표정의 우리 동료, 노 의원님을 만날 것만 같습니다. 실감이 나지 않습니다. 믿고 싶지 않습니다. 지금 이 순간이 현실이라는 것에 황망함과 비통함을 금할 수 없습니다. 이루 말할 수 없는 깊은 슬픔입니다. 설명할 수 없는 엄청난 충격이 가시질 않습니다. 노회찬 의원님! 당신은 정의로운 사람이었습니다. 당신은 항상 시대를 선구했고 진보정치의 상징이었습니다. 정의를 위해서라면 계란으로 바위치기라는 만류에도 거대 권력과의 싸움을 마다하지 않았습니다. 마지막 남긴 메시지에서도 노동자의 삶을 함께 아파했고 사회적 약자의 승리를 함께 기뻐했습니다. 정치의 본질이 못가진자, 없는 자, 슬픈 자, 억압받는 자 편에 늘 서야 한다고 생각했던당신은 정의로운 사람이었습니다. 노회찬 의원님! 당신의 삶은 많은 이들의 이정표가 될 것입니다. 경기고등학교 재학시절부터 서슬 퍼렇던 유신에 항거했습니다. 보장된 주류의 편안한 삶 대신 민주주의와 노동현장에서 온몸을 던져 투쟁했습니다. 낡은 구두, 오래된 셔츠와 넥타이가 말해주는 대중정치인의 검소함과 청렴함은 젊은 세대에게 귀감이 되었습니다. 한국 정치사에 진보정치와 생활정치의 깃발을 세워 사회적 약자와 노동자, 서민의 버팀목이 돼주었습니다. 「눈 덮인 들판을 걸어갈 때 함부로 걷지 마라. 오늘 내가 가는 이 발자취는 뒷사람의 이정표가 된다. 踏雪野中去 不須胡亂行 (답설야중거 불수호난행) 今日我行跡 遂作後人程 (금일아행적 수작후인정)」 마치 이 말씀을 온 몸으로 실천하듯 불의와 타협하지 않았고 권력에 굴복하지 않았으며, 명예를 중시하고 신중했던 삶이었습니다. 당신의 삶은 많은 이들의 이정표가 되기에 부족함이 없습니다. 노회찬 의원님! 당신은 22일 저녁 병상의 어머님을 찾아뵙고 동생의 집을 들렀지만, 만나지 못하고 발걸음을 돌렸습니다. 그 누구도 꿈속에서조차 상상하지 못했을 마지막 밤을 보내고 우리 곁을 떠나갔습니다. 차마 이 길을 선택한 노회찬 의원님의 고뇌와 번민, 회한과 고통을 생각하면 주체할 수 없는눈물만 흐를 뿐입니다. 당신은 여기서 멈췄지만 추구하던 가치와 정신은 당당하게 앞으로 나아갈 것입니다. 우리 모두의 기억 속에서 사라지지 않을 것입니다. 노회찬 의원님! 지난 닷새 동안 당신을 사랑하고 그리워하는 수많은 이들이 눈물 속에서 꽃을 건넸습니다. 흐드러지게 꽃피었어야 할 거인과의 갑작스런 작별을 온 국민이 애도하고 있습니다. 당신의 마지막을 동료들과 함께 국회장을 치를 수 있도록 허락해주신 유가족 여러분께 가슴 깊이 우러나오는 감사의 말씀과 심심한 위로의 말씀을 드립니다. 노회찬 의원님, 이제 평생을 짊어졌던 무거운 짐을 내려놓고 영원한 평안을 누리십시오. 당신이 한국정치사에 남긴 발자취와 정신은 우리 국회와 대한민국의 역사 속에서 길이 빛날 것입니다. 부디 영면하소서. 이정미 대표 “‘여기서 멈추겠다’고 했던 노회찬은 결코 멈추지 않고 우리와 함께 ‘당당히 나아갈 것’입니다.” 사랑하는 대표님! 수만의 시민들이 전국 곳곳에서 대표님을 추모해 주셨습니다. 감사합니다. 초등학생부터 구순 어르신까지. 막 일을 마치고 땀자국이 선연한 티셔츠를 입고 온 일용직 노동자부터 검은 정장을 정중히 입은 기업 대표까지. 남녀노소 각계각층의 많은 분들이 오셔서 원내대표님의 마지막 가는 길에 함께 했습니다. 나이도 성별도 하는 일도 다르지만 이 분들이 저의 손을 잡고 울먹이며 하시는 말씀은 모두 같습니다. “대한민국에 꼭 필요한 사람이었다.” ‘꼭 필요한 사람’. 이보다 노회찬을 더 잘 설명할 수 있는 말은 없을 것입니다. 노회찬 원내대표가 세상을 떠나자 많은 단체가 추모 성명을 냈습니다. 그들은 해고 노동자이고, 산재로 자식을 잃은 어미이자 아비였으며, 장애인, 여성, 성소수자였습니다. 노회찬이 우리 정치에 없었다면 ?간절한 외침을 전할 길이 없었던 약자들이 노회찬의 죽음에 누구보다 슬퍼하고 있습니다. 노회찬의 정치 이력은 바로 이들을 대변하고, 이들의 삶을 바꾸는 길이었습니다. 대학생 노회찬은 노동 해방을 위해 용접공이 되어 인천으로 향했고, 일하는 사람을 대변하는 진보정당을 만들기 위해, 이제는 이름조차 기억하기 힘든 진보정치 단체들을 두루 이끌며 청춘을 바쳤습니다. 진보정당 탄생 후에는 그 성공에 모든 것을 걸었습니다. 그리고 생의 마지막 순간, 그가 만들고 키워 온 정의당을 위해 그의 삶을 통째로 바쳤습니다. 그래서 노회찬을 잃은 것은 그저 정치인 한명을 잃은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약자들의 삶을 바꿀 수 있는 민주주의의 가능성 하나를 상실했습니다. 노회찬, 당신은 대한민국 역사상 가장 위대한 정치인은 아닐지라도 우리에게 없어서는 안되는 단 한 사람이었습니다. 2013년 2월 14일 삼성 X파일 대법원 선고로 의원직을 상실한 날, 억장이 무너진 당직자들에게 당신이 처음 했던 말이 “물의를 일으켜 죄송합니다”였습니다. 분노의 눈물을 삼킨 동료들에게 오히려 웃음과 유머를 보였습니다. 당신은 하늘이 주신 이 재능으로 시민들에게 정치의 통쾌함과 즐거움을 안겼습니다. 그 유쾌함은, 위기와 역경을 낙관으로 이겨온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내면의 단단함에서 나왔습니다. 그러나 노회찬은 불같은 분노와 강직함을 함께 갖고 있었습니다. 2013년 의원직 상실 직후 가진 기자회견에서 “다시 그날로 돌아가도 삼성 X파일을 공개 하겠다”고 말하는 지독한 고집쟁이였습니다. 마지막 유품인 10년이 넘은 양복 두벌과 낡디 낡은 구두 한 켤레에서, 스스로에게 엄격했지만 너무도 소박했던 노회찬을 봅니다. 우리 정치를 이상적이고 높은 수준으로 끌어올리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던 노회찬을 다시 확인하게 됩니다. 국민들은 이런 노회찬을 보며 저기 국회에도 자기 편이 한명 쯤은 있다고 안심할 수 있었습니다. 한결 같은 노회찬을 보며, 많은 정치인들은 정당과 정견은 다르더라도 그를 존중했습니다. 이처럼 소중한 노회찬이, 무겁고 무거운 양심의 무게에 힘겨워 할 때 저는 그 짐을 함께 나눠지지 못했습니다. 당신이 오직 진보정치의 승리만을 염원하며 스스로가 디딤돌이 되겠다는 선택을 할 때도 그 곁에 있어주지 못했습니다. 당원들과 국민들께 너무나 죄송합니다. 정의당은 약속드립니다. 조문 기간 백발이 성성한 어른께서 저의 손을 잡고 “정의당 안에서 노회찬을 반드시 부활시키라”고 당부하셨습니다. 저와 정의당은 그 말씀을 마음에 새기고 반드시 지키겠습니다. 노회찬의 정신은 정의당의 정신이 될 것이며, 노회찬의 간절한 꿈이었던 진보집권의 꿈은 이제 정의당의 꿈이 될 것입니다.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문희상 의장님과 선배 동료 의원 여러분! 노회찬 대표의 2012년 정의당 창당대회 연설을 기억합니다. 노 대표는 투명인간들에 대해 말했습니다. 매일 새벽 4시 서울 구로구에서 6411버스를 타고 강남의 빌딩으로 출근하는 여성노동자들은 진보정당에서조차 투명인간이었다고, 그는 반성했습니다. 그러면서 “그분들이 냄새 맡을 수 있고, 손에 잡을 수 있는 곳으로, 이 당을 함께 가져가자”고 했습니다. 노회찬의 이 다짐이 정의당만의 다짐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한국 정치가 너나 ?없이 투명 인간으로 취급해 온 일하는 사람들, 소수자들, 약자들을 향해 이제 함께 나아가야 합니다. 그렇게 되도록 정치개혁과 시민의 삶을 바꾸는 개혁에 나서야 합니다. 그렇게 될 때, “여기서 멈추겠다.”고 했던 노회찬은 결코 멈추지 않고 우리와 함께 “당당히 나아갈 것”입니다. 그리고 마침내 한국 정치 변화의 상징으로 남게 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우리의 벗, 존경하는 나의 선배 노회찬 이시여. 부디 영면하십시오. 먼 훗날 다시 만나면, 수많은 노회찬의 부활로 진보정치의 큰 꿈을 이루고 이 나라가 평등 평화의 새로운 대한민국이 됐다고 기쁘게 이야기 나눌 것입니다. 심상정 의원 “노회찬이 있었기에 심상정이 있었습니다. 가장 든든한 선배이자 버팀목이었습니다.” 노회찬 대표님! 나의 동지, 사랑하는 동지, 영원한 동지여! 지금 제가 왜? 왜? 대표님께 조사를 올려야 한단 말입니까? 저는 싫습니다. 꿈이었으면 좋겠습니다. 그저 뒤로 숨고만 싶습니다. 생각할수록 자책감에 서러움이 밀려옵니다. 쉬운 길 놔두고 풍찬노숙의 길을 자임한 우리들이었기에, 수많은 고뇌와 상처들을 기꺼이 감당해왔던 믿음직한 당신이었기에, 우리 사이의 침묵은 이심전심이고 믿음이며 위로였기에, 지금껏 그래왔듯 그저 침묵으로 기도하면 될 줄 알았습니다. 저의 아둔함에 가슴을 칩니다. 칠흑 같은 고독 속에 수 없는 번민의 밤을 지새웠을 당신을 생각하면 억장이 무너집니다. 존경하고 사랑하는 노회찬 동지여! 돌아보니 우리가 함께 한 세월이 30년이 되었습니다. 당신은 인천에서, 저는 구로공단에서 노동운동가로 알게 되어 이후 민주노동당, 진보신당, 통합진보당 그리고 정의당에 이르기까지 노회찬, 심상정은 늘 진보정치의 험준한 능선을 걸어 왔습니다. 우리는 수많은 패배로 점철되었던 진보정치의 역사에서 함께 좌절하고, 함께 일어섰습니다. 그 간난신고의 길, 혼자서는 감당할 수 없던 시간이었습니다. 당신이 열어주셨기에 함께할 수 있었고 당신과 함께였기에 견딜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역사와 국민의 부름 앞에서 주저 없이 고난의 길을 마다하지 않고 여기까지 왔지 않습니까? 이제 우리의 뜻을 국민들께서도 널리 공감해주시기 시작한 이 때, 이렇게 황망하게 홀로 떠나시니 원통합니다. 당신 없이 그 많은 숙제를 어찌 감당해야 합니까? 그러나 이제 슬픔을 접으려 합니다. 당신을 잃은 오늘, 우리는 아무것도 두렵지 않습니다. 깨끗하고 정의로운 정치를 위해 당신이 감당했던 천근만근 책임감을 온몸으로 받아 안을 것입니다. 저와 정의당이 그 유지를 가슴깊이 아로새기겠습니다. 당신이 목숨보다 아꼈던 진보정치, 정의당은 더 강해지겠습니다. 거침없이 앞으로 나아가겠습니다. 아름답고 품격 있는 정당으로 발돋움 하여 국민의 더 큰 사랑 받겠습니다. ‘나는 여기서 멈추지만 당은 당당히 앞으로 나아가길 바란다’고 당부하셨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럴 수 없습니다. 노회찬 없는 진보정당, 상상할 수 없습니다. 가능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앞으로도 노회찬과 함께 할 것입니다. 당신이 끝끝내 지켜내고자 했던 진보정치의 꿈, 정의로운 복지국가, 저와 정의당 당원들이 함께 기필코 이뤄낼 것입니다. 사랑하는 노회찬 동지여! 나의 동지여! 마지막으로 생전에 드리지 못한 말을 전합니다. 노회찬이 있었기에 심상정이 있었습니다. 가장 든든한 선배이자 버팀목이었습니다. 늘 지켜보고 계실 것이기에 ‘보고싶다’는 말은 아끼겠습니다. 대신 더 단단해지겠습니다. 두려움 없이 당당하게, 앞으로 앞으로 나아가겠습니다. 2011년 대한문 앞에서 함께 단식농성하며 약속했던 그 말, ‘함께 진보정치의 끝을 보자’던 그 약속, 꼭 지켜낼 것입니다. 정의당이 노회찬과 함께 기필코 세상을 바꿔낼 것입니다. 노회찬 대표님, 이제 무거운 짐을 내려놓고 편히 쉬소서. 국민들과 함께 소탈하고 아름다운 정치인 노회찬을 영원히 기억할 것입니다. 영원히 사랑할 것입니다. 김호규 금속노동자 “진보정당운동과 노동운동의 후배로서 선배의 유지를 받아안고 산 자의 결기로 나아가겠습니다.” 노회찬 선배께 “노동자도 인간답게 살고 싶다”는 너무나도 소박한 요구를 밤새 가르방으로 긁어 유인물로 만들고 새벽찬 어둠을 뚫고 잰걸음으로 인천, 부천지역 공단 주변 집집마다 돌리고 먼 길을 돌아 출근했던 노동자 생활이 떠오릅니다. 서로 얼굴도 모른 채 가명으로 활동한 1986년 늦가을이 생각납니다. 벅찬 가슴안고 뚜벅뚜벅 걸었던 노동자의 길을 기억 합니다. 그 길에서 만난 노회찬 선배. 30년이 지난 오늘 영원한 안식의 길에서 만나게 되는군요. 제가 부족했습니다. 노동운동의 노선과 조직이름이 바뀌어도, 함께했던 선배였기에, 노동자 정치세력화와 산별노조 양날개론을 증명해보고자 실천한 선배였기에, 온갖 시련과 갈등이 혼재된 진보정당운동에서 대중적인 정치인으로 우뚝 선 선배였기에, 그저 믿었습니다. 저희가 안일했습니다. 예전 조직활동을 했던 때처럼 분명하게 비판하고 조직적으로 결정했다면 이렇게 허망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제가 필요할 때만 전화했던 이기심이 부끄럽습니다. 바쁘다는 이유로 선배의 고민을 함께하지 못했던 얄팍함을 반성합니다. 그래도 노동자 민중의 정치를 위해 희망을 만들었던 선배를 존경합니다. 푸근한 호빵맨으로, 적절한 비유로 비판의 경지를 한 단계 높여 대중적인 진보정치의 새로운 길을 열어낸 선배의 열정을 사랑합니다. 낮은 울림이 큰 첼로를 연주할 수 있는 정치인으로, 온 국민이 악기 하나쯤은 연주 할 수 있는 나라를 꿈꿨던 선배의 감성을 배우겠습니다. 1986년 부천에서 노동자의 길을 시작한 저에게 지난 30여 년 동안 선배와의 인연은 일선의 현장활동가로서 가까웠지만 사안에 따라 다소 멀기도 한 것 같습니다. 그래도 울산에서의 다양한 활동에 대한 선배의 지도는 늘 좋았고 명쾌했습니다. 갈등했던 기억은 잠시 뒤로 미루고, 울산 바닷가에서 의기투합했던 도원결의는 간직하겠습니다. 선배를 보내는 이 자리는 회한과 슬픔이 앞서지만 넋 놓지 않고 다시 한 번, 진보정당운동과 노동운동의 후배로서 선배의 유지를 받아안고 산 자의 결기로 나아가겠습니다. 더 이상 부끄럽지 않기 위해서는 선배를 통해 체득한 실사구시(實事求是)를 활동하는 동안 놓치지 않고, 노동자의 길로 나아가는 발걸음마다 나지막이 퍼져가도록 하겠습니다. 장례기간 동안 선배를 추모하는 긴 추모행렬을 보았고, 다양한 국민들의 목소리를 들었습니다. 이제 노동자의 길을 걸었던 노동운동가에서 진정한 정치인으로 우뚝 선 선배이기에 영원한 안식의 공간에서 하고 싶은 것을 하고, 가고 싶은 곳을 자유롭게 가시기를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이 글을 쓰기 위해 광화문 정동길 금속노조 사무실 옥상에서 선배를 기억하며 서성이는데 붉은 고추잠자리가 제 주위를 맴도네요. 추억과 동심의 잠자리 모습에서 씨익 웃는 선배의 모습이 보이는 것 같아 번뜩 내려와 ‘귀로’라는 노래를 들으며 이 글을 쓰고 있습니다. 노래 중에 이런 대목이 다가옵니다. “무지개가 뜨는 언덕을 찾아 넓은 세상 멀리 헤매 다녔네 그 무지개 어디로 사라지고 높던 해는 기울어가네 새털구름 머문 파란 하늘 아래 푸른 숨을 쉬며 천천히 걸어서 나 그리운 그 곳에 간다네 먼 길을 돌아 처음으로” 엄혹했던 노동운동가에서, 치열한 진보적 대중 정치인으로. 이제는 자유로운 인간으로 국민들의 가슴 속에 첼로의 운율을 남긴 만큼 먼 길 돌아왔습니다. 처음처럼, 아가처럼 편히 쉬십시오.
  • [문소영 칼럼] 제우스의 번개와 노회찬

    [문소영 칼럼] 제우스의 번개와 노회찬

    올림포스 신전 제우스의 무기는 번개다. 범죄자를 응징할 때 이 번개를 쓴다. 잠깐 상상해 본다. 고(故) 노회찬 의원이 받았다는 4000만원을 기준으로 정치자금법을 위반한 정치인에게 제우스가 번개를 때린다면, 서울 여의도 300명의 국회의원 중 몇 명이나 이 번개를 피할 것인가.현행 정치자금법은 일명 ‘오세훈법’이라고 부른다. 2004년 17대 총선을 앞둔 정치권의 화두는 정치개혁이었다. 그 개혁 덕분에 민주노동당이 진보정당 최초로 국회에 진출하고 노 의원도 비례대표로 국회에 입성했다. 정당투표를 허용했기 때문이다. 정치자금법 개정은 2002년 대선에서 한나라당의 ‘정치자금 차떼기’ 파문 극복용이었는데 당시 한나라당의 초선 오세훈 의원이 주도하고 본인은 불출마를 선언한 덕분에 국회를 통과했다. 주요 내용으로 개인의 소액 후원은 장려하고 법인과 단체의 후원금 제공은 금지했다. 후원 한도로 국회의원은 평년에는 1억 5000만원까지, 선거가 있는 해에는 3억원까지 모금할 수 있다. 2004년 기준이 아니라 14년이 지난 지금도 평범한 직장인의 눈으로 1억 5000만원에서 3억원은 어마어마하게 많은 돈이다. 하지만 현실 정치는 ‘돈 먹는 하마’ 수준이라 새 발의 피다. 한 원로 정치인은 총선에 최소 5억원 정도를 써야 했다고 한다. 2004년부터 득표율에 따라 국가가 선거비용을 보전해 주지만, 서너 번 낙선하면 패가망신할 만한 비용이다. 또 지구당을 없앴지만, 편법으로 지역민의 민원을 들어주는 사무소를 내고 직원을 고용하면 매월 1000만~1500만원의 비용이 발생한다. 당내 선거도 맨입으로 할 수 없다. 기탁금을 수천만원을 내야 한다. 장소를 빌리고 행사를 하는 데 필요하다. 8월 25일 더불어민주당 당대표와 최고위원 선거를 앞두고 후보들은 등록비 500만원을 내고, 당대표 입후보자는 9000만원, 최고위원 후보자는 4000만원을 추가로 냈다. 진성 당원이 크게 늘어 1회 문자 메시지를 보내면 약 1000만원의 비용이 발생한다. 움직일 때마다 돈이다. 이 자금을 세비를 저금해서 마련할 수 있을까. 무리다. 그래서 “‘오세훈법’을 현실에 맞게 개정하자”는 주장이 나오는데, ‘검은돈 근절’과 ‘깨끗한 정치’라는 명분이 늘 여론을 얻어 좌절된다. 돌아보면 국민에게 사랑받는 정치인들은 돈 고생을 많이 했다. 경기고·서울대(KS) 상대 출신이지만, 오랜 재야 민주화 운동으로 ‘운동권의 대부’라는 타이틀을 가진 김근태 전 최고위원도 그랬다. 그는 2002년 대선 후보 경선 중에 ‘권노갑 고문에게 2000만원을 지원받았다’고 고백했다가 쏟아지는 비난에 크게 상심하고 경선을 접었다. 변호사였으나 상고 출신인 노무현 전 대통령도 후원이 넉넉하지 않았다. 정치 낭인 시절 말 많고 탈 많은 물장사에 나섰던 이유는 ‘원수 같은 돈’을 마련하려 했던 탓이다. 그 가난 탓에 일부 보좌관은 한나라당에 몸을 의탁했다가 배신자라는 손가락질도 받았다. 서갑원 전 의원은 노 전 대통령과 지방 출장에서 운전기사까지 세 명이 한방을 썼는데 돈이 없었던 탓이라고 고백하기도 했다. 이렇게 혹독한 시절을 겪었기에 그는 대통령이 된 뒤 2004년에 예비후보자로 등록하면 선거 120일 전부터 후원금을 받을 수 있게 하는 내용의 공직선거법 제60조의3(예비후보자의 선거운동) 신설에 힘을 실어주었다. 평년 1억 5000만원에 묶인 한도는 그간 물가 상승률을 생각하면 2억원 이상으로 올려 주는 것이 바람직하다. 또 후원금을 조달할 수 있는 예비후보 자격을 현행 6개월보다 더 길게 해야 한다. 물론 평년에 1억 5000만원도 ‘만땅’으로 못 채우는 정치인도 적지 않다. 어떻게 아느냐고? 연말에 몰아서 후원을 하는데, 한도가 차면 이체가 안 된다. 12월 31일 저녁에 존경하는 정치인들에게 정치후원금을 넣으면서 “쯧쯧! 아직도 한도를 못 채웠구먼” 하며 구시렁거리는 재미가 있다. 정치가 좋아지려면 좋은 정치인을 후원해야 한다. 이런 정치 현실을 외면한 채 당위로 ‘깨끗한 정치’만 주장하면 제2, 제3의 ‘노회찬의 비극’이 발생할 수 있다. 도덕성을 기반으로 올바른 정치를 해보려는 정치인일수록 돈의 무게에 짓눌려 무너지게 된다.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기를/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 했다’는 윤동주의 서시를 좋은 정치인들은 이제 덜 사랑하기를 바란다. 이육사의 ‘광야의 초인’도 이젠 잊고 멀리하면 좋겠다. symun@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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