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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주영씨 희수연/각계 5백명 참석

    현대그룹 정주영명예회장의 77세 생일을 축하하는 희수연이 25일 서울 롯데호텔에서 각계 인사와 가족등 4백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열렸다. 이 자리에는 정계와 관계에서 민자당의 김영삼대표최고위원과 김종필·박태준최고위원,김대중민주당공동대표,박철언체육청소년부장관,김진현과학기술처장관등이,재계에서는 유창순전경련회장,김상하대한상의회장을 비롯한 주요재벌그룹총수들,학계에서는 박홍서강대총장,장을병성균관대총장등 학계인사와 언론계에서는 김상판동아일보명예회장,방우영조선일보회장등이 참석했다.
  • 작가 외길… 대중성·작품성 조화 추구

    ◎타계한 정비석씨의 생애와 문학세계/세태 변화 리얼하게 묘사… “이야기꾼”/서울신문 연재 「자유부인」,장안 화제로/“문학은 재미·진실 담아야” 평생 지론 실천 19일 80세로 타계한 소설가 정비석씨(본명 정서죽)는 평생을 글쓰기에 몸바친 문단의 거목. 그는 순수·통속으로 확연히 갈라진 이분법적인 문단풍토에서 대부분의 작가들이 대중작가라는 오명을 두려워 해 주저하고 있던 부분에 용기있게 뛰어들어 우리 소설의 새 지평을 개척한 인물로 평가받고 있다.그는 「성황당」「제신제」등 토속적 삶을 예술성 짙게 표현한 작품에서부터 「자유부인」「노변정담」등 세태를 묘파한 작품들,「연산군」「민비」「명기열전」등의 역사 대하소설에 이르기까지 각기 성격을 달리하는 분야에서 수많은 명편들을 남겼다.또한 고등학교 국어교과서에까지 실렸던 금강산 기행문 「산정무한」처럼 뛰어난 수필을 쓰기도 했다. 특히 그를 기억되게 하는 것은 세상의 명리를 좇지 않는 그의 후덕한 인품과 문학의 길을 외곬으로 지켜온 치열한 작가정신.그는 문단의인기작가 또는 원로작가로서 어울리는 많은 공직을 마다하고 오직 작품 창작에만 몰두하여 왔다.『작가란 마지막 순간까지 글을 써야지요』라며 7순이 넘기까지 펜을 놓지 않았던 그의 자세는 지금도 수많은 후배작가들의 귀감이 되고 있다. 1911년 평북 의주 태생으로 일본대학 문과를 중퇴한 정씨는 36년에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단편소설 「졸곡제」,37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성황당」이 당선되면서부터 소설가로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했다.초기 작품들에서 밀도있고 예술성 짙은 본격문학을 지향했던 그는 해방후부터 대중적인 통속성에 관심을 기울이게 되는데 이는 「문학은 문학성과 대중성을 조화해야 한다」는 그의 문학관에서 비롯된 것이다. 『제게 있어 문학이란 진실을 담는 재미있는 이야기입니다.대중문학은 문학도 아니라는 편벽된 논의는 하루속히 불식되어야 할 것입니다』 평소의 지론처럼 그는 직접 작품으로써 대중과 엘리트문학인 사이의 벽깨기를 실천했다. 그가 54년 서울신문에 연재한 장편소설 「자유부인」은 그 대표적인 예이다.6·25후 미국 문화의 유입으로 인한 사회적 퇴폐풍조를 배경으로 가정을 뛰쳐 나온 대학교수의 부인이 남편의 제자와 일으키는 「춤바람」을 다룬 이 작품은 발표당시 『낙양의 지가』를 올리고 정씨를 일약 베스트셀러작가로 부상시켰다.또한 이 작품은 당시 서울대 법대 황산덕교수,홍순엽변호사,그리고 작가인 정씨 사이에 이른바 「자유부인 논쟁」을 불러 일으켰었는데 격렬한 논쟁을 벌였던 황교수와 정씨가 이젠 모두 고인이 되고 말았다. 「자유부인」의 대중적 성공은 단순히 애정이나 통속성에 머물지 않고 해방 후 서구 자유주의 물결로 조성된 사치와 허영의 풍속도를 묘파한 세태 풍자에 있었다는 것이 문단의 평가다. 그는 또 73세 때인 84년에 「소설 손자병법」을 발간,국내 출판사상 첫 1백만부 판매 기록을 세우는 대중적 성공을 다시 한번 거두었다.그의 「소설손자병법」은 책으로선 국내에선 처음으로 TV에 광고되는 기록도 세웠으며 이후 우후죽순으로 쏟아져 나온 고전의 현대적 국역물의 효시가 됐다.문단 일각에선 그의 대중적 성공을 그의작품을 평가하는 증표로 삼기 전에 바른 삶과 지혜를 제시하는 방편으로서의 고전 새로 읽히기의 의미,견실한 전업작가로서의 정씨의 삶에 대해 보다 공정한 평가가 이루어져야 한다는 견해도 나오고 있다. 평소 그와 절친한 교유를 가졌던 시인 구상씨는 정씨를 『붓 하나로 일생을 산 결곡한 분이었다』며 『신문소설의 대가로 시대 풍조를 예민하게 묘파한 작가였다』고 회고한다.
  • 소설가 정비석씨 별세

    소설가 정비석씨(80·본명 정서죽)가 19일 상오 5시 서울 용산구 동부이촌동 한강맨션27동 406호 자택에서 숙환으로 별세했다. 정씨는 1911년 평북 의주에서 태어나 일본대학 문과를 중퇴한뒤 1936년 단편 「졸곡제」로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입선했으며 37년에는 조선일보에 「성황당」이 당선돼 문단에 데뷔했다. 정씨는 특히 지난 54년 서울신문에 가정을 뛰쳐나온 대학교수의 부인이 남편의 제자와 일으키는 춤바람을 다룬 장편 「자유부인」을 연재,선풍을 일으켰으며 수필집 「산정무한」「소설손자병법」등 많은 작품을 남겼다. 발인은 21일 상오 10시.장지는 충남 천안공원묘지. 유족으로는 미망인 박정순씨(80)와 장남 천수씨(50·중앙일보이사)등 3남4녀가 있다.795­5801
  • “조만식선생,50년 평양서 총살당했다”

    ◎소 거주 전 북한 고위인사들 증언/유엔군 입성 하루전 5백여명과 함께/북한군,대동강변에 집단 매장후 도주 6·25이후 생사를 알길없던 민족주의자 고당 조만식선생은 전쟁중 북한당국에 의해 총살당한 것으로 밝혀졌다. 이같은 사실은 중앙일보가 당시 북한에서 당·정고위직을 지내다 그후 숙청돼 소련 등 해외로 탈출·망명한 인사들의 증언을 인용,19일 보도함에 따라 40여년만에 드러났다. 조만식선생은 6·25전쟁중 북한인민군이 유엔군에 밀려 평양에서 후퇴하기 전날인 50년 10월18일 공산정권에 반대하던 미족계열인사및 치안사범등 5백여명과함께 총살당해 대동강변에 가매장됐었다고 이들은 증언했다.이제까지는 조만식선생이 신탁통치 반대 등을 이유로 46년 1월부터 연금생활에 들어간 뒤 행방이 묘연해져 고령으로 자연사했거나 6·25전쟁을 전후해 북한정권에 의해 처형됐을 것으로 막연히 추측돼왔을 뿐 그의 사망시기 및 방법,동기와 배경 등이 명확히 밝혀지지않고 있었다. 북한에서 조소문화협회부위원장,주동독·체코 초대대사 외무성부상 등을 지내다 지난 59년 소련으로 망명한 박길용박사(71·소련과학아카데미 동방학연구소 선임연구위원)등에 따르면 북한은 50년 6·25전쟁을 일으킨 뒤 남진을 계속하다가 유엔군의 인천상륙작전으로 전세가 역전되고 한국군과 유엔군의 평양입성이 임박하자 50년 10월 중순쯤 주요 정부기관을 평북(현재 자강도)강계로 이동시키기로 최종결정한 직후 형무소 등에 수감한 정치범 및 치안사범들을 그곳까지 끌고갈 수 없다고 판단했다는 것이다.이에 따라 유엔군이 평양에 입성하기 하루전인 10월18일 「특수가옥」에 연금시켜온 조만식선생(당시 68세)을 비롯,내무성 구치소(형무소)등에 가뒀던 지식인 기독교인 등 민족주의 계열인사와 치안사범 등 5백여명을 집단총살시킨 뒤 시체를 가매장하거나 일부는 그대로 둔채 후퇴했었다. 북한은 중국군의 참전으로 50년 12월초 다시 평양을 탈환하자마자 조만식선생 등의 시체를 파내 『전쟁을 도발한 이승만괴뢰군이 평양을 쳐들어오면서 조만식선생 등 수많은 민족지도자급 인사들을 죽여 구덩이에 파묻고 퇴각했다』고 선전했고 그후 북한주민들은 조만식선생 등이 한국군과 유엔군에 의해 처형된 것처럼 알고 있다고 박씨 등은 전했다. 북한 내무성부상까지 지내다 숙청돼 현재 레닌그라드에 사는 당시 북한노동당 강원도당 부위원장이었던 강상호씨(82)는『평양이북지역으로 후퇴하던 날밤 조만식 등 반동분자들이 총살됐다는 말을 들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고당의 3남인 조연흥씨(51·조선일보 총무국장)는 『60년대 중반 한 귀순자가 자료를 통해 자신의 부하로부터 45년 10월15일쯤 아버지를 총살했었다는 말을 들었다고 전했으나 명확치 않아 그동안 아버지의 기일을 정하지못한 채 해마다 아버지의 생신일(2월1일)을 맞아 추모하고 있다』면서 『이번처럼 아버지를 비롯한 민족계열인사 등 5백여명이 북한당국에 의해 학살된 시기 방법 동기와 배경 등이 당시 북한의 고위관리에 의해 명확히 밝혀지기는 처음으로 매우 신뢰가 간다』고 말했다. 북한문제전문가인 이정식교수(미 펜실베니아대)는 『고당은 소련군정의 엄정한 감시하에 평양의 고려호텔에 연금된 이후 행방불명돼 한국전쟁중에 공산정권에 의해 살해됐다는 소문이 있으나 확실한 증거가 없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1882년 평남 강서군 반석면에서 출생한 고당 조만식선생은 3·1운동과 물산장려운동에 앞장서는 등 일제때부터 해방정국에 이르기까지 민족주의자로 일관해왔으며 6·25전쟁이 나고 부터는 생사를 알길이 없었다.
  • 남북한 「원로회담」 제의/각계 32인 시국선언

    ◎도덕성 회복·민족 대화합 촉구 김수환추기경·한경직목사·서의현조계종총무원장등 종교계지도자와 민부기전대법원장·이강훈광복회장등 정계·사회원로 31명은 7일 낮12시 서울 종로2가 파고다공원에서 도덕성회복과 민족대화합을 위한 시국선언문을 발표했다. 원로들은 선언문을 통해 『겨레와 나라의 오늘과 내일을 크게 우려하는 우리 각계 원로들은 도덕의 파탄과 민족의 분열로 야기된 역사적 위기를 더이상 방관할 수 없어 우리 생애 마지막 우국충정의 심지를 돋워 분연히 떨쳐 일어섰다』고 밝혔다. 원로들은 이에앞서 이날 상오10시부터 서울 종로구 내자호텔에서 모임을 갖고 「원로회의상설사무국」의 설치와 북한에 남북원로회담을 제의할 것을 결의,오는 8월13일 재미교포 예술단을 이끌고 북한을 방문하는 이병호아시아태평양변호사협회회장을 통해 북한측에 이를 정식제의하기로 했다. 시국선언에 참여한 인사들은 다음과 같다. ▲고흥문 전국회부의장 ▲구상 시인 ▲김경수 성균관장 ▲김상만 동아일보회장 ▲김수환 추기경 ▲김용식 전외무부장관 ▲김정렬 전국무총리 ▲민관식 전국회부의장 ▲민복기 전대법원장 ▲박충훈 전대통령권한대행 ▲방일영 조선일보회장 ▲서돈각 전학술원장 ▲서의현 불교총무원장 ▲손인실 전YWCA부회장 ▲안호상 전문교부장관 ▲엄요섭 기독교산업사회연구소장 ▲오익제 천도교교령 ▲원흥균 전세종대총장 ▲유달영 적십자중앙위원 ▲유창순 전경련회장 ▲윤석중 예술원원로회원 ▲윤천주 전서울대총장 ▲윤치영 전국회의장 ▲이강훈 광복회회장 ▲이병호 변호사 ▲이숭녕 학술원회원 ▲이충환 민주화합추진위원 ▲이형근 전육군참모총장 ▲전예용 민족중흥회장 ▲최규남 전문교부장관 ▲최태섭 한국유리회장 ▲한경직 목사
  • 고리원전 2호기 또 “스톱”/3일 이어 어제도 3시간 고장

    ◎3백20개 업체 제한송전 고리원전2호기의 불시고장으로 3일에 이어 5일 하오2∼5시사이에 또다시 사실상의 제한송전인 「전력수급조정요금제」가 발동됐다. 이 조치의 긴급 발동으로 3백20개업체가 전기사용량을 47만㎾ 줄여 5일의 최대전력사용량을 낮12시 1천7백26만9천㎾로 낮춰 불시정전사태를 막았다. 이날 전력공급능력은 고리2호기의 고장으로 1천7백72만3천㎾밖에 되지 않아 긴급수급조정요금제가 발동되지 않았다면 최대전력 사용량은 공급능력을 1만6천㎾나 웃돈 1천7백73만9천㎾를 기록,제한송전이 불가피한 상황이었다. 이날 전력수급조정요금제의 발동으로 전기사용량을 줄인 업체는 서울의 한전 본사를 비롯,KBS·조선일보사·롯데호텔·롯데쇼핑센터·조선맥주·한국타이어·여의도 럭키금성트윈빌딩·뉴코아백화점·제일은행·종근당·힐튼호텔 등이었으며 이들 업체나 빌딩들은 일부 시설의 가동을 중단하거나 자가발전시설을 가동했다. 비록 제한송전의 위기는 넘겼으나 이날 전력공급예비율은 2·6%에 머물러 40만㎾급 발전소 하나만 고장이났더라도 제한송전을 피할 수 없었다. 한전은 이날 낮 기온이 상승,하오3시쯤 최대전력사용량이 1천8백만㎾를 기록할 것으로 예상돼 수급조정제를 발동했다고 밝혔다. 이날 전력공급능력이 떨어진 이유는 고리원전2호기가 새벽 3시31분쯤 급수제어벨브의 제어카드가 고장이나 가동을 중단했으며 곧바로 고장 수리에 들어가 상오10시 수리를 끝내고 재가동에 들어갔다.
  • 조선일보 지사 피습/사기 불태우고 시위/대학생 2백여명

    【광주=최치봉 기자】 9일 하오 7시20분쯤 광주시 동구 금남로2가 조선일보 광주지사에 대학생으로 보이는 청년 2백여 명이 몰려가 계란과 돌멩이 등을 던지고 사기를 불태우는 등 1시간여 동안 시위를 벌였다. 이들은 이날 전남도청 앞 광장에서 열린 보성고생 김철수군 장례노제에 참석했다가 1백m쯤 떨어진 광주동구청 건물 3층에 있는 조선일보사에 몰려가 『노 정권의 꼭두각시 조선일보 박살내자』는 등의 구호를 외치며 계란 30여 개와 돌멩이 10여 개를 던져 조선일보지사 유리창 3장,동구청사 유리창 2장을 깨뜨리고 동구청 옥상에 내걸린 조선일보 깃발을 끌어내려 불태웠다.
  • 교열기자 16대 회장 윤광현씨

    한국교열기자회(회장 정복수)는 31일 하오 프레스센터 기자회견장에서 91년도 정기 총회를 갖고 16대 회장에 윤광현씨(조선일보 교열부차장)를 선출했다.
  • 서울신문 전 판매국장 이경성씨

    서울신문사 판매국장을 지낸 이경성씨가 22일 0시30분 서울 강동구 명일동 고덕 우성아파트 7동 206호 자택에서 숙환으로 별세했다. 향년 63세. 이씨는 서울신문사를 거쳐 조선일보사 광고국장,한국일보사 출판국장 등을 역임했다. 유족은 부인 유순례씨와 장남 정식씨(기독교방송 정치부 차장) 등 2남2녀. 발인 24일 상오 9시,장지 경기도 파주군 교하면 목동리 선영. 472­0209.
  • 해외연수생 3명 선발/서울언론재단

    서울언론재단(이사장 신동호)은 9일 91년 하반기 해외연수언론인으로 신상민(한국경제편집위원 조지워싱턴대),이우봉(부산매일신문 정경부장 미주리대),김효재(조선일보 국제부기자 조지타운대)씨를 선발했다.
  • 신문윤리위원 위촉

    한국신문윤리위원회는 24일 제6백23차 회의를 열고 91년도 윤리위원 10명을 새로 위촉했다. ▲위원장 나항윤(변호사) ▲위원 심상기(경향신문 사장) ▲〃 송정제(부산일보 사장) ▲〃 김두겸(중앙일보 뉴스위크국장) ▲〃 김명규(조선일보 편집국장) ▲〃 남영진(한국일보 기자) ▲〃 장재진(국민일보 기자) ▲〃 김철수(서울대 교수) ▲〃 박기원(작가) ▲〃 이인호(신문광고협의회 부회장)
  • 경도 IPI총회 개막

    【도쿄=강수웅 특파원】 제40차 IPI(국제신문인협회)총회가 세계 40개국 3백90여 명의 대표들이 참석한 가운데 22일 일본 교토시내 다카하가 이케 프린스호텔에서 개막돼 3일간의 회의에 들어갔다. 총회 2일째인 23일에는 걸프전쟁 기간 동안의 언론검열 문제가 집중적으로 논의될 것으로 보이는데 클로드 모이시 AFP통신 사장,마크 다마저 BBC 사장,앨빈 슈스터 로스앤젤레스타임스 편집국장 등이 연사로 나선다. 이번 IPI총회에는 IPI 한국위원장인 이종기 중앙일보 부회장,김상만 동아일보 명예회장(IPI 명예종신회원),김성열 동아일보 고문(IPI 이사),신우식 서울신문 사장,심상기 경향신문 사장,권오기 동아일보 부사장,방상훈 조선일보 부사장 등 한국 언론계 대표 26명이 참석했으며 김경원 사회과학원장,아프리카민족회의(ANC) 부의장 넬슨 만델라,소련 대통령수석고문 알렉산데르 야코블레프 등이 초청인사로 참석,연설 또는 토론에 참가한다.
  • 언론창달에 평생 바친 “대기자”/타계한 최석채씨의 생애

    ◎거침없는 직필로 수차례 필화·옥고/64년엔 「언론윤리위법」반대 투쟁도 11일 타계한 최석채씨는 지난 87년 4월14일 대구 매일신문 명예회장직을 물러나 45년 동안 일해 왔던 언론계를 은퇴하면서도 『직장을 그만 둔 것이지 기자이기를 그만 둔 것은 아니다』라고 말할 정도로 한평생 왕성한 의욕으로 집필을 멈추지 않았던 「평생언론인」이라 할 수 있다. 고인은 특히 「조상전래의 선비정신을 현대사회에 구체화시키는 게 오늘을 사는 언론인의 위상」이란 일생의 신조 아래 거침없는 직필로 몇차례 필화를 겪기도 했다. 그가 언론계와 인연을 맺은 것은 일제 때인 42년 4월 일본 중앙대 법대를 다니다가 부업으로 법제라는 수험생잡지에 편집기자로 들어가면서부터였다. 해방 이듬해인 46년 대구에서 발행된 건국공론이란 잡지의 자매지인 주간민론의 편집부장을 거쳐 경북 신문의 편집부국장으로 신문에 발을 들여놓았다. 이듬해인 47년다시 부녀일보 편집국장으로 옮겼다가 경찰의 영남일보기자 집단구타사건에 대한 대구 기자단의 항의문을 1면에 전문게재했다가 15일 동안 옥고를 겪었다. 그 뒤 55년9월 대구매일신문 주필로 있을 때 자유당 정권이 정치행사에 걸핏하면 학생들을 동원하는 것을 보고 「학도를 도구로 이용하지 말라」는 사설을 썼다가 국가보안법위반혐의로 구속돼 또 한 차례 옥고를 겪었다. 오랜 법정투쟁 끝에 이 사건은 56년 5월 대법원에서 무죄로 판결났다. 이 판결은 국가보안법과 언론자유와의 한계를 명확하게 규정짓게 된 중요한 계기로 평가되고 있다. 그는 4·19가 일어나기 약 한 달 전인 60년 3월17일 논설위원으로 재직하고 있던 조선일보 사설에 「호국구국운동 이 외의 다른 방도는 없다」는 격문을 실어 4·19의 도화선을 제공했다는 평을 들을 정도였다. 또한 5·16 이후 현역군인 80여 명이 군사혁명의 기세를 업고 최고회의 건물 마당에서 군사혁명지지 민정참여촉구 데모를 했을 때는 「일부 군인들의 탈선행동을 경고한다」는 사설을 1면에 실었으며 비상사태 임시조치법으로 정치비판이 봉쇄되자 12일 동안 신문에 사설을 싣지 않기도 하는 등 「직필언론인」의 기질을발휘했다. 64년 편집인협회 부회장에 피선되어 언론파동 때 언론윤리위원회법 반대투쟁에 앞장섰으며 66년부터 71년 사이 편집인협회 회장을 역임했었다. 72년부터 80년까지는 문화방송·경향신문 회장을 지냈으며 이 사이 5·16장학회이사장,아사아신문재단 한국위원회위원장도 겸임했었다. 81년부터 87년까지 매일신문 명예회장과 함께 성곡언론문화재단 이사장으로 일했으며 편집인협회 고문 등으로 화려한 경력을 쌓으면서 큰 족적을 남긴 언론인으로 생애를 마감했다.
  • 원로언론인 최석채씨 별세/15일 편집인협회장

    원로언론인 최석채씨가 11일 하오 1시30분 서울 은평구 응암동 2의21 자택에서 별세했다. 향년 74세. 최씨는 지병인 심장병으로 지난달 31일 서울중앙병원에 입원,치료를 받아오다 병세가 악화돼 이날 자택으로 옮겨졌다. 최씨는 대구 매일신문 주필,경향신문 편집국장,조선일보 편집국장 및 주필을 지냈고 66년부터 77년까지 신문편집인협회 3대 회장직을 맡는 등 언론계 발전에 큰 공을 남겼다. 또 신문·방송의 경영에도 참여,74년부터 80년까지 문화방송·경향신문 회장을 역임했으며 87년 대구매일신문 명예회장직을 물러난 뒤 최근까지 신문편집인협회 고문,조선일보 비상임이사를 맡아 왔다. 금관문화 훈장을 받았으며 저서로는 「서민의 항장」이 있다. 유족으로는 미망인 장지분씨(66)와 2남1녀가 있다. 장례는 편집인협회장으로 치러지며 발인은 15일 상오 8시. 연락처(02)355­0913.
  • 본사 이동화부국장/편협 보도위장 선임

    한국신문편집인협회(회장 안병훈)는 12일 프레스센터에서 상임위원회와 특별위원회를 각각 열고 임기 2년의 새 위원장을 선출했다. △심사위원장=박용정(한국경제신문 편집인겸 상무) △보도자유위원장=이동화(서울신문 편집부국장) △국제위원장=홍성만(경향신문 편집부국장) △보도용어통일심의위원장=이민우(연합통신 심의위원) △남북교류위원장=김철(조선일보 국제부장)
  • 노 총리,관훈토론 일문일답/요지

    ◎“「기초의회」 실시 「수서문제」와 무관”/내각제는 여건되면 정치권서 논의를/정치변화,반드시 세대교체 의미 안해/정치무대도 같은 배우가 자꾸 나오면 국민이 싫증 노재봉 국무총리는 이날 저녁 토론자로 나온 송정숙 서울신문 논설위원­이도형 조선일보 논설위원,민병문 동아일보 논설위원,강영구 문화방송 해설주간 등과 일문일답을 벌였다. 다음은 일문일답 요지. ­수서문제·의원뇌물외유 등으로 정치지도층의 도덕성문제가 제기되고 있는데…. 정치입문 2년만에 총리가 된데 대한 불안은. 『정치도덕성 문제는 개개인이 나빠서라기 보다는 권위주의와 민주사회라는 이중적 질서가 공존하는 역사적 전환기에 처한 우리사회의 구조적 문제로 이해해야 한다. 6공은 바로 반세기의 권위주의를 청산해야 하는 부담을 안고 민주질서지향을 위해 모든 노력을 다하고 있다. 그 가운데 정치도덕성 손상을 막기위한 선거법·부패방지법 등 제도적 장치를 마련중이다. 또 나 자신에 대한 문제는 청와대 2년 경험으로 충분히 경험을 쌓았다 생각하며 현실과 밀접한 정치학을 해왔기 때문에 학문세계와 정치세계 사이에서 사고의 충격을 느낀 적은 없다』 ­야권의 반대에도 불구,기초 자치단체의회 의원선거를 굳이 앞당겨 실시하는 이유는. 『지자제선거 3월 실시를 수서문제와 연관시켜 말하는 사람이 많은데 둘사이는 전연 관계가 없다. 민주사회에서 완전한 동의는 불가능하며 정부는 옳다는 노선만 확정되면 결단을 내려야지 기회주의적으로 산술평균을 내서 할수는 없다』 ­노총리는 지난 90년 3월17일 대통령 비서실장에 임명된 후에도 7,8개월 동안 진행되고 있던 부하직원의 비리를 모르고 있었는가. 『지상에 보도되기 이틀전인 지난달 1일 수서문제를 처음 알고 마침 의원외유사건 관계로 대통령께 보고할 일이 있어 청와대 본관에 갔다가 「수서문제가 생긴답니다」라고 보고했더니 대통령께서 「수서가 뭐지?」라고 되물을 정도였다. ­지난해 12월 비서실장에서 국무총리로 임명받았을때 노태우대통령의 임기 후반부에 내각제 개헌이나 권력구도와 연계된 어떤 특수임무를 부여받지 않았는가. 『특수임무는없었으며 대통령께서 학자출신으로 우둔하게 보여 사심없이 행정에 임해달라고 임명하시지 않았는가 생각한다. 내각제에 관해서는 그것이 마치 독재체제처럼 인식돼 있는데 정치권에서 우리현실을 감안,논의할 수 있으면 해야지 밀어붙이는 식으로는 할수 없다고 생각한다. 세대교체 문제는 정치도 사회여건에 따라 변화가 이뤄져야 하나 그 변화가 반드시 세대교체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며 정치는 나이가 많다고 못하고 젊다고 잘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단지 정치는 쇼와 같아서 같은 배우가 자꾸 나오면 국민도 싫어하게 마련이 아닌가 생각한다』 ­만일 정치일선에서 나서라는 권유를 받을때는 어떻게 하겠는가. 『추호도 정치에 나설 생각이 없으며 하는데까지 하고 본업인 학문세계로 돌아갈 계획이다』 ­총리취임 이후 공안세력의 강화로 정부가 강성내각 또는 검사공화국으로 불리는 경향이 있는데 강성의 의미는. 『공안파는 없으며 모든 것을 힘있는데까지 정상으로 되돌려 놓으려는 것이지 강성내각 연성내각하는 것과는 상관이 없다. 국민이 정부가 연성이라 한다해서 강하게 할 생각도 없고 다만 합리적으로 하려는 것이 경우에 따라 강약으로 보일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다』
  • 노 총리 초청 토론회/관훈클럽

    관훈클럽(총무 신성순 중앙일보 논설위원)은 오는 5일 하오6시30분 프레스센터 20층 국제회의장에서 노재봉 국무총리를 초청,관훈토론회를 개최한다. 토론자는 다음과 같다. ▲민병문 동아일보 논설위원 ▲송정숙 서울신문 〃 ▲이도형 조선일보 〃 ▲강영구 MBC 해설주간
  • 김윤환사무총장/민자 신임 당3역의 “제일성”

    ◎수서사건 자성… 「청정정치」 제도화 『국회의원 뇌물외유·수서택지 특별분양사건 등 정치권의 국민적 신뢰를 실추시킨 사건을 하루속히 효율적으로 마무리하고 정치신뢰가 회복된 정당을 만드는데 노력하겠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단행된 19일의 민자당 당직개편에서 원내총무에서 사무총장으로 영전된 김윤환 신임 총장은 이날 취임소감을 이같이 밝히면서 집권여당의 새 모습을 찾기 위한 각오를 새롭게 했다. 김총장은 다소 멋적어 하면서도 싫지않은 표정이었고 평소 사무총장직을 원했던 그의 「야심」을 염두에 둔 『소원성취를 하셨습니다』라는 축하에 정색을 하며 『진짜 웃기는 소리』라고 되받은 뒤 여론을 탐지하려는 모습을 보였다. ­총장에 임명된 소감 및 각오는. ▲정치에 대한 국민의 시선이 따가운때에 집권여당의 조직을 총괄하는 사무총장직에 임명돼 어깨가 무겁다. 최근의 사건을 거울로 삼아 높은 수준의 청정정치를 제도화시키고 이를 구현시키는 데 당이 앞장서도록 하겠다. ­유임이 확실시되던 총무직을 고사했는데 오히려 총장직에 발탁된 이유는 무엇이라고 보는가. ▲임명권자인 당 총재가 현시점에서 총장직을 맡으라는 말씀이 있어 따랐다. 앞으로 당내 계파간의 이견을 조율,단합된 모습을 보이는데 충실하라는 뜻으로 받아들이고 싶다. ­내정사실은 언제 통보 받았는가. ▲오늘 아침11시쯤 청와대 비서실장으로부터 총장직을 맡으면 어떻겠느냐는 당총재의 말씀이 있었다는 전갈을 받고 총장인선에 포함돼 있는 것을 처음 알았다. ­청정정치를 제도화할 구체적 복안은. ▲깨끗한 정치,돈 안드는 선거가 되도록 정치자금법·국회의원선거법·국회법을 개선하고 국회의원 윤리강령의 실천요강을 만들어 정착시켜 나가겠다. 김총장은 노태우 대통령과는 경북고 동기동창이라는 친분관계로 6공의 각종 현안에 실세역을 담당하고 있으며 아호 「허주」에서 보듯 만사에 무리하지 않는 순리형이다. 특유의 친화력과 정치력으로 3당통합 이후 당내분이 격화되고 정국이 경색되면서 지난해 10월 원내사령탑에 복귀,집권당 원내총무를 두차례 역임한 행운아. △59세·경북 선산 △경북대 졸 △조선일보 주일·주미특파원,편집국장대리 △10·11·13대 의원 △문공차관 △대통령 정무수석·비서실장 △민정당 원내총무 △정무1장관 △민자당 원내총무
  • 한국경제신문 사장 호영진씨 선임

    한국경제신문사는 2일 제29기 정기주총을 열고 대표이사 사장에 호영진 상무이사 주필(55)을 선임했다. 전임 이규행사장은 10년 근속후 임기만료로 이날 퇴임했다. 신임 호사장은 61년 조선일보 정치·경제부 기자로 언론계에 발을 디딘후 신아일보·서울신문을 거쳐 80년11월부터 한국경제신문에서 편집국장·감사 등을 역임해왔다.
  • 한국 신문편집인협/새 회장에 안병훈씨

    한국 신문편집인협회는 18일 하오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대의원총회를 열고 새 회장에 안병훈씨(조선일보 편집인겸 상무)를 선출했다. 또 부회장에는 남시욱(동아일보 상무) 장두성(중앙일보 논설주간) 현소환(연합통신 상무) 박성범(KBS 보도본부장) 최승호씨(광주일보 편집인겸 전무) 등 5명을 선출하고 감사에 백인호(매일경제 이사) 임해순씨(충청일보 전무)를 선임했다. 회의는 또 이관우(세종대왕 기념사업회장) 이우세(전 서울신문 사장) 조두흠씨(일간스포츠 사장) 등 3명을 고문으로 추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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