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전몰자
    2026-06-10
    검색기록 지우기
  • 역사 문제
    2026-06-10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264
  • 가이후 일 총리/신사참배 거부/각료7명 참배

    【도쿄AP로이터연합】 가이후 도시키(해부준수)일본총리는 15일 일본의 2차대전 항복 46주년을 맞아 일본의 군국주의를 상징하는 야스쿠니 신사의 참배를 거부했으나 일본인 전몰자를 추모하는 의식에 참석,일본은 앞으로 세계평화유지에 기여할 것이라고 다짐했다. 그러나 이날 수천명의 일본인들이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했으며 21명의 정부각료 가운데 하시모토류타로(교본용태랑)대장상을 비롯한 7명의 각료들이 1백95명의 자민당 의원들과 함께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이날까지 신사 참배한 일부정부각료는 모두 13명이 됐다. 나카야마 다로(중산태랑)외상과 사카모도 미소지(판본삼십랑)관방장관은 가이후 총리와 함께 신사 참배를 거부했다.
  • 「유해송환공동위」 설치/북한·미 합의/미군유해 11구 인도

    【판문점=유재림 기자】 6·25전쟁중 실종됐던 미군유해 11구가 24일 상오 판문점에서 북한에 의해 미국측에 인도됐다. 이번 유해인도는 종전 후인 54년 8월17일 전몰자 유해 대량교환과 90년 5월28일 5구의 미군유해 인도에 이어 세 번째다. 이날 유해인도는 북한 최고인민회의 대의원 겸 적십자회 부위원장인 리성호 등 북한측 대표단과 미 상원 군사위원회 위원인 로버트 스미스 의원(공화·뉴햄프셔 출신) 등 미 인수단 사이에 이루어졌다. 한편 이에 앞서 스미스 의원은 23일에도 판문점에서 북한의 리성호와,24일에는 북한외교부 부부장 강석주 등과 만나 북한측이 제의한 「미군 유골송환공동위원회」 구성을 합의하고 그 동안 미국측이 생존설을 주장해온 미군포로들의 생사확인을 비롯해 추가 유해송환문제 등을 협의했다. 한편 스미스 의원은 이날 상오 회의에서 『미군병사 문제와 관련한 모든 사안에 관해 북한이 협의의사를 밝혀온 데 대해 감사한다』며 『이 문제에 관한 진전은 양국관계를 개선시킬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리성호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공동기구를 만들어 잘 해나가자』며 『「미군 유골송환공동위원회」를 구성,실무적 문제를 해결해나가자』고 제의했다.
  • 북한,미군유해 5구 인도/어제 판문점서 휴전이래 두번째

    ◎미 원호위장,“관계개선 계기로” 【판문점=김원홍기자】 6ㆍ25때 실종된 미군유해 5구가 28일 상오 11시 판문점에서 북한측에 의해 미국측에 인도됐다. 이날의 미군유해 송환은 전쟁직후인 54년 8월17일 전몰자 유해를 대량으로 상호교환한 이래 36년만에 처음 있는 일이다. 이날 판문점에는 「조선최고인민회의」 대의원겸 「조선대외문화연락협회」 부위원장인 이성호등 북한측 대표 3명이 나와 27일 내한한 미 하원 원호위원회(재향군인위원회) 위원장 소니 몽고메리 의원(민주)등 미국측 인수단 3명에게 유해를 인도했다. 이번에 인도된 5구의 유해는 87년 5월 황북도 토산에서 발견된 공군 1명과 같은 해 7월 수안에서 발견된 육군 4명의 것으로 29일 미 공군 특별기편으로 하와이로 운구,미 육군 중앙신원확인연구소로 옮겨져 신원을 확인한 뒤 유가족들에게 인도될 예정이다. 유해 5구중 2구는 인식표가 있어 북한측에 의해 이미 신원이 확인됐으나 나머지 3구는 3∼6개월 뒤에나 확인할 수 있을 것으로 알려졌다. 양측은 이날 상오 11시 판문점 공동경비구역 군사정전위원회 본회담장에서 유해인도및 인수서명을 했다. 유해인도가 끝난 뒤 몽고메리 위원장은 『실종미군유해 1백여구 이상이 이미 북한에 의해 발굴되거나 발굴될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안다』면서 『이번 유해송환을 계기로 더많은 유해가 송환되고 양국관계가 개선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 일,징병한인유골 수장 의혹

    ◎일정부,7천6백구 48년 송환 주장/국내 유족들엔 단 1구도 인계안돼 일본은 강제징병으로 태평양전쟁에 끌려가 희생당한 한국인 유골 7천6백여구를 종전후인 지난 48년 한국에 송환했다고 밝히고 있으나 국내 유가족들중에는 이 유골을 인수한 사람이 전혀 없는 것으로 밝혀져 송환과정에서 수장등의 방법으로 없어진 것이 아닌가 하는 의혹을 짙게 해주고 있다. 이같은 의혹은 일제징병으로 끌려간 부모친지의 생사확인 및 유해송환을 일본후생성에 요청했던 국내 유가족들에 의해 제기되고 있다. 이들에 따르면 일본 후생성측은 지난48년 두차례에 걸쳐 군인ㆍ군속유골 7천6백43구를 한국측에 송환했다고 밝히고 있으나 당시 유골을 받은 유족은 한사람도 없다는 것. 이와관련,후생성측은 8일 상오 1948년 2월3일 나가사키(장기)현 사세보항을 출항한 보고타 마루편으로 4천5백97구의 유골을 송환한데 이어 같은해 5월31일 역시 사세보항에서 황금환편으로 3천46구의 유골을 한국에 보냈다고 공식 확인했다. 무라세마츠오(촌뢰송웅) 원호국 업무1과장등 후생성관계자들은 이날 연합통신기자와 만난 자리에서 『한국인 유골 7천6백여구를 본국으로 송환한 것이 사실이냐』는 질문에 대해 원호국 근거자료를 제시하면서 『한국인 전몰자는 종전전에는 육군의 경우 본적지를 관할하는 도병사부가,해군은 진해해군사령부가 전사자통보 및 유골전달 등의 업무를 담당했으며 종전후에는 후쿠오카 세화부 및 육군 복원국 잔무처리부에서 이를 담당했다』고 밝히고 『당시 복원국 문서에 따르면 분명히 한국인 군인ㆍ군속 유골이 사망자명부와 함께 두차례에 걸쳐 부산항에 송환된 것으로 돼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국내 유족중 당시 부산항에서 유골을 인수했다는 사람은 아직까지 한 사람도 나타나지 않고 있으며 부산일대에 거주하고 있는 일부 유족들 사이에서는 유골을 실은 배가 부산항에 입항했다가 유족들의 거센 항의로 하역을 하지 못하고 그대로 되돌아갔다는 이야기가 공공연히 나돌고 있는 실정이다. 특히 태평양전쟁 희생자유족회(회장 배해안원ㆍ55)에 따르면 후생성은 지난75년 유족회회장단이 후생성을 방문,유골송환여부를 확인할 당시 한 고위관리가 『유골의 행방이 묘연하다』고 밝혔던 것으로 알려져 문제의 유골은 송환과정에서 수장또는 폐기된 것이 틀림없는 것으로 보여지고 있다. 75년4월 최종수회장(작고)과 함께 후생성을 방문했던 김상씨(63ㆍ현 유족회 부산지부장)는 이에대해 『당시 부산항으로 송환된 유해를 받은 사람이 아무도 없다고 다그치자 한 후생성관리는 부산항에 입항했던 배가 어떤 이유인지 몰라도 일본으로 되돌아 간뒤 유골의 행방이 묘연해졌다고 털어 놓았었다』며 『일본인들이 바다에 유골을 버리고 갔을 것을 생각했지만 당시 자료등 구체적인 증거가 없어 그동안 이 사실을 외부에 공개하지 못했었다』고 밝혔다. 그러나 후생성측은 이날 『분명히 관련문서에는 유골이 한국으로 송환된것으로 돼 있다』면서 『인수사실 여부는 한국정부에 문의해 봐야 할 것』이라고만 대답했다.
위로